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기원과 그 법칙


선지자선교회 1989년 8월 6일 주전 

 

본문 : 벧전1:13-19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여게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 근신하라, 사욕을 본삼지 말고 너희를 부르신 자의  거룩한 것처럼 거룩하라.' 이렇게 말씀하신 데 대해서 '아주 깊은 뜻이 있는데 좀  깊은 뜻을 여러분들이 스스로 돌아가서 기도하지 않으면 말해 봐야 잘 알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돌아가서 생각하면 깨달을 수 있을 만치 원리를  증거하겠습니다.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 말은 마음을 집중시키라 그말입니다. 마음을 집중시키라  마음을 어느 하나를 두고 전부 거게다가 기울이라 그말입니다. 또 근신하라 말은  조심해라 하는 말입니다.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네 사욕을  표본해서 살지 말아라 하는 이런 말씀을 보면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 우리의  힘써 노력을 함으로 그 노력의 댓가로 구원이 되는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그것을 말을 합니다. 그러면 장성하면 차차 스스로  깨달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 그러면 은혜는 댓가를 내고 받는 것이 아니고  공으로 받는 것이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그 위에는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고 옛날 그 안 믿을 때의 습성대로 살지 말고 자기 주관대로 살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서 이 구원을 이루어 가지라 하는 이 말씀이 있기 때문에 이  모순이 됩니다. 그러면 거게는 '네가 행함으로 인해서 네 구원을 받아라' 이렇게  하는 행함을 강조 했는데 또 그 다음에 보니까 '은혜를 온전히 받도록 노력해라'  그러면 은혜는 공짜배기로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죽도록 힘써라 했으니까 힘써  가지고 힘쓰는 것 가지고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되기  쉬운데 또 말씀하시기를 마음의 허리 동이고 근신하고 네 주관을 표본해서 살지  말고 이래 가지고 은혜를 온전히 바라라 이렇게 말씀을 했기 때문에 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말씀한 것은 이렇게 전심 전력을 기울여서 힘을 쓰는 것이 힘쓰는 그것으로  행동한 그 행동이 하나님 앞에 구원에 상이 된다는 말 아닙니다. 그렇게 전심  전력 기울여서 행동하는 그것이 우리를 사활로 대속하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까지 하여 가지고서 대형으로 사죄, 대행으로 칭의, 대화목으로 화친, 대신  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영생을 가지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활이  대속 네 가지 공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활의 대속 네 가지 공로를  베풀어 주셨는데 이 공로를 자기가 믿어야 믿는 것만치 거게 따른 은혜가  자기에게 오는 것인데 온전히 은혜를 바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사활의 대속을  온전히 믿으라 하는 그말입니다.

 사활의 대속을 온전히 믿는 데는 제가 성경 보고 기도하고 이렇게 믿게 해 달라  하는 이 정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활의 대속을 자기가 믿어지는 믿음을 가지는  데에는 죄에 대해서 확실한 지식을 가지고 사죄가 믿어지고 의에 대해서 확신이  오고 믿어지고 화친에 대해서 또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영생에 대해서 믿어지는  것은 이것은 우리가 성경 보고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내가 인정해야 되겠다  믿어야 되겠다 그것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내가 실지로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죄를 범하지 말아라는 죄에  대해서 말씀하신 대로, 의에 대해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과 화친에 대해서  말씀하신 대로, 또 하나님을 향한 소망에 대해서 말씀하신 대로 이대로 자기가  실행을 하면 거게서 실지로 알게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아보기  전에는, 죄를 범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은 하지 말아라 할 때에 하지  안하면 죄가 없는 것입니다. 금하신 것을 행한 그것이 죄입니다. 하라는 것을  하지 안한 그것이 불의입니다. 또 하나님께 속해서 살게 하셨는데 속하여  그분으로 동하고 정하여 살지 않는 것이 불목이요 하나님으로만 동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과 화친의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해 봐야  알지 해 보기 전에는 모릅니다. 바울이 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자라고 말하고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고 말한 것은 그분이 외식을 해서 거짓부리로 겸손하기  위해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다,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그 아주  무능한 그런 자이다.' 이렇게 말했다고 하면은 바울의 그 말은 아주 외식의  가증한 말이요 교만한 말입니다. 이는 성령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런  거짓부리가 없습니다.

 그는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가 계시를 기록할 때에 말했지마는 진정코 자기는  섞인 것 없이, 나같이 연약한 자가 없다. 나는 죄를 이기는 힘이 하나도 없다.

