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랑하는 것

 

1980. 11. 5. 수새

 

본문 : 시편 91:14-16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인간은 변하지만 하나님은 태초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 영원토록 변하지  아니하시는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에는 구약시대에 나타나신 주님과 신약시대에 나타나신 주님이 다른 것과  같이 그렇게 보여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나타나신 그 주님 그대로요 또  신약에 나타나신 주님 그대로 입니다.

그러기에 구약의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시라는 것이 나타났고 또 신약에  어떠하신 분 인 것을 나타낸 것은 두 성경에 나타내신 그 하나님이 항상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에 나타나시고 구약에 없는 그 면이 신약에 나타났고 신약에 나타나지  아니하신 그 면이 구약에 나타난 것 뿐이지 다른 하나님이 아니요. 또 우리구원에  필요한 면에 하나님만 나타나신 것이 성령이요 영감이지 이것으로 전부가 아니고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또 무한합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신 이 하나님을 상대할려고 하면 구약에는 어떻게 신약에는  어떻게 상대하여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신 그대로 우리가 상대하여야 합니다.

우리 타락한 사람들은 한없는 궁지에 빠져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죽는날 까지 여기서 벗어날려고 해도 다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뜨기 쉬운 것이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받았지만 받은 이대로 죄에서  완전히 불의에서 완전히, 하나님과 대립된 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이 완전을  이루지 못하고 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하는 이 말씀은 벗어나지 못하고 참  무저갱이라고 할만한 밑이 없는 그 구멍에 빠졌다고 묘사한대로 우리는 여러모로  깊이 빠져 있는 우리들이며 또 수없는 보자기 속에 첩첩이 싸여 있는 우리들이요.

첩첩이 갇혀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 감옥을 벗어나면 그 다음에 또 감옥이 있고  그 다음 벗어나면 또 감옥이 있고 이래서 이 모든 불완전의 감옥에서 차차  벗어서 온전을 향하여 나가기 때문에 이것이 모든 불의를 벗는 것이요.

감옥에서 해방을 받는 것이요. 이것이 이제 하나님과 나와 또 일면으로는 가까워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들을 열고 들어간다" "문들이 열려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불행에서 모든 무지에서 무능에서 모든 부패성에서 이렇게 벗어나는 데에는  주님을 사랑하는 이 방편 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방편 뿐입니다.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그 말은 벗어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사랑은 ! 그 본질이 주는 것이 일반적으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그 본질과 본성이 사랑하게  되면 주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친정어머니가 딸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랑의 본질과 본성이 자꾸만  그 있는 대로는 딸에게 유익을 주려고 노력하는 그것이 그 사랑에 본성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와 같지를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내게 있는 무엇을 당신에게 드릴려고 하는 그런 성격에 사랑은  하지를 못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당신은 완전자시오. 또 그 분이 창조주시오. 그 분은  자존자십니다.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분이 조그만치라도 크지든지 좋아지든지 빛나든지 하는 것  아니요.

아무것으로도 영원히 당신이 그 원인이 되게하십니다. 당신이 모든 것의 원인이  되어서 당신으로 말미아아 모든 것이 되지 털끝만치도 어떤 것으로 말미암아  당신이 어떻게 된다는 그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세상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지 인간은 이 사랑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이 사랑은 참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대로 사랑할  수가 있고 이런 것이기 때문에 전지자가 아니면 이 사랑을 가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전능자가 아니면 가지지를 못합니다. 영원불변자가 아니면 가지지를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가진 사랑은 우리가 가진 사랑은 어제 사랑한 그것이 어떨 때는  오늘 생각하면 사랑한다는 것이 도리어 미움을 가졌습니다.

유익을 주지 못하고 해를 줬다 그 말이요. 전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그것이 바로 알고 바른 사랑이 되지 못했다 이것이요.

전능자가 아니기 때문에 사랑하지만 그에게 유익을 끼쳐줄 수가 없는 무능자기  때문에 그 사랑이 소용없는 사랑이라 그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은 이는 하나님만이 가지는 이 사랑은 전지, 전능, 완전, 영원불변,  무한 이 본질과 본성을 가졌기 때문에 이 사랑은 흠이 없습니다. 그래서 평가적  사랑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비판하고 비판해 봐서 완전에 완전무결의 사랑이라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인간의 사랑은 다 유한한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다 무한한 사랑이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그 사랑을 내가 받는 것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받는 것이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영감을 받아 그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영생을 줄 때에 영생을  받고 완전을 줄 때에 완전을 받고, 전지를 줄 때 전지 받고, 전능 줄 때 전능받고  하나님의 모든 완전한 그 요소를 우리에게 주실 때 그것을 받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행할 때에 그것이 내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뜻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시지만 그것이 내것이 안됩니다.

