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1987. 5. 5. 오후집회 (화)

 

본문:마태복음 13장 24절∼30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을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장 36절∼43절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군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오전에도 증거한 거와 같이 이 가라지를 불택자 지옥 갈 자로 그렇게 보느냐 다 지옥 갈 사람이 아니고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택자들이요 믿는 교인들인데 그 교인 가운데에 마귀의 미혹을 받아 가지고 그 가라지같이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받아서 이렇게 곡식과 같이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고 그 일치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이 가라지는 아예 지옥 갈 사람들이라고 이렇게 불택자로 보는 그런 해석도 있고 가라지나 곡식이 다 하늘나라 가기는 갈 사람인데 다만 그 심신의 기능 구원에 차이가 있어서 그것을 가르친 것이 여게 가라지와 곡식으로 비유해서 가르쳤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것이 문제입니다.

조그만한 누룩 한 덩어리가 들어서 온 가루 서 말을 다 부풀어서 썩어지게 하는 거와 같은 것이 천국에 있는 이 사실이다, 하나님의 교회에 있는 사실이다 그렇게 누룩 비유를 가지고 또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이래 보나 저래 보나 하는 이 한 문제에서 틀리고 바로 되는 그것이 되겠습니다. 이 비유 하나를 가라지는 아예 불택자 지옥 갈 사람으로 그렇게 보는 해석과 또 이 가라지를 다 택함받고 중생된 사람으로서 건설구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이렇게 보는 것과 이 두 가지가 있겠는데 이 두 가지 중에 일반 교회에서 다대수는 가라지는 지옥 갈 사람이요 또 그 곡식은 아예 천국갈 사람들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다대수가 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문제되는 것은 그것이 하나 잘못되면 곧 누룩이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이래 봐서 잘못될 수도 있고 저래 봐서 잘못될 수도 있는데 잘못되면 누룩이 되어지니 그 한 교리와 신조에서 전부가 다 부패해질 수 있고 또 바로 되는 데에서 구원을 잘 이루어 갈 수도 있게 되기 때문에 이런 것은 문제입니다.

뭐 그것만 그렇게 보면 없는 양 하고 그만 그라면 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지마는 없는 양이 안 됩니다. 이거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또 열 처녀 비유에도 거게 슬기 없는 미련한 다섯 처녀는 지옥 갈 사람들이라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천국 갈 성도들이라 이렇게 보는 것이 일반 모든 교회들이 보는 것입니다. 거의가 다 이렇게 봅니다. 그것도 이게 맞으나 저게 맞으나 둘 중에 하나는 맞지 둘 다 맞을 리는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도 틀리면 그거 하나 가지고 그것이 누룩이 되니까 그 하나 틀림으로 모든 신앙이 다 틀려질 수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7장에 거짓 선지자들을 보라고 말씀하시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내가 주의 이름으로 능한 일도 하고 선지자 노릇도 하고 또 모든 귀신들도 쫓아내고 이렇게 했는데 나를 용납하시옵소서” 주님이 “내가 너를 모무지 알지 못하노라 내가 너에게 밝히 말하노니 하늘에 계시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구원을 얻는다” 하는 이 성구도 이렇게 해석하나 저렇게 해석하나 아무나따나 해석해도 괜찮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것도 누룩이 될 수 있습니다. 그거 삐뚜르게 잘못 해석하면 그게 누룩 됩니다.

그것을 거게 지옥 가리라 그렇게 말한 그 구원을 기본구원을 가리킴이 아니고 건설구원 곧 행위구원을 가리킴이라 이렇게 보는 것과 또 그것을 영육의 구원과 멸망으로 그렇게 보는 것은 이는 천지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그런 데 대해서 어떻게 보는 것을 옳다고 확정을 지우고 있습니까? 그저 이래도 저래도 상관 없는 것은 거게 대해서 관심이 없고 거게 대해서 자기는 관계까지도 가지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거는 두말 할 것 없이 그거는 다 그 밑에 쓰레기로 따 쓸려 나갈 것들입니다.

그런 것을 다른 사람이 가르치는 대로 따라가는 것도 좋지마는 그 가르치는 그것으로써 다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거기 대해서 깊이 양심을 써서 생각하고 또 자기 신앙 경험 체험에서 자기가 경험해 보고 연구해 보고 이렇게 해서 영원한 멸망과 구원이 거기 있는 것인데 그렇게 경솔히 예사로 여겨서 취급한다는 것은 너무도 이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연고입니다.

여게도 그러합니다. 이 가라지 비유에 대해서 일반은 가라지를 다 지옥 갈 사람으로 그렇게 봅니다. 왜? 여게 가라지는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며 있으리라 그때에 의인들은” 이러면 여게 “이를 갈며 있으리라” 하는 것은 비유로 가라지를 말한 그 사람들 아닙니까? 이거는 틀림 없지요? 여게서 또 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가라지를 가리켜 말한 것은 틀림없지 않습니까? 그거는 틀림없지요? 그런데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러면 이것은 다 멸망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하는 말씀이 아니고 멸망과 구원을 미래에다가 두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미래다가 두고 우리에게 하신 말씀인데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서 후회 없는 걸음을 걸을 수가 있고 귀 없는 사람은 듣지 못해서 멸망할 그 조건으로 여게 붙여 놨습니다.

그러면 여게 멸망과 구원이 확정지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미결로 되어 있어서 이렇게 저렇게 좌우로 요동성 있는 문제인 것으로 여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 됩니까? 이 면을 여러분들이 좀 생각할 것, 또 “넘어지게 하는 자와 불법을 행하는 자” 불법은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하지 안하고 어긴 것, 어겨 산 것, 또 넘어지게 하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신앙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신앙에 손해를 보인 사람, 이 사람은 다 유황불 구렁텅이로 가니까 이것도 자기가 실지로 당할 것을 생각하면서 연구해 보면 또 문제가 되겠습니다.

그러면 자신은 그 지금 어데 속해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이것을  내 마음은 가라지도 천국 갈 사람이요 또 곡식도 천국 갈 사람들을 비유했다 둘 다 택한 자요 다 중생된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은 자들이다 나는 이렇게 깨닫고 이렇게 믿고 있고 또 이렇게 지금 강하게 주장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버물버물해 가지고 그렇게 확정지우는 말을 하지 안하고 오전에 지나갔습니다. 그 양심에 아무래도 가책이 돼서 이것을 또 어떻게 놀려질지라도 말을 해야 되겠다 해서 또 오후에 이 문제를 들고 나와서 말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자세히 양심을 써서 자기에게 당한 일이니까, 자기에게 당면된 일이요 바로 남의 일이 아니고 바로 자기가 지옥 가느냐 천국 가느냐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그저 지나가는 말로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는 그런 낙관시하고 이것을 규정지울 수가 없는 일인 줄 압니다.

불법하는 자는 전부 다 지옥불로 보내고 또 형제를 굳게 세우지 못하고 도리어 신앙을 흔들어서 흔들리게 하는 자는 다 지옥 간다고 이렇게 말씀해 놨으니 그러면 그 사람들은 아예 불택자로서 다 지옥 갈 사람들이 다, 영육간에 다 지옥 갈 사람들이다 이렇게 본다고 하면 여게서 불법에 걸리지 아니하고 또 남을 넘어지게 하는 일에 걸리지 안하겠다고 자기의 과거와 현재까지의 생활에 대해서 자신있는 사람 한번 손 들어 봅시다, 자신 있는 사람? ‘내야 뭐 그 심판이야, 그 심판은 내게는 상관 없다. 나는 거게는 완전 통과자다.’ 이렇게 자신있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자신있는 사람 저기 한 분 있는데, 녜, <주:손 든 사람이 대답으로 사죄의 공로가 있는 것을 주장함> 녜, 물론 우리가 사죄를 받습니다. 사죄를 받는데 중생된 영은 객관 역사로 사죄를 받고 이 심신 이거는 사죄받는 것이 성경에 본인이 잘못된 것을 회개하고 다시 범죄하지 안해야 의가 되지 범죄하면 또 더러워진다고 했습니다.

<주:손 든 사람이 다윗의 예를 들면서 계속 주장함> 녜, 다윗이 그가 범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만족할 수 있는 회개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등용하신 것이지 하나님의 대속의 사죄만 가지고 등용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죄는 예수님의 대형 대행의 사죄나 구약 성도들이 짐승을 잡아 가지고 대형 대행의 사죄나 꼭 같은 성질과 권위를 띠고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그 일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모두가 미완성으로 있다가 이제 예수님이 완성하고 난 다음에는 다 그것이 완성이 됐습니다.

