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순종하려면

 

1984. 4. 1. 주일오후

 

본문: 마태복음 13장 3절∼9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 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오전에는 우리의 제일 큰 원수가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몸 안에 있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제일 원수가 무엇이 원수인고 하니 자기 아닌 자기가 제일 큰  원수입니다. 자기 아닌 자기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는 죽었고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자기 그것이 마음과 몸을 주장해 가지고 삽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또 부패성이라, 육신의 생각이라 그렇게 여러가지로  발표했지마는서도 내용의 뜻은 같습니다. 자기 아닌 자기는 자기인 그 영을  죽이고 영을 죽이고 영 대신 가장을 해 가지고서 심신의 주인처럼 아주 기묘하게  가장을 해 가지고 나타나니까 이 마음과 몸은 그것 이 자기인 줄 알고 아주  마음도 이것을 알뜰히 섬기고 또 복종하고 위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은 악이 아닙니다. 우리 몸도 악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과  몸은 다 물질입니다. 물질인데 이 마음은 악한 자에게 붙들리면 악의 도구가  되고, 또 의에 붙들리면 의의 도구가 됩니다. 또 우리의 몸도 그러합니다.

악에게 붙들리면 우리 몸은 악의 도구가 되고 의에 붙들리면 의의 도구가  됩니다.

 이런데 마음과 몸은 신령한 것이 아니고 물질입니다. 마치 이 피아노가 있으면  그것을 치면 그 옥타브에서 소리가 울려 나오는 그것은 옥타브도 아니요 다만  거기에서 울려 나오는 신령한 것같이 이 마음이라는 것은 물질이지마는서도 물질  안에 있는 것으로서 물질보다 고귀하게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마음만이  아니고 생명이라는 것도 육의 생명이라는 것은 다 물질입니다. 짐승이나 이런  곤충이나 이런 것들은 영물이 아니고 순전히 물질입니다. 물질이나 그것은  신비한 그 생명을 가졌습니다. 신비한 생명을 가졌으나 그 생명도 다  물질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영은 죽었고 물질만 남아 있는데 물질만 남아 있는 물질은  마음과 몸 둘입니다. 그 영을 죽이기를 누가 죽였는고 하니 영을 죽인 것이  악령이 들어서 그 악성으로 죽이게 했습니다. 영에게 꼬임 받아서 이 미혹을  받아 가지고 이 마음이 악성이 돼 버렸습니다. 악성이 됨으로 죽게 됐는데 그  악성은 그것을 가리켜서 원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원죄인 그 악성이 이 마음과 몸을 가지고 이용해서 악령이 소원 하는  것, 악성이 소원하는 일을 이 심신이 그대로 행동한 것이 있으니 그것을  가리켜서 본죄라 그렇게, 말하는데 그것이 악한 습성. 한번하면 또 두 번하고.

두 번, 세 번하면 악한 버릇이 구습, 악습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악령은 하늘에서 범죄해서 쫓겨 나왔는데 그 악령이 무슨 범죄로  쫓겨 나왔는가? 악령은 천사로서 천사의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안하고 하나님의  지위를 제가 가로 뺏들라고 하다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안하고 자기중심으로  움직인 그것으로서 쫓겨난 그 악령입니다. 이 악령이 에덴동산에 들어와 가지고  사람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있는 그 사람을 자기중심으로 살게 하려고 악령이  꾀울 때에 악령에게 꼬임받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도 배반하고  하나님보다 제가 잘 될라고 제 생각대로 악령이 시키는 대로 해 가지고서  자기중심으로 행동한 것이 선악과 먹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악성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또 그 악성이 들어서 범죄한 것을 가리켜서 악습이라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는 악령이 들어와 가지고 우리 마음을 꾀와 가지고 우리  마음이 행동한 행동이 있으니 그것이 뭐이냐 악성입니다. 악성이라면 우리의  본성이 자기중심에 본질과 본성이 된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또 악습은  그것으로 한번 두번 자꾸 행동해 모인 그것이 악습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는  사람들 안에는 그것을 통틀어서 옛사람이라 그렇게 말하는데 옛사람이라 육체의  사람이라 육체의 생각이라 창세기 6장에 보면 사람이 제 욕심대로 삶을 인해서  육체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신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 그런고로 홍수에서 다  멸망 받는다 말씀하신 그 육체 됐다 말은 그것이 옛사람 됐다 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자기를 죽인 자기 아닌 옛사람이 자기 안에 자기 처럼  가장해 가지고 있고, 그것이 중생되기 전에는 그 자가 우리 안에서 왕 노릇을  하고 주인 노릇 했기 때문에. 이 우리 마음은 어리석고 우리 몸은 어리석어서  자기 주인인 참 자기인 영을 죽였고, 주격으로 말하면 자기 몸에 주인이 되는  자기의 주격이 되는 영을 죽였고 원수인데, 이 원수인 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이것을 자기인줄 이렇게 착각하고 사는 것이 모든 일반  사람들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이 창조한 근본 그대로 사는 사람은 없고,  모두 다 하나님이 사람을 영과 육으로 지어 가지고서 영은 주격이요 육은 그  소유격으로 이래 가지고서, 육이라는 심신은 영에게 복종함으로 살고 영은  심신을 지도하고 다스리고, 영은 진리와 하나님에게 복종함으로 살고 이렇게  살던 것을 악령이 와 가지고 이 심신이 영에게 복종하지 안하고 제 마음대로  행동해 가지고 선악과 먹음으로써 영은 선악과를 먹지 안했지마는서도 이 심신의  주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소유격인 이 심신이 범죄한 그 범죄를 주격인 영이  주격 위치에 책임을 지고 그 죄 값으로 영이 죽게 됐습니다.

 그러면 영은 누가 죽였느냐? 영을 죽인 것은, 껍데기는 이 고기 덩어리가  죽였고 영을 죽인 자는 껍데기는 고깃덩어리가 죽였고 그 속에 알맹이는 마음이  죽였고 그 속에 알맹이는 악령이 들어서 죽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을  누가 죽였느냐? 악령과 우리의 마음과 몸 이 셋이 합해서 마음은 악성이 됐고  몸은 죄를 짓는 악습 뭉텅이가 돼 가지고서 이게 들어서 주인은 죽여 버리고, 왜  죽였는가? 악령에게 미혹을 받아 가지고 이렇게 참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죽인  원수를 자기로 착각하고 그것에게 복종해서 사는 것이 안 믿는 사람들이요,  우리도 그와 같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함을  입음으로 죽은 영이 살아났습니다.

