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행실과 경건함-방편,목적


선지자선교회 1983년 6월 12일 주전

 

본문 : 벧후3:6-14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오늘 공과를 가르치는 것을 제가 듣고 아무래도 한번 더 증거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필요성을 느껴서 갑자기 오늘 공과로 가르친 그 공과를 다시 한번  증거하려고 합니다.

 공과를 한번 읽습니다.

 본문, 베드로후서 3장 6절로 l4절.

 제목은, '세상은 어떻게 살고 갈까?' '세상을' 하면은 세상만이고 '세상은'  하는 것은 세상 외에 우리가 또 살아야 할 세계가 많이 있는 것을 가르치는  뜻입니다.

 요절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베드로후서 3장 l3절.

 서론, '시발인 세상은 짧기는 하지만 영원을 좌우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인생 영원에 가장 중요한 토막, 움싹 같은 세상이다.' 움싹은 종자의  움싹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 우리 사람들은 누구나 다 전무식이다. 목적을  가지시고 세상을 지으신 주님만이 알고 계신다.'  첫째 세상은 무엇인가? 베드로후서 3장 6절로 7절.

 거게 첫째, '세상은 불사를 것이라 하셨고' 사람들은 다 세상에 대해서  전무식이라 말은 목사나 장로나 불신자나 이 세상에 대해서 다 전혀 모른다는  말입니다. 목적을 가지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주님만이 이 세상이 무엇이라 하는  것을 바로 알고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아시는 그대로 우리에게 문서계시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분이  가르치시는 요대로 알면 바로 아는 것이 됩니다.

 세상에 대해서 '첫째는 세상은 불사를 것이라 하셨고,'  둘째로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마음대로 사용 하여 경건과  불경건, 구원과 멸망을 연습하고 만드는 세상이라 하셨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멸망을 일생 동안 거듭 거듭 연습하고 불경 건을  연습해서 멸망과 불경건에 숙달되고 또 그런 것들을 조성하고, 어떤 사람은 힘이  들어도 경건을 연습하고 구원을 연습하는 그 일을 일생 동안 하나님이 주시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사용해서 이 연습과 조성을 합니다.

 셋째, '세상을 거주지로' 세상을 자기가 항상 살 거주지로 '모으고' 무엇이든지  주 모으고, 또 어떤 자는 '헤치고' 마음껏 사용하는 것으로만 알고 뜻없이 사는  것은 악마에게 눈이 가려 비참한 소경 놀음이다. 경건과 구원이 자기 중심에  불붙지 않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불경 건과 멸망으로 병은 짙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둘째 대지, '두 번 없는 성공적 세상 생활은 무엇인가?' 우리는 세상 생활은 두  번 못 합니다. 단번으로 다 지나가 버립니다.

 성공적으로 세상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인가? 베드로후서 3장 10절로  ll절에 '천태만상의 체질은 불에 타 원소로 돌아가고 억만의 언행심사들은'  사람의 언행심사들은 '그 비밀과 정체가 벌거벗은 것 같이 조물주와 피조물 앞에  드러날 이 무시무시할 그때를 분망에게 흘키지 말고' 분주하고 바쁜 그런 데에  붙들리지 말고 '자주 자주 묵상하라고 하셨다.' 이 일을 항상 명상하고 살아야  됩니다.

 '세상의 최종의 날'  '별세의 날' 죽는 날 말이요, '예수님 재림의 날, 죽었다가 부활하는 부활의  날, 신불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는 날, 또 행한 대로 영원한 갚음을 받는  날.' 이것이 주의 날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와 전 소망을 이 날에 두고 이 날을 목적하고 마음과 뜻을 이 날에 두고  이 날의 것을 목적한 계획과 경영을 이 시간, 이 자리, 이 사건에서 마련되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고락간 뿍뿍 걸어 흠점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권면하신다. 우리의 나라는 땅에 있지 않다. 우리의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셋째 대지, '오산과 오판은 실패의 원인이다. 우리 생애의 계산은 정확하여야  한다. 언제나 우리의 결산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의 다소, 흑온 강약, 득실,  존비귀천으로 전부를 삼아서는 안 된다. 이도 중하지마는 이는 껍데기다. 오늘의  삶이 어찌 되었나 결산은 그 날의 것으로만 가치삼아 계산하여야 한다. 그날의  수입이 어찌 되었나 계산 함이 정확한 계산이다. 대주재 조물주는 가까워진다.

그분의 것을 공짜로 쓰고 있는 우리는 그분의 심판대 앞에 잠시 후면 서게 될  것이다. 멀지 않다. 잠시 잠깐 후면 그분인 주님은 만나진다. 우리는 그분과 그  날을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은 어찌 하든지 우리는 정신 똑똑히 차려 달려야  한다.'  문답.

 영원을 가진 인생의 제일 요긴한 토막은 언제인가? 답에, 세상에 있는  기간이다.

