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자랑과 어리석은 자랑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13일 주후 

 

본문 : 고후 12: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자랑은 선전에 속한 것인데 내적으로는 자기가 그것을 아주 가치있게 생각을  하고 또 그것을 자기에게는 쓸모있는 필요한 것으로 알아 바라고 의지하고 하는  것이요, 이것을, 대외관계에 그것을 내세우고 내놔서 자기를 소개하고 선전하고  모든 상호간에 그 조화에 유익을 끌어오려고 하는 그것이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와 자기 가진 것 또 자기가 해 놓은 이력 이런 것을 사람들은 다  귀하게 평가하고 또 그것이 자기에게 참 없어서는 안 될 유일한 보배로 알고  의지하고 바라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전해서 유익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자기 선전과 자기 소유의 선전, 자기 또 행한 그 이력의 선전 이  선전으로 사는 것이 문화국들의 제 일위를 차지하고 있는 방편인 것입니다.

이래서 일반 통계가 한국 사람은 생산에 100프로를 기울이면 일본 사람은  생산에는 30프로 기울이고 선전에 70프로를 기울인다. 미국 사람들은 100프로 다  선전에다 기울인다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와 자기의 소유, 자기의 이력을 선전을 하면 현저히 유익이 옵니다. 유익이  오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고 세가 나고 또 높이 대우하고 모든 맺는 관계가  잘되고, 이러니까 이 자랑이라는 것은 선전 한가지인데 이것이 현저히 유익이  있는데 성경에서는 그것이 '어리석은 일이라, 미친 일이라, 자기에게 백해무익의  일이라, 해만 되지 유익은 없는 일이라.' 이렇게 성경에 말씀을 하셨으니까 이것  이 이해가 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말한 것이 틀렸지 하나님 말씀한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자기와 자기의 것과 자기의 행위를 자랑을 하면 현저히 유익을  얻습니다. 그러면 유익 얻는 그것이 무엇인가? 암만 얻어 봤자 그것이 다 죽은  것이요 썩은 것이요 하나님의 심판에서 정죄받을 멸망할 것들이기 때문에 멸망의  수입이나 됐고 멸망할 것들이 커지고 멸망이 많아지는 것뿐이지 실은 멸망을  벗어난 자기에게 참 유익된 면에서는 하나도 이루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것으로 인해서 죽지 아니할 것, 썩지 아니할 것, 강한 것, 영광된 것  이런 것을, 참의 것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하는 것뿐이오. 참의 것을  마련하려고 할 때에 공연히 속아서 그것이 가치있는 줄 알고 거기에 주력하다  보니까 썩은 것만 힘써 취했지 산 것은 하나도 취하지 못했으니까 인생의 영원을  놓고 계산하면 손해뿐이오.

 불택자는 물론 거기서 한번 멸망에서 원죄와 본죄로 멸망받은 데에서 다시  희망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멸망이 커지나 작으나 상관없지만, 우리 택한  자들은 멸망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방편도 있고 실력도 있는데 그런  것을 가지고 수입을 봤자 자기는 참의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뿐이기 때문에 손해지 유익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잘해 놓은 것이라도 그것을 자랑하면 큰 벌을  받습니다. 사울왕이 아말렉 족속을 토벌하라고 할 때에 다 토벌하고 아각 하나만  남아 있어도 사로잡아 가지고 왔으니까, 사로잡아 왔으니까 '죽여버리라' 하면  죽일 거라 그 말이오. 또 짐승 몇 마리를 끌고 와 봤자 그거 다 원수를 멸하고  가지고 온 것이기 때문에 그까짓 거 없애라 하면 없앨 수 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에 100프로 완전 순종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삭되지 못해서 낳은 자와 같다' 아무리 자기는 주께  충성했지만 나중에 결산을 대 보니까 너무 무지무능하고 너무 주의 뜻을 이루는  데에는 참 미달된 것뿐인 것입니다.

 이런데 사울왕이 그렇게 아말렉 족속을 전멸을 했고 또 생포로 하나 잡아 왔고  짐승 몇 마리 가져왔다고 하나님께서 그를 왕되지 못하겠다 집어 던져버린 것  아닌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12절에 보면 사울왕이 이렇게 전쟁을 해서 승리하고 난 다음에  마음이 우쭐해져서 '보라 내 용감이, 내 용력이 얼마나 위대하냐? 이 강한  나라를 다 전멸을 시켰으니 아마 하나님께서 나에게 상을 주실 것이다.'  사무엘을 만나니까 '내가 이렇게 이 큰 역사를 이루었으니까 나로 인해서 당신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 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내가 사울을 왕 세운 것을 후회한다.'  그렇게 한 것이 제 힘으로 제가 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승리의 기념비를 사무엘상  15장 12절에 보면 세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대 진노입니다.

