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


선지자선교회 1984년 8월 9일 목새집회

 

본문 : 요한일서 5:1-12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본문을 간단하게 주해하겠습니다.

 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이 말은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났으니 마리아의 아들이요 요셉의 아들이라 이렇게 사람들이 다  생각을 하고, 예수님께서 영원 전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요, 또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유일하신 목적을 정하실 때에 그 목적을 정하신 하나님이  자존하신 하나님이요, 또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자존하신 하나님 또 목적을 정하신 하나님 또 목적을 위해서 예정을 하시고 또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를 하시고 또 창조하신 것을 보존도 하시고  섭리하시고, 이렇게 하시고 예표로 구약 시대에 짐승으로 여러 제물,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의 제물을 짐승으로 그렇게 예표 약속하시고 때가 되매  도성인신하셔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땅위에 오셔서 하나님과 택자와의 그 관계,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과의 그 관계 이 관계를 완전히 잘못된 것을 다 담당하셔서  처리하시고 영원히 완전한 관계를 맺으신 이 하나님이시라 하는 것을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단순히 예수님은 요셉으로 더불어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난 젖을 먹고 또 이렇게  자라고 한 우리와 꼭 같은 아이로 잉태 돼 가지고서 또 그렇게 자라고, 또  장성해지고, 차차 그 모든 마음의 요소와 몸의 요소가 장성해지고, 또 행위도  차차 장성해지고 이렇게 한 것이 꼭 사람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데, 이분이  사람만이 아니고,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 그 말은 그리스도는 영원 전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자존하신 하나님이 당신이 자존하신 당신이 하나의, 당신  혼자 있으면서 당신의 그 혼자 있는 거기에서 혼자 있는고 하나님이 역사하신,  역사하신 그 역사의 첫 역사에 역사하신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면, 자존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자존하셨는데, 그 자존하신 하나님이 이렇게  움직이기 시작할 때의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원 자존하신 그 하나님이 이 목적을 정하실라고 움직일 때의  그 하나님이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기에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 보기에 그 유대인 중에 목수 요셉과 또 마리아라는 여인에게서  난 아들인데, 분명히 아들인데, 그를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시라 그 자존하신  하나님이 당신의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 정하신 그 하나님 이시라, 또 목적을  정하셨는데 그 목적 정하신 것은 뭐이냐?  그 목적은 자존하신 당신과 또 그 당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셨는데, 예정하시고 창조하신 그 모든 예정의 것과 창조의 것  그것을 자존하신 분과 그 조화를 바로 맞추는, 그 뒤에 썩 나와서 조화를 바로  맞추는 이 그리스도의 능력, 제사장의 능력 선지자의 능력 왕의 능력 이 능력을  가지도록 해서 이 목적을 완성하는 그 완성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요. 이  오신 이분은 오신 그때뿐 아니라 영원 자존하신 때부터 이 경영을 하신 그때의  그 하나님이라 하는 것을 믿어지는 자는 이것이 하나님께로서 난 자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믿어지는 것이 아니고 믿어지게 하는 성령의 능력을 입는  자만이 믿어지지 성령의 능력을 입지 못한 자는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택한 자인지 내가 불택자인지. 내가 중생이 됐는지 안  됐는지 하는 그 결과는 뭐이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는 것 사람이  전해 줄 때에 그 전해 주는 것이 믿어지는 것, 믿어지는 그것이 곧 영원 전  하나님의 예택 안에 있는 자이며, 예택 안에서 창조된 자이며, 또 예택 안에서  창조된 자가 예정대로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어서. 이는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자만이 아니고 첫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난 자가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다시  나서, 첫째 아담으로 난 이것이 사망에 속하게 된 것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고, 이것이 탈선돼서 타락했던 것을 다시 본지위로 회복을 시켜 하나님과  관계를 맺되 처음 관계는 변동있을 수 있는 관계이고 이제는 변동할 수 없는 그  관계를 맺도록 해서 영원히 계속하게 하는 이 역사를 베푸신, 이 공로를 베푸신  예수님이요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타내 보인, 그 후 인간에게 나타내 보이신  예수님이요 예수님으로 나타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로 그렇게  시발하기 전에는 곧 자존하신 하나님이라 이렇게 이 사실을 믿는, 이것이  믿어지는 사람은 그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믿어지는 것이지, 인간의 이성이나  그런 타락한 인간 요소로 믿어지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자존하신 하나님 그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거와 같이 그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믿어지는  것이라 이것이 하나님께로 난 증거라 그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하나님께로서  났다 그 말은 물론 일차 창조도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았지마는 이거는 일차  창조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차 창조 곧 진동되지 안하고 변동되지 안하고  영원 불변 완전의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이것은  두번째 된, 첫째 아담이 아니고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영존 완전의 것으로 난  자라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났다 그 말은 쉽게 말하면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입고 주님의  공로와 성령과 진리로 다시 중생된 자라 하는 그 말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그  믿음이 있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께로 난 증거다 그말이요. 하나님께로  난 증거다.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내신 이는  곧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써 다시 출생하고  재출생하게 한 것인데, 이렇게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증거가 또 뭐이냐?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는' 내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곧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택자를 만들어 내셨는데, 택자를 만들어 내셨는데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이제 대속을 입고 중생 된 자  대속 입고 중생된 자 곧 말하면 믿는 자인데, 믿는 자를 사랑하는 그 사람의  본능이 있다, 본능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이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는 거기에서  남을 받은 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 내신 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그 증거는 뭘로  하느냐? 그 증거는 거기에서 나온 곧 이 그리스도인을 사랑하는 사랑이 내신  이를 사랑하는 증거다.

 그러면, 내신 이를 우리가 암만 사랑한다 해도 거기에서 난 자를 사랑하는  사랑이 없으면 그는 우리가 믿을 수 없다. 나무를 모르거든 열매를 보아 알리고  말씀하신 거와 같이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지, 자존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또 목적을 정하신 그분을 사랑하는지, 또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때가 되매 친히 피조물이 접할 수 있도록, 또 피조물과의  모든 관계를 바로 맺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되어 오셨는데, 사람되어  오신, 사람 보기에는 사람이지마는 하나님이시라.

 이런데, 그분을 내가 사랑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나도 날 모르겠다. 말이오.

나도 그분을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 것인지 나도 모르는데, 나도 모르는데  이제 그 난 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난 자. 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중생돼서 예수 믿는 사람 그 사람이 사랑해지는 거 이거는 보는 인간이 볼 수  있고 자기 주관이 알 수 있는 것인데, 그 사람이 사랑스럽고 사랑하고 싶고  필연성으로 사람이 돼지는 것, 예수 믿는 사람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랑하고  싶고 사랑이 되어지고 또 어쩐가 연락이 돼지고 통해지고 그만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사랑해지고 하는 그것이 뭐이냐? 내신 그분을 사랑하는 증거다. 자꾸  이렇게 증거를 들어 가지고서 말합니다. 결과를 가지고 이 결과를 보아서 이런  것을 알아라, 이 결과를 보아서 이런 것을 알아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다. 내가 하나님께로  났는지 안 났는지 뭣 보고 알겠느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이 믿어진다. 믿어지면  너는 하나님께로서 난 증거다. 아무라도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아무라도 믿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는 세상을 이기고 점령한 악령이 믿으면. 믿으면 벌써 자기에게서 떠나서  자기의 상전이 되고. 믿으면 자기의 상전이 되고 자기의 군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때문에 이 악령이 뺏기지 안하려고 하는 그 노력이 전심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노력을 합니다. 땅위에 있는 이 피조물을 다 악령이 다 점령했습니다.

 왜 점령하게 됐느냐?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에게 이 우주의 지은  만물을 사람에게 이제 다 위임을 시켰고 위임 통치를 하게 됐고, 또 그런 것들을  다 정복했다 말은 그것보다 뛰어났다 그 말이요. 우주에 모든 존재들이 많지마는  그걸 사람들이 정복했다 사람들이 그걸 다 정복했다 말은 그것들을 다 능가했다  그 말입니다. 사람들이 능가했다.

 그러기 때문에, 뭐 이 우주의 항성만 해도 십억만 항성이고, 또 별 이런 것이  얼마라 하더라? 사백억 개나 된다고 그렇게 말한다든가 얼마 말한다 하는데  그거는 모르지만 어쨌든지 많습니다. 뭐 사백억이 아니라 사천억이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요 조그만한 지구 위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놓은 사람에게 다 소속했고 사람이 다 정복했고 또 사람의 것이  됐고 사람이 왕입니다. 이것도 아주 무섭고 어려운 지식인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꾸. 마귀는 그래 말합니다. 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이거 지구 땅덩어리라 하는 것이 이것이 그리 크지 않다. 지구 땅덩어리 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 큰 것들이 이 우주에는 가득 찼다. 이러기 때문에 이 지구  땅덩어리에도 살고 또 지구 땅덩어리보다 큰 데는 더 좋은 것이 살고 이러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이 지은 것 중에 지구라 하는 여기에서 꼬물 꼬물거리는  것이기 때문에 고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 그보다 더 큰 존재들이 많이 있으니까  거기에는 또 어떻게 꼬물꼬물한 것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이 사람이 우주의 제일  주인공은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믿지 않는 자들이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지구에는 이렇게 우리가 걸어다니지마는 지구 아닌 지구보다 큰  피조물들이 많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렇지마는 이것 지구 땅덩이보다도 더  아주 크고. 이 지구 땅덩어리로 말하면 태양이라는 그 항성에게 속해 가지고  있는 것인데, 항성만 해도 십억만이 되는데 거기에는 여기에보다도 이것을  지배할 수 있는 그런 높은 존재들이 살고 있다 이래서 이 땅에 있는 것은 다  이렇게 기어 돌아다니고 이래 걸어다니고 하지마는 거기에 있는 것은 모두 이런  제비, 연자, 독수리 이런 거 모양으로 날아다닌다. 또 날아다닐 뿐 아니라  거기에는 날아도 안 다닌다. 거기에는 더 신비해 가지고서 이래 뭐 우리 생각이.

우리 생각이 동양 갔다 서양 갔다 일본 갔다가 생각이 퍼뜩 퍼뜩 생각이 날래서  그 생각이 연상으로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처럼 거기에는 그렇게 신비한 존재들만  살고 있다 이렇게 지금 말하는 것이 이 마귀란 놈들이 우리를 죽일라고 그런다  말이오.

 우주에 지구 땅덩어리보다 큰 게 많지마는 그 모든 것은 이 지구를 위해서  있습니다. 이 지구를 위해서 있고. 이 지구에 존재하는 이 사람은 이 우주를 다  통치하고 정복하고 그것을 다 관할하고 주인공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타락을 만일 안 했더라면. 타락 안 했더라면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치해서 이랬을 터인데 그만 마귀로 더불어 전쟁해 가지고 마귀에게  패전했기 때문에 그 정복권과 모든 주인권, 주인은 주님이 주인이지마는  대리주로 위임주가 되는, 위임 통치라는 위임주 대리주인 이 모든 정복주 이  정복주의 권위를 뺏겨 버렸습니다.

 뺏겨서, 이제 모든 피조물은 사람으로 더불어 대립이 돼서 원수가 되었고 이  모든 피조물은 정복해서 승리한 사탄의 것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와 영계는  다 사탄의 것이 돼 가지고서 그것들이 관할하고 그것들이 주관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그런 것이 다 우주를 주관하고 있는데, 우리가 사탄으로 더불어  전쟁을 해서 사탄을 이기는 일, 우리 현실에서 사탄이냐 하나님이냐 사탄이냐  하나님이냐 이럴 때에 사탄을 물리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긴 것은-사탄이 한  개 두 개 개별체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물론 개체성을 가지고 있기는  있지마는 그것은 전부 하나입니다. 사탄은 다 하나요.

 사탄이라는 그 대장 밑에 모든 수많은 군졸들이 있어서, 마귀, 귀신, 사귀,  이런 것 다가 한 덩어리인데, 그것은 한 덩어리이니까 내게 접한 것을 내가  승리할 때에는 고것만 승리한게 아니라 그 배후에서 모든 사탄 전부가 다  연관성들 가지고서 응원해 가지고 하는 건데 내게 해당된 것을 내가 승리하고  점령했으면 그 모든 우주 안에 들어 있는 사탄은 다 점령한 것이 되어지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조그만한 산골, 산골 그 산전막, 여게는 그전에는 마을이  있었는데 저 개명 같은 데나 봉산 같은데 그 파전 파는 것 있지요? 파전 파는  것, 파전 파는 것, 파전 파는 게 뭐이요? 그 이름을 뭐라 하지요? 파전 파는  것을? 산전이라 합니까? 화전, 아, 불질러 가진다고 화전막, 화전막인데 화전막  안에 있으면서도, 화전막 안에 있으면서도 우주를 점령할 수 있는 것이 이  신비한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주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우주와 영계를 지금 마귀가 점령하고 있는데 그놈하고 싸우면 점령하게 됩니다.

이 점령은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말씀하신 그대로 예수님께서 이것을 이  우주는 예수님이 점령했습니다. 점령했기 때문에, 이 사탄이 차차 차차 갇히게  됐다 그 말은 사탄의 활동 범위가 자꾸 갇혔다 말이오.

 그래 흑암에 가두고 유리하는 별, 흑암에 가두어서, 흑암에 가두었다 그 말은  이 사탄이 그 수권 범위가, 활동범위가 이제는 자꾸 제한이 되고 제한이 돼서  이제는 믿는 사람들에게 와 가지고서 자꾸 방해하고 침노하는 일을 하기는  하지마는 절대권을 가지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러니까, 믿는 사람에게 대해서 침노하기는 하지마는 침노를 해도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믿는 사람을 구원을 위해서, 믿음을 위해서 유리하도록 주님의  심부름을 하는 이 침노만 하지 제가 정복으로 점령적인 그런 침노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싸우고 있는 싸움이 무슨 싸움인고 하니 첫째 아담이  패전해서 그 위임권을 빼앗겼고 또 통치권을 빼앗겼고 정복권을 빼앗겼고  소유권을 빼앗겼습니다. 이것 빼앗겼는데 그거는 누구의 것이 되었는가? 사탄의  것이 되었습니다. 사탄의 것이 돼서 그것을 가르쳐 주님이 세상 임금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탄의 것이 돼 버렸어요. 사탄의 것이 되었는데 둘째 아담이 와  가지고서 다시 거기에서 도전을 해 가지고서 이제 둘째 아담이 와서 사탄으로  더불어 도전해서 사탄을 이겼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탄이 패전했습니다.

 이긴 것은 뭘로 이겼느냐 하면은 주님이 죽어도 어떻게 돼도 죽기까지  하나님에게 복종하신 것과 또 죽기까지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것과 죽어도  하나님과 화친을 놓지 아니하고 죽기까지 다 들여서 화친하신 것,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는 우리 형벌로 죽었고,  하나는 우리 대신 복종하심으로 죽었고, 하나는 우리 대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것으로 그만 부스러기도 남지 안하고 화친을 위하여 화친으로 끝을  마쳤기 때문에 승리했다 말이오. 다시 화친을 깰 수가 없어 흔들 수가 없어.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크게 말하면  두 가지 작게 말하면 세 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은 이기셨소. 주님은 이기셨기 때문에 주님은 벌써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다 내게 주셨다' 그 말은 이제는 다시 위임 통치권 또 그 모든 정복권  주재권을 예수님이 가지셨습니다. 가지셨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것이 다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이고 사탄도 이제 부리는 종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데, 우리가 지금 사탄으로 더불어 싸우는 것은 궁극적인 승패를 결정하자는  것 아닙니다. 이것 잘 모르면 안돼요. 이런 말은 자꾸 어디든지 그렇게 신학에  있는 것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들이 이단이라면 이단이라고 뭐 이러지마는  거기에 뭐 기록되어 있는 게 아니라 이거 기록할라 하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이러니까, 잘 들어서 여기에까지 궁극적으로 해결이 돼야 천하 신학자가 다 달라  들어도, 다 달라 들어도 여기에서 깨닫고 옳게 깨달은 거는 정복합니다.

 그 신학자들이 암만 해 봤자 철학자들이 암만 해 봤자, 철학자가 암만 해도  요만한 범위 속에서 하니까, 이 철학자들이 변론할 것이 요만한 범 위니까 그  너머 것 '이 너머 것이 있다. 이거는 어짜노?' '거기 뭐 있노?' 저들이 모르는  것을 말하니까 '뭐 거기 뭐 있노?' 고만 그 범위 안에, 그러기 때문에 천하에  있는 신학자들이 다 이래도 이제 그것을 그 너머 이 테두리 그 너머 것을 알고서  하는 사람은, 그걸 몰랐는데, 이 안에서만 알고 '말했는데 이 안의 것을 그 너머  것은 모르니까 그 너머 것과 연결시켜서, 연결시켜서 이 관련성을 맺어 놓으면  '이거 틀렸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말이오. 거기에까지 맞아야 돼요.

