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보행 기적

 

1987. 11. 25. 밤 (수)

 

본문: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언제든지 표적을 가지고 증거할 때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역사적인 이 표적들은 그 표적을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계시의 목적이 무엇인고 하니 이것으로써 구원 얻는 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표적에서 예수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 걸어가는 이치, 이 도리를 여게서 깨달아야 되지 그렇지 않고 뭐 인간이 할 수 없는 그런 무슨 초자연의 역사가 나타났다 그렇게만 생각하면 껍데기입니다. 또 그런 역사의 사실을 자기가 아무리 똑똑히 기억하고 외우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표적은 우리에게 어떻게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고 이대로 신앙 생활을 할 때에 우리에게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밤에 봉독한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앞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그렇게 재촉을 하시고 당신은 모든 무리들을 다 흩어 다 보내시고 혼자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밤중되기까지 주님은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제자들이 배를 타고 육지에서 수십 리를, 우리 나라 리수로 말하면 수십 리를 떠나서 바다 깊은 데에 이르렀을 때에 바람이 불어서 그 풍랑으로 인해서 배가 가지를 못하고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은 그때에 다 어부들이요 어려서부터 어부 생활을 했고 또 거게 대해서 익숙한 사람들이요 다 배를 부리는 데도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이러니까 노를 저어서 목적지에 가려고 이렇게 젓는데 바람이 일어나서 배가 가지를 않고 배가 안 갈수록 또 이 사람들은 가도록 하기 위해서 온갖 과거의 저희들의 기술을 다 쓰고 방편을 다 써서 ‘이래 봐라. 저래 봐라.’ 하고서 아무리 애를 써도 바람에 거슬려서 배가 나가지를 않습니다.

이러니까 그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 벌써 수십 년 동안 그 바다 생활 했기 때문에 바다에 대한 충분한 지식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지식을 가지고 바람에 거슬리는 그 배로 하여금 목적지에 가도록 하기 위해서 저희들의 이미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 지혜, 또 갈릴리 바다에 대한 지식 이것을 다 활용해 가지고 갈려고 해도 가지를 못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만 제자들은 심한 풍랑을 인해서 두려워서 지금 견디지 못하는 그런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산에서 내려오셔 가지고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 있는 데에 가셨습니다.

이러니까 제자들이 놀라서 지금 참 무서워 견디지를 못하는 그런 형편인데 물 위로 주님이 걸어오시니까 그들이 보고서 유령이라 물귀신이라 저게 물귀신이 온다 하고서 고함을 지르면서 모두 두려워 놀래서 벌써 소리들을 다 비명의 소리를 모두 다 외쳤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급히 오셔 가지고 ‘두려워 말라. 내다.’ 이러시니까 그 배 안에 있는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또 예수님이 ‘내라. 안심하고 두려워 말라.’ 하는 말씀을 해 주실 때에 그만 그들은 거게서 그 두려움이 다 없어지고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이러니까 그중에 베드로라고 하는 수제자가 주님에게 대해서 지금 말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물귀신인 줄 알았는데 그분이 내가 귀신이, 유령이 아니라 물귀신이 아니라. 내가 너를 구원하러 온 내니까 안심하고 두려워 말아라 하는 그 주님이 내라는 말씀과 안심하라는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그만 그들에게 평안이 왔습니다. 이상하게도 두려움이 없어지고 평안한 마음이 생겨졌습니다.

이러니까 뭐 멀리 보이니 주님인지 누군지 안면은 모르겠고 뭐 시커먼 게 물 위로 쩌뻑쩌뻑 걸어오는데 두려워서 못 견뎌서 물귀신 보라고 고함을 이래 지르면서 이렇게 놀래서 이래 하니까 거게서 ‘내니 두려워 말라’ 하는 그 음성을 들을 때에 그들에게 그만 평안이 오고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지고 하는 이상한 평안함을 그들이 얻었습니다.

이러니까 언제든지 재빠르고 무엇이 솔직해서 아주 단행심이 빠른 그 베드로가 말하기를, ‘저분이 내라 안심하라 하는 그 소리를 척 들으니 그만 모든 공포가 없어지고 평안이 온다’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주님 같다' 이래서 베드로가 다시 한번 거게서, 실은 주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시어든’ 만약 주님이라고 하면, 이렇게 말씀하신 이가 우리 주님이시거든 나에게 이제 무엇을 하나 나타내 보여 주옵소서. 주님이시거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해 주옵소서 이렇게 요청을 했습니다. 요게 아주 중요합니다.

그럴 때에 만일 ‘물위로 걸어오라’ 이렇게 하지 안하면 베드로는 지금 큰 의심 가운데에 빠질 사람입니다.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요 ‘만일' 그 일본말 성경에는 `모시'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한번 말을 하십시오’ 이랬는데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베드로가 자기가 ‘만일 주님이시어든 이렇게 명하시옵소서’ 했는데 `물 위로 걸어오라’ 하니까 베드로가 주님이 확실하다는 것을 자기가 생각하고 그만 배에서 훅 뛰어 내렸습니다. 뛰어 내려 가지고서 걸어보니까 물 위로 점벙점벙 걸어서 잘 걸어가게 됐습니다.

걸어가다가, 한참 걸어가다가 바람이 심히 불고 물결이 난한 것을 보고서 그만 딴 생각이 났습니다. 딴 생각이 나서 ‘이 어짠 일이가? 이것 저렇츰 풍랑이 몰리는데 내가 물 위로 이래 걸어서 간다는 게 이게ㅡ이제까지 걸어왔는데도ㅡ걸어간다는 것이 이것, 이것 어찌 되나?’ 하는 그런 무서워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니까, 그만 가지자 그만 물에 빠져 들어갑니다.

빠져 들어가니까 또 다시 주님이여 나를 구원해 달라고 고함을 지르니까 주님이 오셔 가지고서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를 거머잡고 다시 물 위로 올려 세웠습니다.