 자기가 공로를 세웠지만 그것을 자랑할 게 아니라 실상 똑 바로 그 내부를  심사해서 보면 하나님이 열 개 하라 했으면 제가 들어서 다섯 개, 여덟 개, 일곱  개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제가, 실은 보면 저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을  할려고 하셨기 때문에 그리 된 것이지, 실은 제가 하나님 하시는 역사를 가린  것뿐이었지 제가 들어서 하나님의 일을 안 될 걸 한 그런 일이 없는 것이 인생  행위에 전부인 것입니다.

 이랬는데 '내가 이렇게 내 용감을 가지고, 내 능력을 가지고, 내 노력을 가지고  이렇게 승리했으니까 이 사울왕이 이렇게 승리했다는 승리의 기념비를 세워라.'  자기 해 놓은 이력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방해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제가 들어서, 하나님의 하지 못할 일을 제가 들어서 도와 가지고 했다고  생자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쓰시는 데에는 절대 부적합한 것입니다.

 이래서 왕이 되지 못하게 했습니다. 언제든지 그거 해 가지고 패전하면 '누구  때문에 이렇다. 하나님이 안 도와 이렇다.' 전부 패전하면 패전한 책임은 다른  이에게 돌릴 것이고 승리한 것은 전부 제가 했다고 할 그 인간이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을 써 가지고 뭐 하겠습니까? 왕권을 박탈한 것입니다. 박탈시켜 버린  것입니다.

 또 열왕기하 20장 12절 이하에 보면 앗수르 군대하고 이스라엘과 싸울 때에 -  히스기야 왕 때인데 - 이제는 다 정복을 당해서 겨우 예루살렘밖에는 안 남아서  이제는 죽을 지경인데, 이제는 한쪽머리에는 '항복을 하자' 하고 이렇게 하는  차제에 '이제는 우리가 항복을 해 봤자 안되는 것이니까 그저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죽자. 포로 돼 가 가지고 이렇게 멸망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낫지 않느냐?' 하면서 성전에 가 가지고 베옷 입고 재를 무릅쓰면서 '우리는  이제 무능해서 전멸하게 됐습니다. 주께서 도우시지 않으면 우리는 살 길이  없습니다.' 그때는 섞인 것 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는 털끝만치도 이길 만한 그런 힘이 만의 일도  없고 억만의 일도 없고 죽는 일로뿐인데 하나님이나 도우실까 다른 면에는 길이  없다고 이렇게 그런 사람이 되어 가지고 하나님 앞에 상대를 했을 때에 하나님이  그들의 그 전투를 통해서 하면 또 시험들 것이기 때문에 손도 대지 아니하고  18만 5천을 다 시체화시켜서 이기게 했습니다.

 이기고 나니까 이 군대들이 있다가 '우리가 공연히 겁을 냈구만요. 그까짓 것  와 가지고 그만 기절해서 다 저거 바람에 놀래서 기절해서 다 꺼꾸러지는 그걸  우리가 그랬다.'고 '하, 우리가 만일 이런 무기를 한번 썼더라면 그 뭐 앗수르  군대 그거는 뼈도 안 남고 먼지도 안 남았을 것이라'고. '아, 또 우리 대장 어떤  분이 공연히 떨었지 나가 가지고 한번 내 둘렀더라면 참 굉장하게 멀리 이겼을  것인데.

 이것들이 이제 전쟁할 때에는 꼼짝도 못하고 했던 것들이 하나님께서 일해  놓으니까 공로자는 많습니다. 공로자가 많습니다. '아, 아무것이!' 이놈이 저놈  추켜 올리고 저놈이 이놈 추켜 올리고 막 이래 가지고 날뛰고 이래 가지고  '히스기야 왕이여, 우리 무기가 이 얼마나 좋습니까? 거저도 기절하는 그까짓 거  이런 무기를 한번 써 보십시오.' 무기를 자랑하고 저희들의 군력을 자랑하고  이러니까 히스기야 왕이 얼떨떨해졌다 그 말이오.

