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관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2일 수야

 

본문:로마서 3장 10절~18절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에게 몇해를 살아 그가 사는 시간이 많다 할지라도 모든 시간 중에 현재라는  이 시간이 제일 요긴한 시간이요 또 자기 시간입니다. 현재라는 이 시간만을  자기 시간으로 알고 그다음 시간은 하나님이 주실런지 안 주실런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기에 현재라는 이 시간만이 내 시간인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고, 또  모든 시간 중에 내게는 현재라는 이 시간이 가장 귀중하고 요긴한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시간은 현재만을 빼앗기지 않고 산다면 그 사람은 자기 시간을 다  차지한 사람이지만 현재라는 시간을 무엇으로 허비하든지 허비하고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겠다 하는 그런 결심은 다 소용없는 일입니다.

또 장소도 내가 평안하게 자는 장소, 노는 장소, 일하는 장소 별별 장소가  있지만 어쨌든지 장소도 장소 중에는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장소가  자기에게는 제일 중요한 장소요 또 필요있고 가치있는 장소입니다. ‘오늘은  내가 여기에 있다가 내일은 아무 데 가겠다’ 하는 그것도 다 헛된 장담을, 쓸데  없는 장담을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있지만 다음 시간에는 우리는  내가 그 공간을 차지할런지 공간을 차지하지 못하고 그만 세상을 끝낼런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장소로서는 ‘내가 이 장소에서는 이래 하지만 저 장소에 가면, 아무  데 그곳에 가면…’ 이런 생각은 다 속는 생각입니다. 어쨌든지 할일은 자기가  있는 장소 그 자리에서 해야 됩니다. 시간도 이 시간에 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에 해야 될 일을 다음 시간으로 미룬다는 것 어리석은 일이고,  이 장소에서 할일은 이 장소에서 해야 되지 그 장소에서 하지 못하고 ‘이제  다른 장소 바꾸어지면 하겠다.’ 자기 생각으로 ‘어떤 장소에 가면 하겠다.’  그것도 다 헛된 생각이오.

또 자기가 상대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내가 그  일은 어떻게 할까, 저 일은 어떻게 할까?’ 하는 것보다도 당장 이 시간에  자기에게 해당된 그 일이 자기에게 제일 중요합니다. 그 일만 바로 하면 그다음  일이 실마리가 풀려 나갑니다. 풀려 나갑니다.

그러기에 일로 말하면 자기가 현재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당하고 있는 그 일  그거 하나 바로 하는 데에 전력을 기울일 일이지 ‘이 일은 사소한 일이기  때문에 그다음 무슨 일 하겠다’ 하는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얼토당토  않은 일이나 이 시간 자기에게 당한 요 일을 바로 하면 그 모든 것이 잘 풀려서  나가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포한 계약입니다.

또 물건도 그러합니다. 무슨 물건 무슨 물건 많은, 그 관련된 물건이 많지만  자기가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자기에게 관련된 그 물질 거기에 대해서 바로  하도록만 하면 다른 것은 다 해결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수많은 일을 닥치지만 그 일의 열쇠는 이 시간 내가 당한 이  일이 열쇠입니다. 이 일이 하나 바로 되면 그다음 일이 다 끌러집니다. 수많은  우리 일이 있지만 이 시간 내가 당한 요 일이 일의 열쇠요. 크고 작고 귀하고 한  그런 많은 만물들이 있지만 이 시간 내가 내게 접촉된, 내게 닥친 요 만물, 어떤  물건이든지 요것을 바로 하는 것이 모든 만물에 대한 열쇠입니다.

장소도 그러합니다. 이 자리,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이 자리,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린 예배드리는 이 자리, 이 자리에서 바로 하는 이것이 모든 공간을  자기가 점령하는 그 열쇠입니다. 비결입니다.

시간도 그렇습니다. ‘나는 다른 시간 몰라 다 놔두고 요 시간, 내가 현재 주신  요 시간 내가 빼앗기지 않고, 요 시간 내가 실패하지 않고, 요 시간 바로  쓰겠다.’ 해서 현재 닥친 그 시간 바로 쓰고, 그 시간을 빼앗기지 않고 그 시간  바로 쓰면 모든 시간은 다 점령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현실이라 하는 것은  수많은 것들의 열쇠가 되는 것인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 현실은 누가 만들어 주신 것인가? 이 현실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우리 주님, 하나님이신 우리 주님이 큰 힘 들여서 내  현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 현실을 나를 사랑하시는 구주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으면 이 만드신  것이 내 형편에 따라서 만드셨는가? 아닙니다. 영원전 요렇게 만들기로 딱  예정해 놓은 그것이 하나 둘 순서대로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그 예정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신 주께서 내 구원에 필요한 것을 다 미리 순서를 정해 가지고 그  순서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내가 현실을 닥쳤을 때에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뭐 사람도 있고,  물질도 있고, 짐승도 있고, 온갖 자연도 있고, 기후도 있고, 별별 것이 있지만  그것이 닥쳐지는 대로가 아니고, 그것도 벌써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영원 전부터  딱 만드셔 가지고 그때가 되니까 그런 방편으로 적용해서 만든 우리 현실입니다.

