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호


선지자선교회 1989년 8월 10일 목전집회 

 

본문 : 계2:12-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우리가 첫 시간에 배운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사활의 대속이라고  하면 무슨 말인고 하니 사 자는 죽을 사(死)자요 활 자는 살아날 활(活)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 역사는, 하나님이시면서 그와 같이 하신 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말할 때에 사활의 대속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이 구원을 담은 하나님의 복음 전도를 듣고 예수 믿기  시작해 가지고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 하셔서 이렇게 사활의  대속을 하신 그 사랑을 깨닫고 자기도 비로소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고, 의에  대한 깨달음이 있고, 하나님에 대한 깨달음도 있고 소망에 대한 깨달음도 있어서  아무것이나따나 소망하는 것이 죄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소망해서 살아아 되겠다  하는 이것을 깨닫고 신앙 생활을 시작할 때에 그때 행위는 주님이  기뻐하셨습니다. 기뻐하셨으나 이 행위하는 일에 주력하다 보니까 그만 그 원인인  주님의 사활의 대속의 사랑과 공로는 잊어버리고 다만 자기네들이 이 사활의  공로로 인해서 행동한 그 행동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하다 보니까 그것만 자꾸  강조하고 거게만 주력하고 이렇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의 지극히 큰 사랑과  소망에 대해서는 흐미해지고 잊어버리게 됐습니다.

 사람이 신앙 생활 하다가 보면 신앙 생활의 원인이 되는 사활의 주님은  잊어버리고 대속의 감사도 잊어버리고 신앙 행위만 하는 데로 기울어져서 나중에  주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일만 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그것을  노해서 책망하셨고 그 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앞으로 옮기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제일 중요한 것이 언제든지 주님의 사활의  대속의 그 사랑과 대속해 주신 그 대속의 네 가지와 또, 대속해 주신 그 네  가지와 주님의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 거게 감동돼 가지고 행동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래서 신앙 행위 하다 보면 나중에 뭐 생명을 내놓다시피 그렇게  충성되게 하던 사람들도 나중에 가서는 그만 주님은 잊어버리고 그 신앙  행위에만 분망하기 쉽다 하는 그것을 가르쳐서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 믿는 사람이 어떤 신앙 행위를 하든지, 순교를 할지라도  순교할 때에 주님의 사활의 대속의 그 사랑의 공로를 깨닫고 그로 인해서 주님의  그 대속이 감사한 감사와 또 주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약속된 지극히 큰  희망, 지극히 큰 소망, 이 구원의 소망 이것을 생각함으로 죽어야 되지 이것은  잊어버리고 지금 제가 무슨 저 사람들은 자꾸 이렇게 하라 하고 나는 또 그래 안  할라 하고 서로 사람과 더불어 이래 대립되는 그런 것을 인해서 자기가 뭐  죽임을 당하든지, 또 자기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전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전하지 못하게 해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해도 나는 생명 바쳐 놓고 복음  전하겠다 하고 복음 전하기를 생명을 바쳐 놓고 복음을 전하고 하면 매두 큰 일  같지만 다 소용이 없다 하는 요것을 꼭 잡아야 됩니다. 이게 제일 증요합니다. 뭐  순교를 해도 주님의 사활의 대속의 그 사랑과 대속으로 말미암아 내가 얻은  구원의 지극히 큰 것, 지극히 큰 소망 이것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순교해도  순생해도 또 자기는 어떤 개혁을 해도 어떻게 복음에 헌신을 해도 무엇을 자기가  바쳐서 이 복음에 일한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 없어. 이거 주님에게는 거리낍니다.

 주님은 창조주시요 엿새 동안에 우주와 영계를 다 창조하신 분인데 그분이 뭐  우리 돈 드리면 제딴에는 돈을 이래 드리니까 이거 내가 이만하면 주님에게  대해서 당당히 나 할 의무는 다 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주님에게 받지 안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주님보다 자기가 먼저 이런 것 저런 걸 경영할 수가 없다 말입니다. 주님이  경영하시고 주님이 작정하신 그것이 사람에게 생각이 되고 또 사람의 경영이  되는 것입니다. 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음을 받겠느뇨 주님이 먼저 주니까  그거 가지고 제가 실컷 쓰다가 깨닫고 '주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로구나. 이것을  주님이 이렇게 사용하라고 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 그런  것이지 주님에게 받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에게 받지 안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주로 말미암았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런데 이 사상과 주의가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그러면 이렇게 알고  이렇게 믿고 이떻게 생각하는 그것을 뒤에 가서는 보고 깨닫고 다 감사하다고  주님의 하시는 일이 과연 그러하다고 다 찬성을 하고 감사를 하고 거기서 이의  달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기독자들은 크고 작은 일 어떤 일을 해도, 크고 작은 어떤  일을 했다 할지라도 주님이 나를 대속하신 사활의 대속의 그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의 마음으로서 하지 안하고 또 '이렇게 대속 했으니 우리에게는 지극히 큰  소망이 생겨졌다' 이 소망을 생각하고 소망을 하면서 하지 안하면 아무 소용  없다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뭐 연보나 많이 하고, 또 전도나 많이 하고, 심방이나 많이 하고 또 진리  운동이라고 뭐 개혁 운동이나 많이 하고, 또 신학교서 성경이나 가르치고,  돌아다니면서 집회나 많이 하고, 또 복음을 막는 적진 속에 들어가서 생명을  내놓고 이 복음을 전하고 하면 그 일이 큰 일인 줄로 알지만 그것은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잊어버리면 아무 가치 없습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자, 일 분 동안에 다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이고  믿도록 못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일 분만, 뇌성벽력만 한다 해도 일 분만 되게  강하게 하면 다 오그라질 것이오. 다 오그라지고 다 기절해. 그때 '나를 믿어야  산다' 하면 막 전부 쫙 그러지 뭐 힘들일 게 뭐 있어? 다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자기가 깨닫고 실감으로 느껴서 앞으로 그분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든든히 여겨서 그분만을 바라고 그분에게 맡기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에게 지도받고 그분과 의논하고 그분 한 분만을 바라보는 이것을  당신이 목적해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에게나 만물에게 다 이것이 하나님  목적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 생활을 이렇게 하다가 보면 그만  나중에 주님의 대속을 잊어버리고 자기 일한 것만 생각하기가 쉽다 그말입니다.

 이래서 겨자씨 비유에도 보면 '양을 먹이든지 밭을 갈든지 하다 돌아오면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주인의 먹을 것을, 대접할 걸 준비해 가지고 먹고 마실 때  수종들고 나서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자기  행위한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생각하고 주님을 대접하지 안하고, 생각하고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사활의 대속을 하셨으니 내 이 한 것이야 그까짓 가치가  뭐 있나? 무익한 종이라. 나 할 것을 한 것뿐이라.' 이렇게 결론이 안 되면 다  주님에게는 무익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은 모든 일을 하는 것보다 당신의 사활의 대속의 이 사랑을  감사하는 것이 그뭐 일생 동안 자기가 노력하는 것보다 낫옵니다. 또 감사하는 것  다음에는 '주님이 이렇게까지 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지극히 큰 희망을 소망을  줬기 때문에 그 소망을 자기가 확실히 믿으며 소망을 바라보면서 그 소망을 받아  가질라고 애를 쓰는 이것이 둘째로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순생 순교해  봤자 이거 버리면 주님은 책망하고 노여워하십니다. 꼭 요걸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자기가 알기에 좀 의롭고 가치 있는 생활 주를 위한 생활을 하다가 보면  그만 그것만 크게 여기고 주님의 대속을 잊어버리면 '오히려 주님 앞에 내가 이거  너무 지내치게 섬겼다, 너무 지내치게 주님을 기쁘시게 했다.' 이래 가지고  교만해지고 또 자기 해 놓은 것만 보인다 말이오. 자기 해 놓은 것만 보이고  주님이 하신 것은 보이지 않는 그것을 주님이 매우 섭섭해 하셔. 대단히 섭섭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 서머나 교회는 사대관이 주님과 같았는데 이 사대관을 자기가 실행할라고  하면온 세상과 필연적으로 적이 됩니다. 안 맞습니다. 그 사람은 당장 이 시간만  보고 이 시간에 좋도록만 할라 하는데 믿는 사람은 영원 무궁을 계산해 가지고  영원 무궁에 좋은 것을 할라 하니까 그거 맞을 리가 있습니까? 시간관이  다르니까 안 되지 생사관이 그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는 것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우리는 사는 걸 사는 거라 하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 나 가지고  살면서 하루 살고 이틀 살면 천하 박사들 다 모아 놔도 그런 저딴에는 사는 것인  줄압니다. 자, 천하에 있는 모든 학자들, 모든 정치가들, 위인들 다 주 모아 놔도  제가 밥먹고 하루 이틀 지내니까 그걸 사는 것인 줄 알지 그것을 죽는 것인 줄  모른다 그 말이오. 우리는 그것이 죽는 것인 줄을 압니다.

 죽는 것인 줄 알고 사는 것은 뭐이 사는 것입니까? 사는 거는 한 가지뿐이라.

 그거 다, 밥먹고 뭐 옷입고 고기 밥 잘 먹고 이렇게 사는 것은 다 죽는 것이라  자꾸 잘 죽고 있다, 죽는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거는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사는 방법이 다르니까 예수 믿는 사람의 사는 방법은 이렇게 하는데 그 사람들의  사는 방법은 저렇게 하니까 정반대라 그거요.

 믿는 사람의 사는 방법은 뭐입니까? 사활의 대속 이것이 사는 방법입니다. 사는  방법인데 사활의 대속을 그렇게 사죄로 칭의로 화친으로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살라 하면 이 세상 일이 낭파가 돼요 안 돼요? 그거 살라 하면 세상적으로는  죽는 일이라 말이요, 다. 죽어지는 손해가는 일이라. 이러니까 그 사람들과  생사관이 틀렸지 고락관이 틀렸지 또 빈부관이 틀리고 이러니까 그들과 대립이  될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가 핍박을 합니까? 제일 가까운 사람이 핍박합니다.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핍박합니다. 아마 아버지 어머니가 제일 핍박을 할 것이오. 알뜰히  공부시켜 놓은 선생이면 선생님이 핍박할 것이라. 왜? 그거는 저거 생각은 이래야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살라고 죽자껏 힘을 썼는데 자꾸 자살 행위를 해  나가니까 애가 터질 것 아닙니까? 자살 행위 하면 부모가 제일 애터지지 않겠소?  핍박하는 사람들이 몰라 그렇지 우리를 제일 사랑한 사랑의 도수가 클수록 그  미워함과 핍박함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라는 데에는 우리와 누구가 적이 되느냐 하면 제일 먼저 적이 되는  것은 교회에 잘 믿는다고 하는 거짓부리들, 거짓부리들, 그러니까 사탄의 장로가  많고, 사탄의 왕이 많고, 사탄의 집사가 많고, 사탄의 신학자가 많고 이제 사탄의  일꾼들이 많이 있습니다. 택한 자라도 노릇은 사탄 노릇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거요. 그것을 가리켜서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라 그렇게 말했어.

 그러기에 오늘까지 시대 시대의 교회가 절단나는 것은 다 이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이런 것들 때문에 다 교회가 절단이 났었습니다.

