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의 미발은 중이라

 

1985. 12. 26. 목새벽

 

본문:히브리서 12장 1절∼8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갔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도 많고 하지마는 우리가 아는 사람도 수 없습니다. 또 우리가 서로 대면하고 또 접촉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도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다 상대했고 또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자꾸만 악령은 잊어 버리게 만듭니다.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잊어 버리게 만들고 그저 배암이 주는 그 지식만 가지도록 할라고 애를 쓰고 또 이 세상에 있는, 나그네 세상에서 필요한 그런 것들만 알고 기억하게 할라고 애를 씁니다. 실은 우리의 기억력이나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에게 제일 기울여져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시나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그런 것을 우리가 늘 체험하고 경험하고 하지마는 마귀가 자꾸 잊어 버리게 만듭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살피는 일이 제일 많아야 합니다. 복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나, 자기에게 대해서 성경에 말해 놨기 때문에 죄의 값은 사망이요 의는 온 세상이 불 탈 때도 타지 안하고 새 하늘과 새 세계를 바라본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강령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이 의인데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축복을 주시고 죄를 범하는 거는 망케하는 것이 신구약 성경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죄와 의로만 표준을 하고 자기에게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나 이래 보면 죄의 값이 없는 일이 없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한 의의 상급이 없는 일이 없습니다. 죄의 벌이 없는 일 없고 의의 대한 상급이 없는 일이 없습니다. 이러면, 하나님에게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자기 행위와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그 말씀과 대조하면 자기의 전 생활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데에는 상이 있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범죄하는 데는 그 댓가가 있다 하는 것이 우리의 전 생활일 터인데 악령이 거게 대해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거는 보지 못하고 하니까 자기가 좋은 일이 있으면은 고만 우쭐 거리면서 죄 짓고 그 영광을 제가 따먹고 또 사람에게나 영광 돌리고 또 무엇이 잘못되면 다른 사람에게 원망하고 불평하고 원수를 맺고 이런 일을 합니다. 그러나, 깊이 살펴 보면은 우리가 그래도 하나님 앞에 옳은 면이 있는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일이 오는 것이고 우리가 범죄함으로써 불행한 일이 오니까, 하나님과 자기 행위와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 말씀과를 대조해 보면 그만 뚜렷이 나타나서 죄의 값은 망하고 죽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이 의라는 믿음의 댓가는 다 생명과 평강이라 하는 것을 환하게 알 수 있을 터인데 마귀란 놈이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에 대해서 보지 못하게 합니다.

또, 둘째로는, 뭐 권세 과학 세상 번쩍거리는 그까짓 것들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거 다 마귀가 우리를 미혹시키는 것이지. 둘째로는 사람을 주시해서 볼 것입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그 행동에 죄가 있고는 죄의 값이 반드시 고다음에 즉시 따라오고 또 의를 행했으면 의의 값이 즉시 따라오고 이렇게 따라오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고 또 그것이 즉시 즉시 따라오지 안한 것은 세월이 지난 후에 따라 오면은 적은 죄에 큰 징계가 따라오고 큰 사망이 따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점점 하나님을 본다든지 다른 사람을 본다든지 자기를 본다든지 하면 죄와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예수님과같이, ‘아버지의 말씀은 나는 영생인 것을 안다’ 자꾸 경험해 보니까 ‘영생인 걸 안다’ 예수님이 그래 말씀했는데 우리는 하나님 말씀은 다 허무하게 생각하고 배암의 말인 이 세상 지식만 귀하게 여기고 모두 일생 동안 제가 과학자가 돼 가지고 세계의 과학자가 됐다 할지라도 그거 바보요 천치입니다. 왜? 제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세계의 일등 과학자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것을 세상 떠날 때에 가지고 가느냐 하면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 과학을 앎으로 제가 범죄한 것만 똘똘 뭉쳐 짊어지고 가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보다 하나님은 어떻게 모든 것을 피조물들을 처리하고 계시느냐 또 내가 어떻게 하니까 어떻게 됐더냐, 또 다른 사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 말씀을 들고서 볼 때에 ‘조 사람은 조런 말은 조런 행동은 조런 생각은 조런 일은 조런 권세는 조런 움직임은 조런 태도는 조런 교만은 저거는 하나님의 뜻에 위반 되는데’ 하고 난 다음에는 얼만 안 가서 고 뒤에 징계로서 그이에게 고통이, 통증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자꾸 이래, 하나님 보고 또 자기 보고 사람 보고 이렇게 보면은 그 사람은 제일 원수가 죄요 자기에게 보배가 의라는 것을 알게 될 터인데 마귀란 놈이 이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보지 못하게 해서 어떤 자는 어떤 물리를 발견했다고서, 물질을 보고서 물리를 발견했다고 해 가지고서 일생 동안 노력하다가 과학자가 되면은 큰 성공한 줄로 알고 있지마는 네가 하나님 볼 기회를, 네 자신을 볼 기회를, 다른 사람을 볼 기회를, 그 볼 때에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대로 그대로 처리하는 것을 다 그 면은 소경이 되어서 전연히 보지 못하고 그것을 마귀란 놈이 요런 오묘한 거 조런 재미있는 거 요런 취미 있는 거 요런 흥미 있는 거 고런 걸로 돌려 가지고서 어떤 자는 물리의 과학으로, 어떤 이는 돈을 또 쓰는 재미로 돈을 버는 재미로, 어떤 자는 모든 이런 욕심 저런 욕심 명예 권세 지위 또 이런 정욕 이런 음욕 저런 더러운 것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보고 거기에 끌리니까 자꾸 취미가 그리 붙습니다.

그러기에, 일본 사람은 말하기를 뭣이든지 좋아하는 것은 다 그것이 능숙하게 된다 그런 말 있습니다. ‘쓰끼 도모로고 조오수 나리’라고서 뭐이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능숙하게 된다 그렇게 말하는데 이렇게 하나님 보고 자기 보고 사람 보고 이래 가지고서 이 모든 인간살이가 어떻게 되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이 말씀대로 이 일이 정말로 시행되나 안 되나 하는 것을 보면은 고대로 추호도 차질이 없이 이행되는 것을 알 수가 있을 터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보게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두 보면은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뭐 내가 보고 깨달을 바가 증인이라 말은 이렇다 저렇다 증거하는 그 증거가 꽉 찼다 말이오. 말로 하는 게 아니고, 이 사람 보니까 이런 행동에 이리 돼 버렸고, 우리가 저 양로원에 갑니다. 양로원에를 가보고 또 양로원 아니라도 곤고한 사람들을 이래 쭉 더러 만나봅니다. 만나보면 그 한 말로 말하면 저 사람들이 어떻게 됐느냐 그래 보면 그 사람들이 전부 고집쟁이요 양보가 없습니다. 또 교만쟁이요 뒤를 생각지 안했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 사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자기 욕심대로 자기 취미대로 한 말로 말하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 사람들이 전부 양로원에 와 있다 하면은 별로 오진이 아닙니다.

또 이 세상에서도 다 그러합니다. 그게 뭐입니까 그게 다 죄 아닙니까? 그뿐 아니고 이 성경에 나타난 말씀은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털끝만치도 틀리지 안하니 성경의 사람에게 대해서 기록한 그 모든 인간 역사를 기록한 것이 구약 성경에는 많이 있습니다. 구약에 역사, 이 사기를 기록한 그런 성경이 구약에는 많이 있기 때문에 사기를 기록하는 데에 거게 기록된 인물들을 살펴봅니다.

