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관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6일 화전집회 

 

본문 : 에베소서 5장 16절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디모데후서 3장 17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계속 공부하겠는데 그 사이에 다른 성구 한 두 군데 보겠습니다. 찾아도 좋고  듣기만 해도 됩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때가 악하다 말은, 이  세월이라는 역사를 세 동가리로 나눈다고 하면 노아 때까지를 첫째 동가리로  생각할 수 있고 그 다음에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까지를 가운데 톰박의 동가리로  생각할 수 있고 또 예수님이 탄생한 후로 재림 때까지를 마지막 토막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세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다 신약  시대를 가리켜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이제는 추수할 추수기가 되었다 한 것은 신약 시대를  가리켜서 말씀하시고 이미 농사 준비 한 지가 넉달이 되었다 한 것은 과거 사천  년 동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과거 구약 시대의 사천 년 동안은 모든 구원을  준비하는 시기요 신약 시대는 구약으로부터 준비해 놓은 모든 구원 역사가  결실을 보는 시기입니다. 결실을 보는 시기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창조하시고 이 시공 세계를 주신 그 시작 한 때는  죄악이 그렇게 관영하지를 아니했습니다. 그 이유는 악령이 그렇게 교활한  죄악의 방편을 쓰지 안해도 인간을 능히 다 삼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교활한 방편을 쓰지 안했는고로 죄악의 종류도 적고 또 죄악의 열기도 적고 또  죄악의 모든 속도들도 다 느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신약 시대에 와서는 악령도 저희 때가 얼마 남지 아니한 줄을  알고 또 사람들의 지능도 많이 발달이 됐기 때문에 악령도 사람들을 삼키는 그  방편을 이전보다 더 높은 그런 방편을 쓰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올수록 죄악의 종류도 많아지고 죄악의 그 민활성도 많아지고 죄악의  여러 가지 그 강력성도 훨씬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때가 악하다는 말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은 점점 악해집니다. 처음에 노아 때는 죄악이  땅위에 가득 찼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는 하늘까지 죄악이 관영한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죄악은 점점 민활해지고 그 강도와 종류의 수가 늘어 나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다 낙관시 하고 있습니다. 그저 세월이 이렇게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사람들은 점점 타락되는 줄도 모르게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방지해서 하는 말씀입니다.

 '때가 악하니라' 그렇게 말씀한 것은 네 주위 환경이 다 자기중심의 주위  환경이 되어 있다 그 말입니다. 땅 위에 있는 것이 다 전부 자기중심의 주위  환경이 되어 있기 때문에 너는 아무리 네가 세월을 아껴서 허송 세월 하지  아니하고 모든 세월을 네 구원에 필요하도록 이렇게 유효하게 이용을 아무리  하려고 한다고 해도 네가, 세상이 자기중심의 세상으로 되어 있다는 이 사실을  네가 알지 못하면 네가 애쓴다는 것이 환경에 몰려서 다 너도 자기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기 쉽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라 하는 것은 시간을 애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말씀인데, 시간을 허비하지 아니하는 데에는 네가 모든 네 주위와 환경이  다 자기중심의 네 주변이 되어 있는 것을 네가 알고.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하나님 중심으로 가는 선에 속한 것인데 세상은 자기중심으로 되어 있는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중심의 걸음을 걸어 갈라고 하면 온  세상과 다 대립이 되어지고,  (조금 낮추면 안됩니까? 저 뒤에 들립니까? 저 뒤에 들리면 손 한번 들어  주십시오. 아 들리면, 들릴 정도로 하면. 너무 울리면 안 돼요. ○기사 정신 똑  차려 가지고 해야 돼. 기술적으로 해야 돼.)  아버지도 자기중심 어머니도 자기중심, 형님도 동생도 자기중심, 목사님들도  자기중심, 장로님들도 자기중심, 집사들도 권사들도 다 자기중심으로 되어 있는  이 세상이기 때문에 네가 자기중심 이것이 너희의 일대 적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으로 더불어 싸우는 이 싸움을 내가 잊어버린다고 하면 세상은 너에게는  얼마든지 응원하고 협조해서 너를 애끼고 도와주는 세상 된다.

그러나, 네가 세상이 자기중심의 세상인 것을 깨닫고 인간 중심, 피조물 중심,  자기중심, 어떤 중심이든지 하나님 중심을 빼놓고 어떤 것의 중심이라는 그것을  네가 대항해서 거기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위주로 네가 살려고 하면  너에게는 큰 싸움이 있을 것이나 네가 하나님 중심을 양보하고 모든 사람들과  같이 자기중심, 인간 중심, 무슨 인간 단체 사회 중심, 국가 중심, 인류 중심,  그런 걸로 하면 너에게는 아무 마찰될 것이 없고 평안하게 세상을 살고 가고  너는 잘 살았다 생각하지만 다 이런 것들은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집이요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일대 적은 악이 우리의 일대의 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침에도 말씀을 하셨지만 우리가 이 자리에 와 가지고 여러  모양으로 사람들은 다 이 자리에 참석하는 그 가치관이 각각 다릅니다. 가치관이  각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의 새로운 새 말을 들어  가지고 자기가 새로운 지식을 갖추어 가지겠다 하는,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배워서 알겠다는 거기에 가치를 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거뿐이라면 이것도 다  외식이요 거짓부리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을 듣는 가운데에 믿음의 열심을 좀  얻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믿음의 열심에다가 가치를 두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도 다 그거뿐이라면 가짜입니다. 가짜인 줄 알아.

 또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좀 믿음의 힘을 얻기 위해서 여기 참석하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가치를 두는 사람, 자기가 여기에서 성신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새로워지는 거기에다가 가치를 두고 참석하는  그런 사람도 이 자리에 있을 것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성신의 감동을 내가 좀 톡톡이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 성신의  감화에다가 가치를 두고 참석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 다  그거뿐이라면 다 외식이고, 껍데기이고,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리에서 참석하면서 어디다가 가치를 두고, 그것을 내가  노리고, 그것을 내가 욕망하고, 그것을 취하기 전에는 자기의 목적한 것은  이루지 안했다고 생각하고 전력을 기울여서 어떤 데다가 가치를 두고 그 가치를  내가 취해 볼라고 할건가? 우리는 이 자리에서, 자기라는 사람이 이것이 완전히  변화되기 위해서 그것을 가치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을 내 지식으로. 하나님의 지식을 내  지식으로 삼아서 이제 하나님의 지식이 가치 있으리까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  지식 삼고, 또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내 행동이 되고 이거까지만 한다 해도  이것도 다 외식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지식대로의 내가 돼야 되겠다 하는  거기에다가 가치를 두는 사람이 제일 슬기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르심을 입고 빼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마지막에 승리한다  했는데, 그 진실한 자라 하는 그 진실은 어떤 진실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행동과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사람이 되어 있는 이것이 진실인 것입니다. 이것으로만 이깁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그저 지내 보내지 말고 어쩌든지 이 시간에  자기라는 사람을 완전히 개조하고 변화시킬 이 욕망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을 분류한다고 하면 영, 마음, 몸, 이 세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는데 그 세 가지로 되어 있는 인간의 그 속성을 분류하면 일반 공통성 있는  속성을 여덟 가지로 분류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속성, 우리가 회고적으로는  가지고 있는 회고적인 속성은 하나님의 비공통적인 네 가지 속성도 우리가  갖추어서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한 말씀 한 말씀에서 자꾸 나를 고쳐서 바로 잡아야 되기  때문에 내게 대한 모든 속성을 그것을 자꾸 바로 고쳐 나갈라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러면 속성을 우리가 늘 공부한 가운데서 공통성 있는 속성을 몇이라 그  말했습니까? 여덟 가지. 공통성 있는 속성은 여덟 가지. 없는 속성은 네 가지로  열두 가지를 말했는데, 공통성 있는 여덟 가지 속성 가운데에 그 지식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나를 고쳐서. 나를 고쳐서 이제는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하는 그리스도의 형상대로의 사람이 될라고 하는 데에는 그리스도의 속성을  닮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속성은 성경에 나타난 대로 열두 가지 속성이 나타났는데 그  중에 여덟 가지 속성은 뚜렷이 가지고 있고, 네 가지 속성은 가지지를 못했으나  기독자들이 회고적으로는 가질 수 있는 것이 네 가지 속성입니다. 회고적으로는  완전성을 가졌고 영원성을 가졌고 불변성을 가졌고 단일성을 가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해 가지고 영원 무궁토록 살 수 있는 그 성화된  속성은 하나님같이 단일성이요 또 그는 다 완전의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들입니다. 불변의 것들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말씀이 한 말씀 한 말씀 나타날 때에 '아 이거는  지식에 속한 것이다. 지식을 바꿔야 되겠다 지식을 바꿔야 됩니다. 지식을  바꿔서 고쳐 바꿔야 되지, 내가 이거, 이거는 지식으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고  해서 지식이 바꿔진 것은 아닌 것입니다.

자기가 지식을 바꾸는 것을 이 자리에서도 바꿀 수 있는데 이 자리에서 지식을  바꾼 그 지식이 진실성이 어느 정도 있느냐. 어느 정도 실상으로 바꾸어져  있느냐 실은 말뿐이고 생각뿐이지 바꾸어 있지 않느냐 하는 그것은 어디 가서  우리가 보면 그 진가를 알 수가 있습니까? 그 진가를, 하나님의 지식으로 내  지식을 삼고 하나님의 지식과 배치되는 내게 있는 지식을 완전히 죽여서 던져  버립니다. 왜? 그거는 뱀 그 놈의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내 지식으로  바꾸어 가졌을 때에 내가 바꾸어 가졌나 안 가졌나 하는 그것은 자기가 자기를  연구해 가지고 그걸 심사해서 알아야 되지 다른 사람이 거기에 대해서는 말해 줄  권리도 없고 말해 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뭐? 안 들린다고? 줄이 끊어 졌구만.

어때? 예? 하나가 나갔어? 어디? 새로 빼야 돼? 손으로 일하는 것은 그까짓 거  둔해서 일 못 해. 마음으로 일하고, 마음으로 일하는 거보다도 정성으로 일하고,  정성으로 일하는 거보다 기도로 일하고, 기도로 일하는 것도 기도의 성공을 해서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봐 정신 차리라 했더니만 당장에 빵구가 나 가지고  그만 그만 턱 실패가 나타나는구만. 자. 몇 분 지나 갔노? 이제 지금 아마 아마  수월찮이 모였지? 한 만 몇 천 명이 될란지 이런데 일 분이면 얼마야? 이층에는,  여기는 들립니까? 저 들리면 손들어 주십시오. 아, 됐어. 그러면 여기라도 하지,  밑에는 못 들어도.)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이 턱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이 강단에서  턱 나타나면, 성경에 다 나타나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에게 강력히 그  지식을 바꾸도록 하시기 위해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이 강한 영감 역사로 더불어  같이 나타나기 때문에 나타날 때에 하나님의 지식 하나를 받았으면 내게 있는  지식과, 그거 받아들이지 말고, 그만 잡탱이로 뭐이든지 받아 들여서 자꾸 이거  거지가 그릇 대고 자꾸 받아들이는 것처럼 그 뭐이든지 받아들이는 이런 짓  하지말고, 잘못 먹으면 죽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 나타날 때에 '아, 저 지식은 내 지식과  다르다.' 다를 때에 그때에 다른 것은 그리 못 하거들랑 다른 것은 표를 해  놓으십시오. 하나님의 지식은 이렇게 예를 들면 세모배기인데 내 지식은  두모배기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지식과 내 지식이 다르다. 다를 때는 그 것은  표로 해 놓고, 지금은 언제 그럴 여가가 없기 때문에, 그거 볼라 하면 또 못  듣기 때문에, 그래 놓고 딱 적어 놓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지식은 이렇게  세모배기요 내 지식은 두모배기라고 이래 하면 어느 게 맞은 가 맞춰 가지고  그걸 연구해서 맞춰서, 내 지식이 틀렸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의 지식이  맞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서 인정해서 하나님의 지식으로 완전히 바꾸도록 그렇게  해야 됩니다.

 또 그렇게 안 하고도 이 시간에 들으면서 '내 지식은 요런데 이 지식은 이것은  요러니까 틀렸다. 내 지식은 틀렸고 하나님의 지식은 바르다' 말씀을 자세히  들으면 듣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식은 참되고 옳다 하는 것을 자꾸 영감이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물론 백 목사가 말하는 것이야 그 까짓거 뭐 몇 개 못  합니다. 몇 개 못해서 뜨문뜨문 이래 하지만, 성령님은 이 시간에 세밀히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가르쳐 주기 때문에. 정신을 똑 바로 차려서 들으면  하나님 말씀을 듣는데 하나님 말씀은 옳다, 참 되다, 하는 것을 각자들에게  똑똑히 가르쳐 줍니다. 가르쳐 줄 때에 그때에 하나님 말씀을 내가 받아 들여서  내 지식으로 삼고 하나님 말씀과 배치되는 내 지식은 완전히 이것을 죽여서 던져  버려야 됩니다.

