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집회준비

 

1984. 6. 30. 토새

 

본문 : 이사야 26장 1절∼4절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선지자선교회 1절 하반절에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구원으로 성곽을  삼을 터인데 이 성곽은 아주 견고한 성곽입니다. 성이라는 것은 외적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어가 되도록 해 놓은 것이 성이요, 또 안에서는 외적을 대항하는  데에 아주 편리하도록 해 놓은 것이 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구원으로 성곽을 삼으신다 이 말씀은 구원,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이 구원에는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하신다, 또 이  구원을 자기가 입으려고 애를 쓰는 이 구원을 일삼는 자에게는 모든 대적들이 다  이용물이 되어지고 모든 존재가 결과적으로는 다 이용이 되어지게 약속하신  하나님이 이루신다 하는 말입니다. "구원으로 성과 곽을" 성곽이라 말이오.

'성곽을 삼으시리로다.' 성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사람 살기 좋도록  편리하게 해 놓은 것이 성이요 곽은 그 윤곽, 가의. 성의 모든 단장이라 할까  성벽이라 할까 그런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계약하신 하나님이 당신이 구원하시는 이 구원으로만 성과 곽을  삼으신다, 이 구원하시는 이 구원 안에서만 사람들은 평안하게 안정되게 살 수  있다 하나님이, 이 계약을 선포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거 예언서인데  말세에는 이 구원을 자기가 이루려고 하는, 이 구원을 이루는 사람, 이 구원을  힘쓰는 거기에만 평강이 있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역사하신다. 이 구원 밖의 것은  하나님이 다 노아 홍수 때에 방주 밖의 것을 멸하신 거와 같이 멸하시는 역사를  하시고 구원 안에만 평강이 있도록 하고 또 이 구원은 성의 곽과 같이, 성곽같이  하나님이 삼으셔서 이 구원을 해하는 자는 전부 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다  불리하게 해 가지고 다 절단을 내 버린다, 또 이 구원 밖에 어떤 것이 있든지,  크든지 작든지 뭐 많든지 적든지 간에 어떤 것이든지 다 이 구원에 유리하도록  하나님께서 역사를 하신다 하는 그것을 여기에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신 이 구원은 말세에 성곽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구원은 뭐인가? 우리의 구원은 주님의 구속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주님의 구속은 세 가지인데, 우리가 사죄를 입는 것이  우리의 건설구원이요. 칭의를 입는 것이 건설구원이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이것이 건설구원입니다. 이 세 가지 구원을 이미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입고 있고 건설적으로는 지금 우리가 입으려고 애를 쓰고  입는 중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신다 그 말은 말세에 기독자들이 이 세  가지를 하는 일에는, 이 세 가지 일을 하는 거기에는. 이 세 가지를 힘쓰는  거기에는 모든 방해물이다 결국은 이 세 가지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자에게  결과적으로 이용이 되고 만다. 이용이 되고 만다. 이래서, 이 세 가지만 힘쓰는  자는 그 밖에 어떤 것이 있든지 뭐 대적을 하는 것이든지 환영을 하는 것이든지  협조를 하는 것이든지 어쩌든지 이 구원을 이루려는 그자에게 그자 밖에 있는  모든 것은 다 그에게 결과적으로 이용이 되고 그를 돕고 그를 위해서 있는 것이  되어진다 하는 그 결과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그리스도의 것만 되면  하늘의 것이나 땅의 것이나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모든  것이 다 결국은 네 것이 되고 만다 하는 그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을 견고히 잡아야 됩니다. 왜? 우리가 이 사죄의  은혜를 입고 살라고 할 때에 마찰이 많습니다. 칭의의 은혜를 입고 살라 할 때에  칭의가 마찰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과 연결된 이 생활을 하려고 할  때에 마찰이 많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마찰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지고  마찰되는 그런 것을 결과적으로는 다 너의 것을 만들고 네게 이용물을 만들고  너를 위하고 돕는 것이 되도록 이렇게 하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계약에  불변하신 여호와께서 선포하셨는데도 우리 사람들은 가다가 그만 자기 이성 판단  이것 가지고 '아무래도 내가 여기서는 주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을 양보를 해야  되지 이거를 지키다가는 직장도 떨어지고 또 내 신변도 위험하고 또 생명도  빼앗기고 모두가 낭파되겠다' 이래서 그만 이 성에 있다가 성 밖으로 툭 튀어  나와 가지고 멸망을 받습니다. 이거 우리가 견고히 잡아야 됩니다.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말세에는 주님이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기  때문에 요 구원을 힘쓰고 요 구원을 잡고 있는 자는 요 성곽 안에 있는 자이기  때문에 결국은 성 밖에 있는 적들이 다 이 구원을 힘쓰는 자 의 것이 되고  힘쓰는 자에게 정복을 당하고 힘쓰는 자를 위하는 것이 되어 진사 요것을 견고히  우리가 잡아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안 됩니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 문들을  연다, 이 문들을 여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문을 여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문을 열라.' 부인하는 것 부인하는  것이, 자기 주관대로 살았던 것을 다 고치는 회개하는 것이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다 고치는 것이 문을 여는 것이오. 자기를 부인하는 것.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라.' 이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복종하는 이 세계로 들어오라. 네가 네 주관대로, 네 사욕대로, 네  선입적 관념이나 지식이나 체험이나 지식이나 뭐 그런 것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하신 이 말씀에 복종하는 것.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하나님의 이 말씀에게 복종하는 것이 이것이 신을 지키는 것이요 이래  가지고 성공이 되면 의가 됩니다. 신을 지키는 것은 모든 공사 하는 것을 말하고  의가 된 것은 준공 된 것을 말합니다. 의가 된 것. 준공된 것. 의로운 나라로  들어가라. 들어오게 하라.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네 심지가 견고한 자, 오늘 아침에 증거하려는 이 제일 중요한 요지는 '심지가  견고한 자'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구원으로 성곽을 삼으시고 책임지고  계시는데 우리들이 이 구원을 놓지 아니하고 이 구원을 입고, 우리가 이미  입었습니다. 이 구원을, 입은 구원을 벗지만 안하고 하면, 이것만 안 벗으면  우리는 승리합니다. 이것만 안 벗으면 하나님은 우리의 성곽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곽이 됩니다. 이 구원이 우리의 피난이 된다 말이오. 이 구원  때문에, 사죄 칭의 화친 때문에 죽는 것 같지만 사죄 칭의 화친은 너를 보호해서  모든 피조물이 너만 위하도록 돼 가지고 있는 것이 이 세 가지 구원이다.

