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사랑을 7가지에서 찾으라

 

1987. 9. 28. 새벽 (월)

 

본문: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에베소 교회가 좋은 면이 많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무식한 신앙이 아니고 유식한 신앙으로서 성경 지식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신앙계, 이 교계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정평하고 정가해서 그렇게 굳게 섰습니다. 또 여게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다” 그 말은 니골라 당은 이 속화주의인데 “속화주의를 네가 미워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하는 그것을 내가 안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것이 있으니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런고로 어데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라.” 이랬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 말은 예수님의 도를 처음에 듣고 예수님의 대속에 대해서도 참 깊은 감사를 느꼈고 또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영원한 소망을 심히 기뻐했고 이리해서 예수님의 대속의 그 사랑을 깨달아 모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나 뜨거운 열심으로 신앙 생활 하는 그런 사랑이 없어졌다. 예수님의 이 구속의 도리로 인한 그 감사와 기쁨과 그 열심과 겸손의 그것이 없어졌다.

네가 다른 면은 잘 하지마는, 네가 신앙 생활 해 나오는 가운데에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네가 정확하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정평하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냉담하게 그 모든 일을 정평 정가한다. 이래서 다른 사람에게 대한 그 감찰은 네가 잘 하고 주의하나 네게 대해서는 네가 이렇게 감시하고 감찰하는 일을 네가 게을리 해서 처음에 가졌던 그 신앙 행위를 네가 버렸다. 이러기 때문에 처음 행위를 다시 가져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예수 믿으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참 어떻게 뭣이 되는 줄도 모르고 예수님의 대속을 생각하면 심히 감사하고 기쁘고 또 이 구원을 생각하면 심히 기쁘고 뭐 세상 이런 것을 다 초개와 같이 여기고 또 형제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뜨거워지고 이런데, 주님에게 대한 은혜에 대해서 주님의 그 대속의 사랑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한 것과 또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영원한 소망을 인해서 기쁜 것과 또 형제를 사랑하는 이 사랑이 뜨거워지는 이것이 다 처음에는 그 없는 사람 없고 다 있고 가졌는데 그것을 얼마 동안 신앙 생활 하는 가운데서 그것을 뺏기지 안하고 그대로 보존하면 참 연한 순같이 자꾸 무성하게 자라갈 터인데 대개는 그것을 가다가 잊버버립니다.

잊어버리고 또 거게서 어떤 사람은 반성해서 다시 회개하고 처음 그 신앙을 도로 찾고 그래 가지고 그 신앙으로 또 자라가고, 잊어버리고 찾고 잊어버리고 찾고 이렇게 하나 어떤 사람은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는 다시 찾을 줄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개는 보면 그 신앙 지도자에 따라서, 신앙 지도자가 깨어 있으면 교인들도 깨어서 처음 이 신앙 행위를 버렸으나 다시 회개하고 돌이킬 수가 있지마는 벌써 그 사자가 자면, 거게 지도자가 자면 전체가 다 졸고 깨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여게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노니” 말씀했습니다.

어제도 우리가 그 말씀을 했는데 대개는 잊어버린 자리가 어데서 잊어버렸느냐? 어제 일곱 가지 말한 거게서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신앙 생활 하는 데에 필요하기는 하지마는 필요한 그 동시에 우리가 이것을 지나치게 평가해 가지고서 그만 여기에 마음이 기울어져 가지고 이 신앙을 뺏기기가 쉽습니다.

이래서, 자기의 신앙의 그 뜨거움, 그 신앙의 간절함, 뭐 땅위에 이런 것 저런 것 다 생각도 나지도 안하고 그만 그 신앙 구원에 대해서 기쁘고 즐겁고 만족되고 이 구원에 갈급해서 다른 것은 생각도 안 나고 아무 뭐 진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예수님의 대속과 영생의 하늘나라를 생각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싶고 봉사하고 싶고 이런 좋은 깨끗한 그 신앙이 있다가 그만 그 신앙을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리고 난 다음에 다시 찾는 사람들이 신앙 생활하고, 잊어버리고 찾고 잊어버렸다가 찾고 잊어버렸다가 찾고 자꾸 잊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 찾고 하는 사람들은 그 신앙이 자라가지마는 어떤 사람은 잊어 버리고 난 다음에 다시 찾을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잊어버린 그것을 도로 찾는 데에는 어제 말한 요 일곱 가지에서 찾으면 대개 찾아집니다.

