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골대 설교


선지자선교회 1980년 4월 12일 토새

 

본문: 빌립보서 3장 8절 - 9절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저 지난 시간에 대전 교회 시무하는 ○ 조사님이 설교를 했습니다. 어느  시간이지요 밤에 했나요 새벽에 했나요 십자가 어제 새벽이요 했는데 설교를 잘  했습니다. 뭐 그런 설교를 한다면 세계적인 설교입니다.

이런데 모두 보면 그런 실력이 있어. 또 저 지난번에 처음으로 나온 ○○  조사님이 또 설교를 했는데 기쁨에 대해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도 세계적인  설교입니다. 그런 설교를 어디 가서 해도 설교 모자라 가지고 뭐 목회 못하고  교회 부흥 안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교만하고 게을하고 그래서 헛일입니다.

아, 처음으로 나와도 그런 설교를 하니 지난번에 저 ○ 조사님은 경건회  인도하는 걸 봤는데 그때도 제가 마음에 기뻤습니다. 왜 설교를 바로 합니다.

 이랬는데 우리 한국 그 민족성 이거 아주 대국 사이에 싸여 있어서 못된 이  교만 이 복술 이것이 늘어 가지고 있는데 이 복술 이것을 벗어나는 이 복술의  껍질을 벗어나는 이런 일을 하지 못하는데서 다 실패입니다.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의 모든 제품에 처음에 제품 된 그것을 한번보고는 다 좋아해서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만족해서 계약을 맺는데 한번 좋고 그 다음에 차차차차  떨어져서 나중에 보면 마구 훌 쓸어 가지고 가서 그만 수출 길을 막아 버리고  수치를 당케 하고 하는 그런 더러운 민족성이라 그 말이요.

 그게 어디서 그러냐 남을 속이고자 하는 그런 못된 그 마음과 게을 이 두  가지에서 그런 것입니다. 아주 소인들이라 그릇이 작아서 조그매만 들어가도  그만 꽉꽉 넘어 버려 설교 한번만 바로 해도 그만 교만해져 버립니다. 또  게을하고 야만과 문화인의 다른 차이도 있지마는 제일 차이 많은 것이 게을하고  부지런 그것에 차이가 제일 많습니다. 게을하고 부지런한 차이가 많다는 그 말은  왜 그러냐? 깨달은 지식의 차이가 많다 그 말입니다. 제가 알면 안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무식에서 나온 것이고 패망에  앞잡이입니다.

 그런 설교를 하면 할 수 있는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겸손이 계속했으면  좋겠고 또 ○○○조사님 나는 그 날 경건회 인도할 때에 마음에 참 기뻤습니다.

자기 그 본질과 본성을 그걸 보고서 교역자로 내 보냈고 또 교역자 될 것이라고  중매도 했고 이랬는데 너무 무식하니 저게 뭐 어찌되나 이러다가 창북교회  보내니까 그래도 그 창북교회에서 실패하지 안하고 그 교회를 발전을 시키고  왔습니다.

 처음에는 발전을 시켰는데 나중에는 게을러 가지고 또 그랬다 그거요. 저거  어찌되나 했는데 그때 한번 설교한 것을 보고서 그래도 게을하기는 게을러.

본인에게도 말했어 너는 게을 하라 너는 게을 해서 네 몸뚱이가 도무지 연단  안된 몸뚱이로서 살만 찌고 키만 크지 영 게을하다 그 게을 고치라 네 그 뒤에  설교하고 난 다음에 본인에게 내가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설교한 것을 볼 때에 참 마음에 이만하면 그것도 그때 천국에 대해서 설교를  했는데 대 설교입니다. 뭐 유명한 설교가들 그 설교집을 봐야 내용이 거기다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구비한 설교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데 제일 문제가 뭐냐 하면은 교만해서 문제고 여기 누구누구는 좀 목회해도  실력 있지 싶어서 생각한 그런 사람들은 헛일이라. 내나 설교는 그런 설교를  하는데 속에 교만이 꽉 차서 용욕해서 듣지를 못해. 그 성령 없는 사람들은  그거야 불교가가 공산주의야 뭐 하든지 무슨 노릇을 하든지 강연하면 꼭 같은  강연으로 들어서 자기에게 은혜가 되겠지마는 성령이 내주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만 표가 납니다. 지혜 있는 말만했지 속에 권능은 없구나 하는  그것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자기네들이 힘써 가지고서 그거 다 그런데 교회를  처음에 세울 때는 다 얼마나 지금 참 피를 기울려 가지고서 이래 세웠는데 그런  교회 부임을 하면 세워 논 그 순위와 그 애로와 거기 대한 하나도 생각지 안하고  그만 자기가 만들어 가지고 그 큰 교회를 세운 그런 공로자 같이 이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큰 소리만 텅텅 하고 교인들에게 호랑이 잡는 법만 알고 그런 사람들은  꼭 총신에나 뭐 고신에나 합동측에나 가서는 가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소리하면 그 교인들은 당장에 그 시간에 일어섭니다. 일어서서 항의합니다. 뭐  이 진영에서는 죽으라 하면 속으로 무슨 일해도 죽는 행위도 하고 복종하고 있지  다른 진영에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그 아무리 담력 있고 참 유식한 구비한 설교가라도 설교에  조금만치라도 거리낌을 하면서 거리끼는 진리에 이탈된 말을 하면서 누구를  어떻게 했다가는 혼납니다. 여기서야 뭐 아무것도 아닌 그런 제 주관대로의 것  가지고도 교인들에게 마구 호통을 쳐도 그저 죽으라 하고 참고 있는 그것이 이래  나가면 얼마 안가면 이제 이 사람들도 그런 사람되고 맙니다. 반발하고 나중에  가서 이의하는 그런 교인들이 되고야 만다 이거요.

 좀 겸손이 계속 됐으면 좋겠는데 그만 겸손에 밑천이 없어. 겸손이라 하는  그것이 이런 식물로 말하면 발단의 순이 연한 순 같습니다. 연한 순입니다.

겸손이 연한 순이요 그 인격에 대해서는 겸손이 연한 순입니다. 겸손이 없으면  절대 그 다음부터는 발전은 없습니다. 성장은 없소. 발전과 성장은 없습니다.

 이런데 이 겸손이 계속하지를 못하지 열심이 계속하지 못하지 겸손 열심이 계속  못하니까 교만과 게을 뿐이니 이제는 새로움이 없고 이미 있는 것 가지고서  팔아먹는 그것 만해도 아주 큰 척해 가지고서 그러니까 아이 적인 그런 신앙이  없습니다. 뭐 지금 설교는 여기 이제 목사들이 밑에 전도사들을 못 당합니다.

 여기서 뭐 설교를 얼마 들었는데 목사님들 설교가 밑에 조사님들만 못하고  조사님들 설교가 이제 갓 졸업한 그 사람들만 못해 자꾸 오그라져. 여 ○○○  조사님이라는 그분이 대 부흥사인데 그분이 뭐 진리 깨닫는 것이 여기 ○○  신학교에 신학자가 있었지마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 근방에도 못 갑니다.

깨달음이. 그들은 그저 이제까지 나온 책자에 통계돼 가지고 있는 교리 그것만  알았지 자기네들의 친히 체험이나 경험적 그 깨달음은 가지지 못했는데 그분은  그거 아니고 아주 이 경남에서는 대 불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이랬는데 그 사람이 자기가 그만 깨달을 때는 열심히 깨달아서 내가 진주 성경  학교서 말 들으니까 그분은 보지 못했는데 그분을 소개를 받아서 그분 한번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때 소개하는 데에 요 손을 요래 쥐고 무릎을 꿇고 얼마나 늘  기도를 이랬든지 그 사람 손이 여기 잘두가리가 돼서 여기 잘룩해서 잘두가리가  돼 가지고 있고 여 무릎에는 전부 이거 구둔 살이 앉아 가지고서 못이 박혔다  하는 그런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그 뭐 어떻게 해서 그냥 기도하면 안 돼. 안  돼.