 의를 행하는 힘이 하나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사도 바울의 모든 행함을 보고서  그는 참 성자며 흠이 없는 사람이며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그 자체의 행위, 그 자체의 행위를 자기가 보고서는 나는 이거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의 행동이요 이거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의 행동이라, 의가 하나도 없다  하는 것을 자기가 실지로 깨닫고 느껴서 솔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거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알기가 좀 어려울 것이오.

 이래서 이 거룩하라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한없는  추하고 더러운 죄악과 한없는 의가 한테 있는 것이 그것이 거룩입니다. 그러면 한  편은 무한히 더러운 추악한 죄악이 가득 찼는데 거기에 한 편은 죄가 털끝만치도  없는, 혼합이 아니고, 죄와 의가 혼합이 아니고 이거는 분류돼 있는 게 아니고  접해 있는데 그 사이는 똑 떨어져서 죄와 의와 구별돼 있어 마치 노아의 방주  때에 물과 노아의 방주는 한테 붙어 있었으나 그 방주의 물의 해를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도 받지를 아니한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거룩하다는 말씀은 하나님은 인간이, 천사와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언제부터 거룩하신 하나님이 됐느냐 하면 마귀가  타락하고 인간이 타락하여서 죄와, 저 O 목사님? 이거 못 깨달으면 헛일이라.

 아주 어려워. 쉬운 게 아니라. 자기는 알라고 노력을 많이 해야 알 것이고 또  이걸 가르쳐서 알도록 할라 하면 상당한 몇 시간 가르쳐야 될 터인데 그렇게  가르칠 시간이 없어. 이러니까 이걸 알고 기도를 하지 안하면 헛일이라.

 하나님이 당초에 계실 때는 완전자십니다. 이랬는데 천사가 타락해 가지고  하늘이 더러워진 것을 천사를 쫓아내서 하늘은 완전한 깨끗한 하늘나라가  됐습니다. 그 쫓겨나온 이 사탄이 우주에 들어와 가지고 인류 시조를 유혹해서  인류 시조가 마귀로 말미암아 완전 타락했습니다. 전적 부패해졌습니다. 세상에는  죄악이 가득 찬 세상입니다. 세상에는 죄악이 가득 찬 세상 이 세상과 하나님과  접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이 세상을 관리하시고 이 세상을 은혜로 보존하시고  구출하실라고 하나님이 하실 때에 세상은 죄로 하늘까지 관영한 세상인데  하나님은 털끝만한 죄의 근방에도 없고 죄와는 죄의 요소라 하는 것은 하나도  없이 완전히 성결하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거룩이라는 요 말의 뜻을 요걸 아주 잘 알아야 되지 거룩이란 뜻이 아직까지 뭐,  이것도 나갑니다. 세계 오늘까지의 근 이천 년 동안 신학에서 나오면서 한 요  거룩의 정의라 하는 것은 바로 나오고 있지를 않았습니다. 바로 나와 있지를  않습니다. 요거 나가면 설교록 읽고 욕을 하고 어짜고 하지마는 자기네들이  똑똑히 생각해 보면은 아따 야 하고서 눈이 바짝 뜨일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심히, 심한 죄악과 심한 깨끗과 둘이 한테 연하여 있는데,  연하여 있는데 거게 감응되지 안하고 감염되지 안하고 혼합되지도 안하고, 마치  그 비유가 잘 안 되지마는 진흙 속에 옥이 있으니 진흙의 국개흙 더러운 것이  암만 그 속에 옥이 파묻혀 있지마는 그 진흙에 더러운 진탕이 옥 속에  들어가거나, 옥에 묻어 있으나 옥에 묻어 있지 안하고 지금도 닦으면 씻으면 옥은  옥대로 그것은 그것으로서 완전히 구별되어 있는 거와 같이 하나님과 죄악이  이렇게 있으나 하나님은 여게 조금도 감염되지 안하고 조금도 거게 타협되지  안하고 조금도 섞여 있지 않고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요 죄는 완전히  더러운 죄로 요렇게 구별되어 있는 그 관계점을 말할 때에 거룩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거룩하라 하는 이 말씀은 너는 죄악을 접하여 있으나 죄악과 하나도  그 물들지 안하고 섞여 있지 안하고 너는 의로 깨끗한 의로 되어 있고 모든  불의한 거는 불의한 걸로 되어 나누어져 있는 그런 경계성을 그 구별성을 가지는  자가 돼라 하는 말씀입니다. 이거 좀 어려우나 이 말만 듣고도 가서 살 사람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제가 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사도 바울이 그는 믿은 지 이후로는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만  자기 몸에서 존귀히 되기를 원했고 또 주를 기쁘시게 하기를 원했고 자기 양심에  가책이 하나도 없다 했습니다. 내 양심에 자책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했습니다.

