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의 결과는 기적과 축복

 

1986. 7. 16. 수새벽

 

본문:야고보서 2장 21절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야고보서 2장 25절 또 이와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또 정탐군을 잡으러 왔을 때에 기생 라합이 정탐군들을 다른 길로 가게 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옳다 인정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아무리 그 전에는 뭐라고 말해도 하나님이 인정을 안 하십니다.

뭐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에게 바쳐 놓고 삽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아니합니다. 우상되지 안합니다.’ 예를 들어서, 암만 그렇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험을 했습니다.

시험할 때에 ‘번제로 드리라’ 하니까 번제로 드릴라고 밤새도록 나무를 쪼개고 데리고 가고 이렇게 해도 인정을 안 합니다.

이라다가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리고 가 가지고 제단을 쌓아 놓고 나무를 벌여 놓고 이삭을 번제로 드릴라고 결박해서 나무 위에 올려 놓고 이제 칼로 잡아서 번제로 태워 드릴라고 그 칼을 들어서 칠라고 할 그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금지하고 ‘이제야 내가 너를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알았다’ 하시면서 축복하실 것을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끝까지, 그 사실이 될 때까지 하나님은 인정치 안하고 무엇이든지 그거는 그만큼 그 사실이 되어졌을 때에 그때에 인정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꼬이지 안하고, 인간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요 또 마귀를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거짓말 잘하는 마귀를 잘 압니다. 거짓말하는 이 마귀, 거짓말하는 자의 애비가 되는 이 마귀가 거짓말 얼마나 하고 어누리 얼마나 하고 뭐 이중 십중 그렇게 되어 있는 외식을 잘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말로 감언이설로 간교하게 어떻게 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듣는 척 하시고 인정하는 척 하시지 절대 인정 안 하십니다. 그 사실이 이루어질 때에 그때에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도 제일 처음에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이 무슨 소리 한다고 해도 그걸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저 ‘그러냐’ 하고서 긍정하는 것 같지마는서도 긍정 안 합니다. 그러냐 하고서 사람들도 ‘두고 보자’ 하는 것입니다. `두고 보자. 그러면 네가 어떻게 하는가 보자.’ 그 결과에 하나가 이루어졌을 때에 이루어진 것만치 인정합니다.

그러면, “할 때에” 그 말은, “제단에 드릴 때에” “정탐군을 보냈을 때” 그 성 파수병들이 와서 잡을라고 할 때에 그들에게 다른 길로 저리 갔다고 다른 길로 가리켜서 그리 가도록 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가 참으로 이스라엘을 협조하는 자로구나’ 하는 것을 인정해서 의롭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때에” 하는 것은 제단에 번제로 드린 뒤에가 아니고 “때에” 하는 것은 그 동시 바로 그 시간 그 현실을, 현재의 시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이든지 됐다 하는 것이 확정될 때에, 그것이 다시는 변동 없이 그것이 됐을 때에는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즉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뭣이 되고 난 다음에도 이렇게 그저 해 준다 해 준다 하고서 시간을 자꾸 그렇게 늘여뜨리지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 아니고 우리가 믿을 때에 그 믿음이 됐다 하면 된 즉시 하나님은 거게 대한 우리에게 상대방의 의무를 이행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스스로 이 속는 사람이 안 돼야 합니다. 어제 아침에도 말했지마는 고린도후서 13장 5절 보면은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참으로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네 자신을 스스로 네가 ‘내가 참 믿나 안 믿나?’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네 자신을 확증하라. 네가 너를 스스로 시험하여 ‘나는 안 믿는 자다’ `나는 믿는 자다' 그렇게 확증을 지우라 했습니다. 그 거짓부리로 자꾸 속고 지내가지 말고.

믿음의 순서로 말하면 하나님의 이 선포해 놓으신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자기가 읽고 들어서 압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불변의 말씀.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가감을 할 수 없는 이 정확무오한 절대 권위의 이 말씀을 그 사람이 참으로 읽어보고 들어보고 이래 가지고 이 말씀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 사실을 진찰해서 알려고 하면은 뭘로 알 수 있습니까? 뭘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까? 참 아는지 모르는지 무엇을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믿어지는지, 믿는지 안 믿는지 하는 그것을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안다고 제가 해도 그 말씀이 믿어지지 안하면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참 자기가 바로 알았다면 틀림 없이 정확무오하다고 믿는 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지식이, 아는 것을 지식이라 하는데. 그 지식이 참 아는 지식 참된지 거짓된지 하는 것을 모든 세상의 많은 지식들이 있는데 그 지식을 참 아는지 모르는지 하는 그것을 다 시험해 볼 때에는 믿는지 안 믿는지 그걸 보아서 알 수가 있다 이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 세상에 있는 그 지식은 다 거짓부리가 많기 때문에 그것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인정한다고 하면은 안 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요 말을 다른 데 나가 가지고서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 아는지 참 모르는지 그것은 그 사람의 믿음을 보아서 알 수가 있다.’ 하는 그런 말은 이 세상 지식을 아는 그 시험하는 것으로 동일로 생각하고 혹 그것이 ‘틀렸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고 정확무오한 그 절대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참 알면 틀림없이 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알면 참 믿음을 틀림없이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 지식은 그와 같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지식은 그 지식이 실상이 절대성 무오성 정확성 불변성 가감을 못 하는 어누리 없는 이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제가 읽고 듣고 뭐 설교도 하고 자꾸 이렇게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을 입으로 설교한다고 그 사람이 그 지식을 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한테 증거를 잘 해서 잘 가르친다고 해 가지고서 안다고 인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 아는가 모르는가 하는 실상은 어데서 나타나느냐? 그 결과인 믿는 데서 나타납니다. 그 사람이 참 알았다면 틀림없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또 그 사람이 믿는지 안 믿는지 하는 그것은 어떻게 시험해서 알 수가 있느냐? 그것도 그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ㅡ여러분들이 잊어버리지 않게.