인물들을 살펴보면 그 인물들이 약한 자가 강하게 된 것도 많고 강한 자가 천하게 된 것도 많고 또 귀인이 천하게 된 것도 많고 아주 말할 수 없는 그런 비참한 자가 존귀하게 된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모두 굴곡을 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전부 고만 죄, 의, 뿐입니다. 죄의 그 값으로 사망했고 또 그가 어짜든지 어렵고 괴로워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참고 견디는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은 그 뒤가 다 끝이 펴였고 또 그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만 끝이 펴인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고 간 것을 뒤에 후배들이 보든지 또 이 성경 말씀을 보면은 그 사람은 분명히 존영한 사람으로 무궁세계에 가서 있을 것이라는 것을 우라가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것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의 그 행위와 사람 됨을 이렇게 살펴보는 이 일을 우리가 다른 과학을 공부하는 거보다도 어떤 거보다도 이것을 열중해서 해야 됩니다. 그러면, 차차차차 하나님에게 대해서 유식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라, 하나님의 성품은 이러하고 하나님의 뜻은 이러하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이런 것을 좋아하시고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미위하시는 것은 이런 것을 미워하시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대해서 어떻게 처리한다 하는 것을 알아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무식한 사람이 되지 안하고 하나님께 대한 유식한 사람이 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사람을 대해서 살펴보니까 차차차차 아, 저런 사람은 보니까 그 결과가 이렇게 저렇게, 모두 다 동물원에 가서 이렇게 볼 때에 ‘아, 저거는 원숭이다 저거는 무슨 무슨 새다 저거는 물소다 저거는 호랑이다.’ 이렇게 아는 거처럼 이제 사람에게 대해 연구하면은 그 사람을 보면은 알게 됩니다. 이래서, 그 사람의 상이라는 것이라든지 이런 것은 대개 인간들의 통계를 맞춰 가지고서 그런 사람들은 그렇다 그렇게 통계를 맞춘 것입니다. 이래서 상을 보는 거, 상을 보는 것도 인간들의 그 껍데기 그 얼굴을 따라서 그 사람의 행동이 있고 그 사람의 행동을 따라서 그이의 망하고 흥하는 것이 있더라 그것을 대략 짐작해 보고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얼굴만 본 사람을 보고서 좀 깊이 사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렇게 말했습니다. 상불심이라, 사주불 상이요, 사주는 그 사람의 얼굴만치 무엇을 정확하게 나타낸 것이 없다. 그래 사주는 다 거짓부리다, 또 상불심이라, 상도 그것도 그 상대로 가지 않는다 그 사람의 마음만치 정확하지 못하다. 그 사람의 마음을 살필 줄 알면 그 사람의 마음을 살필 줄 알면은 그는 거의 정확합니다.

마음보다, 살펴보면 그 사람의 망하고 흥하고 또 끝이 펴이고 오그라지고 자기 자손이 어찌 되고 하는 그것을, 그 사람 상 보는거보다는 그 사람의 마음 보면 정확하고 마음보다 뭘 보면 정확합니까? 뭘 보면 정확합니까? 행도보면 정확합니다. 마음보다 나타나기에는 행동이 정확하기 때문에 그 사람 행동을 보고 저 사람이 일생 동안 행동을 저렇게 했기 때문에 그 자손은 어떻게 되나, 행동을 저래 했기 때문에 그 끝은 어떻게 되느냐, 노래 가 어찌되나, 또 저 사람의 장래가 어찌 되나, 이런 면 저런 면이 어찌 되느냐 그것 살펴 보면은 거의 정확하게 맞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게다가 신경을 기울이고 정신을 기울이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며 어떻게 하시나 사람들은 어떠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나 그 정신이나 마음이나 그것에 대해서 어찌 되느냐? 고 자기 말, 마음, 행동, 꼭 고대로 보응됩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백이면 백 만이면 만 고대로 정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정확합니다. 말은 안 해 그렇지, 그 사람의 상을 봐도 그게 나타나 있고, 사람이 자기 행동을 가루지 못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 사람이 아주 심히 근심되는 일이 있으면서 근심되는 것을 그 얼굴에 나타내지 안할라 해도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운 것을 감추어서 두렵지 안한 체 한다 해도 그 얼굴에 다 나타납니다. 그 사람의 기쁜 것도 다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그 모든 형편이 다 나타나는데 그 사람이 일생 동안 행동한 것이 그 사람 얼굴에 안 나타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동대로 그 사람의 얼굴은 나타납니다.

그런고로, 그 모든 것을 살펴보면, 여기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사람들이 우리가, 이 면으로 눈을 뜨고 보면은 뭐, 사람에 대해서 유식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유식하고 인간의 행위의 보응에 대해서 정확하다는 것을 사람이 알게 됩니다. 이 지식을 가지면 천하의 과학 그까짓 거 다 가진 거보다 낫습니다. 다 가진 거보다 낫습니다. 왜 나으냐? 나은 이유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복 주실 수 있는 그 길로만 가고 또 사람에 대해서 정확해서 ‘아, 사람은 이런 사람들이 복을 받더라 하나님이 동행해 주더라.’ 또 행위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그러면 자기에게 대해서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내가 이거는 틀림 없이 망할 노릇이다 이거는 복받을 노릇이다 이거는 참고 견디기가 어려워도 이는 성공이 있다.’ 이걸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다 보고서 이렇게 살펴보면 깨달아지는 게 뭐이냐 하면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사람들이 이렇게 무거운 짐진 거와 마찬가지로 허덕거리고 허리를 펴지 못하고 이와같이 허덕거리는 거 또 이런 밧줄에 매여 가지고서 저런 쇠사슬에 매여 가지고서, 마치 저게 산에 있는 그런 짐승을 한 마리 잡아다가서, 어떤 사람이 노루를 잡아다가 집에 키울라고서 이걸 이래 매 놓으면 그놈이 자꾸 빠져 달아날라고 이래 야단치고 저래 야단치고 자꾸 하다가서, 붙들려 매였으니까 나중에 노루를 그래 매 놓으면 죽습니다. 암만 갈라 해도 가지는 못하지 성은 급하지 죽는다 그말이오. 그와 같은 꼴을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걸 본다 말이오. 사람들이 모두 제가 저질러 놓은 그 죄에게 매여 가지고, 죄 때문에, 저 사람이 지금 뭐 자살할라고 야단을 칩니다. 자살할라고 야단을 치는데 가만히 그걸 보면은 제가 처음에는 아주 그 사람 사귈 때에 꿀과같이 재미가 있습니다. 그 사람 사귈 때에 꿀과같이 재미가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무엇 때문에 재미가 있느냐? 고 삐뚤어진 행동 때문에 재미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사귈 때에는 꿀과같이 재미가 있었고, 또 그 사람을 친할 때에 뭐, 이자를 좀 많이 주니까, 많이 주니까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은 지금 은행 이자를 바라고 그만 그 저금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아주 유통 안 할 수 없으니까 신실한 사람이 와서 일 부 오 리나 달라고 하면은 일 부 오 리를 주고 이랬는데 이 사람은 보니까, 아, 삼 부를 이자를 주는데 총총 줍니다.

이러니까, 거석해 가지고서 그 사람이 보면은 돈을 그 중에 활동하는 걸 봤는데, 이렇게 해서 했는데 그 사람이, 혹 돈을 말하면 ‘돈이 없다’ 하고서 하는데 그게 지금 낭파를 당할 거 같다 말이오. ‘네가 돈을 어떤 데다가 주고 있느냐?’ 이러면 그 이자 많이 받는 것이 부끄러우니까 그런 말 하지 안하고서 ‘아, 그거 가지고 지금’ 뭐 거짓말 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고 뭘 있습니다.’ 또 ‘아,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벌로 거석 안 하고 지금 은행에 넣어 놓고 있습니다.’ 그래 인제 알아 볼라고 ‘은행에 넣어 놓고 있거들랑은 그걸 좀 빌리라’ ‘아, 그만 뭐, 이거 돈 빌리는 거야 뒤에 받기도 그래서 안 빌립니다.’ 고거 알고 자꾸 파도, 거짓말 한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나중에 보면은 비싼 이자에게 끌려 가지고서 나중에 돈을 떼였습니다.

