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선지자

 

1981. 6. 15. 월요일 새벽

 

본문:마태복음 7장 21절~24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우리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 이 두 구원을 얻어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기본구원은 택함을 입은 데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는 영원 전 결정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그 무신론자를 그 사람이 구원을 얻었느냐 멸망을 받았느냐  우리가 그렇게 말하면 우리는 대답하기를 그 사람의 건설구원은 전혀 없는  건설구원은 멸망한 것을 내가 단정해서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본구원은 그  사람의 행위를 봐서 기본구원이 없는 사람 아니냐 할지라도 꼭 기본구원이 없다  그렇게 말하지 못하겠다. 왜? 기본구원은 선택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것은  내가 단정을 지을 수가 없다.

왜? 행위는 다 불타버리고 그 공적이 하나도 없어도 구원 얻는다고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멸망할 사람인지 구원얻을 사람인지 행위를 봐서는 불택자가 아니냐  이렇게 짐작은 할지라도 그 사람 꼭 불택자라 그렇게는 말을 못한다고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나 가지고 그만 예수님도 믿지도 못하고 나서 숨을 깔닥거리다가  그만 죽었다 그 아이는 구원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것은 건설구원은 없는  아이지마는 기본구원은 있는지 없는지 내가 똑똑히 모르겠는데 그 부모가  믿으니까 기본구원 선택자가 아니겠느냐 그렇게 짐작하는 것뿐이지 그 아이가  구원을 받았다 멸망을 받았다 단정하지를 못한다. 그 아이가 믿지도 않고  죽었는데 어찌 그러냐? 그것은 기본구원은 선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행위를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렇게 우리는 알아야 되고 그렇게 또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구원을 우리가 얻은 사람들입니다. 기본구원은 어떤 기  기본구원이고 하니 첫째는 선택을 받은 사람이요. 또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은  사람이요. 또 중생을 한 사람이요.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요. 또 영생을  가진 사람이요. 또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요. 생명의 부활을 받을 사람이요.

또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됐기 때문에 진리와 성령의 혜택, 이 보증을 받은  사람이요. 이것이 기본구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건설구원은 어떤 것이 건설구원이냐? 건설구원은 첫째로 우리의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으로 바꾸어져 새로와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으로 우리 지식을 삼는 것이 삼은 것만치 그것이 건설구원을 이룬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우리의 타락한 속성은 속성 이것이 하나님의 성령과 진리로 인해서  이 속성이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또 우리 생활이 또 전환을 받아서 생활이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어져 가지고 그 다음에는 우리의 심신이  우리의 심신이 중생된 영과 결합이 되고 영과 결합이 될 때에 영육이 하나된 이  참 사람이 됩니다. 그만침 그는 하나님과 연결이 되어져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본구원은 영에게만 있고 건설구원은 이 심신으로 된 육이 하나님과  진리로 새로와지고 힘을 얻어 강해지고 중생된 영에게 온전히 사로잡혀서 중생된  영은 주격이 되고 이 심신은 중생된 영의 소유물과 같이 마치 우리가 내  물건이면 던질라면 던지고 잡을라면 잡고 쓸라면 쓰고 둘라면 두고 하는 것처럼  내가 내게 있는 그 도구를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처럼 중생된 영이 그 심신을  영의 자유로 이렇게 쓸 수 있는 이런 위치 조절이 바로 되어서 그것이 하나님의  요구하시는대로 정상화 되어 지는 것이요.

그러면 그 중생된 영은 하나님과 동행해서 하나님에게 완전히 붙들려가지고  호리도 자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령님께 붙들려서 하나님의 자유가 그 영을  통해서 나타나고 그럴 때에 그 심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유가 나타나고 그  심신은 하나님에게 완전히 자유가 박탈되고 그에게 피동되어지는 자가 되어지는  이것이 우리의 건설구원인 것입니다.

그래서 건설구원을 이루는 이 마음이 건설구원을 이룬 것만치 그 마음은 영계에  가 가지고 그 영이 쓸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또 이 몸은 그 영이  이 물질계에 활동할 때에 물질계에 영이 쓸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심신의 건설구원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그 사람은 영계에 가서 영이  아무리 쓸라고 해도 영계에서 쓸 그 이 마음의 기능이 없기 때문에 거게 가서  있기만 있지 아무 작용을 못합니다. 또 이 육의 성화가 되지 안한 사람은 이  육의 기능이 없기 때문에 그 영과 마음이 육을 입고 이 물질계에 오기는  오지마는 아무 작용을 못합니다.