믿는지 안 믿는지? 그 사람이 믿는다고 뭐, 기도도 아침마다 ‘주여 내가 확신합니다. 확신합니다. 믿습니다. 믿사옵나이다.’ 아무리 이렇게 하나님 앞에 다짐을 하고 믿는다고 해 쌓아도 ‘저 사람은 참 하나님의 말씀을 참 믿는구나’ 그렇게 그거 보고는 인정을 못 합니다.

그러면, 참 믿는지 안 믿는지 그 실상은 우리가 시험해 볼 때에 뭘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까? 그 믿음의 결과는 뭐입니까? 녜, 믿음의 결과는 행함입니다. 그 사람이 행할 때에 비로소 ‘믿는다’ 저 사람은 믿는다 하는 것을 사람도 인정해야 되고 또 하나님은 그렇게 인정하십니다.

그 사람이 행할 때에 네가 ‘믿는구나’ 인정하게 돼. 행할 때에 인정합니다.

행할 때에. 행하기 전에는 암만 입술로 떠들어 쌓고 이래도 인정 안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주권자라. 하나님의 주권을 이 사람이 믿나 안 믿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나 안 믿나 하는 것을 뭘 보아서 그 사람을 알수 있느냐?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지 안 믿는지 그 사람을 시험해서 자신도 알고 다른 사람도 알고 하도록 그렇게 할라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공부를 시키는데 공부 시킬 때에 가정 교사가 누구라고요? 저 ○선생. 되게 되구나, 되. 자꾸 조네. 자네.

엔간히 인계가 됐는가? 인계가 엔간히 됐어요? 삼분의 이 정도 됐어? 바짝 인계해. 그 인계하기 전에는 결혼했지마는 같이 동거 못 하게 했어. 안 하고 인계만 할라 해도 지금 뭐 졸리워서 골케골케거리는데 그게 그래 하면 안 돼.

인계 얼른 해야 또 갈 사람이 가지.

그 현실이 알뜰한 가정교사와 같습니다. 부모가 가정 교사를 밥 먹이고 옷 입히고 돈 주고 이렇게 막 대우해 가지고 그 아이 공부한 거 실지 시험이 오기 전에 예비 시험으로 가정에서 자꾸 시험 치러 가지고서 그 실력을 양성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 신앙을 기르시는 사랑의 주님이, 내가 하나님 말씀을 이제 알고는 믿는다고 자기는 믿는 줄 압니다. 그거 거짓말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전능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습니다.’ 이렇게 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증거도 하고 뭐 설교도 청산 유수로 잘 합니다.

그런데, 믿는지 안 믿는지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다음에 대환난 때 오면 헛일이라 그말이오. 하늘나라 가도 또 헛일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미리 예비 고사를 치를 수 있는 그 가정 교사를, 예비 시험을 치를 수 있는 가정 교사를 들여 가지고서 그 아이의 그 실력이 어떤가 좀 예비 시험을 자꾸 치뤄 가지고 실력을 길러 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의 실력을 시험하십니다.

시험하면서 어떻게 하는가? 자기에게 반 이해가 되고 이해가 안 되는 그런 현실을 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참 이해가 안 될 만한 그런 어려운 현실을 줄 때도 있어.

공산주의가 독침을 가지고 와 가지고서 ‘너 이놈 예수 믿는 거 내놔라. 안 내놓으면 이게 독침인데 너 그만 이걸로 찌르면 그만 너는 바로 그만 직사된다.

이러니까 네가 예수 믿는 것을 내놓고 우리 사상을 따를래 안 따를래?’ 이렇게 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지 안 믿는지 하는 것이 나타난다 그거요.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믿는다고 하면은 그 독침을 가지고 와 가지고서 믿음 안 내놓으면 찔러 죽인다고 할 때에 그러면 그 독침 가지고 온 공산군, 그러면 그 공산군을 보고 고만 두려워서 떨면서 그때 ‘나는 그라면 뒤에 내가 예수 믿지 지금은 내가 안 되겠다. 이라면 이 자리에 죽겠다.’ 죽겠다 싶어서 ‘예 그라면 내가 당신네들 시키는 대로 하고 그래 신앙 지키지 않겠습니다. 신앙을 고집하지 않고 당신네들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 하면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이라 말이오. 거게서 나타났어.

또 거게서 ‘주님이 주권 개별 섭리하시는 이인데 이것도 다 주님이 주권하신 것인데’ 이렇게 자꾸 말합니다. ‘이것도 주님이 주권하셔서 이렇게 하신 것인데, 주권하셔 이래 하신 것인데.’ 자꾸 이라면서도 그라기는 입으로 그라는데, 한 사람은 그라면서 말로는 ‘주여 믿습니다. 나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이 주권 개별 섭리하시는 주님이신데 이것도 다 주님으로 말미암은 일인데 뭐 염려할 게 두려할 게 뭐 있느냐?’ 자꾸 이라면서, 그라면서도 막 발발발 떨면서 죽을 지경입니다. 그렇게 자꾸 말은 하면서도 발발 떨려 죽을 지경이고, 또 한 사람은 그렇게 말을 하지 안해도 속으로 생각하기를 ‘주님이 다 주권 개별 섭리하시는 것인데 주님이 지금 나를 시험하시는구먼.’ 이렇게 이걸 깨닫고, 또 주님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안 사랑하는지 이걸 여부를 알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 주님하고 자기하고 지금 은밀한 연애를 하고 있는 그런 장면이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꾸 ‘죽인다, 죽인다. 내놔라, 내놔라.’ 이라니까 그래 웃으면서, 그 사람한테 말하지마는 그 사람한테 말하는 게 아니고 주님에게 말해 가지고, ‘그것은 어림도 없습니다. 내가 어떻게 주님을 내놓겠습니까? 안 내놓습니다.’ 아주 주님이 그 배후에서 보고 계신 줄 알기 때문에 찰떡같이 강하게 말합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독침으로 뭐 와 가지고서 뭐 몇 열번 뭐 스무 번 죽는다 할지라도 어림이나 있습니까?’ 그라면서 그렇게 아주 강한 소리를 막 하고서 억세게 막 이렇게 합니다. 또 그라는 사람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그저 좋아서 못 견뎌 웃으면서 아주, 사랑하는 남편이 자기에게 ‘참 나를 사랑하나 안 사랑하나?’ 하는 것을 시험해 볼라고 지금 그와 같이 하는 것을 안 부인이 그럴 때에 따그르르르 웃으면서 ‘녜,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좋아서 말하는 또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자 이제 일호, 내놓은 사람이지. 이호는 또, 억세게 말하는 사람이지.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인데 문제가, 어림도 없습니다.’ 또 억세게 말하는 사람이라. 또 그때 삼호는 이래 듣고서 아주 따그르르 웃으면서 ‘내가 어떻게 내놓을 수가 있습니까?’ 속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러면 일호 이호 삼호인데, 일호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믿는 사람입니까 안 믿는 사람입니까? 여기 안경쟁이 말해 봐. 안 믿는 사람이지? 장가 갔나? 안 갔어? 학생 너도 그럴 때에 ‘그만 나는 그라면 안 믿고 그만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면 안 믿는 사람이지? 그거 확정해. 안 믿는 사람 무슨 구원 있는가 말이요? 그런 거 아니야? 또 그 뒤에, 그거는 ‘안 믿는 사람’ 맞았어.

