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랑

 

1988. 4. 9. 토새벽

 

본문 :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우리가 세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계속 기도할 것을 작정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행위가 아홉 가지가 여기에 칭찬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면 이 한 가지 한 가지의 생애가 얼마나 귀한 생애며 또 이  생활을 하는 데에는 힘을 많이 들인 것입니다. 힘을 많이 들여서 아주 이 생활  하느라고 힘을 많이 들였습니다.

 이런데도 주님이 그 모든 생애가 옳고 바르기는 바르지마는 시작할 때는 그것이  좋았는데 지금 결과에 와서는 주님과의 적이 되어 있는 것, 주님과 대적이 되어  있는 것, 주님이 아주 근심하시고 싫어하시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거는 뭐인고 하니 이렇게 성경대로의 행위를 할라고, 성경대로의 행위를  할라고, 또 성경대로의 수고를 할라고, 또 범사에 참고 견디고 계속을 할라고,  또 자기중심의 이 모든 행동들을 그것을 자꾸 용납지 안하고, 또 거짓  선지자들을 다 연구해서 아닌 것을 드러내고, 주님을 위해서 참고 견디고 열심  있게 이래 일한 그 일을 그만 하다가 보니까, 하다 보니까, 차차 차차 그 일에  만 가치성을 두고서 그 일만이 가치있다고 생각하고 그 일에 주력하고  열심하다가 보니까 그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속하신 그 구속을 잊어  버렸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잊어 버렸습니다.

 주님과 우리와의 연결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내가 하나씩 둘씩  자꾸 이렇게 성경에서 찾아서 첫째는 알고 또 주님의 사랑을 내가 의심없이  확실히 믿고,  이라면 우리에게 그 결과가 주님의 사랑을 참 알고 인정하고 믿고 내가 바로 그  주님의 사랑을 믿는지 그 표시는 뭐인고 하니 우리 마음이 골고루 흐뭇하고  평안함이 오고 또 기쁨이 오고 담대함이 오고 모든 염려가 다 없어지기를  어머니의 품안에 안긴 그 어린 것이 아무 염려없는 것처럼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요 또 운동이요 모두 다 조직들인 것을 깨달을 때에 자기에게는  기쁨과 평안과 담력과 만족이 우리에게 와지는 것인데 그것이 생겨지도록,  그게 생겨지지 않은 것은 주님의 사랑을 자기가 깊이 생각지를 못했고 믿지를  못해 그런 것이지 주님의 사랑을 알고 깨닫고 믿는 것만치 우리에게 맺어지는  열매는 기쁨과 평안과 담대와 안심이 만족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근심을 가지고서 주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기도를  하다가 보니까 나중에는 그만 기쁘고 즐겁고 만족하고 담대하고 평안한 것으로  그렇게 돌변되는 것을 우리가 많이 봅니다.

 사람들이 이 산에나 이런 데 기도하러 가서 처음에는 아주 불안하고 무섭고  이러다가 잠깐 기도하는 가운데에서 말할 수 없는 그 평안한 곳이요 만족하는  곳이요 조금도 염려 없는. 그 참 아이가 어머니의, 그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품안에 있는 거와 같은 그런 돌변적인 평안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또, 그뿐 아니고 자기가 무슨 어려움을 닥쳐 가지고서 참 자살을 할라고 할  만치 그렇게 되는 그런 사람들도 갑자기 만족과 기쁨과 평안에 그 염려 없는  그런 사람이 됩니다.

 사람들의 그 전기를 더러 읽어 보면 그 사람이 자기에게 부딪힌 일이 너무도  어려워서 그 일을 인해서 그만 자살을 할라고 그렇게 기차 레일 위에  드러누웠다가 또 어떤 사람은 그만 배타고 나가다가서 바다에서 빠질라고서  죽을라고서 이렇게 보트를 타고 나가다가 그런 사람들 종종 있습니다. 이래도 그  사람이 그렇게 하던 그 순간에 돌변이 돼서 모든 근심 걱정 하나도 없는 기쁨과  즐거운 그 평안하고 담대하고 모든 염려가 없는 만족한 그런 사람으로 돌변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건 우리 신앙에 경험합니다.

