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아는 것

 

1988. 3. 10. 목새벽

 

본문 : 시편 91편 14절-1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이 14절은 믿는 사람들이 대개는 외우고 있는 요절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여기에는, 저희라는 말은 복수의 말이요, 여러 숫자를 말할 때 저희라 말하고  ‘저가’ 할 때에는 단수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는 것도 이것은  개적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공동체요 단체의 것이 있는데 단체의 것은 하나 둘이 잘해도 그 단체가  나쁘면 다 나쁜 것으로 그렇게 계산 대고. 또 여간 하나 둘이 좀 잘못됨이  있어도 그 단체가 다 잘하면 잘한 것으로 그렇게 인정을 하는 것이지마는.

 여기에는 ‘저가 내 이름을’ ‘저가’ 하는 것도 단수요 ‘내가’ 하는 것도  단수입니다. 하나님도 삼위일체이지마는 삼위일체에 어느 성부 성자 그걸 말하지  안하고 삼위일체이면서 일체이신 하나님, 하나님 전부를 총칭해서 여기에는  ‘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그러면 성부를 사랑한즉, 성자를 사랑한즉. 성령을  사랑한즉이 아니고, 성부, 성자, 성령 삼이라는 복수로 하지 안하고 단수로  ‘나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기에 복수 아니고 단수라는 데 대해서 우리는  주의를 가져야 됩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이나 사는 데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문제인고 하니 빠져 내려가는 것, 빠져 내려가는 문제가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올라가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은 이거 더 불행에 빠졌다. 작년보다 금년은 훨씬 더 빠져  내려갔다. 또 작년보다 금년은 솟아 올라갔다. 그러면 빠져 내려가느냐  올라가느냐? 건진다 말은 내려가는 데서 건져서 올린다 말이고 높인다 말은 저를  점점 높여 올린다 그말입니다.

 사람은 무엇에든지 안 망할라고 애쓰는 것과 또 자기가 성공될라고 애쓰는 것,  안 망할라고 애쓰는 것 성공할라고 애쓰는 것 그 두 가지. 다시 말하면 안  죽을라고 애쓰는 것이요 살라고 애쓰는 것 두 가지뿐이라. 모든 사람의 생활은  이 두 가지뿐이라.

 이 두 가지를 여기에 나타내서, 건진다는 것은 궁지에 빠진 데에서 건진다  말이오. 병에 빠진 데서 건진다. 실패에 빠진 데서 건진다. 죄악에서 건진다,  환난에서 건진다, 점점 그 사람의 가치가 흉하게 되고 천하게 되는 거기에서  건진다. 이걸 하나 여기에 말씀했고,  높인다는 것은 정반대로 그 사람이 소원하는 그 모든 면으로 높아진다, 커진다,  영광스러워진다, 권위 있어진다 하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여기에 높인다고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여기 ‘하나님이’ 하는 것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이렇게 단수로 해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가 가라사대’ ‘성령이 가라사대가 아니고 ‘하나님이 가라사대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사람이 땅 위에서 모든 면으로 빠져 내려가는 거기에서 구출되는 것은 방편이  하나뿐이라.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뿐이라. 사람이 내려가지 안하는 방편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 하나뿐이라. 사람이 천해지지 안하도록 하는 방편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 하나뿐이라. 사람이 무가치하게 되지 않도록 하는 방편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 하나뿐이라.

 그 사람의 사업이 점점 내려가지 않도록, 그 사업이 어제보다 내려가지 않도록,  작년보다 내려가지 않도록, 젊을 때보다 내려가지 않도록, 시작했을 때보다 지금  내려가지 않도록 모든 면에 내려가지 않도록, 망하지 않도록, 전보다 못하지  않도록 하는 방편은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 하나뿐이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는 건 어떤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범위가 넓어서 간추려 말하기가 어려운데 성경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방편이 어떠했는가 하는 거기에다 집결돼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전에도 많이 공부했거니와 많이 들어도 이해 못 하는 사람은, 귀넘어 듣는  사람은 이해를 못 합니다.

