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주권이 있음을 믿고 계명생활

 

1987. 3. 15. 주일오후

 

본문:다니엘 6장 1절∼27절 다리오가 자기의 심원대로 방백 일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에 하나이라 이는 방백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다니엘은 마음의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해서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라의 모든 총리와 수령과 방백과 모사와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율법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려 하였는데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컨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어인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에 그들이 나아가서 왕의 금령에 대하여 왕께 아뢰되 왕이여 왕이 이미 금령에 어인을 찍어서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적실하니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그들이 왕 앞에서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 그 다니엘이 왕과 왕의 어인이 찍힌 금령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하루 세번씩 기도하나이다 왕이 이 말을 듣고 그로 인하여 심히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마음을 쓰며 그를 건져 내려고 힘을 다하여 해가 질 때까지 이르매 그 무리들이 또 모여 왕에게로 나아와서 왕께 말씀하되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이에 왕이 명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굴에 던져 넣는지라 왕이 다니엘에게 일러 가로되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 이에 돌을 굴려다가 굴 아구를 막으매 왕이 어인과 귀인들의 인을 쳐서 봉하였으니 이는 다니엘 처치한 것을 변개함이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음으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이에 다리오 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성경에 기록된 일들이나 사람이나 물건이나 그런 것은 다 우리에게 구원 도리로 주신 것입니다. 구원 도리로 주셨다 말은 구원을 얻는 길로 주셨다 하는 말입니다. 구원 얻는 길로 주셨다. 길로 주셨기 때문에 길은 목적을 향해서 걸어가야 효력이 있는 것이지 길은 걷지 아니하면 아무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 문서로 기록해 주신 도리든지, 또 어떤 역사로 기록해 주신 도리든지, 또 사람이나 물건이나 짐승 그런 것으로써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도리든지 이거는 다 길 도자, 이치 리자 도리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은 다 우리가 지켜 행할 때에 구원이 되는 것이지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 없읍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한 사람이면 곧 그 사람이 자기인 것을 알아야 되고, 또 성경에 기록한 일들이라면 그 일이 곧 자기에게 당한 일인 것인 것을 또 알아야 하고, 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런 모든 물건이나 짐승 그런 것이라도 그것은 막바로 자기에게 당한 그 일과 물건으로 그렇게 보고 거게서 깨달음을 가지고 행하지 아니하면 이 복음 도리는 그 사람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읍니다.

마치 아무리 좋은 음식을 말한다 할지라도 또 그 음식이 자기 앞에 있다 할지라도 안 먹으면 효력 없읍니다. 예수 믿는 이치를 아는 사람은 좋은 음식 있다는 말을 들은 사람과 같고 또 좋은 음식이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은 이 하나님의 도리를 듣고 자기가 인정하는 사람이요, 우리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알고 인정할 때에 그것이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알고 인정할 때에 실상이 되는 것이고 그것을 내가 행할 때에 내것이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으로 되는 줄 아는 그 사람은 외식자 중에 외식자요, 알고 이 사실을 인정만 하고 마는 자는 외식자요, 인정한 대로 행하는 자라야 실상을 이루는 복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늘 말한 대로 성경에 있는 모든 이 문서계시나 형식계시나 역사계시나 이런 것을 그것은 그거대로 두고 자기와 관련을 시키지 아니하고 관계 없게 가지는 것은 그것은 결과적으로 이 계시 도리가 그 사람을 심판해서 멸망시키지 하나도 유익한 효력은 없는 것입니다.

여게 오늘은 다니엘 6장을 읽었는데 뭐 이거 하나로써 깨달아서 모든 성경의 이치를 거의 다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다니엘은 곧 누구든지 기독자라면 자기다 하는 것을 인정하고 다니엘의 그 행사를 세밀히 살피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에게 이런 토막토막들이 생겼다. 내게는? 살펴보면 내게도 그런 토막토막이 생기고 있읍니다.

그러면 다니엘이 그런 토막토막을 만났을 때에 어떻게 하니까 어떻게 됐는가? 그가 하나님 믿는 사람이요 또 하나님을 증거하는 책임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자기의 닥치는 모든 일에서 포로되어 갈 때도 포로되어 갔을 때에도 그 비참한 현실이지마는, 비참한 현실이지마는 모든 비참은 저들의 선조와 저희들의 잘못으로 인한 비참으로 인정했지 하나님에게 경솔히 원망 불평하지를 아니했읍니다. 또 그렇게 비참하게 된 거게서도 다니엘은 낙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은 살아 계시니 내가 여게서 나 할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구별했읍니다.

