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

 

1989. 8. 25. 밤

 

본문: 고린도전서13장 1절∼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묵상기도)  우리를 주님의 사활의 대속으로 살려 주셨고 또 이 시간에도 사활의 대속의  은혜를 입혀 새롭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구비케 하시고, 자라게 하려 하사 이  시간을 주시고 우리로 참가케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참 영원을 향하는 땅위에  있는 시간은 가장 귀중한 보배로운 시간임을 압니다. 이는 허무한 것들로  참이시며 영영이신 주님과 주님의 것으로 바꾸어 가질 수 있기 때문인 줄을  압니다.

 오늘밤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 하시고 천하에 어데 있든지  대속함을 받은 성도들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주님이 긍휼히 여겨 주사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 이놈을 원수인 줄 알고 이놈을 죽이는 능력을 주시고 원수로  항상 깨어 투쟁하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주님이 우리에게 이 은혜로  더하여 주시고 우리 안팎을 깨끗게 치료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선지자선교회  지난번 거창 집회 때에 사랑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는 배암의 사랑이라 그렇게 우리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또 사랑은 우리  사람에게 제일 필요하고 유익하고 보배로운 것이 사랑이라고 배웠습니다. 또  사랑은 우리 인류에게 가장 해독되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또 배웠습니다.

 그러면 배암의 사랑은, 우리 사람들에게 해로운 것이 많이 있지마는 그 중에  제일 해독이 강한 것이 세상에 이런 저런 모든 행사보다 배암의 사랑이요 또  우리에게 가장 유익하고 복되고 보배로운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사랑을 잘 구별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그전 집회에서는 배암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꺼풀은 같으나 속에 알맹이가 다르다는 것을 또 많이  가르침 받았습니다.

 여게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과리가 되고 꽹매구 그거는 소리는 뭐 정얼정얼 잘납니다. 그러나  거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말을 잘하고 또 심지어 천사의 말을 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 하는 말씀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생명이  없다.

 또 '예언하는 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아무리 지식이 능하고  온갖 지식을 다 통달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은  아무리 모든 구비한 지식을 가지고 어떤 높고 깊은 그런 진리 지식을 다 안다  할지라도 생명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하는 그말입니다.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산을 옮길 만한 그런 믿음을 가진다 할지라도 생명이 없으면 아무 소용  없다 하는 그런 말입니다.

 또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게 있는 모든 절  가지고 다 구제를 하고 또 내 몸을 상대방을 위해서 불사르게 제물로 내어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생명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말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나기도 뭐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을 통해서 났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모가 서양 사람도 있을 것이고 동양 사람도 있을 것이고 뭐 흑인도 백인도  황인도 온갖 모양의 사람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가 출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에게서 다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낳았습니다. 또 이런  것이 필요하고 요긴하고 중요하다, 이 세계가 좋다 저 세계가 좋다, 이 권리가  제일이다 저 권리가 제일이다. 뭐 세상에서 권세 잡은 것들도 많습니다. 또 아주  살기 좋고. 거처 좋고, 화려하고 편리하고 한 그런 생애의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살기 좋은 모든 것이 많아. 또 지식도 온갖 지식이 있어, 운동도 작용도 이  세상에 온갖 것들이 뭐 별게 다 있습니다. 참 온 세계가 움직일 만치 이게 좋다  저게 좋다 해 가지고 이십세기의 찬란한 그 문화에는 모든 사람들이 녹지 안할  수 없을 만치 필요하고 요긴한 것 꽉 찼습니다. 이래서 그런 것이 하나 새로운  발명이 되면 모든 인류들이 굉장하게 다 찬양하고 환영하고 그리 몰려듭니다.

 또 이런 종교 저런 종교 뭐 별 종교들이 많습니다. 이래서 자기네 종교는 교도  수가 세계 제일 많다, 또 이런 지방에서는 이런 도가 세력을 부리고 아주 우세를  가지고 저런 또 지역에서 는, 저 나라에서는, 그 나라에서는, 모두 각각 이런  것들이 굉장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식도 굉장한 지식들이 많고 찬란한 뭐  웅변들도, 또 시가들도. 또 모든 논리들도, 사상들도, 주장들도, 지식들도 온갖  것들이 많습니다. 많은데,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 모든 것이  마지막은 어디로 가는가? 다 하나님 앞으로 가게 됩니다. 다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김일성씨도 하나님 앞에 가서 서게 되고, 등소평씨도 하나님 앞에 서게  되고, 뭐 세계에 그저 문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사업적으로, 또 재벌적으로 뭐 크고  작은 모든 것이 다, 크든지 작든지 먼지만한 보스래기든지 할 것 없이 이 모든  것이 마지막에는 다 하나님 앞으로 몰립니다. 하나님 앞에 전부 몰려듭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지혜로운 것같이 보이지마는 그들이 동양인이 인정하면 된 줄 알고, 또  문명인들이 인정하면 된 줄 알고, 많은 다수가 찬성하면 된 줄로 이렇게 알지마는  그런 것은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 앞에 마지막 그 앞에 서야 되는데 거게까지  가는 데에 이런 놀음 저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지 그것이 끝까지 계속되는  놀음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제것 좋다고, 장사꾼들이 내 물건 좋다고 이거 사러 오라고 뭐  오만 광고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주장하는 것들도 많고 또 기이한 재미 있는  것들도 많습니다. 뭐 재미 있는 것도 많고 아주, 보지 아주 알롱달롱 보기 좋게  아주 아름다운 것들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고 하지마는 그런 것은 우리를  책임지지 못합니다. 책임지지 못하고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가야만 합니다.

