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


선지자선교회 1985년 9월 4일 수새 

 

본문 : 고린도전서 13장 1절∼8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절로 3절까지에 온 세상이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또 힘입어서 사는 큰 능력  네 가지를 말을 했습니다. 개인도 그러하고 또 단체도 그러하고 국가도 그러하고  세계도 다 이 네 가지 힘을 가지고 살고 있고 또 이 네 가지 힘만이 인생을  구출할 수 있고 행복되다고 생각을 해서 이 네 가지 실력을 마련하는 데에 각각  다 전심 전력을 기울입니다. 네 가지는 무엇인고 하니 첫째는 말이라는 말의  능력이요. 또 둘째로는 지식의 능력이요 또 세째로는 모든 것을 움직이는 그런  능력들이요, 네째로는 희생하는 능력입니다. 온 세상은 이것이 다 주장을 하고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뭐 크나 작으나 다 이 네 가지 능력이 총 주권을 하고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능력은 아닙니다. 힘도 아닙니다. 이것은 참능력과 힘이 나타날  때에 이것들을 통해서 나타날 수 있는. 참 능력과 힘이 이것을 이용해 가지고  이것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마치 내가 마이크에다 대고 말을 하니까  마이크는 내 말을 잘 전달해서 널리 들리게 하나 이 마이크는 말하는 자는  아닙니다. 내 말을 그저 전달하는 것뿐이지 내가 말 안 하면, 이 마이크는  사람들이 말하지 안하면 뭐 몇 해든지 그대로 있다가 썩어 버리고 말지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가진 온갖 언제나 지식이나 힘이나  희생이나 그런 것은 힘의 자체는 아니고 참 힘이 그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뿐인  것입니다.

거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이런 것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아니다. 유익이 없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암만 이런 것이 다  좋은 것이지만 사랑이 없으면 이것을 네 가지를 가지고 네 가지를 사용하는  자체에게도 아무 유익이 없고 또 이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한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 없으면 헛일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온 천하에 모든 것 다 구비해도 사랑 없으면 다 헛일이다,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 그 말은 생명이 없다 그말입니다. 사랑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랑 없으면 생명 없다, 사랑 없으면 결국 멸망하는 운동이지 그거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랑이 제일 귀하다 하는  것을 여기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무엇인가 이 사랑에 대한 지식을 바로 가져야만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사랑이 귀하다는 이 일방적 지식만 가지고 사랑이 무엇인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기 때문에 인류를 죽인 것이 뭐이 죽였는가? 인류를 죽인 것이  사랑이 죽였습니다. 지금도 인류를 죽이고 있는 것은 사랑이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이렇게 보배로운 것이면서 아주 인류에게 제일 해독을 가진  것이라 그렇게 우리가 보면 성경에 가르치신 대로 가지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 하와가 아담 죽인 것도 아담이 하와 죽인 것도 다 그게 사랑이  들어서 그렇게 죽였습니다. 뱀에서 꾀울 때도 사랑을 가지고 꾀웠습니다. 이래서,  이것을 착각해 가기고. 사랑에 대해서 바로 알지 못 하고 착각해 치우친 것이  그것이 ○○교회입니다. 이래서 ○○교회의 깊은 도리는 에덴 동산에서 타락한  것이 뱀으로 더불어 결혼한 간음을 해서 그렇게 뱀하고 연애해 가지고, 뱀하고  서로 사랑하는 그 연애로 인해서 된 것이 죽음이다 그렇게 그분들은  ○○교원리라는 거기서 그것을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하나만 있지 둘은 없는 것인데 뱀이 와서 만들어 가지고 사랑을  둘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낸 사랑이 있고 또 뱀이 인간에게 넣어  준 사랑이 있습니다. 뱀의 사랑은 어떤 것인고 하니 그것은 크게 말하면 혈통을  사랑하는 혈통적 사랑입니다. 또 하나는 서로 자주 만나고 접하면 사랑할 수 있는  동류적인 그런 사랑입니다. 또 하나는 암수가 서로 이성적으로 사랑하는 또  정욕적 사랑입니다. 이것은 다 뱀의 사랑인데 이것은 결국 죽이고 망치고 하는  것뿐입니다.

참사랑은 하나뿐인데 참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진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참사랑입니다. 왜 사랑은 하나님만이 가질 수가 있느냐? 하나님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사랑은 자기 있는 지혜대로 상대방을 복되게 하려는 것이 그것이 사랑인데  자기의 지혜가 전지의 지혜가 되지 못한다고 하면 자기의 지혜로 사랑한 것이  나중에 보니까 자기는 전지가 아니니까 무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이 무지하게 행했기 때문에 그 사랑이 결국은 참 절단나니까 그  사랑이 끊어질 때는 사망과 비참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또 아무리 자기가  사랑하는 자를 향해서 어떤 수고의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전능이 아니니까,  전능이 아니니까 자기의 능력으로 사랑 하다가 사랑이 끝이 날 때에는 그때에는  고통이 되어지고 죽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아무리 사랑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총 주권을 가지지 못하고 주권을  다른 것이 가지고 있으면 그 주권 가진 자에게 자기는 거 게 이용을 당하고  정복을 당해야 되기 때문에 결국은 자기가 주장한 것은 다 헛되어지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전지한 지혜를 가지고 전능한 능력을 가지고 또 모든 것을  주권하는 그런 권세를 가지고 또 영원히 계속되고 또 영원히 변치 않고 영원히  완전하여야 합니다. 이래야 그 사랑이 계속되지, 아무리 만 년 사랑해도 만 년  넘어 그게 끝난다면 그 사랑이 짙고 두터울수록 이 그것이 절단 날 때에는 큰  사망과 비극으로 화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한 것인데 영원한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질 수  있지 딴것은 자격이 없어서 가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은 하나님  한 분만이 가진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만이 가진 이 사랑을 우리가 가지지 안하면 안 된다 그말인데  그러면, 하나님만이 가진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가질 수 가 있느냐?  이 사랑을 가질 수 있다 그 말은, 하나님만이 가진 이 사랑을 우리가 가질 수  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사랑 외에 딴 사랑을 우리는 가질 수가  없지만 하나님만이 가진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사랑을 가질 수가  있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그 사랑을  가질 수가 있다고 하면 사랑은 전지 전능 영원 불변 완전 주권 이것을 가진  자라야 이 사랑을 가질 수 가 있는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그런 자가 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네. 될 수 없습니다.

 될 수 없는데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사랑이 없기 때문에 언젠간가 망해서  영원한 멸망을 가지게 되는 것인데. 멸망 안 할 수가 없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 사랑이 끊쳐진 것이 에덴 동산에서  끊쳐졌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이 사랑이 끊쳐지기 전에는 전지 전능 완전자가  됐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끊쳐지니까 그만 그것이 다 없어졌습니다.

 에덴 동산에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아담이 연결이 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까 산 영이 됐다 했습니다. 이 연결이 되고 보니까 연결된 그  아담이 한 행동은 다 전지의 행동이요 전능의 행동이고 완전의 행동이요 영원  불변의 행동이었습니다. 그 행사 하나를 보고 무엇을 그렇게 했는고 하니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을 아담 앞에다 갖다 그 이름을 지으라 할 때에  이름을 아담이 지었는데 아담이 지은 이름이 하나님의 뜻과 딱 들어맞았습니다.

이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다 하나님과 이질된 것이  없고 하나님의 전지에 맞고 전능에 맞고 완전에 맞고 영원에 맞았다는 것을  말씀하는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어떻게 해 가지고 아담이 그리됐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연결로 그래 됐습니다. 하나님과 연결이 됐어. 하나님의 전지에  연결되니까 전지가 됐고 전능에 연결되니까 전능이 됐고 완전에 연결되니까  완전이 됐고 영원 불변에 연결되니까 영원 불변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이라다가 뱀이 와 가지고 꼬우는 그 꼬움으로 인해 가지고 서 그만  하나님과 삐뚤어졌습니다. 하나님께 속하고 연결되어 있을 터인데 그 연결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 연결이 뭘로 끊어졌는가? 연결이 끊어진 것이 죄로  끊어졌습니다. 죄로 끊어졌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삐뚤어진 거 가지고  끊어졌다 하는 그말입니다. 어떻게 삐뚤어졌는가? 하나님께서는 이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 했는데 뱀이 와 가지고 안 죽는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삐뚤어지게 먹지 말라는 것을 먹어서 그만 하나님과 서로 이질이 돼서  끊쳐졌습니다. 끊쳐지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는 아무런 권능은 없어져 버렸고  부정 모혈로 난자는 다 망하고 죽는. 인간이 사망을 받게 된 것이 그것입니다.