 이래서, 불의의 교권이라 하는 것은, 교권은 있어야 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뜻대로의 교회 권리를 가지지 안한 것은 다 불의의 교권입니다. 교회 권세.

 불의의 교권. 가르치는 권도 되지만 교회 교권. 교회의 권리는 무엇이 교회  권리입니까? 교회 권리는 무엇이 교회 권리요? 자 교회 권리는 목사 권리지. 교회  권리는 목사 권리라. 교회 실력은 목사 실력이지. 교역자의 권리는 뭐입니까?  교역자의 권리는 뭐이요? 교역자의 권리는 교역자의 권리는 죄를 없애는 것이  교역자의 권리입니다. 죄 없는 게 실력이요 권리는 죄를 없이 하는 것이  권리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도록 이렇게 권유하고 가르치는 것이 권리요  또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그게 권리라. 하나님하고 동행하는 것이  권리라. 또 딴것 바라지 안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게 권리라.

 이런데 교회들이 하나님만 바라지 안하고 전부 세상 것 바랍니다. 세상 것 바래,  교회 가치가, 교회에 부자가 들어오면, 금가락지를 끼고 있는 부자가 들어오면  '하, 이리 오십시오.' 이렇게 이래 존대하지만 돈 없는 사람은 아주 멸시합니다.

 홀대합니다. 이러니까 돈 없는 것이, 자꾸 모두 다 칭찬하고 좋아하고 높이는데  높이는 그것이 새사람 높여 줍니까 옛사람 높여 줍니까? 옛사람 높여 주기  때문에 부모가 알뜰히 돈 벌어 가지고 돈을 이만치 주면 '이만한 돈만 하면 우리  아들이 잘 살겠지. 우리 딸이 잘 예수 믿고 잘 살겠지.' 이랬는데 돈이 많으면  자유가 없습니다.

 저 내수동 교회에 바로 예배당 옆에 붙어 있는 사람이 그때 무슨 장관인데 그  장관 부인이 내수동교회에 잘 나왔었어요. 그 내수동교회를 세우기를 제가  세웠옵니다. 내수동교회를 제가 빈들판에 광장에 가 가지고 천막 쳐 놓고 제가 첫  설교를 하고 이래 가지고 세웠는데 그때 내 식사하기를 여기 OOO목사님 집에  가서 식사했어. OOO목사님은 그때 아무도 모르게 감쪽스레 작은 마누라 데리고  아들 둘인가 서인가 낳고 그래 가지고 살았다 말이오. 자꾸 이래 내가 표시하는  거라. 표시하는데 이 표시하는 것은 나쁘다고 표시하는 게 아니라 좋으라고  표시하는 거라. 여게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모두 알아야지. 알아서 이렇게, 알면  그것으로써 더 좋은 게 있기 때문에 내가 말해.

 그래 가니까, 가서 인제 그래도 인사한다고, 내가 강사로 왔으니까 저녁을 먹고  떡 이래 인사하러 이래 떡 왔는데 그래 내가 물으니까 주일학교 반사 했다 해.

 그래 가지고 내가 그때 가 좀 야단을 쳤어. 야단친 거 O목사님 알아요?  기억납니까? 내가 야단을 쳤어. 그때 그 사람들은 부자고 막 어떻게 큰지 그 집을  보니까 서울서 제일 큰 집이라. 나는 그렇게 억세고 큰 집 못 봤어. 불란서  대사관 맞은 편에 지어 놨는데 아주 큰 집이라. 그때는 그렇게 큰 집이 있지  안했어요. 아주 뭐 부자고 그 큰 회사에 뭐 그때, 그 회사를 그분이 냈어.

 OO회사를 자기가 만들어 냈어요. 이래 놓으니까 얼마나 코가 높습니까? 그래  가지고 그만 야단을 내가 쳤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래 가지고 무슨 벌을  받을라고 그런 행세를 하고 있느냐고. 이래 뭐 야나지게 뭐, 지금은 내가 나이가  늙어서 칼이 무딘가 좀 덜해요. 그때는 뭐 굉장해.

 이랬는데 그 뒤에 내가 삼각산에 집회 갔다 오니까 차를 가지고 왔어. 차를  가지고 와서 그래 꼭 타고 가자 해서 그래 내가 자가용 그때 타고 왔지. 이랬는데  그 좀 있으니까 인제 목사가 됐어. 아주 유명한 목사입니다. 내가 이거 보기에는  서울에 이 목사들 중에서 이거 좀 오해하지 마. 서울에 목사들 중에 제일 굳게 서  가지고 있어. 제일 굳게 서 가지고.

 내가 어디 하다 이랬지? 어? 교역자의 권위에 대해서 말하다가 그리 나갔습니다.

 교역자는 그것만이 우리 권위라요.

 내가 어떤 교회 가 가지고 그분이 뭐 조금 교인들 아는 대로 조금 잘못한 거  하나 있다 말이오. 잘못한 거 있는데 이걸 새워 놓고 그 교인들 앞에서 이거  잘못했다고 단단히 이거 사과를 하라고, 그 앞에서 사과를 하라 해서 '내가  잘못돼서 이거 내가 회개합니다. 잘못됐습니다.' 이라니까 그때는 그 말을 깨닫고  그리 하더니만 뒤에 돌아와 가지고 떡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는 말 안 하고  저거끼리 말하기를 '하, 이거-그때 나는 조사님이라-조사님이 이 교역자를 교인들  앞에서 이렇게 마구 권위와 위신을 깎아 놨으니 이거 참 이래 가지고야 이거  목회할 수가 있는가?' 저거끼리 수근거려. 이 백 조사님은 자꾸 교역자를 교인들  앞에서 위신과 권위를 깎고 그래 가지고 자기 권위만 높이고 이란다고 이렇게  말해.

 그러면 죄지은 걸, 조그매라도 잘못한 걸 교인들에게 자복을 자꾸 하는 그것은  교역자 권위 깨는 겁니까 이제 그거 교역자 권위를 세우는 겁니까? 어떻게  세우는 거라? O목사님, 이해돼요? 어떻게 세우는 거라? 권위 깎는 것이지 뭐  권위 세우는 거라? 교역자 권위는 털끝만치라도 잘못하면 지금 저거는 저는  한번만 그거 그 말 하지만 매일 일은 그거라. 교인들에게, 잘못했으면 '이거  회개해라. 이거 자복해라.' 이제 그 일을 아주 권위 있게 세워 놨으니까 그거  교역자 권위요 뭐이요? 교역자 권위라. 교역자 권위는 죄를 멸하는 것이 교역자  권위요, 의를 건설하는 게 교역자 권위요, 하나님과 동행시키는 게 교역자 권위라.

 그러면 교역자들이 잘못했을 때 그것을 자꾸 교인들에게 막 자복을 하고  교역자는 잘못해도 '교역자가 잘못했지만 교역자가 잘못한 거 그거야 상관이  있느냐? 그런 그저 생각하지 안해야 된다.' 이게 권위 있는 건가 교역자가 잘못된  걸 그것을 잘못됐다고 하면 교역자 권위가 올라가는가? 교역자 잘못된 걸, 잘못된  걸 '엎드려 절해라. 잘못했으니까 교인들 앞에 코가 땅에 대이구로 뭐 최경례로  절을 해라.' 그렇게, 잘못된 것에 대해서 그렇게 하라 하면 그게 교역자 권위,  그냥 묵인해 두는 게 교역자 권위를 세우는 것이요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라고 하는 것이 교역자 권위를 세우는 것이요? 뭐이지? 어때? OOO 목사님  어때? 그게, 그게 권위 세우는 거라? 그러니까 잘못했으면 잘못한 거 자복하고  대중에게 자복하고 절대 잘못한 거는 그만 아주 그만 똥같이 그만 이래 천하게  멸시당하는 그렇게 하는 그것이 내나 교역자가 그 사람이기 때문에 교역자 권위  세워 주는 거라. 교역자는 딴거 권위 세울라 하면 안 돼. 이래 가지고 이거는 뭐  말만 한 마디 해도 교역자 권위 거석한다고. 또 뭣을 대중 앞에서 말만 한 마디  해도 삐꿔 돌아가지 이거는, 자, 잘못된 거 그거 박살내는 것이 교역자 돕는  일이요 교역자 하는 일을 박살내는 것이요? 어? 잘못된 그런 것을 막 박살을  내는 그것이, 죄를 짓는 걸 박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안한 것을  박살내는 것이 그게 교역자 돕는 일인가 교역자 박살내는 일인가? 돕는 일.

조그마치라도 옳은 걸 했을 때에는 마구 칭찬을 하고 옳은 거 하늘까지  높여재끼는 그게 교역자, 교인들에게 증거해 옳은 걸 높여재끼는 그것은 교역자를  까뭉캐는 건가 높이는 건가? 그거는 까뭉캐는 거 아니고 높이는 거라. 교역자는,  교역자는 무죄와 한덩어리요, 의와 한덩어리요, 하나님과 동행과 한덩어리요  하나님만을 소망하는 것으로 한덩어리라.

 이러면, 이 교회가 이 일 하는 거는 이런 하나님을 소망하는 게 아니고 땅의  것을 믿었다. 세상 걸 믿고 의지했다.' 한다고 그것을 야단을 쳤으면 그 교회를  사랑한 것입니까 그 교회를 욕한 것입니까? 이거 정꺼꾸로 좀 들어 알 줄 알아야  돼.

 사랑한 것이라. 땅의 것만 바라고 하나님은 바라보지 안했다고 그렇게, 바라보지  안한 거 야단친 것은 하나님을 자 교회에서 하나님 외에 바라보는 그것을 숭상을  해야 됩니까 완전히 콩가루를 만들어 바짝 뿌숴 버려야 됩니까? 바짝 부숴야 돼.

 그런데, 이 사대관을 가지고 이렇게 살라고 하니까 거게 핍박하고 훼방하고  핍박하는 것이 몇 가지라고 했습니까? 사대관을 주님과 같이 해 가지고 이렇게  같은 생활 할라 하니까 핍박하는 것이 몇 종류가 있다 했습니까? 세 종류인데  하나는 뭐이요? 자칭 유대인. 하나는? 사탄은 뭐이라고? 예? 세상 권력가, 세상  잘난 사람, 돈 많은 사람, 지식 많은 사람 똑똑한 사람, 언변 좋은 사람, 활동  운동성 많은 사람 그런 사람을 사탄이라 했어. 요걸 왜 내가 하느냐 하면 이제 그  말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그자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인데 '그거 또 어만 또  엉뚱한 소리 한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는 내나 그거하고 그거하고는 한통입니다.

