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관


선지자선교회 1984년 1월 18일 수새

 

본문 : 출20:4-6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를, 가진 시간은 이 세상만이 아니고 영원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가르쳐 주셔서  우리가 안 것이지, 세상에서는 다 세상에 있는 동안만 자기는 살아 있는 동안만  시간이 있지 죽은 다음에는 자기에는 시간이 없다, 또 어찌 되는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빛이 와서 이것을 바로  보게 됐습니다. 시간에 대한 관찰이 바로 됐습니다. 시간관이 바로 됐습니다.

영원한 시간이 우리에게는 있다, 우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존재다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시간 중에 우리에게는 요 현재라는. 요 현재라는 시간. 요  시간만 우리에게 필요하고 이것이 내 시간이지. 그 다음에 다른 시간은 부활하고  난 다음에도 다른 시간은 자기 시간 아닙니다. 언제든지 현재라는 시간만 자기  시간이지 하늘나라에 가서도 그러합니다. 요 현재라는 그 시간을 자기가 복되게  이용해야 되고 또 모든 행복을 영육의 행복을 누리야 되지 그 현재 못 누리면 그  다음 시간은 있기는 있지마는서도 자기에게는 참 필요가 그렇게 없는  시간입니다. 요 현재라는 요 시간만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연습을 하기를 현재라는 요 시간을 내 시간으로 삼아서 요  시간을 전심 전력 기울여 가지고 이 시간을 후회없이 살아야 되고 이 시간을  행복되게 살아야 되지 이 시간을 무시하고 무심히 지내면 다른 시간이 암만 있다  해도 자기는 시간에 대해서는 다 실패입니다. 영원이 있어도 현재만 자기가  실패한다면 영원은 다 실패하고 맙니다. 그저 현재라는 그것이 자꾸 계속돼서  영원도 되는 것이지 현재 없는 영원은 자기에게는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또, 이  우주가 넓고 또 영계 가면 더 넓고 무한하지마는 우리에게는 이렇게 넓은 중에도  자기에게는 그 자기의 현실. 자기가 닥친 그 현실 이 현실만이 중요합니다. 그  현실을 만일 그 사람이 다 무시해 버렸다면, 현실을 다 빼앗기고 잃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늘 연습하기를 현실을 내가 깨어 있어야 하겠다.

누가복음 21장 34절 이하에 보면 '깨어 있으라' 하는 그 말씀이 깨어있지 안하면  그물같이 너희에게 그 날이 닥친다 이랬는데, 그 '깨어 있으라' 말은 현실을  자기가 그 가치성을 깨닫고 후회없이 현실을 상대하라, 또 현재를 자기가  후회없이 상대하라 하는 그 말입니다. 이렇게 현재와 현실이라는 이것은 참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담 더 중요한 것 있습니다. 현실이 중요하고 현재가 중요합니다.