 이러고 난 다음에 이것이 하나님이 반성을 하라고 그 좀 한 번 좀 매를 주니까  죽을 뻔 하다가 살아나고 이러니까 그 외에 열방에 있는 모든 연방 나라들이  '야, 히스기야 왕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데 그와 화친을 해야 되지 안  했다가는 우리가 이제 전부가 전멸을 당하겠다.' 이러니까 사신을 보내서 여기서  저기서 사신 보내 가지고 화친을 할려고 옵니다.

 바벨론에서도 그 큰 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가지고 화친해 오니까 히스기야 왕이  척 자랑을 하기를 말이오. 하도 군대들이 그래 쌓고 하니까 '참 우리가  막강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역사한 것은 그만 잊어버리고 멸시를 하고  '그래 우리 무기가 참 얼마나 좋으나, 아무 것이 아무 대장은 솜씨가 어떻노!'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하나님 한 분이 하신 것이 분명 하건만 그 전쟁을  승리케 하신 하나님은 다 잊어버려 버리고 그 앞에 나서서 우쭐거리는 그 자들만  이렇게 인정해서 바벨론 사자가 오니까 '와 보라. 우리 창고를 보라. 무기를  보라. 우리 씩씩한 군대를 보라. 이 보물창고를 봐라. 기절할 만하지 않는가!'  이러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보내 가지고 말씀하시기를 '가서  말해라. 히스기야 왕이 나는 잊어 버리고 그 행세 했으니 이제는 내가 손을  떼겠다. 제가 구경시킨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전부 바벨론으로 다 취해 갈  것이고 제 아들은 그곳에 사로 잡혀 가 가지고 비참하게 되고 모든 백성도 다  사로잡혀 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만이라고, 하나님만이 내게 힘이 되고 지혜가 되고 나를 살리지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내게 도울 것도 나를 구출할 것도 없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일을 해 주실 수 있어서 이렇게 신기한 역사를 했는데,  자기들에게 있는 것 '아, 이거는 참 가치있다. 이 무기는 가치있다. 이 무기로  한번 싸웠더라면 큰일날 뻔 안 했나? 그것들 아마 전멸될 것이다.' 거기  자기들에게 있는 무기, 군인, 장교 이것을 아주 가치있게 여겨 그걸 바라보고  의지하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 턱 내놓은 그것으로 그 나라가 전멸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자랑하는 것, 자기 공로를 자랑하는 것이 이렇게 패망의 원인인  줄 모르고 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랑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 그거  자랑하면 수입 있습니다. 무슨 수입? 있어 봤자 도살의 날에 살 찌울 것뿐이오.

도살의 날에 살 찌울 것, 소가 제가 아무리 살쪄 봤자 푸줏간에 가 가지고  잡으면 고기 주인에게 유익되지 제게 유익될 게 뭐 있겠습니까? 도살의 날에 살  찌우는 것, 멸망시키는 멸망 덩어리만 그것이 커지지. 인간이 불택자라도 자기  자랑, 자기 공로 자랑해 가지고 그것이 멸망 뭉텅이만 커졌지 자기에게 유익될  것은 하나도 생겨지지 않고, 택자는 유익될 것을 그것하고 바꿔서 그것으로  인해서 공연히 알속있는 것 마련할 수 있는 기회도, 힘도, 노력도, 연구도,  지혜도 다 어리석게 멸망하는 데로 바꿔 버렸기 때문에 멸망인 것입니다.

 또 사무엘상 24장 1절로 16절에 보면, 블레셋하고 이 다윗하고 싸울 때에  그들이 패망하게 돼서 이제는 갈 길을 못 찾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이제  아무래도 이 전쟁을 이기지 못 하겠다' 하면서 부르짖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러면  내가 너희들을 도울 터이니까 안심하고 가서 싸워라.' 싸워 가지고 블레셋  군대를 쳐서 멸한 군대 장관이 37인이었습니다.

