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사랑-처음행위

 

1987. 10. 5. 새벽 (월)

 

본문:요한계시록 2장 2절∼5절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내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고 다른 일반적 행위를 아주 많이 했습니다.

참 구비하다고 할 만치 일반적 행위를 잘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버리고 이 구속하신 사랑을 버리고 구속을 버리고 다른 이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악한 자들과 사도 아닌 것들을 다 드러내고 또 주님을 위해서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이런 아름다운 행위를 많이 했지마는 한 이 행위가 주님 앞에서 효력을 나타내느냐, 효력이 있느냐?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그러면 하나님과 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로 인한 효력은 전혀 없어졌습니다. 그러면 이 행위가 있었지마는 하나님과 연결로 인하여 되는, 연결로 인하여 오는 효력의 그 은혜는 다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효력이 있었느냐? 전혀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된 효력은 이것이 들어서 효력이 있는 게 아니고 이것이 들어서 효력을 없애게 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이 끊어졌으니까 이 옳은 행위가 효력을 낼 수 있느냐? 아무 효력을 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말하기를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옮기리라” 그러면 하나님에게서 끊어지기는 끊어졌지마는 촛대는 아직까지 옮기지 안했습니다. 촛대는 옮기지 안했으니까 촛대는 그대로 있지마는 하나님과 끊어지기는 끊어졌습니다.

이러니까 이 행위가 이 촛대적인 행위는 아직까지 완전히 전멸하지는 아니했고 그저 그대로 아직까지 유지를 하고 있지마는 회개 안 하면 아주 끊어버립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처음 사랑을 버리고 이 행위에 주력을 해서 이 행위를 했는데 그러면 처음 사랑을 버리고 이 행위를 주력한 이 행위가 하나님과의 연결된 연결적 그 은혜, 하나님과 연결됨으로 그분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오는 그 은혜는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은혜는 없어져 버렸고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옮기리라” “네 촛대를 옮기리라” 네가 지금 너를 성화시켜서 이렇게 성화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네 자체에서 지금 성화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다시 말하면 영감과 진리 은혜를 네가 이미 받은 거 가지고서 네 성화 이 구원 건설구원의 은혜 역사, 이 건설구원의 역사를 네가 하고 있는 그것은 아직까지 계속되어 있지마는 회개 안 하면 내가 옮겨버린다. 그러면 요것을 여러분들이 잘 구분을 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벌써 처음 사랑을 버리고 나서 어떤 행위가 있다 할지라도 그 행위는 하나님과의 연결시키는 그런 행위는 못 되기 때문에 처음 사랑을 버린 그자가 어떤 행위를 한다 할지라도 그 행위의 효력은 하나도 없다 하는 것을 여게 말했습니다. 행위의 효력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행위의 효력이, 하나님과 연결되지 안했기 때문에 행위의 효력도 연결의 효력도 다 없어졌지마는 아직까지 네가 회개하기를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에 네게 있는 촛대는 옮기지 안하고 있다. 안 하고 있으니까 이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니 회개를 안 하면 촛대 옮긴다.

이러니까 이 에베소 교회는 하나님과 연결은 끊어졌고 아직까지 촛대는 옮겨지지 안하고 지금 옮길라고 하나님께서 참아 기다리면서 회개 안 하면 옮길 것이고 회개하면 내가 옮기지 않고 또 회개하면 하나님과의 끊어진 그것도 다시 재연결을 시키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는고 하니 사람이 하나님의 처음 사랑을 버리고 이런 저런 모든 행위 한 거 그런 행위가 그래도 처음 사랑을 버려도 그 행위는 그대로 그것만치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사람들이 생각하기 쉽습니다. 제가 어제도 증거한 것이 ‘이 처음 사랑을 버리고 난 그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해도 그 행위는 아무 무용지물이다. 아무 효력이 없다.’ 하는 것을 강하게 증거를 했습니다.

이라니까 그래도 그것이 옳은 행위가 다른 사람들이 인정을 하고 모두 이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효력이 전혀 말살되고 없지는 않고 효력이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반발적으로,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여게 대해서 강하게 느끼지를 아니하고 오히려 제가 해 놓은 여덟 가지나 아홉 가지나 되는 옳은 행위 그것을 ‘효력이 없고 다 그것이 무용지물이 된다, 다 무용의 것이 된다.’ 이렇게 하는 데 대해서 거게 주력하는 자들이 거게 대한 반발심을 가지고 역사하도록 마귀란 놈이 그렇게 작용을 합니다.

뭐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안하고 그것만 가지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 구원하셨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큰 구원을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다 하는 그것만 생각하고 기독자의 이 사회 생활, 국가 생활, 윤리 생활, 도덕 생활, 이 가정 생활 이 모든 경제 생활 이런 면에 다른 사람이 칭찬할 만치 이렇게 위대하게 한 그것을 아주 무가치한 것으로 딱 정죄를 해 버렸고 하나님의 이 사랑만을 가치로 이렇게 한 데 대해서, 자기네들은 그것이 위대한 줄 알고 그것 가지고 자랑하고, 그것 가지고 인정받고, 그거 가지고 사람들에게 간판을 붙여 놓고 없는 사람들은 멸시하고 그걸 있는 것을 자랑하고 이렇게 하는 자들이 이 설교를 듣고 반발심이 생겨질 것이라 그 말이오.

제가 우리 총공회 진영에서 ‘너희들이 기독교 윤리주의를 회개해라’ 그래서 집회할 때에도 ‘윤리 중심으로 하지 말고 은혜 중심으로 해라. 윤리주의를 회개해라.’ 하는 그 말에 대해서 윤리 가지고서 자기네들이 오늘까지 양반이라고 써먹고, 윤리 가지고 큰소리 하고, 윤리 이것이 전부 그 힘 가지고서 ‘우리는 김가다 이가다’ 대성받이들이 그 권세 가지고서 이렇게 해 먹고 살던 사람들은 그 윤리주의를 부인하라 할 때에 거게 대해서 반발심이 많아 가지고서 나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진영에서 나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이 사랑과 구원에서 끊어질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잇기지도 안했는데, 잇기지도 안했는데 그놈이 왕이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헛일이니까 일단 그것을 버리고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서 이것 저것을 할 일이지 네가 지금은 연결도 안 된 인간이 네가 그걸 위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다시 너는 연결을 하지 못한다. 연결됐던 것도 그것을 보고서 하나님의 사랑과 이 구원을 버리게 되면은 끊어진다.

