하나님께 구하라


선지자선교회 1984년 5월 21일 월새

 

본문 : 약 4:1-3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군대라 이랬습니다. 여호와의 군대.

하나님의 군대라. 또 세상에 있는 교회는 전투 교회라 이렇게 말합니다. 전투  교회라 말은 싸움 싸우는 교회라. 여호와의 군대라. 하나님을 대장 삼아서  싸우는 군대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싸움은 하나님을 대장으로 삼고 무엇으로 더불어 싸우는가? 첫째  내 속에 있는 나 아닌 나, 원수인 나, 옛사람 나. 내 영을 죽여서 사망케 한  악령과 자기중심이라는 악성, 원죄. 이것이 원죄입니다.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라는 것은 한 가지 두 가지 삐뚤어지는 일을 자꾸 하면 그것이 연습이  돼서 습관이 됩니다. 나쁜 습관, 또 자기중심,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될 자가  자기중심, 또 성신의 감화로 살아야 될 자가 악령의 유혹으로 사는 이것이 우리  속에 우리 마음을 주장하고 우리 몸을 주장하고 있는 옛사람입니다. 이것이  원수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명예욕에 끌려 가지고 일생을 헛일하는 사람도 있고, 또  권세 욕심에 끌려 가지고 일생 동안을 헛일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물질  욕심에 끌려서 일생 동안을 헛일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애국욕에 끌려서  또 애민족욕에 끌려서. 또 어떤 사람은 인간을 사랑 해 보자 해서 박애욕, 넓을  박(博)자 사랑 애(愛)자,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이 박애욕에 끌려 가지고,  이것이나 저것이나 이런 취미에 끌리고 이런 욕심에 끌리고 이런 감정에 끌리고,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복수성에 끌려 가지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거창 집회 갈 때 혹 봤는지 몰라도 지금은 그게 넘어갔습니다.

봉황대라 하는 대가 있는데, 그 대에 가보면 집을 얼마나 잘 지었든지 기둥 네  개로 세워 가지고 정각을 지었는데 기둥 셋을 끊어 버렸습니다. 끊어도 기둥 한  개에 그 집이 서 가지고 있는 집이 있습니다. 요새는 보니까 넘어갔습디다.

그것은 변씨들하고 이씨들하고 서로 양반 다툼 문중 다툼으로서 봉황대가 이  사람들은, 이씨는 이씨네 봉황대라 또 변씨는 변씨네 봉황대라 이래 가지고  시비해 가지고 변씨가 이씨네 정각을 기둥을 그렇게 끊었습니다. 그 기둥 끊은  사람이 누군고 하니 여기에 ○뭐이고? ○○○, ○○○아버지가 그것을 끊어  버렸습니다. 그 사람들이 굉장히 좀 독종이라면 독종이 그 뭐 우스운  사람입니다. 그래 끊어 가지고 모두 길가 가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 보면서.

길가에서 보면서 그랬습니다. 그 사람은 뭐이냐? 일편단심 자기 문벌주의입니다.

자기 가문. 자기 가문을 위해서, 자기가 문이 남의 가문에 지지 안한다는 것 또  그 욕심도 있다 말이오. 별별 욕심 이 있습니다. 이 욕심 또 이 감정, 그 사람은  항상 그거 시비하고 다녔습니다. 이씨하고. 결국은 이씨가 못 이겼습니다.