하나님에게까지 맞아야 돼요. 이러기 때문에, 안 맞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탄을 이기기 위해서 싸우는 것 아닙니다.

주님이 이겨 놓으신 그 이김으로써 이기는 것이지 우리가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겨 놨는데 당신이 이겨 놓고, 이제 당신 이겨 놓고 거기에서 다 공심판에서  구출해 가지고서 당신 안에다가 둬 놓고, 당신 안에다가 둬 놓고 지금 당신이  정복한 이 사탄과 우리와의 서로 씨름을 붙여 가지고서 자꾸 우리를 연단시키고  연성시키고 우리를 사탄을 다스릴 수 있고 이것을 승리할 수 있는 이런 실력을  갖추고 있다 말이오.

 우리는 지금 연습이오. 우리는 연습 싸움이지 승패가 결정되는 싸움은  아닙니다. 승패가 결정되는 싸움은 아니고 우리의 연습 싸움인데 연습 싸움의  승패가 결정됩니다. 연습 싸움의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연습 싸움에서 승패가  결정되는 그것을 판정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그거는 공심판이 아니오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이것을 해서 그러면, 그 사람이 만일 이것은 사탄을 내가  이겼다 이긴 것은, 사탄을 궁극적으로 이긴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이겼고, 예수님께서 이긴 사탄하고 나하고 한번 씨름을 시키고 하는데 '네가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느냐 보자' 하고서 씨름을 시켜서, 내가 이긴 것은  그리스도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에게 인정받는, 그리스도의 심판에서 인정받는  그 지금 승리의 길을 취하는 것이지, 승리를 취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공심판에  내가 승리를 취하는 것은 아니라 말이오. 그거는 아닙니다.

 이래서, 우리는 조그만한 자리에서도 내가 내게 해당된 사탄을 이겼을 때에 그  사탄 전부를 다 이김이 됩니다. 왜? 그 사탄이 내게 나오기는 한 마리가 나와  가지고 달라들었다 할지라도 한 마리 뒤에는 전체가 다 되는데, 그 한 마리를  이긴 것이 다 이김이 안 된다고 하면은 한 마리 이긴 그것이 그 뒤에 남은 것이  자꾸 연줄로 해 가지고서 이렇게 싸울 것인데 하나님께서 정해서 '너는 요것만  이기면 다 이기게 됐다' 한정을 다 해 줬기 때문에 각각 자기가 이길 수 있는고  연습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거면 '너는 고만하면 됐다, 됐다' 했기 때문에 그  이긴 그것은 바로 사탄의 전부를 다 이긴 자가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주와 영계를 이제 상속받는 것은 내가 이겨서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다 그것을 가지고 있는데 이제 주님에게 내가 얻는 것입니다. 주님에게  얻는 것이지 하나님의 지공 지성 심판에 내가 얻는 것 아니오. 주님이 다 얻어  놨는데, 주님께서 '아 너는' 인정하고서 '요걸 차지해라. 열 고을을 차지해라  너는 다섯 고을을 차지해라' 예를 들면 그렇게 해서 그 모든 우주의 점령권, 또  통치권. 또 그들에게 시은권, 그들을 보장권 그들에게 중보가 되는 중보권  이것을 우리가 다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서로 난 자니' 이렇게 이거는  믿을려면 다 믿을 것인데 믿을 수가 없어. 믿을 수가 없는 것이 바다물 속에  들어가서 바닷물에 안 빠지는 그것은, 바닷물에 빠지지 않는 것은 빠지지 안할  수 있는 실력이 있다는 증거라. 다 빠지기 마련이라. 빠지기 마련인데, 배를  탔던지 그래 아니면 뭐 수영을 하던지 어쨌든지 물속에 안 빠지는 것은 안 빠질  수 있는 실력이라 그 말이오.

 이런데, 마귀는 지금 하는 일이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자꾸  이래 하는 것이 마귀가 하는 일이라. 마귀가 제가 독단으로 궁극적 세력을  가지고서 못 믿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교를 못 믿게 해라 못 믿구로 해라'  이라기 때문에 어쩌든지 못 믿구로, 못 믿구로 하고, 하니까 마귀는 못 믿구로  하고, 또 이 성령과 진리와 그리스도의 피는 믿도록 하고, 이래 가지고서 어느  것이 이기냐 지느냐, 이겨야 비로소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믿는 자가 된다 그  말이오. 믿는 자 되는 이거는 하나님이 인정하셔서 벌써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  그 말이오.

 이거 전부, 그러기에, 우리가 지금 이 구속 운동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공심판 안에서 하면은 우리는 다 죽고 다 망하지 이겨낼 도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걸 다 이겼습니다. 다 이겨 베풀어 놓고 우리를 지금 무궁세계의  모든 것을 위임 통치할 수 있는 이런 지금 실력을 배양하고 연습하고 연성시키고  연단시키는 지금 이 시기입니다.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라'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라 하는  여기에는, 고걸 알아야 됩니다.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난 자라.' 이거는 못  믿게 하는 악령의 역사가 가득 차 있는데 믿게 되는 것이 뭐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돕는 그 역사가 벌써 연결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겼다 그거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은 벌써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살게 된 그 연결줄이 있다는 증거다.

연결줄이 없으면 그게 안돼요. 이해가 됩니까? 똑똑히 알아서 심령을 넓히고  밝혀야 돼요. '난 자니' 그게 그 결과를 봐서 하나님께로 났는지 안 났는지 알  수가 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그것을 봐서 하나님께로 났는지 안  났는지 알 수가 있다 결과를 봐서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그 말이오.

 또 나옵니다.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라 말은  내신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시켰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출생시킨, '내신 이를 사랑'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사랑 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되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안하면 안 되겠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지 안 사랑 하는지, 내신 이를  사랑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모르겠는데 내신 이를 사랑 하는 자는 그 증거가  있으니 뭐이냐?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이제 예수님의 대속과,  예수님의 대속과 대속을 협조해서 이 대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게 응해지도록,  효력 있게 역사하도록 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성령과 진리입니다. 성령과  진리가 이렇게 효력 있게 역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은 예수의 그 피공로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역사하시고  진리도 완성시키기 위해서 역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진리와 성령은 예수님의  피공로의 수종자라 그렇게 말을 해도 괜찮습니다. 알기 쉽도록  '사랑하느니라' 2절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러면, 인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신 이를 사랑하고' 그 말이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신  이를 사랑한다, 위에 있는 내신 이를 사랑하는 것은 거기에서 나온 자들을  사랑하는 그것이 내신 이를 사랑하는 증거다. 암만 네가 내신 이를 사랑한다  해도 그것은 난 자를 사랑치 아니하면 내신 이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증거다.

그러면, 내신 이를 사랑하지 안한 증거는 또 뭐이냐? 그분으로 말미암아 네가  나지 안했는지 모르겠다. 이래 가지고 결과를 봐서 자꾸 알라 그 말이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그러면 이 난 자를 사랑하는 것을 보아서 내신 이를 사랑하는 그  증거다 그래 놓고,

2절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그러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내가 형제를 참 사랑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그 말이오. 자꾸 이거 지금 결과를 가지고서 증거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그러면, 암만 하나님께로 난 자, 형제를 사랑한다고,  형제를 내가 사랑한다고 이렇게 해도 그 형제를 사랑한다는 사랑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다. 그 말이오.

 형제를 사랑하여, 예수 믿는 사람을 내가 사랑한다 하는 그 예수 믿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것이 내가 참 사랑하는 것인지 거짓부리로 사랑하는 것인지  그것도 또 의문이 온다 말이오. 그러면, 자꾸 의문을 넣어 주고 또 의문을  깨트리고 의문에 의문을 깨트리고 이래서 자꾸 광명으로 이끌고 하나님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그러면, 보는 이 형제를 사랑하는  증거가 뭐이냐? 보는 형제를 사랑하는 증거는 하나님을 내가. 하나님이  사랑해지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고 하나님을 내가 사랑하게 되는 그것이 보는  형제를 사랑하는 그 증거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보는 형제를 사랑함이 거짓부리다. 요거 아주 어려운 말입니다.

 또 그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계명을 지킬 때에 참 형제를 사랑했구나 하는 것을  확고히 알게 된다 요거 좀 어려운 말입니다.

 사람들이 말세에는 사랑, 사랑 해 가지고서, 사랑, 사랑 화목, 화목 하는데, 참  이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인지 형제로 더불어 화목하는 것인지 그걸 뭘로 보고  압니까? 형제를 사랑하는 것인지 참 화목하는 것인지 그것을 뭣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까? 예? 예?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것으로 하나님을, 아무리  형제에게 '화목하자. 이거 우리가 다 화목해야 된다. 우리를 서로 사랑해야  된다.' 화목 사랑을 많이 말을 하고서 이렇게 자기네들이 뭐 물질도 아끼지  안하고 무슨 몸의 희생도 아끼지 안하고, 모두 아끼지 안하고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 사랑이 참사랑인지 거짓 사랑인지 그것을 그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이 참이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도 또 가짜인지 그것도  모르겠다. 그거요. 모르겠는데, 그러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꼭딱 꼭딱  세모잡이든지 네모잡이든지 오모잡이든지 뭐 밤송이 모양으로 빼쪽 빼쪽 하든지  어쨌든지 그 말씀을 지키지 안하지 못해서, 그 말씀을 안 지킬 수가 없이 그  말씀을 지키게 돼진다, 그 말씀을 지키게 돼지는 것이 최종 증거라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오늘 이 세상이 사랑, 사랑 말하고 화목, 화목 말해서, 뭐  이제는 자꾸 화목 운동이 나는데 이 화목 운동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성신의 화목  운동인지, 마귀의 화목 운동인지, 그걸 우리가 비판할라 할 때에 뭘로 가지고  비판 할 수 있느냐? 몇 가지로 비판할 수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로 비판할 수 있습니까? 예, 두 가지로 비판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로 비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화목하게 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 형제를 사랑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기에서 근원이 나와 가지고 사랑하는 그것이 증거인데고 증거도  애매하다 그 말이오. 고 증거도 애매해.

 고 한 증거도 애매한데, 더 확고한 증거가 있으니까 더 확고한 증거는  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털끝만치라도 어길 수 없어. 그 말씀을 어기는  것이고 사망이요 그 말씀을 어기는 것이 곧 형제를 죽이는 것으로 여겨서 하나님  말씀을 철두철미하게 어길 수 없는 고것이면 이제 고게 현재 화목이 바로 된  것이요, 또 하나님을 사랑함이 있으면 현재의 화목이, 사랑 이 고게 바로 되는  것이라 그 말이오.

 오늘에는 만일 화목과 형제 사랑을 이렇게 부르짖지마는 그 부르짖는 운동  자체가 하나님의 계명을 한 말씀 한 말씀 한 교리 한 신조를 거머쥐고 빨빨  떨면서 '요걸 지키지 않을 수 없다' 요것을 세밀히, 거기에서 한 계명이라도  이것을 말살시킬 수가 없고 이 계명을 무시할 수가 없이 그 계명지키는 데에  엄격하고서 그 계명으로써 자기 생명을 버릴지라도 그 계명을 어길 수 없다, 그  계명 지키는 것이 엄격하고 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 사랑하는 것이요 그  형제 사랑하는 것인데,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한다, 사랑한다 해도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이  거짓부리요, 형제를 사랑한다고 아무리 말하지마는 도무지 하나님의 제명과는  상관이 없어. 저거끼리만 사랑하지 하나님의 계명과의 연결이 없는 그것이  뭐이냐? 가짜라 그거요.

 그만하면 여러분들이 눈을 떨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가짜 사랑을 눈을 떨 수가  있어. 가짜 사랑을 알 수가 있어. 가짜 사랑을 알 수가 있고 가짜 화평을 알  수가 있고 가짜 복음 운동을 알 수가 있다 그거요. 그것이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마는 사랑하는 것도 애매하다 말이오. 애매해서 모르지만  제일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의 계명 지키는 그것은 그만  뚜렷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 계명 지키는 것 그라면, 뭐 주일을 지키는  것이라든지, 또 일 계명이나 이 계명이나 그저 십계명까지 그 계명을 지키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털끝만치라도 에누리를 하지 안할라 하는 것 또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이거 모든 거 다 자꾸 구별해 가지고서 자꾸 따지고 들어가는  구별을 자꾸 이래 해 가지고 자꾸 쪼개 들어가는것, 그럼으로써 그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형제를 사랑하는 증거라 그거요. 이것 참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지금 합동 번역으로 천주교는, 뭐 천주교가 뭣이라 안식교가 뭣이라 해서 이래  해도 그것이 겉으머리 이 모든 것이 다 화목한다는 그것은 좋은데, 그 속에 그  속에 자존하신 이분을 사랑함으로 말미암은 그것이 없으면 안 되고 또 이분을  사랑한다는 그것은 뭐이냐 하면 진리, 하나님의 성경 말씀은 하나의 가감을 못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한 말씀 한 말씀 따져서 이 말씀을 죽이지 안하고 이  말씀을 살려서 이 말씀에 준해야 된다는 그게 없으면 그게 거짓부리 운동이라 그  말이오. 이것 무시하면 거짓부리 운동이라 그거요.

 그만하면 여러분들이 세상을 지금 이거 인본주의로 단합되는 것인지 신본주의로  단합되는 것인지 그것을 알 수가 있다 그거요. 그만하면 알아요. 자꾸 이 안약을  발라서 눈을 밝게 해야 돼요.

 '내게 안약을 사서 발라' 안약을 사서 바르는 것은 사기는 뭣 주고 삽니까?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그것이 내놓는 것이라. 자기를 생각하면 안돼요. 내야  어찌 됐든지 나는 당신만을 위하고 당신에게 쓰여지는 것이 내라는 그 내 위치를  똑똑히 세워 놔야만 비로소 눈이 밝아집니다. 모든 것을 바로 견해 할 수  있습니다.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 아느니라'  아무리 그 사람이 형제를 사랑한다 해도 하나님의 그 법도를 어기면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 그러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형제 앞에서 내가 계명 지키는  것이 형제 사랑하는 것이라. 그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대로  말하고, 그 사람에게 권면하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대로 말하고 그 사람을 돕는  것도 하나님의 계명대로 하고, 하나님의 계명이 생명이기 때문에 이제 그 사람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으로 보호하고. 하나님의 계명으로  교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으로 모두 친절하고, 하나님의 계명으로 돕고  이래야 되지 하나님의 계명 빼놓으면 그까짓 거 천하 것들 제가 다 준다 해도,  생명 줘 봐야 가치 없다 말이오.

 우리에게 가치 있는 것은 뭐이 가치 있느냐?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가치가 있지 그 외에는 우리에게 아무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머지기 그까짓 거 돌과 한가지라.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됐다  하는 말은 이 고깃덩어리 암만 미인이고 미남이고 암만 잘 나 봤자 그까짓 거,  천하에 뭐 참피온에 천하 참피온 다 가져 봤자 돌덩이 한가지라 그 말이오.

흙덩이 한가지라 말이오. 가치 없소.

 우리에게 생명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니 말하자면 물과 피와 성령으로 임한 자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에게 가치 있고 권위 있습니다. 그러기에,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명을 어기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족들이 만일 예수를 믿지 못하게 야단을 지기는 데 그때에 그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어떤 것이 남편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여반에 좀 말해 보십시오.

예수 못 믿구로 하는데, 못 믿구로 사정도 하고 달개기도 하고 오만 거 다 잘해  주기도 하고 또 안 되니까 위협도 하고 안 되니까 나중에 자살한다고 울기도  하고 이래 가지고서 사생결단하고서 예수 믿지 말라고 이렇게 할 때에 그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그만 거기 따라서 사랑할라면  예수를 안 믿어야 되지 안 해요? 예수를 안 믿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요, 그때에  그래도 눈물 흘리면서 이래도 기도를 하고 어쨌든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까? 믿는 것이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네 믿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것이 사랑하는 것인데, 믿는 데에 그 방편은 여러 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전쟁을 하되 후퇴 작전도 있고, 또 휴전 작전도 있고, 쉬면서 전쟁을  하는 것도 있고, 또 뒤로 후퇴하는 작전하는 것이나, 속에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어라' 속에 마음에서 강해 가지고 있어야지 껍데기 그게 아니라.

 만일 그러면, 그럴 때는 한 주일을 그래 쌓아니까 한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한  주일을 지키지 않는 그 사람이 지키지 않으면 그 남편을 사랑하는 것입니까, 안  사랑하는 것입니까? 안 사랑하는 것이지. 남편을 안 사랑하는 것인데 그 날  주일날 예배당에 오지 못했는데 예배당에 오지 못했으면 그 사람 지킨 것입니까  안 지킨 것입니까? 몰라요. 안 지켰는지 지켰는지 모른다 그 말이오.

