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1979. 7. 12. 목새

 

본문 : 요일 4:16 전반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여기에 믿는단 말은 받아 들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 사랑을  지식으로 알고 지식적으로 알고 믿었노니 받아 들었으니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내가( )하나님께서 사랑 하셔서 이 목적을 정하셨고  사랑하셔서 예정하셨고 또 사랑하셔서 창조하셨고 또 이 목적을 달성하려는 섭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른 욕망에 서가 아니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신 것은 우리가 있은지 후에 사랑하심 이 아니고  사랑하심으로 우리를 사랑 안에서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영원자존하신 홀로 계신 하나님이시오 이 하나님이 당신 밖에  있는 하나님이 역사하신 이 역사 전부는 다 사랑이 역사하신 사랑이요 사랑이  역사하신 사랑이요 사랑으로 자라가고 점점 충만해져 가는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이것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된 것이요 또 된 그것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고 움직이는  것들입니다.

사랑의 정반대인 미움을 하나님이 조정하신 것은 사랑으로 더 충만케 하려 하신  것이니 사랑으로 된 피조물이 사랑을 똑똑히 구별하고 인식하고 사랑이 생명과  평강인 것을 영원히 증거하여 협조케 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친히  역사하시고 사랑의 반동적 역사 역섭적 역사인 미움은 그 결과가 사랑을 위하여  존재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가 영원한 사망과 고통으로 증거하는 것은 사랑이  생명과 평강됨을 더욱 나타내고 있는 역사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모든 존재는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으로 움직이고 사랑을 향하여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의 완성을 사랑의 완성이요 피조물의 통일은 사랑의 통일이요 피조물이 가진  지능은 다 사랑의 지능이요 피조물의 움직임은 사랑의 움직임이라. 사랑은  하나님께 있는 것으로 하나님이 사랑을 주실 때에 이 사랑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그 역사가 미움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받는 것이 우리의 영생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역사로 생겨진 것이 우리의 전체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겨졌다. 하는 것은 우리 자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요소로  되어졌고 사랑으로만 영생하는 생애를 가진 존재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역사인 이 사랑을 받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중보를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목적 구원 예정 구원 섭리 구원 주님의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하나님에게 연결 사죄와 칭의와 새 생명의 이 구원을 영원히 힘입는 이것이  힘입고 힘입고 받아 힘입고 받아 힘입고 받아 힘입고 받아 힘입고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로 된 우리에게 나타난 우리에게 나타난 사랑의 기초적  기본적 사랑을 받는 것이요 사랑의 기초적 기본적 사랑을 받는 것이요 건설적인  사랑을 받는 것은 계속적인 현실을 받는 것과 현실받는다 말은 세상에 살아 있다  그 말이요. 계속적인 현실을 받는 것과 이 현실 안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이 계시  인도를 받는 것과 계시 인도 안에서 성신의 감화 감동을 받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건설 역사를 입은 자요 또 그 사랑을 받은 자요 우리의 중보되신 신앙 양성  일위이신 주님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되어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것이 새사람입니다. 이것이 참 자기입니다. 새 사람은 영생을 (한것)입니다.

이 사람은 형벌의 심판의 대적의 염려가 없습니다. 그는 온전히 생명과 영생과  평강과 기쁨 뿐인 것입니다. 왜 그 자체가 원형적 온전은 가지지 못했지마는  모형적 온전을 가진 자입니다. 모형적인 전지 전능을 가진 자입니다. 모형적은  영원 불변을 가진 자요 모형적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자입니다. 모형적인 영원  불변을 가진 자요 모형적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자입니다. 왜 포도나무 가지가  순전히 둥치에서만 나와 가지고 포도나무 가지가 순전히 포도나무 둥치에서 나와  가지고만 된 것이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포도나무 가지에 둥치에서 나오지 않은  무엇이 붙었으면 그것은 포도나무 가지를 해치는 것들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들  포도나무 둥치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만한 그 움이 터 나와가지고 그것이  포도나무 둥치에서 진액 받아 가지고 차차차차 자라서 어떠한 포도나무 가지가 된  것처럼 영생을 가진 그리스도인 우리 새사람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에게서 지극히  작은 움싹처럼 우리에게 돋아 나왔습니다.

제일 처음에 돋아 나온게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택함을 입고 하는  말은 우리가 있기 전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생겨진 게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우리가 생겨졌습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 구언 예정 구원 이 안에서 창조 구원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나가지고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고 나기전 생겨지기전 하나님의 목적이  있었는데 이 목적 안에서 예정이라는 이 예정 (얼키키 시작 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예정이라는 이 형태가 생겨졌습니다. 예정이라는 형태가 생겨진  그때부터 우리는 존재하게 됐습니다. 하나님 의지 안에 예정 안에 우리가 존재했고  하나님의 예정 안에 존재하기 전 하나님의 목적 안에 존재 했습니다.