나중에 가서 시비를 해서 법적으로 해서는 안 되니까 그만 가 가지고 기둥을  끊어 버리고 뭐 감옥에 들어갈 요량하고 이라니까 감들 못했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이런 복수성으로. 또 어떤 사란은 바이올린을 타면서 바이올린에 취미를  붙여 가지고 일생을 허송하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허송하든지 저렇게 허송하든지 어떻게 하든지 허송케 한 고놈은  자기 속의 자기입니다.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들어서 자기의 심신을 유혹시켜  가지고 그라기 때문에, 제일 큰 원수가 뭐이냐? 나 아닌 나. 원죄로 되어 있는  나, 나 아닌 나. 자기가 원수, 하나님의 뜻을 거역 하고 자기 욕심대로 자기  주관대로 자기 감정대로 자기 취미대로 하나님을 마땅히 위해 살아야 될 것이  자기 위해서 살라는 자기 속에 자기 아닌 자기, 원수인 자기, 옛사람 자기  그놈의 우리의 제일 큰 원수이기 때문에 그놈으로 더불어 싸우는 우리는  투사입니다. 우리는 전투 교회라 싸우는 교회라 말인데, 또 여호와의 군대라  말인데, 여호와의 군대는 누구하고 싸우는가? 자기 속에 자기 아닌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되어 있는 자기 그놈하고 싸우는 이 싸워이 제일 첫째 우리의  적이요  둘째 적은 누군가? 둘째의 적은 이 악령이 내 안에 들어오지 안하고 내 밖에  있어서 다른 모든 사람을 꾀어 가지고 악령의 군대를 삼아 가지고 그들로 하여금  날 어떻게 하는가? 악인의 꾀를 좋게 하고 죄인의 길에 서게 하고 또 오만한  자리에 앉게 하고 교만하게 하고 이래 가지고 모든 사람을 꼬아 가지고 나를  넘겨트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악령이 사로잡고 있는 모든 그 악의 세력하고  우리가 또 싸워야 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기는 그 일을 부모가 명할 때에는  그 일을 복종하지 안하고 반대해야 됩니다. 반대하나 반대하는 그 방법이 다른  것은, 수하 사람이 자기에게 잘못할 때에는 명령도 하고 호령도 하고 종아리도  깔리고 이래 할 수 있지만 자기 위에 있는 어른이 자기에게 반대할 때에는 그  반대하는 방편을 달리 해야 합니다. 사정을 하면서 이것 이것은 틀렸으니까  어떻게 하든지 내가 다른 것은 순종할 터이니까 이렇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해야  되고, 간청해서 안 들으면 세 번 간청해도 안 들으면 '추후 통곡하라.' 그 뒤에  눈물 흘리면서 울면서 간청하라 했습니다. 아무리 부모가 틀린 일이라도, 남편이  틀린 일이라도 그럴 때에는 명령적은 할 수가 없으니까 이것을 타일러서 간절히  구하다가 안 들으면 울라 했습니다. 울어서라도 돌이키도록 하고 자기는 거기  복종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 참사람의 싸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아무리  친구라도 가족이라도 상관이라도 마귀에게 이끌려 가지고 바르지 안한 것. 죄를  짓게 하는 것, 하나님을 어기게 하는 것, 하나님을 배반케 하는 것, 자기 구원을  손해케 하는 것 이런 것을 말할 때는 누가 말해도 그로 더불어 싸워야 됩니다.

 이러니까, 자기로 더불어 첫째 싸워야 되고, 또 악령으로 더불어 싸워야 되고,  악령과 악령의 군대로 더불어 싸워야 되고 그 다음에는 죄로 더불어 우리는  싸워야 됩니다. 이 싸우면서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죄를 입혀 주셨으니까 그  죄를 짓지 안하려고 싸웁니다. 의로울라고 싸웁니다.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라고 싸웁니다. 이것이 우리의 싸움입니다. 이것이  우리 싸움인데, 이 싸움을 싸우면 하나님이 우리 편 돼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에 당신의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다 주십니다.