중요하지마는서도 그 현재와 현실이 이렇게 중요하니 현재 중심으로 현실  중심으로 그렇게 우리가 살기 쉽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이 법칙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니 우리가 닥친 이 현실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어떻게  해야 되나. 자기 현실을 하나님 말씀대로 그것을 하나 하나 분석하고 취급해서  나가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나가면 흠이 없는 생활을 하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 현실이라 하는 것은 현재라는 요 시간은 많은 시간 중에 그 시간이 제일  귀한 것이지. 또 현실이라는 것은 자기가 현실 닥친 데에 거게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뭐 물건도 있을 수 있고 일도 있을 수 있고 천사도 있을 수 있고 천군도  있을 수 있고 또 위대한 신앙가들도 있을 수 있고 또 비참한 일들도 있을 수  있고 뭐 별별 것들이 다 온갖 피조물이 거게 다 등장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모든 피조물이라는 그런 존재 중에 자기에게는 현실이 제일 귀중하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벌로 취급하면 안 된다, 현실을 아주 거게다가 제일  주력을 해야 된다. 그러나 그보담도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더 귀한 것이 있는 것은 누군고 하니 영원 자존하신 홀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 목적 하나를 두시고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보존도 하시고 섭리하시는 이 자존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주가 되신  이 하나님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존재 중에  뛰어나신 제일 존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참 현실 속에 살고  있는데 시간 중에는 그게 제일 귀중하고 또 모든 피조물 중에 현재라는 요소  중에는 그것들이 제일 귀중하지마는 그것을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시고 섭리로  만드시는 자존하신 전지 전능하신 완전하신 불변하신 영원하신 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비교를 못합니다. 성경에 보다 더 귀히 여기라  무엇보다 보다 이래 말하는 것 그러면 이것보다 그것을 반드시 들어서 말을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네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또 네 목숨이나 무엇이나 무엇보다  주님을 더 사랑치 안하면 안 된다, 또 그 반대로 미워하지 안하면 안 된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것은 다 어떤 사람보다 부모를 미워하라는 그 말  아니고, 또 그 어떤 사람보다 형제를 미워하라는 말 아니고 미워하란 말은  주님을 상대해서 주님과 비교할 때에 주님과 비중을 달 때에 둘 중에 하나를  사랑하고 둘은 사랑할 수 없을 그때는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런 것들을 다  미워해라 그런 말이지 그저 그것을 미워하라는 그런 말 아닙니다. 자기보다는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기에, 모든 존재 중에는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 이분이 제일 크시고 또  이분이 모든 것의 원인이 되시고 창조주 되시고 모든 걸 다 주권하고 계시고  그러니까? 과거를 보아도 이분이 제일 크신 분이시고 또 현재로 보아도 이분이  제일 크신 분이시고 영원 무궁토록도 이분이 제일 크신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보다 이분을 크게 여기고 귀중히 여기고 제일 이분에게 조심있게 그렇게  취급을 해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주체가 돼 가지고서 내가 사람도 취급하고 사물도  취급하고 또 하나님도 취급하는 요런 것으로서 우리가 하면은 자기가 우상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도 모든 존재 중에 첫째로 나를 취급해야 됩니다. 모든 존재에  대해서, 사람에게 대해서도 내가 이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할까?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할까? 내가 이 물건에 대해서 어떻게 할까? 어데든지 내가 먼저  돼야 됩니다. 내가 제일 먼저 돼야 되지마는서도 하나님께 대해서는 내가 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나 하는 것은 그것은 그만 못 씁니다. 그거는  거게는 해당하지 안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는데 그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로 인하여 살리라' 그 말은 자기가 모든 것을 '내가 어떻게  할까 내가 여게 대해서 어떻게 할까' 이렇지마는서도 하나님께'대해서는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하나' 하는 그것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하나 그러면 우리가 접촉하는 현재라는 것과  현실이라는 그 모든 것에 대해서 내가 취급하듯이 '내가 이것을 어떻게 하나'  하는 거와 같이 '내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나' 하는 그것이 되기  쉽습니다. 그것은 망령입니다. 그거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처음에는 찾는 그  방편에서 그렇지마는서도 그것이 이제 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현재와 현실을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취급했으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는 다 행하고 사는  사람이라 그렇게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그것이 자기 주관인데 자기 주관이  먼저 있고 자기 주관 밖에 수 없는 객관들이 있으니까? 주관이 객관을  상대합니다. 주관이 먼저요 자기가 먼저요. 객관이 그 다음이라. 주관이 객관을  어떻게 취급하나 이렇지마는 처음에는 그렇게 하지마는 우리는 그것이 찾아  들어가는 것이요 이제 사랑할라고 하는 것이지 우리가 구원 얻어서 거석한 것은  성령과 진리가 우리 영을 살렸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과 진리로 성령으로  제일 먼저 시작하고 그 다음에 진리로 시작해 가지고서 성령과 진리가 셋째로  셋째로 내라는 이 자신을 취급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거게 붙들려서 그로  인해서 살고 그로 말미암아 시발하고 움직이야 되지. 이것을 자꾸 연습해서 내가  만물 취급하듯이 하나님을 그렇게 취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취급하시는가 하는 그것을 자꾸 자기가 깨어 연습해서 하나님이 나를 취급하시는  대로 하나님에게 취급을 받는 대로 취급을 받아야 되지 자기가 주체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2 계명은 자기가 무슨 어떤 것을 만났든지 만날 때에는  '이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이것을 주셨다' 하는 그것을 먼저 기억하는  그순서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현실은, 현실을 내가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속하신 주님께서 이 현실을 주신 것이다. 주님이 현실을  주셨으니 이 현실을 어떻게 하라고 주셨는가' 하는 거게부터 이제 내가  나옵니다. 아, 하나님이 나에게 이 현실을 주셨다. 하나님이 하나님이 먼저  하나님이, 주님이 나에게 둘째 현실을 주셨다 셋째, 현실, 현실을 주셨다.

