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자

 

1989. 6. 15. 목새벽.

 

본문: 마태복음 6장 23절∼25절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지난 밤에 OOO조사님이 말씀을 증거를 했습니다. 했는데 조심해서 힘만 쓰고  노력하면 유망합니다. 그 태도도 괜찮고, 또 성대도 괜찮고, 박력도 괜찮고,  사색하는 방편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생각할 때는, 깨달을라고 할 때는 첫째 이 계시를  우리에게 주신 그분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분의 소원이 무엇인가 이걸 첫째  알아야 되고, 또 그러면 내게 대해서 요구하는 것인지 교훈하는 것인지 명령하는  것인지 혹 약속하는 것인지 이것을 잘 구별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이는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했는가 하는 그 범위를 잘 측량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잡은  범위를 넘어가서 더 넓은 범위에서 해도 안 맞고 또 좁은 범위에서 해도 안  맞습니다.

 첫째 하나님 생각하고, 그 다음에 자기 생각하고, 또 자기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끼어 있는 모든 사람 생각하고 일 생각하면 자연히 진리가 깨달아집니다.

 조금 하나 조심할 것은 여기에 저게 끌어다 붙이는데 알 때는 꼭 고거 참이라는  그것을 알아야 되지 그걸 모르면 힘이 없습니다. 마치 폭탄에 구멍이 뚫히면  폭발 능력이 없는 것처럼 그걸 꼭 알아야 되는데 그것만 조심하면 되겠습니다.

 여기에 저게 아무나따나 벌로 끌어대면 그것이 거석한데, 어제 동방 박사에  대한 것을 끌어댔는데 그것도 어렴풋이 알고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  중요한 것은, 그걸 말을 하기는 했었습니다. 사람이 별 보고 갈 때에는 잘  갔는데 처음에 별 보고 갈 때는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인도 자기 주관과 객관  둘이 일치가 되니까 예루살렘까지는 잘 갔다가 거기에 가 가지고서는 자기의  주관과 객관인 하나님의 것과, 다시 말하면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인도의 그  인도와가 서로 일치가 안 되고 거기 가서 갈라질 때입니다. 갈라질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인도는 던지고 제 주관대로 간 것이 예루살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주관이 일치될 때는 그것은 잘 순종 하지마는 둘이 서로 갈라질  때에는 그때는 어데로 속하느냐 하는 그 겁니다. 갈라질 때에 자기에 속해지면  자타를 망치는 일 합니다. 가다가 헛일하고 새로 나와서는 다른 것 하지 안하고  별 따라가니까 주님 딱 만났습니다. 그것을 내가 설교한 지가 오래 됐는데,  OO조사님이 아주 어릴 때에 들은 것 같은데 몇 살 먹어 들었어? 중학교 때가?  (중고등학교 때입니다.) 고등학교 때는 아니고 중학교 때일 거라, 아마. 중학교  때이 거나 국민학교 때거나 그래. 그거 제가 설교한 지가 오래 됐어요. 오래  됐는데 그래도 그때 뭘 그거 듣고 있어. 주일학생들 보면 지금 가르쳐 놓은 그게  듣고 있어서 그 바로 들어서 뭣인가 그거 똑똑히는 못 잡아도 잡기만 잡으면  딴데 못 갑니다. 변동 못 합니다. 딴데 못 간다 말은 서부교회만 있고 다른 데  못 가는 게 아니라 이 복음을 떠나서는 딴데는 못 갑니다. 절대 못 갑니다. 제가  몰라 그렇지, 아직까지. 이제 앞으로, 이번에는 잘 통과를 했는데 칠월달에는  십이일이지? 칠월 십이일날 그날 또 수요일밤입니다. 그날밤에 또 증거해야  됩니다. 또 팔월 또 며칠이더라? 팔월 십팔일날은 이제 금요일이라. 그래 세 번  증거하면 나가야 돼. 나가야 되니까 그동안에, 애만 쓰면, 그 보니까 애를 썼어.

그래야 돼져요. 얼굴이 보니까 틀리고 아마, 체중도 좀 줄었을 거라. 이랬는데  하루밤 사이에 오늘 아침에는 보니까 살이 다. 사람이 꼭 밥으로만 살찌는 것  아니오. 그 심령으로 살이 찝니다.