현실이 이렇게 철두철미하고 우리 구원을 인하여 영원 전 하나님께서 하나도  가감이 없는 계획, 설계, 예정대로 만드시고 섭리하셔서 닥치는 현실입니다. 그  현실을 하나님께서 사람을 통해서 만드는 것도 있고, 국가를 통해서 만드는 것도  있고, 사회를, 짐승을 통해서, 또 일월성진을 통해서, 춘하추동을 통해서 무엇을  통해서 내 현실을 만들었든지 그것은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요, 내게 현실을  만들어 주신 이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이렇게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 주셨으면 이 현실은 뭐 할려고  만들어 주셨는가? 이 현실은, 안 믿는 사람들은 원죄와 본죄로 인해서 죽은 것이  죽어 가는 그것으로서 끝납니다. 불택자들은, 불택자들은 하나님의 심판법에서  정죄받아 가지고 사망의 선고를 받은 것이 하루 이틀 지나가면 자꾸 죽은 것이  점점 죽어서 끝을 마치고, 이 다음에 마지막날 부활해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영원한 사망으로 옮겨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이렇게 죽은 것을 예수님이 대속해서 다시  하나님 앞에서 살려 가지고 ‘이 산 것으로 현재를 통해서 영원히 사느냐, 산  것이 다시 죄값으로 죽느냐?’ 하는 이것이 우리 현실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불택자들이 죽는 것은 단번 죽은 것이요, 택자들이, 택자들의 것이 죽는 것은  두번째 죽음으로, 두 번 죽음으로 죽는 것입니다. 자체는, 자신이라는 그 자체는  죽지 않지만 자기에게 속한 모든 기능이라든지 또 소유라든지 영광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죽는데, 죽으면 그거는 두 번 죽음으로 죽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현실을 이렇게 큰 계획을 가지시고 큰 능력을  가지시고 큰 힘을 들여서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 주신 것인데,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이 현실이 자기 보기에 인간 생각으로 좋으면 하나님이 좋은 현실을  주셨다 해서 감사하고, 또 현실이 자기 지식에 좀 어긋나면 ‘하나님이 날  버리셨는가보다. 불행스러운 현실을 만났다.’ 이렇게들 말하지만 그것은 무식한  데에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은, 세상 사람들은 좋은 현실 나쁜 현실 이렇게 세상 법대로  평가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는 어떤 현실이든지 꼭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고,  이용 가치를 가지고 있고, 또 꼭 같은 효력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다 보배로운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이렇게 힘들여서 만들어 주셨는데, 이 현실이 보배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을 받아 살아난 것이 영원히 살게 되어 살아 다시는 죽음의 침노를  받지 않는 영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현실이고, 또 구속함을 받은 것이지만  기본구원 외의 것은 이 현실을 통해서 자신이 잘못하면 둘째 사망으로 영원한  사망하게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은 죽고 사는 현실이라’ 그렇게 우리가 생각을 가지고  잊어버리지 않으면 됩니다. 현실은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는 현실이다. 잘하면  영원히 살고, 잘못하면 영원히 죽는다. 우리의 기본구원은 변동이 없지만  건설구원, 자기가 하늘나라 가서 실력있고, 영광있고, 부요하고, 강하고,  존귀해지는, 인간과 인간의 차이는 인간이 아니라서 천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그 모든 갖추어 가지고 있는 것이 제일 못쓰게 됐을 때에 천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하늘나라도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 현실은 어떤 현실을 닥치든지 하나님이 나 위해서 큰 힘 들여서 만들어 준  현실이니, 수많은, 내가 앞으로 어떤 시간이 있다 할지라도 모든 시간보다 이  현실이라는 시간, 현재라는 시간이 제일 내게는 귀중하다. 또 현 장소라는 이  장소가 제일 귀중하다. 또 현재 닥친 이 일이 제일 귀중하다. 현재 내가 접하고  있는 모든 만물이 제일 내게는 제일 요긴하다. 이것을 알아서 이 현실을  빼앗기지 않도록, 현실을 도둑맞지 않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보화를 만나고 난 다음에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보화가  묻혀 있는 그 밭을 사 가지고 밭에 묻혀 있는 보화를 자기가 차지하게 된다 하는  그 비유 말씀인데, 거기에 밭이 뭐이냐? 거기에 밭이, 있는 것 다 팔아 가지고  보화 든 밭을 샀다 이러는데 그 밭이 뭐이냐? 그 밭이 크게 말하면 세상살이입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살이, 세상살이인데  그것을 아주 명확하게 말을 하면 자기의 현실입니다, 자기의 현실. 현실  빼놓으면 세상 암만 있어도 내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현실을, 현실을 뺏겨  버리면 다른 시간 암만 차지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다른 거야 다른 사람에게  주든지 말든지, 뭐 가지고 가든지 말든지 현실만 빼앗기지 않으면 그 세상은  자기가 점령한 것입니다.

그래서 있는 것을 다 팔아 가지고 밭을 샀다 그 말은 요 현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면 소유도 몸도 생명도 명예도 뭐 지위도 권세도 안 돌보고 현실,  ‘현실 요것만 내가 빼앗기지 않고 현실 요것만 내 구원을 위해서 바로 써야  되겠다.’ 이렇게 전력을 거기다가 기울여야 이 현실을 빼앗기지 않지 잘못하면  현실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러면 이 현실 속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일곱 가지가 그 현실 속에, 우리  현실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일곱 가지가 현실 속에 들어 있고, 또 죽고 사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또 둘이 이 현실속에 들어 있습니다. 죽고 사는 그  중대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것은 어떤 것이냐? 첫째로 내 마음과 몸의 기능이 이 현실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기능 몸의 기능, - 어떤 사람이 아주 - 예를 들면  대과학자가 되어서 그 사람의 머리를 아무도 당할 수 없다 하면 그것은 마음의  기능이겠습니다. 마음의 기능. 그렇지만 그 사람이 손으로는 하나도 만들지도  못하고 하나도 못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기능만 있지 그 사람 몸의 기능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마음의 기능 있는 것을 자기 손으로 다 만들어  실험해 봐서 손으로 만들 수 있으면 그것은 몸의 기능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악기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 그것은 마음의  기능입니다. 그러나 자기 손으로 실지로 악기를 다루지는 하나도 못합니다. 그건  몸의 기능이 없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아주 몸의 기능은 몇 가지 연습을 해서  그 악기를 아주 잘 다루지만 거기에 대한 지식은 하나도 가지지 못했으면 그  사람은 또 마음의 기능은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을 여러분들이 짐작을 하겠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마음의 기능과 몸의 기능 이것이 이 다음에 부활할 때에 부활한  자의 능력이 되는 것인데, 부활한 자의 능력, 이대로 무궁세계 가 가지고  능력있는 사람으로, 무능한 사람으로, 참 쓸모있는 필요있는 사람으로, 쓸모없는  그런 필요없는 사람으로 이렇게 무궁세계에 영원히 나타나서 그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이 현실에서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살린 사람은 하늘나라로  가져가서 영원히 자기의 도구가 되고, 자기의 것으로 쓸 수 있고, 이 현실에서  죽인 자는 그 현실에서 이별했으면 다시는 만나지 못합니다.

