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

 

1989. 4. 28. 금야.

 

본문: 고후 5:14-18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묵상 기도)  이 시간에도 피조물 된 저희들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창조주의 그  무한하신 능력의 역사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하나님에게 소망을 두게 하시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영생하는 생애를 할 수 있게 하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이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마는 이 구원에  전심전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이런 것 저런 일로 마음을 나누어 전부를 이 구원  달성에 기울이지 못한 참 어리석고 유혹 잘 받는 저희들입니다.

 오늘밤에도 우리는 다 주님의 대속으로 인한 연고로 이 자리에 다 모였사오니  주님께서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늘의 소망의 은혜로 우리 각자에게 충만케 하사  중생된 새사람을 강건케 하시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을 원수인 것을  깨닫고 날마다 죽이기를 힘쓰고 투쟁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시고 이제는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었고, 주님의 종이 되었고, 주님의 성전이 되었고, 주님의 지체가  되었고, 주님의 몸이 되었고, 주님이 세우신 제사장 선지 왕직을 가지고 날마다  주의 명령 순종으로 이루어 가게 하시는 주님, 이 시간에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곳마다 함께 하시고 이자리에도 같이 하여 주시사 참 중생된 우리 자신들은  어떠한 사람인 것을 항상 알아 깨어 이 사람이 살고 악령 악성 악습인 자기  중심으로 사는 이것은 원수의 유혹이요 내가 아닌 것을 확실히 깨닫고 배격하고  싸워서 이기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읍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지금 가르치고 있는 공과는 하나님이 주신 지극히 큰 축복 여섯 가지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셔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과 또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생으로 다시  출생해서, 영생으로 다시 생산되어서 영생을 가지고 영원히 살게 된 이 영생복과,  또 하나는 첫째 아담에게 받은 이 몸은 이것은 쇠해지고 낡아지고 죽어지고  멸해지는 몸이기 때문에 이 몸 가지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육으로 해서  필요한 것은 육이 있는 동안에 하고 육이 할 수 없는 것은 또 다른 방편으로  해서 우리 이 육체가 오래 살든지 짧게 살든지 이 육체의 삶이 끝나면 우리는  죽습니다. 죽으면 안 믿는 사람들은 부활하기는 하지마는 심판 받을 부활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무리 인간 쳐놓고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죽은 후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못한 사람으로서 제일 존귀한  사람보다 더 행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다시는 죽지도 쇠하지도 늙어지지도 병들지도 아니하는 이  신령한 몸으로 우리가 부활합니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말은 시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몸이요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는 몸이요 사망이나 악령이나 죄나 이런  것들에게 하나도 제한받지 않는 그런 완전한 자유를 가진 이 몸으로 우리가  부활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몸과 꼭 같은 몸으로 우리가 부활합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양성일위의 예수님의 그 인성이 부활해  가지고 벌써 부활하신 지가 근 이천 년이 돼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에  필요할 때에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가끔 보여 주기도 했지마는 보이지도  아니하고 먹지도 입지도 아니하고 지금까지 계시고 영원히 계실 그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과같이 우리가 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받은 거 첫째 둘째 셋째의 축복입니다. 넷째 다섯째 여섯째 축복은  무슨 축복인고 하니 그것은 우리가 영생하면서 어떻게 살며 무슨 직무를 직업을  가지고 사는가 하는 것을 세 가지로 축복해서 말했습니다. 하나는 제사장직이요  하나는 선지직이요 하나는 왕직입니다. 이 여섯 가지 축복을 우리가 연구해서  아는 것만치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대한 갈망과 또 사모와 열심이 생겨질 것이고  또 세상에 대해서 모든 소망을 다 손떼고 세상을 바로 평가해서 우리가 받은 이  여섯 가지 축복에 그 하나의 어떤 뽀스래기 하나도 온 세상 축복이 비중할 수  없고 비교할 수 없고 상대할 수 없는 그런 큰 축복인 것을 깨닫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여섯 가지 축복을 우리가 늘 생각하고 또 궁구하고 또 느끼고 여섯  가지 축복으로 깨달음으로 우리가 기쁨과 만족과 능력이 우리에게 더 충만해지고  또 연구해서 앎으로써 충만해져서 이렇게 이 여섯 가지 큰 구원을 인해서 이  구원을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송을 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목적이요 우리를 영원 전 선택하신 목적이 이것이 목적입니다. 대속받은 우리들의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을 연구해서 이 구원의 그  실상이, 실상의 가치가 얼마나 크며 이 구원을 받아 가진 자신이 얼마나 행복된  이것을 바로 깨달아서 하나님에게는 감사하고 자신에게 대해서는 한없이  행복스러운 감을 느끼는 그것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그 신앙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요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여게 대해서도 성경을  가지고 연구도 해야 되고 또 이 일반 계시를 가지고 우리가 또 연구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아버지와 아들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많은 종류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그 아버지, 아들을 연구해 보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된 이것이 얼마나 존귀한 그 가치있는 귀한 구원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셨다'하는 것은 왜 우리라는 복수를 쓰는고  하니 이것은 단수로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안 됩니다. 나 하면은 내가 단수요 내  하나님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가면 소멸이 돼  버립니다. 다만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데에는 예수님의 대속하신 이 공로로 인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이렇게 온갖 관계가 맺어졌고 온갖 지극히 큰 구원을 우리가  받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내 아버지라고 해서는 안 되고 우리 아버지라고 하는  복수를 쓰는 것은 그 한 수는 나를 대속하신 주님과 나와 둘이 합한 내가  됐는고로 우리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해서는 항상 우리라는 이 복수를 써야 되지 복수를  쓰지 안하고 단수를 쓰면 아주 자기 단독 독차지한 것이니까 아주 참 오부락한  유익이 있겠다고 그렇게 보지마는 예수님과 우리와 떨어지면 하나님과 우리와는  원수요 가까이 가지도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지극히 큰 축복 여섯 가지를 받았기 때문에 여섯 가지 이  축복은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생각하는 또 믿는, 아는 그 양이  커 가는 것만치 여섯 가지 축복이 우리에게 실상으로 와서 이루어집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여섯 가지 축복만 생각하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여섯 가지 축복을 우리가 입게 된 이것을 잊어버리고 축복만  생각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잊어버리면 벌써 내가 그 축복을 암만 말하고 믿고  노래 불러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나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모든 축복 생각하고 사모하면서 또 사모하고 또 느끼면서  느끼고 또 대속하신 그 대속에 관련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힘쓸 것은 사죄에 힘쓰고 칭의에 힘쓰고 화친에 힘을 쓰고  영원한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힘을 쓰고 이렇게 힘을 쓰는 것만치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지극히 큰 축복은 우리에게 점점 새로와지고 온전해지고 확고해지고  견고해지고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하는 데 대해서 혹 생각 하기를 우리  이 피조물 천한 것이 어떻게 대주재이며 창조주시며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완전하신 그분의 아들이 우리가 될까? 이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선포했기 때문에 '약속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된 것이지 실질적으로 된 것은 아니고 약속적으로 이제 계약적으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다.' 이렇게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그거 잘못됩니다. 물론 약속으로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  됐습니다. 약속으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셨습니다. 또 그 법적으로 하나님이  입법해 놓으신 그 입법의 그 합법적으로 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또 그뿐만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된 것이 이  제도적으로, 제도적으로 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됐습니다. 제도적으로 됐습니다.