 둘째, 각인의 세상 살이는 본인이 알든지 모르든지 무엇을 하고 있 는가? 답에,  경건이냐 불경건이냐 구원이냐 멸망이냐를 이루고 있다. 셋째, 주의 날은  언제인가? 답에, 별세의 날, 예수님 재림의 날, 부활의 날, 심판의 날, 행한 대  영원한 갚음을 받는 날.

 넷째, 우리의 목적은 어디 둘까? 주의 날에. 우리의 수입은 어디 것인가 ! 주의  날의 것. 이것이 이번 공과입니다.

 11절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러면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날을 바라보고"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날, 그 날에 우리 소망이 다 집결 되어야 하고, 또 "간절히 사모하라"  우리의 모든 심신은 그 날에 나타날 그것을 생각하고 거게 다 집중되어야 한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 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증거하려는 것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요 두 단절을  해석 좀 더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해서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행실은 방편입니다. 거룩한 행실은 방편이요 또 경건은 목적 달성인 그  목적입니다. 그러면 거룩한 행실로 경건을 이루어라 하는 그 말씀입니다.

 거룩한 행실은 세상에는 사이비한 것, 사이비하다 말은 같은 것 같 은데 아닌  것, 비슷한데 아닌 그런 것을 가리켜서 사이비하다 이렇게 말합니다. 같은 것  같으나 같지 않다 하는 것,  이 세상에는 그저 사람들이 구별 못 할 만치 아주 꼭 같은 것 같은데 아닌 그런  사이비한 것들로 가득 채워 놓은 것이 세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악령을 부려서 세상을 이렇게 미혹케 하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탄과 마귀를 부리셔 가지고, 그를 부려서  사탄과 마귀는 저거 제 욕심대로 저거 소원대로 저거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서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저희들 마음 대로 이렇게 저렇게 저거 좋게 저거  위주 중심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마귀를 통치하시고 이용하시는  부리시는 하나님께서 마귀가 제 중심으로 해 놓은 것을 하나님은 그보다 지능이  무한히 탁월하시고 광대하시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의 목적인 구원에  이용하셔서 그 모든 것이 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이 이 사탄을 초월한 영감과 진리로 살면 마귀를 무한히 탁월한 고차원에  있기 때문에 마귀의 그 모든 한 일이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사람에게 결과적으로  이용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 인간 제대로 저 혼자 살게 될 때는 악령 그 발  아래 밟히게 되고 종이 되어서 악령에게 이용을 당하는 것으로서 일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룩한 행실은 이렇게 복잡하고 사이비한 것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로만 사람들은 그것에 하나 하나를 정확히 구별해서  결과적으로 옳고 참된 것을 잡도록 그래 하십니다. 많은 사이비한 것들이 가득  찬 가운데에 하나만 되는 옳고 참된 것을 딱 가려내 가지고 그것을 찾아서 잡은  자가 거게 대해서는 거룩을 이룬 것입니다.

 거룩은 수많은 지저분한 모든 잡것이 가득히 있고 거게 참된 것 하나만 있는  그것을 모든 잡된 것을 다 제거하고 옳고 참된 완전 영원의 그 하나만 되는  고것을 딱 잡아서 찾아 가졌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거룩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기에 거룩한 행실이라 말은 이 세상 살이는 심히 지저분하고 복잡하고  사이비해서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이 세상 속에서 구별하고 구별하고, 또  선택하고 선택해서 꼭 옳고 참된 고 방편, 곧 경건을 이루는 고 방편 고것을  네가 찾아 그대로 행하여 경건을 이루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룩은, 이 거룩은 그러면 어떤 그 지혜와 지식을 법칙으로 삼아  가지고 이 수많은 지저분한 것을 구별해서 하나만 되는 옳고 바른 참된 것을  찾아낼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영감 도리의 신구약 성경  특별계시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유일한 법칙입니다. 이  외에는 법칙이 없습니다. 이 법칙뿐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이 성경으로  구별해서 먼저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하신 사죄를 자기가 입은 것을 깨닫고  사죄를 입습니다.

 그러면 거룩한 행실은 자기가 공부를 하면서도, 또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정치를 하면서도, 뭐 어떤 예술이나 어떤 일을 하든지 하면서 '내가 지금 주님이  사죄를 입혀 주신 사죄를 내가 입고 있나 사죄를 벗었나?' 요것을 구별하는 것이  거룩한 행실입니다.