 그런데도 요래 가지고서 요래 거머쥐고 마구 주님에게 엎드려 간절히 간절히  조아 대니까 이 골아 떨어져 손가락이 다 새 골아 떨어져 이래 들었는데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 것을 주셨고 새로운 세계로 인도했고 동행했는데 그  다음에 그만치 깨달아 가지고서 그 부흥회에 인도하니까 교인들 은혜 받고 인제  뭐 그 생활이 없었습니다.

그 생활이 없어지니까 이제는 새로운 깨달음은 없고 요것을 간추리고 간추려 해  가지고 추려 가지고서 막 설교집이 있습니다. 그 뭐 보면 고것 알리기 위해서 또  이제 줄기만 추리고 줄기만 추리고 줄기만 추려 노니까 고 간단이 돼 가지고서  요거는 붉은 줄 긋고 푸른 줄 긋고 막 알롱달롱 요래 가지고 요래 가지고서 똑  요만한 거 가지고 나왔는데 요만하면은 고 많은 것이 기록돼 있습니다. 요런 것  이제 착착 재 가지고서 그래 가지고 고것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러니까 그 다  굉장한 말씀인데 밑에 살이 없다 그 말이요. 뼈 가지만 흥덩하니 뼈뿐이지 그게  해골대라 말이요. 그 설교 설교가 해골대 설교라. 나하고 친하게 지내서 언제  내가 한번 말했습니다. 조사님 설교는 해골 설교입니다. 해골 설교라니요 말하는  것은 뼈뿐이지 살이 없습니다.

 자기가 옛날 깨달은 옛날 깨달은 교리 신조 그것만 증거하지 거기에 영감이  없고 자기가 새롭게 깨달아진 게 없습니다. 새로운 깨달음이 없고 고것만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것은 해골 설교입니다. 암만 그 소리했지마는 자기 맘에는 좋고  이 설교는 이래 하는데 이래도 교인들이 반응이 없습니다. 왜 설교하고 나면  자기만 은혜 받았다 해 가지고서 고함을 질러서 통성으로 기도하고 난 다음에  자기만 마구 간절히 해 기도하지 교인들은 막막하니 그 소리 듣기 싫어한다  말이요. 전부 축소 축소해 가지고서 마디를 다섯 마디로 축소되고 다섯 마디를  또 세 마디로 축소되고 세 마디를 또 한 마디로 축소되고 이래 놓으니까 듣는  사람이 그 들을 수가 없다 말이요.

 그래 가지고 목회 할라해야 목회 합니까. 이러니까 부흥사로 돌아다니다가  부흥사로 뒤에 누가 들을라 합니까? 이러니까 부흥사로도 그만 다닐 데가 없어  다닐 데가 없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찾아갑니다. 찾아가서 강단에 세워 주면  좋기를 하고 찾아갔는데 이러니까 자기가 목회 하려고 나설 때에는 재산 전부 다  톡톡 털어서 다 없애 버리고 이제 참 은혜가 충만하니까 그때 뭐 돈이라 하는  것이 뭐 그리 그립습니까 얼마든지 돈이야 그 뭐 사례 받는 것만 해도 그 하루  집회 한번 집회 가면 의례 그 사람 한달 사례는 주는 것이니까 계속해서 하니까  사례만 받으니까 돈이 모자랍니까 그 이랬지마는 마지막에는 그 가정이 참 고생  당했습니다. 아주 곤고하게 지냈습니다.

 나중에는 할 수 없어 다시 농사를 짓기를 시작해 가지고서 이래 그래도 붙어 못  있으니까 부인 농사지라 하고 자기는 또 나가서 죽 다니면서 이러니까 밥이나  얻어먹고 다니지요. 이러니까 집에 가서도 천물 중에 천물입니다. 그래 끝을  마쳤습니다.

 그래 여러분들도 이 보면 그런 것 같애. 노트를 가지고서 아, 여기서는 요것이  요것이 강령이고 요게 요지다 고놈만 빼고 또 빼고 또 빼고 뺀 데서 빼고 뺀  데서 빼고 이래 놓으니까 그것이 뼈가지 뿐이지 뼈뿐이지 뼈야 그게 뼈지  뼈지마는 힘줄이 있습니까 신경이 있습니까 보호하는 살이 있습니까 꺼풀이  있습니까 작용을 못해 그 죽은 기라 그렇기 쉽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셨으면 그분의 그걸 도랑을 맑게 하는 것인데 그게 있었기  때문에 탈이요. 저도 그런 경험 있어. 이 설교에는 얼마 안된 요것 줄어  가지고서 요것만 가지고서 하니까 언제든지 재독이지 새로운 자기의 연구나  새로운 그 깨달음이 없어. 왜 자기가 깨달은 요기 요긴하니까 늘 그 교회에  목회를 하는 것 같으면 하지마는 이 깨달음은 몇 번했기 때문에 또 새로 또 새로  증거 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자기 속에 그 몇 번 증거 했으니 이건 또 새로 장  이것만 증거 할게 아니라 새 것을 증거 해야 되겠다 하니까 고기 들어서 그  사람에게 자꾸 고 설교를 안 할라 하는 고기서 자꾸 새 설교를 할라 하니까  새로운 깨달은 면이 고것이 썩어지기를 아주 썩어지질 안 하는데 부흥사로  다니는 사람은 아무데서는 그걸 설교를 했지 여기서는 한번도 그 설교를 안 했다  그거요.

 이러니까 또 그 설교를 여기 갖다 하면 되겠다 그래 하고 이래서 또 자기가  새로운 깨달음 그보다도 그게 강령은 강령인데 이것부터 해야 되겠다 그러기에  장 하는 설교만 돌아다니면서 해야 되겠더라 그래 자기도 모르게 그런 가운데서  껍데기 돼 버리고 맙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그렇게 하셨던 모양이요. 이러니까 설교를 몇 가지를 딱  간추려 가지고서 서른 가지나 마흔 가지나 한 오십 가지 뭐 오십 가지면 이거  저거 서로 섞어가면서 부흥사 노릇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것을  원고를 가지고 요래 다녔는데 요것만 믿고 다녔는데 그만 하나님이 손양원  목사님을 사랑하셔서 원고를 도적 맡게 해 버렸어. 싹 잊어버리고 하나도 없다  그 말이요. 이래서 가 가지고서 원고 있는 줄 알고 척 내 놓으니까 원고가 없다  이거야. 이래서 그 집회 때에 당황을 해 가지고 그러니까 그때는 원고 없이  자기가 지금 원고 외운 거 이거 생각해 가지고서 이래 하니 좀 낫다 이거요.

 그러니까 자기가 은혜가 평소보다 많거든 그분이 언제 내가 한번 그 말을 한번  내가 들은 것 같습니다. 전해 들었는지 어째 들었는지 완전히 원고를 잊어버려  버렸는데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다음에는  원고 없이 자기가 새로 하나님 앞에 기도해 가지고 그때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그걸 자꾸 증거하기를 힘을 쓰다가 끝을 마치고 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고것만 가지고 평생에 돌아다니면서 그 말만 하니까 그것은 저도  처음에 그것을 깨달을 때에 제 양식이 됐고 깨달을 때에 그때에 자기 심령이  새로워졌고 그만치 자랐고 그대로 실행할 때에 자기가 견고해졌고 이런 긴데  그거 없이 그것만되니까 자기 구원이라 하는 것도 성장이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고 이러니까 교인들이 들을라 해야지 배척되어 나왔습니다.

 목회자는 그 교회에서 몇 십 년을 죽을 때까지 뭐 주 목사님은 거기서 전도사로  있다가서 나중에 목사 돼서 그 교회에서 죽었습니다. 아마 그분이 그 교회에서  한 삼사십 년 아마 목회 했을 것입니다. 삼사십 년 목회 했을 것이요. 저도 여기  거의 삼십 년인지 29년인지 이제 됐는데 삼사십 년 그 교회에서 목회 하다  세상을 떴는데 그래도 교인들이 원하고 그분을 원하는 것은 자꾸 새 교역자 모신  거와 같이 되기 때문에 원한 것입니다.