 우리가 뭐 크고 작은 것은 다르지마는 그런 불안의 종류, 근심의 종류, 또  고통의 종류, 원망의 종류, 불평의 종류, 미움의 종류 별별일들이 다 우리에게  부딪힐 때에 그때에 머리 숙여서 주님을 생각할때에 그런 것이 갑자기 정반대의  돌변으로 미움이 사랑으로. 원망 불평이 오히려 내 잘못으로서 그렇게 돌변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건 다 뭐이냐? 그럴 때에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가  생각하고 연구하고 믿을 때에 우리에게는 그런 돌변의 천국이 이루어지고 참  정상적인 그 자기로 변화되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래서, 이 에베소 교회가 주를 위해서 살기를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부탁과 또  주님의 이 복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이 일을 하느라고 이렇게 저렇게  모든 신앙생활에 전면적으로 힘을 쓰다 보니까 그만 그 힘을 쓰다 보니까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렸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다만 주님을 사랑함으로 지켜야 될 그 도리와 계명  거기에만 주력을 해서 하기는 했는데 주님이 여기에 대해서 평가하시기를 ‘네가  어데서 떨어진 것을 알라’ 그러면 주님과의 아무 상관없다는 것을 냉정스럽게  말씀했습니다. ‘어데서 떨어진 것을 알라’ 만일 네가 회개하면 그대로 둬두고  회개치 안하면 없애 버리겠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신앙생활은 제일 중요한 것이 뭐이냐 하면 주님의 사랑을  연구해 가지고서 주님이 나를 사랑한 사랑을 자꾸 그것을 연구합니다.

 그러면, 어떤 면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공간면에도,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을  공간면으로도 생각해 보고 또 그 시간면으로도, 그러면 어째 급할 때는 안  사랑하시는가? 내가 바다 가운데 빠졌을 때는 안 사랑하는가? 내가 어떤  급변적인 무슨 역경을 닥칠 때는 안 사랑하는가?  그분이 시간적으로 빈틈이 없이 계속 사랑한다는 것을 자기가 자꾸 연구하고  공간적으로도 그분이 뭐 어데 참 송곳 끄트머리 꽂을 만한 그런 면적도 당신이  나를 간섭지 안하는 일이 없고 공간적으로도 전면으로, 시간적으로도 전면으로,  사건적에는 그라면 어떤 사건에는 사랑하고 어떤 사건에는 내몰라라 하는가?  그렇지도 않고,  주님의 사랑을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또  종별적으로나 사건적으로나 어데서든지 당신의 사랑이 그 속속들이 깊이 넓이  세밀하게, 사랑하는 그걸 자꾸 자기가 알면, 주님의 사랑을 고 면에 주님의  사랑을 알고 믿을 때에 그 면의 것은 평강이 옵니다.

 이러니까, 예를 들어서 만일 한 열 가지 각도 열 가지 면이라 하면은 열 가지  면에 한 가지 면에 대해서 주님의 사랑이 거기에 나와 함께 하는걸 깨달으면 고  면에는 지옥이 없어져 버려. 고 면에는 모든 사망이나 근심이나 걱정이나  불안이나 고통이 없어집니다. 또 고 다음 면, 만일 열 가지 면을 다 가서  연구해서 주님의 사랑이 나를 어떻게 하고 계신다는 것, 그분이 전지 전능자  완전자이신 데 이것을 깨달을 때에 열 면이 다 없어지고.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사랑을 연구해서 그 사랑에 넓이가 얼마나 넓은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자기의 평안이 넓습니다. 기쁨도 넓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거는 그거 참 좁기가 꿀밤 딱쟁이 하나만 밖에는 못합니다.

고 기쁨이라 하는 고 기쁨을 요런 것만 있으면 그 기쁨이 없어져 버립니다. 또  조런 충격만 해도 그만 절단 나 버립니다. 고 기쁨이라는 것이 그저 꼭 염생이,  염소, 염소 그 발바닥만치, 염소 발자국만이 그만치 좁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자꾸 연구함에 따리서 자기의 그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또 자기의 평안이 넓어지고 자기의 희망이 넓어지고 모든 게 자꾸  넓어집니다. 사람이 커집니다.

 이래서, 우리 기독자들이, 어떤 사람은 돈이 있어서 돈으로 가지고서 자기의  평안과 기쁨과 담력을 만들라고 안심을 만들라고 하지마는 그건 철이 없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걸로 만들어 봤자 다른 문제 하나만 생각해 보면 그 까짓  거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이 시간에는 이 자리에서는 필요 하지만 저 자리 가면 필요가 없습니다. 이  시간에는 필요 하지만 저 시간에는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이면에는 돈 가지고  되지만 저 면에는 돈 가지고 안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돈이나 물질이나 또 인간의 그 권리 있는 사람으로서 자기의  어떻게 한다 하는 그런 것도 뭐 아주 그거 범위가 좁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눈이 시야가 넓기 때문에 그런 것이 위로나  평강이 안 됩니다.