 이러니까 예배드리는 시간은 지식을 바꾸는 시간이요, 지혜를 바꾸는 시간이요.

지식을 바꾸는 시간이란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에 있는  모든 기존의 것들에 대한 내 만물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만물관을 바꾸는 것이  지식을 바꾸는 것이고, 또 하나님에게 대한 것을 바꾸는 것이 지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또 지혜를 바꾸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미래 영원 무궁토록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혹은 나는 그것을 허무하게 생각했는데, 혹은 나는 그것을 예사롭게  생각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는 미래를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지혜에 따라서 내가 내 지혜를 바꾸어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  지혜를 바꿉니다. 지혜를 바꾸지. 지식과 지혜를 바꾸지,  그 다음에는 선을 바꿉니다. 나는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고 살았지만 이렇게  했는데 하나님 중심이 삐뚤어진 것을 고치고, 하나님 중심일랑 냅두고 내  중심으로, 살았던 것은 이거는 엉망이기 때문에 내 중심으로 살은 건 막 죽여  버리고, 또 내가 예수 믿지만 나는 인간 중심으로 살았다, 늙어서 다 죽어  가면서도, 다 죽어 가면서도 예수 믿는 다고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도, 하나님  앞에 결심한 것도, 하나님이 감동시킨 것도 그거는 소용없고 영감(자기 남편)  말이면 꼼짝을 못 한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게 중심도 틀렸어. '아, 나는 인간 중심으로 살았더니만 틀렸구나.

또 나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민족 중심으로 살았구나.

나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물질 중심이었구나. 나는 하나님  중심인 줄 알았었는데 실상은 도둑놈이 내로구나. 내 중심이로구나.' 이렇게  자꾸 중심을 수정해 가지고 중심을 고쳐 나갑니다. 중심을 고쳐 나가요. 중심을  고쳐 나가는 것이 선을 고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제, 말씀함으로써 사랑을 고쳐  나갑니다. 사랑을, '나는 이게 사랑인 줄 알았더니만 아니로구나. 이거는  미움이로구나.' 이제 사랑을 하나님 말씀하실 때 자꾸 그것을 고쳐 나가야 한다  그 말이오. 자 사랑은 몇 개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사랑은 몇 개  있어요? 사랑은 몇 개 있습니까? 한 개 아니오? 두 개. 예 두 개란 말이  맞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 또? 예? 예? 네 하나는 뱀의 사랑, 여기 더러  와 봤구만. 그러니까 '뱀의 사랑' 하는 거 보니까 여기 더러 온 사람이야.

하나님의 사랑 뱀의 사랑, 이 세상에는 사랑이 둘이니 '아이쿠. 내가 사랑하는  애인,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뱀의 사랑 가지고 사랑했구나.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뱀 사랑 가지고 사랑했구나. 내가 민족을 사랑하고 뭐 국가를  사랑한다 해도 모두 다 뱀 사랑 가지고 사랑했구나' 고거 뱀 사랑 가지고 사랑한  것을 회개를 해서 하나님 사랑으로 바꾸어 가져야 될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면  사랑을 이제 바꿉니다. 사랑을 바꾸고,  또 그 다음에는 이제 진실을 바꿉니다. 진실 바꾸는데, 나는 내 주관적 진실로  내가 이렇게 이렇게 참되게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가지면 이게 진실인 줄  알았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진실이면 진실인 줄 알았고. 진실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이거는 진리와 영감대로 된 것이라야 진실이지, 외에는 진실이  없다. 또 진실도 또 바꿔야 됩니다.

 또 거룩도 바꿔야 돼. 거룩도 바꿔서, 이거 모두 도서실에 많은 책들을 보고  구별해서 뭐 과학자들이 오만 것 구별하듯이 그까짓 거 지저분한 그 까짓 거야  구별 하나 안 하나 뭐 도매금으로 거석할 거 없는데, 구별은 제일, 예수님의  피에 구별하고, 영감으로 구별하고, 진리로 구별하고, 이 셋으로 구별해야 이  구별이 뚜렷하고 바로 된 것이지 다른 거 가지고 지저분해서 구별을 암만 해  봤자 그까짓 거 소용이 없다. 이제 거룩도 바꿔야 되지,  또 의도. '나는 이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줄 알았는데, 알았는데 이 자리에  와 가지고 하나님 말씀 듣고 보니까, 나는 이만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다 사는 줄  알았더니만 이게 하나님 말씀 어겼구나 조게 어겼구나, 조게 어겼구나' 자기에게  의가 아닌 불의가 자기에게 많이 있는 것을 자꾸 고쳐 나갑니다. 의는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일치되는 것이 그것이 의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거, 뭐 이 세상에 나가 보면 이게 옳다  저기 옳다 하는데 그 전부가 그게 악한 의라. 자 악한 의라 말이 무슨 말입니까?  악한 의라 말이 무슨 말이지요? 피조물 중심의 의라 그 말이오, 피조물 중심의  의. 그런 건 다 소용이 없어. 이래 놓으니까 고칠 게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주권을 고쳐야 되는데, 주권이 뭐이냐? 주권이 몇 개나 되느냐?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주권이 몇이나 됩니까? 자. 한번 손가락으로 가리켜 봅시다.

인제 시험된다. 자, 주권이 몇 개입니까? 손가락 한번 내 봐요. 주권, 한번 내  봐요. 주권, 주권. 어떤 사람은 이래 놓고 어떤 사람은 이래 놨는데 이것도  맞을런지 이것도 맞을런지 모르기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것 말하는 것은 쪼금  널리 생각해 가지고 한 거 같아. 주권은 하나뿐이오. 주권은 이게 맞다 말이오.

이게 맞는데 혹 인본 주권도 뭐, 인본 그까짓 거 주권이 돼야지? 주권, 주권이  없어요 주권의 실력이 없어.

이러기 때문에, 주권은 하나뿐입니다. 주권은 하나님의 주권 하나 뿐이라.

이런데, 나는 주권을 여기도 돌리고 저기도 돌리고 주권이 어떻게, 백도 천도  넘었는데 이게 다 틀렸다 말이오. 하나님 한 분의 주권으로써 내 주권을 딱 삼아  가지고, 하나님 한 분의 주권을 내 주권으로 딱 삼아. 이거 고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자, 설교 들으면서 이런 것을 고칠라고 하면 잠이 옵니까 복잡합니까? 바쁩니까  어째 수월합니까? 그러면, 설교를 이제 천천히 해 주면 좋겠소 빨리 빨리 해  주면 좋겠소? 예? 천천히 해 주면 좋지. 그러면, 설교를 한 번만 하고 말까요  자꾸 두 변 세 번 열 번 자꾸 거듭 할까요? 거듭 해야 되기를 원하는데 한 번  들으면 두 번 듣기 싫어하는 사람은 가짜배기라 그거요. 가짜배기. 그저  '아이구, 설교 길다. 또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그게 뭐이냐 하면 '나는,  가짜다 가짜다' 하는 그런 거 다 표시해. 그러면, 암말도 안 하고 '예, 그래  됐습니다' 이래도 속으로 이게 가짜다 가짜다' '설교가 길다. 설교 한 소리 또  한다 한 소리 또 한다 할 때에 그 말하거든 자기는 그 말 하지만, 자기딴에는  '나는 명철해서 한 번 들으면 다 아는 건데 여러 번 말한다, 자꾸 잔소리한다'  할 때에 그럴 때에 이제 '예에에에에에' 하면서 '예. 그 저 설교가 너무 길어서  그 좀 미안합니다.' 이렇게 하면서도 '이 가짜야 가짜야 가짜야 가짜야' 그런  소리 할 때는 '가가가가가가가가' 이랍니다. '가가가가, 예, 가가가가 이 가짜야  가짜야, 이 가짜야 가짜야' 가짜 가짜.

 왜? 이제 말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예배를 드릴  때에 가치를 엉뚱한 데다가 두면 안 되는데 그 가치를 자기를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 그 하나님의 영광의 찬미가 되도록, 내 언행심사가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고 찬미가 되고 이렇게 할라고 하니까 참 바쁩니다.

이러니까, 설교하고 난 다음에 재독을 들으니까 또 자꾸 재독을 또 듣고 싶고  그저 어쩌든지 누가 옆에서 그런 소리를 해 주면 한 번 하면 더 좋고 두 번 해  주면 더 좋고 세 번 해 주면 더 좋고 누가 자꾸 그렇게 말해 줬으면 뭐 떡이라도  사 주고 고기라도 사 주겠소. 자꾸 말해 주면. 그럴수록 또 못 고친 거 또  고치고 또 고치고 자꾸 얼마나 좋습니까? 이러면 되는데 예배 시간에 할 일 안  하니까 졸음이 올 수밖에 더 있는가요? 할 일 안하니까 졸음이 와.

 이러니까, 할 일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설교하면 그 설교하는 데서 딱 다  정리 다 하고, 뭐 필기해 정리하는 게 아니라 '아 요거는 고칠 거 내가 몇 개  고쳤다. 아, 그라면 고친 거 뭐이냐? 아, 그러면 내가 요번에 와서 은혜를  받아서 내가 몇 개를 고쳤습니다. 몇 개 수정했습니다.' 자꾸 이래 나가는  사람은 설교할 때 '저거 가짜 설교한다. 아무것도 공연히 떠들기만 떠들지  울리는 괭과리와 같구나. 갱깽 뚜드리는 울리는 괭과리와 같구만' 이렇게 하고,  '아, 이것은 뜸성 뜸성 말하지만 이거 고칠 게 많다. 바쁘다. 좀 한번 더 말해  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되어질 수 있는 그거 있고, 설교를 들으면, 저거는 이제  실행하는 데에 필요 있고 실행하는 데에 필요 있는 거, 웅변하는 데에 필요 있는  거 다른 사람 속이는 데에 필요한 거, 다른 사람들을 감동 주는 데에 필요한 거,  정복하는 데 필요한 거, 저거는 사람 고치는 데에 필요한 거, 행위 고치는 데에  필요한 거. 앞으로 환난 오는 데에 그 환난을 이기는 데에 필요한 거, 전부 각각  다르다 그 말이오.

똑 듣고 나면 딱 평을 해요.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 어떤 사람이라 저 설교는  어떤 설교라 자기가 주석을 보면 이거는 어떤 설교라 어떤 설교라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 잠깐 몇 페이지를 보고도 그 사람을 그렇게 단정은 짓지 안하지만  여기 가까운 말을 했다 그렇게 이제 평가를 한다 그거요.

 김현봉 목사님이 어떤 주석을 보고 말하기를 '그 설교는 죽은 설교라' 유명한  사람의 설교를 죽은 설교라 이라니까 옆에 사람이 있다가 '아 죽은 설교라니? 그  유명한 어른의 설교를 어찌 그러십니까?' '죽은 설교가 아니냐? 봐라. 이 사람은  이라고 이 사람은 이라고 이 사람은 이라고 갑은 이렇게 말하고 을은 이렇게  말하고 김은 이렇게 하고 뭐 뭐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말하고 다 이렇게 말한  것만 말하고 나는 요래 믿는다 하는 그게 없으니까 그게 책뿐이지 저는 죽은 거  아니가? 이런 사람이 이래 말한다 저래 말한다 남의 소개만 하고 너는 어찌  믿느냐 하는 네 신앙은 어떠냐 자기는 어떻게 믿는다는 그것을 표시 안 했기  때문에 그거는 글뿐이지 사람은 없기 때문에 죽은 설교가 아니냐?' 딱 맞았다  그말이오. 그 말을 모두 들어야 이해 못 하는 사람은 몰라도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거요.

 이렇게 해야 바쁜데, 여기에, 여러분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세월을 아끼라 말은 시간을 아끼라 말이지요. 세월을 아끼라 말은 무슨  말입니까? 세월을 아끼라 말은 해 세(歲)자는, 해 세(歲)자 날 월(月)자이지요?  일 년이라는 해하고 한 달 두 달이라는 달하고 그라면, 해를 애끼고 달을 애끼라  말입니까 뭐 애끼라 말이오? 세월 애끼라 말이 무슨 말이오? 저 한번 말해 봐요.