 그 내가 그때 한번 이대위 목사님이 거기 강사로 오기로 딱 작정을 하고 중국에  선교사 갔던 이대위 목사님이 그 강사로 왔는데 올 때는 건강하게 왔는데 와  가지고 한 시간 딱 인도하고 난 다음에는 그만 이 요통이 생겨서 생전 없는  요통이 생겨 가지고서 꼼짝을 못합니다. 자, 사람은 다 모았지 강사는 한 시간  밤 설교 첫날 밤 설교하고 난 다음부터 요통을 앓아서 그만 꼼짝 못하고  들어앉았지 이러니까 이 낭패인데 어쩔 수 없어.

 그때는 그 주남선 목사님이 자기가 그걸 인도 하나 그만 이 집회를 해산을  시키나 아무래도 해산시키는 것보다 자기가 인도해야 되는 그것이 다 하나님의  뜻 같고 이러니까 인도를 하긴 해야 되겠는데 이대위 목사님이 내 원고가 이런  것이니 이거 원고를 줄 터인데 그 설교하라 하고서 그 원고를 가지고 설교를  한다고 원고를 받아 가지고 하니 참 다윗이 사울 왕 갑옷을 입어 봐야 거 안  맞은 것처럼 아마 안 된다 이기야. 이거 이러니까 안 돼서 아, 이거 안  되겠습니다.

놓고 이제 그 집회 때에 그 이튿날 새벽부터인데 새벽부터 인도하면서  작정하기를 '하나님이여 나와 같이해 주옵소서' 하면서 단식했습니다. 그 이튿날  화요 일날 아침부터 단식해 가지고서 그때는 꼭 일주일 해 월요일까지인데  단식해 가지고서 월요 일날 아침 월요일 날 새벽 기도 인도할 때까지 단식으로  계속했습니다. 단식하면서 인도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여서 그 이대위 목사님이 그분을 봤는데  그분의 설교가 그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분이 그런 설교할 수가 없습니다. 거  일주일 동안 설교하는데 교인들이 참 깊은 그 은혜를 받았습니다.

 다 이것이 목회자들의 방식이 자기를 하나님에게 다 드려서 이렇게 충성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해 줘야 뭐이 되지 안되면 안 된다 요거 아는 것이고 그  교회에서는 요것을 제일 많이 깨닫고 요 면으로 힘쓰는 요 자가 되어있는 그  자가 그 교회 교역자인 것입니다.

 요새는 그렇지 안 해. 뭐 어떻게 큰 소리만 하는지 할 수 없어. 행정 위원회를  꾸며 놨는데 이제 교인들이 이거 너무 이래 교인들이 앞으로 좀 그 엉뚱한  소리를 하면은 말이지 좀 그거는 비웃고 비꼴 줄 알고 만홀히 여기고 멸시할 줄  알아야 되는데 참 순진한 교인들이기에 그게 없으니 없는 거는 좋은데 이  교역자들이 잘못하면 그런 교인들 만들고 맙니다. 또 그것도 교인들이  잘못입니다.

 저는 어떤 때에 제일 어른 되는 사람인데 말 아닌 말을 가지고서 저에게 말하기  때문에 9살 먹어 서당에 다닐 때에 그 선생이 실수되는 그 불미점을 가지고  말하기 때문에 욕을 하고 도망을 치다가서 매를 맞기는 맞았지마는 욕을 하고  도망가 버렸어 어떻게 가증스럽고 밉던지. 내가 교역자 되고 난 다음에도 그런  일 한번 있어서 그러니까 아닌 걸 가지고서 꾸중을 하고 또 틀린 것을 동기와  목적이 뭐 잘못되고 방편도 잘못되고 사건도 잘못 되고 그런 거 가지고 하면  위에 사람이라도 그런 면으로 점이 꽉 막혀야 됩니다. 멸시를 해야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한 자를 존대하며 이것이 시편 15편에 주권인데 이래서 좀  겸손하게 애를 써 가지고 이 지금 설교한 그것은 이번에 졸업한 사람들을 다  이제는 성경을 자기대로 연구를 해서 해라 또 그라고 이제 뭐 언제 배울 시간이  없으니까 자꾸 이제 그걸 밑천 삼아 가지고 연구해서 연구 연구해 가지고서  그리로도 배울라 하는 그런 것을 가리지 말고 주님에게 직접 배워 직접 배워도  탈선되지 않을 만치 알았으니까 직접 배워도 돼. 그것을 지난번에 졸업생들에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렇게 겸손이 계속하면 좋겠고 열심이 계속되면 좋겠는데 도무지 겸손을  계속하지 아니하는 것이 그것이 참 사고입니다. 겸손이 계속지 않는 것을 보면은  늘 처녀성이 있어야 된다 하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처녀는 그렇지 않소.

처녀는 지금 아, 자기가 결혼할 판이니까 다른 사람이 나 어찌 보는가 백지 다른  사람은 저를 보지도 안 하는데 전체가 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그  조심하고 자꾸 지금 모두가 다 저를 보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그것이  처녀성이요 또 어떻게 하든지 '여기서 잘못 보일라' 해 가지고서 처녀가 제일  깨끗하게 자기를 조심하고 단속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좋은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는 것이 그것이 인간으로서 제일 겸손하고 고게 처녀성이기 때문에 인용을  하기를 처녀성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목회자가 처녀성이 끝나 버렸으면 헛일입니다. 자기가 늘 몇 십 년 지킨 그  강단도 그만 하나님 은혜가 없으면 손 하나 어떻게 할 줄을 자기 몸뚱이를  어디다가 감출 줄을 그 말이 안 나오고 더듬어지고 그만 떨리고 이런데 평생  설교를 안한 사람인데 그런 강단에 서 가지고도 몇 십 년 그 강단 지킨  사람보다도 뻔뻔하게 그 뭐 담대하게 이래 가지고서 유유하게 하는 거 보면 그  인품이 위대해 그런 게 아니라 무식해 그렇습니다.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하는 그 격이라. 하루 강아지 그까짓 범인지  뭐인지 알아야지 이제 눈도 안 떴는데 뭘 알겠소. 몰라서 그러지 고게 담력이  그런 것도 아니고 그거 모양으로 그리 그렇다 말이요. 그 소위 베짱인데 그런  사람은 세상에서는 그것 가지고서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것  가지고서 도적질도 하고 뭐 승리도 하고 박탈도 하고 하지마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대 해독입니다. 대 금물입니다.

 어찌든지 겸손이 계속돼야 되겠고 노력이 열심이 계속돼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자꾸 내가 말하는 그것을 여러분들이 들을 때에 섭섭하게 듣지 말고 그런 줄  알고 지금 회개해야 되지 안 하면 하늘나라 가 보면 너무 허무할 것입니다. 이  세상 것으로 뭘 가지고 있는 사람 거기서 볼 때에 아 저 사람은 자신만 만인  사람이다 어떻게 자신만만이 우리에게 평생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 시간이라도  하나님이 손 떼 버리면 저는 다 껍데기요 생명이 없는데 뭘 가지고  자신만만하겠소.

 내가 이만하면 무슨 상식이 이만한 기초 지식이 이만치 그 하나님의 교리와  신조를 깨달음이 있으니 암만 있어도 성경이 글 중에 성경보다 더 완전하겠고  성경 완전해도 성경 가지고는 사람이 못 삽니다. 녜, 성경뿐인 데야 성경만 한  권 갔다 놓고 자, 이 부산은 이 성경으로 구원하시오 하고 하나님이 성경 한 권  갖다 놓고서 그만 말았지 뭐라고 사람을 세워서 하겠소.

 성경 가지고 안됩니다. 성경 가지고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영감이 따라야 됩니다. 영감은 영감은 뭐이 영감이냐. 하나님께서 '됐다 내가  동행해 주겠다' 하는 요것입니다. 그분이 인정할 수 있는 그 사람이 돼야 영감이  하고 영감이 그와 함께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데 도달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 조사님 설교하면서 그 날은 보니까 시작할 때에 저게 뭐할 긴가 보자  하고 들으니까 아, 천국에 대한 다섯 가지를 말하는데 그 잘했어 설교를 잘하고  그 자기가 간증하기를 이 설교를 맡고서 4일 동안을 다른 것 하는 시간 외에는  전부 거기다가 기울여서 '무슨 말씀하오리까?'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주셨는데 자기가 배운 말씀이지마는 하나님이 주셔서 하니까 자기가 깨달아 한  거와 꼭 같은 새 설교라 그 뭐 한마디도 새 거 나온 거 아닙니다.