그뭐 물에 있는 물고기나 물벌레나 그런 것은 물이 없어지면 그것은 저절로 없어집니다. 물이 없어지면 저절로 없어집니다. 물벌레도 없어지고 물에 있는 뭐 좋은 고기도 나쁜 것도 다 물이 없으면 물에 속한 것은 없어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 은혜를 빼앗아가는 이 죄악이 없으면 자연히 은혜를 빼앗아가는 마귀는 굶어 죽기 때문에 도망을 칩니다. 죄가 없어지면 우리의 구원을 해칠 자가 없습니다.

그런고로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는 것을 살펴서 잘 자도록, 잠을 잘 자도록, 잘 자는 것은 그저 코를 골면서 깊이 잠 들어서 자는 것이 그것이 잘 자는 게 아니고, 잘 자는 것은 자기 구원에 손해가는 그런 잠을 다 제해버리고 자기 구원에 유익되도록 자는 그것이 잘 자는 것입니다.

자기가 열두시까지 늦게까지 있어서 구원에 손해가는 그래 자는 것을 다 없애버리고 열시든지 아홉시든지 자기 형편에 따라서 평소에 작정한 그 시간에 자고 또 깨고 싶은 시간에 깨 가지고서 자기가 첫날 첫 시간 새벽 제단을 하나님 앞에 쌓고 이렇게 하는 그런 것이 다 잘 자는 것입니다. 잘 자는 것.

잘 자는 것은 자기 구원에 해되는 것을 다 깨닫고 이것을 도말해 버리고 자기 구원에 유익이 되도록 자는 것이 잘 자는 것입니다.

또 두번째는 뭐입니까? 두번째 뭐이지요? 잘 먹는 것. 잘 먹는 것. 잘 먹는 것도 이 먹는 것으로써 구원에 손해가는 것은 제해버리는 것이, 없애버리는 것이 잘 먹는 것이고 또 구원에 유익되는 그런 먹음을 가지는 그것은 먹어야 하고, 이러니까 잘 자고 잘 먹고 또 세번째는 이제 영이 잘 먹어야 되겠습니다. 성경 이 진리를 우리가 먹습니다. 성경 진리는 인격의 양식이요 영의 양식입니다. 성경 말씀은 사람의 양식이요 또 이 물질 밥이니 하는 이런 것은 고기덩어리의 양식이요 이건 사람의 양식은 아닙니다.

“썩는 양식을” 예수님이 말씀했는데 그것은 고기덩어리 양식을 말하고 “영생토록 있을 양식이라” 말은 그 중생된 인격의 양식을 가리켜서 영생토록 있을 양식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면 영이 잘 먹고, 성경 진리를 잘 먹고, 성경 진리를 잘 먹는 것은 어떤 게 잘 먹는 것인가? 성경을 자기가 읽음으로 구원에 해되는 것 있고 성경 말씀을 자꾸 자기가 생각하고 이렇게 재독을 듣고 이람으로써 자기 구원에 손해가는 일 그것 있으니까 그런 것은 안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읽는 일에 치우쳐 가지고서 그만 그 성경을 읽음으로 자기 구원을 절단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 말은 안 하겠습니다마는 여게는 없는 사람입니다.

그 성경을 읽을라면 읽을 수 있는데 자기 직책은 하지 안하고, 자기 직책은 하지 안하고 그만, 그 직책하러 왔는데 그 직책하러 온 사람이 그 자기 직책은 하지 안하고 성경 읽는 데에 그만 몰두돼 가지고 성경만 읽습니다. 그러면 자기 직책을 안 하니까 거게서는 자기가 나가야 됩니다. 또 그렇게 하고서 성경을 읽으면 그 성경이 잘 읽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꾸 자기 욕심으로 읽기 때문에 그 성경을 읽음으로써 깨닫고 회개해지지 안하고서 자꾸 잘못해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사람이 얼마 성경 읽고 난 다음에 아주 그만 잘못 깨달아 교만해져서 나한테 왔습니다. 이 성경을 뭐 이렇습니까 이래 물어서 그걸 내가 말을 해 주니까 자꾸 묻는데, 우리 교회서 이 경비하는 거, 그때 얼 마 동안 경비했습니다. 지금도 앞으로 경비할 때가 되면 경비할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경비할 때가 안 돼서 안 합니다. 그때 경비 안 했으면 우리 예배당 이것 탔을런지 모릅니다. 다 심령이 어둡기 때문에 모릅니다. 그때 경비 안 했으면 뭣이 될런지 몰랐습니다.