 이런데, 우리는 그런 싸움 싸우지 안하고, 여기 4장에 보니까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좋아 오느냐 다툼이 어디로 좇아오느냐 '너희 지체 중에' 우리의  지체 가운데는 여러 가지 지체 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생 동안 고기를  낚으면서, 고기를 요새는 뭐 기계에 놓고 손 안 대고 낚지만 과거에는 손으로  낚시를 던지면, 낚시를 던져 가지고 고기가 물면 그 고기 낚시대가 녹끈거릴  때에 그 자기 손에 신경이 녹끈하는 고 취미로서 일생 동안 고기 낚는 것으로써  마치는 자 있습니다. 이러다가 요새는 그게 아니고 팔팔 살아 있는 그 생명 하나  죽이니까 그 생명이 안 죽을라고 파닥 파닥 거리면 생명 죽이는 고 취미에서 또  고기 낚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수들도 자기가 돈벌이보다도 자기가 총을 놔  가지고 한 생명을 죽일때에 그 생명이 꺼꾸러지면서 뛰고 굴리면서 그 노루가 한  마리 죽으면 거기에 쾌락이 있다 말이오. 쾌감이 있다 말이오. 별별 쾌감이  있습니다. 이래서, 대개는 어장을 해 가지고 잡는 사람들은 괜찮은데 낚시  가지고 잡는 그런 사람들은 고 취미가 나빠서 낚시질하는 사람의 자손이 잘 안  됩니다. 또 포수질하는 사람의 자손이 잘 안 됩니다. 왜? 남의 생명을 죽이는 고  취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별별 이 취미, 악, 또 원수를 갚는 것, 이런 욕심 저런 욕심 별별 것 다  있는데 그놈이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옛사람 자기 그놈에게서 나온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옛사람 그놈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이 평생을 허사를  하는데, 평생 허사를 하는데 그놈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잘못된 길을 걷는 데는,  잘못된 길을 걷는 데는 누가 봐도 아주 잘못됐다 하는 그 길을 걷는 자가 복이  있습니까? 그 길은 걸어도 괜찮다 할 수 있는 그 길을 걸어서 구원에 실패되는  것이 복 있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그 둘 중에는 복이 있습니까? 저 ○○씨,  예? 뒤의 사람이 복이 있어? 삐뚤어진 일을 하는 데는 누가 봐도 '그 일은  할만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 삐뚤어졌다고 그렇게 하지 않을 만한 그런 일을 해  가지고 구원을 실패 하는 사람 있고, 하나는 누가 봐도 저거는 뭐 천인 만인이  봐도 그거는 틀렸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그 일을 해 가지고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하면 어느 사람입니까?  아주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자기 속사람 자기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삐뚤어진 걸음을 걷는 데에는 아주 뉘가 봐도 엄청난 삐뚤어진 걸음을 걷는 그  사람이 그중에는 복이 있습니까? 그래도 삐뚤어진 걸음 걸어도 괜찮다 싶은  걸음을 걷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요 사람 한번 대답 해 봐요. 자기 한번  대답해 보라고. 어느 사람이 복이 있어? 허, 이거 못 알아듣네. 또, 아주  삐뚤어졌다는 것? 아주 삐뚤어졌다는 그 사람이 복이 있어. 잘 알았어. 아주  삐뚤어졌다는 그 걸음을 걷는 사람은 아주 모든 사람이 삐뚤어졌다 하니까 그  사람은 삐뚤어진 줄 알고 돌아서기가 쉽고, '아. 요놈을 찾아서 요놈이, 내,  속에 있는 옛사람 요놈이 들어서 날 이렇게 유혹했는데 이게 틀렸다' 싶어서 그  사람 고칠 수가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술술하이 그거는 괜찮은 일이라 하는  사람은 실은 구원은 헛일이고, 옛사람의 유혹으로서 살기는 사는데 아주 그렇게  틀린 줄을 모르기 때문에 고치기가 어렵다 그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그런고로, 우리는 이 싸움이 우리 싸움 될 터인데 '모두 너희 지체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전부 자기 욕심 옛사람 그놈이 들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원수 맺게 하고, 또 그놈이 들어서 친하게 만들게 하고 원수  만들게 하고, 또 예쁘게 만들게 하고 밉게 만들게 하고 이렇게 자꾸 그놈의,  작용으로서 언제는 그렇게 예뻤다가 언제는 그렇게 미웠다가, 언제는 그렇게  친했다가 언제는 그렇게 원수가 되었다가, 언제는 그렇게 가까이 했다가 언제는  멀리 했다가, 그놈이 들어서 언제는 그게 그렇게 좋다가 또 언제는 그렇게  싫다가 이 전부 이 마귀가 들어서 우리를 이용해 가지고 악령과 악성과 악습 그  마음대로 나를 놀려 먹는 것을 생각하면 분하다 말이오. 이래서, 자기 속에  옛사람 이놈이 원수라는 걸 알고 이놈이 분해서 '내가 죽어도 옛사람 요놈  시키는 대로 안 하겠다.' 하는 그 아주 목적을 정해 놓고 그렇게 그놈으로  더불어 싸워도 가다 보면 넘어져 버립니다. 자기 속에 있는 원수이기 때문에.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가 이 옛사람에게 속해 가지고 안할 시비를 하고 안할  욕심을 품고 안할 노력을 하고 안할 계획을 하고 이렇게 안할 것을 많이 하는  통에 사람이 분주하고 못 사는 것입니다. 전부 헛일하기 때문에 못 사는 것이오.

참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하면 하나님이 섬기고 얼마든지 성경 보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하나님 섬기고 얼마든지 의롭게 거룩하게 살아도 그 모든  것이 다 여유있고 축복 받아서 잘 살 수 있는 것인 데 사람들이 잘못한 일을  하기 때문에 다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시험 받는 것을 하나님에게 시험 받는다고 하지 말아라. 네 속에 있는  잘못된 욕심 그놈에게 미혹 받아 가지고 그놈 때문에 네가 공연히 걱정도 하고,  공연히 근심도 하고 공연히 사람하고 원수도 맺고, 공연히 불만도 품고, 공연히  탄식도 하고. 공연히 원망도 하고, 공연히 시비도 하고, 공연히 싸움도 하고, 뭐  피를 흘리고 살인하기까지 한다 그말이오. 그놈이 들어서. 그놈에게 이용을 당해  가지고 그 놈이 우리를 놀려 먹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분개한지.