올려 세웠으니까, 물 위에 척 들어 올리니까 물 위에 또 이래 잘 걸어갑니다. 둘이 걸어가면서 말씀하시기를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네가 오는 그대로 믿음으로 걸어오면 될 터인데 왜 의심을 해 가지고서 또 물에 빠지고 그런 짓 하느냐? 이러면서 꾸중을 하시고 같이 배에 올랐다 이랬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어떤 면을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잘 들어서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져야 신앙에 성공을 한다 하는 것을 여게서 가르치시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배타고 저 바다 건너로 앞서 가라’ 이렇게 명령하시니까 그들이 우ㅡ우 가 가지고서 배를 타고 지금 노를 저어서 갑니다.

가는데 왜 이렇게 풍랑이 일어나고 가지 못하게 됐는가 요것을 여게서 우리가 깨달아 생각해야 됩니다.

그 제자들이 주님이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하신 그 명령대로 순종해서 지금 배타고 건너편으로 가고 있습니다. 가고 있는데 왜 풍랑이 일고 못 가게 됐는가? 그 못 가게 됐는데 새로 가게 된 것은 예수님 만나니까 가게 됐습니다.

여게서 뭘 가르치느냐? 우리가 갈릴리 바다 건너편 하늘나라를 향하여서 가고 있는 우리들인데 주님이 우리에게 가라고 신앙 걸음을 걸어서 하늘나라에 가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 제자들이 그 명령 받아 가지고 배타고 가면서 왜 풍랑이 일었던가? 그들이 두 가지를 잊었습니다. 두 가지를 잊어버렸습니다. 배타고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신 그 주님을 잊어버렸고 또 바다 건너 가 가지고서 주님 만날 그 소망으로 지금 그들이 출발했습니다. 그 배타고 가기는 ‘주님이 앞서 가라 하니까, 거기 가서 주님 만나겠다’ 주님 만날 그 소망과 또 ‘주님이 가라고 하셨다’ 하는 주님, 이 주님을 잊어버리고 주님이 명령하신 그 명령만 열심히 지켜 행합니다.

명령만 열심히 지켜 행하다 보니까 처음에 가라고 명하신 주님도 그들 마음에는 사라져 버렸고 또 이렇게 열심히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주님 만날 그 소망도 다 사라져 버리고, 처음에 발족시킨 주님도 명령하신 주님도 잊어버리고 그 명령 순종의 결과로 주님 만날 것도 잊어버리고, 주님을 잊어버렸어. 출발할 때의 주님도 잊어버리고 건너가서 만날 소망의 주님도 잊어버리고 어찌 됐든지 주님을 잊어버렸어.

주님 잊어 버리고 그 명령한 대로 행하기는 열심히 행합니다. 열심히 지금 막 배를 젓고 행동합니다. 행동에다가 전심 전력을 다 기울이고, 행동에다가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주님은 잊어버렸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명하셨으니 주님 명령 순종으로 내가 지금 가고 있다. 주님이 명령하셨으니 내가 간다. 주님이 명했으니 내가 간다.’ 주님의 명령이니 내가 간다 하는 요걸 잊어버리고 또 건너가서 주님 만날 이 소망을 다 잊어버리고, 가면서 양면으로 이 두 가지의 주님, 이 두 가지 면으로 주님을 잊어버리고 열심히 가기만 갑니다.

가니까, 배를 저어서 가는 가운데에 차차 차차 주님은 잊어버려서 없어지고 주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그 행동만 하다 보니까 차차 차차 주님은 자기 마음에 없어지고 저희들의 생각, 저희들의 또 이제까지의 기존 실력, 저들의 실력, 저들의 경험, 저들의 체험, 저들의 지식으로만 가뜩 찼고 저희들 지식 속에 주님은 계시지 안했습니다. 이러니까 풍랑이 일어서 가지 못하게 됐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이 성경 말씀 보고서 성경 말씀대로 행한다고 열심히 성경 말씀대로 실행은 하면서 명령하신 주님도 잊어버리고 내가 이 명령 순종하는 것은 주님 만날 이 소망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인데 주님 만날 소망도 자기 마음에도 없어지고 또 주님이 명하셨다는 주님도 없어지고 저희들 마음에 주님은 차차 차차, 배를 열심히 이렇게 노를 젓다 보니까 노 젓는 데 거게 전심 전력이 기울이다 보니까 그만 주님은 없어져서 저희들의 마음과 저거들만 가지고 이 배를 젓기로 열심히 하고서 있었습니다.

이러니까 전부 주님이 안 계시니까 순전히 예수님 만나기 전 옛사람으로서 속에 가득 차고 주님이 명령한 그 명령만 지켜서 행하는 것뿐이지 암만 행해도 주님은 잊어버렸어. 그리고 나니까 차차 차차 자기들의 그 모든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경험, 체험, 또 자기들의 주관 이것으로만 지금 완전히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옛사람 됐습니다. 완전히 옛사람 되고 안 믿는 사람과 같은 사람 하면서 예수님 명령대로 행동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옛사람이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풍랑이 일어났다, 가지 못하게 된다. 요것을 우리에게 여게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한다 할지라도 신앙 생활 열심히 하는 데 그 속에 원동력인 그 능력은 무슨 능력이냐? ‘주님이 나를 지금 가라 하신다. 주님의 명령이다.’ 명령하신 주님을 잊어버리지 안하고 이와같이 순종해 가면 주님과 나와 하나되어 만난다는 또 소망의 주님, 명령의 주님 소망의 주님을 자기 마음에 모시고 주님에게 피동되어서 그 신앙 걸음을 걸을 때에는 점점 능력 있는 걸음을 걸어갈 수가 있고 모든 그 풍랑이나 그런 것들이 풍랑이 되지 못해. 그런 게 되지 못하고 아무 어려움이 없이 이렇게 잘 가지만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생활을 시작해 가지고서 그 생활만 열심히 하다 보니까 주님 잊어버려.

주님 잊어버리고 그 생활에만 집중해 가지고서 하는 사람은 나중에 가서 보면 주님과는 상관없는 제가 하나의 이 세상 생활 하는 것처럼 하나의 그 생활 하고 있는 것이지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요것을 여게서 똑똑히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주님이 저희들 안에 있었으면 평안할 것이고 주님은 벌써 경험의 전지자요, 전능자요, 물결도 잔잔하게 하신 분이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분인데, 그분의 명령대로는 다 됐는데,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어도 남았어, 죽은 자도 살아나라 해서 살아났고, 또 상여 메고 나가던 자도 살아났고 오만 것을 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다 됐는데 이분이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 했기 때문에 피조물이 뭣이 막겠느냐 하는 이것 확신을 가지고 담력에 있을 건데 주님 잊어버리니까 그만 두렵고 떨립니다.