이제 이거는, 이거는 또 못된 것이 와서, 돈을 그냥 주면 안 줄 터이니까 이자를 많이 줄라 하면 돈을 주거든. 이자를 많이 주면 돈 주고 이래 가지고서, 제가 말하기를 이 사람이, 아, 돈 주면 ‘야, 돈을 얻을라 해도 그거 안 되더라. 아, 돈 좀 얻어 달라’ 이라면은, 소고기 근이나 몇 근이나 사다 주고 이래 대접하면은 고 소고기 몇 근에게 끌려 가지고서 그래 인제 돈을 ‘돈을 이자를 얼마 안 주면 안 되겠던데’ ‘아, 이자는 뭐 내가 잠깐 쓰고 줄 터이니까 이자는 비싸도 상관없으니까 돈을 내 달라’ 이라면 그거 제가 이거, 그 뇌물 조금, 이거 대접 좀 받고 또, 돈에 연대 보증 서 가지고서 해 주고, 또 이 돈임자는 또, 이자를 많이 줄라 하니까 돈 주고, 이래 가지고 가만히 보면 전부 삐뚤어진 일하고 있어요.

전부 죄를 짓고 있어요. 죄를 짓고 있는데 좀 있다 보면은 나중에 가서 그만 눈이 뻐끔해 가지고서 뭐 죽을라고 밥맛도 없고 죽을라고 날뜁니다, 다. ‘왜 그라노?’ 아, 그 사람의 돈을 누가 거석해 가지고서 몇백만 원을 떼여 가지고서 지금 그라고 있다고, 몇천만 원을 떼여 가지고 그라고 있다고서 그럴 때에 말은 차마, 촉분지를 말은 못하지마는 ‘네가 그 사람 욕할 게 아니라 이놈아 네가 더 도둑놈이다. 네가 먼저 도둑놈이고 그다음에 다음 도둑놈은 돈 떼 먹은 그게 다음 도둑놈이고 그 가운데 어리석어서’ 밥티기를 가지고서 잉어를 낚을 때에 낚시에다가 밥티기를 달아 가지고 요래 던지면 밥티기 고놈 주 먹을라고 혹 달라들다가아, 밥티기 그거 한 내끼 안 먹어도 되지 안해요. 고놈 한 내끼 먹을라고 요라다가 고만 걸려 가지고서 이만한 잉어가 밥티기 하나에 낚인다 말이오. 그래서 밥티기로 잉어 낚는다 그래. 밥티기로 잉어 낚는다. 밥티기로 잉어 낚는다. 소고기 몇 근 또 요리집에 가서 몇 판 거석하는 거 또 인제 뭐, 예물을 무슨 요새 유행물 뭐 의복이나 고런 거 뇌물 예를 들면 뇌물이라 말이오. 고거 고래 가지고서 고게서 눈이 멀어 가지고 되어지는 것, 뭐 사람들 보면은 전부 인간이 고생하는 것이 죄로 말미암아 고생하는 것입니다.

죄로 고생한다 말이, 죄라 말이 다른 말로 말하면 무슨 말입니까, 죄라 말이 무슨 말이지요? 삐뚤어진 것. 자 따라합시다. ‘죄’ 따라 합시다 죄! 죄는 삐뚤어진 거! 죄는 삐뚤어진 거! 죄는 삐뚤어진 거! 요 죄라는 요 단어의 뜻을 아십시오.

죄는 삐뚤어진 걸 말합니다. 삐뚤어지는데 뭐, 무슨 인간 약속 삐뚤어진 것 사람에게 대한 삐뚤어진 것 그런 것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하나님의 이 법칙에 삐뚤어진 걸 가리켜서 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에 삐뚤어진 거는 전부 망하고 죽는 것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삐뚤어진 죄의 취미를 누리고 있으면 그것 때문에 망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그 욕심을 누리면 삐뚤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그 입술을 놀리면은 또 죄가 되고 사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소윈도 안 해야 되고, 그게 망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욕심도 안 가져야 되고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취미도 안 가져야 되고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성질도 안 가져야 되고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말도 안 해야 되고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그 모든 쾌락도 누리지 안해야 되고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그런 소원도 안 해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그 행동도 안 해야 됩니다.

이런데, 고 마귀란 놈이 유혹을 주기 때문에 고것을 행하기 전에는 어떻게 맛이 있는지. 맛이 있습니다. 고것을 행하기 전에 맛이 있고 행하고 나면은 후회되고 또 맛이 있어 또 행하고, 나중에 행하고 난 다음에 망하고 난 다음에라야 그때 후회됩니다. 자기가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일을 하고 난 뒤에 그로 인해서 망합니다. 망하고 난 다음에는 왕창 후회가 되고 그다음에는 이제 뭐 다시 회복 할라 해도 회복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사람들을 보고 네가 깨달아 보면 수많은 구름 같은, 구름이 뭐 구름같이 둘러쌌다 말은 우리가 구름 속에 들어가는 것은 안개속에 들어가는 것이 구름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거 높은 데 있는 안개가 구름입니다.

구름이 또 짙어지고 구름 속에 수분이 많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구름이라고 하고 옅은 것을 가려켜서 안개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안개 속에 있으면 안개가 전부 두루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같이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모든 사람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보고 살펴봐라, 인간과 하나님과 살펴봐라.

그러면, 하나님은 세밀히 모든 것을 처리하시고 하나도 하나님은 속일 수도 없고 모르는 거 없다. 아무도 모르게 제가 범죄했는데, 아무도 모르게 범죄했는데 그 값이 있다 말이오.