 이제 고걸 말하려고 해. 안 지켰는지 지켰는지 몰라. 그 사람은 예배당은 안  왔는데 예배당에 온 거 몇 십 배 주일을 지킬 수 있어. 거기서 몇 배 주일 지킬  수 있어. 그 날 예배당 못 가구로 하니까 그만 그 날은 딱 들어앉아 가지고서  그저 미친 사람 모양으로 다른 거 뭐라 해야 찝어도 찝은 줄도 모르고 이래  가지고 주님만 생각하며 '오늘 주님이 나 위해서 죽으시고 나 위해서 부활하셔서  나에게 생명 주신 날인데 내가 여기에서 끌려서 가지를 못 하고 있으니까  주님이' 자꾸 주님을 찾아서 주님이 보실 때에 주일에 와 가지고 덜렁덜렁 하는  것보다도 오히려 그 날 주심을 밀접하게 영접하고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주님을 사랑하고 이렇게 주님이 만족한 주일을 지킬 수 있다 그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외부까지 하면 좋지마는, 속에 내용에서 껍데기까지 하면 좋지마는 작전상 어떨  때는 껍데기를 못 해도 속에 알맹이가 더 강하면 그것이 마지막에는 이기고야  만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보는 것은 신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본다.' 이랬습니다. 그 중심에서 주일을 지키나 안 지키나. 이러니까,  이런 작전상 이런 방편 저런 방편이 있는데 우리는 그런 모든 방편을 알아  가지고 어쨌든지 내가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러면, 고깃덩어리 안 지키니까 그  마음으로 강하게 지키고 정성으로 지키고 신경으로 지키고 그 날 모든 생활로  지켰다 그 말이오. 그러면 그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면 그 남편이 이제 그 계명지키는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계명  지키는 자에게 같이 해 주시니까, 성령과 진리와 피의 능력이 같이 하니까 그  사람이 그 날 주일을 안 지킴으로써 남편이 교회 나올 수가 있다 말이요.

알겠습니까? 주일을 안 지켰는데, 주일을 범했는데 나옵니까? 주일을 잘 지켜서  나옵니까? 잘 지켜서 나온다 그 말이오.

 입으로 '예수 믿으시오' 하는 그것 가지고는 감화를 안 받아도 그 아내의  두려움을 보고서 그 남편이 회개한다. 그 남편이 또 모두가 다 깨끗해짐을  인해서 그 남편 이 회개를 한다. 두렵기는, 무슨 두려움을 봐서 남편 이  회개합니까? 그것 알아보시오. 남편을 두려워하니까 남편을 두려워서 뻘뻘 떨고  그 날 주일 가지 말라 해서 안 가니까 그래 남편이 회개합니까? 그 두려움이  누구를 두려워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지옥 갈 것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두려워하고, 보니까 사생결단 해 가지고 새파라이 질려 가지고  이런 거 보니까 '아, 그 보니까 하나님이 계시는가 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구나. 무궁세계가 있구나.' 이래 가지고서 '그 두려움을 보고 그 남편이  회개한다.' 그 말씀이 베드로 몇 장에 있습니까? 3장에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에.

 그래서 어쨌든지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요.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 사랑으로 형제  사랑으로 계명 지켜야 계명 지키는 것이 바로 된다 그거요. 이거 다 삼각이나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니로라' '그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니로라'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계명은 진리요,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진리는  독자적 권위를 가진 존재요, 인격 존재는 아니지마는 인격은 아니면서 독자적인  권위를 가진 그런 아주 전능의 권위를 가진 진리입니다.

 그 진리가 처음에 무슨 일을 했는고 하니 그 진리가 없는 가운데서 우주 와  모든 만물을 창조하는 시공자입니다. 시공자, 인격자는 아닌데 시공의 존재요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시공하기를 이 진리가 시공했습니다. 진리가 시공했어.

 그러면, 진리가 시공하도록 진리에게 명령은 누가 했습니까? 진리에게 명령은  누가 했소? 진리에게 명령은 그리스도가 했소. 하나님의 말씀이 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뭐인가? 하나님 당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그 당신의 능력이 역사했다 말이오.

 그러면, 이 모든 창조한 것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거입니다. 증거물입니다.

예수님이 대속한 것도 '하나님은 이런 분이라' 이래서, 영광의 찬미가 되게 한다  말은 우리를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걸 알겠다.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 그 본체와  그 자체를 바로 드러내는, 하나님은 모든 만물들이 찬송하고 찬양하고 그에게  존대를 돌릴 수 있는 이게 되는데,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고, 또 우리를 만들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라는 것은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 분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은 그것을 봐서  알 수가 있다 말이오.

 요새도 고고학에서 옛날에 있는 모든 땅속에 파묻혀 있는 그런 것을 발굴해  가지고서, 발굴해 가지고 보고 '아, 그때 문화가 이런 정도다, 인간의 지능  발달이 이런 정도다. 그때의 사상이 이런 정도다. 모든 사람들의 감정이 이런  정도다.' 거기에서 그걸 가지고서 그때 시대의 사람들을 지금 추론 연구한다 그  말이오.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라'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큰 자가 작은 자  덕봅니까 작은 자가 큰 자 덕봅니까? 병든 자가 성한 자 덕봅니까 성한 자가  병든 자 덕봅니까? 네. 또 지음을 받은 것이 지은 자를 덕을 보입니까 지은 자가  지음을 받은 자를 덕을 보입니까? 그 말이오.

 무거운 짐이 아니라 말은 그분의 덕을 보지 그분에게 무슨 부담, 그분에게,  덕을 보이는 게 아니라 그분의 덕을 보는 것이지 그분 때문에 내가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무거운 짐이 아니라 말은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가  우리말로 지킨다 이래 말하는데 실은 하나님의 계명을 모신다 이러면 더  정확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모신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계명의 은덕 아래에  있다, 은덕 은택 아래에 있다. 그러면, 계명을 지키는 것은 그분의 은택  아래에서 그분의 은택을 지금 입는 것이지 그분을 위해서 무슨 우리가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이 계명 지키는 것은 내가 계명 때문에 수고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계명의 덕을  본다 그 말이오. 내가 계명으로 인해서 내가 괴로움 받는 것이 아니고 계명으로  인해서 내가 덕을 본다, 계명이 나 때문에 수고하고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지, 내가 계명을 덕을 보이고 돕는 것이 아니라 계명이 나를 돕는 것이라.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계명은 내가 계명을 돕는 것이 아니라 계명이 나를  돕고 있다, 계명의 도움을 입는 것이다 그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무거운  짐이 아니로라'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모시고, 떠나지만 안하면 떠나지만 안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했기 때문에 창조주는 창조주는  얼마나 위에 계시요. 창조주는, 창조한 자는 위에 있고 지음을 받은 거는 이  밑에 있지 않습니까? 모두 다 지음을 받은 이것들이라. 지음을 받은 이것들인데  지으신 이분과 더불어 한 덩어리 돼 가지고 있으니까 이것들의 주인공이라  말이오. 이것들의 주인공이요 이것들의 통치권이지 그들과 수준이 같은 수준이  아니라 그거요. 믿습니까! 이 말을 알아들어 믿어요?  이러니까, 계명들을 자꾸 지킨다, 지킨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말로  알아듣게 하기 위해서 자꾸 말한다 그 말이오. 그래서 '무거운 짐이 아니로라'  하는 것은 위에서 지킨다, 지킨다 말하는 것을 이제 다시 바로 설명 해  가지고서, 계명의 덕을 보지, 계명을 우리가 지키느라고 우리가 애쓰는 것이  아니라 제명의 혜택을 입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모든 원수를  다 물리치고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모든 건설을 다 그 진리가 들어서 건설해  주어서 건설해 줌을 받는다. 그러기 때문에, 계명 지키는 젓은 계명의 은택을  입는 것이지 계명으로 인해서 내가 손해 보거나 수고하거나 은택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은택이 나를 위함이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은택이 나를 위함이 되는데, 나를 위함이 되는데 궁극적으로는 그  은택이 와 나를 위하는가? 은택 자체를 위해서 나를 위합니다. 그라기 때문에,  그 위함이 나를 위함이 아니고 그 자체를 위해서 위함이 되기 때문에, 그러면,  그 은택이 나를 위하면 그 은택은 뿌럭지가 누군가? 하나님이시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합니까 궁극적으로 어찌 됩니까?  당신을 위해서 나를 위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변동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대저라는 말은 세상을 이기되  세상을 이기는 것이 다 꼭 일률적이 아니고 이기는 것이 다 양과 질이 다르다,  양과 질이 다르다. 양과 질이 다른데 어떤 질은 좀 높고 어떤 질은 낮고 어떤  양은 많고 어떤 양은 적은데, 이거 차이가 있다. 차이가 있으나 그 전부는 다  세상을 이긴다. 이기나 이김의 그 차이가 있다 하는 그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대저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그러면, 이기되 한 고을을  이긴 사람은 한 고을을 점령하고 열 고을을 이긴 사람은 열 고을을 점령하고.

또, 이거 다 등급이 있어요. 그러니까, '하늘에 가면은 계급이 없다, 제급이  있으면 싸우는데, 세상은 계급이 있어 싸우는데 하늘에는 계급이 없다' 그  모르는 말입니다. 하늘에는 철두철미한 계급이 있습니다. 영원 불변적인 계급이  있습니다.

 영원 불변적인 계급이 있는데 왜 거기는 싸움이 없습니까? 왜 싸움이 없지요?  계급이 있는데, 제급이 있으면 싸움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그 말을 담대히  말하는 사람 있었어. 설교하면서 '아, 계급이 있으면, 계급이 있으면 싸움이  없을 리가 있나? 싸움 없을 리가 있느냐? 계급이 있으면 하늘나라에는 분쟁이  있다 말이다. 하늘나라에는 시비가 있다 말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하늘나라에  계급이 없다는 말을 아주 담대히 말하고 '제급이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잘못이다' 이단같이 정죄한다 말이오. 그런데, 아직까지 그분은 그 면에 눈이  띄이지 안해서 그래요.

 계급이 있는데 왜 싸움이 없습니까? 예? 계급이 있는데 왜 싸움이 없어? 예?  공의가 있기 때문에? 공의가 있다고 싸움이 없을까? 광명이 있기 때문에, 광명이  있기 때문에, 환하게 보니까, 제 코가, 제 코가 없는데 말이요 제 코가 없는데  '와 나 코 없다 하노, 코 없다 하노?' 제 코 없는 것을 제가 보니까 다른 사람이  코 없다고 말을 하는 것을 그렇게 뭐 이의를 달수가 없다 말이오.

 제가 절음발이인데 절음발이 대우하는 것을, '성한 사람 대우해 줄 터이니까  성한 사람으로 걸어와라' '걷겠다.' 이래 쌓지마는 내나 또 걸으니까 또  절름발이라 그 말이오. 절름발이인 것을 다 아니까 절름발이는 절름발이라. 자기  진상대로. 자기 진상대로 자기 행위대로 나타나는 것이 환하게 보여지니까  거기에서는 분쟁이 없어요.

 제 정체대로 다 알아진 공의대로 이제 말한 대로 됐으니까 무슨 이의가  있겠습니까? 이 세상은 그걸 모른다 말이오. 그게 없기 때문에, 똥이  금덩이라고도 금덩이가 똥덩이라고 매장을 시키면 매장도 돼지고, 이러니까,  어둡기 때문에 이런 시비가 있는 것이지 어둡지 않으면 이런 시비가 있을 수  없소.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서 모든 거 시비 있는 것을 어디 가 가립니까? 시비 있는  거 어디가 가리지요? 예? 어데? 재판소, 재판소 가서 가리요. 시비는 재판소  가는데, 재판소는 인간들이 세워 놓은 법이 있으니까, 광명이 있으니까 거기  가면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너는 이렇고, 이렇고 이랬으니 생각해 봐 이렇고  이러니까 이것은 요렇게, 요렇게 잘못됐다' 하는, 잘못되고 잘된 것을 판명해서  알려주니까 그 사람이 암만 이제 섭섭하지마는 어찌 할 수 없어 '나는 정죄를  받아야 된다. 나는 사형을 받아야 된다.' 이제 인식을 시키고 사형을 시킵니다.

 그러기 때문에, 재판소에서는 판단하는 명판사는, 명판사는 그 사람이 억울하다  소리를 안하고 그 사람이 나중에 가서 '나는 지당합니다. 나는 이렇게 선고를  받는 것이 지당합니다.' 그 사람이 환하게 이해하고 억울하다 소리 아니하고  억울한 죽음이나 억울한 형벌이나 받지 않도록 하는 그것이 판사의 권위입니다.

그게 판사의 권위요.

 세상에서도 거기에 좀 빛이 있기 때문에 모든 시비는 거기 가서 가리는데,  하늘나라는 환하게 다 알아요. 환하게 광명해서 어두운 게 없기 때문에 뭐  시비할 것이 있어야지, 뭐? 다 지당하다고 말하지요. 그러니까 계급은 있어도  시비는 없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많이 이기든지 적게  이기든지 다 이기기는 이깁니다. 많이 이기든지 적게 이기든지 세상을 이기기는  이기는데 일률적이 아니라 대체적으로는 다 이깁니다.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세상을 이김이라 말은 마귀를 이기고 죄악을 이긴 고 사망을 이기고 이 모든  거짓 된 것을 다 이기는 것이라 말이오. 죄는 거짓된 것이 죄입니다. 사망이라는  것은 거짓된 값으로 사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짓된 그것이 사망을 시킬  수 없어요. 사망시킬 수 없습니다. 거짓된 것이 사망시킬 수 없는데 거짓된 것  배후에는 뭐이 있어요? 거짓된 거 배후에는 뭐이 있어요? 예? 거짓된 거  배후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어요.

 하나님의 율법이 있기 때문에 그 거짓된 것을 '자, 이렇고, 이렇고 거짓 된 것  어찌해야 됩니까?' 하니까 율법이 있다가서 '정죄를 해라.' 하나님이 죽이는  것이라 말이오. 하나님이 벌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죄가 인간을 멸하게  하는 것은 누구의 힘으로 멸하느냐? 하나님의 힘으로 멸하십니다. 하나님이  멸하시기 때문에 그걸 면할 수가 없어요. 죄의 권세는 율법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율법이 세력이 있어요. 법이라 하는  것은 권세가 없으면 그 법은 죽은 것입니다. 법은 아무리, 무슨 선한 법을  아무리 해 놔도 권세가 뒤따르지 안하면 법은 죽은 법이오.

 자 법학교수 저 좀 대답해 봐. 법의 권세가, 법에 대해서 권세가 뒤 따르지  않으면 그 법이 죽었소? 살았소? 저 우리 법학 교수라. 법학 교수인데 요새 법학  박사 달라고서 이라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거 못 해도 어쨌든지 중간반 공부를  시켜라 내가 이래 놔서 공부시키고 난 다음에는 좀 힘이 드는 모양이라.

 이번에 가 가지고는 공부시켜야 된다. 이래 맡겨 놨더니마는 그라고 난  다음에는 눈이 빠끔하게 들어가. 아마 박사 학위 준비보다도 더 힘이 드는  모양이라. 요새 어느 거 가르치요 여반, 남반? 여반, 내가 여반 하라 했어.

이러니까 잘 가르칠 거라. 잘 안 가르치거든, 잘 안 가르치거든 들어 누워  버려요. 잘 안 가르치거든 눕기도 하고 장난도 하고 얘기도 한고, 그까짓 놈의  듣기도 싫은 거 잘 가르치지도 안하는 거, 그만 잘 가르치거든 어쩌든지  들어붙어요. 잘 가르치면 무릎을 꿇고 이렇게 하면서 은혜를 받고 이래요. 어제  가르쳤지요? 잘못 가르치거든,  여기에서도 말이요, 내가 잘 못 가르치거든 여러분들 '아, 아, 지루하다.'  드러눕기도 하고 이래 해 버려요, 고만. 그라면 강사가 녹아나. 강사가  녹아나요. 잘 가르치면 막 이래 가지고 정성을 쓰고 기도하고 이래 가지고  성의를 기울여서 은혜를 받아야 되고요, 그거 좋은 거 어제 배웠는데 그거 꼭  그래 하십시오  그래 교인들이 교역자에 대해서 뭘 할라 했어요? 교인들이 교역자를 위해서 할  것이 뭐이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건강을 꼭 책임질 것 또 하나님이 책임지지만  사람이 책임질 것이 있다 그거요. 그라면 '건강 하나님이 책임지지 뭐 사람이  책임지나?' 그런 엉뚱스럽게 하는 그런 망령된 사람들이 있는데 사람이 질 걸  지라. 그 말이오. 또 하나는 기도해야 돼. 위해서 기도하고,  그래 가지고서 요구할 것을 뭐 요구해요? 은혜를 요구해요. 그러면 은혜가 되면  어쩌지요? 눈이라도 빼 주고 천사같이 대접을 해요. 막 아래 하고 이라다가서 또  은혜가 안 되면 어째요? 배고파 죽겠다고 막 둘둘 구불러요. 이래 가지고 안  되겠다고. 그냥 '뭐 대접도 못 하는데 은혜 그것도 감사하지' 그럴 게 아니야.