이러니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주님 떠난 모든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체험, 경험, 모든 것은 주님 명령하는 이 걸음을 가지 못하게 방해만 했고, 악령과 한덩어리 되니까 방해만 해서 가지 못하게 했지 저들의 힘 가지고는 이 걸음은 걸어가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도 신앙 걸음이라 하는 것은 주님에게 피동되는 이것 가지고 이 신앙 걸음은 걸어가는 것이지 주님 잊어버리고 나면 그것은 순전히 인간 힘으로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힘으로 걸어가는 그 걸음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믿음의 걸음 구원의 걸음은 절대 걸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여게서 가르칩니다.

이러니까 주님 떠나고 나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 가지고 있는 실력,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 경험, 그것은 무엇을 이루었느냐? 그들이 갈 목적지에 가는 데에 방해만 일으키고 모든 방해물들만 끌어왔지 하나도 도움되는 게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 믿는 신자가 아무리 예수님 시키시는 대로 이래 걸음을 걷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시키시는 대로의 그 형식과 제도의 걸음을 걷는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 주님 떠나고 그 소망의 목적에 주님 없고, 소망 목적에 주님 없고 또 동기에 주님 떠났고 동기에도 목적에도 주님이 계시지 안하고 저희들만 있는 그것은 신앙 걸음에는 호리도 가지 못하고 다 방해와 지장만 있어서 실패한다 하는 것을 요게서 보여 주고,

또 그들이 두려워서 무서워서 고함을 지르고 야단을 지깁니다. 그것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벌써 수십 년 동안 바다 어부 생활 했기 때문에, 수십 년 동안 바다 어부 생활 했기 때문에 ‘아이구 여게쯤 하면 수심이 지금 아마 몇 길이 될 건데, 수심이 몇 길이 될 건데. 또 우리가 그전에도 봤고 전설의 그 물귀신, 이래 가지고 뭐 바다 위에 불이 펀듯펀듯 호깨비니 뭐이니 물귀신이 와 가지고 이래 거석하고 이런데, 아무 데 또 여게는 사람이 몇십 명이 죽었고 몇이 죽었고,’ 이는 과거에 저거들이 알고 있는 모든 선입적 관념과 기존 지식이라 하는 것은 전부 저희들 고통스럽게 두렵게 떨리게 이렇게만 만들었지 저희들에게는 도움이 하나도 되지 못했다 요것을 여게서 똑똑히 보여 줍니다.

저들의 기술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지식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모든 상식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체험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다 방해뿐이지 도움이 하나도 안 됐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생활 하는 그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믿는 사람이 믿는 신앙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동기와 목적에 주님이 떠나버렸어. 주님으로 동기, 주님으로 목적 이것이 그 마음 속에 없으면 순전히 마귀 작동이요 옛사람 것이기 때문에 거게는 신앙 걸음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들이 수십 년 어부 생활 한 그 경험 체험이 저들에게 두렵게만 만들었지 평안은 하나도 주지 못했습니다.

또 그러는데, 이러니까 주님이 다급해서 ‘이것 냅두면 이것 물에 빠지고 이제 큰 놀래고 야단나겠다’ 이래서 쫓아오시니까 저희들을 구원하러 오신 주님을 보고서 물귀신 온다 고함을 지르면서 떠들었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이 귀신으로 보입니다.

주님이 귀신으로 보이는 것은 그 속에 귀신이 들어서, 주님 잊어버리면 귀신 들어옵니다. 주님 잊어버리면 귀신 들어와. 주님 잊어버리면 귀신 들어오고 귀신 들어오니까 주님은 귀신으로 보이고 귀신은 저거들을 주관을 하도록, 귀신은 저희들을 주관하도록 했고 악령이 저희들을 주관하게 했고 예수님은 악령으로 귀신으로 이렇게 보여졌다 그거요.

에덴 동산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했는 것은 하나님 깜빡 잊어버리고 나니까 그만 마귀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나니 저를, 주님이 ‘먹으면 죽는다’ 하는데 죽는다고 하는 선악과 그게 어떻게 좋아 보이는지, 그것 안 먹으면 뭐 죽겠어, 그만. 이래 가지고 먹지 안했습니까? 그렇게 귀신이 들어오면 정꺼꾸로 그렇게 생각해. 생각이 정꺼꾸로 돼. 귀신 들어온 사람이 제일 미워하면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귀신 그놈이 제일 좋다 하거든 나쁜 줄 알고 귀신 그놈이 못쓴다 하거든 좋은 줄 알아야 돼.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마음에 지혜가 있는 줄 알거든 네가 무지한 자가 되어라. 어리석은 자가 되어라. 네 마음에 옳다 싶은 것은 틀렸다, 틀렸다 싶은 것은 옳다 그렇게 네가 생각하면 바로 된다.” 왜? 인간의 생각, 주님 떠나면 인간의 생각은 마귀 생각이기 때문에 옳은 것에 정반대된다 그거요. 이렇게 돼 버리고 말았어. 귀신 온다 고함을 질렀어.

이랬는데ㅡ요게서 한 토막 갔습니다. 요 한 토막 요걸 단단해 배워요, 요걸.

어떤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잘 그래 해요. 하나님 말씀대로 시작해 놓고는 뭐 주일도 잘 지키고 새벽기도도 잘 나오고 뭣도 하고 이렇게 신앙 생활도 졸졸 이렇게 하는 이것은 마치 짐승이 길들여 놓으면 항상 길들인 대로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왔다 갔다 길들인 것 모양으로 이렇지, 속에 주님이 자기 안에 계셔서 역사하시고, 또 주님에게 대한 소망 그것이 들어서 힘을 내 주고, 주님에게 대한 소망과 주님이 자기 속에 역사하시는 이 소망의 주님과 자기를 발동시키는 이 주님을 자기 마음에서 잊어버리게 되면, 자기는 마귀의 전이 되기 때문에 마귀 들어와 가지고 작용하니까 자기들의 기술과 실력과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체험 경험 이 전부는 자기의 신앙 걸음을 방해하고 자기에게 환난을 일으켜서 아무것도 되지 안하고 이 고통만 이렇게 주고 이렇게 하고 또 자기에게 두렵게 떨리게만 만들지 도움은 하나도 되지 못한다 요걸 말씀한 것입니다.