과학자도 가고, 문학가들도 가고, 도덕가들도 가고, 뭐 이종교에 회회교니 불교니  하는 그런 교도야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도 다 주님 앞에 가야 됩니다. 주님 앞에  가서 거게서 결정되는 대로 영원한 보배를 하나님이 시키십니다. 이 세상은  백오십 세 이백 세를 살고 구백여 세도 산 사람이 있었지마는 그런 것을 다  말하기를 하루밤과 같은 짧은 기간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영원에 비하면 천  년이라도 그거 하루밤도 안 되는 셈입니다. 조만간에 다 그분 앞에 다 서는데,  서면 그분이, 그냥만 설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언행심사의 모든 행동을 한 것을  낱낱이 행동록에 기록한 대로 그대로 심판을 해서 판결을 지웁니다. 판결 지우면,  거게서 판정 받으면 억만 년 보응이 아니라 영원 무궁의 보상과 보응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소용 없다 여게 몇 가지만  말했는데 아무리 말을 잘해도 그게 다 소용 없고, 말을 잘해도. 그것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고, 능한 지식이, 또 이런 저런 모든 산을 옮길 만한 그런 믿음이  나를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구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게 말씀하신 것이 사랑이  아니면 전부 다 헛일이라 그말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헛일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 배암 사랑 둘이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다 헛일이다 하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 앞에  서는 이 문제를 해결짓지 못하기 때문에 헛일입니다.

 그러면 우리 모든 만물이, 만인간이 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가지고 그분이 모든 피조물들을 심사할 것인가? 간단하게 해서 심사하는 것은  쉽습니다. 심사하는 것은 네 가지로 심사합니다. 하나님의 법도에 하지 말라는  것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한 세 있나? 하라는 것을 아니한 것이 있나? 또 하나님만  바라보고 그만 오직 섬기라고 말했는데 그분을 섬겼나 안 섬겼나? 또 하나님만  소망하고 그분에게서만 얻어 가지고 살도록 했는데 이 일이 바로 됐나 안 됐나  요 네 가지 가지고 심판을 합니다. 하나님이 전인류를 요 네 가지 가지고 심판을  합니다.

 사람이 뭐 아무리 건강하든지 젊든지 그 사람이 마지막은 죽음으로 끝을 맺고,  죽음으로 끝을 맺는 것은 곧 하나님 앞에 세상살이를 끝내고 심판 앞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전인류는 건강하든지, 젊든지 늙든지, 뭐 강하든지 약하든지,  세상에 어떤 것이 있든지 어쩌든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야 하는데 하나님은 몇 가지로 심판하는가? 간단합니다.

네 가지로 심판합니다. 죄로 심판하고, 의로 심판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로  심판하고, 또 그가 어데다가 소망을 두며 무엇에게서 얻어 가지고 사느냐? 그의  소망과 얻는 것이 어떠하냐, 하는 요 데 가지 가지고 심판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 잘하는 것도 좋고, 유식한 것도 좋고, 또 믿음 있는 것도 좋고,  다른 사람을 구제하고 뭐 희생하고 그런 것도 좋고, 아름다운 것도 좋고, 뭐 오만  것 다 좋지마는 우리가 이대로 살다가 그만 끝이. 나는 것 같으면 이래 살아도  저래 살아도 다 좋고 괜찮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나고 못나고 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되는 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참 문제인 것입니다.

 이 문제만 없으면 뭐 이래도 살고 저래도 살고 좋지마는 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사는 것이 지금은 웅변으로 가루기도 하고,  수단으로, 꾀로, 뭐 거짓으로, 복술로, 위협으로, 또 자기 온갖 장기를 가지고 이래  할 수 있지마는 그분은, 그분은 도무지 아무리 매수할라 해도 매수를 못 합니다.