 죽은 영이 살아나니까 우리안에는 주인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 됐습니다. 참  주인, 죽은 영이 살아난 참 자기가 있고. 참 자기를 죽였던 자기 아닌 원수인 그  옛사람 자기, 자기 아닌데 자기처럼 가장을 해 가지고 있고 자기를 죽인 원수  그것이 자기처럼 이렇게 나타나서 유혹을 주고 있는 이 원수와 원수 자기가  있습니다. 자기 아닌 자기가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 아닌 자기는 그거 무엇으로 생겨 있는 것인가? 셋이 들어서 된  것인데 악령과 악성과 악습, 악습이라면 이 모든 본죄를 말하고 악성이라면  원죄를 말하고 악령이라면 타락한 천사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에, 안 믿는 사람은 모든 언행 심사가 하나로 나갑니다. 하나로 나가기  때문에 무슨 시비나 신강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생된 우리들은  속에 참 자기가 있고 자기 아닌 원수인 자기가 있기 때문에, 이 자기와 자기  둘이 들어서 싸웁니다. 그래서 빌립보 1장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두 사이에  끼어서 지금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옛사람 자기 이것은 우리 마음하고 오랫동안 같이 살았기 때문에  서로 호흡이 맞고 보조가 맞고 벌써 성품이 맞습니다. 또 우리 몸도 거기에 들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중생된 새 사람은 이것은 벌써 우리 심신하고 조상 때부터  이별을 해서 벌써 우리 선조 때부터 근 육천 년 동안을 참 자기 영과 이 심신은  서로 나눠 있었기 때문에 아주 그것이 근본 그것이 한 사람이요  주격이지마는서도 원청 나눠 있다 보니까 영하고 이 마음 하고는 그 사이가 아주  성글어서 그 사이가 멀고 성글고 몸하고도 성급니다. 몸하고 마음하고는 이 영과  성글고 이 마음과 몸은 이 옛사람 하고는 아주 친밀합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주 깨어서 조심을 하고 애를 쓰면 옛사람을  옛사람인줄 알고 그것을 대적을 하고 새사람으로 살려고 애를 쓰면 새사람으로  조금 살다가 그만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으면 그 본능적으로 자연적으로는  옛사람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이래서, 우리 믿는 사람의 생활은 옛사람이 사는 생활이 있고 새사람이 사는  생활이 있고 이 생활이 둘로 되어 있는데 옛사람이 사는 생활은 사망을 이루는  그 일을 하고 새사람이 사는 생활은 영생과 평강을 이루는 그 일을 합니다. 한  현실을 만났을 때에도 그 현실에 반드시 거기에 새사람도 있고 옛사람도 있고 두  자기가 한테 있습니다. 한테 있어서 옛사람은 이 심신을 옛사람 저와 하나돼  가지고 살자고 하고. 거기에 감동시키는 신은 악령이 감화 감동을 시키면서 그래  하고, 이제까지 살아 나오는 그 재미와 취미 모든 습관 이것이 들어서 자꾸  옛사람으로 살도록 하자고 이렇게 단합을 해서 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 새사람은  아주 이 심신이 안면이 없습니다. 안면이 없고 아주 안면이 성글어 있습니다.

성근데 이 새사람은 그러나 성글어 있어도 참 자기는 자기입니다.

 말하자면 자기 남편을 죽인 그 간부가 남편처럼 가장해 가지고 그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아내도 원수인 줄 모르고 남편이라 자녀들도 원수인줄 모르고 부모라  이라는 것처럼 이러다가 그 남편 죽은 남편이 죽임을 받았는데, 어째 치료를 해  가지고서 참 치료를 해서 살아났습니다. 살아났는데, 살아나니까 자기 남편이  살아났지마는서도, 그 남편이 치료받아 살아났으니까 삐쩍 말랐지 뭐 얼굴도  얄궂지 만나 본 지는 벌써 여러 해가 됐지 이라니까 그거는 안면이 없고  초면이고 이 원수 간부 이거는 아주 친밀한 저거 남편 저거 부모처럼 이렇게 돼  가지고 있는데 그 남편은 오면 참 남편은 오면 무슨 딴 사람같이 이래 서먹서먹  하이 원수같이 이래 생각하고, 원수 이거는 자기 남편 같이 생각하는 거와  비유컨댄 그와 꼭 같습니다.

 이래서 옛사람은 자기의 언행 심사의 모든 생활을 다 악령 시키는 대로  자기중심인 악성 하자 하는 대로 이제까지 범죄하던 악습 그대로 이렇게 생활을  하도록 하니까 우선 좋고 평안하고 저거 타락한 부패성에 딱 들어맞습니다.

맞으니까 그 생활하나 그 결과는 사망이라 성경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전부 죽고  망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의 법칙대로  이렇게 살려고 이래 하니까 이 심신이 말을 잘 안 듣습니다. 그러나 이  새사람으로 살면 그것은 전부가 다 영생이요 평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현실을 만나든지 현실 만날 때마다 거기에는 두  자기가 지금 같이 있다, 두 자기가 같이 있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두 자기가 있어서 옛사람 자기대로 살면 죽고 망하는 결과를 맺고, 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 자기대로 살면 영생과 평강을 맺고 이것이  성경이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오늘 그 사회하는 그 ○○○님이 처음에 성경  낭독을 할 때에 보니까 로마 8장에 있는 옛사람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라 그렇게 하는 그 본문을 읽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생활은 옛사람으로 안 살면 새사람으로 살고 새사람으로 안  살면 옛사람으로 살고 이 현실에서는 반드시 두 자기가 있어 가지고서 옛사람  자기로 살도록 애를 쓰고, 또 새사람, 자기로 살도록 애를 써서 이렇게 거기에서  서로 시비를 하고서 자꾸 다툽니다.

 이런데에 우리의 심신은 자유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심신이 자유가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벌써 죄와 악령과 사망이 왕노릇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유가 없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옛사람으로 살지 안할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옛사람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거는 절대적인 세력을 가지고서  강압하기 때문에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악령과 죄와 사망이 우리에게 왕 노릇하는 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대속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있지마는 예수님이 그 죄의 형벌을 다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죄와 마귀와  사망이 왕 노릇을 못하고 다만 패잔병처럼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유혹을 시키고  우리를 이렇게 저렇게 침노하는 그런 일은 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은 두 자기가 있고 또 두 행동이 있고 두 결과가 있다.

