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

 

1981. 6. 14. 주일오후

 

본문:마태복음 7 : 21 - 2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이런 성구는 해석이 공통되어 있지 않고 또 성구 중에 난해절로 그렇게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온갖 이적과 기사와 복음의 일을 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이 말씀이 성경 말씀이요. 가감도 병동도 못할 말씀인데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흠없이 행한 사람이 있겠느냐?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전 성경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종합적으로 연결을 해서 우리가  언제든지 성경 깨달음을 가져야만 하겠습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들어가지 자기의 공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경이 얼마든지 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게는 자기의 행함을 인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고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또 여게 말씀해 놨습니다. 그러면 구원은 자기의 행함으로 말미암지 않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나라를 들어간다 하는 이 성구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이 성구가  서로 배치가 됩니다. 그것은 성경에 보면 그 사람이 행한 공적이 하나님이 시험  할 때에 다 불타서 행해 놓은 공적이 하나도 안 남아도 그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구원이 불 가운데서 얻은 거와 같이 불안하고 수치스러운 구원이 되고  자기의 공적이 시험할 때에 불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으면 큰 상을 얻게 된다  그렇게 또 말씀하신 성구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연결시켜보면 확실히 판정이  납니다. 구원은 전적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구원이 있고  또 자기의 행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구원이 있구나!  행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원은 하나도 없다 할지라도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 구원은 그 사람의 행위에 악한 걸 가지고 깰 수가 없고  구원이 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것이 판정이 되고 또 그 사람이 구원을 얻었지마는  행함이 없으면 불 가운데에 구원 얻는 거와 같이 그렇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그런 구원을 얻게 된다 하는 걸 봐서 행함이 없어도 하늘나라는 갈 수가 있구나!  그러니까 행함으로 이루는 구원과 예수님이 공로로만 얻는 이 구원이 있구나! 또  히브리서 6장에 보면 구원에 대해서 터가 있고 그 위에 건축이 있다. 또  고린도전서 3장에도 보면 구원에 터가 있고 구원에 건축이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에 들어간다" 했으니 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근거하지 않고 자기의 행위를 근거한다는 것이 여게  확실히 표명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가 아니고 자기의 행함을 인해서 이루어지는  구원이니까 이 구원은 기본구원이 아니고 건설구원이로구나 하는 것을 우리  여기서 판명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 성경의 영은 단번에 영생하는 생명으로  중생되어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어서 아바 아바 부르는 양자의 영이  되었지마는 양자의 영을 받은 자도 그 몸에 구속은 아직까지 양자가 되지 못해서  그 양자된 영들이 아직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몸의 구속을 인해서  탄식하면서 기다린다고 또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영은 하나님의 대속의 의를 입어 가지고 다 영생으로  살났지마는 이 육이라는 이 심신 육은 죄로 인해서 아직까지 사망 아래 있다 또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성령과 물로 중생된 것은 영이요 육이 아니라고 또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면 우리는 성경에 구원을 둘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확고히 잡아야  됩니다. 어쩌든지 성경을 가지고 상고하고 대조해서 따지고 따져서 자기가  얼마를 성경을 가지고 따졌든지 또 영감으로 따졌든지 구별해서 이 세상에서  자기가 판정하고 준비한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가서도 하나도 정죄받지 않고  그대로 일으로 통과할 수 있는 이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이요.

세상에는 된 줄로 알고 누구보다도 구원은 영광스럽게 잘 이루어진 줄로  알았는데 가보니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지은 것 모양으로 다 불타버리고 모래에  지은 것과 같이 다 떠내려 가버리고 헛일이 됐으면 그것이 다 허사가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예수님의 공로로만 인간 하나도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구원이  있고 또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이 기본구원을 힘입어서 꼭 하나님의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지마는 인간이 생각할 때에는 인간 자기 단독이 이룬 거와 같이  그렇게 여겨질만침 자기의 노력을 통해 가지고 구원이 이루어지는 구원이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구별해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 구원은 우리의 주격인 영이 구원얻는 것이고  구원얻은 영과 하나님이신 성령과 진리가 합해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성화시키고  또 우리의 몸의 기능을 변동시켜서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 변화시키고  변동시켜서 우리의 마음과 몸의 기능과 이 행위가 변화되는 이것이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을 또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마태복음 25장 열처녀 비유에 그때에 신랑을 맞이 못한 그 구원도  건설구원이요. 또 여게 반석 위에 지은 집이 아니고 모래 위에 지어서 다 파괴를  당하는 손해를 보는 이 구원도 건설구원이라는 것을 우리가 판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 기독자들이 이루는 것은 무엇을 할라고 하고 있는가? 구원을  이루려고 우리들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을 이룰려고 하면 우리가  지옥갈터인데 지옥가지 않고 천국을 갈라고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천국은  얻어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함으로 천국을 간다고 만일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제대로는 회개를 했다고 하지마는 성경이 와서 밝히 비추어 주면은 회개  한것보다도 앞으로 회개 못한 것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왜 그가 나이가 많아져 갈수록 점점 죄인이 더 되어져서 마지막에는 괴수  죄인이라 자기는 참 만삭되지 못해서 난 무능자라 한 것을 깨달았느냐 하면 그가  처음 믿을 때부터 죄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죄는 많이 회개를 했지마는  그이 눈이 밝아지니까 보이지는 것이 많아서 자기가 말을 한 것입니다.

그 눈이 어두어 가지고 자기의 그 죄악이 보이지지 않는 사람은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도 없다 나는 부자라 부족함이 없는 자라 이렇게 했지마는 성령이  그를 보고는 말하기를 네가 눈먼자요 가난한 자요 벌거벗은 자요 가련한 자라  이렇게 평가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있다. 영의 구원과 육의 구원이 있다.

육의 구원은 육이 부활하는 것은 기본구원으로 택한 자면 다 부활은 하지마는  부활할 때에 부활의 권능은 각각 다르다. 이래서 바울이 어쩌든지 그리스도의  고난에 자기도 동참해 가지고 그리스도의 그 부활의 권능에 자기도 참예하는  자가 될라고 애를 쓰다고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넷째로 우리 구원은 어떤 구원인가? 우리 구원은 영에 있어서는 영에  있어서는 영의 권위가 점점 튼튼해지는 것이 영의 구원입니다. 영은 중생됐고  그는 흠없는 온전한 자가 되어졌지마는 영의 영광은 어데 있느냐? 영이 영광은  어데 있는냐? 영의 영광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 심신인 자기의 육을  통치하는 통치권이 어느 정도 있느냐 하는 그것이 영위 권위요 영의 영광인  것입니다.

