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아담 둘째아담


선지자선교회 1989년 5월 11일 목전집회

 

본문 : 골로새서 3장 1절∼6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첫 시간에 우리가 존재관에 대해서 고쳐서 바로 해야 할 것을 세 시간 계속  증거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건설구원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외곽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증거한 것입니다.

 아침에도 증거한 거와 같이 영원 전 하나님 한 분만이 계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됐습니다. 기독교 가운데에  이원론을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일원론이라 하는 것은 근원이  하나라는 뜻인데 그렇게 다 생각하고 알고 있으면서 실제는 기독교를 이원론  삼원론 사원론 뭐 몇 원인으로 이렇게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분 한 분이 스스로 계셨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다 창조돼서  존재했습니다. 또 창조된 그것이 이리저리 관련을 가지고 다시 재제조되고  재창조됐습니다. 재창조라 말은 전체가 다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아니고 일부는 하나님이 이미 지어 놓으신 그걸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다시  종합하고 조화해서 창조한 것을 가리켜서 재창조라 이렇게 발표합니다.

 이래서, 우리 기독자들이 무엇이든지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졌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지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수많은 천태만상으로  변해집니다. 그것도 그분의 다 홀로의 섭리입니다. 이래서, 누구든지 자신의 처음  존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고 또 지음받아 타락으로 영원 멸망에  빠진 것을 그분의 사랑을 인하여 그분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우리를  대속하셔서 그 모든 멸망에서 영원한 구출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있게 하신 이도, 존재케 하신 이도 그분이시요, 또 존재한 것을  잘 보존하고 유지시키는 것도 그분이시요, 또 그 모든 안팎 행동에 대해서 공평된  관찰을 하시고 심판하시고 보응하시는 이도 그분이십니다. 그분이 있게 하셨고  우리를 또 존속하도록 하셨고 이런 저런 모든 섭리로 합하게도 나뉘게도 이래  하셔서 누구든지 자기라는 사람의 존재와 이력이 다 생겨진 것입니다.

 이런데, 사람이 악령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심령이 어두워지고 또 벌써 자기가  홀로 생긴 독존자처럼, 또 자기는 홀로 독립할 수 있는 독립자처럼 자기의 주관과  사욕이 생겨진 그때부터 사망이 역사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떠나 홀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다 멸망이요 또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 제가  무슨 작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다 멸망입니다.

 이래서 같은 사람이 하나님만을 의뢰하게 되는 것도 당신으로 말미암은  예정대로 되는 것이고 패역해서 스스로 멸망을 자취하는 것도 그분의 예정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지 않느냐? 책임이 없다고 따질 수  있는데 또 그분이 인간의 선악의 모든 행동을 다 그대로 심판해 가지고 영원한  보응으로 해서 영원한 고통 가운데 던지는 것도 있고 영원한 평강 가운데에  머물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하후하박이 아니냐? 어떤 자에게는 후하게 하고 어떤 자에게는  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 사람들은 공평 가지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없는 가운데서 창조하셨고 그분이 보존하시고 그분이 주권하시고  그분이 가장 큰 능력과 지혜를 가지시고 사랑을 가지시고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기 대해서 시비나 송사나 그렇게 이의를 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같은 흙덩이 가지고 토기장이의 임의로 큰 그릇 작은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당신의 것 가지고 당신이 이런 것 만들어서 만들어졌으니 네가 그 만든 자에게  이의를 달아봤자 소용 없고 또 이의를 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의  원인이시요 창조주시요 주재자신데, 주재신데 그분에게 필요하도록 모든 것  만듭니다.

 이러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소유권자에 대해서 주격에 대해서 공평이요, 또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주인에게 잘 소용되면 귀하게 여기고, 또 거게 아무 무용한  것이, 무익한 것이 되면 그런 것들을 다 제거하는 것도 그분의 주권이요 그것도  주격의 공평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았고, 한 시간 하루를 유지하는 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유지되고, 우리는 우리 어떤 개체의 욕심을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소욕을 따라서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랬는데 그분에 대해서 따르지 아니하고 반동하고 반박하는 일이 생겨지기를  하늘나라에서 생겨졌습니다. 먼저 반동하고 나선 것이 천사 중에 한 단체가  반대하고 나선 그것이 곧 하늘에서 쫓겨나왔는데 이 우주라는 데 들어와 가지고  마귀로 역사해 가지고 우주를 또 더럽혔습니다. 그 더럽힌 것을 하나님께서 다시  새로 정선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완전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이루신 것도 전체가 아니고 당신이 벌써 당신이 계신 그 이후 존재로서는  제일호로 존재케 된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신데 목적대로 선택대로 예정대로 해서  그 일이 점점 성취돼 나왔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속하신 것도 거게서부터 대속되기로 작정된  그자에게만 대속한 것을 가리켜서 제한적 구속이라, 전체의 구속이 아니고 제한적  구속이라 이렇게 하는데 그것은 칼빈 선생이 그것을 깨닫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전에 어떤 사람이 깨닫고 주장했는지는 모르나 그분이 발표하기를  그렇게 발표해서 우리가 그 좋은 교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거는 공평치 못하다, 어데는 후하게 어데는 박하게, 어떤 사람은  선택하고 어떤 사람은 선택하지 아니했으니 그것이 불공평이다.' 하는 그것도  하나님이 예정하셔서 불공평을 논하라고 예정됐기 때문에 그자는 불공평으로  논합니다. 또 다 같은 불공평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입장에 처해도 '그는 조물주의  뜻대로 되는 것이니 우리가 거게서 할 능력도 없고 그저 거게 따라서 살려 주는  대로 살아야 된다' 하는 그것도 또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그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모든 옳고 그르고 크고 작고 먼지같은 것이라도. 조그만한 운동이라도 그  전부는 다 우리를 구원하신 자존하신 하나님 그분 한 분의 주권 의지의 예정대로  주권의 능력이 그 일을 성취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선포하시기를 이런데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이 이 모든 지식을  필요한 대로 우리에게 다 주셨는데 그 지식을 받아서 알고 난 뒤에 그와같이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이 알고 범죄한 자로 그렇게 취급을 하시고 또 모르고  그와같이 행동하는 자는 모르고 범죄한 자로 그렇게 취급을 하셔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는 우리에게 말하지 안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대속을 받은 자로서는 누구든지 자기나 자기에게 있는  이미 있는 모든 것은 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게 됐다 하는 요것을 요렇게  지식하라고 말씀했고, 또 그것이 이미 있는 것도 그분으로 말미암고 앞으로  되어질 것도 좋으나 나쁘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도 그분 한 분으로  말미암아서만 되어지지 다른 것은 거게 손을 대지 못한다 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이런데, 성경에 땀 흘리지 아니하고 먹고사는 불한당이라고 누가복음 l0장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이 일을 하시기는 다 하셨는데 제가 하지 안한 일을 제가  한 척 공로를 제가 따고 영광을 제가 따고, 아무 조그만한 권세도 없는 것이 있는  척 해서 이렇게 거짓부리로 행동하고 나타내고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불한당이라,  마귀라, 사탄이라 이렇게 해서, 그는 순전히 거짓말만 하고 거짓말하는 자식들을  낳는 것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미 되어 있는 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은 것만  것을 알고 그분에게 감사해도 감사하고, 그분의 것이라는 것을 인정을 하고 사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의입니다.