 자기 속에 자기 같은데 자기 아닌 그놈이 들어서 자기를 놀려서 일생을 망치게  한다는 요것을 보고 요놈이 원수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단단히 간판을 붙여 놓고  못을 박아 놓고 그로 더불어 싸우는 요 싸움이 없는 사람은 성공 같으나 항상  실패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놈에게 이용 당하기 때문에, 그놈이 뭣 주는  것이 망치기 위해서 주는 것이지 좋은 것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것을  요게 말했고.

 그 다음에 2절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또 살인하며 시기 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이런데, 공연히 그 사람이  내게 방해한다고, 인간이 인간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삐뚤어지게 갈  때에 방해하지, 바른 길을 가면 방해할수록 좋습니다. 바른 길,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른 길을 갈 때에 방해가 없으면 좋습니까? 방해가 있으면 좋습니까? 방해가  있을수록 좋습니다. 왜? 방해가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더 나타나니까, 권위가  더 나타나고 영광이 더 나타나고 가치가 더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의 올바른 길을 걸으면 원수가 있으면 있을수록 좋고 또 원수가  달라들지를 아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하기를 시온의 대로라 이랬소. 예수  믿는 올바른 길은 시온의 대로라 아무 거침이 없다. 그런데 왜 핍박이 있노?  핍박이 있지. 그 핍박이 있으면 핍박 그게 손해입니까? 핍박이 없으면 하늘에  면류관이 없습니다. 다니엘에게 핍박이 없었으면 승리의 면류관이 있겠습니까?  핍박이 있을수록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권능이 나타나고 가치 있는 승리가  되기 때문에 유익이지 손해가 없는 것입니다.

 "다투는도다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요것입니다.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믿는 사람이 하나님에게 구하지 안하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 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요걸 잘 알아들어야 돼요. 주님이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십니다. 공간도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고, 당신 마음대로이고, 시간도  당신 마음대로이고, 인간의 심리도 당신 마음 대로이고, 활동도 당신  마음대로이고 (저 졸병, 모처럼 와 가지고 꾸벅 꾸벅 졸면 어짜는고? 단단히  들어야 가 가지고 이기지.)시간도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고 공간도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요. 공간이라면 빈 데 아닙니까? 이 공간 이거 전부 다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요. 시간도 당신이 주권 하고 계시요. 생사도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오. 인간의 심리 작용도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요.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당신이 주권하고 계십니다. 또 당신이 크고 작은 모든 것의 주재시요 당신이  주인이시오 모든 것의 주재시라.

 이러니까, 주님을 주권자로 인정하고 모든 것이 그분의 것이라는 그분 이  주인인 것을 인정하고, 그분을 상대해서 그분이 줘야 되고 그분과 의논해야  된다는 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주재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성을 인정을 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알고 그분을 상대 허서  그분에게 구하면 될 터인데 그분을 바로 알지 안하고 삐뚤어지게 구하기 때문에  일이 안된다 말이오. '다른 것이 주면, 사람이 주면 잘 주지만 사람이 안 주니까  하나님께 구하자.' 그런 믿음을 가지기 때문에 안 됩니다. 이래 기도하다가,  기도해 나가면 사람이 줄라 합니다. 죄 짓는 방법을 쓰면 사람이 줄라 합니다.