오묘합니다. 주님의 세 가지 대속은 모든 존재가, 이 세 가지 대속을 안  벗으려고 하면 모든 존재가 결국은 자기의 것이 다 되고 맙니다. 자기를 위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러니까. 마귀는 뭐 이 세 가지만 안 벗으면 안 벗는 사람  앞에는 결국은 그놈은 영원히 종노릇 해야 되기 때문에 뭐 죽자 살자 하고  결사적으로 이 세 가지 대속을 벗도록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이 벗지 안하고, 심지가 견고한 자, 심지가 견고한 자라 말은, 자기가  이 구원에 대해서 지식을 가집니다. 구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하고 소원도 하고 모든 계획을 가집니다. 이래서 이 구원에 대한 모든  지식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자기 정도대로 지식을 가진 그대로는  자기에게 이상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 구원의 지식을 가진 대로는  이상을 가진다 말이오. 이상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가 이 구원의  지식을 아는 대로는 '아, 나는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고 이렇게 하고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 하는 자기 속에 다 이상이 있다 말이오. 그 이상이라 말은  자기로서는 최고의 생각입니다. 최고의 생각, 최고의 소원,  그러면. 이 구원을 우리가 이루어 가기 때문에 이 구원에 대한 지식을 자기가  가졌기 때문에 이 구원에 대해서 '나는 구원을 이런 구원을 얻었으면 좋겠다.

저런 구원을 얻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저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또 이런 성공을 가졌으면 좋겠다. 저런 성공을 가졌으면  좋겠다.' 자기로서 다 거기서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자기의  구상하는 그 이상이 있다 말이오. 자기가 구상하는 아주 참 기이한 최고의  소원과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있는데. 그것을 가진 고것을 그  다음에는 그렇게 하는 그 실행인데 그 실행을 그 가진 대로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을 가리켜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요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가 그런 것을 기록하는 것  좋습니다. '나는 하루 생활에 무엇을 얼마 하고 무엇을 얼마 하고 무엇을 얼마  하고 무엇을 얼마 하고, 몇 시로부터 몇 시까지에는 뭐하고 몇 시로 부터 몇  시까지는 뭐하고' 그렇게 자기가 하루 일과를 딱 짰으면 그것이 자기로서는  자기의 이상입니다. 자기의 이상, 자기의 포부라 말이오. 자기 소원이라 말이오.