그분은 아무것 가지고도 매수를 못 합니다. 또 그분은 속이지도 못합니다. 또  그분은 뭐 위협을 준다고 위협을 당하거나, 위협도 당하지 않습니다.

 또 많은 무리들이 전부 단합해 가지고 어떻게 주장한다고 해도 거게  털끝만치라도 거게 피동되지 않고 꼭 당신은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알고  바로 판단해서 심판하는데 그 심판은 딴것 없습니다. 그 심판은 어짜든지 죄가  있나 없나 하는 그것입니다. 죄가 있나 없나? 죄가 있나 없나 하는 것은 이  사람에게 모든 면으로, 자기 개인이나 자기와 관련된 모든 것이나 모든 면으로  죄가 있나 없나? 죄라면 삐뚤어졌다 말인데, 삐뚤어진 게 있나 없나 그것을 첫째  심판합니다. 삐뚤어진 게 있나 없나? 그러면 천하를 차지하고라도 삐뚤어진 게  있었으면 천하 차지한 그까짓 것은 하루밤과 같이 잠깐 차지하고 영원 무궁토록  그것 때문에 삐뚤어진 그 벌을 받아야 합니다.

 또 둘째로는 이 사람이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에, 전지의 입법에 걸리는 게 있나  없나? 전지의 입법인 그 심판에, 심판이 인정하나 안 하나? 전지의 입법에서 이  사람은 옳다고 전지의 입법이 이 사람을 찬성하고 옹호해서 전지의 입법이 이  사람을 책임지고 안보할 수 있는 전지의 입법인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보호를  받나 안 받나 하는 이것이 인제 둘째 문제입니다 공심판에 보호를 받나 못 받나?'  뭐 천하 인간에게 암만 그래 쌓아도 공심판에서 그만 정죄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또 이 사람이 영원 자존하신 대주재이신 이 하나님과 서로 친합이 됐나? 이  하나님하고 잘 지내나 못 지내나? 이 하나님과 한 덩어리가 돼 있나 이 하나님과  서로 삐뚤어져 가지고 있나? 하나님과 그 사이가 벌어져 있나 하나님과 아주  친합돼 있나 그거 문제입니다. 셋째는 그 문제요. 다른 것 다 잘돼도 하나님과  삐뚤어졌으면 그만이야. 그분이 대주재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주권자이신데. 이제 이 세 가지 문제가 있고,  또 넷째로는, 이 사람이 뭣을 얻어 가지고 살 사람이냐? 그러면 이 사람이  영원히 없어지지지 아니할, 얻어도 있고 얻어도 있고, 받아도 있고 받아도 있고  영원히 영원 무궁토록 받고 받고 받고 받고 아무리 내가 받아서 써도 끝이 없는  그런 자본주와의 관계가 맺어져 있나 하는 이거 네 가지 가지고 심판합니다.

여러분들이 가만히 생각해 봐요. 이 네 가지 문제 외에 딴 문제가 있겠는가?  그래서 내가 이번에 가 가지고. 요새 무슨 뭐 사회주의니 뭐 민주주의니 뭐 이래  쌓는데, 사회주의라 말은 민주주의라 말이오. 반대하지만 그거 아닙니다. 한가지요.

지금 사회주의와 민주주의가 하나라 하는 것을 그것을 아직까지 모르는 사람은  지식이 엷고 좁아서 그런 것입니다.

 사회주의하고 민주주의하고 서로 싸우는 것은 야바위 놀음하는 사람들아 저거  한편이면서 야바위 놀음 해 가지고 제삼자를 속여 먹을라 하는 저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을 속이기 위해서 민주주의니 뭐 사회주의니 이렇게 서로 반대 같아서,  '우리 기독자는 그라면 어데 속해야 되느냐?' 이러면 얼른 민주주의에 속해야  된다고 이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해방 직후에 제가 해방한 지 한 오륙일 지낸 후에 거창읍에를 왔습니다. 오니까  거게 모든 청년들이 모여 가지고 두성거리면서' 이제는 우리는 민주주의에 속해야  되느냐 사회주의 이 공산주의에 속해야 되느냐?' 그들이 그래 말해요.

 내가 말하기를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나 그거 전부 통틀어서 한 말로  말하면 인본주의다. 인본주의인데 그거는 뿌럭지가 하나요 한덩어리다. 껍데기  이름만 다르지. 우리는 그게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는  신앙주의다.' 그라니까 그들이 그때는 못 들어서, 항상 저는 그때부터 별스러운  소리 한다고 주목을 하지마는 그래도 산 사람들은 저를 따랐습니다.