경비하는 것, 하나님을 불신한다고 이랬습니다. 또 교인들 수 보고하는 것 그것 다윗이 보고해서 그 보고한 것으로써 망했는데 그게 성경적이 아니라고 그래 말합니다. 그래 내가 ‘하나님께서 계수하라는 것이 더 수가 많은데 이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러니까 그만 그것은 뭐 몰랐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 그분이 또 교학실에 가 가지고서 ‘나를 좀 성경을 가르치도록 양성원 학생들 내가 좀 성경을 가르쳤으면 잘 좀 가르칠 수 있는 그런 자신 있다’는 말 하니까 교학실장이 있다다, 자꾸 자랑을 하니까 ‘그러면 와서 가르쳐 보라’고 이런 말했더라고.

그 사람은 성경을 잘못 봐 가지고서 망한 사람 많습니다. 성경을 자꾸 공부함으로써 잘못되는 것, 어떤 게 잘못 되느냐? 성경을 지식으로 가지고 자기 복음으로 가지지 안하게 되면 그것은 그만 잘못 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어 성경 공부를 해서 성경 학교를 졸업하고 신학을 졸업하면 그 사람이 참 잘 되는 사람은 잘 되지마는 아주 못쓰게 되는 사람은 아주 못쓰게 돼 버립니다. 성경 말씀은 꼭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업신여겨서는 안 되고 이 말씀을 자기가 아는 대로는 행하지 안하면 다 사망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말씀을 아는 대로 행하려고 애를 쓰지는 안하고, 행하려고는 하지 안하고 자꾸 알려고만 해 가지고서 아는 지식을 가지고 ‘나는 이만한 지식 가졌는데 너는 지식 가졌나 안 가졌나?’ 지식 시비로써 지식을 아주 자랑하는 그런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은 그 병을 고치기가 어렵습니다.

이래서, 성경은 꼭 읽으면서 실행하면 거게 뭣이 생겨집니까? 성경을 읽고 실행하면 무슨 지식이 생겨집니까? 자기 지식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 지식과 자기 지식, 그 지식은 뭐인가? 경험의 지식이요 체험의 지식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아 보니까 체험과 경험이 나오지 살지 않는 자는 체험과 경험의 지식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 말씀만 가지고, 그것을 자기에게는 관련도 없는 걸 가지고, 그 성경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을 지금 항상 비판합니다. 그 성경으로 자기 비판할 줄 모르고 남 비판한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 사람은 남을 정죄하고 교만하고 이래 가지고 멸망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성경을 봄으로 거룩을 구별하는 것은 자기 구원에 유익이 되나 손해가 되나 해서 손해가는 것은 제하고 유익되는 건 취해야 될 거라 말이오. 또 성경을 자꾸 줄줄 그만 이래 읽어 놓으니까 뭐 깨달아지지는 안하고 입에는 있고 다 외우기는 하는데 성경에 도무지 진리는 알지 못합니다. 이러면 그 병을 또 고쳐야 됩니다.

성경을 먹는 데에도 거게서 구별해 가지고서 자기 구원에 유익된 것은 하고 유익되지 안하면 그것을 안 해야 됩니다. 그래 내가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는 좀 성경을 보지 말아라. 성경을 보지말고 좀 하나라도 실행을 하려고 한번 해 봐라’ 그런 말 내가 더러 종종 말하는 것 있습니다.

또 그리고 난 다음에는 넷째는 뭐입니까? 기도. 거게서 또 자기가 ‘내가 처음 사랑을 어데서 잊어버렸노? 내가 신앙을 어데서 뺏겼노?’ 내가 성경 보다가 신앙이 점점 생겨지는 사람 있고 성경 보다가 신앙이 점점 죽어지는 사람 있습니다.

여기 지금 연경 공부를 하는데 연경 공부함으로써 아주 못쓸 사람 된 사람들 더러 있습니다, 내가 보니까. 그 사람은 성경을 초등강도 하고 고등강도 했다 하는데 아주 사람은 그전에 성경 모를 때와 영 다른 사람 됐습니다. 아주 못쓸 사람 됐어. 이것은 성경을 알고 굽어져 놨기 때문에 이것 곧추기기 참 힘들어.