그러면 이 현실을 어떻게 취급할까? 아, 성경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으니까?  말씀대로 이 현실을 취급해야 되겠다. 말씀대로 취급했으면 인제 됐느냐?  말씀보다 그 영감이 주님께서 나에게 인도하시는 대목 인도니까? 그 대목 인도  그 대목이라는 말 이거 내가 사투리인지 모르는데 가지로 말하면 이 가지가 이래  벌어지고 이래 가지가 벌었으면 이 가지 여기가 대목이고 여기가 끝이겠습니다.

이 대목,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대목이 영감이요. 영감이 거게서 나오면 이  진리라 말이요. 진리. 진리. 또 진리에서 나오면 진리는 하나님의 뜻인데 영감이  하나님의 뜻이 되고 하나님의 뜻이 나와 가지고 그 다음에-다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이 섭리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그 다음에는 나, 나에게 이 현실을 주셨다 현실, 그러면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말씀대로 해야 되겠다. 말씀은 찾아 들어가니까?  말씀대로 할라면 이렇게 해야 되는데 그보다도 영감을 찾아서 영감대로 할라면  어떻게 해야 되나? 영감대로 할라면 그저 찾아야 되겠다. 그래 가지고 말씀대로  자기가 찾아서 말씀이라는 그 테두리 안에 그울타리 안에 들어가기는 들어  갔지마는서도 제일 한가운데를 모르겠다. 이러니까?, 말씀대로 하면서 영감이  무엇인가. 성신이 나에게 이렇게 내가 지금 찾은 것을 바로 찾았다고 하는가, 이  가운데서도 성경 가운데서도 범위가 넓으니까? 이 중에 제일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이 나 인도하시는 그 인도에 딱 들어 맞아서 명중할라고  하면 그게 뭐인가 하는 그것을 찾는 것이 영감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을 살 때에 제일 먼저 취급할 것이 뭐이냐 하면은 자기가  아닙니다. '내가 이것 어떻게 해야 되나' 자기를 일호에 두며 안됩니다. 자기를  일호에 두지 말고 제일 일호에는 누구를 둬야 됩니까? 요 인정이 됩니까? 요  인정이 되고 자꾸 애를 써야 되지. 그래 자꾸, 벙벙하이 이라면 나중에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집. 집은. 짓기는 지어놨는데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었기  때문에 영감이 와서 심판하고 진리가 와서 심판할 때는 다 불타 버리고 맙니다.

그러니까?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지어야 되지.

 그러니까? 제일 첫째가 언제든지 깨어 있으라. 그 말은 주님으로 인하여 있으라  주님으로 인하여 살아라 그 말입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살아라 말은 진리로  인하여, 진리보다 안에 영감으로 인하여서, 영감 영감은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뭐 하시는 것이 영감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을 먼저 첫째 생각하고 그 다음에 자기를 생각하고 그 다음에  모든 사물들을 생각할 때에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하는 그것을 가르친 것이 이  계명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주님이 나에게 이 현실을 주셨다, 주님이 내게,  일호 주님 이호 나, 삼호 현실, 현실을 주셨다. 그러면 이 현실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데 그 하는 방편은 성경에게서 찾아 봐야 되겠는데 성경에  찾아보는데 성경에서 그 현실을 뭐라고 말했습니까? 현실을 어떻게 하라 그  성경에 말합니까? 뭐라고 성경에 뭐라고 말하지요? 성경에 66권은 다 여게  해당되는 말이 있는데 66권 가운데에 뭐라고 말했는지? 주님, 이호는 나 삼호는  현실을 만났습니다. 그 현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야 되겠는데 하나님의 인도는 신구약 성경 말씀이 인도고 그 인도를 따라  가지고 인도로 가지고 윤곽은 대충 이래 윤곽은 잡았지마는서도 그 속에 주님이  딱 인도해서 하는 고거는 잡지 못했는데 성경 말씀으로 윤곽을 잡고 그 가운데에  하나님의 딱 뜻에 딱 명중 하는데는 성경이 인정을 해서 요래라 하는 거기라야  틀림없다 그것이요.