 기독교는, 기독교는 자본주의입니다 기독교는 자본주의요. 자본주의는 나쁜 줄  알지만 기독교는 자본주의고, 자본주의인데 기독교의 생활은 무슨 생활합니까?  기독교의 생활은 시은 생활하는 것입니다. 시은 생활. 하나님이 도성인신 사활의  대속한 것이 다 시은 생활입니다. 이렇게 자본주의가 아니면 시은 생활을 못  합니다. 그런 건 조금 뭐 그리 중하지 안한 그런 모든 지저분한 말들입니다.

 이래서, 우리 사람은 어쨌든지 잘났든지 못났든지, 네가 무신론을 주장하고  하나님 안 계신다고 무신론을 주장하고 무슨 네가 놀음을 하고 있든지 너는  조만간에 주님 앞에 서야 된다. 주님 앞에 서서 네게 대해서 하나님이 네 가지로  심판하실 때에 너는 이 심판을 받아야 된다 하는 그것을 우리는 알고 또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해 줘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다  소경이요, 모가지 끊긴 닭이 무슨 정신이 있습니까? 뛰기만 뛰지. 뛰는 것은 안  죽을라고 뛰는 것이오. 그러나 그거. 안 죽을라고 뛰지마는 그게 죽는 놀음입니다.

닭을 목을 탁 끊어 놓으면 이놈이 막 풀풀 뛰는데 어북 사람 한 반 길쯤 뛰어  오릅니다. 이렇게 날뛰지마는 그게 저는 안 죽을라고 하는 것인데 실은 그게 죽는  지금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 사람은 어떻든지 주님의 심판 앞에 서야 된다 하는 요것을 우리가 이미  알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줘야 됩니다.

 이런데 사랑이 없으면 뭐 지식 헛일이라, 또 말 잘하는 말 헛일이라 하는 그거는  모든 것 다 헛일이라 말이오. 또 예언하는 능이 있어서 모든 비밀을 안다  할지라도 그것도 다 소용 없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소용없고, 또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희생에서 자선 사업 구제 사업을 해도 소용이 없고,  박애주의로, 인류를 사랑하는 박애주의로 해도 소용없고, 모든 생활은 헛일이고  문제는 뭐이냐? 하나님 앞에 다 서게 되는데. 죄의 문제, 의의 문제,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 앞으로 네가 어떤 보급을 받아 가지고 어데 속해서 무엇을 받아  가지고 네가 지금 사느냐? 자기의 영원한 보급줄, 자기가 영원히 받아 가지고  사는 자본주 말이요, 자본줄. 자본 줄기. 자본 줄기가 뭐이냐 하는 이것이 최대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여게 한 말로 말해서 사랑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배암의 사랑은, 배암의 사랑은 죄를 없애고 죄에서 해방시키는 사랑이 아니고  죄를 짓는 사랑이요 죄를 만드는 사랑입니다. 배암 사랑은 죄를 만드는 사랑이요  죄 속으로 끌어들이는 사랑이요, 배암 사랑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인간 저거의 뜻을 주장하고 인간들의 뜻을 따라서 그 일을 지금 성취시키는 것이  배암의 사랑이요,  하나님과 떨어지고 하나님과는 연결을 끊고 인간 저하고 연결해서 인간하고  인간하고 단합하고, 하나님하고 결합시키는 이 일을 방해하고 인간하고 단합하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얻고 얻어서 자기의 보급줄을, 자기의 모든 것에,  생명이라든지 지능이라든지 행복이라든지 평강이라든지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줄기에서 받아서 가지지 안하고 인간에게 받아서, 인간에게  받아서,  '우리 보급줄은 한국에 재벌이다. 또 세계 어데 제일 권세 있는 사람이다.

대학자다.' 네까짓 게 암만 그래도 그 줄기 가지고는 안 된다. 심판이 와도 끊을  수 없는 대주재에게 연결해 가지고 대주재가 내 원천이 돼서, 그분이 내 창고가  돼서, 그분이 내 젖줄기가 돼서, 심판이 와도 항상 젖이 줄줄 나오고, 온 천하가  다 불살라져도 생명이 줄줄 나오고, 행복도 줄줄 나오고, 평강도 줄줄 나오고, 또  지혜도 능력도 줄줄 나오는 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이 보급 관계,  내가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에게 또 얻어 가져서, 그 무한한, 무한한 분에게 내가  무한한 그 젖줄기에 입을 딱 대고 무한한 젖줄기를 뽈끈 물고 빨면 얼마든지  나오는 이 연결이 아니면 다 헛일이라 말이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이 사랑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평가적 사랑이라 하는 말은, 그 평가적 사랑이라 하는  말은 하나님의 사랑의 그 가치를 지금 논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은  따져보니까 사랑이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사랑은 따져보니까 사랑입니다. 또  분석해 보니까 사랑입니다. 자꾸 세월이 지내서 억억만 년 지나가고 자꾸 이와  같이 가고 가고 닥치고 닥치고 해볼수록이 사랑이란 말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평가적 사랑이라 그 말입니다.

