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방과 목표

 

1982. 6. 21. 월새

 

본문:고린도전서 9장 25절~27절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달음질하는 사람이, 경주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이 어디를 향해서 달려갈까 하는  그것을 확정 지우지 못하고, 그것을 모르고 발자욱만 자주 떼 놓으면 되리라  생각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빨리 걷고 다른 사람보다 특수히 날래면 그 경주에서 일등을  하겠습니까? 향방 없이, 어디로 가야 될지도 모르고 발자욱만 자주 떼놓고  힘있게 빨리만 달리면 그 사람이 굉장히 탈선되어서 상을 주는 그 자리에서는  가장 먼데로 달아나서 제일 꼼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달음질하는 데에 향방 없는 자와 같이  그렇게 목표없이 달리지 않는다. 무슨 목적을 두고 지금 내가 달리고 어디를  향하여 간다는 그 향방을 정해 놓고 내가 달리지 그거 없이 되나 안 되나 열심만  내면 된다고,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면 된다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말했습니다.

어제 우리가 38년된 병자 나은 데 대해서 공부했는데, 그 38년된 병자가 주님이  ‘일어서라, 자리를 들어라, 걸어가라’ 이렇게 명령하신데에 순종할 때에 그가  향방없이 목표없이 그렇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이제는 ‘내가 이제까지의 38년동안이나 병신으로, 병자로, 병 때문에  비참해졌는데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시키시는 대로 한다’ 이것을 깨닫고  치료하기 위해서, 치료할 목표로, 치료할 이 향방으로, 치료할 목적을 두고  이렇게 시키시는 대로 순종했기 때문에 그 순종이 성공을 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이 무엇 때문에 하느냐  하는 그 목표가 똑똑하고 그 소망이 똑똑하고, 무엇을 향하여 달음질하고 있다는  그 향방이, 목표가 똑똑해야 되지, 그저 ‘나는 믿는 사람이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살아야 된다. 이러기 때문에 순종한다’ 하는 그것은  향방없이 달리는 그 신앙 행위입니다.

그래서 소망을 투구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망의 투구라. 사람의 신체면으로  말하면 제일 머리되는 그 두부가 중요한 것처럼, 우리가 주님에게 대한 온갖  관계가 있겠습니다. 의지하는 것, 바라보는 것, 믿는 것, 모든 것, 또 순종하는  것, 주님의 대속하신 것 이 모든 여러 가지 면이 있지마는 주님에게 대한 소망을  가지는 것이 제일 두부와 같이 중요하다 그말이오. 소망을 가지는 것이 두부와  같이, 머리와 같이, 신체로 말하면 머리와 같이 제일 중요하다 하는 그것으로써  소망의 투구라, 소망은 머리를 보호하는 것이라, 제일 중요한 것이라 그  뜻입니다.

이러니까 이 계시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주님의 뜻대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무슨 목적이며 무슨 목표냐? 이것은 어떤 사람은 별별 목표를 다 가집니다.

이렇게 순종하는 이것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려고, 어떤 사람은 집사 될려고  일년 내 새벽기도 잘 나오다가 집사 당선에 떨어지니까 그만 그 다음부터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별별 욕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믿음 지키는 그런 사람들이 있지마는 그것은 다 헛된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육체의 이스라엘 시대에 육체의 병 낫게 한 그것으로 표적을 삼은 것은  신약교회에 사람의 병, 심신의 기능병 이것을 고쳐서 온전한 사람이 되어지려는  이것을 표적한 표적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순종하는 이 순종 걸음은 무엇 때문에 내가 순종하느냐?  내가 돈 때문에 순종하느냐, 사업을 잘 되기 위해서 순종하느냐?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해서 줄 때도 있지마는 그것이 아닐 때가 많습니다.

베드로에게 ‘네가 그물을 깊은 데 가서 던지라’ 이럴 때에 던져진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표적으로 통해 가지고 참 베드로라는 그 사람이  변화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대해서 올바른 신앙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의 증거로 보인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는 잡았던 고기와 그물을 다 던져  버리고 깨닫고 난 다음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말씀하신 대로 사람  수입으로 자기의 향방을 바꾸었던 것입니다.