연결된 것도 끊어지는데 연결되지 안한 그것이 그것 때문에 장애를 받아 가지고 연결되지 안하니 너희들은 그런 걸 다 버리고, 세상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 안 됐기 때문에 일단 세상을 버리라.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 연결된 네가 하나님과 연결로 세상을 다시 사랑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했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지 안하나?’ ‘너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

네가 거게 붙어 가지고 떨어지지 못했으니 세상에 붙은 네가 세상에서 떨어져 가지고, 떨어지고 하나님과 연결돼 가지고 연결된 그 힘을 가지고 세상을 사랑해라.’ 이걸 주장하는 것을 반발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국에 산업 전도라 또 대학생 전도회라 이래 가지고서 굉장히 한국에 인기를 끌고 대운동이 됐었습니다. 그럴 때 그것을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조끄만한 강단 서부교회서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그거는 이단이다.’ 하는 것을 강하게 말한 것이 그래도 드문 드문 퍼쳐 나와서 그 말이 차차 그것이 강단에서 나타나게 돼 가지고서 ‘어떻게 기독교가 다 산업주의라고 저거 마음대로 산업을 위주로 해 가지고서 주일 지키는 것도 산업을 위주로 해 가지고 이 산업에는 월요일을 주일로 지키면 좋겠다, 저 산업에서는 토요일을 주일로 지키면 좋겠다, 저 산업은 목요일날을 주일로 지키면 좋겠다, 산업을 주로 삼아 가지고서 거게 준해서 주일을 정해 지키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다.’ 하는 것을 아무도 말하지 안했는데 서부교회서 제일 먼저 말했습니다. 그거 다 찬성하고 지금 야단이 났었습니다.

이랬는데 또, 대학생 선교회라 하는 이것을 주 모아 가지고서, 거게 한 사람이 했습니다. 대학생 선교 한 사람이 처음에 대학생 선교회 모으고 그 다음에는 산업주의로 산업 전도를 이래 하고서 해 나왔는데 대학생 선교회 할 때에 그것을 나쁘다는 사람이 없고 다 인정을 했고 인정한 그 사람이 또 산업 전도를 하니까 그것도 다 긍정해서 모두 말하기를 내게 오는 사람도 ‘요새는 복음 운동을 하되 입체적으로 해야 된다’ 입체적으로 해야 된다 말은 벽에 딱 붙여 놓은 종이 모양으로 하면은 종이는 앞에 있는 일면뿐이지마는 입체라면 앞도 있고 뒤도 있고 옆도 있고 오른쪽 왼쪽도 있는 그와 같이 모든 거 입체적으로 복음 운동해야 된다 하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을 그 일대 일로 대결해서 말을 했고, 이라고 난 다음에 비로소, 그것을 다 인정하다가 이 기독교 산업 전도라는 이것이 나오고 난 다음에 좀 사람들이 ‘어떤가?’ 이라다가 지금도 그것은 틀렸다고 하지마는 대학생 선교회 이것은 틀렸나 안 틀렸다 하는 말을 잘 못 하고 이제 거기서 정신 차린 사람은 ‘이런 것 다 필요 없다. 뭐 대학생을 대학생으로 모아 가지고 그 무슨 데모 운동이냐? 일반 모든 사람에게 다 복음을 전할 일이지 나는 대학생이라 복음 전하는 대학생 그 선교회로 모아 가지고 한다는 그것이, 그것이 우상이 돼 가지고서 나중에 가서는 너희들이 인간 운동 지식 운동만 되지 복음 운동은 안 된다.’ 하는 그것을 말을 해서, 이 설교록이 적은 것 같지마는 이거 퍼쳐 나가서 읽는 사람에게는 눈이 열릴 것입니다. 이 세대가 뭐인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눈이 열려서 깨닫게 됩니다.

여게,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버린 이 사람이 왜 버려졌느냐? 이 모든 그 행위 이런 것을 모두 사람들이 가치로 삼고 위대하게 생각하지 하나님의 뭐 사랑이니 하나님의 구원이니 하는 이것은 이미 그러니까 알고 있고 다 우리가 믿고 있으니까 됐지 했지 여게 대해서 강조한 일이 없고 이 모두 다 현재에 기독교 첫째 도덕 생활, 기독교는 도덕이 있으면 그 사람은 예수 제일 잘 믿는 사람이다, 인제 도덕도 성경대로의 도덕이 아니고 이 세상이 인정하는 도덕입니다. 세상적 도덕이요. 유교적 도덕이요 불교적 도덕, 도덕은 다 다른 종교도 다 있는데 일반 종교에서 행하는 도덕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못쓸 사람으로 봅니다. 못쓸 사람으로 보요.

그것을 다말은 그는 윤리를 완전히 거슬리는 사람이지마는 다말에게서 예수님이 나셨다. 다말은 예수님의 조상 중에 한 조상으로서 유력하게 성경에 기록해 나왔다. 이런 것은 다 기독교라 하는 건 이런 걸 초월한 것인데 이것을 앞세우고 이것을 머리로 두고 기독교의 이 구원이라는 것을 그 다음으로 소속을 시키기 때문에 이것이 다 두미가 꺼꾸로 됐다 그 말이오.

그랬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버린 자는 이 여러가지 행위를 한 이것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좋은 것이지마는 이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에게서 끊어져 버리니까 이것이 아무 효력을 나타내지 못한다.

여게, 오늘 아침에 말하는 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고 성자라고 이렇게 칭찬하고 어떤 그 행위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 처음 사랑, 처음 사랑이라 말은 뭐, 처음 사랑이라 말은 제일 처음에 믿을 때에도 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이 운동, 사랑의 행위가 그를 주관하고 이래 있었는데, 이 뭐 어려운 게 아니고 쉬운 사랑이요 어린 사랑이요 어린 행동입니다. 또 누구든지 다 한 것입니다.

이것을 버린 그자에게 아무 행동이 있어도 행동이 무용지물이다 하는 이것을 알리기 위해서 다시 말합니다.