제도적으로 됐다 그 말은 좀, 이 어떤 나라에서는 시집을 가면은 그만 또 장가를  들든지 하면은 자기 아버지 엄마가 아닌데 다 아버지 엄마라고 이렇게 부르고 또  어떤 나라는 시집가면 그만 남편의 성을 따라서 아내는 성도 없이 그만 그래  되는 거 이런 것이 다 제도입니다. 그러면 제도로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습니다. 또 하나님이 입법하신 지극한 공법으로서도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습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선포해 놓으신  계약으로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다 사람들이 믿습니다. 그러면 법적으로 부자간이 됐다. 또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계약적으로 부자간이 됐다. 또 제도로서 부자간이 됐다.

이것은 믿으나 실상 그 아버지와 아들의 그 관계가 어찌 됐느냐 하는 거게  대해서는 지금 확고히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첫째 아담의 자손이면서 둘째 아담의 자손입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이 된  것은 첫째 아담의 부정모혈이 나와 가지고 그 다음에 가인이니 아벨이니 그  자녀들이 됐고 또 남녀의 또 그 부정모혈이 나와 가지고 또 자녀되고 또 자녀의  부정모혈이 나와 가지고 그 다음의 자녀되고 이렇게 부모의 그 요소가 그것이  쪼개져 나와 가지고 우리들이 실질적으로 된 것입니다.

 무슨 첫째 아담의 자손이라는 것은 육적으로 자기 아버지 어머니의 자녀된  것인데 이것이 무슨 제도적으로 된 것 아니고, 법적으로 된 게 아니고 실상으로  된 것입니다. 이래서, 아버지의 요소가 갈라져 나와 가지고 어머니 요소가 갈라시  나와 가지고 아들 딸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확실히  사람들이 알고 믿고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된 것은 그러면 그저 말로만, 법으로만 또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으로만, 제도로만 됐지 우리가 실상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은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직까지 열려지지 안했습니다. 그러면 세계 아직까지  교리에서도 신조에서도 이것은 드러나지를, 나는 많이 책을 보지 안한 사람이기  때문에 모르나 그래도 들으면 다 알 수가 있는데 아직까지 거게 대해서는  말하지를 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은 하나님의  요소가. 아담 해와의 요소가, 실상으로 그 요소가 와 가지고 자손 대대로 이래 돼  가지고 우리가 생겨진 거와같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된 것도 하나님의  요소가 우리에게 실상으로 와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무슨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또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적으로 이래 됐지 실상으로 된 것은 아니라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첫째  아담의 그 요소가 실상이 와 가지고 우리가 아담 해와의 자손이 된 거와  마찬가지로 둘째 아담인 곧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신 둘째 아담의 자손된 것도  둘째 아담의 그 실질식인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가 된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깨닫고 굳게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  대속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나게 하는. 하나님의  신적 요소로 우리가 나게 되는 그 모든 기초 작업을 다 했고 근거를 다 근거적인  근거인 그 공로를 다 마련해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실질적인 그 자녀가  되도록 된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어떤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됐느냐? 하나님은 진리십니다.