어제 그 말씀에서는 병낫기가 소망한 것이 병낫는 그것은 하나의 표적인데,  신령한 병 인격의 병이 낫는 그 표적으로 그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참으로  하나님인지 아닌지, 창조주인지 아닌지 이것을 아직까지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소망할 때도 그런 소망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하기를 이렇게 육체를 가지고 표적을 나타내는 것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이 표적을 줘서 믿도록 만들지 믿는 사람에게는 가치가  적은 이런 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신앙생활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표적은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유익이 있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그것이 필요가 없고 예언이 유익하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창조주시요 하나님이신 것을 자기가 어쨌든지 믿고 알고 한  사람은 그 향방을 바로 정해야 되지, 자기가 돈을 위해서, 무슨 병 낫기 위해서  이런 걸 목표로 두고 향방으로 두고 순종하는 일을 하면 하나님이 그 순종에  들어 주지 아니하시고 동행해 주시지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은 자기가 병이 들었는데 ‘내가 이렇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육체의 병을 고쳐 주시겠다.’ 육체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순종하는 그 일을 할 때에 이적은, 표적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 그 사람이 병낫기 위해서 무슨 열심과 충성을 가진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 병을 낫아 주시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 같이 병들었는데 병낫기 위해서 믿음 생활 할 때에 병이  낫도록 병을 낫아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그게  필요있지마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그게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병으로 인해서 다른 것을 소망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순종할 때에 향방없이 하지 말아라. 어떨 때는 돈을 위해서  순종하고, 권세 위해서 순종하고, 직장 위해서 순종하고, 가정에 난제가  있으니까 난제 해결짓기 위해서 순종을 하고 별별 이런 땅의 소망을 가지고  순종을 하지마는 순종하는 데에 어떤 사람에게는 이루어 주고 어떤 사람은  이루어 주지 않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도 있지마는 왜 이루어지지  않느냐? 땅의 것으로 이루어짐으로 그 사람이 이제는 하늘의 것을 소망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믿음이 생겨지는 그런 사람도 있고, 또 이미 벌써 하늘의 소망을 우리가  가지고 그 소망을 향하여 달음질해야 될 줄을 아는 사람도 있으니, 그 사람이  땅의 것을 소망해 가지고 하면 뒤로 거꾸로 내려가는 것이라 그말이오. 상급생이  하급생으로 거꾸로 내려가는 것이라 이거요. 하나님은 뒤로 물러가는 자를  기뻐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한 사람은 그게 성공이지마는 한 사람은 성공이 안됩니다. 성공 안되는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요구가 있고 또 그 사람에게 그까짓 것을 바랄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좀더 고차원에서 욕망을  가지라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어제 38년된 병자가 그렇게 순종하는 그 순종이 자기는 병낫기 위해서  순종했습니다. 우리 신약시대에 성도들이 순종할 때에 목표를, 욕망을 땅의 것에  두지 마십시오. ‘예수가 정말로 구주냐? 예수교가 정말로, 참말로 천국이  있나?’ 이렇게 모르는 자에게 땅의 소망을 두고 순종해 봐라. 순종하면 그게  된다. 됩니다.

이렇지마는 이미 그 과정을 다 지나와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이시요 우리는 금생에서 내세를 준비해야 되는 것이요 우리가 준비할  것은 참 영원 무궁토록 존영하게 살 수 있는, 자기를 온전케 하는 것과 그  행위를 온전케 하는 것 이 두 가지로서, 두 가지를, 무엇 때문에 자기 온전케  하고 행위를 온전케 하느냐?  자기와 행위를 온전케 하는 것은 자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곧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는 것  이것을 위해서 해야 될 줄로, 이것이 제일 가치있고 고귀한 것인 줄 알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목표하고 달릴 때에 주님이 인도하시는 그 걸음이 어떨 때는  보면, 인도하시는 걸음이 자기가 자기의 물질이 절단나는 그런 인도도 있고,  가정이 파괴되어야 순종할 수 있는 이런 인도도 되고, 땅의 것이 마구 부숴지고  깨어지고 절단나지는 이런 명령과 요구를 주님이 하실 때도 있더라 그거요.

있는데, 그 사람이 땅의 것을 욕망하고 순종하면 욕망하는 그 욕망이 다  깨트려져 버리고 절단나 버리니까 그 사람이 그 순종하는 것이 흔들리기 쉽고,  또 ‘이렇게 깨지도록 순종하면 하나님이 고쳐 주신다’ 이러니까 항상 땅의  소망이니까 그거 고쳐지면 그 사람이 이제는 또 땅의 소망만 가지고 5년 10년  계속하고, 또 땅의 소망 가지고 5년 10년 계속하고 언제 하늘나라의 구원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그 사람을 자꾸 퇴보시키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땅의 것이, 땅의 것을 목표하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목표하고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순종하다가 사업이  절단나도 ‘내가 순종하는 것이 사업 가지고 순종하느냐?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욕망해서 이걸 이루는 것이지. 내가 땅위에서 무슨 권세를 잡는 것이냐?  아니다.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이루는 이것이지. 영원토록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을 기쁘게 하고 존귀케 하고 하나님과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 내가 하는 것이지.’  이러니까 요 순종이, 그거는 땅의 것에는 손해가 가는데 요것도, 요 순종도  체험하고 경험해서 통과해야 내가 참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겠고 온전한 행위가  되겠고 하나님과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지겠다 이것을 자기가  조브라운 이성 판단이지마는 이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이것을 목표하고 내가 순종하면, 순종함으로 내가 목표하는 거는  땅의 것이 아니고 어쨌든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 온전한 행위가 되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하나님 대신으로 대리 노릇  할 수 있는 이 실력있는 이것을 목표하고 내가 순종을 하는 것이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목표하는 그 두 가지만 주면 되는 것이지, 그 두 가지만 내가  주면 되는 것이지 땅의 것은 이렇든지 저렇든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두 가지를 줄 때에 당신이 ‘너는 이 두 가지를 주는데 너는 부자가  되면서라야, 부자가 되면서라야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봉사가 되겠고, 너는 거지  거지로 이렇게 순종 생활 해야 다른 사람에게 봉사가 되겠고’ 봉사된다 말은  다른 사람의 구원에 도움이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당신의 복음 운동에 어떨 때에는 내가 세상적으로 쑥 올라가야  복음 운동이 되는 그런 때도 있고, 세상적으로 팍 낮아져야 복음 운동의 도움이  되는 그것도 있다 말이오. 그러면 당신이 쓸모있기에 따라서, 당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어떻게 되는 게 요긴한가 당신의 뜻을 맞추어서, 우리를 줬다가  뺏들었다가 올렸다가 낮추었다가 하는 것은 당신의 쓰기에 알맞게 필요하게  요긴하게 우리를 만드는 것이요 또 그것이 자기가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  되는 데에 필요있는 모든 과정들이라 그거요.