 목사라고 이해하는 게 아니오. 목사 중에도 이해를 못 하기 때문에 자멸하는  일을 합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어서 우리를 모든 죄와 멸망에서 구출하셨다’이랬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는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그 뭐 젖먹이 그것이 뭐 부모를  사랑하겠습니까? 그러나 부모는 세 살 먹는 아이가 부모 사랑하는 것보다 바로  낳아 놓은 갓 낳아 놓은 그것이 부모를 사랑하는 사랑이 더 뜨겁고 큽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도 또 그를 더 사랑합니다. 그러면 그런 것이 부모를  사랑한다는 것은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는 것은 갓 낳아 놓은 것과 한 살 먹은 것과 비교하면은 갓난  것이 부모의 사랑을 더 잘 받습니다. 또 열 살 먹은 것보다는 한 살 먹는 게 더  잘 받습니다. 또 한 스무 살 먹으면 대학교나 들어갈 정도고 아주 강건할 때니까  그때에 부모의 사랑을 잘 받을 줄 알아도 열 살 먹는 아이만치 부모의 사랑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약자가 강자를 사랑하는 것, 밑에 자가 위에 자를 사랑하는 것. 작은  자가 큰 자를 사랑하는 것은 큰 자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그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해가 됩니까? 이게 이해가 안 되면, 왜? 땅에 있는 이  이치와는 정반대기 때문에, 땅에 있는 이치와는 반대기 때문에 인간들이 세상에  있는 학문을 자꾸 공부하면은 더 멀어지고 잘 모르게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지극히 크신 분이기 때문에 이분을 인간이 어멓게 사랑할  것인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사랑할 것은, 하나님이 지극히 크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이신 데 이분을 사랑하는 것은 이분의 사랑을 받는 것 외에는 이분을  사랑하는 길이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는 것은 이것을 모르면 사랑한다는 것이 도리어 육적으로 사랑하는  것, 인간들이 사랑하는 것, 아내가 남편 사랑하고 남편이 아내 사랑하는 것 같은  이 땅에 사랑의 법칙을 가지고서 이 사랑의 법칙인 줄 알고 하면은 도리어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 주셨고 독생자로써 죄사함을 주셨고 의롭게 해 주셨고  하나님과 화친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사활의 대속을 해 주신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기 때문에 이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잘  받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칙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사람이 빠져 들어가지 않는 것이라. 낮아지지 않는 것이라.

천해지지 않는 것이라. 그러면 천해지는 것은 예수님으로 전부삼지 안하고  자기로 자기를 전부 삼는 것이 천해지는 유일한 방법이라. 사랑하는 것은  주님으로 자기 전부를 삼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라.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을 자기의 전부로 삼지 안하고 자기를 자기의 전부로 삼아서 하는, 해와가  하나님을 미워하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서 해와도 하나님을 미워하게  됐습니다.

 왜? 이제는 제가 저 일을 책임지고 제가 자기를 영화롭게 존귀케 하나님 될라고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요, 그라기 전에 하나님으로 전부로 삼아서  그분 외에는 아무토 생각할 이도 없고 바라볼 이도 없고 의지할 이도 없고 믿을  이도 없고 순종할 이도 없는 하나님으로 선부를 삼을 그때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타락을 했기 때문에 이제 타락 전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와 타락 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다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이 뭣 때문에  죽으셨으며 뭣 때문에 부활하셨는가? 주님의 사활의이 구속을 자기가 잘 받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이 궁지에 빠지지 안하고 내려가지 안하고 망하지 안하고 어제보다  오늘 천해지지 안하는 방편, 젊을 때보다 늙어서 천해지지 안하는 방편, 또 이  세상에 있을 때보다 무궁세계 에 천해지지 안하는 방편 이 방헌은 예수님의  사활의 구속을 받는 이 외에는 방편이 없다, 이것만이 유일한 방편이다  그말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무슨 이상하고 기이한 그런 방편을 인간들이 원하는 그 인간은  항상 불건전한 신비주의로 이단으로 기울어지고 맙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말씀하신 원리 원칙대로 이대로 나가면 그는 내려가지 않습니다. 젊을 때보다  늙어서,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사람이 껍데기로 볼 때에는 ‘저 사람  어제보다 오늘 못하다’ 하나 그것이 절대 못하지 않고 사람 볼 때에 죄악으로  되어 있는 거짓부리가 하나 깨지니까 죄악으로 되어 있는 그것을 죄악으로 되어  있는 줄모르고 그것도 좋은 줄 알았는데 죄악으로 되어 있는 것, 영원히 멸망할  것으로 되어 있는 그런 걸 자꾸 정리되니까 사람들은 볼 때 저거 망한다하지마는  그게 정리되고.

