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준비

 

1987. 7. 19. 주일오전

 

본문:베드로후서 3장 9절∼14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주님의 재림은 이 우주가 끝나는 날입니다. 언제까지나 이 우주가 이렇게 계속되리라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하나님,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지으시고 또 주권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일백이십 년 동안을 홍수 멸망 준비하라고 경고하시고, 그러나 준비한 사람은 겨우 노아의 여덟 식구뿐이어서 여덟 식구는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얻고 나머지기 전인류는 다 멸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지금 남아 있는 이 우주는 창조주 하나님을 위해서 그 법칙대로 사는 자와,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 생각대로 사는 자들이 뚜렷이 구별이 되도록 하시고 이 일이 끝나면 모든 우주는 다 불로 사뤄서 원소로 돌아갑니다.

지금 여러 종류들이 있고 여러 모양들과 여러 색깔들이 있지마는 그때는 이런 것이 다 없어집니다. 이래서 모든 것이 풀어진다 없어진다 하신 것은 천태만상의 형체도 종류도 색깔도 다 없어지고 한 원소로 다 화해집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실 때에 모든 것이 액체 고체가 한테 합해져서 뭉얼뭉얼한 그런 원소로 되어 있던 때와 같이 다 원소가 되어져 있어 가지고 다시 하나님께서 만물을 영원히 새로 창조해서 만물이 영원히 죽음이 없고 멸망이 없는 그런 새 하늘과 새 땅을 하나님이 창조하십니다.

그럴 때에 이 불탐을 인해서 멸망받는 사람들은 멸망을 받고 멸망받지 않는 사람들은 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서 영생하게 됩니다. 이 우주에 물질계라는 이것과 영계라는 이 영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 통일되는 그 나라는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이 불심판을 미리 말씀하시고 이 불심판에 멸망하지 안하도록 준비하라는 그 경고를 벌써 근 이천 년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날에는 이 말씀대로 준비된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것이고 준비되지 아니한 것들은 다 멸망 가운데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그 위력을 접해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폭우와 폭풍이 지나간 적이 있었고 또 세계 각처에서 지진들이 나 가지고 어려운 그런 일들이 토막토막에 있은 것을 우리가 잘 소식 듣고 있습니다. 그런 것도 우리가 여게서 뭐 이런 신문이나 잡지나 이런 것으로써 소식 듣는 것보다 당면한 사람들은 더 다급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은 사소한 일입니다.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에는 이 바다도 전부 타서 녹아지고 산도 다 타서 녹아지고 해도 별도 달도 전부 타서 다 녹아져 버립니다.

그런 것이 타서 녹아질 때에 그때에 그 두려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또 사람들이 심히 놀라서 뭐 다 기절해서 다 죽을 것이고 또 그 불에 견디지 못해서 다 타서 소멸될 것입니다.

이랬는데 우리에게 이 구원 얻는 길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 하나님이 홍수 멸망을 피난하는 그 구원의 길을 말씀해 주신 거와같이 오늘도 우리에게 분명히 불심판의 멸망을 피하고 구원 얻을 그 방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여게 11절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해 놓고 그다음에 이 불심판에서 구원 얻는 방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 행위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 이 두 가지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우리가 준비함을 인해 가지고 준비가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하는 것은 그 결과를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을 준비했는데 사람들은 다 거짓부리에서 뿌리박고 자랐고 전체가 거짓부리이기 때문에 사람은 아무리 깨끗하게 살라고 해도 거짓화되기 마련입니다. 이래서 뭐 사회에도, 공장에도, 정치에도, 교육에도, 학문에도, 문화에도, 과학에도 전부 다 거짓이 뿌리박고 무성해서 모두가 다 거짓화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참으로 오늘에는 잘난 사람도 다 요구 안 하고 똑똑한 사람도 요구 안 하고 사람된 사람들은 다 진실한 사람을 요구합니다. 뭐 진실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은 이런 면에 거짓되고 저 사람은 저런 면에 거짓되고 모두 이중 삼중 가지고 제 지혜를 가지고 제 지혜대로 살라고 애를 쓰지마는서도 제 지혜라는 그것이 전부 다 자멸하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이루는 것이 없을 만치 전부 다 거짓된 지혜, 거짓된 수단, 거짓된 활동, 거짓된 사랑, 거짓된 교제 전체가 그 속에 거짓이 들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볼 수 없는 그 속에 알맹이를 보는 사람은 하나도 다 취할 것이 없는 참 정떨어지는 무정한 그 세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기에 노아 때에 일백이십 년을 두고 홍수 심판 멸망을 준비하라고 했지마는 사람들은 다 등한히 여기고 조롱하면서 하거나 말거나 제각각 제 원하는 대로 제 욕심대로 제 실속 차린다고 분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변치 안해서 홍수 심판이 내릴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비하라는 거 외에는 전체가 다 홍수 속에 매몰돼서 멸망되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도 다 이렇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나님의 날이라 말은 예수님의 재림 날을 말합니다. 재림 날이 오기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면 우주는 불타 버리는데 우주가 불타는, 예수님의 재림이 오시기를,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달피는 사람,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사람 기달피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재림이 오기를,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것을 소망하고,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것을 소망하고 간절히 사모하고 기다린다 했습니다. 이것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의 준비가 어떻게 됐나 하는 것이 표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준비가 잘 됐나 안 됐나 하는 그 표시는 예수님의 재림이 안 왔으면 좋겠다 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재림이 어서 오셨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 예수님의 재림은 우주와 모든 것이 다 불타 버리는데, 예수님이 오시면 우주와 모든 것은 다 불타는데 이 불타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기다리되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지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또 마치 갓난 아이가 어머니의 젖 외에는 사모하는 게 없는 것처럼 이렇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 외에는 사모되는 것이 없이 일편단심 재림만 사모되고, 재림하시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바라는 이 사람되는 그것이 불심판 닥칠 때에 이 심판으로 멸망받지 않고 구원 얻을 증거입니다.