그러니까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되어지고 나면 자기가 과거에 ‘이것은  이것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소망을 가졌던 것이 과거에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이 어리석은 것이요 참이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런 욕망은 가지라고 해도 가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저렇게 인도하셔 가지고 만들고저 하는  것은 당신의 목표가 땅의 것을 줘서, 베드로에게 고기 잡는 것을 줘 가지고  고기를 잡는 걸 보고 깜짝 놀래서, ‘아! 참 주님은 이렇게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주님의 말씀은 획 하나도 우주보다 더 중량을 가지신 분이신데 나는  이제까지 주님 말씀을 허툴이 듣고 허무하게 들었습니다. 내가 이 죄를  자복합니다. 나는 주님 앞에 죄인입니다. 감히 주님을 모시고 주님을 따라다니고  주님에게 모욕을 주고 주님의 뜻을 가로막는 이런 자이기 때문에 주를 따를 수  없는 자입니다.’ 탁 낙망을 하기까지 됐다 그말이오. 그럴 때에 주님께서  위로를 하시면서 ‘이제는 네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그렇게 산 소망을,  높은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순종하는 목표를 땅에다 두지 말고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되어지는 여기에다가 목표를 두고, 또 그러면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되는 그것은 무슨 목표입니까? 그 목표는 무슨 목표요?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되어지는 그 목표는 무슨 목표인지? ○○○집사님, 그것만이라?  저렇게 반쪼가리 신앙 가지고 어쩔 건고?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을 구원하는 그게 아니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곧 이웃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다른 것 없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이웃을 구원하는 그것만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딴거는 기뻐하지 않아요. 우리가  당신에게 어떤 게 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완전자요 창조주시요  주재이신데 당신에게 뭐이 필요합니까? 필요하다면 직접 당신이 만들어 하시지  무슨 복잡하게 우리를 통해서 뭘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실은 보면 당신이 이 피조물들에게 원하고 있는  마음, 당신이 포원되어 있는 마음, 당신이 사람 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 하신 그 당신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그것만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소원을 이루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됨으로써 당신이 기뻐하는  것, 또 우리가 잘되는 그것이 나를 위해서, 사욕을 위해서 잘되면 그것도  흉측해서 하나님께 근심거리요. 우리가 잘 될 때에 잘되는 그걸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잘되는 그 목표가 택한 자를 구원하고 모든 피조물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에게 충만시켜 줄 수 있는,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대한 사랑과 포원을 가지고 계시는 것과 같은 그 사람과 그 포원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이 잘됐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신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이루는 이것이 ‘내가 하늘나라의  존영한 자리를 차지해야 되겠다. 권세를 가져야 되겠다. 내가 부자가 돼야  되겠다’ 고 속에는 내나 자기가 왕이 돼 가지고, 원죄,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서 집합시키려는 자기 중심 그것이 그 속에 들어 있다 그거요. 처음에  일학년 때는 그거 있어도 좋다. 어쩌든지 좋다. 이렇지마는 나중에 가서 보면 네  중심이냐 하나님 중심이냐 둘 중에 어느 것을 하나를 택해라 하는 갈래길을  반드시 당신이 만들어 가지고 갈래길에 딱 봉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에 어떻게 세밀하신지?  우리가 순종하는 이 순종이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 자기에게 성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순종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질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기의  마음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기의 습관병을, 습성, 버릇, 어릴 때부터 계속해서  그런 버릇을 해 놓은, 나쁜 짓을 해 놓은 그것이 버릇입니다. 버릇병을 고치기  위해서, 자기에게 취미, 재미, 이거는 영광되고 복된 재미는 없고 망하고 절단날  수 있는 그 재미만 그래요. 재미병을 고치기 위해서, (엊저녁에 철야한다 하더니마는 전부 조네.) 욕심병을 고치기 위해서, 여러분들,  취미병 하나 그거 병들어 놓으면 일생을 망칩니다. 가정도 망치고 저도 망치고  사업도 망치고 다 망쳐 버립니다. 잘못된 취미, 취미에 병이 들었어. 취미병이  들었어. 그러면 그 취미로 인해서 자기와 가정과 사업과 모든 걸 다 망치고,  망치고도 그 취미에서 마지막 죽는 날까지 망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이런 병은 얼마나 큰 병인지 모르요.

사람이 돈 없어지는 그 병은 그것은 그렇게 큰 병 아닙니다. 돈 없어 굶어 죽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돈이 없어짐으로 말미암아 못쓸 인간병이 얼마나 많이  고쳐지는지 모릅니다. 가난에서 겸손이 나옵니다. 가난에서 겸손이 나오요.

가난에서 참고 견디는 것이 나오요. 가난에서 땀 흘릴 줄 아는 것이 나옵니다.

가난에서 속 썩을 줄 아는 것이 나옵니다. 가난에서, 가난은 병이 아니오.

사람들은 가난병은 병으로 알지만 가난병은 병이 아니라. 그거는 인간병 아니라.

치료하는 그 치료의 방편은 될지언정 그것이 인간의 병은 아닙니다.

취미병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욕심병을 고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욕심  그것이, 욕심이 그놈하고 취미 그놈하고, 또 이놈이 한번 두번 자꾸 일년 이태  계속하니까 이제 이것이 연습이 되어 가지고 이제 버릇이라는, 연습이라는,  습관이라는 습관하고 이놈하고 세놈이 한데 똘똘 뭉쳤습니다. 또 거기에다  경험과 체험에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고 수단 방법 하는 것 대외에 관계하는  것 이런 것에 대해서 또 수단과 방법이 늘었습니다. 이 네놈이 똘똘 뭉쳐 가지고  하나가 되어 가지고 있으니까 이 사람을 구원할 도리가 없습니다. 요 구원은  헛일이오. 살릴 길이 없소. 아무리 살릴려 해 봤자 살릴 길 없어.