 그러면, 뭐이 되느냐? 영원히 없어지지 안할 완전한 것으로 자꾸 바꾸어서  수립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원리가, 주님의 사활의 이 대속과 구속을, 대속과 구속. 대속은  대신해서 대속한 것이고 대속을 이것을 바탕으로 해 가지고 점점 대속라 혜택을  입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그것이 구속입니다. 대속과 구속.

 이 사활의 대속과 구속을 자기가 잘 받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안  받는 것이 주님을 사랑치 않는 것이요. 이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주님을 미워하는  것이요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땅 위에서 이 대속을 완전히 버린 자가 누군가? 이거는 불택자요  불신자기 때문에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대로 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미워하는 자는 그 사람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진리입니까? 사랑하는자는 건지니까 미워하는 자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요? 저 학생. 그거 어떻게 해? 사랑하는 자는 건지니까, 물 속서  건지는 것같이 건지니까 미워하는 자는 어떻게 할 것이요? 빠뜨리지? 똑똑히  말해 봐. 알았어? 그러면 알면 좀 대답을 똑똑히하면 남에게 부담을 안 주지,  목사님에게 부담을 안 주지.

 인간이 남에게 마음으로 정신으로 생각으로 태도로 남에게 부담 안줄라 하는 그  사람이 남을 해하지 안하는 사람이라.

 그러니까. 그거 그라면 물을 때에 ‘건지는 것 반대는 빠뜨리는 겁니다’  이라면 다 알고 좋을 것 아니라? 그거 똑똑한가 싶어서 물으니까 겸손해 그래.

겸손해서. 그런 겸손은 다 더러운 놈의 겸손이라 다 내 버려. 그래 고함  질러야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점점 하나님이 들어 올린다, 건 진나, 모든 자기의  불행에서 건진다, 주님을 미워하는 자는 점점 불행에 빠져들어가게 한다.

하나님이 빠져 들어가게 하는데 제까짓 게 어떻게하겠소?  그러면. 하나님이 심술꾼인가? 아니오.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알리기 위해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은 점점 빠져 들어가는 유일한 방편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그 궁지에서 건져 주심을 받는 방편이다.

 요거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돼요. 이거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고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좁아서 그저 며칠만 알고 몇 해만 알지, 당장만  알지 그의 일생을 보지 안하고 모든 면을 보지 안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만 봐. 돈만 보기 때문에 그 사람은 돈이 좀 부가되면  부자되고 좀 좋아지는 줄 알지마는 아니오. 돈 그거 외에 필요한 것이 더 필요한  게 많습니다. 모든 면에서 그거 다 하나님이 다 축복하시고 은혜로 역사해서  모든 면이 다 이렇게 구비하게 전면이 구원돼 나가야됩니다.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높아지는 것, 높아진다 말은 보다 좀 좋아진다 말이오.

어제보다 오늘 좋아지고, 오늘보다 내일 좋아지고, 시작할 때보다 중간이 더  좋고, 중간보다 자꾸 끝이 갈수록 더 좋고 그것을 가리켜서 높인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점점 좋아지는 것, 점점 높아지는 그 방편은 어떤 방편이냐? 그 방편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인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어떤자가 하나님을 오르는 자인가?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애 법칙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신구약 법칙에는 둘뿐인데, 망한다 흥한다 둘뿐인데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이 망한다는 이것은 하나님이 망한다 했기 때문에 이거는 안 망할 수 없고  이거 망한다. 이는 하나님이 잘된다 하기 때문에잘된다.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법칙을 인정하고 그대로 하는 자가 하나님을 아는 자요 신구약 하나님이 주신  법칙을 무시하는 자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분으로 이렇게 인정하고 ‘온나라가 온  세계가 뭐라 한다 해도 아니다. 하나님이 주권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권하시는 데로 붙는 자 있고 하나님 외에 다른 피조물의 무슨 세력에 붙는 자  있고,   온 천하가 날뛰어도 하나님은 동으로 가야산다 온세계는 가야 서로 산다 이렇게  할 때에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동으로 가야  하나님이 산다 했고 온 세상은 서로 가야 산다 하는데 온세상이 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고 참되고 이대로 이루어진다’ 해서 하나님이 동으로  가라 하는 데로 가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신구약 성경 말씀 어기는 것이 점점  멸망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그것이 아무리 사람  보기에는 궁지에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아도 그것이 높아지는 것이라 이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절수는 외우고 항상 우리가 외우고 어데가서 기도한다  할지라도 기도하러 가서 이런 절수를 가지면 한 몇 시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보자’ 자기가 따지고 또 자기가 또 자기의 과거를 살피고 또 자기 현재를  살피고 앞으로 경영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방편을 가지고 경영하는가?  또 하나님을 아는 이 방편을 가지고서 경영하는가? 내가 경영하는 것이,  경영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잊어 버리고 하는 경영은 천이나 만이나  다 멸망입니다. 다 전멸이오. 멸망뿐이지 딴게 없어.