 그런데 우리 반사, 중간반 반사 선생님들은 요새 빠짝 말라, 보니까. 바짝  마르는 그거, 마르는 그런 고비를 안 넘기면 안 돼요. 목회하는 사람이 바로  목회하는 사람은 목회 나가 가지고 아파서 병들 만치 그런 경우를 통과하고 한  사람들은 앞으로 목회하고 목회 나가니까 살이 뛴뛴 찌고 지금 뭐 괜찮다는 것은  여기에서 배운 거 가 가지고 앵무새 모양으로 녹음기 모양으로 전하기나 하고  대우나 받고 벌써 마음 딱 풀어 놓고 편하기 때문에 살이 찌니까 그만 헛일이야.

목회자가 처음에 나가 가지고 살 찌면 헛일입니다. 그거는 벌써 자기가 조심하는  것이나 노력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래.

 여기 보니까 O선생도 저 O선생도 둘이 다 바짝 말랐구만, O선생도 마르고.

중간반 반사들이 빠짝 말랐어. 마른 걸 볼 때에 일회 일비라. 마른 걸 볼 때에  마음에 기쁘고 안타깝다 그거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는 그런  주님의 심정과 다 같애요. 그렇게 노력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래 그런,  자기가 바짝 말라서 마지막에는, 연단을 해서 자기 생명까지도 바치지 안하면 못  견디는 그런 불들려 매임을 당해야 되는 것이지 나중에 죽을 때에 '생명이냐  하나님의 진리냐?' 둘이 있을 때에 생명을 바쳐서 진리를 지킨다는 것이 그게  인간의 각오나 결심이나 그런 것 가지고 안 됩니다. 그것이 다 기울어져야 되고,  지난 밤에 설교 가운데에 '변화를 받아' 하는 변화를 빌립보 2장 5절을 인용을  했는데 그 변화받는 것은 마음 변화입니다. 마음 변화인데 네가 예수의 마음을  가지라 하는 그것보다도 그 마음 변화는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거기에 전부가 똘똘 뭉쳐서 종 집중이 돼야 돼. 집중이 되고 거기에만 꽉  주시해야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신 뜻을 찾지 그리 안하면 못 찾습니다. 그게  조금 거석허고, 아주, 그래 하면은, 마음에 좀 내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좀  흐뭇했어. 왜? '만일 성경이 기독교가 민주주의라면은, 민주주의라면 성경이  필요 없다. 또 기독교가 민주주의라면 하나님도 필요 없다.' 그 말이 깨달은  말이라, 그거 깨달은 말. 그 한 말에서 '저게, 저런 것들이 자꾸 나오고  있으면은 이 진리를 보수할 자들이 생겨질까?'  암만 봐야 요새 현재 목사된 사람들 가운데는 내가 봐야 너무 허무해. 뭘  진리를 이 진리를 참 잡지를 못했어, 진리를. 잡지 못하고 앵무새 모양으로 말은  해도 속에 잡은 게 아니라. 잡았으면 뭐인가 자기가 자연히 깨달아지는 건데,  자기가 변화되지 안하면 안 돼요.