어떤 영은 중생은 됐지마는 자기의 마음이나 몸은 털끝만치도 지배를 못합니다.

그것 제 마음대로 하고 하니까 난중에 부활은 하기는 했지마는 그 영이 부활한  그 몸을 타고 다니기는 타고 다니지마는 그 몸에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종하는 진리대로 영감대로 움직이는 그 기능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쓸모가 하나도 없는 그런 부활체가 있고 어떤 영은 세상에서  있는 있는 동안에 성령과 중생된 영이 둘이 합작해 가지고 진리의 법칙을 가지고  자기의 심신으로 된 이 육을 어쩌든지 진리의 복종하는 연습, 하나님 섬기는  연습, 하나님과 동행하는 연습, 하나님 명령대로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연습. 이 연습을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자꾸 시킵니다.

시키니까 그 심신이 그 영에게 복종을 해 가지고 이 연습을 하다가 한 번  실패하면 또 새로 연습을 하고 또 두 번 실패하면 또 시작하고 자꾸 이 연습을  많이 하니까 몇 번 하니 그것이 달성이 되면 그 다음 것 또 시작하고 또  시작해서 그 영이 마지막에는 자기의 육에게 명령하는 대로 그 육이 복종합니다.

그러면 영이 명령하는 그 명령은 무슨 명령인가? 하나님에게 받은 명령이요.

영은 하나님에게 곧 성령에게 복종하고 성령에게 복종한 이 영이 성령에게  복종한 그대로 육에게 명령을 하니까 마음이 안 듣는다 그 말이오. 몸이 안  들어.

어떤 그 사람의 그 육은 영이 말하는 것은 복종하라고 하지마는 약해 놓으니까  복종 못해서 넘어지니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서 이렇게 연습을 해  가지고 이제는 성령이 그 영에게 명령한 그것을 영이 자기 육에게 명령하니까 몇  번 연습해 가지고 그것을 이제 성공을 해서 그것을 순종할 수 있도록 달성을  했습니다.

요걸 가리켜서 경건을 연습하는 것은 유익이 있고 육체를 연습하는 것은 유익이  적다. 경건 연습이 어떤 기 경건 연습이냐 하면 하나님을 위한 영감과  진리대로의 행동하는 것을 가리켜서 경건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영은 자기의 심신으로 된 육 이것을 복종시키고 영과 심신이 한 덩어리가  되어지는 이것을 지금 영이 애를 쓰지마는 요 못된 육이 반대를 하고 세상  죄하고 좋아하고, 꾀우는 거하고 좋아하고, 마귀하고 좋아하고, 그 거짓말쟁이  인간 말하고 좋아하고, 땅에 있는 것만 좋아하고 도무지 그 영의 말을 듣지  않는다 말이오. 안 들으니까 영이 탄식을 한다는 말을 로마서 8장에  말해놨습니다.

그러나 어떤 심신은 영이 말하는 대로 하나 복종하고 둘 복종하고 이래  복종하니까 이 마음이 영의 복종하는 것으로 변화가 됩니다. 이 마음이 곧 영에  복종하는 것으로 변화된 것이 성령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변화된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에게 복종한 것으로서 변화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 그 마음에 기능이 하나씩 둘씩 변화를 받아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서  움직일 수 있는 그 기능을 지금 마련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그것뿐이지 그거 외에 뭐 어떤 대통령을 따라서 왕을 따라서 장관을  따라서 부자를 따라서 사장을 따라서 마귀를 따라서 그런 걸 따라서 움직이는 그  기능은 하나도 못갑니다. 다 불 살아져 버리고 하나님에게만 따라 움직이는 것.

하나님에게 따라 움직이는 것은 뭐인데 진리대로 움직이는 것. 하나님의 명령  따라 움직이는 것 하나님의 명령 곧 진리대로 움직이는 진리대로 활동하는  요것만이 하나에 간 실력인데 이래 가지고 그 마음이 이 실력을 마련하고 또  몸이 이 실력을 마련하고 이래 가지고 하나님이신 성령과 진리와 중생된 영과  마음과 몸과 이 다섯이 이 다섯이 합해 가지고 이 다섯이 합해 가지고 그 다음에  물건도 합합니다.

물건하고 합작이 되면 그것이 뭐이냐 하면 의로운 행위입니다. 물건하고 합작되  놓으면 그것이 의로운 일이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이제 하늘나라에서는 자기의  의복처럼 필요합니다. 또 그것이 자기의 재산처럼 부요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의 구원은 영은 심신을 저에게 복종하는 이 복종성을 복종성 복종  기능 이것을 이 심신으로 하여금 얻어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이  심신은 자기가 죄로 물질로만 살았던 이것이 진리로 움직이고 영감으로 움직이는  그 영감이면 진리인데 하나님과 중생된 영과 진리 이대로 따라서 움직일 수 있는  자체가 되어질라고 애를 쓰는 이것이 마음의 구원을 이룰려고 하는 것이요 몸의  구원을 이룰려고 하는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 육의 구원을 이룰려고 지금 이 세상에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니 심신은 성화를 받고 변동을 받고 영은 자기의 심신을 잘 가르치고 훈련을  시키고 연습을 시켜서 어쩌든지 하나님이 그 영에게 명령을 내리면 암만  복잡하고 급속하고 어렵고 힘드는 명령이라도 하나님께서 그 영에게 명령을  내리면 그 영은 그 마음에게 명령을 내리면 마음이 척 순종하고 마음이 그  몸에게 명령을 내리면 몸이 턱 순종하고 또 이제 몸이 그 물질에 대해서 명령을  내리면 그 물질이 딱 복종을 해서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것을 지금 우리로 이룰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그 형상을 본받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하늘에서 오는 처소를 덧입기 위해서 우리를 불렀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만하면 대략 짐작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게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이것이 구원인데 이 구원을 이런 이적이나  기사나 뭐 전도나 이것 되는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좋은 일이지마는  그것은 자기 구원이 이루어지는 데에 필요 있는 도움이 되는 지식도 되고 또  그리함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도와주시는 도움을 구하는 것도 되어지고 또  여기에서 자기가 실험해서 깨달아지는 것도 있고 이래 가지고 그것이 구원을  마련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준비 요소들이요 이용될 요소들이지 그 자체가 구원  자체는 아니라 하는 것을 여게 밝힙니다.