택한 자의 그 심신의 기능도 요 현실에서 준비를 잘못한 것은 패전했으면 둘째  사망으로서 그 사람의 심신의 기능은 영원히 죽어 버렸습니다.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유황불 구렁텅이 가서 타야 되는 것입니다.

죽고 사는 이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고, 영은, 영은  죽고 사는 문제는 없는데 영은 자기 심신의 기능을 영원한 자기 것을, 자기의  영원한 것을 만드느냐 자기의 심신의 기능을 악령과 죄악에게 빼앗겨서 다시  찾지 못 하게 영원히 빼앗기느냐?  그러면 이 현실을 통해서 중생된 영은 부자가 되고, 중생된 영은 아주  영광스럽고 존귀할 수 있도록 기능을 많이 살려 가지고 가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아주 심신의 기능이 능하니까 다 같은 사람이지만 그 사람은 아주  존대함을 받고, 한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지만 심신의 기능이 하나도 없는 무지  무능의 사람이 돼 놓으니까 그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지만 천대를 받습니다.

그와 같이 중생된 영이 심신의 기능을 많이 구출해 가지고 간 영은 아주  부자이고 영광있고 권세있는 영이 되고, 그만 자기의 그 심신의 기능을 다  빼앗겨 버리면 이거는 거지 영, 중생된 영은 영인데 거지와 같이 무능한 영이 돼  가지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현실은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죽고 사는 것이 현실에 매였고, 또  하나는 그 현실에 접촉하고 있는 모든 만물, 현실에 접하고 있는 모든 만물,  모든 만물 그것이 내가 그 현실에서 심신의 기능이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악령과  죄악과 이 세상을 이기게 되면 내가 이기니까 내 현실에 관계를 가졌던 물질,  사람, 모든 것 만물, 그 만물은 그것은 내가 이겼으니까 기능적으로 그것이 내  소유가 돼 버렸습니다. 그것이 내게 속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이겼을 때에 관련된 그 모든 것은 그게 기능적으로 무궁세계에 내가 쓰고 내가  쓸 수 있고 내것이고 영원히 내게 쓰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현실을 당할 때에 그때 내가 접촉할 때에 내가 의복을 입고  있다든지 돈을 관계 있다든지 무슨 일이나 사건이나 만물이나 인간이나 그 모든  것이 내가 이기면 그 모든 것이 내것이 되고, 내가 지면 그 모든 것이 악령의  것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그런고로 이 모든 접촉한 그 만물이 죽고 사는 것이  또 현실에 매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현실에는 일곱 가지가 들어 있고, 일곱 가지 속에 뭐이 들었느냐 하면  나하고 또 거기에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 관련된 만물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나와 만물들이, 내 심신의 기능과 만물들이 살고 죽는 것이 요 현실에서  결정돼 버립니다. 전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현실에 해당된 것은  결정됩니다. 해당된 것은 결정되면 다시 두 번은 없습니다. 한 번씩만 결정을  맞는 것입니다. 그 현실에서 해당된 그것은 살면 영원히 살고 죽으면 영원히  죽어버리고 그다음에는 다시는 아무리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곱 가지가 있는데 일곱 가지가 어떤 것이 일곱 가지가 들어 있느냐?  손가락으로 세십시오. 거기에는 죄가 들어 있습니다, 죄. 또 둘째는 마귀가 내  현실 속에는 들어 있습니다. 나 혼자 있는 줄 알아도 그 마귀라는 놈이 거기  따라와 있어요. 마귀가 들어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이 사망이라는, 이  사망이라는 것이 그속에 있습니다. 사망이라는 것이 들어서 ‘이 자를 망칠까 저  자를 망칠까?’ 사망해서 어쨌든지 죽이고 망치기를, 망치는 것이 저 할일이기  때문에 죽이고 망치는 일을 하려고 이 사망이 그 속에 또 들어 있습니다.

또 그다음에 넷째로는 뭐이 들어 있지요? 네, 넷째로는 심판의 법이 들어  있습니다. 심판의 법은 하나님 법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들어 있습니다. 또  다섯째는 뭐이 들어 있습니까? 예? 뭐라 하노? 주님의 이 3대 대속이 들어  있습니다. 또 그다음에는 뭐이 들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 영생법, 생명법,  안보법이 들어 있습니다. 그다음에 뭐이 들어 있습니까? 하나님이 들어 있고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 일곱이 현실 안에 같이 있고, 우리는 나와 현실에 관련된 모든 만물, 이  만물과 나는 그 사이에서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이 결정되는 요 현실인  것입니다.

그저 우리는 현실을 닥치면 그만 그저 뭐이든지 그날 그시간 살고, 또 그다음 한  다음 시간 오면 살고 이렇지만 요 현실이라는 건 요렇츰 중요한데 요 현실에는  요 일곱 가지가 들어서 요 일곱 가지로 말미암아 내 심신의 기능이 죽느냐  사느냐, 또 여기에 관련된 이 만물이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 것이 되느냐  이것이 영원히 내것이 되느냐 하는 이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현실에서 제일 먼저 생각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먼저 찾을  것이 뭐이냐? 먼저 찾을 것이 죄입니다. 죄를 먼저 찾아야 됩니다. 왜 죄를 먼저  찾아야 되느냐? 죄, 죄 때문에, 죄 때문에 마귀가 우리에게 침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만 없애 버리면 마귀는 우리에게 손도 못 댑니다. 와 가지고  사정이나 하지요. ‘이것이 좋은데 어떻습니까?’ 마치 내가 있으면 이 장사들이  와 가지고 ‘아, 좀 이거 사 보십시오.’ 안 산다 하면 그만이라. 이것 모양으로  마귀가 와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저렇게 꾀울려고는 하지만 우리에게 강제는 못  합니다.