 어떻게 강하게 싸웠든지 거기에 보면 이 칼을 손으로 쥐고 싸웠는데 그만  손하고 칼자루하고 하나가 됐습니다. 뗄래야 뗄 수가 없어. 얼마나 그 마음을  돋구어 가지고 싸웠든지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 또 그와 싸우는 그 다음 사람이  이렇게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워 가지고 이겼다 그거요. 이러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붙여서 그렇지, 과거에도 내나 그 군대들이지만 하나님이 붙이지  않으니까 저희들이 패망해서 희망이 없었는데, '이제는 안됐다. 우리는 이제는  패전할 수밖에 없고, 종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안 된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가서 싸워라. 내가 그들을 너거 손에 붙이리라.'  이러시니까 그 장관들이 생명을 아끼지 않고 용감스럽게 싸우는 것도, 싸우는  힘이 난 것도, 모든 승리한 것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힘을 주어 용감스럽게  싸우게 한 것도 원수를 무능하게 한 것도, 패전케 한 것도, 승리케 한 것도  하나님이 그것들을 도구로 기계로 써 가지고 그래 했지 그거 없어도 앗수르의  18만 5천명도 손 안 대고 다 시체가 돼 버렸는데 하나님이 하실려면 뭐 어려울  게 뭐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혼자 하시면서 공연히 그것들을 사이에 끼워  놓고 그것들이 하는 척으로 이렇게 떡 하시니까 다윗왕은 '아니야. 우리 군대들,  참 우리 장병들 강하다. 우리 군력이 강하다. 우리 군력으로 이긴다. 강하다!'  하나님 혼자 도우셔서 된다는 것은 차차 차차 다윗왕의 머리에서 사라지고  군대장관들이 잘 싸운다는 그것만 머리에 전부 짙어지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삐꾸셨다 말이오. 하나님이 노하셨다.

 하나님이 노하셔서 '다윗아, 이놈아 네가 그렇게 배신을 하고 어리석게, 좀  전에 절단난 것을 내가 붙이겠다 하고 그랬는데 이제 나는 잊어버리고 그것이 뭐  한다고 하니' 이놈을 단단히 멸망을 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다윗아, 네 나라에  장병들이 얼마나 있는고 그 계수를 해라' 하나님이 계수하랍니다.

 그럴 때에 그 부하들 보고 '이거 계수를 해라' 이러니까 요압이라는 대장이  있다 말하기를, '왕이여, 우리는 하나님 한 분이면 군대야 없어도 있어도 당신이  같이 하시면 문제가 없고 군대가 암만 많은들 당신이 함께 안하면 무슨  소용있습니까? 왜 왕이여 이 뭐 장병들의 숫자를 헤아리려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이 어쩐 일입니까?' '안돼! 빨리 헤아려.' 이러니까 어쩔 수 없어  명령 받아 가지고 그 수를 다 헤어 가지고 보고를 했습니다. 보고를 하고 나니까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의 망령된 것을 깨닫게 합니다. 선지자를 보내 가지고,  나단 선지자를 보내 가지고 '왕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죄를 범하였  사온즉 하나님이 명하시는 벌이 세 가지 있는데 어떤 벌을 취할랍니까? 마음대로  취하십시오. 7년 흉년을 겪을 것입니까, 7년동안 흉년을 당할 것입니까, 3개월  원수에게 쫓겨서 도망을 하고 돌아다닐 것입니까, 3일 동안 이 민족에게 온역에  질병이 오도록 할렵니까? 세 가지 중에 어느 것이든지 취할 대로 취하십시오.'  그때 취할 때에 그래도 자신이 석달동안 쫓겨 도망치는 그것을, 자기가 그렇게  했으니까 그걸 취했으면 될 건데 자기에게 가장 가벼운 것 '온역 사흘을 그러면  내가 치르겠습니다.' 그때 온역에 죽은 사람 숫자가 얼마입니까? 7만명입니다.

7만명. 7만명이 그 온역에서 죽었습니다.

 그 뭣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계수를 하라고 해놓고 계수했는데 뭣 때문에  7만명을 죽이는, 그 양민 7만명을 죽이는 그 큰 벌을 받았습니까? 그것이 하나님  한 분만이 자기의 힘이요, 자기의 가치요, 자기의 능력이요, 자기의 승리라.

이런데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힘이라, 가치라,  능력이라, 안보라 이렇게 생각하는 그 일에 하나님께서 노하시고 삐꿔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 벌이 잠깐동안 그 생각을 가졌는데 7만명이  그 벌로 죽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보면 개역 번역 여기는 '그런고로 선 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래 왔는데 구역에는 그런고로는 없고 '스스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번역이  옳습니다.

 이래서 내가 여기 성경 파는 무슨 서점이더라? 거기다 전화를 해 가지고, 하도  이 번역이 다 지금 틀려버리고 이래서 그전 번역이 있는 그것을 열 권만 구해서  달라고 이러니까 '집에는 없습니다.' 그러면 서울 가서 구해 보겠다고 서울 가  돌아다녀 봐도 한 권도 없어. 성경도 점점 지금 타락의 번역으로 가 가지고 이  성경 봐 가지고 뭐인지 모르도록, 이제 천주교하고 개혁교하고 한데 합동번역을  해 가지고 더 모르게 됩니다.