살릴 길은 하나님께서 바짝 때려서 오그라져 가지고 이것 때문에 죽는다!  죽는다! 죽음에 딱 죽어져 가지고 죽을 지경이니까, 죽을 지경이니까 그때는  그것이 다 필요가 없다 그말이오. 죽을 지경에 그것이 그때사 비로소 손을  뗍니다. 그래 가지고 죽음 속에서 몇 달을 넣어 놨다가, 며칠을 넣어 놨다가,  죽음 속에서 하루 넣어 놨다가 이틀 넣어 놨다가, 이거 하나님이 뭣 때문에  고생을 시키겠소? 죽음 속에 하루만 들어도 확 떨어져 버렸으면 그 죽음 속에 들  때에는 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죽음 속에서 얼른 들어냅니다. 이거  안되니까 거기에서 며칠동안 자꾸 이렇게 계속을 시켜 가지고 질병으로, 또  가난으로, 고난으로, 여러가지로 그래 가지고, 이제 자기를 망칠 수 있는  대가닥같이 이렇게 막 곧고 높고 강하고 쇠기둥 같은 이렇게 강한 죄악의 이  세력이 말이오. 강한 세력이, 교만도, 자존심이라는 그것도, 어제 말했지마는  그분에게는 쇠기둥보다도 더 강한 자존심이 있어. 그놈이 팍 꺾어질려고 하면 참  뭐이 돼야 되겠소? 이러니까 그것이 꺾어질려면 병이 들든지 또 그리 안 하면  무슨 가난이 되든지 어떻게 되든지 무슨 자기가 큰 징계를 받아야 되겠는데 어떤  사람은 징계를 받아도 그것을 고치지 않을 자가 있다 그말이오.

이러면 징계를 줘야 효력없는 징계 줘 가지고 ‘예수믿다 저렇게 망했다’ 할  터이니까 징계줘도 어떤 자는 그 죄악이 강해서 죽어도 죽으면 그대로 죽지  징계를 ‘아이구 이거 내가 잘못됐다’ 회개하지 않을 그럴 자가 있다 말이오.

참 비참한 것입니다.

이럴 자에게는 징계를 줘 봐야 안되기 때문에 징계를 안 줘. 안 주고 차차 차차  다른 면으로 징계주면 고칠 수 있는 그런 조그만한 사소한 것 그것을 해 가지고  공작을 해 나가다가 정 안되면 그대로 뒈집니다. 그대로 죽소.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향한 욕망이 뭐이냐?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온전한 행위로 이렇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요 이것이 참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되고, 이것이 유익 중에는 제일 가치있는 유익이오. 또 이래  가지고 그러면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가 되어 가지고 뭐 하려고?  이래 가지고 하나씩 둘씩 작은 데서부터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위하는, 봉사하는  이 생활 이것을 차차 차차 길러. 온전한 행위라는 것은 그것입니다. 이렇게 길러  가는 이 일을 하는 이것이 제일 가치있는 일이라 그말이오. 이것이 뭐이냐?  이것은 무궁세계의 영광스러운 직업입니다. 영광스러운 사업이오. 사업 중에  이보다 더 존귀한 사업이 없습니다.

중간반 반사들 주일학교 반사들이 지금 영원 무궁한 나라에서 제일 존귀한  사업을 지금 이 세상에서 억지로 강제로 하고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억지로  강제로 하니까, 억지로 하는 사람,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 해 보니까 이거  취미를 가지고 하는 사람, 이것이 참으로 무궁세계에 제일 존귀한 사람,  이러니까 에베소 1장 끝에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이라 만물은 발등상이라, 우리의 발등상이라. 피조물은 우리 발 아래  있는 것이라’ 뭐 하려고, 이래 가지고? 만물들에게 하나님이 충만케 하시는  주시는 그 은혜, 하나님이 만물들을 봉사하는, 하나님이 만물들을 이와 같이  항상 들고 있어. 만물의 덕을 보지 않아요. 하나님은 피조물의 덕을 보지 않아.

피조물을 항상 들고 그에게 있어야 될 은혜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영광된  사업을 인계맡아 가지고 하나님의 것으로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시는 충만이  교회니라. 이러니까 영원한 영광의 그 직업을 우리가 맡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소망을 하늘에 두고 달리기를 자기가 온전한, ‘내가 뭐 굶든지  먹든지 매를 맞든지 감옥에 들어가든지 병이 들든지 어쩌든지 나로 하여금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만들어 주옵소서.’ 요것만  목표를 가진 사람은 주님에게 순종하는 이 일이 쉽고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거기에다가 목표를 두지 아니하고 짤막한 데다가 목표를 뒀다  그말이오. 거기에다가 목표를 두지 아니하고 사소한 데다가 목표를 둬 가지고  하니까, 그 목표를 두고 저는 순종하는데 그 목표 둔 그것을 깨트려야 또 참  소망을 가지겠는데 이러니까 그 목표를 깨트리는 순종을 하나님이 시킨다  말이오, 목표가 깨지는. 이러니까 그 목표를 가지고 순종했으니까 그 목표가  깨지는 명령이 오면 거기에는 순종하지 아니하고 낙심하고 거역해 버리고 만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항상 헛일만 하고 시작했다가 말고 시작했다가 말고 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저 어떤 형편 처지 이 세상의 인간들이 겪고 간 고생이라는  고생, 망함이라는 그 망함, 억울함이라는 억울, 애매함이라는 애매, 손해라는  손해, 수치라는 수치 그것이 내게 닥칠런지 모릅니다. ‘내가 아는 대로 듣는  대로 이 세상의 역사에 있었던 어떤 형편과 사정의 순서를 통과해도 좋사오니  나를 떠나기 전에 온전한 사람으로, 온전한 행위로 당신의 형상을 온전히 입게만  해 주십시오.’ 요 향방 요 목표를 딱 거머쥐고 주를 향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피곤치 아니할 것입니다.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면 이루리라” 이 욕망이, 향방이, 걸어가니까 차차 그것이 가까우니까 힘이 나. ‘조금만  걸어가면 이제 일등을 뺏는다, 일등을 잡는다.’ 이러니까 그 사람이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는 것이지, 향방이 ‘내가 바로 가나 안 가나? 어데까지 가야 되노?’  이게 없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가다가 남은 힘이 다 쓸 수 있는 거기에서  꺼꾸러지고 말 것이라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헛된 욕망을 가지지 말고 이 두 가지 욕망을 가지고, 또  그 사람이 일어서서 걸어가는 것은 어디를 향해 걸어갑니까? 하나님 만날려고  걸어갑니다. 성전을 향해서, 나면서 앉은뱅이도 성전을 향해서 걸어갔습니다.