마치 어떤 그 회사에 거게 많은 그 분야가 있어 가지고 아주 직공을 얼마든지  지금 써야 되고 직공이 모지래서 돈도 요구대로 주고 직공을 쓸라고 해도‘가  거게 직공이 많이 쓰인다고 하니까 우리가 가자’백 명이 갔습니다. 백 명이  갔는데 하나도 쓸모없습니다.‘이것 좀 해보겠느냐?’ ‘아 그거 나는 전혀  모릅니다.‘이것 좀 해라’하나도 쓸모가 없소.

그러니까 백 명이 다 쓸모 없어서 쫓기 나왔습니다. 거 가니까 난중에 한 사람이  갔는데 한 사람은 가니까‘이거 할 수 있느냐?’‘녜 할 수  있습니다.’‘해봐라’합니다.‘이거는?’‘아 이것도 할 수  있습니다.’‘이거는?’‘이것도 할 수 있습니다.’ 있는 것 전부 다 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직공으로 쓸 수가 없다. 이 사람은 총감독으로 써야  되겠다.‘우리 총감독을 해 줄 수 있느냐?’‘아 감독할 수 있다.’‘그러면  감독하는 것은 어떻게 해?’‘감독하는 것을 환하이 다 알고 인간은 이렇게  다스려야 되고 또 기계는 이렇게 주의 시켜 다스려야 되고’아 그만 마음에  만족하다.‘이제 너는 총감독을 삼아라’이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응 영계도 물질계도 이 짧은 세상에서 우리에게 요 말씀 한번 실행해 봐라. 요  말씀 한번 연습해 봐라 그 연습했습니다. 연습하니까 그 연습할 때에 애로가  있을대로 있도록 하나님이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그 말씀을 실행할라고 할 때에  실행 못하도록 온갖 애로, 이 다음에 지장을 있을 지장이 있을 그런 애로를 다  봉착을 시켜도 문제없이 그 애로를 다 극복하고서 주의 말씀대로 그대로 실행을  해나갑니다. 그러면 그때 합격, 요 면은 이제 더 시험받을 것도 없고 시험해  볼것도 없고 요 면은 완성이 됐다.

요것이 뭐이냐?‘시험을 받고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에 대하여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을  주시리라’하는 그것이 그 말씀을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그렇게 아무나따나 이 세상에서도 노름꾼 도박꾼 이 미신자를 용납지  않고 그것이 망하는데 하늘나라 그런 것 모양으로 믿사옵나이다 하면 되는 줄  압니까? 아닙니다. 그거 다 사람을 미혹시키는 거짓선지자라 그말이오. 녜  믿사옵나이다 그거 가르치는 것이 나쁜 기 아니지마는 요것이 구원이 된다는 그  면에 있어서는 거짓선지라라 그말이오.

귀신을 쫓아내고 선지자 노릇하는 그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요 신유의 은혜지마는  그것이 구원이라고 말을 했으면 그말은 틀렸기 때문에 그면 대해서는  거짓선지라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고 하늘의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요게 요렇게 말씀했으면 요거 기본구원같이 되어 있다 그말이오.

그러나 또 다른 성경이 증거를 해서 기본구원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늘에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말했느냐?‘자’했으니까  그것이 물체입니까, 무인격체입니까, 인격체입니까? 인격체지요. 인격체인데  그러면 말이 인격체이니까 그, 그 사람 전체를 말한 것 아닌가?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신이라 이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말하는 건 우리가 하나님이라 말  아니요. 하나님의 형상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를 신이라고 이렇게 말했고, 또  하나님의 형상이라 이렇게 말했고, 예수님도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음받은 모형입니다. 또 우리의 마음은  영을 우리의 영을 따라서 영 모양으로 지음받은 것이 마음입니다. 또 이 몸은  마음의 모양을 따라서 지음받은 것이 이 몸입니다. 그러면 몸이 팔이 있고  우물주물 이래 있으니까 그것을 말하는 기 아니라 그것은 지체고, 우리 마음의  마음의 슬픔이 있으면 그 몸에 슬픔이 나옵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으면 몸에  기쁨이 나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있으면 몸에 두려움이 나옵니다. 마음에  사기성이 있으면 그 몸에 사기성이 나옵니다. 그 마음에 있는 것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 그것이 몸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근본이 하나님이요. 그 다음이 영이요. 그 다음이 마음이요.