이러니까 뭐 성경 말씀 말해도 제대로의 해석을 해 가지고 ‘이렇다’ 제가 먼저 아니까 아무리 성경을 알고 자기에게 행할 것을 지도해 줘도 행하지 안하고서 도로 교만해 가지고 안 돼진다 말이오. 이 연경 공부 해 가지고 나빠진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제가 여게 처음에 그때 ○○○목사님, ○○○목사님, ○○○목사님, ○○○,○○○목사님들 그분들이 그때 전도사가 되지 안하고 집사로 있을 때에 그때에 제가, 또 어떤 사람은 전도사로 있고 어떤 사람은 그때 집사로 있을 때에 이 연경 공부를 시켰습니다. 연경 공부를 시켜 가지고서 삼학기로 졸업하게 했는데 일학기 공부하고 이학기를 공부하니까 그만 교만해 가지고서 건방져서 아무짝도 못쓰겠어. 설교는 잘하는데 사람은 못쓰겠다 말이오. 그리 되면 목회자 안 돼.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내가 문제 제목 안 줬습니다. ‘너거는 벌써 이학기 중간쯤 가니까 이렇게 교만해졌으니 너희들이 삼학기를 시키면 뒤에 고칠 수 없는 나쁜 사람 되기 때문에 다시 이 과제를 주지 않는다. 그만 중단해라.’ 하고서 그때에 그로써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중단하고 말았다가 그것이 인제 자라나와 가지고서 늘 숙제로 있던 것을 목회자 양성원이라 해 가지고서 재발한 것입니다.

이래서 “너희가 처음 사랑을 잃었다” “버렸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 하는 것은 잊어버렸다, 잊어버렸다 말인데 처음 신앙을 잊어버렸다 말이오. 처음 신앙을 어데서 잊어버렸느냐? 자는 데에서 잊어버렸습니다. 그것 찾아 봐요.

‘나는 자는 데서 내가 잊어버리지 안했나? 또 먹는 데서 잊어버리지 안했나? 내가 성경 보는 데서 잊어버리지 안했나?’ 어떤 사람은 자꾸 ‘나 지금 성경학교 갈렵니다. 어떻습니까?’ ‘너 성경학교 가면 안 된다. 너는 가지 마라.’ 성경학교 가지 말라 해도 성경학교 갈려고 자꾸 날뛰는 사람 성경학교 가 가지고서 아주 망해 버립니다.

제가 그런 사람 더러 봅니다. 그러면 말하면 아는 사람 알 겁니다. 저 서울에서 제가 집회할 때에 그때 은혜를 받아 가지고서 밤낮 사흘 동안을 그만 뭐 정신 잃다시피 그만 완전히 그 녹아 가지고서 이리 됐었습니다. 이랬는데 그 사람이 그후에 신학교 간다 해서 ‘신학교 가지 마라. 네가 신학교 가면 이제 받은 바의 은혜 다 뺏기고 말 터이니까 신학교 가지 마라.’ 하니까 ‘신학교를 가야 신앙이 더 좋아지고 훌륭해지지’ 해서 신학교 갔습니다.

신학교 가고 난 다음에는 그때 은혜 받은 그 복음은 없어져 버리고 이제 그다음에 교회 나오기는 나오지마는 뭐 그 뒤에 전도사로 이래, 여자니까 여전도사가 되고 어짜고 이래 하기는 하지마는 신앙 내음새는 한 내끼도 안 납니다. 예수 믿는 내음새는 하나도 안 나. 그 전부 인본주의 신앙만 가지고 있어.

이래서, 기도하다가 그만 처음 신앙 잊어버리는 사람, 이 산에 기도하러 가는 것도 제가 늘 말하기를 ‘기도하러 가면 거게서 자기가 하도 어리기 때문에, 기도하러 가거들랑 다른 거 생각지 말고 내가 고칠 게 뭐인가  그걸 발견해라. 재독을 들으면서 나는 고칠 게 뭐인가? 나는 행할 게 뭐인가? 그 두 가지만 발견하고 다른 것은 생각지 말아라.’ 이랬습니다.

왜? 그게 기도하러 다니는 사람, 뭐 산에 기도하러 다니고 굴에 다니고 하는 사람 쳐 놓고서 신앙 바로 가지는 사람이 별로이 없고 아무짝도 못쓸 불건전한 신비주의자, 고집쟁이가 되고 또 그것은 저만 알기 때문에 말해야 안 듣습니다.

이러니까 그런 데에서 자기가 혹 처음 사랑을 잊어버렸는지?