죄만 없으면 마귀도 우리에게 꼼짝 못하게 되고 또 죄가 없으면 사망이라 하는  것도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를 못 망칩니다. 죄없는 것을 망칠 세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멸망시키는 그 세력이 크다 해도 죄없는 것을 멸망시키지  못합니다. 죄없는 것을 멸망시킬려고 하면 멸망시키는 그것이 깨져 버리고  박살이 나버리지 멸망 안 받는 것입니다. 죄 없는 것은 죽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죄 이놈 때문에 이 사망이라는 것이 힘을 씁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해 가지고 그것을 보응시킵니다. 하나님의 법대로 죽이고  멸하고 이렇게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조사해 가지고 멸하시는 그 법이  심판법인데, 그 심판법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심판받았으면 제가  심판대로 망해야 되지 그걸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죄가 없으면  심판법은 손을 못 댑니다. 죄가 없으면 심판법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를 해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까, 우리를 해하는 것? 마귀가  우리를 해할 수 있습니다. 또 사망이 우리를 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를 멸할 수 있습니다. 또 죄가 우리를 멸할 수 있습니다. 요 네 가지가  우리를 멸할 것들이고, 우리를 구원할 것은 일곱 가지 가운데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주님의 피공로와 또 하나님의 그 생명 안보법, 하나님의 생명법과 하나님 이  셋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구원을 위해서 이 셋은 현실 속에 와서 머물고 있고,  이 넷은 우리를 멸하기 위해서 현실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머물러 있는데, 우리는 그저 현실에 ‘아이고 돈 닥쳤으니까 이 돈을 어떻게  하노? 이 권세를 어떻게 하노? 이 사건을 어떻게,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노?’  사람들이 물건이나 돈이나 일이나 사람이나 그 짐승이나 그것만 생각하지 이  현실 속에 나를 망칠 그 세력이 넷이 들어 있고 나를 구출할 그 세력이 셋이  들어 있다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고만 현재에 닥친 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현재를 전부 다 빼앗겨 버립니다.

이 인간이 어데서 망했느냐? 전 인류는 현재에서 다 망했습니다. 현재로 다  망했어. 하늘나라 가서 구원얻은 그 영광스러운 사람은 그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어데서 만들었느냐? 하늘나라의 수많은 영광스러운 사람들이 그 영광을  어데서 만들었느냐? 그 만든 것이 다 현실에서 만들었습니다. 모든 망한 것도  현실에서 망했고, 모든 마련한 것도 좋은 것 마련한 것도 현실에서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이 현실 속에는 이 일곱 가지가 들어 있는데 이걸 모르는 사람은 그냥  산다 그거요. 알고 우리가 하려고 애를 써도 잘 안되는데 모르는데 그 사람이  무슨 구원을 이루겠습니까? 여러분들 좀 박절한 소리지만 새벽기도를 안 나오는  그런 점잖은 신앙들이 많은데 세상에서 어떤 지식으로 통달해도 그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돈이 많아도 불쌍하고 권세가 있어도 불쌍합니다. 잘나도  불쌍하요. 불쌍한 사람입니다.

왜? 자, 우리가 날 중에 제일 일주간 일주간, 이레 이레로, 자꾸 톰박 톰박,  이레 끊고 이레 끊고 이레 살고 또 이레 살고 이레 살고 이러는데, 이레 중에  제일 우리에게 요긴한 날이 어느 날인 줄 압니까? 요긴한 날은 주일날입니다.

주일날이 제일 요긴하요. 그러면 주일 중에 제일 요긴한 시간이 어느  시간입니까? 하나님에게 예배드리는 요 시간이 제일 요긴한 시간입니다.

그러면 하루 스물 네 시간인데 하루 중에 제일 요긴한 시간이 어느 시간인 줄  압니까? 첫 시간 하나님하고 타협하는 것입니다. 첫 시간에 하나님하고 의논하고  첫 시간에 하나님 앞에 치료받고 하나님 앞에 인도받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이 새벽예배 드리는 이 첫 시간 여기에서 그 하루의 성패가 결정된다 하는 것이  다 믿음의 사람들의 말입니다.

믿음없는 사람들의 말은 그건 다 틀린 말이기 때문에 말할 것도 없고, 이런데  새벽기도를 나와야, 새벽기도는 백목사가 여러분들을 고쳐주는 것 아닙니다.

나도 새벽기도 나와야 은혜받습니다. 새벽기도 나올 때에 ‘내일은 무슨 말씀을  하겠다’ 그거 내가 가지고 나오지 않습니다. 나도 그날 밤에는 밤에 잘  때까지는 또 잘 때까지 일을 하고 누워서 자고 나서 일어나면 그저 세시 반,  그리 않으면 네시 이리 되면, 네시 되면 바빠서 퍼뜩 해 가지고 옷 입고, 그뭐  어쨌든지 ‘설교 뭐 할까?’ 그거 생각 안 납니다. 쫓아와 가지고 예배당에  강단에서 엎드려 가지고 이제 첫 시간 하나님께 묻습니다. ‘오늘 아침에 무슨  말씀을 주실렵니까?’ 여러분들에게 준다 말이 아니고 내게 주고 여러분들에게  주고 한목 준다 말이오. 이제 우리가 받지요. 이러면 하나님께서 그날 아침에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을 주시는데, 그 성신의 능력을 이 강단에서는 비유컨대 호박을 말했습니다.

호박을 말했소. 호박을 말했는데 거기에 호박이 아니고 참 사과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 말이오. 사과가 필요한 사람 있으면 강단 위에서는 호박 설교를 했는데  사과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호박 설교할 때에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 사과  설교는 안 하는데 사과에 대한 것을 그 사람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강단에서 이래 설교를 해 주시는데 그 설교를 듣는 가운데에 자기가  현재 닥친 그 일은 그날 아침에 설교하고는 상관도 없는데, 상관도 없는데 설교  듣는 가운데서 자기 닥친 일에 ‘아’ 설교 들어보니, 설교를 들어 보니까  ‘내가 닥친 일을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결정이 나 버립니다. 그게 성신의  감화요.