 이렇지마는 새 설교라 들을 때 내가 설교하고 내가 가르쳤지마는 내가 들을 때  그 설교에서 새로운 설교로 은혜를 받았다 그 말이요. 왜? 새로운 영감은 그  영감은 새 힘이니까 새로운 영감이라 그 말씀에도 영감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그게 문제입니다. 이랬는데 그 설교를 하고 나서 뒤에 마지막에 몇 마디를  붙이는데 그때는 벌써 교만이 나왔다 말이요. 나도 이만하면 됐다 이제 그  설교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어서 떡 한마디 뒤에 붙이는 것이 아, 그만 교만으로  거꾸러지지 아마 그 설교하고 난 다음에는 그 설교하기 전에는 그 교역자들  사이에 이래 가지고 있다가 그 설교 한 다음에는 교역자들도 자기를 좀 인정할  것이고 자기도 또 인정하고 이랬을 것이라 그 말이요.

 이 교만이라는 이놈은 참 떨어지지 않고 따릅니다. 교만은 배짱 좋은 사람.

그러기에 그 세상 것이 부요한 자가 불행스럽습니다. 학벌이 좋은 사람이 이  겸손이 그에게 계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합니다. 아, 겸손이 무식한 사람하고  똑같이 계속 하면은 왜 유식한 사람이 해롭소? 유식한 사람이 몇 배 유익하지.

 학벌 문벌 또 우리 한국은 가정 단위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떤 성받이 하면은  그 성받이와 어떤 성받이와 성받이 성받이 요게 내나 가정 단위라 하는 자기  가정이라는 자기 가족이라는 요기 친족이라는 요 대결로 되어있기 때문에  어짜든지 그것 일선에 가면 일선에 가면 적과 자기 아군이 똘똘 뭉쳐서 하나  안됩니까? 아군은 똘똘 뭉쳐서 적군만 대항하지 않습니까? 이거 모양으로  자기네들 가족이라 하면 똘똘 뭉치고 다른 것 전부 대항해 싸워야 되기 때문에.

이러기 때문에 그 대성받이도 이래 가지고서 살면서도 그 상대한 적이 대적이  많은 투쟁의 대상이 많은 그런 사람들은 그 친족들이 뭐 열 촌이고 스무 촌이고  할 것 없이 그 한 덩어리입니다.

 한 덩어리가 되어있는 것이 이제 벌써 투쟁하기 위해서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수천 년은 안 돼. 찍해야 그게 돼 봤자 몇 십 년 한 백 년 가거나  말거나 그렇습니다. 그동안 뭉치고 뭉치고 뭉쳤기 때문에 참 희로애락이나  생사화복이 하나입니다.

 왜 상대를 싸우기 때문에 이렇기 때문에 뭉친 이 뭉텅이 이것이 예수 안에 들어  와도 이 뭉텅이가 그대로 있다 그 말이요. 이 뭉텅이가 그대로 있어. 이것은  성령의 감화의 정반대입니다. 그 뭉텅이들이 있는 거 그거 내가 여기 황산 ○씨  가족들에 대해서 내가 그걸 말을 했는데 그걸 지금 탈피를 못합니다.

 여러분들 수백 년 동안 그것이 나와서 뭉치고 지났기 때문에 어찌하든지 그  뭉텅이 속에 예수님이 들어가질 못합니다. 그러기에 생명이 예수 믿는 그것이  돌출 되고 외로운 자가 예수 믿는 것이 바로 돼지지 이렇게 세상에 무슨 뭉친  무엇이 의지할 그게 있는 사람들은 그 탈피를 못한다 말이요.

 교회를 매로 비유했습니다. 매. 팔레스타인에서는 거기는 전부 이거  잡곡뿐입니다. 한 근해서 밭, 밭 뿐이라. 밭농사 뿐이라 이러기 때문에  잡곡이니까 집집마다 맷돌이 있어요 맷돌이 있어 가지고서 낮에 점심에 먹을  것도 우에 가지고서 달달달달 이래 갈아 가지고서 또 그래 가지고 이제 그걸  가루로 만들어 가지고서 빵을 쳐서 먹어 밥이 없이 거기는 빵을 쪄 먹는 나라  유태 나라말이요 인제 이래.

 이라니까 여기 매 간다 매 가는 것으로 이렇게 비유한 것은 뭐냐? 어떤  잡곡이라도 매 안에 들어가면 가루가 되어 가지고서 부셔져 가지고서 인제 여러  수백 수천 알이 알맹이가 들어가 가지고서 가루가 돼 가지고 한 뭉텅이가 돼  그게 떡이라. 그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떡이라.

 교회라 하는 것은 김가나 이가나 박가나 뭐이나 형제간이나 뭐이나 교회  들어오면 그것은 바짝 부서져서 더 부서져서 형제간인지 뭐 친척간인지 동성인지  자기 지방인지 그 지방도 가니까 나는 호남 지방이다 나는 경상도 지방이다 고  교회 안에 들어가니까 지방도 바짝 부서져 버리고 나는 무슨 성 받이라 고것도  바짝 부서져 버렸고 형제간도 바짝 부서져 버렸고 이것이 부서져서 예수님이 이  구속의 은혜를 깨달음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부서져 버렸고 이제 성령과 진리로  한 덩어리가 됐다 말이요 성령과 진리로 한 덩어리 돼 이것이 교회입니다.

 저 서울서 보면 내가 그 ○○○ 목사님의 그 동생 교회에 그때 제가 집회  인도하러 갔었는데 그 교회도 그때 큰 교회입니다. 큰 교회인데 인도하러 가니까  그 교회는 장로로부터 모조리 호남 사람들만 모았습니다. 교역자는 이북  교역자인데 호남 사람들만 모아서 다른 데 사람들은 거기 와 가지고서  배겨내지를 못해. 호남 사람들만 모여 가지고 똘똘 뭉쳐서 하나 됐어.

내가 그때 말했어. 여러분들에게 큰 암이 있는데 이 암병 안 고치면 안 된다  여기 와 보니까 그 보니까 뭐 국회의원들도 있고 그때 뭐 장관이 있었는가 그걸  잘 모르겠는데 국회의원들은 있었고 뭐 이런데 여기는 암병이 무슨 암병이냐  호남 암병 호남 암병 호남 암이라는 이 암이 여기 여러분들 속에 들어 있는데  이것을 치료해서 뽑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구원을 정말로 이루려거든 여기를 벗어나서 호남 사람 없는 교회로 가 가지고서  신앙 생활 해라. 여기 다른 사람들이 와 가지고 여기는 호남 사람들이 모였는지  어디 사람들이 모였는지 도무지 와 봐야 모르겠다 아, 그 사람들이 형제간인가  암만 봐야 형제간인 줄, 표를 몰랐는데 이 세상 것으로 그 뭐 인연이 뭐라 하는  그것을 전연히 몰랐다고 할 수 있을 만치 이렇게 돼져야 이것이 가루가 돼야  되는 긴데 이거 전부 호남이라는 뭉텅이가 똘똘 뭉쳐 가지고 이거는 예수라는  것이 들어가지를 못한다.

 중생 된 사람들도 이 암이 들어 가지고서 이제 그걸 다 그 죽이고 망칠  터이니까 이 병을 고치라 하는 것을 그걸 내가 몇 시간 증거 했습니다. 이러니까  ○○○ 목사님 동생이 자기가 나와 가지고 그 시간 나와 가지고서 '조사님 내가  죄를 회개합니다. 참 그렇습니다. 어찌 그걸 알았습니까? 참 그러합니다.'  이러면서 자기가 그때에 그만 진영이 틀려 놓으니까 못 만나니까 그런데 그때 그  한 주간 집회하는 가운데 자기는 굉장한 그 각오를 가지고서 그 뒤에 제가 서울  집회할 때마다 와서 꼭 참석을 했는데 그만 그라고 난 다음에 나도 편지 전연히  안 하지 그 뭐 와도 답도 없지 이래 가지고 그리 됐는데 고걸 여러분들이 알고  고쳐야 됩니다. 안 고치면 안돼요.