죄 짓는 방법을 쓰면 사람이 줄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주심을 받는 그  시기인데 그 시기가 뭐이냐? '사람이 줄라 하면. 죄되게 줄라 하는 것 보니까  하나님이 주는 것 아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주시면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서도  주시지만 죄되게 주는 것 보니까 하나님 주시는 것 아니다. 하나님께로 온 것  아니다. 나 안 할랍니다.' '왜 네가 지금 이 돈이 필요한데 왜 돈을 안할라  하느냐?' '그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이 내게 오는 것이 하나님의 법을 거슬려서  오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게 아니요 당신의 조작으로 되기 때문에 나는 안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 아니면 안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오는 것이지 뜻을 어겨서 오는 것이 없습니다.' 딱 거절할 때  하나님께서 '그 네가 나를 정말로 믿는구나.' 당신이 그때 주신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이 안 주시고 마귀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죄라는 방편을  통해서, 반드시 죄가 되게 우리에게 줍니다. 죄를 범함으로 우리에게 오게 되는  그런 것이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죄 없이 깨끗이 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하지만 이 세상 마귀란 놈이 제 것처럼,  그 마귀의 이름이 뭡니까? 마귀의 이름이 뭐 이지요? 뭐?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인데 또 그것도 있지만, 예? 불한당. 아닐 불(不)자 땀 한(汗)자 무리  당(黨)자. 땀 흘리지 안하고 제 것이라고 하는 그것이 마귀라 말이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기는 하시는데 전부 제가 하는 척, 제가 하나도 권리 없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0장에 불한당이라 이랬소, 마귀는 불한당이라. 사마리아  여인에게 와 가지고, 불한당이 와서 때리지 안했습니까? 불한당이 사마리아  여인을 때렸는데, 그거 하나의 비유인데, 마귀란 놈이 하나님의 백성을 다  때려서 절단낸다 고거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다. 주인은 여기에 있는데 주인은 떡  여기에 있는데 어만 데 가 가지고 '이것 좀 좀 빌려 주십시오. 이것 좀  주십시오. 이것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그라면 주인은 주시겠습니까? 더 안  주시겠습니까? '야 이놈아. 그자한테 아무리 해 봐라. 줄 권리가 있는가? 주는가  봐라.' 더 안 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을 모르고, 주인을 몰라도, 주인을  모르고 이 등신 같은 게 와 가지고 주인을 모르고 공연히 그 집 근방에 와  가지고 '아, 이것 좀 주십시오.' 또 변소에 가 가지고 '좀 주십시오.' 또 방에  가서 '주십시오.' 마당에 가서 '주십시오.' 주인을 못 찾아 이래 쌓으니까 그  주인이 어짜겠소? 이거 모르고 하니 불쌍해서 '야야, 내게 여기 있다.' 하시면서  깨달을 수 있도록 해서 주시지만 주인 아닌 마귀에게 가서 돌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안 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의 일군인, 하나님 아닌 어떤  피조물에게라도, 어떤 피조물에게라도, '이 피조물 이게 들어서 나에게  주시겠지' 해 가지고 그렇게 하는 자들은 다 헛일입니다. 하나님께 구해야 되지.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주재라는 것. 하나님이  주인이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신다. 요 두 가지를 바로 알 고, 그  다음에는, 둘째로는 '정욕으로 쓸라고 잘못 구함이다.' '정욕으로 쓸라고 잘못  구함이다.' 속에 옛사람 그놈의 욕심대로 쓸라고 잘못 구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또 하나 알 거는 뭐이냐? 이것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것은 문제가  없고 당장 주실 수 있는데 이 주는 것을 가지고 자기가 어째 쓸 줄을 몰라서.

어째 쓸 줄을 몰라서 주시는 것을 잘못 써 가지고 오히려 자기를 망치는 그런  역효과가 나도록 그렇게 사용할 수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다. 안  주시고, 바로 쓸 슈 있는 지혜를 가르칠라고 자꾸 애를 써요. 지혜를 가르칠라고  애를 써. 안 주시는 게 아니라, 내 기도를 안 들으시는 게 아니라 '네가 이것  받아 가지고 네가 잘못 쓰면 네가 망하기 때문에 이라면 망한다 자라면 잘못  쓰면 망한다.' 바로 쓰는 이치를 가르칠라고 애를 씁니다.

 또 그 다음에는 바로 쓰는 이치를 알아서 '주여, 고거 주시면 내가 요래도  사용하고 저래도 사용하겠습니다.' 바로 쓰는 이치를 알았습니다. 이치를  알았는데 안 주십니다. 이치를 알았지만 그 사람이 술 먹으면 나쁜 줄 알고  자기가 오만 맹세를 다 해도 그 속에 술 먹는 사람이 변화되지 안 했기 때문에  술을 안 먹을 수가 없다 그 말이오. 또 자기가 아주 나쁜 동무에게 끌리는, '그  동무는 나쁘다. 그 동무에게 끌리면 안 된다.' 나쁜 동무에게 끌리면 안 되는 줄  알아도 나쁜 동무를 끊을 만한, 배반할 만한 그 만한 실력이 속에 없으니까 암만  결심해 봐야 소용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바로 쓸 것을 알아도 바로 써서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시면서 아무리  삐뚤어진 것을 알고 바로 쓸 것을 알아도 바로 쓸 만한 그만한 실력이 없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 바로 쓸 만 한 실력이 갖춰지도록 자꾸 사람을 고치는 그  일을 타이릅니다. 그 일을 해 주셔. 그래서 그 사람이 바로 쓸 것을 알고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얼마든지 즉시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구원 되고  하나님에게는 영광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다 복을 주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 신앙생활은. 공연히 하나님께 모든 것이 주권이 되어 있는데  그분은 냅두고 엉뚱한 데 가 가지고 날뛰는 이런 헛된 일을 우리가 하지 안해야  합니다. 뭣 때문에 사람으로 더불어 다틉니까? 다툴 필요 없어. 그분에게 주권이  있는데, 그분에게 주권이 있는데 사람이 뭐 네가 그랬다 그랬다 하는 것은,  주권은 그분에게 있는데 어만 데 가서 그렇게 자꾸 지탈을 붙으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런고로, 그 분이 주권자시요 그분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 그분이 나에게 주실라면 주시고 안 주실라면 안 주시고  그분에게 있다 하는 요것을 알고 그분에게 구하고.