그러면 구원을 어떤 것이 구원이냐?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한  그것만이 구원이다. 그러면 아버지의 뜻대로 인간이 할 수가 있겠느냐? 성경에  보면 우리에게 이 구원을 이루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정하셨고  우리를 불러서 성령이 이 보증을 하시고 또 진리가 보증인이 보증이 되고 또  예수님의 피가 보증을 해 가지고 이 일을 이루게 하기 때문에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지마는 하나님의 성령으로서는 이 일이 가능하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날 누라고 하더냐?' '선지자  중 하나라 합디다.' '너거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입니다'  말했습니다. 그거는 그 시대에 성경학자, 제사장, 바리새교인, 서기관 그런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소리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소리인데 이 베드로가 그  대답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이제는 네 이름을 게바라  해라. 네 이름을 반석이라 해라. 내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너에게 천국 열쇠를  준다. 그것은 내가 지금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시는 하나님  아들이니이다라고 요렇게 대답한 요것이 반석이다. 요것이 반석이다. 요것이  천국 열쇠다. 요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요거는 어떤 그 학자가 너에게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네 마음이 너에게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네 몸이 너에게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너에게 가르쳐 줘서 요렇게 됐다'고 영감을 표시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 그러니까 베드로는 이거는 참 위대한 사람이고 이거는 아주 교회 기초  되는 사람으로 이렇게 모든 사람이 알 것이기 때문에 바로 그 자리요 그  자리에서 그 자리에서 예수님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좀 있으면 십자가에 못밖혀  인제 죽을 것이다.' 이러니까 베드로가 있다가 '아이구 그런 일을 당하지  안하도록 하심시오. 주님이 안 당하라면 안 당합니다. 당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요 말을 하니까 금방 네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천국 열쇠를  (OOO 거 몸 약한 것 말이요 하나님 말씀들을 때에 성령이 와서 깨닫게 할 때에  깜짝 놀래 주여 주여 요대로 살겠습니다. 요대로 걷겠습니다. 주여 꼭 할 때에  이제 이제까지 있던 신앙보다도 새신앙이 올 때에 병이고 뭐이고 다 달아나. 다  이런 것이라. 그런 방식으로 병 낫아. 이번에 장생골 가서 병자를 전부 다 낫을  기라. 그 회개하고 그 성신의 권능으로 깨닫는 자는 다 낫아. 어떤 병이든지  여기서도 그래. 그 외에 딴게 없어.)  이렇게 그걸 일을 닥치지 안할 것입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있다가 당장 말하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금방 반석이니 천국 열쇠를 주노니 네가 복이 있다니  네 위에 교회 세우겠다니 이렇게 했는데 당장 사탄이 됐습니다. '내 뒤로  물러가라' 왜? 네가 하나님의 뜻을 너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내가 주장했기  때문에 거게다 교회 세운다 했는데 네가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아니하고 인간의  일만 생각해서 십자가에 날 못밖히지 못하게 네가 하니까 너는 사탄이다 뒤로  물러가라 요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거게서 주님이 반석이라 교회를 네 위에 세우겠다 교회의 기초가 된다  반석이다 그것이 천국 열쇠다 하는 기 뭐입니까. 그것이 뭐이냐?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영감시켜 주시는 그 영감 그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믿는 사람이라면 이거 믿는다고 하면서 뭐 하나님만 섬기면  되지 하면서 세상 예의도 체면도 법도도 다 부인합니다. 그 예수 믿는 사람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우리는 일차적으로 이 세상 인간들이 세워 놓은 이 제도를 가지고 자기의 길을  선택합니다. 내가 어느 길로 가야 될까? 인간들이 세워 놓은 제도 입법 예의  체면 도덕 이것을 가지고 자기 갈길을 찾습니다. 찾으면 대충 어름하게  찾아집니다. 대충 어름하게 찾아지면 또 거게서 성경 말씀을 가지고 또  찾습니다.

성경 말씀 가지고 찾으면 그 세상 것 가지고 찾으니까 예를 들면 길 길이 한 백  개 중에 한 스무나무 개가 그 쓸모있는 길이 되더니만 그 스무나무 개 이것을  성경 말씀을 가지고 또 이기 갈 길이 어느 길이냐? 성경 말씀 가지고 가려 볼라  하니 이것도 틀렸다. 이것도 틀렸다. 난중에 성경 말씀 가지고 가리보니까 한  삼사 길이 있습니다. 한 셋 길 넷 길이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디로 갈지 몰라. 세 길 네 길 있는네 이 세 길 네 길에서 이거 어느  길로 가야 되겠느냐 할 때에 이 네 길이니까 네 길로 다 갈 수는 없고 이 네 길  중에 어는 길이 참 길인가 요것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그것이 뭐이냐? 신앙  양심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신앙 양심의 노력입니다.

찾을라고 하니까 애를 쓰니 자기를 중생시킨 기름 부음이 요한일서 2장에 기름  부음이 그 사람에게 '아 네가 지금 찾아오고 찾아왔으니 인간이 찾아 오기는  왔다. 인간이 바른 길을 찾기는 찾았는데 내가 지금 갈레길 네 길 가운데서 어느  기 참길인지 모르고 네가 지금 번민하고 있구나! 요 길이 참 길이다.' 하나인  그기를 성령이 가르쳐 주실 때에 그 길대로 갈 때에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이고  그게 의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 자기의 길을 대충 길을 이렇게 심사해서 선택하는 것은  사람에게 배워라. 또 그보다도 이 세상에는 많은 공부들이 다 좋기는 좋지마는  많이 못할상 바르면 사학을 공부하고 그 법학을 공부해라. 왜? 그게 사람들이 다  가리는 그 방식이고 또 사학을 공부하는 것은 금방 부자되는 기 금방 거지되고  금방 권세 잡은 기 금방 자살하고 이런 것이 역사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경거  망동을 하지 않고 좀 시야가 넓어진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래 보고 하되 마지막에 네 생명이 되고 영생이 되고 구원 얻는 그  길은 사람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 사람이 가르쳐 주지 못한다. 너에게 중생시킨  네 속에 기름 부음이 너를 중생시킨 그 기름 부음이 그 기름은 성령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기름 부음이 너에게 옳고 참되게 바르게 가르쳐 주나니 그대로  행해라 말씀했습니다.