뭐를 애끼라 말이지요? 우리 제일 박사, 우리 ○○○목사님은 박사 학위는 안  가져도 세상 지식은 박사 학위 여럿 가질 수 있어. 많이 압니다. 많이 알고  아는데 그것을 한번 해석해 봐요. 여기 세월을 아끼라 했는데 이 세월은 무슨  세월이지요? 이것 다 외우고 있는 건데. 뭐 애끼라 말이오? 뭐를 애끼라 말인고,  세월 애끼라 말이? 시간을 애끼라? 어떤 시간. 그라면? 하루 스물 네 시간인데  어느 시간? 어느 시간, 밤중 시간인가? 영시? 열 두시? 한시? 뭐야? 인제. 인제  됐어. 그라면 진작 말하지 뭐 쭉 뺄거는 뭐야? 네, 맞았어. 백 점이야. 현실을  아끼라, 그 시간 애끼라. 세월을 아끼라 말은 햇수를 애끼라 말도 아니요 달수를  애끼라 말도 아니요 네가 이 시간을 애끼라 말이요. 이 시간을 애끼라. 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이 시간을 패전하지 말고, 이 시간을 지지말고, 이  시간을 너를 구원하는 시간으로 삼아라 하는 그 말씀입니다.

 또 그라고, 여기 히브리 1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은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여기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기회를 아끼라 그 말입니다. 기회를 아끼라. 기회를  아끼라. '현실을 아끼라. 네. 현재라는 이 시간. 이 현재라는 이 시간은 뭐이냐  하면 기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재라는, 이 시간을 놓쳐 버리면 저는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자기가 백 년을 살아도, 백 년을 살아도 현재라는 이  현재라는 시간 그것으로써 백 년은 다 통과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현재라고 하는 것은 구루마로 말하면 발통(바퀴)과 같다.

발통과 같다 그렇게 말한 철학자들이 있습니다. 그 기회라는 것은 그것은 구루마  발통과 같다 발통은 쪼그만한 거 이 하나이지만 백 리를 가도 도골 도골 도골  도골 그놈이 만날 구불러 가지고, 그놈이 구불러 가지고 백 리를 그래 가는 거와  마찬가지로 인간은 이 현실이라는 도골도골 구부는 현실로 가지고 현실을 자꾸  현실이 채워서 한 달도 되고, 현실이 채워서 일 년도 되고, 현실이 채워서 백  년도 된다. 그러기 때문에. 그 기회라는 기회 그것이 그것이 도골도골 구불러  가면서 십 년도 일 년도 되어진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해라' 에서로 말하면 장자의 기업은 영원 무궁 한 기업인데 팥죽  한 그릇에 팔았다 말이오, 팥죽 한 그릇 죽 한 그릇에 영원한 영생을 팔았고,  팥죽 한 그릇에 영생을 팔았고, 또 팥죽 한 그릇에 하나님의 장자의 모든  유업들도 팔았고, 팥죽 한 그릇에 영원한 평강도 영광도 존귀도 팔았고 팥죽 한  그릇에 영원 무궁한 지위와 권세와 영광과 환영 이런 것을 다 팔아먹는, 에서와  같은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그러면 에서와 같은 망령된 자, 팥죽 한 그릇에 이제 모든 것을 팔아먹은  망령된 자 그 팥죽 한 그릇은 우리로 말하면 뭐입니까? 우리로 말하면 뭐  이지요? 우리에게는 뭘 말한 것이오? 예? 우리로 말하면 뭐 말합니까? 예? 팥죽  한 그릇에, 죽 한 그릇에 장자의 기업 판 그런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했는데 우리도 뭐 죽 얻어먹고 장자의 기업을 판다 말이오? 우리는 뭐 얻어먹고  파요? 뭐 얻어먹고, 여기 아는 사람, 여반 여기 백지 이래 앉았고 이러니,  선선한 데 앉아서 졸기나 하고 있는지 죽 한 그릇에 장자 기업 판 그 건데 그걸  그런 망령된 자라 했는데 우리는 뭐 뭘 받고 장자의 기업을 팝니까?  장자의 기업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내가 유업으로 받는 것이 장자의 기업인데  하나님의 모든 것을 팥죽 한 그릇과 같이 그런 것을 받고 팔아먹는 자가 있다  했는데, 비유로 말한 것이니까 그거는 뭐입니까? 자, 그거는 뭐이요? 그것은  세상이라, 세상.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세상. 하룻밤 나그네 세상의 지위 권세  명예 재물 행락 영광 존귀 부요 모든 취미 재미 그런 것들을 가리켜서 거기에 죽  한 그릇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시간을 버리면 안 됩니다. 이 시간을 버리면 우리는 안  됩니다. (저 아래 지금도 안 들리고 있어? 인제 들린다 해? 그 동안에 많이 못  들었지? 예? 얼마나 못 들었어? 아, 오 분 걸린 거는 나중에 기사한테 막 등장을  해라 이 사람들아, 지금 학생들아. ○기사한테 가 가지고 막 주먹으로 쥐박든가.

메어다가 망게를 좀 놓든지. 이 많은 사람들의 지금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그런,  그런 거라. 그래 놓으니까 우리가 차 타고 오면서 자기는 못 먹어도 운전  기사에게 뭐 좋은 거 자꾸 주고 하는 거 내 생명을 실었기 때문에. 그거 삐꿔  놓으면 내 생명 절단 난다 말이오. 그런 거 모양으로, 이러니까. 망게도 놓는  동시에 좀 대접 좀 해줘. 대접 안해 주니까 거석하는 모양이라. 대접을 좀 해줘  좀. 맛있는 것 도 좀 주고. 옆에 자꾸 그런 거 볼라 하면 신경 쓰여요.

그러니까, 뭐 갖다 놓고 좀 마시기도 하고 그래.)  기회를 버리지 맙시다. 기회 놓치면 안 됩니다.

 이러기에 서부 교회서는 얼마 전에 그런 공부를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내가 다 시행하리라' 하는 그 말씀을 하면서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기를 '기도를 길게 하지 말아라. 기도는 간단하게 해라' 그렇게 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왜? 기도하는 거 보면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 걸 초저녁에  시작하면 뭐 중얼중얼하다가 또 졸다가 또 중얼중얼하다가 졸다가  중얼중얼하다가 이라며 맨끄트머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  것은 끄트머리 붙여 놓으니까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데  믿음이 들었고, 간절이 들었고, 소원이 들었고, 정성이 든 것은 짤막하게 똑  토끼 꼬리만도 못하게 쪼그만한 그것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이래 놓으니까 다른 거는 안 되고 고거나 들어 주실까 딴 거는 들어 주실 수가  없다 그말이오.

어떤 '사람은 또 자꾸 그라다 보니까 그만 자꾸 그래 생각하는 거, 자기 감상,  자기 생각, 이 생각만 하고 마지막에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그  소리도 못 하고 그냥 나오는 사람 있다 말이오. 그거 다 헛 기도입니다. 그래  하지 말아요.

 기도는 간단하게 해요. 간단하게. 기도는 어찌 해야 되느냐? 기도는, 기도는  첫째가 뭐이냐 하면 기도는 소원이 있어야 됩니다. 소원이 있는 거는 아니고  소원은 안 두고 백지 구습에 젖어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것은  소용없어요. 소원이 있어야 돼요. 그 다음에는 간절이 있어야 돼요. 소원과  간절이 있어야 돼요.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돼요. 그라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장을 꽉 찍어서 결재를  딱 해 버려야 된다 그말이오. 그래야 일이 돼요.

 일이 되는데, 뭐 밤새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다 처져  버리고 빠져 버려 놓으니까 언제 연결이 돼야지? 하루 밤새도록 기도했는데. 자,  기도한 가운데에 보자. 간절이 있었지만 초저녁에는 간절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안 하니까 그만 예수님의 이름이 없어서 틀렸고.

간절이 없어 틀렸고, 또 소원이 없어 틀렸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실상 소원도  없으면서 입으로 말하기 쉽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소원과 간절과 믿음과 예수님의 이름이 딱 들어붙어 가지고  똘똘 뭉쳐 한 덩어리가 딱 돼 버려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러기 때문에, 기도를  찔찔 빼서 그렇게 하지 말아요.

 어떤 사람은 기도 인도하면 창세기 1장으로부터 계시록까지 쭈욱 그거는 성경  강해이지 그게 기도인가? 이렇게 자꾸 이라니까 듣는 사람들이 듣다 다 졸다가  다 그라니까 다 동가리 다 돼 버리고 전부 파산이 다 돼 버리고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라면 잠들어 자고 있다가서 '아멘'  그러니까 그거 모두 기도를 다 박살을 내는 거라 말이오. 도무지, 그래도 그걸  또 좋다고 '기도하면 엎드리면 일어날 줄 모르고 초저녁에 시작하면 이제  새벽까지 기도를 내내 계속한다' 그거 실상은 몰라서 그런 것이지 다 손해 다  봤습니다.

 그저 단지, 뭐이든지 중요한 것일수록 요소들이 강해야 됩니다. 중요한  것일수록 소원도 강해야 되고. 간절도 강해야 되고, 또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믿음도 강해야 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그것도 강해야 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이랄 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막 그만 이것도 늦게 하다가는 뭐 잡게  들어올까 싶어, 늦게 하다가는 잡게 들어오면 헛일이기 때문에 헛김이 새면  헛일이라. 다른 헛바람이 들어오면 헛일이라.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만 이라고  난 뒤에 끝마쳐 버려. 그만 그라고 결정이 딱 됐기 때문에 그 다음에야 뭐 숨을  쉬어도 돼고 뭘 해도 괜찮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도는 간단히 하고 해야  됩니다, 간단하게.

 그와 마찬가지로 이 시간에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꾸 그냥  듣기만 하고 이래 뭣하면 거석한다 말이오. 말씀을 들으면서 '아, 요거는 내가  이 지식면을 바꿔야 되겠다, 지혜면을 바꿔야 되겠다. 중심을 바꿔야 되겠다  사랑을 바꿔야 되겠다, 진실을 바꿔야 되겠다, 거룩을 바꿔야 되겠다. 의를  바꿔야 되겠다, 이거는 전투를 바꿔야 되겠다, 평강을 바꿔야 되겠다, 기쁨을  바꿔야 되겠다' 막 바꿀 것이 얼마나 많소? 고칠 것이 어떻게 많은지, 이제 다  주님 앞에서 고치면 된다 말이오. '주여, 요거 고쳐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해 놓으면 되는 거라 그만. 자꾸 그라고 지나가요. 자꾸  어쨌든 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했으면 '내 이름으로  구하면 무엇이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했으니까, 주님이 시행하시겠다고 약속을  했으니까 주님이 약속 어기지 안 할 것이라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자꾸  기도해서 주 모아 놔요. 뭐 어쩌든가. 이제 나는 기도, 믿음으로 기도하는 거만  나 할 일이고 이루어지는 거는 누가 할 일입니까? 이루어 줄 거는 누가 할  일이오? 주님이 할 일인 줄 알아요? 주님이 할 일이오. 그러면. 주님이 할  일이니 주님이 신실히 할 터이니까 걱정할 거 없고 자꾸 내나 기도해 자꾸  모우라 그거요.

 이러니까 이 말씀을 들을 때도 자기가 어느 면이든지 그라면 '주여, 나는  요대로 고칩니다. 내가 이것을 가집니다.' 요거 내가 이걸 가지고저 하지만  연약하기 때문에 자꾸 넘어지고 변동되기 쉽기 때문에 이제 기도로 딱 들여 붙여  놔야 되겠다 그말이오. 이러면 '주여. 내가 요렇게 고치겠습니다, 다시는  변동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런다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기도 많이 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그것도 그만 그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그래 안  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다 말이오. 나중에 '예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래 된다 말이오. 그래  자꾸 해서 전부 결재를 딱딱 지워 나가요. 그래 가지고 이 현실에서 자꾸 그라면  주님이 고쳐 주시요. 그래 가지고 이제 우리가 기도해 놓은 것을 때가 되면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시간에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자꾸 고쳐 나가는 그 일을  하는 데에 우리가 주력을 하자 그거요.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라 말은 기회를 아끼라 말이요. 기회를 아끼라 말은  현실을 아끼라 말이요, 현실을 아끼라 말은 현실을 자기 고치는 데에 쓸 현실은  고치는 데에 쓰고 자기를 보강시켜야 될 현실은 보강시키고. 자기에게 또  구비시킬 현실은 구비를 시키고, 자기에게 모두 다 자복할 기회 회개할 기회에는  자복을 하고 이렇게 해서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 기회마다 딱딱 해서 이렇게  나가자는 것이오.

 이제 그라면 요번 집회에 하나님께서 사람병을 마구 고쳐 주실 것입니다. 마구  고쳐주셔 뭐 여기서 사람병 못 고치면 참 뒤에 고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기서  이거 뭐 사람병만 고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사람병을 먼저도 말했지만  사람병이 어떤 것이 사람병인고 하니 사람이 영육으로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병은 영육병이라 그거요.