 내가 지금 이 시간에 밤을 새워 공부를 하는데 지금 내가 사죄를 입고  공부하나? 칭의에서 공부하나? 칭의를 입고 공부하나? 칭의를 냥가 입은 자로  공부하나? 사죄를 입은 자로 공부하나? 내가 사죄를 입고 있나 벗었나? 칭의를  입고 있나 벗었나? 내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해서 유일한 결합으로 이렇게  상호내주의 밀접을 주님이 베풀어 주셨는데 과연 내가 이 시간 주 안에서  공부하나? 주님이 내 안에 세셔 가지고서 나를 주장하고 계시나?  내가 지금 열심히 공부하는 이것은, 일하는 것은, 가정을 지금 세우고 있는  것은, 내가 이런 직장 이런 직책 본분을 행하면서 지금은 내가 사죄 입은 자로  지금 내가 하고 있나? 요러면 사죄를 벗는 것이 되나 사죄를 입고 벗지 아니한  것이 되나?  요러면 내가 칭의를 입고 있는 것이 되나? 요러면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지금  내가 공부하고 있나? 그러면 칭의를 입고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은 또 칭의를 내가 이렇게 하면 벗었나? 입었나?  또 지금 주님이 내 안에 계시나? 주님이 나를 주관하고 계시나? 내가 주님을  마음에 모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내가 하고 있나? 내 속에 공부가 주인이 돼서 내  마음 제일 귀하고 높은 성심 성의의 이 자리에 공부가 들어와 가지고서 이놈이  지금 왕으로 좌정하고 있나? 권세가 좌정하고 있나? 어떤 사람이 좌정해서 나를  주관하고 있나? 과연 내가 쭈님의 성전으로 주님이 내 안에 왕으로 계셔서 내  마음 속에 제일 높은 보좌에 주님이 계시고 주님이 나를 주관해서 그분이 내  마음이나 성품이나 뜻이나 모든 것을 지금 이 시간에 통치하고 주관 하고  계시나? 이것을 자꾸 살피는 그것이 거룩한 행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공로는 우리가 영원 자존자 주재자 주권자 창조주, 지극히  크신 분, 영원 전에 자존하신 분, 영원 전이라 말은 시작한  시간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이후부터 오늘 내일이 있었고 과거  현재가 미래가 있었지 하나님이 짓기 전에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무것도  시간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 영원 전 하나님이 자존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그분이 자존하신 후에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은 생겨졌습니다. 이러니까 모든 것은 원인이  있지마는 주님은 원인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 자존하신 분입니다.

 어떤 그 신고함에 '영원 전에 계셨다 하는데 어떻게 영원 전이 있을 수 있느냐?  그게 의문이 돼서 신앙에 회의가 생겨진다.' 하는 것을 써내서, 그럴 때는  이름을 써내십시오. 이름을 써내면 개인으로 불러 가지고 그것을 알려 줄 수  있는데 그냥 이름 없이 해 놓으니까 그걸 다른 사람 다 알고 있는 것을 뭐  광고를 하겠소 어짜겠소? 그럴 때는 반드시 자기 이름을 밝혀서 알고 싶은 것은  해 놓으면 기회가 있는 대로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영원 자존자시며 주재자신데, 지극히 크시고 높으시고 참 그분은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분이신데 이분에게 우리는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리를  가졌고 가까이 갈 수 없도록 큰 장벽이 가려 있습니다.

 그 장벽은 죄라는 장벽으로 가려 있고 또 불의라는 장벽으로 가 리워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게 죄고, 불의는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제가  자기 주장이 돼서 자주장으로 움직인 그것이 불의입니다. 그 불의가 가려 있고,  또 하나님을 배반한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이 원수가 가려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친히, 자존하신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성부요  성자요 성령이요 한 하나님이신데 이 직책을 행하실 때에는 성부의 일할 때는  성부의 위를, 성자의 일을 할 때는 성자의 위를, 또 성령의 일을 할 때는 성령의  위를, 이래서 일하신 위는 서이지마는 하나님은 한 분뿐이십니다. 이 하나님이신  한 분이 이 세 가지, 하나님과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그 사이가 원수가 되어  장벽이 막혀 있는 이것을 틔우러 오신 것이 예수님이 도성인신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 틔우신 공로 그 공로는 막힐 때에 어떻게 막혔느냐 하면 막힌 것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인정치 아니하는 것과, 또 순종치 아니하는 것과, 거역하는 것 가지고  이 장벽이 막혀졌기 때문에 이것을 틔우는 데에는 죽기까지 세포와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참되다 확신하는 이것과, 또 복종하는 이것과, 인정하고  복종하고 그에게 속 하는 이것을,  예수님께서 이 일을 못 하도록 악령들이 이 일을 못 하게 있는 힘을 다해서  방해를 해서 예수님도 인정에 털끝만치라도 의심이, 복종에 털끝만치라도  불순종이, 그만 높여 섬김에 세포 하나라도 섬김에 빠지도록 하려는 것이 악령이  역사했지마는 주님은 세포 하나도 그렇게 되지를 아니하고 순전히 하나님을  인정하는 전부로, 복종하는 전부로, 그만 높여 섬기는 그 전부로만 이  세상살이가 끝이 나 버렸습니다. 마귀가 그 항복 받으려고 하다가 예수님께서는  거게서 항복하지 안하고, 어기지 안하고, 그 선에서 탈선하지 아니하고,  변동되지 아니하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것으로 그분을 인정하고 복종하고 섬기는  것으로서 세상살이 끝이 딱 나 버렸습니다. 끝이 딱 나 버렸으니까 이제 마귀는  더 할래야 더 할 수가 없습니다.