답이 맞았습니다.

그 뒤에, 억세게 강하게 이래 주장을 하고, 그거 이호. 아까 틀렸다. 이호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 두려워 못 견뎌 막 발발발 떱니다. 발발 떨어. 고거 이호 합시다. 그 이호는 믿는 것입니까 안 믿는 것입니까? 이 선생님. 나이 많은 선생님. 안 믿는 것입니까 믿는 것입니까? 처음으로 왔네. 이 서부교회 교인이라요? 서부교회 교인입니까? 아닙니까? 처음 왔어요? 딴데서 많이 믿었습니까? 그라면 인제 대답해 봐.

그라면 그 이호 말이요, 독침으로 막 죽인다 이래 하니까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이 주권 개별 섭리하시는 주님이 아닙니까?’ 이 쌓기는 쌓아도 막 무서워서 떨어서 발발발발 떨고 있습니다. 그 사람 믿는 사람이요 안 믿는 사람이요? 안 믿는 사람. 잘 배웠구만. 그래 요래 똑똑히 배워야 돼. 안 믿는 사람이야.

또 그다음에 막 억세게 ‘내가 그렇다고 죽기 아니라 어떤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내가 주님을 내놓고 너거 말 들을 줄 아느냐? 내 신앙은 변동할 수 없다.’ 이렇게 강하게 억세게 막 강하게 호령을 치고 고함을 지릅니다. 인제 그 사람은 믿는 사람이오 안 믿는 사람이요? 믿는 사람. 그래 그 믿는 사람이지.

그런데 또 그라니까 속으로 삐쭉삐쭉 웃고 좋아서 막, 그 피부 껍데기를 보니까 좋아서 못 견뎌서, 마치 자기 사랑하는 남편이 자기에 지금 ‘이 참말로 내 정절 부인이가 사랑하는 아내가?’ 싶어서 그렇게 부러 시험해 볼라고 이렇게 하는 그 사실을 알고는 말이요.

그 알고 ‘이럴 때 한번 잘 보여야 되겠다’ 싶어서 속으로 빙긋빙긋 웃으며 좋아서 못 견뎌서 웃음을 금하지 못하면서 아주 피부까지 기쁜 즐거움에 연애하는 마음을 막 가져 가지고서 그렇게 하면서 기뻐 즐거워하면서 ‘녜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 그 사람 믿는 사람이요 안 믿는 사람이요? ○○○집사님, 믿는 사람이라.

그러면 일호 이호 삼호 사호까지 있었는데 누가 제일 잘 믿는 사람입니까? 사호가 제일 잘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보십시오. 녜, 이게 잘 믿는 사람이라. 이래서,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할 때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그게 참 믿는 증거라 말이오. 그거 없으면 소용 없어.

그러면 이제 믿고 안 믿는, 그 믿는 것도 이호로부터, 이호도 믿고 삼호도 믿고 사호도 믿는데, 믿는가 안 믿는가, 잘 믿는가 못 믿는가 하는 그것은 뭘로 가지고서 시험을 할 수 있습니까? 뭘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까? 뭘 보아서 알 수 있어? 이제, 그 사람이 어떤 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를 안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다 믿는 사람이니까 그 믿는 그거는 뭘 보아서 알 수 있어? 그렇게 억세게 대답을 하고 막 웃고 즐거워 하니까 그건 뭐입니까? 그거 뭐이요? 그거 행함 아니요, 그게? 그거 행함이지? 행함 아니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그 증거는 그 사람의 행함으로 알았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이호도 행했고 삼호도 행했고 사호도 행했는데 그 행함에 대해서, 이 사람이 참 일등 행함을 했는지 이등 행함을 했는지 삼등 행함을 했는지 자기가 믿는다는 믿는지 안 믿는지 하는 그것을, 내놓은 사람 있고, 두려워 떨려 못 견디면서 그런 사람 있고, 담대히 고함 지르면서 주님을 배반치 않겠다고 하는 사람 있고, 좋아서 못 견디면서 배반치 않는 사람 있고 그렇게 있었는데, 이호 삼호 사호는 믿는 사람인데 그 믿는 그거는 그거 뭐입니까? 그거는 믿는 것입니까 행함입니까? 그거 믿는 것입니까 행함입니까? 그거는 행함이라 말이오, 행함.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여부는 그 행함으로 나타나지. 그건 행함이라 말이오.