 ○목사님 지금 대전에 가 가지고 되게 치이는 가뵈. 노랑 쨍쨍하이 아주 그만  뭐 어째 뭐 은혜를 끼쳐서 그런지 거기 지금 배척을 당해 그런지, 내가 대전에  물어 봤어. 물어 보니까, '어떻습니까?' 그때 그 사람들이 반대하고 막 온  사람들이라 그때 '어때요?' 이라니까, '어째 뭐 재미가 있습니까?' '예  재미있습니다.' '뭐 교회가 좀 일어나는 거 같습니까? ' '예, 좀 일어나는 거  같습니다.' '그래 내가 있다 가서 '그때 자꾸 못 가도록 막 이래 쌓고 뭐  야단지기고 쌓더니만 '뭐 그러면 지금 바꿔도 재미가 있는 가뵈?' 그 말 할라  하다가 설마 그 말이야 알지 싶어서 말 안 했습니다. 뭐 ○○○교회도 울고 불고  야단을 지기더니만 이제 또, 또, 저 물어 보니까 재미있대요. ○○교회는 어때?  ○○교회는, 여기 ○○교회, 어디 있노? ○○교회는 ○○목사님 소식 잘 듣지?  어째요? 전혀 못 들어요? 이제 딱 맡겨 버리고 그만 손 떼 버렸나? ○○교회  재미 어때? ○○목사 어디 있으면 알 건데? 어디 있어? 예? 어때? 재미있어?  '재미있습니다' ○○교회도 재미있대.

 이러니까, 총공회 시키는 대로 순종하라 그거요. 순종해 가지고 뒤에 나쁘다  소리 안 하고 다 좋은데, 마다하고 이래 놓고 또 그 다음에 교역자 딴 데  이동하면 또 웁니다. 우는 건 장 울어. 그거는 뭐이냐? 총공회를 믿지 못해.

총공회가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처럼은 온전치 안하지만 여러분들보다는 그래도  온전합니다.

그러니까, 그저 잘 순종하면서 이 목자 주면 '아마 이 목자에게 받을 은혜가  있는 갑다. 또 여기서 받자 저 목자 주면 '아, 저 목자에게도 받을 은혜가 있는  갑다.' 또 갈아 가지고 자꾸 새로 갈아주면 갈아 줄 은혜가 자꾸 있는 가보다  이래 가지고 힘만 쓸 일이지 다른 그런 짓을 하지 말아요,

 우리가 이 예배 때도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꾸 가면서, 뒤로 미루면 안 됩니다.

뒤로 미루면 안돼. 우리가 결심하는 거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요, 우리  결심하는 거 그거 허무한 것이오. 결심하는 거 허무합니다. 사람들이 뭐  '결심하면 되지' 펠라기우스주의가 결심 가지고 뭐 된다 하는 그거 다  실패했습니다. 결심 그거 소용없어. 결심이 좋은 것이지만 어느 정도에 좋지  그게 아무 절대성은 가지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거는 절대성 가져. 그러니까 뭐이든지 자꾸  하나님께 기도하라 말이오. '내가 요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결심합니다.

주님이여, 도와주시옵소서. 변동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렇게 해서 기도하다가 '알파와 오메가의 도장을 꼭  찍어 주시옵소서' 하는 그 말은 영원 불변의 도장을 꼭 찍어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알파와 오메가의 인을 꼭 찍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꾸 요렇게 하나 하나를 다져서 나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그 기회에 그때에 여러분들이 회개하지 안하면 뒤에 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 말씀을 여러분들이 혼자 앉아 깨닫기가 어렵다 말이오.

깨닫기가 어렵고, 또 생각하기가 어렵고, 기억해서 하기가 어렵고, 다른 거는,  장 그러니까 언제든지 생각하는 그것만 생각하기 쉽지 딴 거는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그때는 주루룩 새 것이 나오니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 칠걸 선뜻 선뜻 고치고, 또 갖출 것을 갖추고 바꿀 것을  바꾸고 또 치료해 서 없앨 것은 없애고 자꾸 그렇게 해 나가는 요 예배의 기회를  놓치면 안됩니다.

 그래서 요새 서부 교회 주일 학생들은 그거는 다 알아요, 보니까 선생님들이  묻기를, 보니까 '날 중에 제일 귀한 날이 어떤 날입니까?' '주일날입니다.'  이거는 모르는 학생이 하나도 없어. 또 '시간 중에 제일 귀한 시간이 어느  시간입니까? ' '예배 시간입니다.' 그것도 모르는 학생을 하나도 없소. 다  알아요. 예배 시간은 뭣 때문에 그런가? 예배 시간은 그 시간이 이제 고치는  시간이요, 바꾸는 시간이요. 모든 것을 구비하는 시간이요, 치료받는 시간이요,  얼마나 중요한 시간인지 몰라.

이러니까 그 시간에 다 이렇게 해 놓고, 도매금으로 다 이래 설교만 가만히 듣고  이래 가지고, 설교 가만히 듣고 난 뒤에 '은혜 있다' 이러든지 '은혜 없다'  하든지 이래 가지고 나중에 가 가지고 한번 새로 되집어 생각이나 해서 생각되면  다 된 줄 알고, 어떤 사람은 생각으로 다 된 줄 알아요. 생각 가지고 안 돼요,  실상을 만들어야 돼요, 실상을 만들어야 돼. 실상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만들어야지 실상으로 안 만드는 것이 무슨 소용  있습니까? 실상으로 만드는 데에는 내 힘 가지고는 안 되니까 하나님께 부탁을  해야 되고, 또 실상을 내가 내 힘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또 변동돼. 하나님께  변동되지 안하도록 또 하나님에게 기도를 해야 된다 그거요.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고 하니, 하나님의 그 성품을 우리가 잘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고 하니 우리로 더불어 연애하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를 더불어 연애하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요. 연애라 말은  사모할 연(戀)자 사랑 애(愛)자가 연애인데, 사랑하는 것이 연애라 말이오. 서로  사랑해서 못 견디는 그게 연애라. 하나님은 그걸 원하시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뭐 돈 드리는 것도 뭐 그것도 좋지만 돈도 암만 줘 봤자  당신에게는 필요 없어. 돈 꽉 찼어요 이러니까, 뭐인가 당신을 사랑하는 걸  좋아하고 당신을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당신을 사모하는 걸 좋아하고 당신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을 좋아하고, 당신에게 매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이걸  좋아한다 그말이오.

여반들은 보면 여반들이 자기 남편에게 하던 그런 것이 연습이 됐기 때문에  주님에게도 그와 같이 하면 될 터인데 아내 노릇을 바로 못 해 놓으니까 그것도  숙달이 바로 되지 못해서 주님에게 그렇게 달라붙지 못해요. 남자들도 주님에게  대해서는 그렇게 달려 붙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거와 같다' 이리 가운데 보내는 거와 같다니? 이리 가운데  보내거든 뭐 잡아먹히라고? 잡아먹히라고 그랍니까? 이리 가운데 가면  잡아먹히지 뭐. 이리 가운데 가는 거는 잡아먹히라고 그라요 어짜라고 그라요?  여기 한번 대답해 봐요. 어쩌라고 그라지? 한번 대답해 봐. 예? 예? 마구 그때  이제 이리가 잡아 먹을라고 막 이리가 으글거리고 좀 후덕거리니까 이제는 죽자  살자하고 막 정신 없이 막 목자에게 막 '목자 목자, 앵' 하며 목자에게 달라붙는  그게 좋다 그말이오. 그게 좋아서 그래 너희들을 이리 가운데에 보내는 거와  같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주님의 성품을 고게서 찾아볼 수가 있어. 그것이 사랑의 본성입니다. 사랑이라  하는 것은 이런 본성을 가진 것이오. 남편들도 그렇지 안해요? 남편들도 아내를  사랑하면 아내에게 미리 무슨 어려운 일을 해결 안 해 줍니다. 안 해 주고  모르는 거 모양으로 슬그머니 이래, 낭파가 돼 가지고 혼자 하려고 이래  쌓다가서 안돼서 이라면 나중에 할 수 없어서 '여보, 이거 좀 해줘요' 이라면  암말도 안 하고 떡 이래 가지고 이래 있으면 나중에 해 달라고 간청하고,  간청하고, 언간히 간청하다가 말면 그만 헛일이라. 그만 김이 나가 버려서  헛일이라, 언간히 간청하다가 말면 '아, 이거 좀 해 주십시오.' 또 못 들은 척  해. 또 '해 주십시오, 또 '해 주십시오' 나중에 가서 어디까지를 원하느냐 하면  막 그저 달려들어 가지고 '안 해 주면 안 됩니다. 이거 꼭 그래 주십시오.' 막  간청을 하고 자꾸 울며 달려들어 해 달라 하기를 참 울며 달려들면서 '해  주십시오' 아내가 그라면 남편은 그때 만족을 느낍니다. 만족을 느끼면서 '아,  그래요? 진작 말하지 왜 그래요?' 이라며 떡 해결해 주면,  그라면 뭐인가? 자기 인기가 올라가거든. 남편 인기가 올라간다 말이요.

인기가, 아내가 보고 '우리 남편 제일이다. 우리 남편 제일이다', 이제 아내  앞에서 남편 인기 올라가는 거 남편이 제일 좋아합니다. 그래요. 남편들은 본연  그 속성이 하나님에게 받은 속성인데, 남편들은 아내에게 인기 올라가는 걸  좋아해요. 그러기 때문에, 뭐 남편된 사람들은 아내가 뭐 밥을 잘 해 주고 떡을  잘해 주고 옷을 잘해 주고 암만 그래도 아내가 자기의 인기를 '천하에 우리  남편이 제일이다' 이 인기 없으면 그까짓 살 마음이 없습니다. 살 마음이 없어서  항상 불평 불평 이래 가지고 나눠져 버려. 이라다가 이제 뭣을 못 해도 그  아내가 '우리 남편이 제일이야. 우리 남편이면 다 돼' 이렇게 아주, 아내에게  남편의 그 권위성이 올라가고 인정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한다 말이오.

 우리 하나님도 꼭 같아요. 우리 하나님은 안 그런 줄 압니까? 우리 하나님도 꼭  같습니다. 꼭 같아요. 사람들이 점잖다고 하는 그것은 외식이야. 점잖은 것은  외식이라. 그래서 '사양지심은 예지단이라' 사양하는 그 마음이라 하는 것은  예의 중에는 제일 끄트머리 예의라 그렇게 말해요. 점잖이 아니라 마음을  솔직하게 단정하게 아무 외식이 없이 순수하게 딱 들어붙는 그걸 하나님이  좋아하신다 그거요.

 이러니까. 떡 이렇게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 들어가도 떡 거석하고 자기 남편  주님을 떡 믿고 '사자 구덩이 집어넣는다, 집어넣는다' 이라니까 그거 자기 남편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 때문에 다니엘이 입이 뻘쭉벌쭉 하면서 그래 떡 하니 사자  구덩이 집어넣도록 들어갈 때에, 그거는 뭐이냐 하면 남편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거든. 남편. 하나님 권능을 믿기 때문에 사자 구덩이 들어가도, 사자 구덩이  들어가며 조마조마조마 그러면 조마조마조마 그러면 주님이 좋아하겠소  섭섭해하겠소? 예? ○○○, 섭섭해하시지. 섭섭해하셔.

이러니까, 아주 호독거린다 말이오. 호독거리면 주님이 더 지금 강하게 가지고  이제 다니엘이가 겁이 나 호독거리도록 할라고 막 이렇게 아무리 해도  호독거리지 않습니다. 호독거리지 않으니까 이게 안 놀래나 싶어서 놀래도록  할라고 되게 이래도 놀래도 안하고 오히려 이라니까 더 그럴수록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사하면서 자꾸 그라니까 '주님, 이거 다 그만하면 알았습니다.

압니다.' 그렇게 당신을 믿는 것을 좋아하신다 말이요  이라다가 모든 사람이 볼 때에 이래 이는 사자 구덩이 들어갔다 했는데 그  이튿날 떡 사자가 하나도 상우지도 안하고 이렇게 썩 나왔으면, 나왔으면  다니엘의 남편의 인기가 올라갔어요 안 올라갔어요? 되게 올라갔어.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주님 되시는, 주님은 우리로 말미암아 당신의 인기가  올라가기를, 당신의 권위가 올라가기를, 모든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가  올라가기를 원하는데 이 올라갈 그런게 쪼매만 할라 하면 이게 그만 겁살을 쥐  먹고 그만 먼저 자부라지니까 이것 데리고는 살수가 없다 그 말이요. 그것  데리고는 하나님이 상대자로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알겠소?

 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가 금번 기회에는 참 이 하나 하나 시간 시간에서 고쳐  가지고 사람이 고쳐서 사람이 새사람 되도록 합시다. 새사람 되고, 새사람 되고,  완전한 사람이 되고. 구비한 사람이 되고, 믿음의 사람이 되고, 의의 사람이  되어서, 그라면, 어찌 되는가? 예수의 피의 사람이 되라 그말이오. 사죄의  사람이 되고 칭의의 사람이 되고, 칭의의 사람은 영감만 받는 것이 칭의의  사람이라. 영감의 사람. 또 죄로 더불어 싸워서 죄 없는 무죄의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그러면, 그게 뭐냐 하면 영감의 사람이요 진리의 사람이라.