 그러나 배암의 사랑은 정신 없을 때는 좋아서 못 견디지마는 젊을 때 좋은 것은  늙어도 그만 달라집니다. 기운이 뻘떡뻘떡 할 때에 있는 사랑은 그만 배가 고파서  기운이 척 늘어져도 그만 달라집니다. 자기가 또 살아 있을 때에는 그 사랑이  유지돼도 생명이 끊어지게 되면 다 헛일입니다.

 이러니까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그 사랑이 뭐이냐? 네 가지 문제를 해결지워 주신 사랑이라.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피차에 사랑할 때 이 네 가지를 생각해서 내가 거게 죄의  뿌리를 뽑는 일이 아니면 사랑이 아닙니다. 죄의 뿌리를 뽑아 주지 안하고 죄의  뿌리가 생겨지면, 뭐 죽고 못 살겠다고 이렇게 아무리 떠들어 쌓아도 그럼으로써  제가 좋아함으로써 죄의 그 뿌리가 생기고, 죄의 움싹이 나오고, 죄의 둥치가  자라면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방구석에서만 살 것이 아니고, 어두운 세상에서만 살  게 아니고 광명한 세계에 하나님의 심판을 닥칠 터인데 모든 것이 다 광명한  세계에 닥칠 터인데 그때에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옳은 것이 아니면 다 그때에  정죄 받습니다.

 그러니까 어짜든지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그말은 죄의 뿌리를 뽑고  죄에서 해방을 시켜서 그 사람을 죄의 해독을 받지 안 하도록 죄의 피해를 받지  안하도록, 죄와 관계가 멀도록, 그 사람을 죄에서 완전. 해방되어서 죄와 상관없는  그 사람을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 그 말입니다. 이 사랑은 지금은 까끌까끌하고  쓰고 모질밧고 잔인하고 무정한 것 같지마는 잠시 잠깐 후면 그이에게 차차  장래가 닥쳐오는데, 죄가 있는 가정이 성공을 못 합니다. 죄가 있는 사업이 성공을  못 하고, 죄가 있는 운동이 세상에서도 끝이 좋지를 못하고, 그것보다도 그럭저럭  가다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 떡 닥치면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이러니까 사랑이 뭐이냐? 죄의 값은 사망인데 그 사람을 죄를 뽑고 죄에서  해방을 시키고 죄를 없애서 그 사람이 죄를 벗고 죄를 짓지 아니할 수 있는, 죄를  짓기 싫은 사람, 죄를 짓지 않는 사람, 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 그게 사랑입니다.

뭐 어떻게 어떻게 무슨 방편을 취했든지 그 과정에서는 무슨 방편을 취해도 그  사람을 죄에서 해방을 시키는 그게 사랑이오.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사랑이오.

죄의 뿌리를 뽑는 게 사랑입니다.

 자기가 뭐 자기 몸을 모든 소유를 다 줘서 구제하고 희생하고 자기 생명을 바쳐  준다 할지라도 우리는 죄를 없애야 사랑이지 죄가 있으면 사랑이 아니라는  요것을 우리가 꽉 정의를 가지고 있어야 될 것입니다. 뭐 별별 마귀란 놈이  배암의 사랑을 가지고 천태만상의 꺼풀을 입히고 오만 색깔을 칠해 놨기 때문에  알롱달롱 어떻게 좋은지 이거는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이 네 가지로  분별하면 할 수 있습니다.