그 이상을 딱 기록을 해 놓고 '요대로 해 보자' 할 때에 그렇게 하기로 작정한  그것이 뭐이냐 하면 사람의 의지입니다. 사람의 심지입니다. 작정한 것이  심지요. 심지인데, 그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라 하는 것은 자기가 작정한 그대로,  실행을 딱 했으면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라. 그러면, 그래 작정한 대로 하루를  계속했으면 하루 동안은 심지가 계속됐고 이틀 했으면 이틀이 계속됐고 그것이  계속됩니다. 된 그것이 계속되는 것을 가리켜서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라.

 그러면, 그렇게 계속이 된 사람에게 '평강에 평강으로 더하시리라.' 고 계속  하니까 뭐이 됩니까? 계속하니까 자기의 성곽이, 여호와가 자기의 성곽이  구원으로 성곽을 삼았는데 고 계속 하니까 자꾸 성곽이 자기에게 발견이 됩니다.

해 보니까 '아, 내가 이 성곽 안에 들었구나. 여호와의 품 안에 들었구나.

품안에 들었는데, 여호와가 모두 다 만드셨고 여호와가 주권하고 계시는,  그것들을 공연히 놀래 쌓네. 여호와의 팔이 나를 아듬고 있는데 그걸 걱정했다.'  이걸 발견한다 말이오. 자기가 여호와가 구원으로 성곽 삼은 여호와의 성곽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발견합니다.

 아무리 지식으로 자기가 말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자기가 구원에 대한 그  이상을 자기가 다 나열 해 놓고, '내가 요렇게 하겠다.' 고 이상을 딱 뭐 기록을  하든지 머리에 기억을 하든지 '나는 요렇게 하겠다.' 요 이상을,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고 어떻게 해야 되겠고' 고 자기 지식 나름대로 요소가 지식이  넓은 사람은 그 요소가 숫자가 많겠고 또 적은 사람은 적겠고, 적은 사람은 적은  대로 많은 사람은 많은 대로 자기가 구비해야 될 구비 요소 그 구비 요소를 딱  자기가 계획을 딱 세워 놓은 그것아 심지인 바, 그래 계약을 세워 놓고 그대로  어떻게 하든지 실행을 해라. 뭐 딴 거 돌보지 말고, 네가 가만히 앉아서 '내가  요렇게 성경 지식을 가지고 볼 때 내가 요렇게 되고 요렇게 되고 요렇게  하겠다.' 그 이상을 네가 딱 기록을 해 놓고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도록 네가  노력을 해라. 옮길라고 노력할 때에 그때에 어떤 애로가 있어도 꺾어지지  말아라. 꺾어지지 말고 그것을 실행해서 달성을 시켜라. 그래서 어거스틴은  말하기를 '의지가 꺾어지는 것이 죄다. 의지가 꺾어지는 것이 죄에게 벌써 다  패전한 것이다. 신앙의지를 그대로 가졌으면 모든 적은 승리한 게 된다.' 그렇게  말을 한 것을 제가 어딘가 한번 봤습니다.

 그러기에, 심지가 견고한 자가 견고해 가지고 하루 나가니까, 심지를 그대로  꺾어지지 안하고, 자기가 이상을. 자기가 목표로 딱 하고 이상을 딱 작정한  그것을 하루를 계속하니까 그 하루에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의 성곽이 되신 것,  구원으로 성곽이라는 구원 그것은 전부 하나님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의 참 보좌가 되는 것,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것을 자기가 하루 심지 계속을 하면 그만치 자기는 발견하게 된다 여호와의  품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틀을 계속을 하면 그만치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데,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요' 이게 자꾸 발견이 돼지니까 평안하다 그 말이오.