하나님은 진리인데 진리는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또  성령도 하나님의 본체십니다. 이런데 하나님의 본체인, 하나님 말씀에 하나님은  진리라 이래. 하나님은 진리라 이랬는데 진리 그 자체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진리에 무슨 제도나 진리에 뭐  역사나 그런 것이 온 걸로 된 게 아니고 진리 자체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또 영감 자체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이것은 죄에 대해서 완전이요 의에 대해서 완전이요 하나님과  화친에 대해서 완전인데 이 완전은 이것은 신적 요소가 인적 요소를 통해서  나타난. 껍데기는 피조물 요소요 속에 알맹이는 신적 요소로 된 예수님의  대속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완전 대속인데 이 대속과 또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을 향한 이 소망도 이것도 다 신적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요소입니다.

 이래서 이 진리도 피조물 요소가 아니고 또 영감도 피조물 요소가 아니고  하나님의 의도 피조물 요소가 아니고 다시는 죄가 상관하지 못하는 이것도  피조물 요소가 아니고 하나님과 완전한 화친을 가진 이것도 피조물 요소가  아니고 또 하나님께만 소망하는 이 소망 이것도 다 피조물 요소가 아닙니다.

이거는 순전히 완전하신 분의 요소입니다. 그러면 신적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입니다. 된 것인데 여게 대해서 주의할 것은 첫째 아담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과 또 둘째 아담의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된  것이 그 요소가 와 가지고 된 것은 꼭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부정모혈, 아담  해와의 부정모혈이 와 가지고 가인이니 아벨이니 셋이 났고 또 가인이니  아벨이니 셋이니 그분들의 또 부정모혈이 와 가지고 점점 대를 이어서 우리가  됐습니다.

 그러니까 그 인적 요소가 실상으로 와 가지고 우리가 생겨졌고 조그만한 것이  자꾸 커지고 커져서 이렇게 이제 장성한 사람이 되고 또 그 다음 자손이 자꾸  나게 되고 요렇게 된 거와 꼭 같이 하나님도 우리가 법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뭐 또 제도적으로 그런 것이라 이렇게 양자 관계 모양으로 그렇게 뭐 계약적으로  그런 것이라 그게 아니고 하나님의 그 요소의 실상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만들어졌고 생겨진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만 다른 것은 뭐이 다르냐? 첫째 아담은 피조물이요 또 그 피조물은  그것이 완전도 아니요 무한도 아니기 때문에 완전이 아니기 때문에 점점 가감도  될 수 있고 쇠해질 수도 있고 그러합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은 그것은 완전한  신적 요소이기 때문에 그것은 뭐 가감이나 변동이나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아담 해와의 그 쪼갱이가, 아담 해와의 분자가 와 가지고 내가  된 분자가 와 가지고 내가 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그 요소의, 그 요소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됐습니다.

 그런데 요게 대해서 주의할 것은 뭐이 주의할 것이냐 하면은 거게 그  유출설이라 하는 그런 설이 있습니다. 그 유출설은 원 아담 해와에게서 쪼갱이가  떨어져 나왔으니까 아담 해와의 그 본체는 그 쪼갱이가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그것은 작아졌습니다. 왜, 이 물질이라 하는 것은 그러합니다. 아무리 큰 태산이라  할지라도 그 태산에 먼지 하나를 만일 제했다 하면은 먼지 하나만치는 그 태산이  작아졌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신적 요소도 그 신적 요소가 실상으로 와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니까 첫째 아담과 같이 둘째 아담의 그 신적 요소도  거게서 갈라져 나와서 우리가 됐으니까 신적 요소가 첫째 아담과 같이 줄어지고  작아지지 안했느냐 하는 거게 대해서 우리가 잘 생각해야 됩니다. 그러면 갈라져  나왔으니까 작아진다 하는 그 교리 신조가 유출설을 말합니다. 하나님에게서  쪼갱이가 떨어져 나와 가지고 됐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그만치 작아지고  줄어졌다 하는 그것이 유출설입니다. 그러나 인제 하나님은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완전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쪼갤 수도 없고 줄어질 수도 없고 더 보탤 수도  없는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이 잘 안 들으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그 분은 쪼갤 수도 없고 더 보탤 수도 없는 완전자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  인하여 수억억만 명이 그의 실질적인 그 신적 요소를 가지고 억억만 명의 둘째  아담의 자손이 생겨졌지마는 그 신적 요소는 조금도 줄어지거나 작아지거나 좀  그렇게 좀 헐어지지를 아니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출설을 말한 것은  '헐어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유출설이요 모든 우리 정통에서는  유출설을 이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헐어지지 안했다'하는 그것을 주장하는 것이  정통입니다. 거게서는 이런 말을 다 안 하지마는 그 세밀히 분석하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신적 요소 그 자체는 완전이기 때문에 갈라질 수가 없고 그  신적 요소의 그 능력이, 지혜가 또 그 영광이, 권위가 그 모든 완전한 그 요소들의  그 능력이, 요소들의 그 능력이,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가 됐습니다. 그러면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가 됐으니까 요것을 혹 발표하기를 그 능력의 작용으로, 그  능력의 작용으로 그 능력의 역사로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저 알아듣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 표현 방법이 정 그렇다고 하면 그것도 또 모순이 있습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깊이 좀 생각하지, 생각해서 아는 건 집에 가서 할 요량하고  어쨌든지 첫째 아담의 자손도 첫째 아담의 그 피와 살이 그 실제가 그것이  쪼갱이가 아버지 어머니의 쪼갱이가 나와 가지고 첫째 아담의 자손들이 다 된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신적 요소도 실질적으로 그 신적 요소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됐다. 여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그러면 말뿐 아닙니다. 제도뿐  아니고. 약속뿐 아니고. 계약뿐 아니오. 실지로 와서 우리가 됐습니다.