 스스로,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세우셔서 세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제가 제 힘으로 선 줄 아는 그것은 반드시 넘어지게 됩니다. 불택자들은  자랑하는, 헛된 어리석은 자랑하는 것으로서, 자기와 자기의 소유와 공적을  자랑함으로 죽을 것을 죽을 뭉텅이가 더 커지게 되고, 택한 자들은 이것을  자랑하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지고 그러므로  하나님이 같이 하지 않고 원수의 손에 붙이니까 전체가 패전입니다. 또 이것을  바라보고 의지하니까 하는 것만치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근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에 손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끌어올 수 있는  믿음에 손해, 원수에게 붙이시니 손해, 그러기에 자기에게 있는 것도 그러하고  자기가 공로를 세워 놓은 그것도 그러합니다.

 그 공로를 똑똑히 분석하면 하나님이 열 개를 하게 했는데 인간이 열 개 한  사람이 없습니다. 막대기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데, 모세의 지팡이  가지고 하나님이 홍해도 갈라트렸는데, 오만 기적을 행했는데, 막대기로도  하나님의 하실 일을 할 수 있는데 하필 저에게, 저를 통해서 하나님이 그 일을  하게 하셨으니 그것이 큰 사랑의 은혜요, 또 저를 통해서 할 때에 제가 얼마나  방해한 것을 생각해 보면 방해자뿐이요 대적뿐인데 오래 참으심에 대해서 감사할  것뿐이요, 또 자기에게 썩고 죽고 약한 것, 썩은 것 죽은 것 약한 것 추한 것  혈육의 것 이것이 다 사망과 저주 아래 있는 것인데, 사망과 저주 아래 있는  것인데 이것을 하나님께서 이 사망의 모든 것을 다 처단하고 생명에게 삼킨바  되도록, 생명의 것이 되도록, 생명에게 접이 붙여지도록, 생명의 것이  되어지도록. 마치 죽은 고기를 산 사람이 먹으면 그것이 산 피와 살이 되는  것처럼 이 썩은 것이 하나님과 진리에게 이용되고 삼켜지고 그에게 소속해서  그에게 쓰여지는 그의 것이 되면 살아나는 것이니까 이렇게 감사해야 될 터인데  도리어 자기의 공로로 자기 힘으로 뭐이 됐다고 생각하는 자는 그다음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고 반드시 넘어집니다. '스스로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라' 안 넘어진다 그 말이오. 넘어지니까, 넘어지니까 넘어질 줄  알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자기와 자기에게 있는 것 이것이 만의 일이라도, 만의 일이라도  그것만으로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저주입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억만의 일도 쓸모는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연결해서 붙들지 않으면 그것 찍해야 사망 이루는 것뿐이요,  불택자의 수가 택자보다도 얼마나 많지만 그 불택자들의 모든 그 별별 용사,  영웅, 의지, 도덕가 그런 사람들이 산 그 생애가 전부 멸망뿐이지 구원 얻은 것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붙들고 쓰실 때에 의롭게 쓰여지고 의를 이루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좋은 것을 하나님을 버려 마귀에게 붙여 놓으면 좋은 그 좋은 것  쳐놓고 자기 멸망시키지 않은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돈은 인간, 자기 돈은 돈  주인을 멸망 안 시켰습니까? 권세는 권세 주인을 멸망시키지 않았습니까? 지능은  그 지능의 주인공을 멸망 시키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하나님이  그것을 그에게 유익된 결과를 이루도록 하시면 유익이 됩니다.