거게서 특수생으로 특수 학원에서 공부하게 되는 그렇게 또 그가 우쭐할 만치 참 포로자로서 그렇게 귀한 위치에 참가하게 된 것이 대단히 희귀한 일입니다.

요새는 뭐 우리 나라에서 서울대학이 좋다고 서울대학에 입학만 해도 우쭐하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포로되어 있는 그 포로민이 그 나라에 앞으로 모든 정치를 위임시킬려고 특수생으로 뽑은 그 특수 학원에서 공부하는 반열에 들어갔으니까 얼마나 우쭐할 것입니까? 이러나 다니엘은 거게서 우쭐하지를 안했읍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세워서 이 학원에 입학하게 된 것도 전지 전능자가 내게 대한 소원이 계시고 내게 대한 명령이 계셔서 하는 것이니까 이 자리에서 주님이 내게 대한 소원이 무엇이며 내게 대한 명령이 무엇인가 그것만 찾는 데에 전심 전력 했지 그 좋은 학원에 입학했다고 우쭐하는 그런 행동은 하나도 안 했읍니다.

다니엘이 그 학창 시기를 지낸 것이나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이런 사업 저런 직장 이런 출세 저런 형편된 그 모든 것이 다 이와 꼭 같은, 종류는 다르나 다니엘이 당한 거와 같은 그런 현실의 분야를 우리가 만나게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거게서 일편단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그 나라에 보여 줄라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 것을 증거하려고 하는 일편단심 그 소망만 가지고 있었읍니다. 이러니까 거게서 왕의 진미를 먹어야 네가 영양이 충족하고 이 학과를 감당해서 출세하게 된다. 또 그럴 때 옆에서는 우리가 포로민 중에서 지금 다니엘, 몇 청년이 거게 들어가서 공부하고 있으니까 그대들이 잘하면 우리가 희망이 있고 잘못하면 희망이 없으니까 어짜든지 잘하라고 하는 거게도 뭐 그런 유혹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양 있는 왕의 음식을 먹고 그리하라 이랬으나 다니엘은 그 나라에서는 왕의 진미를 먹을 때에 언제든지 우리가 기도하는 거와같이 그 나라의 신에게 기도를 하고 그렇게 먹는 것이 그들의 습성이기 때문에 그게 걸려서 그것을 거절했읍니다. 거절하고 이래 가니까 모든 사람은 다 어리석게 이렇게 생각했지마는 거절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권위와 또 능력만을 의뢰하고 그리 함으로써 다니엘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십 배나 능한 그런 실력을 갖추게 됐읍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지 반드시 우리 앞에는 형통한 때가 있고 또 성공적인 그런 승리의 때가 옵니다. 없는 사람이 없읍니다. 다 밤이 있고 낮이 있고 밤이 있고 낮이 있고 바람 불고 비오고 잔잔하고 날 좋을 때 있는 것이 이것이 뭐 땅위에 있는 것이라면 꼭 같이 받습니다. 같은 형편을 받습니다.

그런고로, 우리 앞에도 그렇게 좀 형통하고 좋고 모든 것이 성공적인 그런 때가 있을 때에 다니엘은 어떻게 했나?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다니엘은 거게서 그거 닥쳤으니까 좋다 하고서 우쭐거리고 그것으로서 만족하는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입장과 처지에 세웠으니 세워 주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내가 여게서 할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것을 바로 찾아서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 일 하나만 밤낮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하면 여게서 내가 하나님 의지하고 바라보고 높이는 그것을 이 잘되는 형편에서 잘되는 형편에 휩쓸려 가지고 하나님 잊어버리고 멀리 할까 하는 그것만 생각하고 거게서 하나님과 멀어지지 안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섬길라고 하는 그것만 일편단심 가졌읍니다. 그라니까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 십 배나 키우고 올려줬읍니다.

요것이 우리 기독자에게는 변개할 수 없는 바로 형틀입니다, 형틀. 알겠읍니까? 여기 그거 뭐라 하는지, 여기 저 주물 공장에 가면 형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다가 쇠물을 부으면은 나중에 가서 쇠가 그대로 만들어 나오는 것 아닙니까? 형틀대로 쇠가 만들어 나오지 않소? 그게 뭐 주물 공장에서 만든 모든 철물들 아닙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이 다니엘로 이래 보인 이것도 우리 기독자들이 걸어가는 형틀입니다.

