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은 자기가 된다

 

1986. 11. 6. 새벽(목)

 

본문:요한계시록 20장 11절∼15절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여게,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는 이 재림이 되면 모든 것은 다 불타 버립니다.

그런데, 그때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베푸시고 신불신자들을 다 심판하십니다. 이런 데는 보면은 신불신자가 동시에 심판받는 것같이 그렇게 보여지나 또 딴데서 믿는 사람은 먼저 심판받고 안 믿는 사람은 그 다음에 심판받을 것을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게 대해서 물었는데, 시간을 두고서 그렇게 묻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시간은 그 존재와 사건을 들어서 말한 것이지 시간은 그것은 말을 안 할 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심판이 동시에 되는 걸로 되어 있고 여게서도 동시에 되는 걸로 돼 가지고 있으나 그는 그렇게 심판이 같이 다 심판된다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지 그 시간이 동시라는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니까 그런 착각을 하지 말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심판을 베푸셨는데 그 심판 앞에 모든 사람들이 다 거게 나타납니다. 그 사람을, 죽은 유해를, 죽은 그 시체를 물에 넣어서 수장을 했든지, 토장을 했든지, 불에 태워서 화장을 했든지 어떻게 했든지 각 사람의 그 시체는 다 살아납니다.

그래서, 빌립보 3장 끝에는 보면은, 만물을 상관하시는 자 앞에 다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 주권으로 주장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지금 모든 만물을 주장하는 거와 같이 예수님 재림 때도 수장을 해 가지고 물에서 뭐 썩어서 고기가 먹고, 고기 먹은 것을 또 다른 고기가 먹고, 또 그 고기를 사람이 먹고, 사람이 먹은 것을 또 죽으면 그 시체를 흙이 먹고, 흙이 먹은 것을 또 모든 식물들이 먹고 이렇게 어떻게 변해 갔을지라도 모든 만물을 복종시키는 주님께서 모든 만물을 복종시켜서 자기라는 심신의 요소는 어데 가서 어떻게 있든지 그것이 다 내놓기 마련입니다.

“바다도 내놨다” 그말은 그 하나에서 땅도 내놨다, 또 불에 탄 것은 다 연기가 돼 가지고 공중에 그 원소로 다 퍼져 흩어져 있지마는 그것들도 내놨다 그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어데 바다만 내놓고 다른 거 안 내놨는가? 그 내놓은 그것은 하나 말함으로 모든 것이 다 그리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간단 명료하게 해 가지고 성령받은 사람들이라면 깨달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간단하게 했지 그걸 다 기록할라 하면 온 세상에도 둘 만한 곳이 없는 그런 양이 많습니다.