사람은 자기가 승리하면 기쁘고 즐겁고 자기가 패전하게 되면 자연히 근심과  걱정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구원이 내 성과 곽이 됐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그 구원이 성과 곽이 됐는데, 암만 됐다 하지만 믿어 져야지요?  믿어지지 안하기 때문에 고통인데 이제 하루를 계속하니까 이게 더 믿어지고  이틀 계속하니까 더 믿어지고 사흘 계속하니까 더 믿어지고 이러니까 믿어지는  것만치 자기는 든든하고 평안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만유의 대주재의 아들인데  아들인 걸 몰랐더라 그 말이오. 하니까 자꾸 아들인 것을 자꾸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되고 우주는 자기의 상속물인 것을 알게 되고,  이러니까 뭐 굉장히 크지고 굉장히 담대해지고 굉장히 평안해지고 굉장히  든든해지니까,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한다.' 그 말은 온유한 자는 자기  세상살이를 완전히 자기 것 삼는다 그 말인데, 온유라 말은, 하나님의 구원과  자기와 하나님과 관계를 깨닫고 보니까 뭐 든든해. 평안해. 그걸 가리켜서, 그  상태를 가리켜서 온유하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 우리들이 하나님이 구원으로 말세에 성곽을 삼으셔서  이 구원 안에 있는 사람은 밖에 있는 걸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지만 밖에 있는  사람은 이 구원 안에 있는 사람은 털끝만치도 해하지 못합니다. 요걸 단단히  견고히 잡고, 요걸 견고히 잡고,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야 될까' 하는 것을  자기 지식대로, 각각 자기 나름대로 자기는 '나는 요렇게 요렇게 하겠다.' 하는  그 이상을 기록을 하라 말이오. 이상을 '나는 요렇게 살겠다.' 하는 그 이상을  기록해서, 그것을 기록해서 자기의 하루의 일과표를 삼든지 시간표를 삼아라.

시간표를 삼아서 딱 작정해서 어디는 어디까지 어디는 어디까지 요렇게 딱  했는데, 하나를 해 놓고 자기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요걸 계속을 하면 그  다음에는 이제 그것이 바꿔집니다. '아, 요것 가지고는 미비하다' 거기서 더  세밀하게 더 구비한 것을 작정하게 됩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또 구비하게  돼. 이러니까. 자꾸 그것을 더 구비해야 되기 때문에 양심에 자책할 것이 하나도  없이 그 모든 것을 만들어서 내 마음에 자책할 것이 없기까지 자기가 작정한  것을 달성을 이와 같이 하지만 달성하니까 눈이 띄져서 더 구비 요소를 발견하고  보니까 이루지 못한 요소가 더 많다 그거요. 이러니까 자꾸 죄인 중에 괴수  죄인으로서 그것이 자기에게 단점 부족한 점이 자꾸 발견이 되면 죄인이 아니라  그것이 날마다 새로 발견되는 것이 자라간다는 증거요, 자기 눈이 밝아졌다는  증거요, 자기의 지각이 더 넓어졌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를 계속하니 하나님의 구원이 성곽된 것을 자기가 발견하고,  자기가 얼마나 든든한데, 얼마나 평안한데. 자기의 보좌가 얼마나 있는데! 아.