아, 요새는, 이제는 해가 기울어지면은 음지인지 양지인지 모르는 거와같이 요새는 전부가 다 더러워지기 때문에 죄악을 모릅니다. 이제 뭐 속이는 그런 거는 의례히 뭐, 속이는 것이 수단인 줄 알지 그거는 죄라고 생각지 안합니다. 그런데, 그런 거보다도 요새는 음행도 그렇습니다. 음행도 더러운 음행들 있습니다. 이제 부녀간에 음행을 하는 것도 요새는 예사입니다. 모자간에 음행하는 것이 예사입니다, 지금은. 남매간에 음행하는 게 예사입니다. 저거 뭐 친척간에 음행하는 거는 예사요. 이러니까, 이제 그것은, 사람이 모릅니다. 그거 누가 압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이나 알고 사람은 몰라요. 사람은 모르지마는, 모르지마는 그것이 사람이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랫 동안 감추어 있지마는 그것이 눈을 뜨고 보는 사람은 자꾸 거게 대한 결과가 나타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눈에도 나중에 얼마 가면은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런 죄를 멀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지금으로부터 한,해방 전으로 말하면 그런 죄가 우리 나라에는 없다고 해도 그 지나친 말이 아닐 만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이 미국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 일본 나라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 지금은 소돔 고모라 성보다도 훨끈 더 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을 우리가 하나를 끊고 이런 죄 저런 죄 모든 그런 흉측한 죄일수록이 하나씩 끊으면 그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오는 것을 현동히 자기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무거운 것은 우리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면은 그렇게 활동을 만만히 하지 못하고 자기가 죽자껏 고통되지 안해요? 무거운 짐. 인간을 무겁게 해서, 인간에게 무거운 짐이 돼 가지고서 인간을 자유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뮈이냐? 한 말로 통계를 말하면 죄더라 그말이오. 인간이 이렇게 허덕거리고 저렇게 허덕거리고 죽을 지경이라서 하하 후유 후유 하고서, 하 하 탄식을 하고서 이와같이 고통하고 하는 이 모든, 인간이 무거워서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무겁고 정신이 무겁고 생각이 무겁고 모든 생활이 무겁고 마구 견디지를 못해서 한다는 그 모든 것을 살펴보니까 그게 전부 죄더라 말이오. 죄, 죄짐이라 그말이오, 죄짐,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이 사람은 여게 매여 가지고 허덕거리고 저게 매여 가지고 허덕거리고 이래 가지고서 보면 다 그것을 회개를 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그 죄를 지어 가지고 망하고 난 다음에 ‘아, 이 죄 때문에 망했다’ 고것만 가지고는 하나님이 복을 주지 못합니다. 복 주면 그게 또 그 행세할 터이니까 자꾸 복음만 가리워지지 뭐 소용 있겠습니까? 이제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되느냐? 자기가 과거에 그랬으면 그것을 후회만 할 게 아니라 앞으로 안 할 사람이 되야 됩니다. 앞으로 안 할 각오를 가져야 됩니다. 과거를 후회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안 할 각오로 가져야 되고, 과거를 후회하고 앞으로 안 할 각오를 가지는 것만 가지고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러고 시험을 해 봅니다. 자기 현실에 대 보면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을 어기던 조그만한 뽀스래기 삐뚤어진 걸 해 봅니다. 사람의 사정에 걸리고 인정에 걸리고 뭐 이렇게 사람 좋게 하기 위해서, 자기 안 할 일, 자기에게 또 필요 없는 일 하나님 말씀에 어긋되는 일. 이제 보니까, 현재에 볼 때에 그 사람이 현재도 자기에게 해당된 정확한 자기할 말만 하고 정확한 자기 할 일만 하고 정확한 자기 활동만 하고, 자기 할일인지 자기 안 할 일인지 자가가 해야 될 말인지 안 해야 될 말인지 요런 것을 자기 현실에서 뽀스래기 죄를 하나님께서 슬슬 몰아다 붙여 보니까, 뽀스래기 죄 이걸 예사로 알고 제가 칭찬받기 위해서 사람에게 사람 좋다 하기 위해서 인간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일을 조그매씩 고런 걸 슬금슬금한다 말이오. 틀렸다 말이오. 네가 이러니까 너에게 자유 주고 네에게 무슨, 무슨 부강이나 무슨 권세나 주는 날이면 네가 왕창 삐뚤어져 가지고서 복음을 핍박 시키고 하나님의 도를 가루고 너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할 터이니까 아직까지 못 준다.

이러니까, 고 현실에서, 이런 삐뚤어진 것을 또 저런 삐뚤어진 것을, 사람들이 이런 사정을 저런 사정을, 사람들이 요렇게 친절히 하는 것을 조렇게 달콤하게 하는 것을 요렇게 자기를 슬슬 높여서 존경하는 것을 뭐 이렇게 좋은 것을 오만 것을 다 해도 안 듣습니다.

개를 기르는데 요 개를, 요게 이제 됐습니다 하고서 내놓는 것은 요걸 보니까 처음에는 이래 뭐 먹을 걸 갖다 이렇게 주니까 그만 널큼 먹어서 몽둥이로 뚜드리 가지고 이래 가지고서 이제는 그다음에 게워내고 또 그다음에 몇 번 그라니까 고 먹을 갖다 이래 주니까 또 그걸 안 먹고 이라다가 또 나중에 가서는 좀 더 맛있는 걸 주면 이놈이 또 고만, 슬금슬금 고놈도 안다 말이오. 주인이 어데 있는가 슬금슬금 보면서 그걸 널큼 먹습니다. 몽둥이로 뚜드리면 또 게워내고 이라다가 나중에는 맛있는 걸 줘도 안 먹어. 안 먹는데 이놈을 또 며칠 배를 쫄쫄 골려 가지고 맛있는 걸 주니까 또 널큼 먹어. 또 뚜드려 팬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이제 개워내고 이라면 나중에 가서 암만 줘도 주인이 주는 것만 먹지 주인이 주지 안하는 것은 먹지 안해. 그럴 때에 비로소 그 개를 참 값 비싸서 사 가지고서 그 지킴으로, 뭐라 하노? 그 뭐라 합니까? 무슨 개라 합니까? 보호 견이라 하나 뭐라 하노? 그 지키는 개? 지킴 개, 집을 지키는 지킴 개로 또 그 개를 저게 또 이제 전쟁하는 데 또 인제, 전쟁하는 데 뭐라 하더라 군견인가 뭐 그런 걸로 이렇게 쓸 수 있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개를 길을 들입니다. 길을 들여 가지고서, 그러면 개를 사러 갈 때에 거석한 집에 그 집에 도적이 많은 집에는 개 그놈을 뭐 다른 거야 문제 없지마는 짖어 쌓아서 안 된다 말이오. 짖어 쌓아. 인제 그러기 때문에, 주인이 딱 개를 이렇게 해 놓는데 거석한 개는 이렇게 속에, 밖에서 뭘 맛있는 걸 던질라 해도 들어 가지 못하도록 그래 놓고, 그거는 밤으로 자지 안하니까, 짖으니까 탈이니 이래 쌓아도 이거 뭘 못 들어가구로 해 가지고 던져도 못 먹는다 말이오. 잡을 수가 없어서 못 먹어. 제가 먹을라고 해도 갇혀 가지고 있으니까 . 이러고, 그런 것은 가치가 없어. 아주 가치 있는 개는 어짜느냐 하면은 길을 잘 들인 개는 끌려 놓습니다. 밤으로 끌려 놔 가지고서 암만 그래서 뭐 소고기를 갖다 줘도 구워 줘도 아무 걸 줘도 안 먹어. 아예 안 먹고 그러며 짓기만 짓는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그 값이 비싼 것입니다.

이거 모양으로 사람도 그렇게 하나님이 길을 들이느라고 일생 동안을 길을 들여도, 여게 말씀하시기를 「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이거 길들이기 위해 가지고서, 길을 들여 가지고서, 고만 조그매 먹었으니까 이거 주인이 그거 먹었다고 게워내라고 몽둥이로 뚜드린다 말이오. 뚜드리니까 그 개도 게워내, 개도 게위내는데 이제 사람을 그와같이 한 걸 고 징계를 해 가지고서 고 값을 주면은 ‘아이구, 내가 이 죄를 지었습니다.’ 회개는 안 하고 징계 주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는 그자는 고칠 희망이 없다 그말이오. 몽둥이로 개 뚜드리는 거와 마찬가지라. 회개하라.

