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안하는 사람-사람접촉

 

1987. 1. 22. 새벽 (목)

 

본문:마태복음 5장 27절∼30절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요한계시록 21장 27절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2장 15절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개는 개를 좋아하고, 소는 소를 좋아합니다. 배암은 배암을 좋아합니다. 지네는 지네를 좋아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사람도 성경에 개라고 말한 사람도 있고, 도야지라고 말한 사람도 있고, 염소라고 말한 사람도 있고, 복술쟁이라고도 말한 사람도 있고, 거짓말쟁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고, 음란한 자라, 음행자라, 간음자라고도 말한 말씀도 있습니다.

사람도 다 같은 사람이지마는 그 종류가 각각 다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을 하나 표준하면, 다 압니다. ‘저 사람은 무슨 사람이가? 저 사람은 복술 있는 거짓말쟁이다. 진실이 없고 꾀쟁이다. 그저 이 형편되면 이리 말하고 저 형편되면 저리 말해서 그 사람이 진실치 않는 거짓말쟁이다. 또 그 사람은 저거는 불건전한 신비주의자다. 좀 있으면 미쳐진다. 신비주의자다. 저 사람은 미련타. 저 사람은 깍쟁이다. 저 사람은 정확무오한 사람이다. 저 사람은 뼈없는 호인이다.’ 그거 무골호인이라고 아무 속에 창자없이 그저 주위 환경에 따라서 허허 웃고서 지내는 그런 아무 속없는 창자없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서 뼈없는 사람이라.

또 어떤 사람은 ‘그런 사람은 속에 깨갱이가 없는 사람이다. 속에 깨갱이 있는 사람이라. 그래도 그 사람이 아귀힘이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아주 슬먼한 그래도 속에 아주 꽉 거머쥐면 놓지 않는 아주 아귀힘이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끝이 없는 사람이다. 풀어진 사람이다. 뒤꼬리가 무른 사람이다. 철저한 사람이다. 뭣이든지 한번 맡아 놓으면 변함이 없다.’ 그뭐 별별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번만 봐도 그거 다 봅니다.

저 ○집사 아들 이름이 뭐꼬? 이름이 뭐꼬, ○ “ 뭐꼬? ○장로가? ○장로 아들, 이름이 뭐꼬? ○○○. 저거 저 ○○교회 있으면서 예수 잘 믿겠다고 여기 나왔는데 여기 나와 가지고는 뭐 아직까지 그 표가 안 납니다.

그런데 내가 꼭 하루 일을 시켜 봤어. 일 시켜 봤는데 뭘 시켰느냐 하면 그거 여기 저 공굴 이거 거석한 거 그걸 좀 요걸 따 가지고 한번 해 봐라 했는데 시켜 보니까 그 아귀힘이 있어. 꽉 거머쥐는 아귀힘이 있어서 그게 쓸모는 있기는 있는데 뭐 하나 잡으면 고거나 할 줄 알지 딴걸 평가해서저는 뭘 잡든지 하나 잡으면 그걸 가지고 꼭 달성해 내고 성공을 해 내고 이랄 사람은 할 사람이라.

그면은 장점이라 쓸모 있지마는 이거 저거 전부 평가할 줄 몰라. 이거보다 이게 낫나 이거보다 이게 낫나 이래 가지고 그게 없어서 ‘저게 지금 올 때보다 좀 발전이 없는데 어떤고?’ 이래요. 한번 보면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그거 다 모르는 거 아니오. 여러분들이 다 아요. 서로 다 ‘그 사람은?’ 만일 쓰라 하면은, 그 사람의 단점을 쓰라 하면 거의 다 아마 안면 아는 사람은 단점을 다 같이 써 낼 겁니다. 또 장점을 써내라 하면 거의 다 같이 장점을 써 낼 겁니다. 그만침 사람들은 사람을 정확히 알고 겉어머리 간판이 다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개는 개 좋아하는 것처럼 벌써 저 사람이 저 사람하고 거석하면은 그 사람이다 이래 그만 그렇게 평가할 수밖에 없고 또 그 평가가 사실에는 옳습니다.