 양심에 가책되는 것이 하나도 찾지를 못 했으니까 의로운 사람일 것인데  자책하는 것을 찾지 못하면서 자기는 죄인이라는 것 알았습니다. 찾지 못하면서  '이러기 때문에 나는 죄인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 과정을 좀 생각해  볼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마지막에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주를  위해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순교 당한 그 행위를, 행위를 바울이 '나는 이와 같이  주를 위해 순교를 당했으니까 이 순교당한 이것만이야 사실 의롭고 거룩하고  깨끗하다.'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런데 바울이 자기가 순교당한 요거야 깨끗다  할 때는 아직까지 깨끗할 대로 깨끗 해지지를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보고  순교라고 깨끗다 하는데 본인은 그 행사가 무슨 행사냐? 그 행사가 무슨 행사냐?  만삭되지 안해서 낳은 인간의 행위요 또 그것이 만물보다 거짓된 행위요 그것이  죄인 중에 괴수 행위라, 그러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 순교하는 그 숨이 떨어질  때에 그는, '나는 의를 행했다' 하고 그분이 떠나면 그분은 그 거룩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분은 떠나면서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네가 순교했는데  무슨 죄인이라?' '이 모든 참 이렇게 온전치 못한 행위. 내가 순교로 껍데기로  생명은 주를 위해서 바쳐졌지마는 내 눈으로 보는 데에도 미비점이 많고 주님의  도에 거슬리는 그런 점이 많아서 이것 때묻은 옷과 같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이거  다 의라고 이와 같이 지금 호평을 받고 이렇지마는 실상은 그렇지 않는 더러운  죄인입니다. 내가 주님의 대형의 사죄를 의지하지 안하고는 내가 안 되겠습니다.'  사죄를 그로 인해서 입고 대행의 칭의를 입고 예수님의 대화친의 화친을 입고  하나님을 예수님이 대신 소망하신 그 소망을 자기가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자기의 전부를 삼아 안심을 하고 결론을 짓는 그것이 거룩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러니까 어릴 때는 '네가 행위를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말하지마는, 그러기에 인간의 최고의 행위의 의도 완전자이신 그분에게 비추어 볼  때에 전부 가리워지는 것뿐이고 거리끼는 것뿐이고 더러운 것뿐입니다. 이 눈이  밝아서 이걸 보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형 대행 대화친 대생. 부활하신 대생,  '예수님의 공로 아니면 나는 하나님의 공심판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공심판의 어떠함을 깨닫는 자, 이자마다 자기는 자기를 정죄 안 할 수 없고,  자기는 죄인인 것을 고백하지 안할 수 없고 자기의 행한 것은 욥이 말하기를,  욥의 의를 의안 줄 알았는데 욥이 말하기를 때묻은 웃과 같다 이랬어, 추접하고  더러워서, 하나님의 심판을 볼 때에 인간의 자기 행위가 참으로 만삭되지 못한  것을, 온전치 못한 아주 아무런 힘 없는 자의 행동인 것과 또 모두가 전부  삐뚤어진 것뿐이라 하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는 이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차차 깨달을 때 이게 발견이 돼집니다. 이거 무슨 말인고 좀  자세히 들으면 알 수가 있어. 심판에 이 심판은 하나님의 전지자의 입법한  입법인데, 전지자의 입법한 입법인데 전지자의 그 지혜를 어느 구석에 조금만  밝아 보니까 그이의 입법에 대해 가지고서 나는 전부 환하게 정죄로 나타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서 자기의 의가 정죄당하고 의가 정죄당할 때에  비로소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 자기는 도무지 완전한 세계에, 완전한 생명인  영생에 나아갈 수 없단다는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달을 때에 비로소 거룩한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라고 할 때에 자기가 약자라 하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그 말씀대로 심사를 할 때에 자기 행위가  죄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하나님의 선포한 이 복음의 법칙에, 이 법칙은  문서 계시기 때문에 문서 계시는 육십육 권에 기록된 겨우 소량을 가졌습니다. 이  문서 계시 속에 영감 계시가 있으니 문서 계시에 딱 맞춰저 흠과 점이 없는 것이  내 양심에 자책할 것이 없다 이랬는데 영감이 오니까, 영감이 오니까 그게 '전부  만신창의 죄뿐이로구나' 나는 주님 앞에 한 행위가 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자신만만한, 주의 이름과 복음을 위해서 밧모섬에 갇혀  있는 그 사도 요한이가 주일날 뒤에서 소리 나는 소리, 자기가 아직까지 상대해  보지 못한 영감이 뒤에서 나오는데 그 영감을 척 돌아보니까 그 영감으로  말미암아, 눈이 뜨여서, 눈이 뜨여서 일곱 금촛대가 발견 됐고 촛대 사이에 다니는  인자가 발견됐고, 그 보니까, 인자를 보니까 자기가 어떻게 더러운지 못 견뎌서  그만 기절해, 기절해 죽었습니다. 엎어 졌어.