 이랬는데. 요한 1서 4장 10절 이하에 보면 `사랑은 여기 있으니' 말했어. `사랑은  여기 있으니' 그러면, 사랑이 여기 있는데 사랑이 뭐이라 말인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 죄를 없이 하시려고 화목 제물로 독생자를 보내셨다' 그러면,  화목이라 말은 연결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은 하나님과  인생들이 연결이 끊어져 가지고 이렇게 영원한 비참의 멸망을 받게 됐기 때문에  이 끊어진 연결을 없애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신 것을 가리켜서 `죄를  없이 하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요한 1서 4장 10절에 보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 그러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보내셨다,  우리 죄를 위해서 화목제로 보냈다 말은 우리 죄를 없애기 위해서 화목제로  보내셨다 하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에 보면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 그렇게 거게는 말씀했습니다. 또 우리 죄를 사하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은 여게 있으니 어떤 것이 사랑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그  사랑은 어떤 사랑인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하나님과 우리와의 절단을 시킨,  하나님과 우리와의 절단시킨. 전지 전능 완전 영원 불변의 이 하나님과 연결을  끊은 것이 죄입니다. 끊은 것이 삐뚤어진 거라 말이오. 삐뚤어진 건데 이 죄를  없이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러면, 예수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끊겨진,  이 끊겨진, 끊은 그것이 죄인데 끊은 죄 이것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마귀와 죄를 멸하기 위해서 오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일을 하셨는고 하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끊은 그것을 멸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이 와서  일을 하셨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와서 일하신 것은 어떤 일을 하셨느냐? 하나님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 하나님과 끊겨진 그것을 끊은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당신이 희생하는 그 희생의 역사를 한 그것이 사랑의 역사입니다. 그래  가지고 죄를 없애니까 끊겨진 것이 끊은 것이 그만 멸해졌으니까 끊겨진 것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를 예수님이 없이하심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끊은 그  방해물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또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은 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또 하나님과. 화목제로 보내셨다 그 말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다시 재연결을 시키기 위해 가지고 오셨다, 독생자를 보내셨다, 독생자가  오셨다 이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속을 사죄라 그 말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절단된 것을 다 예수님이 그 절단된 그 잘못된 형을 다 받아 가지고  그것을 없애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절단시킨 그 죄가 무슨 죄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요구하시는 법칙을 어긴 것이요, 또 하나님께 우리가 복종해야 되는데 복종하는  그것을 복종하지 안한 그 죄요. 또 하나님께 속해서 살아야 되는데. 하나님만을  섬겨 살아야 되는데 하나님을 배반한 그 죄입니다. 그러면 말씀을 어긴 죄요,  영감에게 복종하지 안한 죄요, 또 하나님을 배반한 그게 삐뚤어진 건데, 그래  가지고 끊어졌는데 그 끊겨진 것을 예수님께서 그 끊겨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그 사망의 값을 내고 끊겨진 것을 다시 연결을 시켰습니다. 이래서 연결시킨 것을  가리켜서 화목의 제물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와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끊어진 것을. 끊은 그것을  그만 없애 버리고. 끊은 그것을 멸해 버리고, 끊은 그 죄를 멸해 버리시고, 끊은  죄를 멸한 것은 어떻게 멸했는가? 그것은 예수님이,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사망을 받으셔 가지고 죄를 멸했습니다. 죄라 하는 것은 그 죄에  대한 댓가를 받아서, 댓가 죄의 댓가는 사망인데 사망의 형을 받으면 죄가  없어집니다. 이 세상에서도 국법에서도 국법을 어겼으면 어느 정도에 어겨서 그  형이 얼마나 거게 대한 형을 그만 받아서 형을 받았으면 그 죄는 없어졌습니다.

그 형을 받은 자에게 다시 그 죄값으로 어떻게 형을 하면 형 하는 자가 도로  벌을 받게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전지 전능의 완전의  영원의 연결을 가진 그 연결을 끊은 것을 없애 버리고 그라고 난 다음에 연결을  우리에게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대신 연결하시는 일을 해 가지고 연결을  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서 의를 만드신 일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의가, 의라  말은 연결이라 말입니다. 연결이라는 말인데 사람들이 의의 그 꺼풀을 말할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나타내신 뜻,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신 그  뜻 그 뜻을 내가 행해서 그 뜻에 위반하지 안하고 그 뜻과 내가 일치가 될 때에  그때에 그것을 의라 이렇게 말합니다. 의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거 의입니다.

 의인데. 여게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 그 말은 하나님이 만든 그 결합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만드신 결합이 우리에게 나타났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드신 그 결합이 뭐인가? 하나님의 전지 전능 영원 불변 완전,  그분의 본체와가 아니고 그분의 역사와 우리와 연결된 그것이 이제 하나님이  만드신 의입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 그 말은. 복음이라 말은  복된 소리라 그말이오. 복된 소리라, 그래서 복음이라 그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가 부산 내려와 가지고 전도지 박을 때에 기쁜 소식이라 하는  것을 그때 전도지에 냈는데, 그때는 뭐 기쁜 소식이라 말이 없었는데 그후에  지금은 뭐 기쁜 소식이라 말이 뭐 기쁜 소식이라 기쁘다 말을 많이 썼습니다.

복음이라 말은 기쁜 소식이라 그말입니다.

무슨 기쁜 소식?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하나님과의 끊어진 그 연결을 오셔  가지고 재연결을 시켜 주셨다, 재연결 시켜 주신 이것을 성경으로 기록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이러니까. 이 소식을 알고,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이 사실을 인정하고 자기가 요대로만 살면 그말입니다. 믿음이라 하는  것은 알고 인정하고 그대로 하면 됩니다. 그것을 가리켜 믿음이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대신 하셔 가지고 절단된 것을 재연결을 시켜 주신 이것을  우리에게 지금 은혜로 주시는 소식을 가지고 은혜로 주신 소식, 은혜로 주시는  계약을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사실을 인정하고 그대로 살면 그게  믿음이 되는데, 그대로 살면 의인이 된다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 그는 영원히 죽지 안하고 완전히 살았다 그 말은 하나님과 연결됐다 하는  그말입니다.