 그런데 하나님 둘째 나, 그 다음에 성경대로 해야 되는데 성경에 뭐라고  했습니까? 그걸 한번 현실을 당했을 때에 우리가 평상 생활이 그것이니까?  어떻게 성경에 뭐라고 합니까? 현실 만날 때에 어떻게 합니까? 저 ○○○ 선생?  자기 구원을 이루는데에 자기 구원을 이루는데에, 그러니까? 자기 구원을  이룬다니까? 자기를 위해야 된다 그 말이지요. 자기 구원을 이루면 내나 자기가  먼저 아니요? 자기 자기 구원을 위해서 자기 위해서 이용해야 된다 말이지요?  하나님 뜻이기 때문에, 여게 오늘 아침에 읽었는데 4절 한번 읽어 보이소.

뭐라고 했소? 그래. 너를 위하여 내나 이번에 그 ○○○ 선생이 대답하는 것은  내나 너를 위함입니다. 그게 너를 위함입니다. 자기 구원을 위하는 그게 너를  위함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일호가 하나님 또 이호가 자기, 삼호가 현실, 사호가  주를 위함입니다. 성경은 첫째 말하기를 '그 현실을 당했을 때에 이거 내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하나' 그것보다 '껍데기는 이 현실 이것을 위해서 어떻게 하나'  그것이 되기 쉽습니다. 현실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하나, 이 사람을 만났으니 이  사람을 어떻게 하나, 이 물건을 만났으니 이 물건을 어떻게 하나 그거는 더  껍데기요. 그 보담도 속에 껍데기는 뭐입니까? 그 뭐요? 그 안데 있는 껍데기.

우리가 현실을 닥쳤을 때에 잘못하면 그 사람 되기 쉽습니다. 요 현실을 이걸  어떻게 해야 되나? 그렇게 되기 싶다 말이요. 그말은, 같으면 하지만, 아니요.

아주 현실을 위해서 어떻게 되나 그러면 그 사람은 어데 대해서 지금 현재에  행동이 피동되겠습니까? 저 뒤에 조는 사람 화원부에 다니다. 일하는 사람. 그  지금 자기는 현실을 닥쳤는데 이 사람을 만났으니까? 이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나 이렇게 되면은 자기는, 자, 처음에 사람을 줬습니다. 그러면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다음에는 일이 왔습니다. 일에 대해서 어떻게 하나, 자꾸  현실이 이거 저거 자꾸 닥치면은 자기는 어데 지금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까?  그것이 현실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 현실에 피동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 기도를  자꾸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게 그런 것 같지마는서도 그게 틀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이 하늘나라는 참 말할 수 없는 전지의 지혜로서 가야 만 가지.

인간 지혜 가지고 안 되기 때문에 영감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이 일호, 자기가 이호, 셋쌔로는 뭐입니까? 자기가 셋째로는 이제  하나님이 현실 주셨다. 하나님이 현실 주셨다 요러면 삼호 되지 요 사호는 뭐이  돼냐 되느냐 하면은 성경대로 되는데, 성경에 뭘 가르쳤느냐 하면은 그 하나님이  주신 그 현실, 그 현실을 너 위하면 멸망 받고 요걸 말해놨습니다. 너 위하면  멸망 받는다, 현실을 너 위하면 멸망 받는다. 그 현실을 자기 위하지 안하고  현실을 주를 위해야 됩니다. 현실을 주를 위하는 것, 그러면 현실은 몇  호입니까? 현실은 몇 호가 현실이 지요? 삼호. 사호는 뭐입니까? 주를 위하여.