이러기 때문에,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은 합하여서 하나이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번에 여러분들이, 이 병든 것은 여러 가지가 병의 원인이 있어요 병 원인이  여러 가지가 있어. 어떤 사람은 내가 말 들었는데, 서부 교회서 관절염을  앓아서, 관절염을 앓아 가지고 이제, 그만 집회 못 온다고 집회에 못 온다고  그랬는데, 관절염을 앓아서 집회 못 온다 하는 걸 그 구역장이 권해 가지고 집회  가자고 이래 가니까, 그래 관절염을 앓아서 아프지만 집회 가면 하나님에게 가면  나으니까, 가자고 이라니까 아파서 못 갈 걸 차비를 냈대요. 차비 내고 나니까  벌써 그만 다 나아 버렸어. 차비 내고 나니까 나았어. 차비 내고 여기 올 것도  없이 다 나아 버렸는데 뭐. 그래 가지고 나은 사람으로 왔어. 지난번에도 보니까  준비하다 나은 사람 많아.

 내가 어떤 우리 집사님 한 분은 자궁암으로 이래 가지고 부산 복음병원 제일  유명한 병원인데 그 병원에 가서 수술했다가 다시 재발돼 가지고서 이제 두 번  암 수술하면 죽는 거라. 그거는 뭐 두 번 암 수술 해 가지고 사는 사람 없어요  다 죽어. 그만 헛일이라. 이랬는데, 와 가지고 뭐, 자녀들이라는데 나는 그만  이거 뭐, 수술 이거 해야 됩니까 안 해야 됩니까?' 이라는데 내가 보니까 반은  하고 싶고 반은 하기 싫고 이러며 뭐 '해 봐야 돈만 없애지' 이라는데, '자기  마음이 어때? 하나님이 낫아 주실 수 있어?' '아, 하나님이 낫아 주시면 나을 수  있지요.' '그라면 집회 가서 낫도록 준비를 많이 해라' 집회 가서 그 병 낫도록  준비 많이 해 가지 그 집회가서 낫도록 해라했더니만 준비하는데 그만 뚝 다  떨어져 버렸어. 준비하는데 그만 그 자궁암이 쏵 나아 버렸다 말이오. 그 아프고  뭐 쑤시고 하는 통증이 하나도 없고 그만 그 뒤에 가서 쏵 나았어, 준비하는데.

당신과 나와의 이 떨어지는 데서 병이 생기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 이 떨어진  게 연결만 되면 된다 그거요. 어제 그것을 말씀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병도 여러가지 병이 있어요. 여러가지 병. 지식이, 지식이 병들어  가지고 병 난 것도 있고, ○○○조사님, 죽자 껏 예배 처소를 만들어 놓고 다른  사람 은혜나 받거나 꾸벅꾸벅 졸고 저 ○○교인들 없나? ○○교인들 언제  ○조사님 업어다가 저 망게를 좀 던지든지 해 버려, 좀. 꾸벅꾸벅 졸면 거기 뭐  나올 건가? 아무것도 안 나올 건데. 인제 변화가 돼야지. 변화가 안 되면 안  되는데. 여기서 변화 못 받고 딴거 생각하면 안 돼요  그 속성 중에 지식의 속성이 하나 병들어 가지고 그 사람 병난 거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 잘못 알아 가지고 그것 때문에 병난 거 있어. 여러분들이 교인들을  길러 보면 그것을 알 것입니다. 저것은 그거 잘못 알았는데 그리말고 꼭 그걸  고쳐라 해도 꼭 그 지식을 가지고 고집을 하고 있다 말이오. 그 지식 하나가  삐뚤어졌으니까 그 지식 하나 뻐뚤어진 것으로 인해서 행동이 삐뚤어지게 된다  말이오, 행동이. 행동이 삐뚤어짐을 인해서 하나님의 복이 막혀지지, 축복이  가로막히고 난 다음에 그래도 고치지 안하니까 할 수 없어 하나님께서 병이 들게  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지성이라는, 지식이라는 속성, 지식이라는 속성이 하나 병들은 거.

어떤 것은 조 사람은 다른 거는 다 좋은데 고놈의 한 가지 욕심. 그 놈의 한  가지 욕심 고놈만 빼 버리면 봉사도 잘하지, 희생도 잘하지, 충성도 잘하지,  인내도 잘하지, 관용도 잘하지, 이해도 잘하지, 누그럽기도 하지, 열심도 있지,  뭐 오만 거 다 잘하는데 조놈의 인간은 그 욕심 하나 고게 들어서 고놈만 뽑아  냈으면, 이제 욕심이 하나 병들어 가지고 고거 때문에 몇 난 사람 있다 말이오.

그걸 욕심만 딱 고쳐 버리면 그만 돼 버려.

 이러니까, 여러분들, 이 자리에서 뭐 하나님의 말씀이 자꾸 나오는데 이것 저것  하나씩을 고치라 말이오. 시간을,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내가 요거 고칩니다.

요거 딱 고치고 난 다음 그냥 어물쭈물하고 냅두면 헛일이라. 그리고 난 다음에  '주여. 요거 고쳤습니다.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래 가지고도 믿어지지 안하거들랑은 '요거  다시 이제, 반복되지 않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라고 또 마음에 안 믿어지면 그저 자꾸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꾸 그라면 나중에 확 믿어진다 그말이오. 탁 통과돼 버려. 이렇게 해서 이번에  무슨 병이든지 다 고침 받아 가지고 이제 완전한 사람, 새사람, 참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사람, 하나님의 찬송이 되는 사람 하나님의 그 모형이 되는 사람  이런 사람으로 완전히 고침을 받아 가지고 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세월을 아끼라  네 환경이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 이 시간에 치료함 고침을 받아야 될  터인데 주위의 환경에 있는 사람을, 구역장도 만나 보니까 악이고, 권찰도 만나  보니까 악이고, 아버지도 만나 보니까 악이고, 어머니도 만나 보니까 악이고,  형도 만나 보니까 악이고, 전부 제 중심으로, 예배 떡 보고 나서 가서 보니까,  예배 떡 보고 나서 보니까 이제 은혜 받은 그 은혜 중심이 아니고, 그 은혜는 다  쏟아 버리고 제 주관 제 잘났다고 뭐 이 주관하고 저 주관하고 이 욕심 저 욕심  인간 놀음만 실컷 하다가 또 예배 시간 되니까 '아이구, 예배 시간 됐나? 언제  됐나? 시간이 언제 그래 지나 갔노?' 이라다가 오니까 뭐이 될 거냐 말이오. 자.

이렇게 하다가 오전 예배 준비 없이 참석한 사람 솔직하게 손 한번 들어 봐요.

저 뒤에 하나 드는데. 그 사람은 정직한데 다른 사람들은 공연히 이제 죄짓고  거짓말하고. 그렇게 준비도 안 하고 거짓말까지 하고 자꾸 죄에 죄를 지으면  어짭니까? 준비를 해서 이번 기회는 놓치지 말고 그렇게 고치도록 합시다.

 디모데후서 3장 17절에,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완전자시요 영원 자존자이신데  그분이 홀로 계셨습니다. 그분이 홀로 계셨는데 그분이 영계의 모든 것도 다  만드셨고 물질계 모든 것도 만드셨습니다.

(다리를 찝어 부채만 가지고 자꾸 그렇게 하지말고, 부채말고 이쪽에, 안 되거든  살을 꼭 찝어요. 그 다 그래 은혜 받지 안했어. 우리가 그 전에 은혜 받을  때에는 은혜 받을 때에는 이래 보면 전부 아랫도리가 시퍼러이 창백해 아주.

이래 가지고 쫙 거머쥐고 홱 비틀트리고 그래 가지고 전부 얼룽덜룽 다 창백해  있었어. 그래 가지고 다 은혜 받고 다 모두 변화를 조그매씩 받은 것입니다.

그냥 거기 있으면서 뭐, 더운 게 뭐요? 이렇츰 하나님이 해 주시는데,  오늘 오뉴월 염천인데, 지금 부산은 아마, 부산 누가 지금 일기에, 누가  일기예보 들었나? 아마 되게 더울 거라. 아. 여기는 더운 게 없는데 나는 뒤에  선풍기가 부쳐 그런가, 백지 내가 시원하니까, 부자가 배부르니까 가난한 사람  배고픈 줄 모른다 하는 거처럼 그런지, 여러분들 그렇게 덥습니까? 오뉴월  염천에 더워요 그리 덥지 안해요? 예? 더워요? 더워? 더워? 그 소리는. 더운  것을 다 회개를 해요, 더운 것을 회개를 해. 덥다 하는 사람은 실상 몰라  그래요. 그거, 자꾸, 더우니까 '아이구, 더위 이놈아 야 이놈아, 더위 피해야  되겠다. 요리 피해 볼까 조리 피해 볼까, 아이구 부채로 피해 볼까' 뭐로 피해  볼까 그거 더워서 못 견딥니다. '더위 이놈아 오너라. 네까짓 놈이 온다고 내가  주님에게 바치는 성심과 성의를, 내가 주님 앞에서 지금 사람병 고치는 일을  내가 등한히 하겠느냐?' 병원에 가서 그까짓 거 고쳐봐야 별 수 없는 것도  고칠라고 하루 이틀이고 기다리고 있고 그런, 뭐 수술도 하는데, 여기는  수술하는 거 배 째는 거보다야 낫지. 안 그래요? 그러니까, '아이구, 뭐  덥지요?' '아, 더운 게 뭐입니까? 이거 큰 소망을 가지고 있는데 더운 게  뭐입니까?' '더운 게 뭐입니까' 이래야 될 터인데 '덥습니까?' 하니까 모두  '덥습니다' 다 그라는구만 자, 한번 따라해 봐요. 더운 것이 무엇입니까! 큰  소망을 이루는데! 이런 더위도 견디지 않고야 되겠습니까! 큰 은혜가 너무 값이  쌉니다. 이러니까, 그래 알아야 되지. 그라고, 뭐 해 봤자 찍해야 뭐 그거 암만,  더위 때문에 죽겠소 어디? 죽기밖에 더 하겠소? 죽어도 우리가 이 은혜 받아야  되는 데).

 하나님은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으로서 그는 무형의 존재입니다. 이 물체가 있고  물질로 되어 있는 물체가 있고, 물체 아닌 영으로 되어 있는 영체가 있습니다.

물체 있고, 천사들은 물체는 없고 영체가 있습니다. 우리 사람은 물체도 있고  영체도 있고 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영은 영체로 되어 있고 이  심신은 물체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어떻게 물질인가? 마음이 물질인 것은 그 전에 많이 해석을 했기  때문에 더 하지 않겠습니다. 마음은 물질입니다. 물질인데. 육의 생명 그것도  물질인 것입니다. 마음은 육의 생명보다는 그래도 신비성이 없는 것입니다. 몸은  물질이요, 신비한 물질이 마음이요 마음보다도 물질로서 더욱 신비한 것은 육의  생명인 것입니다. 생명은 그건 물질이지만 더욱 신비한 것입니다.

이래서 그 마음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물질로 되어 있고 영은 영체로 되어  있는데 사람은 영체와 물체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들인데 영체는,  영체는 그것이 하나님과 연결만 되면 되니까 더 이상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과  연결은 단번에 됐고 이러니까 이제 심신 물질로 되어 있는 이것을 지금 우리가  구출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영체도 없고 물체도 없는 하나님이신고로 하나님은 무엇으로  일을 하시는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역사는 영감으로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감으로 역사를 하십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그 역사를 가리켜서 영감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여기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 하나님의 감동이라는데  영감이라 말은 하나님 영(靈)자 영감입니다. 하나님 영(靈)자, 하나님의  감동이라 하는 것은 알기 쉽기 해석해 놓은 것이고, 영감이라고 하는 영은  하나님 영(靈)자, 하나님의 감동이라는 감동을 동(動)자는 빼 버리고 감동이라는  감(感)자만 해 가지고 영감이라 그거는 하나님의 감동이라 그 말입니다.

영감이라 말은 하나님의 감동이라 말인데, 하나님은 영감으로 일을 하십니다.

 영감으로 일하시는데 그 영감이 나타나셨을 때에, 그 영감이 나타났을 때에 그  영감을 가리켜서 진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역사를 가리켜서  영감이라고 말하고. 영감 그것을 가리켜서 진리라고 말하고, 진리가 우리가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을 가리켜서 성경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성경. 그러면. 성경 말씀 성경 안에 뭐 있습니까? 성경 안에는 말씀이 있습니다.