생명은 모든 것을 발동시키는 것이 생명입니다. 모든 것을 시동시키는 것이  생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산다는 말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된, 지극히 큰 세  능력과 우리가 연결된, 연결된 그 연결이 발동하는 것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연결된 것이 생명이라, 연결된 것이, 연결된 그 행위가  발동됐을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생명 행위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끊쳐진 것이 연결된 그 연결을 가리켜서 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의는  타지 안하고 죽지 안하고 새 하늘과 새 세계을 얻어서 영생하게 된다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가라 그러면, 의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독생자도. 의는  연결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이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과  우리와 절단된 그 절단을 연결시킬 때에 연결시킨 그 방법은 다른 방법 가지고  하지를 못했습니다. 연결된 그 연결시킨 그 방법은 믿음이라는 방편을 가지고  연결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라고 예수님도 믿음으로  주가 됐다 성공했다 그말입니다. 우리도 그 믿음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만들어  놓은 의를 우리가 가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라, 의라 말은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 하나님의 영원 자존하신 그 본체와 우리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가? 우리가 본체와 본체가 역사하는 그 역사를 가리켜서 영감이라고  말합니다. 또 영감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실 때에 그 역사하는 그 능력을  가리켜서 진리라 그렇게 말합니다. 내나 진리가 영감에서 나왔고 영감이 하나님의  본체에서 나왔고 이랬는데, 그 셋은 하나입니다. 다만 본체와 본체가 역사하는  역사와 또 본체가 역사한 그 역사가 나와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 부딪쳐 가지고  역사할 때에 그 역사를 가리켜서 진리라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라 이 말은 하나님과 우리의 지극히 큰 능력과 우리가 절단된  이 절단이 예수님이 믿응 가지고 이 절단을 다 제거해 버리고 완전한 영원  완전한 연결을 주님이 하셨습니다. 이래서 그 연결로 말미암아 영의 연결은, 영의  연결은 완전한 연결이 됐고. 주격이기 때문에, 그것은 죽어 있기 때문에. 주격이  죽어 있었기 때문에 뭐 아무 작용할 수 없는 고로 죽은 주격을 하나님의 순전한  은혜로 대속하셔 가지고 이 영을 살렸습니다. 영을 살리고 난 다음에는 우리  사람의 주격이 살았으니까 그 주격이 자기의 소유를 살려야 되지 다른 것이 와  살리는 것은 월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된 우리의 중보자이신 이  중보의 역사가 우리의 중생된 영을 통해 가지고 우리의 마음과 몸이 기능을 지금  살릴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이 연결을 어떻게 만드느냐? 믿음으로 만들어 놓은 그 연결을,  연결은 의인데. 믿음으로 말미암은 그 연결을 또 우리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연결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연결시켜 주신 그 연결을 우리가  법적으로 그 연결을 받았고 또 계약적으로 그 연결을 받았고 하나님의 지성  지공의 심판적으로 연결을 받았습니다. 이 연결은 하나님의 심판에도 이제  인정하는 그런, 완전이라 하는 그 인정하는 그 연결을 우리가 가졌는데 그 연결을  우리 현실에서 그 연결 가진 행위를 이 현실에서 한 번만 똑 하면 한 번만 딱  하면 그만 그거는 완성이 돼 버리고 맙니다. 연결 생활을 현실에서 그 현실에  해당된 심신의 기능도 따로 있고 그 심신의 기능 전체가 아니고 그게 해당된 그  심신의 기능이 있는데 그 심신의 기능이 그 현실에서 하나님이 주신 그 의를  자기가 버리지 안하고 그 의를, 자기 의가 됐으니까 그 의를 가지고 살면 그만  영원한 자기의 의가 되고 자기의 연결이 되고, 그 의를 자기가 가지고 살지  안하고 그 현실에 이 세상에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유혹이 와 가지고 미혹도  하고 협박도 하고 이렇게 할 때에 미혹에 꼬여 넘어갔든지 협박에 떨어져  넘어갔든지 이래 해서 그만 믿음을 버려 버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 들어  주신 이 의를, 나를 대신해서 만들어 주신 이 의, 그러면, 하나님 이 만들었지만  나를 대신해 만들었기 때문에 내 의인데 이 의를 내가 아는 거 이 의를 내가  인정하는 거, 또 이 의로 내가 생활하는 거, 의로 행동하는 거 이러면 그만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수많은 심신의 세포적인, 분자적인 기능은 현실 현실에서 거게  해당된, 그때 전투한, 그때에 참전한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주님이 연결시킨 이  연결을 가지고 사느냐? 이 연결을, '아이구, 그 연결보다 이제 이 세상과 연결하는  게 좋다' 이래서, '악령과 악성으로 더불어 연결하는 이 연결을 가질래, 네가  하나님이 연결시켜 준 그 연결을 가질래? 둘 중에 하나 가져라' 그럴 때에  사람들이 세상이 말하는 그것을 집어 던져 버리고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연결시켜 준 이 연결을 나는 가지고 이 연결로 살란다' 하고 그 현실을 통과해  버렸으면 연결을 끊게 하려는 그들은 끊지 못했기 때문에 패전을 했고, 연결을  끊어라 할 때에 끊지 안하고 우리가 그 연결로 산 그것이 우리가 승리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연결을 우리가 내주지 안할라고 하면 어떻게 힘을 쓰며  되느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된다, 있는 것을  다해야 되지, 이거 위해서 있는 것을 다 투자해야 되지 뭐이든지 하나라도 가지고  할라 하면 안 된다. 이거. 그게 뭐이냐? 가지고는 안 됩니다.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은. 세상에. 악령에게 속해서. 세상에 속하고 사망에 속한 것인데, 옛사람들에게  속한 것인데 옛사람에게 속한 그것을 전부를 다 부인해야 둘째 아담에게 속한  것을 내가 인정하고 받는 것이 되지 그것을 부인하지 않고는 이걸 받을 수가  없고 이걸 받아서 가졌다면 그거는 부인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한  사람이 대구에서 기차가 하나는 부산으로 내려가고 하나는 서울로 올라가는데  자기가 부산 가는 차도 서울 가는 차도 한꺼번에 다 타고 갈라고 하면 몸이 두  가지로 쪼개지든지 하지 그것이 갈 수가 없는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거면  저걸 버려야 되고 저거면 이건 버리게 필연적으로 되어지는 것인데 이래서 이  연결하기가 힘이 든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끊쳐진 그 절단이 하나님이 이것을 다시 재 연결  시켜 준 일이 있었으니 재연결 시켜 준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의는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의요 공산주의의 의는  공산주의의 그 사상과 연결된 것이 공산주의의 의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이 의를 내가 믿음으로 내 의를 만들어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이. 우리와의 연결시켜 준 그 연결을 자기 연결로 인정하고 그 연결을  버리지 안한 자는 산다 그 말입니다.

하늘이 불타고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는데 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는 것은 그 의가 뭐이기 때문에 그래? 의는 전지이기 때문에 그런데 의는  전지이기 때문에 그렇고 전능이기 때문에 그렇고 완전이기 때문에 그렇고  영원이기 때문에 그렇고 불변이기 때문에 이 의는 불에 타지 않습니다. 의는 죽지  않습니다. 의는 늙어지거나 쇠해지거나 그런 것이 없습니다. 의는 또 슬퍼지거나  아프거나 병들거나 그런 일도 없는 것입니다. 의는 영원합니다.

 그러기에 의가 됐으면 주님이 우리 구속하신 구속은. 대속하신 대속은 이거는  완전한데 우리가 영은 완전한 결합을 가졌습니다. 이 결합을 가졌기 때문에 영은  영생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이것은 법적으로 계약적으로 또  심판적으로 이렇게 예수님이 대속하신 이 의를 입은 것인데 대속하신 의를  입었는데 본인이 인정치 안하고 벗어버릴 때는 이거는 할 수 없어, 벗어버릴 때는.

