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속성


선지자선교회 1986년 5월 23일 오일밤

 

본문 : 베드로후서 1장 3절∼11절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요 한 마디씩이라도 깨달아야 됩니다. 그저 속담에 개 머래 먹듯이 줄줄 겉만 핥으면 안 되고 요 안에 있는 뜻을 알아야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서 우리를 의인 만드시고 대속의 공로를 베푸셔서 우리를 의인을 만드시고 의인된 우리들에게 어떤 복을 주실려고 하느냐 하면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실려고 합니다.

생명에 속한 것을 주실려고 한다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과 연결됨을 인해서 얻어지는 그것을 우리에게 다 주실려고 합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됨으로 얻어지지 연결이 되지 않고는 얻어 지지 못합니다. 경건에 속한 복을 주신다는 말은 하나님만을 위하는 그 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걸 가졌어도 그것을 쓰기를 잘못 쓰면 화가 됩니다.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얻어지는 것, 영원히 하나님을, 하나님만이 위하게 되는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주실라고 지금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무슨 힘으로 줄라 하는가? 신기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이 복을 이루어 주십니다. 신기한 능력이라 말은 하나님의 능력인데 왜 신기를 붙였는가? 신기를 붙인 것은 인간들은 도무지 상상도 못 하는 그런, 경험도 못 했고 생각도 못 했고 알지도 못하는, 인간의 경험이나 감상이나 지식을 초월한 그런 능력을 가지고 이 축복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런데, 이 축복을 이루어 주시는데 이 운동이, 이 축복 운동이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불렀다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불렀다' 영광이라는 것은 모든, 하나님 아닌, 하나님 아닌 모든 다른 것들이 다 볼 때에 참 감탄하고 칭찬할 수 있는 그런 방원으로 우리를 불렀다. 또 모든 존재들에게 다 혜택이 되는 그런 방편으로 불렀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방편으로 불렀는고로 우리에게 대한 구원은 든든합니다. 그거 뭐 체면도 없고 막살이로 한 거 같으면 참 거 석하지만 그저 털끝만한 것이라도 혹 거리낄까, 혹 덕이 안 될라. 다른 사람들이 보고 그저 감탄할 수 있는, 모든 존재들이 보고 감탄할 수 있는 그런 방편을 써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일을 할 때에 그 일이 잘되든지 못 되든지 아무나따나 그저 되든지 말든지 일만 하는 그것과 또 일을 잘되도록 할라고 하는 그것과 힘의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되든지 말든지 그만 그저 궐땜으로서 하기만 하면 된다 하고 하는 그 일보다는 그 일이 잘되도록 할라고 하면 힘이 더 많이 듭니다. 또 일만 잘되구로 하는 거보다 일도 잘되고 그 하는 일을 모든 사람이 볼 때에 참 감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방편을 가지고 일을 할라고 할 때에는 더 힘이 듭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때에, 구원해 주시는데 첫째 말한 대로 뭐 되면 되고 안 되면 안 되고 그저 당신이 지능을 가지고 이렇게 확확 해 재끼는 그런 것으로 해 주면 좋겠습니까. 꼭 그 일이 잘되도록 그렇게 책임을 지고 우리에게 일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까, 우리에게 모든 이 축복되는 일을 해 주시되 소문들은 자들이, 보는 자들이, 모든 존재들이 참 감탄할 수 있도록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보고 칭찬하고 감탄할 수 있도록 영광과 덕이 있는 그런 방편을 가지고 해 주시면 좋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일호요 이호요 삼호요? 이것도 여러분들이 좀 생각해 봐야 됩니다. 기독교는 벌로 떠드는 데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떠드는 데는 거게 구원 역사가 없는 줄 아십시요. 어짜든지 심각히 심각히 좀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면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것을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또 그 방편은 영광과 덕의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신다. 이 뜻을 깨닫지 못하고 그만 줄줄 훠어 내려가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명과 경건에 속한 복이라 그 복이 어떤 복인지 한번 좀 여러분들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복이라도. 그 복이 어떤 그 빈약한 사람이 단독이 만든 복이라고 하면 그만침 빈약합니다. 또 그 복이 그 지방 장관, 부산 시장하고 참 밀접한 연결이 돼 가지고 그 복된 일이 이루어졌다고 하면 조금 또 권세가 있겠습니다. 또 그 복된 일이 시장과 연결돼 가지고 된 것보다도 대통령과 연결이 돼 가지고 그 복된 일이 됐다 이라면 그 복이 좀 가치가 더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 세계에 제일 강대국, 제일 강대국의 정권자와 연결이 된 복이라고 하면 그 복이 가치가 더 있습니까 덜 있습니까? 그런 걸 자꾸 생각해 봅니다.

이 성경은 자꾸 우리 시간을 많이 들여야 되지 시간을 들이지 안하면 모릅니다.

시간은 들이지 안하고 얼렁뚱땅으로. 여기 가서는 보자 다른 사람이 이래 춤 추더라. 또 이 찬송을 부를 때 이 이래 이래, 이래 율동을 이래 해 가지고 이라는 이거나 본 뜨고 또 그때는 소리를 꽝 지르더라. 또 사르르르르 낮추더라. 그때는 또 주욱 빼더라. 이 고저 청탁을 흉내 내 가지고 이런 거는 암만 해야 소용 없습니다. 자기 마음을 먹어야 돼요. 자꾸 생각을 가지고.

이런데, 그 동리에 제일 권세 있는 사람하고 연결된 복과 그 군에 제일 권세 있는 사람하고 연결된 복과 그 복의 가치가 같습니까 차이 있습니까? 또 그 군에 그 고을에 제일 권세 있는 사람과 연결된 그 복과 그 나라의 제일 권세있는 왕이라든지 대통령이라든지 그분과 연결된 복이라면 그 가치가 더 있겠지요.

그러면, 영원 자존자, 창조주, 주권자,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주권 개별 섭리자.

대주재자 이분과 연결된 복이라면 그 복이 가치가 어떠합니까? 그 복보다 좀 더 큰 복이 있습니까? 이게 그 뜻이니까 여러분들이 자꾸 이거, 여러분들이 새겨서 실지로 누리지를 못하고 이 복을 받지를 못하고 믿지를 않기 때문에 이거는 자꾸 설사한다 말이오. 아무리 고량진미 좋은 걸 먹여도 설사를 확 해 버리지요.

이러니까 먹고 나서 설사하고 먹고 나서 설사하니까 항상 눈만 뻐끔해 가지고 병만 들어 있지 도무지 아무런 능력의 살이 찌지를 안합니다.