책 안에 쓴 말씀이 있소. 책 안에는 하나님 말씀이 있소. 말씀 안에는 뭐  있습니까? 진리. 진리 안에는 뭐 있습니까? 영감.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영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진리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이라 하는 데는 너무 많이 내려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성경이라 이렇게 말하지를 못합니다. 진리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성경이라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은 성경 그것이 하나님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또 말씀이  하나님이라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진리가 하나님이라 이렇게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리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하나님이, 하나님이 영감으로 나타나 가지고 역사를 하시는데,  영감으로 역사하시는데, 하나님이, 하나님의 역사가 영감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이 영감으로 당신이 손을 내밀었소. 영감으로 당신이  나타내서 역사했습니다. 나타냈는데, 당신이 그러기 때문에, 영감 그 이면에,  영감 이면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계셔서 그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  영감으로 나타났고 또 영감이 역사하는 그 영감이 진리로 나타났고, 또 진리가  뭘로 나타났습니까? 말씀으로 나타났고 진리가 말씀으로 나타났고. 고거  여러분들이 구별해요. 진리가 말씀으로 나타났고, 말씀이 또 뭘로 나타났습니까?  문서 계시로 나타났습니다. 이런데, 이 문서 계시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가장 접선하기 쉽도록 하시기 위해서 가장 접선하기 쉬운 좋은 방편으로  나타난 것이 문서 계시입니다. 문서 계시 이상으로써 나타나지는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에게 이제 섭리로 역사 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나에게 문서로 나타난 이 문서는 곧 내가 그  진리를 접선할 수 없고, 진리를 내가, 접할 수 없는 그 진리가 내가 접할 수  있도록 나타난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 곧 계시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이 말씀과  내가 함께 할 때에 진리가 이제, 내가 진리를 접촉해서 진리와 함께하는 것이  되고, 진리와 함께 할 때에 영감과 함께하는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영감으로 일하신다. 없는 가운데서 영계도 영감으로 창조했고  물질계도 창조했으니, 하나님의 영감이 두 번 나타났는데 첫번 나타날 때에는  변동될 수 있는, 변동의 가능성이 있는 변동될 것들을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창조하셨고, 이차 영감은, 이차 영감은, 이차 영감은 어디서부터 나타났는고  하니, 이차 영감이 어디서부터 나타났다고 했지요? 예? 이차 영감은 하나님이  모든 부요를 내어놓은 그것이 영감 역사라 말이오. 하나님의 모든 부요를  내어놓고 하나님이 사람되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오신 것이 영감으로  잉태했습니다. 영감으로, 영감이 오셨습니다. 영감이 오셔 가지고 이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셨는데, 잉태하셨는데,  그러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신 예수님은 인성과 신성을 가졌으니  신성이 곧 영감 안에 오셔 가지고 계셔서 역사하시는 그 신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하나님 그 본체가, 하나님의 그 본체가 이렇게 갈라져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고, 성부 성자 성령은 그 본체는 하나이신데 그 위가 셋입니다.

본체는 하나이신데 책임 맡은 것이 세 가지이고 역사하는 것이 세 가지라  그말이오. 본체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차 영감이 나타나셔 가지고 역사하신 것은 하늘에서 부요를  내어놓으시고 올 때에 그때에 이제 오는 그 역사가 영감 역사인데, 그 영감  역사, 하나님의 본체 역사인데, 하나님 본체는 그냥 있고 하나님의 본체  역사인데, 그 본체 역사가 곧 그리스도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의 역사.

 그러면, 목적을 하나님이 정하실 때에 어떻게 정했느냐 하면 그리스도라고 하는  하나님. 그리스도라고 하는 그 하나님, 그 그리스도라고 하는 하나님 그 하나님  안에서 목적을 정하셨고, 그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예택함을 입었습니다.

입었는데, 그 그리스도가, 우리가 목적 안에, 예택 안에 있을 때에 그때에 벌써  그리스도가 책임을 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목적이 정해졌고 하나님의  예택이 정해졌는데 그 그리스도가 그 뒤에 사람을 입고 나타나셨으니 곧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말을 하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 말을 했는데,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의 신성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대속의 곤욕을 당한  것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래 가지고 대속을 베푸시고, 대속을 베푸시고 난 다음에 다시  부활하시고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다시 이제 우리들을 성령을 보내셔 가지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서 성령이 와 가지고 성령과 진리가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와 가지고 예수님의 대속과 성령과 진리로 우리를  살려냈습니다. 이것이 중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은.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요 내나 예수님의 영이신데,  성령이 우리에게 오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순서를 통해서 옵니다. 그 성령이  오신 것은 피를 통해서 왔고 또 피를 돕기 위해서 왔고, 진리도 피를 통해서  왔고 진리도 피를 돕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이 세 가지 대속을 베푸셨고 대속 베푸신 그 대속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가지고 이 대속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영감과 진리가 와  가지고 역사합니다.

 역사하는데, 그러면, 지금은 이차에 나타난 영감이 뭘로 역사하고 있느냐 하면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의 이 모든 형식을 입고, 이 세 가지의 위치를  가지고. 이 세 가지의 책임을 가지고 이 세 가지 방면으로 역사해 가지고 이  일을 성공을 시킵니다. 성공을 시키니까 예수님의 이 사죄를 성공시키고, 칭의를  성공시키고, 화친을 성공시키고, 영감을 성공시키고, 진리를 성공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이제 피와 성령과 진리로 하나 되어서 그것이 성공되면 어떻게  성공되느냐? 그것이 이제는 처음에 목적 정한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목적을  정하신 대로의 이제 그 결과가 그리스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가, 우리가 그리스도가 되어져.

 그리스도가 되어진다 그 말은, 우리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완성입니다.

그리스도가 되어진다 말은 그 말은 뭐이냐 하면 예수님의 피를 힘입고 영감을  힘입고 진리를 힘입어서 우리가 되어지니 이 되어진 그 완성자는 뭐이냐?  완성자는 그것이 뭐이냐? 완성자는 곧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제사장의 사람이라 말이요 선지자의  사람이라 말이요 왕의 사람이라는 말인데, 우리가, 중생된 우리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직책을 영원 무궁토록 이 직책을 하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교회는  만물 위에 하나님의 몸이라. 그런데, 만물에게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의 충만  그것이 곧 교회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 하나님이 뭘로 일합니까? 영감으로 일하고, 또 하나님이  뭘로 일합니까? 진리로 일하고, 또 하나님이 뭘로 일합니까? 말씀으로 일하고,  또 하나님이 뭘로 일합니까? 성경, 성경으로 일합니다. 성경으로 일하는 것이  제일 밖에 우리로 하여금 접하기 쉬운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어제 말하기를 독침을 찌를라고 하고 있는데 그때 그게 무엇이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까? 영감이 하는 것입니다. 영감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또 뭐이 하는 것입니까? 진리가 하는 것입니다. 또 뭐이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말씀이 하는 것입니다. 또 뭐이 합니까? 성경이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는  것이라. 성경이 하는 것이라. '아, 저거 성경이 저렇게 하고 있구나' 그거  성경이 하는 줄을 알아야 됩니다. 성경이 하는 줄을 알아야 되고, 말씀이 하는  줄을 알아야 되고, 진리가 하는 줄을 알아야 되고 영감이 하는 줄을 알아서 이제  여기에 푹 파묻혀서 이래 알고 이래 믿는 그 사람이 되어져야 거기에서  이색이라는 미혹을 받지를 아니합니다. 거기서 미혹을 받지 안하고 그래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독침이 왔는데 '아, 저거 성경이 저라는데' '성경이  저라는데' 하고, '성경이 저렇게 한다. 성경이 저렇게 한다' 성경이 저렇게  한다고 그걸 하고 성경이 그렇게 하는 것을 자기 지식대로 성구를 대서 '아,  저것은 불로 연단하는 믿음을, 불로 연단하는 지금 그 성구가 지금 저렇게  일하고 있다. 또 믿음의 시련이라고 하는 그 성경이 저렇게 하고 있다.' 모두 다  성경이 일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있는 신불신자의 모든 것을 성경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믿어야 합니다. 성경이 일하고 있다는 것. 성경이 일하고  있다는 것. 그러기 때문에 성경대로 된 것입니다. 성경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하고 있는데, 성경이 하고 있어? 그게 무슨 말이냐? 성경이 하고 있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고 있다 말이오. 하나님 말씀이 저렇게 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이 하고 있는 것은 뭐이 하고 있습니까? 진리가 하고 있다. 진리가  하고 있는 것은 뭐이 하고 있는 것입니까? 영감이 하고 있습니다. 영감이 하고  있는 것은 누가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하고 있다 하나님이 저렇게 모든  삼라만상의 지극히 작은 것까지도 하나님이 하고 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의 개별 섭리를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우리의 신조요 교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의 개별 섭리라 하는 것을 믿는 이 교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나 그거는 제한적 주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 제한적 주권을 말하고 있고, 또 섭리를 말하는 것도 제한적 섭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칼빈주의 학자인데 어떤 학자의 말하는 거 보니까 그분은  그렇게 해 놨읍디다. 예정에 대해서, 예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기독자의  구원에 대한, 구원에 대한 강령적인 문제는 예정이 되어 있지만 사소한 그런  것들은 예정되어 있지 않다.

또 기독자의 구원에 관한 것을 강령적으로 예정돼 있지 안 믿는 사람 이거  전부는 그 예정되어 있지를 않다' 그렇게 그 주석에 써 놓은 것을 봤습니다.

그것은 틀렸습니다. 불신자의 것이 예정이 안 되어 있으면 신자의 것이 예정되어  있을 수가 없고 신자의 개별의 것이 예정되어 있지 않으면 강령의 것이 예정되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러기 때문에 좀 법을 공부하라 하는 거라, 법을 공부하라. 과학자들은 잘  몰라요. 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잘 알아요. 법이 필요해요. 나는 칼빈에 대해서  나는 칼빈 기독교 강요를 갖다 놨지만 한 두 장 읽어보고 내가 그 다음에  읽어보지 안했소. 안 읽어 봤는데, 그분도 뭐 법학을 공부했다고 그렇게  말하는데, 법학 사학이 좋습니다. 우리 ○○○목사님은 사학 공부를 했는데,  교리사 교회사 사학 공부를 했는데 아마 뭐 이 세상에 이런 거 저런 거 많이  있다 해도 제일 놀래지 안 할 거라. 놀래지 안하고 그라면 '아, 아무 때 아무  것이도 저랬습니다. 아무 때 아무 것이도 어디서도 저렇게 막 불이 나가지고  사람들이 놀래서 아이쿠 아이쿠 했지만 내나 그 뒤에 보니까 진압돼서  이랬습니다.' 이제 그걸 그렇게, 사람들의 시야를 넓게 하기 위해서 사학을  공부하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사학은 지금으로부터 근 육천 년 동안이라는 그  모든 것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제 어떤 한 시대에,  국부적인 그런 일에 폭 빠져 가지 그 깜짝 놀래서 여기, '아. 저게도 있었다  그때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옛날 다 있었고 새것이 하나도 없다. 과거에도  저기도 있었는데' 다 이라기 때문에 이제 시대 변천에 거기에 폭 쌓여서 날뛰지  안하고 고게 빠져서 죽지 않기 때문에 이제, 말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말하기를 사람들이 지금. 요새는 해수욕하다가 빠져 죽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해수욕, 바닷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은 숫자가 적지만 인간들이  가치로 여기는 그 가치라는 홍수 속에 파묻혀 죽는 사람은 참 많습니다. 이 가치  저 가치, 그러니까, 이 가치 저 가치, 이것도 가치가 있다 저것도 가치가 있다  이래 가지고는 모든 거 가치가 있다고. 제가 공부를 많이 해 광문다학을 해  놓으니까. 이것도 가치가 있다. 저것도 가치가 있다, 이러니까 가치 이것도  가치가 있다. 저것도 가치가 있다 이러니까, 가치 속에 이 가치 저 가치 이  가치보고 저 가치보고 이 가치보고 저 가치보고 그만 가치 속에 파 묻혀 가지고  물을, 가치라는 물을 먹어 가지고 허퍼허퍼 하다가 그만 거기서 그만 익사해  뒈지고 만다 말이오. 가치 홍수 속에 익사된 사람이 얼마나 많으며 인간들이  인간 생애에 이런 방편이 좋다 저런 방편이 좋다 해 가지고 인간의 각종의 방편  그 홍수 속에 파묻혀 가지고 이 방편도 하고 저 방편도 해 보자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빠져 죽은 목사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진리는 여기 가서 배우고 불은 거기 가서 받고 정치는 저기 가서 배우고 이래  하면서 꿍 뚜드리면서, 이제 거기서. 뭐이더라? 뭐 기합술을 배우다 하던가.

거기서 뭣을 배워? 무슨 훈련? 그거 뭐이더라? 용문산에서 하는 거 그거 무슨  훈련이야? 사람들. 뭐 그거 이름. 고함도 왁 질러보고 그렇게 자꾸 해서 담력도  키우고 그런다고, 예? 훈련. 연수? 극기 훈련도 아니고 거기서 하는 말이 있어.