 '보자, 이것이 여게 죄가 있나 없나?' 죄라는 것은 뭐이 죄인고 하니, 물론 우리  한국 나라 헌법에 어기는 것도 죄지마는 그거는 한국 나라 안에서 죄지 한국  나라를 떠나면 그만입니다. 한국 나라에서 죄라도 배만 타고 일본만 가면 그까짓  거 죄가 안 됩니다. 미국에서 죄가 안 돼요. 또 아무리 온 세상이 정죄를 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세상을 딱 떠나 버리면 그만이야. 이러나. 하나님 앞에  죄되는 그것은 세상에 있든지 떠나든지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는 하나님의 법을 준해 가지고 그 법에 삐뚤어져서 하나님이 죄있다고  정하는 그게 죄인데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구별하기를, '자,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지금 운동을 하고 사귀고 친절히 하고 우리가 단합을 했으면 여게 죄가 있나  없나?' 그것을 살펴서 죄 있으면 사랑이라면 배암의 사랑이고 그라면 죽는 것이고  하니까 죄를 가지고 거기서 판결해야 되겠고,  또 하나는 '이라면. 하나님의 공심판에 통과되겠나 안 되겠나? 하나님의  공심판에 알지 못하심이 없는 전지의 입법에서, 전지의 입법에 인정을 받겠나?  전지의 입법에 정죄를 받겠나?' 요거 가지고 또 판단을 하고. 그 다음에는 이분이  제일 대주재인데. '이분하고 나하고 친밀이 가져지느냐 이분과 나와의  성글어지느냐?' 그분과 성글어지면 온 천하면 뭐하며 우주면 뭐할 겁니까? 노아  홍수 시대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지마는 하나님과 삐뚤어지니까 그까짓 거 뭐  울기야 많이 울었겠지요. 눈물이 소용없고, 호소가 소용없고, 뭐 많은 사람이 하는  그런 것이 부르짖음이 무슨 소용 있는 줄 압니까?  하나님은 잔인한 하나님이십니다. 아니라 딱 결정할 때에, 노아 홍수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뭐 죽으며 굉장했을 것이라. '명천 하나님 나를 살려 주십시오.

요번에 살려 주면, 오만 소리 해도 눈도 뜨지 안하고 지끈 감고 싹 밀어  버렸습니다. 이런 하나님인 줄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과의, '내가 이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나 하나님과 관계가  가까와지느냐 멀어지느냐?' 나만 알고, 내가 모르는 것까지 다 압니다. 나 알고, 또  나만 알고, 또 몇 사람 알고, 이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심판할 재료로 다 취급하고  다 계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의 어찌되느냐?' 그라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는  하나님을 향한 영생의 소망이라 했는데 하나님을 향한 소망, 우리가 아무리 한국,  뭐 재벌하고 자기가 연결해서 한국 재벌이 자기 자본주가 돼도, 어떤 강대국의 그  나라가 자본주가 돼도 그까짓 거 아무 가치 없는 겁니다. 대주재인 하나님으로  자본주를 삼는 이 일이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사랑은 그 사람을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얻어서 가지는 요 사람을 만들어서, 요 지식을 만들어서 그렇게 사는  사람 만드는 게 사랑이오. 또 모든 거와 다 이렇게 어떻게 된다 벌어진다  할지라도 대주재이신 그분하고 단짝되는 이게 사랑입니다. 그분하고 단짝을  만드는 거. 왜 그분하고 단짝되면 피조물 그까짓 거 아무 가치 없어요. 그분과  단짝이 되면 피조물은 이리 하면 하루 아침에 이리 되고 하루 아침에 저리  됩니다. 좀 며칠 전에 보니까, 저도 한번 올해 한번 갔었는데, 송정을 한번 갔어요.

갔는데, 가보니까 뭐 사람이 바닷가에 어떻게 모였는지? 그거, 내가 속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이여 능력 있습니다. 이거 또 바닷가로 모이라 하니까 전부  바닷가로 다 왔네요. 또 하나님께서 바닷가에 사람 하나도 없고 전부 방구석으로  다 기어 들어가라면 다 들어가지요, 전부 당신 혼자의 역사입니다.'  이러니까 그분과의 관계가 어찌되느냐? 또 그분에게 내가 소망 가져서 그분에게  얻어 가지는, 내 보급줄을 내 원천을 내 자본주를 그분으로 삼는, 그분을, 만유의  대주재를 내 자본주로, 내 원인으로, 내 보급 창고로, 그분을 내 창고로 삼아  가지고 그분에게 뭐 수많은 충만한 그것을 내가 얼마든지 뽑아서 쓸 수 있는 요  면결, 거게 뭐 억억억억만도 넘은 그 무한한 말로 할 수 없는 그 충만을 내가  거기다가 충만한 젖줄기에다 딱 물고, 믿음으로 딱 물고 그저 구찬고 바라면 다  됩니다.

 이 근원에 연결, 근원 연결, 대주재이신 이분과 단합, 또 하나님의 전지 입법에  자유 인정 통과, 그게 의입니다. 또 삐뚤어진 거, 하나님의 눈으로 봐도 삐뚤어진  게 하나도 없도록 요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 하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사랑이 없으면 다 아무 소용이 없다 이랬으니까 간단하게 알아서  우리는, 이 말씨를 당하니까 아주 인류를 살해한 근본도 이 사랑이 사람을 죽였고,  지금도 죽였고, 지금도 자꾸 죽고 있습니다. 이런데 이 사랑과 사랑을 구별해  가지고, 아무리 뭐 예쁘고 좋고 해도 배암의 사랑이 되면 우리가 피차에 죽이는  줄 알고 이것을 잘 삼가야 되지 그라면 안 됩니다.?  내가 언제 며칠 전에 보니까, 어떤 집에 가보니까 편지가 왔어요. 중학생이라.