 이래서, 말라기 3장에는 보면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는데 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어떤 무엇으로 그것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그것을 다 도적이라 그렇게 말했어. 그거는 조성 도적입니다.

만든 도적입니다. 만든 이는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제가 만든 척 하는 그것은 다  도적이라고 하나님이 정죄를 했고 또 그와같이 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은 그  주인이 하나님이신데 제 것이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또 소유권  도적이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의 것이고 이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이 모든 것을 다 취급해야 된다고 이렇게 해서 그 표시로 바치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십일조의 시발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과실은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과실은 먹지 말아라 하는 것은, 모든 걸 다, 네가 먹으니까 네것인 줄  알고 얼마든지 아무 주인도 없는 줄 아나 이 선악과를 먹지 말아라 하는 것이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이요 네것이 아니요 그분의 허락하에서 다만 허락을 받은  그 범위, 범위 내에서 네가 하지 그 이상하지 못한다는 것으로서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하셨고 그 후 계속해서 머리를 떼어서 이라다가 또 십분지 일을 바치라  또 이렇게 말씀하시고, 거게도 '네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봐라. 네 창고에 쌓을  곳이 없이 하나님이 쌓을 곳이 없도록 하나님이 복을 부어 주나 안 부어 주나  한번 하나님을 시험해 봐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물론 가지수를 따지지 안하는 그것도 있지마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온전한 십일조는 자기나 자기의 가진 것이나 모든 것이 다 하나님  한 분이신 그분이 내게 줘서 보관하고 있는 것이며 보관하고 있는 것은 전부  그분의 것이다. 그분이 보관시키고 나에게 맡겨 주실 때에 나에게 그분의  것이라는 표시로 그분의 것을 보관하고 있다는 표시로 그분이 그 표시인 십분지  일은 당신의 뜻대로 내놓고 십분지 구는 네가 써라 하는 것이 보관주의 명령이기  때문에 그 명령에 따라서 이제 십분지 구는 제가 사용권을 받았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가지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를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너거 창고에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겠다  하나님을 시험해 봐라. 네가 그래 봐라. 시험하라는 말씀이 별로이 없는데 거게는  하나님이 거짓말하는가 참말 하는가, 맞는가 안 맞는가 시험해 봐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범사에 잘못된 것을 치료하는 것도 그분의 틀림없는  법칙이 있으니까 거게서 틀리면 죄가 되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한다 했습니다.

틀리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진리로 역사하시기 때문에 진리에 이탈된 것은  그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이 망치지 안해도 그 자체들이 다 자연 멸망이 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지으셔 놓은 것이요 또 하나님의 속성 따라 되었기 때문에 모든  자체들이 다 그러합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십일조, 어떤 사람들은 뭐 신약 시대에는 십일조를,  그거는 구약이기 때문에 그것을 주장하는 거는 아니다 이렇게 말하지마는, 말하는  사람이 있다 말 듣는데 마태복음 23장에 보면은 신약 성경에도 십일조를  말씀했습니다. '그것도 하고 또 다른 계명도 지키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십일조 돈을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온전한 십일조라 하는 데 거게  뜻이 있습니다. 이래서, 온전한 십일조라는 그 내용의 뜻이 하나님을 의뢰하라는  그 말입니다. 하나님 의뢰하지 안하고 다른 것을 의뢰하는 것은 다 하나님이 제해  버리신다 하는 그 말씀입니다. 그 말씀과 꼭 일통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부만 살피지 말고 외모 속에는 속에 알맹이가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께서 '알곡은 하늘 곡간에 들이고 그는 알곡은 다 생명 세계에 들어가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탄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알곡의 알맹이는 뭐이냐? 알맹이는 불에 탈 수 없는 것이 알맹이입니다. 불에 탈  수 없는 것이 무엇인가? 그는 멸망할 수 없는 완전성의 것이요 영원성의 것이요  불변성의 것이요 불멸성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다 온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 하나에도 모든 소유에도 알맹이가 있어야 멸망하지  안하고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는 다 멸망한다 하는 그 말씀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조그만한 적은 물질이라도 여게 알맹이가 있고 껍데기 있습니다. 내가 돈을  가지고 있는 돈 그거는 껍데기요. 그 속에 알맹이는, 속에 알맹이는 하나님의  진리요 하나님의 계약이요 또 영원성 완전성이 그 안에 있는 알맹이입니다.

 그게 뭐이냐?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았고 그의 것이고,  그가 내게 주었고, 그가 주격이기 때문에 그분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이렇게  저렇게 동하고 정하여서 활용해야 된다. 존재도 그 분의 것이요 존재한 것을  이렇게 활용하는 것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는 것이다 하는 요것이 알맹이입니다.

이것은 절대 멸망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그렇게 안팎이 있고 멸망할 껍데기가 있고 멸망할 수 없는  알맹이가 있는 이것을 자꾸 구별하기 때문에, 지금 문제가 생겨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겨자씨 비유에도 믿음이 자라가는 그 방편에 대해서 일하다가 와 가지고  앉아, 너 혼자 앉아서 먹으라 하겠느냐? 와서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이렇게 할  주인이 있겠느냐? 사람이 보면은 인간 법도로만 말하지마는 실은 주님과  구속받은 성도들과의 그 사이를 두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사람이 밭을 갈든지 양을 치든지 하는 그것은 다 설명을 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면 밭을 갈든지 양을 치든지 하는  그것이 곧 우리의 전신앙 생활이요 회개 생활이요 또 구원 생활인데, 그런 것을  이렇게 자꾸 하다가 보면 그만 자기가 참, 멧뜸을 떠 왔으면 뭐 툭 와 가지고  아주 척 앉아 가지고 자세를 부리면 '네가 무슨 멧뜸을 떠 왔기에 그렇게 지금  오만하게 이제 대접이나 받을 줄 알고 있느냐?' 그렇게 말하고, 또 돌을 들어야  낯이 붉어진다 하는 그런 말도 자기 행동에 따라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오.