 여러분들,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이 그것으로 나에게 유익되게, 필요하게,  복되게 하시면 그것온 결국은 복된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좋다고 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이 그것을 나에게 결과적으로 패망의 것이 되게  하면 패망의 것이 안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 전부로 다 패망의 결과를 맺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이 '어리석은 자랑이라' 공로를 자랑하는 것도 '내가 미친  소리한다 어리석은 소리한다. 그러나 너거가 이 복음을 인정치 않기 때문에 이  복음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없어 미친 소리한다. 내게는 손해다.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승리의 공로를 남보다도 많은 그 공로를 세운 이것을  말하는 것은 나도 사도인 것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너희들에게  증거하기 위해서 내가 말하는 것이지 이것도 미친소리다. 왜? 내가 하나님에게  실컷 방해를 지겨 놓고 내가 한 것이라 하니 하나님이 노여 워하시면  사울왕에게와 같이 나를 버릴런지 모른다. 어리석고 미친 소리요 위험천만의  소리지만 너희들 때문에 한다. 이러기 때문에, 너희 때문에 하는 이 내 마음을  주님이 다 아시기 때문에 내가 말 하는 것이다.' 말했습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내가 뭐 돈이야 얼마 있으니 이거 뭐 어떻겠다. 젊음이  있으니, 지식이 있으니, 수단이 있으니, 언변이 있으니, 뭐 지위가 있으니, 좋은  직장이 있으니' 어리석고 어리석고 참 어리석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을 때에 뭐 좋은 게 뭐 있습니까?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마귀가 같이 하니까 그것으로 자기는 망합니다.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그 더러운 것이 제일 좋은 것으로  나에게 효력을 내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랑을 하지 맙시다.

 자기가 어디까지의 충성을 하고도 찬 그것을 제가 한 줄로 알았으면 외식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다른 것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데 저를 통해서 하셔 그 일  한 가치의 영광을 저에게 주려 하니까 감사하지, 이렇게 할려고 저를 붙들고  일하시는데, 하나님이 붙들고 일하시는데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있었으면 더  효과가 났을 터인데 자기가 방해한 일이 얼마인지, 천사 같은, 천사를 붙들고  했으면 효력이 더 컸을 터인데 아무리 잘난 자라도 그 일을 가로막은 일이  얼마나 많은지?  실상의 자기를 붙들고 그 일을 하시게 된 이 사랑의 은총과 그 일을 하는 데에  실상은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가로 막았지,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됐지 자기  아니면 안될 그런 도움의 것은 하나도 없건만 이것을 저 아니면 할 수 없는  줄로, 제가 들어서 한 것같이 여겨지기 때문에 그자를 붙들고 하나님이 조그매만  나중에 길게 일 하시면 전부 한 거는 제가 다 했다 할 것이고 안된 건 하나님께  원망할 것이고 이러니까 마귀 중에 대 마귀를 만들지. 하나님 아니고 제 공적을  앞세운 것이 천사장 타락한 루스벨 천사장 타락한 그 마귀 아닙니까?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자기가 어떤 것을 가졌든지 하나님이 그것을 내게  유익되게 이용해 주시면 유익의 결과를 맺고, 하나님 이 그것을 버리시면 악령이  이용하니까 결국은 나에게 멸망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이 사실을 알아야 되고,  우리 앞에 어떻게 험하고 불행스럽고 못 쓸게 있어도 하나님이 그 일을 복되게  해 주시면 천하에 제일 불행스러운 그것이 천하에 제일 영광스러운 결과를 맺을  수가 있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어리석은 자랑 하지 맙시다.

 여기 보면 교역자들 가운데도 아주 참 있으면서 그것이 실상 그것만으로서는  효력이 없고 하나님이 그걸 붙들고 써야 효력이 있고 붙들고 쓴다고 해도 그것이  방해나 지기지 그거 아니면 못한다는, 엿새동안에 모든 걸 창조하신 분이 그거  없다고 못하겠습니까?  이러기에 자기를 부인하는 그자에게 하나님이 같이 하실 수가 있지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있다고 인정하는 그것이, 부자가 천국 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 나가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고 말한 것이 많다고 부자가 아니오. 그것을 가치로 여겨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그거는 가치있는 일만 할  수 있다 하는 그 생각을 가진 그것이 전부 부자입니다.

 가진 이것이 많든지 적든지 하나님이 복되게 하시면 이거는 복된 이용물이 되고  하나님이 버리시면 화의 이용물이 건다는 것, 또 그것만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하나님 붙들고 써줘 봤자 내가 아니면 안 되겠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쓰시는데 제가 방해나 했지 유익된 게 없다는 것, 유익될 수 없다는  것,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복되게 하실라고 선택하셨다는 것, 이러고 감사와  겸손으로 하나님 앞에 방해한 그런 거나 찾아서 회개해야 될 터인데 거꾸로 헛된  자랑을 하니 이런 자랑은 다 악에서 나온 것이요 어리석은 자랑입니다.