 요새 그 신문에 O 씨라고서 뭐 경제 문제에 대해서 많이 떠들어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그분이 그 O 대통령이 있을 때는 그만하면 뭐 넉넉한 줄 알았지마는  그이의 그 뭐 힘이라 하는 것이 ‘이것이 시간적으로 몇 해만 되면 없어진다. 또  이거 공간적으로도 여기에는 그렇지만 다른 국경만 넘어가면 그 나라에서는  그렇게 여겨 주지를 안한다.’ 이거, 이러니까 그런 것을 좀 눈이 넓어서  알았다면은 그거 의지하지를 못할 것이요 바라보지를 못할 것이요 맡길 만한  것이 안되는 것이요 자기의 배경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알지마는 눈이 좁기  때문에, 보는 면이 좁기 때문에 그런 걸 모른다 그말이오.

 우리는 자꾸 성경을 연구해서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데 어데까지 사랑하는가? 그  사랑의 넓이와 또 어데까지 세밀히 사랑하는 그 사랑의 깊이를 그 사랑이 그라면  어데까지 존귀하게 사랑하는가? 그분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하나님으로 더불어  밀접한 관계를 가져서 영원히 하나님과 한 몸같은 이런 밀접한 관계를  만들기까지 사랑하신 그분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길이 또 세밀 또  그분의 사랑의 세력, 어떤 거는 사랑해 봤자 그 세력이 없으니까 그까짓 거  사랑이 뭐 어떤 그것보다 조금 큰 것만 부딪히면 다 절단 나버리고 말지 세력이  한정이 있어.

 자기가 국내에 제일 정권 잡은 사람이 자기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세력을 크다  해도 국경만 넘어가면, 이남에서 사랑하는 그 사랑이 이북만 가면은 아무 소용  없어. 이북에 가면 그 사랑의 힘이 안 가. 우리 주님의 힘은 안 뻗치는 데가  없어. 바다 속에도 음부에도 하늘나라도 안 가는 데가 없고 미치지 못하는 데가  없어,  이러니까, 주님의 사랑을 자꾸 연구를 해서 주님의 사랑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범위를 알면, 알고 믿으면 그 자리는 천국이요 또 한층 넓이 알고 믿으면 그  자리는 천국이요 또 자기가 한 가지 알아서 믿으면 고 한 가지에게는 평안과  기쁨과 천국이오.

 이래서, 주님의 사랑을, 자꾸 연구하는 사람이 자기의 세계를 넓히는 사람이요  평강을 넓히는 사람이요 기쁨을 넓히는 사람이요 담력을 넓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돕는 자시니 사람이 어떻게 하며 세상이 어떻게  하겠는가?  이래서, 주님의 사랑을 자꾸 연구하고 연구하면 두렵기만 하지마는 날 사랑하는  그 사랑하신 것을 믿을 때에 우리에게는 평강이 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연구하고 믿을 때에 거기에서만 우리에 기쁨과 평안과 담력과 만족과 모든  온유함, 뭐 모든 것이 넉넉하니까 조급한 게 다 없어. 조급한 게 없고  경거망동할 것이 없고 놀랠 것이 없고 뭐 원망 불평할 게 없어. 사랑을 연구하면  그 모든 것이 다 그 안에 들었기 때문에.

 이래서, 주님의 사랑을 이 알고 믿고 또 그 사랑이 내게 와 가지고서 내가  깨물고 그 사랑을 내가 주님의 사랑을 믿으므로 또 그 사랑을 내가 받아 가지고  내게 사랑을 줘서 그 사랑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사랑함으로,  그러신, 주님의 사랑을 내가 알고 믿으므로 또 주님의 사랑이 내게와 가지고  내가 사랑을 가지므로, 이래 가지고 이런 거 저런 거 신앙생활을 해야 이것이  가치가 있는 것이고 있지 그게 없이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아무 가치 없는 것이라.