 이래서,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치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런 일 저런  일을 많이 해서 성공을 하다가 보면 어찌 되느냐? 성공하다가 보면, 어찌 됩니까?  성공을 하다 보면은, 인제 성공하다가 보면은 그 다음에는 앉아서 먹으라 이렇게  할 줄 알고 앉아 먹는 그것을 책망했습니다.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이랬는데 앉아  먹는 게 뭐입니까? 저 O조사님? 뭐라 하노? 그거 똑똑히 알아? 설교 암만 해도  헛일이오. 조금 목회에 성공 조금 하면은 그만 저 혼자 날뜁니다. 뭐 하나님이야  어짜든지 그거 상관없이 저 혼자 날뛰요. 청산유수입니다. 언제든지, 뭐 언제라도  가다가 말해도 기도도 청산유수요 설교도 청산유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동할  때에 자기가 따라서 동하고 정하고 이것을 표준하지 안하고 이제 제게 있는 것  가지고 무당들 주문 외우듯이 뭐 이거야 뭐,  다른 사람은 그것을 하느라고 참 깨닫느라고 한없는 많은 시간을 거치고 수고를  해 가지고 깨달은 것을 설교록에 쭉 읽어보고 난 다음에는 '이제 설교록 한번  읽어 봤으니까 이대로 이제 말하면 되겠다' 또 자기가 설교록을 읽어보지도  안하고 뭐 급하니까 '보고 줄줄 읽지' 또 이래 하는 자들, 또 보고도 옳게 읽지  못하니까 떠듬떠듬거리며 읽는 자들, 그자가 무슨 목회를 하는 자입니까? 그자는  혼자 먹는 것뿐 아니고 그자는 도적질하는, 도적질하는, 그거는 하나님의 진리를  도적질하는 자입니다. 도용하는 자입니다. 그래 가지고는 우리 목회가 안 됩니다.

 '혼자 먹으라 하겠느냐 주인의 먹을 것을 예비한 후에' 그 먹는 것은 고기  덩어리의 먹는 것이 아니고 인격이 먹는 것이요 하나님의 신격의 모형으로 되어  있는 인격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인격은 행위를 먹고 살지 인격은 밥을 먹고  사는 것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행위를 먹고 자랍니다. 우리의 영도 그러하고  우리 새사람 참사람도 다 행위를 먹고 삽니다. 행위라니? 피, 성령, 진리, 하늘의  소망 이 행위를 먹고서 자라고 이것이 양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들이 알지  못하는 내게 먹을 양식이 있으니 이 양식은 곧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과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나의 양식이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혼자 먹으라 하겠느냐 하는 것은 혼자 행동하게 하겠느냐 그  말씀입니다. 혼자 행동하게 하겠느냐? 너 혼자 기도하고 너 혼자 설교하고 너  혼자 권면하고 이렇게 하면은 네가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자도  아니고 하나님으로 동하는 자가 아니고 네가 주권자요, 네가 주권자요 네가 모든  것의 원인자가 아니냐? 자꾸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따져 보십시오. 거게서  벗어날 길이 있는가? 살 길이 있는가? 없습니다. 전적 멸망할 외에는 딴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알맹이와 꺼풀이 있는 것을 생각해서 항상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고 속에 알맹이 있는 알곡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3장에 보면은 육체의 이스라엘 말년에 예수님이 오셔 가지고  그 육체의 이스라엘의 위에 머리로부터, 대제사장으로부터 서기관 또 모든  열심쟁이 바리새교 뭐 모조리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 교인들이여' 이렇게  말씀했어. '화가 있을진저' 이랬습니다.

화가 있다 하니까 듣고 '예수님이 이렇게 저주했다.' 오늘도 보면 자기의 잘못된  거 보고 '이거 네가 잘못됐으니 이거 고치라. 이라면 망한다. 이라면 다 절단난다.'  이라면 그것을 사랑의 권고로 예언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멸망을 예방케  하는 것인 줄 여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저를 저주한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천하  인간이 다 저주해도 저주받을 만한 일이 없으면 저주가 안습니다. 안심을  하십시오. 천하 사람이 다 상을 받고 복을 받을 거라고 말해도 그 원인이 없으면  안습니다. 화도 복도 책임자가 주님이시오. 의도 죄도 심사 판단하실 이는  주님이시오.

 이러기에, 그분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모든 것이 다  정확 무오하신 분이신데 이분이 계시기 때문에 정말 한국 같은 나라에서는 더 살  보람을 느낍니다. 왜? 그분이 없다면은 그뭐 이렇게 전부 이중 삼중 십중도 더  껍데기를 쓰고, 의인인 줄 알았는데 그놈은 도둑놈이고 정직인 줄 알았는데  그놈이 더 거짓부리고, 뭘 믿고 의지하겠습니까?  참으로 살아보고 생각해 보면은 우리 하나님이 계시지 안한다면, 하나님이 계신  걸 모른다면은 세상에는 그뭐 두 가지밖에는 할 일 없어. 힘 있는 대로 싹 없애  버리고, 다 죽여 버리고 없애 버리고 저 죽고 했든지 그리 안 하면 다 없애기  싫으면 제가 죽어 없어져 버리든지 그렇지 무슨 소망을 가지고 살겠소? 완전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이 뭐라고 흉흉하다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참이 참으로 거짓이 거짓으로 정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졸리는  것뿐입니다. '이거는 억울하다.' 이거는 애매하다.' 야, 억울하다 애매하다 하는  것보다도 네게 대한 심판이 너무 정확히 나타나니까 두려워 떨기나 떨어라 하는  것이 그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존재관에 대해서 우리가 첫 시간에 그것을 배웠습니다.

또 믿음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믿음은 모두 저 굴 속에서 있는, 대개는  노파들이오. 굴 속에 있으면서 그저 이런 말 저런 말 뭐 가리지 안하고 제  생각나는 대로 거짓말을 해 가지고 사람들을 꼬아서 쌀되박이나 가져오면 그거  끓여 먹고 앉아서 또 뉘가 오나 하며 이래 가지고 있으니 그 얼마나 비참합니까?  사실은 그것도 가서 구원할라고 하지마는 해 봐야 잘 듣지 안합니다.

 제가 삼각산 집회할 때에 거게서 믿사옵나이다 하는 그런 다 거짓부리를 그것을  좀 잘못된 것을 지적했는데 그래야 그 사람들이 와야지요? 한번은 가니 밤에  비가 갑자기 얼마나 쏟아졌던지 그만 굴이라 하는 굴에 전부 물이 다 차  놓으니까 저거가 있을 도리가 없어. 이러니까, 굴에 물이 차니까 전부 다 쫓겨  나왔어. 약을 치면 돌 밑에 든 고기가 다 나오듯이 전부 다 나와 버려. 다 나와서  그때 삼각산 예배당이 거뜩 차 버렸어요, 그 모두 다 선지자들이 다 나와서. 그래  놓고 거게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증거하게 해 가지고 그것을 한 너덧 시간 증거를  했습니다.

증거를 하니까 거기서 다 깨달은 사람은 깨달았지마는, 깨닫고 다 각오도 하고 뭐  안 되겠다 이래도 참 이거 입을 간수하지 못해서, 뭘 먹어야 되는데 당장 나가니  참 힘 없지 그는 노동 못 하지 이러니까 먹기 위해서 또 거짓말을 해야 된다  말이오.