 오늘 아침에 내가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23절 본 그것은 마음의 눈이 밝은  것이 얼마나 필요하다는 그걸 한번 더 깨닫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한 말이고,  오늘 아침에 증거하는 것은 그저 하나뿐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나는 그걸 구역을 못 봤는데 '한 종이' '한 사람이'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지니' 여기는 한 사람이라고 돼 가지고 있는데 '한 종이'  그런지, 혹 O목사님 원어에 어찌 돼 있는지 아십니까? 안 봤지요? 상고해 안  봤지요?  이런데 여기에는 한 사람인데 뭐 원문에, 원문 성경은, 번역한 것이기 때문에  번역하는 그런 거나 원어 성경, 원어 성경에 이래 가지고 있으면은 어짤 수  없지마는, 아마 요 한 종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한 사람에도 한 종. 한 종  하면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과 관련을 두고서 하는 말이고 한 사람이라고  하면은 그런 것은 없는 일반적을 말한 것이고 이랬는데 여기에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 말씀을 증거할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는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것은 그러면 여기에 그 다음에  말하기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했으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을  중히 여기든지 재물을 중히 여기든지 둘 다 꼭 같이 여길 수는 없으니까, 여길  수가 없으니 하나님을 중히 여기라 하는 그런 목적으로 한 말인지 네가 한  주인은 아주 버려 버리라는 말인지? 한 주인은 버려 버리라 말인지 두 주인을  섬기기는 섬기지마는 하나는 좀 더 섬기고 덜 섬기고 이라는데 하나님을 더  섬기고 물질을 그 다음으로 섬기라고 하는 말인지 하나님만 섬기고 물질 섬기는  그거는 물질 그거는 버려 버리라는 말인지? 그 무슨 말이요? 버리라 말이요 그거  좀 차이 있게 섬기라 말이요? 그거 어때요? 버리라 말이요 하나님을 좀 낫게  섬겨서 차이 있게 섬기라 말이요 아주 버리라 말이요? 아주 버리라고 한  말씀으로 듣는 사람 손 들어 봐요. 좀 더 들어 봐요, 저 내가 좀 보도록. 아주  버리라고 한 말입니다. 암만 차이 있게 섬겨도, 섬겨도 그 주인이 시시한 주인  같으면 하지마는 권위 있는 주인이면 거기에서 섭섭해서 좋아하지 안할 것이고,  암만 그래 섬긴다 해도 좋아하지 안할 것이고, 또 좀 적게 섬기고 그렇게 귀중히  취급하지 안하는 그 주인 그것도 아예 그거 떠나 버리는 게 좋지 그 주인이 밑에  있으면 그 주인이 어떻게 해요? 자기를, 두 주인을 섬기는데 한 주인은 중하고  여기고 한 주인은 천하게 여기면 천하게 여기는 그 주인이 그 사람을 돕겠소  해하겠소? 돕겠소 해하겠소? 그래도 좀 없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없는 것보다  낫겠소 못하겠소? 요걸 알아야 돼. 못해, 못해. 그것도 주인이거든. 저보다는  세력이 있거든 있으니까 그게 자기를 해친다 말이오. 아예 그거 떼버리고 그만  이래 버리면 그것이야 남의 종이야 제까짓 게 상관할 것도 없고 이렇게  하지마는, 거기에서 오는 해독을 안 본다 그 말이오. 물질을 주인으로 삼은  물질의 침해를 받지 않는다 그 말이오. 침해를 받지 안하나 그거 '하나님 먼저  섬기고 그 다음에는 물질 섬 겨야 되지 않느냐!' 이라면은 물질의 침해를 받기  때문에 아예 똑 떼버리고 하나님 한 분만 섬기면 물질 그것도 뭐 그 사람에게  대해서 침노할 필요는 없어. '네가 하나님 더 섬기고 나를 덜 섬기나?' 이렇게  침노할 필요가 없어. 상관 없으니까. 요것을 알아 요래야 됩니다. 그라면  뭐하려고? 어짤라고? 이 한 주인 이 주인이 엿새 동안에 우주를 창조했고  주권자시요 전능자시요 만주의 주시요 대주재이기 때문에 이분이 모든 것 다  가지고 있어. 그러니까 그분 한 분만 좋아하면 다 돼요.

 이러기 때문에 그분 섬기는 일만 해야 됩니다. 그라면 공부가 필요 없고?  공부도, 공부도 '나 이거 공부 안 할랍니다.' '안 하면 야 안 된다. 해라.' '뭐  주인이 하라 하면 하지요.' 하라 하면 해. 아무데도 애착 없고 소망 없고 주인  한 분에게만 있는데 주인이 하라 하면 죽으라는 것도 죽습니다. 주인에게,  믿음으로 하지 안하면 안 돼. 믿음으로 알아야 된다. 믿음으로 해야 된다 그말은  주님을 알고 주님으로 인해서 주님에게 순종으로 해야 되지 순종으로 하지 않는  그 모든 건 다 헛일이라 그 말이오. 요것을 모든 하나님 말씀하신 것을 뿌럭지를  잡지 못하면 이십세기의 과학에게 짓밟혀서 종이 됩니다. 마흔두 달 동안 세상에  주어서 종노릇하게 한다는 그게 뭐이냐 하면은 요 진리를 잡지 못하면 제까짓 게  암만 뭐라고 한다 해도 이십세기의 과학을 과학 만능이라는 이것을 잡을 수  없어. 과학 만능 이걸 진리를 깨달으면 과학 만능 그거는 발아래 밟힐 수밖에  없고 아무 가치 없는 것이라는 걸 확실히 안다 그 말이오. 이거는 믿음으로 돼.