모두 병나은 사람마다 다 모두 성전을 향해서 걸어갔소. 또 주님이 시키시기를  네가 병을 낫았으니 어데 가라 했습니까? 어데 가라 했지요? 제사장에게 가라  했지요. 제사장은, 제사장은 성전이지. 성전에 가는 것이라.

우리가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를 이루는 이것이 가까운 목표요, 그 다음  목표는 뭐이냐?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과 밀접해 하나님과 하나되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이것이 목표라 말이오. 이것을 목표로 가지고 땅 위에서 순종하는 이  순종을 할 때에 피곤치 아니하고 낙심되지 아니하고 나아갑니다. 그러면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가 됐다면 돈이 필요합니까? 돈 그까짓 거 전부 그 사람의  것인데 돈이 필요하요 권세가 필요하요? 권세가 필요할 때에는 권세 얼마든지, 필요할 때에는 얼마든지 가질 수 있소. 돈  필요하면 얼마든지, 그러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해.

능치 못할 것이 없어.

백목사는 잘 믿지도 못하는데, 잘 믿지도 못하는데 ‘이거 예배당을 지어야  되겠다’ 하니까 돈 4억2천이, 4억2천만 이상이 나왔습니다. 여러분들의  소원이지마는 첫째는 내 소원이라 말이오. 내가 필요하다 하니까 하나님이  이렇게 돈을 주신다 말이오. 광고 한 번 하고 ‘자 연보합시다’ 하니까 이렇게,  나는 이제까지 그 많은 돈 만져 보지도 못했소. 만져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많은 돈이 당장에 떡 닥치니까,  온전한 사람 온전한 행위가 나는 안되어도 이런데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되어 하나님과 딱 들어붙으면 그까짓 거 썩은 사업이 문제요 뭐이 문제겠습니까?  모든 것 다 있지 않소? 어떤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이냐 주장이냐 이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의 뜻이라면 능력 주시는 그 능력 가지고 다 할 수가 있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모든 지족을 내가 알았다. 부해도 족하고 가난해도 족하고’  왜? 부할 때는 부한 것이 좋기 때문에 주는 것을 알았고 가난할 때에는 가난이  좋기 때문에 주는 걸 알았고, 다만 내가 목적을 향하여 달리는 이 성공에는 내게  자본주되는 이분으로 말미암아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  하는 이걸 깨달았기 때문에, 이렇게 이제 가난해지면 이렇다 부해지면 이렇다,  부해진다고 우쭐거려 올라가 가지고 떨어지지도 않고 가난해지면 낙망해 가지고  떨어지지 않고, 마귀가 와 봤자 흔들 수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바울이 말하기를 ‘내가 향방없이 달리는 자가 되지 않는다. 내가  향방없이 달리는 자가 되지 않는다. 싸울 때에 허공에다 칼을 빼 가지고 싸우는  이런 짓을 하지 않는다. 내 싸움의 대상을 똑똑히 알고 싸운다. 내가 향방을  똑똑히 향해서 잡고 내가 달린다. 향방이 뭐이냐? 주님의 형상, 온전한 사람과  주님의 형상 되는 행위, 뭐 하려고? 만물들에게 하나님의 충만을 내가 대신해서  하나님은 내게 충만하고 나는 그 충만을 받아 가지고 모든 천상 천하  피조물들에게 영원토록 봉사해서 그들은 나 아니면 못 살겠다 하는 이런  위치에서 영원히 봉사하기 위해서, 이것이 내 향방이다.’  그러면 싸우기를 누구하고 싸웁니까? ‘싸우기는 많은 적이 있지마는 내 속에  내라는 놈 이놈이 적이기 때문에 나 아닌 나 이놈하고 싸운다. 나 아닌 이놈하고  내가 싸운다. 이 싸움의 대상을 내가 똑똑히 보고 싸우지 공중에다 싸우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향방을  똑똑히 해서 이게 이루어지면 땅에 있는 그것은 다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원하다가 왕이 됐습니까? 원하지 않는데도 되니까 하나님이 왕 줄  때에는 왕 줬고 총리 줄 때는 총리 줬고 부자 필요할 때는 부자 줬고.

미국에 있는 그 부자 이름이 뭐이지? 제일 부자 이름이 뭐이더라? ○○○목사.