형틀인데, 그런 입장 다 당합니다. 크고 작은 양은 다르고 종류만 다르지 그런 형편 다 당합니다. 그 당할 때에 그렇게 좋은 형편 당하니까 좋은 데만 눈이 떨어져 가지고 좋은 거 닥치니 그 좋은 것은 하나님보다 낫게 여겨서 좋은 그 매력에 다 쏠려버리고 하나님은 뒤로 두는 그자는 망하고, 그럴 때에 좋은 그것은 좋다 나쁘다 거게 흥미나 가치로 두지 안하고 ‘이렇게 하나님이 또 좋은 형편 주셨으니 여게서 당신의 요구가 뭐이며 명령이 뭐인가? 여게서 내가 어떻게 하면 주를 기쁘시게 하고 이 좋은 형편을 인해서 하나님을 내가 멀리 할까?’ 요것만이 일편단심 걱정하고 노렸읍니다. 이러니까 다른 사람의 십 배나 올렸읍니다. 우리는 아무리 박절한 사람이고 아무리 아주 저급에서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요런 일 안 닥치는 기독자는 하나도 없읍니다.

주먹덩이만한 형통을 만났을 때 다니엘 모양으로 이렇게 하면, 열 명이 주먹덩이만한 좋은 형편을 만났는데 거게서 다니엘같이 하니까 다른 사람 십 배나 주먹 열 개나 되는 만치 이만하게 주먹 열 개만치 또 커졌지, 또 거게서 다른 사람 같지 안하고 다니엘같이 그렇게 요 방편 취하니까 또 십 배 얻었지, 또 닥치고 또 하니까 또 십 배 얻고, 자, 몇번 해서 그까짓 거 천하에 있는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민족이 되겠읍니까? 잠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요것이 곧 내게 대한 변개 못 할 요 형틀이라. 형틀이기 때문에 다니엘처럼 되면 그 형틀되고, 또 이거 노아를 보고 멸망 하는 사람들을 보고 멸망하는 사람들같이 하면 멸망받는 것이고 거기에는 뭐 하후하박이 없어.

하나님이 사정이 없어. 꼭 그대로라.

또 다니엘이 이렇게 올라간 것이 다 뭣 때문에 올라갔읍니까? 올라간 것이 그대로 올라갔읍니다. 그래 가지고 다니엘 6장에는 보니까 그 나라에 총리대신이 셋인데 총리대신 셋 중에 한 사람으로 다니엘이 포로인으로 그 강대국의 총리대신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등장이 됐읍니다. 등장이 됐어. 그 등장된 그것이 무슨 방편 가지고 등장됐는가? 잠깐 커 올라가.

등장됐을 때에 그 벼슬이든지, 그 재물이든지, 그 사업이든지, 그 형통이든지, 시집 잘 가서 좋은 서방이든지, 장가 잘가서 좋은 애인이든지 뭐 다 그만 이 종류라. 다 이 이치라. 다 이 이치. 이 이치인데 이 이치에서 기독자로서 망하는 길이 무엇이며 흥하고 성공되는 길이 무엇인가? 이 다니엘 같애. 다른 길이 없어.

자기가 예수 믿은 후에 자기로서 다행이다 하는 그런 형통되는 일을 안 만나 본 사람이 있읍니까? 한 사람도 없어. 한 번뿐 아니라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서 몇 번 다 만나 봤어. 다 몇 번씩 만나 봤어. 왜 만나 봤는데 올라가지 안하고 커지지 안하고 점점 오그라져서 망하게 됐는가? 바로 그 이유가 이것입니다.

내가 이런 특수 학원에 들어왔으니까 저거 민족들 보고서, ‘아이구, 이번에 큰 학원에 갔으니까 축하합니다. 어짜든지 잘해서, 출세를 해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십시오. 어짜든지 열심히 공부를 하십시오.’ 뭐 그런 소리는 다 했을 것입니다. 다 했지마는 다니엘은 그런 유가 아니라.

만일 그럴 때에 혹 오늘 신자 내가 거기 옆에 있으면 ‘다니엘이여, 너 올리고 낮추는 이는 주님 한 분에게 있기 때문에 네가 거게서 어짜든지 하나님을 기뻐하시도록 하고 하나님을 이 나라에 환하게 알 수 있도록 네가 하나님의 영광과 권위를 드러내라’ 이랬을 건데 그런 사람 없어.

이랬는데, 다니엘은 거게서 우쭐하지 안했어. 우쭐하지 안하고 내가 이만치 됐으니까, 뭐 내가 이만치 됐으니 차차 거게서 공부를 하다가 보면 느부갓네살 왕은 점점 커지고 저거 여호와 하나님은 시시하이 보여지고 그 나라의 그 모든 시설과 조직과 기관의 국력은 크게 보이고 이 모두 하나님 섬기는 이는 참 똑 호랑이 담배 피우는 거와 같다 하던 그런 시절과 같은 그렇게 미개한 일로 보여지고 이렇게 보여질 터인데 다니엘은 그렇지 안했어. 그 특수 학원이 눈에 크게 보이지 안했어.