그 다음이 몸이기 때문에 이 심신을 이것을 그 인격체로 말한 것입니다.

인격체로 말해서 자라고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을 말하는데 그 영이라는 것은 사람 영이 아니고  성령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라’육신의 생각이 그 뭐인가? 육신의 생각을 과거에  고신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졸업맡고 온 그 사람들이 해석할 때에‘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그 육신을 해석을 하기를 육신의 원어가 원어가 싹스라.

원어가 싹스라. 원어가 싹스기 때문에 그 육체는 부패성을 가르쳐 말한다 그래  가지고 다 육체의 생각은 부패성의 생각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기를 그 부패성의 생각이 아니라 마음과 고기덩어리의 생각이라  이렇게 말했더니마는 그만 그래 가지고 그만 그 신학교 학생들을 그때 정죄를  받았습니다. 나는 그걸 몰랐거든 처음에 가 입학해 가지고 이래 그 세계를  모르고 나는 떡 말을 했더니마는 그만 그 틀렸다고 이래 가지고 정죄를 받았다  말이요.

정죄를 받아서 나는 원어를 모르니까. 거기에 그때에 그 내가 날 가깝게 하고  있는 지금 우리 큰 사위 최장로인데 그 그분에게 가서 말하기를‘너 보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밖히실 때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음은 원이로되 육체가  약하도다 하는 그 육체가 단수냐, 복수냐?’이러니까‘단수라’이래요. 단수는  예수님을 말한 것이지 인간을 말한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거든 단수라. ‘그러면  거게 있는 원어가 육체라 하는 기 뭘로 되어 있느뇨?’‘싹스입니다.’‘아  그러면 요한복음 1장 14절에 그 육신이 사람이 되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니 하는 그 거게 있는 그 육체라 하는 그것이 뭐이냐?’그 원어를  물으니 그것도 내나 싹스라 이래. 그래서 그때 정죄를 면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한다는 그 육신이 원어가 뭐이냐?그 싹스라.

그래서 내가 그때에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싹스 싹스라고 원어로 해 가지고  부패성이라 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러면 예수님도 부패성이 되어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대속했다 그말이냐? 이러니까 그만 그게 틀렸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육체의 소욕이라는 이 육체를 그 원어에 싹스기 때문에  부패성이라하는 그말은 제거 됐습니다. 지금도 그말을 쓰는지 몰라도 그말이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어학을 해도 하나님 성령이 가르친 것마는 못합니다. 육신의 생각하는 그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이 순전히 마음과 고기덩어리 영은 죽어버렸고 안 믿을 때  우리가 안 믿을 때에는 영은 죄와 허물로 죽어버렸고 이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주장이 되 가지고 하는 그 모든 생각은 다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활동하는 것을 인격체로 봅니까,  안봅니까? 어찌됩니까? 안 믿는 사람과 하는 것을 마음과 고기덩어리가 주장이  되어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우리 마음이 주장하는 이것을 인격체로 봅니까,  안봅니까? 뭘로 보요? 마음과 고기덩어리 이 둘이 합해 가지고서 활동하고 있는  이것을 인격체로 봅니까, 그것은 인격체로 안 봅니까? 안 믿는 사람 인격체로  봅니까, 안봅니까? 인격체로 본다 그말이오.