 그러면, 잘 구했소. 구하면 벌써 하나님께서 '아 네가 내가 주권자로 알고 내가  주인인 줄 알고 내가 주는 것만이 너희에게 유익되고 나만이 너에게 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고 나만이 너를 사랑하는 줄 알고 네가 나에게 고하니 내가  주지.'들고 있습니다. 주실라고 들고 있어. 들고 있는데 왜 우리에게 덜퍽  주시지 않습니까? 안 주시는 그 이유는 이것 가지고 잘못 써서 도리어, 사랑하는  아들에게 칼 주니까 칼 가지고 자기 상우게 되는 것. 아주 그 폭탄이 원수를  치는 네는 좋지만 아들이, 이 군대가 이 폭탄 사용할 줄 모르면 그 폭탄에 제가  폭발돼서 죽을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잘못 사용하면 안 된다 그 말이오.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은 잘 사용하면 그만한 유익이 있고 필요한 것은 잘못  사용하면 그만침 해가 있는 것입니다. 유익이 요만침 있는 것은, 바로 사용해서  유익이 요만침 있는 것은 잘못 사용하면 또 해가 요만침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편리한 것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그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기는 바로 구했는데, 주실라고 보니까  이게 받아 가지고 잘못 사용해서, 정욕으로 쓸라고 잘못 구해. 정욕으로 쓸라고,  정욕으로 쓰면, 옛사람 그놈이 시키는 대로 쓰면 자기 망칠 거라 말이오.

하나님에게 얻어 가지고 옛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망할 터이기 때문에, 이  옛사람이 시키는 대로 할 사람이니까 요걸 고쳐 야 되겠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자기 양심을 통해서, 성신의 감동으로 이래  가지고 네가 이렇게 구해도 엎지 못하는 것은 네가 정욕으로 쓸라고 잘못  구함이다. 네가 잘못 쓰는 그런, 잘못 쓸라고 네가 구하기 때문에 줄 수가 없다.

네가 바로 쓸라고 구하면 주겠다. 자꾸 그걸 깨닫게 해. 그럴 때 안 줄 때에는  '내가 무슨 이걸 받아 가지고 잘못 쓰는 그런 결과를 맺을까 해서 하나님이 안  주시는가 보다. 이걸 한 번 살펴보자. 아, 내가 만일 이걸 이래 썼으면 그  결과가 큰일 날 뻔 했다. 주여 안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자, 잘못 쓴 걸 알았습니다. 내가 잘못 쓴 것, '이래 쓰면 잘못인데  내가 바로 쓰겠습니다.' 그라면 주시겠습니까? '이제는 바로 쓰겠습니다. 내가  요래 쓰겠습니다.' 당장 주십니까, 그래도, 바로 쓰기를 알고 바로 쓰겠다고  말하는데 주시지 안하면 우리는 그 문제가 어디 걸려 가지고 있습니까? 어디  걸려 가지고 있지요? 그 문제가 어디 걸려 가지고 있지요? 바로 쓸 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시면 바로 쓸라고 결심도 하고 바로 쓸 줄도 아는데 아직까지  하나님이 주시지 안한다면 문제가 어디 걸려 가지고 아직까지 하나님이 주시지  않습니까? 어디 걸렸소? 예? 어디 걸렸소? 사람에게 걸렸지. 그 사람이 자기가  바로 쓸 줄 알고 삐뚤어지게 안 쓸라고 마음먹고 결심은 했지만 아직까지 그  사람이 안 됐기 때문에 결국 주면 마귀에게 넘어가 가지고 쓰고 만다 그 말이오.

