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선교회 14가지 구속

 

1987. 8. 22. 새벽 (토)

 

본문:요한복음 6장 52절∼59절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셨느니라

 

여게 예수님의 피와 살을 말씀하신 것은 우리를 구속하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속하신 그 구속의 원인은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와 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예수님과 또 십자가상에서 대속하신, 사활로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영원한 구속하신 구속의 원인은 셋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셋이 우리를 대속하신 원인입니다.

또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죽으심으로 대속하신 것이 다섯입니다. 다섯은 죄에서 해방 자유, 사망에서 해방 자유, 마귀에게서 해방 자유,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해방 자유, 하나님 아버지로 더불어 화친한 이 생명, 이래서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 다섯 가지입니다. 그러면 그 원인과 구속하심과 합해서 계수하면 여덟 가지가 되겠습니다.

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이 여섯 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하는 중생을 주셨고, 또 진리로 영생하는 영생을 주었고, 영감으로 영생하는 영생을 주었고, 또 영원히 창조주와 모든 피조물 사이에 중보가 되는 제사장을 우리에게 천직으로 주었고, 또 선지직을 주었고, 왕직을 주어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구속하신 것이 여섯 가지입니다. 그러면 세 가지 다섯 가지로 합해서 여덟 가지, 여섯 가지를 합하면 열네 가지입니다.

이래서 원인이 셋이요,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하신 것이 다섯 가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하신 것이 여섯 가지입니다. 그러면 내 피와 살을 먹는다는 말씀은 이 원인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이 구속의 은혜 열네 가지를 생각하는 것을 가리켜서 양식으로 먹는다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육체는 그는 입으로 먹지마는 우리의 인격이라는 것은 마음으로 먹고 또 우리의 기능이라는 것은 그것은 우리의 행위의 연습으로 먹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학이 자라갈라고 하면은 자꾸 그 어학을 읽고 외우고 자꾸 기억해 나가면 한 단어 두 단어로서 점점 자라가고 또 거게 대해서 뜻을 아는 것이 점점 자라가는 것은 자기가 행함으로 자라가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 몸의 기능은 연습으로 자라가게 되고 마음의 기능은 이것은 생각으로 뜻으로 원함으로 경영함으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피와 살을 먹는다는 이 말씀은 이 열네 가지를 생각하고 사모하고 또 거게 대해서 더 깊이 연구하고 하는 그런 모든 작용들을 가리켜서 먹는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자꾸 먹어서 자꾸 생각하고 궁구하게 되면 거게서 점점 깨달음이 나오게 되고, 깨달음에서 점점 거게서 실감이 나오게 되고, 깨달음과 실감이 나오면 차차 거기에 배치되는 것을 후회되는, 거기에 배치되는 것을 후회하는 후회가 나오고 열네 가지 이 구속과 일치될라고 애쓰는 개 가 나오고 또 여게 대해서 늘 연결하고 연락하는 가운데서 우리가 차차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열네 가지를 자꾸 생각하고 사모하고 원하고 노력하는 가운데에서 이 열네 가지를 점점 우리가 우리 마음 가운데 영접하게 되고 우리는 이 열네 가지와 멀어져 있는 그 간격이 차차 짧아져서 접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으로 원하고 깨닫고 느끼고 이거 하는 모든 거 기도하는 것이 다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험하고 내가 약하나 늘 기도만 힘쓰면 큰 권능으로 이길 수 있다’ 하는 그말은 기도하는 것은 곧 이 열네 가지를 자꾸 내가 이 주관으로, 내 주관으로 생각하고 사모하고 영접하는 것이오.

그런 가운데서, 처음에는 내가 이 열네 가지를 내가 찾고 구하고 접할라고 하지마는 나중에 차차 차차 이 열네 가지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게 되고 나는 거기에 사로잡히게 돼서 완전히 내 자유는 거기에 박탈이 되고 삼키워지게 됩니다.

그럴 때에 내 주장 내 중심 내 위주로 살던 사망이 되어 있는, 나를 죽인 나 아닌 나,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 이것은 차차 녹아지게 됩니다.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차차 사라지는 것처럼 이렇게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이 악령의 유혹받은 것도 물러가게 되고 자기 인간성이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인 인간성도 차차 소멸하게 되고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살아왔던 그 하나 둘의 모든 나쁜 구습도 나쁜 버릇도 이것도 차차 차차 이것이 녹아지게 됩니다.