도움 안 될 뿐 아니라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은 귀신으로 보이고 저희를 멸망시키러 온 귀신은 자기 중에 자기인 줄 알고, 귀신은 자기 중에 자기인 줄 알기 때문에 귀신이 주는 마음을 제 마음으로 알고 주님은 오니까 귀신으로 보이고 이렇게 꺼꾸로 뒤비졌다 이걸 가르치요. 요것 우리 신앙 경험에서 자기가 생각해 보면 딱 들어맞습니다. 우리 신앙 경험해 본 사람들은 다 요대로 된 것을 여러 수십 번 수백 번 체험합니다.

그랬는데 주님이 오셔 가지고서 ‘내로라. 두려워 말아라.’ 주님이 그 말씀 하는데 물귀신이 그말 하는데 무슨 소용 있겠소, 물귀신이? 물귀신이 와 가지고서, 27절에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누가 해요? 물귀신이 해, 물귀신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아라” 이제 물귀신이 그런다 말이요, 물귀신이. 물귀신이 그러니까 아마 그들에게는, 여게는 기록이 안 됐지마는 ‘물귀신이 말도 한다’ 이래 가지고 놀랬는지 모를 거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이러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평안이 온다 그말이오. 그만 그말 듣고 나니까 겁이 다 없어져 버리고, 염려가 다 없어지고, 평안하고, 즐겁고, 담대해지고, 이상하게 속에서 그만 확 일어나는 영감으로서 자기 속에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지고, 새로운 기쁨과 평강이 생겨지고 하니 이상하다 그말이오. 이상하다.

다른 제자들은 ‘야, 이상하다. 그 물귀신이 안심하라, 내로라, 두려워 말아라, 어쩐지 그 소리 듣고 나니까 우리 마음이 이상하지, 어쩐지 두려움이 없어졌다.

너는?’ ‘나도 두려움이 없는데, 나도 평안한데.' `그 이상하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이랬는데 그 재빠른 베드로는 얼른, 보니까 경험이 있다 말이오. 주님이 이제 그런데 주님인지 주님 아닌지 어쨌든지 받은 증거는 있어. 그 음성 들으니까 내 속에 뭣이 일어난다 그말이오. 베드로 속에 뭣이 일어났어.

일어나니까, 일어나기는 일어나는데 아직도 똑똑히 모르겠다 말이오. 일어나는데, 이러기 때문에 ‘만일 주시어든!’ 만일 주님이거든 `물 위로 나를 걸어오라고 한번 해 보십시오’ 이 요구가 쉬운 요구요? 물 위로 걸어오라 하면 물 위로 걸어오라 하는 그것은 역사에 죽는 말인데.

‘물 위로 걸어오라 해 보십시오’ 이러니까 `걸어오라' 자기는 지금 주님을, 보자 주님인가 주님 아닌가? 물귀신인가 보자. 내가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이러면 ‘걸어오라’ 하면 내가 주님인 것을 확실히 알고 예, 하고 내가 그만 할 것이고 만일 그때에 ‘물 위로 걸어오면 빠져 죽는다’ 이러면 자기가 지금 요구하는 대로, 요구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안하니까 이것 주님이 아니라 그말이오. 이 시험하는 거라. 베드로가 시험하는 것. ‘만일 주시어든’ `만일' ‘만일 주시어든’ `만일' ‘만일 주시어든’ 이러는데, 그때에 그러다가 ‘거기 있거라 내가 갈께. 물 위로 오면 죽는다.’ 이랬으면 베드로는 ‘만일 주시어든’ 그렇게 했는데 이것 정반대로니까 이것 주가 아닌가보다 이렇게 생각할 거 아니겠습니까? 이랬는데,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옵소서’ 이랬는데 `오라' 하니까 하, 됐다! 어떻게 좋아 놨든지 그만 훅 뛰어내려 가지고 가니까 첨벙첨벙 걸어갔다 말이오.

이것이 우리가 제일호에서, 정반대로 귀신은 제 중에 제가 됐다, 자기 중에 자기가 돼서 자기 마음에 귀신이 주는 마음은 전부 제 맘으로 해 가지고서 지금 ‘두렵다’ 떨어. 그러면 두려워 떠는 건 그건 이 선입적 지식인데 그것은 귀신이 주는 것이요 주님이 주는 것이요? 주님이 주는 것 아니고 귀신이 주는 것이라.

이러고 또, 그랬는데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받아 보니까 이상하다 말이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증거, 받은 증거, 요 받은 증거 요것이 중요해요. 받은 증거. 우리도 그래 기도 더러 안 합니까? ‘만일 주님이어든 나에게 지금 어떻게 해 주옵소서’ 주님을 시험할 때 있다 말이오. 주님을 시험할 때. 주님이 “네가 한번 시험해 봐라.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나 안 주나 한번 시험해 봐라.” 주님이 우리 시험해 보라 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속으로 ‘주님이시면ㅡ남한테 말 안 해도, 말 안 해도ㅡ요렇고 조렇고 이런 일을, 보자. 주님이면 내가 지금 이렇게 뭣을 말할 때 요렇게 해 주시는가 안 주시는가 보자.’ 주님이 자기에게 어떻게 기도의 응답을 해 주시나 안 주시나, 또 여게 대해서 바른 가르쳐서 바른 지도를 해 주시나 안 주시나 그런 것을 주님의 지도도, 주님의 은혜도, 주님의 능력도 이렇게 우리가 시험해 보는 일 많이 있다 말이오. 이것 무슨 말인고 모르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해 봤으면 통해서 다 알 것이고 그리 안 하면 못 알아들을 건데.