 '내가 오늘은 이 돈 가지고 학교에 낼 돈 내지 동무에게 끌려가서 그렇게 내가  그래 안 합니다. 아버지, 내가 그 동무한테 꼬인 줄 알고 나쁜 동무인 줄도  알고, 이 학비를 주시면 이 학비를 오늘 학교에 갖다 낼 걸 내지 그 아이에게  꼬여 가 가지고 저 다른 데 가서 돈 쓰고 술 먹고 이래 그 짓 안하겠습니다.'  아들이 결심을 합니다. 결심을 해도 안 줍니다. 안 줘. '야, 네가 그렇게 돌라고  하는데 네가 그 동무를 못 이긴다. 동무를 못 이기니까 네가 오늘이 바칠  마감날인데, 마감날인데 오늘 안내면 너는 퇴학을 만날 것 아니가? 이런데 네게  오늘 줘 봤자 네가 또 악한 동무한테 끌려가 가지고 헛일 한다.' 이러니까 그  부모가 안 주고, 어떨 때는 안 주고, 하도 '안 그렇습니다. 요번에는 안  그렇습니다.' 이라니까, '그러면 보자. 그러면 내 주지.' 주면서, 부모가 벌써  학비는 냈소. 갖다 내놓고 아들을 제가 하도 결심하니까. 결심해 쌓아니까 제가  그래 하는가 싶어서가 아니라 '저놈이 결심해도 아직까지는 사람이 변화 안 됐기  때문에 가면 반드시 동무한테 끌려가 가지고 죄 짓고 온다.' 알면서 돈을 척  줍니다. '오늘은 네가 선생님한테 꼭 이걸 바쳐라. 그리 안 하면 안 된다.'  부모가 내면서 '우리 아들이 달라고 해서 그놈의 동무한테 자꾸 꼬여 쌓는데 이  선생님한테 내가 갖다 드리니까 가지고 오거들랑 아이구 가지고 왔나 칭찬이나  하고 그래 받아 가지고 날 주십시오. 이 약속을 딱 했다 말이오. 선생님이  기다리니까 와야지? 가지고 와야지? 또 동무한테 가 가지고 꼬여서 헛일했다  말이오. 그러면 '네가 오늘 학교에 가 가지고 바친다 하더니만 악한 동무한테  끌려가지 안한다 하더만 여기 오늘 또 이와같이 동무에게 끌려가 가지고 이 돈도  소비하고 사람도 버리고 이렇게 했느냐?' 그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내가 안  갈라 했는데 그놈의 아이가 어데 가 가지고 뭐 하자고 하기 때문에 그만 그래  꼬여 가지고 넘어 갔 다고, 그전에 꼬우던 방법이 아니고 새로운 방법으로 꼬아  가지고 내가 넘어 갔다고 이라면서 또 결심합니다. 그라면 부모가 학교는 낭파  당하지 안하도록 하고 그라는 것처럼. 우리에게 주지 안해도 당신이 낭파 되지  안하도록 이렇게 둘러서 다 모든 일을 다 사랑으로 다 역사하시면서 우리를  기를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걸 다 가졌소. 그분이 모든 것을  움직임을 당신이 주권하고 계시요. 그분 한 분이면 다 돼. 이러니까, 그분을  그분으로 알고 우리가 그분에게 구합니다. 그분은 우리 아버지시요.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바친 우리의 구주시요. 이러니까, 그분을 그분으로 알고 이렇게 구하면  그분이 다 주시는데, 구하는 것을 주시지 안할 때에는 그것이 내가 철이 없어서  모르고 구하지 그걸 구하면 그걸 주시면 낭파 될 것이라든지 결과적으로 해가 될  때 안 주시고, 또 잘 사용하면 유익이 될 것도 안 주시는 것은 내가 바로 사용할  것을 모르기 때문에 안 주시고, 또 바로 사용할 줄 알아도 안 주시는 것은 바로  사용할 줄 알기는 알지만서 도 사람이 변화되지 안했기 때문에 결국은 또 그  구덩이에 또, 돼지가 씻었다가 구덩이에 들어가는 것처럼 또 들어가고 말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꾸 금합니다. 하나님께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는 것은 이 하나님이 돌라 하는 자에게 주고 싶은 그 마음은 간절한데 이  자꾸 지 체를 하니까, 지체를 하니까, 아, 이게 돌라고 하니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이게 고치지 안하니 그 돌라고 하는데 못 주니까 애가 터져서, 고치지  안하니까 주고 싶은데 주지 못하는 그면에서 하나님이 하루가 천 년 같이 길다  그말이오. 마음에 답답하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 아침에 공연히 이 피조물로 시비하는 그런 일을 다  일단락 지우고. 하지 맙시다. 하지 맙시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상대해서  그분에게 구하면 그분이 주십니다. 그분에게 구하면 그분이 주십니다. 그분에게  구하는데 안 주시는 것은 나에게 주시면 결과적으로 나에게 해독이 되기 때문에  안 주시는 것 있고, 또 나에게 주어서 유익이 될 것도 유익이 될 것이 있지만  내가 잘못 알아서 잘못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때에는 주시기는 주시지만 잘못  쓰는 그 어두움을 벗어나서 바로 쓸 수 있는 지혜를 가지도록 하나님이  기다리시고, 기다립니까? 지혜를 가지도록 자꾸 역사합니다. 이래 가르쳐 자꾸  깨우쳐 준다 말이오. 또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내 요래 쓰겠습니다.' 바로 깨닫고 나면 '주여, 알았습니다.