이거는 왜? 기본구원에 영의 의는 영이 벗을 자격도 없고 또 벗을 아무 그런  기능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입히시니까 입혀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의 육의  심신의 기능이라 하는 건 이것을 지금 벗을 수도 있고 입을 수도 있고 이거는,  이게 지금 움직이고 있어. 기능이 아주 죽은 게 아니고 기능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움직이고 있는데, 이 기능이, 사망에 속해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이  기능이 실상은 사망에 속해 가지고 있는데 또 법적과 심판적과 하나님의  계약적으로는 이것이 삶에 속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삶에 속해 가지고  있지만 실상으로는 사망에 속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이는 사망에 속해 있고 법적으로나 계약적으로나 하나님의  공심판적으로는 삶에 속해 가지고 있는데 이 삶에 속해 있는 이것이, 삶에 속했고  실상은 죽음에 속했기 때문에 이것이냐 저것이냐 이 둘이 판결이 돼야 되기  때문에 이 판결되는 이것이 뭐이냐 하면 현실이라는 그 현실에서 판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벗지 안하면 배반하지 안하고 이걸 버리지 안하고  부인하지 안하면 자기가 영영한 결합을 가졌고 부인하면 다시 세상과 결합되고  영원한 결합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그것이 세포적이요 다 부분적이요  분자적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하나님의 재연결 시켜주신 이 의를 내가 이 시간에  버렸으면 이 시간에 버린, 이 시간에 해당된, 이 시간에 출전한. 이 시간에 투쟁한  이 시간 투쟁에 참전한 그 심신의 기능은 그것은 패전해서 영원한 사망을  가졌습니다. 그걸 가리켜 둘째 사망인데 사망을 가졌고, 이 시간에 내가 패전을 안  하고 주님의 대속에 그 연결 의를 내가 가지고 있었으면 그 연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시간에 해당된 것은 영원히 살았습니다. 영생이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이라는 것은 영생이 되든지 영멸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되어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영멸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 영멸이 되었으면 전체가  영멸인가? 아니, 이 시간 해당된 것만 영멸이지 그다음 현실이 닥쳤을 때에  그다음 순서에는 또 그다음에 남은 지금 아직 검사 맡을 것이 남아 있는데 검사  맡을 것이 그다음에 순서로서 또 등장했습니다. 등장해서 그 다음에는 내가  하나님이 연결시켜 준 이 연결을 버리지 안하고 이 연결을 죽어도 내가 이  연결을 놓지 안했으면 그 연결을 가졌기 때문에 그다음에 시간에는 연결로  영생이 됐습니다. 연결로 영생 됐다고 다 영생됐느냐? 그 시간에 해당된 것만  영생됐지 그다음 시간에, 해당되지 안한 것은 또 아주 그것이 검사를 해 가지고  이거냐 저거냐 자유성을 가지고. 자유의 자기의 기능성을 가지고, 이거냐 그거냐  하는 그것을 제가 선택할 자유가 있는데 그 자유 가지고 하나님의 대속의 의를  선택하면 영생이 되고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을 선택하게 되면 영원한 사망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라 하는 것은. 언제 내가 작년에  심신의 기능은 색이 없다 무색이라 이러니까 그때 어떤 사람이 질문해서 내가  간단하게 말을 했는데, 무색입니다. 우리의 심신의 기능은 하나님이 지으실 때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똑,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하와가 있을 때에는 죄도 의도  아무것도 아닌데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을 때에 산 영이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아닌데 그 때 생기 불어 넣으니까 산  것이 됐다가 또 배반하니까 죽은 것이 됐습니다.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그때는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그래 있다가, 처음 순서는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었었는데 그 다음에 생기를 불어넣었을 때 살았다가  또 우리 인류 시조가 신인 계약에서 배반함으로써 우리는 또 죽었습니다. 또,  죽었다가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또 살았습니다. 살아났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살아난 거는 이 네째 순서입니다. 네째 순서인데 지금 여기서  다섯째 순서가 지금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다섯째  순서에서 완전히 이겼으면 영원히 이겼고 졌으면 둘째 사망으로 영원히 사망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모든 것이 불탈 때 불타지 않는 그거는 왜 불타지 않느냐? 불타지 안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은 뭣 때문에 불타지 않느냐 하면 지극히 큰, 자존의,  완전의, 불변의, 만주의 주의, 만왕의 왕의, 주권 모든 개별 섭리의 그 원동력. 이  셋 자존하는, 모든 것의 원인되는 여기에 연결이 딱 돼 가지고 여게 연결이 돼서  이제 그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기 때문에 거게는 사망이 있을 수가 없고  피조물들이 해할 수가 없고 피조물들은 벌써 그의 소유가 됐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자존하신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님의 본체의 역사인 영감과 영감이  우리에게 부딪쳐졌을 때에 그것이 진리인데 진리와의 연결이 됐으면 그는  뭐이냐? 아무것도 안 했지만 자기는 창조주의 위치에 있습니다. 창조주의 위치에  있고 대주재의 위치에 있습니다. 또 전능자의 위치 전지자의 위치에 있고 모든  피조물을 다 자기의 것으로 삼는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들에게  약속을 하기를, 모든 것을 정북 한다 말은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린다 그 말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대리로 다 피조물을 소유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졌기  때문에 이것을 가리켜서 `네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그 말은 그리스도의 것이  된다는 말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직책을 네가 가지게 되고 그 일을 가지게  됐으면 가진 것만치는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네가 통치할 수 있고 네것에 다  속해서 네것이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꺼풀을 뚫고 들어가 가지고 여기서 도가 통해지는 요게 들어가면 그  모든 것이 다 해결되어집니다. 그러기에, 거게 가기 전에는 성경이 모순된 것이  있는 것같이 보이나 모순된 것을 자꾸 궁구하면 나중에는 모순되지 안하고  일치되는 거기에 도달하게 됩니다. 일치되는 거기에 도달하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  도가 이제는 완전히 통해진 사람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 셋 능력과 연결이 됐기 때문에 온 우주가 다 피조물이 다 불타도,  불타면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에 이 모든 것은 영원히 있다 하니까  불탄다 말은 틀린다 말하지만 영원히 있다 불탄다 있다 불탄다 하는 것이 모순된  거 같지만 나중에 들어가 보면 이제 불탄다 말도 있고 영원히 있다 말도  맞습니다. 왜? 이 형태로 요와 같이 있는 거는 아니지만 이 원소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영원히 있습니다. 요거는 영원히 있어 가지고 만물을 새롭게 한다 할  때 그때 이 모든 것이 새로 영원히 불타지 안할 것으로서 창조 돼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셋 지극히 큰 능력이 뭐이냐 하면 그가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본체시요 또 그것이 본체가 역사하는 그 역사시요 또 역사가 우리에게  와서 우리와 접선이 될 때에 진리입니다. 이러니까 이와 연결이 됐기 때문에  영원히 멸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셋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대속도 이와  같이로 됐습니다.

 이래서, 여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리 언변 좋아도 소용없다 아무리 지식 많아도  소용없다, 전 지식 다 가져도 소용없다. 아무리 오만 별별 뭐 인간의 힘이나  과학의 힘이나 무슨 뭐 어떤 지식이나 어떤 능력이라도 그 어떤 능력이 있어도  다 그것도 그것만 가지고는 소용없다. 또 어떻게 희생한다 해도 그것만 가지고는  소용없다.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온 세상이 살고 있는 보배로운 실력이지만 이 네  가지에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다 하는 그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다 그  말은.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사랑이 들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시킨 것을  가리켜서 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시킨 것이  의입니다. 그래서 의는 영원히 살리라 그 말은 연결된 거는 영원히 산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연결이 되면 연결에서 뭐이 나오는가? 사랑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그 말은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과  연결시켜 주셨는데. 대신해서 대속으로 연결시켰는데 이 연결을 가지고, 연결을  가지고 연결에서 나온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다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리 네가 무엇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 연결이 없으면 소용없다  그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그 말은 이 사랑에 연결 없으면 안  된다. 이 사랑에 연결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면, 사랑이 뭐이냐? 사랑은 이  완전자와 연결시키는 것이 사랑이다 그말입니다. 완전자와 연결시키는 게  사랑이다. 그러면, 사랑이라면 완전자와 연결을 무엇이 시켰느냐? 의가 시켰다.

의가 시켰으니까 의와 사랑은 다릅니다. 의와 사랑은. 의는 사랑이, 사랑이 이  연결을 시킨 것을 가리켜서 의라 하고 연결된 그 의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의를  통해서 우리에게 왔으니 온 것을 가리켜서 사랑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 증거할라고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온갖 방편 뭐 수단 온갖 희생 온갖 충성 다 가져도 하나님과 연결  없으면 소용없다 하는 그것을 지금 말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결  없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면, 연결이, 연결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작용할라고.

작용할라고 시동이 걸리는 작용할라고 시동 이 걸리는 그 시동을 가리켜서  사랑이라 시동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생명이요 생명은  사랑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인 의는 없는데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의가  있기 때문에 이 의는 우리가 믿음으로 가집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가져서 이 의를  가지면 우리에게서는 생명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생명 역사가 일어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대구 집회에서 육백 몇 명에게  하나님의 그 기적이 나타난 것은 그것은 부분적이요, 부분적이요 혹은, 부분적으로  또 나타난 방편은 극히 외부적으로 나타난 일도 있고 속에 이면적으로 나타난  것도 있어도 어쩌든지 그 기적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의 표시라 그말이오.