 이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만족을 이루었고, 지성법 지공법에  만족을 이루었고, 사탄은 둘이 씨름해서 져서 패전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입니다.

 이 공로를 뭣 때문에 베푸셨는가? 이 공로는 자존자 지극히 크신 이 하나님과의  막혀 가려져 이렇게 하나님과 결합이 되지 못하게 이렇게 상호 내주의 이 통함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이것을 이 결합과 서로 상통되는 이 일을 달성을 해서,  없는 가운데에 이분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것들이 지은 이분에게로 돌아가서  이분에게 귀속되고 이분과 하나되어, 이분에게 지음받은 것이 이분을 배반하고  나갸서 사망하게 된 이것이 이제는 예수님의 공로로 이분에게로 돌아가서  이분에게 결합되고 친교되어 하나님은 인생 안에 인생은 하나님 안에 상호  내주하고 하나님이 동하면 동하고 정하면 정하고,  하나님은 원형, 말하자면 비유컨대 하나님은 근본 형상, 하나님이 원형 우리는  그 모형, 지식도 하나님은 원형적 지식 우리는 모형적 지식, 속성도 하나님은  원형의 속성 우리는 모형의 속성, 그 모든 지능도 그분과 연결됨으로 그분은  원형 지능 우리는 그에게 피동된 모형 지능, 이렇게 되는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푼 것입니다.

 그러면 경건은 어떤 것이 경건이냐? 이분을 바로 알고, 이분을 바로 믿고,  이분을 소망하고, 이분을 의지하여, 이분의 것으로 자기의 모든 것을 삼는 요  사람 요게 경건한 사람이요 요 행위가 경건한 행위입니다. 요렇게 된 일이  경건한 일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하도록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대속을 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행실은 예수님이 어떤 대속을 하셨는가 하는 것을 우 리에게 옳고 바르게 참되게  가르친 신구약 성경이요, 또 이 대속을 어떻게 입어야 되는가 하는 것을 바로  가르치는 것이 계시의 신구약 영감 도리요, 또 이 대속을 입으면 입어서 무엇을  이루는가? 자존하신 절대자이신 이분과 완전한 관계를 이루어 영원 무궁토록  그분으로 인한 완전으로 영원히 완전되는 이 일을 달성하는 데에는 성경이 그  법칙을 어떻게 가르쳤는가?  성경을 보고서 그 법칙을 알아 성경으로 예수님의 대속을 알고, 성 경으로  예수님의 대속을 어떻게 내가 힘입어야 되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어떤 걸 이루는가 알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절 대자이신 자존자이신  이분을 알고, 그분과 관계를 바로 가지고, 이렇게 되도록 하는 이 모든 것을  영감 도리인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이 가르침을 보고서 '이러냐 저러냐? 여게 대해서는 성경이 뭐라고 말하느냐  저게 대해서는 성경이 뭐라고 말하느냐? 이러면 예수님의 사죄를 지금 입고서 죄  없는 자로, 죄를 완전히 벗어서 죄 없는 자로 입혀 주신 사죄를 입고 있는  것이냐? 내가 마음을 요렇게 먹었으니 요때는 예수님의 사죄를 껍데기는 안  벗었지마는 속에 마음으로는 벗었다. 성품으로는 벗었다. 또 요때는 예수님의  사죄를 입었다. 사죄를 벗으라고 주위 환경에서 어떻게 탄압하고 몰아치지마는  이 시간 나는  사죄를 벗나 안 벗나? 안 벗었다. 이제 이러면 벗는 것이다.' 그것이  거룩입니다.