그런데 거게 우리가 좀 주목을 할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죽으면 원소로 돌아가는데, 흙이 되고 흙은 또 이거 공중에 이거 모든 액체가 되고, 액체보다도 더 나중에 거석하면 그게 이 공기같이 돼서 다 풀어지고 흩어지고 이러나 그것이 다 자기 몸뚱이 자기가 입고서 다 살아난다 하는 그것을 여게 가르치는 것이 우리가 제일 주시해야 될 일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지고 살던 이 심신이라는 육은 그것은 물질인데 그 물질이 어떤 원소로 돼 가지고 어데 가서 지금 있든지 그것은 낱낱이 다 부활시킬 때에 하나님이 부활시켜 가지고 그 행한 대로 심판을 하신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다음에 부활해 가지고 하늘나라에 가서 살 때에 성도들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입고 살았던 자기 그 육은 그대로 가지고 갑니다. 그대로 가지고 가는데 다만 거게 기능만 뽑혀 버립니다. 기능만 뽑혀 버리고 또, 그것의 그 형체는 그대로 가져가기 때문에 다 그때에 피차에 누구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는 그런 것을 성경에는 말하지 안했지마는 유력한 그런 모든 성자들이 입신 가운데서 만나 본 그런 것을 증거한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우리가 미루어 추측해 볼 때에 자기가 가지고 살았던 심신의 육이 그대로 다 부활하니까 그 모양을 다 알지 모를 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하지 안해도 알 것이라 이렇게 우리가 추측할 수 있고 추론할 수도 있는데 또 입신 가운데에서 그렇게 만나 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자기의 육이 됐던 그것이 어떤 것을 했든지 그 육은 다 자기 육 자기가 다 살아난다. 사람이 죽으면 흙이 되고, 흙이 또 풀이 되고, 풀을 또 다른 짐승이 먹고, 또 그 풀이 썩어서 뭐이 되고, 몇십 번 이렇게 윤회했다 할지라도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분이 그 모든 것을 다 살려낸다, 부활을 시킨다 그렇게 빌립보서 3장 끝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그 석가모니가 ‘사람이 잘 살면 사람 되고 못 살면 개도 되고 배암도 된다’ 하는 그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이 열어 주지 안하니까 몰라서 다만 이 육이 이렇게 윤회해서 이 사람의 육체가 풀도 되고, 풀이 흙도 되고, 흙이 또 다른 초목도 되고 이렇게 되는 그런 윤회하는 그것만을 보고서 사람은 인도환생이라 다시 살아난다 그렇게 자기가 한쪽 귀때기의 일방 지식을 가지고 그렇게 말한 것이 불교의 윤회주의입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각각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자기 육이라는 그 요소는 어떤 원소로 퍼쳐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거는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가지고 ‘모아들라’ 하니까 모아들고, ‘이 사람에게 소속한 이 사람의 지체는 무엇이 돼 가지고 있든지 다 이 사람에게로 모아들어서 살아나라’ 할 때 다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살아나는데 책이 둘이 있다 이랬습니다. 책들이 둘이 있다. 하나는 행동을 기록하는 책이고 하나는 생명을 기록하는 책이라 그렇게, 생명책이라 그렇게 책 두 권이 있습니다. 책 두 권이 있는 이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록에서는 실상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알려 줄 때에 그것을, 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바로 말해 놓으면 이 악한 자들이 그것을 방해를 많이 하기 때문에 연약한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 성경을 보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육십오 권을 간추려서 모두 다 결론을 지어놓은 것이 계시록인데 이 계시록은 모두 다 상징적으로 그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육십오 권을 성경을 아는 사람은 읽어보면 ‘이것은 무엇을 가리킨 것이라’ 이렇게 알 수 있고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전연히 모르도록 그렇게 기록해 놨습니다. 여게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그 기록한 이유가 뭐이냐? 성령받은 사랑하는 자들은 바로 깨닫고 박해를 할라고 하는 악한 자들은 깨닫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래 기록했다.’ 그렇게 주석을 했읍디다. 했는데 그 주석한 데 대해서는 저도 동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해서, 만일 그걸 그들이 보여 주면 그들이 저거는 어떻게 멸망한다는 것을 다 환하게 말했기 때문에 욕해서 다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데, 그런 것들이 다 그렇게 자기의 어떻게 멸망할 것을 환하게 나타내고 있으니까 그거 알면은 그런 것을 듣기 싫고 해서 박해가, 필요 없는 박해가 있을 것이라 그말이오.

그래서, 모든 성경은 다 많은 양을 간추려서 참 알고 싶은 사람, 또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 또 자기가 실행함으로 알아지는, 실행함으로 자신이 변화되고 변화됨으로 알아지는 요 완전한 방편 외에는 알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나님께서 간추려서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랬는데 여게, 모든 것이 다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원소에 어데 가 있든지 그것을 다 복종시켜 가지고 그것이 다 부활하도록 그렇게 하신다 하는 그걸 우리가 명심해야 되겠고, 또 하나는 그 심판을 받는데 책이 두 권이 있다.

하나는 생명책이고 하나는 모든 사람의 행위를 기록하는 행동록 그 책이 둘이 있다 하는 여게 대해서 우리가 주의를 해서 항상 주시해야 됩니다.

생명책이라 말은, 생명책이라 말은 하나님과 연결을 기록한,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그 사람이 연결된 그 연결점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그렇게 하는 것을 우리가 많이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도 이 생명에 대해서 말한 사람은 제가 아는 대로는 신학자들 가운데서 그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고신에 다닐 때도 뭐 박사들이 많이 있고 이랬지마는 안 했는데 오종덕 목사님은 그 증거를 했습니다. 하나님과 잇겨진 게 생명이요 하나님과 끊어진 게 죽음이라 하는 것을 그분이 증거했었습니다.

그분은 그때 제가 아는 대로는 우리 한국에서는 성경을 제일 깊이 아는 분이 오종덕 목사님이라고 그렇게 저는 평가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은 다른 사람들이 다 가르치는 걸 뭘 가르치는지 잘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생명책이라 말은 하나님과 연결을 기록한 책이라 그말입니다. 하나님과 연결을 기록한 책이라 말은 자기가, 하나님과 연결은 곧 뭐이 하나님과 연결이냐 하면은 우리를 대신해서 세 가지 사활로 대속해 주신 대속은 전부 하나님과 연결입니다.

대속해 주신 건 전부 하나님과 연결입니다.

