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1982. 4. 15. 목새

 

본문 : 엡 1:19-23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모든 존재 중에, 모든 존재 중에 제일 크신 분이 자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존재는 이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들입니다. 모든 발원이 이분에게서 나왔고 또  모든 존재가 이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고 또 이분이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모든 존재를 통치하십니다.

 이분이 제일 크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제일 능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크고  작은 모든 것을 틀림없이 정확무오하게 제일 잘 아시는 분도 이분이십니다.

세밀에도 제일 세밀하신 분이 이분이십니다. 완전에도 이분이 제일 완전이십니다.

이분 위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크고 권위 있고 능력 있고 권세 있고 모든 것의 관계를 제  이로 크게 가진 것이 무엇인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진리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이 뭐인가. 지성법과 지공법입니다.

지성법과 지공법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일 크신 분이 하나님이시요 그 다음에 큰 것이 지성과 지공의 법, 하나님의 뜻  곧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가지시고 모든 존재를 창조하셨고 또 창조된  것들을 보존도 하시고 관리도 하십니다.

 그 다음에 셋째로 귀하고 큰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목적인 교회입니다.

교회는 곧 목적 안에서 지은 받은 우리들입니다.

 큼의 순위 첫째 둘째의 큼의 순위는 영원 전 자존하셨고, 셋째 순위로 큼이 되는  교회는 첫째 둘째로 크신 존재가 역사해서 조성하실 존재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위하여 예정도 창조도 보존도 섭리도 하십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예정은 단번에 되셨고, 창조도 단번에 되셨고 하나님의  재창조 보존 섭리는 계속합니다. 영원히 계속합니다. 믿음 사랑 소망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는 영원함을 가리켜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작정은 단번에 되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십니다.

예정에서 하나님의 그 신성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신 첫째, 하나님의 모든 부요와 영광을  내어놓으시고, 피조물 되어 사람되어 오셔서 사생활 공생활 마지막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영원히 피조물의 형상으로 부활하신 이 부활하심은 한 말로  말하면 다 남김없이 다 희생하심인데, 다 주심인데, 다 주심이니 한없는 고통,  한없는 손해인데, 한없는 소원, 한없는 만족이십니다.

 주님이 이렇게 대속 하신 것은 한없는 손해요, 한없는 한없는 희생입니다. 이제  없는 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으로 실질적으로 당하신 일입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의 한없는 소원이었습니다. 이렇게 당하시는 것이 한없는  소원이었습니다. 한없는 소원, 한없는 만족, 한없는 만족 이런데 뭣 때문에 하는  일이냐 한없는 만족, 한없는 기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무슨 속성에서 이렇게 되었을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되었을까. 공의로, 정의로, 지혜 지식으로, 진실로,  거룩으로, 의로, 완전으로, 영원으로, 불변으로, 이런 하나님의 속성들로서 이렇게  되었을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중심의 속성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되었을까. ○○○조사님 답하십시오. 사랑. 백 점입니다. 사랑입니다. 사랑이기  때문에 이러합니다. 이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한없는 손해인데 왜 이 한없는 손해가 한없는 소원이 됐을까. 이 손해 가는 것이  왜 한없는 소원이 됐을까. 한없는 고난인데 한없는 고난을 왜 이렇게 만족히  여겼을까. 사랑입니다. 한없는 희생인데 한없는 이 희생이 어떻게 해서 한없는  기쁨이 됐을까. 사랑이십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가 받아 가지는 데에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걸어가신  이 발자취를 따라 걸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걷는 것만치 자기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걷는 그 양만치 자기는 사랑을 행했고,  사랑을 행한 것만치 하나님의 사랑의 그 양을 알게 됩니다. 이 길 외에는 절대  모릅니다. 인간들은 인간의 지식을 가지고 총명을 가지고 알려고 하지마는 그는  정반대로 알아져서 사망만 이루어집니다.

 영감과 진리에 순종하고 이럴 때에, 영감과 진리의 인도 받아 순종하여 자기가  이 걸음을 걸을 때에 사랑이 이러하구나, 사랑의 본질과 본성이 이러하구나. 땅에  있는 사랑은 아름다운 꽃을 보고 두고 가니까, 두고 가기는 아까우니까 꺾어  가지고, 죽든지 뭐 꺾어 가지고 내가 거머쥐고 가서 우리 집에 꽂아놔야 마음에  만족이 된 그것이 땅의 사랑입니다.