 이러기 때문에, 이 에베소 교회가 처음에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믿으므로  자기가 참 만족하고 훈훈한 사람이 돼 가지고서, 또 이 사랑이 자기에게  음으로써 그 감격해 가지고 이런 일 저런 일을 모두 했는데, 주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모두 이런 저런 일을 했었었는데 그만이 일을 하다가 보니까  하는 행동 거기에 다가만 자꾸 주력하고 합을 쓰고 주님의 사랑을 연구하는  것이나 깨달은 것이나 믿는 것이나 그 사랑으로 인해서 내게 미쳐지는 결과인  영향 이것은 없어졌다 말이오. 이거는 없어지고 그만 이 일에 주력하다 보니까,  이거는 잊어버리고 일만 주력하다 보니까 나중에 아무짝도 못쓸 사람 돼 버리고  주님의 그 사랑의 주님과는 저 적이 돼 버렸고 자기를 구속한 것도 다 없어졌고  강퍅한 사람만 되고 말았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처음 사랑을 잊어 버렸다. 그러면  어데서 끊어졌는가? 그러니까 그 사랑으로만, 내가 너를 사랑하는 사람으로만  연결이 되고 내 사랑을 네가 믿음으로만 연결이 되고 내 사랑을 네가 가짐으로서  내 형상이 되고 모형이 되고 나와 꼭같은 자 되어져 가지고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사랑이 연결이요 사랑이 생명인데 네가 사랑으로  인해서 일은 시작했지마는 신앙생활 하다가 보니까 그만 사랑을 잊어버렸다.

 사랑을 잊어버리고 이 월 하나 진리 하나 고수할라 하다가서, 우리도 지금  OOO교회 이라니까 이 OOO교회에 자꾸 이거 믿는 사람들을 그만 그렇게 끌고  나가고 이라니까 이 사람들을 내비 두면은 이 진리를 듣지 못하고 저거 그만  어만 데 가서 바져서 실패되게 될 터인까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사랑으로 시작했지마는 나중에 그 일을 하다 보니까 상대방에 대해서 잘못됐다  잘됐다 자꾸 시비곡직을 가리고 이라다 보니까 그만 사랑의 사람이 법의 사람이  되고 사랑의 사람이 투쟁의 사람이 되고 사랑의 사람이 의지의 사람이 되고  사랑의 사람이 아주 완강한 그런 사람이 자꾸 되어지니까 이제 하나님과는  완전히 떨어진다 그말이오.

 이래서 어데서 끊어진 것을 네가 알라. 이래서 이 일을 해야 네가 다시  살아나지 이게 없으면 너와 나와 상관없기 때문에 네게는 전부 촛대 옮기니까,  빛이 없어진다 말은 촛대를 옮기니까 빛이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그런 사람 되고 만다 그걸 가리켜서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라면서 제일 처음에 여기 말하기를 초두에 말씀하시기를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금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인간이  무엇을 한 줄 알아도 너는 찍해야 주님이 막대기를 거머좋고 홍해 바다를,  모세가 막대기를 거머쥐었는데 막대를 통해서 홍해 바다를 거석하니까 홍해  바다가 갈라졌고 또 막대기로 모든 파다를 치니까 바다가 다 모든 독수가 돼  버리고 뭐 이 막대기로도 당신이 이 붙들고 쓰실 때는 온갖 것 다 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너를 붙들고 지금, 너를 이 모든 복음 운동. 이 복음운동 한  사람 살리는 것도 우주와 영계를 다 뚜드려 뭉쳐도 한 사람을 살릴 수 없는 이  이런 고귀한 가치 있는 이 구원을 했는데 네가 한 줄 아느냐? 내가 너를 불들고  너를 통해서 했으니까 사람 보기에는 네가 한 것 같으니까 상급은 네가 받지마는  실상은 전부 내가,  막대기 그게 뭐 한 게 아니라. 막대기가 홍해 바다를 쳐서 갈라뜨린게 아니라  막대기 힘이 있는 게 아니고 막대기 힘 있는 게 아니고 내가 막대기를 통해서 내  능력이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너를 통해서 내가 모든 일을 한 것은 상급을 너  주기 위해서, 일은 내가 혼자 했는데. 이걸 네가 비밀을 모르기 때문에 네가 한  것같이 생각하니 내가 힘쓰면 되고 힘 안 쓰면 안 되니까 이거 이런 일은  투쟁해야 되겠다 이런 일은 뭐 해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한 것이지 ‘오른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별은 복음의 일하는 종들을 말합니다. 복음의 일하는  종들.