 또 내가 칭의를 '이러면 어떤 꾀조물에게 피동돼서 내가 하는 것이냐 영원  자존자이신 그분에게 피동돼서 하는, 주님이 나에게 칭의를 입혀 주신 하나님과  연결시켜 그분에게 피동되도록, 그분은 원동이요 나는 거기 피동되도록 요렇게  연결시켜 놓은 요 연결을 끊지 안하고 요 연결을 지금 계속되고 있는 것이냐?'  요것을 심사 구별하는 것이 거룩이요,  잘못됐을 때에 그것을 다시 찾아서 재연결 시켜서 바로 하는 것이 모든 것을  심사해 가지고 옳은 데 도착했다 도달했다 하는 그것이 거룩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룩을 이루는 것이요, 거룩을 이룬 것이요, 거룩이 됐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절대자이신 자존자와 자기와의 관계가 바로 맺어지는 이 경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편이 거룩이요 그 거룩으로 이루어진 경건은, 경건은,  피조물 어떤 것이 큰 게 아니라 영원 자존자 그분이, 제일 크신 그분이, 제일  크신 그분이 나에게 제일 크신 분으로 내가 믿고 인정하고 바라보고, 그분을  모시고, 그분이 나를 주장하시고, 내가 그분 중심으로 그분에게 피동티어 모든  것이 그분이 원인이 되고 나는 거게 결과가 되어서, 모든 지혜도 그분이  원인되어 그분 지혜를 내가 얻고, 그분 능력을 얻고,  마치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둥치에서 진액도 얻었고, 가지도 얻었고,  잎사귀도 얻었고, 꽃도 얻었고, 열매도 얻었고, 거게서 얻지 안한 것은 해충이나  다른 모든 독소들이지 하나도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 한 분에게 내가 사이에 성글어져 있는 것, 갈라져 잇는  것, 떨어져 있는 것 요것을 이 거룩으로 인해서 찾아 가지고 요렇게 가까이  맞추고, 결합을 하고, 결합하고 난 다음에는 그분의 것이 나에게 와 가지고서  나를 통해서 발산되어지고 발휘되어지고 하도록, 내가 그분을 찾아가는 것이  경건을 지금 이루고 있는 것이요 그분으로 말미암아 내게 움직여지는 것이  경건의 행동을 하는 것이라. 요것이 경건이니 거룩한 생실로 경건을 이루는 그  일을 네가 해라. 왜? 그 날에는, 그 날에는, 죽을 때도 모든 것 다 허사요 경건  이것만 남는다. 부활할 때도 경건 이것만 가지고 부활한다. 또 예수님의 재림  때도 경건 이것만 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도 경건 이것만 남는다.

무궁세계도 경건이 어떻게 됐든지 경건에 대한 대우를 그때에 받는다. 경건에  대한 보상을 그때 받는다.

 이러기 때문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모든 것이 이렇게 많지 마는  경건만이 가치로 삼고, 경건만이 존속하고, 경건만이 대우하고, 경건만이 영원히  일할 수 있는 것, 무궁세계는 주님 한 분으로 인해서 동하여 움직이는 것만 있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때는 주인이 둘이 없습니다. 그때는 원동기가 둘이  없소. 원동이 하나뿐입니다. 주님 한 분이 움직이고 그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움직이는 하늘과 땅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 통일된다는 이것이 이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있으니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이 세상을, 이것 만드려고  하는 이 세상을 이것은 관심도 없이 어리석게 도적 모양으로 마구 욕심부려  끌어당기면 내것이라. 네까짓 게 암만 끌어당겨도 오늘도 부르면 손 쭉 펴고  내놓고 가야 된다. 어리석은 자야. 이런데 많이 취하고 많이 쓰고 또 이 세상에  강하고 약하고 하는 그 모든 것으로만 평가를 해서 그 성공이면 성공이다 그  수입이면 수입이라 하면 그것은 소경 놀음이다. 비참한 자다.

 세상이야 남한테, 십자가에 못박혀 주님은 죽으셨지마는 그 날에 그것이  성공이다. 이러기 때문에 그 날을, 그 날에 있을 그 영원한 것을 네가 깨닫고  그것만이 가치로 삼아 가지고 그것을 오늘에 이루어라. 오늘 하루 생활도 계산할  때에 오늘 뭐 돈이 인간이 권세가 일이 형통 뭐 불통 그게 아니라 너는 어두움에  속한 자와 같지 않기 때문에 오늘 계산을 '보자, 내가 세상 떠날 때에 어찌  되겠나? 요거는 후회 없다. 떠날 때에 보면 유익하다. 심판 앞에 가면 유익하다.

무궁세계에 보응받을 때 유익하다.' 유익하다. 그게 뭐인데? 경건. 경건.

 '오늘은 주님에게 이만치 가까이 가는 역사가 됐다. 이만치 실나끈 만치 더  들어붙었다. 오늘은 주님으로 인하여 발산되는 것이 나로 통 하여 만물에게  충만케 발산이 됐다. 오늘 내가 주로 향하여 주님에게  가서 이제 귀속이 됐고, 그 운동이 됐고, 또 주님으로 인한 모든 것을 만물에게  이렇게 발휘하고 발산해서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이것이 욋으니 오늘은 경건을  만들었고 경건 생활을 랬다.' 이것만이 네 수 입이기 때문에 이것을 네 수입으로  삼아라.

 공부하면서 '이 시간 내가 과연 내 목표인 영원 자존자이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 이분을 내가 중심으로 하는 것이냐? 이분을 가까이 가서 이분을 만나지고  이분과 가까와지고 이분과 관계를 맺는 데는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안 되니까  내가 이 시간 공부하는 데는 사죄를 입고 하나 벗고 하나? 공부가 우상이 됐나  주를 위해서 공부를 하나? 내가 이 공부하는 것이 의가 돼서 당신이 하라 하는  공부를 하나 하지 말라는 공부를 하나?'  계를 모아 가지고서 남의 눈에 피를 흘리게 해서 돈을 모아 가지고 돈을 사기  협잡을 해 가지고 자녀 공부하는 그게 믿음으로 하는 건 니까? 그것이 의로 한  것 아닙니다.