또 다섯째는 뭐입니까? 자기가 일하는 것. 일하는 것을 살펴서 ‘내가 일하는 여게서 혹 신앙 잊어버리지 안했나?’ 일하는 것. 자기가 뭐, 전도하는 일은 좋은 줄 알아도 전도하는 일에서도 신앙이 자라는 것도 있고 신앙이 절단나는 것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 내가 언제 어떤 사람이 말하기, 내나 우리 교회 구역장인데 누구를 데리고 자꾸 심방 간다 하기 때문에 ‘심방 가지 말아라. 그 사람 데리고 다니지 마라. 그 사람 데리고 다니는 것은 혹 한 달에 한 번이나 몇 달만에 한 번이나 데리고 가야지 그 사람을 날마다 심방하러 다니며 자꾸 데리고 다니고 이러면 나중에 가서 무슨 고장이 나느냐 하면 자기 속에 마귀가 자꾸 들어온다.

가정에 일은 못 하고 이러니까 안 갈 수 없지 또 따라가기는 가고 싶지 이래 가지고 가정이 파괴되지지 또 그 사람의 신앙이 자라지는 안하고 공연히 교만해 가지고서 아무짝도 못쓸 신앙 교만이 돼 가지고서 못쓰게 되지 나중에 방종해지지, 그것은 전도 부인도 못 하고 구역장도 못 하고 아무짝도 못쓸 사람 된다. 데리고 다니지 마라.’ 이랬어.

그런 것도 뭐 전도하는 일도 그렇고, 또 목회하는 일도 ‘너는 아직까지 목회 못 한다.’ 지금 그전에 여기 서부교회 나왔던 사람들 가운데서 ‘너는 목회 나가면 안 된다’ 하는 사람 중에 목회를 나가 가지고서 그 사람이 지금 뒤에 소식이 없습니다. 반드시 지금 비참하게 됐을 것이고 죽었을 것입니다. 아마 전라도 어디로 갔을 터인데 어떤 전도 부인하고 다시 재혼을 해 가지고 그랬는데 암만 말해야 안 들어.

전도하는 일, 교역 일 하는 일 그런 일이야 일 중에 좋은 일 아니요? 좋은 일이지마는 그 일에서 자기 망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일하는 것 뭐 노동일 하는 것 이런 것 다, 그런데 제일 구원에 손해 안 가는 것은 수고는 많고 수입 적은 거게서는 적게 가고, 일을 하되 다른 사람들에 천대받는 그 일에는 괜찮고, 일을 하되 다른 사람에게 존대받는 그 일에는 큰 독약이 들어서 손해가기 쉽습니다. 그러면 일하는 것 그런 것, 자기가 일하는 것.

또 여섯째로는 사람이나 물건이나 일이나 접촉하는 거기에서 자기가 혹 처음 신앙을 뺏겼나? 거게서 또 찾아보고.

마지막에는 자기 노는 것, 그 노는 것도 잘 놀아야 돼. 잘 노는 거는 뭐이 잘 노느냐? 놀므로써 구원에 유익된 것이 잘 논 것이고 놀므로써 구원에 손해간 것은 잘못 논 것이라 말이오. 그러니까,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일곱 가지. 일곱 가지를 잘 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그 어제 대충 이리저리 말해 줬으니까 거게서 자기가 살피고 깨달을라면 깨달을 터이니까 요 일곱 가지를 가지고서 요 일곱 가지를 살피면, 남 일곱 가지 말고. 자기의 이미 과거 지내온 이 일곱 가지를 거게서 나벼보면 거게 내가 잊어버린 처음 사랑이 거게 파묻혀 가지고 있습니다, 거게 잊어버려. 처음 신앙이 거게 파묻혀 가지고 있어. 처음 열심이 거게 파묻혀 가지고 있어. 처음 기쁨이 거게 파묻혀 가지고 있어. 처음 이것 봉사하고 희생하는 그것이 거게 파묻혀 있어.