우리가 존재했다 말은 그때 생겨졌다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뜻인 목적 그 안에 우리를 있게 하실려고 예정하고 창조 하실려고  하나님이 하신 그 하나님의 의지 안 작정 안 목적에 있었던 우리들입니다.

이것이 창조를 받았고 창조를 받아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목적으로 달서되는  하나님 처럼 완전하고 영원 불변의 이 존재가 되는 그 건설 과정에 있어서 존재가  되는 건설 과정 존재가 되는 이 건설 과정에 있어서 타락이라는 타락이라는 이  과정을 밟습니다. 타락이라는 과정을 밟아가지고 이제 다시 그리스도의 구속을  객관적으로 입어서 법적인 구원을 입었고 그 다음에는 중생의 구원을 입었고  예수를 믿게 되는 이 부르심의 구원을 입은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이 종교는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그들이 그들이 저희들끼리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만들어 낸 것이 이종교지마는 기독교는 창세전 모든 것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의 예정이 예정되기 전 하나님 목적 안에서 시발돈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그것이 기독교로 나타나셨고 그러므로 우리  자체는 우리가 영생하는 자체 이거 여러분들이 말이 무슨 말인고 모릅니다. 너무  범위가 넓어서 여러분들이 아는 그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좀 듣기가  (엇같이)어렵고 또 뭐인지 모르겠고 이럴 것입니다. 마는 정신을 딱 차려서 기억해  두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현실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또 여러분들이 몰라도  자라갑니다. 갓난아이가 뭐 뭣을 의식을 하고 자라가는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지마는 자라감에 따라서 알게 됩니다. 앎으로 자라가는게 아니고 자라감으로  알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우리를 붙들고 기르는  것만침 자라간 것만침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말도 좀 내가 하는 말은 거의 만들어 하는 것들이니 창작적인 그  단어고 고 술어기 때문에 좀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기 좀 안됐습니다. 그러나 듣고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영생하는 자기가 이것이 먼저  있었고 예사람 자기가 뒤에 있었습니다. 뒤에 있었으나 우리가 아는대로 이  외부에는 나타나기를 옛사람이 먼저 나타났고 새사람이 그 후에 우리가 알기에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의 주관 인식으로서는 옛사람이 먼저요 새사람이 뒤라 그러나  우리가 주관인식보다 먼저 있는 객관 인식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알려주신 그 지식을 인 그 지식으로서는 우리가 먼저 새사람이 먼저 있었고  새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옛사람이 하나 생겨졌던 것입니다. 위에서 우리 이  새사람 자아는 어떤 자이냐 순전히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게 붙어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순전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생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생겨졌는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만 생겨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로 되어진 사랑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랑의 뭉텡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로 창조를 받은 것인데 이것은 사랑의 뭉텡이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뭉텡이 사랑의 요소 사랑의 자체 사랑의 뭉텡이 이것으로만 되어있는 것을  우리는 언제든지 기억해야 됩니다. 사랑의 뭉텡이로 되어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창조해서 사랑의 뭉텡이로 됐다 그 말이요. 우리는 사랑의 뭉치요 사랑의  존재로 된 것이나 다만 하나님이 사랑의 존재로 되어 있는 사랑의 존재인 것과  다른 것은 그는 자존하신 사랑의 존재요 우리는 피조된 사랑의 존재인 이것이  다릅니다. 우리는 사랑의 존재 이것이 자기입니다. 사랑이 아닐 때에는 자기  생활이 아닙니다. 사랑이 아닐 때에는 자기생활이 아니요 사랑이 아닌 움직임은  자기 움직임이 아닙니다.

또 사랑의 자체가 아닌 그거는 참 자기가 압니다. 참자기가 아니고 옛사람 자기요  그 죽여야 될 자기요 그면 우리는 자체가 사랑인 또 모든 움직임이 사랑이요 또  소원이 사랑이라 두 쪽가리 세 가지로만 생각하입시다. 우리 자체가 사랑이요 또  원하는 것이나 깨닫는 것이나 경영하는 것이나 모든 영과 마음과 고깃덩어리의  움직임 말이요 역사 말이요 역사가 역사가 사랑이라 또 원하는 것이 소망하는 것이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라 그면 우리는 사랑의 뭉텡이입니다.