그러면 주님이 그 나에게 이 현실 주셨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사 호에  주님이 어째라고 주셨나. 이건 주를 주를 위하라고 펐지 나 위하라고 주는게  아닙니다. 나 위하라고 주는게 아니고 주를 위하라고 준 것이기 때문에 주를  위함이 어떻게 되느냐, 요것이 몇 호 됩니까? 그라면, 사호 요게 중요합니다.

요게 중요해요. 잘못하면 그리 끌려 갑니다. 요게 아주 중요합니다. 자기가  현실을 닥칠 때에 제일 중요한 것 뭐이냐 하면은. 일호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내게 자기 이호, 삼호로 현실을 주셨는데 현실 주신 이 현실은 현실 위해서  어떻게 하라고 했느냐? 그러면 현실에게 피동입니다. 현실을 나 위해서 어떻게  하라고 했느냐? 그것도 피동입니다. 현실을 주실 때에 아무도 위하지 말고  현실을 주실 때에 주를 위하라고 현실을 주셨습니다. 요것이 아주 어려워요.

주를 위해서 주신 요 현실이라는 것. 요게서 부터 신앙이 시작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렇지 안하면 자기는 현실에게 피동돼서 하나님께서 일호라는 현실을  줬습니다. 그러면 일호라는 현실을 주니까? 이 현실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하나,  일호 현실에 대해서 취급할라고 일호 현실에 끌려 갔습니다. 이호 현실을  줍니다. 삼호 현실 사호 현실 자꾸 현실만 주니까? 현실만 졸졸졸 따라  나옵니다. 마치 고기 낚는 그게 낚는 그 어부가 낚시에다가 밥을 끼 가지고서 그  고기를 낚을라고 하는데 그것 안 무니까? 요리 요리 자꾸 요래 요래 하면은  고놈이 졸졸졸 따라오면서 물려고 애를 씁니다. 그 요라다가 물도록 딱 또 이래  내밀어 주면은 저놈이 꽉 물 줄 알아도 내밀어 주니까? 또 살짝 피하고 안  먹습니다. 자꾸 그라면 요리 조리 자꾸 이라고 자꾸 이래 가면은 졸졸졸 끌려  온다 말이요. 끌려오다가서 딱 물면 그만 죽어 버려요. 그와 꼭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을 자기가 어떻게 취급하나 요렇게 돼지면 그 현실이 끄는 대로 두 번  끄었으니까? 두번 끌려갔고 열번 끄었으니까? 열번 끌려갔고 백 번 끄었으니까?  백 번 끌려가고 그 현실을 끌고 어데든지 갈 수 있기 때문에 가는 대로 쭉  따라가면은 마치 그 엘리사가 도단성에서 사마리아 성으로 끌고 간 것  마찬가지로 그러면 끌고 가 가지고서 멸망을 시킨다 그거요.

 그러니까?, 요 현실은 주님께서 내게 현실을 주셨으니요 현실을 어떻게  취급하느냐? 거게 대해서 대답하십시오. 사호가 뭐입니까? 주를 위해서 주를  위해서 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게 말씀하시기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인데 너를 위하여인데 위하는 그것은  뭐입니까? 위하는 그것은 뭐입니까? 위한다는 것 자체 위하는 자체, 위하는 사람  말고 위해지는 그거는 뭐입니까? 위해지는 것. 그 현실이지 현실 아니요?  위해지는 것. 그러면 현실을 그걸 자기 위해서 취급하면 헛일입니다. 무슨  일이라도 그리 하기 때문에 자꾸 실패를 한다 그 말이요. 자기가 어떤 직장에  있든지 뭐 있을 때에, 아! 내가 이 일을 닥쳤으니까? 이 일을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자기 딴에는 신앙생활 잘 한다고 생각하고서 아주 바로 됐다 생각  하지마는, 그 사람은 인본주의로 자꾸 나간다 그 말이요. 그러면 그래 가지고서  그 ○○에 가 가지고서 그만 그 실수를 했다 그 말이요. 일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런데 차차차 그래 타락해 나가면 그만 제 맘대로 나가고 나중에 인간  인본주의로 나갑니다. 인본주의로. 현실을 닥칠 때 현실은, 주님이 내게 주신  현실인데 주님이 내게 주신 현실인데 이 현실은, 이 현실에 대해서 너는 어떻게  하라 이렇게 하라고 또 이 현실을 나 위해서 사용하라 내 구원 위해서 사용하라  그래서 준게 아니라 이 현실은 주를 위해서 사용하라고 이 현실을 주셨다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주를 위해서. 사호. 그러니까?, 자기가 어떤 그 지위에서 무슨  일이 턱 닥치면 이 일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그리만 생각하면은 인본입니다.