 제가 아는 사람 어떤 사람 하나, 그래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망치고 그 돈을  가지고서 자녀들은 다 대학을 시켰습니다. 그랬는데 그 결과가 어찌 됐는가 한번  조사를 해 볼라 했는데 내가 그 뒤에 소문을 못 듣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내가 공부하는 이것이 공부하면서 혹은, 그 모든 것을 바로 알게  하는 유일한 법칙이 있는데 혹은 하나님의 법칙으로 살필 때에 불의가 되지  않느냐? 내가 이 공부하는 게 의냐? 이 공부하는 것이 죄를 벗는 일이냐 죄를  입는 일이냐? 이것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이 맺어진 친교를 가지고 사는 것이냐  벗고 사는 것이냐? 내가 이 공 부하는 중심이 무엇이냐? 내가 바라보기를 뭘  바라보느냐?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걸 바라보느냐?'  '당신이 안 주시면 내가 머리가 빠지게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또 당신이  주시지 않는 총명은 나는 싫습니다. 지혜도 싫습니다. 지식도 싫습니다. 당신이  주지 안한 성공도 싫습니다. 당신이 주는 것이면 뭣이든지 유익한 줄 알기  빼문에 당신 주시는 것만 하겠습니다.'  '내가 이렇게 믿음을 가졌나? 이로 인해서 주님을 섭섭하게 하느냐 ? 주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이로 인하여서 내가 예수님의 공로를 더 입는 것이 되느냐?  입는데 도움이 되느냐?'  이렇게, 자기가 공부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법칙으로 삼아서 '예수님의 공로를  입었느냐 벗었느냐? 그러면 예수님의 공로만 입으면 뭐 할 것이냐? 예수님의  공로를 입고 자존자 지존자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이날 밤 공부를 함으로써 이제 내 아버지와 가까와졌느냐?  아버지를 더 사모하느냐? 이것으로 인해 아버지 사모를 잊어버렸느냐?'  이로 인해서 모든 세상 과학을 배우니까 '아버지 솜씨 큽니다 이것도 다  아버지가 만들었습니다.' 아마 어떤 뭐 과학자가 우리 머리 속에 컴퓨터를 천억,  천억이나 되는 컴퓨터가 우리 한 사람 머리 속에 들 었답니다. 그걸 발견했을 때  아마 그랬을 것이오.' 참, 아버지 솜씨 능 하십니다. 이렇게 능하신 분이 모를  것이 뭐 있겠느냐?'  이래서 모든 공부하는 데서 하나님의 지존하심과 크심과 그의 능 하심과 그의  지혜와 전능과 능력을 자기가 발견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발견하고, 점점, 이  세상에 모든 세상 지식은 마귀를 시켜 하는 것이 지마는'요리 가면 어디로 간다.

조리 가면 뭐로 간다. 요리 가면 뭣이 죽는다. 빠진다.' 이것을 그 현상대로  바로 가르쳐 놓은 것이니 그것을 할 때마다 '요것도 아버지의 것이다. 요것도  아버지가 벌써 시켜서 요런 것을 요떻게 만들어 놓으시고 때가 되니까 요렇게  사람들에게 알려 주시는구나.' 하는,  그 하나를 더 앎으로 접촉을 함으로 발견함으로 주의 능력을, 또 주의 지혜를,  주님의 목적을, 이러면 '이분이 뭐하려고 만들었나? 성경 보자.' 성경 보고 이래  가지고 세상을 하나씩 둘씩 더 봄으로 그것을 지으신 그분을 더 알고, 세상 하나  둘의 그 위대한 것을 봄으로 그분의 위대한 것을 더 발견하고 더 믿고 의지하는  요 일이 자꾸 이루어 가면 그 사람은 그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 받는 선물이  되겠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그거, 불한당은, 불한당은 제가 안 한 걸 제가 했다 하는  것이니까 이래 가지고 이러니까 하나 앎으로써 '위대하다. 이렇게 과학자들이  이렇게 심오한 것을 발견을 했으니 과학자가 위 대하다.' 거게서 '과학자가  위대하다. 과학 만능이다. 과학 만능이다. 과학자가 위대하다.' 과학을  공부하면서 과학이 위대하다 하는 것만 제가 알고,  '그 과학을 만드신 아버지는 참 위대하다. 이 과학을 발명한 인간을 만들고  인간의 대가리에 컴퓨터,' 뭐 칠천억이라던가? 칠천억인가 뭐 그것 언제 신문에  났더랍니다. 나도 그것 한번 보기는 봤어요. 이렇게 만드신 아버지를, 하나 만든  걸 봐서 아버지를 알게 되고, 하나 만든 것 봐서 당신이 이런 목적으로 이런 걸  만들었으니까 그분을 두려워 하고, 하나 발견할 때 그분의 세밀을 알게 되고,  이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능력과, 세밀과, 목적과,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진노를 깨달아서 그 모든 세상 전체가 자기에게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보여 주는 것으로 세상을 배우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로마인서 l장에는 "하나님의 본성은 아무도 보지 못했지마는 지으신 만물을  보아서 그를 알지니라" 이렇게 말씀해 놨습니다.