 어떤 사람은 '네가 정말로 기적을 하느냐? 하나님이 너는 기적하는 사람으로  그때 가지고 네가 기적한다 하는데 왜 네가 식주인 삼아 가지고, 만날 그  사람들은 병신 아이 하나 그거 낫우겠다고 일등 대우를 올 때마다 대우하는데 그  아이는 왜 아직까지 병이 안 낫고 있느냐? 그게 거짓부리가 아니냐? 하나님이  당신이 낫게 하시고자 할 때에 거게 따라서 누구를 통해서 낫게 하는 그런 일  하는 것이지 네가 네 욕심대로 지금 대접받기 위해서 돈벌기 위해서 하는데  하나님이 낫아 주시느냐?' 하는 그런 것을 일찍부터 알았었습니다. 말했습니다. 그  분이 지금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 모르겠어. 여기 변계단씨라 하는 그 분입니다.

지금 살아 있어? 돌아가셨어요?  그분이 나를 경북 김천 철도 터널 밑이, 굴다리 밑이 넓은데 거게다가 집회를  모여 놓고 이제 기적은 자기가 행하고 하나님 말씀은 나를 가르쳐 달라 해서  내가 거기 협동하기 위해서 간 것은 아니지마는 기회다 해서 제가 가 가지고  했었습니다. 하니까 나중에 엔간히 중간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 나한테 와 가지고  '아이고 나도 이제는 그런 거 다 치워 버리고 이제는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좀  신앙 지키고 살겠습니다.'  그래서, '그거 사람이라는 것이 기독교에는 언제든지 생명의 도이기 때문에  생명을 바쳐야 되는 것인데 굶어 죽어도 좋아요? 이제 돈이 안 들어오니까 굶어  죽을 모양인데 배고프면 또 그짓 또 할 걸?' '안 합니다.' 이라더니마는 내나 그 일  또 새로 하면서 부끄러우나마 부산 오면은 이 서부교회 오기는 왔었어. 예배하러  오기는 왔었어.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는 산 제사 드리고,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하고,  새로와져서 하나님의 선한, 참 온전한 마음을 갖추어 가져야 되지, 변화한 마음을  가져야 되지 그렇지 안하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찾지  못합니다. 내가 생명 가지고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 하는 사람은 못  찾습니다. 당신의 뜻이면 소유고 몸이고 생명이고 다 바칠 각오가 딱 뭉쳐 놓고  '여기 있으니까 명령만 하십시오. 내가 그대로 나는 가겠습니다' 그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기 와서도, 여게 보니까 어떤 분 한 분이 여기 오늘 아침에 써  냈는데 그분은 미국서 온 분이오. 미국서 온 분인데 나는 그분이 뭐 그런 줄  몰랐는데 귀가 하나 먹어서 잘 못 알아듣는답니다. 이래 놓으니까 고함을 질러야  뭐 소리가 들리는데 나는 그걸 몰랐어요. 지금 여기도 귀머거리 더러 많소. 요  귀는 들리는데 요 귀는 안 들리니 어제든지 말하면 살며시 자연스럽게 요래  돌려대면 귀먹은 줄 모르지만 귀먹은 사람 많아요. 이런데 어째 보니까 듣는 것  같애서 그 옆에 있는 사람이 있다가 살며시 요래 간신히 말하니까 그분이 그래  깜짝 놀라면서 왜 소리를 크게 하느냐고 그래 인제 들린다 그 말이오. 그래서 그  병을 나았다고 여기다 써 냈어요.

 이러니까 이게 뭐이냐? 하나님이 그래 해 주시니까 이럼으로써, 옛날도 예수님  당시에도 제사장에게 가 보여라. 그라고 네가 그런 것을 다 알리라고 말했어.

혈루증 걸린 여인은 나았는데 살며시 낫고 숨겨 갈라 하니까 그래 예수님께서  불러 가지고 '누가 여기 내 옷을 만졌느냐?' 이라니까 무슨 죄나 참, 값이나 내라  할까 싶어 벌벌 떨고 이래 했는데 그래 나오게 해 가지고 그걸 '내가 그랬는데  지금 혈루증이 이 시간 나았습니다.'  이라니까 '예수님도 참 명예주의자고 이기주의다. 그래 가지고 이제, 숨어 있는  그걸 꼭 드러내 가지고 그렇게 위사를 시키고 뭐 그렇게 할 게 뭐 있는가? 그래  가지고 자기를 통해서 나았다고 이래 영광을 받도록 그렇게 할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오해를 하지마는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해석을 해 보면 해석이 나옵니다.

 그 여인이 벌써 십여 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니까 재산 다 없어져 버리고  가정도 다 파괴돼 버리고 부부간도 다 못쓸 사람 다 돼 버리고 하는데 그 대중  앞에서 예수님이 드러내 가지고 이제 너는 네 죄도 사함받고 완전히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고 육체도 완전히 나음을 받았다 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증해서  증거해 주시니까 그 여인 그만 사회성이나 가정성이나 전부 다 해방을 시켜서  완전한 축복으로 바꿔 주지 안했습니까? 주님의 하신 일은 다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랬는데 제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이여, 이렇게 아무래도 이번에는 가서 하나님의  은혜로써 사람병도 고쳐져야 되겠고 육체의 병도 고쳐져야 되겠습니다.' 이라니까  하나님께서 너 고쳐 놓은 거는, 전부 고친거는 파묻어 놓고 고친 것은 다 모두  부끄러워 여기고, 무슨 병원에 가서 입원해 가지고 고쳤다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안하고 하나님이 고쳤다고 하면은 이거 모두 부끄러워해서 저 뭐 '하나님에게 뭐  기적으로 고쳤다' '그 사람 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다. 그거 비과학적인  비인격적인 말하고 있다' 이래 가지고 그만 기도해서 나았다는 소리는 큰 똑  범죄한 것처럼 그렇게 알고 있어요.

 왜? 또 막 공격을 합니다. '이적이니 하는 거는 건전한 신앙이 아니고 정통이  아니고 보수적이 아니고 거거는 다 미신적이고 잡탱이 신앙이다' 이래 가지고  얼마나 공격했던지 나도, 내가 고려신학교 가기 전에는 문둥이도 깨끗하게 했고,  앉은뱅이도 일으켰고 그라니까 집회할 때는 환자들이 많이 오고 이랬는데, 이제  고려신학교 가니까 막 그때는 죄라고 정죄를 해서 내가 그것을 부끄러워서 나도  부끄러워했습니다. 부끄러워 하니까 또 하나님이 이적도 베풀어 주시지 안하시오.

 이라다가 이제 자꾸 교회들이 말라지고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다  가리워지고 어데 봐도 하나님의 역사하는 역사가 보이지를 안해 그래. 갈급해서  내가 한번은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우리 이 진영으로서 지금 내가 혼자 나서  가지고 이래서 지금 교회가 얼마 됐는데 우리를 전부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으니까 좀 이단이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진영이라 하는 것을 좀 보여  주십시오. 당신이 보여 줘야 되지 암만 말해야 나 이 말 하면 그 사람들 저 말  하고, 말은 다 못 하는 사람 없고 다 말 잘하기 때문에 이는 인간이 하지 안하는  보이지 안하는 하나님의 그 역사가 와서 역사해야 되지 이거는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말년에도 하도 말 잘합니다. 요새는 이스라엘 종교 말년과 같애. 설교  못 하는 사람 없어요. 옛날 뭐 사도들보다도, '사도들보다 낫다 하면 또 모순된다'  낫소. 사도들은 그때 이 성경 지식에 대해 이렇츰 다 골고루 알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에게 대한 지식이 이렇츰 구비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안 믿는  사람들도 잘 아요.