그래서, 다윗도 자기가 범죄한 것을 침상이 눈물에 떠내려가기까지 그 피골이 아주 상접하기까지 그렇게 회개를 하고 하나님 앞에 사유함을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사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범죄한 것을 주님에게 고하면 그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해 주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죄를 범하고 난 다음에 회개한다는 것이, 그 회개한다는 것이 그것이 어느 정도 실상이 있느냐? 자기가 범죄한 것을 회개를 한다고 해도 지식의 차이로서 그 사람은 회개한다고 하는데 조금 더 성경을 넓게 깊게 아는 사람이 볼 때는 또 회개가 안 됩니다. 또 자기는 완전히 회개를 했다고 해도 또 그 사람이 어떤 때에 은혜를 받으면 자기에게 또 다시 그 죄가 나타납니다.

이러기에 사람이 회개로 하나님의 사죄를 받는다 하는 그것은 회개로서 하나님 앞에 사죄받는 그 회개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죄 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은 영과 육 이 두 가지가 있어서 영은 하나님께서 단번에 사죄해 가지고 중생시켜서 영생으로 그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심신은 자기가 그 범죄를 할 때에 그것을 주 앞에 고해서 사유함을 받는다 할지라도 백체 중에 한 지체가 범죄하면 그 백체가 다 지옥에 가고 한 지체가 범죄한 그 지체 그것을 회개를 하든지 그렇지 안하면 끊어버리면 백체가 그 한 지체 때문에 다 지옥 갈 것을 한 지체를 끊어버릴 때에 남은 지체는 천국에 간다 하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러면 사람이 그 범죄되는 것이 현실 현실을 따라서 되는데 그 현실에서 범죄하지 안하고 의로운 생활을 했다 할지라도 어느 한 부분이 불법되어 있을 때에는 그것 때문에 모든 의를 행한 것까지도 다 미결로 되어 있어서 완전히 죄와 완전히 관계가 끊어져야 그다음에 비로소 사죄를 받아 가지고 하늘나라 간다 하는 것을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가기는 가지마는 사람들이 그것을 회개를 하면 됩니다. 잘못된 것을 알고 자기가 하나님 앞에 사과하고 그것을 다시 하지 안할 때에 회개가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잘못된 그것을 하나님 앞에 고해서 사유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끊지 안하고 계속해서 다시 범죄하면 그 사죄받은 것이 다시 정죄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이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달라서 건설구원은 그것을 행위구원이라고도 하는데 그 행위구원은 자기가 이 그리스도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을 부인할 때에는 그 대속이 그에게는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인정하고 이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입고 있을 때까지만 그 대속은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사람이 현실에서 대속을 입고 현실을 살았으면 그 현실은 대속을 입고 살았기 때문에 그것은 행한 것이 의가 되겠습니다. 대속을 입고 살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행위가 행위 자체가 의로운 것이 아니고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믿고, 입고 살았기 때문에 의가 된 것입니다. 자기가 그 행함으로 의가 된 것은 아닙니다. 입고 벗지 안할 때에 예수님의 대속은 그에게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행위구원에 있어서는 우리의 행동이 거게 부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일이든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 이것을 대속을 입고 벗지 아니하고 자기가 이 대속을 부인하지 안하고 이 대속 때문에 어려운 난제가 올 때도 이 대속을 버리지 안하고 내어주지 안하고 이 대속을 그대로 자기가 입고 있을 때에만 한해서 예수님의 대속은 건설구원에 있어서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현실에서 이 대속을 현저히 자기가 세상의 어려움을 인해서 벗어버려 버리고 행동을 할 때에는 예수님의 대속을 아무리 말해도 입혀주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무슨 죄를 짓고 주님 앞에 잘못된 것을 고하면 사함 받고 또 잘못된 걸 고하면 사함 받고 그런 것 아닙니다. 잘못된 것을 고하면 사함 받고 그다음에는 잘못된 것은 고해 가지고 사함되지 않습니다. 그다음에는 그 행동을 하지 안하고 고쳐야 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알고 범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고범죄는 사함 받지 못한다” 그렇게 말씀한 것은 제가 죄를 범하고 주님 앞에 잘못됐다고 고한 것은 죄를 알았기 때문에 고했습니다. 잘못된 걸 알았기 때문에 고했습니다. 그러면 사함 받습니다. 사함 받으나 그 다음에 범하는 죄는 모르고 짓는 죄가 아니라 알고 짓는 죄요 고범죄요 이 죄는 사함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 죄는 사함 받지 못하면 그 죄로써 지옥을 갑니까? 사함 받지는 못하나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고치면 이제 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돌짝밭에 뿌린 씨나 덤불밭에 뿌린 씨 그 씨는 결실을 못했다, 옥토에 뿌린 씨는 결실을 했다. 결실한 것을 우리는 구원으로 보고 결실치 못하고 허사한 거는 실패로 봅니다. 그건 멸망으로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한 사람의 그 행동에서 의의 부분도 있고 불의의 부분도 있고 이렇게 있으나 많은 의의 부분이 불의의 부분 그 하나 때문에 다 미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한 지체를 끊어버리기 전에는 온 몸이 지옥 간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끊어버리면, 안 끊어버리면 온 몸이 지옥 갈 터인데 그걸 끊어버려 버리면은 남은 지체는 다 하늘나라 간다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면 의를 행해서 많이 행해서 의를 저축해 놨다 할지라도 그것이 구원이 되지 안하고 미결로 되어 있다면은 어찌 되느냐? 녜, 미결로 되어 있으면 그 사람이 끊어버리든지 그것을 회개해 버리든지 어쨌든지 자기가 아는 대로의 하나님의 요구대로의 전신 회개가 돼야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전신 회개가 되기 전에는 회개된 그것도 다 미결로 되어 있다가 전신 회개될 때에 그것이 회개되는 것이고 전신 회개가 안 되면 그 부분을 끊어버릴 때에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많은 의를 해 놓고 전부를 다 회개치 못했다 할지라도 마지막에 죽을 때라도 이제 그때는 다시 세상에 살 소망이 없기 때문에 회개 못 할 것이 없겠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다 회개를 해서 완전히 청산해서, 끊어버리지 안해도 끊어버린 거와 같이 거게 대한 죄의 것을 자기도 완전히 알게 그것을 단절했고 또 주님 보시기에도 완전히 단절이 됐으면 비단 끊어버리지 안해도 그것을 다 회개한 것이 되니까 그때에 그것이 완전으로 합격이 돼서 구원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회개라 하는 것은 우리 사람 주관에 있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객관의 은혜이기 때문에 ‘내가 오늘에는 이렇게 하다가 그럴 때까지 머물러 있을지라도 그때에 내가 회개하고 세상을 뜨면은 요 회개하지 안한 요 부분은 의는 되지는 안하지마는 요것이 내 전신을 정죄해 가지고 지옥 보내지는 못할 것 아니겠느냐? 요러면 요거는 내 구원에 평소에 되어 놓은 것은 그 구원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겠느냐?’ 이러니까 그런 것을 낙관시하고 자기가 어떤 그 한 범죄를 하는데 그것은 회개를 하지 못하고 늘 있으나 살아 있을 걸 생각하니까 못 하는 것이지 이제 지금이야 죽는다 생각하면 그거 다 회개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내가 이래 가지고 있다가 그때에 마지막 죽을 때에 재빠르게 솜씨 있게 빠르게 내가 그것을 완전히 단절하는 회개를 하고서 가면 되겠다’ 요렇게 생각하고 속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회개는 그러면 그 사람은  회개 그것이, 회개 그 권위가 자기에게 있다고 보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에게 있다고 보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있다고 보는 그 사람을 낱낱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이 영원히 보전하시기 위해서 그런 사람이 회개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게 하나님이 하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의 행위구원에는 결실도 있고 결실을 못 한 사람도 있고, 이러기 때문에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는 이것이 행위구원입니다.