우리를, 우리 죄를 다 담당해서 우리를 해방과 자유를 주신 그 공로를 베푸신 것을 주님이 베푸셨고, 하나님의 공심판에 모든 면으로 다 완전타 하여서 통과시킨 것이 또 예수님이 통과하셨는데, 신인양성일위로 통과하셨는데 그 통과는 곧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내 통과가 되고, 심판 통과가 내 통과가 되고, 또 해방 자유가 내 자유가 되고 또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영감과 진리대로 온전한 행위를 다 해 가지고 나에게 주셨기 때문에 내것이 되는 이 세 가지 지극히 큰 대속은 주님이 이것은 전부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과의 그 관계를 바로 맺은 그것이요 또 모든 피조물과 관계를 바로 맺은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주신 그것이 곧 생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이라. 행위의 생명도 있고, 소유의 생명도 있고, 그 모든 기쁨의 생명도 있고 모든, 생명 있는 기쁨, 생명 있는 평강도 있는데 생명 있는 평강이라고 하면은 하나님과 연결된 평강이라는 말이요 또 생명 있는 기쁨이라면 하나님과 연결된 기쁨이라. 하나님과 연결이 돼 가지고 된 것은 그는 영원하지마는 하나님 떨어져서 뭣 되는 그까짓 것은 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기 생명책이라 말은 그건데,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다 같이 예수님을 믿지마는 한 시간 믿은 자도 있고 한 시간도 못 믿은 자도 있고 평생을 뭐 백분지 구십구를 믿은 자도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하기 위해서 자기가 믿은 후에는, 산다싱도 보니까 자기가 믿은 후에 하나님과의 그 생각이 조금 서로 떨어진 거, 하나님으로 더불어 살지 안한 그것이 불란서 파리라는 그 화려한 곳에 가 가지고 너무 화려하기 때문에 돌아다니다가 네 시간 하나님과 끊겨진 생활 했다는 것을 그걸 책에 다 기록하고 평생 다시는 그런 일을 그 사람이 하지 안했다는 말을 기록한 걸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참 잘 살았고, 후란시스라는 사람은 한 시간도 하나님과 끊겨지는 그런 생활을 가지지 안하고 꼭 하나님과 함께 연결돼서 하나님의 참 성전으로 살았고, 하나님의 지체로 살았고, 하나님의 몸으로 살았고, 하나님은 저의 안에 생명이시며 저의 주로서 이렇게 산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을 그 사람의 전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고 오늘도 예수 믿는 가운데에서 이런 유력한 무슨 목사라든지 장로라든지 무슨 신학자라든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라고, 껍데기 유명한 사람, 그 껍데기 유명한 거 그거 유명하다고 참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명하게 잘된 것은 아닙니다.

이래서, 외모로 보시지 않는다 하는 그말은 저 사람은 장로라, 저 사람은 유력한 목사라, 저 사람은 세계에서 유명한 부흥사라, 목사라, 뭐 신학자라 하는 그거로써 보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도 외모에 들어갔습니다, 그거 다.

그런 것으로써 상대하지 않는다. 않고 행한 대로 갚으신다. 그러면 그 사람이 행동은 자기이기 때문에, 행동은 자기가 됩니다. 지난밤에 그것을 많이 말했는데 행동은 자기가 됩니다. 자기가 무슨 말 했든지 말하고 버렸으니까 자기는 잊어버려도 말한 그대로의 자기가 되어 있는 것은 영원히 벗지를 못합니다.

말한 것도 그렇고, 행동한 것도 그렇고, 자기의 뭐 뜻한 것이나, 또 생각한 것이나, 자기 마음 먹은 것이나 이렇게, 마음에도 천태만상의 행동이 있고 우리 몸뚱이도 천태만상의 행동이 있는데 인간 자체는 행동해 놓고 잊어버려도 그것이 자기에게는 그대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영원히 억억만 년을 가도 고거 들어내면 요거는 요 모양이라 요거는 요래 돼 가지고 있다. 고거 만들어진 것이 그래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라 하는 것을 지난밤에 많이 말을 했습니다.

이래서,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지마는 하나님과 연결이 이거는 별별 천태만상으로, 됐다가 떨어진 사람, 또 한 번도 하나님과 연결은 되지 안하고, 어만 것만 연결됐지 하나님과 연결되기는 하나도 연결되지 안한 사람, 또 연결되되 연결되다가 또 끊어졌다 연결됐다 끊어졌다 연결된 사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해 가지고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낱낱이 다 기록된다.