 이라니까 주님이 손을 들어 얹고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전에 너거 살아 있을 때 그때 내가 너하고 사귄 것이나 지금 또 살아난 내나  다른 게 아니다. 내가 그때 네가 지금 발견하고서 나를 보고서 놀라는데 놀란  내가 네가 그때 나를 내게 기대기도 하고 내게 앉기도 하고 깔아뭉캐기도 하고  이렇게 할 그때의 내나 지금 내나 같다. 네 눈이 밝아지니까 지금은 나를 보고서  기절했지. 같다' 그건 그의 눈이 밝아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어데까지 예수님의 이 대속의 공로를 생각할 때에 죽기까지 하셔  가지고서 죄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자가가 생명 다해서 죄의 문제를 해결할라고  노력하지 안할 수 없고 위에 대해서 전심전력 생명 기울이지 안할 수 없고  하나님과 동행에 대해서 전심전력 생명 기울이지 안할 수 없어 다 기울여서  했는데 다 기울여서 해 보니까 '예수님의 대속이 아니면은 꼼짝 못하겠다' 해  보니까, 이렇게 죽자껏 해 보니까 버로소 자기의 연약한 걸 알겠고 자기가 이거는  참말로 완전한 행위라고 했는데 그 완전한 행위라고 한 그 행위를 하고 나서  그로 인해서 눈이 조금 떨어지고 보니까 모든 사람은 완전이라고 세계에서 막  주기철 목사님을 막 이렇다고 완전한 행위라 하는데 눈이 똑 떨어지고 보니까  이것이 만신창같이 더러운 하나님에 거슬리는 이거 죄악이요 불완전한 것이라  하는 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 예수님의 대속에다가 귀속을 시켜서  이제 의를 얻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의 이 사죄를 자기가 깨닫고 사죄를 기념하는 이제 하나님이  금하는 일을 하지 아니할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이제 자기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하지 말라는 것을 한 그 일이 어떻다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그런 요소가  자가에게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씀대로 순종할라고 살라고 해 볼 때에  살았는데 또 보니까 못 살았어. 죽자껏 살아서 이제는 완전인데 또 보니까  아니오. 그전보다 불완전한 게 더 보입니다. 허, 이거 이제 죽도록 충성하고  나니까 이제는 다른 사람이 저는 성자라고 성자 기념비 세운다고 야단을  지기는데 자기 눈이 떨어지고 바꿔지고 보니까 이전 그 행위 할 때보다도  행위하기 전보다도 자기는 더 더러운 자기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더러워져 그렇습니까 눈이 밝아져 그렇습니까? 눈이 밝아져  그렇습니까 자기 행위가 더러워져 그렇습니까? 눈이 밝아져 그런 것입니다.

 어데까지에 네가 의로운 행위 해도 그로 말미암아 내가 눈이 떨어져서 실상을  본다면은, 주님의 사활의 대속이 아니면은 나는 영생을 가질 수 없고 하늘나라를  갈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고 이제 모든 존재들의 중보자가 될 수  없단다는 이 사실을, 어데까지 성결해야 될 건가? 어데까지 성결하면 자기가 눈이  밝아지고 자기가 변화가 돼지니까 압니다.

 이래서 안 믿는 사람들도 말하기를 '성현이라야 능지 성현이다' 성현 생활 해  봐야 성현을 알고 또 성인된 사람은 정말로 안 믿는 사람도 성현된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라도 그 양심의 눈이 밝고 모든 걸 사를 부리지 안하고 공평되게  눈이 밝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가리켜서 성현이라고 말하는데 자기는 진정코  '나는 외식자이다. 다른 사람 내가 속일라고 속인 게 아니라 다른 사람 내 행위에  공연히 깨끗다 하는데 실상은 깨끗지 못하니 나는 다른 사람을 속인 자이다.'  하기 때문에 정말로 자기가 깨끗을 할라 하는 사람은 자기는 죄인으로서 그  사람이 머리 들지 못하니까 세상 사람들은 껍데기만 보고서 '사람이 익으연,  사람이 돼져 익어가면은 곡식이 익는 거와 같이 머리를 숙이게 된다.' 그렇게  말합니다. 억지로 숙이면 그거 교만이오. 억지로 숙이게 되는 게 아니라 진정  자기는 머리 들 수 없는 자기인 것을 발견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래서  거룩한 자가 돼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그저 여러분들이 가저  숙제할 것이고,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그러면 이  거룩하라 말은 거룩하라 말은, 거룩하라 말은 말할 수 없는 죄악을 접해 가지고  있는데 죄악과 하나도 관계 없는 완전 성결을 가지라 하는 그말입니다. 그러면  죄악을 접하여 있는 그 죄악을 접하여 있는 것은 뭘로 압니까? 자기가 죄를  이길라고 함으로써 알아집니다.