‘저게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이럴 때는 그 사람을 모르면, 그뭐 심판할라고 사람을 알라 하는 게 아니고 사람을 모르면 그 사람과 관계를 잘못하면은 내가 그 사람으로 죽을 수도 있고 또 그 사람을 내가 살리지 못하고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에는 사람을 바로 아는 것이 둘째로 중요합니다. 이러니까 사람을 모두 다 이래 보고 듣고 접하는 데에서 그것을 바로 알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기에, 벌써 그 사람을 보면 어떤 사람하고 가까이 지내나? 자주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 그러면 그거면 ‘아, 알았다.’ 그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그 동무를 보아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하는 것이 그만 통계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저 안 봐도 ‘저게 지금 누구를 아마 좀 만나지?’ 봤습니까? 누가 말? 말 안 들었어. 안 들었지만 그거 다 아는 거라. ‘저거 누구를 지금 아마 접하고 있지?’ 그래 혹 접한다 말을 들으면은 ‘과연 그렇지.' 그러니까 여기 앉아서 그 사람을 뭐 수천 리, 한국으로 말해도 천 리 밖에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데 어째 알겠소? ‘그 사람이 지금 아마 누구하고 누구하고 만나 가지고 어떤 작용하지?’ 하는 데는 많이는 그래도 한 구십프로는 맞습니다. 구십프로는 맞소. 이러기 때문에 교회 그뭐 교회 정치를 하는 거 이런 거 다 하는 거 그대로 다 맞기 때문에 그대로 하니까 그것이 판정이나 그 결정이나 모든 처리가 별로이 틀리지 안해요.

이렇게 사람이라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 하는 그것을 모든 사람이 다 거의 정평 정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늘나라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것이 뭐 구원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지 구원이 아니라면은 그 뭐할라고 새벽에 나오고 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그저 먹고 마시고 뛰고 놀자 하지 뭐 때문에 그렇게 이리 존절히 하고 자꾸 조심하고 이 남한테 해되는 일을 당해도 참고 견디고 또 자기하고 싶은 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모든 것을 절제하고 제재해서 이렇게 살겠습니까? 이는 구원 때문에 하는 것인데 구원에 손해간다면 아무것도, 살 필요도 없어. 알고 보면은 구원에 유익이 없다면은 말할 것도 없고, 행동할 것도 없고, 밥먹을 필요도 없고, 살 필요도 없고 구원에 유익이 없다면 전부 망하는 일이기 때문에 심판받으니까 안 하는 게 좋고, 안 사는 게 좋고, 안 난 게 좋지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하나님의 행동록에 또 하나님의 그 모두 촬영하는 데에 자기 말한 것만 촬영되는 게 아니고 행동하는 것만 찰영되는 게 아니라 자기 속에 마음의 뜻과 생각을 다 찰영된다 했어. “마음의 뜻과 생각을 살피는 자시니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신다” 해 놓고 그 밑에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과 뜻을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라” 그렇게 말했어. 퍼뜩 지나가는 마음이라도 한번 자기 마음에 지내간 것은 그것은 없어지지 안하고 그것이 다 심판에 나온다고 이렇게 성경에 말하지 안 했습니까? 이런데, 우리가 구원을 이것을 잘 이룰라고 애를 쓰면 자기가 암만 조심한다고 해도 접하는 사람이 잘못되면 잘못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저 사람으로 인해서는 내게 구원에 손해를 본다, 구원에 손해를 본다.’ 하는 그것을 확정을 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저 사람으로 인해서 구원 손해보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이것을 뭐 일 년 기도한다고 그게 되는 줄 압니까? 아니오. 십 년 기도해도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십 년 기도해도 그만 만나면 그만 손해가 나 버리고 그만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그렇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원수가 네 집안 식구리라”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 구원 이루는 데에 손해가는 원수라 말이지 그뭐 한 집에 한 솥에 밥먹고 있는 사람이 무슨 원수겠소? 그러나 그 사람으로 인해서 자기 구원 이루는 데 손해보는 걸 말합니다. 이렇게 손해보니까 손해보는 그걸 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친한 사람과 많이 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사람으로 인해서 구원에 손해를 많이 봅니다.