이스라엘 말년에도 그래 놓으니까, 말을 잘하니 말하기를 '네가 하늘에서 온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고 네 말을 청종할 수 있도록 뭘 기적을 보이라, 표적을  보이라.' 이랬어. '인간이 하지 안하는 것, 이걸 하나님이 하신다는 이걸 표적을  봐야 우리가 믿지 말만 가지고 믿을 수야, 전부 말쟁이가, 다 전부 말 잘하니까 뉘  말 믿겠나?'  이래서, 나도 그 기도를 했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 다는 증거, 이  말씀은 하나님이 증거하신다는 증거 이것으로써 사람이 볼 수 있게 육체의 병을  낫우시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육체의 병 낫우시고 사람병도 낫우시고 또 그  생활의 모든 정도의 병도 형편 병도 낫우셔서 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을 주셨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 또 그 뒤에 재미를 붙여서 또 내가 준비할 때 또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라니까 하나님께서 나한테 말씀하시기를 '야 이놈아, 내가 그렇게  한 것은 그것을 광고를 해 가지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계신다 하는 것을 알려  달라고 해서 내가 그래 했고, 또 그것을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이래 하신다 하는 것을 알려서 모든 사람들이 그래 내게로 돌아와  가지고 구원을 이루어 가도록 할라고 했는데 네가 낫아 준 거는 까마귀같이 다  말 없이 그 낫은 것도 다 부끄러워하고 부러, 하나님의 은혜로 나은 것도 백지 약  먹어 나았다, 병원 가 나았다 이렇게까지 가명까지 하고 이래 하니 내가 그것을  너한테 줄 이유가 뭐꼬?'  그래 내가 그때에 회개를 하고 '내가 이제는 그 나은 사람은 낱낱이 신고를 해라,  보고를 하라 해 가지고 보고한 대로 책을 내가 기록해 가지고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리도록 알려서 읽히도록 그렇게 내가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어. 그 기도하고 난 다음에 그때에 여게서 나은 사람이 한 집회에 오백여  명이 나았습니다. 신고하는데 오백여 명이 들어왔어,  이번에도 그라니까 또 그 말씀을 하셔. '네가 그래 놓고 낫아 줘 봤자, 낫아  주니까 나은 거 가지고 죄나 짓고 제 욕심대로나 하고 하니까 자꾸 죄만 더  짓구로 만드니까 내가 사람 망하게 하는 것이니 내가 어떻게 치료할 수가  있겠느냐? 나은 것 가지고 그 나은 몸뚱이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지  안하고 믿음 생활은 하지 안하고 죄짓지, 등신 바보 같은 것을 나아서 정신도  옳지 못한 거 그런 것을 낫게 해 주니까 나은 그것 가지고 도적질하고 지금 사기  협잡하고 돈벌이하는 데만 야단을 지기고 하니까 내가 어떻게 해 줄 수가  있겠느냐?' 그래 내가 말할 체면이 없어.

'주님이여, 이제는 내가 가 가지고, 이번 집회에도 가 가지고 받은 바의 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사는 자에게는 어짜든지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잘못 산 자에게는 하나님이 징계를 하셔서 더 큰 증세가 나오도록 그렇게 내가  광고를 하겠고 주님도 그렇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내가 요새 기도가 그겁니다.

 하나님께서 88올림픽을 원치 않은 그것 뭐 이래 가지고 야단을 지 겨서, 그라면  그때 가서 또 뒤비질 것 같아서 기도하기를 '주님이여, 이 88올림픽이라 하는 이걸  공연히 이렇게 모두 허욕으로 이래 가지고 해서 시작해 놨는데 이 기회에  남침해서 빨갱이 내려오면 큰일나니까 무사히 통과하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하나님에게 약속하고 기도했는데 이렇게 해 줘서 내가 뭐 기도하고, 모든 성도들  다 기도했겠지요? 기도해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무사하게 해  주셨는데-그때에-이게 무사히 통과되고 난 다음에는 교회를 정화시켜 주십시오.'  하는 그것을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정화시키는 것은 먼저 피와 성령과 진리와 하나님께 대한 소망으로써, 이  생명력으로 깨끗하게 교회를 정화시켜 주시고, 그래도 안 듣는 것은  개갈개갈거리도록 징계를 해서 제까짓 게 회개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도록  징계로 회개를 시켜 주시고, 징계했을 때에 제가 알고 깨달아 회개하거들랑은  지체하지 말고 속히 축복으로 바꾸어 그래 주십시오.' 그렇게 이 세 가지로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고, 이번에 여기 올 때에도 '하나님께 받은 바의 고침받은 것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영원한 구원 이루지 안하고 또 받은 바의 이 사람 돼서  모든 것이 온전하고 구비해서 참사람이 되어 간 요거 가지고, 하나님의 주시는  복음을 잘 복음 생활해서 구원 이루고자 안 하고 요거 가지고 돈벌이하는 데만  거석하면 다 망한다 하는 그걸 내가 선포를 하겠습니다.' 했습니다.

 내가 지금 선포합니다. 미가서에 보면은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고' 하는 말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 망한다 했어. 돈을 위해 점치다니? 이거 하나님 앞에  지혜와 총명을 받으면 처음에는, 예를 들어 두 닢푼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받으니까 한 한 냥짜리가 됩니다. 한 냥짜리. 백 원짜리 된 것이 하나님  앞에 지혜와 총명을 받으니까 이게 몇만 원짜리가 된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하면은 살기가 힘이 들어요.

같은 지능 가지고는 밥먹고 못 삽니다. 안 믿는 사람들의 그 안 믿을 때의 밥먹고  사는 그 지능 가지고는 신앙 생활 할라면 모든 것이 다 제재되는 것이 많이  있으니까 그 지능 가지고는 밥먹고 살지를 못해요.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부득이  그 지능을 많이 해 준다 말이오. 그 지능을 많이 해 주니까 이제 죄를 안 짓고도  그대로 살 수가 있다 그거요.