이거 암만 하나님의 사랑을 버렸다 할지라도 이거는 이것대로의 이것만치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것만치 효력이 있지 않느냐? 이것을 버린 너에게는 이것이 아무리 많아도, 이 아홉 가지를 말했지마는 구십 가지 구백 가지 구천 가지가 있다 할지라도 처음 사랑과 처음 사랑의 이 행위를 네가 버렸으면 그런 것은 다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그 사람이 장사의, 세계에 제일 강한 장사의 용사의 그 체격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생명 끊어졌으면 그거는 송장이기 때문에 내음새만 많이 났지 아무 뭐, 몸이 크면 내음새 많이 나고 썩기만 많이, 큰 게 썩었지 아무 가치 없다. 생명이 없으면 헛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처음 사랑 처음 행위 이것이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된 이 생명이기 때문에 이거 끊어지면 다른 것이 무용지물이다 하는 그것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제가 오늘 아침에 다시 설교를 합니다.

‘암만 끊어져도 그거는 그것대로 가치가 있지 않느냐?’ 장사의 그 팔이 생명 끊어졌으면 그 다음에는 송장되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게 첫째다.

그런데, 그러면 이 첫사랑과 첫행위가 끊어졌으면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모든 행동은 다 효력이 없다. 효력이 없는 것은 왜 효력이 없느냐? 모든 사람들은 다 그래도 인정해 주기 때문에 효력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은 인정을 해 주는 효력이 있는데, 우리가 아무리 효력이 있고 효력이 없다 가치가 있다 없다 하는 것은 주님이 인정하면 가치 있고 인정 안 하면 천하 인간이 다 인정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인정 안 하니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효력이 없는데, 사람들은 이걸 효력 있다고 인정을 해 줍니다. 하나님 볼 때에 “너는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버렸기 때문에 나와는 상관 없다” 이라지마는 사람들은 볼 때에 ‘이 사람은 성자다 성녀다’ 이렇게 다 말한다 그 말이오.

하청풍언씨가, 가가와 도요히꼬라 하는 하청풍언씨가 그 사람이 세계에 성자라고 위대하게 여겼는데 그 사람이 이 신사참배가 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 신사참배 하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정치에 이용물이 돼 가지고서 인도에 가서, 화친하려는 그 외교관으로 인도에 사명을 받고 가 가지고서 간디를, 옥중에 있는 간디를 찾으니까 간디가 면접을 해 주지 안했어.

‘나는 그 사람은 모른다. 내가 아는 하청풍언씨는, 내가 친한 하청풍언씨는 감옥에 갇혀 있든지 그리 안 하면 죽었든지 그렇지 지금 여기서 자유로 국가 운동 민족 운동 하기 위해서 여게 올 리가 없다. 나는 그 사람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면접을 할 수가 없다.’ 했다 말이오. 그까지 갔다가 면접을 못 하고 왔다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구별해서 사는 사람들이오.

이렇게 이것이 효력이 없다. 그런데 달리 또 한번 생각할 것은 뭐이냐 하면은 “네 촛대” “네 촛대” 촛대를 옮긴다 했으니까 옮길 그 권세는, 주권의 권세는 주님이 가지고 계시지마는 아무리 네가 촛대 가지고 있지마는 촛대를 내가 옮기겠다.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옮기겠다” “네 촛대를 옮기겠다” 만일 그 사람의 촛대라면 주님이 남의 촛대를 마음대로 옮기면 월권이지. 죄지.

그렇지 않소? 네 촛대도 그 주권은 내가 가지고 있고, 이런데 네 촛대는 지금 있다. 네게서 지금 성화 운동의 역사하는 그 역사는 네게 있지마는 그것이 내게서 나가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그걸 옮기겠다.

이러니까 이 끊어져도 당장에 끊어졌을 때에 행위는 효력이 없고 자기가 그래도 회개해서 한번 건설구원을 이루어 볼라고 행위구원을 이루어 볼라고 지금 자기가 각오도 결심도 하고 있는 그런 것은 아직까지 네게 있다 그 말이오. 그거는 네게 있다.

그러나 회개 안 하면 내가 그거까지도 다 옮겨버려서 네게 회개하고 싶은 마음이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나, 죽든지 살든지 어찌 됐든지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가지고 가겠다, 생명보다 이 성화구원이 낫다 하는 그런 정상적인 평가가 네게 없다, 있을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버렸을 때에 일차적으로 끊어졌고, 끊어지고 나니까 모든 행위의 효력이 하나도 없고 이차적으로 네게 당한 낭파될 것은 뭐이냐? 아직까지 끊어지지 안했지마는 이차적으로는, 회개 안 하면 네게 있는 촛대가 완전히 없어지고 만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제가 어제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거창 있을 때에는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 아무것도 아니고 나는 그때 교계에 명의도 없는 사람이고 또 무슨 신앙의 동지도 없는 사람이고 그저 여게서 올라온 사람 김신명씨라고 한 그분 여성도인데 그분 한 분을, 개명 와서 그때, 신사참배 때문에 거기서 고난당하다가 이제 피해 가지고서 거기 산골에 자기 형부가 학교 선생이라서 그리 와 있는 그분 한 분 내가 접촉을 했고, 그분이 나를 접촉해 보고 난 다음에 그분이 부산 와 가지고서 소문을 내서 부산서 그때 박인순 선생이라 하는 분이 역부러 나를 찾아 와 가지고서 그분을 찾아서 만나봤고 다른 이는 내가 도무지 만나보지 못했어.

만나보지 못하고 이러니까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요 다만 주님의 이 구속의 사랑만 알고 그때 나는 살았었습니다. 그때 행동했습니다. 그때 행동도 내가 가정 생활 하는 것이 아니고 가정 생활은 집에 있을 때도 월요일날만 하고 나머지기 남은 닷새 동안은 교회를 위해서 살았고 또 일주일 똑, 한 달 동안에 셋 주간은 다른 교회에 순회하면서 오지도 안하고, 한 주간 집에 있다가 그 다음에는 돌아다니면서 무보수로서 집사로서 그렇게 넷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봤고, 이렇게 생활하다가, 이거 그만 부산 나는 오기가 싫어서 이랬는데 자꾸, 나를 부산에 청할 때에는 고신에 있는 한상동 한명동 오종덕 송상석 박윤선 박손혁 이인재 이 일곱 사람이 연명날인해 가지고서 안 오면 안 된다고 송상석 목사님이 그 연명날인한 편지를 가지고서 두 번 걸음 했습니다.