 교회에 세상 권세가지고 교회 와 가지고 이제 권위 부리는 그것은 내나  껍데기는 교회에 있는 거고 저거는 세상 것이지만 세상에 있는 권세하고 둘이  형제간입니다. 하나요. 몸뚱이는 하나입니다. 몸뚱이는 하나인것을 우리가 봐야  돼요. 이러니까, 이것 때문에 다 사대관을 이걸 주님과 같은 사대관 신앙 생활을  하다가 그만 이런 데에 거리끼니까 못 견뎌서 포기해 버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옥에도 가두고 뚜드려 패기도 하고 뭐 쫓아내기도 하고 이렇게  또 이혼도 하고 뭐 어짜고 야단도 나고 이렇게 하는 것이 그게 그게 뭐라고  했습니까? 그게 뭐입니까? 그게 뭐이요? 그게 시험이라. 무슨 시험인고? 사대관  시험이라. 그런데 그 시험을 누가 치르요? 주님이 치르요. 그러면 그 시험은  무기한이고 무제한인가요? 한정이 딱 돼 가지고 있어. 열흘 동안. 한정 딱 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 잘하면 말이지요, 이 사대관을, 주님과 일치된 사대관  생활을 그것을 어떤 그 주위 환경에서 대립해도 거기에 피동되지 안하고 거게  정복당하지 안하고 그것을 끝까지 그렇게 사대교 그 승리해 사는 그 생활, 시간관  생사관 고락관 빈부관 그것을 성경 말씀대로의 그대로 이 생활을 계속해 하면  핍박당하고 또 핍박당해도 놓지 안하고 계속하면온 뭐 줘요?, 너 뭐 줘? 생명의  면류관 줘요. 생명의 면류관.

 자, 우리 사람으로서 그보다 더 좋은 거 있습니까? 생명의 면류관 보다 더 좋은  거 있어요? 없어요.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일으키도록 그 모든 자본을 다  만들어,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도록 그렇게 그 자본을 우리에게 준 이는  누굽니까? 주님의 사활의 대속이라. 그러니까 뭐 쉬운 것 해 가지고 뒤에 큰 것  얻습니다.

 버가모 교회에는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주님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니까  버가모 교회는, 좌우에 날선 검은 다 배웠지요? 좌우에 날선 검, 좌우에 날선  검이라면 이리도 날이고 이리도 날이고 이래도 찔리고 이래도 찔리고 이래  이러니까 뭐 척척 끊으면 끊기고 잡아째고 또 구멍을 뚫고 얼마나 날카로운  칼인지? 이 칼을 가지신 이가 나타났으니까 이 버가모 교회는 뭐이 있는 겁니까?  끊을 거 있고, 쪼갤 것 있고, 삦을 것 있고, 깎을 것 있고, 구멍 뚫을 것 있고 이런  잡탱이들이 많다 그 말이오. 그래서 이거 버가모 교회는 이런 주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나타나셨는데 그 버가모 교회에, 버가모 교회는 어떤 데 있느냐 하면 사탄의  위가 있는 곳에 있는 것인데, 사탄의 위라는 것은 보이는 걸 말합니까 보이지  않는 걸 말합니까? 보이는 걸 말합니까 보이지 않는 걸 말합니까? 보이는 것  말합니다. 보이는 걸 말해요. 사탄의 위가 있다 말은, 위가 있다 말은 무슨  말입니까? 사탄의 형체가 거게 거하고 있다, 거게 주재하고 있다, 거게 머물고  있다, 살고 있다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여러분들 만일 앞으로 단군신사니 뭐 이순신 무슨 기념관이니 단군 기념관이니  이렇게 집을 지어 놓고 거게다가 여러분들 절하라 하면 어떻게 돼요? 절을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뭐라 하고 안 해야 돼요? 우리 나라 이거 다 유공한  선조들이요 그들이 우리 나라를 세워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데 그런 분을  이렇게 섬기고 존경하는 그런 마음이 없으면 돼냐고 이렇게 말하면서 '너는  애국자가 아니다. 우리 나라를 사랑하는 이거는 이거는 우리 나라 백성  아니로구만. 이건 비국민이다.' 이라며 막 웅쳐댑니다. 웅쳐댈 때 뭐라고  대답할라요? '우리 좋은 선조들을 이래 동상 만드는 거, 좋은 선조들을 동상을  만들어 놓고 저런 좋은 선조를 우리가 모셨다. 그 선조들이 이렇게 저렇게 우리를  위해서 참 공로를 베풀었고 수고를 많이 했다 이것을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나도  저를 따라서 그와 같은 충성된 자가 돼야 되겠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해 놨는데  그렇게 공로자들을 우리가 우상으로 그렇게 섬기면, 성경에 보라 우상 섬기면 다  우상도 깨뜨리고 다 우상 섬기면 망한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가 그거 뭐 단군  신사에 뭐 절하는 그거 뭣 때문에 안 하느냐? 하나님을 노엽게 하기 때문에 안  한다. 하나님을 노엽게 하면 단군도 지금 울고 있을 것이고 모든 거기 속한  백성들도 울고 나라도 망할 것이기 때문에 나라 망하는 일을 어떻게 할 수가  있나? 나는 못 하겠다. 나라를 망치는 일을 못 하겠다. 또 나 망하는 일 할 수가  있겠느냐?' 우리 그때 OO교회서 그랄 때 '나 망하는 일 할 수 없다. 나라도 망할  뿐 아니라 내 자신이 망하는 일 어떻게 할 수 있느냐? 그거 우리가 성경에는  이래 가지고 이래 하면 망한다 했는데 성경에 망한다 하기 때문에 나는 안  망할라고 예수 믿고 이라는데 그런 거 해 가지고 우리 자신이 망하면 어떻게 할  것이냐? 누가 자기 망하라 하면 좋을 사람이 누가 있느냐? 자기 망할 일 할  사람이 어디 있느냐? 당신은 합니까?' 이래 놓으니까 할 말이 없다 그 말이오.

바로 깨달으면 어디도 다 바로 말할 수가 있는데 이거 잘못 깨달아 놓으면  공연히 '내가 이거 비국민으로 몰려서, 역적으로 몰려서, 이거 국민 일심 단합되는  데 여기 내가 방해물이 돼서.' 자꾸 엉뚱한 소리 하고 있다 말이오. 요 진리를  바로 깨달으면 큰소리를 해요. 큰소리를 해야 돼요. 안디바가 순교당했는데,  거기서 순교를 당했는데 순교당할 때에 그 때에 순교당할 때 그 순교에, 순교에  동참한 사람, 그 순교에 동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다  있었다 말이오.

 동참해서 승리했어. '안디바가 순교당해 죽임을 당할 때도 너희들이 나를 믿는  믿음을 배반치 아니하였다' 이러니까 다 그 사람들이 다 순교자요 순생자들어라.

 다 순교에 동참한 일을 했다 말이지요. 이러니까 그때로 끝났으면 안디바나 그  사람들이나 승리한 것이 같은 승리입나까 다른 승리입니까? 같은 승리라. 그런데  그 남은 때가 있기 때문에, 다시 그 뒤에 다시 침노할 기회가 있으니까  실패할란지 성공할란지 모르니까 우리 성공의 완전은 어디 있습니까? 우리  성공의 완전은 세상에 있습니까 세상을 마칠때 있습니까? 세상을 마칠 때에 우리  성공은 완성은 거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뭐 다 했습니까? 예수님이 그  옳은 것을 거머쥐고 옳게 나가는데 이제 나가는 거 생명을 저거가 딱 끊었으니까  생명이 있는 동안은 옳은 것만 주장했기 때문에 전부 옳은 것만 주장하는 것으로  영원히 이겨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요거 비밀도 알아야 돼요. 그런데 네게  책망할 것이 두어 가지 있는데 하나는 발람의 교훈이고 하나는 니골라 교훈인데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교훈이 내용이 다르지 안해. 내용이 다르지 안해. 내용이  같애요. 내용은 같은데 처음에는 발람 교훈으로 이와 같이 간판을 쓰고 나왔고,  발람의 간판을 쓰고 나왔고 그 다음에는 또 니골라 간판을 쓰고 나왔고 그  다음에는 또 뭣으로 쓰고 뭣으로 쓰고 나오고 아무리 여러가지로 말이지요,  여러가지로 요런 족도리를 쓰고 저런 족도리를 쓰고, 박첨지 놀음할 때 나는 봤어.

 박첨지 놀음하는 거 보니까 그거 뭐 내나 사람은 그 사람인데 요라니까 수염이  털털하더니만 또 조라니까 빤들빤들하고 조라니까 또 뻑뻑 얽은 사람이 나오고  그거 내나 한 사람이 이런 거 뭐 두터쓰는 거라. 박첨지 놀음 할 때 연극할 때  사람은 그 사람인데, 속은 그 사람인데 껍데기만 자꾸 이런 거 저건 거 바꿔 쓰요.

 그 가발이나 하나 뭐라 하노? 가면? 탈? 그거 탈이 좋다. 탈 말이라. 이런 탈도  저런 탈도 쓰는데 탈은 바꿔져도 사람은 하나라 그 말이오. 요거 알아야 돼요.

 요거 그래서 이래 놨어.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이와 같이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교훈은 같은데 발람 니골라로 요래 됐기 때문에  이제 같은. 같은 성질의 미혹을 이런 것이 미혹하고 저런 것이 미혹하고 여러가지  껍데기만 변했지 속은 꼭 같다 그거요.

 이러니까 저게 이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 이라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라, 이거는  지금 목사라, 이는 장로라, 이는 집사라, 이는 권사라 이는 전도 부인이라. 이렇게  모두 껍데기를 쓰고 이거는 안 믿는 사람, 껍데기 쓰고 나오는데 우리는 껍데기  보고 '그거는 목사인갑다' 껍데기를 보고 판단해야 됩니까 눈을 깜작깜작하면서  '자세히 보자, 그 속이 뭐인고. 보자.' 그 자세히 속을 들여다 봐서 그 이치를  보고 따져야 되니까 껍데기 보고 따져야 됩니까? 보니까 '요거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속에 행동하는 알맹이는 꼭 같구나.

 그 속에 이치는 꼭 같구나. 그거 또 안 믿는 사람하고 이치는 꼭 같구나. 그라면  그것을 믿는 사람으로 봐요 안 믿는 사람으로 봐야 돼요? 안 믿는 사람으로 봐야  돼요. 요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이제 이래 가 놓으면, 이래 놓으면 이제,  여러분들이, 살라고 하면, 죽어야 돼. 생명을 내놔야 살지 그리 안 하면 못 살아요.

 생명을 애끼는 사람은 죄의 종이 되지 안할 수가 없어.

 그래 발람의 교훈인데 발람의 교훈이 뭐인고? 뉘가 발람의 교훈을 잘. 발람의  교훈 그거는 민수기 22장 1절 이하에 쭉 읽어 보면 거기 있어요, 발람의 교훈은.

 발람은 아주 이방 사람인데, 위대한 사람인데 이 발람은 그래도 하나님의  선지로서 하나님께 쓰이는 사람 아주 유력한 사람입니다. 이래서 그분이 말을  하면 그대로 잘하고 하나님하고 서로 대화도 하고 서로 통화도 하고 그래 하는  위대한 사람이라.

 이랬는데 모압 왕 발락이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꾸 점령해 들어오고 자꾸  가나안으로 점령해 들어오니까? 이거 큰일 났다 싶어서 하나 꾀를 낸 것이 발람  선지를 통해 가지고, 발람이 뭐이든지 말하면 되니까 발람이 하나님께 기도해  가지고 그 모든 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저주를 해서 멸망하도록 하고 저거는  강하도록 그렇게 하면, 이제 자기가 자기 나라에 있는 보화 자기 나라에 제일  높은 지위 이런 걸 전부 발람에게 주겠다고 이렇게 발람한테 한번 이거 좀  교섭을 해 봐야 되겠다 해 가시고 교섭을 했어요.