하나는 생명과 평강이요 하나는 죽고 망하는 것이라. 그것을, 두 행동이 있는  것은 하나는 새사람의 행동이요 하나는 옛사람의 행동이라 이렇게 이 둘이 되어  있는데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모든 사는, 생활은 구원이 되는 생활과  멸망이 되는 생활 두 생활로 나눠집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살든지 저렇게 살든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서 사면 그 사람 일생 동안 산 생활이 멸망할 생활을  했든지 구원 얻는 생활을 했든지 이 두 가지 생활한 대로 그대로 심판을 받아서,  구원 얻는 생할 한 것은 영원한 구원이 될 것이고 멸망하는 행한 것은 영원한  멸망이 될 것인데, 구원 얻을 생활하는 것은 어떤 생활을 구원 얻는 생활이  되는가? 새사람으로 산 생활은 구원 얻을 생활이 되고 옛사람으로 산 생활은  멸망받는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세상에 있으면서 우리를 제일 많이 속이고 손해를 보이는  우리의 제일 큰 원수가 누군가? 제일 큰 원수는 옛사람 이것이 제일 큰  원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제일 큰 원수는 자기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자기가 제일 큰 원수라는 이것을 알고 이  원수를 대적해서 이 원수의 피해를 받지 안하려고 애를 써도 안 받기가 어려운데  이것을 알지도 못하고 막 통틀어 놓고 사는 생활은 예수 믿으나 일생 동안  자기는 사람 보기에는 미꿈하게 살아서 뭐 이런 도덕도 행하고 저런 무슨  사회생활도 하고 경제생활이나 모든 가정생활이나 그 생활하는 것이 누가 봐도  그는 참 훌륭한 사람이라 예수 잘 믿는 사람이라 이렇게 생각할 만침 살았으니까  자기 딴에는 구원이 된 줄 알았지마는서도 순전히 악령에게 끌려 가지고서  옛사람으로 사는 그 생활로 그렇게 하게 됩니다.

 옛사람으로 사는 생활은 뭐이냐 하면 인간 욕심으로 산 것은 옛사람으로 산  생활이니 그것은 다 멸망받을 생활이요. 다만 성신의 감화 감동의 성신의  소욕으로 산 생활만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속아도  속는 줄을 모르고, 원수를 원수인 줄 모르고, 또 자기에게 참 유익이 되는 것도  유익이 되는 줄도 모르고 이래 가지고 범벅 타락, 범벅 생활로 이래 가지고서  그만 멸망을 받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가리켜서 집을 지었는데 반석 위에 지은 집이 있고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반석 위에 지었다 말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았다는 말이니 성신의  소욕대로 살았다는 말이요. 모래 위에 지었다는 말은 성령의 소욕대로 산 것이  아니고 천도 만도 억만도 넘은 땅 위에 있는 이 사람 저 사람 모든 사람의  생각대로 모든 사람의 지도대로 모든 사람의 인도대로 모든 사람의 의견대로  그렇게 따라서 산 그런 것을 가리켜서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그것을 책임을 지지 못하기 때문에 홍수가 난다 환난이나  마지막, 죽음이나 심판이나 오면 심판의 홍수도 죽음의 홍수도 있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오면 그때에 일생 동안 이 사람이 말했기 때문에 그 사람 따라서 이래  했다 저 사람 따라서 했다, 세상이 그러기 때문에, 모든 사회가 그라기 때문에  국가서 그라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그거 따라서 살았지마는서도 그것들이 최종의  책임을 털끝 만치 해 주느냐 하면 털끝만치도 책임을 지는 권리가 없습니다.

털끝만치도 책임은 지지 못합니다. 나중에 환난이 오면 그것들이 슬슬 다 달아나  버리고 하기 때문에 마지막에 그렇게 산 자기만 속아서 멸망 꼬박 하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환난이 와도,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신데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이 인도하신 대로 따라서 산 그 생활은 예수님이 환난 때도  책임지고 죽을 때도 책임지고 심판 때도 책임지고 무궁한 세계도 책임지기  때문에 그분이 책임지고 안보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해할 수 없는 것을  비유해서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 또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고,  또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도 사람 보기에는 집을 지었는데 아주 풀과  나무로 짚으로 집을 지으니까 집도 쉽게 짓고 크게 짓고 아주 능란하게 짓고  이제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지어 놓으니까 여간 잘 지어 봤다 해야 사람이  하나 들어 가기도 모자라고 하나만 들어가려고 지어도 얼마나 뭐 많이 들어.