 세상 걸로 부요한 사람은 그걸로 망합니다. 그것이 들어서 망치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그 진리가 들어갈 수가 있습니까 어데 돌짝 밭에 뿌린 씨가  뭡니까? 돌이 뭡니까 그게 돌이 자기입니다.

 진리를 깨닫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시작했다가 자기에게 마찰되면 그만 뚫고 못  들어갑니다. 자기에게 마찰이 되면 그만 뚫고 들어가지 못 하요. 못 들어가니까  거길 들어가야 자기 구원이 이루어질 터인데 그걸 뚫고 들어가지 못하니까 자기  구원 이루는 것이 거기서 중단되고 마니까 그만 두지 무슨 성장이 있습니까?   자기 중에도 자기 지식이 자기 지식에 대립이 되니까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다가도 자기 지식과 대립이 되니까 자기가 이미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이거와  하나님의 진리와 서로 마주 설 때에 대립이 될 때에 자기 지식을 부인하면 그  뚫고 들어가니까 참 새 양식이 있을 터인데 아무래도 자기는 이해가 안 된다  이거요. 이해가 안 되는데 또 그렇게 대립이 안 돼도 하나님에게 간절히  나아가다가 자기 지식이라는 고것을 가지고 하나님에게 간절히 나아가 가지고  나아갈 때에 하나님으로만 될 것을 하나님 대용품을 자기 지식이 이만치  있으니까 내가 지식이 이만치 있으니까 아무것이는 열 시간 준비했지만 나는  다섯 시간만 준비해도 넉넉하다 요걸 하나님 보충으로 쓸라하기 때문에 고것으로  또 망한다 이거야.

 아, 하나님 진리대로 나가면서 이래 나가다가도 아, 우리 사위를 대구에 동성로  교회에 어떤 할머니 있었는데 나중에 그래도 그 진리에서 죽기는 죽었다  합디다마는 그 할머니가 거기 집사인데 뭐 이 진리를 배워 가지고서 죽어도  살아도 여기서 살겠다고 이 진리대로 자기는 뭐 얼마나 좋게 뺏지마는 자기  사위가 하나 있어.

사위 하나인데 그 사위를 내가 잘못됐다고 나무랐다 말이요 사위를 나무랐는데  그 사위가 그거 내가 사랑으로 나무랐으니까 고걸 고쳐야 될 터인데 고게 반감을  딱 가지고서 사위하고 나하고 삐뚤어졌다 말이요. 내가 저를 반대한 게 아니라  제가 돌아섰어. 돌아서 가. 이래 되니까 사위하고 나하고 멀어졌는데 장모하고  나하고 멀어져 죽자 사자하고 달라붙는다 한 그 집사가 그만 사위하고  벌어지니까 벌어져 아무리 진리를 이래도 여기도 지금 몇 있는데 자기형이 저리  나가니까 그만 동생도 그렇기 싶다 말이요 여러분들 속에 그게 있습니다. 안  고치면 죽습니다. 헛일이요 어데 가도 그것이 언제 빠져나가야지 안 된다  그거요.

여기 그 시골에서 어디서 나온 그 집사인데 제가 집회할 때 가 가지고 은혜 받은  사람으로서 자기 시골교회 냅두고 여기 나왔다 말이요 나와 가지고서 여기 와서  교인 노릇하면서 자기 아들이 시골에서 주일학교 부장을 했어. 부장을 했는데 그  내가 보기에는 부장을 시킬 수도 없고 반사도 그 사람이 지금 주일학교 반사를  가지고서 제 노름하지 제 노름하기 위해서 주일학교를 이용해 먹고 말았으니까  그게 반사가 안 된다 그 말이요.

좀 반사도 좀 있다가 시켜야 되겠어. 와 가지고서 거기와 같이 부장을 말하니  부장은 있고 그만 반사를 시킵시다. 반사도 조금 있다가 하라 그 반사를 안 시켜  주니까 그 아이가 그래 내가 안 시켰다 말이요 안 시켜 주니까 이게 와 가지고서  저 ○○교회 양 사방 돌아다니다가 ○○교회 가니까 자기를 반사를 대번에 시켜  주거든 그 아들을 반사 안 시켜 준다고 ○○교회로 갔습니다. 여기 왔다가 아들  반사 시켜주는 그 교회로 간다고 그것도 분명히 거기보다 여기는 진리를  가르치는 기 나은데 그 사람이 그래 가는 것은 아들 때문에 그와 같이 됐다 그  말이요. 그 혈육으로 인해서 그리 돼 버렸어.

 이거 절대로 여러분들을 헐라고 하는 거 아닙니다. 헐라고 하는 거 아닙니다.

어데 할 일이 없어 뭐이라고 헐겠소 북만 돋아도 모자라고 시간도 힘도  모자라는데 허는 일을 뭐할라 하겠소? 무슨 시기에서 뭐 어떻다고 시기를  하겠소? 저만 자라 가면 되어지는 것이지 무엇을 다른 거 시기할 거 없어 자기  시기할 그 힘 가지고 자기 자라가면 되는 것인데 그렇겠소. 이것이 자기가 그런  면에 도달해 보면 압니다.

자기도 자녀를 길러 보면 알아요. 생자의 제어 부모심이라 자식을 길러 볼 때에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부모가 자식들 기를 때 이러면 하후 하박으로 동생만  어떻다 형만 어떻다 이래 가지고 하후 하박 한다지 마는 다 사랑으로 잘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부모의 마음은 아들 제가 생각하는 대로의 그런 조브란  마음이 아니라 그거요. 그런 것이 걸리지 안 해야 됩니다.

 우리 교회에 호남회가 있었습니다. 전라도회 호남회 그것을 내가 알고서 그걸  깨뜨리려고 그거 하면 너거 죽는다 그거 하지 말아라 이랬는데 호남회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 몇 사람 있습니다. 그 회를 교회보다도 낫게 여겨서 거기서  단합되고 그 사람들을 교회에 교역자보다도 더 친근히 여기고 그 사람들을  연결이 교회 연결보다도 더 중요하고 왜 그 세상 연결이니까 돈도 나오고 운동이  나와서 뭐 뭐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뭐 좀 나오는 게 있거든   이제 영남회라 하는 회를 모을 라고 영남회를 모을 라고 어떤 사람이 나한테  왔습디다 영남회를 모아서 내가 그 타일러서 그게 너 망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  망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회 하나면 됐다 진리와 영감의 뭉텅이 이 하나면 됐지  그 외에 딴 뭉텅이가 필요가 없다 어짜든지 모든 것은 다 바사 가지고 깨져  가지고서 진리로만 뭉치고 영감으로 뭉쳐라 진리로만 뭉치고 아, 진리가  하나니까 하나인 만치 단합이 돼지고 영감이 하나이니까 영감이 된 것 만치  하나가 돼지고 진리와 영감으로 뭉쳐지지 민족으로 뭉쳐진 거 국가로 뭉쳐진 거  다 죽이는 것입니다. 요거 완전히 부서져야 됩니다. 안 부서지면 죽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중에 가 가지고서 자기 그 가족회라 하는 것을 모아 가지고 사돈  팔촌까지이래 모아서 한 달에 한번씩 이 집에 가서 한 판 먹고 저 집에 가서  한판 먹고 이래 단합돼 가지고 한 게 그것이 그것도 뭐 친근하게 지낸 게 좋지  않습니까? 좋지요 이렇지마는 위험합니다.

왜 그것이 하나님과 진리, 영감은 하나님인데 영감과 진리와 하나되는 데에  이것이 도움이 될 진대야 보배 중에 보배지 왜 보배가 아니겠소. 이렇지마는  이것이 진리와 영감으로 뭉쳐지는 데에 방해되는 그때가 있고 방해되는 역사가  있고 그게 방해 안 된다고 그게 어찌 전체가 진리와 영감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이놈이 들어서 이놈 때문에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되는 데에 방해가  되어지고 지장이 되어지고 또 이것 때문에 진리와 영감으로 하나 겨우 됐다가  살얼음 같이 나무를 접을 붙일라 하면은 요 지금 겨우 이제 딴 살이 딴 살이  불을라 하다가 여기 마구 물이 나와서 문둥이 모양으로 더덕더덕하니 이게 막  더덕더덕 붙어 가지고 이제 그래 가지고 어울릴 터인데 요기 까닥만 하면  물이니까 까닥만 하면 다시 올라붙지 못합니다. 그만 헛일입니다.