이래서,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가 인내로써, 무슨, 여게 인내라면 참고 견딘다 말은 무슨 인내입니까? 우리가 범죄하지 안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자꾸 옵니다. 이 마귀란 놈이 죄를 짓도록 자꾸 이렇게 하고 또 하나님이 죄를 짓도록 자꾸 합니다. 그 개를 주인이 슬그머니 맛있는 걸 이제 슬쩍 흘려 놓기도 하고 또 모르게 던져 주기도 하고 자꾸 이렇게 인제 그게 시험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마귀를 시켜 놓으면 마귀 요놈이 와 가지고 죄를 짓도록 촉분을 합니다. 멀건 사람을 와 가지고 뺨을 때립니다. 오른 뺨을 때려 주면서 이놈의 새끼 하고 때려 주면 또 저도 돋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러면 오른 뺨을 때리거들랑은 왼 뺨을 돌려 향해라. 억울하게 억지로 공연히 사람을 찍탈을 붙어 가지고서 송사를 해 가지고서 속옷을 뺏들라고 하거든, 속 옷은 없어도 되지마는 겉 옷은 없으면 빨가벗지 않습니까? 속 옷을 달라 하거든 겉 옷까지 줘라. 이말은, 네가, 너를 범죄케 할라고 촉분을 지를라고 이렇게 저렇게 어떻게 해도, 너를 때리고 뭐 어떻게 하고 뭐 어떻게 이렇게 해도 네가 죄만 안 지으면 산다. 이래서,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인내는 참고 견디는 것으로. 네가 아무리 배고파도 죄 짓지 말고 억울해도 죄 짓지 말고 분해도 죄 짓지 말고 네가 매장돼도 죄 짓지 말고 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도적을 맞고 손해를 보고 뭐 어떻게 하더란대도 너 싸울 것은 죄뿐이다. 너는 네가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 때문에 죄만 안 지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은 너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죄만 짓지 마라. 이것을 가리켜서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참고 견디라 말은 네가, 개도 며칠 굶겨 놓고 맛있는 거 주면 널큼 삼켜 버립니다. 그라면 그만 뚜드려 팹니다. 그래 가지고 그놈 게워내기까지는 뚜드려 패. 게위내요. 게워내고 난 다음에는 거석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이 처음에는 이기기 쉬운 죄를 주다가 나중에는 이기기 어려운 죄를 주고 나중에는, 무엇이 되게 갈급하고, 갈급하고 갈급하고 할 때에 고걸 딱 갖다 줍니다. 갈급하고 갈급할 때에 고걸 갖다 주는데, 고걸 갖다 주면서 고걸 취하기는 취하고 싶고 취해야 되겠는데 고걸 취할라고 하면은 하나님 법을 어겨야 취하게 되도록 고렇게 딱 고런 형편을 가지고 딱 갖다 줍니다. 고럴 때 원청 소원하던 게 돼 놓으니까 소원하던 게 돼 놓으니까 그만 그거를 널큼 삼켜 버립니다. 그래 가지고 사람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아무리 생활에 곤란할 때에 돈뭉텅이가 와도 네가 그 돈뭉텅이를 취하지 말고 생활에 곤고한 걸 참아라. 참아라 말이오. 또 네가 남한테 압제받은 것이 참 분하고 이런데 압제를 많이 받은 사람에게 권세를 줍니다. 권세가 오니까 ‘나도 한번 권세 가지고 이놈 복수 한번 해 봐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권세를 하나님이 슬그머니 갖다 주면은 고만 그 복수 하기 위해서 권세를 취한다 말이오 네가 남한테 아무리 억울하게 천대를 받아서 권세가 없어서 남한테 압제, 천대를 아무리 받아도 네가 인내해라. 참고 견뎌라.

요 인내하라 말은 자가가 죄 짓지 안하고 참고 견디기에 심히 어려울 그때에도 네가 참고 견뎌서 죄만 짓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인내로써」 네가 어떻게 범죄하지 안하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다고 할지라도 네가 범죄하지만 아니하고 참고 견뎌라. 참고 견뎌라. 「인내로써」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우리는 지금 하나님을 향하여 달려가기 때문에 죄만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받는 길을 가지 못합니다. 죄만 있으면 하나님의 기적을 우리는 받지 못합니다. 온 피조물이 뮈라고 달라든다 해도 그것이 나를 죄짓게 하는 달라드는 그까짓 거는 온 나라가 다, 온 천하가 달라들어도 그거 눈도 꼼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왜정 말년에도 일본 나라가 막 달라들었지마는 죄 짓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도 꼼짝하지 안했어. 그런 거 하나로 보지도 안하고 그까짓 거 일본 나라를 조물기는 하나, 하나의 조그만한 물방울같이도 안 여겼습니다. 죄 짓게 하는 것은, 온 천하가 죄 짓게 해도 죄 짓게 하는 거는 그까짓 거 가치 없는 거라. 뭐 힘이 있습니까? 공산주의 저희들이 암만 세지마는 내가 범죄할 때에 그렇지, 죄를 지으라고 할 때에 죄 안 짓는 그 일은, 죄를 지으라 할 때에 죄 안 짓는 그 행위는 무슨 행위입니까? 그거 뭐이요? 예? 고함 질러. 큰 소리 해 봐, 좀. 산 믿음. 죄를 범하게 하는데 죄 범하지 안하는 건 산 믿음이라 말이오. 산 믿음은 전능하다는 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그들이 만일, 죄 짓게 할 때에는 ‘됐다’ 그때는 ‘안 짓는다.’ 이거는 그만 산 믿음이니까 전능자가 되니까 그까짓 거 무슨 소용이 있겠소? 또, 의를 행하지 못하게 자꾸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할 때에 하나님 뜻대로 사는 그거는 뭐입니까? 산 믿음이야. 요 산 믿음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똑똑히 밝혀 주셨습니다. 그전에도 설교했지만 하나님이 점점 요새 잘 밝혀 주셔서 산 믿음을 밝혀 주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앞에 경주를 경주하며」 「우리 앞에 경주를 경주하며」 우리가 달려갈 길은 하늘나라를 향해서 달려가는 거 아닙니까. 천국을 내 나라로 만들어서 그 나라의 시민권 얻었기 때문에 그 나라의 권력을 위해서 달려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나라를 향하여 달려가기 때문에 우리는 의인을 향해서 의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고 완전한 사람을 위하여 달려가고 있고 전지 전능자가 되기 위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 목표가 사소한 목표가 아니오. 우리는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이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 목표를 향해서 경주를 달려가라. 무엇이나 돈 없어도 문제 없고 권세 없어도 문제 없고 어떤 게 있어도 문제 없고 다만 우리에게 힘 없게 하는 것은, 힘 없게 무겁게 하는 것은 죄요 우리를 붙들어 매는 것은 죄니까 어짜든지 죄 이놈만 네가 벗어 버리고, 벗어 버리고 죄 이놈만 범하지 안하면 너는 돈 없어도 문제 없고 권세 없어도 문제 없고 무식해도 문제 없고 병들어도 문제 없다. 죄만 없으면 우라가 달려갈 길을 얼마든지 달려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믿음의 주요」 주님은 모든 걸 승리하시고 아버지 우편에 계셨는데 「믿음의 주요」 예수님은 믿음의 주라 믿음의 주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믿음의 주란 말을 다른 말로 말하면 무슨 말입니까? 믿음은 뭐이지요? 믿음은 뭐이요? 예? 순종. 믿음은 순종 아닙니까? 「믿음의 주요」 주님은 순종의 주라 말이오. 그러면, 순종의 주님이라면은 주님이 누구에게, 우리에게 순종했소 마귀에게 순종했소 하나님에게 순종했소?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을, ‘순종의 주요’ 아버지에게 순종만 했지 어긴 일을 한 번도, 아버지께 순종만 했어. 순종했어. 주님은 죄 없이, 순종하는 거 요것만 했어.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래 가지고서 온전을 이룬 이 주님. 싸우기는 죄하고 싸웠고 힘은 주님에게 순종하는,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만 힘썼고, 주력은 순종에 주력했고, 싸움은 죄하고 싸웠고 요 두 가지 가지고 온전을 이루었습니다. 우리도 가는 길이 이 길입니다.


선지자선교회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인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십자가를 참았다, 십자가를 참은 것이 뭐입니까? 십자가는 우리의 죄의 댓가로서 대형 대행 대화친을 인하여서 고난당한 것이 십자가인데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할 것 없이 한 가지만 했으면 괜찮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사탄이 말하기를 ‘내게 절 한 번만 해라. 그라면 온 천하를 다 너에게 상속시켜 주겠다.’ 온 천하를 다 얻을 수 있습니다.

천하를 사탄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사탄이 가지고 있으니까 예수님이 사탄에게 절을 해서 사탄에게 소속이 돼 버리면은 온 천하는 예수님에게 상속시켜 주고 사탄은 예수님의 머리가 돼 가지고 떡 이래 앉았을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절 안 했다 그말이오.