그런고로 여게 주의 뜻대로 해야 된다는 요것만이가 구원이 되고 다른 것이  안된다 것을 간단하게 조금 설명을 강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종을 치라 이럽니다. 치라해도 치라해도 종을 쳤다고 구원되는 것  아닙니다. 왜? 종을 치면서 속으로 하기 싫은 종은 뭐할라고 치라하노 하면서 칠  수 있고 종을 치면서 지금 마음은 딴데 가 있으면서 종을 칠 수 있고 또 종을  치면서 이 종소리 듣고 그 누가 그 뭐 무슨 일 했으면 좋겠다.

우리의 속성이라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가 있어.

우리의 속성으로 지식도 있고 지혜도 있고 또 선도 있고 사랑도 있고 거룩도  있고 진실도 있고 욕심도 있고 뭐 그 인간의 속에 되어 있는 그 요소를 말하면  수 많습니다. 많은데 아무리 주님의 뜻대로 한다고 해도 손은 하지마는 마음은  다를 수 있고 마음 중에 욕심은 그걸 하지마는 성질은 또 딴데 갈 수 있고 이기  욕심과 성질은 이제 그것을 하지마는 또 이성 비판은 지금 딴걸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그것이 옳고 바르고 주의 뜻에  맞은 그기라 할지라도 그때에 우리가 마음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하고 힘  다하고 욕심 다하고 모든 것이 이기 집합됐을 때에 요것이 집합이 될 때에 그럴  때에 요 전 우리의 마음과 자기의 소원과 요것이 집합이 될 때에 그것을  가르쳐서 그 사람의 인격이라 하겠는데 요것이 집합이 되어서 요 전부가 한테  모이 가지고 요기 촛점이 됐을 때에 요기 됐을 때에 그때에 성령이 교제해 줄 수  있습니다.

성령이 인정해 주실 수 있고 성령이 참되다 인정해 주실 수 있고 성령과 결합이  되는데 성령은 우리가 교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오신 하나님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성부요 성령이 성자요. 성부가 성령이요. 성자가 성령이요 네 성자가  성부요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위만 다르고 위만 달랐지.

이러니까 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지하심이 볼 때에 십분지 구는 이제 그걸  행하지마는 십분지 일이 행하지 안하고 엉뚱한 일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걸  재촉해서 그게 합해져야 되지 그것을 어떻게 완전이라 의라 어떻게 하나님이  결합되서 어찌 하나님이 그걸 결합을 할 수 있습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안 되니 그것이 되도록 해서 그게 될 때에 이매 옳은 것이라도  성령이 동행해서 성령이 인정이 될 때에 되는 것이니 그것을 누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의 감화가 오면 성령의 감화가 오면 그 감화의 은혜로 인해 가지고 우리가  그 은혜를 입어서 이 모든 것이 감동되면 전체가 합해 가지고서 하나로 촛점에  딱 모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신이 우리를 보증했다 책임졌다  이랬습니다.

이리 되면 그 다음에 우리를 감동시켜서 하나로 똘똘 뭉치도록 한 인품 하나에게  귀속되도록 하나가 되어지도록 요렇게 성신이 역사해서 일으키는 걸 가리켜서  성령의 감화 감동이라 요렇게 말하고 요럴 때에 하나님과 딱 결합이 되버립니다.

결합이 될 때에 요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 요것을 가르쳐서 영생이라. 요  영생이라 말은 요건 다시 죽지 안한 영원한 생명화 됐다 영생이라 말입니다.

생명은 어떤 기 생명이냐? 하나님과 피조물이 연결 될 때에 그것이 생명이요. 그  연결이 다시 끊어지지 아니하도록 연결됐으면 그것이 영생으로 영생하는 생명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신의 감화가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성신의 감화, 말로 권면하는 것도 성신의 감화, 또 이 모든 만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것도 성신의 역사 이 성령의 역사와 진리의 역사가 이렇게  운동해 가지고 우리를 똘똘 뭉쳐서 하나로 요렇게 만들 때에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과 요것이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성신의 감동으로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신 하나님과 요렇게 결합이 되어서 요것이 비로서 영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신의 감화 감동이 아니면 우리에게는 그렇게 하나가 될 수가  없습니다.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 되도록 노력하는 데에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무슨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서 제 딴에는 다  했다고 해도 어림도 없습니다. 다했다고 이거 되는 것 아니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떤 것이냐? 성령이 와 가지고 나를 감동시켜서 요 요거 좀 어려운 말이지만  하나 되어서 요 단일성 단일성의 인격 단일성의 인격이 되도록 성령의 감화가  요것을 만듭니다.

우리는 마음 다했다 성품 다한다 힘 다한다 묵숨 다한다고 해도 뭐 천지  만엽으로 이렇게 깨지고 부셔지고 흐트러진 이것이 이래 합한다고 해봐도 이것이  우리 마음으로 합했지 전지하신 자가 완전자가 보실 때에는 마구 두더기요 마구  깨진 쪼가리요. 이거 이런데 이것이 겨우 어떤 일을 하느냐? 성신의 감화 감동이  와 가지고 나를 단일성화 시키도록 그 은혜를 기다리는 것이요.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인간 노력에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성신이 감화 감동으로 단일성화 될 때에 그때에 이제 하나님으로  더불어 그것은 완전 연결 다시는 끊어질 수 없는 완전 연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 일이 행사를 통해서 되어지고 현실을 통해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자기에게 이런 마음 이중 마음도 아니고 삼중 마음도  아니고 그저 마음이나 성품이나 뜻이나 욕심이나 소원이나 취미가 뭐 뭐인지도  모르게 하나도 딴데는 하나도 없고 똘똘 뭉쳐서 하나가 딱 되 가지고 하나님만  딱 바라보아지는 요때는 그때는 그게 될 때에 죽음도 좋고 생명도 좋다  그말이오.

또 어릴 때에도 신앙이 어릴 때에도 그럴 때에는 제대로 다른 생각이 하나도  없어. 다 요것이 집결되어서 촛점이 되 가지고 그 하나님만 바라보는 요 일이  되어지는 요럴 때에 비로서 요것이 성화가 된 것이라. 요것이 주의 지체가 된  것이라. 요것이 영생이 된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현실에는 영생과 영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에는 영생과 영멸이 지나갑니다. 우리 현실에는 영생이든지 영멸이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영멸이 되는 것은 요것이 애를 쓰고 주의 뜻대로 하기는 했다고 하지마는 요것이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되 가지고 하나가 어찌 되는고 우리가 하나되 똘똘 뭉쳐서  하나 되게 하는 데에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뭐입니까? 우리가 해야 될 정도는  뭐이요? 한번 대답해 보십시요. 우리가 해야 될 정도는 무엇입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요. 우리가 해야 될 정도는 뭐이지? 한번 대답해봐. 저 뭐이지? 조집사님  우리가 해야 될 정도는 뭐이요? 우리가 해야 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뭐이며  성령이 와서 해야 할 것은 뭐입니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뭐이지? 김선생?  우리가 할 일이 이거 모르니까 구원이 헛일이라 말이오. 우리 모르니까 이거  작자가 기본구원이 없어. 건설구원만 장 참 건설구원 없어. 기본구원만 장 이래  들고 있지.