하나님과 연결의 표시라는 것입니다. 연결의 표시.

그러기 때문에, 그 연결의 표시는 우리의 몸의 기능과 연결된 표시요 마음과  연결된 표시요 또 우리의 영과 연결된 표시인데, 그 표시가 연결이 다 돼 가지고  그렇게 연결된 표시로 나은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우리가 믿지 않기 때문에  믿도록 하기 위해서. 연결되면 이게 나온다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표적이라  하는 것은 표적이라 하는 것은 외부에 나타난 것이 표적인데 그 표적은 표적이  나타내고 있는 속에 알맹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내게 지금 이렇게 우 몰려오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고 떡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그 말은 그 오병이어로 먹인  것은 그것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께서 말로 해도 알아듣지 못하지 이걸 보일 수  없는 것을 그것으로 하나 나타내 그 속에 이런 게 있다, 보리떡과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 먹은 이런, 속에 비밀의 지극히 큰 능력이 있다 이것을  하나 표시해 보이는 것이 그 표적입니다.

그러면, 그래 그때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은 것은 표적이요. 그것이 표적해 주는  것은 뭐이냐? 인간이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우리에게 온  하나님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온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께 나를 바쳐서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그 연결된 것은 뭐, 연결된 그것은 굉장한 결과를 나타내게 된다. 아,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도 남았는데 오만 명이 먹으면  또 모자라겠느냐, 오만 명이 먹으면. 오천 명이면 열 두 바구니이니까 오만 명이  먹으면 백 이십 바구니가 남았을 것이고 또 오십만 명이 먹으면 천 이백  바구니가 남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제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되는 데는 내것을  주님께 바쳐서 연결되는 것이지, 주님이 우리에게 다 주셔, 먼저 다 주셨는데 받은  것을 다 하나님께 다 드려서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그 연결된 것은 뭐 무한,  결과를 맺어. 끝이 없다, 무한한 결과를 맺을 수 있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대구에서 보여 준 그것도 뭐이냐 하면 하나님에 연결되니까 자기가  아무리 병원에 가서 낫울라 하던 것도 못 낮고 저기서 나았는데 무슨 손이 와서  만졌소 약을 썼소? 보이지 안하니까 허무한 것 같지만 내가 믿을 때에 믿음으로,  믿는 거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재연결 시켜 준 하나님이 연결 시켜 준 그  연결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연결 시켜 주신 그 연결을 믿는 것이 믿음인데  그 연결을 믿어서 그 연결로 말미암아 연결되니까 그 능력이 오니까 무슨,  귀머거리 귀가 막힌 것도 탁 거리며 뚫어지고 또 오만 병도 낫아지고 다 이렇게  한다 그말이오. 연결이, 연결이 되니까 연결이 된 능력이 그런 것이라.

 그때 ○○○장로님 며느리하고 아들하고 둘이 와 가지고, 좀 놀랜 표정으로 와  가지고 `아이구 어짜랍니까' 이라는데 보니까 독사가 요게를 딱 물어서 피가  줄줄줄 자꾸 흐르는데 아마 혈관을 물었던 모양이라. 혈관을 물고 자꾸 이러니까  그만 겁이 나 가지고 이래 왔어. 그래 내가 `너거 와 믿지 않느냐? 멜리데 섬에서  독사 물렸는데 기도하니까 그만 낫지 안했느냐? 너거가 기도하면 된다. 기도해  가지고 거석할라면 또 내가 기도해 줄께' 요래 거머쥐고 그래 기도도 간단하게  했어. `멜리데 섬에서 독사에게 물린 것을 치료해 주신 주님이여, 이 시간 독사에  물렸는데 치료해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랬다  말이오. 손 떼 보니까 그만 피가 안 나. 어디로 가 버렸어. 그만 싹 다 낫았어.

그게 뭐이냐 하면 보이지 않는 지극히 큰 능력과 연결됐을 때에 그 능력이 와  가지고 역사하는 역사는 능치 못함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 저것 세상에서 뭐  지식의 방편이니 또 언변의 방편이니 오만 세상 능력의 방편이니 희생의  방편이니 다 좋지만 그거는 생명이 없다.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 없다. 연결이  없으면 안 돼. 연결돼 가지고, 하나님과 연결이 돼서 연결된 역사가 우리에게 와야  된다, 연결된 역사가 우리에게 와 가지고 역사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사랑의  역사다. 그게 다 생명 역사다 그말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오후에도 보니까 그거. 지금. 물 위에 걸어가는 거 뭐  베드로가 그런 수단 있는 거 아니라. 주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과 주님의  말씀은 신실하시니 말씀한 그대로 된다는 거 요거 믿은 것뿐이라. `오라  하십시오.' `오라' 이러니까 물 위에 푹 뛰어 내렸으니까 그게 믿음이라. 뛰어  내려 가지고 이와 같이 점벙점벙 걸어가니까 잘 걸어가지 안했습니까?  걸어가다가 그만 풍랑보고 빠져 들어갔는데 예수님이 해석하기를 풍랑보고 빠져  들어가니까 발을 안 놀려 그렇다, 또 네가 손으로 뭐 헤엄을 안 쳐 그렇다 이렇게  말하지 안하고 `믿음이 적은 자라' 그때 믿었다가 믿지 안하니까 그만 중단됐다  말이오. 다시 또 해석하기를 `왜 의심하였느냐' 이랬다 말이오. 의심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 연결된 연결을 가지지 안하고 연결 가지지 안하고. 그 연결을  떼버리고 이 세상하고 연결 해 버렸다 그말이오. 세상하고 연결했어.

그러면 그때 베드로에게, 갑자기 그 풍랑이 온게 아니라. 제가 그 전에는 못 봤지.

처음에 배 타고는 풍랑 때문에 저들이 밤새도록 놀래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뭐  풍랑을 못 봤소? 이렇지만 오라 할 때, 오라 할 그때는 풍랑 다 안 보였다  말이오. 주님만 보였고 주님의 말씀만, 신실하신 말씀만 믿어지는 그것만 보이지  그까짓게 보이지 안해. 그게 안전에 서지를 안했어. 보이지 안했다가 새삼스럽게  그거 보고 나니까 그래 됐 다 말이오. 그러면 그 풍랑이 처음 걸어갈 때에는  없었느냐 하면 내나 처음에 갈 때에 그때 있는 풍랑입니다. 처음에 베드로가  걸어갈 그때도 내나 그 풍랑 그대로 있었소. 그대로. 그때 새로 인 풍랑이 아니고.

이러니까 그때에는 이 모든 것보다도 주님의 이 선포하신 계약, 또 주님이  우리에게 선포해 주신 말씀. 우리에게 연결된 연결. 주님과 주님의 말씀과 주님이  연결해 주신 연결 이 셋은 세상에 모든 거와 중량을 달 때에 이것이 중량이  크기는 크지만 돈만은 못하다 하는 사람은 돈이 뫘을 때에 이거 내 버립니다. 또  이것은 생명을 죽인다 하니까, 생명을 죽인다 하니까 이 능력은 생명 죽이는  데에는 꼼짝 못 한다 이런 것이 있었을 때에 이 능력은 거기서 끊쳐지고 맙니다.

암만 죽인다 해도 이 능력이 함께 할 때는 죽이지 못한다. 이 능력이 세상을  떠나서 오라 하면 오는 것이지 너거 뭐 불에 들어갔다고, 사자 구덩이에 넣었다고  우리 생명을 어떻게 할 줄 아느냐. 이 생명은 이 셋 연결 이 연결의 능력이  가지고 있다 이렇게 믿었기 때문에 사자가 입을 벌리지 못했고 또 불이 그를  해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 지금 말하는 것은 너무 우리 총공회 교회들이 자꾸  퇴보되고 있습니다. 퇴보되고 있는데 우리가 이거 믿음이 없어서 자꾸 퇴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연결이 우리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연결시켜 준 이 연결을 의심하지 안하고. 이것이 나 위해서 연결을 해 주셨으니까  나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지극히 큰 세 능력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이 이 연결을  만들어 줬다. 이 연결은 완전한 연결이오. 완전한 연결을 만들어 줬기 때문에 이  연결을 자기가 연결된 것을 인정하고 이 연결을 내 주지 안하면 돼 내 주지만  안하면 돼. 이 연결을 빼앗기지만 안하고 이 연결을 자기가 부인하지 안하면 돼.