만유의 대주재인 아들이 돼 가지고 있으면서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하는 것도  그것이 공연한 걱정이었고 전지전능자의 절대적인 그 불변의 계약으로 자기를 딱  안보해 가지고 있는 이 안보를 받고 있으면서 공연히 죽을까 싶어서 공산주의가  오면 그 앞에 오만 변동 다 하지, 신사참배 오면 변동 다 하지 지금도 뭐 직장에  어려움만 있으면 그만 신앙생활 다, 네가 직장에 근거되어서 직장에 소속해서  직장에 피동되고 있느냐 하나님에게 피동되고 있느냐 번연히 알 수 있는데, 뭐  잘난 것 같지만 아무것 도 아니야. 이렇게 대개 잘났다고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소속된 그 줄이 약하고 세상에 소속된 줄이 강합니다. 왜?  자기로 살기 때문에. 어리석지를 맙시다. 그러므로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에 평강으로 더하시로다.' 왜? 그 사람은 왜 그러는고? 그것은 심지가  견고한 것을 이렇게 그대로 계속해 나가려고 하면 '이라다가는 낭파된다'  하는데, 낭파된다 하는데 그 사람이, 낭파된다고 옆에 사람들이 '그라면 너  낭파된다 큰일난다 큰일난다'하는데 그 말에 대해서 꼼짝도 안 하는 것은  뭐이냐?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이 그때 표가 난다 그 말이오.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이 그때 표가 나. 이러니까, 이제 그 사람은 며칠 지키고 나니까, '야,  든든하다.' 또 더 지키니까 '든든하다.' 이제 든든하기는 든든한데 무엇이 자꾸  새로 발견되느냐? 든든한 것도 발견돼지고 하나 발견되는 것은 자꾸 자기에게  고칠 것 구비 요소, 부족한, 고칠 것. 또 구비 요소 이것만 발견되니까  한쪽으로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 되고 한쪽으로서는 평강에 평강으로서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하리요' 하는 그 평강에 평강을  더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밤에 ○목사님이 좋은 설교를 했는데, 어쩌든지 우리가 여기 구원 여호와의  구원 우리가 잘못하면 말이지요, 인격, 인격 하다가는 잘못하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왜? 세상에서 인격 말을 많이 합니다. 인격 말을 많이 하는데, 그  인격이 인간 제대로의 인격이지 하나님의 그 법에 맞추지 못하고 잘못하면  그렇게 되기 쉽다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피공 그 뭐이냐? 사죄, 칭의, 화친  요 세 가지 구원에 연결돼서 요 세 가지 구원을 벗지 않는 그것이 완전한  인격이오. 벗지 않는 요것 요것을 견고히 잡아야 되지 잘못하면 기독교  도덕주의, 기독교 도덕주의는 인격주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것을 견고히 잡고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에 평강으로 더하신다' 왜? 심지 겨  고한 그것이 여호와를 의뢰한다는 표시요. 심지가 가다가 꺾어지는, 것은  여호와를 의뢰한다고 말로만 그렇지 의뢰하지 안하는 그 증거라 그 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모두 다 거창 집회에 대해서 전력을 기울여야 되겠습니다. 지난밤에 광고할 때  보니까 여러 가지 광고를 했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성령과 물과 피, 영감과  진리와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 이 세 가지가 우리의 보증인데, 이 세 가지 은혜가  충만하도록 우리가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 세 가지 은혜가 충만하도록  우리가 기도를 해야 되겠고 또, 그 다음에는 전국에서와 세계에서 어디서 올는지  모르니까 전국에서와 세계에서 모여드는 모든 사람들이 잘 오고 잘 가야 되지  교통 사고 나면 그만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많은 구원이 절단납니다. 그 교통에  대해서 안보를 기도를 해야 되겠고, 또 그 다음에는 모든 자기 직장이나  가정이나, 또 관리들이나 백성들이나 자연이나 환경의 그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은혜 받는 이 은혜에 대해서 협조를 해 줘야 되겠고, 인제 이라면 모든 배경이  다 잘 됐습니다.

 배경을 이렇게 잘 되도록 이렇게 해 놓고 난 다음에는 우리 마음이 참 갈급해야  되겠고 가난해야 되겠고, 간절해야 되겠고. 우리 마음이 비어야 되겠고,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쓴뿌리와 죄악을 다 도말해서 뽑아 버려서 옥토 같은 심령이  돼야 되겠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을 붙드시고  당신의 피와 피로 말미암은 성령의 감화와 피로 말미암은 진리 이 세 가지 능력  역사가 나타나서 이번에는 우리가 이 사람 병 다 고쳐 가지고 와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옛사람은 완전히 죽여서 다 땅에 파묻고, 매장을 시키고 완전히  새사람으로 완전히 변화가 돼서 사람 병 첫째는 고쳐야 되겠고, 사람병 고치는  그 증거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이번에는 이제, 병은 뭐 백 팔십 몇 가지가  나았으니까 굉장히 낫기는 나은 것인데,  나는 그랬소. '이 사람들 이거 참 거짓부리로 하는가' 이래 나는 봤는데. 어떤  사람 내가 하나 보는 사람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은 항상 이 팔을 못 올려서 옷을,  옷 입을라면 이거 이래 가지고 이래 입고 이라는데 그만 어찌 됐는지 집회  가서는 술술 이랬는데 지금도 어떠냐니까 지금 이거 뭐 아무 일 없이 잘됐다고.