또 “육체로 심는 자는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 심은 대로 거두리라” 하는 이것도 행위구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반석 위에 짓는 집과 모래 위에 짓는 집으로서 모든 창수 나고 바람 부니까 그 넘어짐이 큰 것도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이고 또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넘어지지 않는 것도 행위구원을 말하는 것이고, 또 집을 짓는데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지어서 그것이 불타면 해를 보아서 구원 얻으나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거와 같고 또 그 공력이 남아 있으면 상을 받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이것도 자기의 일생 동안 행위 건설이나 자체 그 심신의 기능 건설이나 모든 사건 건설에 대해서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비유보다 실상은 더 정확합니다. 비유가 이러하거든 그 실상은 더우기 정확합니다. 거게는 그 행위가 잘못됐을 때에 다 그것이 불타지고 바로 될 때에 그것이 온전해진다 그런 것을 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우리가 의를 행했다 할지라도 그 의 행한 것이 우리 행한 그 의 자체만으로서는 그것은 하늘 구원에 참석할 만한 그렇게 의롭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를 행한 것을 이거는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심판에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를 행한 것이 그리스도가 인정하면 됩니다. 인정하면 의로 등용됩니다. 그러나 인정하지 안할 때에는 의로 등용되지 못합니다.

의로 인정하실 분이 선포하기를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제몸같이 해야 영생이 된다” 요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없다”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사데 교회에는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네 행위에 온전한 것을 찾아보지 못했다”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면 예수님의 대속을 했기 때문에 사죄 칭의 화친의 대속을 해서 우리의 영은 단번에 구원 얻었고 그 후에 실수가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생으로 중생했습니다. 다시 죽지 안하는 생명으로 중생했습니다. 그것은 다시 범죄하지 안하는 생명으로 중생했다는 그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신은 영혼의 탄식거리요 성령의 탄식거리요 하나님의 탄식거리인데 그 탄식은 뭣 때문에 탄식하느냐? “곧 몸의 구속 양자됨을 기다리는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몸의 구속 양자됨을 기다리노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정죄받은 것이 아니고 인정하고 그대로 살아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 모든 이렇게 능한 일도, 기적도, 귀신 쫓아내는 일도, 선지자 노릇도 이렇게 했지마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그것만 천국 가지 그 외의 것은 천국 갈 수 없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자기 현실 생활에서 천국 가는 그 심신 기능으로 현실 통과할 수도 있고 현실 통과를 그 심신 기능이 마귀와 세상과 죄하고 합작이 돼 가지고 그거하고 합작이 돼서 그대로에 현실 살면서 ‘주여 주여’ 하고서 `주님이 나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나는 믿습니다’ 하는 것 가지고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기 때문에 “네 행위의 온전함을 내가 보지 못했다. 온전해야 살게 되는 것이다.” “다해야 영생을 얻는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이 대속해 줬기 때문에 대속의 공로를 믿으면 된다’ 이렇게 하는 주장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대속의 공로를 믿음으로 주장하면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다 믿으면 다 되는데 “행한 대로 갚으리라” 하는 것은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러기 때문에 우리 이 건설구원이라 하는 것을 너무 낙관시하고 있는 데에서 마귀란 놈은 대수입을 봅니다.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는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야 이 건설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체험합니다.

생명 안 내놓으면 범죄하지 안할 수가 없고, 생명 안 내놓으면 마귀를 대항할 수가 없고, 생명을 안 내놓으면 죄를 안 지을 수가 없는 그런 단계를 우리는 얼마든지 경험하고 얼마든지 체험합니다.

이런데,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서 고해서 사함받으면, 녜, 예수님의 대형 사죄는 완전 사죄입니다. 그보다 더 깨끗한 무죄가 없습니다. 대행의 의는 그보다 더 의로움이 없습니다. 인간들이 암만 행해 봤자 그 대속의 사죄와 칭의에 참 억억만분의 일도 안 됩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가고 다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하늘나라로 다 인도한 자들을 예수님께서 그를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느냐, 어느 정도 대속을 네가 믿고 있었다고, 대속을 네가 보수했다고, 대속을 인정했다고, 소망했다고 주님이 인정되는 대로 갚아주기 때문에 그 심판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심판은 사심판입니다.

그러기에, 일반 사람들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가 구원 얻는다” 하는 이것을 다 주장을 하고 있는데 또 성경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래야 천국이 네것이 된다” 이런 성구는 우리가 또 어떻게 해서 해결해 버릴 건지?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둘로 나누는 것입니다. 둘로 나누면 성경이 다 해석이 됩니다. 하나는 기본구원 하나는 건설구원으로 둘로 나눠 가지고 기본구원은 순전히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기본구원은 얻는 것이고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을 얻은 자가 기본구원의 은혜의 도움을 입어 가지고 제가 건설구원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기본구원의 도움을 입는다는 것은 사죄 칭의 화친이 되었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령 받은 것도 또 진리 받은 것도 예수님의 공로 받은 것도 우리가 중생한 것도 이거 다 기본구원입니다. 이거 기본구원입니다. 이 기본구원 받은 이 은혜를 힘입어 가지고, 이 은혜를 멸시하지 안하고 이 은혜를 입고 있으면 만능입니다.

이 은혜를 입고 이 은혜를 벗지 안하고 이 은혜를 입고 있을 때에 그 은혜는 저에게 효력을 결실하고 만일 이 은혜를 어려우면 다 집어던져 버리고 그저 입술로만 믿는다는 그거 가지고 이 은혜의 능력을 힘입지 않고는 건설구원을 이룰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건설구원도 이것도 근본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전적 은혜이지마는 은혜 받은 사람된 제가 거게서 가담돼 가지고 이 기본구원이 구원 받은 그 사람의 그 심신과 영육을 작용시켜 가지고 자기 행동을 첨부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이루는 구원이기 때문에 행위구원이라 건설구원이라 성화구원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의 구원과 이 건설구원을 나누어서 주님의 대속으로 전적 구원 얻는 구원은 기본구원이요 영의 구원이요 예수님의 대속을 입고 대속 입은 본인의 행위가 거게 첨부돼 가지고, 행위나 자기 것은 아니고 은혜를 받아 그 은혜를 입어 그 은혜 입은 은혜의 능력을 자기가 이용하고 활용하고 그 능력으로 실지로 생활해 가지고, 기본구원 얻은 그 구원의 생활을 해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건설구원이요 행위구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행위구원은 자기 행위가 가담되지 않고는, 자기를 통한 건설이 아니고는 건설구원은 안 됩니다. 자기는 아무 상관없이 예수님의 대형 대행 대화친의 대속을 했기 때문에 그를 믿고 ‘사해 주옵소서’ 하는 한 마디로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아까 말한 그분 말이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해서 한번 분리해 봤습니까? <주:기본구원과 건설구원에 대해서 자기의 의사를 설명함> 녜, 그러면, 그러면 그것이 자기가 행해야 된다 말입니까 행함은 상관없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만 밀어붙여야 된다 말이요 무슨 말이요? <주:계속 자기 의사를 설명함> 그거는 그라면 그거 뭐입니까? 그것이 자기가 행해야 된다 말입니까, 말로만 된다 말입니까, 예수님의 대속만 믿으면 된다 말입니까? 그러니까 아까 말한 것은 자기 말한 것은 다 모순이라 그거는 이제 지금 하는 말은 고친 말이고 아까 하는 말은 잘못된 말이라 그말이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만 된다 그말이 잘못된 말이라.

지금은 인제 바로 깨달았어.

그러기에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죽을 때까지 술먹고 죄짓고 살던 그 사람은 건설구원이 없고, 또 회개해서 고친 사람은 건설구원이 있고, 많이 고친 사람은 많이 있고, 의를 많이 행한 사람은 많이 있고, 고친 것은 수치가 없어지는 것이고 행하는 것은 영광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해가 됩니까? 그분 손 들어 봐. 이해됩니까?  이 집회에 몇 번 참석했어요?  그러니까 그 엉뚱한 소리 하지. 자꾸 와. 자꾸 와야 돼. 안 오면 안 돼요. 공연히 다 알고 있는 거 힘을 뺏지.

그래, 우리는 어떻게 작은 누룩이 가루 서 말에 넣어서 다 서 말을 부풀게 한다.

이러기 때문에 한 교리와 신조를 잘못 깨달으면 그것이 들어서 다 멸망을 받게 된다 이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단자가 다 이단이라 이단자 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만 잘못됐으면 잘못된 그놈을, 다른 사람들이 잘못됐다 하고 회개하면 되는데 잘못되지 안했다고 또 변증하고, 변증할라 하니까 저는 저대로 거게 성구를 주 끌어대 가지고 제 주장하는 것이 맞도록 할라 하니까 자기 잘못된 깨달음, 잘못된 깨달음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아는 대로의 성경을 끌어다가 거게 일치되게 들어붙입니다. 열을 붙이면 열이 틀렸고 백을 붙이면 백이 틀렸고 이래 가지고서 이단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 틀리면 전부가 틀린다. “지극히 작은 것 불의하면 큰 것도 불의해진다” 이것이 어데든지 통하는 진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태복음 7장에 거기에 천국 간 데 대해서 말씀하는 것도 이것은 기본구원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행위구원에 대한 말씀이다. “아버지 뜻대로 행하지 안하면” 했기 때문에 행위구원 아니냐? 우리의 기본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을 근거로 하지 인간의 행위는 거게 하나도 섞여 있지 못하다. 인간의 행위가 실라끈만치만 섞여 있어도 다 그것은 지옥 가 버리고 만다. 안 된다. 순전히 인간의 행위는 없고 하나님의 대속의 은혜로만 가는 것이다.