 그러니까 마지막에 힘을 쓰면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무능한 자라. 이것을 발견하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잡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그것이 우리들의 완성입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이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아버지라 부르면 아버지라  말은 내가 거게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완전자에게서 내가 나온 자이니까,  완전자에게서 나온 자이니까 내가 완전자가 돼야 되는데 완전자가 돼야 되는데  완전자가 되는 방편은 자기가 완전한 행위를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은, 애를 쓰는  것은 눈이 밝아지는 안약 바르는 것이고 눈이 밝아지는 것이고 눈이 밝아지니까  자기는 뭐 됩니까? 눈이 밝아지니까 자기는 무엇이 됩니까? 눈이 밝아지니까  자기는 의인됩니까 죄인됩니까? 죄인됩니다. 죄인이 되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이 이제 참 필요합니까 안 필요합니까? 필요합니다. 자기는 죽자껏 회개의  생활을 한 그 결과는 자기는 죄인된 것 깨닫고 예수의 사활의 대속이 필요하다는  것 깨닫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의 공로로 이렇게 믿어지는 사람되는  그것이 우리가 온전함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래서, 외모를 보시지 않고 이래 각 행위대로 갚으시는 이 완전자를 아버지라  했으니 너는 완전자에게서 난 완전자의 아들이기 때문에 완전자가 돼야 된다.

 너는 완전자사 될 수가 있다. 완전자가 될 수가 있다 완전자가 어떻게 되느냐?  완전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은 너는 먼저 죄인이 돼야 되고 그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완전자가 되어진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천하에 제일, 기독자로서 천하에 제일 구비하고 제일 죄인 천하에  제일호 되는 죄인이 됐으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활의 대속을 필요로  하기를 제일호로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고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제일호로  힘입는 자가 될 것이고 그 사람은 인생으로서는 제일호로 거룩한 자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분을 아버지라고 불러서 이분 모시고 영원히 살 자이기 때문에 '외모로  보시지 않고' 외모로 보지 않는다 그말은 세상 가치를 그대로 가지고 가서 가치로  보지 않는다 그 말이오. 세상에서 존비귀천의 비판 가치를, 비판과 평가를  하늘나라에도 그대로 비판하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이오. 세상에서 제일  거지인데 그 나라에 부자일 수 있고 세상에서 제일 죄인인데 고 나라에서 의인일  수 있고 세상에서 제일 부자고 의인인데 그 나라에서 가장 천하고 비참한 가난한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준해 가지고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는 자라. 행위대로 갚으시는 자라 그말은  행위에 대한 댓가를 준다 말입니다. 행위에 대한 댓가를 주고, 행위에 대해서 댓가  주는 것이 첫째는 자신이 성화되는 것이 댓가 주는 것이요 또 그 다음에는 모두  소지품 주는 것이 댓가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요것을 여러분들에게  한번 말할라고 합니다.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우리의 살 곳이 아니고 이것은 남의 여관에 든  거와 마찬가지로 지금 남의 집에 잠깐 휴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루밤만 지내면  가야 됩니다.

 가야 되는데, 두려움으로 지내라는 말씀은 첫째 '길가는 나그네인 자기임을,  자기는 길가는 나그네인 자기임을 순간이라도 잃고 언행심사 생활하는 정신  빼앗긴 자기로 순간이라도 살까 두려워하라.' 그말입니다.

 나그네요 행인인데, 나그네요 행인인데 나그네인 것을 모르고 지금 자기는 그  자리 살지마는 자기는 어데로 가든지 향해서 걸어가고 있습니다. 나그네와 행인인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정신 없이, 자기는 지금 나그네니까 이사갈 사람이오.