물론 우리 택한 사람들은 기본구원 곧 영이 구원 얻어서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나, 또 생명의 부활을 얻는 것이나, 영생하는 것이나,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는 것이나 그런 것은 불타지 않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구원이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 가지고 구원 얻은 자의, 부활한 자의 영광이 되는 그 건설구원 성화구원 이 구원은 불심판을 면한 그런 것이라야 이 구원이 되지 불심판도 면하지 못한 것이 영생하지는 못합니다. 불심판 이거 면하는 것보다 영생하는 것은 천배 만배 더 어렵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그것은 그렇게 쉬운 것 아닙니다. 이 불심판 이것은 초보입니다. 불심판에 통과된 것도 그것도 영생에 들어간다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불심판은 초급 시험이라면 영생은 최고급 최종 시험을 통과한 것들이 다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일이 이렇츰 어려운고로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하신,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하신 이 하나님이 사람되셔 가지고 이 일을 성공하기 위해서 벌써 도성인신한 것만 해도 이천 년이 거의 다 돼 가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 일을 착공하신 것은 육천 년이 아니라 영원 전입니다. 그만침 어렵고 힘드는 일인데 마귀에게 유혹받은 사람들이 저거 생각대로 그저 이 건설구원이 그렇게 쉽다고, 그렇게 헐하다고 생각하는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안 되는데 예수님의 공로를 입은 자라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자기 있는 것이 다 된 것만치 그것이 건설구원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 다한다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예수님의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에게 예수 밖에 있는 마음이나 목숨이나 힘이나 뜻이나 이런 것은 예수 밖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의 것이라면은 이런 모든 것이 다 예수님의 안의 것이 되어져야만 되기 때문에 예수 안에만 영생이 있지 예수 밖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이것을 방주 안에만 생명이 있었지 방주 밖에는 생명이 없었던 것으로 하나의 모형으로, 하나 예표로 우리에게 보여서 깨닫게 한 것입니다.

오늘은 불심판에 이 소멸되지 안하는 것만 성화의 구원으로 영생된다. 불심판에 소멸될 것은 다 영생 구원이 안 됩니다. 이 예비 심판인 불심판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어떻게 영생에 들어가겠습니까? 영생에 들어가는 데는 불심판 같은 거 이런 게 있어서 이 어려운 게 아니고 거게는 온갖 심판의 조건들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수많은 조건들이 다 정죄해도 아무것에게도 정죄를 당하지 아니한 것이라야 되지 그 수많은 것들에게 정죄당하지 않는 것은 아예 그 수많은 것들에게 정죄당하지 않는 것은 불 이까짓 거야 근방에 오지도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불심판에 통과되지 안한 것은 다 멸망받는다, 불심판에 통과된 것만 영생에 희망이 있다 하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러면 불심판에 내가 통과될 만한, 불심판에 통과될 만한 내가 실력 있는 준비가 되었나 안 되었나 하는 그것은 무엇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것을 불심판 닥치기 전에 ‘나는 이 불심판을 통과하겠나 못 하겠나?’ 하는 것을 자기가 지금 찾아 보면서 ‘나는 불심판 통과할 수 있다, 못 하겠다.’ 하는 것을 자기가 지금 나타난 그 열매를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불심판에 소멸되지 안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이 불심판 통과가 될 수 있나 없나?’ 하는 것은 자기가 자기를 요 말씀에 의지해서 심사해 보면 압니다. ‘나는 불심판에 통과할 수 있다. 불심판에 나는 통과할 수 없겠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불심판에 통과할 수 있는 그 실력이 갖추어 있는지 불심판에 통과할 만한 실력이 갖추어지지 못했는지, 실력이 갖추어져 있는지 실력이 갖추어져 있지를 못한지 이것을 뭣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까? 무엇을 봐서 알 수 있습니까? 몇 가지를 보아서 알 수가 있습니까? 거기 내리 읽어보고 말하십시요, 몇 가지를 보아서 알 수 있는지? 몇 가지입니까? 그러면 여게 한번 본문 읽어 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예수님의 재림을,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고” 바란다 말입니다, 기다린다 말입니다, 소망한다 말입니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어짤꼬?’ 절망되고 낙망되고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신다는 소리는 죽으라는 소리보다도 더 듣기 싫다’ 싫은 사람도 있겠고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그 말을 아주 기다려서 듣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성도들이 지은 것, ‘먼 하늘 이상한 구름이나 무엇만 있어도 아, 주님이 오실란가보다.’ 행여나 주님 오실까 해서 기달펴집니다. 첫째가 주님의 재림의 날이 기달피는 것이 돼야 됩니다. 바라보는 것 기달피는 것, 바라보는 것 기달피는 것이 돼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둘째로는 사모하는 일이 돼야 됩니다, 사모하는 일.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여게 대해서 ‘언제 오실란가?’ 사모하는데 사모해도 그저 정떨어진 신랑이 돈벌이 해 가지고 온다 하니까 ‘온다 하더니만 언제 올 건가?’ 하는 것같은 그런 사모가 아니고 간절한 사모라 했습니다. 이거 두 가지입니다.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날이 기달피는 것입니다, 기달피는 것. 둘째로는 간절히 사모되는 것, 이 둘이 내게 돼 가지고 있으면 예수님의 이 불심판에 통과할 그래도 소망성이 있고 벌써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내가 애착하는 집도 다 불타 버릴 것이고 사업도 불타고 가족도 다 준비 못 한 것은 다 송장이 돼서 타고 오그라져서 다 없어질 것이고 또 제가 좋아하는 모든 재물도 다 불타 버릴 것이고 뭐 땅의 것이 싹 다 탈 터이니까 하나도 뭐 제가 좋아하는 게 남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 날이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불심판 준비한 것은 그때 남아서, 노아가 홍수 심판을 통과하고 나니까 우주가 저의 것 되던 거와 마찬가지로 불심판 통과한 자들은 영계와 물질계가 다 저의 것이 되어지지마는 이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전멸이 됩니다. 자기도 자기 소유도 다 전멸됩니다.