 교섭을 했는데 교섭을 한 번 두 번, 두 번까지 교섭했어. 처음에 교섭할 때에  제가 이스라엘 백성을 아는 건데, 이스라엘 백성은 아는 거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고 이라니까 이거는 틀릴 것이지만 당장 틀렸다고 하지 안하고 속에 뭐  댕기는 게 있다 말이오. 이렇게 이거 돈벌이를 복술의 예물을 이런 돈벌이를 많이  가져와 가지고 돈 이걸 주면서 이걸 지금 말을 하지 또 높은 벼슬 준다고 말하지  이라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는 것이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는 백성이니까  하나님이 싫어하실 줄 번연히 알면서 말하기를 '오늘 저녁에 여기 자거라. 나는  내가 뭐 세상 걸 다 건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가면서 그런 일은 내가 못 한다.

 또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은 내가 하지 못한다.' 아주 뭐 '나를 뭐 돈을 은금을  다 주고 높은 권세를 다 주고 아무리 호강을 시킨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한 마디도 어기지 못한다.' 이렇게 아주 큰소리를 펑펑 쳤어. 큰소리를  치면서도 그 사람들이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의 그런 하나님 백성이요 하나님이  저주하는 저 싫어하는 줄 알고 하나님이 축복하는 백성이니까 그만 '그거 나는  하나님이 축복하는 백성이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하고 딱 끊어  보낼 터인데, 끊어 보낼 터인데 돈 요놈이 욕심이 나 가지고 자꾸 '보내면 돈  요걸 차지 못하고,' 하나님 한테도 걸리지 안하고 돈 요놈을 차지할 수 있는 그런  연구를 했습니다. 돈도 차지하고 하나님께 걸리지도 안하고 그런 것을 연구를  하다 보니까 이제 '여기 밤에 누워 자거라. 여기 누뭐 자면 내가 오늘 저녁에  하나님 앞에 좀 의논해 가지고 하나님이 하라 하면 내가 가겠다. 가지 안 하라  하면 못 가구로 하면 안 가겠다.' 요렇게 딱 밤에 약속을 하고 누워자라 했다  말이오.

 그것이 뭐이냐? 왜 아닌 줄,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라는 그말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알았어. 알았는데 왜 그라면 그날  밤에 누워자라 합니까? 돈에 끌려서, 속에 돈에 끌려서 겉어러기는 '하나님  말씀을 하나도 어기지 못한다. 나는 말씀 대로 행해야 된다. 돈을 암만 줘도  그렇다.' 이 떠들어 쌓아도 자기 속에 깊은 자기는 돈 그놈이 붙들고 있다 그  말이오. 돈 그놈이 붙들고 있어. 그러면 돈 그게 우상이라. 그래 인제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나타나셔 가지고 '네가 그 사람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또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도 하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했다 말이오. 말씀을 했으면  그만 딱 끊을 일인데 이래 떡 말 하기를 '하나님이 이래 놓으니까 나는 내가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니까 안 되겠다. 안 되겠다.' 이라면서 또 슬그머니, 거기 다  기록은 안 돼도 또 사람은 말 안 해도 알아요. 말 안 해도 속에 뜻을 알아요.

저게 무슨 욕심을 내 하는 거 그걸 알고 있다 그 말이오. 보니까 아무빽도 돈에  기미가 끌리는 것이 이거 그렇게 말은 하기는 해도 돈에 벌써 미련이 있고 그  욕심이 팔리고 있는 그것을 이 사람들이 본다 그거요. 그래 저거끼리 가며  돌아가면서 말하기를 '야, 그거 듣기는 듣겠는데. 뭐 하나님 말씀에 호리라도  어겨서는 안 되고 그 말씀대로 한다 이렇게 말은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돈에  대해서 애착심은 있고 미련이 있기는 있더라. 이러니까 돈만 좀 더 많이 가져가면  되겠더라.' 이것들이 가 쑥덕꿍을 했다 말이오. 가 가지고 '이렇고 이렇고 이런데  그래 거기 자라 해서 잤더니만, 잤더니만 자고 나서 하나님이 가지 말라 한다고  그래 해서 우리가 할 수 없이 돌아왔습니다.' 이 왕이 또 왕이니까 점을 친다  말이오. 가만히 점을 쳐 보니까 '그라면 이스라엘 백성은,' 본인이 아는 사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는 선지라 말이오. 이스라엘을 아는 선지인데 대번 딱 떼지  안하고 딱 거절하지 안하고 '자, 여기 누워 자거라. 오늘 저녁에 자 보면 하나님이  뭐라 할란지 보자.' 요 말을 들어 보니까 벌써 거게 하나 기미가 있고 희망성이  있다 그 말이오. 희망성이 있는데 '그라면 전연히 거절하더냐?' '거절은 하기는  하고 그라기는 그라는데 돈에 대해서 상당히 애착심은 가지고 있는데 아마 돈이  액수가 좀 많으면 될란지 모르겠습니다.' 이라니까 더 귀인들을 소리해 가지고  돈을 더 많이 좀 보내 가지고 또 더 벼슬을 많이 줄 것을 약속하고 이래 보냈다  말이오. 이래 보내니까 또 와서 그러니까 또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나는 하나님  말씀은 한 획도 어기지 못한다. 너거 돈 다 준다 새도 내가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는 못 한다.' 이 큰소리는 뻥뻥 하면서도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나는 내  맘대로 못 하니까 여기 누워 자거라. 누워 자면 오늘 저녁에 하나님 앞에 내가  물어보고 하겠다.' 그게 뭐이요? 그때 이 사람들이 누워 잤다 말이오. 누워 자고  나니까 하나님을 만나서 '자꾸 저렇고 쌓는데 저거 어떻게 합니까? 뭐 당신이  가지 말라 하면 내가 안 갑니다. 당신 말씀 어겨서는 내가 하지를 안합니다.'  이라면서, 안 하면 가지도 말고 저주도 하지 말라고 첫날밤에 만나 가지고 얘기를  했는데 뭐 할라고 지금 또 자라 해 놓고 또 그런 소리를 하니까, 그러니까 어찌  됐어요? 하나님 앞에는 거짓말로 안면 부셔서 하나님한테 그렇게 하고 속 마음은  다르다 그 말이오. 하나님은 껍데기를 상대하고 속에 그 중심을 상대하기 때문에  중심이 다르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벌써 가기를 원하고 네가 내게  대해 소망을 가진 것보다 돈에 대한 소망과 애착을 가지고 있어서 네 마음은  가고 싶은데 나 때문에 거리껴서 못 가고 내 안면 때문에 못 가고 이라니까 네가  그 사람들과 같이 가라.' 이렇게 했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가 가지고, 또 가 가지고는 뭐 했어? 가 가지고는, 가 가지고는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자, 제단을 턱 소 일곱 마리를 떡 잡아 가지고 제단을  일곱 제단을 떡 그래 놓고 이제 '제단을 모아라. 그라면 내가 가겠다.' 이래 모아  놓고, 떡 모으라 하는 그거 뭐할라고 모으라 해? 모으라 해 놓고 떡 가서 막상  보니까 또 저주할 수 없다 말이오.

 없는데 여기서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그런 사람들을 저주하니까 그만 이 왕이 아주 노여웠다 말이오.

 노여워서 이놈 네가 오히려 저주하라 하는 건 축복하고 우리를 저주하고  이랬으니까 그거 그만 죽일라고 이라는데 그때 그만 그 사람들 뭐 그라면 그만  권세 있으니까 대번 죽여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죽여 버릴 건데, 떡 그라고  왔거든.

 그러니까 왕이 있다가 '네가 왜 어떻게 이래 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할 수가  있겠느냐?' 이라니까 또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저 다른 산에 가 가지고 그래  제단을 쌓아서 그래 놓으면 내가 또 어떻게 하겠다.' 속에 지금 돈이 욕심이  들었으니까 그놈 때문에 거기 끌려 가지고 껍데기는 곤란을 당한다 말이오. 이거  변명해서 곤란을. 그래 몇 번이나 했습니까? 세 번 했어, 세 번.

 세 번이나 이래 했는데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가라 이라니까 가다가 나귀한테  그래 가지고 뭐 나귀가 막고 그런 막는 그런 일을 해도 나중에, 나귀가 가는 것을  방해 하니까 나귀를 막 죽일라고 몽둥이로 뚜드리고 '내게 칼이 있으면 너 당장  목을 베어 죽였을 것이다.' 이라면서, 그러니까 속에는 지금 가고 싶기는 돈에  욕심이 있는 것이 하나님에 욕심 있는 것보다 더 있어.

 그러니까 그 사람이 가 가지고 처음에는 뭐 큰소리 떵떵 했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이 가지 말라 소리를 듣고도 가고 말았고 또 가면서 '네가 가서 이스라엘  저주는 하지 말고 내가 너한테 말한 대로 꼭 그대로 해라.' '예. 그래 하겠습니다.'  하고 거기 가 가지고 제단을 세 번이나 쌓으면서 이스라엘을 축복하고 모압을  저주하니까 당장 죽임받을 것 아닙니까? 당장 죽임 받을 거라. 그렇지 않소?  그라니까 발람이 하나님 섬기는 데에서 생명 내댔소 안 냈소? 발람이 생명을  하나님 섬기는 데 생명 내댔소 안 내댔소? 생명 내댔어 생명 내대기를 몇 번이나  내 댔어? 세 번이나 내 댔어. 세 번이나. 제단 세 번 쌓아서 그렇게 하는 것은  바로 죽임을 받아야 마땅하고 죽임을 받는 행동인데 생명 내놓고 그렇게 했어.

 생명 내놓고 하나님 말씀 순종을 했습니다. 순종을 했지만 마지막에 결국은  어떻게 했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만 지으면 망하는  나라니까 그거 우상을 우상의 제물 갖다 놓고 막 부글부글 지지면 그들이 먹고  싶어 올 터이니까 그래 우상의 제물을 가 공짜배기로 대접을 해라. 우상의  제물이라 하지 말고 대접을 해라. 또 그라고 예쁜 여인들을 주 모아다가 자꾸  이래 친절히 이래 이렇게, 요새 뭐라더라 뭐, 서비스가 뭐인고? 영어로 서비스가  뭐이야? 봉사. 서비스가 봉사가? 이렇게 하면 마음에 미혹이 돼 가지고 행음할  터이니까 그래 해라. 그래 행음하고, 우상의 제물 먹고 행음만 하면 하나님이 당장  절단내 버린다.' 요걸 살며시 가르쳐 줬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  분노해서 꼭 미디안 전쟁에서 발람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칼로 죽여 버렸어. 죽어  버렸어.

 요것이 뭐이냐 하면 발람이라 말이오.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내나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의 교훈이라. 발람의 교훈은  뭐입니까? 발람의 교훈은 껍데기는 하나님을 섬기고 열심 있고 뭐 하나님  말씀에서 정확 무오한듯이 그래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 최종에 가서는 하나님보다 발람을  끌어댕기는 인력이 센 게 있어. 발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끄는 인력보다도 더  인력이 센 게 있었어. 그러니까 암만 제가 그래 쌓아도 마지막에는 그리 끌려가고  말았다 그거요.