그래 내가 안 올라고 이라다가 나중에는 ‘아무래도 이분들이 그래도 이 진영에서는 제일 신앙에 머리되는 분들인데 연명날인해 가지고 이러기까지 지금 하고 있는데 내가 안 가면 이거 안 되겠다.’ 할 수 없어 그래 가지고 내가 여기 어게 됐어. 오고 싶어 온 것 아니오.

그때 서부교회는 와 보니까 사백여 명 모이던 교회가 다 흩어져 버리고 저 동일교회가 여게서 김창인, 그때 조사님 때인데 그분이 모여 가지고 은혜가 있어서 사백여 명 모이다가 다 흩어져 버리고 동일교회로 갈라져 나가고 여게 본교회 와 보니까 사십 명 있습디다.

이랬는데 그때 운동이 김용학 집사님 그분이 부산에 지정 여관이라. 교역자들 지정 여관이라 할 만치 그렇게 대접을 많이 했는데 그분이 들어서 김창인 목사하고 싸워 가지고서 김창인 목사가 다른 데로 그만 나가 버리고 여기 남은 사람 그러니까 그분과 운동하고 거기 늘 숙박하고 있는 그분들이기 때문에 그분과 운동을 해 가지고서 그래 그 운동이 일곱 목사님들이 다 단합을 해서 연명날인을 해 가지고서 제게 와서 했어. 나는 그 내용은 몰랐습니다.

내용은 몰랐고, 그 내용을 내가 알았으면 안 왔을 터인데 그 내용을 내가 몰랐기 때문에 왔습니다. 와 가지고서 여게서 신앙 생활 하는데 와서 보니까, 와서 보니까 첫째 시험에 내가 든 게 뭐이냐 하면은 ‘아무래도 내가 산골에 있던 조사 가그때 조사 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조사 된 지가 일 년 반인가 됐습니다. 일 년 반 된 그때인데이 산골 조사가 도시 교회에 나와 가지고 이렇게 큰 시비 있는 교회 나와 가지고 이 교회가 잘못되면 내게 문제가 되겠다. 나를 사람이라고 이래 청해 왔는데 이거 문제가 있다.’ 이래서 일편단심 교회만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 거게서 주력을 했습니다.

교회 잘되기 위해서는 뭐 오만 짓이라도 다 해서 교회가 유익된다면은 이렇게 전심 전력 기울여 가지고서 이라니까 그런 가운데서, 교회가 잘되도록 할라 하니까 그 모든 남집사 여집사 모든 사람들 다 자주 만나서 또, 오해하면 오해를 풀어야 되겠고 이해를 시켜야 되겠고 또 같이 화친을 가져야 되겠고 이라니까 차차 차차, 내가 요걸 알았으면, 그때 알았으면은 그걸 내가 그렇게 안 했습니다.

알았으면 뭐 되든지 말든지 내게 무슨, 첫째는 ‘하나님의 구속의 이 사랑 이것이 제일이지 그 외에 딴게 뭐 있겠느냐? 이것만 하고서 다 교회 안 되면 안 되고 되면 되고 나는 구속의 사랑에 감격돼서 거게 팔려서 거게 종이 돼 가지고 그것이 돼 가지고 나는 사는 그것만이 내 생활이다.’ 이렇게 했으면 그때 그 시험에 들지 안하는 것인데 와 보니까 이 교회 부흥시키고 유지시키는 것이 문제라, 교회 부흥시킬라면 이 사람들 비위를 다 맞춰 줘야 될 것이라.

이러니까 뭐 날마다 심방이 할 일입니다. 심방이 할 일이라. 여게서 심방하고 이 사람 비위 맞추고 나면 저기 또 삐뚤어져 틀리니까 또 저기 가서 또 비위 맞춰서 또 해야 되겠고, 이러니까 내가 속으로 심지어 말하기를 ‘나는 기생이다. 나는 기생이다. 왜? 이 집에 가서 한 시간 놀아줘야 되고 저 집에 가 한 시간 놀아줘야 되니까 참 자유 없는 인간이다.’ 속으로 탄식을 하면서도 자꾸 그리 주력하고, 또 이 설교하면 그만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대로 설교를 해야 될 터인데 이거 일반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교리와 신조 거게 맞춰 가지고 설교를 해야 되니까 거게 맞춰서, 속에 깨달은 점이 있지마는 ‘이거 말하면 이 사람들이 이단이라 할 거다.’ 왜? 내가 거창 있을 때에 이단이라 말을 듣고 왔기 때문에.

다른 데서 이단이라 말 안 하고 고려신학교서 나를 이단이라고 해서 제가 그 신학교 입학도 하기 전엔데, 입학을 했다 말았어. 고려신학교 시작할 때에 나를 오라 해서 내가 입학해 가지고 나흘 동안 공부하고 난 다음에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라고 그만 가 버렸습니다.

이랬는데 그 다음에 내게 속한 사람들이 차차 많아지니 ‘이제 어느 진영에 속하노? 내가 속하는 데는 그래도 고신에 속해야 되겠다.’ 고신에 속했다는 것을 인정시키기 위해 가지고 내가 고려신학교를 왔었습니다.

고려신학교 와 가지고서 거게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고려신학교를 거창 있으면서 여게서 다녔습니다. 내가 무슨 말 하다가 이랬지? 이래서, 그래 와 보니까 내 깨달음과 깨달음 다른 것이 꽉 찼습니다. 이래 내 깨달음을 말하지 안하고 이제 그것은 연극을 합니다. 내 속에는 아니라는 것을 그래도 거기 맞춰서 증거를 해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나왔는데 하나님이 나를 거기서 제명시켰어. 내가 그때 예배당 소송 문제니, 또 신신학 문제니, 이 모든 교리 문제니, 고려신학교의 정치학을 송상석 목사님이 가르쳤기 때문에 ‘송상석 목사님은 세상 정치가지 성경 정치가 아닌데 어찌 시켰느냐?’ 고려신학교에 대한 거 뭐 이런 것, 또 유엔군 철퇴하고 난 다음에 그때 모두 전국 교회가 다 혈서를 써 가지고 메시지 내고 시가행렬을 하고서 한 거 이런 것, 또 이 ICCC의 박사 학위를 받아 가지고 온 이런 것 뭐 이런 것을 백지 말했다 말이오.