알겠어요? 행함 됐어? 행함이라 말이 맞아요? 저 선생님? ○선생님? 행함 맞아? 행함이 맞는데, 그러면 일등 행함인지 이등 행함인지 삼등 행함인지 그 사람의 행함이 어떤 것인지 하는 것은 뭣을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까? 피부를 보아서 알 수 있다? 녜 피부를 보아서 알 수가 있다. 그 피부 보아서 알 수 있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거는, 그 행함의 결과는 뭘로 봅니까? 기적과 축복으로 옵니다, 행함의 결과는.

그 사람이 참말로 일등 행함인지, 뭐 웃어도 그것도 소용 없다 말이오. 웃으면서 주님하고 연애하는 것인 줄 알고 자신이 벙긋벙긋 웃고 이래 피부까지 좋아하고 이렇게 하고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 믿음이 바로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말이오. 바로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 하는 그 여부는 “그 결과를 보아서 알 수 있느니라” “나무는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안다” 그 결과를 보아 알 수 있는데 그 결과는 뭐입니까? 행함의 결과는 뭐이지요? 행함의 결과는 뭐입니까? 기적과 축복! 그 기적과 축복이 안 오면 그 행함이 아직까지 뭣인가 볼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자꾸 고쳐야 됩니다.

‘내가 행했는데 이 기적과 축복이 왜 안 오느냐?’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자기는 ‘기적과 축복이 안 오는 것 보니까 내가 행하기는 행했다고 행했는데 내 주관적 비판으로 행했다 하는 것이지 이 행함이 바로 되지를 안했구나.’ 바로 되지 안했으니까 자꾸 이모 저모 살펴 가지고 자꾸 고쳐서 바로 되도록 할라고 애를 씁니다.

인제 그러니까 바로 되구로 할라고 애를 쓰는데 그래 우리는 뭘 봐서 알 수 있습니까? “기적과 축복이 올 때에” 여기도 때가 필요하다 말이오. “기적과 축복이 올 때에” 자기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고 또 하나님의 현저히 축복을 이렇게 주셨을 때에 ‘이제 여게 대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구나.’ 그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이라. 그러면 자기 주관으로서 생각해서 그만침 인정은 하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의 믿는 그 믿음의 생활에 하나님의 기적이 따르지 안하거들랑은 자기 믿음 생활이 잘못된 줄 알고 자꾸 그것을 살펴서 나벼서 고쳐야 됩니다. 내가 어느 면이 잘못됐노? 이렇게 쉴새 없이 부지런히 고쳐 가지고서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나와야 된다 그말이오. 나와야 돼.

기적과 축복이 나와서 하나님이 능력으로 도와 주시고 또 하나님이 이런 거 가지고 축복을 해 가지고서 모든 일이 잘 돼 누가 봐도 ‘저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 받았다. 요번 그 문제에서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도와 그렇지 그리 안 하면 어림이나 있나? 그거는 하나님의 능력이 같이 하셨다. 기적이 왔다.’ 이런데, 그러면 기적과 축복이 그것이 또, 기적과 축복 그것이 참 잘됐는지 못 됐는지? 기적과 축복을 받았으니까, 행함의 결과로 기적과 축복을 자기가 받았는데 받았으면 이제 안심할 수 있습니까? 기적과 축복 받은 그것은 지금 어데서 시험합니까? 뭘로 가지고서 그 기적과 축복 받은 것이 그것이 완전한지 불완전한지 하는 그것은 어데서 그 결과가 나타납니까? 그리스도의심판대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거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현재 닥쳐 있습니까 아직까지 미래에 있습니까? 미래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행해 가지고 하나님이 내 행함을 인정하셔서 기적과 축복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줬습니다. 그러면 거게 대해서는 이제 안심이다 하고서 안심하고 거게 대해서는 인제 다 그만 그것에는 만점이라 하고 안심할 수 있습니까, 죽을 때까지 행여나 그 속에 또 뭐이 잘못 됐는가 싶어서 그 마음이 항상 걱정을 가지고서 살피고 그런 사람이 돼야 됩니까? ‘이제 이것이야 행함의 결과로서 하나님께서 기적과 축복까지 줬으니까 문제할 게 뭐 있는가?’ 하고서 안심을 해야 되겠습니까, 거게서 항상 근심 걱정으로 뭣이 잘못 됐나 하고서 또 심사하고 심사를 해 봐야 되겠습니까? 어째야 됩니까? 또 심사를 해 봐야 돼요.

시험을 칠 때에 시험지 내는 사람, 어떤 사람들은 시험지 내는데 일등할라고 말이오. 일등 할라고, 제일호 맨 밑에 놓을라고서 그거 할라고서 막 서로 경쟁을 해서 그만 이래 가지고 먼저 갖다 놓을라 합니다. 빨리 먼저 갖다 놓을라 하는데 이거 다시 재심사를 안 해 봤다 말이오. 재심사 안 해 보고 갖다 놓은 사람들은, 앞에 갖다 놓기는 놓았는데 아는 것도 그만 그 착각해 가지고서 잘못되기 쉬워.

이러니까 반드시 시험을 치고 난 다음에는 세 번까지 훑어 봐야 됩니다 시험을 딱 먼저 퍼뜩 쳐 놓고 난 다음에는 세 번까지 또 읽어보고 읽어보고 또 조사해 보고 조사해 보고 조사해서 세 번까지 조사해 봐서 ‘됐다’ 할 때는 갖다 놓는 거라.

그러니까, 일호로 갖다 놓아도 세 번까지 재심사 삼차 심사를 해 가지고서 일호에 갖다 놓은 사람은 그 사람은 항상 백점이라. 항상 백점. 너 학교 다닐 때 전교 일등 했다 하지? 너 네까짓 거 때문에 내가 하는 게 아니라, 공부도 저게 잘하지도 못했대. 저거 구역장 한테 물으니까. 처음에는 보통 중간쯤 됐는데 저거 집에서 교회 다니면서 공부 안 한다고 야단을 치고 뭐 이래 쌓았는데 뭐라 하고 이라니까 이제는 공부를 잘 해야 이거 부모가 말 못 하겠다 싶어서 그래 가지고 새로 출발해 가지고서 공부를 해서 내가, 그 구역장이 좀 과장을 했는지 몰라도 전교에 일등을 했대요.