이런데, “아버지의 뜻대로 행한 자라야” 했기 때문에 행위구원이다 하는 것을 단정짓는 것이, 구원이면 한 범벅으로 ‘구원은 하나다. 왜 쪼개느냐?’ 모두 비판하기를 ‘백 목사는 쪼개는 게 탈이다. 뚤뚤 뭉쳐서 도매금으로 하지 않고 왜 쪼개느냐?’ 그 쪼개지 안할 걸 쪼개면 그것도 참 죄입니다. 쪼갤 걸 안 쪼개면 안 됩니다.

의사가 공부를 할 때에 머리 몸, 외과 내과 이래 뭐 쪼개야 되지 내과인지 외과인지 한테 범벅으로 해 가지고 내과 다스리는 것을 외과대로 다스리고 외과 다스리는 것을 내과 다스리는 대로 다스려 버리면 다 죽여버립니다. 알겠습니까? 이래서 그것은 건설구원을 말한 것이다. 건설구원을 말했으면 그는 자기가 하나님에게 쓰여져서 이렇게 저렇게 모든 능한 일을 했다 할지라도 실은 하나님의 도구로 이용당해서 일은 할지라도 자기 인격 자체로서는 부정하면서 하기 싫은 설교도 합니다. 하기 싫은 목회도 합니다. 하기 싫은 목회를 해도 그것은 목회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네 자체 구원은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해서 간절히 네가 소원해서 할 때에 네 구원 된다” 요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것도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으로 분리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요게도, 요 가라지와 곡식에 대해서도 건설구원 기본구원을 분리해서 요게는 요 행함을 말했기 때문에, 뭐 왜 행함을 말했어? 넘어지게 하는 자 불법하는 자 그게 행함 아닙니까? 행함을 말했기 때문에 요거는 행위구원에 대해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요거는 행함이 없어도 그 사람이 택한 자면 다 천국 갈 수 있다.

가라지라고 해서 지옥 가는 것 아니다. 가라지라도 택한 자는 천국 갈 것이고 아무리 곡식 노릇을 했다 할지라도 불택자면 지옥 간다. 요렇게 구별을 딱딱 하는 것이 요것이 교리적으로 완전한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오늘도 어려운 걸 받았는데 우리가 ‘안 믿는 사람들은’ 하면은 그 사람들 다 노여워할 것이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이야 내비 둬 버리고 우리 자신을 말합시다. 우리 자신이 안 믿을 때에 희로애락 지정의 모든 행동 다 했습니다. 행동했는데 그때 영이 가담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안 했다고 아는 분 손 들어 봅시다. 안 했습니다. 영은 죽어 있었소. 죽어 있어 기능적으로는 없는 거와 같이 기능 역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랬는데 그 심신의 기능만 해도 희로애락 지정의를 가지고 비판 평가해서, 보니까 육체라 하는 그것이 이단 노릇도 하고, 당도 짓고, 시기도 하고, 질투도 하고, 미움도 가지고, 욕심도 부리고, 계획도 가지고, 희로애락도 다 하고, 자, 믿는 사람도 영 빼놓고 육 그놈만 가지고 이거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는 걸 성경이 말합니까 안 말합니까? 이러니까 그놈이 하늘나라 하나도 가지 못하고 전부 똘똘 뭉쳐서 지옥에 가 있으면 그놈이 울고 불고 원망하고 탄식하고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그러면 여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게서 울며 이를 갈며 있으리라” 이 문제 때문에 가라지는 전부 다 지옥 갈 자들이다 이렇게 해석을 안 하면 안 되는 그런 구애를 받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거게서 자유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귀를 좀 뚫어요. 열어요, 이제. 이래 가지고 아무나따나 용납하지 말아.

그래, 조그만한 누룩덩어리 하나가 온 가루를 부풀게 해요. 부풀고 나면은 그다음에 뭣 됩니까? 부풀고 나면 뭣 합니까? 부풀고 나면 뭣 되지, 부인들이 잘 알지요? 부풀고 나면 어찌 됩니까, 냅두면? 여기 ○집사님, 부풀고 나면 어째요? 가루에다 누룩 넣어 가지고 부풀고 나면 어째, 그래 냅두면? 그래 냅두면? 변질돼요? 변질되다니, 나는 모르겠는데 무슨 소리인지? 변질이 무슨 말이요? 썩습니까? 그래 말해야지. 썩어. 썩어. 썩어. 쪼그만한 잘못된 깨달음이 있으면 전구원이 썩어버린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아야 합니다! 암만 놀랄 만한 일이지마는 무관심해. 거기서 별로 느끼지를 안해요.

그래,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중대한 문제 열 처녀 비유 문제 뭐 이런 게 꽉 찼습니다. 또 여게도 지금 이 가라지 문제 이런 것 다 큰 일인데, 그거 아십시오.

행위를 근거하거든 행위구원인 줄 아십시오. 행위를 근거하거든 행위구원인 줄 아십시오. 예수님의 은혜를 근거하거든 기본구원인 줄 아십시오. 알겠습니까? 언제든지 행위로 인해서 이리 되고 저리 된다, 행위가 구원 좌우의 근거가 될 때는 그 구원은 행위구원이요 영의 구원 기본구원이 아니라는 것을 단정을 지우십시오. 마귀의 미혹에 빠지지 마십시오. 그 단정을 지우십시오.

이것도 참 성경 천 독 읽어도 제가 모르는 자는 몰라. 왜? 성경을 많이 읽는데 왜 몰라? 왜 몰라요? 모르는 이유가 어데 있어요? 뭐? 믿음이 없기 때문에? 뭐라 하노? 귀가 없기 때문에. 녜, ‘귀가 없기 때문에’ 그 말도 괜찮애.

괜찮은데,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말에 거하면” 그거 무슨 소리요? 말씀대로 산다 말입니다. 말씀을 떠나지 않는다 말이오. 내 말에 거한다면은 그 말씀 안에서 행동하고 말씀 안에서 생각하고, 그러면 말씀을 떠나지 안한 언행심사라 그말입니다. 행함 아닙니까? 그러면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예수님 닮는다는 말 아닙니까? 참 내 제자가 된다 말은 예수님같이 성화된다 말 아닙니까? “진리를 알지니” 변화가 돼야 진리를 압니다. 변화가 돼야 진리를 압니다.

변화는 어데서 변화됩니까? ○○○씨? 어데서 변화됩니까, 변화는? 어데서 변화돼요? ‘내가 권사됐으니까 이제는’ 안 돼. 어림도 없어. 그거 가지고 되는 건 아니야. 변화는 어데서 돼요 말해 봐요, 변화는? 변화는 어데서? 행함에서.

자,변화는 행함에서!변화는 행함에서!변화는 행함에서! 행해서 변화되면 또 뭘 알아요? 진리를 알아요. 그 진리는 새 진리입니까 자기가 “내 말에 거하면” 하는 말씀대로 행한 그 진리입니까? 녜, 행한 그 진리인데 행하기 전에 그 진리를 알고 행하고 나니까 그 진리가 새로 알아집니다.

알겠습니까? 새로 알아지는데 어떻게 알아지는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이제는 아는데, 아는데 어떻게 아는가? 자유할 수 있는 능력의 진리로 알게 됩니다. 자유할 수 있는 능력의 진리로 알다니? 껍데기 논리 법칙의 진리 속에 영감과 하나가 됐습니다. 알겠습니까? 영감과 하나가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문서 보고 잘 맞추어서 안식일날이면은 씨를 심으는 일을 하지 안할라고 닭을 모이도 안 줬어. 그렇게 지켰어. 그렇게 지켰지마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서 예수님도 정죄했고 성도들도 정죄해서 죽였습니다.

그것은 뭣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것은 자기가  문서 진리인 이 진리를, 문서 진리를 법도로만 지켰고 제도로만 지켰고 자기의 규범으로만 지켰지 진리의 주인공이 되신 하나님을 생각지 안했어. 이래서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하는 것은 이것은 주님의 말씀 안에 있어도 주님을 중심해 가지고 해야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에도 율법으로 지키는 자가 있고 또, 율법으로 지키는 자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에 주님으로 인하여서 지키는 경건으로 지키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데 율법으로 지키는 자도 있고 경건으로 지키는 자도 있습니다.