그러기에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건지리라 인간이 모든 무지 무능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 밖에는 없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길은  뭐이냐?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대로 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무한한 것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 내가 받는 방편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어떻게 사랑하시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때에 당신에 무한하신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무한한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주실 때에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무한하신 것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므로 주실 때에 이것을 내가 물리치지 않고  받으면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한한 것을 나에게 주실 때에 내가 받는 방편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지도할 때에 인도하실 때에 인도하시는 그대로  하면 하나님의 무한하신 것이 내것이 되어집니다.

인도하시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무한하신 것을 주실 때에 그것이  내것이 되지 못하고 내가 그것을 물리치는 것이 됩니다. 또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이랬습니다.

그 15절에 14절 끝에서 말씀했고 "저가 내 이름을 안즉 그 말은 내 이름을 안다"  그 말은 우리 구주이신 예수님을 안다 그 말 아니요.

이름이라고 성경에 말할 때에는 그 이력에 또 그이가 어떤 분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도 그 이름이 높아지는 것은 그의 이력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요.

그 이름이 욕된 것은 그의 이력이 나쁜 것이요. 그 이름이 차차 차차 없어져가는  것은 그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차차 없어져 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인간이 높아지는 것은 건지는 것은  벗어나는 것이고 모든 나쁜 데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높아지는 것은 점점 옳고  좋은 것이 건설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그 말은 저가 나를 안즉 그 말입니다." 내가 어떤 자인  것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아는 그것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 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높아집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15절에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의  간구에 응답하리라" 이런 말이요. 우리가 간구에 응답하는 것도 당신이 어떤 분인  것을 내가 앎으로 간구해야 그 간구에 응답이 되지 앎으로 간구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간구입니다.

요즈음 우리 기도회를 세워놓고 기도하는 데에 하나님의 이름을 앎으로 기도  하나님이 이러한 하나님이요. 이러한 역사를 한 하나님이요. 이런 관계를 가지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간구할 때에 그 간구를 하나님이 들으십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무식한 사람이 모르는 사람이 간구하는 그런 간구를 하나님이  들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들으시면 죄가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기도할 바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로마서 8장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할 것을 어떻게 기도할지 그  구할 바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님이 오셔서 구할 바를 알게 해가지고 그렇게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또 저가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환난 때에 우리를  건져주시는 이 건져주심을 받는 것도 당신의 이름을 알아야 됩니다.

당신이 어떤 분이시며, 나와 어떤 관계를 가지신 분이시며 또 나는 당신으로  말미암아 어떤 자인 것을 이것을 알아야 환난 때에 당신이 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르면 건질 수가 없습니다. 위이ㅔ "저가 내 이름을 안즉" 하는 이 말을  낱낱이 붙이지는 안했지만 그 낱낱이 붙혀야 되는데 쭉 연결된 말이기 때문에 한  번만 머리만 말하고 그 다음은 말 안한 것입니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너희의 기도에 응답하고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환난에서 저를 건져내고, 또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영화롭게 하리라 16절에 "내가 장수함으로" 저가 아는대로 내가 장수하므로 이것도 그 이름을  안즉 하나님의 영원하심이 그에게 효력이 납니다. 알아야 되지 알고 상대해야지,  모르고 상대하면 소용없습니다.

"내가 장수함으로" 그 말은 저가 아는대로 하나님이 장수합니다. 저가 아는대로  하나님이 영문이 계시지 저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삐뚤어지게 알고 있는 그런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요, 가짜이기 때문에 장수도 아니고 존재도 아니고 그  때는 귀신만 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않고 삐뚤어지게 알고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상대하면 마귀귀신이 상대해 주지 하나님은 상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는 것만큼 하나님이 상대가 되고 효력이 나고 또 아는 것만큼  그 바로 구하고 바른 결과가 맺어지지 하나님이 하나님을 무슨 중들이  부처알듯이 미신자들이 자기 조상알듯이 이렇게 알고 하면 그것은 마귀가 그  마귀를 청하는 것이고, 마귀라는 것이지 마귀가 와서 상대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상대를 못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을 만일 참 비유컨대 만분지 일을 알았으면 만분지 일만  하나님이 그에게 상대해 주지 모르는 면은 그 분이 하나님을 바로 상대치 못하고  하나님이 상대해 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해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것만큼 세상에서도 효력을  주고 또 영원히 효력을 주고 또 충만한 효력을 주고 또 나에게 구원으로  보이도다 하시도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이 구원을 다 그에게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이 사랑하시는 것인가? 이 방편만이  우리가 벗어날 수 있소. 모든 불행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는 이 길은 다른 길은  아무것도 없고, 벗어날 수 있는 이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 길 밖에 없소.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길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처럼  그런 방편을 쓰면 안된다 이것이요. 인간은 사랑하면 제가 그 분을 사랑하고  위해서 무엇을 수고르 하고 이렇게 주고 대접하고 뭐 이렇게 하지를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을 하나님에게 드려서 뭐 대접이 되고 좋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 말이요.