거게 있는 소망이 크게 보이면 주님이 보고 시기할까 싶어서 ‘오, 다니엘아 네 마음이 지금 세상으로 기울어져서 나를 버리고 세상으로 가는 네가 점점 음녀에 유혹받아 가지고 점점 음행하는 자가 돼 가는구나’ 이렇게 할까 싶어서 조심해서 그걸 가치로 보지도 안했고, 자랑하지도 안했고, 거게 유혹받지도 안했고 거게서 일편단심, 저거를 포로시킨, 포로되게 한 그 하나님이지마는 저거 잘못해 그런 줄 알고, 하나님이 능력 없어 그런 게 아니고 저거 잘못해 그렇게 천하게 된 줄 알고 더 하나님을 이제는 바로 옳게 섬겨 볼라고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가지고 두려워하면서 그 하나님 비위만 맞추기에 전심 전력 기울였지 바벨론 나라의 그 모든 것 다 뭉쳐도 하나님 앞에 먼지같이 봤지 하나님 가치를 적게 보고 그것을 크게 보지 안했어. 여기에서 다니엘의 가치가 있어.

그라고 하나님 영광 드러내기 위해서 일편단심 그들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권위만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제가 될라고 했지 은혜로만 될라고 했지 뭐 바벨론에 있는 그런 모든 과학, 또 모든 인간 심리 그런 것들 가지고 될라고 하지 안했읍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될라고 하기 때문에 환관장에게 ‘보십시오. 만일 시험해 가지고 내가 조그마치라도 그들보도 더 수척해지거들랑 우리를 어떻게 하시든지 하십시오.’ 이라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벨론의 모든 과학이나 모든 문화 그것을 발 아래 밟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만 힘을 썼어.

이라니까, 십 배가 올라갔어. 대번에 학원에서 십 배 올라가, 또 그 위에 같은 동지 위에서 또 십 배 올라가, 또 동지에 십 배, 이거 한 자국씩만 올라가도 올라갈 터인데 열 자국씩 풀풀 뛰어서 올라가니까 잠깐 올라갈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포로민으로 총리대신까지 됐지. 바벨론 나라의 총리대신까지 돼 버렸어.

요것입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뭣만 조금 되고 나면, 그게 뭐 학교에서 고학으로 돌아다닐 때는 하나님 아니면 죽겠다 하는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무엇이 하나 자리잡히고 나면 그만 그게 뭐 한 체하고서 뒤로 저뻥하이 이래 가지고 날뜁니다.

그걸 볼 때에 주먹으로 가슴을 콱 찔러 주면 싶어. ‘이 새끼야, 이 새끼야.

네까짓 게 뭐 잘났다고 하고 있어? 오늘 하나님이 부르면 그만인데. 당장 낮추면 땅 속에 파묻혀 들어갈 것이. 뭐 네가 잘났다고! 과거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지마는 네가 기도를 하나, 새벽기도를 나오나, 네가 뭐 성경을 보고 믿음을 지킬라고 애를 쓰나! 그거면 다인 줄 아느냐? 그게 전부가, 그게 끝이가?’ 이라면 이게 제법 교역자도 철철 ‘허, 나는 그래도 사장인데, 나는 한 달에 월급을 뭐 얼마를 받는데, 목사 돼 봤자,’ 요새 우리 목사들은 사십만 원 오십만 원 백만 원, 내가 최고로 받는데 이백만 원입니다. 내가 최고로 받는데 이백만 원이라. 이백만 원 받는데 이리저리 떼 주고 나면은 없어. ‘그까짓 거 한 달에 이백만 원짜리, 내야 이 사장으로서 지금 뭐 삼백만 원 받는데, 오백만 원 받는데.

나는 뭐 천만 원 받는데.’ 네가 돈으로만 계산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계산할 줄을 모르는구나.

이러니까,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신다면 그 사람에게 주겠소 안 주겠소? 주겠읍니까 준 거 뺏들겠읍니까? 누구한테 물어 볼꼬? 주겠읍니까 준 거 뺏들겠읍니까? 저 ○○○장로님 한번 대답해 봐요. 뺏듭니까? 뺏들겠읍니까? ○장로님, 어떻게 하고 있지? 인제 학교 선생이라. 뭐 대학원 졸업했다 하던가 뭐 하고 뭐 어째 이래 가지고 그럭 저럭 하니까 어북 이제 틀이 생기고 했거든.