강단에서 무슨 그 사람에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처리하라 하는 것 가르치지  않았는데 그 강단에서 설교를 할 때에 이 사람에게는 이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려 주셔서 그 설교에서 그걸 깨닫고 저 사람은  저거 깨닫고, 설교는 하나 했는데 천명이면 천명, 백명이면 백명이 다 자기에게  필요한 대로 다 깨달아져 버립니다. 그게 뭐이냐? 성신의 감화 역사입니다.

그것을 새벽기도 나와도 체험하지 아니한 사람은 공연히 자리만 채워 가지고  그냥 덜렁덜렁 와서 이래 왔으니까 다라고 생각하고 ‘오늘 아침에 내가 주님  앞에 나왔으니 주님이 내 모든 형편 사정 다 아시니 내게 대한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될까?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하는 이것을 주님이 가르쳐 주시기를  기다리면서 이제 설교 말씀을 듣습니다. 설교 말씀을 듣는데 자기에게는  평소에는 깨닫지 못하던 것이 딱 깨달아져서 ‘아, 이래 하면 되는구나! 아,  이거는 안 해야 되겠구나! 아, 이거는 해야 되겠구나!’ 새벽예배 때에 설교에서  자기의 할일 안 할일 그것을 깨달아지는 것이 제일 많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새벽예배에 기도할 때에 그때에 둘째로 잘 깨달아지요. 그래  가지고 하루 일과를 그날에 거의 다 돼 버립니다. 할 것 안할 것, 또 하나님에게  부탁할 것, 청탁할 것 하나님에게 물을 것, 하나님하고 같이 하자고 타협 오만  것 다 그 첫 시간에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새벽에 안 나오니 참 안타깝다 그거요. 뭘 압니까? 새벽에 안 나온  사람은 그 사람은, ‘나가 봤자 장 그 설교’ 그 설교만 하는데 그 사람은 그  주일날 설교를 해 놓고, 그날 설교한 건데 그 설교 한 데에서 많은 문제를 내면  맞겠지만 세 문제 내면, 새벽기도 안 나온 사람 쳐 놓고 내가 설교한 중에서 세  문제 냈는데 세 문제 답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대학을 졸업해도 하나도  없습니다. 안됩니다. 왜? 내나 그날 아침에 말한 것이지만 인간의 방언으로,  인간의 말로 표시하는 그 표시가 다 안됩니다. 무한을 인간의 말로 뭘  표시합니까? 말로 표시했는데, 표시한 그 속에 진의로 가르치는 것은 물으면 그  무슨 소리인지 제 귀에 들려야 알지?

이러니까 자, 이 시간에도 우리 현실이라 하는 것은, 이 현실은 어떤 현실인지도  모르고, 이 현실은 영원한 문제가 결정되는 현실인데, 완전 불완전, 영원 멸망  구원, 생명 죽음, 하늘나라 지옥, 존비귀천 이것이 영원한, 일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 결정되는 현실인데 이 현실을 영원한 것은 다 잊어버려 버리고  현실, 두고 갈 현실 거기에 다 써 버립니다. 두고 갈 현재의 현실에 다 써 버려.

이 현실이라는 것은 영원 무궁한 것을 마련하는 것이 현실인데, 이 현실을 자기  눈 앞에 보이는 현재의 것을 위해서 다 써 버리고 그만 허비하고 맙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현실이라는 이 현실관,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 현실을 네가 어떻게  여기느냐? 어떻게 살고 있느냐? 이 현실관 이것이 바로 되는 것이 아주 중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현실을 안 믿는 사람들이 우리의 현실을 알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큰 힘 들여서 만들었다. 이 안에 큰 것이 내포되어 있다 하는 것을 알겠습니까?  이 현실 속에 또 이 일곱 가지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안 나오면 자기가 어떻게 알  것이오? 이거 알려면 성경을 얼마나 읽어야 되는데, 대개 새벽기도 안 나오는  사람은 또 성경 많이 읽는 사람이 아니라. 그러면 뭘 알겠소?  이 현실에 일곱 가지가 들어 있는데 이 일곱 가지는 두 가지의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 현실이다. 두 가지 죽고 사는 것 뭐? 하나는 뭐입니까? 자기의  육, 육의 기능. 영은 살았고, 이제 마음의 지혜 지식 총명, 또 모든 도덕, 또  모든 물리, 하나님께 대한 지혜 지식 능력 이것이 다 마음의 기능이라 말이오.

우리가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지만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현실을 닥쳤을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다니엘 같은 사람은 사자구덩이 넣었다 할지라도 이 현실에서 ‘하나님 계명  지키겠다’ 하고 사자구덩이 집어 넣어도 지켰다 말이오. 그 사람은 계명지키는  능력이 있었어. 어떤 사람은 마음에 그래 먹었지만 막상 닥치니까 사자구덩이 안  들어가기 위해서 계명 그만 버려버리고 가 버렸다 말이오.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 마음의 기능이 없는 사람, 영의 기능이 없는 사람이라 말이오.

이 심신의 기능은 다 이런 기능들입니다. 심신의 하나님께 대한 경건의 기능,  하나님께 대한 순종하는 순종의 기능, 믿음의 기능, 이 모든 인간에게 대한  도덕의 기능, 또 모든 통치의 기능 이것을 총합해서 제사장의 기능, 선지자의  기능, 왕의 기능이라 그렇게 세가지로 분류해서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이 심신의 기능이 죽고 사는 이것이 현실에서 결정되고, 또 하나는  거기에 참가한 만물 그것이 죽으면 영원히 죽어 버리고 그것이 살면, 내가 살면  그것들도 다 내게 속해 버리고 맙니다. 모든 소속한 모든 그때 현실에 관련한  만물은 다 내것이 되고 만다 그 말이오. 그것만 내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이제 것도 장래 것도, 사망도 생명도, 모든 것도 천사들도 다  내것 돼 버려. 이렇게 큰 소유로 취득하는 것이 현실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무디 선생은 말하기를 ‘믿음보다 더 큰 수입을 가지는 것은 없다’  하는 말이 현실에서 믿음 가지면 큰 수입을 가진다 그말입니다.