 인간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꽃 이니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소개했으면 좋겠다, 이 꽃이 피는데 지장 될 것이 없나,  다만 얼마라도 도와 줄 것이 없나 하고 돕고 가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영감과 진리의 인도를 따르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가 받는 것이요,  영감과 진리의 인도를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영감과 진리의 인도를 할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는 사랑이 생겨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받았고 그 사랑을  그에게 주어서 사랑이 생겨집니다. 사랑의 씨앗이 거기에 생겨져 가지고 사랑의  움이, 사랑의 움이 터집니다.

 이럴 때에 빈약하지마는 그 사랑의 대상을 위하여 원하는 것이 그것을 어떻게  요리해 가지고 내가 유익을 취하겠다는 그것이 아니고 어떻게 하면 그를 위해서  자기가 해로워 그가 유익 되는, 자기가 해로워 그가 유익 되는 해를 당하게, 그를  위하여 손해 가는 그 일을 하고 싶은 그 소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하여 고난받은 그것이 기쁨이 되고 고난받기를 원하는 체험이  되어집니다. 그를 인하여 희생하고 고난받은 것이 자기에게 만족이 되고 기쁨이  된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소원도, 그분이 왜 이렇게 타락을 예정하셔 가지고 타락해  가지고 당신 전부를 다 안 주면 안 되는 이런 일을 했을까. 억만분지 일만 줘도  될 터인데 하나님의 지성법과 지공법 둘째 권위가 다 주지 않으면 안될 수 없는  것을 조종하고 계시기 때문에 다 줘야 됩니다. 왜 이런 일을 뭣 때문에  자취했을까. 예수님이 왜 그 죽음을 자취했을까 하는 이것이 아주 외부 외부에서  생각하고 다스려 지은 것인지, 참 하나님이 타락을 예정하신 그 예정의 사랑에서  지은 것인지는 모르지마는 하나님이 타락을 예정하신 그 예정은 하나님이 무한의  손해 가는 것이요 무한의 고난을 받는 것이요 무한의 희생을 당하는 것인데, 다  하나도 없이 다 절단 나버리는 것인데, 희생을 당하는 것인데 이것이 무엇 때문에  무한의 소원이 되었으며 무한의 기쁨이 되었으며 무한의 만족이 되었던가.

하나님의 사랑의 그 속성에서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수많은 속성은 그것이 여러 속성의 종합이 아니고 한 속성이 여러  속성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도 좀 어려워. 여러 속성이 모아서 된 것이  아니고 한 사랑이 이럴 때는 이 속성으로 나타나고 저럴 때는 저런 속성으로  나타나서 내나 한 속성이 수많은 속성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속성이 뭐인가.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서 발원되었습니다.

 이러기에 이 사랑은 자기가 아무리 알려 해도 인간의 총명으로나 지혜로는  알지를 못합니다. 인간의 사랑의 그 심리를 연구해서 심리 아주 대학자가 된다  할지라도 저는 절대 모릅니다.

 인간의 사랑을 그려낸 사랑에 대한 저서를 아무리 많이 해도, 톨스토이는 사랑에  대한 저서를 많이 한 사람인데 그는 그렇게 많이 저서했지마는 이 사랑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부인합니다.

 이것은 다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형제들에게 줄  때에, 이거 모르면 전연히 껍데기로만 교인들에게 다 묻히고 헛일이라.

 요새 교회들이 껍데기에서 그러기 때문에 예수는 믿었는데 어떻게 믿을지를  모릅니다. 갈 바를 모르요. 자기 갈 길이 환해서 갈 길은 남아 있고 이리 가면  되는 줄 아는데 못 가는 것과 갈 길을 몰라서 다 걸어왔는데 그 다음에 어디로  갈까 모르는 것과 다릅니다.

 갈 길을 모르는 것과 갈 길을 아는 것이 달라 알고 못 가는 것이 달라. 알고 못  가는 것은 사죄를 받을 수 있지마는 갈 길을 몰라서 못 가는 사람은 만족과  교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잘 들어야 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그 사랑을  받은 것만 가지고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그 사랑을 줄 때에  알아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그 사랑을, 인간 사랑 이 아니오.