이러기 때문에 그 요사이 하나님 증거하는 것은 아주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는지  몰라도 나는 지금 새로운 높은 차원에서 지금 자꾸 깨달음이 옵니다. 이래서 이  구원을 전파한 것이 너무 이거 삐뚤어지고 잘못된 많다 그말이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오는 것 같애. 우리가 할 일이 뭐이요? 우리 할 일 있고 성령이 오셔서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할 일은 뭐이지요? 이 아무도 모르네. 예. 뭐? 인자 금방  말하더만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는 것. 요것이 우리 할  일이요.

우리가 다 한다고 해서 이것이 똘똘 뭉쳐서 단일성이 되는 줄 압니까? 어림도  없소. 이것이 성령이 와 가지고 단일성화 만들 수 있도록 준비 공작이 되는  것이고 요 단일성화 시켜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준비 준비 고대라  그말이오. 준비 대망이라 그말이오. 성신의 감화 감동이 그렇게 쉽게 오는 것  아닙니다.

성신의 감화 감동도 여러 층어리 있소. 진리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도 성령의  감화 감동입니다. 또 행하고 싶은 소원도 성신의 감화 감동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내 심신의 이 전부와 영과 내라는 요소 요 전부가 기능 요소 전부가 똘똘  뭉치 가지고 단일성 요 단일성이라는 요 술어도 또 요거 배울라면 좀 거한데  단일성, 그러면 그 단일성이 외부로 퍼지면 여러 수십 성품으로 그 나타나지마는  그게 내나 한 성품이라 그말입니다. 들어가 보면 한 성품이라 그게  단일성입니다. 하나님은 단일성의 하나님이시요.

이러니까 요 하나님이 요렇게 만드는 그 성신의 감동이 되면 그럴 때에는 우리가  똘똘 뭉쳐서 단일성이 되어질 때에 그때 이제 마음 목숨 힘 전부다 한다는  그것이 성령님이 오셔서 요것을 완성을 시키면 요것이 단일성이 되어질 때에  그때에 하나님하고 만나서 연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연결이 되어 그럴 때에  연결이 되어질 때에 그때에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권능이 와  가지고 연결된 그게는 하나님과 자기가 결합이 하나라. 이러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영생이라고 그랍니다. 영생. 그 다시 죽지 안해요. 이러니까 우리가  준비할 것은 요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관을 이것을 우리가 이렇게 구원을 보고 이룰려고 애를써야 되지  그저 이 전도 하니까 이 구원인가보다 내가 전도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기를 내가  다른 사람을 멸망에서 구원하라고 애를 쓰면 하나님께서 너를 멸망에서  구원할라고 애를 쓰다. 네가 다른 사람을 구원할 그런 생각이 하나도 없으면  하나님께서 내 구원에서 도와 주지 않는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기를 원해서 구원해 주시는  그것을 바라서 전도를 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은혜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는 것은 수도물이 지나가는 것 마찬가지로 이래 가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자연히 자기에게 새로 오게 되니 하나님의 것이 자기에게 새로  오도록 하기 위해서 주는 것이요. 내가 구원을 할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날  구원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요.

또 내가 성경을 보는 것은 자 성경보는 것은 내 현실에 세상 것 가지고 가려서  그래도 그 사람이 법에 걸리지 안한다. 그보다도 법에 안 걸릴뿐 아니라 그  사람은 그 체면에 결리지 않는다. 그 사람은 도의에 걸리지 아니한다. 벗어나지  도의를 벗어나지 않는다. 도의 걸리지 않는다. 그 사람은 도덕에 걸리지 않는다.

그만하면 다 된기 아니라. 성경 가지고 조사를 해보니까 또 잘못된 것이 뭐 수가  심히 많습니다.

이러니까 성경 가지고 제 이차적으로 자기의 길을 지금 선택하고 심사해야  되겠는데 이 심사 선택할 수 있는 지식이 있어야 되니까 그 지식이 뭐이냐 성경  지식이라 말이요. 성경 지식을 배우고 연구하고 해 가지고 이렇게 그걸 선택해야  되지.

그러니까 다 같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성경 지식의 정도에 따라서 자기 택하는  길이 다르다 그말이오. 이 사람은 이만하면 완전한 길이라 생각했는데 그보다  성경 지식이 더 세밀하고 높은 사람은 볼 때에 그래가지고 안됐는데 이것도  틀리고 이것도 틀리고 이것도 틀리고 틀리기 많하 그말이오.

또 자기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뭣해 주일을 지키는 것은 주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지고 거게 저거가 깨달을 때에 깨달을 때에 이 자기의  심신이 그 깨달음을 통해서 깨달을 때 그때 그 심신이 한덩어리가 꼭 되여  단일성이 되어지면 그때에 성신의 권능이 온다 말이오.

이래 와 가지고 혹 예수 믿지 안하는 사람은 아주 저급의 깨달음이 올 때에  병낫는 사람도 있고 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좀 장성한 사람은 그 장성한 사람  속에 이거 이 못된 기 들어 앉아 가지고 병이 들어 앉아 가지고 요놈이 면역성이  강해 가지고 들어 앉았는데 그보다도 강한 성령의 능력이 오면 또 그게  불타버리고 도망을 쳐버린다 그말이오.

이래 가지고 주일날 오는 것은 하나님과 결합할 수 있는 요런 일과 또 자기의  결합할 수 있는 준비인 그 길을 마련하는 데에 그 길을 찾을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것과 여러 가지 수입이 있기 때문에 요 또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흩어진 마음을 모아서 흩어진 생각 흩어진 성질 이 모든 것을  흩어진 욕심 이 그 흩어진 이 욕망 이런 것을 똘똘 모아 가지고 하나님 한  분에게 딱 요렇게 집중되어지는 요기 될 때에 요기 뭐이냐? 성령이 와 가지고  단일성화 시킬 수 있도록 마련되는 이 준비인 것입니다. 이렇지 아니하고 그  마음은 저 저 미국에 가 있고 생각은 저 소련에 가 있고 또 욕심은 저 가 있고  널리 퍼져 가지고 이걸 암만 주 모아야 모아지지 안하는데 어떻게 성령이 일할  수 있겠소.