우리는 “기록된다” 했는데, 기록이 된다, 그러면 붓으로 손으로 쓰는 거 기록만 했지 요새는 벌써 그것이 소리는 기록돼서 녹음이 된다. 그러면 소리가 기록됐다 그걸 가리켜서 녹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또 촬영이라 하는 것은 형체가 그것이 또 기록됐다 하는 것으로 뭐 촬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 생명책이 있고 이 모든 행동록이 있다는 것을 이것을 자꾸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서, 단순히 처음에는 책에다 기록한 걸로 봤지마는 이제는 기록은 여러 모양으로 기록이 된다 하는 그것이 자꾸 나타나고 지금 이십세기가 자꾸 문화가 발달되니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자꾸 더 알게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어쨌든지 이거는 앞으로는 더 세상에 증거하는 것이 더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이 그 사람 행동한 게 이와같이 돼졌다’ 지금도 그 사람이 말한 그것이 다 우주 음파에서, 소리 음자 물결 파자, 음파에서 그것을 캐내면은 다 캐낼 수가 있다. 모든 사람이 천 년, 뭐 몇천 년 전에 지나간 사람도 그 사람을 공만 많이 들이면 음파 속에 캐낼 수가 있다, 거기 다 들어 있다. 그렇게 이 과학자들이 지금 말을 하고 있습니다.

또 행동도 이 우주에 이거 이 필림 속에서 그 행동을 찾아낼 수가 있다 할 만치 이것을 지금 사람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기에, 생명책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찌 됐든지 관계가 된 그대로의 그 사람이 돼 가지고 있다. 그러면 그것이 따로 책이 있다. 책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렇게 그것이 다 기록돼 있다 하는 그것을 말씀한 것으로 그렇게도 볼 수가 있고 곧 하나님 앞에 심판할라고 나타났는데 나타난 사람 그 자체가 그것이 돼 가지고 있다 이렇게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러니까 책에 기록했다 하니까 책을 부인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이러니까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 앞에 다 그대로 예수를 어떻게 믿었다는지 또 그 사람이 행동은 어떻게 했다든지 그대로 다 나타나고 있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여게서 주의를 하고 주목을 해야 됩니다.

또 성경에는 베옷을 입고 있는데, 마포 옷을 입고 있는데 세마포 옷을 입었다 하는 그말은 세마포라 말하면 아주 가는 삼베라 말이요, 가는 삼베. 가는 삼베라 하는데 가는 삼베라는 말을, “가는 삼베는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 이렇게 말한 거게서 우리는 짝 없는 말씀이 없기 때문에, ‘굵은 삼베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여기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삼베옷을 입고 있다는, 베옷을 입고 있다는 그 상징으로 말했기 때문에 사람의 행동이 어떤 사람은 참 보기 좋은 하나도 얼이 지지 안하고 이 일생이라는, 일생이라는 자기의 날 중에, 일생이라는, 이 베 짜는 걸로 말하면, 베로 말하면 일생이라는 날에 한 시간 두 시간 북이 왔다갔다 하는 거 모양으로, 이거 씨라고 안 합니까? 옆으로 하는 거 이거 뭐라 합니까? 옆으로 하는 그거 뭐라 하요? 그거 뭐라 하요? 저 ○○○씨 어머니 한번 말해 보지요. 베 짤 때 옆으로 이래 북이 왔다갔다 하는 그걸 뭐라 합니까? 베 짜이는 게 북이라 해? 그거 뭐이요? 이 옆으로 이래 짜는 그거는 뭐라 해? 일본 갔다 와 놔서 내가 모르지 싶어 하는 거라. 씨라, 씨. 이거는 씨, 이거는 날.

앞으로 쭉 자기 일생이 쭈욱, 죽을 때까지 쭈욱 계속해서 있는 그것은 날이요 씨는 한 시간 이래 살고 또 한 시간 이래 살고 이래 사는 그거는 다 이거는 씨라 하는 거라, 씨. 씨가 박혔다. 씨가 안 박혔다. 날은, 날은 변동 있습니까 없습니까? 날은 꼭 같습니다. 그러나 씨는 잘못 짜면 얼도 되고 빠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전에, 우리 어머니는 길쌈을 많이 했어요. 이랬는데 베를 다 못 하니 시장 갖다가 파는데 팔 때 보면 그 혹 얼이 한 군데라도 있으면은, 아마 장사하니까 그런 모양이라. 그거 내가 보기에 보니까 얼을 그때, 베를 이래 개 가지고 파는데 이래 보면 갠 걸 이래 턱 털어 가지고 이래 시장에서 보는데 보면 그 흠 있는 것이 안으로 들어가도록 그렇게 개고 흠 없는 것은 밖으로 가도록 그래 개요.

그래 개서 제가 옆에 있으며 가만히 보니까 ‘그거 어째 저래 갤꼬?’ 이래 싶어도, 보니까 그렇게 베를 개어 가지고 팝디다.