연수, 최면술 아니야. 용문산에서 하고 있어요. 용문산에 광고 더러 나와요. 예?  예? 수련. 수련. 수련, 수련. 수련이라. 그거 수련이라 말을 써요. 그거는  수련이라는 말을 쓰는데 거기에서 한번 고함도 질러 보고 자꾸 이래 쌓는데,  이거 모양으로 그래 가지고. 주먹 뚜드리는 것은 여기 가서 배우고 불은 저기  가서 받고 진리는 여기 가서 배우고 또 이 방편, '보자' 다니며 보면서 여기서  좋은 거 저기서 좋은 거 다 이렇게 해 가지고 그게 비빔밥 돼서, 저 죽는 줄  모르고, 홍수 속에 파 묻혀서 물먹고 죽는 줄 모르고, 이거 저거 자꾸 주 모아  놓으면 그거 비빔밥 신앙에서 제가 죽는다는 것을 그걸 모른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목회 하는 방편 홍수물 먹고 익사하는 사람, 이 세상에서  이것이 가치 있다 저것이 가치 있다 해서 이 가치 저 가치 둘러 마시고 나중에  익사해 죽는 사람. 또 모든 쾌락 속에 빠져서 이 쾌락이 좋다 저 쾌락이 좋다  해서 쾌락 속에 빠져서 죽는 사람 이래서 죽는 사람 많습니다.

 그랬는데, 제일 가치 없는 거는 뭐이며 제일 가치 있는 거는 뭐입니까? 자,  제일 가치 있는 게 뭐이요? 영생이 제일 가치 있다는데 그렇습니까? 영생보다 더  가치 있는 거 있습니까? 예? 없어. 방편은 주님과 동행하는 방편 외에 아무것도  없어. 뭐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다 하늘나라로 산 채로 승천했는데. 쾌락은  십자가의 기쁨, 주님의 선물과 주님 만나는 기쁨 그 외에는 기쁨이 없어.

그까짓거 나머지기야 장가가니까 기쁘다, 시집가니까 기쁘다. 아따 논 샀으니  기쁘다, 밭 샀으니 기쁘다 뭐 기쁘다 뭐 기쁘다 암만 지저분하게 해 봤자  그까짓거 천이면 만이면 뭐 할 건가? 만이면 뭐 할 거라? 마지막에는 다 사망  구덩이로 다 들어가 버리고 마는데. 이러니까, 사망하지 안 할 것을 가져야지.

 이래서, 하나님은 영감으로 일하시는데, 이제 하나님은, 모든 공산주의의 그  모든 것도 다 영감이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그것을 하나님은  영감으로 일하신다 그걸 단단히 기억하고, 하나님은 영감으로 일 하신다,  하나님은 진리로 일하신다, '야. 저기 지금, 저기 산태가 나 가지고 사람이 많이  죽었다' 한 사람이 떡 보고 '아. 하나님의 영감이 일하셨구만.' 또 '아 진리가,  진리가 그랬구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랬구만. 성경이 이루어질라고 그랬구만.

성경이 그랬구만' 자, 이 말 다 틀려요 맞아요? 맞아, 맞아, 이 말 다 맞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이 속에 헤엄을 치고 살아야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볼 때에 '아, 저것도 성경이 저라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대로 그대로 되지 않는 건 하나도 없어. 전부 성경대로 다 되는  거라. 성경대로 다 되는 거. 불신자도 성경대로 되고, 지진도 성경대로, 전쟁도  성경대로 다 성경대로, 성경이 저렇게 한다, 성경이 저래 한다. 성경이 저라고  있다. 성경이 저라고 있다 말은 누가 그렇게 하고 있다 말입니까? 예? 하나님이  그렇게 하고 계신다 그말이오. 성경이 저래 하고 있다 말은 중간을 다 떼버리면  하나님이 저렇게 하고 계신다 그말이오. 중간을 나타내면 영감이 그렇게 하고  계신다 그말이오. 진리가 그렇게 하고 계신다 말이오. 하나님의 뜻이 그렇게  하고 계신다 그말이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하고 계신다 그말이오. 성경이  그렇게 하고 있다, 성경이 그렇게 하고 있다. 성경이 나타나, 성경이 그대로  하나 둘 자꾸 이루어져 가고 있거든. 자꾸 이루어 가고 있거든. 성경이 그대로  이루고 있어요. 성경이, 성경이 그대로 이루고 있다니?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고 있다 그말이다.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고 있다니? 진리가 그대로  이루고 있다 그말이다. 진리가 그대로 이루고 있다니? 무슨 말입니까? 영감이  그대로 이루고 있다 그말이다. 영감이 그대로 이루고 있다는 그말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말이다. 이 바보야 모르느냐 그말이오.

그러기에. 이제 성경은 전능의 능력을 가졌다, 진리는 전지 전능의 지능을  가졌다, 또 영감은 전지 전능의 지능을 가졌다 사랑의 지능을 가졌다 하나님은  완전자요 전지 전능의 지능을 가졌다. 하나님이 가진 거 영감이 다 가졌고,  하나님이 가진 거 진리가 다 가졌고, 하나님이 가진 거 말씀이 다 가졌고,  하나님이 가진 거 성경이 다 가졌으니 성경 친하는 사람 하나님 친하는  사람이요, 성경 배반하는 사람 하나님 배반하는 사람이요, 성경과 동행하는 사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니, 성경의 도움 받는 사람 하나님께 도움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여러분들이 무시하지 말고 성경은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성경과 동행하는 것이오. 말씀과 동행이 하나님과 동행이오. 말씀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오. 자, 내게 있는 성경이 성경은 이렇게 말하는데  성경 버리는 것이 뭐 버리는 것입니까? 하나님 버리는 것이 뭐 버리는 것이지요?  영감 버리는 거. 또 영감 버리는 것이 뭐 버리는 것이오? 진리 버리는 거. 또  진리 버리는 것이 또 뭐 버리는 것이오? 말씀 버리는 것이 또 뭐 버리는 것이오?  또 성경 버리는 것이 뭐 버리는 것이오? 성경 버리는 것이 전지 전능을 버리는  것이요, 성경 버리는 것이 완전을 버리는 것이요. 성경을 버리는 것이 영생을  버리는 것이요, 성경을 버리는 것이 완전 승리를 버리는 것이오. 이러기에 성경  버리는 것이 다 버리는 것이라. 성경 버린 것이 다 버린 것이라니? '아, 성경  버린 것이 다 버린 것입니까?' '그러면 말씀은?' 아, 말씀 버리는 것이 전지  전능 버리는 것이요, 완전 버리는 것이요, 영생 버리는 것이요, 성공 버리는  것이라. '아, 그러면, 말씀 버리는 것도 성경 버리는 거와 꼭 같네요.' 아 같지.

그러면, 진리 버리는 것은? 진리 버리는 것도 내나 그래. 그러면 진리하고  성경하고 말씀하고 영감하고 하나님하고 하나로구먼? 하나로구먼? 하나로구먼?  하나로구먼?  하나라고 하는데 쪼끔 주의할 게 있어. 하나로구먼? 본체만 하나가 아니지  역사로는 꼭 하나이다. 자, 이 말씀 맞았어요 안 맞았어요. ○○○목사님 좀  교리 대 봐요. 고라면 맞았어요 안 맞았어요? 맞았어요? 우리 저 교리 박사요,  교리 박사. 저 교리 박사. 교리 박사인데, 지금 다른 교파에서 저 교리 박사를  끌어 갈라고 자꾸 애를 써 쌓는데 그래 뭐 아마 돈도 좀 많이 줄라고 그래  쌓을거라. 이래도 안 간대요. 가면 또 죽어. 가면 별 수 없어. 갈 데가 있는가?  버리고 가도 되는가? 하나님이 좋고 영감이 좋고 진리가 좋고 말씀이 좋고  성경이 좋지.

 이래서, 이제 그러면, 성경이 하나님이라 말이냐? 하나님하고 쪼금 구별해서,  쪼금 구별해서 본체와 피조물과의 구별. 또 그 안에 있는 능력과 외부에 나타난  외형과 구별 이 구별이 있는 것뿐이지 그 속에 파고 들어가면 알맹이의 역사는  꼭 같다 그말이오. 꼭 같은데, 꼭 같은데 맨 안에 파고 들어가니까 뭐만  다르냐하면 창조주 피조물로 그 두 본체만 다른 것이지 역사는 꼭 같습니다.

이것이 도통이라, 이것이 도통. 이렇게 꼭 알아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에  우리가 하나님이 산에 계시는지 들에 계시는지 밭에 계시는지 낮에 계시는지  밤에 계시는지 모르니까 탈이라 그거요.

(이제 좀 이제 졸음이 오는가? 따라오다가 되거든 졸아요. 따라오다가 되거들랑  좀 누워 자. 누워 자고 또 가끔 가다 들어도 돼. 가끔 들어도. 뭐 생전 한  마디도 못 듣다가 이래 좀 들어서 그만 해도 돼. 그러니까, 좀 피곤하거든 누워  자요. 피곤하거든 누워 자고, 이제 좀 감당할 사람들은 또 이제 듣고 감당하고  그래 해요.)  하나님과 우리와의 제일 동행하기 쉽도록 하나님이 동행하기 쉽도록 당신이  우리 편리를 봐서 동행하기 쉽도록 나타내 주셨으니 어떻게 동행하는 것입니까?  성경과 동행하는 거라. 성경이야 여기 있지 안해요? 성경에 이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이 말씀, 성경과 동행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오.

또 성경과 동행하는 것보다도 조금 고차원에서 고차원에서 동행하는 것은 뭐와  동행하는 것입니까? 말씀과 동행하는 것이라. 말씀과 동행했으면 어북 그거는  고차원입니다. 또 말씀과 동행하는 것보다도 더 고차원의 동행은 또 뭐이라요?  진리와 동행하는 것 또 진리와 동행하는 것보다도 더 높은 고차원의 동행은  뭐이라요? 영감과 동행이요. 영감과 동행하는 것보다도 더 높은 동행은  뭐이라요? 하나님과 동행인데, 하나님의 본체에 가면 완전자이기 때문에 우리가  불완전해서 환난 만나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동행은 하나님의 역사와 동행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동행해요. 그래서 하나님은 영원히 본 자도 없고 볼 수가 없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그분은 완전자시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 억억 만 년 지나고  난 다음에 어찌 될란지 몰라도 현재 성경에 나타나기는 그렇게 나타나셨다  그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감과 동행이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이것을, 자, 하나님과 동행은 어떤 자와 동행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동행은  어떤 자와 동행하는 것이오? 거지하고 동행하는 것이오? 예? 하나님과 동행은  전능자와 동행, 전지자와 동행, 완전자와 동행, 주권자와 동행, 주권 개별  섭리자와 동행, 인간의 심리를 주관하는 자와 동행, 인간의 활동을 주관하는  자와 동행,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자와 동행, 모든 공간을 주권하는 자와  동행, 인간의 심리를 주권하는 자와 동행, 뭐 생사를 주권하는 자와 동행,  마귀를 주권하는 자와 동행,  자, 이분과 동행해 놓으면 못 할 거 있소? 이분과 동행하는데 모자라는 거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소 없소? 그러면, 이 말에 조금 과장이 있습니까 과장이  하나도 없습니까? 과장이 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 좀 손들어 봐요. 없어요.

없습니다. 없어.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이제 그러면 내가 성경대로 하는 것은 내가 성경대로  하는 그 일은. 내가 성경대로 하는 그 일은 전지의 일입니다. 전능의 일입니다.

완전의 일입니다. 승리의 일입니다. 적이 없는 일입니다. 절대적인 일입니다.

성경대로 하는 자를 피조물들이 해할 수 있어요 없어요? 해할 수 있어요 없어요?  성경대로 하는 자를 피조물들이 해할 수 있어요 없어요? 군대나 무기나 과학이나  공산주의나 세상 것들이 해할 수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없어요. 진리대로 하는  자는? 진리대로 하는 자도 해할 수 없습니까? 영감대로 하는 자는? 말씀대로  하는 자는? 그라면 뭐 만고에 태평이네.