 발람에게는 인려 센 것이 뭣이 무슨 힘이 그렇츰 셌습니까? 이래서 다른 대는  발람에 대해서 '불의의 삯을 위에서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걸어간다' 이렇게  말씀을 했고, 여게는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백성 앞에 올무를 놓아 미혹을 줘 가지고 우상의 제물 먹고 또  행음하게 했다.' 이렇게 말씀을 했다 말이오. 그러면 발람의 교훈이 뭐이며 니골라  당의 교훈이 뭐입니까? 발람 교훈이나 니골라 당의 교훈이나 꼭 같은 교훈이라.

 이 발람 교훈이 뭐이며 니골라 당의 교훈이 뭐입니까? 이거 책망하고 미워하는  건 이것이야. 발람 교훈이나 니골라 당의 교훈 이것을 주님이 미워하십니다. 아주  극히 미워하셔.

 미워하시는데 발람 교훈이 뭐이며 니골라 당의 교훈이 뭐인가? 이게 뭐이지?  발람과 니골라 당의 교훈은 겉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확 무오한 것도 믿고 또 하나님 말씀은 천만금을 줘도  하나님 말씀을 어길 수는 없다 이렇게 아주 입으로는 지식을 단단히 가지고 아주  설교는 잘하는 사람이오.

 설교는 잘하고 이제 하나님의 계명은 죽어도 지켜야 되지 생명 위해서 계명을  어길 수가 있겠느냐? 은 천하를 줘도 하나님의 계명은 어길 수가 없다. 내가  어기겠느냐? 이렇게 감단히 큰소리하고 입으로 그렇게 말하지만 이놈아 네가  모르는 네 속에 지금 귀신이 들어 있다. 귀신 돌어 있는 걸 몰라요, 귀신이. 발람  속에는 무슨 귀신 들어 있었어요? 발람 속에 무슨 귀신 들어 있었어? OOO목사님  무슨 귀신 들어 있어? 돈 귀신 들어 있어. 나는 OOO목사님, '아들 어디  다니느냐?' 이라니까 의대 다닌다 해.

 의대도 좋기는 좋아요. 의대가 좋기는 좋은데 그 속에 돈 귀신이 들어서 그런 것  아닌가? 내가, 그런 말 내가 좀, 그런 말 안 해도 '돈벌이 잘 할러구만. 돈 보고  그랬구나.' 그말 내가 하던가? 내가 그말 안 했던가? 여러분들,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을 아무리 증거하고 또 지식으로 아무리 그렇게 해도 하나님보다 더 나를  끄는, 내게 대해서 하나님보다 더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면 그게  우상입니다. 그게 발람이오. 어떤 사람은 돈, 어떤 사람은 명예, 어떤 사람은 권세,  어떤 사람은 지위, 어떤 사람은 미남, 미인, 어떤 사람은 자기의 아내.

 이거 뭐 떠들어 쌓아도 아내한테는 꼼짝을 못 합니다. 꼼짝을 못 해. O목사님이  목사 노릇 벌써부터 할 건데 저거 마누라한테 끌려 가지고 목사 노릇을 못 했어.

 그래 내가 있다가 '너거는 돼지라. O목사 너는 너거 마누라한테 끌리는 우상  가진 자라.' 내가 자꾸 그래 해 댔는데 인제 하도 그리 쌓아니까 인에  튀어나왔어요.

 튀어나와 가지고, 그래 놓으니까 지금 뭐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지금 막 탁  버퉈 가지고 이제 저거 마누라 말을 안 들을라고 지금 뭐 단단히 버투고 있어.

이래도 보면 평가가 외부의 정치는 저거 마누라만 못해요. 그러니까 저거 마누라  말 안 들을 수가 있어야지, 옳은 건데 말이오. 속에는 O목사가 낫습니다. 속에는  하나님의 뜻 영감 받는 데는 나아요. 이러니까 기쁨니다.

 내가 가만히 보면 저거 마누라는 외부에 이 정치나 외부 것은 잘하는데 속에  깊은 영감에 대해서는 그걸 못 해요. 그거 OO교회서, 부산에 OOO교회는 부산  있고 하니까 자꾸 저거 자녀들이 여기 있고 하니까 오기 쉽거든. 이래서  OOO교회를 오고 싶어서 자꾸 이래 가지고 저거 마누라는 올라고 자꾸 이래 하고  O목사님은 자꾸 또 안 할라 하고 이라는데, 내가 그랬어. 나는 거기 있으라 하고  오지 말라 했었는데 자꾸 그래서 '너거 그러면 제비를 뽑아 봐라. 너거가 모를  때는 제비를 뽑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다. 제비를 뽑아 가지고 하라  하니까, 너거 내가 단식기도 며칠 하고 제비 뽑으라 했지? 하루 세 끼 단식기도  하고 그래 인제 제비 뽑으라 이라니까 제비를 뽑아서 이래 날리는데 OO교회  다섯 또 OOO교회 다섯 이래 열 개를 만들어 가지고 기도하고 공중으로 훅 던져  가지고 네 앞에 가까운 데 오는 걸 그거 다섯 개만 취해 가지고 열어 봐라.

 이라니까 OO교회라. 다섯 개가 다 OO교회라.

 이러니까 그만 그만하면 됐는데, 이만하면 됐다 하는데 저거 마누라는 '그래  가지고 알 수가 있습니까? 한번 더 합시다.' 한번 더 했다 말이오. 더 해 두번째  하니까 또 그래. 몇 번 그랬지? 세 번. 세 번 하니까 또 그래. 그러니까 이제  O목사는 속으로 좋아하고 또 저거 마누라는 섭섭해서 이란다 말이오. 이러니까  껍데기만 볼 줄 알지 속에 알맹이는 O목사가 낫게 봐. 나는 처음에 그래 하라  했는데 그만 그래 했으면 좋을 건데 그래 가지고 그것 때문에 상당히 파문이  일어나 가지고 진통을 많이 겪었습니다. 많이 겪었지? 안 겪기는 뭘 안 겪어?  요새도 지금 진통을 앓고 있는데.

 그래, 이 발람의 교훈. 발람의 교훈, 요거 요것이 이 버가모 교회에 있으니까 이  버가모 교회가 몇째라요, 순서적으로? 몇째입니까? 셋째라.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그거 용납하는 것을 책망했습니다. 용납하는  것.

 속에는, 속에는 마귀면서 겉어머리로서는 천사의 말을 하고 하나님 말씀을 하고  '내야 하나님 말씀 하나도 어길 수는 없다. 너거 돈을 다 준다 할지라도 어길  수는 없다.' 이라면서 속에 그 발람을 끌고 가기는 뭐이 끌고 갔느냐? 입으로만  제가 말했지 하나님이 끌고 가지 안하고 돈이 끌고 가 가지고 결국은 돈이 끌고  갔는데 돈에게 끌려가 가지고 대감했습니까 정승했습니까 부자됐습니까? 뭣  했어? 뭐? 죽었어, 죽어. 칼에 죽었어.

 이 목사들도 이거 알아야 돼요. 보면 뭐 '하나님은 전능자라. 하나님이면 다라.'  떠들어 쌓고 설교야 잘하지. 이래도 속에 귀신이 들었다 그말이요 귀신.

 주님보다도 더 자기를 끌고 나갈 수 있는 그런 귀신이 들었어. 이거 회개하기  전에는 안 돼요! 요거 회개하기 전에 안 됩니다. 암만 설교를 잘해도, 설교 얼마나  잘했소? 발람이 얼마나 설교를 잘 했소, 잘하기를?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너거 재물을 다 준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 말씀 내가  하나도 어길 수는 없다.' 얼마나 설교를 잘했소? 이랬는데도 저도 모르게 속에  자기를 끌고 가는 이 우상이 들어서 귀신이 들어 가지고 그놈이 끌고 가는데  그놈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은 결심도 소용 없고 그놈에게 끌리고  끌려가 가지고 마지막에는 그놈에게 칼에 맞아서 뒈지고야 말았다 그거요. 자기  망하고 다른 사람 망하고 다 망치요. 이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때 우상의 제물  먹고 행음해 가지고 얼마 죽었지? 이만사천 명 아니가? 뒤에 이만삼천 명이고  처음에 천 명이고 이만사천 명. 이만 사천 명 죽고 저 칼에 맞아 죽고.

 여러분들! 하나님의 종이 제일, 실수 많아도 좋소. 실수 있어도 좋소. 제일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자기 중심에, 자기 보좌에 하나님이 앉아 계셔서 어디든지  극단에는 하나님이 나를 끌지 다른 데 끌려가지 안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게 그뭐 아주 그거야 요리 조리 얼마나 지혜롭게 했고 말은 얼마나  민첩한 말을 했습니까? 그러나 그 사람을 누가 최종적으로 누가 지배하느냐?  최종적으로 누가 지배하느냐? 제까짓 게 암만 말했다 해도 최종적은 저거  마누라가 지배라. 결국은 저거 마누라 원하는 대로 가고야 말아, 이래서 박윤선  목사님이 요한계시록 2장에 있는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 이세벨 설교를 하면서  이세벨 해석은 이세벨은 목회자의 잘못된 사모라. 목회자 사모라고 다 이세벨이라  또 그래 생각하면 안 돼요. '목회자 사모가 이세벨이라' 그렇게 주석에다 해 놨어.

자기가 하지 안하고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랬습디다. 그거 거의  맞아. 처음에야 뭐 뿔룩뿔룩 하고 이래 쌓아니까, 뿔룩뿔룩 이래 쌓아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 같지. 이러니까 예예,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고 살라 하면  사는 시늉도 하지만 살살 그렇게 지면서 속에 알맹이는 빼서 담아 가지고 결국은  저 하는 대로, 아내가 동으로 가라 하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 하면 서로 가고  남으로 가라 하면 남으로 가고 그렇지 껍데기는 막 이래 떠들어 쌓아도 속은  실상은 그대로 가고야 만다 그거요. 그런 사람 많아요.

 이러니까 네 중심이 어디 있느냐? 중심이 있는 그리 끌려갑니다. 네가 제일  좋아하기를 뭘 좋아하느냐? 하나님을 제일 좋아하느냐 돈을 제일 좋아하느냐?  권세를 제일 좋아하느냐? 명예를 제일 좋아하느냐? 제일 좋아하는 게 뭐이냐?  극단에 오를 때에 너를 끌고 갈 자가 너가 하나님께 팔리겠느냐, 돈에 끌리겠느냐,  사람에 끌리겠느냐? 극단에 어디 끌리겠느냐? 이래서 최종, 최종은 맨  끄트머리지. 최종적으로 최고적으로 자기를 끌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아닌 자를  가리켜서 발람 선지라 니골라 선지라 말한 것입니다.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아요 안 맞아요? 이라니까 섭섭해요 안 섭섭해요? 여기 보자, 누가 있노? 우리  OOO목사님은 속에 중심을 끌고 최종 끄는 거는 누구야? 하나님이 끌고 있기는  있어. 내가 가만히 보면 하나님이 끌고 있어. 삐꿔 돌아갈 때가 많은데, 여기  있다가 '저리 가거라' 저기 갔다가 '이리 가라' 하니까 아이들 다 중간에 다  떼놓고 이러니 아마 내가 듣지는 못해도 집에서 '에이구, 지금 공연히 지금  OO교파에 있을 건데 와 가지고 좋은 교회 냅두고 와 가지고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해 가지고 항상 끌려다니기만 하고 아이들을 세 군데나 네 군데나 흩쳐놓고  이게 무슨 꼴이야?' 그라지? 그랬지? 아따, 엔간히 또 자랑하네.