 그거는 의롭게 살라고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셨는데 지혜 총명을 받아  가지고는 가만히 보니까, 안 믿는 사람 잘난 사람 이래 보니까 서로 대화를  해봐도 '그까짓 것보다 내가 위에 있다. 이래도 위에 있다' 이 모두 위에 있으니까,  자기가 위에 있으니 내가 이만하면 잘났다 이래 가지고, 저 시골에 있던 게  지혜와 총명을 받아 놓으니까 이제 이게 '나도 시골에 묻혀 살 게 아니라 이  도시에 가서도 좀 도시 생활도 할 만하다' 이래 자지고, 시골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의롭게 살라고 지혜와 총명 줬는데 그 지혜와 총명 가지고 이제 제가 잘난 줄  알고 도시로 나왔던 사람들은, 일시는 잘되지요. 일시는 잘되지마는 다 자손 다  망칩니다. 자식들 전부 신앙 하나도 없이 다 망쳐 가지고, 대대학에 가면 뭐할  겁니까, 그거? 신앙 없어서 하나님 앞에 저주거리만 자꾸 쌓고 있는데 그거 뭣 할  것입니까?  그래 내 여기 와 있어. 어떤 사람은 조그만한 교회 있었는데 거게서 하나님이  지혜와 총명을 주시니까 이게 뭐 아주, 꺼무터드리하이 똑 깻묵같이 생긴 것이  조막덩이만하지 아무 가치가 없어. 내가 장가보낼 때 사천 원 가지고 보냈어, 꾸어  줘 가지고. 그때는 오천 원 가지고만 결혼하지 그 이상 결혼비를 못 쓰게 했어.

지금도 우리 서부교회는 삼십만 원 이상은 결혼비를 못 쓰게 합니다.

사장들이라야 되고 아주 부자라야 삼십만 원 합니다.

 이랬는데, 이게 돈도 없는 게 어짜든지 이걸 어겨서 좀 저거가 좀 많이 하겠다고  이래 가지고, 돈 없어서 서로 살면서도 결혼비가 없어 가지고 결혼식을 못 하고  아이 둘 셋 낳고 난 다음에도 그때, 결혼식 하자 하는 이런 미친 세상이 돼  가지고 있는데, 그런 것을 자기네들이, 이거 이렇게 하면은 그 사람들도, 돈 없이  결혼식 하면 그런 무슨 폐단이 생겨질 일이 있겠습니까?  이래서, 그래 가지고 시켰는데 그래 언제, 있다가 '아무래도 내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되겠고, 시골 골짝에, 부산 지역은 지역인데 골짝이거든. 내가 여기 있어서는  안 되겠고 이제 할 수 없이 좀 내가 모두 좀 팔아 가지고 어데 가 가지고 토지를  사 가지고 뭐 거기 가서 좀 살아봐야 되겠습니다.' '네가, 하나님이 거게 세워  가지고 교회를 세우고 이랬는데 그 교회를 냅두고 네가 유익되도록 돌아가는  것이 그게 아브라함이가, 롯이가? 거기 가면 잘될 줄 아느냐? 가면 안 된다.'  이랬더니만 말을 순종했어. 순종하고 안 갔어요. 안 가고 이랬는데, 거기 갔더라면  왕창 말해 버리는 건데. 거기 가면 거기 비싼 거 사 가지고 지금도 올라가지  안해요, 거기는. 이랬는데, 여게서 망해서 내버릴라 하는 그런 거 냅뒀는데 이게  한금덩어리가 돼서 갑자가 부자가 돼 버렸어. 영 큰 부자가 됐어요. 뭐라, 뭐 집이  몇 채라 하더나? 셋방 준게 마흔 몇 개라던가 뭐 어짠가? 그러면 부자 아니요?  이렇지, 한 달에 수입이 상당히 많대요.

 이랬는데, 또 이걸 그대로 있으니까 하나님이 이번에는 그 교회서, 그분을 장로  세워 달라 해서 장로 세워 줬더니마는 또 그분을, 교역자가 지금 딴데로 간다  하니까 또 목사 세워 달라 해서 목사로 이제 교역자로 세웠어. 이제 교역자가  됐어.

 '여호와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변치 안해요. 끝까지 끝까지 신앙으로 나가십시오. 그라면 하나님이  우리를 속이는 하나님 아닙니다. 하나님은 속이지를 못하는 당신이오. 거짓말을  못하는 당신이오. 과장을 못하는 당신이오. 당신은 완전이요 진실이오. 이러기  때문에 그분을 든든히 믿고 우리들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랬는데, 오늘 여기서 제가 조금 하나, 또 딴거로 왔는데. 이러니까, 여게서  사람병만 고치면 고기덩어리병 그까짓 거는 문제가 없어요 여기서 이 교리, 예수  믿는 이치를 듣고 난 다음에 '나도 이제 그 이치대로 나도 신앙생활 해야 되겠다.

내가 고 이치대로 내 사람이 되겠다.' 가르쳐 주신 이치대로의 지식을 가지고 그  이치대로의 사람이 될라고 그 이 치대로의 행동을 하기로 작정해 보십시오.

혈루증이 버쩍 말라 버리는가 안 마르는가?  뭐 기도했어요, 귀 틔워 달라고? 기도 했어? 기도 했어? 안 해도 틔워져, 안  해도 틔워져. 안 해도. 기도는 뭐? 기도 안 해도 틔워져, 그전에 여기 말 들으니까  이라는데 뭐이 택 거리더니마는 '아 이거 무슨 난리 났는갑다. 왜 이거  와글와글거리고 이거 난리났나?' 막혔던 귀가 열리니까 그런 거라. 그런 게  얼마나 됐습니까? 그래 그 책을 냈는데 보니까 이천여 명이라. 병 나은 종류는  이백구십육, 이백아흔여섯 가지 병이 나았어요. 병도 숫자는 굉장히 많애,  그걸 이러니까 자기가 그 병 나은 것을 자꾸 이렇게 자랑을 해요. 왜? 자랑하는  거 그러면 제 자랑이요, 주님 자랑이요? 주님 자랑이라. 복음 자랑이요, 세상  자랑이요? (복음 자랑) 이러니까 그럴수록이 하나님은 자꾸 복을 주십니다. 왜?  사람 그거 당신 칭찬 받을라고? 그게 아니라. 인간 구원하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서 당신이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것입니다. 그게 다 인간을 구원하는  운동이라.

 이러니까, 그런 사람 다 여기 좀 써내요. 전부. 뭐이든지 나은 사람 다 써내고  이제 자기가 사람만 고치면 병 그까짓 거는 문제가 없어. 문둥병이든지 뭐  앉은뱅이든지 누운뱅이든지 귀머거리든지 사람만 고쳐지면 하나님이 고쳐 주는  게 필요하면 당장 고쳐 줘. 그분이 시간이 걸립니까? 뭐 비용이 듭니까? 그분은  전능자신데. 비용 안 들어 그래서 요번에 외식을 다 이제 고칩시다.

 오늘 아침에는 고린도전서 l3장을 보았는데 거게 보니까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이런데 이 사랑을 '사랑은 사랑이지.' 마구 지금 사랑이 사람을 죽입니다.

요거 여러분들이 배우십시오. 요게 총공회 교리입니다. 신조입니다. 요거 다른  데와 달라요.

배암 사랑 하나님 사랑이 있다. 요것이 조롱받는 소리라. 물론 총공회 가담 안  하고 다른 데 있는 사람들도 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오해를 품을 거라고. 왜? 배암 사랑만 가지고 사는 세상에 배암 사랑을  배격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질라 하니까 사람과 대립이 되거든. 대립이 돼.