이러니까 뭐 새벽기도 안 나오다가 요새 좀 나오는가 몰라. 다 그리 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멸시받을 하나님이 아닙니다. 만홀히 여기심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십니다.

여기 새끼 사장들, 모두 새끼 박사들, 새끼 모든 권력가들, 이것만 좀 되면 그만 가치를 거게다 두고, 거게다가 두니까 이 가치를 ‘우리 교회서는 나만치 이 가치 있는 사람이 없다.’ 가치를 거게다 둬. 가치를 하나님에게 두지 안하고 가치를 거게 둬. 이러니까 모든 사색과 모든 계산과 모든 욕망이 다 달라지지. 그래 가지고 망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올라가는 방법이 요것이오. 가다가 중단되는 방법이 그만 그거 중단되면 중단돼요. 그것이 환장돼서 꺼꾸로 돼 버리면 그만 내려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아주 고속도로 흥하고 망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기독자들입니다.

이 다니엘이 벌써 두 정권을 거쳐서 이제는 파사 나라에서는 총리 대신이 됐어.

총리 대신이 됐는데 거게도 보니까 모두 말하기를 4절에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 그들이 지금이제 꾀를 씁니다.

이러니까, 어데 가든지 항상 걸음은 그 걸음이라. 다른 걸음 안 걸어. 올라가도 그 걸음, 내려가도 그 걸음, 포로가 돼도 그 걸음, 항상 주님 두려워하고 주님에게 모든 것이 다 생사 흥망 성쇠가 주권되어 있는 것을 믿고 그분의 비위와 뜻을 맞추기 위해서 일편단심 그것만 정성 써. 거게만 주력하고 거게만 노력해.

이라니까 자꾸 올라갔지.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이것 때문에, 이걸 몰라서 점점 멸망을 당하고 있읍니다.

내가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을 만나 가지고 그렇게 말했어. ‘어짜든지 하나님 한 분에게 주권 있는 것을 믿어라. 그분 한 분이 올리고 내리는 거 다 한다.’ 우리 기독교 안에, 세상도 뭐 큰 거는 아니지마는 좋은 위대한 부흥사에다 비하면은 비교 안 됩니다. 이러나, 세상으로는 그래도 우리 소국이지마는 대통령이면 정권으로서는 제일 높은 사람인데, ‘안 되는 것은 그것 때문에 안 된다. 내가 가서 말하더라고 좀 전해라. 왜 하나님이 된다고 얼마든지 약속해 놨는데 왜 안 되느냐? 행동이 안 되기 때문에 안 되는 거 아니냐? 그분 마음대로 그분에게 주권이 있는 줄 알고 그분만 높이고 그분만 기쁘시게 해서 그분 비위만 맞춰서 그분이 나를 좋아해서 올릴 수 있도록만 해라.’ 이러면 실력은 지금 그런 거 하라 하면 넉넉히 할 수 있는 실력이 되지마는 하나님이 안 시켜 주니까 못 해.

그들이 꾀를 내 가지고 다니엘을 이제는 몰아 넣을라고 전국이 다 의논해 가지고 ‘어짜든지 우리 족속 아닌 딴 데서 포로되어 온 저 족속 저거 다니엘 저놈만 죽이면 우리가 다 우리 소원대로 될 터인데 저놈을 죽이지 못해서 그러니까 저걸 없애버리자.’ 전국이 다니엘을 미워해서 다 아주 전체가 다 멸살을 시킬라고 단합이 딱 됐읍니다. 단합이 딱 됐어. 왕의 조서까지 내렸으니까 딱 단합이 다 돼 버리고 뭐 물샐틈 없이 똘똘 뭉쳐서 한덩어리가 됐어.

여게서 우리가 깨달을 게 뭐입니까? 다니엘처럼 하나님 한 분으로서 자기의 전부를 삼고 그분 한 분을 상대해서 살면 자꾸 올라갑니다. 요거 하나 배워. 자꾸 올라가요. 올라가면 온 세상은 시기해서. 온 세상은 시기해서 어짜든지 멸할라고 대적하는 대적은 점점 커집니다. 제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올라가고 커지면 대적들도 점점 커지고 넓어져서 대적들이 더 심해져 갑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서 커진 다니엘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커진 다니엘이 세상으로 인하여서 큰 박해 속에 파묻히게 됐읍니다.