그게 일반 사람들이니까, 다 흠 있는 거 안으로 넣을 줄 알고 또 좋은 거는 밖으로 낼 줄 아는데 그거 흠 있는 거 밖으로 내면 ‘이거 아마 속에는 굉장히 더러울 거다’ 일반 공통이 그렇기 때문에 그러하기는 해요. 장사들 다 안 그렇습니까? 보니까, 어떤 거는 잘 짜이고 어떤 거는 그만 잘 못 짜여서 얼이 지고 이런데 옷을 해 입어도 모시라든지 뭐 마포라든지 이런 거 다 거석하면 짜다가 그만 씨가 잘 못 박히고 그만 이래 가지고 얼이 지면은 보기 싫다 말이오. 얼이 지면 그만 그 베가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거는 끊어내 버립니다. 그거 끊어내 버리고 좋은 데만 넣는데 끊어내 버리면 그거 팔면은 자수가 안 되면 부득이 그걸 끼워 가지고라도 그렇게 해서 값이 아주 떨어진다 그거요.

이렇게 세마포 옷이라 그말은 인간이 인간 일생이라 하는 이 날 중에, 날이라 말은 신 날, 베 날, 이 앞으로 쭉 있는 그걸 날이라 합니다. 알겠습니까? 또 북이 왔다 갔다 하면서 하나 둘 그거는 씨라고 말해요. 그것을 다 사람들이 입고 있더라.

그러면 자기 일생 동안 이렇게 저렇게 사는 것이 자타가 알도록 환하게 보여진다 하는 그것을 상징해서 “세마포 옷을 입고 있는데 그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그말은 아주 흉한 아주 못쓸 베옷을 입고 있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좋지 못한 나쁜 행동이라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있다 그말이오. 안 그렇습니까? 이러니까, 우리 행동한 것이 옷과 같이 이렇게 자타가 환하게 보게 ‘저 사람은 붉은 옷 입었다 푸른 옷 입었다’ 하는 거 모양으로 이제 자기의 모든 행동이 자타들이 다, 자기나 다른 사람들이 모든 사람이 처음 만나도 환하게 ‘이 사람이 이렇게 했다’ 그 사람을 환하게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다 무궁세계에서는 다 드러나 있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옷으로 상징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옷으로 상징한 거.

했는데, 또 우리가 심판 받을 때에는 생명책과 또 행동책이 있다. 생명책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졌든지 맺어진 그 진상이, 맺어진 그 실상이 다 나타나 있고, 하나님의 심판 받을 때 거게 나타나 있고, 또 하나님과 관계 가진 이 모든 사물과 관계되는 그것이 다 거게 나타나 있고, 인간들과 관계도 다 나타나 있고, 나타날 뿐만 아니라,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고 외모로 갚지 안한다” 행위대로 갚는다 하는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이냐 하면 자기가 하나님과의 관계나 인간과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된 그것이 다 책에만 기록한 거, 책에 기록한 것만 아니고, 사진 박히고 뭐 녹음돼 있을 뿐 아니라 자체가 돼 가지고 있다. 자체가 돼 가지고 있다 하는 그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절대로 한 시간 행동 버리지는 안합니다. 못 버립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수치스러울 그 행동은, 만인간에게 드러날 때 그거 칭찬받지 못하고 수치스러울 수 있는 그 행동 그것은, 그것은 지금은 해서 지나가 버렸지마는 그거는 자기에게 흠으로서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아서 우리가 조심해서, 모든 사람이 볼 때에, 더군다나 더 하나님이 볼 때에, 모든 사람이 다 보게 되어지는, 수치스러운 그거는 그게 다 드러내니까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은 그러기 때문에 세상은 지옥의 그림자요 천국 그림자라. 이 세상에 좋은 것은 다, 좋은 건 사람들이 다 좋아하고 자랑할라 하고 다 수치스러운 거는 가룰라고 하지 않습니까? 수치스러운 것은 가룰라고 하고 좋은 것은 자랑해서 자꾸 드러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뭐이냐? 하늘나라와 지옥의 그림자라 그말입니다.

이러기에, 이 세상에서 수치스러운 걸 가룰라 하는 것보다도, 가룰라 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그 무궁세계에서 지옥에서는 전부 가룰라고 하는 그 수치스러운 것이 다 드러나게 되고 또 자랑할라 하는 거 자랑을 할 게 아니라 모두가 다 무궁세계에 다 드러나게 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 언행심사를 자기가 일단 했으면 벗지 못합니다. 또 자기가 뜻이나 생각이나 마음이나 한번 가졌으면, 퍼뜩 지나가는 마음이라도, 다른 사람을 퍼뜩 한번 욕을 했다든지, 다른 사람을 훼방을 했다든지, 다른 사람 을 저주를 했다든지, 또 다른 사람을 축복을 했다든지 한 그것이 다 그대로 나타난다 말이오.