힘대로 대접하면 하나님이 주시기를 고만큼밖에 안주셨으니까 자기 힘대로  대접했으면 자기 할 일 다 했어. 대접하고 은혜 없으면 또 할 거 다하고 요구할  거 또 요구하라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자꾸 올라가요.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무엇이 세상을 이기는가,  마귀를 뭣이 이기는가, 죄를 뭣이 이기는가 사망을 뭣이 이기는가 뭣이 이런  것들을 이기는가?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의  믿음이라 말은 하나님이 신구약 성경 말씀에 처음에는 구약에서 예언을 해 놨고,  미리 이렇다 이렇다 예언을 해 놨고 또 신약에서는 이랬다 이랬다 그것을 과거를  증거하고, 그러면, 구약은 미래에 있는 예수님을 예언해 놨고, 신약은 이미  있으신 예수님을 후에 증거하는 것이 신약입나다. 간추려서 말하면 그렇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다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믿음은 뭐이냐? 이 신구약 성경에서 증거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그  뜻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예정, 창조, 보존, 섭리,  또 대속. 하나님의 목적에 우리가 다 예택이 거기 들었어요. 목적 안에 든 것이  예택이오.

 이래 가지고 섭리하니까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눈에  보이는 것은 누가 지었어요? 주님이 지었어요. 태초의 말씀이신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라. 이 말씀이 모든 것을 다 창조했는데, 이 지으심을 받은 것이 이  말씀 아니고는 지음 받은 것이 없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이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는 이것이 있어야  된다 말이오. 인정하는 이것, 요 믿음은 인정하는 믿음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하나님의 경영에 대해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서, 하나님의 모든 섭리에 대해서, 하나님의 관리에 대해서 이  하나님의 모든 하나님께 대한 것을 성경에 말했는데 요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고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이렇게, 이렇게 소망을 주셔서 이렇게 소망을  말씀했는데 그 소망을 우리가 인정하고, 또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 하는 요  세 가지만 인정하고 고대로 하는 사람은 세상을 다 이겨 버려요.

 그런고로 세상이기는 것은 뭐 제 각오나 결심이나 그런 거 가지고 안 됩니다.

이러니까 인정 믿음, 인정 믿음, 또 둘째로는 뭐? 소망 믿음, 또 셋째로는 뭐?  실행 믿음. 이거면 세상을 다 이겨 버려요.

 이러니까, 이걸 알고 보니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런 저런 시험이 다 자꾸  닥쳐오니까 그걸 다른 사람이 말하기를 '이것이 주님의 사랑의 태속에서 내가  자라고 있다. 사랑의 태속에서 자라고 있다. 이 시험이 오니까, 이 시험이 오니  주님의 이 요소가. 이 시험을 통해서 내게 들어와서 내가 된다. 또 저 어려운  시험이 오니까 이 시험을 통해서 주님의 요소가, 주님의 피와 살이 내게 들어와  가지고서 내가 된다.'  이러니까, 주님의 사랑의 태속에 내가 지금 들어 있으니까 이 태에서 하나만  오면 안 되니까 여러 가지 시험이 오는 것은, 여러 가지 시험이 오는 것은  주님의 여러 가지 요소가 내게 오는 것이요 그로 말미암아 내가 장성하고 내가  온전케 되어진다. 이래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믿음을 연단하는 것이요, 믿음은 인내를 만들어 내는 것인데 인내의  온전함을 이루라 온전한 인내는 너희로 하여금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이러니까, 이거 사랑의 주님의 태줄에서 우리에게 그 모든 주님의 요소가  오니까 주님과 꼭 같은 자가 만들어진다, 주님과 꼭 같은 자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하신 것이라. 이러니까, 이러면 그만 되는데,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지  안하고 마귀 지식이 오니까 혼란되고 복잡해지고 자꾸 그렇다 그 말이오.

 어제 말했는데, 자꾸 뭐, 우리 마음과 몸은 뭐이라고요? 뭐이라고요 어제  우리의 마음과 몸은 뭐이라고 배웠어요? 무색이라 하는 것 몰라요? 무색,  색깔이었어요. 색깔이 없고, 그만 우리 마음과 몸은 여러분들이 모르거들랑  갓난아이와 같이 생각하면 돼 우리의 마음은 갓난아이의 마음이나 우리 마음이니  꼭 같은 마음입니다. 좀 약하고 어리고 장성하고만 다르지 꼭 같애.

 꼭 같은데, 그 어린아이에게는 뭐만 있습니까? 먹고살라고 하는 생의  본능밖에는 없어. 그 외 아무것도 없어. 없는데, 밖에서 물을 들여요. 물은 무슨  물을 들여요? 물을 들이는 것이 악령의 물을 들이고 악성의 물을 들이고 자꾸 이  나쁜 물을 들여 가지고 완전히 마귀 모양으로 물을 들여요. 마귀가 꼭 같아요.

안 믿는 사람은 마귀나 그거나 꼭 같아요. 뭐 마귀는 못 보거든. 안 믿는 사람은  보고. 안 믿는 사람 보거든 마귀가 그렇다는 것을 알면 돼요. 마귀가 그 마귀의  물을 들여놨기 때문에 꼭 마귀와 같다 말이오.

 이런데,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이제 이 마귀의 물을 다 탈색시키는 거라. 다  탈색을 시키고 이제 하나님의 물을 들이려 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물 하나님의  형상을 들여서 하나님의 형상같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한다 그 말이오.

 물을 들이는데 물을 탈색하는 그 법이 뭐입니까? 탈색하는 것이. 뭐이요? 시편  1편에 잘 말해 놨어요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다 자꾸 여호와의  율법을 자꾸 즐거워하고 묵상하니까 자꾸 이 마귀 탈색이 됩니다. 마귀 탈색. 죄  탈색, 사망 탈색이 자꾸 돼지고. 이제 여호와의 율법에는 껍데기는 율법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지마는 속의 알맹이는 뭐입니까? 예? 껍데기는 말씀이고 속  알맹이는 뭐이요? 영감, 영감 속에는 뭐이 들었소? 하나님, 네.

 이러니까 자꾸 그 물을 들인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 그 물 딱 들여서 아주 물을  잘 들여 놓고 보니까 그 물들인 것이 누구와 같습니까? 하나님과 꼭 같다  말이오. 그래서 하나님의 모형이라 하나님의 형상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자꾸 이걸 열심히 탈색해야 되겠고 우리가 또 새로 감화를  받아가지고 성화돼야 되겠어. 감염해야 돼. 자꾸 감염해야 되고 감염해야 되고  능력에는 피동되고 이러니까 자꾸 이같이 거기에다 물드는 것이라 말이오.

 그라는데에는 우리에게 셋이 있다. 이 물들이는 물들이는 역사가 셋이  있었는데, 그 셋은 하나인데, 뭣 뭣이 들어서 이렇게 물을 나쁜 물을 탈색을  시키고 우리가 하나님 물을 들여서 하나님과 꼭 같이 만듭니까? 물드는 역사가  서이 있는데, 서이가 있는데 뭣 뭣입니까? 성령님과 진리와 주의 피공로요.

피공로인데, 우리에게 제일 먼저 와서 역사하는 것이 뭐입니까? 피공로가 먼저  와서 역사합니다.

 피공로가 먼저 와서 역사를 하요. 피공로가 와서 역사를 하고 그 다음에는  진리가 와서 역사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이 배후에서 역사를 합니다. 왜?  피공로가 아니면 우리가 근방에 가지를 못해. 오지도 못해. 피공로 아니면 이  역사가 우리에게 오지 못해. 이 피공로를 힘입어서 역사가 와요. 피공로가  아니면 우리에게 오지 못하고 우리와는 떨어져 이 피공로가 푹 이래 싸고,  피공로가 어머니 태 모양으로 피공로가 우리를 푹 싸고 있을 때에 그때 그 속에  진리가 들어와서 역사하시고 성령이 들어와서 역사하시고 우리를 완전히  탈색하고 완전히 새로 성화를 시켜 버립니다.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이제 믿음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이 계시, 신구약 성경은 특별계시입니다. 특별 계시인데, 나타난 이 계시를  인정하는 것은, 이 계시를 참되다 인정하는 것은 계시 문서를 인정합니까? 그  열어 보이는 계시를 인정하는 것은 안에 계시 속에 들어 있는 것을 인정한다  말입니까 계시를 인정한다는 말입니까? 계시를 인정 하므로 계시 안에 든 것을  인정한다 말이오.

 여기 궤짝이 하나 있는데 궤짝을 환하게 열어 보입니다. 환하게 열어 보이니까  열어 보이는 걸 본다 말이오. 열어 보이는 여는 궤짝 문여는, 문여는 그것만  봅니까 문을 열어 주는데 열어 주는 것을 통해서 그안에 뭐 있는 걸 봅니까?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성경 속 안에 '뭐이 들었노?' 신구약 성경 신구약 성경이  보여 주는 것을 우리가 본다 그 말이오. 보여 주는데 그 안에 뭐이 보이느냐? 그  안에 보이는 거는 영감이 보이고 또 영감을 헤치고 보니까 이제 하나님이  보이신다 말이오. 하나님이 보이시요. 보이시니까 그분의 모든 것이 다 우리에게  보여진다 그거요.

 이것을, 여기에 속해서 이 순서 이 방편으로 들어가는 그자가 세상을 이 긴다  이것 가지고 세상을 이깁니다. 딴거로는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이 권위적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지 못해. 대속의 공로를  입을 때에 세상을 내가 이겼고, 대속을 벗을 때에 나는 세상의 종이 되고,  벗으면 금방 마귀 자식되고 입으면 금방 하나님의 자녀 되고,  이러니까, 꼭 같은 한자리에 앉았지마는, 한자리에 앉았지마는 예수님께서 낫아  주실 것을 믿는 자에게는 낫고 안 믿는 자에게는 안 낫고, 그 무슨 표가  있습니까? 믿으면 권능이 역사하고 안 믿으면 권능이 역사하지 않고 그래 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번에도 우리 권사님들도 그렇고 집사님들 권찰님들, 저  ○○○집사님은 건강한데 ○○○집사님도 그래 기도해요.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데 벌써 깨닫자 늙어서 다 죽어간다 그  말이오. 깨닫자 늙어서 다 죽어가니까 참 원통해.

 내가 지금 깨달음과 지금 한 삼십대 청년만 됐으면 뭐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실컷 좀 하겠다. 이러면 고만 밤이고 낮이고 돌아다니며 자꾸  외치면 휘뜩 뒤비지겠는데 이 힘이 없다 그 말이오.

 이래서, 나 같은 사람 이런 사람들 모두 '하나님이여 나에게 건강을 주  시옵소서. 이제는 깨달았으니까 내게 진리를 깨닫는 믿음은 있는데 믿음을  수종들 고깃덩어리의 힘이 없으니까 힘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힘 주시면 힘 다  가지고서 이제 주님께 수종들겠습니다. 만일 안 그러거들랑 나를 배나 병을  주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해 봐. 자, 그렇게 기도할 사람 손들어 봐. 놓읍시다.

 겁이 나 가지고 '만일 그랬다가 배나 되면 어짤고' 하면 벌써 욕심쟁이기  때문에 안 된다 그 말이오. '배 아니라. 삼 배 아니라 사 배라도 주십시소?  어쩌든지 그래 놓고 또 조건 하나 붙여 놔요. '그래도 내가 회개하거든 다시  회복시켜 주옵소서' 그래 해 놔요. 안해 놓으면 큰 일 나.

 주님은 참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회개하거든 용서해 주라' 주님은  자비의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꾸 건설적으로 나가야 돼요.

건설적으로 나가야 되지 파괴하면 안돼요.

 그래 기도해서 다 이번에 고침 받고 건강 얻어 가지고 가고, 또 저 아직 까지  예수를 안 믿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주를 위해서 죽고 싶지 안하고 주를  위해서 살고 싶지 안하는 그런 사람은 기도를 그렇게 해요. 자기는 이제 '나는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전하나 아직 믿어지지도 안합니다. 그런데 당신이 내게  대해서 뭐 손을 대시고 나를 간섭하시고 나를 붙드시고 역사하는지 나를 당신이  계신 것도 내가 안 믿는데 당신이 내게 대해서 무슨 관계를 가지시는지 나를  버리는지 내가 그걸 모르겠습니다.'  '이러니까 당신이 내 관계를 가지시거든 나의 이 병을 낫게 해 주시옵소서' 아  아무것도 없는데 낫게 해 주시는 거는 만유주 대주재가 낫게 해 주셨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한 거와 다르다 말이오. 병원에서 치료한 것은 사람이 치료하고  돈이 치료했지마는 내가 같은 병이라도 그거 하지 안하고 치료한 것은 만유의  대주재가 날 치료해 주셨거든. 만유의 대주재가 치료해 주셨으니까, 자, 치료해  주셨으니까 치료해 주신 것이 큽니까? 만유의 대주재가 내게 와 가지고 역사한  것이 큽니까? 어느 것이 큽니까?  내게 까시가 하나 들었습니다. 까시가 하나 들었는데, 이 까시가 들었는데 이  까시를 대통령이 이 까시 빼 준다고서 서울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서울서  여기까지 와 가지고서 까시를 뺐습니다. 가시 뺀 것이 큰 것입니까? 대통령이  서울서 여기까지 와 가지고서 내 까시를 뺏으니까 그 배경이 큰 것입니까?  이러니까 그분이 내게 까시 들었다고 서울서 여기까지 왔으니까 와 가지고  가시를 뺐으면 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있다가 '아이구야 저런  대통령이 그 사람 가시 들었다고 가시 빼 주러 이 거창까지 왔다네. 와서 빼  주고 그래 갔네' 그라면 배경이 크요 적소?  그러면 그 효력을, 배경의 권세가 크니까 그만큼 권세가 있는 자라, 권세 있는  자. 그러니까 그런 권세를 활용하라 그 말이오. 그런 권세를 활용해요.

이러니까, '아이구, 대통령이 나한테 와서 가시까지 빼 주러 오셨으니까 아이구  뭐 여기까지 왔습니까?' '아, 네가 가시 들었는데 내가 빼 주지 어찌하노? 가시  안 빼 줄 수가 있나?' '그라면 뭐이든지 제가 뭐 말하면 들으시겠습니까?' '아,  말하면 듣기로 듣고 말고. 네가 뭐이든지 말하면 내가 그만 네 말 다 듣지.'  자부하는 담력이 생겼다 말이오.

 '우리 면에는 이런 아주 부정한 나쁜 일이 있는데 나 같은 것이 말해 봤자  했는데 나도 말할 수 있구나' 이래 가지고서 전화를 딱 걸어 가지고서 '아 나는  대통령이 와 가지고서 가시 빼 준 아무것이 입니다. 아무것인데, 우리 면에 이런  나쁜 사건이 있는데 이거 좀 어짤랍니까?' '아, 그래? 얼른가 내가 처리하지.'  그러면 대번 뭐 도청으로 군청으로 그만 쫙 연결이 와 가지고서 '그런 일 있다  한다. 어떻게 처리해라' 이래 놓으니까, 자, 면에서 권위가 있소 없소? 예?  군에서 권위가 있소 없소? 그라면 그 사람 멸시하겠소 모든 사람이 이래 하겠소?  이래 할 수 있지.

 이보다 더 큰 권위를 세상에 알아주든지 못 알아주든지 우리는 큰 권위를  가졌는데 우리가 도무지 여기 대해서 우리가 부인하기 때문에 이 참 굶어 뒈지는  백만장자라 굶어 뒈지는 백만장자. 이거 참 병신이라.

 이래서, 이번에는 지극히 크신 창조주, 대주재, 아무거나 당신이 짓지 낟은  것이 없소. 그분이,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시요, 이 모든 거는 우리가 기업을  받을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인데, 예수님이 후사 된 거와 꼭 같이, 같이 후사된다  했어요. 예수님과 같이 후사된다고 했어요.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것을 다  상속받았으니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늘과 땅의 것을 상속받을 우리인데 요거  믿을 때에. 믿을 때에 능력이 와요. 믿을 때에 이 실력이 오고 믿을 때에 이  권위가 와요.

 인정하는 여기에서, 인정하는 그것이 뭐이냐? 이것이 마귀에게 있던 것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에 근본으로 돌아가는 고로 하나님과 연결이  됐기 때문에, 근본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아담에게 네가 이러이러하니까 다  진거와 마찬가지라 그거요. 우리는 믿을 때 권위가 있지 안 믿으면 권위가  없습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 '믿음이니라' 요 믿음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있는 지극히 큰 능력'  '말세에 또 예비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와요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 와요.