기독자의 살찌는 것은 뭘로 살찝니까? 몇 가지로 살찝니까? 세 가지로 살이 쪄야 돼. 진리로 살이 쪄야 되고 영감으로 살이 쪄야 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살이 쪄야 된다 그거요. 이거 무슨 말인지 몰라. 모르는 자는 이거 뭐 그저 이런 거는 모르고 뚝딱 뚝딱 뚝딱 이라면 그만 진딱 진딱 진딱 이라면 참 재미있어 합니다.

뜻을 생각해야 돼. 생명에 속한 축복이라. 생명에 속한 축복이라 말운 하나님 대주재자와 연결된 축복이라 말이요, 연결된 축복. 대주재자와 연결된 축복이니까 그 축복은 실력이 어디만침 있습니까? 그 실력이 뭣만치 있어? 대주재 하나님만침 실력있는 그런 축복이라 말이오. 이걸 자꾸 깨닫고 나면 `주여!' 막 힘이 나서 못 견디겠는데 이거 못 깨달으니까 아무 힘이 안 난다 말이오. `생명에 속한' 경건에 속한 축복이라. 또 그 축복이 전쟁에 이용되는 축복이라. 또 그 축복이 사기 협잡하는 데에 필요한 축복이라. 그 축복이 도둑질하는 데 축복이라, 또 그 축복이 교만하는 데에 쓰는 축복이라. 또 그 축복이 다른 사람 멸시하고 천대하는 데 쓰는 축복이라. 그 축복이 또 자기 자랑하는 데 쓰는 축복이라. 뭐 그 축복도 용도가 꽉 찼겠습니다. 그 용도가 축복 용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데 여게는 `경건에 속한' 경건에 쓰여지는. 경건이라 말은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분의 법도대로 하는 것을 가리켜서 경건이라 말합니다. 이 축복은 이 대주재이신 그분만을 위하는데, 그분만을 위하는데 또 그분이 내놓은 그 법칙대로 그분만을 위하는 그 축복을 받았다.

그러면, 축복의 용도가 이보다 더 좋은 거 있어? 경건에 속한 축복이니까 이 축복보다도 더 용도가 더 귀한 용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용도가 있소 없소? 더 귀한 용도 없어. 또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된 걸 가리켜서 생명이라 말합니다. 성장에는, 그러면 대주재와 연결됐으니까 그 축복의 실력은 이보다 더 큰 실력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실력은 제일이지 용도도 제일이지 이런 축복을 주는데 이 축복을 뭘로 가지고, 주시느냐? `신기한 능력으로' 신기한 능력으로 이 축복을 이루어 주시요. 우리 힘으로 이루는 게 아니라. 신기한 능력으로 이 축복을 이루어 주시는 것을 우리가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되는데 안 믿으면 안 돼. 요새는 늘 믿음에 대해서 늘 말씀해 나왔는데.

`신기한 능력' 신기한 능력은 인간의 지식이나 사상이나 지혜나 암만 배우고 배우고 익히고 익혀도 인간의 그 요소가 도달할 수 없는 초인간의 실력을 가진 그 실력을 가리켜서 신기한 능력이라 그렇게 말 하는 것입니다. 그라는데, 이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능력으로 이 축복을 이루어 주시는데 대체 그러면 그 축복은 무슨 축복인가? 그 축복의 실력은 절대자와 연결이 딱 돼 가지고 있는 실력의 축복이다.

그러면, 그 축복은 용도는 뭐 하는 데 쓰는 건가? 도둑질 하는 데 쓰는 건가 행락을 취하고 그 모든 죄 짓는 데 쓰는 축복인가? 그 축복은 경건에 쓰는 축복이다. 대주재이신 그분만을 존귀케 영화롭게 하는데에 쓰는 축복인데 또 쓰기는 뭐 어떻게 쓰는가? 하나님이 내놓으신 고 법칙대로 딱 맞게 쓰는 그 축복이다. 그러면 이 축복의 용도가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습니까?

"복 주시되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그러면 이 축복을 주시는데 축복 주시는 방편은 어떠 하냐? 방편은 어떠하냐? 그 방편은 남이야 욕을 하든지 말든지, 웃든지 말든지, 울든지 말든지, 조롱을 하든지 말든지가 아니라, 이거는 먼지 하나도 개미 하나도, 우리에게 축복 주시는 이 축복에 방편은 개미 한 마리도 보고 `참, 그럴 수 어디 있노?' 개미 한 마리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버러지 한 마리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흙덩이 하나도 보고 감탄할 수 있는 이 영광과 덕이 되도록 하는 이 방편 가지고 했기 때문에 이 일 하기가 쉽소 어렵소? 이렇게 우리에게 축복 주시는 이 축복이 하나님께서, 안 되면 말고 그까짓 거 되면 되고 진딱진딱 해서 안 되면 말고, 안 되면 때려 부셔 벼리고 집어 던져 버리고 이런 게 아니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는데 그 방편은 개미 한 마리도 보고 감화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감화 감동이 되도록, 참 칭찬을 하도록 이런 방편을 가지고 우리에게 이 복을 이루어 주시니까 그 방편이 부드럽습니까 억셉니까? 어째요? 센 뻬빠 모양으로 막 꺽셉니까 아주 보드라운 명주같이 그렇게 명주 모양으로 그렇게 보드랍습니까? 어떻소? 이 방편이 어떻소? 억세요 보드랍소? 영광과 덕인 방편이기 때문에 이보다 더 보드라울 수가 없어. 이런 방편으로.

그러면, 능력은? 신기한 능력이라. 축복의 실력은? 하나님과 연결된 용도는? 경건에만 쓰는, 그 축복 이 축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4절에 "이로써" 그러면 이렇게, 우리를 참 지극히 측량 못 할 큰 축복을 우리에게 주는데 이 축복으로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로써" 이로써는 뭐이요? 이로써는 위에 말한 축복이라 말이오. 이 축복으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그러면 이 축복을 주시는데 이 축복을 우리에게 약속으로 주시요. 약속으로 줬어.

약속은 무슨 약속? `신기한 능력으로 다 이루어 주겠다,' `영광과 덕이 되는 방편 보드라운, 아주 부드러운 방편으로 이루어 주겠다.' `이 복의 실력은 절대자와 연결이 되어 있는, 하나가 되어 있는 이런 실력 있는 축복을 주겠다. `이 축복은 경건에만 쓰여질 수 있는 그런 보배로운 용도에 쓰여지는 그런 보배로운 축복을 주겠다.' 그러면, 이 축복으로 말미암아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그러면 이 축복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약속을 줬는데 그 약속이 무슨 약속이냐?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이 약속을 소망하는 모든 성도들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정욕을 인하여" 정욕은 인간 욕심이 정욕입니다. 욕심이 몇 가지 있습니까? 네 잘 압니다. 이런 걸 알고 안 잊어버린면 은혜라. 욕심은 두 가지 있어. 하나님 욕심 인간 욕심 두 가지 있어요.