하나님의 사랑을 줄 때에 알아집니다.

 줄 때에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무한의 손해를, 무한의 고난을, 무한의  희생을 무엇 때문에 그분이 원하고 기뻐하고 만족했을까 하는 이것이 비로소  자기에게 알아지게 됩니다.

 자기가 사랑을 받아, 사랑을 받아 형제를 위해서 다 주었을 때에, 다 주었을  때에, 마지막 다 주어 형제를 사랑함으로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 같이 다  주었을 때에, 죽을 때에, 순교될 그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대로는 알 만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논리로 심리로 아무리 연구해 봤자 해석도 안  되고 알아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왜. 인간이 연구하는 사랑은 인간 사랑이기  때문에 인간 사랑은 땅에 있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인간 사랑을 전부 다 주워, 예를 들어 다 주워 모으면 그 땅에 있는  사랑이 예를 들어 좁쌀 서숙알만한 사랑이라 하면 그 사랑이 모아 놓으니까 이  서부교회 예배당 집채만침 많은, 그 숫자가 굉장히 많겠습니다. 그래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 심리를 연구해서 인간 심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짐작하려고 연구하려고 하는 자는, 인간 사랑을 열 개를 열람 했소, 열 개를. 열  개를 열람해 보고, 열 개를 열람해 보니까 이런 모양도 있고 저런 모양도 있고 긴  것도 있고 짧은 것도 있고 이럴 때 사랑한 것도 있고 저럴 때 사랑한 것도 있고  별별 종류들이, 별별 모양들이, 별별 역사들이, 별별 섭리들이 있습니다.

 있으니까, 열을 떡 연구해 놓고 난 다음에는 이자가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은  봐라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다.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열 가지 사랑을  말해 줍니다. 아이구 그 사랑 사랑 참 박식이다. 사랑에 대해서는 많이 아는  사람이다. 백 가지 사랑을 구경해 가지고 자기가 인식하고 난 다음에 그 백 가지  사랑을 말해요. 보라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것이 이런 것이다. 만 가지를 말해요.

억만 가지를 말합니다.

 그러면 억만 가지 말했으니까 그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유식합니까 무식합니까.

유식하요 무식하요. 유식하요 무식하요. 무식하다니. 앎이 많지. 억만 개나 아는데  왜 무식해. 억만 개나 아는데 유식하지. 굉장히 유식하지. 굉장히 유식한데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은 거기에 몇 개나 섞여 있습니까. 몇 개나 섞여  있습니까.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어. 하나도 없어.

 이러니까 그 사랑의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을 받는  데에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예, 어렵습니다. 어렵소. "세상 지혜가 하나님의  지혜를 미련케 여긴 것이라" 하는 것은 업신여긴다 말이요 이해가 안 된다  그말이오. 세상 지혜 지식이 내나 사랑도 되고 든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아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택자가 중생되어 성화를 받는 것만치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가 아무리 받아도 이것으로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이 사랑을 다른 사랑에게 줄 때에 압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이 순서가 아니면 안 돼. 네가 남의 죄를 사해 줘야 천부께서 너희 죄를 사해  준다 말은, 사해 준다 말은 해방시켜 준다 말인데, 내가 다른 사람을  해방시키려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해방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멸망에서 해방시켜 줍니다.

 해방시켜 주는 것이 뭐이냐.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인 이 지공 지성법을  알고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사랑만 알면 다 됐어. 이만하면 다 됐어. 완성이라.

이것을 알리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디헤서 제일 알기 쉬운 길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쉬운 길이 어디입니까. ○○○씨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쉬운, 제일 길에 알기 쉽고 바로 알고 하는 길이 어디 있소. 그 또 자면서 안다  해 봤자 율법밖에는 안 돼. 또 알지도 못하고 또 ○○○씨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데 있어. 이것이 백 점이라, 이것이라.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 그 사랑을 내가 받아 그 사랑 가지고 나도 이웃을 사랑할  때에 이것이 뭐이냐. 구원은 예수님이 날 구원하신 그 방편, 그 순서, 그 희생, 그  소원, 그 기쁨, 그 만족, 그 손해, 그 고난, 그 희생 이것이라야 구원하는데  여기에서만 알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 이것 뿐이요, 이것이 딴것이 아니라 이것이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 구원받아 가지고 내가 형제를 위하여 구원을  하려고 할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는 사랑이 생겨집니다.