믿음이 그냥 믿사옵나이다가 아니라. 믿사옵나이다가 아니라 믿음 이라는 것은  그 과학적인데 말하자면, 이 물질로 말하면 과학적인데 하나님이 '요렇다'하면  고거 인정하고 고게 순종하는, 하나님으로 인한 철두철미한 그것이 믿음이지  자기가 자기 주관만 인정한다는 믿음이 아니라. 이 믿음이라는 것은 객관에게  내가 종이 되어서 복종하는 그게 믿음이라 그거요. 뭐이든지 뿌럭지를 알아야  돼요.

 이래서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것으로서 하나는 재물이라면은 뭐,  재물이라 하면은 돈만 아니고 이 세상을 가리켜서 거기에 말합니다. 이것은  재물이요. 물질계 이것은 자기에게 대한 자연 은총은 다 재물이라. 자연 은총이  필요하지마는 주님이 주시지 안하는 것은 안 해야 돼.

 만일 어떤 사람이 지금 반지를 하나 끼고 있습니다. 반지를 하나 끼고 있어.

반지를 끼고 있는데 그 반지가 좋아. 반지가 좋은 반지를 하나 끼고 있다  말이오. 좋은 반지를 하나 끼고 있으면 남편이 살피기를 '반지를 어짠 걸 끼고  있다. 반지를 어짠 걸 끼고 있다.' 그래 말하기를 '이 반지가 어데 났느냐?'  이라니까 '뉘가 주더라' 하면은 그 남편이 '야, 횡재 닥쳤다.' 이라겠어? 뭐라  하겠어?  O선생 말해 봐. 뭐라 하겠어? '야, 재수 있다. 어데 그거 주웠노? 재수 있다.'  그라겠어 어짜겠어? 그 남편이 뭐라 하겠지? 여러분들은 뭐라 하겠어? 한번 말해  봐. O집사 말해 봐. 그라면 뭐라 하겠어? '야 재수 있다.' 그라겠어? OO조사  뭐라 하겠어? (누가 줬어?) '누가 줬어?' 그라면 '주웠다' 이라지. 어? (누가  주웠나?) '누가 주웠나?' '내가 주웠다.' 이래 하겠지. 그라면 '이 여자야, 어떤  놈이 꼈던 반지인지 그거 알지 못하나? 아무거나따나 그만 주 낀다 말이가?' 혼  납니다. 혼 나,  사람도 이런데 하나님도 그렇소! 뭣이든지 뭐 그게 자기에게 해되지 안하는  그런 거라 할지라도 꼭 이거는 뭐이냐 하면 권리를 따지는 것이요 사랑을 따지는  것입니다. 당신에게만 마음이 기울어지고 당신만 바라보고 당신만 의존하고, 자  는 다 맡겨.

 이거 예를 들면은 독약을 타 가지고, 이거 번연히 독약은 독약인데, 독약은  독약인데 이거 보니까 쥐약을 타더니마는 이래 쭉쭉 타 가지고 이래 하면서  '이거 먹어라' 이라면, '이거 먹어라' 하면 우리 고기덩어리 남편이야 그거 먹어  놓으면 제까짓 게 치료도 못 해 주지마는 주님은 그런 주님이 아니라. '먹어라'  하면은 '예, 감사합니다.' 하고 훅 둘러마셔. 둘러마시면 어때? 둘러마셔도  문제가 없어. 당신은 그보다 더 무한한 능력이 초월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  말이오. 이럴 수 있는 자를 주님이 원하십니다! 이러니까 당신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게 뭐이냐? 그 요구하시는 그게 그렇기 때문에 그게 극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말이오. 극히 사랑하셔.

 이러니까 세상 이 모든 것은 그것은 우리가 섬기거나 바라보거나 할 것 없고  주님 한 분으로써 됩니다. 그러면 모든 걸 떡, 모든 게 없어서 큰 낭파가  되는데도 보고 낭파가 되는데도 거기 대해 걱정을 안 합니다. 걱정을 안 해.