재료는 많이 들어도 집은 조그만 하다 그말이오. 그렇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심판으로서 말씀으로 그 공로를 시험할 때에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은 다  불타 버리고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은 것은 타지 안하고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상을 받았다 하는 이것은 타지 않는 것 없어 지지 않는 것은 진리가 없어지지  않고 영감이 없어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로  된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안하고 영생하고 그 나머지기는 다 멸망을 받는다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꾸 이 말이 뭘 지금 말하고 있느냐 하면 이제 모르기 때문에  전부 다른 걸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떠한 현실을 만나든지  그 현실에는 반드시 사망을 이루든지 생명과 평강을 이루든지 두 결과 중에 한  결과를 맺게 된다. 그러면 생명의 평강을 이룰라면 어째야 되느냐? 성령의  인도대로 성령의 소욕대로 살면 생명과 평강이 이루어지고, 또 사망의 그 결과를  맺는 것을 피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피해지느냐? 옛사람으로 사는 그것을  피하면 되지마는서도 그것을 피하지 못하면 그대로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일생을 망친 자가 누구냐? 안 믿는 불택자도 영원한 불  구렁텅이를 보내고 멸망을 시킨 자가 누구냐? 자기가 멸망을 시켰습니다. 또  예수 믿는 구속받은 사람들도 다 같은 구속을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지극히 해와  같이 빛나는 존영한 구원을 이루는데 자기는 벌거벗은 자와 같이 하늘나라에  가서 아주 수치스러운 그런 가장 작은 자로 가장 천한 그 부끄러운 구원을  이루게 된 그것이 누가 들어 그렇게 했느냐? 그것도 자기가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라니, 자기가 왜 자기를 해했을까? 참 자기라면 자기를 해 하지  안하지마는서도 자기 아닌 그 자기를 멸망시킨 자가 아주 멸망시키기 위해서  자기라는 그 자기를 죽이고 자기라는 가장을 꾸며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놈이야  의례히 나를 멸망시킬라 하는 것이야 뭐 그것뿐이지 딴거 뭐 있겠습니까? 그  자가 들어서 꼬아 가지고 꼬여서 멸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원수가 누구냐? 원수는 나 아닌 너 그놈이  원수다. 나를 해하는 제일 많이 해하는 자가 누구냐? 나 아닌 원수 옛 사람 나  그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스스로 속지 마라 자기가 자기에게  속지 말아라 하는 그것이 참 자기가 속일 리가 없지마는서도 자기 아닌 자기  그것이 들어서 자꾸 자기로 나타나 가지고서 자기를 속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까지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가 아니고 자기가 둘이 됐다. 둘이 됐기 때문에 한 자기는 자기의 원수요,  한 자기는 참 자기이기 때문에 참 자기로 살면 영생을 거두고 자기 아닌 원수  그놈에게 자기인 줄 알고 속아서 옛사람으로 살면서 사망을 거두게 된다 그것을  이제까지 하는 말입니다. 요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요것을 알고 옛사람으로 살지 안하려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이  기도를 제일 많이 합니다. 무슨 뭐 땅 위에 이런 사건 저런 사건 그런 거 때문에  기도하지 안하고, 옛사람 이놈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해 달라고서,  옛사람은 죽었으니 장사 지내게 해 달라고서, 그래 집회 갈 때마다 옛사람은  여기서 죽여서 장사 지내고 새사람으로 강건해 가지고 살게 해 달라고서 그렇게  기도하고. 아침마다 오늘 종일 옛사람 이놈이 일어서지 못하도록 일어나거든  대가리를 깨트려서 모가지를 꺾어서 땅 속에 쳐 박고 매장하고서 새사람만 살게  해 달라고서 그렇게 철천지원수 같이 이렇게 하고 기도하고 또 힘을 쓰고 이래도  고만 나중에 하루 종일 살고 나서 보면 새사람으로 산 생활은 많지 못하고  옛사람으로 산 생활이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항시 그저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다른 사람이 보면 그 사람 중얼  거리니까 미친 사람이라고 하든지 말든지 미쳤다고 해도 세상에 잠깐 있다가  지나갈 터이니까 미쳤다는 소리 들어봤자 별 것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이  칭찬해 봤자 그 까짓 것도 별 것 아닙니다. 이러니까 미쳤다 하더라도  옛사람으로 사나? 내가 지금 옛사람으로 사나 내가 새사람으로 사나? 자꾸  이렇게 연습을 해서 옛사람 새사람으로 자꾸 연습을 해 가지고 옛사람을  물리치고 새사람으로 살라고 애를 쓰고 이렇게 기도하고 노력을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면 대개 깨달은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삽니다.

 그만 자기가 예수 믿는 사람이 옛사람이냐 새사람이냐 이것을 구별하지 안하고  원수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안하고 '자기만 자기지, 뭐 자기만  자기지.' 요새 큰 미혹이 있습니다. 큰 미혹이 있어 가지고 성경이 있지마는서도  요새 교계에 모든 그 설교하는 사람들과 모든 좀 우두머리 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은 어짜든지 합하기를 위주로 하고 낮추는 것을 원수로 삼습니다.

뭐이든지 나뉘면 그만 나뉘면, 그만 그렇게 왜 나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는지.

기본구원이니 건설구원이니 하면 그 뭐 말이 그렇게 원수질게 없는데 그만  원수입니다. 기본구원 건설구원. 막 원수 같이 막 달라듭니다. 옛사람. 새사람  또 이것만 말해도 막 달라듭니다. '자기면 자기지 자기를 나누지 말아라, 자기를  나누지 말아라.' 이제까지 뻔뻔스럽게 자기를 나누지 말라는 이 문서에 보니까,  제가 언제 책자를 보니까 '자기를 둘로 나누지 말아라, 뭐 영과 육을 나누지  말아라, 마음과 몸을 뭐 나누지 말아라, 나누지 말라고 합해서 이래 말하라'  하는 그걸 뻔뻔 스럽게 책에 내 놨습디다.

 이러니까, 이 미혹이 많은 때인데 어떤 사람은 고만 '자기만 자기지' 이래  가지고서 그저 자기, 하나뿐인 줄로 이렇게 알고, 자기와 자기를 구별해서  자기가 원수요 자기는 참 자기의 주인이요 이걸 구별하지 안하고 막 사는 사람은  자기는 하루 종일 산다는 것이 나중에 계산도 안하고 그만 밥 먹고 옷 입고 세상  사무나 세상 장사나 또 세상 공장에 무슨 의무나 책임이나 다 했으면은 '다  했다' 이라는데 옛사람이 소욕대로 했는지 그것이 새사람이 했는지, 불탈 것인지  영원히 있을 것인지 하나 구별하지 안하고 고만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저 먼저 ○○○ 선생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대해서 설교할 때에 내가 그 설교에  감화를 받고 그분을 어짜든지 등용을 해 보자 하는 것은 내가 다른 걸 보지  안해도 하나를 보고. 하나 어떤 데 내가 은혜를 받고 참 아름답게 매력을  느꼈느냐 하면 거룩하고 진실하다 하는 거룩이라는데 '어짜든지 기독자들은  따져야 됩니다. 따져야 됩니다.' 그분은 따져야 된다는 말이 입에 발려서 하는  말이 아니고 실상 따져야 된다는 것을 실상 느끼고 따져야 된다는 필요성과  중요성을 느끼고 증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고만 그것만 하나  증거해도 싹수가 있습니다. 희망이 있어.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뭐 내가 세울  때에는 모두 공회에 있는 공회원들은 그런 사람을 거기에 세워 안 된다고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내가 그 일시를  보고서 속단해서 세워서 뒤에 수치를 당할런지 혹은 그 사람이 잘해서 뒤에 가서  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런지 그거는 모르기는 모르겠습니다마는서도  한 진리라도 깨닫고 바로 깨닫고 보니까 그게 되지 않느냐 해서 그 사람을  세웠습니다.