나중에는 잘못 알면 그 사람이 처음에는 사랑으로써 자기의 모든 것을 형제를 위해서 다 제물로 봉사로 바치고 싶던 그런 사람도 나중에 가서는 말할 수 없는 깍쟁이 인색한 그런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그 파쏘주의라 하는 그런 책에 써 있는데 유대인들이 종교 말년에 어떤 사람이 됐느냐? 기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됐는데 어떤 기도하는 사람이냐? ‘네가 기도를 뭘할래? 네가 뭐이든지 기도하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 주고 네게는 배를 주마, 두 몫을 줄 터인데 그래 뭐 할래?’ ‘그 사람 눈이 그것 빠지게 해 주옵소서.’ ‘그 사람 눈 하나 빠지면 네 눈 둘 빠지는데 그래도 좋으나?’ ‘내 눈이 둘이 빠져도 그놈 눈 하나 빠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잔인한 사람이 됐다 하는 것을 그 책에 기록한 것이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자기가 그날 밤에 그만, 서이 살다가, 자기하고 일하는 사람하고 부인하고 서이 살다가 부인이 그날 밤에 죽었습니다. 죽었으니까, 부인이 죽었으니까 부인 죽어서 장사 어찌 지낼까 슬픈 맘 그런 마음은 없고 아침에 아침 식사할라 하는데 나와 가지고서 말하기를 ‘여보시오. 우리가 세 식구 있다가 하나가 죽었으니까 오늘 아침에는 계란 두 개 하십시오.’ 얼마나 인색한 인간입니까? 종교 말년에 ‘너는 배를 줄 터이니까 뭐 기도할래?’ 이웃 사람 눈 빠지기를 기도하더라고. 둘 빠져도 그놈 하나 눈 빠지는 게 좋다 그 말이오. 그 아주 얼마나 잔인하고 악독합니까? 또 금방 그날 밤에 자기 마누라가 죽었는데 언제 그 이튿날 아침에 식사시킬 때에 얼른 나와 가지고서 ‘지금 서이 있다가 하나 죽어 둘이니까 오늘 아침은 계란 두 개 하십시오’ 이래 그것 말한다고서.

이러니까 그렇게 인색한 사람, 그렇게 잔인한 사람, 예수 잘못 믿으면 잔인한 사람 인색한 사람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제 공부한 것과 같이 이 일곱 가지에서 자기를 좀 살피십시오.

일곱 가지를 바로 한다고 하면 신앙 생활은 저절로 됩니다.

저도 지난밤에는 여덟시에 불은 껐습니다. 여덟시에 끌라 하는 그것만 해도 복이라요. 여덟시에 끄고 나니까 어떻게 자유로운지.

여덟시에 꺼 가지고서 나중에 있다 보니까 한 열한시쯤 됐는데 혼자 조용히 얼마나 있었는지. 또 열한시에 누웠다가 또 새로 일어나니까 두시인데 또 두시에 일어나 가지고서 내치 이런 것 저런 것 좀 성경보고 이러다가서 그대로 나왔습니다. 좀 자유시간이 있다 말이오.

어짜든지 그 일곱 가지를 잘 해서, 어떻게 잘한 건가? 과거는 벌써 정확하게 심사를 하면 과거는 벌써 답안이 나왔어, 그 결과가 나왔어. 그 과거의 그 결과를 정확히 감찰해 가지고서 계산하고 자기 미래에 대한 것은 자기가 정확히 예산을 하고, 예산해 놓으면 조금만 있으면 그것이 이제 결산이 나옵니다. 그것이 과거가 돼 버리기 때문에 그 결산이 나옵니다. 그러면 거게서 옳고 그른 것 알기 때문에 거게서 연구해 가지고서 새로운 그 고친 출발을 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합시다.

이제 요 일곱 가지를 좀 외워 가지고 거게 대해서 좀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이 되면 마귀란 놈이 지금 야단났다 할 것입니다. 여게 다 빠져버리고 그만 거게 다, 그 덤불에 다 빠져버렸어요. 이러니까 그것을 빠지지 않도록 다 챙기도록 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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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 참제사-믿음이 더해지는 방편/ 고린도전서 4장 2절/ 1981. 7. 22. 수새벽 선지자 2015.12.29
846 창기 신앙/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1988. 10. 28. 금새벽 선지자 2015.12.29
845 책망과 징계/ 히브리서 12장 5절-13절/ 1983. 9. 10.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844 책망과 징계/ 요한계시록 3장 19절-22절/ 1983. 9. 8. 목새벽 선지자 2015.12.29
843 책임주/ 히 12장 14절-17절/ 1978년 28공과 선지자 2015.12.29
842 처음 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9.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841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6. 수새벽 선지자 2015.12.29
840 처음 행위와 그 효력/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5. 30. 월새벽 선지자 2015.12.29
839 처음 행위와 순서/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5. 29.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9
» 처음사랑을 7가지에서 찾으라/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7. 9. 28. 월새벽 선지자 2015.12.29
837 처음사랑-처음행위/ 요한계시록 2장 2절-5절/ 1987. 10. 5. 월새벽 선지자 201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