 제가 주일학교 반사회 때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에게 큰 축복을 받았다,  모태로부터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착취해 가지고 모든 인간을 내 욕심대로 내  유익대로 내 소원대로 내 만족대로 내 중심으로 이용할까 하는 그것이 뱃속에  잉태될 때부터 그것이요, 나와 가지고 공부하는 그 전체가 그것이오. 참 눈이  뜨여야 되는데, 그것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 석가모니는 불교의 교주인데 그  사람도 내나 그것인데 방편이 고등방편이오.

 이러니까 이 체험자들이 볼 때에는, 사탕을 줘 가지고 살랑 살랑 달게서 그  아이에게 지금 모르고 가지고 있는 그 백만 원짜리 수표를 뺏들기 위해서 달콤한  사탕을 가지고 이래 주면서 업어도 주고 톡톡톡 두드리니까 그 아이에게는,  아이구 이분만이 나를 사랑하고 이분만이 날 좋아하는구나. 그러고 나니, 가지고  있는 백만 원짜리 수표를, 이것 뭐고. 몰라요. 날 달라. 그놈이 백만 원짜리 수표  그놈 뺏들려고 사탕도 사 주고 등어리도 두드렸어. 이것이 종교 창설자들  도덕가들 이것들입니다. 심판이 가장 커. 이걸 알아야 돼. 석가모니가 지옥 밑창에  가 있습니다. 모든 도덕가들이 다 지옥에 밑창에 가 있습니다. 그들이 포부가 커.

시야가 넓었어. 이러니까 어린 것들은 그걸 몰라.

 김일성이를 어버이라고 해 가지고 진정코 이분만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감탄이오.

지금 아마 국민학교 학생 정도에서는 마구 감탄해서 그저 꿈에도 김일성이 보일  것이오. 어버이 사랑, 어버이 사랑. 이제 나이가 그래도 40세나 30이 된 사람은  그 방송에서 외계 것을 들성 들성 들을 때에 그 무엇이 알려 줘 가지고  김일성이에 대한 의문이 생겨지고 의문이 생겨졌지. 의문이 생겨져서 문제들이  일어나지 지식만 가지면 모른다 그말이오. 그 학생들이 그렇게, 우리의 어버이  같은 사랑이 어디 있을까, 인식이 되어서 그래 알고 있는데, 그 사람이 정말로 그  아이들을 사랑함으로 그렇습니까. 순전히 자기 욕심이오. 땅위에 있는 모든  사상가, 도덕가, 종교 창설자들이 다 이런 것들입니다. 하나도 없어.

 없는데, 이제 자기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사랑은 여기에 있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보내신 이것이 사랑의 뭉텅이요, 신구약 성경이  사랑이요, 영감이 사랑이요,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예수님은 사랑의  뭉텅이인데,  에덴동산에서부터 해 놓은 그 사랑이 이 뭉텅이 사랑이 비쳐 나갔고 영원히  비치는 사랑인데, 중심되는 속 알맹이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외에 사랑이  없어. 이것도 큰 지식이요 지혜입니다. 이것이 측량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이 그렇게 쉬운 것인 줄 압니까. 이 사랑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 이 사랑을 다른 사람을 줘. 그것이 뭐인지 모르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라. 무엇인지 모르고 주님이 날 구원하신 구원으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려고  이렇게 하는 그것이 사랑을 준 것인데, 이 사랑을 주니까 사랑이 생겨져. 사랑을  주니까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이 생겨져 사랑의 대상이 생겨져.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내가 그를 사랑하는 사랑이 생긴다 말이오. 사랑이  생겨짐에 따라 생겨진 것만치 나에게 무엇이 생겨집니까. 사랑이 생겨진 것만치  나에게 무엇이 생겨지지. ○○씨. 내게 뭐이 생겨지지 ○○○씨 이거 뭐 반사들  해도 이거 모르는구나. 뭐이 생겨졌소, 여기. 희생이 생겨진다, 또. 기쁨이  생겨진다. 두 가지. 또. 소원이 생겨진다, 또. 만족이 생겨진다, 또. 여러분들이  체험이 안 됩니까.