인간 욕심을 가리켜서 육체의 소욕이라, 하나님 욕심을 가리켜서 성령의 소욕이라, 욕심은 두 가지 있습니다.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정욕은 인간 욕심 말한 것입니다.

인간 욕심대로 사는 저는 암만 살아 봤자 잘 돼도 썩을 거 못 돼도 썩을 거 뭐 커도 썩을 거 작아도 썩을 거 전부 썩을 것이요. 인간 욕심으로 목회를 해 가지고 세상에 제일 돼도 다 썩어 버립니다. 하나님 당신의 욕심으로 한 것만 남겨 두지 당신의 욕심이 아닌 것은 당신과 원수요 적이요. 당신의 욕심으로 안 한 것은 전부 다 태워 버려.

이라니까, `주여, 내가 선지자노릇도 많이 했고 능한 일도 많이 했고 귀신도 많이 쫓아냈고 병도 많이 고치고 신기한 일 많이 했으니까 나를 영접해야 안 됩니까?'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나를 물러가라. 내가 밝히 말하노니 불법을 행한 자야 나를 물러가라.' 그러면 이렇게 잘 했지만 그게 뭐이냐? 성령의 소욕으로 하지 안하고 제 욕심으로 했다 그말이오. 제 욕심으로. 제 욕심으로 했기 때문에 헛일이라.

제 욕심으로 한 사람들 다 제 꾀에 제가 빠져서, 어짜든지 제 꾀에 제가 빠져서 다 망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만듭니다. 제 꾀에 빠져서, 제 욕심에 빠져서 저 망하도록 그렇게 만든다 그말이오. "정욕을 인하여" 인간 욕심을 인하여서 "세상에서 썩어질 것들을 피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 하는 그것을 피하도록, 그 썩어질 것 하는 그것을 피하도록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일생 동안 살면서 썩어질 일만 하면 어찌 됩니까? 하루 종일 열심히 했는데 썩어질 일만 했습니다. 일생 동안 좋아서 입이 벙긋거렸는데. 전부 썩어질 것만 가지고 기뻐합니다. 썩어질 기쁨, 썩어질 보배, 썩어질 재물, 썩어 질 모든 명예, 썩어질 공로, 썩어질 쾌락, 썩어질 성공, 썩어질 사업, 전부 썩을 것뿐이라. 요걸 알아야 돼요. 뭐 어째 하면 썩어? 어떻게 하면 다 썩습니까? 대답 한번 해 봐요.

어떻게 하면 썩습니까? 어떻게 한 거는 썩지요? 인간 욕심, 인간 정욕으로.

그러면 썩지 안하고 영생할 거는 무슨 욕심으로 해야 됩니까? 성령의 욕심.

요것만 알아도 어리석은 사람 안 돼요.

이 욕심을 피하여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요 신의 성품이라고 이렇게 번역해 놨는데 내가 번역하면 요래 번역 하지 않습니다. 요 신의 성품이라는 요 신은 하나님을 가리킴인데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과 신이라 하니까 이거 뭐, 신이라 하니까, 여기 신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 신(神)자요. 귀신 신(神)자인 줄 알아도 하나님 신(神)자라. 이런데 이 신의 성품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가리켜서 신의 성품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그러면 신의 성품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속성이라 말이오.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과 우리와의 공통성있는 속성이 몇 가지입니까? 여덟 가지. 하나님과 우리와 꼭 같은 공통성있는 속성은 여덟 가지입니다. 또 하나님만 가지고 있고 우리는 가지지 못한 공통성 없는 속성은 하나님에게 몇 가지 있습니까? 네 가지 있는데 우리가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는 없어도 세 가지는 점점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완전성 영원 불변성, 단일성은 이루어가고 있고 자존성만 안 이루어 갑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그러면 면장 회의에는 누구만 그 회에 참여할 수 있습니까? 면장만 참여할 수 있지, 또 동회장 회에는 동회장만 참여할 수 있지. 또 국회의원 그 국회에는 누구만 참여할 수 있습니까? 국회의원만 참여할 수 있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속성들 모인 데에 거게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으니까 하나님의 속성 모이는 데에 하나님의 속성 아닌 마귀 속성이 거게 참여할 수 있습니까? 참여할 수 있소? 없어. 하나님의 속성만 참여해요.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우리를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은 속성이 되게 하려 함이라. 뭣 가지고? 신기한 능력으로, 하나님과 연결된 축복, 경건에만 사용되는 축복, 영광과 덕의 방편으로 이루는 축복 이 축복인데 이 축복이 뭐인가? 이제 마지막에 결론으로 이 축복이 뭐인가? 하나님같이 되는 것이라.

하나님의 속성같이 되는 것이라. 이것이 우리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속성같이, 되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하나님께서 제일 원하는 섬김은 뭐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은 속성이 돼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말이오. 주러 와도 밉상 있고 얻으러 와도 곱상이 있다 그말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와 자기와 꼭 같은 사람은 얻으러 와도 좋고 자기와 이래 틀리는 사람은 줘도 안 됐다 그말이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도 당신 속성과 꼭 같은 자를 당신이 제일 좋아하십니다. 이런데, 하나님과 연결된 그 축복 또 하나님만을 위하는 축복 신기한 능력으로 만든 축복 또 영광과 덕으로 부드럽게 만들어 놓은 그 축복, 그 축복이 뭣인데?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그 약속이 뭐인가? 세상 정욕으로 인해서 썩어져가는 그런 것들을 다 피하고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은 자 되는 이것이라 그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의 받을 축복, 우리 믿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축복, 우리 믿는 사람들이 받을 축복, 우리 믿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구원, 우리 믿는 사람들이 지금 받을 구원, 이 구원은 한말로 말하면 돈이겠습니까 권세겠습니까 부요입니까? 하늘과 땅의 있는 것을 다 우리에게 주시니 하늘과 땅에 있는 그 모든 것이겠습니까? 우리의 이 소망하는 축복 이 축복을 한 말로 말하면 뭐입니까? 천상 천하에 있는 모든 것입니까? 뭐입니까? 예? 우리의 축복, 우리의 소망, 뭐? 그래, 하나님과 같이 되는 이겁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는 거. 이거요.

이런데, 사람들이 우리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이 축복을 말하면 비쭉거립니다.