또 이것이 사랑으로 움직입니다. 또 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전체가 사람이요  그런데 이 사랑이 뭐이냐 하는 이걸 이제 알아야 됩니다. 요걸 알기 위해서 자꾸  오늘 아침에도 말하는데 그면 사랑이 무엇이냐 사랑이 무엇이냐 우리 자체가  사랑의 뭉텡이라니 우리 자체가 사랑의 뭉텡이라니 사랑의 뭉텡이란 말은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만을 바라보는 존재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을 받으리라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게 우리요.

하나님의 사랑만을 소망하고 있는 것이 우리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노력만이 하는 것이 우리의 노력입니다. 새사람의 노력이요. 이기 새사람의 역사라  말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커져가는 그것이 우리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커져가요 딴거로는 커져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커져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커져가는 자꾸 이 사랑을 말할 때에  어린 아이는 잘 듣겠는데 이 사랑은 말할 때 이제 미움이 사랑으로 가장한 그  사랑이 선입적 관념 이 사랑이 선입 관념이 되가지고 있고 선입적 지식이 돼가지고  있고 이것이 기존 지식이 되가지고 있고 이러기 때문에 자꾸 그것이 들어서  깨닫지를 못하게 합니다. 그게 들어서러

이러니까 그것과 혼돈을 시켜서 그 사랑을 사랑이라 하면 그 사람으로 탁바꿔  가지고 그 사랑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고만 그 사이가 끊어져서 모르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만 자라간다는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면 하나님의 목적으로만  충만해졌다 자꾸 그 목적이 커집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커지요 하나님의 목적이  점점(저희것이니까)하나님의 목적이 이것이 (저희것이 된다는)말은 이 저의  것이라는 (물체의 어느정도 완성돼있다 그말이요 지공하는데가 있으니까)물체가  있는 거 아니요. 형체가 있는 거 아닙니다. 형체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것이  인간의 지식으로 어떻게 되어지는 지식으로 되어지는 이 지식의 형태가 있는 것  아닙니다. 물체가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니요 지식의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니요.

이것은 감각의 형체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의 그 목적이 점점 자기에게 충만히  이루어져서 자기도 모르게 그 목적으로 커집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 목적으로 커진다 그 마은 자기도 모르게 그 목적이 이제 목적이  자기에게 완성이 돼간다 그 말이요 완성이 돼간다 그 말은 자기가 따로 있고  목적이 객관에서 오는 (이것거치므로)완성이 된다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목적  그것이 완성이 되어지는 그것이 자기라 그 말이요 네 요걸 좀 깨닫기가 좀  어려운데 이것은 세계에 지금 새로 나가야 할 이 조직 신학이요 신학입니다. 세계  새로 나가야 될 조직 신학이요 신학입니다. 세계 새로 나가야 될 조직 신학이요  신학입니다.

여러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말했고 이 영감을 받아서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마는 칼빈과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이 ( )한 뭉치가 됐습니다)칼빈같은  사람이있다 그 말은 영감 받은 사람들이 많이 증거를 했지마는 그것을 인간들이  알아 듣게 그렇게 조직하고 망라 하지를 안했기 때문에 일반에게 공개되지 안았다  그 말이요. 그러나 속에(신령한 기)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으로  살아가고 이제 그 다음에 알미되는 그것이 창조로 자라가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창조로 자라갈 것이요 창조로 자라간다 말은 이제 그 영이 점점  충만해지고 그 다음에는 그 마음이 점점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창조에 이제 이것을 지식적으로 더 가지게 됩니다. 지식적으로 더 가지게 되고 또  감정적으로 더 가지게 되어서 자기 감정에 하나님의 목적 구원이 자기 구원이 되어  있다는 하나님의 예정적 구원 창조적 구원이 벌써 자기 구원이 되었다는 이 관념이  이 사상이 자기에게 더욱 더 견고해지고 커지는 이것이 이제 창조에서부터 시작된  마음 세계에 와가지고 된 것입니다.

이래서 그 다음에는 자기에게 죄를 대항하는 힘이 차차차차 이제 커져 갑니다.

죄를 대항하는 힘이 커져갑니다. 또 하나님과 동거동행 이것이 차차 커져 갑니다.

그면 죄를 대항하는 힘이 커지고 의를 건설하는 힘이 커지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피동되는 이 힘이 커지는 이것이 이것이 커지는 이것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커지는  것입니까?