 이것 모양으로 겨우 진리와 영감대로 하나 붙을라 하는데 옆에 들은 세상적인  이것이 들어서 자꾸 방해를 하고 주어 당기니까 그만 안 된다 이거요. 그러기  때문에 "내가 온 것은 세상을 화평케 하러 온 것이 아니요 불목을 일으키기  위해서 왔다." 더 사랑하는 자는 그 말이 뭐요 진리와 영감의 관계에 그것이  들어서 조그마치 라도 방해가 되면 내 제자는 못된다 합당치 않다 말했습니다.

이거 내가 진정 사랑함으로 말합니다.

 과거에 혈통이라 하는 거 말할 때에 그게 자꾸 듣기 싫은 것이 뭐냐 그 속에  그놈이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듣기 싫은 것입니다. 그게 벌써 집어 없애  버렸으면 듣기 싫지 않습니다. 담배 피운 사람이 담배 피운다고 책망 하니까  담배 피운다고 자꾸 하니까 듣기 싫고 저거 나 말한다 하고서 나 욕한다 이리  들어지지 담배 피운 걸 완전히 갔다 돌이켜서 절연을 완전히 금연을 완전히 해  가지고서 돌이킨 사람은 담배 피운걸 말하면은 자기에게는 거리낄 게 없어. 담배  피운 걸 피우지 말라 하면 동감이 돼 동편이 돼 담배 안 펴야지 그 소리  들으니까 아무 것이도 담배를 피우니까 오늘 설교를 안 들었나 자기가 어느 편에 서졌는가 그걸 봐 가지고서 알 수 있다  말이요. 이래서 자기를 진찰할 때에 이런 현실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저런  현실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자꾸 이렇게 자꾸 이래 발견해 가지고서 어짜든지  자기를 발견해서 죽일 자기 옛사람 자기 고놈 발견해 가지고 죽이도록 노력해야  되지.

 이것을 옛사람인지 새사람인지 이 섭섭한 옛사람이 섭섭해 그런지 새사람이  섭섭해 그런지 이 노는 옛사람이 노하는 것인지 새사람이 노하는 것인지 이거  옛사람을 책망하는 것인지 새사람을 책망하는 것인지 자기와 자기를 구별하지  못한 사람이 무슨 예수를 믿는다 말입니까? 어리석지 말아야 됩니다.

 보니까 모두 훌륭해 아, 나는 ○○○ 조사도 그 전에 만날 내가 힘없다고 안 내  세웠는데 아, 언제 그 한번 설교하는 거 보니까 썩 잘해 그만하면 아무데 가서도  설교 모자래 쫓겨나지는 않을 거야 이렇게 모두 설교는 잘하는데 왜 목회는  안될까 교회가 발전이 안될까 석 달 동안 한 일년 동안은 환영을 받고 교인들이  아 저분을 우리 교회 보내 주었으면  여 ○○○ 목사님 그때 교역자도 그만 쫓겨나서 그만 아무데도 갈 데가 있어야지  이제 장사하러 부산 오기로 딱 작정 이사하기로 하고 했는데 붙들고 한번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이 그럴 수 어디 있느냐 이래 가지고 양혜원으로 보냈는데 아,  보내고 나도 저게 가도 배척을 당하면 어쩔꼬 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소문이 내려오기를 사람이 집사도 서이 왔어. 와 가지고 '아이 목사님 왜 그런  조사님을 우리 ○○ 교회 안 보내 주시고 그리 보냈습니까 그 조사님은  넉넉한데요 그런 조사님 있거든 그런 교역자 있거든 한 분 보내 주십시오.'   하, ○○○ 조사님 그때 조사님인데 ○○○ 그 목사님을 그리 부임시켜 주고  그런 분이 있으면 하나 구해 달라고서 그래 말이요 사람 운동하러 왔어. 허, 뭐  아무데도 쓸데없어 배척해서 교역자 못해서 지금 그리 보냈는데 그만한 실력이  있다 그 말이요. 아, 이제 그 교회 나가 그런 갑다 그러면 지방에 갈라 하는 데  거기 갔으니까 안심한다 안심은 무슨 안심   얼마 있다가는 양혜원에서 또 배척입니다. 이게 배척하는 그게 인자 거석해서  이번에는 내가 보니까 배척하는 그런 말이 들리지 안 하는데 얼마나 안 들리는지  그게 뭐냐 게을이라 그 말이요. 게을 교만 게을 교만 그것 때문에 다  실패합니다. 여기 보니까 전부 실력은 다 가지고 있어. 겸손과 충성만 가지면  여러분들은 어데 가도 그 성경 지식이나 설교 모자라 가지고서 쫓겨 나가지 안  하도록 왜 여러분들이 듣고 배운 그게 아무나 따나 자꾸 있는 거 아닙니다.

 그때에 이 일반 교회들과 모두 대립된 것들입니다. 다 대립이 돼 가지고 있는데  그 다음에 나중에 이단이란 소리 다 듣고 다 그게 성립된 것입니다. 요새  빌립보에 대해서 말씀하는데 "배설물로 여긴다" 요 현실에서 그리스도를  수입하고 수입하기 위한 현실이요 이것 수입 외에는 자기에게는 아무도 그  아무것도 거게 소망되는 것이 없다고 한 요 현실에서 그리스도를 수입한다는  요거 그 내용이 어떤 것인가 마치 그것을 어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어머니가 자기 태에서 난 자식에게 대한 그 사랑 그것이 꼴막 꼴막 병들어  가지고서 지금 죽을라 하고 있는데 그만 그러니까 뭐 밥도 며칠 못 먹었고 잠도  못 자고 이러니까 다른 사람 보기에는 바짝 말랐지마는 고기 그래 가지고 조금씩  아이가 차도가 있으니까 잠 안 잔 것도 모르고 된 것도 모르고 마른 것도 모르고  밥 먹는 것도 모르고 고것을 고 아이 사랑하는 고 사랑의 그 사랑의 뜨거운  맘에서 사랑의 힘에서 사랑의 간절에서 모든 것 밥이 없어 못 먹는 거 아니라  그만 밥 먹을 그런 여유의 마음이 없고 또 잠잘 여유의 마음이 없고 고것이 고  아픈 거기서 병에서 낫고 낫고서 치료해서 고것이 낫게 하고 싶은 고 뜨거움에서  고 뜨거움이 뭐요 고 사랑의 뜨거움 고 뜨거움에서 자기도 잊어버리고 이라는데  고게 조그매씩 차도가 있어 가니까 된 것은 간 곳이 없고 기쁨이 충만합니다.

 고 자기 태에서 난 아이를 아이가 병들었을 때에 고것을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그 사랑에서 사랑의 그 뭐 누가 시켜 그런 게 아니라 거기서 자기의 전 마음이  그 아이의 병든 고 병을 치료하고 싶은 거기 막 집중이 됐고 그거 위해서 전부가  다 투자가 되어지고 이러면서도 하나도 피곤한 줄도 모르고 누가 하라 해서 그런  게 아니라 순전히 고 사랑의 힘에서 고게 사랑하는 사랑의 힘에서 사랑의 그  소원에서 사랑으로 인해서 그와 같이 등신도 됐고 자기 돌아보지 못하는 자가  됐고 자기 희생하는 고 자가 된 고 사랑.

 자기가 어린 아이를 이것을 참 없이 이것을 늦게 사 하나 낳아 놓고 이거에게  대해서 오만 꿈을 다 꿉니다. 이걸 길러 가지고 뭐이 되겠다 뭐이 되겠다 어떻게  갔다 꿈을 다 꾸면서 거기 대해서 뭐 그것을 위해서 자기의 있는 재물이나 자기  건강이나 자기 먹는 거 입는 거 뭐 다 잊어버리고 자기 소망이 전부 그 아이에게  가 가지고서 소망이 있어.