그러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사람에게 구원의 유익도 많이 줄 수 있고 손해도 많이 줄 수 있고 이해가 거기 제일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원수가 제 집안 식구니라” 이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저딴에는 뭐 그걸 암만 숨겨도, 그만 이렇게 모든 그 면에 대해서 관찰력을 이렇게 넓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보면 압니다, 그만. ‘조거는 어떠한 사람이고, 과연 그럴듯 했는데 그런 사람이다.’ 이렇게 알 수가 있어.

있으니까 그거 뭐 어떤 심리 하나를 ‘저게 왜 저 사람이 왜 이리 친절하노? 저 사람이 어떻게 저리 관심이 있노? 저 사람이 어떻게 저리 공연히 좀 지내가는 말이라도 자기가 헐지는 안해도 남 허는데 찬성을 하고 있노?’ 사람 접촉, 멀고 가깝고 요걸로써도 다 알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걸 뭐 어떻게 숨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은 숨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숨겨지지 않는 것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이 사람 접촉이라 하는 것을 조심하지 안하면은 자기 구원은 다 헛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 사람들이 접촉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그렇게 큰 문제가 없지마는 제일 큰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이, 우리 교회로 말하면 이 구역장, 남녀 구역장들에 대해서 목사는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게 보면 그 사람이 잘못되면은 많은 교인들이 다 잘못되지, 그 다음에는 중간반 반사들 저거 잘못되면 안 되지, 또 일반 반사도 안 되면 안 되지, 이러니까 거게 대해서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고 또 거기 대해서 간섭을 안할 수가 없어.

말하면 들어야 돼요. 말하면 듣고, 들어야 되지 요리 조리 빈정빈정하면서 안 듣는 사람은, 옳은 말 듣지 않는 사람은 망하는 것입니다. 주위에서 말하면 들어야 되지 그걸 누가 남 듣기 싫은 소리를 참 하는 것은 다, 어떤 사람은 남 듣기 싫은 소리를 제 취미로 하는 사람 있는데 그 사람은 반드시 그거 자기가 박살이 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말하는데 듣기 좋아합니까? 그 사이가 견딥니까? 다 깨져버리고 말지.

그러나 옳은 말, 그 사람에게 유익된 말, 주님이 기뻐하시고 주님이 하라는 말 그거는 안 할 수가 없어. 할라 하면 지금 그 사람과 원수가 될 판이지, 원수가 돼도 뭣 때문에 하느냐? 주님이 옳은 일 하시려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 사람 듣기 싫은 말 함으로써 그 사람과 원수돼 가지고 내게 큰 공격이 오고 큰 충격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하지 안하면 십자가의 원수의 걸음을 걷는 것이고 자기 진 십자가를 자기가 지지 않기 때문에 다 그런 거 다 생명 내놓고 사람 잃고 다 그렇게 할 요량하고 말하는 것이지 남을 헐고 뜯고 훼방하기 위해서 하는 말 아니오.

그러기 때문에 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없는 말이면 말 안 합니다.

자기에게 유익될 말에 대해서는 별로이 안 합니다. 자기에게 이해될 말은 안 해.

다른 사람에게 유익될 말만 하지 유익되지 안할 말 그런 말은 뭐 하지를 안해.

자기 마음에 감정에 분해서 할 말 하지 안해. 꼭 유익될 말이 아니면 별로이 안 한다고.

그런데, 여기 마태복음 5장에 본 말씀대로, 어짜든지 내가 보기에는 그 이상해요.

과거에는 나는 알기를, 영 상식이 내가 바꿔져 버렸어. 알기는, 남녀 이 음란에 대해서는 남자들이 더 심하다 하는데 남자들이 심한 것이 칠십프로라면 여자들은 백프로입니다. 이거는 뭐 아무 거석도 없이 어떻게 음란스럽고 더럽고 추접하고 생각이 그런지, 공연히 자기를 더럽힙니다.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그 눈은 뭐, 눈 이거는 물론 눈이 봄으로 욕심을 안 낼 것도 봄으로 욕심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어요. 견물생심이라. 눈으로 보면 마음에 생각이 난다. 이 일을 봄으로, 자기가 그런 일을 봄으로 사람이 감정도 나고, 욕심도 나고, 분도 나고, 이럴 수 있고 또 뭣이든가 사람을 봄으로써, 물건을 봄으로, 일을 봄으로써 자기가 거기 따라서 피동돼 가지고 죄를 짓기 때문에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그 말입니다.