그까짓 거 인간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너 아니면 나 못 살고 나 아니면 너 못 산다고 이렇게 지금 뭐 물고 빨고 하는 그까짓 게 무슨 힘 있소? 탁 타 버리면 싹 송장되고 다 불타 버리고 맙니다. 아무것도 없어지요.

또 네 나라가 강하다 내 나라가 강하다 떠들면 뭣할 겁니까?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강대국도 다 원소로 다 타 버립니다. 뭐 핵무기니 그까짓 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과학이 무슨 소용 있소? 달도 없어지고 별도 없어지고 태양도 없어지고 지구 땅덩어리가 다 타서 원소로 다 화해지고 맙니다. 모든 게 불타 버리고 맙니다.

이럴 터이니까 그날을 말만 해도 듣기 싫어합니다. 왜정 말년 때에 일본 사람들이 듣기 싫어한 것이 예수님의 재림 설교를 제일 듣기 싫어했습니다. 재림 설교를 제일 듣기 싫어했습니다. 재림 설교에 대해서 저도 일본 사람들에게 몇 번 경고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이렇게 모두 다 사람들은 그 호호양양한 소망을 가지고 만반의 준비하고 기대하고 있는데 이 우주가 불탄다는 그 말을 어데 하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몇 번 책망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내 말이 아니라, 내 말 같으면 그까짓 거야 말해 봤자 그거 무슨 소용 있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보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도 하나님이 했고, 혹독한 말을 해도 하나님이 했고, 너거가 싫어하는 말도 하나님이 했지 내가 한 말 아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래서 그저 우리는 준비는 어떻게 준비해야 되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 두 가지로 준비해야 되는데 거룩한 행실과 경건 준비한 이 준비에 준비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그것을 시험해야 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 이것이 준비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은 무엇을 가지고 시험을 해 봐야 바로 됐는지 안 됐는지 알 수 있습니까? 몇 가지로 시험해 봐야 됩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로 시험해 봐야 됩니까, 저 뒤에도 손가락으로? 예사로 듣지 말아요. 오늘 불타면 그만이오. 오늘 안 탄다고 누가 보장하겠소? 보장 못 해. 오늘도 불 안 탄다고 보장 못 해요. 이거는 내 말이 아니라. 그날이 밤사이에 도적같이 이른다 했으니까 그날은 갑자기 온다 했기 때문에 언제 닥칠지 모릅니다.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날에는 우주는 다 불타 버립니다. 강대국도 불타고 지금 조롱을 하고 하나님을 훼방하고 꺼덕거리고 있는 과학도 싹 타 버릴 것이고 주님이 그때 당신을 훼방하고 당신을 대적하는 자를 태울 때 통분히 태우십니다.

긍휼히 여기지 안하고 통분히 태우십니다. 지금 참고 기다리시지마는 당신을 업수이 여기는 거, 당신을 거슬리는 거, 당신을 반대하는 거, 당신을 대적하는 거, 당신을 멸시하는 거 그날에 주님이 복수하십니다. 완전히 불로 싹 소멸해서 그런 거는 하나 흔적도 없습니다. 다 풀어진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준비할 한 방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아니면 이거는 준비할 수 없는데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기 때문에 이 준비는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몇 가지로 준비합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로 준비합니까? 다 손가락 둘 드십시오. 두 가지로 준비합니다. 뭐 아무리 여기 대통령이 와 앉았어도 몇 가지로 준비하느냐 하면 두 가지로 준비한다고 들어야 됩니다. 들어야 돼. 왜? 이는 땅위에 정권자 그것보다도 억억억억만 배도 커. 그런 것들을 일시에 만들고 없앨 수 있는 능력자라. 그분이 말씀하는 것이지 뭐 백 목사 그까짓 거야 여러분들이 욕하면 욕 얻어먹고 발길로 차면 채이고 모가지 끊으면 끊기고 죽이면 죽고 그까짓 거 가치 없습니다. 이래도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준비는 두 가지로만 합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 가지고만 준비를 합니다.