 이런데 이 등신 같은 게 이 지으신 것을, 지은 걸 보고서 '이래 크다. 이렇게  큰 보니까 하나님은 그까짓 거 아무것도 없다.' 이것을 보고서 이렇다 저렇다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사람 보니까 '이 사람이 크지 하나님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래 하는 그것이 마귀에게 홀켜서 음행의 포도주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에 천하에 있는 모든 인간을 다 주님이 지으셨다. 주님이 생명  호흡을 주관하고 계신다. 주님이 먹이고 입히시고 계신다. 주님이 그에게 대한  모든 개별까지 섭리하시고 주권하고 계신다. 요 시간이라도 오라 하면 딱  끊어져야 한다.'  이것을 알고 모든 데에서 그분을 발견하고, 더 인정하고, 더 알고, 더 높이고  더 믿고, 더 섬기고, 더 두려워하고 이러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룩한 행실, 하나님이 옳고 바른 지식을 줬기 때문에 이 지식을  법칙으로 삼아서 네 모든 움직임, 네 마음의 움직임, 네 모든 이성의 움직임, 네  감정의 움직임, 네 속성의 움직임, 네 혀의, 귀의, 눈의 움직임 네 수족의  움직임, 모든 움직임에서 네가 이 자존하신 이분을 발견해서 거게서 이분을 네가  깨닫고, 이분을 찾고, 이분을 알고 그렇게 해라.

 이 법칙을 법칙삼아 가지고 모든 움직임에서 거게서 너 움직이는 이목구비 수족  전체의 움직임은 천태만상의 모든 피조물을 접촉하는데 그 접촉하는 데에서 너  할 일이 뭐꼬? 접촉하는 데에서 그것 따라가는 게 너 할 일이가? 거기  삼켜지는게 너 할 일이가? 그것을 네 주로 삼는 것이 너 할 일이가?  그 모든 움직임에서 네가 하나님의 법칙을 가지고서 구별해서 네 모든  움직임에서 네가 경건이냐 불경건이냐, 멸망이냐 구원이냐, 예수님의 대속을  입었느냐 벗었느냐, 또 예수님의 대속을 힘입어서 어데를 향해 가느냐, 이제  절대자이신 그분과 가까지느냐 멀어지느냐? 네 언행심사의 모든 전 생활을  하나님의 법칙을 가지고서 심사를 해라.

 심사를 해서 지존자이신, 주님에게 가까이 가는 역사,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서  이제 발생되는 모든 행동, 이것이 되나 안 되나 그것을 심사하는 것이 거룩이다.

 이 거룩을 네가 가지고 경건을 이루어라. 경건이 뭐인데? 완전하신 자존자이신  그분에게로 내가 돌아가는 것. 예수님의 공로 아니면 안 돼요. 그분에게 가서  그분과 딱 들어붙는 것. 이 운동. 또 들어붙으면 뭐하려고? 들어붙고 난  다음에는 그분의 모든 것을 네가 가지고 만 물에게 충만케 하는 것.

 이것이 경건 행동이요 전자가 경건을 만드는 것이이까 이렇게 경건 만들고 경건  행동하는 것은 유일하신 하나님의 지식인 이 법칙을 가지고 자꾸 구별해라.

'보자' 발명가가 요래도 안 되고 요래도 안 되고 요래도 안 되고 요래도 안  되고, 모든 것을 다 해도 안 되고 되는 게 하나 있는 그것을 발명하는 것이  발명가입니다.

 이와같이 네가 모든 언행심사의 움직인 그 움직임은 그 움직임에서 돈 수입이  네 목적도 아니요, 지위 권세 수입이 네 목적도 아니요, 호의 호식이 네 목적이  아니요, 네 욕심을 달성하는 것이, 네 모든 정욕을 달성하는 것이 그것도 성공도  아니라. 그 모든 움직임에서 거룩을 사 용하여 경건을 이루라. 또,이뤘느냐?  이룬 경건 가지고 경건의 행동을 해라. 이렇게 해 가지고 이것으로써 하루 하루  생활 해라.