이래서 옛사람은 죽어지고, 크게 말하면 피와 살 성령인데 이는 곧 열네 가지입니다. 이 열네 가지가 차차 차차 나를 주관하게 되고 나는 거기에 완전히 주관을 당하게 됩니다.

이러기에 처음에 우리가 신앙 생활 할 때에는 네가 나를 구속하신 이 열네 가지를 자꾸 생각하면서 열네 가지 거기에 일치가 되도록, 열네 가지 그대로 살라고 하는 이 열네 가지의 은혜를 입어 이 열네 가지 은혜로 살라고 이 열네 가지에 일치되는, 이 열네 가지에게 순종되는, 순종하는 이 생활을 할라고 애를 쓰고 이것이 차차 되면은 내게 있는 모든 사망에 속한 주관들이 다 소멸되어지고 이제는 이 열네 가지가 나를 차차 주관하게 됩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내가 이 열네 가지의 구속으로 내가 살라고 애를 쓰고 그런 가운데서 차차 이 열네 가지의 능력이 나를 붙들고 나는 거기에 피동되어 살게 됩니다.

이래서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는 말씀은 우리가 주관으로 그렇게 인하여 살라고, 열네 가지의 이 구속으로 살라고 애를 쓰는 이것이 차차 노력하게 되면 나중에는 이 열네 가지가 나를 주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노력함으로써 열네 가지가 나를 주관하게 되는 것은 아니고 열네 가지로 내가 살라고 노력하는 것이 이 열네 가지가 내 속에 들어와서 내 중에 내가 돼 가지고 나를 주관하게 하는 이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하신 그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제는 “내가 말하는 것이 내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일이 내 말로 나왔고 내 모든 또 행동으로 나오셨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자기 마음에 예수님의 이 대속, 대속의 원인, 사활의 대속을 하셨는데 대속의 원인이 몇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셋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신 그 대속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다섯 가지입니다. 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대속해 주신 그 구속이 몇 가지입니까? 몇 가지지요? 녜, 여섯 가지입니다, 여섯 가지. 그라면 셋 다섯 합해서 여덟 또 거게 여섯을 보태면 열넷입니다.

그러면 이 열넷을 자꾸 영접해 들이는 것입니다. 자꾸 내가 사모하고 함으로 내 속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악령이라 말은 제 중심 제 위주로 천사가 망령부려 타락해 가지고서 하늘나라에서 쫓겨났습니다. 그 루스벨 천사라 하는 천사가 쫓겨났는데 그것의 부하가 뭐 억억만도 넘습니다. 그게 쫓겨나 가지고서 이 세상에 들어와서 그 하와를 유혹시켜 가지고서 하와가 악성이 돼 버렸습니다.