인제, 오래 되어서 잊어 버렸소? ○목사님이 말했는데 그 부자 이름이 뭐입니까?  ○○○집사 잘 알겠는데, 이름이 뭐이요? 오나 뭐이라더라? 와나미인가?  와나미라 하던가 와나미라던가 그 사람이 세계에 제일 부자랍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10분지 9할을 바쳤어, 복음에다. 세계의 선교사가 거의 그  사람 돈이오. 그 사람은 부자될려고 목표하지 않고 하나님만 믿었는데 ‘너는 돈  가지고 네가 이제 이 복음 운동 해라’ 하니까 자꾸 돈을 주시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지였는데 세계에 제일 갑부랍니다. 그는 십분지 구할을, 십일조가 아니라  십구조를, 십의 구조를 바쳐. 그래 가지고 세계 각국에 선교사 보내는 그  선교비가 거의 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많아요.

이러니까 당신이 이리 되면 ‘나는 너를 목사를 만들어 가지고 나는 너를  쓰겠다.’ 하나님 목표는 이런데 저는 또 ‘나는 지금 정치가가 되어 보겠다.’  시비를 하면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하나 하나 깔대기 같은 이런 순종을  하지마는 약대와 같은 큰 순종은 하지 않는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욕망이 따로 있는데 저는 또 제 욕망이 따로 있다고 제 욕망 채울려고  하니까 암만 해 봤자 그거는 안됩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욕망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러니까 둘이 시비하니까 시간만 갑니다. ‘나는 이거 할랍니다.’  ‘야 이거 해라.’ ‘이거 할랍니다. 이거 할랍니다.’ ‘이거 해라.’ ‘이거  할랍니다.’ 시비를 하니까 세월만 지나갔지 안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 이거는 언제든지 가져야 되고, 하나님과  밀접하게 되는 거 언제든지 가져야 되고, 그러면 그래 가지고 하나님께서  사장으로 복음 운동을 하게 할런지 대통령을 만들어 가지고 복음 운동 하게  할런지 어떤 문둥병원에 가 가지고 문둥이 되어 가지고 복음 운동 하게 할런지,  ‘산곡에 백합화 성도들이여’ 하는 그 노래가 우리 전국에 퍼졌는데 아마  세계에 퍼져 나간 것 같아. 그런데 그 복음성가를 누가 지었느냐 하면 문둥이가  지었습니다. 그때 내가 처음에 들을 때에는 그 문둥이가 지금 어데 있다 말을  들었는데 찾아가 보지 못해. 그 문둥이가 지금 모양으로 병원이 이래 없으니까  지금 산막을 쳐놓고 저 멀리 가 있는데 거기에 성도들이 뭐, 성도들이 발이  떨어질 여가 없이 항상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뭉쳐 가지고, 문둥이 앞에서  은혜받겠다고, 그 문둥이가 ‘산곡의 백합화 성도들이여’ 하는 그 노래를  지었어요. 문둥이 만들어 가지고 당신이 영광을 받을런지 목사 만들어 영광을  받을런지? 뭘 할런지 모른다 그거요.

이러니까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는 자기의 자격이오. 또 다른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른 사람을 봉사하는 것은 자기의 사업이오. 직업이오.

하는 사업이오. 이러니까 사업을, 자기의 사업을, 그 사업을 돈 만드는 사업으로  복음 사업을 하게 할런지 정치 가지고 복음 사업 하게 할런지 학교 선생 가지고  복음 사업을 하게 할런지 자기가 병이 들어 가지고 복음 사업을 하게 할런지  모른다 그거요.

제가 상당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디선생이 미국의 역사에 유력한  부흥사입니다. 그 부흥사는 모르는 사람이 없어. 그 사람만침 유명한 사람이  없습니다. 무디선생.

그분이 어떤 교회 가 가지고 집회를 하는데, 가면 은혜가 마구 쏟아지는데 암만  집회 인도를 해야 설교가 안되어서 할 수 없어서 ‘이제 내가 무슨 일인지, 이  교회가 죄를 지었는지 내가 죄를 지었는지 안되니까 할 수 없어 가야  되겠습니다’ 하고 인제 부흥회를 한 몇시간 하다가 할 수 없어 안 되어서 그만  중단하고 가기로 인제 다 파기하고 가기로 하니까 그 교인들이 말하기를 ‘우리  교회 여기 보배가 하나 있는데 한번 봐 보시오.’ ‘무슨 보배요?’ ‘그 사람이  그런 병석에서도 참 항상 감사하고 기쁨과 그 모든 하늘의 소망이, 병이 도무지  그를 해치지 못하는 그런 보배가 있습니다.’ 이러니까 무디선생이 참 기쁘게  여겨서 찾아갔습니다.

가니까 그 교인들이 얼마나 천대를 해 놨든지 문을 여니까 들어갈 수가 없어,  어떻게 냄새가 나는지. 들어가 보니까 여름인데 구더기가 마구 방안에  버글버글한데 한쪽으로 요래 누워 가지고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누워 가지고  있는데 한쪽이 썩어서 구더기 밥이 돼 가지고 있어. 그래도 입은 붙어서 먹기는  하고, 먹는 거는 좀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가 충만하고 소망이 충만한데,  ‘나는 무디라는 사람입니다.’ 이러니까 소문은 들었거든. ‘아이구 어찌  오셨습니까?’ ‘이 교회에 부흥회하러 왔는데 암만 해도 은혜를 안 내려 주시니  내가 무슨 죄가 있는지 이 교회가 무슨 죄가 있는지 이래서 다시 돌아가서 그저  회개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올려고 다시 파기하고 돌아가는 걸음입니다.’  그래 말해.

‘그렇습니까? 나는 부흥회하는 줄을 몰랐습니다. 이제 초면입니다. 가지 마시고  다시 계속 하십시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이래서, 그 말을 듣는데 자기 속에  영감이 훅 오는 것이 막 때리며 이래 나온다 말이오. 이래서 무디선생이 ‘예.