돈 가지고 준비 안 됩니다. ‘나는 돈을 많이 모아 가지고 자가용 비행기를 만들어 놓고 옥상에다 비행장을 만들어 놓고 이라면 뭐 퉁 그라면 날아가지’ 네까짓 게 날아가면 어데로 갈 것이냐? 우주가 불타는데 네가 날아가면 얼마나 날아가며 공중에 날아 있으면 얼마나 날아 있을 것이냐? 우주가 다 불타는데 그 비행기가 안 녹고 거기 남아 있겠느냐? 그거는 안 타겠느냐? 어리석은 짓 하지 말아야 됩니다.

나는 돈 모아 가지고서 빠른 선박을 만들어서 일 나면, 여게 난리 나면 배 타고 저리 가고 저기 난리 나면 배 타고 저리 가고, 큰 배 만들어 놓으면 삼 년까지는 먹을 수 있는 양식 다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삼 년이면 설마 무슨 배겨나지 하지마는서도 이제 그 불타는 것은 영원한 회복이 안 됩니다. 다시 주님의 이 통일 정권이 수립될 때에 그때에 마련이 됩니다.

그런고로 노아 홍수 때에 저희들이 이 큰 일을 알지 못하고, 멸망하는 그날까지 이 큰 사실을 알지 못하고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시집갈 것, 장가갈 것, 거처할 것, 뭐 장사할 것 이런 것 날뛰다가 멸망받은 거와같이 꼭 같다. 이 중대한 문제 이 문제일랑 준비하지 안하고, 방비하지 안하고 땅에 있는 것만 마련하고 하다가서 다 멸망받는 것이 노아 홍수 때와 꼭 같다 하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내 말 아니오.

오늘 여게서도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는 데에 듣기 싫은 사람 많을 것입니다.

정직하게 한번 손 들어 볼까요. 주님이 구름타고 오시면, 좋을란지 구름타고 오시기를 기다리는지? 구름타고 오셔도 오늘은 오시면 안 되겠고 다문 몇 달 후에 왔으면 좋겠다, 좀 오랜 후에 왔으면 좋겠다, 내가 늙을 때까지만 안 왔으면 좋겠다, 내가 죽을 때까지 안 왔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재림이 더디기를 원하는지 빨리 오시기를 원하는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달피고 간절히 사모하는지, 예수님의 재림 한다는 말이 듣기 싫고 안 왔으면 좋겠다, 재림하신다 하니까 두렵고 절망이 되고 기가 막히고 듣기 싫고 절망되고 싫은지?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이 일에 대해서 자, 듣기가 두렵고 듣기 싫은 사람 정직하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듣기 싫은 사람. 정직하게 손 들어 봐요.

거짓말 많이 하네. 또 거짓말 하는 자는 하늘나라 못 들어가. 자기가 자기에게 속지 말아요. 거룩과 경건이 준비 안 됐는데 주님의 재림의 날이 고대해질 리는 절대 없습니다. 모두 다 거짓부리로 지금, 재림을 싫다 하면 예수님의 구원을 싫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재림을 기달피지 않는다 소리를 못 해서 손을 안 들지 다 그런 사람들이라. 거룩과 경건이 준비되어 있지 안하면은 결단코 예수님의 재림이 기달펴지고 간절히 사모해지지는 아니합니다.

거룩한 행실이 어떤 것인데 그렇게 예수님의 재림이 기달펴지고 간절히 사모가 되어지는가? 거룩한 행실은 구별하는 행실입니다. 구별하는 행실은 무엇을 가리켜 말한 것인고 하니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일에 모든 거리낄 것, 이 거리낄 것을 다 정리하는 것이오. ‘이것도 주님의 재림에 거리낀다. 이것도 주님의 재림에 방해된다.’ 주님의 재림에 거리낄 것을 전부 다 정리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데 대해서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데에 거리낄 것을 전부 정리합니다.

정리하면, 정리하면 세상이 이거 정리하는 사람을 세상이 어떻게 합니까? 이 정리하는 사람은 세상이 그 사람을 어떻게 합니까? 거룩한 행실로 주님의 재림에 거리낀 것을 다 정리하는 사람은 세상이 어떻게 합니까, 가족이 어떻게 합니까, 친구가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합니까? 환영합니까 좋아합니까, 싫어합니까 대적합니까? 거룩한 행실로 주님 재림 맞이하는 데에 거리낄 것을 다 정리하니까 세상이 자기에게 낙원이 됩니까 불구덩이와 같습니까? 낙원이 됩니까 가시밭과 같습니까? 감옥과 같습니까? 칼날 위에 선 거와 같습니까? 세상이 포근하고 재미 있고 평안합니까? 재림에 거리낀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깨끗이 회개할라고 하니 세상은 일시도 머물기가 힘드는 세상 됩니다. 알겠습니까? 일시도 세상은 머물기가 힘드는 세상 됩니다. 다 세상은 참 정붙일 곳이 없이 됩니다. 전부 세상은 안팎 아래 위가 전부 마찰되는 것뿐입니다. 그런고로 거룩한 행실은 주님의 재림에 거리끼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회개하는 그 행위를 말합니다.

경건은 내가 과거에 이것도 위하고 저것도 위하고, 첫째 가족을 위했고 이라다 보니까 뭐 가족의 모든 교육이라든지 의식주라든지 이러니까 사업도 위했고 이것도 위했고 모든 거 다 위했는데 이제는 재림하시는 주님 한 분만을 위할라고 하니까 땅위에 위하던 것을 다 끊어야 됩니다. 땅위에 위하던 것을 다 정리하고 일편단심, 내가 위해 주니까 다 좋아하고 기뻐했는데, 내가 위해 주니까 다 좋아하고 기뻐했는데 내가 위해 주던 그거 그를 위하지 안하고 그 위하던 것을 하나님께로 옮겨 버리니까 다 삐쭉거리고 다 싫어합니다.