다니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도 다 그래. 기독자가 하나님만 바라보면 하나님으로 인하여 커져. 커지면 온 세상은 우리를 시기해서 우리를 멸할라고 박해로 달라드는 대적은 바다물처럼 몰려와 가지고 다니엘을 꼼짝 못 하게, 이제는 뭐 꼼짝 못 하게 우겨싸서 사자구덩이 던지게 됐으니까 헤어날 길어 없어.

이렇게 대적들이 똘똘 단합해 가지고 다니엘을 멸할라고 철통같이 이렇게 꽉 짜고 달라들었어.

그럴 때에 다니엘은 생활 방편을 어째야 되겠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올라갔으니까, 올라가니까 세상이 들어서 박해를 해서 다니엘을 사자구덩이 넣어 죽일라고 이렇게 똘똘 뭉쳐서 단합을 했으니까 다니엘의 생활 방법은 어째야 됩니까? 다니엘 생활 방법이 변해졌읍니까? 변해지지 안했어. 세상은 변해져도 다니엘은 그 방편을 변개하지 안했어.

처음에 포로되어 갔을 때도 그 방편, 그 방편 하니까 이렇게 점점 커지고 올라갔고, 올라가는 것도 그 방편, 올라갔을 때에 모든 대적들이 달라들어 가지고 다니엘을 해할라고 하는 그 대적들이 전국에 똘똘 뭉쳐서 다니엘을 폭 둘러싸 버렸어. 바다물에 빠진 사람처럼 원수 속에 폭 빠져 버렸어. 이러니까 그때는 생활 방법이 달랐읍니까? 달라지지 안했어.

거게서도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에게 주권 있는 것을 믿고 여게서는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하며 여게서는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는 것이 뭐이며 명령하는 거는 뭐인가? 항상 그것만 찾아. 이러니까 거게서는 하나님 기쁘시게 할라면 기도한다 해야 되지, 거게서 하나님의 명령은 기도한다고 해야 되지, 그라면 전멸이지.

이래도 다니엘은 거게서 저를 포로 중에서 섬기던 그 하나님, 포로 중에서 인도해서 저를 성장시킨 하나님, 그 하나님 변하지 않으니까 저도 그 하나님에 대해서 변하지 안했읍니다. 그 주위 환경이 어떻게 변해진다 할지라도 변하지 안해.

그가 점점 커져 가는데 따라서 변해졌더라면 그는 이럴 때 되면 또 변해집니다.

그는 아무리 커져도 하나님과 저와의 관계 변치 안하고, 아무리 그 위험 속에 빠져도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 변치 아니하고, 그는 마지막에 사자구덩이를 앞에 놓고서 하루 종일 자기를 사랑하는 그 존경하는 다리오 왕이 하루 종일 해가 넘어갈 때까지 ‘야 어짜노? 아무래도 요번에는 안 되겠다. 이렇게 전국이 몰려 놨으니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나? 그러니까 한 달 동안만 은밀히 기도하고 나타난 그런 기도를 하지 말아라.’ 하루 종일 사정을 했어. 하루 종일 사정해도 다니엘은 변동이 없어. 그대로라.

포로됐을 때 하나님, 특수 학원에 있을 때에 하나님, 점점 올라갔을 때에 그 하나님, 총총리 총리대신이 됐을 때에도 그 하나님. 변동하지 안하고 그대로 해.

그대로 하니까 다른 사람 보기에는 미련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그럴 때에 몰려서 사자구덩이 던져 버렸으니까 끝장 안 났읍니까? 끝장 나 사자구덩이에서 끝났지, 뭐. 끝나도 우리 주님은 죽은 가운데서 살려낼 수가 있어. 사자들이 다 찢어서 다 먹어버렸어. 다 먹어서 다 먹어도 확 게우게 해 가지고 또 다니엘 만들어 낼 수 있는 하나님이라. 고기 뱃속에 들어가도 확 토해서 나오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이라. 하나님은 끝이 없어. 전능이라. 이러기 때문에 다니엘이 이 하나님을 믿고 그 조서를 보고서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변치 않는 기도 생활 그대로 했읍니다.

이러니까, 원수의 첩첩 그 포위 속에 든 다니엘이 그 원수들을 어떻게 했어? 그 원수들을 마지막에는 다 전멸시켰읍니다. 그 원수들을 다 잡아서 사자구덩이 넣을 때에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다 뼈까지 부숴뜨렸다 했읍니다. 그러면 그 원수들을 어떻게 복수를 했으며 그 첩첩이 싸인 원수 속에서 다니엘이 뭘로써 벗어났읍니까? 무엇 가지고 벗어났읍니까? 뭣 가지고 벗어났어? 하나님으로 벗어났는데 다니엘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으로 구원해 주시는 구출을 받았읍니까? 뭣 하다가? 여전히 하나님의 계명 생활 했어, 하나님의 계명 생활.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여게서 아무리 내가 천길 만길 떨어져서 함정 속에 깊이 빠졌어도 우리는 얼마든지 솟아오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들입니다. 왜?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와 우리가 믿는 믿음과, 믿음이라니? 당신이 계약한 계약이 있어. 그 계약을 믿는 믿음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기도가 있어.