왜 요 말을 지금 하고 있느냐 하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했으니까 요거는  영육의 전체가 요렇게 자꾸 그 해 가지고 사람을 미끌어지게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요게 인격체로 말하는 것이 영이 아닌 심신도 인격체로  말하는 것은 그 모형이고 모형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이걸 깊은 뜻을 이것을 모르고 껍데기만 가지고 여 동일교회  어떤 사람이 부흥회 와 가지고 이 옆에 교회 있는 그 그때 내가 장립 안 받을  때인데 여 옆에 있는 교회에 조사는 죄를 지어 놓고서 죄를 지어 놓고서  말하기를‘손이 지은 죄를 지었지 네가 죄를 지었나 발이 죄를 지었지 내가 죄를  지었나’이렇게 영은 죄를 안 짓고 고기덩어리만 죄를 지었다고 그렇게 말한다고  그렇게 해서 그 그래놓으니까 그 사람들이 저거 옳다고 손뼉을 치고 조롱을  한다고, 그러면 그 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고 범죄하는 것은 그 심신이 들어서  범죄한다는 그 마음과 몸이 합해서 육이라는 것을 그 사람들이 모르고 다만 이  고기덩어리 이것만을 육이라고 생각하는 줄로 그렇게 견해했기 때문에 틀렸다  이기요. 영육이 사람이라고 말할 때에는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속성대로 지음  받은 것이고 육은 심신을 합해서 요것을 가르쳐서 육이라 요렇게 말했고  삼분설할 때는 그 영, 혼, 몸 요렇게 혼이라고 말했습니다. 혼 요거는 개도 혼이  있소. 개도 혼이 있다고 말했소.

그러기 때문에 요 우리의 마음 부분이라는 것을 얼마든지 알 수 있지마는 알라고  하면 알지마는 알지 않고 제것을 옳다고 남을 정죄할라고 하면은 알아지지를  않는다 그기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간다’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요것이 기름 부음이 가르치는 그 기름 부음이 가르치는 요것이 하늘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것인데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에 신구약  성경이 많이 있지만 이 신구약 성경은 공통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공통적인 하나님의 뜻이요.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사용하는 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공통적이 하나님의 뜻을 자기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 가지고 가지고  있으면 어떤 데 필요 있느냐? 요게 있는 하나님의 뜻은 공통적인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그 개인에게 개별적인 하나님의 뜻입니다. 개별적인 하나님의 뜻, 한자리  있어도 한자리에 있어도 이 사람에게는 이래 해라 또 저 사람에게는 그렇게  해라.

한 시간 한자리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마다 ‘너는 이래 해라. 너는 이래  해라. 너는 말하지마라. 너는 말해라. 너는 가라. 너는 있으라.’ 이렇게 개별에  대해서 개별적인 그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귀도 마귀도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내나 하나님의 성구를 가지고 말을 했고 또 예수님도 하나님의  성구를 가지고 말했지마는 마귀는 공통적으로 일반적으로 쓰는 이 성경 말씀을  이 말씀을 개별적으로는 예수님에게 잘못 적응시켰습니다. 잘못 적응시켰소.

만일 마귀가 바로 적응을 했다고 하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그렇게 그거  부하지는 못하지요.

이런데 그걸 개별 그 하나님의 개별적인 뜻을 요것을 맞추지 않고 공통적인 뜻을  가지고 떡 그러니 개별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야기 했다 말이요.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예수님에게 하신 개별적인 그 뜻을 가지고 딱 대항을 하니까  마귀라는 놈이 항복을 해 도망을 쳤다 이기요.

그러면 우리가 성경에 많이 읽지마는 성경 가운데에 내가 개별적으로 내 현실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그 개별적인 뜻인 그 종류를 바로  선택해야 됩니다. 그러면 그 종류를 선택했으면 다 됐습니까? 아니요. 종류를  선택했습니다. 종류를 선택했을 때에 그 뒤에 성령이 오셔서 옳다 인정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성령이 오셔서 옳다 인정을 할라고 하면 종류를 바로 택한 거게다가  무엇을 첨부를 해야 되느냐 하면 그 뜻을 행할라 하는 그게다 자기로서 할 일은  마음, 뜻, 힘, 목숨, 성품 요것을 똘똘 뭉쳐서 하나가 만들어 가지고 요 뜻을  행할라고 요 뜻을 행하는 데에는 마음만 행하고 뜻은 딴데 가 있고 또 뜻은 요게  있지마는 자기 욕심은 딴데 가 있고 또 지금 요 일을 하면서도 속에는 지금  성품은 요걸 행하면서 속에 성품은 악독이 가득차서 저거 복수를 할라하는 그런  지금 성품이 가득이 찼고 이러면 암만 종류를 바로 택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긍정을 할 수 없다 그말이오.