비웃습니다. 이래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고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라, 깨끗하심과같이 깨끗하라 이 성구 해석을 어떤 주석에 보니까 이거는 사람이 그렇게 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의인이라도, 의인이라도 `네가 하나님같이 온전하냐?' 하는 그 말은 어떤 의인이라도 정죄해서 꼼짝 못하게 납짝 누르기 위해서 있는 성구다. 그러면 이 성구에 정죄받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

이 성구는 교만한 인간을 뽈끈 누르기 위해서 있는 성구이지 인간이 하나님과같이 거룩하고 은전하고 깨끗하게 될 수 없는 것이 그것이 인간인데 이 성구는 그렇게 되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라' `나는 다 행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온전하냐?' `아이구, 못 합니다.' 인간의 교만을 꺾어서 약점을 자복하도록 그렇게 만드는 이 성구라. 이렇게 해석해 놓은 게 모두 주석이라 그말이오. 그럴듯 하거든.

그러면, 하나님께서 되지도 안할 일을 되라 했으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 아니요.

이거 다 약속을 했는데.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된 것인데. 약속으로 된 것이니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거룩하심과 같이, 깨끗하심과 같이 되라 했으니까 이거 약속이니까 그렇게 되라고 약속했으니까 하나님이 되도록 해야 돼요 안 돼요? 신기한 능력이 한다 그말이오.

우리는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이, 죄인이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주여, 나는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하면 마음이 시원하고, `나는 주님 앞에 이렇게 참 못쓸 죄인입니다.' 하면 마음이 시원하고. 그런 사람 한번 손들어 봐요. 마음에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이런 죄를 범한 이런 죄인입니다. 나는 참 그 누구보라도 흉측한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라니까 마음이 시원한 사람 한번 손 한번 들어 봐요. 거짓말쟁이 하지 말고. 손 한번 들어 봐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나는 천하에 제일 더러운 죄인이요 흉악한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주여 죄인 왔습니다. 좌인 괴수 왔습니다. 죄인 왔습니다.' 이라니까 마음이 시원한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한번 버뜩 들어 봐요. 이 겸손한 사람인데. 한번 버뜩 들어 봐요, 버뜩. 버뜩 들어 봐요. 다 헛일이야.

예수님의 피공로는 어짜고 죄인이라, 예수님의 피공로는? 피공로는 부인하는 자라 그말이오.

실컷 죽기까지 해 가지고 살려 놓고 나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죽은 자입니다. 나는 생명이 없습니다. '너는 살았다. 내가 대신 죽기까지 해 가지고 너는 살려 놨으니까 너는 살았다. 너는 의인이다.' `아이구, 나는 죄인입니다.' `너는 의인이야. 너는 의가 없지만 내가 대신해서 너는 의인이야. 공심판에도 통과했어. 너는 의인이야. '아이구. 나는 죄인입니다.' '너는 살았어. 살았으니까 이제 살면 돼.' '아이구, 나는 죽은 자입니다.' 그거 참, 통탄되겠소 안 되겠소? 이제 그거 고쳐요. 그걸 고쳐요.

하나님의 의로, 하나님의 의는 누가 했는데? 주님이 설정했지. 신인양성일위가.

주님이 설정한 의로 나는 의인입니다. 주님의 설정한 공로로 의인된 내가 왔습니다. 주님의 공로로 의인된 내가 왔습니다. 주님의 공로가 있기 전에는 나는 이렇츰 흉측한 죄인인데 주님의 공로로 의인된 완전한 의인된 내가 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의인이니까 의인살이 하겠습니다. 의인이 살고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 의인이 삽니다.' 이라고 난 다음에 자기가 죄를 지었으면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로다 하는 것 모양으로 `아이쿠, 내가 죽은 생활했습니다.

내가 죽은 생활했습니다. 내가 죽은 생활했습니다. 죽은 생활 했습니다. 애통을 해라. 죽은 생활 했습니다. 애통을 해라. 하루 애통해라. 이틀 애통해라. 적어도 일주일은 애통을 해야지. `주여, 나는 죽은 생활했습니다. 나는 죽은 생활한 것이 무슨 설교를 하겠습니까? 이제 하루 애통하고 또 이틀하고 또 사흘 애통하고 열흘 애통하고 자꾸 그 애통을 많이 합니다.

이 사람을 주님이 겸손하다고 칭찬하겠소 미워하시겠소? OOO목사님. 예, OOO목사님 그런 사람 아니야? 죄 지어 놓으면 `아이구 이런 죄를 지어서' 찔찔 눈물 흘리고 장 그라는 거. 눈물 흘려도 그런 눈물 흘리면 안 돼요.

그라고 난 다음에 `주여, 내가 이 죽은 생활 했습니다. 이제 나는, 죽은 생활인데 이거는 내 생활 아닙니다. 마귀에게 유혹받아 죽은 생활했습니다. 주여, 나는 의인입니다. 이제는 산 생활합니다. 나는 의인입니다. 주여, 의인입니다.' 이랄 때에 주님께서 당신이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죄를 지어도 죄 지은 것을 깨달으면 즉시 죄를 고해서 사함 받고 그 죄인으로서 일시도 더 있지 마십시오. 얼른 일어서서 의인으로 하나님의 의인으로서 생명 가진 영생으로 하나님을 향하여서 산 자로 사십시요.

그런데 이렇게 큰 힘 들여 가지고 우리에게 이 큰 축복을 주셨는데 이 축복을 이루는 능력이 신기한 능력 가지고 이 축복을 이루어 주시고 또 신기한 능력 가지고 이루어 주시되 명주 고름보다도 더 보들보들한 아주 보드랍고 보드랍고 참 얼마나 부드럽소? 다른 사람이 볼 때, 암만 구원하지만 좀 너무 하는구먼 너무 잔인하구먼' 이런 게 아니고, 개미가 봐도 참 감탄할 수 있는 그런 감탄하는 그런 감화적인 그런 방편을 써 가지고 하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도 상할 게 없다 말이오 얼마나 말할 수 없는 인자로 우리에게 부드럽게 구원하십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이 복은 실력은 하나님과 연결된 복이요 용도는 경건에만 쓰이는 이 복인데 그 복을 하나님이 약속을 했는데, 그 복을 약속했는데 그 복이 뭐이냐? 생명에 속한 복, 경건에만 쓰이는 복, 그 복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라고 신기한 능력으로 이루어 주실라고 약속을 했어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신기한 능력이 그 복을 이루어 주시요. 이루어 주시는데 그 복의 이름을 한 말로 말하면 뭐입니까? 그 복의 이름이 한 말로 말하면 뭐이요? OOO조사님, 그래. 신의 성품에, 신의 속성에 참여하는 거, 하나님같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같이 되는 거.

그러면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과 같이 될라고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노릇을 해야 하나님의 속성같이 되겠습니까, 입으로만 하나님의 속성같이 될라고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속성노릇을 내가 자꾸 해야 하나님의 속성같이 되겠습니까? 네? 어때요? 여러분들, 신의 성품이라 말은 하나님의 속성같이 돼서 `여게는 하나님의 속성들만 모인다' 하는데 우리 속성도 거게 회의에 참석을 합니다. 우리 속성도 그 회의에 참석을 해. `여게는 하나님의 속성만 참석한다.' 내 속성이 거게 참여해. 가 참여하니까 `이도 하나님의 속성과 꼭 같구나.