있으니까, 아무리 여러 수백 독을 해도 몰라. 모르는 것은 말씀을 실행하지 않기 때문에 몰라. 대개는 실행하면 아는데 실행을 해도 몰라. 실행을 해도 몰라. 왜 실행하는데 왜 모르는고? 왜 실행을 해도 왜 모르요? 실행을 해도 왜 모르지? 한 자리에서 둘이 꼭 같이 실행하는데, 매도 꼭 같이 돌리는데, 한 방에 둘이 꼭 같이 자는데, 꼭 같은 행동하는데 왜 하나는 버려 두고 하나는 데려감을 당합니까? 뭣 때문에 그렇지요? ○○○목사님, 실행을 하는데 왜 그럴꼬? 한 말로 말해 봐. 경건.

“이 모든 것이 이렇게 불에 타고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뭐라 했습니까? “거룩한 행실” 하는 것은 법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거룩한 행실은 구별해 지키는 것이요, 거룩한 행실과 “경건” 하는 것은 이것은 인격자가 되신 생존하신 주님을 상대해서 주님과 연결하는 것을 가리켜서 경건이라 말한 것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가 아니면 안 돼.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암만 읽어도 안 돼. 실행 없으니 안 되지, 실행 없으면 안 되지 실행해도 또 뭐 없으면 안 돼요? 경건 없으면 안 돼요. 참 복잡하다. 예수 믿으면 공짜배기로, 저 친구 말이지요. ‘예수님의 대형 대행으로 다 그 공로로 살지 뭐 인간들이 행함이 온전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주 팔뚝같이 말을 했는데 말이요, 그래 놓으니까 그만 해도 안심하고 믿는 거라. 그래. 괜찮애. 됐어, 이제. 회개하면 됐어.

이런데, 이러니까 교리 하나 잘못 알면 전체가 다 썩어지고 맙니다. 이러니까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대로 지켜서 ‘이가 안식을 범했다. 이는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 이는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다.’ 이렇게 철두 철미하게 지켰는데 왜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를 죽였습니까? 왜 죽였소? 뭣이 없어 그렇지요? 경건이 없어. 경건이 없어. 주를 위해 하지 안한 거는 소용 없어.

오늘도 교회서 위하는 것, 그래 한번 실컷 추 올려 주면서 ‘야, 우리 교회에 이렇게 지금 피아노를 타는데 너 그거 피아노 하나 사 주면 저거는 누가 피아노 샀다 이럴 터이니까 피아노 하나 사라’ 이라면 ‘예 그라지요' 자기, 고거 자기 명예가 있고, 자기 이름이 있고, 자기 권위가 있고, 자기가 냈다 하는 고거 하나 가지고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냅니다. 그래 가지고 피아노 삽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교인들에게 피아노 내라 뭐 내라 하는 그 사람 그 교인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입니까 교인에게 상급을 만들어 주는 사람입니까? 도둑질하는 사람이라, 도둑질하는 사람.

왜정 말년에 그때 종이 있는데 종 전부 막 압수해 가지고서 전부 종이 다 희생을 당했는데 저 평양에 어느 교회 종은 그 사람들이 안 가져가더래요. 그 장로 이름이 딱 쓰였어. 장로 이름이 쓰였어. 그때에 하나님의 이 진리 때문에 그들에게 크게 침해를 받아서 그 종들도 다 하늘나라에 갔는데 그 개인 이름 쓰인 거는 하늘나라 안 들어갔어. 그렇다고 안 가져가지는 안할 건데 안 가져가 버렸어. 뭐 그런 유사한 것 많습니다.

이래서, 우리 교회는 교회가 커도 전자올갠이 없어요. 어떤 분이 전자올갠을 하나 사내겠다고 그래 사 가지고 왔어. ‘안 된다. 네가 전자올갠 사내면 내가 샀다 이랄 터이니까 너도 구원에 손해고 그거 또 연보한 것도 헛일이고 그라니까 하나님 앞에서 그저 연보로 어데든지 집어넣어라. 집어넣고 그것을 우리 교회서 사야지.’ 그래서 그 이름으로 한 거 없습니다.

뭐 그 이름으로 할라면 ‘내가 뭣 좀 하나 하지, 뭣 좀 하나 하지.’ 못 하게 해요. 그래 뭣이든지 주를 위해서 해야 되지 자기를 위해서 하면 그놈이 자기 일생 동안 했는데 자기를 위해서 했기 때문에 도적 다 맞았소.

이놈은 자기라는 그놈은 진리로 행할라 할 때도 요놈이 ‘요러면 손해간다. 안 된다. 내가 괴로와 안 되겠다. 되서 안 되겠다. 우리 남편이 마다 해서 안 되겠다.

우리 아내가 마다 해서 안 되겠다. 내 직장에 손해가서 안 되겠다.’ 요놈이 말씀대로 행할라 하면 그놈이 들어서 안 된다고 살살 사리고 합니다.

또 뭣을 할 때는 ‘내 이름으로 해라’ 해 가지고 그놈이 또 그래 가지고, 요놈이 좋은 일에도 달라들어 가지고 홀딱 둘러마셔 버리고 나쁜 일에도 둘러마시기를 홀딱 둘러마시고 완전히 그놈이 우리의 일생을 망치게 하니 그놈이 자기인데, 자기인데 어떤 놈 자기입니까? 자,자기 아닌 자기!원수인 자기!자기를 죽인 자기!자기를 죽이고!자기인 체!가장해 가지고 오는!간부 자기!그라면 뭐 정이 붙어요 분해요? 그러기에, 옛사람 자기를 분개한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은 아직까지 신앙의 초보도 걷지 안한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그저 자기를 높여 주면 어데든지 나서서 자기가 나서 가지고 뭐 자기를 나타낼라고, 참 망할라고 하는 일 그저 어짜든지 어데서든지 자기를 나타내 가지고 뭐 할라고 애를 씁니다. 이러니까 경건이 아니면 다 허사입니다.

인제 여게 가라지를 여러분들 마음대로 해석을 하십시오. 해석을 해서 여게 불법을 행한 자가 가라지고,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자가 가라지고, 지옥 가는 자가 가라지고 또 의인은 해와 같이 빛나고 이라는데 이것을 기본구원으로 볼란지 건설구원으로 볼란지? 자, 여러분들 뭘로 볼랍니까 건설구원으로 볼라요 기본구원으로 볼라요? 여게 가라지는 지옥 갔다고 볼라요 천국 갔다고 볼라요? 지옥 안 간 걸 지옥 갔다고 봤으면 심판자가 됐기 때문에 그 벌도 상당히 큰 벌인데. 굉장히 값을 내야 되는데.

이러니까 여게 보면 행위를 근거했기 때문에 이 행위구원은 이렇게 행위가 잘못되면 다 지옥 간다. 그러나 그 영은 택자면 천국 갔고 택자가 아니면 지옥 갔다. 택자인지 불택자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 가라지가 하는 그 행동은 말했기 때문에 행동은 가라지 행동하면 지옥 간다. 지옥 가도 택한 자면 하늘나라 간다.

자, 요렇게 해석해 놓으면 어떻게 돼요? 뒤에 정죄받겠소 안 받겠소? 자, 우리 ○목사님 어데 있노? ○○○목사님 어데 있어? ○박사 한번 평 한번 해 봐요.

이라면 정죄 받을까 안 받을까? 어떻게 되겠어? 모르겠어? 잘 모르겠어? 뒷꼬리가 매이거든.

그런데 그 모든 주석에는 뭐라고 해 놨어요? 가라지를 지옥 갈 사람이라 해 놨어요? 가라지는 다 지옥 간다고 해 놨지. 이래 놓으니까 용기가 안 나. 다 지옥 간다고 해 놨는데 그걸 딱 뻔히 알고 있으니까 그거 그 사람 지옥 갈 사람이라 그라기도 그렇지, 들어 보니까 또 ‘그 사람이 택자면 천국 갈 것이고, 행위구원 말했기 때문에 그렇게 잘못하면 행위는 지옥 간다. 이를 갈고 슬피 우는 것도 심신의 기능만 가도 슬피 울고 이를 갈 수 있다.’ 하는 이 말이 굉장한 말이기 때문에 썩 결정지워서 대답하기가 어렵지, 위신이 있으니까. 뭐 우리 같은 사람이 그래 하는 게 아니라 저 박사가 그랬다 하면은 큰 일이니까. 아주 처세술이 있다 말이오. 잘해야 돼.