이것이 커지는데 이것이 커지는 이것이 무엇이 커지는 것입니까 신 용인 목사님  창조가 커집니까? 네 이제 서 원균 사랑이 커지는 것이지 창조가 커지는 거 아니요  사랑이 커지는 겁니다. 사랑이 커지는 것이 사랑을 지금 (알리기 위해서)말하고  있습니다. 그면 사랑을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이제 말한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요 그러면 우리가 사랑으로 커지는게 우리가 커지는 것인데  사랑으로 커지는 것은 무죄로 커지는 것입니다. 죄없는 무죄가 커지고 죄를  대항하는 그 존재가 죄를 대항하는 자로 커지는 것 죄를 대항하는 자로 커지는 것  또 의를 건설하는 자로 커지는 거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이 피동으로 커지는 거  이것이 사랑자체로 커지는 것이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크게 역사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해 가지고서  사랑으로 창조된 것이 사랑으로 점점 커졌습니다. 이것으로 커진 것이 사랑으로  커진 것이요. 이것이 곧 우리들입니다.

이것으로 커진 것이 사랑으로 커진 것이요. 이것이 곧 우리들입니다. 이거 외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이거 외에는 사랑이 없소 왜 사랑은 완전인데 사랑은 오늘도  사랑이어야 되고 내일도 사랑이어야 되고 금생에도 사랑이어야 되고 내세도  사랑이어야 되고 사랑이어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랑은 어떤 것이냐? 사랑은 상대방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위하는 것입니다. 자기 기쁨이 상대방에게 주는 것이 자기 기쁨이  상대방에게 있고 자기 소원이 상대방에게 있고 자기 행복이 자기 행복이  상대방에게 있고 자기의 성공이 상대방에게 있습니다. 자기의 승패가 상대방에게  있고 자기의 기쁨과 슬픔이 상대방에게 있고 자기의 소망과 낙망이 상대방에게  있고 자기가 자체(가 있는데)자기의 전부의 이 움직임은 상대방에게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이것이 사랑이요. 그면 자기는 자기의  움직임은 상대방에게 있고 또 상대방들의 그 움직임은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요것을 비유해서 말할 때에 다른 것 보다도 제 한 몸둥이 한 몸에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지마는 이 지체와 저 지체의 관계인 지체와 저 지체의 관계 눈은 눈을  위해 있지 않습니다. 눈은 전신을 위해 있습니다. 눈은 전신을 위해 있소 눈을  위하는 자는 눈은 눈을 못 위합니다. 눈을 위하는 자는 눈 아닌 전신 그것들이  눈을 위합니다. 눈에 오는 (눈을)전신에게서 오요 눈에 오는 신경은 전신에게서  오요. 눈에 보호는 전신에게서 오요 눈에 건강은 전신에게서 오요. 눈의 영양은  전신에게서 오요 전신에서 왔는데 이 눈은 전신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눈은 전신에게 쓰여 지는 이용물 이 눈은 전신에게 쓰여지는  이용물 전신은 이 눈에게 쓰여지는 이용물 쓰여진다면 전 지체는 전 지체는 전부가  쓰여지는 것이요 전 지체는 전부가 쓰여지는 것이요 쓰여진다고 하면 이 한  지체는(전)전신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이요. 이용만 당하는 것이요 이용만 당하는데  이 지체는 전신에게 이용하는 존재입니다. 이 지체가 전신에게 이용을 당할 때에  이 지체는 전신을 잉용하는 존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으로서 이제  비유했습니다. 성경에 이랬는데 시간되서 여러분들이 그래도 고 핵심을 잡지 못함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이 참사랑이 사랑을 모르는 것이 그 사라의 그 정의를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요걸 (콘게 어짜든지)잡아요. 나는 사랑의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사랑이 나의 생애 법칙이요 사랑이 나의 생명이요 능력이요  생애 법칙이요 책이밍요 의요 이 사랑 이것이 영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으니 이거 외에는 사랑이 안되 이거 외에는 사랑이  안된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거 외에는 사랑이 안된다 그말은 뭐이냐 면은  이거 외에는 상대방을 보호할 수가 없다 그 말이요 또 이거 외에는 사랑이 없다 그  말은 이거 외에는 시간과 공간과 존재와 종류에게 제한을 받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 말입니다 네 제한을 받지 안한 것이 없다 그 말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사랑 이 외에는 사랑이 없다 그 말은 이거 외에는 영원 불변의 존재가  없다 말이요 영원 불변의 존재가 없소 영원 불변의 존재가 없소 완전한 것이 없다  말이요. 상대방을 영원히 좋게 하고 위하고 복되게 하는 것이 없다 그 말이요.

이거 외에는 완전성이 없서 영원성이 없어. 불변성이 없어. 전능성이 없어.