 됐는데 그러면 다만 다른 것은 첫째 아담은 유한한 물질이기 때문에 그거는  하나 보태면 커지고 또 하나 떼 내면 줄어지고 하는 그런 것이 모든 피조물들의  요소입니다. 요소인데 하나님은 완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모든 속성도  완전이요 그의 본체도 완전이요, 속성에는 능력도 있고 뭐 지혜도 다 있는데 그거  다 완전인데 완전한 요소가 갈라져 가지고 와서 우리가 된 것 아니고 이는 완전  모든 완전이기 때문에 완전은 갈라질 수 없으니 완전의 그 능력으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그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해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는 하나님의 조성으로 됐다 하나님의 창조로 됐다 이렇게  발표를 해도 어느 면은 좀 맞을 수 있고 그렇게도 표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하나님은 진리신데 진리로 우리가 중생됐습니다. 진리로 중생됐는데  우리가 중생된 이 진리는 나눌 수 없는 진리입니다. 중생된 진리는 나눌 수 없어.

완전이기 때문에 나눠지지 않습니다. 이는 나누지도 못하고 보태지도 못하고  완전이라 하는 것은 가감을 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하나 진리라고  말하면 그 진리에, 진리가 우리를 다시 낳았습니다. 진리로 낳았습니다. 이래서  야고보서에 보면 너희들이, '하나님의 진리로 너희들을 조성하였느니라' 이렇게  말씀 했어. 하나님의 진리로 너희들을 만들었다 이렇게 말했어.

 너희들이 하나님의 진리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진리로  만들어진 것은 그 무슨 이치가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의 그 진리의 능력이 와  가지고 우리를 만든 그것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리 자체 실상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이래서, 첫져 아담의 자손이 아담의 그 요소를 가지고 그렇게 생겨 나온 거와  같이 둘째 아담도 그 요소가 실지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된  것인데 첫아 아담의 자손은 이것은 완전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분산돼 가지고  그 세포가 분자가 와 가지고 우리가 됐고 그러니까 본체는 그만치 헐어지고  이렇지마는 그 분산된 분자가 와 가지고 왔다고 하는 것이 유출설인데 분자가 와  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고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해 가지고 우리가 됐습니다.

우리가 됐는데 그러면 우리 중생된 우리에게는 이 진리가 우리 속에 역사합니다.

진리가 우리 속에서 역사하고 있습니다. 또 성령의 영감이라고 말하면 그저  성신의 감동으로 이렇게만 생각하는데 영감이라면은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이랍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영감이라 해. 성령이  활동하는 것을 가리켜서 영감이라 하는데 영감이, 영감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는데 영감이 우리 속에 와서 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이 대속의  이 공로는 완성인데 이 공로가 실지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습니다. 실지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고 또 하나님을  향한 이 소망도 이는 완전한 것이요 영원한 것인데 이것은 피조물의 요소가  아니고 이거는 신적 요소로 이거는 완전이요 불변이요 영원한 것인데 이 요소도  우리에게 와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됐습니다.

 됐는데 그러면 내 속에, 여러분들 하나 알도록 하기 위해서, 나도 진리로  중생됐습니다. 여게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진리로 중생됐습니다. 진리로 중생된  사람이면 그 속에 다 진리가 내주해 있습니다. 진리가 그 속에 내주해 그 안에  있어 가지고 역사를 합니다. 그러면 진리가 역사를 하고 있으면은 그 진리는  어데서 나온 것입니까, 그 진리는 어데서 나왔습니까? O목사님? 하나님에게서  진리가 나왔는데 진리가 나왔으면 그러면 내게도 그 진리가 나왔고 또 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다 진리가 나왔고 그라면 진리가 몇 개나 됩니까? 진리가 수가  얼마나 됩니까? 하나? 하나면 어째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다 있을 수가  있는가?  하나입니다. 하나인데, 하나인데 억억만 명 속에도 그 진리가 와 가지고 역사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하고 있는데 이 진리는 억억만 명 속에서 역사하니까  억억만 쪼가리 진리라, 억억만 개의 진리라, 억억만 개의 영감이라, 억억만 개의  예수님의 대속이라, 억억만 개의 이익같이 소망이라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기  쉬운데 하나입니다. 하나가 와 가지고 그렇게 역사합니다. 이러니까 천 명 속에  역사하는 그 진리면은 천 진리가 천 명 속에서 역사하는데, 천 명 속에서 진리가  역 사하는데 역사하는 그 진리는 하나입니다.