이래서, 그래서 예수님은 범죄하지 아니할라고 하는 그 고통을 당했고 또 이 죄 지은 값으로 어떤 형벌을 당해도 예수님이 달게 참았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 위해서 고통을 당하신 것이 이것이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부끄러움이라고 하는 것은 이 부끄러움은 뭐입니까? 이 부끄러움은 예수님이 천대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저렇게 천대를 해서 뺨을 치고 침을 뱉고 이렇게 저거 놀릴 대로 조롱을 하고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 능력이 없습니까? 예수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열 두 영도 더 되는 그 영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 영이라면은 이 우주와 영계를 만들 수도 있고 그걸 없앨 수도 있고 다 하나도 보이지 않게 없앨 수도 있고 하는 이 영계나 물질계를 한 영이면 그렇게 할 권리가 있는데 그런 권리를 다 가졌다 말이오. 열 두 영도 더 되는 영을 가졌다 말은 다 가졌다 말이오. 다 가진 주님이신데 그렇게 권리를 가졌는데 예수님을 촉분을 지르고 이라지마는 예수님은 그들이 촉분 지긴다고 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지 안하는 것, 하나님이 하라고 하지 안한 것 자기 능동적으로 독단적으로 말 한 마디라도 했으면 고게 그만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안하는 고 죄가 됐기 때문에 고만하면 다 돼 버렸습니다. 고거 하지 안할라고서 고런 권세를 가지고서도 참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없어서 죄를 짓지 않는 그것은 자기에게 상관이 없습니다. 죄를 지을 수가 없어서 죄를 짓지 안하는 거는 그거는 자기에게는 상관이 없고 죄를 지을 수 있는데 죄를 안 짓는 그것이 자기가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또 죄를 안 지을래야 안 지을 수 없는데 죄를 안 짓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자기가 참을 수 있는, 자기가 이런 큰 권세와 세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억울함을 듣고 참는 것이 이제 의를 행하는 것이고 죄를 대항해서 이기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여게 피곤이라 말은 무슨 피곤입니까? 저게 ○○씨. 여게 피곤은 무슨 피곤이지요? 왜 졸아, 졸기를?

「너희가? 3절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여게 피곤이 무슨 피곤인지? 무슨 피곤입니까? 무슨 피곤이요? 여게 피곤은, 피곤은 한 말로 말하면 죄 안 지을라고 하는 피곤입니다. 죄 안 지을라고 하는 피곤. 죄 짓지 안하고 살라 하니까, 얼마나 죄를 짓지 안하고 살라 하니까, 죄를 짓지 안할라 하니까 살림살이도 확 뺏들리기도 하고, 죄 안 지을라 하니까 억울하게 감옥도 가게 되고 죄 안 지을라 하니까 멸시 천대를 받고, 멸시와 천대를, 죄 안 지을라 하니까 오만 멸시와 천대를 받아요. 조롱을 받아요. 조롱을 받아도 요 도리를 깨닫는 사람은 그런 게 상관이 없어.

제가 ○○교파하고 싸울 때에 ‘이제 나는 다시는 ○○교파에 대해서 이런 말이고 저런 말이고 나는 그런 충고하는 말을 하지 않겠다. 이제는 나만, 나는 앞길만 보고서 달려가겠다. 그저 신앙으로만 가겠다.’ 요렇게 요것을 작정하고 고때에 작정하는 것으로 내가 머리를 깍았습니다. 머리를 싹 깎았습니다. 머리를 싹 깍으니까 우리 집에 자녀들도 다 울고 야단이 났어. 그러나, 내 속으로는 이제는 내가 가던 그 길을 내가 가지 안하고 이제는, 남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내가 그거 하지 안하고 나만 걸어 가겠다 하고 작정하고서 머리를 깎았어. 머리 깎았는데, 그 뒤에 내가 그 회의에 가니까 말하기를, 나를, 그때 내가 그들과 대항해서 투쟁할 때니까. 조롱을 하며, 조롱을 해요. 시달려 먹는데 나를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왜, 예수 믿는 사람이 저렇게 중같이 머리는 깍았을꼬?’ 이래 쌓아면서 나를 중이라고 놀려 먹어요. 중이라고 놀려 먹어도 그래 내가 그걸 이런 걸 다 알기 때문에 그런 거는 자극이 안 와. 그래 내가 있다가 말하기를 ‘주의 피의 구속받은 성도를 중이라 하면 주님이 노여워하시지. 그라면 안 되지.’ 내가 그라고 말았어요.

이랬는데, 그뿐 아니라 뭐이라도, 우리가 참, 예수 믿을라 하면 별별 억울한 꼴 조롱하는 꼴 그런 거 있습니다. 그게 피곤이라. 죄 안 지을라 하니까 피곤이라. 죄 안 지을라 하는 피곤. 참을라 하니까 피곤해. 자기에게 힘이 있으면서 견딜라 하니까 피곤해. 이러나, 그래서 ○○○ 목사님은 그렇게 말했어요. ‘사람을, 일꾼을 일을 맡겨 가지고서 사람을 일꾼 되게 하지 마라. 일을 시켜 가며 일꾼되구로 하지 마라. 세상은 그렇지마는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안 된다. 일꾼된 사람을 일을 시켜라. 그 일꾼 안 된 사람을 일을 시키면서 사람을 만들어서 일꾼 되구로, 할라 하다가는 반드시 네가 큰 화를 당할 터이니까 시키지 마라.’ 또 말씀하기를 그랬어요. ‘일을 시킬 때에는 반드시 그 사람을 발길로 몇 번 차 봐라. 한 번 차면 참는다. 또 그 다음에 억울하게 두 번 차면 또 참는다. 세 번 차면 참는다. 그래서 적어도 세 번 발길로 차 가지고서 참고 견디거든 이놈 쓸모 있다 하고서 들어 써라.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목사님은 실패한 일이 없었어요. 그 참 인간으로서는 아주 위대한 걸음을 걸어갔습니다.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우리가 이 세상이 범죄케 하는 세상 또 이런 꾀움 저런 꾀움이 많으니까 그 꾀임에 꾀이기 쉬운데 이 꾀움을 안 받을라고 하니까 뭐 이렇게 눈에 번쩍거리는 것이 있습니다. 저렇게 눈에 번쩍 거리는 게 있습니다. 마구 해와가 선악과를 볼 때에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울 만하고 이렇게 욕심이 잔뜩 나는 그런 좋은 게 꽉 찼다 말이지. 그런 거 모양으로 이 세상에서 우리, 우리 반사들은 그런 일 없지마는, 없지 안해요. 나는 없지 않다고 봐요.

이러니까, 아직까지 미혼의 남여들, 뭐 자기가 저 사람하고 결혼 했으면 좋겠다.

저 사람하고 연애하면 좋겠다. 남자가 여자 보고 마음에 욕심 나는 거. 여자가 남자 보고 욕심 나는 거 그런 거 있는 거 그걸 참을라고, 그걸 억압해 가지고 눌러서 꺾어서 하면은 그거 힘이 든다 말이오. 인제, 그런 말이 있어요. 발에 부절은 죄요, 그 나올 때에, 그 마음이 나올 때에 꺾지 안한 것은 죄가 되고 발에 중열은 의요, 그거 나오는 것을 꺾어서 없애 버리는 거는 그것은 의요. 희로 애락의 미발은 나오지 안하는 것은, 나오지 안하는 것은 그게 중이라. 그게 인제 온전을 이루었다 그말이오. 그런 생각이 안 나와야 되지마는 나오는 그것까지 이것이 약하게 된다 말이오. 나오면 뭐이든지 나쁜 생각 나오면 그놈을 꺾어 버려요, 꺾으면 그게 의가 돼요. 그 나오지 안하는 그거는 온전히 성화가 된 것이라.