“눈이 범죄케 하거든 빼버리라” 그 말은 눈으로 공연히 이렇게, 눈으로 보고, 물질을 본다든지, 사람을 본다든지, 사건을 본다든지, 그 사건도 제게 상관없는데 그 사건을 봄으로 공연히 그 충격받는다 그 말이오. 충격받아 피동돼 가지고.

물건을 보고 사람을 봄으로써. 그걸 가리켜서 “눈이 범죄케 하거든 빼버리는 게 낫다” 빼버리는 게 나은데 여기 제일 중요점이 뭐이냐 하면은 눈 하나가 범죄하는데 다른 모든 백체 중에, 백체라 말은 백체도 더 되지마는 이래 표현을 인간의 만수의 만수가 백이 되기 때문에 백이라 말한 것입니다. 백체 중에 눈 하나가 범죄했으면 구십구 지체는, 구십구체는 괜찮은 거 아닙니까? 이렇지마는 한 지체 요것 때문에 구십구 지체가 깨끗해도 소용 없이 온 몸이 다 지옥불에 던지워진다 이랬어.

이러니까, 어느 한 지체라도 그게 범죄하면은 전지체가 다 고거 고치기 전에는 전지체가 공동체 단일체가 돼 가지고 이것이 심판은 같이 받는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딴에는 구십구가 다 깨끗하니까 다른 사람들 볼 때에는 ‘저 사람은 참 깨끗하다. 저 사람은 구원 잘 이루어간다.’ 이렇게 생각할 터인데 거게 한 지체 그것이 범죄했으니까 구십구 잘한 거는 소용이 없어. 그걸 딱 떼버리든지 그것 고치면 이제 구십구가 구원을 얻지마는 고거 하나 잘못되면은 구십구 깨끗한 게 아무 소용이 없어.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내 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하나 그거 없애버리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게 유익하다 했으니까 그 한 지체 때문에 다른 깨끗한 지체도 전부 다 공동 그 계산으로써 공동 심판을 받는다는 말 아닙니까? 우리가 요것을 얼마나 지금 알고 울어야 되고 생각해야 될지 모릅니다.

그러면 자기는 구원 이루는 줄 아는데 마귀란 놈은 알고 있다 말이요. 마귀는 알기 때문에 ‘네까짓 게 구원 이룬다고 암만 애를 써도 요거 한점 요게 그렇기 때문에’ 고거 가지고 자기 구원은 이루어지지 안해. 뭐 딴거는 다, 지식도 자랄 수 있어. 지식도 자랄 수 있고, 사람들은 전체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도 자랄 수가 있고, 명예도 자라갈 수가 있고 그래 모두가 자랄 수 있지마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은 안 자라간다 말이요. 요거 알아야 돼요.

이러니까, 사람들이 요 성구를 무시하는 데에서 우리가 구원에 헛일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거 참, 사람들이 그만 시집을 가는데, 시집을 가는데 약한 남자한테보다 강한 남자한테 가, 강한 남자한테 가면은 그게 사지를 못 씁니다. 사지를 못 쓰고 보면은 애연스럽기도 하고, 또 그게 무슨 자유 활동하는 데 자유에 꼼짝을 못 해서 종되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또 신체가 건강해 놓으니까 이게 막 만날 눈이 들어가고 빼짝 말라 가지고 그만 기운을 챙기지 못하는 그런 것도 있어. 그것도 보면은 애연스럽기는 애연스럽지마는 그게 만일 약한 남자한테 가 놓으면 이게 바람 피우고 돌아다니고 또 자꾸 이랄 터이니까 그거 요량하면 또 그게 나아, 차라리.

남자도 여자도 다, 어떤 남자는 이게 좀 이 남자는 건강한데 여자는 약해 놓으니까 이게 건강이 남아 있으니까 건강 남아 있으면 그거 가지고 지금 구원 이루는 데 이래 사용하면 좋을 터인데 이 건강이 남아 있으니까 남아 있는 건강 가지고 자꾸 돌아다니며 바람 피우고 돌아다닌다 그 말이오. 돌아다니는 그것보다는 강한, 아주 저보다 더 강한 여자 만나 놓으면 이게 만날 조여서 빠꿈하니 뒈지게 쫄쫄 빨려 가지고 지금 빼짝 말라 가지고 그래 가지고 지낸다 말이오.