 ○○○ 집사님 사위 그 ○조사님도 설교를 한번 시키니까 끙끙 끙끙 거리면서  설교는 옳게 하지 못하는데 그 속에 하나 진리를 확실히 잡은 거 있기 때문에  하나만 잡았으면 그 다음에 차차 잡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 그분도  등용했는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유력한 교역자로서 뭐 실력은 있지 안해도 그래도  진충으로서 하고는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현실마다 두 자기가 나타난다. 우리는 현실에 반드시 사망  이루는 생활이 아니면 생명과 평강을 이루는 생활이 된다. 생명과 평강을 이루는  생활을 할려거든 새사람으로 살아야 되고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살아야 되고, 옛사람으로 살면 그것은 사망을 이룰 수밖에 없다.

 옛사람으로 사는 것은 자기 생각대로 사는 것이요 자기 소원대로 사는 것이요  자기주장대로 사는 것이요 자기 욕심대로 사는 것이요 자기 성품대로 사는  것이요. 새사람으로 사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분의 성품대로 그분의 뜻대로 그분의 소원대로 그분의 주장대로 그분의  인도대로 사는 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생활이니까 우리가 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가기 전에 벌써 멸망할 요소가 얼마, 구원할 요소가 얼마, 하루 종일 살고  난 다음에 계산을 대어서 오늘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통과해서 구원 얻을 부분은  몇 점, 멸망할 점은 몇 점 딱 판정하는데 그게 정확하지는 안하지마는서도,  대게는 들어맞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자기를 시험해서  하나님이 시험하실게 아니라 자기가 심사해 봐라. 시험하라 말은 그 시험하라  말은 심사해 봐라 그말이오. 심사해 봐라. 네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확실히  결정을 지어라. 판정을 지워라. 말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원수는 우리 몸 밖에 있지 안하고 우리 몸 안에  있습니다. 우리 원수는 자기 아닌 자기 옛사람 그것이 원수지 마귀도 원수  아니요 마귀도 원수 아닙니다. 내가 옛사람으로 살 때에 그것이 원수가 되어지지  옛사람으로 살지 안하면 그것이 원수가 안 됩니다.

 내가 새사람으로 살면 마귀 그놈 좋습니다. 옛사람으로 안 살고 새사람으로  살면 마귀는 참 귀한 일군이요. 마귀는 이용가치가, 아주 이용 가치의 도수가  높은 우리의 일군입니다. 죄도 그러합니다. 악령도 그러합니다. 사망도  그러합니다. 새사람으로 살 때에는 사망이나 악령이나 죄나 그런 것이 다 우리를  위하는 수종군으로 우리에게 돕고 우리를 영광스럽게 우리를 존귀케 우리를  가치있게 우리를 실력있게 우리를 존대하게 이렇게 만들지 털끝만치라도  새사람으로 사는 사람을 해하는 능력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옛사람으로 살 때에 그놈이 들어서 이리 저리 자꾸 움직이는 것인데. 마귀를  원수라고 하지 말고 옛사람 자기를 원수라고 하는 그 몸 안에 있는 그걸 원수로  처분하지 않으면 그걸 처결하지 않으면 마귀를 다 가뒀다 할지라도 상관없어, 이  옛사람으로 살면 내나 저는 멸망 받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데, 오전에는 무슨 말씀을 했는고 하니 옛사람 이것이 우리 원수라는 것을  말을 하고, 이 옛사람 원수 이것을 죽일 자가 누구며. 쫓가 낼 자가 누구며,  이것을 가둘 자가 누구냐? 아무도 가두지 못합니다. 이방인 중에 모든 영웅이나  절사나 모든 지혜자나 모든 어떤 어떤 세력가나 어떤 자라도 그들은 다 옛사람의  종이 돼 가지고서 옛사람의 것이 돼 가지고 옛 사람의 주먹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옛사람은 인간으로서는 그를 이겨 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옛사람으로 살지 안하려고 애를 쓴다고 해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비유컨댄, 포도나무에 해충이 들어서 포도나무 가지를 먹고 있습니다. 먹고  있으면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에게 해하는 해충을 제거하는 힘이 없습니다.

제거 못 합니다. 그 농부가 와야 그놈을 농약을 치든지 잡아 가지고서 싹 문태  죽여 버리든지 해야 돼지지 저는 힘을 못 씁니다. 포도나무 넝쿨이 거기에 닥친  해충을 제가 대항하겠다고 하면 대항한다는게 찍해야 그놈 좋게 하는  것뿐입니다. 먹으니까, 이놈 먹어! 막 대항한다고 밑에서 있는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영양분을 자꾸 들어올리면 올리니까 이놈은 속에서 어어 좋다 꿀떡  꿀떡 둘러마시고 자꾸 이놈은 커다랗게 커집니다. 하나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농부가 오면 그놈을 싹 끄내 가지고 뭉케 죽여 버리고 이제 농약을 쓰면  없애 버린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을 멸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옛사람을 멸하는  방법은 오전에 일곱 가지를 우리 마음 가운데에 모셔 들여 자꾸 마음 안에서  일곱 가지만 생각해라, 일곱가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시며 내게 무엇을 하셨으며 날 위해서 어떻게  희생을 하셨으며 희생하심으로서 어떤 공로를 나에게 설정해 가지고서 내게 어떤  혜택과 축복의 연결을 시켰으며 생명의 연결을 시켰는가?  또, 그리스도는 이렇게 연결 된 우리를 어데까지 존귀케 하려고 지금 하고  있는가? 우리를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이와 같이 지금 성장시킬 라고서  이렇게 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데 나는 이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이분들의 종이라 내 자유로 살 자가  아니라 종이라. 이 종 이것도 자꾸 생각하면 옛사람 그놈이 죽어집니다. '나는  죄에게 종이 아니요 마귀의 종이 아니요 내 마음대로 살 자가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해 가 살아야 될 자이다.' '나는 또  하나님의 사자다 사도다.' 우리도 속 사도입니다. '하나님의 사도 하나님의 사자  하나님의 대사다.'  또 '나는 시몬이다 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런 것을 하던 옛사람이 아직도 내  속에 남아 있다' 요걸 생각하고, '나는 또 영감으로 베드로된 내다' 생각하고,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 이걸 자꾸 이 믿음을 생각하고,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돼야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고, 우리가 돼야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고,  우리가 돼야 하나님은 내게 역사해 주시고, 우리가 된다는 것은 택한 자들이  전부다 다 자기 몸과같이 한덩어리가 되는 이것이 되어져야 하나님과 연결이  되지 우리가 안 되면 연결이 안 되니까 우리, 아버지, 구주, 예수, 그리스도. 의  이 전부를 자꾸 생각하면 '이제 우리 속에는 생명이 넘치고 빛이 넘치기 때문에.