그게 신경통인가 뭐인가 그런 건데 그저 평생 병신입니다. 평생 병신인데  하나님이 낫아 주셨습니다. 또 혹부리도 그만 뚝 혹이 떨어졌다 말이오. 그런데,  눈이 딱 들어붙었는데 들어붙은 눈이 똑 떨어졌대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셨으니까, 하나님이 이걸 표적으로  보였으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하신다 하는 것을 증거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에  대한 확신을 주도록 이렇게 하는 것인데 사람이 한 것같이 어떤 사람은 백 목사  집회이니까 백 목사가 한 것같이 그렇게 시기를 하고, 또 그렇게 뭐 시기한다는  그게 속에 옛사람이라는 그 증거라 그 말이오. 또 하나님이 하셨으니까,  하나님아 그렇게 필요해서 드러냈으니까 그걸 자꾸 말해야 될 것 아닙니까? 자꾸  말해서 '봐라. 이렇다 이렇다. 대구 집회에서 백 팔십 몇 건이 나았다. 나는  옆구리 고름이 나오다가 대구 집회 때 고름이 이게 다 멈추고 그때 나았다. 그때  나았다.' 이것을 죽는 날까지 자꾸 말을 해야 하나님이 그를 좋아하시고 또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라 말이오. 이거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그자가  하나님의 역사를 부끄러워하니까 마귀가 들어서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거요.

 이래서. 눈이 떨어지면 '어찌 됐노?' 보니까 눈은 똑 떨어졌는데 안에 동공이,  눈은 떨어졌는데. 이렇게 붙은 게 떨어졌는데 '보이는 것 어찌 보이노?' 보이는  것은 아주 똑똑히 그렇게 보이지는 안하고 아삼하게 그렇게 보인다고. 그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으니까 그 집회 때 같은 그 심정이 자꾸  계속해서 좀 더 점점 더 사람병이 고쳐지면 그거 완전히 고쳐질 거라 말이오.

그러니까, 병 낫다가서 병 낫기를 시작 했다는 사람 많은데 그 사람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사람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런 것을 하나 표적으로, '여기  사람병 고치는 굿이다' 하는 표시로 그라는 것이니까 이제 사람병이 고쳐지면 그  사람 그게 고쳐질 거라 그 말이오.

 이런데, 내가 교역자들 보니까 믿음이 없는 교회는 그런 걸, '저런 걸 뭐  그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면 눈꼽재기만해도 막 드러내서 어쨌든가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고 이랄라 하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쭉 파묻어서  없애 버리고. 또 하나님이 하시는 것도 '나를 통해서 하면 하지만 아무것이 집회  때 하는 것은' 그런 시기심이 들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그러니까 말하기가  싫어서 말 안 하고 뚜렷한 것은 이래 말하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협조하지 안하고 자기 속에 사욕이 가득히 들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교걸  회개를 해야 된다 말이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무슨 눈꼽재기 같은 이런 것도  '아이구, 이거 봐라. 이거 누가 했노?' 아무라도 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한 것이  분명하면 '이거 하나님이 하신 거 아니냐?' 막 자꾸 드러내가지고 이렇게 지금  하는 그 사람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자랑하고 싶고 하나님 하서는 일을  드러내고 싶고 하나님을 높이고 싶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으로 끌어  들일라고 하는 그 심정을 가진 사람인데, 목회자로서 원하고 원한다 하면서도  나중에 그럴 때 보면 자기 사욕이라는 고놈이 들어서 일하기 때문에 양의 껍질을  입은 이리라 그거요. 요래 가지고 그것도 좀 죽여서 고쳐야 돼요.

 그런데, 이번에는. 저는 그래, 기도합니다. 이것 속에 심령병이니 이래 다 병이  고쳐지니까 이 어두운 사람들.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이 그 나은 것은 다  마지막에 마귀란 놈이 유혹 주니까 '아, 그때 기분이 좋아. 나았는가? 좀 쉬니까  나았는가? 쉬니까 나았는가?' 오만 것 자꾸 이래 가지고 자꾸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부인시킬라고 애를 쓰는데, '이번에는 앉은뱅이가  일어나야 뚜렷이. 앉은뱅이가 일어나야 알겠고. 눈먼 소경이 봐야 알겠고.