 참된 자랑, '내가 14년 전에 3층천에 끌려온 그 사람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하는 것을 말할 때에 세상은 완전히 떠난 사람입니다. 세상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과 관련없는 사람,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되고  진리와 성령으로 성화된 것, 땅의 것과 영과 연결이 없고 땅의 것과 연결이 없는  순전한 진리와 성령으로 된 새사람, '새사람 그것만 나는 자랑하겠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하나되어 있는 그것이기 때문에 완전이요, 영원이요,  불변이요, 전능이요, 전지요, 만물의 중보될 수 있는 존재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 안에 가치로 여길 것은 진리와 성령과 내게 있는 요소가 하나 되어서  중생되고 성화되어 이것은 세상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세상에는 끝장난 자요  하나님과 진리와 성령으로 하나 된 이 새것, 새로 지음받은 새것 이것만이  가치요, 이것만이 실력이요, 이것만이 어디든지 자랑할 것들이라. 왜? 그것은  하나님과 진리가 죽은 것을 이렇게 성화시키시니까 하나님의 사랑 자랑이요,  능력 자랑이지. 하나님 역사 자랑이지. 그것을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것만을 가치로 삼고 내게 그것만 가치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완전히  새로 된 것 그것만 가치입니다. 그것만 영생합니다. 그것만 실력있는 자입니다.

얼마나 실력있소? 전능자라, 전지자라. 왜?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으로 인하여만, 인해서만 동하고 정하니까 그건 전지자이지  전능자이지 완전자이지.

 시편에 다윗이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는 주 앞에 완전자입니다. 흠이 없습니다.

나를 살펴 보십시오. 책망할 게 있는가? 책망할 게 없습니다.' 다윗이 자기는  죄인 중에 그 모태 중 모태에서부터 죄에서 났다고 하는 그분이 이렇게 자랑한  그것을 시편 해석에 난제가 돼 있습니다.

 이래서 모두 시편 해석가들이 말하기를 '인간적으로 말하면 완전자라는 말이지.

어떤 자는 속에 중심은 그렇다는 말이지.' 아니오! '14년 전에 그 사람을 나는  자랑하겠으나 내게 대해서는 자랑한다면 약한 것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  바울은 자기가 자기 한 사람에게 두 사람을 딱 갈라놓고 언제든지 살았습니다.

이 사람은 완전자요 이 사람은 죽어야 될 자요 흉측한 자라. 우리가 참된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공로, 예수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성령과 진리,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이 너희들에게 이 구원을 준다  말씀하신 그대로 예수님의 공로와 진리와 성령과 이 셋으로 인하여서 이루어진  자기, 이 사람만을 자랑하고 이 사람만을 인정하고 이 사람만을 내 세우고 이  사람에게만 소망을 둬야 하는 것이지 그게 되지 못하고 아직까지 사망 아래 있고  저주 아래 있고 정죄 아래에 있고, 이대로면 다 멸망 할 것들인데 이 안에 있는  그것을 가치로 여기니 불쌍타 그 말이오. 그것을 가치로 여기니.

 그것은 가치로 여길 것은 하나도 없고, 희망은 가졌으니, 무슨 희망을  가졌는가? 그것은 썩은 것인데 썩지 아니할 것이, 예수님의 공로로 썩지 아니할  것이 될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죽은 것인데 죽지 아니할 것이 될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약한 것인데 강한 것이 될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욕된  것인데 영광스러운 것이 될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혈육의 것인데  신령한 것이 될 수 있는 희망이 있으니까, 희망성은 있지마는 그것만으로서 무슨  가치가 뭐 있습니까, 있기를?

 고린도전서 3장 21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왜 사람을 자랑하지 마? 여기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하는  이 말씀에는 사람은 사람만으로는 자랑하지 말아라. 이 자연인으로서는 자랑하지  말아라. 이 자연인에게 가공이 돼야 된다. 가공이 돼야 된다. 거기에 가공품이  돼야 된다.

 가공이 되어야 된다. 어떻게 가공이 돼야 되느냐? 가공이 되면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네가, 인간이 그리스도의 것이 될 때에 그 인간은 하나님 다음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 인간이 그리스도의 것이 되지 않는 그것은 천하를  차지해도 아무 가치없다. 멸망 뭉텅이뿐이지 아무 가치없다.

 사람만으로 가치로 여기지 말아라. 사람만으로 가치로 여기지 말아라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것이 100분지 1이 됐으면 100분지 1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공이 됐다.

그 사람의 100분의 100이 다 그리스도의 것이 됐다면 모든 피조물은 다 그의  것이 됐다 그 위에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없다. 그리스도 하나님 한 분 왹에는  없다 이것이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지극히 큰  역사입니다.