‘보자, 주님 오늘 이렇고 이렇고 이런데, 이런 무슨 일인데 나에게 주님이 어떻게 나를 지도해 주십시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면 이렇게 지도해 주시고 주님이 만일 기뻐하지 안한 일이라면 또 이렇게 뭣을 어떻게 해 가지고 해 주십시오.’ 저 혼자 꾸며 가지고 지금 말하지 안하고 그렇게 하는 게 있다 그거요. 그랬는데, ‘물 위로 걸어오라’ 이러시거든.

이러니까 그 어려운 일이지만 이제 자기가 주님 앞에 받은 바의 은혜를 경험해 가지고 은혜에, 받은 바의 은혜로 경험해서 주님이심을 아슴푸레하게 알겠다 말이오. ‘주님이 내게 역사하신다. 주님이 나에게 역사하신다.’ 이래서 좀 아슴푸레하게 알기는 아는데 더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 그말이오. 더 확실히 알아야 되겠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옵소서’ 이 큰 걸 요구했어.

물 위로 걸어오면 죽는 것 아닙니까? 이래 턱 이러니까 ‘오라’ 이러니까 그만 거게서 확신을 가지고서 물 위로 휙 뛰어내려 보니까 걸어갔다 그거요. 여게서 우리에게 신앙이 어떤 신앙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좀전에 주님을 귀신이라고 이렇게 했고 주님 잊어버렸고 귀신이 그 속에 가득이 차 가지고서 가는 걸음은 전부 귀신의 방해로써 걸어가지 못하고 죽을 지경으로 두려워서 떨었고 그런데 주님이 오시니까 주님은 물귀신이라고 이래 고함을 질렀고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얼마나 이 제자들이 타락이 됐소? 얼마나 주님과 멀어졌소? 주님을 물귀신이라 했으니까 그만 저주받아 가지고 당장에 뭐 오그라져 죽든지 뭐이든지 이럴 건데 이런 못된 아주 나쁜 소리를 재를 저지르고 주님을 물귀신이라 이렇게 했는데, 이렇게 했지만 주님은 거게서 상관하지 아니하시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아라’ 인간이 이렇게 하다가 실족하는 것, 주님 시키는 대로 건너 간다고 이래 배타고 가면서 그만 배타고 그래 가다 보니까 노 젓고 또 바람 이니까 ‘야 네 잘 못했다, 이리 해라, 저리 해라.’ 뭐 서로 저거끼리 수근거리고 방편 정하고 뭐 또 이 모든 기술 ‘내 기술 네 기술’ 다 이래 하다 보니까 그만 배 젓는 거게만 전심 전력 기울이고 주님은 깜빡 잊어버렸다 말이오.

잊어버리고 나니까 순전히 저희들은 주님 없는 인간뿐이기 때문에 하는 일은 전부 방해만 되고 낭파만 되고 헛일만 되지 하나도 안 돼. 요렇게 인간이 빠지기 쉽다 하는 것을 여게서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어데까지 타락됐느냐 하면 주님을 물귀신이라고 이렇게까지 정반대인 마귀의 사람이 돼 가지고 이래 있었지마는 주님은 그것을 다 아시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아라’ 그러면 우리 사람 같으면 물귀신이라고 할 때 ‘나를 보고 물귀신이라 해? 나를 유령이라 해?’ 이런데, 이렇기 쉽다 그말이오. 우리는 우리 주관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 쉬워. ‘어라, 내가 방금 주님을 물귀신이라고 이래 놨는데 주님이 노여워하실 터인데’ 이렇게 공연히 자포자기로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말이오.

몇 해 동안 허물돼 가지고서 이와같이 망령부렸으면 자기가 주님의 역사는, 전부 주님의 역사는 마귀 역사라, 주님을 물귀신이라 귀신이라 이렇게 정반대 했으면 자기로서는 주님과의 거리가 멀고 주님의 긍휼 다 입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지마는 주님은 그렇지 안하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아라’ 이렇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여게서, 어데까지 타락하고 어데까지 실수하고 어데까지 모든 생각이 꺼꾸로 되고 삐뚤어지고 어데까지 주님에게 대항을 했다 할지라도 주님은, 주님 잊어버리면 마귀의 것 돼 가지고서 순전히 마귀의 종이니까 마귀 시키는 대로 하는 그런 뭐, 못 할 범죄 없고, 못 할 행동 없고, 못 할 주님을 대항하는 일 못 할 것 없을 만치 그렇게 되어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 그말이오.

그러나 주님은 그렇다고 해 가지고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당장 거게서 생기 얻어 가지고서 모두 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은혜를 받았다 말이오.

은혜를 받으니까 은혜받고 다른 사도들은 그저 거게서 뭐 은혜받고, 뭐라 했는지 여기 기록 안 됐으니까 ‘야 이상하다 이상하다’ 이랬는지, 베드로는 언제든지 날쌥니다. 재빨라. ‘이상하다. 이상하다. 어쩐지 마음이 그리 좀 달라진다.’ 엠마오로 갈 때도 제자들이 같이 예수님하고 가는데 예수님인지 몰랐지요.

몰랐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그들이 만류해 가지고 지내고 난 다음에 그날밤에 떡도 같이 먹고 나서 뒤에 저거끼리 앉아 말하기를 ‘야 이상하더라. 우리와 같이 올 때에, 같이 올 때에 주님이 뭐 말씀하시는데 우리 마음이 어떻더노? 이상하지 않더나?’ 그말 있습디까? 있지? ‘그 주님이, 선생님이 말할 때에 우리 마음이 이상해지지 않더냐?’ ‘너도가? 나도 이상해지더라.’ 그게 인제 주님이 감동시키는 것이라 말이오. 이걸 봤다 말이오.