내외간 에도 대립이 되고 형제간에도 대립이 되고 분명히 대립을 당해서 고독한  걸음을 걷고 있을 것이라.

 배암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데 사람들이 사랑을 제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일 가치 있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런데 사랑은 천하에 제일  해독이 많은 것이 사랑입니다. 천하에 제일 해독 많은 게 사랑이오. 막 죽은 사람  멸망한 사람 전부 다 보면은 전부 사랑 먹고 죽었습니다. 전부 사랑 먹고 죽었어.

사랑 이놈이 독이 굉장한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을 멸망시키는 멸망의 독이  사랑에 제일 많이 들어 있습니다. 또 인간을 구원하는 생명의 축복이 사랑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해가 돼요?  인류 시조가, 인류 시조가 뭘로 가지고 죽었습니까? 뭘로 죽었어? 배암 사랑으로  죽었어, 배암 사랑. 해와가 배암 사랑 먹고 난 다음에는 제가 선악과 먹고,  하나님보다 뱀이 낫거든. 배암을 지도자로 삼았어. 배암을 더 사랑했어,  하나님보다. 이러니까 하나님 배척하고 배암 말 들어 가지고 선악과 먹었어.

선악과 먹고 난 다음에 아담을 이거 사랑함으로써 선악과 줬어. 배암 사랑 가진  해와가 배암 사랑으로 선악과를 아담에게 주니까 아담이 그 선악과 먹고 그래 둘  다 죽었어. 사랑으로 죽었어.

첫째 아담은 사랑으로 죽었습니다. 사랑으로 죽었어. 둘째 아담도 사랑으로 죽어  우리를 살렸습니다. 둘째 아담은 하나님의 사랑이요 첫째 아담은 인간의 사랑  배암의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은 그래서, 사랑은 하나님만 가지고 있지 딴거는 가지고 있지를 못하요.

왜? 사랑이라면 오늘도 사랑해야 되겠고 만 년 후도 사랑해야 되지 오늘 사랑한  것이 내일 원수가 되어지면 그게 무슨 사랑이요? 오늘 사랑한 것이 전부 나중에  가서 보니까 속이고 꾀우고 이렇게 멸망시켰으면 그게 사랑이요? 나중에는 이제  보십시오. 세상을 딱 떠나고 나면은 싸움이 일어납니다.

 세상에서도 처음에는 결혼의 첫사랑이라고 막 죽고 못 살고 이렇지마는 차차  나이가, 많아지면은 설설 변해져서 그저 뭐 영감도 봐야 그거 또 자세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고, 할멈도 봐야 자세히 생각해 보니까 아무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은 그거 또 그걸 안 떨어질라고 이래 가지고 있다가, 그래 가지고 있다가  그러니까 우리 사랑이야 떨어질 수가 없고 행복이지 이래 놓으니까 그런 것은  영감이 뒈지니까 막 울고 환장을 합니다. 그놈의 사랑이 사랑 같으면 울게 만들고  비참하게 만들고 이렇게 합니까?  또 나중에 가서 보니까 그 남편이 아내에게 말한 것이 전부 멸망 말만 다 해  놨어, 멸망 말만.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 못 믿게 해. 예수 믿는 사람도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 못 가구로 해요. 이래 가지고 달콤한 부부 사랑에 붙들려 가지고  자유를 못 합니다. 신앙 생활을 옳게 못 합니다.

이러니까, 배암 사랑은 어떤 것이 배암 사랑이냐? 하나님 떼내 버리고 인간끼리  사랑하는 것이 배암 사랑이오. 영원 무궁세계도 모르고 세상만 보고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세상 위주로 표준으로 사랑하는 것이 배암 사랑이오. 속에 영은  어찌 됐는지 그거는 모르고 고기덩어리만 사랑하는 것이 배암 사랑이오. 준다는  것이 항상 먹으면 썩을 거, 먹어봤자 썩어지고 없어질 거, 그것만 주는 사랑, 제가  희생한다 해도 한 푼 희생해 주고 두 푼 받을 거 요량하고, 전부 꽃이 있었으면  꽃을 똑 꺾어 가지고 제 호주머니에 딱 꽂는 거 모양으로 요런 사랑이오.

 이래 놓으니까, 내가 저 아레도 우리 서부교회에 어떤 처녀를 보니까 예뻐. 예쁜  처녀는 남아 있지를 안해요. '조거 좀 예쁜데 조거 좀 위험하다' 해서 그걸 주의를  좀 줘도 어째 그만 며칠 있다 보면은 그게 그만 얼굴도 달라지고 이상해져서  저거 좀 거석하다 하고 단속할라 하니까 그만 그놈이 빼 가지고 도망쳐서 그만  보이지도 안해.

 이래 가지고 어떤 거는 뽑아 가지고 가 가지고, 학교 다니던 게 납치당해 가지고  사흘인가 나흘인가 보이지도 안하더니마는 그만 그놈이 차고 가 가지고 다  절단내 버리고 그래 가지고, 억지로 가자 하기를.

 그래 나는 그 말했어. 저 아레 말하기를 '얘, 너 얼굴이 좀 예쁜데 지금 세상이  어떤 줄이나 아나? 너 지금 암만 네가 좋아하고 이래도 하나님이 짝 지운 거라야  되지, 신자와 불신자는 결혼할 수 없는 것이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네게 네것으로  예정돼 있는 거는 암만 발길로 차도 네것 될 터이니까 고자세를 가지고 탱탱  탱구고만 있거라. 이렇지 네가 어리석은 일 하지 말아라. 너 학교 가니까, 대학  다니는데 지금 너를 탐내는 게 많겠는데 너 학교 갈라면 숯검정을 가지고 낯을  이래 시커멓게 칠해서 꺼머트리하게 그래 가지고 가거라. 너 지금 요새 보니까 너  예쁘게 뭐 옷을 뭐 꾸며 입고 자꾸 그라는데 너 위험하다. 그러니까 숯검정을  칠해 가지고 가거라' 내가 그렇게 부탁했어. 그래 하니까 제딴에는 웃어 '웃을 게  아니라 그 사실이 그렇다. 네게 정해 놓은 것은 딴데 가지 안하고 올 것이고  하니까 네가 그렇게 유혹을 받지 안하도록 해라.' 그렇게,  그래서, 사랑은 배암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한 말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와서 우리를 살렸습니다. 우리를 살린 것이 몇 가지가  들어 살렸습니까? 자, 손가락으로? 몇 가지가 살렸어? 우리 살린 것이 몇 가지가  와 살렸습니까? 네 가지가 와서 살렸어, 네 가지. 예수님의 피, 성령, 진리, 하늘의  소망 이 네 가지가 살렸어요. 예수님의 피를 가리켜서 이거 세 가지니까 하나는  쳤으니까 둘 안 쳤으니까 너이라 해도 되고 여섯이라 해도 돼요. 그게  사랑입니다. 그게 사랑이라. 그 외에는 사랑이 없어요.