하나님의 속성이로구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영접해 가지고 그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속성화, 속성 성화되는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속성같은 속성이 될라고 하면 한 가지 말해 봅시다. 처음에 무슨 속성입니까? 처음에 뭐이지요? 공통성 있는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속성 첫째가 뭐입니까? 지식. 하나님의 지식성과 같은 내 지식성이 될라고 하면 내가 하나님의 지식성을 한 번 사용해, 두 번 사용해, 하나님의 지식성 노릇을 하나님의 지식성으로 살고 살고 자꾸 살면 내 지식성이 하나님의 지식성과 같이 됩니까 안 됩니까? 같이 되지요.

또 하나 진실이라고 하면 내가 하나님의 진실같은 그 진실성을 가지고 진실성의 행동을 또 하고 진실성의 행동을 또 하고, 진실성의 행동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하고, 해 버렸으면 내 진실성이 하나님의 진실성과 같이 됩니까 안 둬니까? 같이 돼요 안 돼요? 같이 된다 그거요.

그러면 여게 말씀하시기를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더욱 힘써" 힘을 써야 된다 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성품과 같은 성품이 되어지도록, 하나님같은 자가 되어지도록 하는 데는 힘을 써야 된다 하는데, 힘을 써야 되는데 힘을 어떻게 써야 됩니까? 하나님의 속성 같은 자가 될라고 하는 데에는 어떻게 힘을 써야 하나님의 속성하고 내 속성하고 둘이 꼭 같은 속성이 됩니까?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내 속성을 가질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힘을 쓰면 하나님의 속성과 같이 내 속성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지식성과 내 지식성이 꼭 같도록 할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힘을 쓰면 내 지식성과 하나님의 지식성이 꼭 같이 하나가 돼서 꼭 같은 자가 되어지겠습니까? 어떻게 힘을 써야 됩니까? 그라면. 힘을 쓰는 건 여러 가지 힘을 쓰는 것인데, 힘을 쓰는 것인데 앉아서 이래 가지고 `주여, 내 속성은 하나님의 지식성과 내 지식성이 같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진실성과 내 진실성과 같게 해 주옵소서. 주여. 음 음.' 막 손가락이 잘크라지도록 이래 힘을 쓸까요? 그라면 막 용을 써 응 응 응 이래 앓아야 될까요? 그라면 뭐 쌀가마니 짊어지듯이 끙 끙 이래 앓아야 될까요? 힘을 어째 써야 될란지 그거 힘 쓰는 길을 알아야지. 힘을 어째 써야 돼요, 힘을. 힘을 어째 써야 됩니까? 여게 `더욱 힘써' 힘을 써야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속성이 돼서, 하나님의 속성만 모인다' 하는데 거게, 하나님의 속성 모인 데 내 속성도 들어갈라 하니까 `이 뭐 잡 것이 오노?' 쫓아내 버리는데, 들어가니까 아무 말도, `하나님의 속성이로구나.' 전부 하나님의 속성이라고 다 거기 참석을 시켜.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를 시켜. 그러면 하나님의 속성같이 내가 돼져야 하나님의 속성에 참여를 한다 그말이오.

이런데, 하나님의 속성같이 하나님의 지식성, 하나님의 지혜성, 하나님의 사랑성, 하나님의 진실성. 하나님의 거룩성, 하나님의 의성. 하나님의 권세성. 이제 이 모든, 그 속성 같은 내가 속성이 될라고 하면 어떻게 힘을 써야 하나님의 속성같은 속성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힘을 써야 되지요? 구루마를 끌듯이 그래 힘을 써야 될까? 들돌을 들듯이 그래 힘을 써야 될까? 앉아서 음 음 음 음 음 이래 용을 힘을 써야 될까? 그리 안 하면 막 경주 달음질을 치듯이 이래 힘을 써야 될까? 줄 당기듯이 막 이래 힘을 써야 될까? 어떻게. 이거 힘쓸 줄을, 힘쓰는 방편을 알아야지? 어떻게 힘써야 하나님의 속성같이 내 속성이 되어지지 요, 어떻게 힘을 써야? 힘을 써야 된다 했는데. `더욱 힘써' 힘써야 하나님의 속성과 같이 되어진다고 했는데 `더욱 힘써 믿음에 덕을' 하는 그것은 그 밑에 여덟 가지 말한 것은 하나님의 속성 되는 방편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되어지는 방편을 말한 것이오.

그런데,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성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성과 같은 내 사랑성을 가질라고 하면 내가 어떻게 힘을 써야 하나님의 사랑성과,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과 내 속성이 꼭 같은 속성이 될까?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나 내 사랑의 속성이나 둘을 놓고 봐야 꼭 같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도 거기 쑥 들어가고 내 사랑의 속성도 들어가니까 못 들어오라 안 하고 들어오냐고 들어오십니까 하면서 영접해 들이고.

꼭 같은데,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과 내 사랑의 속성이 꼭 같도록 할라고 하면 어떻게 힘을 써야 되지요? 어떻게 힘을 써야 돼? 뭐라 하노? 어떻게 힘을 써야 돼? OOO한번 대답해 봐. 어떻게 연습을? 무슨 연습을? 사랑의 속성이면 사랑에 힘써야지 뭐.

여게 힘쓰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성을 닮을라면, 지식성과 꼭 같이 될라면 하나님의 지식성, 하나님의 지식성과 내 지식이 같을라고 그라면 하나님의 지식대로 내가 행동하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행동하고 또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행동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가지기를 힘을 쓰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내가 행동하기를 힘을 써서 하나님의 지식과 같은 지식을 내가 다 가졌지 또 하나님의 지식대로 내가 행동을 했지, 그라면 내 지식성이 하나님의 지식성과 같이 됩니까 안 됩니까?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 면을 힘을 쓰라 그말이오. 이 면을.

그래서, 하나님의 지식성을 내가, 그와같이, 지식성과같이 될라 하면 하나님의 지식을 내가 자꾸 내게 내 속에 담습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내게 자꾸 담고, 하나님의 지식을 담으면 지식 자루가 돼 지식. 지식 자루가 되니까 하나님의 지식을 내 속에 담아서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 속에 채우고 또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가 행동하고 살고 이라니까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가 행동을 하면 요 지식이 어디 들어 있지요? 하나님의 지식으로 행동을 하면 요 지식이 어디 들어 있지? 보따리 속에 들어 있소 금궤 속에 들어 있소 농 안에 들어 있소? 하나님의 지식대로 내가 자꾸 요와같이 지금, 지식을 자꾸 배워서 가지지 또 요 지식대로 살지 요라면 고 지식이 어디 이제 들어 있는고? 저 대답 잘 한다.