 그러면 천 명 속에 역사하는 진리는 하나라면 하나님 안에서 역사하는 그  진리는 또 몇 개냐? 내나 하나입니다. 내나 그 진리요. 그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한 진리가 억억만 명이면 억억만 명 그 속에서 이 진리가 다 역사하고  있습니다. 이 진리가 역사해서 그러면 이 진리가 억억만 명 속에서도 다 역사하고  있으니까 억억만 명이 역사하는 그 멱사의 모든 역사가 이것이 그러면 억억만  명이 역사하니까 억억만 명이 역사하는 그 역사가 몇 개나 되겠습니까? 역사가  몇 개나 되겠습니까? OOO조사님. 하나입니다. 요걸 여러분들이 잘 알아서,  그러면 그 하나님 자체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바로 그 역사가 영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파 하나님의 그 모든 속성 요소들이 수많은 사람 속에 직접 가셔  가지고 역사해서 자기 개인같이 역사해서 이렇게 하나마 그것이 근본이 하나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는 나라와 우리가 얻을 구원과 우리가 가진  생명과 우리가 받을 그 심판이 어떤 심판인가? 이러기 때문에 이 모든 거게, 거게  하나가 아닌 잔것은 다 심판 받아서 헛일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요걸 아는고로 우리에게 유혹을 주는 것은 그저 나, '내게  유익되도록, 내게 해가 된다, 나 욕한다,' 나, 나, 나 나 요놈이 알뜰한 자기인 줄  알고 나 나를 주장하도록 해 가지고 '야, 너 지금 해치는 소리다. 너 삣고 깎는  소리다. 그 사람은 너를 북 돋운다.' 나 나 요것을 위주해서 살도록 마귀놈이  요렇게 꼬우는 요것은 뭐이냐? 단일성의, 단일 교회 단일성인 단일 생명인 이  새사람의 생활로 하지 못하고 천 쪼가리 만 쪼가리로 나눠지게 사욕이라는 악령  약성 악습이라는 요것으로써 나눠지구로 해 가지고 삐뚤어지게 해 가지고 일생  동안을 알뜰히 저 위해서 총총 알뜰히 알뜰히 저 위해 살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놈이 전부 자기 다 죽여 버렸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 아들된 것은, 그저 여러분들이 자꾸 생각해서,  이렇게 아버지의 아들된 것을 우리는 항상 기억하고,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이 얼마나 우리가 존귀한가? 그러면 우리의 중심은 뭐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우리는 우리의 지혜는 뭐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우리의 지혜는 뭐입니까? OOO조사님?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우리의 지혜는  뭐입니까? 하나님? 우리의 지혜는 뭐인지? 무슨 지혜인지? 우리 지혜는 무슨  지혜입니까? 전지의 지혜입니다. 전지의 지혜. 그러면 전지의 지혜가 몇이나  됩니까? 전지의 지혜가 우주와 영계의 존재 가운데 전지의 지혜가 몇이나  됩니까? 하나입니다. 하나. 전지의 지혜가 하나인데 그 전지의 지혜가 곧 내  지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한 몸이요 한 지체요 성전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을 자기의 신앙 그 지식과 정도에  따라서 자꾸 달라집니다. 얼마든지 자꾸 알고 알고 파고 들어 가서 자기는 참  지극히 존귀한 구원 얻었지마는 이 구원을 받아도 뭐인지도 모르고 이 썩어질 거  이 세상 그런 거와도 비교해서, 그것을 오히려 썩어지고 없어질 그런 것들을  이렇게 지극히 큰 구원과 바꾸어 가지고 가지는 이것이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버지 아들은 영생을  가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 사는 것이 뭘로 사는 것이냐 하면은  영생으로 사는 것이라. 영생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그러면 우리는 지금 한 시간을 살든지 두 시간을 살든지 할 때에 영생으로  살아서 그 산 것이 하나도 죽어지지 안하고 영생으로 점점 새로와지고 강해지고  충만해지는 이 영생을 가지고 영생 생활할 수도 있고 또 우리가 낡아지고  쇠해지고 죽어지고 없어지는 그 살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새사람은, 새사람은 그것은 영생하는 영생을 가지고 살고 또 옛사람은 사망하는  그 죽어가는 그 생명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자기가 세상 떠날 때에는 다 죽어  버리고 이제 끝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영생하는 이 생명을 가졌는데 그러면 영생이 뭐이 영생입니까?  영생이 뭐이 영생인가? 영생이란 말이? 어떻게 그거 사람이 안 죽고 영생할 수  있는가? 영생할 수 있는 것은 진리는 영생입니다. 진리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리가 내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가 내가 돼 가지고 있는 것은 그러면 내  진리 또 저 김가라는 사람의 진리 진리가 둘입니까? 성도(聖徒) 억억만 명이  진리가 자기의 생명이 돼 가지고 있고 자기의 지능이 돼 가지고 있는 사람  있는데 그러면 억억만 명이 그러면은 그 진리가 억억만 개입니까 한 개입니까?  억억만 개입니까 한 개입니까? 하나입니다.