내가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거 미친 짓 했다 이렇게 생각이 돼요. 왜? 남의 일 간섭하다 백지, 그러거나 뭐라거나 나는 내나 신앙 생활 했으면 되는 건데 도리어 그라다가 자꾸 이거 원수만 돼졌습니다.

이러니까 나중에, 또 파수꾼 그 잡지를 폐간했기 때문에 ‘너희들이 국제 무대에서 사업주의로 나가고 찍해야 진리를 전파한다는 것은 파수꾼 잡지 이거 하나가 겨우 전파되는데 이것도 비용든단다고 안 하고 하니까 이게 뭐이냐? 그러면 내가 하겠다.’ 그래 가지고 돈 없는데 그때 돈을 대 가지고서 서부교회서 단독 파수꾼 잡지를 얼마 동안 계속을 했어. 계속하니까 또 자기네들이 나중에 가 안 됐는가 그걸 도로 달라 해서, 그뭐 줄 터이니까 도로 가져 가서 잘하라고.

이랬는데, 이러니까 뭐 그만 내가 신앙 생활을 이거 보고 저거 보고, 그 교리를 맞출라 하지 또 다른 사람들 비위 맞출라 하지 또 그분들이 뭐 안 됐다 말이 있기 때문에 자꾸 그래도 좀 비위를 맞출라고 위에 있는 사람들의 비위 맞추려다 보니까 하나님 다 잊어버렸어.

이라다가 제명되고 난 다음에 비로소 내가 요새 하나님이 나에게 직접 깨닫게 해 주시는 걸 전파합니다. 해도 처음에 말하면 대번 소문나고 이단이라 할 것이기 때문에 못 하고 처음에 쪼끄매 싹수만 쪼끄매 내 놨다가, 그 다음에 대집회 가면은 한번 더 내놨다가, 내놔 가지고 반응이 차차차 나가서 아무 말이 없고 이라면 좀 더 내놨다가, 또 내놨다가 또 뭐이 나오면 또 가만 숨겼다가, 이래 가지고 내가 전파를 했습니다.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 걸 지금은 담대히 말하지마는 그전에 내가 말하지 안해, 논문 써라 뭐 써라 해도. 그거 말하면 도로 그분들이 반발심 내면은 언제 반발하던 것을 언제 머리 숙이고 돌아올 리는 없으니까 가만히 둬 두면 될 것이라 해 가지고서, 지금은 아마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 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설 사람은 세계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는 굉장했었어. 박윤선 목사님이 그걸 반대하고서 나선 사람이요 이인재 목사님도 나와 그거 때문에 반대해 가지고 갈라진 사람이요 이래 가지고서 다, 그때 지내가서, 주님은 알고 있지마는 여러분들은 다 몰라요.

이랬는데, 내가 그거 보고 이래 하다 보니까 이 서부교회 교회는 차차 차차 불어서 교회는 커졌지마는 내가 그만 처음 사랑을 버렸어. 이 처음 사랑을 버리고 여러분들에게 하는 행위는 내가 이런 행위 해.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안하고 거짓된 사도를 시험해서 드러내고 이렇게 주를 위해서 참고 견디고 열심 있고 게으르지 안한 것” 이런 것은 여러분들한테 내가 했지마는 실은 이 하나님의 사랑과 처음 사랑 처음 행위를 내가 끊고 엉뚱한 일 한 내가 에베소 교회라. 에베소 교회라, 지금.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이 아주 끊어진 건 아니지마는 예를 들면 연결이 이만치 이만한 밧줄로 연결될 사람이 요만치 밧줄로 연결됐으면은 그만치 약하니까 그만치 강한 것이 오면 떨어질 것이라 말이오.

내가 거창 있을 때에는 왜정 말년 때에 다른 사람은 신사참배를 옥에 갇힌 거, 나는 옥에 갇히지도 안하고 맞지도 안하고 마음대로 신사참배 반대하고 돌아다녔다 그 말이오. 일본 부장이 와 가지고 매일 나하고 신강해도 나는 거기 굴하지 안하고 ‘그거는 하나님의 계명인 줄 알기 때문에 못 한다 못 한다’ 이렇게 나왔다 그거요.

그래서, 저만 나온 게 아니라, 저만 반대한 게 아니라 제가 시무하고 있는 개명교회 교인은 어린 학생 하나도 신사참배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일 유명하기는 개명교회가 고제면에서, 고제면에 교회가 너이 있는데 제일 유명했습니다. 제일 유명하고 까다롭고 제일 유명했는데 한 사람도 신사참배 안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나와의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 연결로 인해서 하나님이 지키시니니까 다른 것들이 말을 못했다 그거요.

이라다가 또 6 5가 나고 난 다음에 제가 있다 나온 개명교회, 제가 시무하던 그 봉산교회 제가 지금 이전해 가지고 있는 위천교회, 위천교회 있을 때에 그 군내에서 셋 교회는 공산주의 그 점령 안에서도 매일 죽인다 소리를 늘 계속 들으면서도 하루 세 번씩 종치고 하나님 앞에 예배 드렸습니다. 그라다가 이제 그 둘은 예배 드리다가 나중에 가서 정상적으로 대예배 보고 새벽기도 보고 이것만 보고 위천교회는 두 달 동안, 6 5 전쟁 난 후에 두 달 동안 계속해서 대집회를 계속해서 했었습니다.

이렇게 하다가 6 5 이듬해 제가 여기 왔었는데, 여기 와 가지고서 그만 그때 그 거석이 없어.