자, 현실에 일곱 가지 들어 있는데, 죽고 사는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러면  아홉 가지 되겠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를 죽이는 것이 몇 가지입니까? 네  가지. 우리를 살리는 것이 몇 가지입니까? 세 가지. 세 가지인데 이 네 가지가  우리를 죽이지만 한놈만 없애면 나머지기 세 가지가 우리를 손도 못 댑니다.

한놈만 없으면 나머지기 세 가지가 우리를 손도 못 대요.

그런데 이 한놈 이놈을 놔 두고 다른 것 암만 건드려 봤자 안된다 그 말이오.

자, 자기가 현실에서 ‘마귀 이놈이 날 해하니까 마귀 이놈을 지금 어쨌든지  내가 대적해 가지고 이놈에게 미혹받지 않고 이놈을 꼭 지지 않고 이놈을 내가  이기겠다.’ 마귀를 이기겠다고 생명을 내대면, 내대고 결사적으로 하면 마귀  이길 수 있는 줄 압니까? 못 이깁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못 이깁니다. ‘헤’  마귀가 아주 비웃습니다. 아이들 말로 코똥 뀌요. 마귀라는 놈이 ‘네까짓 것이  뭘 날더러, 너는 내 종이라.’ 안되면 대가리를 눌러 때립니다.

이런데 마귀 이놈을 암만 시작해야 소용없습니다. 안됩니다. 사망이 ‘나는 안  망할련다. 안 망한다.’ ‘네까짓 게 암만 안 망할려 해 봐라.’ ‘사망 네가  아무리 날 망쳐 봐라. 내가 안 망하겠다. 사망 네가 아무리 날 죽일려 해봐야 안  죽겠다.’ 제가 안 죽겠다고 안 죽습니까? 사망 이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법은 더하지요. ‘하나님이 심판하거나 말거나 당신이 심판한다고  내가 그대로 될 줄 압니까?’ 하나님의 심판을 누가 항거하겠습니까?  이 네 가지인데 한 놈만 죽이면 이 셋은 내게 대해서는 꼼짝을 못 합니다.

꼼짝을 못 해. 하나님의 심판법은 내게 손을 못 댑니다.

이 넷 중에 한 놈만 죽이면 이 나머지기 셋은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이 넷  중에 뭣만 죽이면 됩니까? 뭣만 죽이면 됩니까, 저 뒤에도? 크게, 뭣 죽이면  됩니까? 큰 겁니다. 중대한 것입니다. 중대한 것이오.

자, 죄가 없으면, 마귀 이놈은 죄가 있어야 제것이라고 날뛰지, 죄만 없으면 손  못 댑니다. 사망도 죄 없으면 손 못 댑니다. 하나님의 심판도 죄 없으면 손 못  댑니다. 죄만 없으면 해결이 됩니다.

죄를, 죄를 어떻게 없앱니까? 자, 이제까지, 이 시간까지 자기가 죄를 지었다  말이오. 전 시간에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몰라서 그만 도둑질했다든지 무슨  죄를 지었습니다. 그저 전 시간까지 죄를 지었어. 전 시간까지 뭐 무슨 죄를  짓든지 죄를 지었어. 죄를 지었어.

이랬는데, 현실에 이 죄 저 죄 수많은 죄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 죄들이 있지만  내가 아는 죄, 내가 아는 죄가, 아는 죄가 어떻게 처리가 됐다 할지라도 모르는  죄가 있으면, 모르는 죄가 있으면 마귀라는 놈이 우리를 시작 못 합니까? 나는  몰랐지만 마귀는 다 알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현실에서 제일 급선무가 뭐이냐 하면 ‘죄 이놈을  멸해야 죄가 해결되겠다’ 하는 요걸 굳게 잡고 ‘요 현실에는 내가 어떤 죄를  범했지?’ 하는 그 죄를 아낌없이 찾으십시오.

무슨 죄든지, 무슨 뭐 흉한 죄라도 좋고, 큰 죄도 좋고, 작은 죄도 좋고, 어떤  죄라도 관계없습니다. 어떤 죄든지 이 시간까지 범한 그 죄를 낱낱이  찾으십시오. 찾고 이 죄를 없애는 법이 있습니다. 이 죄를 멸하는 법이 있어.

어떤 죄든지 자기가 그 죄를 찾아서 그 죄를 해결지을 때 마귀는 해하지 못하고  사망도 하나님의 심판법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죄지은 것이 개인이오. 이런데 인인관계로 된 이것은 여기에 해당치  않습니다. 인인관계로 사람하고 사람하고 된 그것은 그것을 사람에게 갚아야  되고, 사람하고 사람하고 죄를 지을 때 또 그 사람의 주인되는 그 나라에 죄가  있습니다. 나라에 죄가 되니까 그 나라법에도 그 죄를 갚아야 됩니다.

그러나 그 죄 지은 것을 요것을 해결을 짓고 나면 인인관계의 죄값으로서 죄값을  사람에게 죄를 지었으면 사람에게 죄값을 받고 나라의 죄를 범했으면 나라의  죄값을 받고, 받는다 할지라도 이 하나님이 사망시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그 받아 봤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그것을 다 배상 다 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남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시니까, 축복하시니까, 남의 소를 한마리 훔쳐 왔소. 훔쳐  왔는데, 이제 훔쳐 왔으니까 자기가 훔쳐온 그 죄를 이 해결법에서 해결한다고  해 가지고 소 훔쳐도 괜찮다는 것, 소 훔쳤으면 그 사람의 소를 갚아야 됩니다.