 없기는 왜 없을까이? 우리 마누라 같으면 있겠는데.

 그래. 그래도 꼭 주님이 끄는 대로 해요. 이러니까 중간에야 이리 하든지 저리  하든지 최종의, 최종에 누구를 따라가느냐? 자기에게 대해서 지도하고 주관하는  권위자가 최고로 누구이냐 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말로야 하나님이지. 그러나  발람도 얼마나 말로는 그래 하지 안했습니까?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돈에게  끌려가 가지고, 왜? 돈에 끌렸다는 걸 성경이 말했어. '발람은 불의의 삯을 위해서  그렇게 불의한 길을 걸어갔다' 이렇게 성경에 말했어.

 그러므로 이 발람 선지 니골라당의 선지 이들의 교훈이 뭐이요? 속은 딴걸로  가지고 있으며 겉어머리만 말하는 그 교훈을 듣는 것을 회개해야 돼요! 그 교훈을  하는 목사만 전도사만 회개할 게 아니라 그런 교훈을, 속에는 알맹이는 귀신인데  둔갑을 해 가지고, 가장을 해 가지고 겉어머리는 천사처럼 하는 그것은 알아요.

 그거 알면 그걸 뽑아내기까지 기도해야 돼. 발람 선지. 니골라 선지.

 우리가 요것을 잘 살펴서 이 교회에 대해서 지금 공부를 하는 것이니까  자거네들이, 사람이 말이요 사람이 실수는 할 수가 있어도 그 사람을 최종적으로  그 사람이 어디 끌려갈 사람이냐? 또 그 사람을, 최고의 권위적으로 그 사람을 그  사람의 최고의 권위를 가진 자가 뭐이냐? 최고의 권위를 가진 것이 하나님이요  최종에는 에가 하나님께 붙지 안할 수 없는 하나님이라고 하면 됐습니다. 실수는  있다 할지라도 약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최종으로 죽지는 안하고 옳은 길을  걸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게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다는 것은, 그래 놓으니까 돈이 그 속에 저거  하나님이 돼 가지고 이라니까 껍데기 설교는 암만 했지만 그 사람의 한 결과가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우상 제물 먹게 하고 행음하게 했습니다. 우상  제물이 뭐 우상 제물입니까? 우상을 섬기는, 우상에게 절은 하지는 안했지만 우상  섬기는 재물은 맛있게 먹었다 그거요. 이 우상이 뭐이요? 발람은 우상 가졌소 안  가졌소? 발람은 우상을 가졌소 안 가졌소? 무슨 우상 가졌소? 우상 가진 자가  천사의 설교를 하고 뭐 어떤 청산유수의 설교를 하고 어떻게 입으로 말한다  할지라도 우상을 가진 목사는 거게 배운 교인은 결국은 우상에 동참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게 돼요. 제가 달리는 할 수가 없어. 뭐  생명도 내놔 봤지요. 얼마나 이랬지만 결국은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는 것은  하나님 아닌, 하나님이 앉아 있을 하나님이 앉아 있을 자기의 보좌, 자기의 제일  중심되는 마음, 제일 높은 마음, 자기의 주가 되는 마음, 자기의 이 전신을 끌고  갈 수 있는 중심되는 마음 그 속에는 어떤 놈이 들어앉았느냐 하면 하나님이  들어앉아 계시지 안하고 돈이 들어앉아 있고 딴게 들어 있는 그것이 우상이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자의 교훈받은 사람은 결국 그런 자가 되고야 맙니다.

 여러분들 이걸 똑똑히 알고 눈을 떠야 돼요. 뭐 하나님도 섬기고, 돈 뭐 또  나쁘다 합니까? 돈 나쁩니까? 돈 좋습니다. 이래도 제일 네가 제일 너를 점령하고  있는 자가 뭐이냐? 네게 대해서 제일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자가 뭐이냐? 뭐이냐?  이것은 스스로 살펴서 판단해야 되지 그거 속에 이걸 바꾸지 안하고 아무리  청산유수의 설교를 아무리 한다 해도 그 결과는 무슨 결과를 맺느냐 하면 우상  섬기는 데 동참한 자, 자기가 우상을 두지 안하면, 우상 섬기는 제물 먹는다 말은  우상 섬기는 자도 있고 우상 섬기는 그 일을 옳다 찬성하고, 제물 먹는 거는  찬성하고 따라가는 것을 가리켜서 제물 먹는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일 중심으로 이래 삼는 것보다도 딴거 이거 돈이나 권세나 그런 걸 첫째로  하나님을 그 다음으로 삼는 그 사상과 주장과 행위를 미워하지 안하고, 행위를  미워하지 안하고 그 행위를 그것도 참 그게 옳다, 슬그머니 나중에 그것을 환영해  가지고 마음은 그리 기울어져 가지고 거게 찬동하는 자가 된다 그 말이오.

 내가 아침에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내가 지금 이거 목회를 지금 나가면 싶은데  이거 개척 교회를 해야 되는지 이미 기성 교회 나가야 될란지? 그래 가지고 어떤  분이 와서 데리고 와 소개를 해. '그런 분이 있는데 어째야 되겠습니까?' 그래  내가 왔기 때문에 그 좀 내가 딱 알 것 있어서 '그라거든 그 사람을 데리고 오라.

 데리고 오라.' 했어. 데리고 오라 해 가지고 내가 처음에? 시험 본 게 그게  시험이라. '야, 이렇고 이런데 그 행동하는 거-소소한 것 같지만-그 행동하는 걸  네가 볼 때에 잘못됐다 싶으더나 밉더나?' 내가 이래 물었어. 그 행동하는 그게  밉더나, 잘못됐다 싶으더나 밉더나?' 내가 그래 두 가지 물었어. '밉더냐?'  이라니까 말을 똑똑히 안 해. 대답을 똑똑히 안 해요. 미워야 돼요. 주님이  미워하시는 거 잘못된 거는 이거 잘못됐다 할 게 아니라 그거 미워야 돼. 미워서  억제를 못 해 가지고 실수를 하고 미워서, '저 또 말을 저렇게 극단으로 저래  하네. 또 혈기를 부리네.' 혈기 부려도 주님이 미워하는 데에 미워서 혈기 부리는  건 혈기가 아니라! 모압 백성들이 그와 같이, 가서 제물 먹고 거기 가 가지고  간음할 때에 누가 하나님 노를 풀었어요? 예? 비느하스가 풀었어, 노를.

비느하스가 뭐 어떻게 해 가지고 노를 풀었는고? 남녀 그렇게 동침하고 있는 거  그만 창을 가지고 위에서 그만 내려 찔러 버렸어. 둘이 한목 찔러 버렸어. 이래  가지고 막 어깨에 둘러메 가지고 들어오니까 하나님이 미워하는 걸 그렇게  비느하스의 격노로, 비느하스의 아주 분히 여기는 그 격노로 하나님의 격노가  풀어졌다 그렇게 말씀했어.

 미워해야 돼. 그래서 우상의 제물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 위치에 두고  자기의 최고로 지도할 자, 최고로 거게 추종할 자, 최고로 권위를 가진 자, 자기를  어쨌든지 최종은 그거 끄는 대로 갈 수 있는 그런 것은 다 우상입니다. 그런 생활  하는 것을 하지 안해도 찬성하는 사람들 자꾸 만들고, 찬성하면 나중에 하게 되지  별수가 뭐 있습니까? 그렇게 예수 믿는 걸 다 좋아한다 말이오. 이라기 때문에 이  교회가 가속도로 지금 부패해 나가고 있습니다! 가속도로 부패해 나가고 있어.

 교회인지 뭐 세상인지 몰라요. 교회와 세상이 다른 게 뭐 있습니까? 다른 게 뭐  있어? 주일날 보면 주일날 불교들도 주일날 다 예배 봐요. 그들도 찬송해요.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나를 구원한 부처님 찬송하겠다' 다 그거  있어.

 이렇게 이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해서 자꾸 그런 생활 하는 것을 좋아해  아무것이는 그래도 그렇게 뭐 장관 노릇도 하면서 그렇게 뭐 주일이고 뭐 그거  할라 하면 주일 못 지키는가? 주일도 못 지키고, 그러니까 그 사람은 주일보다도  그게 권세가 있어.

 저 버마가? 그때 폭탄맞은 게 버마가? 버마. 버마에 갔는데 주일날, 주일날 그거  저 대통령이 가자 하니까 그거 주일날은 주일이나 지킬 일이짓 뭐 갑니까? 또  주일날 하필 신사에 절할라고 가는 건데 그거 갈 건가? 안 가지만, 안된 줄  알기야 알지. 안된 줄 알기는 알지만 그 장관 직책이 이제 자기 신앙에 대한  구원보다 크기 때문에 구원에는 좀 모순이 돼도 거게는 맞춰야 되기 때문에  주일날 꺼덕꺼덕 끌려갔지. 끌려가다가 뭐 만낫지? 끌려가다 뭐 만났어? 폭탄  만났어, 폭탄. 처음애 그때는 살며시 말했지 그거 큰 소리로 못 해요. O대통령  살아 있을 때는 큰 소리 못 해. 강단에서 살며시 말했지. 이것을 알아서 저  사람은 속에 발람과 같이 우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지금 설교는 청산유수로 하는  사람인가? 저 사람은 제일이 돈인가, 제일이 권세인가, 제일이 천국인가 어짜든지  주님과 주님의 것이 제일이 안 되고 거기 욕망이 없고 딴거를 가지는 그런  사람을, 그런 걸 가지고 설교하면 그런 걸 우리가 알아먹어야 된다 말이오.

 이 책망받을 거 회개를 해야 돼요. 회개를 하면 거기 있어도 그뭐 그런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를 하고 또 이렇게 간청을 하고 이렇게 해서라도 어짜든지 속에  우상이 없는 자의 설교라야 우상 섬기지 않는 자를 만듭니다. 우상 있는 자가  하는 설교는 결국은 우상을 찬성하다가 마지막에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행음은 뭐어냐? 행음은 이것은 이제, 행음은 첫째 행음이 세상하고 짝되는 것이  행음이라. 세상하고 짝되는 거. 가룟 유다가 행음하다가 멸망을 받았어요. 그것이  신앙적 행음인데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세상을 간부라고 하고 하나님을  본남편이라고 말 하는말 그거 성경에 있어요 없어요? 어디 있어요? 호세아서에  있어요? 호세아서에 있어요? 호세아서라 하는 그 성경에 있어요. 본남편은  하나님이고. 이러니까 이제 본남편 떠나서 간부가 좋고 맛이 있다고 이래 가지고  이래 떠들다가 마지막에는 비참해져 가지고 돌아왔어.