하지마는, 하지마는 여러분들, 이거 때문에 많은 논단을 받는데 나는 ‘가라지도, 가라지도 택했으면 천국 간다. 지옥과 천국은 택함에서 근거하지 행위에서는 상관이 없다. 다만 그 행동을 말한 그것만큼은 잘못하면 그 심신의 기능은 지옥 간다.’ 나는 고거 확정짓습니다.

이렇게 믿는 것이 옳다고 믿어지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많이 들기는 들었는데 얼마나 힘이 있을란지 모르겠다. 마구 주 흔들어 놓으면 어떻게 될란지? 흔들어 놓으면 어떻게 될란지?

또 여게 보화 비유가 있고 진주 비유가 있습니다. 이거는 뭐 간단합니다. 보화는 뭐이며 진주는 뭐인가? 보화는 뭐이며 진주는 뭐인가? 이것은 우리의 건설구원 곧 성화구원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보화와 진주는 건설구원 성화구원입니다.

이래서, 왜 건설구원 성화구원이라고 하는가? 거게 보니까 다 팔아 가지고 밭을 사야 제것 삼지 다 팔아 가지고 밭을 안 사면 제것 삼지 못했어. 또 다 팔아 가지고 진주를 사야 되지 팔지 안하면 진주 사지 못했어. 기본구원 예수님의 대속으로 얻는 기본구원은 우리 것은 털끝만한 것도 필요가 없어. 그런 게 붙으면 더러워져! 이러기 때문에 이거는 순전히 건설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보화는 우리 건설구원,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곧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그리스도의 형상 요것이 우리의 건설구원인데 요 건설구원을 비유해서 보화라 진주라 말씀했습니다. 보화라 진주라 말씀했어.

보화라 진주라.

그런데, 이 보화를 만난 사람은 오다가다 만났고 진주를 만난 사람은 찾아 돌아다니다가 만났고 이러니까 예수 믿는 데에 어떤 사람은 오다가다가 이 구원을 깨달아 가지고 잘 믿는 사람 있고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노력으로 인해 가지고 구원을 잘 이룬 사람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한 가지 방편 아니고 여러 방편으로 되어 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알겠습니까? 보화와 진주.

그런데, 거게 일율되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이 보화와 진주를 발견한 사람마다, 발견한 사람마다 전부 이 진주와 보화를 자기 것 삼기 위해서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그 진주와 보화를 샀습니다. 이거는 뭐 조금만 하지 안하고 있는 걸 다 팔아 샀습니다. 요거는 통일입니다. 알겠습니까? 통일.

우리 건설구원은 자기의 있는 것을 다 건설구원을 위해서 투자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면 남은 것 있습니까? ○집사, 남은 것 있어? 돈 남은 것 있어? 그것도 뭐 자기 마음 몸 다했으면 그리 따라가지 그까짓 게 어디 가 있을까, 뭐? 따라가지. 거게도 일치돼. 거게도 보니까 다해야 된다 했거든. 다해야 된다.

또 행위에 온전하다는 것도 보면은 그 온전하면 성경 말씀대로 다 행해야 되니까 성경에 “자기를 부인해라” “있는 것을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이러니까 온전한 행위는 온전히 그 계명 지킨 행위니까 꼭 일치되는 말 아닙니까? 좀 남궈 놓고 됩니까?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리라” 무엇이든지 하나 잡고는 못 가는 곳이 이 길입니다. 무엇이라도 가지고는 못 가는 곳이 영문 밖에 길입니다. 뭐이든지 가지고는 못 가요.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오다가다 만났든지 애를 써서 만났든지 어쟀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입은 자가 성화구원 얻는 것, 지극히 큰 소망, 지극히 큰 소망 이 소망을 확실히 깨달은 자는 자기의 있는 전부를 다 투자하지 안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맞습니까? 해석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맞습니다. 맞아요, 맞아.

그런데, 그러면 진주는 뭐이며 보화는 뭐인가? 거게 대해서는 해석할 필요가 없어. 같은 말이야. 진주도 보화도 어찌 됐든지 자기의 건설구원이라는 것이 자기의 땅위에 있는 모든 소유보다 중량이 크다고, 가치가 크다고, 자기의 가진 모든 것보다 이 건설구원의 가치를 크게 보는 거게서 천국은 이루어집니다.

알겠습니까? 되는 것 같아도 안 되는 것은 그 중간에서 다 머물다가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해야 된다. 다 팔아서 밭을 샀다. 밭은 세상을 샀다 그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거는 무슨 말입니까? 자기가 백 년을 살든지 오십 년을 살든지 몇십 년을 살든지 자기의 사는, 자기 세상이 뭐이 자기 세상입니까? 자기 현실이 자기 세상 아닙니까? 자기 현실이 자기 세상이지요? 자기 현실을 이 보화 진주를 내것 만들기 위해서, 이 건설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데에는 그 현실을 내 이 건설구원 이루는 데만 유익되고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만 이용이 되도록 할려고 하면, 내 현실을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만 이용되고 이 이루는 데 손해가지 안하고 전적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만 이용이 되도록 할라고 하면 무슨 값을 내놔야 돼요? 뭘 내놔야 돼요? 그라면 뭣 내놔야 돼요? 뭐 내놔야 돼요, 여게 할머니들? 뭐 내놔야 돼요? 고집통 내놔야 될까 안 내놔야 될까? 고집통 내놔야 돼요 안 내놔요 돼요? 왜 대답 안 해? 고집통도 내놔야 돼.

저 저기 집사님, 조는데, 저 집사님. 옆에 깨우이소. 집사님 조네. 이제 큰일났네.

지금 이 구원이 될라 하니까 지금, 바짝 차려. 자, 힘을 써. 어느 교회지요? 어느 교회? 뭐라 하노?○○? 가조 ○○교회, 녜.

가조 ○○교회 저 뭐꼬 시온파가 더러 있었는데 시온파 더러 알아요? 시온파.

몰라? 저 집사님은 알 것 같은데, 옛날 노인이라서. 시온파. 그 시온파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한다고 팔월 십오일 전에 다 흰옷 입고 다 팔아 가지고 서로 유무상통하고 십오일 그날에 예수님 재림날이라고 알아 가지고 가서 산에 가 있다가 헛일한 것이 시온파입니다.

시온파는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안 할라고 감옥에 들어 있기를 제일 시온파 교인이 제일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옥살이도 제일 많이 했습니다. 이래도  잘못 알아서 삐뚤어지면 헛일이라. 죽어도 헛일이라. 삐뚤어지면 죽어도 헛일이라.

이렇게 옳고 삐뚤어진 것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자기 세상 곧 자기 현실인데 자기 현실에서 진주와 보화를, 자기 현실에서 자기 건설구원을 자기 것을 삼을라고 하면, 자기 건설구원을 자기 것을 삼을라고 하면, 자기 건설구원 이놈을 뺏을라고 애를 써요. 자기 건설구원. ‘네 건설구원 주면은 내가 사장 주지. 네 건설구원 내 주면 내가 돈 한 주먹 주지.’ 우리 ○장로님 요새 지금 ‘건설구원 내놔라 내 이것 주께’ 그렇게 세상 보화하고 건설구원하고 서로 바타제 하자고 더러 달라들지 안합디까? 안 달라들어? 아이고, 잘 모르는구만. 안 달라들 리가 없는데. 안 달라들 리가 없어.

이 건설구원 이 성화구원하고 세상 취직하고 바타제를 하자든지, 또 그리 안 하면 이거 뭐 상권하고 가지고 뭐 하자든지, 또 공부하고 하자든지 뭐 이런 바타제 많습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건설구원을 내것 할라고 하면, 현실에서 건설구원을 이루는 현실로 건설구원에 이용할라고 하면 뭣뭐 내놔야 돼요? 뭣뭐 내놔야 돼요? 자, 말해 봐요, 뭐? 마음, 목숨, 또? 힘, 또? 뜻, 또? 자기의 소유, 또? 뭐 전부라, 전부.

다 안 내놓으면 안 됩니다. 요것만 가지고도 살아요. 알겠습니까? 겨자씨 믿음, 겨자씨 믿음. 하나만 딱 심어 놓고 요동치 안하면 수많은 박해들이 있지마는, 겨자씨는 뽑히면 주 먹혀버리고 죽고 뽑히지 안하고만 있으면, 그대로 ‘나는 진주 비유를 배웠다. 나는 내 현실에서는 건설구원 요거 손해보지 않겠다.