어두움이라 하는 거는 다 소멸 해 버려서 어두움이 하나도 없어지고 생명의  능력이 오기 때문에, 이 모든 옛사람이라 하는 것은, 옛사람의 원수가 옛사람의  원수가 그리스도요, 옛 사람의 원수가 내가 하나님의 종되는 것이 옛사람의  원수요, 내가 하나님의 사신된다는 이것이 옛사람의 원수요 전부이 일곱 가지를,  우리 마음 가운데 가득히 채워 가지고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면 한  시간도 모자랄 것이고 하루도 모자랄 것이고 자꾸 생각하면 뭐 열흘도 모자랄  것이고 한 달도 모자랄 것이요.

 그저 이렇게 해서 며칠 정해 놓고 밥을 굶어 가면서 '기도하자' 하는 그 기도는  억지 단식입니다. 그게 아니고 이제 예를 들면, 이 일곱 가지를 마음 가운데 눈  감고 이래 생각하니까 예수님 한 분만 생각해도 자꾸 생각하니까 감사해서 내가  어떻게 할 줄을 모르겠고, 또 그 분이 어떤 분이신 것을 생각해서 지극히 큰  분을 생각하니까 내가 공연히 우쭐해지고 담대해서 뭐 세상에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여지고, 또 그분이 나에게 지극히 큰 하늘의 소망 준 걸  생각하니까 막 날아가면 싶으고 생명력으로 이 소망을 보니까 땅의 거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말이오. 예수만 자꾸 생각해도 이 속에 뭐 옛사람이 견딜  벽이 없습니다. 이 놈이 막 쫓겨나고 녹아났습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더  그렇지. 종된 걸 생각하면 더 그렇지, 사도된 걸 생각하니 더 그렇지, 또 시몬인  걸 생각하니까 내가 죽어도 이제는 시몬이 안 된다. 죽어도 시몬이 안 된다, 또  베드로를 생각하니까 영감으로 살면 나는 반석 같은 사람 된다 이렇지,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 또 우리 구주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라, 우리를 위해서  의를 이루었다 그말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 모가치로 다 만들어 놨다 그  말이오. 우리가 차지만 하면 됩니다. 차지만 하면 돼.

 이러니까 이렇게 사모만 하면 옛사람은 뭐 쫓아내려고 하지 말고 옛 사람을  붙들고 '아니. 가지 말고 좀 있거라 있거라' 해도 그놈이 달아나 버립니다.

옛사람을 쫓아 낼라 해 가지고 옛사람을 쫓아 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포도나무 넝쿨이 해충을 제거할라 해 가지고는 해충 제거하는 포도나무 넝쿨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주인만 청하니까 주인이 오니까 고만 해결 다 됐다  말이오. 이와같이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는 것은 우리가 포도나무라면 우리의  주인이 오는 거와 농부 주인이 오는 것이라 말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오전에는 옛사람을 소멸시키고 물리치는 데에는 이 일곱  우리와의 관계에 구주와 은혜를 우리가 사모하고 생각하고 자꾸 사모 하고  생각하니까, 그만 이 일곱 가지만 자꾸 사모하고 생각하고 하면 먹고 살것은  어짜고? 일곱 가지만 생각하면 없는 가운데에 그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되는데, 없는 가운데 천지를 창조하는 그 사람의 지능이  자기인데, 자기 속에 지능이 역사를 하는데 먹을 거 없겠습니까 굶겠습니까?  뭐이 없겠습니까? 우리가 이와 같이 바로 믿지 않는 데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얻은 자에게' 보배로운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것을  우리에게 끌여 붙여서 하나님의 무한한 것이 내 것이 되여지도록 그 하나님의  무한한 것을 내것이 되어지도록 연결 시켜서 끌어 오는 그 유일한 방편이  믿음입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우리는 우리 마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큰일을 하는  사람이지, 마음은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 자기 사욕 주관. 모든 자율, 자기의  선입적 관념과 기존 지식, 자기의 모든 취미, 자기대로의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옛사람 자기가 자기 마음은 다 차지하고, 껍데기만 와 가지고서  주일날이니까 억지로 주일날 예배당 가야 되겠다, 고기덩어리는 와 앉아서  마음은 마귀 그놈이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차지하고 있으니까 소용없는 말을  들을 때는 듣구로 내비두고, 제게 필요한 말을 들으면은 마구 쑤셔 가지고서  그만 꼬박 자게 해 버린다 말이오. 자기에게 필요한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고만 졸게 해 버린다 말이오.

 이러니까, 여기 와 있어 봤자 소용없지, 껍데기 이거 뭐 행동 마음으로 백 가지  할 때에, 마음으로 백 가지 할 때에 몸뚱이로는 한 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몸은 둔합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몸의 백 배 천 배 이게 민활한 것입니다.

민활하고 실력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백 가지 할 때에 몸으로는 한  가지도 못하기 때문에, 몸으로 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볼 때에 흠 없이 다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마음을 이 옛사람에게 좋으면은 그거는 아무 소용없고.

마음을 하나님에게 드려서 한다면 외부에 행동하는 그것보다도 더 크다  그말이오.