그 아이를 어짜든지 그것을 그 길러서 아무데 나 놔도 길러 놓고 자기가 떠나도  자기가 떠나가도 그것이 이 사회에서 무능한 자 돼 가지고 남한테 압제도 안  받아야 되고 나쁜 사람 돼 가지고서 남에게 정학도 안 해야 될 거 이러니까 그  아이에 대해서 어짜든지 그것이 자기 지식대로는 이상한 인물이 돼 가지고  온전한 인물이 돼 가지고서 그것이 참 행복 되게 살기를 원하는 거기에서 자기가  늙어서 쪼그라지면 다른 사람이 볼 때에 그거 참 저 공부시켜 가지고 뭐 한다고  지금 그렇게 까지 하고 있어 이래도 그 소리는 근방에 오지 안하고 그 아이에게  대한 욕망과 그 아이의 행복과 그의 구비를 위해서 자기도 모르게 다 그것이  희생되어지는 고기서 조금 볼 수가 있는데 성질은 그런 성질인데

 요 그리스도라는 것은 고것을 어떤 표준을 하느냐 하나님을 표준해 가지고  하나님과의 해결을 짓고 하나님처럼 같은 자가 되어지지 안 하면 안 되는  상대방을 하나님과 같이 되어지게 되게 하려는 거기 대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데  까지는 있는 거 다 기울여서 고 사랑으로 인하여서 자기 있는 것이 돌아보지  안하고 그 상대방의 행복이 되는 어떤 인물 표준도 아니고 하나님을 표준하고  고와 같이 되어지기를 고 죽어 가는 고 병들어 있는 고것을 아무리 치료해야  되지 안 하면 안되게 되기 때문에 병든 아이에게 대한 그 고 요소와 같은 그런  그 사랑의 순전한 사랑의 힘에서 사랑에 욕망에서 욕망은 사랑의 욕망이요 힘은  사랑의 힘이요 자기 희생하는 누가 시켜 그런 게 아니라 요 사랑으로 인해서  희생 안한 줄도 모르게 요리 된 것.

 요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요 사랑의 본질 본성 요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 천국시민의 본질과 본성이니 요것을 가지고 요것을 가지고  요것이 들어서 소비해서 써서 없어진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쓸 수 있는  것으로서 부활을 시켜 주고 요 사랑의 요 뜨거움 요것이 들어서 자기는 요  세상에서만 그렇게 할 뿐만 아니라 아 이만치 이제 원 이 병에 대해서 원 불은  껐으니까 그만 좀 더 자지 잠도 자고 그렇지 이렇지마는 원 불 끄니까 그만  잠자는 그 어머니도 있을 것이고 원 불 껐지마는 그만 잠잘 줄 자꾸 모르고  그럽니다.

 아, 뭐 이제 됐는데 뭐 자꾸 그래 쌓느냐고 마음에 요것이 건강해서 완전히  건강한 아가 되기 전에는 마음에 놓이지 안하고 자기 전부가 기울려질 수 있는  고 사랑이 더 뜨거워서 그렇다 말이요.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으로 만족하지 안하고 무궁세계에서도 그 무한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그와 같이 되어지기를 소원하는 이 소원하는 이 소원에서 그와  같이 되어지기 위해서 자기가 노력할 수 있고 자기가 투자 할 수 있는 이 자가  되기를 원하는 그것이 죽는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는 요것이니 우리가  문제는 뭐냐?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요 성질 요 사랑을 가지시고 이렇게 하는 거와 성신의  사람 바울이 자기 속에 요 사랑의 요 뜨거움 요것이 자기 속에 있어 가지고서 그  상대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까지 당신같이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자 되어지기를 이제까지 목표를 두고서 이 욕망에서 당신이 하늘나라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사람되어 내려 왔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요 사랑의 발동  요 사랑의 사랑 자체 요것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처럼,  성령의 사람 된 그 바울에게도 요기 들어서 순전히 그의 말도 했고 그의 말하는  것도 요기 들어서 말했고 그가 발동하고 요게 들어 발동했고 그가 성내는 것도  요게 들어서 성냈고 그게 들어서 미워하는 것도 요게 들어서 미워했고 요거  희생한 요게 들어서 사랑한 희생한 요것이 성령에 사람에게 있었던 요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됩니다.

 요것이 있어야 되지 요거 없으면 다 껍데기요 외식이요 소용없습니다. 이것이  있어 가지고서 단 마음으로 부득이한 마음이 아니고 단 마음으로 피곤치  아니하면 그 어머니가 피곤함을 몰랐어. 피곤치 아니하면 이러니까 피곤치 안한  것이 사랑이 뜨거워지니까 피곤함이 잊어 버려집니다. 사랑이 뜨거워지니까 자기  희생이 수월합니다. 사랑이 뜨거워지니까 자기 전부를 상대방의 욕망을 위해서  그를 이루기 위해서 자기 있는 것을 다 기울려도 오히려 모자라서 소원하고  소원하는 고 소원에 소원대로 이제 부활시키는 것이 무궁한 자원을 주시는 것이  요것이 그리스도의 나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이것이니 이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게 없고 옳은 것이  없고 여러분들 어떻습니까? 그런 사람을 우리의 지도자로 우리로 머리로 삼겠고  우리가 평가적으로 하는 것도 그런 존재가 그런 존재가 있기를 원하고 그런  존재를 만들려는 걸 그런 존재를 바라보고 의지하고 나를 맡길 만 하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요 힘이 얼마나 있느냐 요 자격이 얼마나 있느냐? 요것이 들어서  말한 것이 돼야 되고 요게 들어서 희생한 것이 돼야 되고 요것이 들어서 자기  피곤을 잊어버린 것이 돼야 되고 요것의 재미로 요것의 재미 요것의 재미는 뭐요  요것의 재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재미요 상대방이 하나님과 같이 온전함이  되어서 해결되는 요 재미 밖에는 없다 말이요. 요 재미 요 재미 요 기쁨이니까  이 기쁨은 세상이 뺏어갈 수가 없고 금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것이 우리에게 영생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을 가졌을  때에 둘을 잡고 하나는 현실을 가졌을 때에 요 그리스도의 사랑 성령의 사람이  가지는 이 사랑 자기에게 요 현실에서 요 현실에서 둘 뿐이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까 하나님이 소원하는 하나님이 소원하는  하나님의 구속받은 요 형제들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같은 요런 자가  되어지도록 할까 상대방에 대해서 완전 온전 거룩 참되게 되어지게 하려는 요  욕심 요 욕망 요 욕망이 왼손에는 붙들렸고 오른손에는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까 하는 요것이 붙들렸고 요 둘이 붙들린 중앙에 든  자기로서는 요기서 사랑의 요 발작 사랑의 발동이 들어서 하나님을 붙들어  하나님을 붙들게 됐고 요 상대방을 붙들게 됐고 상대방을 하나님 같이 온전하게  하나님 하나님하고 둘이 합치하려는 요 둘을 붙든 둘을 붙든 요 두 가지를 붙든  고 자체가 뭐이냐 두 가지 속에 들어 있는 가운데 들어 있는 고거는 뭐입니까 이  두 가지 속에 들어 있는 자기는 뭐요 자기는 무슨 뭉텅이요 ○○○ 씨 사랑의  뭉텅이입니다.

사랑의 뭉텅이 요것이 발작을 하는데 요것이 발작을 하는데 요게 발동을 하는데  요게 움직이는데 고 움직이는 움직임이 고게 뭐냐 제사장 움직임이요 선지  움직임이요 왕의 움직임이라 그 말이요. 왕의 움직임   이러니까 안하고는 견딜 수 없어 요걸 하면서도 만족하지 안하고 요걸 하면서  다 떨어지니까 이제 이것이 생활 다 떨어져 자본이 없어 못하게 되니까 원하고  원통스럽고 마음에 원하는 고 마음 고것이 부활을 자아내는 것입니다. 부활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 사람이 대번에 되는 게 아니고 이것이 되려고  하려고 하는 데에 이것이 무슨 생활보다도 무슨 생활보다도 목회자 생활이  이것이 제일 낫게 되고 이 반사들 이 성직 생활이 다른 것 보다 낫게 되고 이  권찰 생활이 다른 것보다 낫게 됩니다.