이래서, 무엇이든지 우리 눈에는 마귀란 놈이, 오만 거 다 보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물질에 대해 죄를 안 지을라 하면은, 물질에 대해 죄를 안 지을라 하면은 그 마귀란 놈이 천하 물질이 다 제것이기 때문에 죄 안 지을라 하면, 이것 보자, 천만 원 줘 가지고 죄 안 지으면은 요 사람을 억만 원을 줘서 죄를 지을 수 있으면은 의외에 억만 원 뭉텅이가 쏙 옵니다. 억만 원 뭉텅이 가지고도 죄를 짓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는 몇십 억이 뭉텅 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말 한 사람이 있어. 그래서. ‘내가 이제 이 칠계를 범하지 안할라고 이라니까 마귀란 놈이 내가 칠계를 범할 수 있다면은 천하의 제일 권세 있는 대왕의 아내를 나한테 갖다 줘 가지고서 내가 칠계를 범할 수 있다면은 마귀란 놈이 대왕의 아내를 내게 갖다 줄 것이다’ 그말은 무슨 말이냐? 내가 이것 줘서 범죄하고 저것 줘서 범죄할 수만, 범죄할 수만 있다 하면은 어떤 어려운 거 어떤 귀한 것이라도 갖다 주면서 범죄케 할 것이다. 이러니까, 내가 이제 이 범죄하지 안할라 하는 것은 이 마귀란 놈이 어떤 것을 갖다 주면서 범죄케 할라고 해도 범죄 안 하니까 그들은 천하 것을 다 주고라도 나를 범죄케만하면 나를 범죄케 할라고 달라들 것이다. 예수님에게도 그와같이 달라들었어. 어떤 성자가 그와같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고로,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이제 우리가 이 죄를 대항하다가 피곤해서 우리가 넘어질까 해서 주님께서 먼저 앞서서 모든 죄를 대항해 가지고서 이렇게 십자가에 죽으셨지 그는 털끝만치라도 범하지 안한 이것을 기억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피곤이라는 거 「피곤하여 낙심치 않게 하기 위하여」 피곤이라는 거 이 피곤은, 자, 이 경제적으로 죄 안 지을라 하니까 이 시련을 받는 데에는 경제적으로 아주 곤해서 견디지 못하는 거, 아주 재물로 견디지 못해서 이 경제의 죄를 짓지 안할라 하니까, 이 죄를 짓지 안할라 하니까 그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온다 말이오. 어려움이 와도 또 죄를 안 짓고, 그러니까, 경제적으로 시련을 받을라 하니까 고통이라. 이래서 이제는 경제적으로 어떠한 돈을 막 갖다 웅쳐 주고 돈 속에 파묻어도 이제 돈에게 그는 소욕을 가지지 안하고 하나님에게 소욕 가진 사람이 되면 온 우주의 물질은 그 사람의 물질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물질입니다. 권세도, 요거 똑똑히 아십시오. 권세도 그러합니다. 이러기에, 하나님께서 악령을 시켜 가지고서 그 사람을 요런 면으로 조런 면으로, 경제면으로 권세면으로 지위면으로 행락면으로 취미면으로, 모든 취미면으로 모든 행락면으로 요런 모든 뭐, 이런 재미 저런 재미 어떤 모든 취미면으로 이런 면으로 그 사람을 연단시킬라 할 때에 그래도 죄 안 짓는다. 그러면, 또 그러면, 자꾸 그 면으로 곤고하게 만듭니다. 그 면으로 곤고하게 해 가지고 그 면이 가난해서 그 면이 아주 어렵도록 그렇게 만들어요. 어려워서, 얼마나? 어려워서 죽어도 이제 그 범하지 말라 그말입니다.

이렇게 피곤해도 우리는 낙심하지 안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금같이 만들기 위해서 요런 면으로 어려움을 겪으고 조런 면으로 어려움을 겪게 해 이렇게 해 주십니다. 그러면, 경제적으로 우리를 온전한 자를 만들라 할 때에는 우리에게 재산이 없으면 죄 짓게 되니까 재산 없이 해 놓고 이제 죄하고 재산하고 같이 한테 뭉쳐 보내고 또 그래도 안 범하면은 우리가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인데, 죽을 지경인데 이제는 음식하고, 음식하고 이제 죄하고 뭉쳐 보냅니다.

이래서, 고문을 할 때에 사람은 남자는 뭐 그저 며칠은 굶어야 된다고서 여자는 여드래 굶으면 죽고 남자는 이레 굶으면 죽는다는데 요새는 뭐 그런 것이 문제가 없습니다. 이런데, 그래 며칠 동안 굶으니까 배가 고프지 않습니까? 배가 고프면 그때 밥을 주면서 ‘자, 갖다 놓으면서 `네가 이제 우리가 말하는 ’ 과거에 왜정 때에 그랬어요. 신사 참배. ‘요 신사 참배 해라. 요 신사 참배만 하면 이제 네가 이렇게 고만 자유로 나가서 밥 먹을 수 있지 않느냐?’ 밥을 가지고 조롱을 합니다. 그래도, ‘피곤하여 낙심치 마라.' 네가 배 고파도, 배 고파서 네가 죽었으면 죽었지 죄를 짓지 마라. 이러니까 밥을 안 먹었습니다. 밥을 안 먹으니까 이제는 ‘아이고 그놈 독하다. 이제는 밥을 먹어라.’ 밥을 먹어라 준다 말이오. 밥을 먹어라 해도 인제 ‘아, 신사 참배 안해도 좋으니까 밥 먹어라’ 이 밥을 줬다 말이오. 밥을 주는데 밥을 먹어 보니까 밥이 짜. 소금을 가지고 소금을 막 넣어 가지고서 했다 말이오. 이놈 먹고 나면 뒤에 가서 인제 고통이 있을 거거든. 믿음의 사람들은 그 밥을 안 먹었어요. 그 안 먹고 ‘왜 밥을 안 먹느냐?’ `너거도 사람 나도 사람인데 사람에게 이렇게 짜운 밥을 줘 가지고서 이와같이 하는 이게 사람의 행동이냐 이 밥 안 먹는다.’ 안 먹었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못 견뎌서, 이 피곤해서, 피곤하다 말은 못 견뎌서 말이오. 배고파서 못 견뎌서 소금밥을 먹어 놨다 말이오. 먹고 나니까, 아, 단식 기도 하고 나면은 나중에 제일 쓰이는 게 뭐이냐? 단식하면은 몸이 빠짝 마르기 때문에 마르니까 온 전신에는 제일 요구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수분을 요구합니다. 수분을 요구하니까 단식 기도 하면은 자꾸 물이 쓰입니다. 자꾸 물을 먹고 싶어. 이런데, 아, 단식했는데 그냥 있어도 물이 쓰일 터인데 소금밥을 먹어 놨으니 어찌 됩니까? 물이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라. 그때는 그만, 인제 그만, 나중에 밥 참는 거 그것은 뭐 아무것도 아니야. 아, 죽을 지경이야. 물이 먹고 싶어 죽을 지경이야.