 복음의 일하는 종들을 주님이 오른손에, 오른 것은 승리를 말하는데 승리의  능력으로 붙들고 이렇게 해 가지고 모든 거 이루어 놨고. 또 그 ‘일곱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이 교회를 이렇게 다스리고 저렇게 정리하고 모두 다  정리하는 것을 내가 그걸 다 정리. 네 눈에는 보이지 않고, 정리는 네가 하는 것  같지마는 실은 네 눈에 보이지 않는 네가 그래 해서 다 정리한 것이 너로 더불어  한 것같이 이렇게 표시가 나타난 것뿐인데 네가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네게 닥쳐진 이 복음 운동에 모든 이런 일 저런 일을 할 때에 그만 나도  잊어버리고 네가 네 힘으로 하면 되는 것처럼 네가 한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고  하니 너와 나와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는 이 일이 안 된다.

일곱별도 없어지고 일곱 금촛대도 없어지고 다 없어진다.

 왜? 너와 나와의 관계의 연결은 이 사랑뿐인데 사랑을 네가 생각하고 연구하고  알고 깨닫고 믿고 인정함으로 인해서 네게 천국이 임하고 네가 변화가 되고  천국이 임하고, 천국이 네게 임하고 변화가 됨으로써 변화된 너를 통해서 내가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이 역사를 이와같이 하는 것인데 이 사랑을 주님의 사랑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주님과 끊어졌고,  이 사랑이 주님과 연결시켜서 주님과 연결된 그 연결이 네게 와가지고서 그  연결이 또 사랑을 통해서 역사하는 것인데 그 연결이 네게 왔으면은 네게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고 그 사랑의 역사가 네가 사랑하는 것 같지마는 사랑함으로  이와같이 하는 것을 네가 사랑하는 것 같지마는 주님의 사랑이 그 네게 와  가지고 역사해 가지고서 네속에 능력으로 역사해 가지고 이와같이 되는 것인데  이 비밀을 네가 모르기 때문에 헛일이다.

 이래서, 회개 안하면 촛대 옮기겠다 그말은 회개 안 하면 교회를 옮기겠다  말이요 빛을 옮기겠다 말이오. 그러면 그만 빛이 없어졌어, 촛대 옮기면 빛 없지  않습니까? 그 방안에 불을 켜니까 환하게 밝았다가서 그 등불을 이와같이 딴  데로 옮겨 버리면 깜깜해지지 안해요?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이 구원으로  말미암은 결과는 너에게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래서 참 오늘 우리가  이렇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 대해서 OOO교회가 그라고 또 저 OO교회가  또 그렇게 돼서 자기네들도 탈퇴하고 나간다 이렇게 하는데 그 마음에  안타깝기는 안타깝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분들이 이 복음을 듣지 못하게 되니까 안타까우나, 안타까우나  ‘오른손에 내가 일곱별을 붙잡고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그분이 붙들고 일하고 그분이 그 모든 걸 관리하고 섭리해 가지고서 이렇게 하는  것인데 그분이 하는 것이니까 내가 주님이 뭐할라고 저렇게 하시는 고 하고서 좀  바라보기나 하고 내가 내힘이 미치는 데까지 사랑으로 역사하는 거기에서 끝나고  말지 그 이상은 할 필요가 없다 그겁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그  다음에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한다’ 이긴다 말은 무슨 이기는 걸 말하는 것인가? 처음 사랑을 잊어 버렸는데  처음 사랑을 도로 찾아 가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기는 것은 처음 사랑을 도로 찾아 가지는 것인데 처음 사랑을 도로 찾아  가지면 네가 낙원에 살게 된다.

 그러면, 우리가 낙원 생활 하는 것도, 우리가 아무리 지옥 속에서라도 천국  생활 하는 것도, 지옥 속에서도 천국 생활 하는 그 생활은 아무리 천인 만인이  지옥 생활하고 있는 그 속에서라도 그 사람만은 혼자 천국생활 할 수 있는 그  천국이 세상에 있는 낙원인데 그 낙원 생활하는 것도 그 처음 사랑을 도로 찾은  것,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깨닫고 믿는데에서 낙원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또, 이 사랑을 네가 믿고 가졌을 때에 생명 과실을 먹게 된다 말은 생명은  하나님과 연결이 생명입니다. 과실은 결과를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돼서 하나님과 동거 동행하는 그 결과의 생활을 이룰 수가 있다 하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랑이 제일이오. 이 사랑 없으면 다 헛일이라,