 이 진리가 자기 생명이 돼 있기 때문에 이 진리로 사는 것은 다 영생입니다.

영감으로 사는 것도 영생입니다. 또 삐뚤어진 거 없이 사는 거, 죄 없이 사는 것도  영생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에 딱 들어맞춰서 사는 것도 다 영생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도 영생입니다. 또 하나님과 하늘나라의 소망하고 사는 것, 하나님과  하늘나라의 소망하고 사는 그 소망도 그것이 죽는 날이 있습니까 끝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것도 영생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영생을 가졌고 죽어져 가는 생명을 가졌으니 죽어져 가는 생명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생명이고 또 영생하는 생명은 둘째 아담에게 속한  생명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여게 말하기를 고린도후서 5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아무 사람도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에, 사람을 대할 때에 육체대로  알지 안한다. 그러면 육체대로 알지 안한다는 그 육체가 뭐입니까? 육체대로 알지  안한다 말은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 모든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다 그 말이오.

알아듣겠옵니까? 모든 사람을 상대할 때에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서 모든 사람을  상대하지 않는다. 이제 둘째 아담의 자손이 되었으니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서  모든 것을 상대해서 경영하고 계획하고 살고 있지, 둘째 아담의 자손이 살고 있지  첫째 아담의 자손 그것이 살지 않는다 그 말이오.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을 안다 말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도  첫째 아담의 자손이 예수를 그래 믿었는데 첫째 아담의 자손이 예수를 믿었는데  이제는 첫째 아담의 자손이 예수 믿는 게 아니라 둘째 아담의 자손이 예수님을  상대한다 그 말이오. 예수님을 상대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러면 새로 지음을 받아 새로운 피조물이 됐어. 새로운 피조물이라  말은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만들었는데 하나님이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우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새로 만든 자라. 새로 만들은 자라.

부정모혈로 만들어진 그 자도 있지마는 그것을 둘째 아담의 이 네 가지로 우리가  다시 만들어져서 중생됐기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로 됐어.

새것이 되었도다.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 사고방식이나 모든 비판이나 평가나  소망이나 희로애락이나 전부가 다 육체대로 살 것이 아니고 완전히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우리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지극히 큰 복을 하나님 아버지 아들 또 영생 또 우리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거, 신령한 몸으로 부활했다 말은 신령한 몸이라 말은, 이 신령한  몸이라 말은 무슨 말을 가리킨 것인고 하니 피조물 요소로 된 것이 아니고  창조주 요소, 완전 요소, 영원 불변의 요소로 우리가 이제 부활합니다. 그라기  때문에 우리의 몸뚱이가 뭐 우주와 영계가 통일된 데 우주 영계 이거 일 초  동안에 천 바퀴고 만 바퀴고 돌아다닙니다. 천 바퀴고 만 바퀴고 돌아다녀. 이럴  수 있는 몸으로 우리가 이제 부활을 합니다. 이 유한한 이 몸이 무한한 몸으로,  모두 다 쇠퇴하는 몸이 쇠퇴하지 않는 몸으로, 늙는 몸이 늙지 않는 몸으로, 죽는  몸이 죽지 않는 몸으로 이렇게 신령한 몸으로 우리가 부활한다. 이것도 세상에  사람들이 만일 자기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살아나는 이런 일이, 늙지도  쇠하지도 병들지도 않는 이런 몸으로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안하는 것으로,  뭐 바위 속에라도 들어갈라면 들어가고 남의 마음 속에 들어갈라면 들어가고  어데든지 돌아다닙니다. 하나님 안에도 마음대로 돌아다니요, 다만 자기 양심에  거리껴서 못 들어감니다. 양심에 거리끼면 양심에 거리끼지만 안하면 어데든지  양심에 자유하는 자는 아무 데라도 들어가지마는 그 사람은 내게 오라고 초청을  해도 초청을 해도 제 양심에 거리껴서 내게 못 들어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너희들이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호리라도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게서 그 감옥에서 놓이지 못하리라' 하는 그 감옥이 무슨  감옥이냐? 이거 자유 활동할 수 있는 이런 신령한 몸 가지고 살 터인데 어떤  사람은 돌아다니지를 못합니다. 제가 쪼그매는 돌아다니지만 돌아다니지 못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사람은 만나니까 서로 사이가 벌어지지 않고 그 사람은  만나니까 흉금을 열어 놓는데 저 사람 만나면 흉금을 열어 놓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몰라도 내 양심에 가책이 되면 그 사람에게 대해서 내가 자유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신령한 몸으로 우리가 부활할 터인데 이 부활도 좀 생각하면서 부활의  가치를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그라고 제사장 선지 왕직도 우리는 그  가치를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을 좀 자꾸 연구해서 알아야  될 터인데 이 사람들이 그만 여게 대해서 관심 가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영생 가진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제사장직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선지직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왕직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여게서는  여러분들이 말을 들어서 말로는 압니다. 말로는 알지만 그 가치의 실상을  느끼지를 못하는 그 표시판이 뭐이냐 하면은 아직도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세상에 애착을 가지고 이제 모든 가치를 세상에 있는 것에다가 가치를 두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에다가 가치를 두지 않는 그것이 뭐이냐? 다 아직까지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신 이 여섯 가지 복도 자기가 실상으로 알지도 느끼지도  못한 것이라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의 모든 행복이 어데서 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행복은  어데서 오요? 세상 사람들의 행복은 다른 사람에게서, 부모에게서, 가족에게서,  친구에게서, 높은 사람에게서, 낮은 사람에게서, 모든 불신자들의 행복은 다른  사람에게서 오고, 돈에게서 오고 또 그 일이 성공됐으면 성사에서 오고 전부  피조물에게서옵니다. 불신자들의 행복은 전부 피조물에게서 오요.