현실은 건설구원을 위해서만 나는 현실은 이용하겠다.’ ‘건설구원을 위해서 현실을 이용할라 하면 네 목숨이 달아날 터인데 어떻게 할 것이라?’ ‘목숨이 달아나도, 재물이 달아나도, 공부길이 막혀도, 사형을 받아도, 감옥에 가도 나는 있는 걸 다 팔아서 진주를 삶과 같다, 밭을 삶과 같다 하는 요 한 성구 배웠으니 나는 요동치 안하고 요 하나만 꼭 지키고 있을란다.’ 하면은 그는 어데까지 자란다 했습니까? 어데까지 자란다 했습니까? 녜, 나물이 나물 될 터인데 나물이 나무 됐거든. 초인간의 성장, 초인간의 권위자가 됩니다. 요 해석 맞아요 안 맞아요? 나물이 나무 됩니다. 초인간의 인물이 됩니다. 초인간의 지능자가 됩니다.

그라면, 주 먹을 수 있던 것들이, 다 주 먹을 수 있던 그런 것들이 내 덕택 볼라고 내게 와 가지고 우 깃들이려 합니다. 이것이 복의 기관입니다. 복의 기관입니다.

영원히 우리는 피조물의 중보자입니다, 피조물의 중보자. 영원한 시은자입니다.

이러니까 여게서는 중요한 것 깨달을 것 뭐이냐 하면은 그 건설구원을 본 자마다, 건설구원을 안 자마다, 건설구원을 안 자마다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다 요것을 아십시오.

그런데 건설구원을 안다고 설교도 하고 죽을 때까지 목회했는데 그 사람이 건설구원을 봤는지 못 봤는지,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 건설구원에 소망을 가졌는지 안 가졌는지 뭣 보면 압니까? 뭣 보면 압니까? 뭐? 변하는 거? 변화된 거? 그것은 다 파는 것 보면 알아요. 다 파나 안 파나? 요게 다 파나 안 파나? 다 안 팔고 쪼그매 남궈 두면은 그거 안 본 거라.

그 결과를 열매를 보아서 나무를 알라고 이 건설구원을 아나 모르나 하는 것은 뭘 봐야 알아요? 뭘 봐 가지고 알아요? 뭘 봐 알아요? ○집사, 건설구원 봤어요? 소망 가져요? 저 우리 ○○○집사님, 건설구원 봤어요? 소망 가져요? 그걸 봐야 알지. 다 파는지 안 파는지. 생명 내야 될 때에 생명 내놓는가 안 내놓는가 그거 보면 이 거짓부리 가짜다 진짜다 알 수 있어. 알겠어? 다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가 오니까 다 전부 우상 숭배를 떡 떡 하면서도 입술로 별 변론을 많이 했지마는 그때에 생명 팔지 않기 위해서, 자기의 지위와 권위를 팔지 않기 위해서 이라니까 그거 이 건설구원 보화와 진주를 본 사람이요 안 본 사람들이요? 조선 교회 목사들이 다 그랬으니까 조선 교회 목사들이 이 건설구원을 본 사람들이 많이 있었소 희귀했소? 희귀했어. 희귀했어. 그러니까 요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나는 이 보화를 만났나 안 만났나? 그것은 다 팔고 서두는 것 보면 알아, 서두는 것. 서두는 것 보라. 이거 건설구원 봤다. 건설구원 봤다. 뭐 모든 것 다 아낌 없이 축축 축축 팔아 가지고 그 현실에서 생명 문제 되니까 생명 턱 내대고, 직장 문제 되니까 직장 턱 내대고, 감옥 문제 되니까 감옥에 썩 들어가고, 뭐 있는 것 다 상관없이 다 팔게 된다. 보화와 진주 만난 사람은 다 팔았어요. 모두 조그매 남구지 안했어. 다 팔았어. 요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요게서.

요렇게 깨닫고 ‘요게 예수 믿는 거라’ 하는 것과 뭐 예수 믿으면서 건설구원 제 욕심 다 부릴 대로 부리고 세상 재미 다 볼 대로 보고 수지는 전부 저 위해서 다 쓰고 쓰지 못할 찌끄러기 찌끄러기 그것만 주님에게 바치고, 찌끄러기 그것도 다 예수님을 이용해 먹어야지 예수님을 이용해 먹기 위해서 바치고, 바치는 일 해 가지고 더러운 것 바치고 예수님에게 좋은 것 얻을라고 이래 이용해 먹을라 하는 것.

참 이 사람들 지혜롭습니다. 지혜롭소 슬기롭소 자멸하는 사람이요? 자멸하는 사람이라. 잘못 똑똑했지, 잘못 똑똑했어. 잘못 지혜 있고 잘못 날뛰었어. 참 민첩하고 복술이 능해요. 아주 복술이 능해요. 능하지마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갔어, 다.

또, 여게 그물 비유가 있는데, 그물 비유.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고기를 모으는 것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게서 울며 이를 갈며 있으리라” 여기도 또 이 가는 문제가 나오네, 여기도 이 가는 문제.

이것도 그라면 기본구원으로 볼까요 건설구원으로 볼까요. 이거는 또 불택자로 볼까요 택자로 볼까요? 똑똑히 몰라서, 양심을 가지고 냉정스럽게 생각하면 이것을 건설구원으로 보지 안하면은 못 견뎌요, 못 견뎌.

이러니까 뭐 마태복음 25장도 ‘슬기 없는 미련한 처녀는 불택자다’ 이라니까 기름 준비할 문제가 뭐이요, 뭐. 불택자면 ‘불택자는 다, 슬기 없는 처녀는 다 불택자라 그건 다 지옥 갈 사람들이라.’ 자, 여게서 자기가 선택받은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봅시다. 자기가 선택받은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 인정 안 돼요, 모두? 녜, 우리는 다 선택받은 사람들이라.

이러니까 기름 준비 할 필요 있어요 없어요? 뭣 때문에 있어? 기름 준비 안 한 사람들은 다 지옥 갈 사람들이 기름 준비 안 했는데, 뭐. 기름 준비 안 해 가지고 낭파당한 그 낭파는 우리 낭파입니까 남의 낭파입니까? 그거는 불택자들인데 우리 낭파라? 그것을 불택자로 보면 그 낭파는 불택자의 낭파지 우리 낭파가 아닙니다. 마귀란 놈이 요래 가지고 생명을 기울여야 될 일을 다 끌러놔 버렸어.

다 풀어놔 버렸어. 다 해방시켜 놨어. 요렇게 원수인 줄 알아야 돼!! 마태복음 25장을 그것을 ‘건설구원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천국은 갔지마는 건설구원은 헛일이다’ 하니까 ‘백 목사 고거 잡아 죽여야 된다' 이라더래요, 저 충청도 어데서. 그래 나한테 편지가 왔어요. ‘아이고 백 목사 잡아 죽일라 합니다.’ ‘왜 그 말이 났노?' 설교록을 읽어보고 어떤 사람이 그라니까 그놈은 꼭 잡아 죽여야 된다고. ‘왜 잡아 죽여야 되노?’ `이제까지 모든 사람이 그래 믿고 내려오는 전통을 깨 가지고 딴 소리 하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까지 그와같이 믿고 나왔으면 잘못 믿었어요 잘 믿었어요? 그러면 그거 고쳐야 돼요 안 고쳐야 돼요? 고치면 고맙다 해야 돼요 죽여야 돼요? 이러기 때문에 나는 그래 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여러분들 그럴 때 참고 견뎌요.

“해와 같이 빛나리라” “해와 같이” 이러니까, 그만 이라는 데에서 ‘나는 이거 택한 자인데 지옥 가서 이 가는 것이 심신의 기능들이 그라니까 나는 기름 준비 안 하면 안 되겠다. 밤중에 등불 들고 있어야 되겠다. 환난의 극단 절정 최고 절정에도 나는 빛의 생활을 해야 되겠다.’ 이러니까 죽자껏 힘이 쓰이고 애를 써야 되는데 이거 탁 풀어 놓으니까 힘쓸 게 없어. 이렇게 교리와 신조를 가지고 있으니까 예수 믿는 데에 힘들 게 없어. 마음 다하고 힘 다하고 목숨 다하고 뜻 다할 그게 없어. 이래 가지고 사람을 죽입니다. 알겠소? 그래,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있으리라” 악인은 그래 한다.