여학생인데 편지가 와서 연애 편지가 석 장이나 왔어. '나는 보고 좋아하니까 언제  한번 써 가지고 뭣을 편지를 써 가지고, 놀이터로 나오라고. 놀이터로 나오면 몇  시 돼 나오면 내가 기기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 인제 답을 안 하니까 그 다음 또  인제, 처음에는 농담으로 이래 놔 말하다가 나중에는 존경해 말하고, 그래 안  하니까 말았을 것입니다. 이런 세상이라. 그거 얼마나 달콤하겠소?  이러니까 사랑이 들어서 사람을 죽이는 이 말세를 당했으니까 여러분들이 배암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구별해 가지고 나를 내게 뭐. 그 재산 다 나를 다 주고,  또 나 위해서 오만 거 희생 다 해 주고, 자기 몸뚱이와 뭐 생명까지도 준다  할지라도, 내게 대해서 필요한 말 다 해주고, 내게 온갖 지식 다 주고, 내게  믿음을 다 주고 해도 이 사랑 없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이 네 가지 문제가  해결 안 되거들랑 그거 배암의 사랑인 줄 아십시오. 아무리 좋아도 그게 하나님  법에 삐뚤어지면 헛일이고,  또 아무리 모두가 인정해도 하나님의 공심판에 인정되지 안하면 헛일이고,  하나님과 친밀해지지 안하면 헛일이고, 하나님에게 소망하는, 하나님에게 원천에  거기다 줄기를 대고 보급선을 하나님과의 연결시켜 놓은 그게 아니면 안 됩니다.

 우리 주님은 땅위에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 사활의 대속이라 하는 것은  이 네 가지 문제를 해결지우시느라고 주님이 죽으셨고 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네 가지 문제를 완전히 해결지웠습니다. 주님이 대속하신 것을 입고 벗지만 안  하면 털끝만한 죄도 우리에게는 오지를 못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죄에서 완전  해방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해방 주셨는데 망령되이 다시 죄를 제가 다시 입고 기어 들어가니까 탈인  것이지 주님이 해방을 주셨기 때문에 해방을 입고 있을 때에는 마귀가 우리에게  와서, 죄가 우리에게 와서 왕노릇 못 합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우리를 의롭다 인정함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주셨고,  하나님과 친부자의 이 화친을 만들었고, 하나님의 충만은 우리 것이,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거와 사망과 생명 모든 것이 우리 것이 되도록 이렇게  보급줄을 튼튼히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네 가지  이것이 구비 없으면 그런 사랑은 암만 있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이걸 생각하고 배암 사항과  하나님의 사랑을 구별해서, 아무리 나를 위해서 뭐 어떻게 변호하고 위하고  달콤하게 한다 할지라도 죄 있으면 안 돼요. 의롭지 안하면 안 돼요. 하나님과  멀어지면 안 돼요. 하나님과 나와의 보급줄이 끊어지면 안 돼요. 요 네 가지만  우리는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기울여서, 이거 지키다가 세상 생활 끝나면 완전  승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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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실천해서 체험 경험의 지식을 가지고 가르치고,  또 은사 위치에 있는 분들은 자기에게 속한 그 식구를 꼭 마음 속에 담아 가지고  길러야 되지 그냥 이래 뭐 하루 종일 딴데 이래 마음은 딴데 다 홀리고 이래  있다가 심방 갈 때나 가 가지고 '주일날 나오너라' 그런 심방 좀 욕을 한번 해야  되겠어. '그따위 심방' 그런 거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말이오. 알겠습니까?  마음 속에 넣어 놓고,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떠난 것은 몸이요 마음은 아니라  항상 마음이 거게 있어서 마음으로 늘 생각하고 잊지 안하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심령은 자라가는 것입니다.

 그라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짜다라 자 봐야. 배암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좀 기억해요. 새벽기도 나갈라 하니까 '따뜻하게 자고 가거라. 또 새벽기도  가면 공부도 못 하는데.' 뭐 이불로 덮어주고 해 봐야 그거 다 배암 사랑이라.

알겠습니까?  배암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이별해 가지고, 자식을 배암 사랑으로 사랑하면  자식 망하고 저도 항하고 다 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부부간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친구간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십시오. 이래서 새벽기도 계속해서, 나오고 또 십 분 지난 후에는 자난 주  설교 말씀 재독 있겠습니다.