이러니까 거룩한 행실 하니 세상은 참 쓸쓸한 세상, 경건을 할라고 하니까 다 가시밭과 같고 맹수의 소굴과 같은 세상이 됩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거룩한 행실이 된 것만치, 거룩한 행실로 정리가 된 것만치 주님에게로 기울어진 것만치 세상과 떨어지고 끊어지고 인정이 없고 세상은 박한 세상이 됩니다.

이러니까 저 해 놓은 것이 거룩한 행실과 경건뿐이니까 이 사람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 그것밖에 기달필 게 없어. 재림이 돼야, 저 모든 준비한 게 다 거게 있기 때문에 재림이 돼야 숨을 쉬겠고 어서 재림이 와야 좀 이 모든 어려움의 박해의 환난을 벗어나겠다 그거요.

하나 비유가 될란지 몰라도 요새는 지금 우리 나라는 곧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간선제 직선제 이것이 서로 바꾸어지자 해서 뭐 전국이 데모로서 큰 난리를 치렀습니다. 큰 난리를 치렀어. 이제 치러서 간선제가 다 없어지고 직선제가 됐습니다.

그거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직선제가 좋은데 직선제가 좋은 것은 어느 정도의 민도가 직선제를 감당할 만해서 ‘이거 하나 내가 투표하는 것이 돈에나 사업에나 그런 데 매수당하지 안하고 이 한 표를 잘해서 이 정권자가 바로 돼야 우리 나라가 망하지 안하고 그래야 산다’ 하는 그만한 가치를 대통령 투표에 한 투표의 가치를 탁주 한 잔에ㅡ돈 이천 원씩 받고 다 데모에 가담했다는 그말 내가 어제 들었는데ㅡ그렇게 돈에 매수당할 수 있는 그런 낮은 민도에서는 일반 민도로서는 다 직선하면 다 이거 다 이 꾀많은 자들에게 다 매수당해 가지고서 엉망이 될 터이니까 그중에 좀 매수당하지 안할 수 있는 좀 자립성을 가지고 자존성을 가지고 모든 비판과 평가가 정상적인 사람들을 추려 가지고서 대통령 선거를 하자 하는 그런 것을 한 그것도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직선제가 좋다 이라는데 직선제가 좋은 것은 우리 한국에 민도가 어느 정도 성장됐느냐 하는 데 있어서 좋은 결과도 맺고 나쁜 결과도 맺습니다.

만일 자기 양심껏 ‘어떤 사람이 정권을 가지면 우리 나라와 우리 민족이 행복되겠다’ 그거는 생각지 안하고 이 사람 저 사람 거짓말에 꼬이고 돈에 꼬여 가지고서 해서 다대수가 거짓말에게 꼬이고 돈에 꼬이고 이렇게 매수당할 수 있는 그런 아직까지 정도라면은 간선제가 훨끈 낫고 아무리 돈 가지고 꼬우고 감언이설 가지고 꼬우고 어떻게 친분 가지고 꼬와도 ‘안 된다. 우리 나라의 흥망성쇠가 이 정권자 하나에 달렸기 때문에 나는 다른 거는 양보해도 이거는 양보할 수 없다.’ 하는 그런, 우리 국민의 민도가 됐으면 직선제는 아주 백점이요 만점이요 좋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래 됐는데 앞으로 지금 이 선거가 닥칠 때에 우리 남한에 있는 백성들이 어찌 되나? 또 선거하는 연령을 낮춰서 이제 십팔 세로부터 이래 결정이 된다 하니까 아직까지 뭐라고 쌓아도 학생들은 철이 아직까지 안 들었습니다, 경험이 적기 때문에. 요새는 모두 학생들이 제일 왕이오. 이사야 3장에 보면은 어린아이들이 정권을 잡는다고 그렇게 기록을 해 놨습니다. 이래서 어찌 되나 이런데 지금 걱정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거게 대해서도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어짜든지, 나는 누구를 두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는 불교인이니까 이거는 반대하자 그거 아니오. 이거는 천주교인이니까 반대하자 그것도 아니오. 이거는 기독교인이니까 환영 그것도 아니오. 이거는 우리 친척이니 가깝고 우리 지방에 있으니까 지방 정실 그것도 아니오.

‘나는 누군지 모릅니다. 주님이여 나는 누가 이 정권을 잡아야 될지 나는 모릅니다. 모르는데 다만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정권자를 선택해 주십시오.

또 우리 기독자들이 신앙 생활 잘 해 가지고 구원을 잘 이룰 수 있도록 모두 다 협조되는 그런 정권자를 선택해 주십시오. 또 이 국방을 잘해서 전쟁나지 안하고 평안하게 이 모든 국가의 전부에 안보를 잘할 수 있는 그런 이를 선출해 주십시오. 또 그라고 평안하고 밥도 잘 먹어야 되니까 배부르게 밥 잘 먹을 수 있는 그런 정권자 선택해 주십시오. 이거 나는 모릅니다. 당신이 선출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는데, 내가 지금 비유로 가질라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지금 모두 이 갑이 돼야 될 터인데 을이 돼야 될 터인데 이렇게 모두 다, 또 병이 돼야 될 터인데 정이 돼야 될 터인데 이 뭐 서이나 너이나 두고 지금 이래 가지고서 앞으로 지금 둘이 나올란지 하나 나올란지 서이 나올란지 뭐 너이 나올란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제 거게 대해서 각각 모두 지금 벌써 지금부터 다 준비가 있을 것입니다.