근본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만든 것이요. 이런데 내 것이 없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끼리 사랑하는 것과 다릅니다. 인간끼리 사랑하는  것과 같은 그런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려고 하면 안 돼. 하나님의 사랑은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 때 그 사랑을 내가 받아들이는 것이 그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것이 받아들이는 것이냐? 그 분이 시키시는대로  하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의 사랑이 무엇인데 그의 완전을  나에게 주시고, 완전을 나에게 주시고, 전지를 나에게 주시고, 전능을 나에게  주시는데 그것을 주실 때 내가 받는 것이 그 사랑을 내가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완전이 무엇인데.

완전이 나를 시키실 때에 시키시는 그것이 완전이요. 시키시는대로 하면 그만큼  완전이 됐어 그만큼은 전지가 됐어. 나는 무지하지만 전지한 지혜가 이렇게  하라고 할 때에 그 지혜를 내가 그대로 써서 순종하면 그 지혜를 내가 긍정해서  그 지혜를 내가 그렇게 알고 그렇게 행할 것으로 그 지혜를 내가 내 지혜로  삼았을 때에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가 내 지혜가 되었고, 그대로 내가 실행을 할  때에 내가 모자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전능으로 채워 주셔서 했기 때문에 그  능력이 내게 왔던 것은 다시 돌아가지 안해요 내게 능력이 한 번 왔으면 내가 그  능력 한 번 썼으면 그 능력은 내 능력이 됩니다.

그 지혜를 한 번 썼으면 내 지혜가 됩니다.

그러면 한 번 썻으면 한 번 쓴 그 현실은 그 전투는 끝나버렸습니다. 승리로  끝나버렸소.

그러기 때문에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내가 간구에 저가 내  이름을 알기 때문에 알고 기도하기 때문에 내가 기도에 응답을 해준다 내 이름을  알기 때문에 내가 환난때에 저를 구원하겠다 구원한다. 구원이 된다 그 말이요.

저가 내 이름을 알기 때문에 내가 영원히 장수로 영원히 저와 이 관계에 효력이  있다. 저가 나를 앎으로 저가 만족히 된다. 그러면 인간이 영원만족, 또 환난이  그에게 헤치는 환난이 왔고 환난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만들수 있는 이 환난이  되어지는 것.

또 하나님앞에 무엇이든지 구할 때에 다 응답이 되어지는 것, 이것이 당신을  앎으로 되는 것입니다.

에녹도 노아도 아브라함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을 앎으로  하나님을 상대해사는 그것이 동행입니다. 이것이 동행이요. 이것이 하나님과  교제요. 이것이 기도요.

그러기 때문에 어제 아침에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시며, 또 나와에 관계가  어떻게 되어 있는 분이시며, 앞으로 어떤 관계를 가지실 분이시라 그 삼중으로  우리가 증거를 받았습니다.

나도 그와 상관없을 때에는 어떤 자로 있었던가 목적안에서 났습니다.

어떤 자로 있었던가 이제 그 분과 상관이 된 후에 내가 어떤 자 된 것, 또 앞으로  그 분과 상관을 가지므로 어떤 자가 될 것 자기에게 대해서 이 삼중으로 알아야  하는 것을 말을 했고 또 세상이 세상 곧 현실에 내 현실, 내 세상, 내 현실이 내  세상인데 내 현실이 과거적으로는 어떤 연결이 되어있는 세상이며, 미래적으로는  어떤 연결을 가질 내 현실이라는 이것을 아는 것이 세상을 아는 자요. 자기를  아는 자요. 하나님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면 이 셋은 아는 지식이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안것만큼 자기를 바로 알게 된 것이요. 하나님과 자기를 안 것만큼 자기  현실을 그만큼 바로 아는 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이 세지식 이 삼각지식은  완전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입니다. 이것이 자기 구원이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

그런데 전부 자기 주관대로 그만 자기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비유컨대 털 하나  하나님의 털 하나 알았으면털 하나 안 것 그것 가지고 날뛰면서 그것이면 다  안줄로 압니다.