감사합니다. 그러면 내가 계속하겠습니다.’ 머리를 숙여서 절하고 그날 밤에,  그날 밤부터 마구 거기에 불이 떨어져 가지고 이제까지의 집회하는 중에 제일 큰  불이 떨어졌소, 그 교회에. 이러니까 옆에 교회가 전부 소문 듣고 막 다 와  가지고 큰 불이 떨어졌어. 그날 밤부터 은혜가 깊었어.

그이가 그런 병 들어 가지고 사람들 보기에는 그렇게 천대받았지마는 그 교회뿐  아니라 이제 다른 교회에 그 소식을 듣는 데마다 기도해 가지고, 그는 누워서  병들어 가지고 복음 운동 하는데 제일 진짜로 했다 그 말이오. 이제 가 보면 참  모릅니다. 기이하고 이상한 일이 다 있습니다.

백목사는 이 부산에서 제일 교회 큰 교회를 인도하고 부흥시킨 목사라 하지마는  가 보면 저 참 흙으로 만든 면류관이 내것이 될런지, 이병규 목사님은  새털모자라 하는데 개털모자가, 개털모자가 내 면류관이 될런지, 어떤 분이  금면류관을 쓸런지 모릅니다. 이것은 본인이 압니다. 다른 사람보다 본인이  아요. 자기가 정말로 충성하는지 다 하는지 자기가 어느 정도 바쳐서 충성하는지  충성이 의입니다. 자기는 자기가 아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나타나 보이기에 무능하다고 멸시하면 안됩니다. 나타나 보기에 크게  높아졌다고 공연히 자기를 모르고 우쭐해도 안됩니다. 그분이 일했어. 여기에도  일하는 것 지금 내가, 누가 일하는지 몰라. 내가 늘 말하기를 ‘서부교회 와  가지고 부흥하는 것은 서부교인들의 기도로 하는 거는 아니다. 서부교회  교인들이 기도를 무슨 기도를 하노?’ 이랬는데 요새는 좀 합니다. 과거에 내가  말하기를 ‘늘 내가 돌아다니며 부흥회하는 것은 그 개명교회 교인들이 기도하는  그 기도로 한다. 그분들이 지금 부흥회하고 다닌다.’  손양원목사님이 한국에 제일 부흥사로서 한때에 은혜를 끼쳤는데 그분 은혜 끼친  것은 그분이 말하기를 ‘내가 부흥회하고 돌아다니지마는 내가 사경회하는 것이  아니고 부흥회하는 것은 지금-애양원교회에 그때에 팔백명 나환자들-애양원  교회에 팔백명 나환자들이 기도하는 그 기도로 말미암아 되기 때문에 그분들이  와서 부흥회하고 있는 것이지, 나는 로보트로, 허수아비로 밑에 나팔처럼 하고  있지 실은 부흥회하는 것은 그분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내 배후에,  배후에 기도단입니다.’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과거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우리 서부교회 교인들이 기도하는 그  기도의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있는 것 같고, 그 보다도 더 많은 것은 대구집회  거창집회에 이로 인해서, 대구집회 한번 제가 아파 가지고 집회 인도 못 하고 난  다음부터 그 집회로 인한 은혜받은 성도들의 기도가 제일 힘있게 내게 와서  부딪힌다는 것을 제가 느낍니다. 그 기도가 제일 힘있게 부딪히고, 둘째로는  우리 진영 교회들이 기도하는 그 기도가 둘째로 힘있게 부딪히고, 서부교회  교인들이 기도하는 것이 또 힘있게 부딪히고,  이래서 서부교회 교인들이 제가 목회하는 이 일에 동참하는 이 영광스럽고  복있는 일에 동참하는 교인들이 되어진 것이 이 기도회를 시작해 가지고 매일  30분 이상 기도하게 하는 이때부터 완연히 나타나게 현저히 드러나게 보여지는  것으로 제가 보여집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이 복음 사업, 구령 사업, 인간을 구원하는 이  구령 사업에, 이 사업을 내 직업으로, 내 사업으로 줬는데 이 사업을 하는  데에는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 이것을, 자격이기 때문에, 이게 실력이기  때문에 이 실력이 있어야 되고, 나를 이 사업을 맡기는 데에는, 이 사업을  맡기는 데에는 손 노릇을 하게 할런지 발 노릇을 하게 할런지 눈 노릇을 하게  할런지 뭘 하게 할런지 나에게, 이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가 된 나를 어떤  직책을 맡길려는지 모른다 그말이오.

그 사람은 그렇게 병이 들어 가지고 그 병으로 통해서 그렇게 큰 일을 했어.

만일 병이 안 들었으면 그 사람은 좀 은혜있다면 다른 사람이 끌고 가 가지고 뭐  기도해 달라 또 설교해 달라 심방해 달라 할 터인데 오히려 분주해서 시간  있겠습니까? 그 사람만 못한 아무것도 아닌 나도 자꾸 뭐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와 쌓아면 뭐 밥 먹을 때에도, 밥 먹을 때도 한 시간 밥 먹을 때 적어도 전화나  인터폰이나 그런 것이 열번 이상은 오고 언제든지, 제일 적은 것이 열번입니다.

열번 이상은 와. 이러면 끊어 놓소. 이제 끊어 놓는 것은 내가 몇번밖에는 못  끊었어. 하도 못 견뎌서, 이제 그러니까, 뭐 밥도 못 먹고 이러니까 끊어 놨다가  또 못 끊어 놔. 왜? 이렇게 그 사람이 전화를 오랫동안 소망하고, 그 전화를 안  받으면 그 사람들에게 큰 낭파가 되는 줄 아는데 번연히 알면서 그렇게 딱 끊어  놓고, 식사하라고 옆에 사람들은 ‘끊어 놓읍시다. 끊어 놓읍시다.’ 이래도  나는 그걸 끊어 놓을 수가 없다 그말이오. 왜? 그때에 어떤 전화가 올런지  모른다 그거요.