전지성이 없어. 영생성이 없어. 이것만이 그기라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는 사랑은 그거는 이것을 가지지 안했기 때문에 이제  그 사랑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면은 그 사랑은 변해집니다. 네 아무리 좋아서  날뛰봐도 변해지요. 변해집니다. 나중에는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그 사랑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생겨진 것은 이 사랑이 변할 때에 고통으로  이 사랑이 없어질 때 그것으로 죽습니다. 이 사랑이 없어질 때에 왜 그 사랑 그게  좋은 거 같앴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것 때문에 슬프고 그것 때문에 고통이 오고  그것 때문에 외롭고 그것 때문에 이제 그 다 절망 낙망이 되고 그것이 들어서  역사한 역사가 전부가 멸망이요 전부가 멸망 낡아지지 쇠해지지 더러워지지 왜  거기에 전능이 없거든 왜 이기 낡아지고 쇠해질까(그런 걸 취했을까)전지가 없기  때문에 제딴에는 좋은 줄 알았지마는 그것이 몰라서 그래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 가입시다.

이 사랑의 정의를 나타내서 이것을 바로 누가 잘 증거하면 문서로 조직을 해서  증거하면 고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여기에서 저게서 더 창조적으로 발전적으로  나가는 그거는 뭐 모른다고 깨닫은 사람이 없을기다 그말이요 문서로 조직해서  요걸 만들어 가지고 체계적으로 딱 해 놓으면 이제 고게까지 오는데는 사람들이  좋은데 고게 하지 오는데는 사람들이 좋은데 도움이 된는데 고게까지 와가지고는  고만 고게서 갇히 버리가고 고 다음에는 선을 넘어가기가 어렵다 그기요 이제  칼빈주의 학자들이 다 칼빈주의까지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마는 칼빈주의 그 함정  속에 벗어나지를 못해 벗어나지를 못하니까 고만 그게서 중단되 버리고 있소  그러기에 칼빈은 지금으로부터 3,400년 전에 이제 그 세대를 감당한 그 교리요  신조지 오늘에 오늘을 감당한 교리와 신조는 아닙니다.

네 그저 기본적으로 기초적으로 (외우는 것이지 오늘의20세기의 이 원자 세계를  감당하는 그런 요소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칼빈이 이 사랑에 대해서 사람의  영의 지식에 대해서 논리를 안했소 논리를 안했어. 못했어. 왜 그 시대는 그게  필요 없소.

이러기에 아주 삼위일체도 참 그 사도시대는 삼위일체를 사도들이 몰랐소 알필요가  없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 다음에 속사도 교부들도 삼위일체를 몰랐소 속사도  교부 그 후세대 사람 비로소 주후 200년이 지난 그때부터 아! 이 삼위일체에 대한  이 교리를 바로 이것을 정의를 세워 가지고 이래 나온기라 이래 가지고 그때 많은  이단들이 나와서 교리를 세원 그것들입니다. 그뒤에 많은 사람을 요 현재에 말한  요 사랑까지 끌어오는 데에는 요것을 조직한 고 문서와 시켜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이걸 보고서 요게까지 오게 되었구나 요소리는 쉬운데 조심할 거 요기까지는  왔지마는 그 다음에 성경이 시대를 따라서러 시대에 세상이 바꿔짐에 따라 세상을  감당할 수 있는 요것을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데 요게 갇히가지고 못나가는

그러기 때문에 칼빈주의의 이 신조와 교리를 요것을 가지고 사랑을 이끌어 온  사람은 고게 갇혀 버리고 고 다음 것을 연구하지 못한 고것이 폐단이요 고것을 다  초월해서 고 가치를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고 그것보다 무한한 성경이  그것보다 무한한 영감이 우리를 인도하고 있으면 요 인도를 받아야 된다는 요것을  아는 사람은 거기 갇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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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 하나님의 사랑/ 요한일서 3장 1절- 4장 1절/ 1980. 3. 3. 월새벽 선지자 2016.01.03
403 하나님의 사랑/ 요한일서 4장 7절-21절/ 1981. 4. 10. 금저녁 선지자 2016.01.03
402 하나님의 사랑/ 에베소서 1장 19절-23절/ 1982. 4. 15. 목새벽 선지자 2016.01.03
401 하나님의 사랑/ 요한일서 3장 1절-4장 1절/ 1980. 3. 2.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3
400 하나님의 사랑/ 요한일서 3장 1절-3절/ 1980. 3. 2.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3
» 하나님의 사랑/ 요한일서 4장 16절 전반절/ 1979. 7. 12. 목새벽 선지자 2016.01.03
398 하나님의 사랑/ 요한일서 4장 16절-21절/ 1979. 7. 13. 금새벽 선지자 2016.01.03
397 하나님의 사랑/ 고린도전서13장 1절-3절/ 1989. 8. 25. 금저녁 선지자 201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