 자, 그러면 여러분들이 지금 자기 맡은 학생을 인하여, 중간반 반사들이 자기  맡은 학생을 인하여, 중간반 부장들이 자기 맡은 중간 반들을 위하여 소원이  생겨집니까. 어떻게 하면 이것을 착취해 먹을까 하는 소원이 생겨집니까 예수님이  소원하신 그 소원이 여러분들에게 생겨집니까. 분명히 생겨질 것입니다.

 또 그 소원에 그 희생, 그 고난 당하면 후회가 됩니까, 후회가 됩디까. 기쁨이  되고. 또, 후회해서, 손해를 안 보니까, 손해 안 보니까 만족 있습디까, 손해 보고  나니까 만족합디까. 만족하지요. 이것이 생겨지게 됩니다.

 그럴 때에 내가 이를 사랑하는데, 그 학생은 나를 인정치 못해 가지고 믿지  못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지마는 내가 진정코 저를 사랑해 저에게 유익을 주지  저에게 해를 주지 않고 섞인 것 없이 그의 행복을 내가 원한다는 것을 자기가  앎으로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이 사랑에서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사랑이  변동 없고 요동 없고 의심 없고 다른 잡것이 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사랑으로 알지 딴것으로서는 모릅니다. 이것이 자기에게 차차  차차 생겨짐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만으로는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계명은 뭐인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  주님이 어떻게 사랑했는데.

 이러니까 이 사실에서 주님은 세상에 오셔 가지고 제일, 창조주 피조물 중에  제일 만족을 이루고 가셨다. 제일 쾌락을 이루고 가셨다. 소원 성취를 하고  가셨다. 제일 세상에 와서 만족과 쾌락을 누리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이런 설교를 수십 년 전에 할 때에 다른 사람들은 그 말이 억설 같아서 많이를  못해. 하면 다른 사람들은 우는데, 울어도 감격해 울어야 되지, 주님이  죽으시다니, 슬퍼 우는 것은 예수의 도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감격해 눈물이  나오지.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인데, 신성으로도 이상 없는 최고의 쾌락을, 최고의  만족을, 최고의 소원 성취를 이루신 분이 예수님의 신성이시요, 피조물로서도  최고의 만족과 쾌락을 이루신 분이 예수님의 인성이십니다. 왜, 뭐이기 때문에  그분이 그럴까. 그분이 본성이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사 목적을 정하셨고  이루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왜 타락을 예정했을까 예정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이 예정하셨습니다. 왜, 타락을 뭐하려고 예정을 하셨소. 예정하신 것은  우리에게 일방적 지식을 가지지 않고 하나님처럼 쌍방의 온전한 지식, 하나님에게  거역하니 어떻다는 지식 먼저 주시고 그 다음에 순종이 어떻다는 지식을 그  다음에 줘서, 순종이 어떻다는 지식을 먼저 주고 거역이 어떻다는 지식을 다음에  줬더라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하는 것인데 거역이 어떻다는 지식을 먼저 주시고  순종이 어떻다는 지식을 그 다음에 주어서 영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영생합니다.

 우리에게 지식을 온전케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 또 둘째는 뭣 때문에  이렇게 타락을 예정하셨을까. 하나님의 모든 것을 영원히, 하나님의 모든 것을  영원히 우리에게 남김없이 다 주시기 위해서 타락을 예정했습니다. 타락을  예정했소.

 다 주시다니, 다 주시다니. 하나님도 다 주시도록 했고, 하나님 다음으로 큰,  하나님 다음으로 큰 지공 지성법도 다 주도록 했소. 이것을 다 안 주고는 안 돼.

다 안 주고는 안 돼.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부를 다 안 주고는 안 돼. 하나님이 우리에게 첫째 지식을 다 주시고, 그  다음으로 당신의 자체와 당신의 모든 소유를 우리에게 다 주시기 위해서 타락을  예정했으니 이제는 안 줄래야 안 줄 수 없도록 다 주시고 샀어.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여기까지를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연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이구 내가 죽을  대신 죽었다 하는 이런 데에서만 아닙니다. 이보다 더 껍데기로, 주님이 나를  사랑하므로 그 악당들이 주님을 죽이실 때에 나를 사랑치 않고 나를 대행 대속  하지 않으면 그만 안 죽어도 될 터인데 죽어도 나를 대속 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 크시다. 나를 사랑했다. 눈물 쭐쭐 흘리는 것, 눈물을 흘리는 그  가운데는 어느 정도에서 어느 단계에서 있는지. 어디서 지금 기쁨을 가지고  있는지, 어디서, 이제는 나는 완전히 주의 것 됐다.