그거 다 됩니다. 주님을 위해서, 주님이, 머리 만드신 이가 주님이시요, 또 지혜와 총명을 주신 이가 주님이시요, 이 두뇌에 뭐 컴퓨터가 몇 개? 천억. 이 컴퓨터 천억을 만드신 이가 주님이시기 때문에 천억 개라도 컴퓨터 하나에 하나만 꼭꼭 찍어 놓으면 그게 다 기억 다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거라. 이러니까 이것만 활용하면 세계에서 제일 이거 수재가 될 수가 있다 그거요.

이런데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안하니까 그놈의 컴퓨터 사용을 못 하게 해 버려, 하나님께서 딱. ‘너는 이놈아, 너는 그저 하루 세 끼 밥 먹는 거나 기억하고, 잠자는 거나 기억하고, 너 출근할 시기나 기억하고, 또 일하는 거 그거나 기억하지 딴거는 기억을 하게 안 해 주겠다.’ 하고서 하니까 제까짓게 그거밖에 몰라.

짐승도 말이요, 짐승도 그 사료 먹는 시간 압니다. 그 시간이 좀 더디면 자꾸 우요. 사료 먹는 시간도 알고, 또 소도 일하러 갈 시간도 알고, 당나귀도 주인 태우고 지금 어데 갈 시간도 알고 이래 알지마는 그 이상은 모르게 하거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뇌 만들어 놓은 컴퓨터를 천억이나 만들어 놨는데 세상에 단어가 암만 많아도 자, 천억되는 단어가 있소? ○○○선생, 영어는 단어가 몇 개나 되지? 천억 돼? 천억이 아니라 뭐뭐 가 붙이지도 못 해, 그까짓 거.

이러니까 컴퓨터 척억이면 그 컴퓨터에는 딱 찍어 놓으면 그대로 언제든지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 천억이나 되면, 이 듣고 본 거 아는 걸 천억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 뭐 사람들이 당하지 못할 거라.

하나님이 이렇게 지혜와 총명을 탁 열어 주면 그 컴퓨터 천억을 다 활용할 수 있도록 해 놓으면 그 사람은 일등 안 하고 어짤 거라? 이런데 안 믿기 때문에 탈인 거라.

시험지를 여러 번 재심사 하고서 내는 것처럼,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에 “자기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다” 그 말은 자기 마음으로서는 아무리 살펴봐도 잘못된 것이 없다 말이오.

잘못된 것이 없지마는 “자책할 게 없다” 자기 마음으로는 잘못된 게 없지마는 모든 것을 아시지 못함이 없으시고 모든 걸 아시는 주님 앞에 심판을 받을 터이니까 그걸 생각하면, 자기는 흠이 없지만 자기는 완전치 못한 자기 때문에, 나는 불완전하는 자니 내 마음으로서는 만점이 돼도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 앞에 가면은 이게 흠점이 어떤 것이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발발발발 떨면서, 자책할 게 없으나 이로써 옳다 인정하지를 못하고 발발 떨며 가는 것이 인간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는 자기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이것을 시험해야 됩니다. 시험은, 아는지 모르는지 시험은 어데서? 믿음에서. 또 믿는지 안 믿는지 시험은 어데서? 행함에서. 또 참 바로 행했는지 안 행했는지 하는 시험은 어데서? 기적과 축복에서.

기적과 축복을 받았으니까 그 기적과 축복이 바로 된 것인지, 만점인지 만점 아닌지 이것은 어데 시험해야 됩니까?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까지 자꾸 살피고 살피고 이래 나가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 그말이오.

이런데 이거는 공연히 자기 주관을 믿어 가지고서, 왜정 말년에, 자, 그때 선교가 얼마나 됐는냐 하면은 한 오십 년 넘어 됐었습니다. 우리 나라에 장로교 시작도 한 오십 년 됐고, 이만침 한 오십 년 가르쳐 놨으니까 이제 저거들이 믿는 줄 아니까 믿는가 안 믿는가, 이거 목사들도 믿는데 제가 믿는 줄 알고 서로 총회장 될라고 막 운동을 하고 똑 국회의원 될라 하는 거 모양으로, 요새도 그뭐 이 성직을 맡을라고 운동을 해서 내가, 어떤 잘 믿는 교파인데 내가 그것을 물으니까 그때 그것을, 거게도 와서 뭐 부산파 있고 대구파 있고 어데 있는데 거기서 그거 운동을 하느라고 불고기를 몇 차례를 내서 진뜩 모두 먹였다고, 불고기 몇 차례 먹였다 하는 그거까지 내게 들어왔다 말이오. 어데 가서 불고기 몇 차례 먹인 사람은, 먹었는데, 몇 차례를 먹였는데 실상 당선은 어만 데로 딱 그만 당선이 돼 뒤집어져 버렸다 말이오. 딴데로 돼 버렸어. 내가 그 교파는 말하지 안해요. 이거 말하면 실감 있고 맛이 있는데도 그라면 자꾸 손가락질을 해 쌓아서.

어떤 분이 나한테 말하기를 그분이 말해서 ‘목사님 설교록은 참 아주 은혜가 돼서 내가 앞으로 계속 사 보겠습니다. 내가 그거 다 열람하고 이랬는데 어떤 그분에 대해서 이래 좀 걸리는 소리를 해서,’ 그분 헐었다 말이오. 헌 게 아니고 그거 틀리면 죽기 전에 고쳐야 되지 않습니까? 이래서 그게 좀 안 됐더라고 이래서 그걸 말하더라고.

이래서 그러면 내가 말했어. ‘아이구 이거 안 됐다. 이거 그라면 도로 그 시험드는 사람 많으니까,’ 설교록에 사람 이름은, 사건은 기록하고 사람 이름은 기록하지 말고 사람 이름은 돌뱅이를 하나 둘 셋 요라면 요 돌뱅이 속에 뭐이 들었는지 요건 누군가 요거 모를 사람 모르고 돌뱅이로 하고 이름을 쓰지 말아라 내가 그리 말해 놨어요.