그 자기라는 것이 자기대로의 이 모든 인격이 집합이 되 가지고 요 모든 걸  마음, 뜻, 목숨, 힘 자기 요소를 다 해 가지고 요 하나님 뜻 발견한 요것을  실행할라고 요래 딱 할 때에 그때에 그것이 무엇을 요청하는 것입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대로 마음, 뜻, 성품, 힘, 목숨 요것을  다 해 가지고 하나님의 그 말씀을 비추어 가지고 요것이 하나님의 뜻이겠다 하고  그것을 바로 종류를 선택했습니다.

선택했을 때에 그 노력하는 자를 가리켜서 이름을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  노력하는 자, 그 노력하는 그 기관을 가르쳐서 뭐라고 말했지요? 그것이 착한  양심이라. 그것이 신양양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착한 선한 양심, 그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간다 하는 그 착한 양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것이 요래 가지고 종류도 바로 택했고 자기대로는 자기가 다 집합해  가지고 똘똘 뭉쳐서 요 하나님의 뜻을 행할라고 지금 그 대결하고 있습니다.

요럴 때에 비로서 성신의 감화가 오는 것입니다. 성신의 감화가 오는 것이요.

왜? 요것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요것까지는 할 수 있는 것은 요것까지는  뭘로 하느냐? 성경 말씀 가운데에 내재하는 영감이 있습니다.

영감도 여러 영감이 있습니다. 한 영감이지마는 여러 모양으로 역사를 한다  그말이오.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이 역사를 해서 도와 가지고 성경  가운데에 요기 지금 네가 행할 것이다 하는 하나님의 뜻을 알려 줬다 말이요.

요것은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이 요렇게 역사를 했고 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도록 요렇게 한 것은 그 일반적인 그 일반적인 그 작용  영감이 와 가지고 요것을 요렇게 집합을 시켰습니다.

요 집합을 시킬 때에 어떤 순서가 되니까 요 집합을 하게되느냐?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도록 요렇게 하는 자기의 그 전 인격이 집합이  되 가지고 하나가 되 가지고 요렇게 되도록 되느냐? 그 밑에 밑잘미를 보면은  그게 되기 전에 로마인서 12장에 보면 그렇게 말했습니다.

‘네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라’이 말은 너는 주의 피로 구속받은 자이기 때문에  주를 위해서 살아도 주의 것 죽어도 주의 것 이제 주님 위해서 이 전부를 다  받혀서 살겠다 하는 요것을 작정해야 된다 그말이오. 요거는 그 성경 깨달으면  성경 안에 내재적 영감이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요거 작정할 수 있습니다.

요기 작정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네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함을 받아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네가 분별하도록 하라’요랬기 때문에 그  성경 안에 있는 영감의 힘을 받아 가지고 자기대로는 노력해서 그 뭐‘주여 내가  괴롭든지 즐겁든지 손해가든지 유익되든지 당신의 뜻만 알려주면 내가 그대로  행하겠습니다’하는 요기 있기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입니다. 요걸  가지고 하니까 비로서 하나님의 뜻을 종류적으로 바로 찾았소. 종류로 바로  찾았소.

종류로 바로 찾아 가지고 지금 마음도 뜻도 성품도 힘도 목숨도 딱 대기해  가지고 하나님 뜻을 찾아 가지고 요기 집합되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뜻을  실행하고 집합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럴 때에 성령의 감화가 와 가지고  저것을 재조정을 합니다. 재조정을 해요. 요시야게를 한다 그말이오. 요 준공을  해. 재조정을 해 가지고 성신의 감화가 오면 참으로 마음, 뜻, 성품, 힘, 목숨이  똘똘 뭉쳐 가지고 아무 것도 생각없고 천지가 다 하나가 요 단일성이 된다 말은  하나가 되서 하나가 되 가지고 그저 주님의 뜻 요것을 행할라고 단정 하면 요  일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이제 그때에 이제는 참 완전하신 하나님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과 비로서 연결이 됩니다. 결합이 됩니다. 그러면 결합이 되면 요것을  표시해서 말하기를 영생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영생이라 말은 하나님에게  영원히 끊히지 안하도록 결합이 됐다 그말이오. 하나님이 결합이 됐으니까  결합이 됐으니까 결합된 것만침은 그것이 뭐인지 압니까? 전지자요 전능자요.