하와가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악성이 되고 그래 가지고 악령과 악성으로 합작된 생활이 곧 악습인데 그것이 전부 사망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가 우리 마음에 차차 이 열네 가지를 자꾸 영접해서 열네 가지로 내 속에 충만케 하는 것이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문을 여는 것은 자기 주관을 완전히 부인해 버리니까 부인해 버리는 것이 악령 악성 악습을 부인해 버리면 이 열네 가지가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주관하게 되고 나를 주관하게 되면 내가 그로 인하여 살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자꾸 이 열네 가지를 생각해서 자꾸 생각하는 이것이 이 열네 가지 영생되는 이 구속을 영접할라고 내가 애를 쓰는 것이요 영접할라고 애를 쓰고 이래서 영접하게 되면은 그 다음에는 내가 나를, 내가 노력해 가지고 주님으로 인하여 살라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 나는 없어져 버리고 다 소멸돼 버리고 주님이 나를 주장하셔 가지고 나는 그에게 피동되어 살 때에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래서 이 열네 가지만 자꾸 사모하게 됩니다. 사모하고 생각하고 궁구하면 거게서 감사도 나오고, 거게서 애통도 나오고, 거게서 뜨거운 능력도 나오게 됩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피와 살을 먹는 데에서 ‘어떤 내가 고문과 고형을 당할지라도 내가 그로 인해서 죄짓지 않겠다. 온 천하를 다 준다 할지라도 물질이나 세상 권세나 지위나 세상에 있는 것을 인해서 내가 마귀의 유혹받지 않겠다. 어떤 고문과 고형의 사망이 온다 할지라도 사망의 세력에게 내가 다시는 종되지 않겠다. 이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완전을 입었기 때문에 이 의를 입고 살지 의를 세상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공심판 통과의 의를 내가 버리고 땅위에 그런 것을 내가 취하지 않겠다.’ 하는 이런 사람이 되어서 열네 가지로 인하여 살 뿐만 아니라 열네 가지로 인하여 죽을 수도 있고 열네 가지로 인하여 먹고 마시고 열네 가지로 인하여서 이것 저것을 하지 열네 가지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러기에 주님이 우리에게 이 열네 가지 구속 가운데에 이 면을 행할 때도 있고 저 면을 행할 때도 있고, 열네 가지 이 일호에 순종할 때도 있고 이호에 순종할 때도 있고 십사호에 순종할 수도 있고, 이 일호 이호 삼호 사호로 이렇게 내가 연관돼서 살도록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일호를 일호로 더불어 하나되어서 일호로 인하여서 살 수 있는 현실을 줄 때에는 내가 일호로 인하여 살게 되고 또 십호를 인해서 살게 할라고 할 때에는 십호로 인해서 살 수 있는 그런 현실을 줘서 당신이 나에게 현실이라는 이 현실을 주는 그 줌에 따라서 나는 이 열네 가지의 이 구속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가 비유컨대 만일 우리 몸이 건강하고 연습을 해 놓으면, 힘이 없으면 반반한 방바닥에서도 걸어가지 못하고 드러누웠어야 되고, 또 힘이 생기면 일어설 수 있고, 더 힘이 생기고 연습하면은 자기가 낮은 데는 배 깔고 엎드려서 들어가서 통과할 수 있고 또 높은 데는 기어 올라가서 통과할 수 있고 또 물이 오면은 헤엄쳐서 또 통과할 수가 있고 무엇이든지 자기 앞에 있는 어떤 장애가 있다 할지라도 자기 몸이 튼튼하고 훈련되어 있으면은 어떤 자기의 진로라도 자기가 걸어갈 앞길이라도 건강하고, 눈 밝고 건강하고 이렇게 연단돼서 모든 것이 체육이 돼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바위돌이 움푹줌푹하다 하더래도 눈이 밝으면 그 사람에게는 평지가 되는 것이고 눈이 어두우면 그는 험해서 가지를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이 열네 가지의 구속으로, 성부의 전능의 능력 성자의 이 구속 또 이 그리스도의 성직 이로 인해서 자꾸 내가 사모함으로 자라게 되고 내 현실에서 한 번 연습하고 두 번 연습하고 자꾸 연습해 가지고서 연습이 이것이 나중에 자라갈 때에는 방해하는 방해물들이 있을 때에 연단받아서 그런 것을 방해 그 장애가 아무리 있어도 아무리 그 장애가 있어도 그 장애를 통과하는 일을 한 번 두 번 통과하고 이래 가지고서 나중에는 연성이 되어지면 내가 이 열네 가지의 능력으로 충만할 때에 다니엘 같은 그런 일이 있어도 그런 것은 뭐 문제될 것이 없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같은 그런 일이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고, 또 요셉이와 같은 그렇게 어려움의 문제가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고, 또 그가 총리대신 됐지마는 총리대신의 그 총리대신 그 직책 하나님이 줬기 때문에 했지 그것을 자기의 직분이라고 거게 대한 소망이나 욕망이나 그걸 위해서 잠시라도 놓지 안하고 이 열네 가지 구속에서만 충만해서 그 연습만 했던 것입니다.