이러니까 우리가 모든 걸 다해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은 성령님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이 심신을 성화시키는 성화라면 하나님하고 연결이 되어서 하나님이  지혜에 연결되니까 전지의 지혜되고 전능에 연결되니까 전능이 되고 하나님의  완전에 연결되니 완전이 되고 연결된 것 만침은 하나님이 아니지마는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그것이 나타날 때에는 하나님이 완전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렇게 되어지는 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다 기울이는 것이요. 그럴  때에 성령이 와 가지고 그 인정 옳다 인정을 하고 단일성을 만들어서 움직이게  될 때에 그때에 그 옳은 진리를 찾아도 진리는 옳은 진리를 찻았지마는 이  사람의 백분지 일이 그 진리를 행합니다. 인간은 껍데기이기 때문에 백분지 일이  진리를 행하고 백분지 구십구는 지금 도적질 행할라고 저 딴데 가 있어도  사람들이 그거 행한다 이래 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자기가 이것을 다 해 가지고 행할 때에 종될 종류를 이거 행해야  되나 저거 행해야 되나 종류도 바로 선택했고 또 여게 자기가 다 기울려서  집결이 됐고 이 다 했다 이기요. 집결이 됐고 요럴 때에 이 저만 됐습니다. 이럴  때에 성령이 오시 가지고 모지라는 것을 감화 감동동 시켜서 감화 감동을  시키니까 감화 감동을 시키니까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됐는데 감동을 시키니까  마치 잡철을 주어 한테 모으기는 모아놨지마는 이기 전부이 잡철인데 것다  용광로를 되고 이것이 꾸우니까 그만 잡철이 쇠물 한덩어리로 되는 것처럼  성신의 감화 감동이 오니까 요것이 단일성화 되어졌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과  결합의 연결이 되어지는 그것이 영생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내가 선지자 노릇 능한 노릇 귀신 쫓아 냈습니다.

나 날 구원줘야 안됩니까. “내가 그때 밝히 말하노니 그때 내가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그러면 하나님께서 요렇게  단일성이 되 가지고 하나님하고 결합되는 요 법칙에 맞추어 보면 전체가  위법이요. 불법이요. 그건 다 탈선이요 아무것도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것이 얼마만 어려운 것이지마는 무식해도 할 수 있고, 거지도 할 수  있고, 병신도 할 수 있고, 못난 사람도 할 수 있고 왜? 그것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이나 아버지의 성령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인데다만 자기에게  있는 것 마음 다하고 뜻 다하고 정성 다하고 해서 요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요것이 되어질 때에는 요 일이 가능하다 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좀 덧붙여서 우리가 잘 아는대로 마태복음 25장 열처녀 비유에  보십시요. 제일 처음에 뭐입니까? 다 있었지마는 안 되는 것 있었지요. 처녀들이  다 그와 같이 모였지마는 구원 헛일 아닙니까. 이제 구원되는 순서를 보십시요.

처녀는 쫓겨난 처녀나 영접한 처녀나 같은 처녀지마는 이제 구원이 어데부터  시작됐느냐 하면 첫째 기름 준비가 있었습니다. 기름 준비, 기름 준비 한 그것이  그 다음 순서가 뭐입니까? 밤중을 만났습니다. 또 밤중 순서에 이제 진행이  됐소. 또 밤중 순서에서 등불을 켜야 되는 또 등불 순서에 또 진행됐습니다.

등불 순서에 진행이 되고 난 다음에 신랑 만나 가지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요기  구원이요. 요기 구원입니다.

그러기에 준비 기간이 있고 또 구원되는 그 구원되는 그 절정 그것이 있는 것을  마태복음 25장에는 가르쳤습니다. 처녀들이 있어지마는 안 돼. 기름 있었지마는  안 돼. 밤중에 만나도 안 돼. 등불들고 신랑 맞이해서 신랑과 나와 그 접해서  들었다 그말이오. 그것이 뭐입니까? 신랑 맞이해서 어디로 들어가겠습니까? 진리  세계로 들어갔지요. 그게 뭐입니까? 단일성의 세계로 들어갔지요. 그 주님과  결합이 된 것이지요. 연결이 된 것이지요. 그만큼 연결이 됐지요.

어떤 것이든지 부분적 요소로 그 일로서 절정적인 그런 순서를 통과해 가지고  비로서 결합이 된다 하는 그것을 보인 것입니다. 신랑을 맞이해 들어갔다 그말은  이제 주님과 결혼했다 그말이오. 주님과 결합됐다 그말이오. 그게까지는 주님과  이제 단일성의 그것이 됐고 단일성화 단일성이 합해서 주님과 단일성되는 것은  아니지마는 주님과 단일성 단일성이 결합이 되서 주의 모든 것이 그  부분으로서는 그 사람의 것 됐다 그말이오. 그 사람의 것 모든 것이 주의 것  됐다 그말이오. 주님과 희로애락이 다 단일이라 그말입니다.

또 그 다음에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1장 12절에 보면 제일 처음이 뭐이냐?  예수 믿는데 예수 믿는데 평소에는 괜찮았지마는 예수 믿다가 어려움 닥칩니다.

정직해도 어려움이 있고, 진실에도 어려움 있고, 전도에도 어려움 있습니다.

우리는 얼려움 없기를 원하지마는 어려움 없는 거기에서 어려움에 봉착되는 것이  일보 전진이요. 일보 향상인 것입니다.

제가 내가 거짓말 안 하겠다 뭐 가짓말 할라 도 안 되는데 거짓말 안 하는 기 뭐  어려워서. 거짓말을 안 하는 일을 했는데 시험이 옵니다. 거짓말을 참 안 할  수가 없는 거거짓말 안 할 수가 없는 것지말 안 하기가 참 어려운 일이 딱  봉착됩니다. 거짓말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그 어려움을 봉착됩니다. 그것이  지금 그 거짓말 안한다는 그것으로서 그 면으로서 그 요소가 구원되는 것이 지금  구원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거짓말 안 할라는 그것이 구원 이루는 데에는 거짓말 안 합니다. 구원  아직 아니요. 그게 시험에 들어갑니다. 거짓말 하나, 안 하나? 네가 거짓말 안  할라면 큰 손해가고 내가 절단이 나는데 거짓말 안하는 그 정직을 네가 돈보다  네 명예보다 네 지위보다 네 안일보다 네 친구보다 뭣보다 네 직장보다 네가  높이 평가하느냐? 요것이 이제 시험입니다. 요 시험이 첫째 들어갔소. 시험에  닥쳤소. 그 시험에서 대번 구원이 됩니까? 아니요. 시험에서 그 또 한걸음  나갑니다.