 권찰도 보면 이 구역장이 저 구역장에게 못 가게 합니다. 왜? 이 구역장이 제게  속한 그것에 대해서는 항상 원하는 것이 이기 잘 돼야 될 긴데 진정 잘되고  영육이 잘 되게 원하는 거 뭐 딴 게 없습니다. 다른 구역에 가면 그게  빈약해지기 때문에 빈약하기 때문에 거기 가서는 실수하기 쉽다 말이요.

자기에게 속한 자에게 대해서는 요것이 영육이 다 잘 돼 행복 되기를 원하고  고게 고리 되면 또 기쁘고 즐겁고 고 말 한마디 조심해서 그 이게 손해 보일라  이러니까 자기가 거기서 그리스도의 심정 그게 참 그 성령의 사람의 심정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요 직책이 보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데 가면 안 돼.

 이래서 자기가 자연 계시로 받는 그 계시에는 자녀를 나아 보지 못한 사람은  모릅니다. 자녀를 낳아봐서 기른 이게 참 보배라 그 말이요. 자녀를 낳아 봐서  기른 그것이 보배 자연계시라 자연계시 그게 다 죽음에 속한 것이지마는 참  사랑의 그 본질과 본성이기 때문에 거기서 느끼는 것 또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내가 또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날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을 내가 받아서 하나님을 사랑을 인정하는  긴데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는 것은 내가 내게 속한 사람을 사랑함으로  고기서만 인정이 되어집니다. 고기 뭐 자기가 형제를 위해서 자기 있는 일생을  다 바치고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진정 원하는 그 생애를 하는 데에 나아간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데 의심이 없습니다. 의심이 없습니다. 거기서  배웠습니다. 거기서 배우지 그거 하지 안하고 하나님 날 사랑한다는 것을 암만  자기가 뭐 열 백 번 되씹고 새김질해도 안됩니다 그것은.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배설물로 여긴다' 자기의 현실에서 자기의 현실에  대해서 이 두 가지를 거머쥐고 그 두 가지 속에 들어 있는 이 사람으로 움직여  살아야 되어지는 것이니 이것이 피곤한 줄 모르고 되어지는 이것이 돼야 되는  것인데 요 요것을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또 요런 입장이 아닌 입장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요걸 생각을 못 가진 요런 입장을 가진 사람은  입장이 좋아서 그게 돼집니다.

 내가 반사들에 대해서 반사들이 행복 되다는 거 또 중간반 반사들이 더욱 행복  됐다는 거 그 행복 되다는 거 어제도 내가 어떤 사람에게 말 들으니까 아침에 두  시간 반 저녁때 세 시간 반 여섯 시간 여섯시간을 ( ) 아무것도 없어서 어짜든지  자기 맡은 그 학생 학생이 믿음을 가져야 될 건데 요기 하나님께 순종을 해야 될  건데 열심을 가져야 될 건데 요것이 회개를 해야 되지 요것이 믿는 사람될 건데  요것이 좋은 사람 될 건데 그 구원을 잘 이루어야 될 건데 요 맘 뿐이라 말이요.

요것이 순전히 하나님이 기뻐하는 마음이요 그것은 하나님께 온전케 되는 그 맘  아닙니까 요 맘으로 여섯 시간 한다는 것이 그것이 뭐냐? 그거 한가운데서  환경이 좋아서 가기도 모르게 그만 환경과 입장이 그러니까 그 사람이 돼  가지고서 그런 마음으로서 그런 노력으로 지내 나왔으니까 이게 얼마나 복된  것입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환경으로 그렇게 되는 것도 있고 또 환경이 될 뿐 아니라  자기는 거기서 자꾸 새로워지기를 뭐냐 내가 정말로 제사장이냐 내가 제사장  노릇은 하고 있고 선지 노릇하고 있는데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이웃에  대해서 이웃에 대해 이런 소망을 가졌느냐?   정말로 이웃이 이렇게 되어지기를 원하고 이웃이 그 죄에 문제 허물에 문제  불목의 문제 하나님을 버리고 제대로 제가 써먹는 문제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번제 요게 대해서 내가 상대방에 대해서 요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 이걸 자기가  반성을 해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 내가 여기서 하나님을 원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나에게 해 주신 이 그 심정을 내가 알고 있느냐 이 심정을 내가 받았으면  상대방을 이렇게 내가 지금 갔다 생각하고 있느냐 여기서 정말로 양쪽에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사랑과 이웃을 내가 사랑하는 요 사랑이 이 자체가 되어져  가지고 여기서 발동이 되어 가지고서 내가 지금 이 행동하기는 제사장 노릇  하는데 그거 좋도록 하기 위해서 희생을 하고 있는데 전도를 하고 심방을 하고  설교를 하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입각해 가지고 이 사람이 되어 가지고 하느냐  이것을 자꾸 우리가 반성을 하는 데에서 날마다 새로워지지 안 하면 안되겠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늘나라는 제사장 나라 선지자 나라 왕의 나라입니다. 요 성격 가진  요것들만 갑니다. 이러니까 죽음이 없어 거기는, 거기는 전부가 상대방 행복을  원하는 고것들만 있어 상대방이 하나님처럼 잘 되기를 원하는 고 사랑의  뭉텅이만 가 있어 하나님이 이렇게 되기를 원해서 나 사랑해 주시는 그 사랑해  주신 그 사랑에 대해서 감격한 사랑에 감격한 그 사은에 뭉텅이 이제 이걸  깨닫고 이웃을 그 하나님처럼 되어지기를 원하는 이 욕망의 사랑의 뭉텅이 이  뭉텅이 이것이 하늘나라의 시민의 뭉텅이입니다. 요 하늘나라 뭉텅이요 요거  외에는 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여기 유익 되도록 공연히 세상에 있는 거 이런 거 저런 거 거리껴  가지고서 그 자기 망치는 일을 하지 맙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376 행함없는 믿음의 결과/ 야고보서 2장 14절-17절/ 1980. 11. 13.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5375 행함없는 믿음은 죽음/ 야고보서 2장 14절-17절/ 1980. 11. 14.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5374 행함과 율법주의/ 야고보서 2장 14절-26절/ 1988. 10. 4.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5373 행함 있는 믿음/ 야고보서 2장 26절/ 1987. 3. 13.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
5372 행함/ 야고보서 2장 14절-26절/ 1978년 3공과 선지자 2016.01.11
5371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갈라디아서 6장 6절-9절/ 1981년 3공과 선지자 2016.01.11
5370 행하면 기적과 축복/ 야고보서 2장 26절/ 1985. 10. 4.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
5369 행위와 자체/ 베드로전서 1장 17절/ 1986. 11. 5.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5368 행위대로 판단/ 베드로전서 1장 17절-19절/ 1985. 3. 29.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
5367 행위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요한계시록 2장 23절/ 1989년 1 공과 선지자 2016.01.11
5366 행위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요한계시록 2장 23절/ 1989. 1. 11.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6.01.11
5365 행복의 원인과 멸망의 원인/ 이사야 1장 18절-20절/ 1988. 8. 5.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5364 행동은 자기가 된다/ 요한계시록 20장 11절-15절/ 1986. 11. 6.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5363 행동-심판-가치-대우 알면 성공/ 마태복음 25장 31절-34절/ 1988. 6. 19. 주새벽 선지자 2016.01.11
5362 행동록에 기록된다/ 요한계시록 20장 11절-15절/ 1988. 11. 20.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5361 행동과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42절-49절/ 1988. 6. 18.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360 해상보행 기적/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7. 11. 25.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5359 해상보행/ 마태복음 14장22절-33절/ 1985. 1. 27.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11
» 해골대 설교/ 빌립보서 3장 8절-9절/ 1980. 4. 12.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5357 항상 깨어있는 사람/ 마태복음 24장 42절-43절/ 1986. 8. 1.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