 아. 내기에 뜻밖에 이런 일이 닥쳤다. 이 일이 닥쳤다. 이 일을 주신 이는  주님이시다. 주님이 내게 이 일을 뭐할라고 주셨을고? 어떻게 하라고 주셨을까?  어떻게 하라고 줬습니까? 성경 말씀대로 하라고 주셨습니까?  주를 위해서 하라고 주셨습니까? 주를 위해서 하라고 주셨습니다. 주를 위해서  주를 위해서 하는데 주를 위해서 하는 데는 어떻게 합니까? 주를 위해서 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는 데는 이제 성경이 거게 가르쳐 놨다 말이요.

그러면 '주를 위해서 하라' 요것이 성경이고, 또 주를 위해서 하는데에는 그라면  거게서 세부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또 그것도 성경이 가르치고 있다 말이요.

알아 듣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래야 주님에게 피동이 되지 그렇지 안하면  주님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자기에게 주님이 현실을 주셨지마는서도 그 현실을  그만 자기 위해서 하라고 한 것으로 이래 알면 주인이 바꿔져 버렸습니다.

주인이 바꿔져 버렸기 때문에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닥친 크고 작은 모든 일은 그것은 주님이 주셨다는 이것을  의심없이 믿어야 됩니다. 뭐 좋으나 나쁘나 사랑하시는 주님이 주셨습니다. 내  구원을 책임지신 주님이 주셨습니다. 우리 구원을 책임진 이가 누가 책임졌는고  하니 성령님이 책임졌고, 진리가 책임 졌고. 주님 십자가의 공로가 책임을  졌습니다. 졌는데 이래 주님이 이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인 네 이 주신 것은 그것  따라가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그것을-주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를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 현실을 주셨는데 현실을 나를 위해서 어떻게  사용해야 되느냐, 주를 위해서 어떻게 사용해야 되느냐 누구를 위해서 사용해야  되겠습니까?, 누구를 위해서 그것을 취급해야 되겠습니까?, 주를 위해서  취급해야 되는 요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그 주님에게 피동입니다. 그러 사람은 거게서 살아날 수가 있습니다.

거기서 살아나고 거게서 죽고 사는 것이 그게 똑 그 귀로가고 있어. 죽고 사는게  그 귀로에 있어. 어떨 때는 현실을 주셨는데 그 현실을 주셨는데 현실을  무시하도록 그래 주신 것도 있다 말이요. 현실을. 아 현실을 주셨는데 현실을  주신 이가 주님이시지마는서도 주님이 이걸 주셨는데 주님이 주신 것인데 주님이  어떻게 주를 위하라고 이거 주셨는가? 주님이 주신 것인데 그 현실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사용하라는 것도 있고, 그 현실은 주님이 아예 이 주신 네게 준  이 현실은 네게 닥쳤지마는서도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접촉하지도 말고 아예  거게 대해서는 냉정스럽게 상관이 없는 자가 되어져라 이런 것도 있다 그  말이요. 알겠습니까? 냉정스럽게 거게 대해서는 상관하지 말아라. 그 현실은 뭐  그 벼락같은 일이 닥쳤지마는서도 닥쳤거나 말았거나 거게 대해서 생각하지도  말고 아예 염두에 두지도 말아라 또 주님이 이렇게 할 때도 있다 말이요. 요게  이해가 돼야 돼. 그럴 때가 있는게 사람들이 그럴 때도 이것을 하나님 말씀  가지고 어떻게 되느냐 아 하나님 주님이 그것은 상관하지 말라고 지금 주님에게  피동 되니까? 주를 위해서 주를 위해 보니까? 주님이 그거는 취급하지 말아라  이랬는데 주님이 주셔 놓고 보자 거게 따라가는가 나 따라가는가 보자, 주님이  주를 위해서 해야 되겠으니까?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러니까?, 주님이 있다가 이걸 어째야 됩니까? 거게 대해서는 나를 위할라면  어떻게 해야 돼 주님을 위하는 것, 이것 취급하지 안하고, 그만 생각 안 해야  되겠습니다. 생각 안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 생각하지 마라. 그라면 주를 위함이  됩니다. 그렇지 안하고 그때 그걸 주를 위하는 그것만 잊어버리면 주를 위한다는  그것만 잊어버리면 그만 거게 대해서 어떻게 하나님 말씀대로 해야 되느냐?  요렇게 취급하게 되면은 그게서 인본이 발족이 됩니다. 거게서 피조물에게  피동되는 피동이 그만 발족이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그것을 자기를 위해서 쓰든지 자기를 주로  삼아 가지고서 그것을 그 관계를 가지든지 그 자체를 위해서 관계를 가지든지 그  자체를 위해서 관계 가지는 그 사람은 그것 우상되겠고 자기 위해서 관계 가지면  자기가 우상되겠고 주를 위해서 하면은 이제 그거 바로 되는 것입니다. 요것이  좀 어려운 말인데 아주 그 좀 구별을 해서 해야 돼. 그러니까? 사람이  어두워지기를 거게서 어두워집니다.