그는 자유가 없습니다. 완전히 하나님과 연결되 가지고 하나님의 그 모든 것이  연결된 그를 통해서 나온다 말이요.

그러면 연결된 그 부분만침은 전지 부분입니다. 전능 부분이요. 요렇게 해서  하나씩 둘씩 딱딱 요렇게 그 구속해 나가기 때문에 우리의 영은 단일성을 가진  단일체기 때문에 단번에 구원은 얻든지 죽든지 하지마는 우리의 이 심신이라  하는 건 이거 천쪼가리 만쪼가리 넘은 것입니다. 이건 집합체요. 이 집합체인데  이 집합체가 집합체가 단일체같은 단일성같은 것이 되어질 때에 비로서  이루어진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 구원이라는 것은 그 순서로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이지 아니하고  그저 오만 것 다 제가 잘났기 때문에 못난 사람은 다 기울이지마는 자기는  잘났기 때문에 조그매만 기울려도 안되겠느냐 하고 자기를 다 기울이지 않는  자는 구원을 구경하지를 못합니다.

건설구원은 자기를 다하지 안하면 건설구원은 구경을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네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아니하면 내 제가 되지 못한다’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된다. 그러면 자기 부인이라 말은 자기 욕심이나  소원이나 자기 조건이나 문제나 이것은 다 부인해버리고 십자가 지라 말은 네  있는 것은 전부이 하나님에게 다 받혀 사는 요기 되야 된다. 이기  성화구원입니다. 기본구원은 우리가 다 얻어놨소. 성화구원은 이렇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이 구원된 것은 전부이 권능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 이 구원을 이룬 것만침 그 사람은  권능이요. 이룬 것만침 그 사람의 권능이요 그 사람의 지혜요. 그 사람의  완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 이 성화 구원이 바로 되가면 뭣 닮습니까?  하나님 닮습니다. 하나님 닮기 때문에 그의 희노애락이 하나님과 같애. 지혜가  하나님과 같애. 점점 하나님과 같이 되어지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이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를 믿었는데 그 사람이 잘 믿는다 하는데 무걸호인으로 아주  그렇게 그만 뭐 그저 비빔밥 모양으로 물에 물 탔는 것 술에 술 탔는 것 이래  가지고 그만 흐리멍텅한 그 사람은 예수를 잘못 믿었다 그말이오.

그러기에 불교인은 암만해도 보면 압니다. 불교인은 보면 그 사람들이 그 하나  하나 구별해 가지고 들어가는 그거는 않고 그저 자기가 참신만 하고 음 이래  가지고 자기만 생각지 않고 무아로 들어가면 된다고 하기 때문에 그 불교인은  오팍조팍한 것이 없습니다.

밤송이는 그렇지 않아요. 밤송이 그 말하자면 인격이나 용모가 밤송이 같이 않고  둥그런 꼭 달같습니다. 둥그런 달같이 되버려요. 그 예수 믿는 사람은 잘 믿는  사람은 밤송이 같이 됩니다. 오막조막 오막조막해서 어떻게 모도 많고 구멍도  많고 날카롭기도 하고 이해도 많고 이 괭장한 천각도 만각도 더 넘는 뽀족뽀족한  다각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건설구원은 이것이 건설구원인 것을 알고 이 구원을 위해서는  자기 소유나 자기 몸이나 자기 마음이나 자기 생명이나 자기 기능이나 이것을 다  바칠 때에 건설구원이 조금씩 이루어져 나가지 그 현실마다 이루어 나가지,  그러기에 당장에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요 그 현실 현실에 이루어져서,  그러면 현실이라는 것은 어떤기 현실이냐? 그 현실을 살펴보십시요. 그 현실에는  반드시 우리가 어릴 때에 알기 쉽게 하나님과 진리 그 둘과 하나님과 진리 둘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진리와 그게 반드시 비중을 다는 기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과 진리와 돈과 비중이 달아 가지고 네가 돈 할래, 하나님 진리 할래?  이러니까 돈이 많으면 안 되지만 돈 이거 뭐 천원 이것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 팔  수 있느냐 해 가지고 천원이 손해가도 하나님과 진리를 취했습니다.