 타락으로 인해서,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것은 내것이 다  되었고 나와 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 다 되었고 이것을 명심해 가지고  연구를 하십시오. 이거 지금 절정을 양극을 말 했으니까 그 안에는 쭉 끼워  맞추면 돼.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타락을 예정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하나님의 구속의 광대하심을 깨닫고, 광대하심을 깨달아야 이것도  하나님의 사랑 저것도 하나님의 사랑, 모든 것이 하나님 밑에 있고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의 하나님의 뜻 밑에 있고 우리의 구속 밑에 있고 그 모든 것이 이용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미운 것 없고 두려운 것 전부가 내것이라. 전부가  내것이라 전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있어.

 이것을 표현해서 하나님의 구속의 광대하심을, 광대하심을 자꾸 기도할 때마다  말하는 것이 이것을 들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광대하심.

 보니까 모든 존재가 우리 구속 위해서 존재하고 있어. 모든 움직이는 그 순서의  움직임이 우리 구속 위한 예정이라. 김일성이도 내 구속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셨어. 그 모든 움직임이, 사상이니 이런 것도 내 구속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라.

 이것이 나에게 멀리 가깝게 소리로도 오고 직접으로 독침으로도 가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구원의 섭리라. 이 광대하심 속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라.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죽으신 것은 당신의 사랑, 당신의 뜻, 당신의 목적이  스스로 죽음을 자취하셨습니다. 죽으실 때에 이용된 존재들은 무엇인가. 이분이  이용했어. 하나님의 사랑이 이것들을 이용 했어, 하나님의 뜻이 이용했어. 하나님  목적이 이용을 했어.

 그때에 움직이는 힘들은 무엇인가 그것을 말씀했어. 움직이는 힘들을 말했어. 왜  이렇게 말하는가. 잘못하면 예수님을 죽인 것은 그들이 죽였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세력은 예수님의 세력보다 크다고 생각해서 지금도 순교 당하는 사람이, 이  세력은 크지마는 주님이 나 위해 죽었기 때문에 내가 지켜야 된다 하면 순교의  온전한 순교가 아니라. 온전한 순교가 아니라. 그것이 주님이,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고문 고형하는 것은 주님의 사랑이 당신의 목적, 당신의 사랑, 당신의  사랑의 만족을, 당신의 목적의 완성을, 당신의 사랑이요 당신의 목적이요 완성인  곧 나를 사랑함으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걸 이용하시는 것이라.

독침을 이용하시요, 공산주의 이용하시오. 그것을 이용해. 힘은 무슨 힘을  이용하는고. 공산주의의 힘을 이용하시지.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에 그  등용된 힘들이 지금도 다 등용됩니다. 그 때에 사용된 도구들이 지금도  사용됩니다. 그때에 사용된 도구가 지금도 사용되고 있고 그때에 등용된 그  힘들이 지금도 등용되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첫 열매요 우리는 그 다음에 계속된 열매라. 주님의 남은  십자가를 우리가 지금, 남은 십자가를 우리가 지고 가는 것이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려 함이라"  그러기에 부활주일날 주님의 죽으심의 이유를 첫째 달했고, 죽으실 때에 사용된  도구들을 말했고, 죽으심에 이용된 활용한 그 힘들을 말을 했고, 예수님의 투쟁을  말했습니다.

 첫째아담이 이 전투에 패전했고 둘째아담 예수님은 승리해서, 첫째아담이  패전하므로 사탄이 점령한 그 모든 것을 둘째아담이 승리하므로 다 교환해  왔습니다. 사탄이 다 내왔어. 사탄의 것이 없어. 택한 자들은 다 내놨어.

불택자들은 사탄의 것으로, 영원한 사탄의 것으로써 영원한 지옥에서 그들은  그들로 증거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결과는 이렇다 하는 것으로, 그것으로써 거역한 것은  어떻다는 것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면 이렇다, 하나님은 거역하면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께서 순종하면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는 것을 증거하고 두 증거가, 두 증거, 다 지옥도 증거 천국도 증거.

이래서 당신이 어떠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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