내가 요렇게 잘못 쓸라고 과거에는 생각했는데 그라면 내가 망할 것인데 요래  쓰면 바로 쓰는 것이니까 바로 쓰는 것을 알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기쁨이  옵니다. '감사합니다.' 해도 안 주십니다. 안 주신다면 또 우리는 뭐입니까?  '아, 내가 이렇게 바로 쓴다고 하지만 막상 손에 쥐고 나면 내가 뒤에 가서 잘못  써 가지고 결과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낼 수 있는 그런 요소가 내게 있으니까 요소  이놈을 뽑아야 되겠다.' 또 그 요소 뽑는 데 착 수합니다. 그 요소를 뽑아서  모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바로 써 가지고 하나님에게는 영광이 되고 자타의  구원이 되고 자타의 영육에 복이 되어지는 이게 되면 왜 하나님이 안 줘? 모든  것 다 주십니다. 로마서 8장에 '사랑하는 독생자도 아끼지 안하고 너희에게  주셨거든 하물며 모든 이 만물을 너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피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됩니다.

 이러니까, 고장은 우리에게 고장이오. 마귀 그놈에게 고장도 아닙니다. 내 속에  있는 옛사람 그놈만 빼 버리고 새사람으로만 살면, 새사람으로만 살면 제일  필요하신 분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일 필요하고. 새사람으로만 살면 둘째  필요한 것은 모두 원수든지 뭐이든지 사람이 둘째로 우리에게 필요하고, 셋째로  필요한 것은 뭐이 필요합니까? 셋째로 필요한 것은 뭐 이 필요하요? 한번  담대하게 한번 대답해봐. 뭐이 필요해? 셋째로 필요 한 것은 마귀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마귀가 필요해. 그놈 이용하면 효력이 많소. 넷째로 필요한 것은 죄가  필요합니다. 죄. 죄가 뭐이 필요해? 새사람으로 살면 왜 죄가 필요하지 안해?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부인한 그거 죄 아닙니까? 그 죄가  베드로가 새사람으로 살고 보니까 그 죄가 베드로에게는 아주 가장 필요하고  요긴한 교훈이 됐습니다. 닭만 울면 울어. '내가 과거에 그럴 때 그랬다.'  이것이 속에 사무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도들은 순교할 때 다 그대로  순교했는데 베드로는 일생 동안 그 세 번 부인한 그것이 자기에게 효력 있는 참  아주 좋은 양약이 돼 가지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나는 바로 박히지  못하겠으니까 나를 꺼꾸로 못박아 주옵소서. 주님이 바로 박혔는데 나는 바로  박힐 만한 그런 자격이 없습니다. 나를 꺼꾸로 못 박아 주옵소서.' 전설에 보면  베드로는 간청해 가지고 꺼꾸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러니까, 죄도 필요합니다. 원수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하면 욕은 필요 없습니까? 내가 새사람으로 살면 욕이 필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대답 한번 해 봐. 와 필요해? 와 필요한고? 욕이 뭐이 필요해? 욕이  오는데 나는 새사람으로 사니까, 욕 오는데 욕에게 피동돼 가지고 욕하는 자와  같은 자 되지 안하고 욕이 와도 그 사람 불쌍히 여겨서 그 사람 위해서 기도해서  욕이 와도 나는 참고 견디고 가만 있으니까 '거짓걸로 끝박 받으면 복이  있도다.' 하늘에 상급이 크다 했소 거짓 걸로 핍박 받는데 참으면 말이오.

이러니까, 새사람으로 살면 뭐 유익이 안 되는 게 없습니다. 새사람으로 살면  해로운 게 하나도 없소. 우리가 요 사람으로 살아서 이렇게 자유롭게 행복스럽게  살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우리가 구차하고 칙칙하고 못나게 이렇게  살겠습니까?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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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원인을 찾자/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1987. 5. 8.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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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 하나님과 재물/ 마태복음 6장 24절-34절/ 1989. 6. 16.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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