 왜? 모든 것은 그 날에, 그 날에 결론이 있다. 그 날에 결실이 있다. 그 날  결과 그 날 결실이 결실이지 땅위에 이런 모든 것은, 네가 복 잡하든지  수월하든지, 높으든지 낮든지 그 모든 것은 거게서 네가 마 구잡이로 삼키면  죽기 때문에 그 모든 데에서 거룩을 가지도록 하나님이 너를 뒀다. 요것은 먹을  것 요것은 안 먹을 것, 요거는 됐다 안 됐다, 요거는 손해다 요거는 유익이다,  요렇게 해서 경건을 만들고 경건을 이루었으면 경건의 행동을 하고 하는  이것만이 너 할 일이다 왜? 네가 죽는 날, 예수님의 재림의 날, 인간이 부활하는  날, 심판의 날, 무궁을 보응 받는 날, 이제 이 모든 것이 종결을 맺어서 영원  무궁을 향하는 그 날에는 경건만이 남아 있다. 경건 외에는 하나도 없다.

 경건을 이룬 그 모든 행동은 옷으로 입고 있고, 경건은 네, 자체가 되어 있고,  경건의 능력은 무궁세계에 한 분인 그분의 전부가 네것 되어서 그분으로 인하여  모든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네 자체가 되어 진다. 이러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

 그런고로 여러분들, 우리는 경건을 연습하는 이것이 제일 가치 있지 세상에는  뭐 거짓말 하는 연습, 돈벌이 하는 연습, 계집아 머스마 친하는 연습, 남녀 이성  연습, 사기 협잡 연습, 또 세상에 권세 잡는 연습, 그까짓 놈의 연습이야 암만  하고 죽도록 해 봤자, 또 뭐 이런 것 저런 것 세상에 하지마는 그것도 유익은  있지마는 어떤 연습은 늙으면 소용 없는 것, 어떤 연습은 그 직장 끊어지면 소용  없는 것, 아무 연습이라도 그만 죽으면 소용 없습니다. 그러나 경건 연습은 죽지  않습니다. 경건 연습은 늙지 않습니다. "경건 연습은 금생과 내세에 약속이  있느니라" 다 복 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지혜롭게 삽시다. 참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으면서 인간이 살  인간 길이나, 세상도, 만물도, 인생도, 자기도, 자기 길도, 자기 성공도, 어떻게  갈 길도 인생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아무도 모릅니다. 깜깜한 먹장 같은 아무도  모릅니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을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신 조물주 주재자이신 이 한 분만이 아시는데 이 한 분이 아시는 것을  우리를 사랑하셔서 신구약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분만이 아는 그분의 지식만 우리가 받아야지 그외에 다른 지식은 다 속이고  속는 것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하기 전에는 이 자연 만물을 가지고서 깨달을 수 있도록  자연계시를 주었으나 타락한 이후에 자연계시로써는 안 돼서 할 수 없어  예수님의 피공로를 인해서 다시 문서계시 영감계시가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모든 전생활에서 전생활은 우리는 그저 일하면 일하는 것만  뿍뿍 하고, 또 장사하면 장사만 뿍뿍 하면 외식하는 자, 껍데기 외식하는 자,  그거 껍데기요. 짐승화됐소. 그건 껍데기입니다. 장사를 하든지, 농사를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그 자리는 우리의 귀한 농장입니다. 무슨 농장? 경건을 길러내는  농장이오. 경건을 연습하는 농장이요 경건을 숙달시키는 농장이요, 구원을  연습하는 농장이요 구원을 숙달시키는 농장입니다.

 거게서 이제는 경건 생활합니다. 경건을 써먹습니다. 경건의 발휘를 합니다.

그러면 그 경건으로 말미암아 만물들이 그 경건에서 홀러나 오는 것은 만물이  받으면 좋아서 다 행복과 충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모든 생활에서 네가 거룩을 잊어버리면 숨이  끊어진 자요, 죽은 자요, 눈이 먼 자요, 죽은 송장이라. 거룩 없으면 거룩  없으면 저는 뭐 어떤 회사가 커지고 어떤 권세가 올라가도 저는 죽은  송장입니다. 거룩이 없으면 한 시간 살았으면 그만치 썩었소. 일 년 살았으면  그만치 썩었소.

 거게서 이 생활 속에, 손으로 밥하는 이 밥하는 생활 속에 그 속에 거룩이 있어  가지고서 이 거룩으로 그 속에서 경건을 찾아냅니다. 거게서 밥하면서 경건을  찾아냅니다. 밥하면서 경견을 연습합니다. 밥 하면서 경건을 마련합니다.

밥하면서 경건이 조성됩니다. 밥하면서 경건을 발산시켜서 경건의 일을, 밥하는  밥을 통해서 모든 식구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 경건의 은총을 줍니다. 이것이  우리 생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외식하지 말고 알맹이 있는 생활 합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아무나따나 구원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다. 진리에 준해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인간으로는 할 수 없지만 성신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자기가 마음과 성품과 뜻  정성을 다 기울이면 무식해도 다 알 수 있고 다 이룰 수 있습니다.

 아무리 유식한 선천 후천의 재료를 많이 가졌어도 교만한 자는 이 말씀이  가루어지기 때문에 저는 못 듣습니다. 안다고 외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제  복음은 안 되고, 남의 복음은 될지라도 제 복음은 안 됩니다. 제 구원은 못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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