 주님의 대속을 자기가 잘 받으면서 하는 일은 금생 내생 전체가 다 흥왕뿐이야.

알아 들어요? OOO집사, 알아 듣겠어?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안해.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꾸 빠져 들어가는가? 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올라가지 못하는가?  내가 며칠 전에 전화가 왔기 때문에 내가 전화를 해 가지고서 말하기를 ‘그래  나는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 좀 믿는 사람들이 올라가야 될 터인데, 이 궁지에  빠지지 안하고 올라가야 될 터인데 안타깝다. 모든 면으로, 사업적으로도  그러하고 정치적으로도 이거 모두 대통령 될라하는 사람들 있는데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이 방편이 틀렸기 때문에 안되고 있다.’  이러니까, 내가 그분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좀 이 하나님 주신 방편대로 써서  어서 좀 올라가기를 원한다. 이 방편 떠나서 올라가는 법이 없고 이 방편  떠나서는 자기가 안 내려갈 수가 없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아는 그것으로써 자꾸 높아져  언제, OOO장로님의 바로 직속 부하가 있어. 직속 부하가 나한테 한번 찾아왔어.

찾아와 가지고서 말하기 때문에 ‘안 된다’ ‘이번에는 꼭 됩니다.

틀림없습니다.’ ‘안 된다, 단연코 안 된다, 안 된다고 하더라고 말해라.’ 왜?  이 방편이 아니기 때문에 안 돼. 그 방편은 자기의 수단과 방편은 다 치워버리고  하나님으로써만 된다는 요것을 믿고 하나님이 올라가는 방편 그 방편만 쓰면  당장 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아는 행위는 그 사람이 대통령을 세워 놔도, 왕을 세워  놔도, 장관을 세워 놔도 이 두 가지 방편만 하는 사람은 자꾸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올라가고 커질 수밖에 없어. 딴길이 없어요 게 예수 믿는 법이야.

정치가도 그러하고 또 무슨 이 사업가도 그러해요.

 이랬더니마는 그 다음에 한 번 더 만나 가지고 ‘주일을 꼭 지킵니다. 뭐  주일이면 뭘 합니다.’ 뭐이라 하는데 그 뒤에 뭐 주일을 지킨다고 이래 또  말하더니마는. 얼마지나고 나니까 주일날 또 다른 일 또 하더구만요. 그래  하나님을 아는 그 일이 쉬운 줄 압니까? 쉽지 안해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으로서도, 내나 안 믿는 사람으로도  이런 방편입니다. 안 믿는 사람도 이 두 가지 방편을 쓸 때에 그 사람은 자꾸  올라갑니다. 안 믿는 사람도 주님을 모르지마는 주님을 사랑하는 것,   주님이 우리를 구속하신 이 대속해서 구출한 그 구출의 방법에서 자기가 구원을  할라고, 안 믿는 사람이라도. 안 믿는 사람이라도 죄 없이 살라고, 의롭게  살라고, 대주재를 거스리지 안하고 화친으로 살라고 이렇게 애쓰는 사람이 사탕  장사도 잘하고 이 사람이 보따리 장사도 잘하고 이 사람이 직공노릇도 잘하고 이  사람이 동회 서기노릇도 잘하고 시장 노릇도 잘하고 뭐 크나 작으나 이거면 이  잘합니다.

 안 믿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들이 이 세상에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바른  정의의 법칙 그걸 거석해 가지고서 세상에서 그래도 그 사람이 올라가고, 안  믿는 사람이라도 성경을 많이 봅니다. 안 믿어도. 안 믿는 사람도 성경을 믿는  사람보다 많이 보는 사람 많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예수 믿지 안하면서도 성경 말씀을 준해 가지고 ‘예수교 그  성경에’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성현으로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줄 모르고  ‘예수님이라는 그 성현이 이랬는데’ 이래 가지고 그말을 삼가서 조심하는  사람들이 다 위대해집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요것을 외워야 할 것이요.