그것이면 다 인줄 알고 그면만 가지고 날뛰어야 그것 안 것만큼 구원이 되지지  그 나머지는 구원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이는 신구약성경이 가르쳐주시고 영감이 가르쳐 주시고 또 그 다음에  이 물리라는 모든 만물, 만물..... 인간이 암만 안다해도 하나님의 섭리는 몰라.

하나님의 창조, 하나님의 섭리 모든 만물중에도 인간들의 마음이. 마음이 이렇게  저렇게 저렇게 이렇게 하는 그것 거기서 가르쳐 준다 이것이요.

뭐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삐죽 삐꿉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이요. 하나님도  그렇소. 참 당신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조그만 하면 획 돌아갑니다. 어떻게  민감하고 다정다감한지 민감한지.

이래서 술람미 여인이 아가서에 보면 주님을 어디에다 비했는고 하니 노루  사슴같다 했소 노루와 사슴! 노루는 모르는 분은 모를꺼요. 사슴도 모르는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여기는  사슴은 귀하지만 농촌은 노루는 많이 있는데 노루는 저 보면 어디( 소는 이런 돌  하나 던지면 풀을 먹고 있는데 돌 던져야 툭하거나 말거나 그까짓거 돌아보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바삭 그러면 바짝 눈을 들어 가지고 그만 들고 뜁니다.

얼마나 뛰는가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저 위에까지 당장에 올라가 버리요. 만당에  올라가서는 내려다 봅니다.

참 얼뛰다보면 얼뛰고 잘놀래라면 놀래고 잘 놀랩니다. 아주 잘 놀래요.

하나님을 거기에다 비했어. 노루와 같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에 맞지 않은 것,  비유에 맞지 않는 것, 당신에게 맞지 않는 것이 조그마한 것만 있어도 혹 달아나  버리요. 그면 어디로 가시는지 못 찾아. 당신이 전부를 다 주시고 어디까지든지  동행해서 뭐 피조물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이 당신이 다 나에게 유익되게 해기로  이렇게 다정하게 다감하게. 이래 쎴는데 당신에게 조그만 삐뚤어진 것이 있으면  그만 천리 만리 멀어.

제가 공연히 그 제 주장으로 금방에 있던 하나님이 자기가 지금 같이 있는 줄  알고 주여 주여 하지만 아 주님은 벌써 천리 만리 달아나버렸다 말이요.

이것을 이용도 목사님 책에 보니까 그 분이 이것을 느껴서 그 시대에 교인들은  우리 한국에 초대교인들은 이런 것 못 느꼈어요.

그러니까 법적으로만 와가지고 가르쳤지 그런 그 실지로 영감에서는 살지를  못햇으니까 이용도 목사님은 이단이라고 완전히 정죄를 해서 매장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영감은 매장되지 안했어.

그 분에 책을 볼 때에 내가 한 번 얽어 보니까 다른 책에서 보지 못하는 말이  있어.

무슨 말이 있는고 하니 한 마디는 "영감의 사람은 세상사람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얻어서 기뻐하는 것처럼, 영감의 사람은 한 진리. 하나님의 한 뜻을  깨달음으로 무상에 기쁨을 가져지는 그것이 영감의 사람이라" 이랬소. 그 분이  체험에서 나온 소리입니다. 과연 그렇소 내가 그것을 볼 때에 동감이야. 아멘이라 왜 이 분을 매장했는고.들이 그 때에  교회들이 어두워 그래. 마구 교인들이 찾아들어서 야단을 지기는데 시기를  해가지고 매장을 시켜버렸다 말이요. 이단이라 정죄를 했다 말이요. 그 분의 책에  보니까 또 하나 있어 "주님이 금방 자기와 같이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금방  자기가 조금 생각 하나 잘못하다가 보니까 아무리 찾아도 없어 주님 어디  가셨는가 없어." 주님이 안 계신다고 찾아다 헤메다 보니까 내나 자기안에 계신다 말이요. 이렇게  주님은 민감하신 주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주님에게 거리낀 것을 꾹 가지고도 주님을 상대한다는 것은 자기  주관으로 상대하는 것이요. 자기 주관으로 상대하는 것이지. 주관이고 그것이  습성이고 버릇이지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그런 역사는 일어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이 돌아가입시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희의 기도에 응답을 하리라. 환난 때에 저를 구원하리라. 영원히 구원하고  만족케 하리라 이러므로 세상에게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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