귀머거리가 들어야 알겠고, 벙어리가 말을 해야 알겠고, 문둥이가 깨끗해야  알겠고 이러니까 그들이 알 수 있는 것을 좀 그래 주십시오' 내 이래  기도합니다. 왜? 그게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 우리  총공회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또 하나님이 당신이 말씀해 주신 것. 이  말씀이 구원의 도리라는 것을 당신이 증거하는 것 이것 때문이지 뭐 백 목사야  그까짓,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백 목사 붙들고 하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지 백  목사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백 목사 행위는 더럽게 만들어 놨습니다.

이래 놨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한 게 아니고 내가 했다' 그  증거라 말이오.

 이러니까, 어제도 내가 뉘하고 말했는데, 이라면 어떻게 빠락 빠락하이 성도  잘내고, 뭐 혈기라 할는지, 혈기도 잘 내고 째랙 째랙 이래 가지고 말의 실수도  많고 그만 다른 사람에게 유한 덕을 세우지 못하고 딱딱해서 침으로 꼭꼭 찔러  버리니까 그 사람이 회개할 것도 회개 안 하고 그만 돌아서 고 반항을 한다. 그  말이오. 반항을 해요. 반항을 해도 나도 또 배짱이 있거든. '옳은 것이면 네가  할 일이지 안 하고 반항을 하면 얼마나 할 것이고? 내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전달이기 때문에 네가 반항하려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아라.'  이래서, 오늘 여기 ○○○이 왔는가 몰라도 ○○○목사님에게도 내가 하고, 또  ○○○목사님 뒤에 가니까 ○○○목사님이 그라니까 막 분해서 막 이래  뛰더래요. 이래 뭐 분해서 뛰고 뭐 별별 소리다 하더래요. 이랬는데. 내가 어제  ○○○목사님 왔기 때문에 '보자 이제 어찌 됐노?' 이라니까 '예, 아주 회개를  하고. 잘못됐다고 회개를 하고. 지금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뭐 이렇게 저렇게  그만 눈코를 뜨지 못하게 이렇게 만들어 놔서 정신을 못 차릴 만치 이래 돼  놓으니까 뭐 교회야 뭐 되고 안 되는 것 그거 뭐 언제 그랄 여가도 없게 돼  버렸습니다.'  그라면서. 그래 내가 있다가, 보려고 '그거 잘 됐네. 자꾸 하나님을 대항해  보지?' 송곳에 말이 뒷발질하면 어찌 됩니까? 송곳이 아프다 합디까? 발 그놈이  절단납니까? '내가 시온에 있는 반석이니까 떨어지면 깨어지고 내가 그 위에  떨어지면 가루가 돼버린다' 이랬소. 이러니까, '잘됐구만. 그래 내비둬'  이랬디만 떡 ○○○목사님이 있다가 '아 그래도 붙들어 줘야 안 되겠습니까?'  '뭐 붙들어 주기는 뭘 붙들어 줘? 하나님이 붙들어 야지 우리가 붙들어줄 수  있느냐?' 내가 그렇게 하니까 '그래도 붙들어 줘야 안 됩니까?' 그래 간청을 해.

 그러니까. 간청을 하니까 '그거 괘씸하다' 하는 것 보다는 ○목사는 내 보기에  괜찮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보기에 밉상은 아니라. '그래. 그러니까 그것 참  이렇게 됐습니다.' 그렇게 어려움 당하는 것을 '꼬시다' 이라면 그 내 마음에  '○목사야 그 꼬심이 네게로 돌아온다' 이랄 건데 보니까 그렇지 안해. 이렇게  덕 있게 못 해도 어쩌든지 하나님에게 붙들려 살면 결과적으로는 그게 사랑이오.

그게 사랑입니다. 사랑이 뭐이 사랑이냐? 사람 좋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그 일을 사람에게 하는 그게 사랑이라. 그 사랑 해석이  틀렸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말세 교회를 다 죽여 버린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거창 집회 준비에 대해서 그것만 잘하면 돼요. 그라고 학생들도  어쩌든지 잘 가도록 하고, 그러나 마지막에는 저희에게 결정권을 줘야 됩니다.

'야, 네가 이런데 갔다 와서 후회 안 하겠느냐?' '아이구 내 갈랍니다.' '그러면  가자.' 엘리야가 엘리사를 인도할 때 하는 그 방식을 언제든지 우리는 써야  뒵니다. 그 방식 안 되고 끝까지 끌면 큰 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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