 지극히 큰 능력이 지극히 큰 능력, 지극히 큰 능력이라 말은 하나만 되는 능력  모든 창조의 능력, 예정의 능력, 모든 관리 섭리의 능력, 자존자의 능력 그  능력인데, 그것이 지극히 큰 능력인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 죽으시고 대신  살아나신 이 사활을, 그 사활을 어느 능력이 사활했습니까? 예수님이 했습니까  이 능력이 와 가지고 했습니까? 이 능력이 와 가지고 예수님이 사활했다 말이오.

예수님, 이 능력이 와서 했어요. 이 능력이 와서 했다고 에베소서 1장에 똑똑히  말해 놓았다 말이오.

 이 능력이 왔는데, 이 능력을 끌어오기를 예수님께서 뭘로 끌어 오셨지요? 이  능력을 예수님이 뭘로 끌어왔어? ○○○목사님. 죽으심으로 끌어왔어? 자 그거  점수 매겨 보십시오. 점수 누가 매겨 봐. 겁이 나 못 매기나요? ○○○목사님  한번 매겨 봐. 백 점인가 빵 점인가 구십 점인가? 예? 뭐이요? 와? 못 매겨?  ○○○목사님 매겨 봐. 몇 점이나 됩니까? 예? 잘 모르겠어? 육덩이를 벗어.

육덩이 안 벗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못 가요. 헛일이오. 못 간다 말은 기본구원  못 가는 것이 아니라 건설 구원은 없어. 헛일이야. 허 이거 참 ○○○목사님,  고만 저 몇 점이나 되느냐 말이오. 저 점수 매기라 하는데. 예? 점수를 매겨요.

담대히 매겨요. 인본주의 갖지 말고. 빵점, 영점, 영점이요, 영점. 빵점이라.

영점이라 자 따라해요. 영점! 영점! 영점! 예수님이 믿음으로 그 능력 받았지  믿음이 아니면 안돼.

 '믿음으로 온전케 하시는 이신 예수를 바라보라' 예수님은 믿음 가지고  성공했어요. 뭐 십자가는, 십자가 질 수가 있는가? 믿음으로 졌지. 믿으니까 그  능력이 와 가지고서 예수님을 죽게 하시고 부활하시게 했다 말이오. 에베소서  1장에 있지 않아요?  이랬는데, 왜? 내가 있으며 알아요. ○○○목사님은 지금 이 도를 받지 안하고  여기 앉아서 어만 거 생각해요. 그러니까 요것도 생각, 요래도 비교해 '보고  저래도 비교해 보고, 자꾸 이거 따라오지 안하고 자기 딴에는 지금 딴 세계를  생각하고 있어. 이래 가지고 '요거 요러니까 요래 요라면 요래 이의를 달면  되겠나 조래 이의를 달면 되겠나, 요래 반박하면 되겠나 조래 반박하면 되겠나,  여기에 요러나 조러나. 자꾸 지금 그거 복잡하다 말이오. 복잡하게 생각하는데  복잡한 생각이 안면에 나타나고 있어요.

 그리 말고, 그거는 뒤에라도 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는 우선 똑똑히 배워 놔야  되지 뭐 배우기도 잘못 배워 놓고서 나중에 그렇게 하는 날이면, 꺼꾸로, 콩을  말했는데 팥을 말한 줄 알았으면 제목이 틀리니까 다 틀리지 안해요? 연구  제목이 틀리지 안해요? 똑똑히 받아야지.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 믿음이, 여러분들 원어 가지고서 떠들어 쌓지 말아요.

원어는 미개어입니다. 미개어. 자, 원어 뭐이든지 가져와 봐요. 한국말로 번역한  것만 해도 다 알 수가 있어. 공연히 원어에 이렇고 저렇고 하는 거. 원어는  그거는 옛날 미개어 야만어입니다. 미개어요 야만어요.

 그 원어는 예를 들면 한 가지를 만일 사람이, 예를 들어 비유컨대 문열라  하면은 '문' 하나뿐이오. 지금은 그 뒤에는, '문' 할 때 그때 말이라 그 말이오.

지금 말은 문을 조금 빨쫌하게 열어라. 또 많이 열어라. 그 저 또 문을 뽈끈  닫아라, '문' 하지마는 그 문에 대해서, 그때는 닫아라 말도 문. 열어라 말도  문, 다 열라 말도 문. 조그매 열라 말도 문 한 가지밖에는 없었는데, 그러니까,  그 듣는 사람이 많이 열라 적게 열라 제 해석하기에 달렸다. 말이오 그 원어의  해석자가 그렇다 그 말이오. 이걸 알아요. 원어자들이 뭐이냐 하면은 그 지식  가지고 교만해서 그거 가지고 공연히 과장해 가지고 지금 자기 시험에 빠져  가지고 마는 것이라.

 여기 있어요. 어떤, ○○○집사님 어디 있어? ○○○집사님 어디 있어요?  손들어 봐. 어데? 저게 있어. 저 집에 가서 초대를 했어요. 초대를 했는데. 어떤  사람 그 참 지금 박사래요. 박사인데, 그분하고 나하고 초대를 했는데, 얘기를  하다가서 떡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참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것이 히브리어  원약 원어인데' 얘기 해 나가다가 자꾸 지금 원어 자랑하는 거라. 이 지식  가지고 자랑하기 때문에 '네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어려운 거와 같이  너는 그 지식을 부인하기가 그렇게 어렵다.' 이 지식이 하나님 대신이라. 그만  지식을 앞세워 간지고 자꾸 이러거든.

 원어에 어쩌고, 또 어떤 사람은 영어 좀 아는 사람은 영어에 영어 한 마디 떡  말해 놓고 또 해석하고 그게 요새 자랑이고, 그게 뭐이냐? 그게 지식 자랑이기  때문에, 네 속에 마귀가 꽉 들어 가지고서 너 높일라 하니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 거는 상관이 없다 그 말이오. 이러니 그걸 몰라.

 떡 말하기를 구약은 아무리 믿는 목사들이라도 원어 모르는 목사들보다 예수 안  믿는 히브리 학자들이 구약에 대해서는 더 잘 안다고서 이렇게 말해. 그래  그거야, 그거면 당장에 한 주먹에 때리면 바싹 깨질 것이 지금 그란다 말이오.

그 말이 틀려. 그 사람이 그라는 것이 아니라 그 주장이 틀렸다 말이오. 그래  내가 있다가 '그래요?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라도 히브리어 학자라면  히브리어로 만든 구약 성경은 믿는 사람보다 더 잘 알면 또 신약도 그럴세요.

헬라어 학자는 안 믿는 학자라도 무신론자라도 신학 헬라어 학자면 신약은 더 잘  알세요? 그러면 한국말을 번역한 것은 한글 학자라면 아무리 그 사람이  무신론이고 예수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한글로 기록해 놓은 번역해 놓은 한글  성경은 그 사람이 믿는 사람보다도 더 잘 알세요?' 이래 나갔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꾸 뻑뻑 우겨요. 자꾸 우겨서, 뭐 히브리어 뭐 어느 박사가 그렇다,  히브리어 박사가 그렇게 한 모양이라. 그 박사도 그 말한 것은 취소를 해야  돼요. 얼마나 어리석어. 내가 고함을 질렀어. 어데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지금. '성령이 와야 안다 했는데 성령 없는 무신론자가 어떻게 성경을 알 수가  있겠느냐? 그러면 인간의 지식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지배를 받는다  말이가? 진리 말씀은 우주 만물을 창조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말씀이다.

인간에게 피동되지 않는다!' 고함을 질렀어. 내가 그 말에 고함을 꽥 질렀어요.

고함을 꽥 질러서 그때 막 푹 수그러져 버렸어.

 그래 가지고 나중에 밥을 먹으면서 이제 무마를 하려고 내가 좀 애를 썼어요.

그래도 그분이 그때 그것 때문에 나를 멸시하지 안해요. 안하고 그 뒤에 나를  존대하고. 지금도 아직 존대를 해요. 존대를 해 가지고서 자기가 신학교 세운  신학교에 이사장으로 이름만 가져 달라고 자꾸 몇 번이나 그래도 나는 자격 없다  하고 안 갔었어.

 그래도 그분이, 그러니까, 그래도 옳은 말인 줄 안다 말이오. '히브리어 박사는  안 믿는 사람이라도 믿는 목사보다, 히브리어 모르는 목사보다 구약은 더 잘  안다 하더라' 하는 이 말한 히브리어 박사가 '그거는 실언이 다 실수한 말이다'  하는 것을 그분이 지금 똑똑히 알았을 것이라 말이오. 뭐이든지 가치를 그 가치  있는 것만치 가치를 알아 줘야 되지 똥도 가치 있소. 흙도 가치 있고 가치 있는  것을 그 가치 있는 것만치 정가해 놓은 것이 그것 이 깨끗한 것이지, 한 닢 푼치  있는 가치를 두 닢 푼치 하면 더러워진 것이오, 다. 그 원어를 아는 그 지식도  그 가치 있는 것만치 해야지 그 이상으로, 과장을 해 버리면 그 히브리어가  더러워졌다 말이오. 그 사람 더러워진 거는 그 사람 지식 더러워진 그 사람도  더러워졌어.

 그래 내가 그때 그 말했어. 히브리어 박사가, 그러기에, 동정녀라고 말하면,  동정녀면 동정녀에 대해서, 그 히브리어 박사가 뭐 박사인 줄 아느냐? 동정녀라  하는 동정녀에 대해서 이 지방에는 동정녀를 뭣을 동정녀라 하고 저 지방에는  뭣을 동정녀라 하고, 열 지방의 동정녀라고 하는 것을 열 지방이 각각 다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 많이 아는 것이 그것이 신학자다. 그것이 바로  박사다. 박사는 그것이 박사다. 나도야 그거 안 해도 동정녀에 대해서 백  가지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 백 가지. 이게 동정녀다 저것도 동정녀다 거기에  속한 것을 자꾸 이리 저리 조금 조금 틀리게 다 이러면 이게 저게 동정녀다,  동정녀 그거 필요 없다. 백 가지라도 소용없다.

 동정녀는 남편 없이 아이 낳았다는 거기에 중점이 있다. 부정이 없이 아이가  잉태 돼 나왔다는 그게 중점이지 그 외 딴 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라고 말았어요,  그때. 내가 그때 그렇게 말했지? 그렇게 말했지? 대답해. 내가 뭐 거짓말하는 줄  아나? 이래 증인이 있어요. 저 집에 갔었소. 저 집에 가 가지고 그래 했었어요.

그래야 여러분들이 '자꾸 말로만 하는가' 이렇게 알지 안하지.

 이러니까, 이번에, 지난번에 가 가지고 병이 그렇게 나았지마는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 똑똑히 증거를 해야 되지 안 된다 이래서, 고걸 누가 말했는가 하면은  ○○○목사님이 말했어. 그래 가지고서 누가 하나 나와, 그게 나와야 '내가 참  이렇게 이 병이 나았습니다.' 이랬으면 좀 실감이 나는 게 좋겠다. 믿지만 보고  믿는 것은 복이 적고 안 보고 믿는 것은 복이 있다 이랬는데 이 본 것도 꼭 그  사람이 '내가 곰배팔이 이랬는데 뻐드러졌다' 이래야 믿어지니까 그 믿음,  기어다니는, 기어다니는 믿음 가지지 말고 날아다니는 믿음을 가져요. 하나님  믿는데 날아다니는 믿음을 가져야 돼. ○○목사님 그랬지? 내가 다 기억하고  있어요. 주님에게 가는 건데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거 고쳐야 돼요.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 믿음, 우리가 요거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뭐라 했습니까? 어렵다 이랬지.

어렵다. 부자, 무슨 부자? 돈 부자도 그렇지마는 지식 부자도 그렇습니다. 지식  부자 참 불쌍합니다. 지식 부자 그것을 완전히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을 믿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은 안 됩니다. 못 믿습니다. 못 믿는다 그 말이오.

 약대가 바늘구멍 들어갑니까? 못 믿어 안돼.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와  가지고라야 비로소 '인간들의 지식이란 이 모두가 다 배암의 지식이다. 이것은  다 반 거짓말쟁이다. 이러니까, 나는 이것을 참고로만 삼지 내가 복종할 절대의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 뿐이라' 하는 이것이 인정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러기 때문에, 천하의 인간 말 억만 마디 하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한 성구를  내가 증거하는 것이 권위가 있다 하는 이런 믿음이 있어야지, 그 믿음이  생겨져야지 안 그렇다 말이오. 하나님의 말씀이나 성경 말씀이나 권위를  비슷하게 같이 여겨요. 어떤 사람은 같이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이 성경 말씀은  한글로 기록해서 다 아는데, 이 다른 외서, 외국말로 그러면 이거는 외국말 한  것은 외국말 모르는 사람은 모르니까, 외국말 한 마디. 영어로 한 마디 툭  내놓고 난 다음에 이제 말하는 것은 이 사람의 말 지식 이거는, 성경말 아니고도  말이지요. 성경 말씀 아니고 다른 걸 말해요.

 다른 말 말하고 '이 말씀은 외서의 여기에 무슨 무슨 말에 어떤 나라에 이런  말이 있는데 어떤 성현이 이래 말했는데' 이 말 턱 해놓고 '나는 이렇게  박식이다. 모든 사람의 사상을 다 알고, 모든 박식이다. 모든 방언들을 다 알고  있다' 이 박식한 사람이 말하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고 한글로 기록한, 그전에  언문이라 했어. 천한 글이라고 언문이라 했어. 언문으로 기록해 놓은 이 한글  성경에 말하는 그까짓 거보다는 이거 얼마나 권위가 있느냐 이래서, 그 말을  오히려 성경 말씀보다 권위로 여기는데 천하에 있는 인간 말 똘똘 다 뭉쳐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한 마디 그 중량을 당할 수 없다는 이것을 자기가 인정한다는  것이 돼집니까? 성신의 감동이 와야 되지 안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지식으로  망하지 말아요.

 우리 ○목사님이 지식, 그 지식을 내가 쏵 빼 버려서. 이거 세뇌 운동해서 고  지식을 쏵 빼 버려서 아무것도 없게, 재주는 굉장히 있는데 그만 그거 다 빼  내버리고 성경 지식으로만 가득 채웠으면 굉장한 사람이 되는데 그놈이 들어서  자꾸 거쳐 가지고서 안 된다 그거요. 이거 버려요. 이거 아주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프고 안 됐지마는 수술만 잘 받아서 정말 그거 버려 봐요.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지금, 전적으로 이 말씀만 가져 봐요 얼마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는가.

 이러니까, 자기는 혼자서 좋아서 뭐라고 하지마는 듣는 사람이 들을라고  해야지? 듣는 사람이 안 들으려 한다 그거요. 그러니까, 교회 목회가 안돼요.

목회 되는 거 같지만 나중에 저와 같은 사람 만들어 놓으면 저와 같은 전부 병신  만들어 놓으면 잘 듣지 그전에는 잘 듣지 않는다 그거요. 어디 가서 다른 교회  이동 한번 해 봐요. 이동하면 그 사람들이 은혜를 받는가. 다 마다 해요.

그만하면 알 일이지. 우리는 천국 갈 사람 아닙니까? 땅위에서 유명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 옳게 바로 돼야 되지. 그리스도의 심판에 가 가지고 인정을 받아야  되지 그 외에는 딴게 소용이 없다 말이오.

 '이기는 믿음은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 믿음에 대해서, 우리가 믿음은, 믿음은  뭐이 믿음이냐? 그 외부는 하나님이 계시해 놓은 그것을 인정한다 말이오. 이  계시는 열어 보인다 말인데 보이는 속에 뭐 있느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 있고 그것을 이 신구약 성경으로 열어  보였다 말이오.

 열어 보인 그것을 인정해요. 신구약 성경을 따라서 '아, 성경에 말한 대로  하나님은' 성경에 말한 대로 인정하고, 모든 거 인정하고, 인정하고, 처음에  그렇게 알고 인정하고, 그 다음에는 고렇게 소망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내가  그대로 알고 인정하고 소망하기 때문에 내가 그대로의 행동한다 그 말이오.

고대로 행동해. 그게 믿음이라. 그게 세상을 이겨. 그거 아니면 못 이깁니다.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길 자가 없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 말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신데, 요한 복음 1장에 보면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인간이 볼 수 있도록 오신 하나님이 예수님이시요 또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것을 대신 부담할 수 있는, 대신 담당할 수 있는 자로 오신  하나님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으로서 인간들이, 이  피조물이 접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접할 수 있는 존재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또 인간의 모든 잘못된 것을 책임지고 인간이 인간에게 필요한 것을 다  책임지고, 인간을 전부 간단히 말하면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하나님과  불목한 데 대해서, 불목은 화목으로, 이 모든 인간이 자존자같이 능동적으로  날뛰는 이것을 하나님께 피동으로, 인간이 자기 생각대로 해서 하나님의 법칙에  삐뚤여진 걸 하나님의 법칙에 맞도록, 이 일을 사람이 해야 될 일을 하나님이  할라 하니까 사람이 돼야 사람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대신하러 오신  하나님이라, 이분이, 이분이 사람만이 아니고 이 사람은 외부요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우리 피조물인 사람을 하나님과의 영영한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분이시라 하는 이  사실을 믿는 자가 아니면,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세상 그것을 다 이길 수가 있다.