그 둘째 뭐이요? 그게 보니까 시험에 시험이 와도 변동 않고 참는다. 그말은  계속한다 그말이오. 아무리 자기가 거짓말 안 할라고 하는 그것이 어려움이  닥쳐도 꼭 거짓말 않고 계속합니다. 그게 인내요.

그러면 인내 다음에는 또 무엇이 닥칩니까? 인내 했는데 뭐이 닥쳤습니까? 인내  다음에 뭐 무엇이 닥쳤어요? 제 딴에는 거짓말 안하고 계속을 해도 아직까지  승격이 안됐습니다. 그 자리 그대로 있소. 승격이 안됐습니다. 그 다음에  뭐옵니까? 거짓말 안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이제 ‘됐다.’“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인자 그게 진행이 되어서 그게  도달됐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뭐 됩니까? 그러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마고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이 그 다음에 옵니다. 생명의 면류관이 온다  그말은 생명이 모든 시험 이기고 승리했기 때문에 이제 승리로 판결났다  그말이오. 그것이 뭐이냐? 구원된 것입니다. 그게 구원된 것이요. 신랑 맞이해  들어가는 기나 꼭 같은 것입니다.

또 베드로 전서 1장 5절로 보면 5절 이하에 보면 뭐 있습니까? 그게 제일 처음에  우리가 믿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을 가져옵니다. 능력을  힘입습니다. 그러면 능력 힘입었으면 구원됐습니까? 아니요. 능력 힘입어도  구원된 것 아닙니다.

그러면 첫 발자국이 하나님의 능력 받아 가지고 그 다음에 뭐입니까? 시험을  닥쳐서 이제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닥칩니다. 시험을 닥칩니다. 온갖  시험을 닥쳐. 이러니까 권능은 받았지마는 이 권능이면 이 시험을 능히 이기고  남을 수가 있기는 있지마는 권능은 받았지마는 사람들이 이 권능을 인정치  안하기 때문에 이 어려운 시험을 퍽퍽 치고 말고 마 이 어려운 시험은 닥치면  자기가 지켜나오던 신앙을 버린다 그말이오. 권능 얻는 순서 그기서 시작해  가지고 그 다음에 시험을 받습니다.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 다음에 셋째로 뭐라고 말했습니까? 금을 불로 연단하는 거와 같이 연단을  받는다 이랬습니다. 금을 불로 연단한 것보다도 더 보배롭다 말했습니다.

보배롭다 그말은 연단한 것이 금보다 보배로와. 보배로와. 하나는 그말 아니요.

그 잘못 알면 안됩니다. 불로 금을 연단하는 것보다 더 보배로워 하는 그말은  보배롭다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금을 불로 연단하면 순금만 남지 않소.

순금만 남는 그것보다도 더 연단해서 더 더 연단해서 금이 잡것 없어지고 순금  남는 그보다 더 끝이 연단한다 그말이오.

그 보배롭다 말은 더 깨끗이 연단하고 더 고급으로 연단하고 더 세밀히 연단하고  더 철저하게 연단하고 더 완전 연단을 받는 완전 연단을 받는다 그말이오. 완전  연단을 받는다. 그러면 완전 연단을 받으면 뭐 연단 받겠소. 거게 무엇을  연단하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이 달라 들어도 깰 수 없고 없앨 수 없고 멸할 수  없고 꺾을 수 없는 이제 그 그것이 남지 안해 남는 것이지요.

그러면 연단은 누가 합니까? 세상이 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내나 다른 말로  말하면 불로 시험한다 말했고 또 다른 말로 말하면 비오고 바람 불고 창수난다  그렇게 말했지요. 온 세상이 달라들어서 태워도 안 태우는 것. 이 불 저 불 모든  불로 드리 꾸어도 안 타는 것. 남은 기 정금인데 정금 이것보다도 더 엄격하고  더 고도로 더 세밀하게 더 완전하게 연단한다. 온 생애 이것 태운다. 태워도 안  태워진다. 뭐이 안 태워지겠소? 온 세상이 달라들어도 안 태워지는 기 뭐이겠소?  자 사망이 마귀도 세상 권세도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마구 달라들어 가지고  이것을 꺾어서 없앨라 해도 없어지지 아니하는 그것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는데  그것만이 주님이 나타났을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히 되어지는 것인데 그 뭘로  되어서 그럴까요? 금으로 되어서 그럴까요, 은으로 되어서 그럴까요, 인간의  의지로 되어서 그럴까요, 결심으로 되어 그럴까요, 선천 후천의 잘난 것 가지고  되어 그럴까요, 수양 가지고 되어 그럴까요, 인간에게 다 노벨상 받아서  인정받는 그런 것 가지고 될까요, 뭐 가지고 된 것이겠소? 말해 보십시요? 뭘로  가지고 된 것이겠습니까? 녜? 예? 예? 녜. 성령의 도우심이라면 그저 어리벙벙한  대답이지마는 틀렸다 할 수는 없습니다.

녜. 성령의 도우심은데 요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완전성의 것. 영원성의 것.

불변성의 것. 요 자존성은 아니지마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말미암  그로 연결이 되었음으로 그의 완전성 영원성 불변이 연결이 됨으로서 그가 그를  통해서 나타나 가지고 있는 요것이기 때문에 요것은 피조물이 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멸하지 못하는 것. 피조물을 탁월한 것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는 것.