소를 갚아 줘야 돼요. 갚든지 그 사람에게, 인간에게는, 인간에게 범한 죄는  인간에게 해결지워야 되지 하나님 앞에 해결되는 거는 아닙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소를 한 마리 갚아 줬습니다.

한 마리 갚아 줬으면 다 됐다 싶지만 네가 우리 국법을 어겼기 때문에 소를  도둑질해다가 갚아 줬지만 도둑질한 그걸 어겼으니까 도둑질한 값으로 네가  구류를 살아야 된다 하면 또 구류를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다스리는 것이오. 그 사람을 구류를 살리고 어떻게 죄값을 나라에서 갚고 그  개인이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그 죄가 없어지니까 사망이라는 그  사망의 원인이 없어져 버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오니까 그걸 갚고도 남음이  있어서 부자가 된다 그 말이오.

그러기에 우리가 죄를 지을 때에는 인간에게, 국가에게, 하나님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것만 해결되면 인간에게 한 것은 그 값을 받습니다. 값을 받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크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그 말이오.

이 해하려 하는 네 가지 중에 죄만 들어서 해결지우면 되는데 이 죄를 어떻게  들어서 해결할 수가 있느냐? 자기가 이제까지 무슨 죄든지 지은 것을 이것을 다  낱낱이 자기가 깨달아 가지고 깨달은 대로 주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것은 내가 지은 이 죄값을 대신 지불하실려고 당신이 형벌받아서 죽으신 이  공로가 있기 때문에 이 공로 앞에 고합니다.

‘주님이여! 내가 이런 죄를 범했습니다. 이 죄를 사해 주옵소서.’ 주님의  공로에 빌 때에 법적으로는 사함받아 가지고 있는 것이 주님의 공로에 우리  주관적으로 우리 실상적으로 주님의 공로를 의지해서 ‘이 죄를 사해 주옵소서’  하고 고할 때에, 고하고, 주님이 내 죄를 대신하셨기 때문에 나는, 주님이 이  죄를 대신했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죄짓고 국가에게 죄짓는 것은 그대로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이 죄를 주님이 대신 담당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 죄에 다  용서함을 받았기 때문에 사죄를 받아 죄가 없다.

하나님이 대신 행했기 때문에 칭의의 의를 나는 받았다.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이 시간 하나님의 자녀요 죄 없는 의인이다 하는 요걸 가지십시오. 요  현실에 요걸 가지면, 가지면 마귀는 해하지 못합니다. 사망도 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심판법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소 잃어버린 사람 주인이 와 가지고 ‘이놈 소 내 놔라’ 소리는 합니다.

네가 국법을 어겼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라고 하는 것 할 수 있습니다. 갇혀 봤자  하나님이,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해결이 됐기 때문에 그거는 저절로  해결된다 말이오.

아무리 얼음이 얼어 봤자, 얼음을, 얼음이 얼어도 그만 봄이 돌아와 가지고 봄이  돌아오고 여름이, 여름이 되어지면 그까짓 거 뭐 굴 속에 있는 얼음까지도 다  녹아버리고 만다 말이오. 하나님의 축복이 오면 그거 다 절단나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죄 문제를 해결을 짓고, 예수님의 피공로로 해결을 짓고 난  다음에, 해결짓고 난 다음에, 그러면 죄 문제는 해결이 됐지만, 해결이 됐지만,  해결이 됐지만 자기 혼자 있습니다. 해결됐지만 자기 혼자 있으니까 마귀라는  놈이 와 가지고 또 침노를 합니다.

마귀라는 놈이 와 가지고 침노를 하고, 왜? 나 혼자 외롭게 섰기 때문에. 그럴  때에 즉시 하나님의 안보법으로 찾아갑니다. 주님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안보법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안보법에 들어가 버립니다.

하나님의 안보법을 내가 손을 잡습니다. 하나님의 안보법을 손을 잡아서,  하나님의 안보의 법을 손을 잡아 가지고 하나님의 안보법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들어가 버리면 마귀가 다시는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보법으로 들어갔으면 어찌 되느냐? 그다음에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 사람을 지켜서 구출하기 때문에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에서는 죄를 발견해라. 발견하고 난 다음에 빨리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이 죄를 해결지워라. 해결지워서 네가 이 시간, 금방  죄만, 무서운 죄를 범한 그자가 이 시간에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나는 사죄,  칭의, 새생명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요, 의인이요, 죄없는 자라.’ 요 대속을  입고 난 다음에 자기가 하나님 안보법에 소속하지 않으면 다시 떨어져 나가  버립니다. 다시 절단나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속으로 이 죄에서 벗어나면 마귀, 사망, 심판법에서  벗어났는데, 그 벗어나기는 벗어났는데, 벗어났지만 내가 힘이 없으니까,  벗어났지만 힘이 없으니까 내나 에덴동산에 아담 하와를 사망케 하던 마귀는 와  가지고 우리를 삼킨다 말이오. 삼킬려고 자꾸 달려들어서 침노를 한다 말이오.

마귀의 침노를 받지 않으려고 하려면 어떻게 됐느냐? 안보법을 의지해서  안보법에게 소속합니다. 안보법에 속합니다. 안보법에 속합니다. 안보법에  속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그 시간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없는 의인,  하나님의 자녀가 돼 가지고 그 시간 안보법인 하나님이 ‘네가 사는 데는 이래  해야 된다.’ 하고 그 시간에 안보법으로 나에게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안보법을  주십니다. ‘네가 요 시간에 요렇게 해라, 요렇게 해라!’ 시킵니다. 요렇게  해라 시키는 것 있습니다. 요렇게 해라 하는 그 시키는 것, 그 시키는 그대로,  성신의 감화 감동 주는 그대로, 그 시간에 그대로 해 버립니다.