믿음과 기도가 있어.

이러기 때문에, 자기 주위 환경이 열번 백번 천태만상으로 변해져도 하나님이 변치 안하니 자기만 변치 안하면, 천태만상의 변동되는 그 변동으로 다니엘은 하나님 더 믿을 수 있게 됐고, 하나님은 다니엘 더 신용할 수 있게 됐고 이러니까 다니엘과 하나님은 점점 들어붙어. 다니엘은 하나님으로 저의 전부 삼고 하나님은 다니엘로서 당신의 수족 삼아서 모든 일을 다 이루셨어.

이러니까, 오늘 우리가 여게서 우리의 모든 성장도, 우리의 피난도, 우리의 모든 장구성도 다 하나님 한 분으로 하고 하나님 한 분으로 우리의 전부를 삼고 우리는 이 모든 파란과 굴곡이 오는 이것이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믿느냐? 하나님께 대해서 변하는 하나님으로 믿느냐 하나님을 변치 않는 하나님으로 믿느냐 그것이 우리의 시험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래도 변하지 안하고 저래도 변하지 않고 어떻게 해도 변하지 않고, 하나님 변하지 안하니 나도 하나님께 대해서 변치 안하면 그 모든 주위 환경에 있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밀접한 관계를 가지도록 이렇게 밀접시키는 거 외에 딴것은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이 자기 현실이 변개됨에 따라서 하나님을 변하는 하나님으로 하나님께 대한 상대함이 변해지고 자체가 변해지면 볼일 다 봤읍니다. 다 헛일이오.

그런고로 우리의 현실이나 환경이 어떻게 변해진다 해도 하나님은 변치 않습니다.

그분이 변치 않소. 능력도 변치 않고, 지혜도 변치 안하고, 사랑도 변치 안하고, 진실도 변치 안하고, 신실도 변치 않습니다. 나와 계약한 것도 변치 않습니다. 그 계약한 게 바싹 부숴지는 거 같은데 나만 뽀사지지 안했으면 그것으로서 하나님께서 크게 드러내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일이 되지 하나님 변치 않는 하나님이오.

변치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여기 저기에 어떤 시험이 와도 하나님은 변치 안하는 하나님으로 자기가 믿는 이 일을 연단하고 연습해서 연성하고 또 자기도 환경 주위가 어떻게 돼도 하나님께 대한 것이 변치 않는 자기로서 연습하고 연단받아 연성을 해서 어떻게 돼도 내가 하나님께 대해서 변치 안하고 하나님도 내게 변치 않는 요 두 가지가 성공되는 요것을 무궁세계를 위해서 이 사람 만들어 쓸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거머쥐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환경이 좋게 변할 때에 거게 피동돼서 내가 변해도 그것은 가치 없어서 망합니다. 자기 현실이 어떻게 나쁘게 변해졌다고 그 나쁘게 변해진 데 따라서 자기가 따라 변해지면 그것도 실패요 성공 없읍니다. 자기 현실이 좋게 변해져도 내가 그거 소망하는 거 아니고 나쁘게 변해져도 그거 소망하는 게 아니고 당장에 총리 대신이 돼도 그거 내 소망이 아니고 당장에 어떤 천물이 돼도 그게 아니고 다만 좋게 변해지든지 나쁘게 변해지든지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밀접하게 만드는 그것뿐이지 딴거는 없어.

이러니까, 좋게 변해지면 좋게 변해지는 데서 하나님과 나와의 밀접해지고 나쁘게 변해지면 나쁘게 변해지는 데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만 밀접해지고 요것만이 내 소망이라. 하나님만이 내 소망이라. 하나님과 나와의 변치 않는 관계 맺는 요것만이 내 소망이라. 요것을 가지는 그 사람이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마음 놓고 당신의 모든 축복을 애낌 없이 다 줄 수 있고 그는 다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들이 나쁘게 변해지면은 대개는, 몇닢푼치 안 되기 때문에.