하나님의 지식대로 살면 손 속에도 들어가고 발 속에도 들어가고 눈 속에도 들어가고 귀 속에도 들어가고 머리 속에도 들어가고 안면에도 들어가고 이 피부에도 들어가요. 하나님의 지식대로 살면, 지식대로 내가 행동하면 지식대로 행동할 때에 우리 전신이 움직입니까 안 움직입니까? 움직이지. 움직이는 데는 하나님의 지식대로 내가 행동했기 때문에 움직이는 그 모든 전신에는 이 지식이 들어가 다 박혔다 말이요, 또 하지, 또 하지, 하니까 이 지식이 우리 전신에 박힙니다.

전신에 박히는 데에는 행동을 해야 박힙니까 기억을 해야 박힙니까?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 전신에 박히도록 할라 하면 우리가 읽고 기억을 해야 박혀집니까 행동해야 박힙니까? 이것도 모르는구만. 행동을 해야 박혀요. 자꾸 듣고 읽고 하는 것은 우리의 기억에만 박히요, 우리 기억 속에만 박혀 가지고 있어요. 기억 속에만 박히고 있지만, 기억 속에만 박히지만 이 손으로는 그 지식대로 행동 한 번도 안 했으니까 이 손은 안 박혀 있어. 이 손으로 그 지식대로 해야 이 손에 박히요. 내가 이 지식대로 말을 해야 내 혀에 박히고 내 입천장에 박히고 내 입술에 박히고 다 여게 박히요.

이래서, 우리 구원은 하나님의 속성과 같은 이 속성. 그러면 첫째는 하나님의 지식성과 꼭 같은 내 지식성을 가져야 되고 하나님의 지혜 성과 꼭 같은 지혜성을 가져야 되고 하나님의 사랑성과 꼭 같은 사랑성을 가져야 돠고 하나님의 진실성과 꼭 같은 진실성을 가져야 되고 하나님의 거룩성과 꼭 같은 거룩성을 가져야 되고 하나님의 의성과 같은 고 의성을 가져야 되고 하나님의 주권성과 같은 그런 주권성을 내가 가져야 되고 또 자꾸 이래 가지고 하나님의 속성같이 변치 않는 걸, 영원히 변치 않는 걸 자꾸 만들어 넣고 또 완전한 것을 만들어 넣고 또 단일성의 것을 자꾸 만들어 넣고 자꾸 만들어 넣어요.

그러면, 이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님의 속성이라면 그 속성이 하나님의 속성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속성이 어디 있습니까? 눈에 있습니까 귀에 있습니까 간에 들었습니까? 하나님의 속성이 어디 들었지요? 하나님의 속성이 어디 들었어요? 하나님의 속성이 어디? 우리 심장에 들었는가?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마음에 들어 있는가? 알아 봐요. 모르거든 모른다고 손을 들어. 그라면 가르쳐 줄께.

하나님의 속성이 어디 들어 있어? 아는 사람 손들지 말고 모르는 사람 손들어요.

다 알고 있으니까. 하나님의 속성이 어디 들어 있지? 어디 들어 있어? 눈에 들어 있는가, 귀에 들어 있는가. 간에 들어 있는가, 폐에 들어 있는가, 콩팥에 들어 있는가, 장에 들어 있는가 심장에 들어 있는가, 두뇌에 들어 있는가, 하나님의 속성이 어디 들어 있지요? 자기 몸에? 자기 행동에? 자기 행동에 들어 있어? 하나님의 속성이 자기 행동에 들어 있어? 행동에 들었으면 행동하고 나면 뭐 어디로 가는데. 그러면? (자기 자체에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은 눈에만 들어 있어도 안 돼요 눈에도 들어 있고, 귀에도 들어 있고, 코에도 들어 있고, 위에도 들어 있고, 심장에도 들어 있고, 간에도 들어 있고, 콩팥에도 들어 있고 뭐 오만 데 다리에도 들어 있고 다 들어 있어. 이 속성이 우리 전신이 하나님의 지식성 같은. 이 전신이 지식성이 돼야 되고 지혜성이 돼야 되고 진실성이 되고 사랑성이 돼야 되지 손만 되고 딴거 안 되면 그건 지옥 갈라고? 하나님의 속성대로 안 된 거는 다 지옥가요. 다 불로, 끊어서 다 보내 버려요. 이러니까 하나님의 속성대로 우리가 다 돼야 되는데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전신 전체에 가뜩 들어서 충만해야 된다 그거요.

그랄라면, 들게 하는 방편이 뭐이요? 들게 하는 방편이, 처음에는 읽고, 내가 읽고 듣고, 읽고 듣기만 해 가지고는 이 두뇌만 들어 있지 이 손에고 이거 심장에 안 들어가 있어요. 읽고 듣고, 그라고 나면 내가 행동하면. 행동할 때는 여러분들 무슨 행동이든지 하면 그 전신이 같이 안 움직이고 어느 지체는 안 움직이고 그래 하는 행동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행동할 때는 전신 전체가 같이 움직입니까 부분만 움직이는 그런 행동이 있습니까? 부분만 움직이는 행동이 있습니까? `말하는 데야 뭐 손이 움직일 턱이 있는가? 말할 때는 입만 하지' 말할 때는 입만 합니까? 아니요. 말할 때에 입만 하는 게 아니고 말할 때에 전신의 신경이 다 함께 움직입니다. 우리의 행동에는 전신 전체의 그 신경이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같이 움직이고 있어.

이러기 때문에, 우리 행동할 때에는 그 어떤 속성이라도, 뱀의 속성으로 움직이면 뱀의 속성이 내 전신에 다 들어옵니다. 전신에 다 들어와. 몸은, 주사도 말이오.

주사를 여기 놓으면, 주사 놓으면 주사 여기만 놓으면 여기 있는 줄 알아도 전신에 이래 퍼집니다. 술 못 먹는 사람이 술 한잔 딱 먹으면 발가락 끄트머리까지도 빨개지요. 이 전체가 이렇게 다 통하도록 돼 가지고 있어.

이러니까, 하나님의 속성대로 내가 가질라고 하면 읽어야 되고 들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내가 행동하면 됩니다.

그라면 `더욱 힘쓰라' 했는데 뭣을 힘쓰라 했습니까? 힘쓰라는 건 뭐 하라고 뭐, 돈벌이 힘쓰라 하요 뭐 힘쓰라 합니까? 하나님의 속성대로 되기를 힘쓰라 그말이오. 하나님의 속성대로 되기를 힘쓰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힘쓰는 데에는 들어야 되고 읽어야 되고 그 다음에는 내가 행동해야 된다 그말이오.