 그런고로,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참 믿나 안 믿나?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지 안 믿는지 그 표는 뭐입니까? 믿는지 안 믿는지 그 표가 뭐입니까? 이  학생. 인제 공부 다했지. 덜했나? 표가 뭐이지?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믿는지 안  믿는지 그 증표는 무엇이지? 증표는 기쁨과 평안과 담력 온유, 그 낙원 생활  하는 거 말이오. 낙원 생활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증거라. 믿는  것만치 낙원이 되어지고 아무리 자기가 어떻게 뭐 한다 해도 그 사랑이 우리에게  믿어지지 안하면 낙원 없습니다. 믿어지는 증거는 뭐이냐 하면은 낙원이  이루어지면은 믿어지는 거. 낙원이 이루어지지 안하거든 내가 안 믿는 줄 알고  자꾸 믿도록 하나님께 기도하고 노력을 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이 자기와 함께 하는지 안 하는지 그 증거는 뭐입니까? 그  증거는 뭐이지? 생명 과실. 생명 과실은 주님하고 동거 동행하는 그것이 열매라  그거요. 그게 뭐이냐 하면은 내나 희생과 봉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평강은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믿을 때에 포내가 모든  것을 사랑함으로서 봉사할 때에 봉사가 본능적으로 되어지고 자연적으로 돼지고  안 하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의 본능이 둘어서 이와같이 하는 것은 희생 인데 그  희생이 되어지는 것도 사랑이라, 딴거 가지고는 안 돼요.

 그러면 내가, 내가 희생을 하는데 억지로 하는 게 아니고 안 하고는 못 견디고  하는 것이 피곤치 안하고 기쁘고 즐겁고 하고도 마음에 모자라고 불만스럽고 이  부족하다는 이게 있을 때에는 그 사랑이 내게와서 역사하는 주님과 동거해서  연결되는,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 하는 증거고 내가 어떤 가운데서라도 세상이  나를 두렵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거나 불평하게 하거나 슬프게 하거나 근심되게  하는 그것이 세상이 와서 다 할라고 달라들어 해도 하지 못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믿는 그 믿음이 내 속에 있다는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것,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아는  앎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서,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  알았다가 둘 알고 셋 알고 그라면 자라갑니까 중단됐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열을 알았는데 다시는 열 하나에 나아가지 안합니다. 그라면 그 사랑은 그대로  고정돼 있는 것입니까 자라갑니까? 자라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열을 알아서  이래 믿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다 잊어버려 버리고 다섯만 알고 믿습니다. 그러면  그 사랑이 자라갑니까 자꾸 없었져 갑니까? 작아져 간다 말이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고 믿는 믿음이 자라가고 그 사랑의 능력의  역사가 와서 내게 열매 맺는 그 결과가 자꾸 많이 생겨서 자라가고 이렇게 해  달라는 기도와 또 하나님의 사랑이 내게 와 가지고 내가 사랑의 사람으로 자꾸  변화되기를 자꾸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사람으로서 변화가 되면  그 변화된 증거는 뭐입니까? 변화된 증거는 뭐이지요? 여기에 여기 양성원 학생.

여기 안경쓴 양성원 학생.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와서 있는 그 증거는  뭐입니까? 기쁨과 뭐? 그거는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믿는 거야, 믿는 거.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 와 가지고 내가 사랑의 사랑이 된 그 증거는 증표는  뭐입니까? 증표는 뭐이지요? 증표는 뭐이야, 여기에? 증거의 표시는 뭐이냐  말이오? 희생입니다. 세, 희생.

 희생인데 억지 희생이 아니라, 내가 봤는데 늙어서 저거 집에서는 쪼그라져  가지고서 아이구 물도 떠다 달라 이거 뭐 다리가 아프다고 일어나지도 못하고 막  엉구륵을 쓰고 그래 똥 오줌도 받아 낼듯이 이라는데 그래 가지고서 저 딸네집에  가 가지고는 마구 뭐 장사입니다. 딸네집에 가 가지고는. 빨래 잇는 거 다 씻어  주고 오만 거 다 해 주고다 그래 하고도 떡 오면서 떡 와 가지고는 또 혼자  그라기를 ‘그걸 내가 해 주고 올 걸 그거 못 해 주고 와서’ 그게 사랑이라.

본능적으로 희생이라.