 그러기 때문에 행복이 오는 그돈을 찾아 돌아다니고 권세를 찾아  돌아다니지마는 우리 기독자의 행복은 어데서 오요? 너 말해 봐. 기독자의 행복은  어데서 와? 어? 하나님에게서 와? 하나님에게서 오기는 오는데 어데서? 어데로  뭐 공중에서 날아오는가? 공중에서 날아와? 하나님에게 오기는 와. 알아야지.

 하나님에게서 오기는 오는데 자기 속에서 나옵니다. 알겠습니까? 행복도 자기  속에서 나오고 영광도 자기 속에서 나오고 지혜도 자기 속에서 나오고 권세도  자기 속에서 나오고 평강도 자기 속에서 나오고 담력도 자기 속에서 나오고  영광도 존귀도 다 자기 속에서 나옵니다. 그러면 남에게 구걸하는 게 좋아요 자기  속에서 난 게 좋아요? 자기 속에서 나오는게 좋지. 자기 속에 뭐 들었는데, 뭐  아무것도 없는데? 자기 속에서 나오는데 자기 속에 나오면 어데 자세히 살펴봐라.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 속에서 나오는데 자기 속 양심에서 나옵니다. 양심에서  나옵니다. 양심이 그 까짓 거 인간 양심이 다 빼빼 말라서 빈 건데 어데 나와?  양심 속에 성령에게서, 성령에서 나온다. 성령에게서 나온다. 성령에게서 진리라는  방편을 가지고서 나온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무한하신 이분이 내 속에 계셔  가지고, 그분이 엿새 동안에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인데 그분이 얼마나 큰데  그분이 내 안에 계셔 가지고 그분에게서 술술 자구 나옵니다. 술술 나와요.

나오는데 뭐 거미 똥구멍에서 자꾸 거미줄이 줄줄 나오는 것처럼 우리 속에서  자꾸 줄줄 모든 행복이 다 나옵니다. 다 나와.

 나오는데, 나오는데 어떻게 하면 자꾸 나오구로 할 수 있습니까? 나오구로 하는  방편이 뭐이요? 한번 말해 봐요. 나오게 하는 방편이 뭐이지? 야 너 OOO집사  아들 너 한번 말해 봐. 나오게 하는 방편이 뭐이지? 어짜면 줄줄 나오지? 여섯  가지를? 너 봐라, 교회 잘 안 나오고 그라니까 인제, 똑똑하기는 똑똑한데. 자, 저  O조사님? 생각에서 나와. 이거는 자본이 드요, 뭣 드요? 아무것도 안 들고 생각만  하면 돼, 자꾸 생각하면. 생각만 하면 되요. 생각만 하면 되는데 자꾸 생각하니까  생각하는데 생각해도 안 나오거들랑은 그걸 좀 바로 해야 돼. 뭐이든지 바로  들어맞아야 되지 잘 안 맞으면 안 되지 안해요? 생각해도 안 나오거든 어데다  맞춰야 돼요? 생각해도 안 나오면 어데다 맞춰야 됩니까? 저 뭐꼬 OOO 어머니?  그래 자꾸 생각해도 안 나오거들랑은 그 줄이 바로 맞아야 되지 삐뚤어지면 안  돼요. 그 양심을 찾아요. 양심대로 생각해요. 양심대로 생각하면 희망이 있습니다.