‘안심하라. 내로라 두려워 말라.’ 하는 이 말씀 들으니까 이상하게도 자기들에게 무슨 작용이 일어났고 사람이 변화돼 버렸다 말이오. 변화되니까 그만 그걸 보고서 그만 거머쥐고, ‘아이고 변화됐으니 이만하면 족하다’ 이러지 안하고 베드로는, 알쏭달쏭한 일이 있으니까 이 신기하니까 이것, 기이한 일이 지금 시작됐으니까 여게서 한번 서둘러 봐야 되겠다 하고서 ‘만일 주시어든 나를’ 하필 `만일 주시어든 이리 와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그런 것 아니고, 생명 내놨다 말이오.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하는 이것은 주님 앞에 자기 생명 내놓고 주님을 지금 어떤 분인가 시험해서 알고자 하는 거라. 주님을 알고 싶어 하는 데에 생명 내놓고 알고 싶어 하는 것이라 그거요. 요 이해가 돼요? 요 저 ○기사? 이해 돼? 이해 돼? 이해가 돼, 정말로? ‘만일 주시어든’ 주님인가 주님 아닌가 이것 좀 시험해 보기를 원하는 데에 자기가 댓가를 내놓기를 조금 뭐 주님 아니라도 별수 없고 주님이라도 별수 없도록 그렇지 안하고 그만 자기 생명 내놓고 지금, 생명을 내놓고 주님이냐 주님 아니냐 하는 이것을 놓고서 시험했습니다.

만일 ‘물 위로 걸어오라’ 이러는데 딴것이 걸어오라 했으면 걸어가는 날이면 빠져 죽을 것 아닙니까? 빠져 죽는 것 아니겠소? 이런데 생명을 내놓고, 이미 받은 바의 은혜의 줄을 잡고, 은혜의 줄을 잡고, 은혜의 줄을 잡고, 이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자기가 똑똑히 알아서 붙들기 위해서 생명 내놓고 달려들었다 그거요.

이러니까 주님이 ‘오라’ 할 때에 내려섰어. 내려섰는데 내려선 거게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기이한 일이 있습니다. 내려섰는데 만일 주님이면 그 물 위로 걸어가게 할 것이고 주님 아니면 어찌 됩니까? 빠져 죽지 않습니까? 빠져 죽을 요량하고 주님을 시험하고 주님을 따를라 하는 거라. 주님을 알아볼라 하는 거라.

요 참 기묘한 진리가 요 가운데 있어요.

이러니까, 푹 뛰어내려 가지고서 보니까 줄줄 물 위로 걸어가지거든. 인제 확실하다 말이오. 인제 확실하게 주님은 확실한데, 주님은 확실한데 주님을 시험해서 확실히 주님을 알고 난 다음에는 풍랑 보고 무서워하니까 또 빠져 들어갔어. 빠지니까 거기서 부르짖으니까 또 주님이 ‘적게 믿는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책망을 하시고 또 붙들어 일으켜 세웠다 말이오. 이것이 우리의 신앙 걸음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주님이 시키시는 명령대로 신앙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마음에 주님이 떠나버리고 하나의 형식과 제도만 가지고 날뛰게 되면 주님은 없고 주님의 은혜는 자기에 권능은 하나도 없어지고 마귀만 와 가지고서 자기를 방해하고 미혹시키고, 또 자기에게 있는 모든 주님 떠난 지식, 주님 떠나서 주님에게 지배받고 주님에게 피동되는 지식이 아닌 지식은 그들에게 있는 지식, 주님에게 피동되지 안한 지식 그 지식은 제자들에게 뭣을 줬습니까? ○선생? 뭘 줬어? 주님에게 피동되지 안하는 그들에게 있는 그 지식은 그들에게 뭘 줬어? 뭐라 하노? 뭘 줬어? 너 뭐 줬어? 이 사람? 뭘 줬어? 고함 질러 봐, 뭐? 풍랑? 뭘 줬어? 두려움 줬지, 두려움.

두려움 줬어. 주님 떠난 우리에게 있는 모든 지식은 우리를 괴롭게 두렵게 모두 실패되고 낭파되게 하는 것뿐이지 믿는 신자에게 주님 떠난 지식은 자기에게 도움되는 것은 한 내끼도 없습니다.

이렇게 될 때는 주님은 귀신으로 보고 자기네들 유혹시키는 귀신은 뭘로 봤어? 마귀는 뭘로 봤지? 마귀는 뭘로 봤어, 저 안경쟁이? 저 학생? 새벽으로 기도 가는 저 학생 말이요. 마귀를 주님으로? 아니야. ○○이? 마귀는 뭘로 봤지? 자기로 봤어. 자기 속에 마귀가 주는 마음 그것 제 맘인 줄 알았거든. 자기 속에서 마귀가 역사하는 그 마음은 제 마음으로 봤어.

마귀는 자기 중에 자기로 알았고, 주님은 물귀신으로 알았고, 이렇게 사람은 정반대로 뒤비져. 귀신 들어오면 선악과 먹으면 대대로 망하는 선악과는 그렇게 좋게 보이고, 선악과는 좋게 보이고 하나님이 죽으리라 먹지 마라 하는 그 말씀은 원수같이 보여지고 이렇게 정꺼꾸로 뒤벼집니다. 그래도 주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아라’ 거게서 긍휼을 베풀어서 구원하셨지 우리를 버리지 안했어.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죄 가운데 어떤 실수 가운데 깊이 빠져도 낙망하지 말아야 돼. 주님은 버리지 안하시요. 버리지 안하시고 거게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구원하시는데, 구원하셔. 그런데 구원하시는데 요 구원에 대해서는 제일 처음 순서가 뭣인고 하니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우리에게 역사하는 작용이 있어. 우리 속에 받은 증거가 있어. 자기가 성경 말씀을 읽든지, 설교 말씀을 듣든지, 또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묵상을 하든지 이럴 때에 우리 속에 와 가지고서 증거하는 증거가 있다 말이오.

그 제자들이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실 때에 그때 그 말씀 듣고서 자기들 속에 자기들이 할 수 없는, 자기들이 할 수 없는, 자기들은 아무리 그때 담대할라 해도 담대해지지도 안하고, 안심할라 해도 안심이 돼지지도 안하고, 두려움과 떨림이 있는데 그 마음이 휘떡 변해졌다 말이오. 변화를 시켰어.

자기네들이 자기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는데 주님이 오셔 가지고서 음성을 들을 때에, 주의 음성을 들을 때에 그 음성이 자기 속에 와 가지고서 자기 속에 변화시키는 그 증거를 제자들이 봤다 그거요.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설교 말씀을 들을 때에 자기 속에서 그 마음이 변화돼서 자기가 변화되는 그런 은혜를 자기가 받은 그 경험과 체험이 우리에게 있다 그거요.