그런데, 하나님의 이 속성, 하나님의 12속성이 어디 있는지 그 12속성이 있어야 12속성을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어디 있는지 알아야 그 속성을 내가 자꾸, 또 그 속성을 가져 오고 가져 오고 자꾸 가져 와서 그 속성으로 가지고, 그 속성을 내가 가져 오니까 내게는 없는데, 내게는 없는데 하나님의 사랑, 속성을 내가, 사랑 속성을 내가 가져 오니까, 없다가 하나 가져 오니까 하나 있고, 둘 가져 오니까 둘 있고. 열 가져 오니까 열 있고, 백 가져 오니까 백 있고 이래 자꾸 가져습니다. 가져 오는데, 가져 와 가지고 이것을 내가 단단히 외우고 기억하고 압니다. 이라면 그 사랑의 속성이 내 전신에 퍼져요 안 퍼져요? 퍼집니까 안 퍼집니까? 안 퍼져요. 사랑의 속성을 내가 갖다가 내가 그대로 행동을 해야 전신에 퍼져요. 행동을 해야 퍼진다. 말이오.

그러면 사랑의 속성이나 지혜의 속성이나 또 진실의 속성이나 거룩의 속성이나 의의 속성이나 그 속성이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가져 오지요. 그 속성이 어디 있습니까? 부산에 있소, 대구에 있소, 창고에 있소 예배당에 있소 어디 있소? 이 하나님의 속성이 어디 있는지, 하나님의 속성이 어디 있는지 속성 있는 곳을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중생된 영을 통해서? 여러분들 하나님의 속성이 어디 있느냐? 여게 다 있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속성이요. 이게 하나님의 속성이라,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속성을 내놓은 게 이게 이 신구약 성경이라, 여게는 지식성도 있고 지혜성도 있고 선성도 있고 사랑성도 있고 진실성도 있고 의성도 다 있어. 이러니까, 이 속성을 내가 가지도록 힘을 쓰는 데는 신구약 성경을 읽어야 되고 들어야 되고 알아야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 어째야 돼요? 요대로 행동해야 돼요. 그러면, 성경 말씀만 보고 자꾸 하다 보니까 나중에 하나님같이 돼 버리고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제 우리는 자꾸 이렇게만 힘쓰면 됩니다. 우리의 목적은 어디 있어요? 너무 많이 가르치면 안 돼. 여기 인제, 우리의 이 축복 중에, 우리 구원 증에 제일 큰 구원, 우리 구원을 한 말로 말하면 부자되는 것입니까 권세있는 것입니까 천하를 얻는 것입니까? 우리 구원을 한 말로 말하면 우리 구원이 제일 큰 구원이 뭐입니까? 우리 구원이 뭐이요? 하나님같이 되는 게 우리 구원이라.

따라합시다. 하나님같이 되는 것이! 우리 구원이다! 우리 구원은! 하나님같이 되는 것이 우리 구원이다! 우리 구원은! 하나님 같이되는 것이 우리 구원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인데! 신기한 능력이! 이루어 주신다! 부드럽고 온유하게! 영광과 덕된 방편으로 이루어 주신다! 우리가? 힘만 쓰면 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같이 되기를 소망하고 이것을 힘쓰는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아마 이래 놨으면 다른 데 가서 `아이고, 참 서부교회 그거 이단이라 하더니만 참 이단이다. 언제 가 보니까 우리 구원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우리 구원이다, 하나님같이 된다네.' 참람되고 아주 굉장한 교만한 소리를 한다고 이단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이 아니라 정통입니다. 이단이 아니라 정통이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가 온전하라.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라. 그리스도의 깨끗하심과 같이 깨끗하라. 흠과 점과 주름잡힘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나님의 의로 말미암아 의인된 사람, 의인, 의인은 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의인이 흠이 없는지, 하나님의 의로써 의인된 의인이 흠이 있는지 없는지 어찌 알 겁니까? 하나님의로써 의인된 의인이 흠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 것입니까? 어떻게 알 것입니까? 하나님의 의로 의인됐다 하지만 의인이 흠이 있는지 없는지 알 게 뭐이요? 어떻게 알 것입니까? 우리 OOO조사님 대답해 봐. 이거 참, 그렇지, 흠이 있는지 없는지 뭐 알 게 뭐이야? 신인양성일위가 이루었다고 흠이 없을 턱이 있는가? 신인양성일위가 이뤘다고 뭐. 신인양성일위가 이뤘으면 그만 다 만점이네, 암만 주대도 그거 껍데기만 주댄다. 예? 완전자가 만들었기 때문에? 억설이다, 억설. OOO목사님. 아이고, 또 헛다리다. 또, OOO목사님 됐다고 계약을 해 놨어? 뭐 그거 똑똑히, 어째? 어떻게 선포했어? 계약 말씀에 완전하다고? 장로님이 나은가 보자. 우리 OOO장로님.

믿음? 참 문제는 어렵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이러니까 목사노릇을 해먹는 모양이라, 암만 가르쳐야 모르니까. 이거 다 알면 참 문제인데. OOO목사님이 그래 하더니만.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했다고 뭐 그런가? 만물을 어째?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을 보아서? OOO. 암만해야 모르네. 저 OOO목사님. 이거 암만 말해야 모르는 거라. 뭐라 하노?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하니까 어때? 하나님 공심판 통과. 우리 의인된 것이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 됐어요 안 됐어요? 공심판 통과 됐어 안 됐어? 하나님의 지성과 지공의 공심판에서 이는 의인이다 하고 통과했기 때문에, 우리 의인된 것이 하나님 공심판 통과했소 아직까지 미결이요? 우리 구원이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된 것을 믿는 사람 손들어 봐요. 이거 대구에서 내나 말했는데, 장. 이러니까 몰라. 우리가 완전자된 거, 우리가 의인된 거, 하나님의 의로써 우리가 완전한 의인된 거, 흠과 점이 없는 의인된 것은 뭘로 아느냐?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의인이라 통과됐기 때문에 그는 완전이라 할 수 있지 그러니까 만일,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통과했는데 의인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공심판이 심판 잘못했다고 그 판사가 정죄받아야지. 하나님이 정죄 받습니까? 하나님의 공심판에 우리는, 지성 지공의 하나님의 공심판에 이는 의인이라. 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성했다, 원수된 데서 하나님과 아주 친밀한 결합을 시켰다, 하나님의 진노의 그 형을 다 받아 가지고 진노를 다 풀었다, 이러기 때문에 이는 완전한 의인이다. 완전한 의인이다. 완전한 의인으로서 하나님의 공심판에 통과된 의인이 우리 들입니다. 이걸 믿어요.