 세상을 이용할 수가 있고, 세상이 지극히 적은 것이요, 또 지극히 적은 것이나  세상은 요긴한 것이요. 세상은 다 그의 것이오. 그의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은  내가 그와 속하면 세상은, 내가 세상 속에 살고 있으나 세상은 내 것이라,  세상은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 세상은 우리의 선물이라 하는 것을 알고,  바로 아니까, 바로 아니까 하나님이 제일 높고 예수님이 그 마음에 중보자  되었고 예수님의 중보자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되었고 만물은  발등상이고.

 그는 머리시요 우리는 그의 몸이라 만물은 또 뭐라 했소? 예? 그의 발등상이라,  그러면, 만물의 발등상이니까 몸보다 발등상이 위에 있소 밑에 있소? 그러면,  만물 위에 우리가 있다 그 말이오. 또 우리 위에는 뉘가 있소?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시니까 위에 있다 그 말이오.

 그래서 만물에게, 만물 안에, 만물 안에서, 있기는 어디 있느냐? 만물 안에  거처하고 있는데,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시는 충만이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를 알아야 뭐 되지,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은 세상을 이깁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우리가 어찌 믿게 됐느냐? 우리가 어떻게 믿게 됐느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가 어떻게 믿게 됐느냐? 이제 믿게 한 그 역사를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어지게 됐느냐? 믿게 된 것이 뭐 자기가 두뇌가 명철해서 믿게 된 것  아니오. 자기에게 뭐 선량이 있어 믿게 된 것 아니오. 자기가 지혜가 있어 믿게  된 것 아니오. 우리가 믿게 된 것은 전부 천래의 역사입니다. 하늘에서 온  역사로 말미암아 믿게 됐다 그 말이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물과 피로 임했다니? 물과 피로 임했다 이거는  무슨 말입니까? 물과 피로 임했다. 물과 피로 임했다 하는 이 물은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왔다 그 말입니다. 이 물은 하나님의 영원 전 당신의  목적으로부터 예정하신 모든 예정, 과거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해서 한 마디로  물로 표시했습니다. 물.

 그러면, 예수님이 도성 인신 해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이것은 당신이  사람으로 이렇게 못박히신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나님이 사람되어 왔는데  하나님이 사람되어 온 것을, 그분의 온 유래가 어떠하냐? 온 유래가 물과 피로  왔다 물은 그 유래를 말하는 것입니다. 유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근원이  어디서부터냐? 어디서부터입니까? 그 근원이 어디서부터지요? 예? 그 근원이  어디서부터지? 여러분들 좀 생각해 봐요. 자꾸 나만 말할게 아니라 생각해 봐야  재미가 있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택하사' 그러면 시발이 어디입니까? 시발이 어디입니까?  하나님, 자존하신 하나님, 고 다음에 순서는 뭐입니까? 고 다음에 순서는  뭐이요? 그리스도, 고 다음에 순서는 그리스도, 또 그리스도 그 다음에 순서는  뭐입니까? 예? 예택.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사' 그러니까 자존하신 하나님, 그 다음에 자존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그리스도가 예택으로, 예택 그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예택으로, 이제 거기에서 그 모든 것이 다 예정으로, 이러는데, 물로만 아니라  물과 피로 왔다 하는 물은 어디서부터서 말을 하느냐 하면은 하나님, 자존하신  당신의 뜻으로부터 왔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뭐이냐? 하나님의 뜻이 어디서 시발 됐는가? 그리스도에서 시발됐다 말이오.

 그리스도로 시발됐다 말은 그리스도가 그때부터 존재했다는 것이 아니고 영원  전 존재인데,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시려는 그런 계획을 당신 의지 세계  안에서 그 계획을 하신 그 계획, 계획 거기서부터 시발됐다, 그것을,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계셨고 고 다음에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셨는데, '물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자존하시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이 계셨다 말이오. 하나님의 뜻에서부터 거기서 유래해 가지고  거기서 시발돼 가지고서 이제 시발된 것이 도성 인신 해 가지고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이 피까지 와서 그 모든 연줄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게  됐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이거 참 어려워요. 이단자가, 이단자가 달리 이단자 되는 것 아닙니다.

이단자가 많은 것이 틀려서 이단자 되는 것이 아니오. 하나가 틀렸는데 하나  틀린 그것을 자꾸 그걸 버려 버리면 되는데, 틀린 그것을 틀리지 안했다고 자꾸  옳다고 하려고 하면은 자꾸 그 틀린 그것이 살이 붙는다 말이오. 틀린 그것이  살을 붙여요. 틀린 그것이 살을 붙여서 살을 뭘로 붙입니까? 딴거 붙이면 권위가  없으니까 틀린 것을 성경 말씀으로 살을 붙이고, 붙이고 해서 모든 성경을 틀린  데다 들이 붙여 가지고서 이 틀린 것이 커단해진다 말이오. 거기에서 다  이단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돼요? 이해가 됩니까?  앞으로 여러분들이 이라면 다 어둡기 때문에 이건가 저건가 몰라서 제딴에는  신사같이 생각하고 제딴에는 아주 폭이 큰 사람같이 대단히 대범한 사람  같지마는 이걸 모르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서 이것인지 저것인지, 그것이 시발이  어디서 나왔으며 결말이 어디 갈 것이며 결과가 어디 갈 것이며 마지막 종착점은  어디 갈 것인가, 어떤 자가 소원하는 소원인가 하는 그것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로 방황하고 흔든다 그 말이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을 뭣 때문에 못박았습니까? 못박은 거는  대제사장들이 못박았는데 와 못박았습니까? 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와 못박았는지 못박은 원인의 그것을 한번 말해 보십시오 예? 아,  그게 아니야. 그들이 가르친, 그들이 깨닫고 주장한 것과 예수님이 주장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달랐으면 얼른 따라서 고칠 일이지, 달랐으니까 자기네 권위가  떨어진다 말이오. 달랐으니, 나는 이거 콩이라고 가르쳐 놨는데 예수님은 팥이라  이렇게 가르치니까, 자기네들 콩으로 가르친 거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권위를 가졌었는데 이제 자기네들 그거 가르친 것을, 자기의 교리와 신조를  부인하는 날이면은 이제 자기네들 권위가 뚝 떨어지지.

 그러니까, 예수님의 권위가, 교리와 신조가 옳지마는 그것을 인정할라 하면  자기네들의 그 교리와 신조를 부인해야 되는데 부인하는 것은, 부인 되는 것은  자기 속으로 부인이 되지요. 부인이 되지만 이거 부인이 되는 날이면 무엇이  떨어집니까? 모든 사람에게 인정하는 저거 무대가 떨어지고 저거 대우가  떨어지고, 제 가치가 떨어져. 하나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 가치가  떨어지니까 그거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꾸 이제 자기네들 한 것을 변명해  나가고 예수님이 한 것을 자꾸 정죄해 나가고 자꾸 이래 나갔습니다.

 알고 정죄했어요. 알고 정죄하고 이래 했지마는, 이러다가, 자꾸 그래 해  나가다 보니까 나중에,-사람이라는 것은 이상해요. 순응성이 있기 때문에 틀린  것도 그렇다 그렇다 하면 나중에는 그런 줄 알게 됩니다. 제가 번연이 이거는  아닌 줄 알지마는, 아닌 줄 알면서 그렇다, 그렇다 자꾸 말하고, 이 사람한테  말하고 저 사람한테 말하고, 자꾸 그른 것을 그른 줄을 알고도 이게 옳다 옳다  자꾸 이렇게 말해 놓으면 처음에는 모르지만 나중에 이 사람 말하고 저 사람  말해서 이 사람이 설득 듣고 저 사람이 설득 들으면 나중에, 자기가 처음에  시작할 때는 그른 줄 알고서 고의적으로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서 했지마는  나중에 가서 그게 옳다 자기도 인정하게 돼 버리고 만다 그거요. 이상합니다.

 이래 가지고, 자기네들 교리와 신조가 틀리기 때문에 예수님을 배척하다가,  이제 예수님이 와 가지고서 이런 기적과 이사를 행하니까, 이사를 행하니까 이제  예수님을 인정할 수가 있는데 인정하면 저희들이 다 부인되기 때문에 인정을  안하고 이렇게 빼고나리를 치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죽으시고 난  다음에 부활하니까 그들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부활하고 난 다음에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확실히 알았습니다.

 확실히 알고 '아, 부활했다' 이라니까 그들이 당황해 가지고 로마 병정들에게  돈을 주고 이래 가지고 '어쩌든지 그 시체를 도적했다 하고서 살아났다고 하지  말아라.' 시키는 대로 돈을 줘 가지고 운동을 했다 그 말이오. 운동을 했는데,  그때는 와 운동했습니까? '아, 이가 메시아는 메시아인데 만일' 메시아는  메시아인데 지금 회개를 하려고 하면은 무엇이 절단 납니까? 자기네들의 생명이  절단 난다 말이오. 메시아를 죽였으니까 그 뭐 돌로 쳐서 제사장 서기관들을  죽일 것 아닙니까? 저거들의 생명이 절단 난다 그 말이오. 생명이 절단 나.

 처음에는 뭐이 절단 날까 싶어서 옳은 줄 알고도 긍정 못 했습니까? 예? 똑똑히  자꾸 말해 봐요. 지위와 권위, 대우, 지위와 권위, 대우 이것이 지금 절단 나기  때문에 못 했는데, 두 번째는 더 확실히 알았지마는 이제는 긍정을 못 하게 된  것은 뭣 때문에 그랬습니까? 생명이 절단날 것이기 때문에 못했다 그거요.

 생명 이 절단 날까봐 긍정 못 했는데 이제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 심판 앞에  가서 설 때에는 그때는 어찌 되겠습니까? 그때는 부인할 수가 있습니까? 그때는  무슨 마음이 있을까? 아마 그럴 거야. '아, 부활하셨는데 그만 그때 내 지위나  명예나 그런 거 다 떨어져도 그만 다 사면해 버리고 산골로 파고 들어가도 고만  그때 날 부인하고 주님을 따를 걸, 일찍 회개를 할 걸' 이랬을 것이고,  이제 그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 가지고는 무슨 후회가 되겠습니까? 저  ○집사님, 하나님의 심판 앞에 가서 무슨 후회가 되겠지? 무슨 후회가 되겠어?  응용을 할 줄 알아야지, 응용을. 무슨 후회가 되겠어? ○○○목사님, 그러니까  꺼꾸로 듣는다 말이오. 그러니까 외식이라, 다 외식. 그래 가지고는 안돼. 이  도를 받을 자격이 없어. 뭐 꺼꾸로라. 그게 아니라.

 '그때 죽어도, 죽어도 내가 그때 인정을 할 걸. 그때 내 지위와 권세와 대우가  떨어져도 그때 인정할 걸.' 생명 끊어질 문제에 와 가지고는 '과거에 그때  인정할 걸' 하나님의 심판 앞에 와 가지고 그때는 '이미 죽는 것 죽어도 내가  그때 인정을 할 걸' 그게 후회가 된다 그 말이오. 진리를 바로 들어야지. 속에  안 들어간다 그 말이오, 암만 이래야. 이러니까, 여기 무식한 사람들이 다 듣지  좀 아는 사람들은 그 지식, 조그매 들어도 그 지식 그게 들어서 자꾸 가리워지기  때문에 헛일이라 그 말이오, 헛일.

 이거 말하는 것은 자기가 잘못 주장해 놓으면 이것이 틀려서 나중에 그것으로  말미암아 틀려질 것이기 때문에, 내가 미국에 갔다 온 목사님들, ○○○목사님,  ○○○목사님, ○○○목사님 미국에 갔다 왔을 때에 꼭 석 달 넉 달을, 갔다 올  때마다 석 달 넉 달을 우리 서부 교회 같이 있으면서, 같이 있으며 이래 한 것은  뭐이냐? 혹 거기 가서 잘못들은 것이 있을까 싶어서, 잘못하나 주장해 놓으면  결국 그놈을 주장하기 때문에 나중에 마지막은 실패 될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 혹 있는가 해서 그동안 있으면서 우리와 복음으로 일치되는 고것을 지금,  일치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 머물려 둔 것입니다. 내 포부가 말이지요.

 있어 보면, 얼마 동안 있으면 '아, 그렇구나' 이래 가지고 그전에 설교를  시키지 안해. 설교, 사람이라는 것은 잘못 말 한 마디 해 놓으면, 그 사람이 한  마디 뒤에 틀렸으면 '아이구, 틀렸습니까? 예.' 겸손히 고쳐지는 것이 좋지마는  그렇게 되기가 어렵다 말이오. 한번 말하면 기어코라도 옹호해 가지고, 변호해  가지고 이거 세울라고 말한다 그 말이오.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이 지식 가지고서 자기가 엉뚱한 거 하나 해 놓으면  그것 때문에 마지막에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원수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육덩이로 원수되지 안하고 이제 조금 어느 수준에  올라가면은 자기 교리와 신조가 원수됩니다. 교리와 신조 때문에 원수가 되는  것이라 그 말이오. 교리와 신조 때문에 원수되는, 하나님 편에서 가지고 바로서  가지고 되면 좋지마는 삐뚤어진 데 서 가지고서 옳은 거하고 원수되면 그보다 더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혹은 오점이 있을까 해서 지금  내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고 의지하고, 원어 헬라어니 그런 것 그 지식을 의지하는 우상을  만들지 말아요. 그러면 그 걸 완전히 없는 거같이 부인하고, 고것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고것으로 자기가 교만하지 안하고, 고것을 가지고 뭐이 될 줄로 고것  가지고 한다는 그것을 부인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그때에 저 사상인가. 그때에 어느 교회인지 그 교회 이름을 지금 내가  잊어 버렸습니다. 그 교회에 목사님이 있었는데, ○ 목사님이라고 있었는데, 그  이름은 내가 말하지 않습니다. 그 목사님이 고신에 다니면서 본과에서 공부를  했어요. 본과에서 히브리어 헬라어를 공부했고 또 영어는 어북 잘하고 이라는데  교회서는 배척을 해서 보기 싫다 합니다. 보기 싫다 하는데, 오면, 설교하면 떡  원어 성경, 원어 뭣이, 그 원어, 영어나 뭐이나 원어 한번 떡 읽어 놓고서 이래  놓고 여기 이렇다 하고 이라면서, 모두 하는 말이 뭐이냐 하면은 '이 영어를  모르고 어학을 공부하지 못한 사람, 한글 밖에 모르는 그 무식군들은 한글만  보고 이래 말하는데 우리는 원어를 알고 있으니까, 또 이 모든 어학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어학이 이렇고, 이렇고 이렇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도 생명 양식이  하나도 안 나오니까 교인들이 싫다고 교인은 자꾸 약해지고 배척을 당해.

 배척을 당할 판이니까 지금. 그러니까 나를 청했어. 나를 청해서 그래 갔어.

가서 보니까 그 말은 안 했지만 내가 보니까 환하게 보이요. 그래 가지고 설교를  하니까 이 사람에게 그 진리가 뚫고 들어가지 안해. 진리가 뚫고 들어가지  안하고 아주 보니까 맹꽁이요. 이 순 인본주의고 이거는 참 육덩이지 도무지  성령을 만나 보지도 못하고 이제 은밀한 가운데 보이지 안한 그분이 큰 분이  있다는 걸 전연히 몰라요. 보이는 걸 보이지 않는 것 보다 훨씬 크게 여기고  이렇다 말이오.

 한 두 시간하고 나니까 막 교회가 뒤비져 버려. 온 교인들이 마구 죽겠다고 뭐  기도하러 간다고 죽겠다고 쌓고 단식이고 뭐이고 이래 가지고서 뭐 못 오게 해도  자꾸 끌어 들어오고 이래 가지고서 못 오게 하고 이랬는데, 그러니까 거기서  나올 때에, 찍해야 금요일날 밤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월요일날 아침까지  설교하고 내가 떠났는데 그때 온 교인들이 하나도 안 남고 전부 다 나와서  대성통곡이라. 역에까지 나와 가지고 대성통곡이라. 뭐 저절로 눈물이 나와서  대성통곡을 한다 그 말이오.