 자기는 지금 자꾸 영원한 본향을 향해서 찾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이 언행심사의 행동하는 자가 될까 두려워하고, 그러면 나그네와  행인이라는 자기를 잊어버릴까 두려워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여게 모인 사람들이 나그네와 행인이라는 것을 깜빡 잊어 버리고 자기는  이곳이 영주처인 줄 알고 살고 나그네와 행인인 것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벌써  잊어버린지 오래 돼 가지고 잊어버려서 생각조차도 떠오르지 안하고 말도 하면은  그 말이 남의 말같이 들리는 이런 사람으로 되어 이 자리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두려움으로 지내라' 나그네와 행인인 네 자신을 모르고 그렇게 지금  정신 없는 사람으로, 나그네면 지금 곧 이사갈 사람이고 떠날 사람이고 갈  사람인데 이것을 모르고 정신 없는 사람으로 날뛰고 있는 그런 자가 될까  두려워하라.

 둘째로는 '오늘도 출발하라 명령이 떨어지면, 하나님께서 떠나라 하는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떠나야 할 내가 이 긴급하고 절대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세상에서 먼 천 년이나 만 년이나 살 준비에 도취하여 사는 자가 될까  두려워하라.'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명령하면은 떠나야 되는데, 보니까 자기네들도  아주 가정을 한번 이루어 볼라고서 참 자기를 호주로써 희생할라고서 외국에  돈벌러 그건 가다가서 그만 비행기가 추락하는데 그런 줄 몰라. 그거 다  예정이라. 그걸 뭐 모르는 사람들은 뭐 조종사가 뭐 어떠니 뭐 정비를 어찌 했니  하는 그거 다 그리 그리 되는 게 그거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거 명령이라.

명령 받으니까 뚝 떠나.

 우리는 안 떠날 줄 알아요? 몰라요. 꼭 그래야 떠납니까? 신학교에 공부하면서  저녁에 같이 얘기하고 너무 친하니까, 다 남학생들이오. 둘이 아듬고 이래  겨울이니까 추우니까 누웠었는데 아침에 자다 보니까 싸늘한데 보니까 하나가 가  버렸어. 언제 떠날지 몰라. 출발 명령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데 그거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이 세상에서 천년 만년을 살 것처럼 그 준비만 하고 있는 그런 정신  잃은 자가 될까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셋째로는 '영원히 가서 살 영주처에 가서 살 준비는 하나도 않고' 이 영주라  말은 내가 말 들었는뎨 미국 가서 뭐 거기 영주권 타면 거기서 장 살 수  있답니다.

 영원히 산다는, 영원히 산다는 곳을 영주처라 합니다. 영원히 가서 살 영주처에  가 살 그 준비는 하나도 안 하고, 오늘 떠날지 모르는 것이. '그 준비는 하나도  않고 두고 떠날 곳의 준비에만 분망할까 두려워하라.' 영주처에 가서 살 때 '요게  필요하겠다 조게 필요하겠다' 요것을 착착 찾아서 준비한 사람은 준비하는데  그거는 까마득히 잊고 오늘 떠날지 모르는 이 세상의 준비만 이것 저것 자꾸  하는 대에만 분망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 1절에 네가 만일 그리스도로 다시 살리움을 받았으면  구원을 얻은 자이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찾으라. 죽음 너머 영주처에  있는 거기에 요거 없겠다. 고거 준비해야 되겠다. 조거 없겠다 준비해야 되겠다.

 그 준비는 오늘에 할 수 있고 오늘을 놓쳐 놓으면은 다시는 준비 못 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거는 생각지 안하고 오늘 떠날지 모르는 사람이 그저 여기  세상에 항상 살 줄 알고 그것 준비에만 분망한 그런 정신 잊어버린 사람이 될까  두려워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넷째로는 '전지자의 재판 앞에' '전지자의 재판 앞에' 요새도 지금 우리 나라는  참 구원 이루기는 좋은 나라요. 청문회에, 청문회 오는데 보면은 그 모두 판결하는  자들도 거짓말이고 또 판단받는 것도 그렇고 여기 이거 이러나 이것 가지고서  그래도 모두 떨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전지자의 재판 앞에, 전지자의 재판  앞에 나를 송사할 마귀는 쉬지 않고 내게 송사할 것을 찾고 수첩에 적고  있습니다.' 마귀는. 나는 전지자의 그 재판 앞에 내가 서야 하고 서야 되는데 나를  송사할 마귀는 내게 대한 한 건 한 건에 대해서 뭣을 지금 송사할꼬 이렇게  살피면서 제 수첩에다 딱딱 적어 가지고서 지금 송사거리를 지금 장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고 있는데 이 사실에 해결이 오늘 할 수 있으면 있는데, 이 사실에  대에서 해결책은 마련하지 않고 해결책을 마련할 기회는 놓치고 이 세상에 살  것만 가지고서 야단을 치니까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될까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송사하는 것 이것 때문에 오늘이라는 때에 알고 '주님이여.