이러니까, 범죄하는 거는 아니라, 그거. 자기가 구원에 실패가는 것보다는 자기 지체 끊어내 버리는 게 좋으니까 그만치 자기가 약해져도 어째도 그게 낫다 그거야.

그래서 나는 결혼시킬라 하면 그 건강을 봅니다. 결혼은 뭣 때문에? 결혼은 고린도전서 7장 1절 이하에 있어. 결혼은 뭣 때문에 하느냐? 자식 낳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 아니오. 옛날 지방에서 우리 동양의 풍속으로는 자손 대를 잇기 위해서 결혼한다 이렇지마는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안했어. 결혼은 뭣 때문에 하느냐? 꼭 음행 때문에 한다 그랬습니다, 음행 때문에. “음행 연고 때문에” 했어. 그거 누가 뭐 자기는 돕는, 일 돕기 위해서, 편리하기 위해서 이렇게 한다는 그것도 그것이 결혼관이 성경대로는 된 거 아닙니다. 성경은 꼭 음행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 결혼한다 이렇게 말했어.

내가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 보니까, 어떤 구역장에게 물으니까 그분이 지금 혼자 산다 이라는데, 뭐 어째 가지고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산다 이라는데 그래 말을 들어보니까 얼굴을 말하는데 거의 같애. 이래 나는 그 사람인 줄 알고 ‘저거 혼자 살면 저거 지금 큰 문제인데’ 이랬는데 보니까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요 보니까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고 보니까 부부가 있는 사람이라, 보니까.

낯짜구 보면 다 알아요. 부부가 있는 사람이라. ‘저것 이래서 안 됐다.’ 그래 내가 한번 불렀어. 불러 가지고 ‘어떠냐?’ 이라니까, `식구가 몇이냐?' 이라니까 넷이라 해. ‘넷 누구 누구냐?’ 그라니까 `남편 있고' 그러면 됐어.

남편이 있으면 잘됐어. 그래 그만, 그라면 말 다 됐어. 할 것 없고 잘 됐고 그러면 신앙 생활 잘 하라고. 왜? 없으면, 없으면 지금 그 구역 식구 그 구역이면 그 부근에 이상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리 되면은 큰일 난다 이래 싶어서 지금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그리 물은 거라.

다 그렇게, 목사가 되면 그냥 실실 그런 게 아니라 관심이 전체에 이래도 눈을 감으면 다 거의 본다 그 말이요. 그 식구 무슨 구역, 구역은 잘 몰라도 그 얼굴만 보고 이래 알아요. 우리가 이 구원을 이룰라고 하면은 이 사람 앞에서도 그 비판받는 것이 거의 정확하거든 하물며 하나님이겠습니까? 사람에게 이런 뭐, 사람에게 아무리 그래도 이런 단점이 있고 저런 단점 있어.

사람이 이런 단점이 있어. 그 사람에게 자, 그러면 백 가지 가운데 전부 장점인데 하나가 단점이 있으면 그거 하나 단점 때문에 구십구 장점이 그것이 구원 얻지 못하고 그걸 다 정죄받아 가지고 있고 하나 단점 그것이 탁 고쳐져야 구십구에 바른 그것도 옳은 인정을 받는다 하는 그게 성경입니까, 잘된 거 그것만 구원된다고 하는 게 성경입니까, 어떤 거요? 다 고쳐야 된다는 것이, 하나 잘못된 거 때문에 잘된 거 아흔아홉이 다 정죄받는다는 그것이 성경으로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이게 성경이라. 이걸 아는 것 같아도 몰라요.

지난 밤에도 그랬는데 오늘 아침에도 이겁니다. 우리 거짓말 하지 맙시다.