그랬는데 하나님께 한번 너거가 믿는 안 믿나? 이것들이 믿지도 안하면서 믿는 줄 알고 있으니까 믿나 안 믿나 보자, 그 신사참배 그것이야 뭐 큰 것도 아니였는데 신사참배 떡 보내 놓으니까 그 장자 제일 많이 한 사람은 전부 다 졌습니다. 박사 쳐 놓고는 ○○○박사 하나가 신사참배 안 했는데 그 사람은 신사참배 안 해도 저 일본으로 도망가고 저 만주로 도망가고 마지막에 8 5 해방은 저 만주에 도망가 있어 만주에서 모셔 왔습니다.

이렇지, 그거는 피한 것이니까 숨은 것이니까 그게 승리요 그거 패전이요? 은밀히 말하면 패전이라. 승리는 아니라. 승리는 아니라 그말이오. 승리 아닌 거는 패전이지. 패전 아닌 거는 승리지. 요 둘로만 말해야 돼요.

그걸 사람들은 말하기를 ‘승리는 안 했지만 패전이라 할 수는 없지’ 그래 질매 말을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거라. 자, 승리가 아니면 뭐입니까? 패전이지. 패전이 아니면 뭐이요? 승리지. 주님은 그렇게 말했다 말이오. “나를 인정하거나 안 인정하거나 둘 중에 하나지, 부인하거나 인정하거나 하는 둘 중에 하나지 둘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말했어.

이라니까 그만 그렇게 되지, 또 그러니까 후회를 하고 믿는다고 하는 것이,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런 사람들이 전부, 그만 해방이 되니까, 막 그 해방이 되고 나니까 또 뭐 피난 왔다가 지금 뭐 전부 서울로 환도한다고 야단을 지기고 가 가지고 또 그때 또 감투 싸움을 야단을 지깁니다.

야단을 지기니까 이제는 이거 믿는가 안 믿는가 보자 하고서 인민군을 보내니까, 인민군 보내니까 뭐 인민군이 온다 하니까 소식은 그래도 목사들이 잘 들어요.

교인들이 많으니까 소식을 전해 주거든.

들으니까 교인들이야 뭐 오든지 말든지 다 내버리고, 교인들 다 내버리고, 전부 가 가지고서 ‘아이, 목사님 이거 지금 공산주의 쳐 내려온다 하는데 이거 목사님 어째야 되겠느냐?’ 목사님 걱정을 해서 목사님 어디로 숨기든지 피난 시킬라고 가니까 벌써 도망가고 없어. 벌써 가 보니까 목사는 다 도망 가 버리고 목사가 있어야지, 뭐? ‘아이구’ 그때 사람들이 ‘이거 목사를 믿었더니마는 우리한테 연락도 안 하고 자기만 살라고 도망가 버렸네, 이거 참.’ 이래 가지고 이놈의 목사는 믿을 목사가 못 된다고 그때 평가가 옳은 평가가 나왔는데, 그래 가지고 떡 피난해서 딱 6 5가 지나고 난 다음에는 또 감언이설로 또 꾀운다 말이오, 또.

마귀 요놈한테는 꾀이고 난 다음에 또 꾀우면 또 속습니다. 살살살 꾀우기를 ‘그때 이렇고 저렇고 이렇게 저렇고 이렇고 저렇고 이렇고 저렇고’ 이라며 또 자꾸 이래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또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또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또 그 목사에게 들어붙어 가지고 또 지금 야단을 지긴다 그말이오.

딱 그랬으면, 무슨 소리 한다 해도 한번 속았으면 실지로 봤으면 ‘예예, 그럴 수 안 있겠습니까?’ 해도 ‘이 목자는 환난에서 나를 인도해서 생명길로 인도하지는 못할 목자다, 이거는 삯군 목자다. 이리가 오는 거 보면은 삯군 목자는 자기가 생명을 아껴서 다 도망 칠 것이고 참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다 했으니까 이는 믿을 수 없는 목자.’ 이럴 건데 그 뒤에 또 거짓말에 또 속아.

공산주의는 마귀를 대상한 것입니다. 이북에서는 말이오. 석 달이면 해방된다.

석달이면 해방된다 말은 남한을 다 공산화시켜 가지고서 전부 공산화된다 그말이오. 석 달 만이면 해방된다 하는데, 석 달이라 했으니까, 해방 후, 이 해방은 내나 그 공산주의 해방이라. 일정 때 해방이 아니고 해방도 둘이라.

그래 ‘석 달이면 전부 지금 민주주의 다 정복해 버리고 공산주의로 우리가 다 자유 해방된다.’ 공산주의화된다 그말이요, 그 해방은. ‘해방시킨다’ 이라는데 석 달이면 해방된다 하는데, 자, 왜정 말년 해방 후에 석 달로 계산하면 몇 번이나 되는 줄 누가 똑똑히 아는 사람 한번 계산해 보이소. 몇 번이나 됩니까? 이 컴퓨터가 있으면 그만 딱딱딱 하면 전자계산기 한번 하면 될 건데. 몇 번이나 되지? 석 달이면 일 년에 몇 번이요? 네 번 아니요? 일 년에 네 번이지. 또 지금 몇십 년이라? 사십 년? 사십 년이면 몇 번이라? 백육십 번을 속았지마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석 달이면 된다. 석 달이면 된다.’ 석 달이면 해방한다고 석 달로 항상, 길게도 말 안 하요. ‘석 달이면 된다.’ 이래 가지고서 백 육십 번을 속아도 또 ‘석 달이면 되지’ 하고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이 거짓말쟁이들에게 속는 자는 속았지만 ‘사람이 그럴 수 안 있나?’ 잔뜩 그때는 관용합니다. 아주 너그러운 인간이오. 속고 나면 ‘한 번 속았으니까 이만하면 두 번 속으면 죽는다!’ 이래야 될 터인데 속고 난 다음에도 또 ‘그럴 수 있지 않느냐?’ 제딴에 또 누그럽고 대단히 관대한 사람으로서 이해 있고 이해 넉넉한 사람으로서 제딴에는 되지 못한 게 된 체 해 가지고서 ‘이 한번 속았지마는 또 사람이 그럴 수 안 있겠나?’ 관용하고 또 그다음에 두번째 또 속습니다.