 신약에는 또 세상하고 하나되는 것이 간음하는 것이라 하는 것이 성경에 어디  있어요? 야고보서 4장 어디? 아따 4절, 똑똑허 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있어요.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아라' 그게 뭐인데?  '음행하는 여인들이여' 교회에 대해서. 무슨 음행을 했는데?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며 그것이 음행하는 것이다. 이래서 성령이  시기하기 까지 이것을 미워하신다 이렇게 말씀해.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미워  하신다.' 이래서 그거 하면, 그거 하면 인인의 칠계범은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행음이라 하는 것은 세상하고 짝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에 발람과 니골라가 세장하고 짝된 행음을 하고 있어요 없어요? 그가  신앙적으로 소망적으로 세상하고 하나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은 그냥 대외  명분으로 이용만 해 먹고 이라다 보니까 그 설교들은 사람들은 다 행음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 말이오. 이래서 교회가 항상 세상, 이 세상은 그런 적이라고  하지는 못해도 세상은 항상 우리와의 대립되는 길을 가는 것이니까 우리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접하는 것이지 세상을 좋아서 접하고 세상이 친해서  접하고 세상이 아름다와서 따라갈라고 접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세상을 이것을  구원하기 위해서 부득이, 물에 들어간 사람을 건질라면 물에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세상에 부러운 것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있는 사람은 목사가 아닙니다! 세상에 부러운 것이 있으면 목사 아니오!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면 알아. 저거는 돈이 제일인가 뮈이 제일인가 이제  하나님이 제일인가 영감이 제일인가? 제가 진리와 성령의 감화,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세 가지를 제일로 여기지 안하고 돈을 제일로 여기는 자에게  네 가지가 옵니까? 그거는 자꾸 양보하지. 이제 오늘 이 성경을 이렇게 배워  가지고, 이 일곱 교회 그 내용을 배워 가지고 이 세상을 보면 이 세상이 어떻게  돼 있다는 것을 환하게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중요한 게 뭐이냐? 하나님이 책망하는 것은 뭐? 거기 그래 말했어.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거기 네게 '거기 네게'  거기는 장소인데 거기는 어디라? 거기는 어디입니까? 순교당한 곳이라. 안디바가  순교당할 때에 순교당할 때도 그때도 생명을 내놓고 신앙을 지킨 그 자리에?  너희들이 무슨 사탄의 위 그걸로써는 생명을 내놔도 믿음을 지켰다 말은 사탄을  따라가지 안하고 사탄의 위 있는데 거부하고 지켜 나왔다 말이오.

 요렇게 지켜 나왔는데, 생명을 내놓고 신앙을 지켰는데 요거 발람 선지 니골라  선지가 하니까 소로로록 끌려 가지고 싹 다 망하고 말았어. 이것을 말해서 '거기  네게' '거기 네게' 요렇게 말했어. 거기 네게. 바로 네가 생명 내놓고 신앙 지키는  그 자리에 네가 지금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 우상 가진 자의 네가  교훈을 네가 듣고 있다. 우상 가진 자의 교훈을 듣고 있다. 그러면 그 결과가  어찌 됐느냐? 우상의 제물 먹게 했고 행음하게 했다. 그래 가지고 이만사천 명이  죽었는데 그거 비느하스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얼마나 분하게 여기는데  비느하스의, 하나님의 분개의 동지자 비느하스가 하나님이 분한 것같이 막 분해  하니까, 비느하스가 그렇게 분해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분을 보고 분을  풀었습니다. 자기 가정에나 자기 가족들에게 뭐에 대해서 잘못된 거 있으련,  잘못된 거 있으면 막, 하나님이 섭섭해 하는 거 있으면 제가 배나 섭섭하게  여기면 하나님의 섭섭은 뒤로 물러가고 피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분히 여기면  하나님의 분은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분히 여기는 것을 제  자식이라고 제게 속한 것이라고 슬슬 둘러 맞추면서 그거는 이렇고 저렇고  변명한다 말이오. 이래 말로 이래 그렇고 저래 그렇고 변명하면 어째? 변명하면  나는 그 변명할 때는 콱 찔러버려. '무슨 변명이고, 변명이? 그라다가 망할라고  하고 있나? 뭐 옹호는 무슨 옹호야, 응호가?' 이래 버리면 그래서 나한테 와  가지고는 말 잘 안 해요. 그것이 하나님의 노를 푸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잘못된 그것이 자기 가족들에게나 자기 교인들에게 있을 때에 그  잘못된 것을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데 그 교역자가 그만 그만치 노여워해 가지고  야단을 지기면 하나님은 슬그머니 '네가 노여워하고 그렇츰 그라니까' 그만  마음이 풀려서 나중에 되게 노해서 야단지기면 그래. 되게 노해서 야단지기면  하나님이 뭐라 해요? OOO씨 뭐라 하겠어? 잘한다 잘한다 하겠어? 뭐라 하겠어?  저거 인간 심리를 모르네. 학교 선생이면서 그것도 몰라? 뭐라 할꼬? 그렇지. '야,  그만 팬찮다. 너무 그라지 마라. 인간이 그래 연약한 거 아니가? 그만 참아라,  그만' 자꾸 참아라 합니다. 이래서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야  돼요.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러므로 회개하라 회개하라는 것은, 회개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교역자는 우상  가지고 가면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을 이용해서, 제가 제 속에 욕심은 있으면서  제가 하나님께 이용을 당할라고 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이용해 먹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해 먹는 거.

 그래 내가 언제, 지금 금정산에 안 가지만 금정산에 가서 혹 목사들 만나면 들짱  묻는 게 그 말이오. '거기 몇 명이나 모입니까'?' '뭐 몇 명 모입니다.' '그라면  연보가 얼마나 들어옵니까?' 연보가 그러면, 그라면 그만 기운이 버쩍 뜨여  가지고 눈을 버쩍 뜨고 그렇게 아주 마음에 생기가 확 돌아 가지고 '그러면 그  교회는 연보가 얼마나 나옵니까?' 돈 많이 모으고 싶다 그 말이오. 돈을 많이  모으겠다 그거라. 그래 가지고 전부 보면, 접촉해 보면 하나님을 어떻게 하며  하나님의 진리가 어떠하며 그들의 신앙이 어떠하며 그거는 안 묻고 전부 돈 묻소.

돈 묻는 거. O목사님 그랍니까? 안 물어? 모두 돈 물어, 돈.(아멘) 아멘, 또  교인들은 또 저거는 안 그라면서 교역자, 남의 단점은 잘 본다고 돈 묻는다 해  가지고 아멘 옳다 말이지. 칼은 자기에게도 와요.

 '그러므로 회개하라' 교역자는 교역자대로 회개할 것. 그러기 때문에 우상 없는  자 돼 가지고 하나님의 설교를 그대로 증거하면 우상 없는 자들이 자라갑니다.

 우상을 가지고 하면 결국은 우상 섬기는 자 행음하는 자 그자 외에는 딴 자를  내지를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의 비밀이 이거 아주  극비로서 둘이 아니라 하나라 그 말이오.

 그러면 교인들은 어째? 교인들은 이래도 그 속에, 그 속에 딴걸 가지고 설교를  해도 이 세상에 무슨 문화 소식이나 말하고, 문학이나 말해 주고, 또 이런 무슨  좋은 소식이나 말하고, 좋은 시나 말해 주고, 또 이종교에 오묘한 그런 말이나 해  주고, 그 모든 위인들의 위언이나 위인들 위대한 그런 말 그런 거나 말해 주고,  철학이나 말해 주고, 좋은 시나 읊어 주고 이라면 좋아한다 말이오. 그래도 우리  교회 목사는 우리 교회 이만하니까 그래도 학위도 가져야 될 것이고, 외국 유학도  해야 될 것이고, 뭐 영어도 해야 될 것이고, 무슨 또 최고 학부도 있어야 되고  이렇지, 여기 요새 내가 부산에도 어디 가 보니까 그 거리는 그 근방에는  그렇대요.

 거기서는 '그 교회 목사가 학력이 어찌 됐지?' 이라다가 '학력이 국민학교밖에  안 했다' 그라면 '헤이구, 뭐.' 그만 시시하게 그만 아주 똥같이 본대요. 학사증이  있다고, 대학을 졸업했다고 그라면 떡 슬그머니 묻기를? '무슨 대학을  졸업했는가요?' 이래 가지고 서울 대학이라 하면 그만 좀 알아 주고 서울대학  아니라 하면 그만 시시하게 본대요. 목사들도 그렇고 또 교인들도 목사 청빙할  때에 그걸로 가지고 청빙해. 그것 가지고. 세상 간판 지식 또 에이 비로 뭐 '노,  에이' 하는 거나 잘하고 '아, 또 그것만 하면 되나? 그래도 이 우리 나라에서  정계에서 알아 줘야지.' 정계에 유명한 간판을 가져야 되고, 이래 놓으니까 이  목사들이 이 교인들을 모으고 큰 교회 맡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 발을 들여놔서  세상 간판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세상 간판 가지니까 거게  맞출라 하면 거기는 저 서로 가는 것이지 하나님께 맞출라 하면 동으로 가야  되저 제가 양쪽에 가운데서 다리가 째지지 어째? 두 군데로 갈 수 있어요?  여러분들 김천서 차를 타고 서울도 가고 부산도 가고 두 군데 다 갈 수 있어요?  두 군데 다 같이 갈 수 있다는 사람 손 들어 봐요. 못 가. 째지지 못 가. 가랭이가  째지지 못 가. 어디 갈 거라, 가기를? 어디 한 군데로 가야 되지.

 교인들이 이렇게 이걸 원하니까, 그런 목사를 원하니까 그런 것밖에 더 하겠소?  그러니까 목사들도 그 면으로 힘을 써야 돼. 이래서 설교를 준비할 때는 다른  설교 준비하지 안해. 이거 설교 준비할 때는 이런 거 저런 거 막 이 무든 고등  술어, 아주 또 높은 사람들의 저서 그런 거나 자꾸 보고 이래 가지고 생전 들어도  모르는 말 한 마디씩 턱턱 내쓰면 몰라도 '우리 목사는 유식한 말 쓰니까 문자  쓰더라. 이거 우리 목사는 영어만 할 줄 알았는데 영어뿐 아니데.' 또 무슨 말 한  마디 턱 해 놓으면 영어라. 영어 한 마디 청해 놓고, 내나 한국 말 쓰면, 한국  사람에게 한국말만 하면 될 터인데 하필 영어로 한 마디. 턱 해 놓고 또 그말을  한국말로 또 거듭 한다 그거요. 이것만 아니라. 또 그뿐 아니라 불란서어 한번 턱  해 놓고 또 이래 한다 그 말이오. '이게 그거 참 우리 목사는 유식해' 이래  가지고 그런 것 맞춰 가지고, 그게 세상입니까 하늘나라입니까? 교인들이 세상을  가치로 삼아 가지고 자꾸 그런 사람들만 청해 들일라 하니까 목사들이 세상  준비해야 되겠소 천국 준비해야 되겠소? 그러니까 저 망치는 걸 제가 하지 어짤  거라? 요거 회개해야 돼요. 요거 회개해야 돼.