나쁘게 변해지면 그만 절절절 떨고 그만 주님에게 들어붙습니다, 몇닢푼치 안 되니까. 나쁘게 변해지면 뭐 큰소리 해 쌓아도 그만 배고프고 그만 병들고 해 가지고 그만 꼴막거리면 ‘아이구, 주여’ 하고 그만 들어붙는데, 참 못났어. 조금 좋게만 변해지면 그만 교만해 뒤로 저뻥합니다. 중량이 낮아. 몇닢푼치 안 되는 사람이라.

그런고로 우리는 여기에서 오늘 오후에는 내가 걸어가는 걸음은 좋게 변동되고 나쁘게 변동되고 변동 많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만 변하지 안하면 반드시 나쁜 것이 변하여서 더 좋게 되고 또 좋은 것이 더 좋게 되고 하나님과 나와의 둘이 관계가 변동 없으면 우리를 이런 환경 저런 환경으로 자꾸 현실을 만드는 것은 당신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하나님은 나 신임하고 나는 하나님을 더 신앙하고 하는 이 관계만 두껍게 맺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너희들이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안할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변하지 안하면 반드시 그 뒤에는 크게 기뻐할 수 있는 그 결과를 우리가 가져오게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 바라봄으로 조금 좋아지면 그만 교만해 가지고 망령부려서 하나님의 축복줄 끊어지고 세상에게 붙들려 가지고 비참한 자 되는 그런 일 하지 말고, 좋게 변해져도 그거 우리 소망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여기서 돈만 많아지면 그만 변해지지만 그거 우리 소망 아니오. 아들딸이 서울대학에 나와 가지고 뭐 무슨 벼슬 무슨 벼슬 하면 변해. 그까짓 거 우리 소망 아니야. 우리 소망 아니라.

아무리 좋게 변해져도 그거 우리 소망 아니고 아무리 나쁘게 변해져도 그거 우리 절망 아닙니다.

우리 소망은 하나님이오. 우리 절망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려야 내가 절망이지 하나님이 안 버리는데 왜 절망입니까? 그런고로, 피조물로 소망 삼지도 말고 피조물로 절망 삼지도 말고 언제나 하나님 한 분으로 소망 삼고, 하나님 내게 대해서 변치 안하니 나도 하나님께 대해 변치 안하면 세상은 내것이요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요 영원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은 다 그것이 우리의 것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호호 양양하고 든든한 길이 있는데 왜 우리가 이렇게 못나서 오뉴월 파리떼 덤비듯이 이렇게 못나게 천하게 이렇게 흔들리고 요동하고 있는지! 따라합시다.중량 가벼운!자가 되지 말자!중량이! 요동 못 할 만한!무거운 자가 되어지자!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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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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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 하나님과 사람 사랑-계명지킴/ 요한일서 5장 2절-3절/ 1983. 9. 23.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5 하나님과 사람 위하는 방편/ 마태복음 5장 7절/ 1988. 9. 16.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4 하나님과 성도와 관계성/ 호세아 2장 4절-23절/ 1984. 8. 26.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513 하나님과 연결-말씀 묵상으로/ 골로새서 3장 2절-4절/ 1983. 9. 20.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12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 베드로전서 1장 24절-25절/ 1986. 5. 2.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02
511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원인을 찾자/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1987. 5. 8.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10 하나님과 이질적인 요소를 버리라/ 히브리서 11장 6절/ 1981. 1. 6.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509 하나님과 자기와 믿음 생각 할 것/ 요한계시록 3장 18절 상반절/ 1987. 10. 29.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508 하나님과 재물/ 마태복음 6장 24절-34절/ 1989. 6. 16.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07 하나님과 재물/ 마태복음 6장 19절-34절/ 1989. 6. 17. 토새벽 선지자 2016.01.02
506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 출애굽기 12장 13절-14절/ 1979. 11. 23.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505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라/ 창세기 6장 1절∼14절/ 1981. 1. 28. 수저녁 선지자 2016.01.02
504 하나님께 가까울 수록 거룩하라/ 민수기 20장 2절-13절/ 1983. 6. 25. 토새벽 선지자 2016.01.02
503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면/ 요한복음 14장 1절-3절/ 1981. 3. 27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502 하나님께 감동 주는 사람/ 히브리서 11장 1절-3절/ 1985. 9. 15.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02
501 하나님께 구하라/ 야고보서 4장 1절-3절/ 1984. 5. 21.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500 하나님께 대해서 노력할 것/ 로마서 6장 23절/ 1985. 11. 8.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499 하나님께 받는 방편/ 요한계시록 3장 8절∼12절 상반절/ 1987. 4. 16.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98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마태복음 13장 3절-9절/ 1984. 4. 1.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 하나님께 주권이 있음을 믿고 계명생활/ 다니엘 6장 1절∼27절/ 1987. 3. 15.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