고래 놓고 난 다음에 물을 앞에 딱 갖다 놓고 손에 대일똥말똥 요래 갖다 놓고 너 이제 신사 참배만 하라 그라면 물 먹고 잘 살 건데 네가 이 어리석은 자야 고집을 피울 게 뭐 있느냐 이라고 난 다음에는 목사들 데리고 와 가지고, 신사 참배한 목사들 와 가지고 ‘아, 그래 쌓을 게 뭐 있어? 그만 이거 저 신사 참배 하면, 온 모든 거 가족들도 지금 얼마나 고생 당하는 줄 알아? 이러니까 그만 가서 신사 참배 그거 하면 국가 의식인데 뭐 신사 참배만 하면 될 터인데 그럴 게 뭐 있어?’ 이래 가지고 목사들이 와서 꼬웁니다. 목사들이 와서 꼬아도, 꼬우지, 또 잘못해 가지고서 물을, 소금밥을 먹어 놔서 목이 말라서 죽을 지경이지. 물은 앞에 와 있지. 이렇게 해도 네가 낙심치 말아라. 네가 이제 ‘아이구 할 수 없다’ 하면서 그저 신사 참배 하겠다고서 물 먹는 그렇게 하지 마라.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피곤하여 낙심치 말아라. 아무리 고래도 네가 견뎌라, 견뎌라, 인내로써 달음질을 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우리는 죄를 그냥 대항할 게 아니라 죄로 가지고서 피흘리기까지, 죄를 안 지을라고 하다가서 맞아서 피를 흘리고 죄를 짓지 안할라 하다가서 우리가 사형을 당하고 이래도 우리는 죽어도 죄를 지을 수 없는 자입니다. 죽어도. 이래서, 우리는 고거 단정을 해야 됩니다. ‘주여’ 이제는 내가 털끝만한 죄도 알고는 짓지 않겠습니다. 또 내가 죄를 모르고 죄를 짓는 이런, 모르고 짓는 죄를 짓지 않게 해 주옵소서’ 그래서 성도들이 기도하기를 ‘알고 짓는 죄를 짓지 안하도록, 고 범죄를 짓지 않게 해 주옵소서.’ 요걸 기도하고 그다음에는 ‘내가 몰라서 죄를 짓는 그런 일이 되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이제는, ‘이제는 털끝만한 죄도 짓지 않겠습니다.’ 요게 쉬워. `털끝만한 죄도 짓지 않겠습니다.’ 요게 쉽지, 죄를 서서히 큰 죄부터 회개해 나가는 거, 그러기에 며칠 전에도 제가 말했지마는 무엇이든지 딱 하는 요기 제일 쉽습니다. 담배도 딱 끊는 거. 술도 딱 끊는 거.

모든, 어제도 가니까 주일날이 어느날이지? 22일날이 주일이가? 22일날 23일날, 23일날 제가 그 양산동 기도원 기도실에 천막에 올라가니까, 내가 올라 가니까 뒤에서 뭐이 툭탁툭탁 거리며 따라와요. 보니까○○○ 조사님이라. 따라오는데 ‘어제는 얼마 나왔더나?’ 이라니까 유치반은 백 팔십 명, 또 장년반은, 장년반은 팔십 이 명인가 삼 명인가 나왔다고 이래요. 이라면서, 그래 뭐 아, 참 기뻐서, 기쁘다고, 이제 뭐 자리가 빡빡해서 앉을 자리가 없다고 이렇게 말해요. 말하는데, 고 사람 말이지요, 내가 기쁜 것은 왜 기쁘냐? 고 사람이 이 부산에서 장자리를 거의 다 가졌습니다. 그래 보여도. 장자리는 거의 다 가졌어. 먼저 로타리회에서, 세계 이렇게, 그거 뭐라 합니까? 시찰을 갔던가 그 사람이 관광 갔던가 모두 다 이래 갔어요. 이래 갔는데 거게서 대장으로 갔습니다. 대장으로 갔어. 거게 다, 다 전부 박사들 전부 이런 사람들만, 박사 대학 교수 이 사람들만 가는데 거게서 총 지휘자 총 대장으로 그 사람이 갔었어요. 그라고 뭐 여게 저게 보면 장자가 막 수두룩이 합니다.

이래도, 딱 작정하고 이제 말하기를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내가 이제는 고 길을 가겠습니다. 가겠으니까’ 그때 말하기를 ‘닷새만 말미를 주십시오.’ 이래 ‘닷새만 말미를 주십시오.' 그라고 난 다음에 닷새 후에 그때 딱 작정하고 나서고 난 다음에 그라고 난 다음에 모든 있는 전화 번호 다 태워 버리고 다 없애 버리고 모든 사람 다 거석하고 누가 오든지 무조건 없다고 합니다. 무조건 없다고서 ‘없다’ 이래 가지고 딱 끊고 그다음에 그 수많은 친구들 그 다음에 만난 사람이 하나도 없답니다. 하나님이 이거 기뻐하십니다. 싹 끊으니까 되는데 ‘아, 이 사람 만나면서 조심하고 조절하고 어떻게 하겠다.’ 안 돼요. 딱 끊는, 사람 딱 끊는 사람은 이겼습니다. 딱 끊은 사람. ‘이제는 내가, 이제부터는 털끝만한 죄라도 내가 범하지 않겠다. 왜 하나님 말씀대로 못 살겠느냐? 털끝만한 죄도 범하지 않겠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털끝만한 것도 범하지 안하고 말씀대로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죽어도 그대로 단행 하겠다.’ 요것을 작정하면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에게 죄가 있으면 자기가 어떤 일을 한다 해도 골만 빠지지 안됩니다. 골만 빠지지 안 돼요. 죄가 있으면 골만 빠지지 안됩니다. 자기가 고퉁만 당하지 아무리 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어짜든지 죄는우리의 몸에 암병보다도 더 합니다. 죄는 행복에 암병보다 더 합니다. 죄가 있으면 행복이 없어. 그걸 끊어 보십시오. 당장에 끊어 보면 그 죄를 범한 그 취미보다도, 그 수입보다도 더 측량 못 할 그런 수입이 우리에게 오고 그 존귀가 오고 취미가 오고 재미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금년이 가기 전에 우리는 죄를 완전히 정리합시다. 제가 가정에나, 가정에서 돈을 벌어다가 가족들을 위해서 아무리 수고를 한다고 해도 죄 지으면서 저 때문에 가정은 망합니다. 제가 죽어 버리든지, 죄를 회개하든지 죽어 버리든지 없어지면 남은 가족들은 죄 없는 가족들은 잘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잘 살립니다. 뭣 때문에 엿새 동안에 우주 만물을 창조했는데 그분에게 뭐이 없어서 이 모든 물질계에 곤고를 당하겠습니까? 다 그분이 만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가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해 보십시오.

죄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저 ‘내가 죄 안 지으면 굶어 죽어.’ 그래 굶어 죽을 요량하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그라면 잠시 잠깐 후면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짓던 자가 죄를 이제는, 죄를 짓던 자가 죄를 지어야 될 고 현실에서 죄 안 짓겠다고 죄 안 지으면 고것은 하나님의 뜻에 명중 됐소 안 됐소? 명중됐습니까 안됐습니까? 명중됐어. 명중됐으면 그게 무슨 믿음이요? 산 믿음 아닙니까? 회개는 산 믿음입니다. 죄를 안 지을라고 버투는 것은 산 믿음이요. 의를 닥칠 때 그 의를 기어코라도 실행할라고 단행할라고 하는 것은 산 믿음이라. 그 산 믿음에는 전지 전능과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의 주권이 함께 한다는 걸 요것을 꼭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쩌든지 이제 우리가, 뭐, 내가 해결할라고 하지 마십시오. 해결 못 합니다. 무슨 죄를 제가 해결하겠소? 주님에게 다 맡겨 놓고, 그저 맡겨 놓고 이 시간부터 말씀대로 내 언행 심사가 살기로 작정만 해요. 그라면 모든 게 됩니다. 제가 해결 못 해요. 그러니까 뭐, ‘이 사람에게 말하고 저 사람하고 또 여수 거래를 하고 어짜고 그래도 서로 말이나 하고 이거 회계나 딱 해 놓고’ 이 모든 거 다 쓸데 없는 소리요. 다 무조건 다 주님에게 맡겨 놓고, 안 되거든 저 어데로 산으로 굴로 가십시오. 가 가지고, 그 사람이 가 가지고서 성경을 다섯 독 하고 오면 될 사람 열 독하고 오면 될 사람 이제, 와서 갈 때에 나한테 물으면 내가 성경 몇 독하고 오라 하는 고거는 말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해결해 주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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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6 하나님의 능력 받는 법/ 에베소서 1장 18절-22절/ 1983. 11. 9. 수새벽 선지자 20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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