걱정을 안 하고, 왜 이것 어짤라고 이런 것 뉘게 주면서 걱정도 안 해? '걱정을  해야 됩니까? 그라면 걱정하지요.' '왜 걱정 안 하노?' '아, 안 한 것은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뭐 그거 걱정 할 것 없이 아, 당신이 전능자인데,' 요라는  것을 원하신다 그 말이오. 요라는 걸 원해.

 그러기 때문에 요것은 둘을 섬기라 말이 아니고 하나는 더 섬기고 덜 섬기라  말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는 요것을 버려야 된다 말입니다. 안 버리면  둘째로 섬겨도, 어떤 사람이 한 여자에게 남자가 둘이 있는데 이 남자를 좀 더  섬기고 저 남자는 그 다음으로 섬기니까 좀 낫게 섬김을 받는 그 남자가 '저  사람은 나를 좀 낫게 섬긴다.' 이러니까 좋아하겠소 그걸 판결을 내겠소?  좋아하겠소 판결 내겠소? 여반들 생각해 봐. 판결내겠어, 아예 안 되면 던져  버리든지 그리 안 하면 무슨 자기 하나만 보고 섬기도록 하든지 그럴 것  아니겠다 이러니까, 어제 그런 말을 했는데 이 자연 계시에서 문서 계시로, 문서  계시에서 영감 계시로 자꾸 이래 나간다는 거 그것도 바로 깨달은 거라 그  말이오, 바로 깨달은 거.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연 계시에 순종하는 것으로 밥을 먹어야 될  때는 밥을 먹는 것이 자연 계시 순종으로 밥 먹는 거라. 또 이 상처가 났으면  약을 바르고, 기도만 하지 안하고 약을 바르는 그게 하나님의 자연 계시에  순종하는 것이라. 특별 계시에, 그라고 순종하는 거 있고. 이러니까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해야 된다 말은 무슨 말이요? 자기 주관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주관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고 믿음으로 해야 된다는 건  그분으로 인해서 해야 된다, 그 분으로 인해서. 믿음으로 안다 하는 것은  그분으로 인해서, 그분이 나에게 알려 주기 때문에 그분의 알려 준 그 알려  줌을, 영감으로 알려 주든지 문서로 알려 주든지 자연으로 알려 주든지 알려 줄  때 그분의 알려 줌을 받아 가지고 내가 아는 그게 믿음으로 아는 거라. 그  믿음이라는 것을, 뭐이 믿음이냐? 한창은 '믿사옵나이다' 하면 다 된다고. 이래  가지고 믿음이 뭐인지 몰랐는데 믿음을 확고하게 아는 사람은 옛날부터 다  알았지마는 그것이 일반 지식화되지 안하고 이 날뛰는 거, 이 숫개 모양으로 막  덜덜 덜덜 날뛰는 거, 어짜든지 여기에도 한번 나서고 저게도 나서고 나서  가지고 자기를 자랑하고 막 이래 가지고 날뛰는 거, 숫개 같은, 숫개 같은,  숫개는 설설거립니다.

 또 이런 데는 그것도 몰라. 숫개라 하면 그거 뭐인지 몰라요. 저 시골은 가면은  숫개는 집에 안 있어. 숫개 먹이지 말라 해 그거는 집에 안 있어. 설설거리고 막  양사방 돌아다닙니다. 이거 모양으로 그런 인품이 있어. 그런 인질들이 있어  뭣이든지 우리가 그분으로 인하여서 아는 것, 그러니까 믿음이라는 것은 그저  '믿사옵나이다' 또 안 되니까 '믿어 두었사옵나이다' 자꾸 믿어야 할 때. 그게  아니고 믿음은 그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는 그것이 믿음이라 그거요. 그분을  잡기 전에는 아니야. 그분을 어찌 잡아요? 그분을 잡는 것은 문서 계시를 잡든지  그리 안 하면 영감 계시를 잡든지 잡는 것이라. 그거는 잡는 방편은 전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라. 대속으로 인해서 잡아져요. 그리 안 하면 못 잡아요.