주님이 이거 내것을 대형해 가지고서 나에게 속죄의 대속을 하지 안했습니까?  내가 이 죄를 이거 범했사오니 이거 대신 맡아 주시옵소서.' 요한일서 1장에  보면은 저희 죄를 고하면 사한다 했습니다. 고하면, 짜다라 뭐 눈물 쭐쭐 흘릴 게  아니라 '주여, 내가 이 죄를 범했습니다. 주님 담당해 주십시오.' 고하면 해결받을  걸 이거 고하지 안하고 그냥 둬 가지고서 하나님의 심판 앞에 딱 닥쳐 놓으면,  고하면 될 놈의 걸 고하지도 안하고 그래 가지고서 이대로 송사를 우리가 받아서  영원히 택한 자라도 그 기능은 심사받아 가지고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네 오른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들랑은 그 오른손을 찍어 끊어 버리고서  전신이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는 것을 가지 말고서 오른손만 찍어버리고 너는  하늘나라 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범죄한 기능이 어데로 간다 말이요? 택한  자라도 범죄한 기능은, 손이야 이 형체야 가지요. 형체야 가지만 이 속에  기능이라는 기능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성경이오.

 이런 문제를 지금 오늘에 해결할 터인데 이런 문제는 해결 안 하고 이 세상에  있으면서 뭐 일년 무슨 구로 살 것 십년 구로 살 것 조금 손해갈 것 이런 문제는  재판 앞에 걸려 놓으면 야단을 지기고, 그 청문회서 정죄해 봤자 그 정죄 몇해 갈  것이요? 뭐 십년 더 가겠소? 우리는 영원히 가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아주  등한히 여기고 생각지도 안하고 엉뚱한 것만 자꾸 생각하고 분망하니까 그런  정신 빠진 자가 될까 두려워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생각할 것은 참 분망합니다. 우리는 바쁩니다. 뭐이 바빠요? 뭐 먹고  살기, 미국은 참 불행스러운 나라요. 행복스러운 나라인데 그 행복스러운 나라가  불행스러운 나라로 화해지고 있습니다. 왜 불행스러운 나라냐? 불행스러운  나라라는 것은 그 나라는 물질주의라 문화가 많이 건설됐으니까 그 하나 없어도  예수 믿는 데는 아무 지장 없는데 인간에게 이 세상 떠날 것에게 필요한 것을  어떻게 구비하다 보니까 시간이 없어.

 그래 거기 사람들은 아이 둘만 낳으면 내외 일 안 하면 못 산답니다. 여게는  혼자만 일해도 뭐 한 여섯 일곱 여덟이라도 실컷 먹여 살리고 있는데 거기는  그렇대요. 너무 생활 수준이 높아서 필요한 것 그런 것 많이 할라 하다 보니까 뭐  시간이 없어요. 밤낮으로 일 안 하면 안 돼. 그런데 그것도 구비할라 하면 한없어.

 구비할라 하면 한정이 없어. 엔간히 하고 말아야 되지.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보다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점을 지금 해결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점. 또 사람들과 나와의 관계점을 해결해야 됩니다. 또  일과 모든 사건들과 나와의 관계점을 해결해야 됩니다. 물건과 나와의 관계점을  해결해야 됩니다. 그때는 자유의 다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자유의 발언권 자유의  송사권이 다 있습니다. 풀 한 포기가 송사를 합니다.

 이러니까 오늘에 이런 것을 주의 대속에다가 고해서 해결지으면 되는데 이걸  까마득히 그런 줄도 모르고 이래 가니까 나중에 가서 여게서 식물이 하나  송사하고 저게서 동물이 하나 송사하고 저게서 사람이 하나 송사하고 양사방  송사가 천도 만도 일어나는데 제까짓 놈이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어떻게 견딜  거라? OOO씨도 그렇게 억센 사람이지마는 이번에 뭐 안기부인가 거게서  구인증을 내 가지고서 끌고 가니까 그때 가서는 안색이 정 달라집디다. 거기 가  봐야 그만 별것 뭐 있겠소? 이래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 이 인인관계 신인관계  물화관계 사화관계 이 관계들이 다 그때 송사가 일어나는데 그때 일어날 때 누가  견디겠습니까? 못 견뎌. 이러기 때문에 '예수 예수 귀한 예수라' 오늘에 이  예수님으로서 내게 잘못된 걸 알아야 그분의 대형에 해결짓지. 내가 하나님에게  순종하지 못한 걸 알아야 그분의 대행에 해결을 짓지. 내가 하나님과 멀어진  그것을 알아야 대화친에 해결을 짓지. 내가 땅위에 땅의 것만 보고, 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살지 안한 그것을 내가 알아야 주님 앞에 내가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살지 안한 죄를 해결하지. 이러니까 우리가 바쁩니다.