 그래 놓으니까 며느리가 있다가서 저 할마이는 어짜든지 딸네집에 가면 장사가  되고 우리집에 오면 그만 똥오줌을 받아내라 한다고서. 그래 놓으니까 며느리는  사랑하는 사랑이 하나도 없었다 그거요. 이러니까, 사랑의 증표는 희생이요  봉사입니다. 그게 본능적이라. 항상 주고 하고도 못다 준 것같이, 하고도 못다  한 것같이 그렇게 여겨지니까 피곤치 안해. 피곤치 아니하면 때가 되면  거두리라. 이거는 신앙생활이라 하는 게 피곤하면 그거는 가짜야.

 이러니까, 사랑을 알고 믿는 믿음을 더해 달라고 기도하고 사랑이 와서 나를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하고 그라면 기도 몇 가지입니까? 두  가지. 하나는 이 사랑이 썩으면 안 돼요. 사랑이 썩지 안하도록 사랑이 잘  보호하도록 이 사랑이 능력 있도록 해야 되는데 사랑이 썩는 것은 뭘로  썩습니까? 죄로 썩어. 사랑이 썩는 거는 죄로 썩습니다.

 그러면, 이 부모고 자녀의 그 사랑을 하다가 보니까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했지마는 그 사랑을 이래 하다 보니까 그만 자기네들 중심으로  혈육 정실로, 혈육 정실로 그만 혈육 중심으로 이래 돼 버리니까 썩어 버렸다  그말이오.

 또 남녀끼리 사랑하다가 이래 보니까 너무 사랑하다 보니까 그만 선이 넘어가  가지고 그만 이성범을 해 버리면 또 그만 썩어 버린다 그말이오.

 자기가 그거 또 민족을 사랑한다고 인류를 사랑한다고 교회를 사랑한다고 자꾸  이렇게 하다가 보니까 교회를 사랑한다고 이래 하다보니까 그만 자기 한 것같이  돼 가지고서 사랑을 잊어버리고 강퍅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과 원망 불평하는  사람이 돼 버리고 말면 또 썩어 버린다 말이오. 그러면 사랑에는 어짜든지 죄만  들어오면 썩습니다. 죄가 뭐이 죄인가? 성경 말씀을 위반하는 게 죄인데 성경  말씀 위반하는 거면 이런 위반 위반도 종류가 많은데 무슨 위반하든지 하면은  사랑은 썩어 버렵니다.

 사랑을 잘 보호할라고 하면은 어데서 사랑은 어데서 보금자리 치고 어데서  자라갑니까? 의에서 자라갑니다. 의가 어데 있는가? 의는 예수님의 대속의 이  공로가 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이 사죄, 칭의, 화친 주신 거는 의라. 이  속에서 자라가요. 의를 자기가 놓지 안해야 사랑이 자라가고 있어요.

 이 또 사랑이 능력 있게 힘있게 일하는 사랑의 능력은 어데서 나옵니다?  하나님과 연결에서 나와. 이러기 때문에 생명 과실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서 열매 맺는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짜든지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기도하고, 또 집회를 두고서  지난밤에 옥토가 될라고 했는데 길바닥이 옥토되는 그 도리를 우리가 배웠고 또  돌밭이 옥토되는 도리를 배웠고 가시덤불이 옥토되는 도리를 배웠기 때문에  얼마든지 우리는 힘을 써, 얼마나 힘을 써야 될거라. 이렇지만 모르기 때문에  힘을 쓰지 않는 거라.

 이러니까, 이렇게 복음을 듣는 사람들을 뚝 잡아매 가지고 가서 복음을 듣지  못하구로 제 사람 만들어 가지고 복음을 떼 가지고 가니까 안타깝고 기가 차기는  차지마는 잘못하면 하나님과 연결이 패어지기 때문에 사랑이 있는 데까지 하고  그 이상은 할 필요가 없어. 할 수가 없는 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집회 위해서 기도 많이 해야 됩니다. 기도하는 데는 거기 가서 은혜받아  오지 못하고 거기에 가서 찍해야 녹 벗기다 말아요. 녹 벗기다 말고 전부  와글와글한 그 돌밭, 모두가 다 길바닥, 이 덤풀밭 이런 것만 가져가니까 이거  뭐 조금 개간할라고 손대다가 말아버려. 그래 놓으니까 가야 헛일이라.’  완전히 옥토 만들어 가지고 가서 이번에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이 능력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와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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