하나라도 삭혀지지 안하고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대로 나타났는데 다만 예수님의 대속으로서 이게 속량받아서 그 값이 없고, 잘못된 것의 값이 없고 화가 없는 것뿐이지 다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그 하나 우리가 있는 것은 예를 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조그만한, 그 사람의 행복을 싫어한다든지 불행을 좋아한다든지 그 사람에게 가지지 못할 마음, 그 본인이 알면은, 그 본인이 알면은 내게 대해서 원망 불평을 할 수 있는 그런 내가 마음을 가졌더라 말이오. 가졌으면 그거 다시 취소가 안 됩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가졌는데 다만 그것은 회개로만 되는 것인데 그렇게 가졌는데 그 뒤에 보니까 그렇게 마음을 잘못 가졌던 그것을 그 사람이 그뒤에 원통히 여겨서 후회를 해서 그 사람에게 주먹덩이만한 억울한 마음을 가졌고 억울한 생각을 가졌었는데 그 뒤에 그거 회개를 해 가지고 주먹덩이보다 이거 하나 아름되게만침이나 그 사람에게 잘못된 것을 뉘우치고 또 그것을 그 사람에게 대해서 오히려 마음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기 잘못된 걸 뉘우치고 보니까 이 퍽 다른 사람에 대해서 억울하게 잘못 생각을 가진 것이 주먹덩이만한 게 나오니까 모든 사람이 눈을 뜨면서 ‘저거 뭐꼬?’ 이라는데 그 뒤에 보니까 그걸 후회해서 오히려 돌이켜 회개한 것이 막 집채뭉치만침이나 회개했으면은 그때에 그와같이 생각한 그것이 처음에는 놀랬지만 뒤에 그것이 도로 한테, 다 자기 행위이기 때문에 다 한테 합해 가지고 통계를 맞추니까 모든 사람이 존경을 하더라. 또, ‘저것이 예수로 말미암아 저렇게 회개를 하고 죄 사함 받았구나’ 해서, 그게 도리어 수치가 뒤에 존대로 화해질 수 있는 것이 오늘이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것이 드러나니까 드러나기 전에 오늘 문제는 “하나님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되면 다 나타나고 그대로 영원히 심판받고 이래 되기 때문에 그날에 나타나기 전에 그날에 수치스러울 것을 그날에 영광스러울 것을 오늘에 지금 준비하는 것이 슬기로운 사람이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라고 우리 이 별관에, 우리가 자꾸 마비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마음이 둔해져서 자꾸 우리 마음이 그만 마비성을 일으켜서 자꾸 둔해져서 저 지금 저기서 지하철을 저래 파고 있는데 오십 자를 팠다 하면 오십 자를 파면 우리 집 안 넘어가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오십 자를 팔 때에 걱정을 했었는데 이제 오십 자를 파 가지고 벌써 집 밑에 자꾸 땅이 꺼져들어갑니다. 이 중앙병원 있는 데도 담을 이래 딱 붙여 쌓았는데 벌써 담을 붙여 쌓았는데 그 담이 이만치 어겨졌습니다. 아마 요만치 어겨졌지. 요만치 어겨졌으니까 이만치 무엇이 어찌됐든지 이만치 삐뚤어졌다 말이오. 이만치는 절단났다 말입니다. 또 여기 지금 앞에 여러분들 가는 데 안 있습니까? 이 모두 다 세멘으로 밑에 다 이래 싹 해 놨지 집도 이래 놨지 이래 놓으니까 못 견뎌 이게 이만치 갈라졌습니다, 이만치 갈라졌어. 이만치 갈라졌으니까 거게가 갈라진 그 위에는 세멘을 딱 덮어 있으니까 그거 갈라지지 못하고 그러면 그거 세멘이 갈라지는 게 아니라 밑이 갈라지니까 그 세멘이 갈라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갈라지고 또 밑에가 들어가고 있다 말이오.

이런데 이 집이 이래 떡 이래 가지고 있으니까 이거 눌러 가지고 있으니 이거는 이거 갈라지지를 못하고 한덩어리, 한덩어리가 주저앉으면 주저앉지 갈라질 수가 없다 말이요, 흙이. 이러니까 여게는 안 갈라지고 이 양사방 자꾸 내려갑니다.