또 양심대로 생각해도 권세도 지혜도 전지도 전능도 완전도 평안도 담대함도,  이제 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셔도 기쁘고 즐겁고 변하지 안했는데  이제 양심대로 생각해도 그런 행복이 나오지 안하거들랑은 그 다음에는 영감대로  생각하도록 영감을 찾아야 해. 영감대로 되는 거, 영감대로 생각하면 그 다음부터  줄줄 나와요. 천인 만인이 울어도 자기는 웃을 수 있습니다. 천인 만인이 다  꺼꾸러져도 자기는 상관하지도 않고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행복은 전부 자기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생각을  팔아먹는 것은 그거는 참 어리석은 일이요 망할 일입니다. 자기 생각은 아무데도  팔면 안 돼. 이걸 하면서도, 이것을 하면서도 자기 속에 지금 아주 생명줄이  있으니까 그 생명줄에서 이 모든 신령한 복을 자기가 끌어내기 위해서 이것을  통해서도 생각하고 저것을 통해서도 생각하고 모든 것을 통해서 다 생각해.

이래서 우리는 특별 계시는 신구약 육십육 펀의 계시지마는 이 자연 계시는  만물입니다. 만물에게서 자꾸 깨달아. 만물에게서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서 만물  깨닫고 이래 가지고 우리의 전공은 뭐이 전공이냐 하면은 우리 속에 무한하신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분의 실럭 있는 대로 내 속에서 막 창조해서 내놔서 내  밖에 얼마든지 막 튀어 나가도록 이렇게 해 가지고 만물이 다 복받을 수 있도록  만물에게 다 주고 주고 해도 남음이 있도록 이렇게 자꾸 지금 받아서 지금 부어  줘야 되겠다 말이오. 받아서 부어 줘야 돼. 만물에게 충만하도록 부어 줘야 돼.

부어 주다니? 만물에게 나눠 줄 게 뭐 있어? OOO조사님? 만물들에게 충만히나눠  줄 거 있어, 나뉘 줄 거 있어? 뭐 있어? 나눠 줄 거 뭐 있어? 충만이 있는 줄이야  알지마는 내가 나눠 줘야 되는 걸 나눠 줄 수가 있어야지? OOO장로님? 선지  직책. 자꾸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만 가르쳐 줘. 하나님의 뜻 가르쳐  요대로 살아라 요대로 살아라. 하나님의 뜻만 가르쳐 주고 그대로만 하면 그만  그게 전부 전능이요 만능이라.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제사장 선지직 왕직을  주신 것입니다. 또 다음 시간 더 있으면 계속하겠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러 가면 여섯 가지 축복을 새겨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나는  영생을 가졌다' 영생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날마다 영생 생활 할라면 하고 영생  생명 버려 버리고 죽는 생명 가지고 살라면 살고, '나는 또 신령한 몸으로 나는  세상 이것을 벗으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다'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이걸 뭐  새기면 공연히 혼자 있다가 뛰지요.

 하루 삼십 분 기도 잃지 말고. 반사 선생님들은 꼭 자기가 공과를 외우고  실천해서 경험 체험의 지식을 얻어 가지고 가르쳐요. 그라고 은사 위치에 있는  분들은 자기가 맡은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품어 놓고 놓으면 죽습니다. 자기  마음에 품어 놓고 잊어버릴 새가 없이, 그러기 때문에 '내가 떠난 것은 몸이요  마음은 아니니라' 했어. 그렇게 기르도록 하고 남녀 구역장님께서는 보고서를 다  내고 가시기 바랍니다. 십 분 기도 후에 지난 주일 설교 말씀 재독이 있습니다.

대구 집회를 위해서 직장, 가정, 경제 문제 둥에 대해서 모든 면을 잘 준비하도록  기도하시고 아무 사고 없이 참석하도록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기도하고 연구하고  노력해서 마련합시다. 특히 왕래와 강사 목사님 위해서 기도 많이 하시고 또 모든  만물과 관민이 다 협조해 주기를 기도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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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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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 하나님의 심판/ 유다서 1장 10절-16절/ 1983. 9. 4. 주일오전 김반석 2016.01.03
375 하나님의 심판/ 마태복음 5장 13절/ 1989,.7. 30. 주일오전 김반석 2016.01.03
374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고 말하라/ 베드로전서 3장 10절-12절/ 1986. 9. 19. 금저녁 김반석 2016.01.03
» 하나님의 아들/ 고린도후서 5장 14절-18절/ 1989. 4. 28. 금저녁 김반석 2016.01.03
372 하나님의 아들/ 에베소서 1장 3절-14절/ 1989. 4. 9. 주일오후 김반석 2016.01.03
371 하나님의 아들/ 예베소서 1장 3절-6절/ 1989. 5. 11. 목후집회 김반석 2016.01.03
370 하나님의 아들/ 에베소서 1장 3절-14절/ 1989. 4. 9. 주일오전 김반석 2016.01.03
369 하나님의 아들/ 야고보서 1장 2절-4절/ 1989. 4. 2. 남지권찰회 김반석 2016.01.03
368 하나님의 아들-세 가지 특수성/ 에베소서 1장 5절-6절/ 1985. 7. 28. 주일새벽 김반석 2016.01.03
367 하나님의 아들 구원/ 에베소서 1장 5절-6절/ 1985. 7. 15. 월새벽 김반석 201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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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하나님의 역사/ 갈라디아서 6장 7절-8절/ 1989. 4. 9. 주일새벽 김반석 201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