 이러기에 내가 내게 대해서는 자랑한다면 병든 것밖에는, '이거 병 들었소 끙끙  앓는 이거 병들었소. 이거 약합니다. 이거 죽습니다. 이거 썩습니다. 이거  절단납니다. 이거 무지합니다. 무능합니다.' 이것을 제가, 자기에게 있는 약한  것을 자랑한다 그 말은 자기에게 무지 무능,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는 가련하고  비참한 이것인 것을, 이렇게 가치가 참 전혀 없는, 아무 희망이 없는, 가치없는,  쓸모없는, 무지무능한 이것인 것을 알고 이 자를 내세워서 이런 자를 이런 자인  것을 알고 이런 자로 나타낼 때에, 나타낼 때에, 이런 자로 알고 이런 자로  나타낼 때에 이것을 버리기 전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지를 못합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에서  온전해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게  약한 것, 어리석은 것, 못쓸 것, 병든 것, 저주와 사망의 것 이것을 자기가  인식하고, 이것을 자기가 인식하고 완전자 그의 것으로, 이렇게 이것을 인식하고  완전자 그의 것을 바라보고 그의 것으로 자기에게 채워 주기를 원하는 이것이  끊겨지기 전에는 그 능력은 떠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면에 무한한 그 능력과 은총을 내게서 떠나지 못하게 붙드는  방편이 이것입니다. '주여, 나는 무지합니다.' '이것도 몰라!' '아, 그것도  모릅니다.' '이것도 못해?' '그것도 못합니다.

 당신이 알게 해 주시면 내가 압니다. 당신이 하게 해 주시면 나는 합니다.

당신이 내 전부요 당신이면 다 되지만 당신 떠나면 내게는 사망뿐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가지는 이 자랑이 참된 자랑이요 지혜있는  자랑입니다.

 자기를 전적 부인하는 그것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죄 짓는 것이야 있는지  거기에 대해 부인 아니지. 이렇지만 생명과 신령에 속한 것은, 생명과 신령에  속한 참 자기에게 유익된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만으로는 털끝만치도 할 실력이  없소. 털끝만한 것도 못해. 먼지만한 효력도 없어. 자기만은 먼지만한 효력도  없어. 이런 자인데 주님이 오셔서 역사하시면 안될 것 없어. 이것이 주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비밀이요 비결입니다.

 우리와 약속하셨기 때문에 '나는 이런 병이 있습니다. 치료해 주십시오.' 할  때에 의원되신 주님은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이런 무능자인 줄로 입술로 할 게  아니라 진정 무능자인 것을 알고 무능자로 주님에게 '주님의 능력을 주십시오.'  할 때에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이렇게 실패밖에는 못하는 실패할 자입니다.' 이것을 진정코 자기가  인정하고 주님이 오셔서 성공케 하시면 성공이 됩니다.

 주님이 나를 회개하게 하면 내가 회개되고, 주님이 의롭게 하시면 내가 의롭게  되고, 주님이 승리케 하시면 승리되고, 주님이 이 모든 걸 영광되게 하시면  영광되고, 주님이 내게 은혜로 가공하지 아니하시고 주님이 손 떼시면 내게는  사망뿐이요 멸망뿐이요 아무 것도 추호의 가치도 없습니다. 이렇게 없는 줄로만  알고 있으면 가룟 유다의 후회와 같은 낙망의 사망으로서 하나님은 뒤로 물러가  일할 수 없고, 이런 자인데 '당신이 오시면 죽은 것이 살아나고, 무능이  유능되고, 약한 것이 강하게 되고, 패전자가 승리되고,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는 것을 내가 믿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소망하고, 이 부인과 주님을 소망하는 이 소망이 자기  현실에 확고할 때에 하나님은 거기서 일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약한 것을 입술로 자랑하지 정말로 약한 것을 자랑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랑의 반대자인데, 자기에게 있는 것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가치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부정하는 그것이 자기의 못쓸  것 자랑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못쓸 것 약한 것.

 그런고로 어리석은 자랑, 참된 자랑, 지 있는 희망이 무한한 자랑 이것을  우리가 구별해서 매일 생활이 이대로 우리가 돼 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랑을 하지 맙시다. 약한 것을 자랑하되 진실되이 약한 것을  자랑합시다. 참 자랑할 것은 하나님과 진리와 피로 새로 지음받은 이것만  자랑해야 됩니다. 이것만 가치로 인정해야 되고 이것만 바라보고 이것만  의지하고 이것만을 내놔야 되지 그 외에 딴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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