거짓말은 별별 종류가 있습니다. 뭐 이런 거 저런 거 거짓말 하는데 거짓말 아닌 거 같애도, 말이라 하는 것은 자기는 그걸 동기를 바꿔버리면, 동기를 바꿔버리면 그거 거짓말이 거짓말 아니고 딴말 돼 버립니다. 자기는 분명히 거짓말은 거짓말인데 동기를 바꿔 가지고 이렇게 설명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또 그거 거짓말 아닌 줄로 이해한다 말이오. 또 목적을 바꾸면 또 달라.

또 그 분위기를 바꾸면 달라. 그때 그 분위기 ‘그 말 나쁜 말 했다’ 이래 되면은 그 분위기를 또 이 사람이 언변으로 말이요 ‘그 분위기가 이렇게 이렇고 이렇고 그 분위기가 이리이리 했습니다’ 분위기를 딱 조성을 딱 이리 해 버리면은 ‘그 말 하고도 남겠다’ 이게 다 자기 복술이라. 이걸 가리켜서 복술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게 복술이라.

이러니까, 분위기를 그래 말하지 시종을, 산이 이렇게 ‘그 산이 밋밋하게 그 산도 아니다. 그게 무슨 산이라? 평지지.’ 이래도 그 평지라도 그 밑에다 평지에서 측수를 재면은 적어도 한 열 자나 한 열 댓 자 됩니다. 열 댓 자를 팍 끊어 놔 보십시오. 그거 얼마나 높은가? 그 산이 민드름하이 이렇기 때문에 평지 같지마는 그게 고는 그 고를 다 가지고 있다 말이오. 이게 양쪽에, 한 평이나 남궈 놓고 양쪽으로 싹 깎아서 내 버렸다고 하면은 그거 높아서 감감할 것이고 거기 떨어지면 죽습니다.

이 말을, 그 말을 사실은 그 말 된 것이 처음에 요런 순서가 있고 마지막에 요런 순서가 있고 주위 환경 순서가 요렇게 있어 가지고 그 일이 된 것이면 으례히 말할 수 있는 것이라 말이오.

이런데 그 말을 거짓말쟁이가 그 사람을 해하기 위해서 앞도 딱 끊어버리고 뒤도 딱 끊어버리고, 이 산 끊듯이 말이오. 산을 끊듯이 주위 환경을 다 끊어버리고 그것만 말 한 마디 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거 들을 때 ‘어데 그런 말 할 수 있을까?’ 남을 허는 사람은 그래 헙니다.

그 선후를 다 끊어버리고, 주위 환경을 끊어버리고 그것만 딱 들어 말하니까 아주 그 나쁜 말이 되고 만다 말이오. 그러나 그 전후가 사실 그때 실상대로 앞뒤 좌우가 다 그런 분위기를 다 말하면 ‘으례히 그 말 할 수 있다’ 이래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제일 복있는 사람이 누가 복있는 사람인고 하니 지혜 있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인데 제일 불행스러운 사람이 또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그 지혜가 있음으로 복도 되고 지혜가 있음으로 화도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거짓말 하는 사람은 여게 보니까 “거짓말하는 사람은 결코 주님 계시는 그 빛된 그 성에 들어가지 못한다” 했는데,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 들어오지 못하되”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한 자들뿐이라.

이 말씀은 누구에게 대해서 하는 말이냐 하면 택한 자들에게 지금 한해서 하는 말씀인데 이 택한 자는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얻어 가지고 들어가지마는 자기 행위구원은 다 헛일이라 그 말입니다. 요거 말하는 게 행위 말하는 거 아닙니까? 거짓말은 행위 아닙니까? 그러니까 기본구원은 들어가지마는 행위구원은 들어가지 못한다. 또 이 말은 택한 자들에게 한해서 하는 말이지 불택자에게 대해서야 말할, 불택자는 거짓말이 자기 뭐 자본인데 그 말할 필요가 없어. 택자들은 거짓말 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 이랬습니다.

그 다음에도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성 밖에 있으리라” 이 거룩한 성에, 거룩한 성은 천국을 말합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밖에 있다 하니까 영은 들어가지마는 그 심신의 기능은 밖에, 밖에가 어데인데? “바깥 어두운 데 내어쫓아라. 슬피 울며 이를 갈며 있다.” 그게 내나 지옥입니다. 그 구원성 천국 안 외에는 다 지옥이오. 노아 방주 안에는 생명이 있고 방주 밖에는 전부 홍수뿐입니다. 이거 모양으로 성 밖에라 하는 그 말은 내나 지옥이라 말입니다.