만물에게 충만케 하고 영계와 땅에 있는 모든 것 천군 천사를 통치할 수 있는  모든 피조물을 탁월한 것. 진동치 안할 것 변동되지 안할 것 하나님처럼  완전하고 영원한 것. 요것으로 되어지는 요것만 남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이지는 것인데  그러면 그게 무엇이 들어서 그렇게 만들었을까? 만들었을까? 하나님의  능력이지요.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를 입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그 능력이 이제 그 사람에게 통해 가지고 그 능력으로 사니까 그  능력이 그 속에 수립되고 그것이 성장되고 그것이 이루어져 있으니까 이루어진  것만침은 세상이 태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요기 우리 구원이요.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이렇게 너무 쉽게 생각하니까 이렇게 쉬우니  구원이 이거 무가치한 기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에서  영생인데 영생이 이루어지는 긴데, 영생은 어떤 잘난 사람이라도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하고 자기의 있는 것을 다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네 제자되지 못한다 그말은 제것으로  가졌던 것 다 내놔야 된다 그말이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했습니다.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면 이것이 구원이 다 된 기 아니라.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  가지고 구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구원인 것을 알고 이 보배로운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하십시요. 그런데 이 구원은 못나도 할 수 있고 잘나도 할 수 있고, 가난해도 할  수 있고 부요해도 할 수 있고, 유식해도 할 수 있고 무식해도 할 수 있고,  병신도 할 수 있고 건강해도 할 수 있고, 이 구원은 평안 무사한 데서도 할 수가  있고 환란에서도 할 수가 있고 평안무사한 데에는 힘이 더 많이 들고 환란에서는  힘이 덜 들고,  요러기 때문에 어데서든지 요 구원은 이룰 수 있는 것이니 요것이 구원인데  요것이 구원인데 요것을 구원이라고 하지 안하고 선지자 노릇 귀신 쫓아낸 것  능한 일 한 것 이 모든 것 이것을 구원이라고 자기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거  많이 했으니 구원되지 싶어서 주님에게 가서‘이 구원  주십시요.’이러니까‘네가 밝히 말하노니 네게서 떠나가라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아 권능을 행할 때 주님이 같이 하지  안했습니까? 전도할 때에 같이 하지 안했습니까?’‘아 거게는 전도하는데 같이  했고 권능 베푸는데 같이 했지 요 하늘나라 구원 영원 불멸에 요 구원되는  요기에는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 여게는 불이 된다. 여게는 참가 못한다.

그것은 구원 안된다’하고 쫓아냈습니다.

이 진리를 굳게 잡읍시다. 굳게 잡읍시다. 천하 사람이 달라도 헛되요.

이것이요. 이것이 성경의 난해절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성경을 그거는 해석하기 어려운 성경이니까 그만  그거는 그저 둬두자. 이러는데 이것이 우리가 행해야 될 일들입니다. 모든  성경을 맞추어 보면 이 말씀과 다 같소.

마태복음 25장에는 그 시기가 있는 것을 말을 했고 시기와 장소가 있는 것을  말을 합니다. 야고보서는 보면 모든 연단 투쟁 그것이 완성되고 난 다음이라야  된다는 것을 그 모든 단계를 말했습니다. 베드로전서에는 이 구원이 얼마나  정밀해야 된다는 것 얼마나 정밀해야 된다는 것. 금을 불로 연단해서 순금만  남는 그것으로 비교할 수 없이 정밀해서 하나님과 진리로 인한 초자연의  권능으로 인한 순전히 성경과 진리로 인한 주님의 피로 인한 요것만이 남고  나머지기는 다 불타 버리고 만다 그 정밀성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려워도 우리는 이 구원 이루어야 되겠습니다. 힘들어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이 구원의 입각해서 이룰 때에 세상에서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나 하는 그것은  염려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요 길대로 걸어가면 일하라 할  때에 일하면 되고, 자라 할 때에 자면 되고, 말하라 할 때에 말하면 되고, 먹지  말라고 할 때에 먹지 말면 되고, 가라 할 때에 가면 되고, 쉬라 할 때에 쉬면  되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거는 저절로 되고 시키는 자로는 중심이 뭐이냐?  성령의 동행하는 내 전부가 기울어져 가지고 주님과 결합되는 그것을 욕망하고  그 절정을 그 결실을 바라서 가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이 걸음은 고통  아니요. 이 걸음은 기쁘고 기뻐서 십자가에 못밖히는 십자가 위에서도 기뻐하는  것이 이 길입니다.

무소 가죽 가운데에서 졸려 가지고 죽으니까 옆에 사람이 지금 조리니까 저  항복이 활활 나올기라 했는데 졸린 무소 가죽 가은데에서 기뻐 즐거워서  주님하고 교제하고 주를 위해서 더 좀 어려움 당하지 못해서 안타깝게 여기는 그  기쁨이 그 능력이 세상에 멸하지 못하는 성령의 능력이요 진리의 능력입니다.

요것이 박바로 밤중에 빤작빤작 불을 켤 수 있는 요 기름으로 힘인 것입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376 거룩과 진실/ 요한계시록 3장 7절-13절/ 831202금야 선지자 2015.10.22
5375 거룩의 방해물과 긍휼을 입는 법/ 고린도전서 4장 3절-5절/ 830617금새 선지자 2015.10.22
5374 거룩한 행실과 경건 연습/ 베드로후서 3장 6절-15절/ 870714화새 선지자 2015.10.22
5373 거룩한 행실과 경건으로 준비/ 베드로후서 3장 9절-14절/ 870719주전 선지자 2015.10.22
5372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방편,목적/ 벧후3장 6절-14절/ 830612주전 선지자 2015.10.22
5371 거룩한 행실-예수님의 피 속으로/ 베드로후서 3장 11절-14절/ 830613월새 선지자 2015.10.22
5370 거짓 선지자/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10607주후 선지자 2015.10.22
» 거짓 선지자/ 마태복음 7장 21절-24절/ 810614주후 선지자 2015.10.22
5368 거짓 선지자/ 마태복음 7장 21절-24절/ 810615월새 선지자 2015.10.22
5367 거짓 선지자/ 마태복음 7장 15절-27/ 1981년 24 공과 선지자 2015.10.22
5366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마태복음 7장 15절~27절/ 810614주전 선지자 2015.10.22
5365 거짓말/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71016금새 선지자 2015.10.22
5364 거짓말 안하는 사람/ 마태복음 5장 27절-30절/ 870122목새 선지자 2015.10.22
5363 거짓말 회개하자/ 마태복음 5장 29절-30절/ 870121수야 선지자 2015.10.22
5362 거짓말의 정의/ 골로새서 3장 1절-11절/ 870302월새 선지자 2015.10.22
5361 거짓말장이 마귀/ 창세기 3장 4절-7절/ 890604주전 선지자 2015.10.22
5360 거창집회/ 로마서 6장 5절-11절/ 810812수전집회 선지자 2015.10.22
5359 거창집회/ 베드로후서 1장 1절-11절/ 810814금새집회 선지자 2015.10.22
5358 거창집회/ 마가복음 9장 38절-50절/ 810813목전집회 선지자 2015.10.22
5357 거창집회/ 로마서 6장 5절/ 810812수후집회 선지자 201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