여게도 내려가고 여게 내려가고 자꾸 양사방 내려가. 양사방 내려가는데 내려가기를 얼마나 내려갔느냐? 제가 볼 때에 한 이만한 정도 내려갔습니다, 꺼져내려갔어요. 꺼져내려갔으니까 이게 자꾸 처음에는 요래 꺼져도, 꺼져내려가도 위에는 차차 차차 캄프랏치 되다 보니까, 되니까 위에는 요만치 꺼진 게 표가 나면은 밑에는 더 많이 꺼졌다 그말이오.

이 꺼지는데 양사방 꺼지니까, 꺼지니까, 왜 대피하라 했느냐 하면은 이 꺼졌으니까 이게, 여러분들이 모래 위에다가 이런 걸 놔 놓고 모래를 파 보면 알아요. 모래를 파 보면 이거 이래 가지고 여게는 이런 게 눌러 있으면 여기 가운데는 안 갈라집니다. 안 갈라지고 이 가에서 술술 이래 가지고 내려가다 보면은 이게 나중에 밑에, 집 밑에, 무거운 오층짜리 집 밑에 있는 흙이 이 오층 집을 들고 있을 만한 그 힘이 모자라면 착 애그라집니다. 애그라지면 어찌 돼요? 그라면 그래 있다가 위에 무거운 게 많으면 이게 애그라지면 흙히 차르르 에르라지면 탁 주저않는 것만치 위에 물건은 그거는 절단납니다. 뭐 집이 이만치 절단나면 그래 가지고 있겠습니까? 팍 짜그라져 버리고 말지, 막 전부 공굴로 해 놓은 건데.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위험하다, 아무래도 안 됐다, 저거 피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대피를 시켰는데 그 사람들 대피를 시키고 땅이 이래 물러가는데 우리는 지금 거기 대해서 감각이 없다 말이오. 여러분들이 지금 감각이 없어. 돈은, 예배당 지을라 하면 돈은 내지 않으면서 이제 집 무너지는 데 대해서는 아무 감각이 없어. 뭐 집이 무너져 그라면 뭐 백 목사 있을 곳이 없어 지금 애가 터져 하겠소?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다 이 감각을 가지고, 보면 ‘아이구 이 집이 이래 무너져 어짜노?’ 이 마음이 계속 있어야 뭐이 될 건데 그만 처음에 ‘아, 이거 무너졌다. 이거 큰일났다.’ 이틀 지나니까 그만 보고 나 다 면역성이 생겨져서 아무 감각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뭐 우리가 거기 대해서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기도를 해야 됩니다.

자꾸 기도를 할 수밖에 없어. 기도하고, 그래 지금 한쪽머리서는 세멘을 넣으라고 지금 조우고 있습니다. 조우고 있어도 그뭐 ○○○집사님이 조우고 있지마는 ○○○집사님 조우는 거 그 사람들이 어떻게 능구렁이인지 예사로 압니다.

이제까지 그래 돈벌어 먹고 산 사람들이 뭐 하는 집마다 옆에 집하고 싸우는데 하도 그 사람들은 싸우는 것도 면역성 있어서 다른 사람이 막 호득거리며 죽는다 해도 그 사람들은 또 예사입니다. 이러니까 그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서, 우리는 또 기도하고 걱정을 하고 또 이 장로님들이나 모두 다 이런 분들은 또 거기 대해서 어떻게 연구를 해서 좀 힘을 쓰도록 하고 여기 또 책임자 ○○○집사님은 그 사람들하고 자꾸 달라들어서 지금 여기 뭐, 달리는 없어. 이래 내려가니까 이 부근을 채울 수밖에 없어. 이 부근을 채우는데 그 사람들 말은 뭐 기계로 넣어 가지고 세멘을 넣으면 오히려 너무 많이 차면 이게 집이 들려올라갈 만치 그렇게 막 힘이 있다고 하니까 거짓말쟁이라 말이오. 거짓말쟁이인데 그러나 들어가기는 들어가는 모양이오.