지금은 내가 볼 때에 앞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오면 어찌 되겠느냐? 공산주의들이 와서 나를 고문과 고형을 하고, 지금도 기도하는 거는 ‘독약을 먹이고 독침을 찌르고 이라면 독약의 약기운으로 독침의 약기운으로써 고문과 고형을 이래 하면은 거게 내가 이길 만한 능력이 없고 그때에 내가 헛된 입술을 놀릴까? 그때 내가 안 할 말을 할까? 그때 내가 신앙을 지키지 못하고 주님을 부인하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안할까?’ 이래서 기도는 하지마는 그런 능력이 내게 있나 없나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데 이번에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자꾸 이렇게 연구하는 가운데서 “네가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버린 자다” 하는 이것을 내가 지금 굳게 깨달아졌기 때문에 여게 대해서 일주일 또, 월요일부터 계속해서 지금 내가 이 말씀을 증거하고 또 어제도 주일 오전 오후에 증거했고 또 오늘 새벽도 증거합니다. 이 증거하는 거 내가 많이 깨달은 게 있습니다.

이러니까 요것을 도로 되찾으면, 되찾으면 거창서 신앙 생활 하던 그와 같은 것이 되찾게 되어지니 “천인 만인이 네 곁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하는 요 말씀대로 이제 하나님이 승리케 하시기 위해서 이런 모든 순서를 깨닫게 해 주신다 하는 것이 느껴져서 소망이 생겨집니다.

과거에는 뭐 제가 이 깨닫기 전에는 늘 그랍니다. 내가 증거도 그랬을 겁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셔 나를 주관하셔서 주님으로 인하여 내 언행심사가 동하고 정하고 모든 만물이나 사물이나 인간을 접할 때에 나 혼자 접하지 안하고 주님하고 같이 접하게 해 주옵소서’ 이래 떡 접하고 보면 나중에 봐서 주님 없이 그거하고 접했습니다. 사람이 오면 사람하고 나 단둘이 얘기했지 주님 잊어버렸다 말이오. 자꾸 주님이 잊어버려지고 아무리 이래 할라고 해도 주님이 잊어버려져.

이러니까 주님으로 인해서 동한다 해도 뭐 말 썩 해 놓고 나서 뒤에 말해 놓고 나서 뒤에 생각하면 ‘나 혼자 내가 말했다.’ 주님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한 그것이 안 된다 그 말이오. 과거에는 주님으로 인해서 동하고 정하는 그 일이 필연적으로 되어지는데 안 돼. 안 된 이유를 이제사 알았어.

이래서, 내가 부산에 와서 이와같이 지금 하는 데에 많은 사람들을 내가 알게 됐고 많은 교인을 거느려서 총공회가 벌써 근 백여 교회가 되고 있으니까 그 주일학교 학생들까지 합하면은 굉장히 많은 숫자인데 그것이 다 저로 말미암아 시발이 됐기 때문에 일은 했다 하지마는 나는 처음 사랑을, 내가 처음 행위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버렸다 이랬어.

이거 목사님이 이 부산 와 가지고 이렇게 복음 운동 해서 우리 구원한 이것은 버렸나니? 우리 때문에, 우리 때문에 목사님 버려졌다고서, 목사님 구원 절단났다고서 이렇게 그 생각하니까 섭섭하다 이렇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말이오. 그런 말한 사람들도 있어.

자꾸 그래 말하니까 ‘우리 때문에 그렇다 하니까 참 우리는 섭섭합니다. 또 목사님이 지금 뭐 이래도 교인이 몇천 명 되는데 어데 교인들 접촉합니까? 교인들 어데 접촉하고 있습니까? 목사님이 찍해야 이 총공회 상대해서 일하고 있고 또 가족 상대해서,가족은 내가 완전히 버림같이 이와 같이 했는데 지금 가족에 대해서 이번에 자녀들이 미국에서 와 가지고서 집회에 참석하게 되고 또 이번에 우리 서 목사 별세하고 나니까 거기 대해 좀 생각하고 하니까 거게 대해서 이제그러니까 뭐 목사님이 지금 총공회를 위해 일하고 있고 가족을 위해서 뭐 지금 일하고 있지 뭐 우리 교인들 위해서야 일하는 것이 뭐 있습니까? 뭐 지금 심방을 합니까 하나하나 방문을 합니까? 방문을 못 해서, 목사님이 다른 교회 가면은 뭐 일주일 동안에 두 번 세 번 만나 보는데 여기서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니까 참말로 재미가 없어서 도로 하루 열 번이라도 목사님 만날라면 만날 수 있는 그런 교회로 가면 싶으다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마는 목사님이 그렇게 하면 견디지 못하겠고 또 너무 피곤할 것 같아서 우리가 다 이래 하고 있습니다.

이래 하고 있는데 무엇이 뭐 자꾸 부산 와서 백 목사 버렸다 이래 하니까 우리 때문에 버렸다 한 말이 돼 우리가 섭섭합니다.’ 이렇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오해를 가지지 마십시오. 내가 총공회도 위하는 마음 있지마는 서부교회 더 위합니다. 서부교회 위하는데 내가 딴거는 내가 위하는 일을 할 수도 없고 그래도 내가 새벽기도 내가 별로이 빼지 안하고 새벽기도를 내가 계속하고 또 오일 예배를 계속하고 삼일 예배를 계속하고 오전 오후 예배를 계속하고, 일주일에 열한 번 설교를 내가 하고, 또 그래도 반사회에서도 거게서 주일날 오후면은 반사회 모여 가지고서 거게서 그들에게라도 그래도 좀 사기를 돋궈 주고 힘을 돋궈 줄라고서 반사회 내가 참여해서 뭐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또 박수도 해 주고 이렇게 하고, 또 정치에 대해서 월요일날 아침이면 권찰회 모여 가지고서 또 정치 하지, 또 주일날이면 첫주일날이면은 남권찰회 하고 있지 또 일주간에 금요일날마다 여권찰님들 지권찰 위해 하고 있지, 저 하는 일이 이걸 어떤 데라도 내놓으면은 ‘그 목사 게을하고 놀고 있다’ 하지는 안할 것입니다. 놀고 있다 안할 것이오.