 이래도 그 사람은 그 원어 가지고 만날 그것을 회개하지 못하고 그러다가  지금도 내가 그 말을 종종 해. '그분이 목회를 어찌하고 있느냐?' 자기딴에는  잘났는데 교회는 배척이라. 교회서는 배척. 양떼들은 목자의 음성을 들을 줄  안다 그거요. 이러니까, 그거 부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식이 우상되는 사람들 많이 있어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물이라는 이것을, 뭐 원어에  알면 얼마나 잘 아는지 모르지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물은 진리와 피로  임했다는 그 단순한 말이 아니고, 위의 물과 밑의 물이 좀 달라요. 물과 피로  임했다 말은 이는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원 전 당신의 그  자존하신 분이 뜻하신, 자존하신 분이 의지가 출발한, 의지 출발한 거기에서부터  시발돼 가지고서 십자가에 못박혀서 대속의 공로를 베풀었다, 이러니까,  자존하신 그 다음, 자존하신 자 그분에게서 시작해 가지고서 이와같이 십자가의  대속까지 온, 이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성을 가리켜서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곧 예수 그리스도라' 이런데  '임하신 자니' 십자가의 대속인데, 십자가의 대속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것이 예수님이요, 그런데, 그리스도라 그 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 가지고서 우리를 제사장 실력으로 서지자 실력으로 왕의  실력으로 해서 모든 피조물의 중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의 중보의  실력을 이루는 이 성화구원, 이 구원을 이루기까지라 하는 그 말입니다.

알아듣겠습니까?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라' 예수라 말은 대속을 말했고, 그리스도는  지금 성화구원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그리스도는 지금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택을 받을 때에, 예택을 그리스도  안에서 예택을 했습니다. 하나님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습니다.

왜 그리스도 안에서 정했느냐? 당신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형상이라 그 말이오.

당신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목적, 곧 그리스도라 그 말이오. 목적이 그리스도라.

 그리스도라 말은 당신이 피조물에게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소원하시는 이  소원하신 그 소원을 맡으신 그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 직책을 맡으신 하나님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 이렇게 말한다 말이요.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예택했습니다. 하나님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해요.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했다 말은 그리스도와 같은 자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목적을 정하셨기 때문에 그 목적이 달성되면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다 그 말입니다.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로만 아니요'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의  의지로부터 죽나온 것이 의지가 영감으로 나왔고 영감이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이렇게 다 나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요 진리라 말이오.

 '물로만 아니요' 그 뜻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물과 피로  임하셨고' 그러면, 하나님이 이렇게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만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도성 인신 하셔 가지고서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공로와 또 이 부활하신 이  공로까지를 다 포함해 가지고서 임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그 성취까지 다 겸해 왔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만 왔으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뜻과 그 하나님의 그 뜻대로 성취하는 그 모든  준공 완공까지 다 합해 왔다 그 말입니다.

 '피로 임하셨고 증거라는 이는' 요 증거부터는 따로입니다.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이 사실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이가 성령이시니,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이가  성령이시라. '증거하는 성령이시니'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이가  성령이시라.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라 성령은 진리니라' 성령은 진리라 이  말은 성령은 곧 하나님의 그 뜻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전달하는 분이시라.

 그러면, 진리가 성령이 아닙니다. 성령은 진리시라. 성령의 활동이 진리라 그  말입니다. 진리는, 진리는 성령이 아니오. 진리는 성령이 아닌데 성령은  진리라고는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은 진리로 나타난다 그 말이오.

 성령은 진리라, 그 밑에 한 일 (一)자를 써 놨는데 보니까 진리라 하는 그  밑에는 다른 번역에는 헬라어에는 참이라는 그런 뜻으로 돼 가지고 있답니다.

 그러면, '성령은 진리라' 성령은 하나님의 참이신 그 뜻을 곧다. 그 뜻을 다  아듬고, 그 뜻을 흘트리 다 가지고 와 가지고 우리에게 그 뜻을 우리에게 전해  주시고 전해 줄 뿐만 아니라 그뜻을 우리에게 완성이 되어지도록 하는 피까지  같이 왔다, 대속까지 같이 왔다.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이제 이랬는데, 우리에게 지금 하나님의 목적도 과거요  또 현재요, 예수님의 도성 인신 부활도 과거요 또 현재라. 시작해 가지고,  시작도 그때 했지마는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데, 이 계속 하는 이것을 우리에게  와 가지고서 우리 개인 개인에게 효력 있게 와서 역사하는 이가 있으니, 효력  있게 역사해 가지고서 실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이가 있으니 그것이 셋이라,  증거하는 이는 셋이라. 증거하는 이는 우리에게 효력이 있도록 알려서 우리에게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말입니다. 증거라 말은 알린다는 말이요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성령과 물과 피라, 그러면, 성령과 물은 내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과 또 성령님, 하나님이 감동시킨 성령님과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이 셋이 합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함께 역사하고 있습니다.

 '하나이니라 만일 우리가 사람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성령이  무슨 일 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뜻이니, 하나님의 뜻이 똘똘 뭉쳐 가지고서 뒤에  열매로 딱 맺어졌고, 또 성령이 이와 같이 역사하는 이 모든 성령의 역사가 뭣  때문에냐? 성령의 결실도 예수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뜻의 결실도 연성도 예수  그리스도시라, 아들에 대해서 증거하는 것이니라.

 아들에 대해서 증거하고, 아들을 우리 각자에게 증거해서 아들로 충만하기  위해서 증거한다, 그러면, 사죄로 충만하고 칭의로 충만하고 화친으로 충만해서  다 영생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그자 만들면 그게 뭣 되느냐?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되 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은 제사장의 원형이요, 선지자의 원형이요, 왕의 원형인데, 우리는 모형적  제사장이요, 모형적 선지자요, 모형적 왕으로서 이렇게 만물의, 그리스도가  중보요 그리스도로 더불어 함께 중보자 되는 이 중보 역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이제 예수님  믿는다는 이거 단순하지마는 위에 죽 많은 하나님의 아들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이제 많이 말했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지식하고 소원하고 소망하고 그렇게 안정하는 그 관계를  가지고 사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증거가 있다 그 말은 우리가 말로만 들은 게 아니라 자기가 믿으면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 안에 전능의 하나님, 또 전지의 하나님 또 하나님의  영영하신 목적, 또 대속하신 예수님, 이렇게 이 하나님의 영원 전 당신이 존재한  다음으로 존재한 거기에서부터 줄기가 움이 터 가지고, 거기서부터 시작이 돼  가지고 오늘 여기에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살아나신 이 사실을 성령과  진리와 피의 세 가지 능력이 우리에게 역사하기 때문에 역사하는 것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된다, 알게 된다  그 알게 되는 것은 자기 주관적으로 아는데, 처음에는 모르게 객관성으로 와  있지마는 마지막에는 자기 주관성이 알게 있도록 되는 것이 그것입니다. 물론  사람 다 차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 '계시는가 안계시는가?' 또 억지로  '계신다 계신다' 이래 하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나중에 주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고 자기 안에 계신다는 것이 자기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거 이거 보는 거 이것보다도 더 확고히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자기가  인식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본다 했습니다.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알리라 보리라, 자기 주관이 완전히  인정할 수 있도록, 주관도 거기에서 인정하게 된다 그 말입니다.

 '믿지 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그러면, 이 믿지  안하는 자는 그 속에 증거가 없기 때문에 와 가지고, 흔적이 없다 말이오  증거가' 없다 말은 흔적이 없어. 와서 자기에게 존재해 가지고 있는 그 존재가  없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수 믿는 자들 공연히 거짓말한다 자꾸  꾸며대서 한다' 꾸며대서 한다 하지마는 믿는 자에게는 꾸며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암만 버릴래도 버릴 수 없고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는 그 실존이 자기  속에 있기 때문에 자기는 부인할 수가 없는데 믿지 않는 자들이 그게 없으니까  그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한다. 말쟁이들이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믿는 자는 자기에게 실존이 있기 때문에 이거는 부정할 수가 없다 그  말입니다.

 안 믿는 자는 그 속에 있는 것을 몰라요.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짓말한다.

이 거짓말한다.' 거짓말, 자기네들이 거짓말한다는 말은, 거짓말한다는 말이  자기네들이 부러 거짓말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참 거짓말하는 줄 알아서  거짓말한다고 합니까? 그것 좀 알아봅시다. 부러 거짓말한다고 그렇게 그들이  하나님 거짓말한다 이랍니까 참 거짓말한다고 해서 거짓말한다고 합니까? 네,  그들은 참 거짓말한다 그들이 알기는 참 거짓말이다. 그들은 참 거짓말이다.

 그런데, 이제 믿는 자에게는 자기에게 와 있는 흔적이 있기 때문에 흔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흔적이 있으니까 있다 이라는데 저 사람들은 그 있는 것을 못  봤으니까 없다 이란다 그 말이오. 그것이 서로 이거 분기점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그러면, 증거는 뭐이냐 하면은 영생이 그 안에 있다  그러면, 영생도 다른 사람이 영생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 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분명히 자기가 알게 된다 말이오.

 알게 되는데, 영생이 있는 것이 자기. 신령한 것이기 때문에 영생이 있는 것이  무슨 이 수건 모양으로 불끈 쥐이는 것 아니오. 쥐이는 것이 아닌데 자기 심령에  영생이 있는 것을 자기가 알게 되고 영생을 부인할래야 부인할 수 없어. '영생이  없다. 뭐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아무리 한다고 할라 해도  안 된다 그 말이오.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하시대로 그대로 있는 것이 인정이  되어지고 자기 속에는 영생의 생명이 있는 것을 자기가 믿어진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점점 장성해지면 세상이 암만 죽여 봐야 죽지 않는다  죽지 않는다는 것이 믿어지고, 영생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증거 하기를 뭐라고  다른 말로 증거하지는 못하지마는 자기 속에는 영생이 들어와 자기는 영생을  가지고 지금 영생하고 있다는 것이, '요거는 영생한다, 요거는 영생하는 내가  영생하고 있다. 요거는 영생하는 내가 살고 있고 요거는 나 아닌 내가 살고  있다.' 자기가 비로소 나 아닌 내라, 또 내라 이것을 나중에 장성해지면 차차  알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마치 처음에 나서는 저도 모르지요. 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어머니도 모르고 아버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모르지마는 이 아이가  차차 장성해지면, 장성해지면 어머니도 알고 아빠도 알고 저도 알고 차차 인식이  되어 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믿음을 지켜 나가는 이게 뭐이냐? 믿음을  지켜 나가면 돼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첫째는 보고 듣고, 보고 들어야 되니까, 보고 듣고  그라고 보고 들으면 뭐이냐 하면 지식이 생겨져. 보고 들어 지식을 만들고 또  보고 듣고 난 다음에 그런가 안 그런가 시험하기 위해서 한번 시행도 해보고, 또  그런 가운데서 지식으로 말미암아 실행되고, 실행으로 말미암아 인정되고  인정으로 말미암아 실행되고 이것이 같이, 말하자면 계란이, 계란이 병아리가  되고 병아리가 또 닭 되고 또 닭이 또 계란이 되고 계란이 또 병아리 되고  뺑뺑뺑 돌아가니까 어느 것이 앞선 것인가 이렇게 논리적 순서를 할 수 없는  것처럼 이렇게 이 셋이 뱅뱅 돌아 이것이 저 것 증거하고 저것이 이것 증거하고  이래 가지고서 자꾸 그라는 가운데에 어쩌든지 자기가 믿고 실행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자꾸 증거가 커집니다.

 믿고 실행하면 증거가 커지니까, 증거가 커지는 것은 뭐이냐 하면 어제 말한  대로, 어제 그거 비유입니다. 비유로 말한 것이 자기 마음과 몸은 아무것도 없는  백색이라, 백색이요 생의 본능밖에 없는 것인데 거기에 하나님의 것이 자꾸 와서  물이 들어 가지고서 자꾸 하나님의 것을 입는다 입으니까, 자꾸 입혀지니까  나중에 가서는 이 세상에 있는 그런 것이 부인되고, 그러면 예수를 믿어 갈수록  처음 믿는 사람은 믿지 못할 것을 믿는 사람은 믿을 수 있고 처음 믿는 사람은  부인하지 못하는 것을 오래 믿은 사람은 부인이 돼지고, 부인이 돼. 네가  부인해라 부인해라 해도 그 사람 부인이 안 된다 말이오. 참이 있다 있다 해도  그 사람은 '몰라. 있는가' 그런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것이 자꾸 있어지고  영생이 있는 것도 자기에게 있는 것이 자꾸 확실해지고 믿어지고 장성한 데  따라서 그것이 주관적 인식이 자꾸 돼진다 그거요.

 그러니까, 믿음을 보여달라 이렇게 말을 해도 믿음을 보일 수가 있습니까?  믿음은 자기 인정을 해야 믿어지지. 그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한다 그 말이오.

믿음을 보이는 것은 믿음의 행위나 보이지 딴거는 보일 수가 없어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저거는 몰라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 말이오.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그 속에 영생이 없어요. 영생을 암만 말해야  부인합니다. 암만 말해야 부인해.

 그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말하면 영생을 인정한다 말이요. 제일  초보라도 중생된 자는 영생을 말하면 영생을 인정해요. 인정하는데, 나중에  가서는 차차 장성해지면 영생하는 그 생명을 인정하기 때문에 영생하는 생명으로  살고 이 죽는 생명으로 살라고 하지 안해요.

 그러니까, 항상 영생이 주체가 돼 가지고서 주권을 가지고 이래 그 사람 이  살고 있지 죽을 생명, 이 안 믿는 사람 같은 그 생명이 주관하고 있지 안해요.

그 생명이 벌써 떨어져서 이거는 껍데기요 이거는 참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자기에게 인정이 됩니다. 인정이 돼 그것이 자꾸 이루어진다 그거요. 자 오늘  아침에 시간이 너무 갔습니다.

 네. (어떤 교역자의 질문에 답의 말씀)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데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사람의 증거를 받는다 그 말은 믿는 사람이  전도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반 사람들이 자꾸, 모든 것이 사람의  증거를 받았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자기 할머니인 줄 어찌 압니까? ○○○목사님  어머니 압니까?  어머니 아요? 어머니 있소? 어머니 있어? 아버지 있어? 어찌 아요? 어찌 알아?  사람들의 증거를 받아 가지고 안다 그 말이오. 그렇지 않아요? 저거 아버지  몰라요.

 만날 사람들이 너희 아버지 너희 어머니 하니까 아버지 어머니인 줄 알았지 그  몰라. 그와 같은 말이오. 모든 것이 다 인간의 증거를 받아 너희 들이 알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그러하다 그 말은 인간의 증거 받아 가지고 아는 거같이  하나님의 증거는 더 권위 있게 증거 역사가 이루어진다, 그러면 우리를 증거를.

증거를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권위가 더 크다 그 말이오.

인간들이 증거하는 것도 다 그것이 그대로 다 수립이 되고 다 건설이 돼지는데  하나님의 증거는 더 확고하게 권위 있게 서진다 이것을, 하나님의 도의 권위성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혹 만일 의문되는 것이 있으면 물으면 우리가 아는 대로 연구를 해 가지고서  말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모르는 것은 신구약 성경이 있기 때문에 혹  이단자들하고 이렇게, 이단자들하고 이렇게 증거하지 않습니까? 증거할 때에  내가 성경을 말하다 막힌다 그 말이오. 막히면 아이고 부끄러워 낯이 빨개. 그럴  것 없어. 내가 성경을 어디 다 압니까? 모른다 말이오. 그럴 때일랑 그래  하지말고 '나는 여기에 대해서 내가 요렇게 말했는데 자기는 요렇게 말했으니까  요 도장을 찍자. 도장을 찍고 요 연구 제목으로 둬 가지고서 내가 성경보고 또  연구해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배워 가지고 또 내가 말하겠다.' 그래 놓고, 내가  다 모르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말고 숙제로 딱 두고서 그래 하라 말이오. 도장  찍고 '너 요랬지?' 고 딱 그래 놓고 '이름이 무엇이지? 주소가 어디지. 전화가  어디지?' 딱 그래 해 놓고 고걸 찾아 연구해 보면 그 사람 말한 것이 틀렸고  내가 말한 것이 대충 말해 놓은 것이 틀렸고 옳고 바른 것을 성경 보면 알 수가  있고 연구하면 알 수가 있다 말이오.

 연구해 가지고 또 가서 '자, 아레 연구하던 거 그거 내가 성경 찾아보니까  이렇고 다른 사람한테 배워 보니까 이렇더라. 이런데, 이러니까 이렇다, 이렇다  하는 거 이거 맞았더라. 당신 말한 것은 이렇고 이러니까 틀렸더라 그러니까  이거 어떻게 하노? 내가 보니까 이것 틀렸는데 또 틀리지 안했느냐? 말해라'  이래 가지고 달라붙어서 놓지 말고 우리 요 가진 교리와 신조가 맞기 때문에,  제가 몰라 그렇지 맞으니까 언제든지 모르면 연구 제목으로 두고 '또 연구하자,  연구하자' 이래 가지고 훗날에 미루어 가지고 거머쥐고 따라 신강하라 말이오.

그러면 그 이단자라 하는 것이 환하게 나타나게 된다 그 말이오. 하나가 틀리면  모든 것이 다 틀립니다.