`이 연결보다는 이거 낫다' 해 가지고, 이 연결보다 이것이 낫다 할 때는 이  연결을 버리고 하지만 모든 거보다도 이 연결이 낫다 하는 것은 뭐 목숨이  어째도 목숨보다 이 연결이 낫다, 그래서 이 연결을 버리지 안할 때에는 이  연결에는 전능이라 온 세계가 불타도 타지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앞으로 예수님의 재림이 곧 가까워 온 것 같은데 이제 온 천하가  다 불타도 이 연결을 자기가, 뭐 연결된 거 무슨 쇠로 연결시킨 것도 아니고 무슨  나무로 연결시킨 것도 아니고 세멘트로 연결시킨 것도 아니오. 이것은 뭐이냐  하면 우리의 인격을 다해서 이걸 믿는 믿음으로 연결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연결만 돼 가지고 있으면. 이 연결이 의심치 안하고 연결을 부인하지 안할 때에는  세상이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분과 연결이 됐는데. 이분이 지극히 크심을 자기가 알 때에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그것에게 유혹이나 협박을 당할 리가 없습니다. 이분이  지극히 크신 것을 자기가 확실히 알아 믿는다고 하면 이 세상에 이분보다 큰  분이 없는데 뭣 때문에 이분을 부인할 만한 무엇이 있겠습니까? 부인하는 거는  이분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라 그말이오. 또 이분에게 모든 것이 다 있고 좋은데,  이분이 가진 것이. 제일 좋은 모든 것을 많이 가지고 좋은데 이분을 이렇게 믿는  자는 이분에게 구하지 이분 외에 다른데 구하지 안 할 것이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도하는 자는 이분이 모든 좋은 것을 가졌다는 걸 이 분이 내게  소원을 이루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자의 행위라. 믿으면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돈이 없는데 저거 아버지에게 돈이 많으면 저거 아버지가, 돈 달라 하면  아버지가 돈 줄 줄 알면 어떤 자가 배가 쫄쫄 고픈데 아버지에게 돈 달라 소리를  안 할 자가 있겠습니까? 이제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이분의 부요함을 믿지  않는 것이요 이분의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요 이분이 '구하라 후히 주고 꾸짖지  안 하신다' 이분의 계약을 믿지 않는 것이오. 이 세상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이분의 크심을 믿지 않는 것이오. 또 세상의 유혹을 받는 것은 이분보다 좋은  것이 세상에 있고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는 이분이 못 하다, 그러면, 이분보다  세상에 좋은 것이 있다는 것 이것도 이분을 바로 믿지 않는 것이라. 이분을 바로  믿지 않는 데에 그렇고 이분을 바로 믿는 데서 다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 ○○교회 ○○○목사님 사모님이 절 찾아 올라왔어. 전화를  해서 나도 보고 싶고 그래 반가와서 올라오라 이랬어. 올라오라 했는데, ○○이  가지고는 발동을 해도, 일은 많이 했어요. 거기도 좀 성공하기는 했는데, 그랬는데,  ○○교회 가 가지고, ○○교회는 만날 눌려 가지고, 그 지방에 눌려서 꼼짝을 못  하고 목사들 가 가지고 자꾸 뒤로 끌어 내루기만 내루지 교회를 이래 놓으니까  교회가 그만 똥이 돼버렸어. ○○교회가 똥이 돼 버렸어. 언제 한때는 ○○교회가  어떻게 됐느냐 하면 모두 말하기를 `야. 사람들아 너거 마누라를 예수 믿구로  교회 보낼라면 ○○교회로 보내라. ○○교회가 제일 깨끗하고 옳다 좋다'이래  가지고 그때 자꾸 생기가 다 났었는데 그때가 뭐이냐 하면 ○○○목사가 자기  마누라 잘난 것 자랑하다가 코가 납작해 가지고 나중에 그만 죽어 가. 이라다가  또 새로 용기를 내가지고 그때 `담대히 일하라' 담대히 일해 가지고 어째 그래  됐습니다.

이랬는데, 오라 했어. 내가 물어 봤어. `그러면, 너거 보자.' 지금 나는 먼저  주일학교를 물어요. `주일학교 요새 얼마나 되노?' `아. 예. 팔월 달에 와 가지고는  천 명 이상 모인 것이 몇 번 있었습니다.' 이래. 그거 나는 그만 어떻게 마음에  좋은지. ○○읍 교회가 주일학교 천 명 모인 것이 제가 거게 있을 때에 거게 있는  모든 반사들이 저 집회할 때 와서 은혜받고 가 가지고 그때에 천 명 이상이  모였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항상 ○○읍 교회가 그저 이백 명 삼백 명.

○○○목사님, 그 ○○읍 교회 삼백 명 주일학교 된 때 있어요? 삼백 명  미만이라. 이랬는데, 이제 교회가 두 군데나 세 군데나 이래 섰는 데 주일학교 천  명.

 마음에 어떻게 좋은지 그래 내가 물었어. `천 명. 됐어. 그라면 보자.' 슬슬  물으니까, `너거 ○○에 있었지?' 그러니까. ○○이야기를 하는데 ○○에  ○○○목사님의 동생이 그 ○○에다 교회를 세웠는데 처음에는 교회가 얼마돼도  안했는데 그 사람들이 만날 몇 돼도 안한 사람들이 밤마다 하룻밤도 그냥 있지  안하고 거기 뭐 공동 묘지가 어디 있는가 하루밤도 빠지지 않고 공동 묘지 가서  자꾸 밤새껏 기도한대요. 그저. 항상 철야고 기도라. 이라더니만 갑자기 커져  가지고 예배당도 큰 예배당 짓고 교회도 교인이 많아서 아주 큰 교회가 됐답니다.

얼마가 됐는지. ○○○목사 있소? 손 들어 봐 ○목사 세운 교회가 몇 명이나  모이는지 대강 알아요? 예? 얼마? 대략 몰라? 예? 삼천 명. 삼천 명이 모인대요.

 이라는데 `너거는 어짜노?' 이러니까 `저거도 지금' 그 뭐. 공동 묘지 안 가도  돼요. 꼭 공동 묘지 안 가도 돼. 거기는 공동 묘지 있는데, 거기도 아마 공동  묘지가 좀 가까우니까 그런가 공동 묘지 가 가지고 자꾸 뭐 저녁마다 가서  반사들이 가서 모두 기도하고 이란다고. 기도하고 이라는 데 주일학교가 천  명이라. 아마 ○○서 벌써 시금 놀랠 것입니다. 주일 학교가 천 명이 모인다  이러니까 그만 ○○읍내를 그만 아주 그만 압도 해 버렸어. 그 ○○읍에서, 뭐  그전에는 백지 지금 뭐 이단이니 뭐 욕을 했지만 천 명이 되니까 욕하던 안면  없고 푹 들어갔을 거라. 이런데. 전부 욕을 얻어 먹이기를 이거 백 목사  이단이라고 욕 얻어먹는 거 여기 전부 다 목사 전도사들이 다 욕 얻어먹게  만든다 말이오. 다 무능하니까. 이래 교회들이 벌컥벌컥 커서 올라가서 서울서도  그만 사 오천 되는 교회가 너덧 교회가 되고 이래 돼지면 누가 어디 그런 소리를  합니까? 이런데. 전부 우리가 들어서 욕을 청하고 지금 이래 하고 있는 거라.