그럴 때에 다른 제자들은 그만 그것 보고서 그저 인제 물귀신은 아니고 주님이 오시니까 ‘됐다’ 됐다 이러고 기다리고 있어. `됐다. 주님이 오시니까 됐다.’ 하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베드로는 특수하게, 주님의 은혜가 자기에게 와 가지고서 이제 역사하시는 걸 이제 조금 흔적을 보니까, 흔적을 보니, 끄내끼를 보니, 주님이 자기 속에 와 역사하시는 이 뽀스래기 은혜를, 뽀스래기 은혜를 받고 보니 이제 더 큰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말이오.

이래 가지고서, 한번 단단히 주님인 걸 똑똑히 알아야 되기 때문에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시옵소서’ 이럴 때에 주님이 ‘오라' 하니까 물 위로 뛰어내려 가지고서 그렇게 걸어갔던 것입니다.

이래서, 자기가 자기 속에 와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의 흔적을 보고서 그 흔적을 가지고 점점 주님을 더 경험하려고, 주님을 더 체험하려고. 주님을 더 경험하려고, 주님을 더 체험하려고, 주님을 더 알아보려고, ‘만일 주시어든’ 이렇게 하는 사람은 ‘보자, 참말로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역사했는데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역사하시나 안 하시는가? 주님이 참으로 어떤가? 주님이 참으로 나에게 역사하시나 안 하시나? 주님의 권능이 있나 없나? 주님이 이런 일도 하나 안 하나?’ 이래 가지고서 자기 혼자라도 주님을 시험해 본다 말이오. ‘만일 주님이시면 나에게 어떻게 하십시오, 해 주십시오.’ 이러면서, 주님이 자기에게 감동으로 주시든지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시든지 해 가지고 어떤 사람들도 ‘주님이여, 나에게 뭣이든지’ 뭐 명하시옵소서 지금 곧 청산하겠습니다 그것 찬송 몇 장이지? 73장? 뭣이든지 청산하겠습니다. 자꾸 그거라.

뭐 그러면, 뭘, ‘주님 나에게 이래 해 보십시오, 이래 명하십시요. 내가 하겠습니다.’ 이래 가지고서 ‘주님이 나에게 지도하시면 나에게 지도대로 행하겠습니다. 명하시면 명한 대로 하겠습니다. 감동시키면 감동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요런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을 가질 때에, 주님 앞으로 더 가까이 가고 싶어, 더 알고 싶어, 주님을 더 알고 싶고, 더 가까이 가고 싶고, 주님을 더 체험하고 싶고, 주님을 더 경험하고 싶고, 알아보고 싶고 이래서, ‘주님이 나에게 뭣이든지 명하시든지 내가 해 보겠습니다’ 하고 이러니까, 주님이 무슨 감동을 주면 그 감동대로 어려워도 실행하고 또 뭐, 주님이 성신의 감동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도 있고, 또 이 주위 환경을 만들어 가지고서 그 말씀을 실행할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에게 알려지는 것도 있고, 요런 환경 주면 그 말씀 지키라 하는 거고 조 환경 주면 조 말씀 지키라 하는 거니까 ‘이제 주님이 나에게 뭣이든지 명하면 내가 한번 지켜 보겠습니다.’ 요렇게 생각을 가지고 주님을 가까이 하기 위해서, 주님을 더 굳게 잡기 위해서, 주님을 더 똑똑히 알기 위해서, 자꾸 주님을 알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 알기 위해서 시험하는 것으로, 보니까, 감동하는 데에 하고 보니 또 이제 들어맞았고 또 환경을 줄 때에 ‘요때는 주님이 요것 요것 실행하려고 요런 환경 주는갑다’ 그 환경에 또 실행을 한번 해 보고, 자꾸 요렇게 해서 나가는 그 걸음은 바다 위로 걸어가는 걸음이다. 바다는 이 세상을 가리킨 건데 세상을 발 아래 밟고 걸어갈 수 있는 초인간의 신앙 걸음을 걸어갈 수 있다 하는 것을 요게서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일 주시어든’ 요것 요 단단히 기억하고, 이래 가지고서 조그만한 은혜를 붙들고 점점 큰 은혜로 가기 위해서 조그만한 은혜 주신 것을 붙들고 ‘보자, 주님이 이렇게 하시는가 보자.’ 또 시험해 보고, 보니까 또 되거든. 또 되고 또 되고 자꾸 시험하니까 자꾸 되고 되고 이래 가지고서 나중에 가서 어데까지 가느냐? 물 위로 걸어가는 초인간적인 이 신앙 행위를 걸어갈 수가 있다 하는 것을 여게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고, 사람이 아무리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고 한다 할지라도 그 마음 속에 동기에나 소망에서, 소망에 주님도 없고 출발하는 동기에 주님도 잊어버려 버리면 주님의 명령대로의 신앙 행위를 하는데 마귀 행위 해 가지고서 결국은 자기 가는 일은 다 방해가 돼져 버리고 가지 못하고 다 중단되고 만다.

그래 가지고 나중에 차차차 삐뚤어서 되면 주님은 떠나 버리고 자기 주관만 가득 차 가지고서 있는 걸음이고 주님의 시키는 대로 걷는 걸음은 가지고 못하고 이제 그건 다 중단돼 버리고 공연한 풍랑들이 일어나 가지고서 이래 가지도 못하고, 그래 되면 주님이 물귀신으로 보이기까지 그렇게 정반대의 사람이 되어지고 만다.

그래도, 그런 실수에도 주님은 버리지 아니하시고 또 구원하시니까 주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안심하라’ 하신 그 주님의 사랑의 주님을 붙들고 끝까지 낙망하지 말고 가라 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고, 이러다가, 주님이 자기에게 나타나셔 가지고서 ‘안심하라 내로라’ 하시니까 자기 속에 일어나는 작용이 있어. ○집사님 그런 것 경험 있어요? 그런 경험 해 봤어? ○○○권사님 많이 해 봤지? 많이 해 봤지. 우리가 수백 번 수천 번 해 봤습니다.