그대로, 성신의 감화 감동이 자기에게 인도해 주시는 그대로 자기가 딱 해  버리면, 해서 요 법에서 끊어지지만 않으면, 요 법에서 끊어지지만 않으면  하나님의 축복은 자기에게 얼마든지 연결돼 올 수 있고, 악령과 사망과 하나님의  심판법은 나를 해하지 못하고, 다만 인간들은 나를 해하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들은 날 해하지만, 해해도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지 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하는 것이 변하여서 도리어 유익이 되어지고 해하는 것이 들어서 응원이  되어지는 그 결과를 맺게 되는 것이 이것이 비밀입니다. 이것이 비결이오.

그러기 때문에 요 현실이 중요한데, 요거 우리 현실에서 할일이 뭐입니까? 첫째,  죄인되는 것, 죄인. 재빨리, 재빨리 죄인되고 재빨리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사죄, 칭의, 새생명 받아서 무죄한 의인 하나님의 자녀되고, 그러고 난  다음에 재빨리 하나님의 생명법에 딱 속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생명법에 딱  속해서 하나님의 생명법에 딱 입각해 가지고 하나님 생명법과 연결이 딱 돼  가지고 있으면 아무도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현실은 퍼뜩 지나가는데, 이 현실은 지나가는데 이 현실 가운데서  우리가 할 것이 뭐입니까? 첫째 할 것이 뭐입니까? 첫째 할 것이 뭐입니까, 저  뒤에도? 여기 남반에, 첫째 할 것이 뭐입니까? 죄인이 되는 것, 또 둘째 할 것이  뭐입니까? 둘째 할 것이 뭐입니까? 하나님의 의인인 하나님의 자녀될 것.

그다음에 셋째 할 것이 뭐입니까? 셋째 할 것이 뭐이지요? 하나님의 안보법에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능력의 그 보호를 받는 것.

보호를 받는 것 그것이 뭐이냐? 다니엘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이 그렇게  말했지만 ‘안됩니다. 나는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해야 됩니다.’ 하는 그것이  안보법입니다. 그것이 생명법이오. 그 법은 안보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법을  내신 하나님이 그 법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 안보법은 하나님의 전능이 책임지고  하기 때문에 다니엘을 전능이 책임지고 하시기 때문에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가서 살아 나왔든지 안 살아 나왔든지 다니엘은 영원히 죽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 현실에서 재빨리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돼야 됩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돼야 돼요. 이것이 동시에 되고, 그다음 현실에도 자꾸 그렇게 해  나가면 이는 악령과 사망과 하나님의 심판법이 우리를 해할 수 없는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으로 주시는 구원의 유일한 방편입니다. 요 방편을 써야  되지, 자기가 죄를 가지고 끙끙 앓으면서 ‘나는 이런 죄를 지었다.’ 가슴을  치고 배가 터져 가지고 후회를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를 가지고 아무리 울어도 소용없소. 가슴을 쳐도 소용없소. 지은  죄가 너무 원통해서 그만 기절합니다. 지은 죄가 너무 원통해서 그만 까무라져  버렸소. 그만 죽어 버렸소. 그러면 됩니까?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 죄를 가지고  어떻게 해도 소용없소.

그 죄를 재빨리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연결시켜서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지워야 됩니다. 해결이 짓고 난 다음에 제가 가만히 그냥  있으면 다시 마귀가 죄에게 삼키게 됩니다. 무능하기 때문에 자기가 또 삼켜진다  말이오. 삼켜지기 전에, 삼켜지기 전에 하나님의 안보법 속으로 들어갈 것,  안보법에 들어가 가지고 안보법 속에 이 안보법의 보호를 입어서,  안보법이 뭐이냐? 그때에 하나님께서 ‘네가 요렇게 해라’ 하는 인도 그것이  안보법인데 그 법에 보호만 입으면, 그 법에 속하면 그 법에 보호를 입으니 그  법을 입으면 다시는 우리를 사망이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예배 후에 아래층에서 결혼식이 있습니다. 많이 참석해 가지고 축하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러고 광고 하나 합니다. 신고함에 신고한 것을 낱낱이 봐 가지고 이 대중 앞에  광고하려고 하니까 너무 시간이 없어서 그것을 보고 자꾸 고쳐. 잘못된 것은  고쳐 나가고 또 말을 하지만 아직까지 잘못 알고 한 그런 것은 내버려 두고  신고함에 써 넣은 것은 한 장도 그냥 무로 돌아가는 것은 없습니다. 요새는 그  신고함을 매일 개봉합니다. 매일 봐 가지고 받아서 그래 하는데,  주일학교에 대해서도 신고함에 들어오기를 반사들이 학생을 인도하러 갈 때에는  반드시 그 부모님을 찾아서 뵈옵고 양해를 얻을 것. 또 데려왔다가는 데려다 줄  것. 또 아침에 일찍이 간다고 일찍오니까 밥도 못 먹고 안됐다고. 하지만  얼마동안 그렇게 하면, 자기네들의 그 아들을 위해서 그 반사선생님이 날이나  시간이나 그 방편이 변하지 아니하고 할 때에 진실함으로 그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고 그다음에는 자기 자녀를 위해서 그렇게 성심성의를 기울이는 데에  감동받아서 주일학교를 인해서 그 부모네들이 나오는 사람들이 많고, 나오지  못할지라도 그 성심성의에, 데려왔다가 또 가르치고 데려다 주고 이럴 때에  감동을 받아서 부모네들이 아침 일찍 준비해 줄 수 있다는 것.

이래서 남의 자녀를 두고 그 부모와 자기 반사와 합해 가지고 이 아이를  어쨌든지 이렇게 고쳐 나가 봅시다. 장점도 말해 주고 단점도 말해 주고, 단점은  어쨌든지 ‘이런 이런 점이 단점이 있으니까 어쨌든지 부모님들도 이 면을 좀  힘을 써 주십시오. 나도 이래 하겠습니다.’ 장점을 말해 주면서 ‘이런 점이  장점이니 이것을 잘 보장해서 사기를 돋궈서 잘 길러 주십시오.’ 자기 자녀를  위해서 성심성의를 다 기울일 때에 그분들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전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 합시다.’ 하는 것을 신고함에  써 보내서 참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렇게 앞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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