그래서 이거 어짜든지 자꾸 기도하니까.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크신 줄 알기  때문에 부자인 줄 알기 때문에, 그분이 주셔야 되는 줄 알기 때문에 기도한다  말이오. 기도하는 그게 뭐이냐? 우리가 기도해 가지고 무슨 기도의 능력으로 뭐  한다는 그게 아니라 기도의 능력으로 우리가 자꾸 부르짖으니까,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한 것은 그것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뭐이냐 하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행위라 말이오. 하나님을 믿는 행위. 하나님의  크심을 믿는 행위, 그분이 부자인 것을 믿는 행위, 또 그분이 내게, 모든 것을  구하면 주신다는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행위. 믿음으로만 모든 게  되어집니다. 이러니까, 기도하는 그게 믿음이라. 자꾸 믿음이 되어지는 거라.

 그런데. 우리 서부 교회도 기도를 시작했는데 뭐 팔천 얼마가 등록을 하고  기도한다 하지만 기도하는 것이 좀 차차차 퇴보되지 안하냐 이래요. 산에도  가기는 가는데, 산에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알맹이 다 재 놓고 가.

기도하러 가는 사람들이 차 타다가 서로 탈라고 싸움을 하고, 싸움을 하고 또  저기서 돌아을 때도 또 한목 돌아와야 되니까 서로 탈라고 싸움 하니까 싸움하는  그게 무슨 기도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그런 짓 해요? 하나님 모르는 사이니까  아는 사람이라도 그때 그만 싸울 때 다 버려 버려. 기도한 거 톨톨 털어 버려.

그럴진대 기도한 거는 다 헛일, 또 다른 사람한테 욕 얻어먹는 거 그거는 뭐 손해.

기도하러 갈 필요가 있어야지?  또. 기도하러 가면 휴지고 뭐이고, 그 어리석게 `아, 요게 좋다. 이 자리가 좋다,  이 자리가 좋은데 이 자리 뒤에 찾을라 하면 어려울 터이니까 내가 깔고 앉았던  이 종이 쪼가리 요걸 딱 요게 돌로 딱 눌러 놓고 뒤에 어째 깔고 앉지'이래  놓으니까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거기 있습니까? 내 흩어 가지고 마구 욕을  얻어먹도록, 그렇게 하지 말아요. 이래서 어떤 사람이 떡 오니까 서부 교회. 이거  뭐 똥 눈 거는 서부 교인들이 똥 눈 거 아니냐고. 휴지가 막. 종이가 막 더럽혀진,  산을 더럽히는데 `산 더럽히는 거는 서부 교회 예수 믿는 것들이 더럽히지  안했어? 그라더라고 그래 가고 우리 반사 한 분이 그만 그 마음에 거석해서  `여보시오. 서부 교회 그라는 것 봤습니까? 이렇게 달라드니까 그 사람이 그만  미안해서 이래 말았지만 그말 한 게 똥이 더 됐어. 그 말했으면 `됐다. 어쨌든지  이랬으니까 우리가 좀 단속해 가지고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되겠다' 그런  몰랐는데 알려 주면 감사해야 될 터인데 주먹을 내대고 하니까 그 사람 이 `야.

이거 서부 교회 이 젊은 사람 하는 거 보니 깡패라. 순전히 서부 교회는  깡패로구나' 이래서 뭐 똥칠하고 똥칠을 해서 더 똥칠해. 낯빤데기에 똥칠을 더  했어.

 이래서, 어짜든지 우리가 기도하면 됩니다. 여기 교역자들 이래 모였는데  기도해요.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믿으면 기도가 필연적으로 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안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외에 더 딴걸 구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믿어다고  하는 그뿐입니다. 다른 거 아무것도 없어. 하나님은 우리 돈, 돈 드리는 거 그것도  아니야 신명기 28장에 보면 복으로 잘되지, 전부 우리는 하나님이 해 줘서 되는  걸 가리켜서 기적으로 된 다, 하나님은 또 해 주는 것은 복으로 된다 이랬어.

하나님의 기적과 복으로 돼.

엊저녁에도 어떤 사람이 와 가지고 그렇게 말해. `이제까지 속았는데 이제까지  자꾸 말을 들어도 뭐 기적이니 복이니 이랬는데 참 이거 뭐 언제 이거 꼽짝꼽작  이래 가지고 뭐이 되겠나, 하나님이 기적으로 이거 교회 도 부흥시켜 줘야 되고  하나님의 기적으로, 축복으로 이거 부자도 되게 해 줘야 되고' 그래. 그래 돼요.

하나님의 기적이 와야 얼른 부자 돼 가지고 돈 가지고 예배당도 짓고 자꾸  이렇지, 우리 분교는 스물 두 군데 인데 지금 터 산 거는 뭐 두 군데 샀는가? 두  군데 샀나요? 세 군데 샀어? 세 군데 샀는데, 집 짓는 거는 여기 허가 내가지고  한 군데 지을라 하는데 언제 스무 군데 터를 다 살라 하면 한 군데, 뭐 제법 살라  하면 그래도 한 일억 들여야 될 터이니까 그거 얼마 돼야 되겠소? 22억 돼야 돼.

또 집을 지을라 하면 일억씩이나 들여야 돼. 이러니까 언제 벌어 가지고, 내가  언제 먼저번에도 말했지만 죽자고 벌어 봤자, 하루 벌어 가지고 한 달에 오천  원씩, 먹고 살고 저금하면 얼마 됩니까 오천 원 저금하 면 일 년이면 육만 원  되나요? 오만 원씩 저금하면 얼마요? 육십만원 되지? 일 년에 육십만 원이면, 일  년에 육십만 원이면 십 년에 육백만 원 백년해야 얼마입니까? 육천만 원입니까?  아이구 백 년 살지도 못하는데 뭐 육천만 원 그런 거 가지고 언제 계산이  닿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이라야 돼. 하나님 의 축복이라야 되고, 그만 교회  부흥도 하나님의 기적이라야 돼. 어짜든지 하나님의 기적이 와 가지고 하나님이  해 주셔서 기적으로 모든 것이 되고 축복으로 모두가 되도록 이렇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요번에 거창 집회 가 가지고 오는 것도 병 나은 사람들 저 교역자들  가거든 다 기록해 내십시오. 기록해 내고. 그게 여러분들의 목회의 자본입니다.

`봐라. 아무것이도 이렇게 회개하니까 이렇게 부자 안 됐나? 이렇게 성공되지  안했나?'  이상한 말 같지만 우리 교회 어떤 학생 하나 있는데, 자꾸 에서 못 믿구로 하고  야단을 지기고 이라는데. 그래 가지고 집에 있으라 하는 것을 그만 그냥 그만 와  가지고 집회 왔었는데, 집회 와서 뭐 연보하라기를 만원 이상 하라 하기 때문에  만원을 해 놨는데 돈은 하나도 없고. 뭐 아주 거지요 부모네들은, 아버지 어머니는  그만 딴 데 돈벌러 간다고 가 버리고 집에 근근히 먹을 그저 쌀만 좀 남겨 놓고  이래 갔는데. 이걸 어떻게 할까 걱정하고 하나님께 달라고 자꾸 이렇게 기도를  하고 이라는데, 제가 사용하고 있는 서랍이 있대요, 서랍 그거는 뭐 하루 몇  번이나 자꾸 빼보는 건데 자고 나서 서랍을 빼 보니까 꼭 돈이 이만 얼마  있더래요. 이만 얼마 이만 얼마 똘똘 뭉쳐 가지고 있더래요. 그래서, 이거 어짠  돈인고, 뭐 전날도 봤고 내치 봤는데. 그걸 내가지고 연보한 거 내고 또 저 비용  내고 딱 들어맞더래요. 그거 거짓말 같지? `너희들이 성전세를 낼 때에 저 낚시를  가지고 바다에 던져라. 던지면 고기가 낚여올 터이니까 고기를 배를 쪼개면 그  입에 성전세 낼 만한 돈이 들었을 것이다 내 보니까 돈이 들었거든. 이게 뭐이냐?  우리에게 다 보이는 표적이오.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데 뭘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그런데, 우리가 이런 이치가 있어야 되지, 이런 순서가 있어야 되지. 이런  재료가 있어야 되지' 하는 그게 전부 보이는 것을 믿고 주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모든 죄악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짜든지 믿으니까 됐어. 믿으니까 뿍뿍 걸어가다가서 그만, 주님과  주님의 말씀의 권위를 이렇게 믿을 때에 됐는데 그 믿음 떡 내버리니까 그만  빠져 들어가고 말았어요. 뭐 딴거 변해졌습니까? 주님은 변하지 안했어. 말씀도  변하지 안했어. 바다도 내나 그 풍랑 그대로요. 처음에도 풍랑이 있었고, 처음에  내려 설 때도 풍랑 그 풍랑 꼭 같은 풍랑이 일었었어. 다 그래. 그랬는데 다만  변하기는 뭐이 변했느냐? 베드로가 변했어. 베드로가 변하니까 걸어가던 게 빠진  게 변했어. 베드로가 어떻게 변했어? 믿던 거 믿지 앉으니까 물 위에 걸어가던 것  빠졌다 그말이오. 믿으니까 기적이 나왔는데 이제 믿은 걸 믿음을 그만 끊어  버리고, `적게 믿는 자야' 믿음을 버려 버리고 의심하니까 기적이 그만 떨어졌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와 가지고  이루어지도록 그렇게 해 가지고, 목회도 그래 하고 사업도 그래 하고 또 모든  사건 처리도 다 그와 같이 하자 그거요. 그렇게 하는 데는 기도 가 있어야 돼요.