이러니까, 이래 ‘오라’ 할 때, 은혜 오면 그 은혜만 받고 `됐다' 할 게 아니고 그 은혜를 거머쥐고, 거머쥐고 또 시험해 봐, 주님이 또 이것도 해 주시는가 보고, 시험하는 것은 안 되는 것, “시험하다가 멸망받았다” 하는 그것은 믿으라는데 믿지 아니하는 그 시험을 말하는 거요. 요 지금 말하는 것은 틀린 거라.

이제, ‘보자, 주님이 요것도 지금 해 주시는가? 주님이 명령 내가, 뭣이든지 명령하면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명령하면 순종하겠습니다. 죽음에 가라 해도 죽음에 가겠습니다.’ 이 베드로에게 물 위로 걸어오라 하는,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하는 그 말은 무슨 말이요? 좋은 명령 하라 말이요 죽은 명령 하라 말이요? 예? 무슨 명령 하라는 거라? ○? 이것 모르는가배. 죽은 명령 하라는 거라, 죽은 명령. 물 위로 걸어오라 하면 죽는 것 아니요? 물 위로 가면 빠지지 별수 있는가? 죽은 명령에도 이제 순종했어. 물 위로 걸어갔다 말이오.

이러는 가운데에서 그는 물 위로 인간이 걸어갈 수 있는 걸음을 걸었고, 또 그러다가 걸어간다고 해 가지고서 한번 시작하면 그만 그대로 가는 게 아니라.

걸어가다가 한번 푹 빠져 버리면 ‘아이구 내가 빠져, 이만치 가다가 빠졌으니까 뭐 되겠느냐?’ 네까짓 게 성자됐다가 순 죄인 된다. 성자됐다가도 죄인도 되고, 의인됐다가도 흉측한 더러운 나쁜 놈도 되고 별것 다 돼. 돼도 ‘주여, 나를 구원하시옵소서.’ 하면 또 들어올려 주셔. 이 소망을 우리가 가져야 돼요. 그래 가지고서 물 위로 걸어 결국은 물 위로 걸어가는 그 걸음을 걸어서 배 위에 올라가 가지고 목적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여게서, 인간이 이렇기 때문에 이래 가다가서 주님 잊어버리면 푹 떨어진다.

떨어지면 어데까지 떨어지느냐? 주님을 물귀신이라 하는 데까지 뚝 떨어진다.

그래도 주님은 버리지 안한다. 주님이 또 구원하러 오실 때 주님이 구원하러 오셔서 당신의 구원이 오니까 자기에게 경험이 있다, 자기 속에 마음이 변화가 됐다, 주님이 자기 속에 와 가지고 변화됐다. 변화된 것 고것 거머쥐고서 이제, 거머쥐고 놓지 안하고서 ‘만일 주시어든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옵소서’ 하니까 ‘오라’ 하니까 그만 그래도 안심하고서 걸어갔다 말이오.

이랬는데 그러다가 빠졌습니다. 빠지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왜 적게 믿는 자여 의심하였느냐?’ 그렇게 책망했습니다. 고것 의심해서 그리 됐어.

이러니까 요것을 좀 깊이 깊이 생각해서, 주님이, 우리가 어데까지 떨어져도 당신이 거게서 또 살아날 길이 있고, 어데까지 또 이렇게 위대하게 걸어가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물 위로 걸어가던 사람이 뭣 때문에 물 속에 빠졌겠소? 잘 가다가 풍랑 만나 못 갔고, 또 그렇게 물귀신이라고 하기까지 타락했는데 거게서 또 주님이 또 은혜를 베풀어서 또 살아났고, 살아나서 물 위로 올라가서 최고의 걸음을 걷다가 또 푹 빠져버리고, 또 푹 빠질 때 또 구하니까 또 올라가고, 이렇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기 위해서 하셨으니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서 굳게 서서 달려야 합니다.

이번 성탄을 계기로 해 가지고 우리 잃어버린 양떼를 다 찾도록 하자고서 주일학교 광고 요청이 있습니다. 또 반사 선생님들은 요번 공과, 지난 공과 또 합니까? 공과를 잘 외우도록 하시고 새벽기도 꼭 나오도록 하고 또 지하철 위해서 기도하고, 이번 주일에는 분교와 또 여기 비디오 그것 비품과 이래 가지고 연보하는데 연보 액수는 그저 조그매만 하면 됩니다. 한 칠천만 원 하면 됩니다.

이런데 기한은 언제까지냐? 기한은 금년 연말까지 낼 요량하고 그렇게 기록하십시오. 기록해 내는 것도 금년 연말까지 낼 요량하고 그 기록해 내고, 어짜든지 미리, 뒤에 빚내 가지고 내놓고서 할 그래 하지 말고 이제 씨는 심고 양식은 먹어야 되니 있는 대로 연보해요, 없는 돈 가지고 빚내 가지고 하지 말고.

있는 대로 연보하고 양심대로 연보하고, 또 있는 대로 연보하고 또 뒤에 또 모자라면 또 연보하고 또 연보하고 그러지 뭐 미리 연보 많이 해 가지고서 그렇게 빚 짊어지고 그래 하지 말아요. 없는 돈 하지 마. 없는 걸랑 하지말고 있는 것 가지고 연보해요, 있는 것 가지고.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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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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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6 행함없는 믿음의 결과/ 야고보서 2장 14절-17절/ 1980. 11. 13.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5375 행함없는 믿음은 죽음/ 야고보서 2장 14절-17절/ 1980. 11. 14.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5374 행함과 율법주의/ 야고보서 2장 14절-26절/ 1988. 10. 4.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5373 행함 있는 믿음/ 야고보서 2장 26절/ 1987. 3. 13.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
5372 행함/ 야고보서 2장 14절-26절/ 1978년 3공과 선지자 2016.01.11
5371 행한대로 보응하시는 하나님/ 갈라디아서 6장 6절-9절/ 1981년 3공과 선지자 2016.01.11
5370 행하면 기적과 축복/ 야고보서 2장 26절/ 1985. 10. 4.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
5369 행위와 자체/ 베드로전서 1장 17절/ 1986. 11. 5.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5368 행위대로 판단/ 베드로전서 1장 17절-19절/ 1985. 3. 29. 지권찰회 선지자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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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6 행위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요한계시록 2장 23절/ 1989. 1. 11. 주일학교 공과 선지자 201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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