어짜든지 구멍을 뚫어 가지고 넣으면 스무 포는 들어간다 하는데 스물 몇 포 들어가는 걸 한 구멍에 들어가는 걸 봤다 하니까 그래 들어가면 이게, 자꾸 들어가면 여물어질 것 아닙니까? 주변이 들어가면 이게 푹 쪼그라질 게 쪼그라지기 전에 주변이 들어가서 든든해지면 이놈이 쪼그라지지 못하고 이래 있을 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나는 그것 때문에 밤새도록 잠을 못 잤어요, 자꾸. 엊저녁에 그래 가지고 내가 여기 기록하기를 그러면 이만치 기록을 해 놨어요. 여기 대해서 오늘 의논할 때 이걸 얘기해 가지고 어떻게 해야 되겠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자꾸 ‘여기 갖다 넣어라.’ 그 사람들한테 지금 조우고 있습니다. ○집사님이 여기 자꾸 세멘을 갖다 넣으라고 조우고 있어요. 조우고 있고, 조우고 있어도 그 사람들 안 갖다넣어. 할 수 없어 우리가 우리 돈으로 거석할까 이렇게 생각을 하고도 해 봤는데, 가만히 인제 지금 생각하니까 이 공사 그 사람들이 넣고 싶어도 못 넣어요. 딱 돈에 요 돈만치만 하라 이랬기 때문에 이거는 시장이 넣어라 해야 되지 이거 시장이 넣으라 하지 안하면 이거 못 넣을 거 같애, 가만히 생각하니까. 왜? 도급 준 사람이 ‘이거는 외에 공사니까 이렇게 들어가니 여기 이만치 들어가니까’ ‘들어가도 그거 우리가 계산해 줄 터이니까 넣어라’ 허락이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이래 싶어서 만일 그렇다면 시장에게 해 가지고라야 이게 되어지지 그 사람들만 조아봤자 저거 돈 들일라 하는가요? 이러니까, 이만치 지금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병원하고 우리집하고 요래 가지고 딱 요래 같이 붙어 해 놨는데 이게 이만치 뚝 떨어졌습니다. 떨어져 뭐 전부 세멘이 다 떨어내 내려오고 이랬어. 이랬는데 또 거게도 와서 그라니까 고맙다 하기는 해도 그뭐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가 그런지 그 사람들도 또 그 사람들한테 말도 하지 안해요. 하기는 우리가 말하니까 뭐 우리 말하는 게 그 사람 말한 거 이상으로 말하니까 우리 말하는 데 따라가지 그 사람들이 뭐 딴거 할 게 없을 거라 그말이오.

그것 또 그 집은 이래 한테 연결돼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 여간 갈라져도 이래 밑만 이래 나가고 이런데 저쪽 길 있는 데 거게는 어떻게 갈라졌는지 아마 갈라져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위해서 같이 기도합시다.

무너지면 우리가 또 집도 지어야 되고 또 그라다가는 어떻게 뭐 사고가 날란지도 모르고, 들으면 그저 마귀란 놈들은 이리 하든지 저리 해 가지고 구원을 깨뜨릴라고 애를 쓰는데 우리 서부교회 구원을 깨뜨릴라고 얼마나 애를 쓰고 있으니까 그런 것 하나 있으면 뭐 별별 이용을 할 것입니다.

이 서부교회 그렇다 하니까 서부교회란 이름을 내 가지고 이래서 저 어데 서부교회가 있는가, 서부교회 그뭐 괴정동 어데 서부교회인데 그 서부교회라 하면 이 서부교회밖에 모르기 때문에 서부교회로 자꾸 우편물이 이리로 날아 들어옵니다. 보내면 또 오고 또 오고 자꾸 우편물을 자꾸 이리 가져와요.

그러니까 수위된 분은 이거 이 서부교회는 우리 서부교회가 아니고 저 괴정동에 서부교회 한 교회가 생겨졌다 하는 그것을 말해야 되지. 자꾸 사람들은 이렇게 하고 있는 판이라.

이러니까 이거 무너지면 복음 운동, 복음 운동은 사람 구원 운동에 손해간다 말이오. 사람 구원하는 거는 죽는 사람을 살릴 수가 없다 그말이요,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 죽어가는 사람을 우리가 살릴 수가 없기 때문에, 살아 있는 내가 문제가 아니라 죽어가는 그 사람을 다시 더 살릴 수가 없기 때문에 문제라 그말이오.

이게 다 남을 위하는 사랑이라. 짜다라, 배고픈 사람 밥 한숟가락 주면 그게 사랑이 아니라. 이거 좀 넓고 폭넓고 자꾸 큰 사랑을 우리가 가져야 돼요. 거게 대해 무너지거나 말거나 하는 ‘내 집 안 무너지는데’ 하는 그게 잔인이라 말이오. 인간 구원에 대한 관심이 없는 잔인한 인간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금 오분 기도후에 권찰회 모입니다. 오늘 아침에 그런 것 다 의논할 터이니까 장로님들은 의무적으로 다 참석해요. 장로님들은 교인 대표로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 장로님으로 다 모두 교인들이 선출해 놓은 것이니까 이럴 때는 자기네들이 나서 가지고 뭐 어떻게 하든지 해야 됩니다. 실은 목사라 하는 거는 교훈만 하지 뭐 그런 데서는, 목사가 그런 일 하는 목사 없어요. 다 설교나 하면 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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