 자, 해할 수 없으면 이제 겁을 내야 돼요 안 내야 돼요? 안 내야 돼요. 그런데  기독자들이 겁을 내야 되는 겁이 있어요. 기독자들이 겁을 내야 되는 겁이  있어요. 뻘뻘 떠는 겁 하나 있어요. 그거 뭐이지요? 동행 떨어질까 하는 그  겁이라. 다른 게 아니라 동행 떨어질까 하는 그 겁. 동행 성경하고 동행하다가  떨어질까, 말씀하고 동행하다가 떨어질까, 진리하고 동행 하다가 떨어질까,  영감하고 동행하다가 떨어질까, 거기에서 제일 하나님과 가깝게 동행은 무슨  동행이라요? 예? 예? 영감 동행, 영감 동행이 제일 가까운 동행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서 지금 이 시간에 차차 차차 하나님과 동행해 가지고, 영감  동행이 다 있다 말이오. 지금 영감 동행은 다 있어요. 우리 이 자리 있는  사람들은 대개는 그만 뜻이 똑 같아요. 뜻이 꼭 같지, 소원이 꼭 같지, 모든  비판이 같지, 지식이 같지, 관념이 같지 평가가 같지 다 같아. 우리 꼭 같은  사람이라. 똑 같아요. 요랬는데 나가 놓으면 그만 천지 만엽으로 갈라져 가지고  변해진다 말이오. 변해져. 이래 가지고 나가 놓으면 뭐 이 사람은 이래 갈라지고  저 사람은 저래 갈라지고 이래 가지고 전부 잡탱이가 돼 가지고 절단이 난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 시간에 깨끗해진 것을 더럽히지 말고 그대로 가지고  주님을 만나면 됩니다.

 그것을 자꾸 익혀요. 익혀서, '주님이여, 말씀과 동행이 주님과 동행인 것을  내가 확신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또 내가 성경과  동행하는 것이 이제 주님과 동행인 것을 믿게 해 주옵소서. 확신을 주시옵소서'  이래 가지고 좀 확신이 안 되는 것은 자꾸 여러 번 기도 해 버려요. 여러 번  기도해. 자꾸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꾸 그래서 해 모아. 그저 이거 믿어지지  안하면 '주여, 믿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믿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믿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꾸 해서 모아 놓으니까 예수님에게,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한 번 두 번이 아니라  가득히 채워 놓았는데 예수님이 기가 막힙니다. 이렇게 가득히 채워 놨으니  당신이 이행을 해야 되겠소 안 해야 되겠소? 안 하고는 못 견뎌. 안 하고는 못  견뎌. 못 견디는데 한 번 한 것과 두 번 한 것과 양이 다르니까 한 번 한 데  해주시는 것과 열 번 한 데 해 주시는 것과 다르다 그말이오. 다르기 때문에 해  주시는 양이 달라져.

 자, 그라면 여러분들 모든 사건 닥쳤을 때에 누구하고 의논해요? 누구하고  의논해요? 주님하고 의논한다 하는 사람은 초절주의라. 초절이 돼 가지고  실패하기 쉬워. 누구하고 의논해야 돼요? 맨 밑에서부터 한번 올라가요.

누구하고 의논해야 돼요? 성경하고 의논해야 돼요. 성경에. 성경에 뭐라 했노?  성경에 요래 해라 했다 하면 성경에 고래 하라 한 대로 그대로 해. ○○○목사님  성경에 하라 한 대로 그대로 해요. 졸음이 옵니까? 그래. 또, 그러면. 사건이  왔을 때에 또 성경과 동행하고 그라면, 또 뉘하고 동행해야 또 더 든든해요?  말씀과 동행하고, 또 뉘하고 동행해요? (진리) 또 뉘하고 동행해요? (영감) 또  뉘하고 동행해요? (하나님) 하나님하고 동행해요. 이라면 든든해.

 그라면 그런 가운데서, 그런 가운데서 든든치 안한 것은 내 주관 행위라 든든치  안한 것은 내 주관 행위라. 내 주관이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게 안심이 되지  안하고 이 얼굴빛이 달라지고 그렇게 이 피부가 안 믿는 피부가 돼요. 피부가  믿는 피부가 돼야 되고 눈동자가 믿는 눈동자가 돼야 되고 또 입술이 믿는  입술이 돼야 돼요.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그 사람들은 눈은 안 보이지만  입술은 믿는 입술이라. 또 보니까 배짱이 나오는데 배짱도 믿는 배짱이라.

이래서, 자꾸 우리는 뭣 만들어요? 뭣 만드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돼요? 아멘!  자, 무엇을 만드는 데에 전심 전력을 기울여야 돼요? 믿음!  자 인제 따라합시다.

믿음 만드는 데에 전심 전력하자!  믿음 만드는 데에 전심 전력하자!  믿음 쓰는 데에 전심 전력하자!  믿음 쓰는 데에 전심 전력하자!  인제 그라면 다 됐어. 이거만 하면 다 되는데. 방안에 앉아서 다 하고, 방안에  앉아서 다 하는데.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해 주시는데 공연히 돌아다니면서!  이래서 그 전에 한상동 목사님이 늘 그렇게 말했어요. '여러분들, 뭐 교회 무슨  문제가 있거들랑은 자꾸 사람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그런 말 한 소리를 종종해.

'사람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이래 가지고 장로에게 찾아가야 되겠고 뭐 찾아가야  되겠고 찾아가면 압제받습니다. 찾아가면 압제받아. 무슨 문제 있어서  해결할라고 장로들 찾아다니거나 집사들 찾아다니거나 찾아다니면 뒤로 쩌뻥하니  벌써 멸시를 줍니다. 멸시를 줘.

 멸시를 주는데 찾아다니지 말아. 찾아다니지 말고, 주님에게만 찾아가요.

주님에게 찾아가 가지고 일을 다 해 놨다 말이오. 주님하고 의논해 가지고 이  일을 다 완성을 해 놨습니다. 완성을 해 놨으면 장로들에게 찾아가는 것은  도와달라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장로들에게 찾아갈 때는 이거 권위있는 일인데  이거 네가 좀 해라' 그렇게 시키러 찾아간다 말이오. 시키러 찾아가. 자,  하나님이 하시는 일 하면 그 하는 사람 인기가 올라가요 내려가요? ○○○조사님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떡 가서, 수종들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척척 잘 되거든.

그러니까 '아이구, 인기다. 그 사람 참 기술도 있고 능력도 있다'  이러니까 이제 인간에게는 얻으러는 가지 말라 그말이오. 알아듣겠소? 주러  가지. 장로님들을 찾아가는 것은 장로님들에게 사정해서 도와달라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 이거 네가 해라.! 그라면 그 장로  어쩌라고? 그 일 하다가서 뭐 박살되라고? 어쩌라고? 이 조사님. 어쩌라고? 예?  도와달라고? 도와 달라고? 어쩌라고? 어쩌라고? 예? 벙어리들이가? 어쩌라고?  장로들 인기 올려 줄라고 하는 거라 인기 올려 줄라고 장로들 인기 올려 줄라고.

장로들 권위 올려 줄라고.

 이라니까. 떡 가 가지고, 하나 떡 맡겨 놨더니만 올라간다 말이오. 하나 떡  맡기고 나니까 그 뒤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 제가 수종만 드니까 사람 보기에는  제가 하지만 속으로는 하나님이 하셨다 말이오. 이래 떡 하고 나니까 '아이구  장로님, 그 어려운 일을 하셨습니까? 그 일을 아주 잘 해결하셨습니다. 장로님이  그 일을 그렇게 해 주셨습니까?' 장로 인기가 올라간다 말이오.

그래서 목사가 장로 인기를 올려 주기 위해서. 키우기 위해서 뭘 시키지  장로에게 사정을 하고 구걸을 하고 뭘 도와 달라고 시킨다고 하면 그 목사는  자격 없어. 그 장로에게 자끈 자끈 밟힙니다. 자근 자근 밟히요. 모르는 것같이  해도 이제 장로를 가르치기 위해서 물어야 되지. '아, 장로님. 이거 내가, 이거  어째야 될런지 한번 좀, 이거 어찌 해 야 되겠습니까?' 이래 물을 때에 가르치기  위해서 해야 되지 배우기 위해서 하면 목사 자격 없어.

 가르치기 위해서 하다니? 목사가 다 알아. 다 아는데, 아는데 장로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아, 이거 어찌 해야 됩니까? 이래야 됩니까 저래야 됩니까?'  이렇게 백지 빙빙빙빙 돌며 그라니까 이제 그 장로님이 그것을 말을 이래야 되지  저래야 될지 잘 모를 때에는 이라면 이렇겠고 저라면 저렇겠고 이래야 될까  저래야 될까 주저주저하니까 장로가 그때, 영감이 와 가지고, 그 목사의 영감이  장로에게 가 가지고 장로에게 영감해 주니까 장로가 뻐뜻 깨닫고 '이래야  됩니다.' 이라면 배운 듯이 '아이구, 그렇습니까? 예, 장로님의 의사가  맞습니다. 그거 참 옳습니다. 그렇겠습니다.' 이라니까, 자. 장로님한테  가르쳤습니까 배웠습니까? 배웠소 가르쳤소? 여기 한번 말해 봐. 가르쳤어.

그렇기 때문에, 목사는 장로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이고, 선지자는 가르치기  위해서 해야 되고 주기 위해서 해야 되지, 주는 거 외에는 사람들에게는 할 일이  없다 그말이오.

 이것도 확정지운다는 것이 위대한 말입니다. 인간에게는 줄 것만 할 일이지  인간에게 얻을 것은 없다 그말이오. 얻기는 주님 한 분에게만 얻어요. 이 사상이  옳아요 틀렸어요? 저 뒤에 있는 목사님들 어때요? 옳아요 틀려요? 함부레 저  뒤에 가 앉아. 목사님들은 저 뒤에. '어라 거기 갔다가는 재수가 없이 잘못  걸릴라. 잘못 걸려서 뭐 하나 물었다가 대답 못 하는 날이면 아주 그만 참 아주  그거는 수치 당한다. 이러니까, 아예 저 뒤에서 멀찌막이 이제 구경이나 하자'  이라고 꼭 니고데모 모양으로. 니고데모 모양으로. 니고데모가 언제 왔어요?  밤에 왔어, 밤에. 니고데모 모양으로 저 위에 와서. 그거 손해라. 그것도  누구한테 속았는고? 그것도 자기한테 속은 일이지. 속은 일.

사람에게 얻을라고 하지말고, 구할라고 하지말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얻고  사람들에게는 주기만 위하는 것, 주기 위한 것. 이 자리를. 이 자리를 옮겨  서면, 이 자리를 옮겨 서면 그 다음부터는 자기에게 천대가 옵니다. 이 자리를  옮겨 서면 천대가 오는 것입니다. 멸시가 오는 것입니다. 이 자리를 옮겨 서면  상대방 죄 짓게 만들고 저 천대받고 그런 것입니다.

 자, 그라면, 아홉시 반, 열시 반, 열 한시 반, 두 시간 됐네. 그러면 두 시간  됐지? 그라면 그만 하지 뭐. 예? 자, 그라면 또 뭐 혹 의문 나는 거 물을 거  있어요? 의문 나는 거 있으면, 물을 거 있으면 물어 봐요. 의문 나는 거, 의문  나는 것은 요런 자리서 물어 가지고 해결을 짓고 확정을, 단정을 지워요. 단정을  지워서,  오늘 배웠는데, 무엇이든지 즉시 해야 되는데, 세월을 아끼라 하는 말은 무슨  말이라고요? 현실을 아끼라, 기회를 아끼라, 기회를 놓치지 말라 말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 말이오. 그러니까, 할 일은 즉시 해야 됩니다. 우리 주장은,  할 일은 즉시 해야 돼. 뒤로 미루면 헛일입니다. 기회라는 것은 두 번 없는  것이고, 뭐 뉘가 속담에 말하기를 기회는 머리는 더풀 더풀하고 꼬리는  매끌매끌하기 때문에 기회가 오기 전에 딱 기다리고 있다가 기회를 뽈끈 잡고  단속을 해야 잡지 그 기회를 뒤로 잡을라 하면 매끄러워서 다 떨궈 버리고 만다.

기회 놓친다. 기회오기 전에 기다리고 있다가 그 기회를 잡아서 이용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시간에 고칠 거, 고칠 거 우리가 여기 몇 가지  말했지요? 몇 가지 말했어요? 여덟 가지 고칠 거 말했어요. 이제 그라면 재독 안  해도 다 알지요? 여덟 가지 고칠 거 자꾸 이 시간에 말씀을 들을 때 또 고치고,  고치고 자꾸 이래 고쳐요.

 고치고 난 다음에 덧붙이로 못을 탕탕 두드려 칠 것 있는데 그거 뭐이라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딱딱 못을 치라 말이오. 못을 탁탁 쳐요. 다시 변동 못 하도록 말이오.

그라면 이제 할 일은 누구 일만 남았어요? 예? 누구 일만 남았어요? 누구 일만  남았어요? 주님의 할 일만 남았어요. 똑똑히 말해요. 주님의 할 일만 남았어.

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 시간에 이제, 고치지 못한 거 고치고, 잡지 못한 거, 잡고 바꾸지 못 한 거  바꾸고, 고라고 난 다음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해서  완전히 못을 통통 뚜드려 박아서 다시 변동 못 하도록 해 버려요. 저 뒤의  사람들도 기도하고 나가요, 기도하고. 고치고 나가야지, 고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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