평생 거짓말해도 평생 속아도 평생 속는 그런 인간은 희망이 없어! 알겠습니까? 한 번 속았으면 두 번 안 속아야 돼! 그래서 “주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말은 이제 한 번 속은 것이 환하게 나타났거들랑은 그다음에 한 번 봤으면 됐지 또 뭐 볼 게 뭐이야? 그러니까 그때 6 5 때에 왜정 말년 때에 신사참배 한 것을 감언이설로 이래 했으면, 뭐라고 쌓아도 ‘그때 되니까 뭐 왜정 말년 되니까 다 팽개쳐 버리고 신사참배 하고 이라고 오히려 감옥에 가서 신사참배 안 하는 사람, 돌아다니며 신사참배 안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믿음 없다고 다 미치괭이로 이렇게 보고 취급하고 이라더니마는 해방 후에는 그 회개하고 자복하고 한 다음에 또 일등 목사라 하면서 제가 회장하고 뭐 총회장 노회장 할라고서 운동하고 하니까 저런 저거는 마귀 새끼다.’ 이렇게 생각해야 돼.

그거 ○○파들은 이 현실 교회 목사들 전부 마귀 새끼라 합니다. 마귀 새끼라고 말 안 해요. 만나면 그거 마귀 새끼라 해요. ○○○목사님은 감옥에서 나오지 안했습니까? 안다 그말이오. ○○교회 제가 집회할 때에 ○○교회 교인들이 나하고 둘이 식사하고 둘이 오니까 나한테는 나를 모르니까 말 안 하고 떡 ○○○목사님 보고서 ○○○목사님 떡 보더니마는 뭐라 하는 게 아니라 ‘마귀 새끼’ 마귀 새끼 이래. ○목사님 보고, ○○○목사님 보고 ‘마귀 새끼. 물러가라.

마귀 새끼 물러가라’ 이래요.

그라는데 그거 나는 깜짝 놀래서 ‘이게 어떤 사람이 이 소리를 하노?’ 그때는 내가 아직 그래 조금 좀 부흥사로 돌아다니기는 돌아다녀도 조금 주먹이 있고 혈기가 있거든. ‘이놈의 새끼를 이거 뭐이라 거머쥐고 한번 꽂아볼까?’ 이러며 이래 떡 이라니까 ○○○목사님이 떡 웃으면서 ‘그래 마귀 새끼라 말이 맞아.’ 이래요.

이래 내가 그거 ‘왜 그렇습니까?’ 이라니까, ‘저 ○○교인인데 ○○교인은 황거요배 안 할라고서 이래 감옥에서 이래 가지고 있다가서 나왔고 그때 우리는 모두 너무 고난이 심해서 황거요배는 하고 신사참배만 안 하고 거기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마귀 새끼라 하는 그 말이 맞아. 참 우리가 마귀 놀음을 하거든.’ 이래요. 그 회개를 깊이 하고 그 사람들 존경하는 모양이라. 그 마귀 새끼라 이래.

이런데,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해 놓고 그라고 난 다음에, 그래 가지고, ‘나는 진 자이니까 나는’ `노회장 하십시오. 총회장 하십시오.' `아이고 내가 패전한 자인데 내가 뭘 해?’ 이렇게 해야 될 터인데 그만 며칠도 안 돼서 서로 노회장 할라고 운동하고 돌아다니니까 그게 양심도 없고 그런 사람을 뭐라 하요? 뭐 철면피라 하더나? 낯짜구가 철판이라. 철판 낯짜구라. 아무 감각이 없는 인간이라 그거요.

이랬는데, 그라고도 또 6 5가 지나니까 양떼 다 내버리고 다 도망 다 쳐 버렸어.

그래도 양떼나 수습이나 하고 뭐, 도망도 할 수 있어요. 피난도 갈수 있어요.

피난도 갈 수 있지마는 그래도 자기가 연락할 자는 연락하고서 이래 보고서 그래도 피난해도 양떼들 피난하라 하고 이래 놓고서 맨 뒤에 해야 그거 될 것 아니겠소? 이랬는데 가 보니까 다 가 버렸어. 가 보니까 벌써 갔어.

○정권 말년에, 이거 지금 자꾸 뭐 ‘안심하시오. 안심하시오.’ 이라고 ‘염려 없습니다. 안심하시오.’ 이랬는데 방송은 자꾸 하고 있는데 나중에 가 보니까 벌써 그 방송 어디서 하는 게 뭐 대전 어데서 한다 하더나? 어데서 한다 하더나? 어데서 했어? 군인 생활 했으니까 알지? 이름이 뭐이지? ○집사. 몰라 그 남편이 군인 옳은 군인이 아니로구먼. 군인들은 그런 걸 딱 알아야 되는데 다 알고 있어야 되지 모르면 되는가? 그래, 그때 어데서 방송했지? ○○○집사님. 서울서 했어, 피난 안 가고? 아, 그거 더 흉측하구나. 사람은 피난 다 가버리고 저거는 없으니까 녹음을 가지고 서울서 지금 거서 녹음으로 가지고 방송했대요.

이러니까, 그때 ‘이거 믿을 수 없다’ 그만 그것도 또 예사라. 그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됩니다. 기억해서, ‘우리 ○정권은 사람은 피난 갔고 녹음으로 가지고 거게서 안심 안심 안심하시오 이렇게 해 놓고서 그렇게 했다.’ 이렇게 그걸 기억하고 있어야 된다 말이오.