 바쁜 것은 이 썩을 것 준비하느라고 바쁜 게 아니라 영원한 걸 준비하기에  바쁩니다.

 오늘에는 뭐 당장 돈 한푼 떡 한뭉텅이 문제지마는 성경에 말했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한 이것은 너희들이 할 염려가 아니다. 이방인들이 할  것이다. 이거는 너희 천부께서 너희들에게 있어야 할 것인 줄 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데 분망하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오늘은 '외모로 모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는 이 말씀을  지금 여러분들에게 증거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으면 속히 속성되는 것입니다.

 굶을까도 두려워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벗을까 두려워하고 우리가 죄가 있을까 두려워하고 의가 없을까 두려워하고  하나님과 서로 벌어질까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향한 소망 아닌 엉뚱한 소망  가질까 두려워해야지 딴거는 두려워할 것이 없어.

 (기도)  주님, 주님이 아시는 대로 우리 안에는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이 마귀가 넣어 준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원죄와 본죄가 가득 차서 하나님 말씀이 이를 뚫고  들어가 새사람에게 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주께서 이 시간에도 나그네된 저희들로 한시 한시 한건 한건에 나그네라는 것을  생각하고 주님 앞에 설 것도 생각해서 두려움으로 일보 일보를 걸어가야 되는 이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방종하기 쉬운 저희들인 것을 주께서 경고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씀하신 두려움의 이 교훈이  새사람에게 박히워서 후회 없는 이 두려움으로 깨어 사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혜를 주시고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악이 가로막아 들어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이 악을 완전히 주의 피와 성령의 능력으로 제해 주시고 이 말씀으로 완전히  새로와지고 견고해지고 장성해지는 저희들되게 해 주시옵소서.

 처음으로 나온 많은 형제들을 위해서 주께서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자녀들이 되었사오니 주님 품 안에서 염려없이 모든 것을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하여 해결짓고 평강과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느라고 수고한 남녀 종들에게도 주님의 그 사랑의 심정으로 그  속에 불이 붙어서 자신을 전부 인간 구원에 투자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권능을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836 처음사랑-처음행위/ 선지자 2015.12.29
835 처음이요 나중/ 요한계시록 2장 8절-11절/ 1986. 5. 23. 금새벽 선지자 2015.12.29
834 천국/ 마태복음 7장24절-27절/ 1975. 10. 19. 제 42과 선지자 2015.12.29
833 천국 가치관/ 로마서 8장 3절-9절/ 1983. 11. 22. 화새벽 선지자 2015.12.29
832 천국 가치관/ 고린도후서 9장 9절-10절/ 1983. 12. 31.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831 천국 건설 명령/ 마태복음 10장 5절-15절/ 1981. 12. 23. 수새벽 선지자 2015.12.29
830 천국 소망-가을 추수/ 야고보서 5장 7절-8절/ 1979. 8. 1. 수저녁 선지자 2015.12.29
829 천국,심령,가난에 힘쓰라/ 마태복음 5장 3절/ 1986. 11. 1.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828 천국-교회/ 베드로전서 5장 6절-14절/ 1983. 9. 25.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9
827 천국보화를 발견한 사람/ 누가복음 10장 25절-28절/ 1987. 11. 10. 화새벽 선지자 2015.12.29
» 천국의 기원과 그 법칙/ 베드로전서 1장 13절-19절/ 1989. 8. 6.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9
825 천국의 기원과 그 법칙/ 빌립보서 2장 1절-4절/ 1976년 12 공과 선지자 2015.12.29
824 천국의 성질/ 출애굽기 19장 12절-25절/ 1986. 12. 6. 토새벽 선지자 2015.12.29
823 천국의 성질/ 요한계시록 21장 9절-27절/ 1986. 12. 30. 화새벽 선지자 2015.12.29
822 천국의 제자/ 마태복음 13장 51절-52절/ 1982. 2. 23. 화새벽 선지자 2015.12.29
821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1987. 5. 5. 화후집회 선지자 2015.12.29
820 천주교-교황무오/ 고린도전서 15장 35절-49절/ 1989. 5. 1. 월새벽 선지자 2015.12.29
819 천주교-교황무오,목회자의 설교준비/ 고린도전서 2장 1절-5절/ 1989. 4. 3. 양성원 경건회 선지자 2015.12.29
818 천직자/ 갈라디아서 1장 6절-10절/ 1987. 6. 3. 수새벽 선지자 2015.12.29
817 철야기도회/ 로마서 4장 1절-8절/ 1985. 12. 31. 송구영신 선지자 201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