놀고 있다 하지는 안할 것이오. 다 ‘어데 그렇게 할 수 있나?’ 제가 알아 보니까 주보에는 다 기록해 있지마는 실지는 그분이 설교하느냐 하니까 주보에는 그래 기록돼 있지만 실지에 설교하는 분은 그 부목사 다른 목사들이 하지 그분이 한다고서 기록만 돼 가지고 있지 실은 하기는 딴 사람이 하더라 하는 그거는 내가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서부교회를 내가 사랑치 않는 것이 아니고 수고하지 않는 게 아니오. 내 힘껏은 하고 있어. 하다가 내가 못 할 때는 내가 기운이 없어서 기진해서 내가 안 하고 있지 내가 힘을 두고 안 하지는 않는다 그거요.

이런데,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서부교회에 대해서는 서부교회는 내가 일해 놓은 일이고, 일해 놓은 일이고 나는 지금 처음 사랑을 버린 자인데 일해 놓은 일이 이게 내가 이걸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의 이 연결성의 이것은 끊어져 있으나 아직까지 촛대를 옮기지 안해서 저거 힘을 가지고 자꾸 성화 운동 할라고 하는 이것은 옮기지 안했기 때문에 내가 얼른 내가 이것을, ‘내가 여기 와 썩었다. 이러니까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내가 찾아 가져야 되겠다.’ 이래 하는 것은 서부교회를 살릴라는 말이요 죽일라는 말이요? ○○○장로님 한번 말해 보소. 살릴라고 하는 말입니다.

촛대 옮기기 전에, 촛대 옮기기 전에 하나님과 재연결되면은 이제 행위의 그 효력도 다 날 것입니다. 내가 살면 여러분들이 다 살고 내가 죽으면 여러분들 다 죽습니다.

뭐 여러분들이 ‘백 목사보다 내가 신앙 앞섰다’ 이래도, 아니오. 하나님이 만들어 놓기를 그래 만들어 놨기 때문에 그래 내가 제일 선봉장으로 앞서 가고 여러분들이 따라오기 때문에 내가 바로 가면 여러분들이 바로 가고, 내가 삐뚤어져 가면 여러분들이 삐뚤어지고, 내가 정지하고 섰으면 여러분들도 정지하고 섰습니다.

이래서, 이 에베소 교회에 대한 것을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서 오늘 아침 마지막 결론은 그것이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에베소 1장에 보면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 “찬송하리로다” 뭘 찬송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시되” 이렇게 하고서 모두 다 “우리를 창세 전에 택했다” 이랬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가 버린 것, 잊어버려도 버린 것, 바빠서 버려도 버린 것, 다른 것이 귀중하니까 그런 것을 제일 중대한 가치로 여기지 안해서 버린 거, 어쨌든지 버린 거, 그러면 하나님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어요? 그것만 한번 말해 보이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했습니까? ○○○집사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목적으로 정하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나? 목적으로 정하신 것이오.

당신의 전지 전능의 완전의 그 무한한 총력을 전력을 다 기울여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보고 모든 피조물이 볼 때에 ‘참 아름답다 곱다 귀하다 참 위대하다 구비하다’ 하나님이 볼 때에 참으로 좋아하고 만족할 수 있고 피조물들이 좋아하고 만족할 수 있는 이런 것을 만들어 보겠다 하는 나를 목적으로 정한 이것이 하나님의 첫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일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내나, 그거 자기 찍해야 돈 좀 있는 거 그런 거, 돈 좀 있는 거 가지고 자식을 자기 부모에게 만족하도록 그거 지성인이 되도록 만들어야 되겠다 해 가지고 공부 학비 댔다면 그것도 감사하다 하지 않습니까? 또 부모가 인간의 힘이 얼마 안 되지마는 그 자녀에게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이래 가지고서 모든 몸에 대해서 관심, 위신에 대해 관심, 출세에 대해서 관심, 장래 희망에 대한 관심, 장래 살이에 대해 관심, 이거 모든 거 다 지능에 대한 관심, 신체 건강에 대해서 관심, 이 사회성이니 모든 이런 데 대해서 관심, 결혼에 대해 관심, 이렇게 뭐 전심 전력을 관심을 기울여 줬다고 하면은 그 부모의 그 사랑을 잊어버리겠습니까 감사하겠습니까? 뭐라 해, 부모의 그 모든 전심 전력을 다 자식을 위해서 기울였다면은 그 자식이 그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겠소 안 하겠소? 감사하겠소 안 하겠소? 그러면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기울인 그 힘이 만일 한 점이라 하면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전부를 다 기울인 것은 몇 점이나 되겠습니까? 한 열 점이나 되겠습니까? 백 점 됩니까? 천 점 됩니까? 만 점 됩니까? 억억만 점 됩니까? 억억만 점도 더 돼. 무한해.

이렇게 사랑했으니까 부모가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랑에 비해서 억억억억만 배도 더 되는 사랑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했는데 이걸 우리가 알아주고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다’ 이 사랑을 생각하는 것을 당신이 유일로 기쁨으로 삼고 즐거움으로 삼는 것이지 그까짓 거 인간의 노력하는 거 노동 그거는 당신이 엿새 동안에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되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누구를 사랑했으며 어떻게 사랑했느냐? 그 사랑이 어떠냐?’ 나를 하나님의 목적으로 삼으신 것이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정하신 게 나를 사랑하셔서 예정하셨다. 예정은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 사랑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심으로 예정하셨다. 예정은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이 예정하셨다. 예정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 사랑이다.’ 이렇게 해서 열여섯 가지가 다 돋파 나가서 여기에 감격해 가지고서, 여게 감격해서 이 여게 감격해서 그 사랑을 인해서 굼벵이가 꾸물뜨려도 하나님은 이 피조물 중에 제일 귀한 것이고 또 그것이 말 한 마디를 해도 그 사랑으로 인해서 말하는 그것이면 말 하나 하는 그것도 이 모든 피조물 전부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왜? 당신이 제일 총력을 다 기울였기 때문에 기울인 이것을 좋아하고 감사하고 가치 있게 여겨야 당신이, 당신을 대우하는 것이지 이거 멸시하면 대우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아내가 불치병으로 병들어 가지고 있는데 그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있는 살림을 다 떨어 바쳐도 안 되고, 이래서 또 무슨 약이 있는데 그 약을 구할라 하면은 그 구하기가 썩 어렵다 하는데 그 약을 구하느라고 삼 년이고 사 년이고 돌아다니면서 뭐 자지 못하고 이래 가지고 해 가지고 그 약을 구해 가지고 왔고, 구해 가지고 와 먹였고, 또 그리 하는 데는 자기가,그 사람은 내나 안 믿는 사람들이니까이걸 아무래도 백 일 산제 지내야 된다 하니까 아주 삼베 옷만 가지고서 그 석 달 열흘 겨울에 산에 가서 백 일 산제를 했고 이렇게 해 가지고 그 아내 병을 치료해 놨는데, 치료해서 이제는 살이 붙어 가지고서 얼굴도 아름답고 유방도 두드럭하고 이 지금 아주 아름답게 됐습니다.