준비가 있어서 만일 갑을 위해서, 갑을 위해서 자기가 갑이 당선되는 데에 해로워지는 거, 갑이 당선되는데 해가 되는 것을 자기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다 그것을 없애도록 지금 뭐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없애도록 정리를 하느라고 노력을 하고, 또 갑이 당선되는 데에 유리한 그것을 위해서 자기 전심 전력을 기울였다고 하면 그 사람은 어찌 될까? 그 사람은 무엇을 바랄까? 그 사람은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무엇을 기다리겠소? 그 사람은 뭘 기다리겠습니까? 을이 당선되기를 기다리겠소 갑이 당선되기를 기다리겠소? 뭐입니까? 이거 여러분들이 떨지 말아. 백지 지금도 떨지 마. 암만 말해도 관계 없어. 공연히 ‘이라면 내가 누구한테 내가 잡혀 갈라? 그렇게 내가 내 소신껏 투표하다가 붙들려 가지고 잡혀 가면 어짤까?’ 그렇게 겁나는 인간 같으면 직선제는 절대 적입니다. 알겠습니까? ‘목이 끊어져도 나는 우리 국민을 위해서 유리한 사람을 나는 투표하겠다.’ 이럴 수 있는 그 독립성 자립성 요것을 가진 사람이라야 직선제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직선제가 다시 돼 가지고 있으니까 이번 투표에는 매수당하지 말고 이용당하지 말고 설복당하지 말고 단단히 기도해 가지고서 정신 차려서 해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은 갑이 당선되는 데에 거리낀 것을 다 정리하느라고 전심 전력 기울였습니다. 갑이 당선되는 데에 유리한 점을 갖추느라고 전심 전력 기울였습니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시는 데에 거리낀 것을 다 정리했습니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에 맞이할 수 있도록, 맞이할 수 있도록 모든 것에 전심 전력 기울여서 갖췄습니다. 그게 내나 한가지라. 같은 말이요 다른 말이요? 같은 말 됩니까? ○장로님 어떻습니까? 같은 말 돼요, 내가 한 말이? 같은 말 됩니까? 내나 그거나 그거나 한가지라.

우리가 거룩한 행실은 뭐이냐? ‘보자’ 구별하는 것, `보자. 조사해라. 조것이 들어서 갑이 당선되는 데 방해되겠다. 조거 어짜든지 저걸 정리를 해야 되겠다.

조게 갑이 당선되는 데 조게 필요하겠다.’ 또 이래서 당선되는 데에 방해될 거 정리하고 당선되는 데에 유리할 것을 갖추는 사람도 있겠고, 을이 당선되는 데에 방해될 것을 정리하고 을이 당선되는 데에 유리한 것을 갖추는 데에 전심 전력 기울이는 사람 있을 것이고,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인데 자기 전심 전력 기울이는 것이 다릅니다.

갑에게 대해서 기울인 사람은 갑이 되기를 원하겠습니까 을이 되기를 원하겠습니까? 갑이 되기를 원한다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신사라도 다 들어요.

갑이 되기를 원하지. 을이 되기를 원해서 그렇게 전심 전력 기울여서 방해되는 거 정리하고 필요한 거 갖추고 요렇게 한 사람은 을이 당선되기를 원하겠습니까 갑이 당선되기를 원하겠습니까? 을이 당선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다 을이 당선되기를 원하지. 그렇지 않소? 이거 모르기 때문에 이 말 하고 있어. 여러분들 이거 알고 지금 손을 들어야 돼. 뭐 아주 높은 지식이 있는 줄 알아도 어리석소.

그러면 자, 지금 투표를 했습니다. 이제 개표가 됩니다. 개표가 되는데 뭐 개표되는 데에 개표가 되거나 말거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이구, 개표가 되니 어찌 되노?’ 해서 마음이 가슴이 도근도근 조마조마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이라는데, 보니까 처음에 갑이라는 표가 자꾸 많이 나옵니다. 그라면 갑을 위해서 전심 전력 기울인 사람은 좋겠소 하잖겠소? 좋겠습니까 하잖겠습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그라는데 그만 나중에 보니까 자꾸 을의 표가 많이 나오고 갑의 표가 안 나옵니다. 그라면 갑을 위해 주력한 사람이 마음에 기가 차겠습니까 안 차겠습니까? 막 가슴이 풀풀 뛰어 ‘아이구 어짤꼬 어짤꼬?’ 이럴 것입니다.

그런 거 아니겠소? 을을 위해서 준비한 사람도 그럴 것입니다. 그게 그거요, 바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준비한 사람은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신다는 무엇이 조그만한 무슨 그런 흔적만 봐도 ‘아이구, 기쁘다! 오실란가보다!’ 이렇지마는 그 준비 하나도 안 하고 땅의 준비 한 사람, 을을 위해서 준비한 사람 땅을 위해서 준비한 사람, 땅의 것을 준비해 가지고 하나도 부족한 게 없이 요거 조거 아기자기 전부 구비 다 해 놨는데, 이제는 다 해 놓고 한번 살아보자 하고 오만 거 다 했는데 예수님이 구름타고 오신다면 ‘야, 이상하다. 저런 구름은 이제까지 안 떴는데 이상한 구름이 하나 떴다.’ 그라니까 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준비한 사람들은 그 사람은 어째요? 마음에 좋아요 싫어요? 싫어요? 좋겠지요.