이래도 이런데 그렇게 권능있는 분이, 기도하니까 당장에 교회 큰 부흥이  일어나는 권능있는 분이 몸둥이가 병들지 않고 냄새가 안 났으면, 냄새 안 나도  찾아 들어가는 사람이 많을 것이오. 그렇츰 냄새가 나니까 외통목으로 하나님이  복음 사업에 기도의 권능으로 바쳐 가지고 일했지 만일 냄새만 안 나도 찾아  들어가서 애를 먹일 것이오. 이랬는데 그렇게 냄새가 나니까 그 교회 부흥회를  해도, 집회, 부흥 집회를 해도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그말이오. 얼마나 무시하고  멸시했습니까? 얼마나 무시하고 멸시했습니까? 그분이 그렇게 큰 일을 하는 줄  몰랐다 이거요. 이랬는데 무디선생이 와서 알았거든.

알았으니까 그 다음부터, 무디선생이 그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패를  드리고 이랬으니까 이거 참 존귀한, 인간들이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됐으니까 그  다음부터 교인들이 그이를 귀중히 여길 터이니까 그 일이 그 환자가 마지막에  죽음이 가까왔을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때에 무디선생이 와 가지고 그이가  유명하고 그렇게 위대한 인물인 줄 알자 하나님이 데려가 버렸소. 데려가 버리지  않겠느냐? 위대한 인물인 줄 알면 세월이 많이 나는데 그렇게 소문을 내놓고  땅위에 오랫동안 살려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 살려두면 일을 못 한다  그거요. 일을 못 해.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은밀히 일하는 분이다, 은밀히  일하시는 분이다. 소문내지 않게 일하시지 소문나고 난 다음에는 일을 못 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러분들 이치의 비밀을 압시다. 비밀을 알아요. 이 모든 존재의 비밀을 압시다.

모든 움직임을 비밀을 압시다. 보이는 것으로써 껍데기 그것만 보고 평가하고  평론하고 비판하지 마십시오. 그 속에 깊숙히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아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위해서 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중한 것이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지만  보이는 것은 없어질 것이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좀 깊숙히 살자 그말이오. 인생 깊게! 심각하게! 껍데기 그까짓 거  보이는 것이 가면 어쩔 것이며 오면 어쩔 것인가? 돈 그까짓 거 가면 어쩔  것이며 오면 어쩔 것인가? 권세 그까짓 거 가면 어쩔 것이요 오면 어쩔 것이오?  와 가지고 뒤에, 와 놓으면 우쭐해 가지고 교만해서 공연히, 그게 없었으면 뭐  졸 때에 ‘너 왜 조노?’ 하면 ‘네. 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데 이거  돈이 많으면 ‘나같은 돈 많은 사람을 존다 한다.’ 그놈이 들어서, 좋은  책망받는데 오히려 감사치 못하고 교만해 가지고 ‘내가, 사장을, 내가 부자가,  몇십억을 가지고 있는 나를 이렇게 존다고 모욕을 주네’ 해 가지고 삐꾸게  되니까 그 돈이 저 망치는 것뿐이지 유익이 줄 것 뭐 있소, 있기를? 여러분들 어리석지 마십시오! 세상에 권세나 지위나 모든 물질이나 그런 거 다  그렇습니다. 건강도, 건강도 병든 것이 건강보다 나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병이  듦으로 실수했고 병이 듦으로 망쳤고 병듦으로 고쳐졌고, 건강함으로 평상  벗을래야 벗을 수 없는 죄를 저질러 놓은 것 있고 병이 들었음으로, 그때에  건강했으면 일생을 망쳤을 터인데 병듦으로 망쳐지는 그 길이 가로막히게 되니까  이것이 담으로 막고 가시로 막는 것입니다. 주의 사랑을 든든히 믿으십시오!  의심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실력이 있는 것을 아십시오! 우리에게 관심이  세밀합니다. 특심합니다.

이런고로 당신을 믿고 당신에게 맡겨 놓고 이 두 가지 목표, 온전한 사람과  온전한 행위, 뭐 하려고? 천직 맡길려고. 천직이 뭐인데?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 직이지. 그 직이지. 그 직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고, 한 십분 기도하고 난 다음에 권찰회 모입니다.

건축기사 면허증 있는 분 있으면 오늘 아침에 참석해 주시고, 바빠서 참석  못하면 그 구역장에게 그걸 알려서 우리 교회에 건축기사증을 가진 분이 어떤  분들이 있는지 서로 의논해 가지고, 성전 짓는 데에 도움이 될 일이 있어서  말합니다. 건축에 관한 것, 혹은 전기, 혹은 무슨 전화, 혹은 건축, 우리가  건축하는 데에 혹은 수도, 또 무슨 정화조 이런 데 대해서 기사증이 있는 분들은  좀 참석해 주시고 참석 못하면 구역장에게 ‘나는 이런 기사증이 있습니다.’ 그  교회를 봉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자기 정도에서 형편에서 맞추어  봉사하지 무리한 봉사를 하라 하지 아니할 터이니까 그렇게 알려 주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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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8 행함의 결과는 기적과 축복/ 야고보서 2장 21절/ 1986. 7. 16.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5377 행함에 관한 말씀/ 시편 1장 1절-3절/ 1983. 4. 27. 수새벽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