자, 악인은 어떤 사람이 악인이지요? 악인은 어떤 사람이? 여기 좀 한번 말해 봐요. 악인은 어떤 사람이 악인이요? 악인은 어떤 사람이 악인이요? 자기 중심의 사람, 또? 자기 위주의 사람.

여러분들, 매사에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중심으로 견해하고, 자기 중심으로 변호하고, 자기 중심으로 계획하고, 자기 중심으로 행동하면 유황불 구렁텅이에 갑니까 안 갑니까? 뭣이 갑니까? 영이 갑니까 심신의 기능이 갑니까? 영이 갑니까 육신이 갑니까? 육신 그것도 말할 줄 알아요? 육신 그것도 말할 줄 알아요? 육신 그것도 뜨거운 줄도 알고 울 줄 알아요? 알아요, 알아요. 영 없는 육신 아는 요것을 여러분들이 아는 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알겠습니까? 영이 아닌 심신 단독도 이런 모형적 인격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모형이 영이요 영의 모형이 심신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영의 모형적 인격을 가진 것이 우리가 안 믿을 때의 가진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영의 모형으로 되어 있는 자기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여게 보니까 악인들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던진다 했어. 악인. 자, 따라합시다.악인!악인!악인!자기 중심의 사람!자기 위주의 사람!자기 위주 자기 중심으로!모든 것을 경영하고!모든 것을 비판 평가하고!모든 행동을 하는 자가!그 심신이!유황불 구렁텅이에 간다! 안 갈 수 있어요? 안 갈 수 있어요? 내 말이라요?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합니까? 확실해. 천지는 변해도 변함이 없어. 가감도 없어. 어누리도 없어. 삐뚤어진 것도 없어, 삐뚤어졌으면 다행이고 좋겠는데. 삐뚤어지면 다행이고 좋겠는데 삐뚤어지지 안해. 정확한 말씀이야. 정확한 해석이야. 삐뚤어지지 안해요.

자, 이제는 오늘은, 가만히 있어. 조금 더 있으면, 아직까지 학생들 갈 때 조금 남았나요? 그런데, 이제 51절, 51절. “이 모든 걸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인제 깨달은 척합니다. 깨달은 척하니까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합니다. ‘깨달았느냐?’ `녜, 그러하오이다. 깨달았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서기관은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서기관입니다. 목사들 반사들 다 서기관입니다. 장로들 다 서기관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 다 서기관입니다.

서기관인데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있고 그저 서기관이 있습니다. 성경에 유대인 가운데에 그저 서기관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데에 선봉장 섰습니다. 예수님을 파는 데에 선봉장 섰습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제자된 서기관이라 말이 무슨 말이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천국의 제자니까 천국 배운 자지. 천국의 제자니까 천국 배워 가지고 천국같이 된 자가 천국의 제자지. 그 해석이 틀리요? 천국의 제자라 하면은 천국 배워 가지고 천국같이 된 것이 천국 제자 아닙니까? 안 그래요? 뭐 다른 해석 할 필요가 없어. 천국 배워 가지고 천국같이 된 자가 천국 제자입니다.

천국된 자라니? 천국된 자가 뭐이 천국된 자인데? 천국은 어데가 천국입니까?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지. 그렇지 안해요? 천국은 어데가 천국이요? 예수님을 자기 안에 모셔서 주의 성전이 됐으면 그 사람은 천국의 제자가 된 사람입니다. 알겠습니까? 천국의 제자.

예수님이 자기 안에 계시면 자기가 천국이지. 예수님이 그 가정에 있으면 그 가정이 천국이지. 예수님이 그 고을에 있으면 그 고을이 천국이지. 예수님 계시는 곳이 천국이지. 천국관. 예수님 계시는 곳이 천국이라고 천국관을 보는 요 천국관 요것도 드뭅니다. 요것도 드무요. 그러나 정확합니다.

“천국의 제자된 자” 천국을 배우니까 예수님이 그 속에 계셔서 그가 하나님의 성전이 됐습니다. 그라니까 성전이 됐으면 그거 천국 됐소 안 됐소? 천국 중에 천국이오. 천국 중에 알맹이 천국이라.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주님을 그 마음 가운데에 모셔서 주님이 자기를 주장하고 그분에게 모든 것이 피동되어서 능동으로 아는 것 하나도 없고 그분이 알려 주니 알고, 그분이 가르쳐 주니 배웠고, 그분이 인도하니 인도 따르고, 그분이 움직이니까 피동되고 하는 이것이 천국의 서기관된 자입니다. 알겠습니까?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요거 비유입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창고에서 내어오는 집 주인과 같으니라” 그러면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은 집주인과 같으니라. 여게 집주인은 누구를 말했겠소? 집주인은 하나님이신 주님을 가리켜 말합니다. 곳간은 뭐입니까? 곳간은 천국입니다. 곳간은 천국. 새 것은 뭐입니까? 새 것은 쓸모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입니다. 새 것은 다 좋은 것이오.

옛 것은 뭣입니까? 아무짝도 못쓸 것입니다. 헌 부대, 옛사람,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 하는 것.

여게 이 비유에서 말씀했는데 가라지 있고 곡식 있고, 옥토 있고 잡탱이 땅 있고, 누룩 있고 겨자씨 있고, 그물에 그릇에 담는 좋은 것 있고 못쓸 것 버리는 거 있고, 어떤 자를 버린다 했지요? 어떤 자를 버린다 했어, 그물에 훌쳐 가지고? 어떤 자를 버린다 했어? 어떤 자 버린다 했어요? 여기 그물에, 뭐라고 해 놨지?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가려내어” 악인이로구만, 악인.

악인은 옛 것 의인은 새 것, 가라지는 옛 것 곡식은 새 것, 돌짝밭 길가밭 가시덤불은 옛 것 또 옥토는 새 것, 이래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주인과 같으니라”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그분이, 그 사람이 그분이 새 것과 옛 것을 나타낸다, 새 것과 옛 것을 증거한다. 새 것과 옛 것을 증거하는데 곧 새 것과 옛 것을 증거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막바로 새 것과 옛 것의 실상을 갖다가 내놓는다. 실상을 내놓는다.

천국의 제자된 자가 ‘이것은 멸망이다 이것은 구원이다’ 했으면 멸망이다 한 것은 바로 멸망의 그것이 실상이다. 구원이다 했으면 그 말뿐 아니라 그 구원의 실상이다. 알겠습니까? 요 해석 깨닫기가 심히 어렵습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그가 말한 멸망이라면 바로 그것이 멸망 자체다. 구원이라면 바로 구원 자체다. 뭐 구원이 되나 안 되나 멸망이 되나 안 되나가 아니다. 바로 구원의 그 실상이다. 멸망의 실상이다.

이해가 됩니까? 여게 대해서 뭐 감흥이 옵니까? 뭣이 감동이 옵니까? 거리가 너무 멀어.

그러기에, 천국의 서기관된 자가 멸망이라고 말을 했으면 바로 그것이 멸망의 실상입니다. 변함이 없어. 그대로 멸망이야. 구원이라면 그대로 구원이라. 내가 천국의 제자가 얼마나 됐는지 모르나 내가 천국의 제자가 됐다고 하면 내가 이 자리에서 말한 요것이 ‘요거는 멸망이다 요거는 구원이다’ 했으면 그것이 멸망의 실상이요 구원의 실상입니다. 딴데 있지 안해. 그게 구원의 실상이오 멸망의 실상이라.

네가 구원 가지면 구원 실상이 가져 구원됐고 멸망 가지면 멸망됐어. 거리 먼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 실상이요 그것이 주인공이신 하나님이 바로 직접 내다 놓고서 실상을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네가 옛 것을 택하든지 새 것을 택하든지 너는 네 마음대로 택해라.

인간이 천국의 제자가 되지 못한 서기관이 문제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말하면 말한 그것이 실상이라. 말한 그게 실상이라. 바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그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 같이 한번 기도합시다.

주님 감사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능력의 말씀으로 완전히 변형 변질하여 주의 형상을 온전히 갖추게 하시옵소서.

영의 연약성이 강건해지게 하시고 마음에 온갖 더러운 부패의 병을 완전히 고쳐 양심을 주로 세울 수 있게 하시고 몸에 온갖 습성의 더러운 병을 고치고 육체의 모든 병 안팎에 있는 종류대로의 모든 병을 이제 증거한 이 진리를 깨달아 믿을 때에 낫게 하시고 나은 자가 범죄할 때에 다시 재발하게 하시고 회개할 때 다시 낫게 하사 어떻게 하든지 나그네 시대에서 잘 깨끗이 준비하여 두려움 없이 구름타고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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