기도가 있는 거는. 기도함으로서 됩니까, 자, 기도함으로 됩니까? 기도는 뭣을  만드는 겁니까? 기도는 뭘 만드요? `믿음의 기도는' 이랬는데 기도는 믿음을  만드는 겁니다, 믿음 만드는 것 기도는 자꾸 내가 연습함으로 내 주관이 자꾸  믿음화 되어지도록. 나에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물을 들이는 거라.

물을 들여 자꾸 한 번으로 두 번으로 자꾸 짙어집니다. 이래 가지고 내가 믿음의  사람으로 돼지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요. 뭐 기도 안 하고도 하나님과 결합만 돼  놓으면 돼 져요. 하나님과 결합을 자꾸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결합을 자꾸  이루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 거, 자꾸 이래 하는 것은 하나님 이  기도하기 전에도 하나님이 그와 같이 보내셨으니까 해 주실 것인데 아 무래도  그게 믿어지기를 좀 덜 믿어지니까 `아. 하나님이여 도와 주옵소서. 나 혼자는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이러니까 천사를 보내, 자꾸 기도하고 나니까 이제 하나님이  나를 도와서 능히 십자가의 대속을 감당할 수 있다 하는 것이 믿어지니까 이제  그다음에는 `가자. 이제 됐다' 그거 다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의 소행.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으니까 죽은 자가 살아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어짜든지 하나님을 믿는 표시를 하면. 믿으면 믿는 표시가  있어야 돼. 믿는 표시가. 기도가 믿는 표시요. 죽음에서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표시요. 그게 뭐이냐 하면 믿음으로 그랬다 말이오,  믿음으로. 딴거 가지고 안 돼. 믿음으로. 믿음이라 말은 뭐이냐 하면 하나님과  연결을 믿음으로 만들거든 믿음으로 만드니까 하나님과 연결했다 그말이오.

연결은 믿음으로 연결해요. 믿음으로 연결한다는 것은 하나님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을 따라서 움직이면 그만 그것이 믿음이오. 그것이 하나님과 연결이라. 그  연결에는 오병 이어가 오천 명도 먹었으니까 여러분들 자본 암만 적어도 설마 뭐  한 달 먹을 양식이야 있든지 그리 아니면 돈 천 원이야 있지 그리. 천 원 그걸  가지고 이제 하나님의 기적이 오면 천 원 가지고 억억만 원의 재산도 될 수 있다  그거요. 허영이 아니고 성경이 그래 말해 놨거든. 그거 인제 언제 그것이 뭐 천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겠소 돈벌어 가지고? 암만 여러분들이 암만 뭐 한 달에  수입이 딴다 하더란대도 부산에 제일 부자도 될라면 어려울 건데 천하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다는 것이 하나만 아니라 모든 면이 다 뛰어나는데 언제 노력해  가지고 언제 공부해 가지고 되겠소? 믿음으로, 하나님이 와 해 주시면 복으로  된다 말이오 복으로. 그러므로, 어짜든지 우리가 그걸 기억하고 그대로 어쨌든  간에 시행합시다.

자, 따라합시다. 우리는! 기적으로 살자! 우리는! 축복으로 살자! 축복과 기적  가지고는 모든 거 다 할 수 있는데 축복 빼 놔 버리고 기적 빼 놔 버리고 제가  그 과학으로 보이는 것으로 '인간 이치에 이런 이런 이치가 있어야 돼지지' 이런  이런 이치가 있어야 된다고 이치 주장하고 하나님의 축복 바라지 안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치를 보고 이치를 따져서 좋은 이치 차지한 사람이 누구요? 예?  롯! 제게는 알뜰한 거 같지만 그러다가 망했어 아브라함은 조건도 다 버려 버리고  하나님의 축복 믿으니까 허무한 거 같지만 성공하지 안했습니까? 이것이  기독교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거 창조한 거 모든 걸 가만히 살펴보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피조물도 만들었고. 또  피조물 만든 것은 하나님 어떤 분이신 것을 알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어떻게 해  주시는 것을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고. 그러면 전체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리는 것과 또 하나님이 어떤 분인 걸 알고 난 다음에는 그와 같은  분으로 상대하고 바라보고 그분에게 복종하는 거 그뿐입니다. 그거 하기 위해서  자꾸 연습시키시는 것이오. 그것만 하면 다 되기 때문에.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팔천 삼백 사 명이더니만 하나 올라서 오 명이 등록하고, 기도록에 언간히 이제  언간히 등록하기는. 했는데 팔천이니까 오만여 명의 교인이 지금 나머지기는  뭐하고 이제 죽을라고 하는가 모르겠어. 그라고 기도 열심히 해요. 우리  ○○○장로님하고 ○○○장로님하고는 ○○○장로님이 있으면 뭐 틀림없이  ○○○장로님 오셨다, 또 ○○○장로님 왔으면 ○○○장로님 틀림없이 오셨다  둘이는 떨어지지 못하고 이런데 만일 떨어지는 날이면 뒤에 좀 곤란 당하지.

미리부터 함부래 떨어져요. 떨어져 가지고 독립 생활을 좀 해야 되지 자꾸 둘이  뭉쳐 돌아다니면 신앙 생활 하기에 지장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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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8절/ 1985. 9. 4.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855 참사랑/ 고린도전서 13장 1절-13절/ 1985. 9. 3.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854 참사랑/ 사도행전 20장 29절-32절/ 1985. 8. 10. 토새벽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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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 참사랑으로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장 3절-25절/ 1985. 11. 24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8
851 참사랑의 의의/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 1982. 3. 19. 금저녁 선지자 2015.12.28
850 참선 중의 회개/ 에베소서 1장 5절-14절/ 1985. 7. 16.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849 참소하는 혀/ 로마서 10장 13절-15절/ 1986. 7. 14.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848 참자랑과 어리석은 자랑/ 고린도후서 12장 5절/ 1981. 12. 1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9
847 참제사-믿음이 더해지는 방편/ 고린도전서 4장 2절/ 1981. 7. 22. 수새벽 선지자 20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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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 책망과 징계/ 히브리서 12장 5절-13절/ 1983. 9. 10.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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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 처음 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9.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841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6. 수새벽 선지자 2015.12.29
840 처음 행위와 그 효력/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5. 30. 월새벽 선지자 2015.12.29
839 처음 행위와 순서/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5. 29.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9
838 처음사랑을 7가지에서 찾으라/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7. 9. 28. 월새벽 선지자 2015.12.29
837 처음사랑-처음행위/ 요한계시록 2장 2절-5절/ 1987. 10. 5. 월새벽 선지자 201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