그런데, 누가 있다가서 ‘야 그 구름은 그건 줄 아나? 저게 어떤 나라에서 원자 실험인가 해 가지고서 거게서 나온 그 파동으로 지금 그와같이 생긴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무슨 재림? 그거는 밑에 과학으로 된 것이다. 그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마라.’ 그 소리 들으면 땅의 것을 두고서 준비한 사람은 듣기 좋아요 안 좋아요? ‘이상한 구름이 하나 떴는데 그거는 이 과학의 모든 시험 작용으로 된 것이지 예수님의 재림에서 그런 것 아니라. 저거는 곧 없어진다.’ 이 소리 들으면 땅의 것 준비한 사람은 ‘아, 그러면 그렇지.’ 마음에 좋겠소 하잖겠소? 좋지. 주님의 재림 위해 준비한 사람은, 준비한 사람은 풀이 탁 죽어요 안 죽어요? 그말 들으면 풀이 죽소 안 죽소? 풀이 죽어요.

이렇게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준비해서 그 마음이 주님이 재림하시는 데 주의 재림에 대해서 기달펴지고 고대해지고 자꾸 기달펴지고 마음이 항상 거기 사모가 거기만 가 있고, 간절도 거기만 가 있고, 일편단심 정리할 것 정리하고 일편단심 주님 맞이할 준비만 하고 있으니까 땅위에 제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발붙일 곳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든 곳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미련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러니까 세상에서는 배척이겠소 환영이겠소? 세상살이가 괴롭겠습니까 세상살이가 이제 아주 재미가 진진하겠습니까? 어때요? 재미가 진진해요? 괴로와요. 이것입니다. 요 중요한 말씀이오.

이 말씀은 내가 오늘 처음으로 증거했는데, 오늘 아침에 내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자꾸 이라는데 이 조그매씩 자꾸 거리낄 거,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라면 거리낀 걸 회개해야 돼. 회개를 하나씩 둘씩 하니 회개를 하면, 회개를 하면은 세상에 쫙 펴 놨던 것이 차차 차차 거둬집니다. 한 집안에서 살아도 사는 목적이 다르고 소망이 다르고 방편이 다르니까, 안 믿는 가정에서 처음으로 어느 가족이 하나 믿으면 안 믿는 가족이 뭐 죽자 살자 하고서 반대를 하는 것입니다, 재미가 없으니까. 다 이제 다 믿고 나면은 이제 그 가정은 사회에서 싫어하지요, 하늘나라 소망만 바라보니까.

이래서 그 많은 거 다 해석할 수 없고 오늘 오전에는 요것만 기억합시다. 거룩한 행실은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함으로 예수님을 맞이할 때에 거리끼는 거, 예수님 맞이하는 데에 거리끼는 것을 다 정리하는 생활이 거룩한 행실입니다.

알겠습니까? 자꾸 ‘요거는 옳다 틀렸다, 요거는 아니다, 요거는 주님 오실 때에 거리낄 거다, 요거는 죄다 의다, 요거는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다.’ 거룩한 행실은 주님에게 거리끼는 것을 다 정리하는 생활을 가리켜서 거룩한 행실이라 했고, 경건은 주님만을 위하고 섬기는, 주님만을 좋아하고 주님만을 위하고 섬기는, 주님만을 위하는 그것을 경건이라 요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에게 거리끼는 것 정리하고 주님 좋아하는 것만 다 준비하고 이래 놓으니까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주님 오시는 것이 기달펴지겠소 안 기달펴지겠소? 기달펴집니다. 주님 오시는 것이 기달펴지는 사람은 세상에 낯붙일 것이 있소 없소? 세상이 쓸쓸합니까 빈들판같이 됩니까? 빈들판같이 됩니다.

이러니까 무엇을 웃으면 그 웃고 좋아하고 이 쌓아도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하늘나라 준비를 위해서 그렇지 땅에 붙어서 살기 위해서 준비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의 구름타고 재림하시는 것은 곧 시급합니다. 가까왔는데 우리가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 이 불심판에서 멸망받지 아니하고 남아 있는 것만 영생이 됩니다. 다 타는 것은 다 멸망입니다.

이러니까 그 준비는 뭘 가지고 하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 가지고 준비하요.

거룩한 행실과 경건 가지고 준비하는데 거룩한 행실과 경건 가지고 준비하면 차차 차차 땅에 기달피는 것이 차차 줄어지고 주님에게 대해서 기달피는 것이 차차 많아지고 또 땅에 사모하는 것이 줄어지고 주님 사모하는 것이 많아지고 자꾸 주님에게로 기울어집니다.

이 세상으로 기울어지고 주님에 대한 것은 이거 빈껍데기이기 때문에 주님만 뻐뜩 들려 올라가고, 저울질하는 저울 요래 놨는데, 가운데 요래 놨는데 이거는 비었고 이 세상은 달아 놓으니 세상은 묵직해서 세상이 뽈끈 눌렀고 이거는 빈껍데기라. 주님에게 대한 것은 소망은 빈껍데기라.