 자기에게 현실을 주는데 이 현실은 뭐 누가 줬다 누가 줬다 하면 원망 불평이  시비가 많이 나오는 것인데 그 주님이 주신 것을 주신 것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현실은 주님이 주셨다. 몇 호입니까? 현실은? 또 이호는 뭐입니까? 일호는  뭐입니까? 녜. 요걸 똑똑히 해야 됩니다. 그러면 사호는 뭐입니까? 그 성경대로  성경이 요렇게 가르친다 말이요. 너를 위해서 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것은 전부 사랑하므로 움직이란 말은 주를 인하여 움직이라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마음을 다해  버렸으니까? 주님에게 대해 버렸으니까? 딴데 뭐 갈게 있어야지 전부 주님을  위해서 밖에는 할게 없는데.

 그러니까? 요것을 구별하지 안하는 가운데에서 사람이 슬슬 닥치는 요것을 주의  말씀대로 취급해야 되겠다. 요라면 제딴에는 참 완전하게 완벽하게 한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하는 것이 그것이 아주 그 일에 대해 성경 말씀대로  취급하니 고거 잘 됐습니다. 그것이 뭐이라 합니까? 고거 뭐이지요? 숫자로 말해  고거 뭐이지요? 그게 육백 육십 육입니다. 그게 육백 육십 육이요. 그라기  때문에 그라니까? 그 사람은 제딴에는 바로 한 줄 알았지만 세상은 볼 때  좋아하고 세상은 볼 때 온전하다 하지만 세상과 마찰이 없습니다. 세상과 마찰이  없어. 그러면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를 다 벗어 버린 사람이 되고 맙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러니까? 지난 주일에는 우리가 주일학교 학생을 그 하나님 앞에 약속했지마는  달성을 못했습니다. 달성을 못했는데 그 요번에는 달성할라 하는 데는 달성을  하는 데에는 내나 이 말씀과 꼭 같은 말씀이요. 모든 것을 제일 일호가  뭐입니까? 일호가 하나님. 주 하나님 일호가 주 하나님. 이호가 뭐입니까? 나.

또 삼호가 뭐입니까? 사호가 뭐입니까? 어떻게 해야 되나, 요 순서로 심방도  하고 요 순서로 직장 생활도 하고 요 순서로서 행정도 하고 요 순서로 사업도  하고 모든지도도 하고 요것으로 요 순서가 바꿔지면 헛일이라 요 순서가  바꿔지면 마귀 들어옵니다. 육백육십 육이라는 것은 마귀 수인데 칠은 하나님  수인데 하나님 수만 버려 놓으면 그게 제일 상등이라,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성경 말씀대로 취급을 하는 그것을 잘못하면 요 현실을 주로 삼기 쉽다 말이요.

주를 위하여 이 현실을 어떻게 취급하나 그렇게 주를 위함이 그 사호가 돼야  됩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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