 그러니까, 그러는 사람은 이단자에게 양떼를 뺏기지 안하는데, 고만 그렇지  안하고 금방 자기가 모르는 거, 다 알 수 있습니까? 성구를 그 사람은 주 대는데  나는 성구를 못 대니까 그만 항복을 하고 낮이 벌겋이 그렇다 말이오.

 그렇든지 그리 안하면 그걸 찬찬한 말로 '우리가 또 두고 합시다' 요라면서  '자, 당신이 요렇게 말했지요? 여기에 싸인을 하십시오. 나는 요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말하는 것과 당신 말하는 것이 틀렸는지 안 틀렸는지  성경을 가지고 상고를 해서 우리가 판결을 합시다. 우리가 판결을 또 다른 데  가서 배워 당신도 더 배우고 나도 배워 가지고서 판결합시다' 요라면서 고 이미  말한 그걸 삭제하지 말고 고걸 딱 보존해 가지고서 요것을 좀 판결을 지우자고  싸인하라 하면 싸인 안 해. 그만 도망쳐 버려요. 싸인 하면 반드시 제가  낭파당하기 때문에.

 이러니까, 그걸 딱 하다가 '자, 이거는 그만 두고 또 이거' 그만 거기 끌려가면  헛일입니다. 그게 뭐입니까? 누가 사마리아로 끌고 가 가가지고 사람들 가두어  버렸지요? 누가 사마리아로 데리고 가서 포위했습니까? 예? 엘리사가 그 적군을  살살 유도해 가지고 사마리아에 가 보니까 사마리아 안에 딱 포위됐다 말이오.

그것 모양으로 자꾸 따라가면 포위되오.

 이래서, 세계 국제 기독교 연합회가 아이 씨이 씨이(I. C. C)인데, 아이 씨이  씨이의 그 표어는 첫째가 반공주의가 일호 표어입니다. 그 표어의 일호가  반공주의요. 반공주의이니까 '이 반공주의 이게 틀렸다' 그 말은 와 말하느냐?  우리가 반공주의가 아니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진리를 이떻게 딿고 믿는  사람들이지. 보수주의도 아니오, 보수주의도 아니고 반공주의도 아니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도리를 자꾸 배우고 인정하고 고대로 순종하는 이것이지  무슨 보수하는 것이 우리 목적 아니오. 보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우리는  하나님 찾는 것이 우리 목적이지 보수주의도 우리 목적이 아니라. 목적이 틀렸다  그것도 틀렸다 보수주의도 틀렸다.

 일호는 반공주의 그것도 틀렸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그 말이 깊숙히 들어 있기  때문에 잘 모른다 그 말이오. 반공주의라면 자꾸 공산주의 반대하다 보니까  공산주의 이놈 반대하니까 저놈 패전한다, 공산주의를 반대하니까 그놈이 또  쫓겨나고, 변론을 하니까, 내가 변론하다 보니까 그놈이 또 쫓겨나갔습니다.

쫓겨나가니까 또 그놈이 달라 들어 변론하고, 변론하고, 자꾸 변론 변론해서  내가 그 변론을 이기기는 이겼는데 나중에 가다 보니까 공산주의 속에 푹 파고  들어가서 팍 포위가 돼 가지고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공주의는 결국은 뭐이냐 하면 반공주의는 공산주의자가 되고  만다 반공주의는 결국 공산주의자가 되고 만다 하는 그 결론을 다 보고서 이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뭐 껍데기에서 판단해 가지고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깊이 깊이 판단하면 그게 나와요.

 자, 그러면, 오늘 아침에 이들은 것을 여러분들이 잘 기억해야 될 터인데  알기가 좀 어려울 거라. 가서 자꾸 요한일서 5장 1절에서부터 쭉 읽어보면서 그  뜻을 낱낱이 좀 깨달아 봐요. 그래 가지고서 우리에게 있는 이 검정물. 마귀의  물이 들어 가지고 있는데. 마귀의 물이 들어 가지고 있는데 마귀의 물이 들어  가지고서 있으니까, 마귀의 물이 들어 있으니까, 마귀의 마음이 됐고 마귀의  몸이 됐고 마귀의 생각이 됐고 마귀의 지식이 됐고 마귀의 행동이 됐고 마귀가  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에게는 어제 중요한 말했습니다. 마음과 고깃덩어리는 아무  색깔이 없다. 여기에 악령의 물을 들이면 악령 색깔이 되고 성령의 물을 들이면  성령의 색깔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악령의 색깔을 탈색시키고 성령의 색깔로  입을라고서 그와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벗어라 입어라 그렇게  성경에 말씀했다.

 우리가 성화가 된다고 해서, 성화가 됐다고 해서 우리 자체가, 우리 자체가  그대로 변질된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감동시키는 분이 딴 분이 됐고, 우리를  가르치는 분이 딴 분이 됐고, 우리를 통치하시는 분이 딴 분이 됐고, 우리를  인정하게 우리 마음이 모두 다 움직이는 그 마음의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이도록 그렇게 됐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천년만년이 가도  하나님만 똑 떨어지면 내나 백색으로 돌아간다. 백색으로 돌아간다. 백색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또 하나님만 떠나면 색깔로 입을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는 피조물이다. 우리가 하나님 본질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그의 역사에게 피동되는 그것이 우리들이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색깔을 빼는 데에는, 그 색깔 빼는 데에 몇 가지 약을 쓰면  됩니까? 그 색깔 빼는, 마귀 색깔을 우리 마음에서 빼내버리고 우리 몸에서  빼내버리고 우리 행동에서 빼내버리고, 우리의 모든 마음은 이런 욕심 저런  욕심, 우리 맘에는 아무 욕심이 없었어요. 아무 욕심이 없었는데 이 마귀가 음욕  주면 음욕 물욕 주면 물욕 또 명예욕 주면 명예욕 그거 모두 다 물든 거요.

우리에게 본야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게 물이 들어 그래. 그것만 빼 버리면 확  빠져 버리고 하나도 없어져 벼려요. 빼면 하나도 없어져 버려요. 없는데, 이  마귀의 물. 이 사망의 물, 죄악의 물이 물을 우리 마음에서 빼 버리고 우리  몸에서 빼 버려서 그런 것이, 우리 마음 몸에 그런 색깔이 한 내끼도 없어야  되는 것인데, 그 빼는 약이 있는데 그 빼는 약이 우리에게 몇 가지로 왔는지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십시오. 그 약이 몇 가지로 왔어요? 입으로 말하지 말고,  자, 손가락으로 들어 봐요. 뻐뜩 들어 봐요. 크게 한번 들어 봐요 뻐뜩들어 파.

들어 봐 모두 보자. 두 개 두 개, 저 세 개, 또 저 세 개. 또 저 세 개, 두 개,  한 개, 두 개, 두 개 두 개. 모두 두 개, 여기에는 또 보자. 여기에는 또 세 개.

세 개, 세 개. 세 개. 또 세 개, 그래도 목사님들이 낫다. 목사님들 전부 세 개  다 들었다. 세 개, 세 개입니다.

 세 개인데, 첫째는 뭐입니까? 세 개인데 지금 그 역사하는 것은, 자, 성령, 또  하나는? 물, 또 하나는? 피. 이 세 가지 약만 치면 쏵 탈색돼 버립니다. 이 세  가지 약만 쓰면 쏵 탈색돼 버립니다. 이 세 가지 약만 쓰면 쏵 탈색되고, 뭐  하나님의 그 심판이 꽉 쥐고 있는데 탈색 못 해요. 그러니까 이 세 가지로  탈색하면 하나님의 심판도 척 물러서서 탈색이 됩니다. 이 세 가지만 자꾸 쓰면  탈색이 되고, 또 이 세 가지만 자꾸 쓰면 하나님의 물이 자꾸 짙으게 들어서  하나님인지 사람인지 모를 만큼 우리의 마음과 우리 영과 우리 몸이 완전히  하나님과 그만 본체적으로는 일치가 안되지마는 행동으로는 완전히 하나입니다.

 이러니까, 내 마음이 하나님 마음 하나님 마음이 내 마음, 내 행동이 하나님  행동 하나님 행동이 내 행동 그렇게 역사적으로는 일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체적으로는 하나가 되지 안하고 거기에서 활동적으로는 일치가 되고  그 존영의 영광과 행복적으로는 일치가 됩니다.

 네, 오늘 또 좋은 것 배웠어요. 이것 놓지 말아요. 안 놓으면 그만 돼져요.

 이러니까, 자꾸 성경 말씀 읽고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그래 성경을 자꾸 읽고  새김질하고 고대로 실행해 보고하는데. 성경이 뭐인데? 성경이 뭐입니까? 성경이  셋이라. 성경에 서이 들었어. 성경에는 셋이 들었어. 뭐? 제일 진짜가 뭣  들었소? 성경에 제일 진짜 들었는데 뭐이 들었습니까, 성경에? ○○○씨, 성경에  제일 진짜가 들었는데 뭐이 진짜가 들었어? 성경에 제일 진짜 들어 있는 것이  뭐이야? 예? 진리? 이 엉뚱이. 이러니까 이거 지금 도통을 못 했어. 도통을 못  하니까 이래 몰리면 턱 걸리고 저래 몰리면 걸려 버려. 이제 도통을 하면 이리  가도 구불고 저리 가도 구불고 그만 사통오달 어디든지 하나라. 이래야 되는데  이리 말하면 또 딴거 말하고 저리 말하면 딴 거 말하고 아직까지 도가 통하지  안해 그래.

 제일 진짜가 뭐요? 하나님이요? ○○조사님, 피. 백점 대답했어. 피 예수님이라  말이오, 예수님. 신구약 성경의 중심이 예수님이십니다. 이거 증거이거든.

증거라 말은 다 지나가고 난 다음에 지금. 사후에 지금 우리에게 역사하는 사후  역사를 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 그 다음에 피를  조력하고 있는 것이 뭐입니까? 성령 그 다음에 또 조력하고 있는 것이 뭐입니까?  진리.

 이러니까, 자꾸 이것만 하면 되요. 이것도 순서를 이렇게 바로 고른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이것도 논리가 많이 있어요.

 이거 좀 이제 아는 사람들이 나와 꼭 하나가 돼 가지고 이랬으면 좀 힘이  있어서 이 운동이 커질 것인데 이거 우리 진영에서도 말해도 인정이 잘 안돼.

크고 작은 걸 몰라. 아직까지 철없어. 예수 믿는다 해도 설교하면 도덕 설교에만  힘을 쓰고, 도덕 설교에만 힘을 쓰고 또 사람들 좋게만 해 가지고, 백지 아닌  벌받을 걸 상 받는다 상 받는다 해 가지고  부흥회 하면, 부흥회 하면은 부흥회 하는 데서 모두 교인들이 좋아서 춤을  덩실덩실 추고 막 기뻐서 즐거워하는 그 부흥회가 있고, 또 부흥회 하면은 이거  겁이 나서 빨빨 떠는 우는 부흥회가 있고 둘 다 온전하지 못해요 울고 웃어야  돼요. 울고 웃어야 돼요. 죽고 살아야 돼요. 죽고 살아야 돼. 죽고 살아나야  영원한 것이지, 참 근심하고 울고 난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망을  가져서 기쁘고 즐거운, 이제 이김을 주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되지, 공연히 처음에 사람을 부흥회 해 가지고서 공짜배기  주는 것같이 해 가지고 웃고 즐거워합니다.

 그 내가 저 거창에 있을 때에, 그 이름은 말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이라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어디 가든지 집회만 하면은 온 교인들이 막 춤을  추고 좋아서 기뻐서 막 춤을 추고 연보도 많이 나오고 이래 춤을 추는데, 춤을  춘다고 이러는데, 그래 가지고 그때 한창 인기였습니다. 그 교회가 제일 뭐  힘있게 나오고 인기가 있고 이래 가지고 나오고. 했는데 그 볼 때 나는 조금  의문이 있었어. '저분이 말하는 것이 좀 이상하다' 늘 의문을 가지고서 이래  있었는데. 나중에 그분이 목회를 못했습니다. 목회를 못 하고 부산에 와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이래 돌아다니다가 이제 그 뒤에 뭐 어디고 옆에 와서  목회했어요. 고 옆에 목회 하다가, 교회가 돼야지요? 교회가 안 된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나중에 할 수 없어 이라다가 나중에, 요새 말 들으니까 어디  가서 무슨 시골 교회 가서 이래 본다고 말하는데, 자꾸 사람에게 바람을 넣어  주어서 사람을 기쁘게 '이렇고 이러니까 좋습니다.' 좋습니다. 자꾸 이래  말하니까 그렇지 치료를 안 해. 치료는 안 하고, 치료해 가지고서 뒤에 좋은 것  그것만 말했지, 거기다가 치료를 하나 말했으면 좋았는데 치료를 말하지 안하고  이래 놓으니까 사람들 좋고. 웃은 것이 암만 웃어 봤자 좀 있으면 며칠 안  있으면 근심이 돼 버리고 고만 나중에 가서는 낙심해. 그래서 그 교회가 무너져  버렸어요. 그 교회가 고만 헛일되고 말았어요. 아주 허무하게 됐습니다.

 자 그라면, 한번 기도합시다. 내가 기도하는 데에 여러분들이 그 깨달음이 같고  뜻이 같거들랑 아멘 아멘 해요. 아멘이란 말은 '나도 그렇게 원합니다. 거기에  내가 동참합니다. 동의합니다. 나도 간절히 원합니다.' 그 찬동하는 그 표시가  아멘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들을 세상에서 뽑아내시고, 또 믿는 자 가운데서 우리를  뽑아내사 한적한 곳을 마련하시고, 주님이 친히 오셔서 피와 진리와 성령으로  역사하여 우리의 지식을 수정하시고, 우리의 지식을 정리 정돈하시고 우리의  지식을 깨끗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깨끗게 하시고, 우리의 소망을 깨끗게  하사 우리의 여생의 생활이 깨끗하도록, 진실하도록 정직하도록 해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간구합니다. 이제 주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에는 피와 물과 성령이 함께  하여 증거함을 저들이 압니다. 우리 각자 속에 지식으로 역사해 주시고 권위로  역사해 주시고, 인정으로 역사해 주시고, 소망 달성에 준공으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 일 하고 싶으나 몸이 약해 말을 듣지 안하는 자에게 몸의 건강을 겸하여  주셔서 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원하는 자에게 주님이 시간 강건을  주셔서 깨달은 대로의 실천의 열매를 맺어 주님의 형상을 입을 수 있는 기회에  입고 주님의 영광의 찬미가 될 수 있는 기회에 영광의 찬미가 이루어지도록  주님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아직까지 주님 계시는 것을 희미하게 깨닫고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주님께서  믿지 않는 자에게 믿도록 하기 위해서 표적을 보여 주시기로 약속하였사오니 이  약속을 믿습니다. 금번에 아직까지 이런 믿음의 각오가 서지 아니하고 믿음에  그저 방황하고 이 머뭇거리고 있는 형제들에게 과연 이 말씀을 주님이 하신 것과  또 주님이 이 가운데에 우리를 모이신 것과 또 주님께서 여기에서 주관하고  계시는 것과 주님이 우리를 치료하시고 친히 함께 계시는, 전능자가 함께  계시는, 전지자가 함께 계시는 창조주가 함께 계시는, 모든 영육을 치료하시는  주와 함께 계시는 것을 저희들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이 표로 저희들에게 있는  모든 그 병을 다 치료해 주사 주님이 누구심을 확실히 아는, 믿음이 생겨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나음을 가지고 이제는 주님을 보았사오니 다시는  주님을 시험하지 말고, 주님을 의심하지 말고, 주님을 확실히 증거 받았으니  믿는 믿음을 가지고 힘써 나가는 자에게 모든 영육의 은혜를 더하여 주시고 이  은혜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긍휼히 여겨서 다시 성신의 감동으로 이  은혜를 되찾도록 하여 주시고, 또 이대로 살지 못하는 약속을 어긴 자에게는 또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은혜를 되찾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그 다음에 주께서 범죄하면 더 큰 증세가 발하리라고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하시는 것은 주님의 뜻대로 하시되 우리의 소원은 긍휼히 여기셔서,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긍휼히 여겨서 회개시키는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기다립니다. 주님의 뜻이면 이루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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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하나님의 아들/ 에베소서 1장 3절-14절/ 1989. 4. 9. 주일오후 김반석 2016.01.03
371 하나님의 아들/ 예베소서 1장 3절-6절/ 1989. 5. 11. 목후집회 김반석 2016.01.03
370 하나님의 아들/ 에베소서 1장 3절-14절/ 1989. 4. 9. 주일오전 김반석 2016.01.03
369 하나님의 아들/ 야고보서 1장 2절-4절/ 1989. 4. 2. 남지권찰회 김반석 2016.01.03
368 하나님의 아들-세 가지 특수성/ 에베소서 1장 5절-6절/ 1985. 7. 28. 주일새벽 김반석 201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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