물론 그런 이유야 있지요. 그때 자꾸 ‘그래도 곧 이긴다. 이긴다. 이걸 전부 격퇴 시킨다. 시킨다.’ 이라니까 너무 민심 소동이 안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은 있기는 있지마는 그것을, 어쨌든지 우리 위해서 생명은, 또 자기들 생명 안 내놓은 것은 ‘내가 살아 있어야 뭐 되지’ 이라지마는 생명 바치는 그 정치가 아니면 정치가 아닙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목자는 양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그것이 선한 목자라” 했는데, 뭐 말이야 할 수 있지요. 왜정 말년 때 말하기를 ‘내가 감옥에 들어가 있으면 이 교인들 다 뭐 절단나는데 내 구원만 잘 이룰라고 양떼들 냅두고 가면 이것들이 이리가 어찌 될 것인가?’ 이래서 양떼를 위해서, 감옥에 가면 좋기야 좋지마는서도 감옥 안 가고 있었다고서. 그렇게 핑계하면 또 그래 또 곧이 듣는다 말이오. 거짓말에 속히지 안해야 돼요. 영감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짓말에 자꾸 속히게 돼요.

또 6 5 때 그라고 난 다음에도, 그라니까, 지금 그 사람들 큰소리 잘 합니다.

큰소리 잘 하는데 하나님께서 꼭 오기는 한번 6 5 같은 그런 것이 뭐 하나 오겠어. 와 가지고 꽝 그러면 거짓부리는 다 날아가 버립니다. 꽝 그러면. 벌써 남침한다고 막 꽝꽝꽝꽝 곧 온다 하니까 훅 날아가 가지고 저 미국 가 버렸어.

미국 가서 다 영주권 얻어 놓고 또 어떤 사람은 시민권 딱 얻어 놓고, 영주권 얻은 사람은 그 사람은 그래도 좀 불완전하고 미국 시민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시민권 얻은 사람은 더 든든하거든. 그래 놓고 여기 와서 일합니다. 여기 와서 일해요.

영주권 얻어 놓고 여기 와서 일하되 또 뭐 이런 말 저런 말 거짓말 해 가지고 어떤 교파의 선교사로 이래 떡 온다고 이래 와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일하고 이렇게 일한다 말이오. 그래서 미국에 시민권을 두고서 여기 와 가지고서 뭐, ‘지금 죽을까 싶어 피난한 사람 여기 와서 무슨 큰소리 하고 무슨 진리를 나타내?’ 내가 이래 가지고 이 소리 해 가지고 욕 많이 얻어먹었다 말이오. 욕을 많이 얻어먹었어. 그래 놓고 그 사람들이 모두 대가리고 다 잘난 사람들이거든.

여러분들, 어짜든지 똑똑히 알고 믿어야 됩니다.

오늘 아침에, 나무는 열매를 보아서 아는 거와 마찬가지로 원인인 그것은, 이것의 원인의, 이 원인, 오늘은 미래의 원인인데 미래의 원인인 오늘에 이것이 잘 됐나 잘못 됐나 하는 그것은 그다음에 미래에 나타난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니까 그런 걸 한 번 두 번 자꾸 겪어봐서, 사람을 십 년 겪어보면은 거의 다 압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신앙 생활이 벌써 몇십 년이 일관돼 있다면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오. 그거 뭐 오늘 천사가 돼도 그거 못 믿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또 뭐이 될지 또 몰라.

스스로 자기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심사해 가지고서 자기를 확정합니다. ‘나는 믿음 없는 자다. 나는 믿음 있는 자다.’ 확정을 하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장로님들은 보자, ○○○, ○○○, ○○○, 이거, ○○○? 기도 갔어? ○○○권사님? ○○○장로님 기도 갔는가? 엊저녁에 기도하러 안 왔네. 기도하러 갔는가? 기도 안 갔으면 이거 한 번 빠졌으면 이거 죽는 거라. 단단히 챙겨 가지고서 살려야 되지.

어짜든지 구역장들이, 지금 구역장들도 보면 이거 남장로보다 신앙이 앞섰어.

이러니까 목자축에 가니까 잘 단속해서 자기 밑에 있는 장로들이 다 신앙이 좋아야 돼요. 신앙 좋을라면 주일학교 반사를 시켜요. 반사되기 전에는 장로가 실력 없는 장로라 그런 거라. 다른 데는 ‘장로가 반사를 해? 반사 애비 애비 애비인데.’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서부교회는 안 그래.

장로는 아직까지 반사의 동생축밖에 못 가요. 반사가 돼야 인제 장로 실력 있다 그래 인정해 줍니다. 이러니까 ○○○집사님도 지금 앞으로 자꾸 올라갈라고 반사로 등록 됐지? 반사, 보조반사로 등록했어요. 보조반사 등록하고 난 다음에는 몇 주일 안 가서 그만 반사가 돼져 버려야 돼요.

○○○장로님, 자기 아들 보조반사 하면서 만날 ‘찬송가 들어.’ 아들이 `찬송가 들어요.' 이래 명령하면 찬송가 이래 떡 들고 이래 가지고서 이래 하고 ‘잘못 들어, 요래 드이소.’ 이라고 `요래 드이소’ 이래 시키는 대로 이래 가지고서 그래 하더니마는 아주 주일학교 부장이 돼 버렸어.

어짜든지 빨리 빨리 자라서, 참 지금 좋은 때입니다. 지금 기도할 때요 지금 준비할 때지 앞으로 이 환난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빨리 와요, 이 환난. 안 오고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게 제일 대가리가 돼 가지고서 그렇지 또 저거가 전부 다 저거가 정통이라고 저거는 이단이다 정통이라 하고 있지 이러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막 뒤집어져서 거짓부리는 이렇게 막 인정을 받고 참은 파묻혀지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냅두겠습니까? 얼른 이거 모든 거 진가를 환하게 한번 드러내서 시험할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이 모든 교계가 이렇게 되어지는 것이 환난이 올 증거라 그말이오. 이 환난을 불러 들이는 것이라 그거요. 이걸 봐서 우리가 깨달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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