 이래서,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편지하노니!' 이 속에 가득히 찬 여기에서 발동된 데서 편지 쓴 그  편지라야 이제 전도하는 그 전도라야 돼지지, 속에는 마귀의 소굴이 돼 가지고  있으면서 겉으머리 외식으로, 무슨 말하는 것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후에 성경 본 말씀을 이 말씀을 씨 뿌리는 비유를 본 것도  무엇 때문에 봤느냐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한 마디를 들을 때에 이 한  마디를 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먹어야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이 말씀이 무성하게 강성하게 자라게 되느냐 하면  이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먹어야 하는데, 돌짝 밭에 뿌린 씨는 이 말씀을 세상 이런 지식  많은 지식을 자꾸 듣고 이래 인간들의 많은 말을 듣고 이라고 보니까 많은  사람들의 말을 듣는 그것이 우리에게 선입적 관념이 되고 기존 지식이 되고  이것이 그만 형식이 돼 나서 하나님의 말씀도 이 세상 말과 같은 말이라. 다  세상에 인간들이 꾸며 놓은 말은 기이하고 오묘하고 뭐 돼도 안 할 말 거짓말을  꾸며 대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런 말이 많이 있는데, 이 성경에 말을 하는  것보다도 더 기이하고 오묘한 말 그거 꾸며 낼 수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고만  그런 말을 들은 거기에 이 마음이 다 기울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지  안하니까 세상 지식 많은 그 말씀 그런 지식들만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안하니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암만 설교를 애터지게 뭐 힘있게  강론한다고 해도 이 말씀을 들어 봤자 이 말씀은 그 마음을 하나 구경도 못하고  그만 세상 지식을 받는 것같이 '아, 불교에도 저렇게 말하고 유교에도 저렇게  말하고 이 세상에 이런 말 저런 말 그런 말이 많이 있다' 그와 같은 인간들의  마귀의 인간들의 말 그 말과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여기니 이 말씀은 없는  가운데 천지를 창조한 이 능력의 말씀이요 그 모든 것들은 이 말씀에게 지음을  받은 것들인데, 이 근본적으로 그 능력이 얼마나 크고 다른 것이지마는서도 이  세상의 인간들 말과 동류 동등의 말로 취급하는 데에서 고만 이 말씀은 배척을  당해 가지고서 다 헛일되고 말고.

 그 다음에 또 이 말씀을 받아 가지고서 자기 마음을 먹어서 받아 가지고 '아  내가 이대로 살아야 되겠다' 마음을 조금 먹고서 이제 움이 터 가지고서 시작을  하니까 이 말씀대로 살라 하니까 옛사람 고놈이 와 가지고서 탁! 거리니 고대로  살면 제가 안 될 터이니까 고만 못 살게 딱 방해를 합니다. 옛사람이 들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 하니까 딱, 못 살게 박해를 탁! 해 버립니다. 방해를 탁  하니까 말씀대로 살다가 고만 그 돌에 걸리 가지고서 못 삽니다. 돌은 자기 속에  원죄, 원죄, 자기중심의 죄 자기중심이라는 이게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한다 그말이오. 이렇지,  그 다음에 덤불 밀에 뿌린 씨는 어떤 씨냐? 이 말씀을 받았는데, 말씀을 받아  가지고서 처음에는 잘 믿고 이래 열심히 믿는데 이라다가 보니까 이 마음을 이  세상 물질이 들어 가지고서 자꾸 마음을 뺏들어 가니까 이 물질에게 마음을  뺏기고, 또 세상 모든 이런 사건 저런 사건에게 뺏기고 세상 염려와 재리의 문제  이것이 마음을 다 차지해 놓으니까 아, 덤불 위에 씨를 뿌리 놨지마는서도  뿌리가 놨지마는서도 덤불이 다 집어 먹고 나니까 처음에는 흙이 좋았지마는서도  덤불이 다 집어 먹고 나니까 이 곡식은 자라지 안해 덤불 이놈만 커다랗게 크고  나니까 그 곡식이 결실할 수가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말씀을 들어야 그 말씀은  마음을 하루 스물 네 시간 아니면 스물 네 시간에 이 말씀은 그 마음을 십  분이나 혹 한 시간이나 먹을까 한 시간이 시간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마음은  지금 어데 가서 뭘하고 누구하고 뭐하고 뭐하고 다 먹어 버리고 이 말씀이 그  마음을 먹을 여가가 없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옥토에 뿌린 씨는 어떤게 옥토에 뿌린 씨인가 옥토에 뿌린 씨는 그  말씀을 그 마음에 받아들여 가지고 이 말씀이 마음을 다 차지해서 다 먹어  버리고 이 말씀이 다 먹고 돌밭에 돌에게도 뺏기지 안하고 가시덤불에게도  뺏기지 안하고 아무데도 뺏기지 안하고 이 말씀이 그 사람의 마음을 다 먹어서  그라면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이 그 사람 마음 가운데에 떠나지 안하고 마음이 그  말씀을 자꾸 이래 새김질하고 그 말씀이 그 마음에 있어서 그 마음이 그  말씀에게 이용당하고 그 마음 안에 말씀이 들어서 떠나지 안하고 그 마음 안에는  말씀이 들어 있고 이래 가지고 있으면 결실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된다  했습니다.

 우리가 돈을 사모하면 반드시 돈 사람이 되고 맙니다. 네. 권세를 사모 하면  권세 사람이 되고 맙니다. 행락을 사모하면 행락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음란을  사모하면 음란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기협잡을 사모하면 사기협잡의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렇게 이런 모든 깡패 일을 생각하면 깡패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 가운데에 하나님의 말씀만 자꾸 이래 생각해도 백 배가  된다 인간에 대해서도 만점을 이룰 수 있다, 육십 배 악령에 대해서도 완전한  승리 만점을 이룰 수 있다. 삼십 배 하나님께 대해서도 만점을 이룰 수가 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늘 사모하고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서 떠나지  말게 해서 이 말씀만 우리 마음 안에 있어도 우리가 이 인간에게 대해서나  하나님에게 대해서나 악령에게 대해서나 사물에 대해서 완전무결한 사람이 될 수  있거든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이렇게 사모하고, 자기가 죄 지은  시몬도 생각하고. 베드로도 생각하고, 또 하나님의 종된 인연도 생각하고,  하나님의 사도된 인연도 생각하고 이것만 생각하면 이것은 전부 영양에 뭐, 아주  영양 덤비기라 말이오. 우리의 인격이 사는 영양 덤비기라. 새사람으로 사는  영양 덤비기요 옛사람을 갈아 붙여서 금방에 오지 못하게 하는 영양 덤비기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어짜든지 오늘 오전 오후에서는 우리 마음에 다른  것을 용납지 말고 이제 말한 이 일곱 가지를 우리 마음에 가득 채우도록 합시다.