이러니까, 우리는 거석할 때에 '주님 죄인 왔습니다.' 나도 그 전에 그런 소리 많이 했어. 그거 습관이 돼서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하면 흐뭇하고 `나는 의인입니다.' 하면 이상스럽고 그러나 그거 다 잘못 됐어. `죄인입니다.' 하면 주님은,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내 죄를 사해 주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내 죄를 사해 주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하면, 나는 죄인입니다.

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대적하는 것이오. `나는 의인입니다. 과거에 어떻던 흉측한 죄인이었는데 주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나는 의인됐습니다. 의인 됐으니 이제는 내가 순간도 찰나도 죄 짓지 안하고 의인 생활 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는 의인입니다. 나는 의인으로 삽니다. 의인 생활 내 생활입니다. 의인 생활의 법칙이 뭐라요? 신구약 성경 말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닮을라 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 닮을라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자꾸 내가 갖다가, 가져 와서, 자꾸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가져 오고 가져 오고 또 내가 사용하고 사용해야 되겠는데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 어디 들어 있지요? 저 OO교회 조사님. 신구약 성경에, 이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12속성입니다. 이것은 의인의 생애 법칙이오. 이 법칙은 둘로만 되어 있어. `하지 말아라' `하라'하는 거 두 가지로만 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힘쓰는 것은 뭣을 힘써야 됩니까? 하나님의 속성을 내가 받아서 하나님의 속성을 내가 가진 자 될라고 힘을 쓰고, 하나님의 속성을 가지기를 제일 처음 어디다 가져야 돼요? 기억에 가져야 돼요, 기억에. 머리에 가져야 돼요.

하나님의 속성을 내 머리에 가져야 돼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속성을 또 어디 가져야 돼요? 전신에 가져야 돼요. 하나님의 속성을 머리에 가지는 데는 듣고 읽고 생각하면 머리에 가져져요. 하나님의 속성을 내 전신에 가질라면 내가 행동을 해야 돼요.

그런데, 하나님의 12속성이 어디 들어 있습니까? 신구약 성경 말씀에. 그러면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꾸 읽고 듣고 하는 데 힘을 쓰고 그 다음에는 요 속성대로 내가 행동할라고, 지식성대로 지혜성대로 진실성대로 의성대로 거룩성대로 사랑성대로 행동할라고 거룩성은 뭐인데? 구별하는 거. 나는 성경에 말한대로 구별해서, `이거는 할거다, 이거는 안 할 거다. 이거는 먹을 거다 이거는 안 먹을 거다. 이거는 서로 사귀어야 되겠다, 끊어야 되겠다. 이 기쁨은 버려야 되겠다 이 기쁨은 취해야 되겠다.' 요것을 구별하는 것이 요것이 거룩입니다. 여게 힘써야 돼요. 우리 힘쓸 것이 그러면, 짐지는 데 힘쓰는 것도 아니고 우리는 요게 대해서 힘을 쓰는 것이 우리의 힘쓸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 힘쓰는 것은 어떻습니까? 예배당에 있습니까 직장에 있습니까 자기 집에 있습니까? 우리 힘쓸 것은 어디 있습니까? 어디? 그건 참 잘 배워 놨다.

우리 힘쓸 것은 현실에 있지. 밥 먹는 데도 쓸 것 있고, 밥 먹는 데도 써야 되고, 노는 데도 써야 되고, 자는 데도 써야 되고, 말하는 데도 써야 되고, 기뻐하는 데도 써야 되고 전부 다 써야 돼. 안 쓰는 데가 없어. 현실에 이제 하나님의 속성을 내가 쓰면 하나님의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꼭 같은 자가 됩니다.

또 이제 다음에 계속해서 배우겠어요. 자꾸 와서 배워야 되는데 암만 가르쳐도 몰라. 우리 의인된 것이 완전한 의인인지 아닌지 뭘 보고 압니까, 우리 의인된 것이 뭘 봐서 완전한 의인인지 압니까? 검사원이 완전한 의인이라 하니까 완전한 의인이지, 검사해서 완전한 의인이라고 검사를 마쳤으니까 완전한 의인이지.

검사를 누가 했는데? 지공 지성의 하나님의 심판에서 검사했는데 거기서 `이는 완전한 의인이다' 했기 때문에 그만 완전하다 그말이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내 대답이 맞아요 안 맞아요? 우리 OOO장로님 대답이 맞아요 안 맞아요? 그래 들었구만.

우리 의가, 하나님의 의로써 우리가 의인된 것이, 이 의인된 이 의가, 의인된 것이 완전한 의인인지 의인 아닌지, 완전한 의인인지 의인 아닌지 이걸 어찌 아느냐 할 때에 자신이 의인인지 의인 아닌지 그것을 똑똑히 몰라서 답을 잘못 했다 그랬는데, 그래서 그러면, 우리 자신이 완전한 의인입니까 의인 아닙니까? 완전한 의인은 손들어 보십시요. 완전한 의인은. 아직까지 의인 못 된 사람 손들지 말아요. 또 아직까지 완전한 의인이 못 된 사람은 손들어 봐요. 완전한 의인이 되지 못한 사람 손들어봐요, 저 왜 안 드노? 우리 OOO집사님 왜 안 드노? 의인 아니야 의인이야? 둘 중에 하나 해. 완전한 의인이면 의인이라고 손을 들고 의인 아니면 아니라고 손을 들고.

우리가 완전한 의인입니까 의인 아닙니까? 아직까지 의인인지 아닌지 똑똑히 모르겠다. 내가 의인인지 아닌지 똑똑히 모르겠다. 똑똑히 모르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자기가 의인인지 의인 아닌지 똑똑히 모르는 사람 손들어 봐요. 그라면 의인 만들어 줄 터이니까. 똑똑히 모르는 사람 손들어 봐요. 자기는 확실히 의인인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 손들어라요. 이거야. 인제 됐지? 이러니까. 이걸 알아서 이걸 깨닫고 요대로 믿으면 구원이 돼요. 이거 모르고 등둥거리며 떠들기만 하면 소용 있습니까? 소용없어. 이런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아이고, 우리 집회는 우물 안에 개구리라. 내가 어디 다른 데 가 보니까 거기는 참 아주 광대하게 가르치는데 우리 집회에서는 우물 안에 개구리라.' 네가 소경이라서 우물 안에 개구리다. 여게서 가르치는 이보다도 더 넓은 게 없고 더 큰 게 없고 더 깊은 게 없습니다.

이번에 대구 집회에서, 지식은 둘이요 말은 둘인데 이제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의 지식은 판이하다 하는 그것은, 모든, 그 넓이와 깊이가 무한이라. 끝이 없어, 무한이라. 무한이 넓어. 그런데 우물 안에 개구리라? 어리석어.

자,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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