아름답게 됐으니까, 아름답게 됐으니까 자기 아름다운 거나 자랑하고, 얼굴 예쁘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내 얼굴 이렇게 예쁩니다’ 하고서 연애나 하고 돌아다니고, 그거나 자랑하고, 자기 남편이 어떻게 해 가지고 자기를 병 고친 그것을 무시하고 생각하지 안할 때에 그 남편이 어떻겠습니까? 그 얼굴이 고운 걸 상관하겠소 그뭐 뭘 상관하겠소? 그거보다 더 섭섭한 것이 없다 그거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것으로 이거, 우리가 자연계시기 때문에 세상 이런 거 저런 것으로 다 그와 같은 유사 비슷한 그런 것을 자꾸 주 대 가지고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 그 사랑을 자꾸 깨달을라고 우리가 자꾸 애를 쓰는 것이라.

아무리 결혼의 첫사랑 생각해 봤소. 결혼의 첫사랑은 다른 것이 뭐, 결혼의 첫사랑은 미인으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남으로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했지 아무리 결혼의 첫사랑이라 해도 결혼 했는데 첫날 밤에 들어가 가 보니까 문둥이가 돼 얼칭이가 돼 가지고 있으면은 사랑하겠소? 아이쿠 징그럽다 하고서 나자빠지겠고, 보니까 예쁘고 곱고 이라니까 첫사랑이 생겼지. 피차가, 피차에 존재가 아름답기 때문에 첫사랑이 생겼지.

주님은 우리의 존재가 아름답기 때문에 생긴 것 아닙니다. 아무 것 없는 가운데 당신의 전지 전능으로써 다 기울여 가지고 모든 존재가 볼 때에 이것이 제일 아름답고 귀하다 하는 이런 것을 만들기 위한 사랑입니다.

그러면 결혼의 첫사랑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과 사랑이 같아요 달라요? 같아요 달라요? 다르다는 거 느껴집니까? 자꾸 이 실상을 알기 위해서 이런 거 저런 것으로 자꾸 새겨 가지고서 주님의 첫사랑, 그 첫사랑의 행동, 그 행동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하신 그 구원을 생각하니 내게 구원의 행동이 나오고 또 사랑의 행동이 나오고 나온 그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자꾸 되찾아 가지고 내가 이거 내가 얼른 되찾아야, 이것을 되찾아야 여러분들에게 해 놓은 일이 다 수포로 돌아가지 안하고 헛일이 안 되지 이거 되찾지 안하면은 지금은 끊겨지기만 끊겨졌지마는 촛대는 옮기지 안하고 있지마는 나중에 촛대조차 옮겨버리면 다 헛일되고 만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러면 이거 내가 그라면 ‘이제는 다 이러니까 다 버렸다. 이제는 다시 하나님의 첫사랑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내가 돌아가는 게 좋아요 이제 여러분들만 보고 자꾸 이래 목회나 하고 있어야 좋아요 첫사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좋아요 뭐이 좋아요? 연결되는 그것이 첫사랑 첫행위로 돌아가서 연결되는 그것을 원치 안하는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봐요. 원한다면 손 들어 봐요. 예, 원해야 돼요. 위해서 기도도 하고 원해야 돼요.

이러기 때문에 마귀란 놈은 요리 틈타고 조리 틈타 가지고 자꾸 이랍니다. 내가 이것이 ‘이제 정말로 서부교회를 내가 정말로 정상적으로 원리대로 진리대로 내가 사랑치 못했으니까 이 속인 것이 되고 말았다. 외식자가 되고 말았다.’ 하는 것을 그러면 서부교회를 사랑함으로 하는 말이요 싫어해서 하는 말이요? 뭐이요? 싫어해서 하는 말입니까? 사랑함으로 하는 말이야. 어짜든지 우리는 깨닫지 못하면 마귀에게 걸려 들어갑니다. 깨달아야 안 걸려 들어갑니다.

교회 주변을 종전같이 수고해 주십시오. 그라고 주일학교 반사 선생님들은 꼭 공과를 외우는 일을 자기 구원하는 일인 줄 알고 외우고 명상을 많이 해야 될 것입니다. 많은 거는 못하지마는 이 공과만큼은 할 수 있지 않겠소? 또 지하철은 기둥을 뽑지 않도록 여러분들이 기도합시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들으시면 말할 것도 없이 자기네들이 그 기둥을 뽑을라고 아예 생각지도 안할 것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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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 참선 중의 회개/ 에베소서 1장 5절-14절/ 1985. 7. 16. 화새벽 선지자 2015.12.28
849 참소하는 혀/ 로마서 10장 13절-15절/ 1986. 7. 14. 월새벽 선지자 2015.12.28
848 참자랑과 어리석은 자랑/ 고린도후서 12장 5절/ 1981. 12. 1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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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 책망과 징계/ 히브리서 12장 5절-13절/ 1983. 9. 10.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844 책망과 징계/ 요한계시록 3장 19절-22절/ 1983. 9. 8. 목새벽 선지자 201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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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2 처음 사랑/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9.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841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4. 6. 수새벽 선지자 2015.12.29
840 처음 행위와 그 효력/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5. 30. 월새벽 선지자 2015.12.29
839 처음 행위와 순서/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8. 5. 29.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9
838 처음사랑을 7가지에서 찾으라/ 요한계시록 2장 1절-7절/ 1987. 9. 28. 월새벽 선지자 2015.12.29
» 처음사랑-처음행위/ 요한계시록 2장 2절-5절/ 1987. 10. 5. 월새벽 선지자 201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