하나님과 진리를 취했으면 요 사람이 하나님과 진리를 천 원보다 낫게  여겼습니다. 실은 그 천 원보다 낫게 여겼습니다. 이러니까 천 원어치만치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는 합해졌습니다. 그렇지마는 돈이 백만 원 문제가 척  오니까 하나님과 진리냐, 백만 원이냐? 돈이 많으니까 그때는 이 하나님과  진리는 팔아도 돈을 취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그만 처음에는 돈보다 하나님을  낫게 여겼지마는 큰 돈을 오니까 하나님과 진리보다도 달리 여겼다 말이요.

예를 들면 이와같이 모든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이냐 진리냐 어느 것을 취할  것이냐 이래 가지고 자기가 구속받은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  배반하고 지금 뚝 떨어져서 하나님을 배반한 일을 현실에서 만드는 일인지  그렇지 않으면 현실에서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 확정되어지든지  그러기에 우리 현실은 하나님의 것된 것이 이제 하나님을 배반해서 마귀와 세상  것이 되어지고 옛사람 자기 것이 되어지든지 하나님의 것 되는 것이 이제는  세상이 암만 달라들어도 요렇게 해도 변동없이 하나님의 것으로 이거는 완료됐다  하나님의 것으로 완료됐으면 그게 뭐입니까? 그게 뭐이지요? 영생, 영생입니다.

예. 이렇게 우리 구원은 세밀히 되나가는 것인데 이것을 마구 예수만 믿으면  됩니다. 믿사옵나이다 하면 됩니다. 교회만 나오면 됩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그말은 범위가 큽니다. 예수를 믿는다 말은  믿는다 말은 쫓는다 말이오 쫓아 뒤를 따라간다 말이요 닮는다 말이요 예수님를  닮는 것도 믿는 것이요. 예수님을 본받는 것도 믿는 것이요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도 믿는 것이요 예수님과 같이되어져가는 것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으면  구원얻지요. 이 말 속에는 한없이 있는 건데 다만 이걸 자기 지식대로 내가  의심하느냐 믿느냐 의심하느냐 믿느냐 요것으로 판정을 지어지는 요게서  믿사옵나이다 하면 다 된다 하는 것은 이것은 참 천부당 만부당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거룩과 진실이 있어야 된다는 그것은 거룩은 자꾸  구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구별해서 자기가 구별해 가지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해 가지고 하나에 만나 가지고 그 더 이상 찾아 나가지 못할 때에 우선  다 이제 됐다 완성이다가 아니요 더 이상 찾아나가지 못할 때에 그게서 바울이  말하기를‘내 양심에 자책할 것을 찾지 못했으나 이로 인해서 내가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이랬습니다.

자기가 어두워 가지고 지금 구별을 못해 나가지 이제 이기 완성이라 이렇지  그것이 완성이라고 생각지 않고 이 이것이 아직도 미완성이고 여게 더 찾아서  나갈 바른 것이 있을 터인데 내가 이걸 찾아 나가지 못한다 이런 마음에 있기  때문에 항상 그것이 거룩으로서 갈급 가운데 있는 것이고 미진 가운데 있는  것이고 자랄라고 하는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것이 이 세상에서는 옳은 자세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빌립보 3장에 바울이 말하기를 네가 어데까지 달렸든지 어데까지  성장했든지 그대로 달려야 된다. 네가 거서 이만침 했다고 됐다고 그렇게 하지  말아라. 우리의 건설구원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이렇게 말했는데 껍데기는 또  얼마든지 무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깨닫을 것은 우리로서 할 수 없는 것 성령과 진리와 피가  보증을 우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이 일을 위해서 모든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또  이제 사람이 넘어지면 어찌 되느냐?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돌이키면  용서해 줘라 하는 것이 주님의 주장입니다.

또 이제 거서 오만 죄를 짓고 있는 그자가 당장에 잡혀 가지고 왔어도 ‘자  죄없는 자부터 돌로 쳐라’이래 다 갔습니다.‘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그말은 이제 이것으로 끝나버렸다. 너는 희망이 있다 끝나버렸다.

나도 너를 끝난 것으로 하지 않고 네가 돌이켜 회개하면 얼마든지 앞으로 건설  있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해 가지고 가는 것이 막달라 마리아 아닙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도를 바로 알면 나갈 길이 있습니다. 이걸 바로  모르면 엉뚱한 길을 가 가지고는 헛일이라 그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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