이러니까, 나는 공연히 씨분씨분 거짓말 합니다. 그뭐 거짓말 안 해도 될, 그 이해가 돼 그런 것도 아니고 그만 습성이 돼서 적당히 말해버려, 형편 되는 대로.

말하면 이렇게 둘러 맞추고 저래 둘러 맞추고, 이래 맞추면 그게 되는 것 같지마는 그것이 만일 거짓말이 됐다면 자기 구원은 다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거짓말 하면 요거 전구원이 실패다’ 요것을 알고 어짜든지 거짓말 하지 않도록, 거짓말 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 뭘 상대해 가지고 하겠소? 하나님은 그 사람 상대 안 해. 그게 버릇이 되면은 하나님 앞에도 그만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아요. ‘이리 말하면 이렇고 저리 말하면 저래 되지 안 되느냐, 그만.’ 이래 말해 가지고 자기의 진실이라 하는 걸 막 박살내 버리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공자, 건축가들 가운데도 미쟁이가 있고 또 목수가 있어. 그 목수는 하면 구원이 이루어지고 미쟁이는 하면 구원은 헛일이기 쉽습니다, 미쟁이 하는 거. 미쟁이는 푹 들어가도 이거 그만 썩 문대버리면 그만 돼 버려. 목수는 그게 안 돼. 목수는 자기가 하나, 못 하나 박은 거 톱 하나 간 거 요게 정확하기 때문에 정확한 결과가 그대로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점점 정확한 사람이 돼. 목수는 점점 정확한 사람이 되고 미쟁이는 점점 거짓부리가 되고 말아. 왜? 뭐 갖다가 발라붙이면 되거든. 암만 이래 들어가도 썩 붙이고 밀어버리면 그만이라.

이러기 때문에 자기 한 그 흔적을, 자기 한 흔적을 정확히 보고 잊어버리지 안하고 보는 사람은 점점 의인이 돼 가고 자기 한 일을 그만 잊어버리는 사람은 그 사람은 못쓸 사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엊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말하는 것인데 어짜든지 거짓말 하지 안하는 사람 됩시다. 무슨 일이라도 거짓말 하지 말아요. 죽어도 거짓말 하지 말아요, 손해가도.

거짓말을 안 할라 하는 데에서, 거짓말 하나 안 할라 함으로써, 일은 낭파 안 되고, 거짓말 안 할라 하다 보니까 ‘이 일 안 해야 되겠다.’ 거짓말 안 할라고, 일에 무슨 일이든지 ‘여게 대해서는 내가 앞으로 뒤에 사후에 누가 물으면 거짓말 하지 않게.’ 거짓말 하지 안하고 그 사실대로 말해도 될 수 있는, 무슨 일이든지 말이든지 행동이든지 서로 접한 것이든지 사실대로 말해도 괜찮을 수 있으면 다 사실대로 말하지 뉘가 말하겠습니까? 그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되기 때문에 고거 뭐 거짓말을 가해서 말한다 말이오. 거짓말 안 하면 안 될 그런 말만 고치면 됩니다. 자기 구원, 소유, 자기 구원을 망치고 있어. 자기 구원을 다 망치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남자 여자는 음행 때문에 이제 결혼하게 됐어. 이러니까 혼자 있는 사람은 그만 두말 할 것 없이 제가 이성 관계에 조심하지 안하면 구원 다 헛일입니다. 다 헛일이라. 제가 뭐 그까짓 게 뭣을 얼마나 좋아서 자기 구원을 다 망치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럴 필요가 뭐 있습니까, 있기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새는 재독은 없는 것은 와야 몇십 명밖에 없는데 재독에 들을 사람이면 저 ○○○교회 집회 하고 있으니까 거기 가면 여기와 꼭 같은 교훈입니다. 내가 다른 데는 별로이 가라고 안 해요. 왜? 교훈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데 갔다 오면 사람이 버려져 버려.

이 학생들도 ‘내가 이제는 죽어도 거짓말 안 하겠다.’ 거짓말 하나 안 할라고만 하면은 그 사람 다른 면은 다 저절로 다 돼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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