예수님이 우리 뭐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뭐이요? 우리의 중보자요 중보자.

예수님은 하나님과 나와의, 하나님에 대한 모든 요소와 나와의 그 거리는 한없이  먼데 그 거리를 둘을 딱 들어붙인 중보라 그 말이오.

 이래서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요런 것을 자기가 믿어요. 믿으면  그대로 내가 알고 인정하고 단행하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이 세상을 둘을 섬기는데 세상보다 하나님을 낫게 섬기는 그런 일이  있고, 저 저분이 저분 아닌가? 여기 봐요. 저분을 나는 잘 몰라. 사람을 몰라서.

그때 남편하고 내외 나한테 왔던, 부부 왔던 그분 아닙니까? 아닙니까? 안  왔어요? 그분이 아니요? 나는 그분인가 해서, 그분은 어데, 그분 저 뒤에  앉았구나. 뒤에 앉았네. 뒤에 앉았는데 요새 조금 허리띠를 풀어 놓는 모양인데  그래 놓으면 그 남편 구원 못해. 남편이 육백육십육이야. 알겠어요?  이러기 때문에 아주 틀렸지마는 틀렸다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설설 이래  뒀는데 자기가 단단히 가져야 되지. '둘이 이래 얘기해 보니까 목사님이 그 앞에  말도 못 하고 꼼짝 못 하더라' 그거 그라면 헛일이라. 그 말하는 것이 하나도  맞은 게 없어. 단단히 힘을 써야 자기가 살지 요새 보니까 허리띠를 풀어 놨어.

좀 허리띠 풀고 살이 했구만, 보니까. 마음 놓는 거라 좀. 목사 하면은  아무나따나 그런 줄 알아? 벌로 안 봐. 단단히 단속을 해서 해야 회개를 시키지  그 육백육십육을 그것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데는 참 힘이 들어. 그래서 요런  것 단정을 지워.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요게 되면 돼. 저 OOO,  OOO지? 저 신문기자도 딴데 있지 않아. 내가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만날 그런 꼴이 계속되는 거라. 그런 줄 알고 원인을 찾아 가지고 그걸  속 잡아서 치료해야 되지 그거 안 하고는 아무리 해 봤자 안 돼! 나중에 가서는  결국은 뭐 비참해지지 어서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되지. '회개할 기회를 놓치면  다시 복빔을 받을라고 눈물을 흘려서 간구하되 다시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이래.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는 뭐 간단해요. 그저 하나님 한 분만 바라봐야 되지 이  세상을 하나님보다 좀 못 바라보고 하나님은 이 세상보다 좀 더 바라보는 게  아니라. 세상은 하나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 한 분만 바라봐요. 그라면  어짤라고? 하나님 그분이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분이 세상은 내게 적절하도록  조절해서 주시기 때문에 그분 한 분이면 내 전부라. 내게 있는 것에 다 필요하고  다 해. 지식도 뭐도. 그라면 뭐 공부는 어째 해? 공부는 어떻게 해야 돼요?  취직은 어찌 해야 돼요? 믿음으로 해야 돼요. 믿음으로 해야 되는 건 순종으로  해야 돼. 공부도 순종으로 해야 돼요, 믿음으로. 취직도 순종으로 사업도  순종으로 해야 돼요. 출세도 순종으로 해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대통령  하라 할 때에 대통령 그거는 '세상 거라 안 할랍니다.' 하면은 되겠소?  무엇이든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당신 하라 하는 대로 거기에, 그분에게  피동되고, 그분으로 인하여, 그분에게 피동되어서 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그것이  믿음으로 하는 것이라 그 말이오.

 이 요령만 잡으면 모든 것 다 환하게 열리는데 이게 너무 저거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쉽게 말하니까 아주 시쁘게 보는 거라. 모든 박사들 학자들의 책 똘똘 다  뭉친 것 전부 다 뭉쳐 봤자 이제 바른 걸 말하는 요걸 당하지 못해. 백지  어지럽게만 해 놓지. 이러니까 테레비 보면 재미 있는 것처럼 생명은 받으면  재미가 없고 테레비는 재미가 있어. 왜 설교는 들으면 잠이 오는데 왜 테레비는  밤새도록 잠이 안 와? 성경 보면 재미 없어 잠이 오는데 왜 테레비는 보면 잠이  안 와요? 그와 마찬가지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 주관이 재미 있다고 좋은 게  아니라. 취미 있다고 좋은 게 아니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십 분 후에 결혼 상담 있습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꼭 공과를 외워야 됩니다.