일곱 가지가 가득히 차서 일곱 가지가 우리 속에 사모하고 사모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을 당할 때에 일곱 가지가 마음 가운데 가득히 찼으므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대할 때에 이렇게 척 말하게 되는 그것이 생명입니다. 또 무슨 사건도  당할 때에 고 마음 가운데에 일곱 가지가 가득 차 가지고서 그 사건을 당할 때는  이겨야 된다 하는 그것이 다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분을 사모하면 완전을 사모하는 것이라. 완전화되고  전지화되고 전능화되고 모두가 다 영원화되고 불변화되어지고 이라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탁월한 그런 것을 창조한 창조한 그것이 되어지는데. 그게 지음 받은  거기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불신자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마는서도 이는 다 안 믿는 사람들이 하는  것인데 너희들에게 천부께서 다 있어야 할 것인 줄 안다. 그래 '너희들은 먼저  그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준다.'  이렇게 우리가 발명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발명하는 사람도 그걸 논리적으로  연구하고 또 실험적으로 또 이래 해 보고 암만 해 봐도 안 열리는 사람은 잡힐  듯 잡힐 듯 알 듯 알 듯 이래 해서 자기 죽을 때까지 해도 그것을 꼭 알듯 알듯  고게서 고게서 제가 초짓장 하나인데 고 하나만 딱 발견하면 돼 버리는데 고걸  발견하지 못하고 못 한다 그말이오. 그러나 거기에서 발견자들이 무슨  연구하다가 그런게 아니라 오다 가다가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까 무엇이 하나  퍼떡 떠 오를 때 고때 구멍이 탁 뚫혀 가지고서 신발견 새로 발견하는 사람들이  다 그래 발명합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 가운데에 이렇게 이 일곱 가지를 생각하면 일곱 가지는 다  들었는데. 일곱 가지 삼위일체를 생각하지, 삼위일체가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한  것을 내가 생각하지, 삼위일체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어떻게 된 사람을  생각하지. 내가 또 이렇게 되면 망한다 하는 망할 사람도 생각하지, 이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된 사람을 생각하지 이 전부가 다 이것을 우리 마음  가운데 자꾸 생각하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이게 아니고는 자기를 변화시키는  길이 없고 사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고 이와 같이 사모하는 사람  됩시다. 기도하러 가도 뭐이든지 자꾸 '주여 뭘 주시옵소서 뭘 주시옵소서 나는  공산주의 앞에서도 생명 내 놓고 순생할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순교해 주옵소서'  그런 소리 아무리 해 봐야 그거 껍데기지 아무 소용없습니다. 예수를 생각하며  예수와 나와 어떤 관계시며 예수는 어떤 분이시며 그분이 나에게 어떻게 했느냐?  나는 그분에게 무슨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내가 그러면 앞으로 그분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리스도와 관계는 뭐이냐? 이것을 사모해 가지고서 거기에서  우리에게 능력도 나오고 각오도 나오고 결심도 나오고 해결도 나오고 소망도  나오고 담력도 나오고 평강도 나오고 모두다 거기에서 나온 그것 가지고서 그게  틔어 나와 가지고서 편지하노니 거기에서 툭 틔어 나와서 하는 말 이런 부글부글  속에서 속에서 가득 차 가지고서 사모하는 가운데서 툭 튀어 나오는 그말이라야  생명의 말이요 그 역사라야 생명의 역사요 그 소원이라야 생명의 소원이지 그  외에 것은 다 죽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주일을 통해서 우리는 반드시 현실마다 두 자기가 두 내가  있으니 하나는 원수요 하나는 참 내다. 현실에서는 반드시 사망과 생명을 이루고  이 두 가지가 우리에게 있다. 그런데는 그것은 뭐냐? 어데 매였느냐? 옛사람과  새사람에게 매여 있다. 옛사람을 그것을 원수 삼아서 쫓가 낼라고 해도  인간으로서는 쫓아내지 못한다. 원수 삼아서 쫓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이 일곱  가지를 자기 마음 가운데 사모하고 사모하고 이 일곱 가지를 자기 마음에 가득  채워서 딴것이 들어갈 여가가 없이 일곱 가지를 자기 속에 가득 채워라. 가득  채우면 한 말씀을 자기 마음속에 채워도 사람이 변화되는데 이 일곱 가지를 자기  마음 속에 채우면 그 사람은 가속도로 변화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말세를 만났고 아주 주의 재림의 임박한 때를 만났습니다.

지금은 깨야 될 때입니다. 뭐이 세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이북이 밀고 오나  그런게 문제가 아니고 오든지 안오든지 우리는 안 와도 와도 일 없을 수 일이  없을 수 있는 평안으로 기쁨으로 이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은 돼야 됩니다. 오고  안 오고가 문제가 아니고 우리가 그런 사람으로 변화가 돼야 됩니다. 변화되는  것은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 오시야 되지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에 안  오시면 될 수가 없습니다. 진리가 내 마음 안에 와야 되지 하나님과 진리가 내가  돼야 됩니다. 내가 되지 안하면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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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하나님과 사람 사랑-계명지킴/ 요한일서 5장 2절-3절/ 1983. 9. 23.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5 하나님과 사람 위하는 방편/ 마태복음 5장 7절/ 1988. 9. 16.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4 하나님과 성도와 관계성/ 호세아 2장 4절-23절/ 1984. 8. 26.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513 하나님과 연결-말씀 묵상으로/ 골로새서 3장 2절-4절/ 1983. 9. 20.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12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 베드로전서 1장 24절-25절/ 1986. 5. 2.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1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원인을 찾자/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1987. 5. 8.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10 하나님과 이질적인 요소를 버리라/ 히브리서 11장 6절/ 1981. 1. 6.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09 하나님과 자기와 믿음 생각 할 것/ 요한계시록 3장 18절 상반절/ 1987. 10. 29.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508 하나님과 재물/ 마태복음 6장 24절-34절/ 1989. 6. 16.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07 하나님과 재물/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1989. 6. 17. 토새벽 선지자 2016.01.02
506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출애굽기 12장 13절-14절/ 1979. 11. 23.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05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라/ 창세기 6장 1절∼14절/ 1981. 1. 28. 수저녁 선지자 2016.01.02
504 하나님께 가까울 수록 거룩하라/ 민수기 20장 2절-13절/ 1983. 6. 25. 토새벽 선지자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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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하나님께 감동 주는 사람/ 히브리서 11장 1절-3절/ 1985. 9. 15.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02
501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4장 1절-3절/ 1984. 5. 21.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500 하나님께 대해서 노력할 것/ 로마서 6장 23절/ 1985. 11. 8.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499 하나님께 받는 방편/ 요한계시록 3장 8절∼12절 상반절/ 1987. 4. 16.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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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 하나님께 주권이 있음을 믿고 계명생활/ 다니엘 6장 1절∼27절/ 1987. 3.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