 어제 피아노 반주할 선생님들을 시험을 치렀는데 채점은 다 해 놨습니다. 채점은  다 해 놨는데 번호가 누군지 우리가 아무도 모릅니다. 번호를 모르는데 져 뒤에  상자에 종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게다가 어제 시험 친 사람이 열여덟  사람인데 열여덟 사람은 자기 이름하고 자기는 몇 번이라 하는 것을 써요. 몇  번이라 쓰고, 일 번이면 '일 번 아무것이' 이번이면 또 '이번 아무것이' 그래 해서  거게다가 담아 주시면 그것 보고서 이제 채점한 등수를 매겨서 발표하겠습니다  어제는 시험관이 병 사람 안 왔어요. 시험관이 다섯인가 여섯밖에 안 오고 뭐  바빠 그렇겠지마는 성악가들은 안 왔어요. 성악가들 안 오고 기술자 안 왔는데 안  와도 어제 심사는 정확히 했습니다. 내가 보니까. 아주 정확하게 됐어요.

 정확하게 됐는데. 보니까 전부 다 그래요. 채점하면서 처음에는 점수를 비싸게  매기다가 나중에 자꾸 비싸게 매기고 다 이래 놓으니까 나중에 마지막에는 다  모두 헐하게 매겨서 처음에 팔십점 될 사람이면 나중에는 다 구십 점 다 돼요  이래서 내가 말하기를' 가운데 반을 끊어 가지고 앞으로 반은 영점 오씩을 더  부해라. 반 이후의 것은 그대로 하고 앞에 거는 그만치 손해를 봤기 때문에  영점오를 부가해라. 그래 가지고 하면은 정확하게 둬 것이라.' 했는데 고거 정확할  것입니다.

 오늘밤에도 여러분들이, 지금 배암 사랑에 걸려 가지고 뒈지는 사람 많아요. 그거  모두, '이거 공부하다가 자꾸 이래 뭐 곤해 누워 자는데 공부는 안 하면 안 되겠고  새벽기도 나가면 또 인제 공부 못 할 것이고,' 새벽기도 나가는 거와 공부와 이래  비교하다가 새벽기도 나가지 안하고 그만 공부하라고 둬, 두는 그게 어머니의  사랑이지마는 그게 배암 사랑인지 하나님의 사랑인지? 저 OOO권사님 구역에 저  무슨 집사님이지요? 저 집사님, 자기 자기.

 녜, 그 무슨 사랑이요? 배암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이요? 크게 말해 봐. 뭐라  하노? 뭐라 해? 그래 새벽기도 나가지 말고 공부하라 하는 그게 하나님의 사랑?  배암의 사랑? 그러면 똑똑히 배암의 사랑이라 하면 그 소리하면 이제 배웠으면  '주여, 이제는 내가 죽어도 안하겠습니다.' 그거 배암의 사랑이라 하면 '배암의  사랑입니다!!' 막 이렇게 할 수 있고 막 분해야 돼. 분해야 돼. 그게 없으면 안  돼요.

 하나님께서 모압 자손들이 그렇게 범죄해서 이렇게 음행할 때에 하나님이  분개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로 말미암아, 발람으로 말미암아 범죄해서 아주 할  때 하나님이 분해서 이 이스라엘 이놈들 막 다 죽여야 된다고 염병을 들려  가지고 하루 이만삼천 명씩 막 이래 죽여 나가는데,  그 비느하스가 보고서 어떻게 분했는지 창을 가지고 가 가지고 그 년놈을  위에서 콱 찌르니까 둘이 한목 찔렸어. 이래 가지고 막 어깨에, 메고 오니까  '비느하스가 하나님이 분개한 그 분개를 네가 그렇게 분개하니 네가 분개하는  거게서 내 분이 풀렸다. 그뒤에 염병으로 죽는 재앙을 중단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에게 조그만한 죄가 있어도 크게 책망하는 것은  뭐이냐?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을 오도록 하기 위해서 좋은 지혜요 방편입니다.

 이러니까 배암 사랑 하나님 사랑을 구별해 가지고 어리석지 말고, 달기는 꿀과  같애요. 꿀과 같지마는 마지막이 죽어져요.

 이러니까 배암 사랑 하나님 사랑을 구별해 가지고 배암의 사랑에 걸린 사람  있으면 지금이라도 어서 정신 차려서, 수술 잘못하면 안 되니까 속으로 결심을  가지고 어짜든지 거게서 벗어나야 되지 오늘 죽을지 몰라. '내가 뭐 젊을 때  이라고 뭐 나중에 늙어서 어짜지.' 오늘밤에 뭐 젊은 사람이 안 죽나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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