실천하고. 하루 삼십 분 기도 이거 잃지 말아요. 삼십 분 기도 가지고 모든 일이  성공됩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권사님들은 다 나와서 했고 목사님도 그랬고  어제는 장로님들은 열 분이 나왔습니다. 이랬는데 여기에 기록에 오래 동안 안  나타나면 그 장로님이 내게 근심이 된다 말이오, 오랫 동안 안 나타나면. 안  나타나면 별수가 없어. 뭐 요긴한 일이 암만 있다 해도 기도록에 자주 나타나지  안하면은, 자기는 '지금 큰 노다지를 발견했다' 노다지 발견한 것이 노다지로  죽는 걸 발견했지 유익한 것 하나도 없어. 이 보고가, 또 보고가 틀리거든  틀렸다고도 모두 하고 이래서 이 정확하게 해서, 이거 왜 하는 게 아니라  자랑하는 게 아니고 이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이 기도의 열심을 격발시키는  거라, 격발시키는 거 이거 성경 순종이라. 성경이 그래 하라 했어.

 그러고 초상이 났습니다. 여덟시 삼십 분까지 교회로 오시면 출상 예배에  참석하실 수 있습니다. OOO씨 구역에 OOO권찰님 구역에 초상이 났습니다. 이제  초상이 나면 그만 안심이라. 왜? 장례만 하면 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염려가 다 놓여져. 이러나 살아 있는 사람은 문제라, 이게 뭐이 될란지?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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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56 하나님 생각을 끊지 말 것/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4. 12. 1. 토새벽 선지자 2015.12.31
555 하나님 생각하고 사모하고 계명순종/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7. 5. 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31
554 하나님 생각을 끊지 말 것/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4. 12. 1. 토새벽 선지자 2016.01.01
553 하나님 생각하고 사모하고 계명순종/ 창세기 2장 15절-17절/ 1987. 5. 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52 하나님 섭섭케 한 것 회개/ 요한계시록 18장 1절-3절/ 1981. 1. 8. 목새벽 선지자 2016.01.01
551 하나님 아버지/ 히브리서 11장 1절-2절/ 1985. 9. 22.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01
550 하나님 아버지/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1980. 3. 23. 주일오후 선지자 2016.01.01
549 하나님 아버지/ 고린도전서 15장 50절/ 1980. 3.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1
548 하나님 안에 감추인 성도/ 골로새서 3장 1절-3절/ 1979. 12. 12. 수새벽 선지자 2016.01.01
547 하나님 안에 거하는 법/ 베드로후서 1장 19절-21절/ 1982. 4. 30. 금새벽 선지자 2016.01.01
546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야고보서 1장 17절-18절/ 1987. 12. 30. 수저녁 선지자 2016.01.01
545 하나님 잊어버린 것 / 신명기 28장 1절-6절/ 1985. 1. 27.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01
544 하나님 중심 위주/ 사무엘상 15장 9절/ 1985. 3. 9. 토새벽 선지자 2016.01.01
543 하나님 중심 위주/ 시편 136편 1절-4절/ 1985. 2. 11. 월새벽 선지자 2016.01.01
542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 디모데전서 6장 17절-21절/ 1989. 7. 18. 화새벽 선지자 2016.01.01
541 하나님 중심으로/ 시편 1장 1절-4절/ 1989. 7. 21. 금새벽 선지자 2016.01.01
540 하나님 지식/ 베드로후서 1장 14절-21절/ 1982. 4. 2. 금새벽 선지자 2016.01.01
539 하나님 찾는 자-진리위한 투쟁/ 히브리서 11장 6절/ 1979. 11. 8. 목새벽 선지자 2016.01.01
»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자/ 마태복음 6장 23절-25절/ 1989. 6. 15. 목새벽 선지자 2016.01.01
537 하나님(크심,사랑,계약)을 믿자/ 베드로전서 5장 7절/ 1983. 9. 26. 월새벽 선지자 2016.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