 그래 나는 만날 말 하기를 '나는 국민학교 오학년, 오학년 뭐 이학 기까지밖에  안 했어요. 국민학교 오학년 이학기 했다.' 자꾸 이래 쌓아니까 우리 가족들은  말하기를 '아이구, 인제 다 아는데 뭘 오학년 그걸 자꾸 말을 합니까?' 이래 쌓아.

 그거 보면 조금 부끄러운 모양이라, 그게. 나는 그거 자랑삼아 하는데. 왜? 나는  인간에게 배우지 안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지혜를 받아서 아무데서 사람에게  지도받을 것이 나는 없다고 생각해. 하나님께만 지도받아요. 그분 한 분에게  받으면 다 됐어. 이러니까 안 배워도 되니까 아까 내가 말해도 '너거 전부 뭐'  의대에 떡, 떡 자랑삼아 떡, 이런데 의대에 인제 입학은 하기는 했는데, 시험에  합격은 되기는 됐는데. 이라는데 대가리부터 내가 깨뜨려 버렸지. '너  유물주의로구나. 너 아들 의과대학 보낸 것 보니까 유물주의구나. 돈벌이하려  그랬지?' 틀림 없어. 가치를 돈에다 둬서 그래요. 암만 변명해도 틀림없어. 꼭  그대로 정확해. 이러니까 이제 교인들이, 교인들이 교역자에게 대해서 '저 속에  우상이 들었나 안 들었나? 우리 목사님의 중심에는,' 중심이라 하는 그게  보좌인데, 보배로운. 제일 용상이라. 제일 좋은 자리. '중심인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있나, 돈이 들어 있나, 권세가 들어 있나, 사모님이 들어 있나?  뭐이 들어 있나?' 요걸 잘 살펴보고 이제 딴게 들어 있으면 그거는 회개해야 돼.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듣지 안해야 돼. 위해서 기도해야 되지. 자기네들  마음 뭐, 그런 분이 있거든 기도를 많이 해요. 많이 하고 고치도록 해야지. 자,  이래 말하니까 OOO목사님 섭섭해요 좋아요? 좋아? 기가 안 차고? 네,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그러면 이제는  하나님 말씀대로 판정해 버린다 그 말이오. 하나님 말씀대로 판정.

 그러면 하나님의 진노의, 하나님이 진노해 가지고 하나님이 격멸시켜서,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신데, 하나님이 소멸하시는데 하나님의 소멸을, 하나님의 소멸을  방어하는 방법이 뭐이요? 뭐요? 방어하는 방법은 회개라. 회개인데 하나님이  애터지는 거 있어. 회개를 딱 해 버리면 얼른 좋은 거 주겠는데 이게 멸망하지도  못하고 회개를 하는 것이 질질 질질 똑 실라끈 모양으로 질질 그래 가지고  그래도 회개합니다. 그래도 회개를 하니까 하나님이 그거 멸망시킬 수도 없고  애터진다 말이오. 그라면 뭐 있어? 그 기회가 놓쳐 버리면 헛일이라. 기회를  놓치면 '복빎을 눈물을 흘리며 간구하되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누구한테  말했습니까? 에서한테 말했어. 이라니까 인제 얼른,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양심의 귀. 진실한 귀, 진실함으로 듣는 사람은 들어 깨달을 수가 있어. 이기는  그에게는 이기는 그라 하는 이기는 그는 뭐이요? 이기는 것은 목회자로 있는  사람은 자기 속에 우상을 싹 뽑아버려 버리고 자기가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으로 전부를 삼고, 하나님으로 최고를 삼고, 하나님으로 제일 두려워하고,  하나님으로 자기에 대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질 수 있도록 그자가 돼 가지고 이제  목회하는 것이 그것이 이제 회개하는 거라. 이기는 자라. 지금 이 말씀 듣고 그걸  회개하는 사람은 이기는 사람이라. 우리 진영에 이상합니다. 우리 진영은 우상  전부 우상이오. 전부 우상이고 하나님을 이렇게 모신 자가 내 눈에 보이지 안해.

전부 우상이라. 그거 회개 안 하면, 회개 안 하면 나중에 그대로 그만 소멸되고  말지 무슨 가치 있습니까? '이기는 그에게는' 교인들은 뭐 이겨? 교인들은 이제  그속에 우상 없는 설교해 주는 사람 그걸 원하고 이래야 되지 무슨 세상 것  말하면 좋아하고, 문학 말해 주면 좋아하고, 이 세상에 무슨 좋은 소식이나 이  세상 마귀들이 만들어 놓은 묘한 말, 묘언, 모든 위인들의 위언이라 하는 그런  거나 말해 주면 좋고 목사는 이 세상 지식이 있어야 되고 간판이 있어야 되고 이  세상에서도 좀 뭐 출세를 해서 간판이 있어야 되지, 이러니까 목사들이 뭐 이  세상에 나와 가지고 이제 안 되니까 경목이라 해 가지고 경찰서 목사로 이래  들어 가지고, 그것도 뭐 운동은 하겠지만 그런 거, 이래 놓으니까 어떤 교회들은  그 목사가 이 정계에 나가 가지고 한 자리 해야 된다 그 말이오. 한 자리 해야  되고 또 무슨 일이 행사가 있을 때에는 저거 목사가 가 가지고 한번 사회를 하나  하든지 거기 가서 한 마디 연설을 하든지 거게 하나 무슨 조그만한 이름이라도  하나 간판이 끼었어야 마음이 시원하다. '우리 목사 이름 여게 있네' 이라니까  목사들이 교인들이 그거 좋아하니까 목사는 거기에 주력해서 준비할 수밖에 더  있습니까? 목사를 죽인 자가 누굽니까? 교인을 죽이는 자가 누굽니까? 서로 죽여.

요거 회개 안 하면 서로 죽어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감추었던  만나는 우리에게 문서 계시를 줘서 문서 계시는 아무라도 읽을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처리하고 형을 주기 위해서 이래 가지고  성경을 그들은 읽습니다. 아무가 읽어도, 무신론자가 성경 읽어도 성경은  읽어져요. 읽어지지만 그 속에 감춘 거 있어. 감춘 게 뭐겠습니까? 어? 쉬워. 감춘  게 뭐이야? 영감. 영감. 은밀 의지. 하나님의 은밀 의지. 영감 의지. 영감. 요  교훈을 중하게 여겨서 '우상 가진 자의 교훈은 먹을 수 없다. 우상 가진 자의  교훈은 결국은 우상 섬기는 자 행음하는 자가 되고야 만다.' 요 교훈의 중요성을  가지고 요것을 꼭 지켜서 행하는 사람이나 회개하는 사람이나 그 사람이면  교훈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아는 거기에서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이신 영감을 그 사람이 받게 됩니다. 이거 외에는 영감 받는 길이  없어요. 영감을, 성신 받는 길이 없어. 성신 받는 길을 이 마귀들이 귀신물이 들어  가지고 '아' 누구는 말 하기를 '나는 성신 받았는데,' '성신을 어디 받았습니까?'  '나는 이거 손이 막 화딱화딱하던데,' 그래 손이 화끈한 걸 성신 받았다 해. 손  화끈한 그까짓 게 뭐 하겠소? 또 저 삼각산 기도원 그 기도원 원장인데 '자기는  성령을 어디 받았습니까?' 나는 성령 받을 때 이 배꼽 밑에가 어떻게 뜨겁든지 막  나는 불이 온 줄 알고 막 훅훅 이래 뛰었다고. 그게 무슨 소용 있어? 그것 다  그게 귀신의 작용입니다. 귀신의 작용. 알아야 돼요.

 이래 가지고 성경은 또 말하기를 데데데데데데 방언, 방언 그거는 아무라도  미치면 방언합니다. 누구라도 미치면, 그 방언은 무엇이 방언 근본 방언온 어떤 게  근본 방언이냐 하면 근본 조경방언은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방언입니다. 그 방언은  한 나라 말로 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여러 말로 다 저거 나라 말로 다 들었어.

 방언의 은혜라 하는 것은 내 실력과 언변이 졸한데 내 무능한 사람으로서  성령의 능력이 와 가지고 나를 통해서 모든 능한 말씀을 하게 하는 그것이  방언의 능력이오. 또 내가 한 나라 말로 했는데 다른 사람이 저거 나라 말로  듣습니다.

 우리가 방언의 능력이 적어 그렇지만 방언의 능력이 많으면 그 사람이 자기가  모르는 말로 해도 그 말을 할 때 그 말이 들려지고 알아지고 느껴지게 된다  말이오. 그것이 성경의 말씀을 잘 전하게 하는 것이 방언의 능력이요 성경 말씀을  잘 들어서 깨닫게 하는 것이 방언의 능력이오.

 또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의 정확 무오를 믿게 하는 것이요 애착하게 하는  것이요 알게 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을 가치성을 점점 알아서 그  가치성에, 가치성에 전부 높은 것을 가져서 이 성경의 가치성을 점점 정확하게  아는 것, 이거 또 성경의 권위성을 알게 하는 것 그래서 성경대로 실행하고자  하는 그런 능력을 주는 것, 이것이 성령입니다. 이런데 성령을 전부 이거는 귀신이  말한 이 성령을 이래 가지고 사람들을 교회를 자꾸 어지럽히고 있다 그거요.

 그래서 시간 없어 성령은 다 말 못 하지만 그만 감추었던 만나는, 감추었던  만나는 문서 계시 속에 들어 있는 영감 계시를 가리켜서 말합니다. 왜 만나라  했는가? 이것은 영감의 양식을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양식인 동시에 영감이  양식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감동으로써 자기 양식 삼아. 이거는 인격의 양식이라.

 성령의 감동으로서 자기 모든 언행심사를 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먹는 것이요  인격의 양식입니다.

 감추었던 만나 주고 그러면 성령의 역사를 주니까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 터인데' 흰돌을 준다 이거는 이제 흰돌이라 말은 하나님의 형상,  그리스도의 형상,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인데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오시면 너희들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 된다. 증인 된다 말은 예수님은 원형이요 예수님과 같은 모형적 사람이  된다 그 말이오. 흰돌이라 말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게 되는 것이 그게  흰돌입니다. 그게 뭐이냐? 그게 성결이오. '흰돌을 줄 터인데' 하나님의 형상인  자기 변화를 준다 말이오. 하나님의 형상. 예수님의 제자를 준다 그 말이오.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이렇게 성령의 은사를 자기가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고 보니까 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형상이 됩니다. 예수님같이 성결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그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는데 받는 자밖에는 알 자가 없다'  새 이름이라 말은 새 운동이라 말이오. 새 운동. 새 행사라 말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자유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면 그거는 이제 새 이름은, 새 이름은, 새 하늘 새 땅 새 사람, 이미 있는  그것이 헌 것이라 말이 아니고 이미 있는 것 속에 이제 속에 알맹이가 되어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새것이라 말했습니다. 지금 있는 이 천지 속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어요. 이것은 다 불타서 다 이런 녹아지고 이제 새 하늘 새 땅은 이 속에  고귀한 것으로 있는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러면 새 이름 있는 것은  뭐냐? 예수님이 우리를 사활의 대속으로 우리를 대속한 것이 이것은 이미 모든  것이 다 알고 있는 다 환하게 나타나 있는, 나타나니까 겉어머리 나타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름은 행사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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