 한 번 따라 외웁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외워 놓고. 사장은 그날 아침에 들어가서 이 성구 외우고 모든 사원들을  관리하면서 이 성구를 속으로 외우면서 이 성구에 준해서 관리하고 모든 언약을  맺으면서 이 성구를 생각하고 여기에 준해서 언약을 맺으면 절대로 실패는  없습니다. 인간에게 절대를 붙일 수 없으나 여기에는 절대를 붙일 수 있습니다.

이대로 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말씀대로 시행해 주십니다.

 그러고, 어제 아침엔가 내가 말한 대로, 하나님은 제일 분히 여기는게  뭐입니까? 하나님은 제일 분하게 여기시는 게 뭐이요? 하나님의 아내를 자기,  하나님의 신부를 제 신부 만드는 거라. 이래서 야고보서 4장 4절에 말씀해 놨어.

시기한다 해 놓은 그 시기.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사람 만드는 것, 왜? 사람은 뭐인데.? 택한자는 주님의  피로 사활로 구속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명보다 사랑하시는 당신의 신부인데  이를 제것 만드는 것보다 더 분히 여기는 것 없어 인간이 하나님의 것이 돼  가지고 이런 죄 저런 죄 짓는다 해도 그것은 주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그렇지 안해요? 그 아내는 일편 단심 자기 남편이라는 그 남편 그것 밖에는  모르고 행동은 더러워도 그것은 참 짐을 짊어지고 갑니다. 그래도 벌써 간부가  있다 하면은 아무리 행동이 좋아도 그만이야. 성경에 말하기를 그래 놨어.

음행하는 연고 외에는 이혼하지 말아라 했어. 음행하는 연고에는 이혼하라 했어.

주님이 그거 또 당신을 나타내는 것이오. 당신이 제일 미워하시는 건 그거라.

 이러기 때문에, 주님의 신부를 제 신부 만드는 게 뭐이라요? 그거 뭐입니까?  하나님의 양을 제 양 만드는 것, 모든 구속받은 사람을 제사람 만드는 것,  이러니까 권찰일 하면서 주님이 제일 미워하는 그 일하는 자가 있거든. 목사노릇  하면서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는 일을 하는 자가 있거든. 그거 뭐이요? 제것  만드는 자. 이거 기억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아는 것/ 시편 91편 14절-16절/ 1988. 3. 10.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75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편/ 고린도전서 13장 1절-3절/ 1988. 8. 11. 목후집회 선지자 2016.01.02
474 하나님을 사모하고 명령순종/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7. 5. 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473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 시편 91장 14절-16절/ 1980. 11. 5.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472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가라/ 골로새서 1장 10절-17절/ 1975. 9. 28. 제 39과 선지자 2016.01.02
471 하나님을 아는 증표/ 시편 91편14절-16절/ 1988. 8. 5.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470 하나님을 아는 지식/ 로마서 1장 18절-25절/ 1980. 10. 11. 토새벽 선지자 2016.01.02
469 하나님을 아는 지식/ 로마서 1장18절-25절/ 1980. 10. 10. 금저녁 선지자 2016.01.02
468 하나님을 아는 지식/ 로마서 1장 18절-27절/ 1980. 10. 9.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67 하나님을 아는 지식/ 로마서 1장 17절-25절/ 1980. 10. 8. 수새벽 선지자 2016.01.02
466 하나님을 아는 지식/ 로마서 1장 18절-19절/ 1980. 10. 6. 월새벽 선지자 2016.01.02
465 하나님을 아는 지식/ 로마서 1장 18절-25절/ 1980. 10. 5.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2
464 하나님을 아는 지식/ 로마서 1장 18절-25절/ 1980. 10. 5.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463 하나님을 아는 지식/ 로마서 1장 21절-23절/ 1980년 10월 10일 금새벽 선지자 2016.01.02
462 하나님을 제일 기쁘시게 대우하는 것/ 야고보서 5장 13절-17절/ 1988. 8. 2. 화새벽 선지자 2016.01.02
461 하나님을 향한 지식/ 사도행전 20장 28절-32절/ 1986. 2.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2
460 하나님을 향한 지식/ 에베소서 1장 3절-14절/ 1986. 1. 29. 수저녁 선지자 2016.01.02
459 하나님을 향한 지식/ 에베소서 1장 3절-6절/ 1986. 1. 30. 목새벽 선지자 2016.01.02
458 하나님을 향한 지식/ 에베소서 1장 3절-14절/ 1986. 2. 12. 수저녁 선지자 2016.01.02
457 하나님을 향한 지식 13 가지-양심/ 에베소서 1장 4절-9절/ 1986. 2. 14. 금저녁 선지자 2016.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