그분이 그렇기 때문에 총리대신 되고 난 다음에도 아무 공부한 게 없으나 이 열네 가지로 피동되는 거 이 열네 가지로 하나되는 거 이 연습이 숙달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통치한 그 모든 통치는 성부의 통치요, 성자의 통치요, 그리스도의 통치요, 모든 죄 없는 통치요, 마귀에게 자유하는 통치요, 사망에게 자유하는 통치요,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 통과라고 하는 완전 의의 통치요, 하나님으로 더불어 부자의 연결을 가진 거게 피동되는 통치이기 때문에 그 생활은 전부가 다 영생이요, 진리요, 또 영감이요, 이러니까 선지직, 제사장직, 왕직이 됐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렇게 열네 가지로 내 힘을 강건하게 해서 이제는 나는 죽고 이 열네 가지가 내게 충만한 그것이 다 영생이요 생명이요 완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꼭 이번에 거창서도 공부했지마는 내라 하는 것은 그것은 자기를 죽이는, 자기는 원수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뭐 ‘내가’ ‘내게 어떻다' 그것은 마귀에게 유혹받아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되어진 옛사람 자기지 참 자기는 아니야. 자기 영도 아니요 자기 심신을 죽이는 것이요 사형을, 심신은 미혹받아 가지고서 내게 역사하는 것이요.

우리가 될 때에 그때에 우리는,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의 소욕도 있고 육체의 소욕도 있습니다. 성령의 소욕은 하나님의 소욕 하나님의 욕심이 내 욕심이 된 것도 있고 하나님 욕심 외에 자기 욕심이 자기 욕심 된 거 있으니 자기 욕심이 자기 욕심된 그것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이 자기를 죽이는 것은 뭐이냐? 그것이 악령의 미혹이요 타락한 원죄인 악성의 그 행위요 악습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렇게 사모하면 혹 생각할 때에 ‘이렇게만 하면은 우리는 그러면 뭣 먹고 살며 그러면 세상은 아무것도 안 하고 이 열네 가지만 사모해야 되느냐?’ 그래 녜, 열네 가지만 사모하면 됩니다. 열네 가지로만 충만하면 됩니다. 열네 가지로 충만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현실을 줄 때에는 나는 그 현실에 또 열네 가지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저 현실 줄 때에도 열네 가지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현실을 줘도 열네 가지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현실이나 열네 가지로 사니 그것이 곧 영생입니다. 그게 완전 행위요 전지 행위요 전능 행위요 그거 완전 행위입니다.

우리가 현실 당할 때에 이 열네 가지를 잊어버리면 돈을 욕심내는 물욕심 그놈이, 정욕심 그놈이, 음욕심 그놈이, 명예욕 공명심 그놈이, 자기의 이 주관 욕심, 감정, 모든 시기, 혈기 이런 더러운 죄악이 자기를 주관하기 때문에 알뜰히 사는 것 같지마는 거게는 먼지만한 것도 산 것이 없고 전부 완전히 다 사망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열네 가지만 사모하면 어떻게 뭐 할 수 있나?’ 열네 가지 사모해서 당신이 우리에게 세계에 제일가는 역사에 제일가는 지혜를 줄라면은 하나님께서 그 현실을 이 열네 가지로 살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그 현실을 만들어 주면 그 현실에서 나는 자꾸 열네 가지 생활만 이와같이 하니까 지혜가 솔로몬처럼 전지한 지혜를 그는 가질 수도 있고 또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바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고 싶을 때에는 그런 현실 줄 때 거게서 열네 가지 생활 하다 보니까 순생도 되고 순교도 되고 다 되는 것입니다.

요것을 여러분들이 요게 도통인데 요게 하나님의 길을 환하게 통해 가지고 아는 것인데 요것을 알아 가지고 요대로 노력할라고 할 때에 여게서만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온 천하를 준다 해도 눈이 밝아서, 천하를 얻어도 그것이 오늘 끝날지 내일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 열네 가지 외에는 탐할 것도 없고, 가치로 삼을 것도 없고, 부러워할 것도 없고, 노력할 것도 없고, 믿을 것도 없고, 뭐 욕심낼 것도 없고, 아무리 쓸모가 아무것도 없고 이 열네 가지로만 사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믿어질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열네 가지 외에 무엇이든지 들어오면 그것은 자기를 죽였습니다. 몰라 그렇지 열네 가지 외에 무엇이든지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서 내가 천하 재물을 다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참 귀한 세월을 다 썩을 것으로 추수해 가지고서 멸망하고 말았어. 천하를 다 제것 삼으면 뭣 할 겁니까, 하나님의 심판거리 만들면? 또 만들어 놔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부르면 그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심령이 밝은 사람은 이 열네 가지로 사는 거 외에는 가치로 삼을 것이 없고 원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지자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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