이랬는데 차차 차차 거룩한 행실로 조금조금 준비하니까 주님에게 대한 소망이 무거워지니까 차차 차차 내려오고 이거는 자꾸자꾸 올라갑니다. 내려오고 올라가 가지고 요래 반듯이 됐습니다. 반듯이 됐으면은 주님에게 대한 소망하는 것이나 땅에 소망하는 것이나 아롱아롱 둘이 같습니다. 주님 사모하는 거나 땅에 사모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이라다가 기도 안 하고 성경 안 보고 회개에 힘 안 쓰고 주를 위해서 경건에 힘 안 쓰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주머니는 차차 가벼워져서 올라가고 땅의 것은 자꾸 내려옵니다. 세상에 속한 건 내려옵니다. 이라다가 주님 구름타고 오시면 아무것도 없지.

차차 차차 이라니까 주님 바라보고 사모하고 기달피는 것은 차차 무거워지고 세상이 가벼워집니다, 세상이 가벼워져. 이래 가지고서 이 준비가 돼져 갈수록이 자기 세상이 적어집니까 많아집니까? 적어집니다. 자기가 자기 세상 재미가 적어집니까 많아집니까? 적어집니다. 자기를 협조하고 자기를 환영하고 자기를 돕는 자기편 세상이 많아집니까 적어집니까? 적어집니다. 주님과 주님편 것이 자꾸 많아지고 소망돼지고 기울어집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필연적으로 주님 재림 외에는 기다릴 게 없습니다. 주님 재림 안 하면 박살납니다. 알겠습니까? 주님 재림 없으면 박살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일이 다 헛일된다면 예수 진실히 믿던 사람 박살 안 납니까?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는 일이 헛일이라 해 보이소. 뭐 기절해 죽을 것이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는 일이 자꾸 성공이 돼져야 더 견고해져야 좋아지지. 예수 믿는 거 반대하고 세상에 소망 가진 사람들은 세상이 튼튼해져야 좋아지지. 이러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말하는 것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듣기 좋아해요 싫어해요? 싫어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싫어해요.

그러니까, 그날에 불타지 아니하고 남아 있는 것이 영생되는 것이니 불타지 아니하고 남을 수 있는 것은 무엇 가지고 준비하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 둘 가지고 준비합니다.

이 준비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그 시금석은 뭐인가? 그 시험하는 표시는 뭐인가? 표시는, 이 두 가지로 준비해서 이 준비가 바로 됐나 안 됐나 하는 것은 몇 가지로 표시가 됩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로 표시가 됩니까? 두 가지로 표시 됩니다. 두 가지로 표시돼. 요것이 어느 정도인지? 그러면 이 준비가 다 거게 기울였기 때문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반가울 것이고 온 우주가 불타면, 불타면 두려우면서도, 두려워 못 견디면서도 속에서 기쁘고, 기쁘고 두렵고 기쁘고 두렵고 기쁘고 두렵고, 이래도 두려워도 기쁨이 크기 때문에 문제 없이 가슴이 도근거려지면서도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만일 그렇게 겁날 때라도 주님의 재림이 안 온다 하면 좋겠소 와야 좋겠소? 자, 그럴 때라도 주님의 재림이 와야 좋겠소 안 와야 좋겠소? 와야 좋습니까 안 와야 좋습니까? 와야 좋소. 두려워 떨려도 와야 좋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자의 주님이십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업보다도 중요한 문제고, 학교 공부보다도 중요한 문제고, 결혼보다도 중요한 문제고, 부부 애착보다도 중요한 문제고, 가정 건축보다도 중요한 문제고, 자기 육의 생명보다도 중요한 문제고, 출세보다도 중요한 문제고, 모든 것보다 중요한 문제 제일 큰 문제가 죽느냐 사느냐 이게 제일 큰 문제 아닙니까? 이 예수님의 재림은 영원히 멸망이냐 구원이냐 하는 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거보다 더 큰 문제 없습니다. 크고 작은 것을 우리가 똑똑히 구별하고 살아야 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무리 싫어해도 재림은 옵니다.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릅니다. 뭐 천하 인간이 다 준비 못 해도 주님은 그대로 정한 대로 오십니다. 어누리하지 마십시오. 속지 마십시오. 재림은 변동 없습니다.

 

<기도> 이렇게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것은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리가 모르나 날도 시도 정해져 있는데 저희들은 이 일을 등한히 여기고 노아 때와 같이 항상 강퍅해서 땅의 것만 보고 멸망할 것을 생각지 않는 저희들에게 오늘도 경고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남녀노소의 성도들은 한 사람도 빠짐이 없이 주님의 피공로의 은혜와 성령님의 감화 감동과 진리가 역사하셔서 이 말씀을 삼가 조심 있게 듣고 이제부터는 땅위에 어떤 일보다도 주님 만날 준비하는 이것을 제일 급하고 큰 일인 것을 알고 전심 전력 기울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심 전력 기울여서 주님 앞에 거리끼는 거 회개하는 것과 주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것을 마련하는 이 두 가지에 전력을 기울이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이렇게 많은 형제들을 불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오늘 처음으로 나온 형제들 주님의 것이오니 주님의 장중에 잡으시고 품 안에 안으시고 항상 동행하시고 거느려 주셔서 인정 없고 악하고 사나운 거짓된 세상을 지내갈지라도 하나도 상하지 안하도록 주님이 지켜 보호해 주시고 범사에 주님에게 묻고 기도할 때에 다 인도하시고 도와 주셔서 주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평강 가운데 구원을 잘 이루고 주님 앞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주님의 사랑의 심정을 점점 불 일으켜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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