 '사랑 안에 거하라' 하는 것이 그 네 가지 안에 거하라 말이오.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하니까 이 배암 사랑 가지고 뜨겁게 사랑하라고 이 사랑을 구별하지  안하기 때문에 막 죽여. 지금 교회가 배암 사랑으로 죽어가는 걸 보고 기가 차는,  마음 아피 여기고 이게 지금 죽어가는 데 대해서 기가 차서 참 가슴을 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몇이나 있어, 있기를? 정말로 배암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구별하고 있어요?  테레비에서 뭐 사랑으로 죽고 살고 하는 그게 다 배암 사랑입니다. 거게는  성결이 없소. 거게는 의가 없소. 거게는 죄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죽음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마귀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하나님의 진노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하나님의 심판 문제가 해결이 안 돼요. 영생 문제가 해결이 안 됩니다. 다  멸망이오. 하나님의 사랑인 그리스도 안에 있으라 하는 건 사랑 안에 있으라  말이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사랑이오. 성경 교훈이 하나님의  사랑이오. 하지 말라는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오.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신구약 성경 말씀이 전부 사랑이라. 예수님의 대속이 사랑이라. 이 외에는 사랑이  없어. 그러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그렇게 말씀을 했어.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배암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구별해 가지고 남편을  사랑해야지 자녀를 사랑해야지, 이웃을 사랑해야지, 제 몸같이 사랑해야 되지,  하나님을 사랑해야지. 위에 내 이상의 분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그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 대접이요 그를 사랑하는 것이오. 나보다 약하고 가난한 자, 못난 자, 어린  자는 내가 그를 도와서 사랑해 주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나보다 위에 간 사람에게는 그분의 사랑을 받는 것이 그분을,  그분의 사랑을 대접해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고, 나보다 좀 빈약한 자 유약한  자에게는 내가 내게 있는 것으로 그분을 도와 주는 것이 그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요 사랑과 사랑을 구별해 가지고 내가 자녀를 사랑하는 데에도, 사랑의  껍데기는 같애요 달라요, 저 뒤에? 사랑의 겉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같애요,  같애요. 사랑의 껍데기는 꼭 같애요. 사랑해야 돼요, 동정해야 돼요. 붙들어 줘야  돼요. 위로해야 돼요. 친절해야 돼요. 용서해야 돼요. 관용해야 돼요. 이해해야  돼요.

껍데기는 같은데 속에 알맹이는 다릅니까, 같습니까? 알맹이는 달라. 그리스도의  대속, 사죄, 칭의, 화친, 성령, 진리, 하늘나라의 소망 이것이 아닌 것은 다 사람  죽이는 것이라.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이것으로만 살려 이러니까, 껍데기 사랑은  같은 사랑을 가지고 그 속에 요 알맹이가 안 들면 속이는 자요 외식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거는 하나님 보지 안하고 인간만 보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껍데기 사람  속에 요 속에 알맹이가 들도록 애를 쓰고 사랑해 봐요. 절대로 실패 없습니다.

자기 생전에 안 되면 죽고 난 다음에라도 됩니다.

 이래서, 이 알맹이 사랑 껍데기 사랑 이것만, 세상만 위주로 하면은 그거는 배암  사랑이라. 세상을 말하는 데에서 영원 무궁이 그 알맹이가 돼야 돼. 인간 좋구로  하는 그 꺼풀 속에 하나님이 좋아하셔야 돼. 환영하고 관용하고 이해하는 속에  죄가 멸해져야 돼. 의가 성장돼야 돼. 하나님하고 화친이 돼져야 돼. 영원  무궁세계의 준비가 돼야 돼요. 이것이 없는 배암 사랑만 가지고 하기 때문에 자꾸  망하는 거라.

'그라면 고린도전서 l3장에 있는 사랑이 배암 사랑이라 하나님 사랑이라 어데  그런 게 있는데 자꾸 배암 사랑이니 하나님의 사랑이니 그렇게 붙이는가?  아무나따나 귀에 걸어 귀걸이 코에 걸어 코걸이로 이렇게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러면, 거게 있는 사랑이 없으면 다 몸을 주어 불사를지라도 헛것이다 이랬는데  그거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라 하는 것을 뭘로 가지고 근거를 해요? 그 성경  뭘로 근거해요? 성경 잘 아는 OOO목사님 한번 대답해 봐. 그거 사랑이 없으면  헛일이라 하는데 그 사랑이 말이요, 그 사랑이 배암 사랑인지 하나님의 사랑인지  뭘 보고 알겠느냐 그거요. 그걸 알았어. 그게 백점이야. 그래. 거게 있는 사랑이  보니 항상 영원 무궁토록 있는 사랑인데 어데 배암 사랑이 영원 무궁토록 있는  사랑이 있어요? 예수님의 사랑 외에는 영원 무궁토록 항상 있을 사랑은 없습니다.

거게서 그 사랑을 말한 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을 증거하고  있어. 요동을 못 해. 변동을 못 해.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배암의 사랑을 구별해서, 제일 해독이 많은 것이 배암  사랑, 인간 사랑, 세상 사랑이오. 배암 사랑이라 말이나 인간 사랑이라 말이나  세상 사랑이라 말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놈의 배암 사랑이 미워서 나는 인간  사랑이라 세상 사랑이라 그렇게 말하지 안하고 배암 사랑이라 마귀 사랑이라  나는 그렇게 말합니다. 그라니까 모가 져 가지고 듣기 싫어. 모가 져 가지고 듣기  싫으니까 찍히면, 찍히면 깊이 들어가기는 들어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가지고  우리는 주고 받아야 되지 딴것은 안 되겠습니다.

 여게 골로새서 3장 l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하는 것은 이것은 우리가 중생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이 소망의  영생으로 우리가 대속함을 받아서 우리가 살림을 받았다 그 말입니다. 대속함을  받아서 우리가 살아났다 그 말이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이제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리심을 받았는데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그러면 그리스도가,  예수님이라 말이 그리스도라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그리스도라 말은 사람되어 오시기 전 하나님의 이름, 성자 이름을 가리켜서  그리스도라고 말하고 이제 그 그리스도가 사람되어서 땅위에 오신 도성인신하신  후의 이름을 가리켜서 예수라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가  예수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렇게  말씀하신 데가 많이 있습니다.

 이래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예수 부활이 우리  부활이오. 예수 부활은 내 부활을 위해서 대속하신 부활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써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중생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난 것입니다.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예수님의  부활로써 그 부활에 연합해 가지고 내가 다시 이제 중생한 자가 되었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찾으라 말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위엣 것이라 말은 곧 이 멸망전 이상의 것을 말하기 때문에 위엣 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하늘 나라의 영원 무궁한 그 멸망하지  안할 무궁세계의 것을 네가 찾으라 그 말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무궁세계의  것만이 네가 소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을 네가 소망의 대상으로 삼고  그것만을 지금 구하라.

위엣 것을 찾으라 말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인데 영원 무궁한 것인데 그것만  네가 가치로 알고 그걸 지금 구하라 그 말이오. 찾으라 말은 그것만 마련하라 그  말이오. 그것만 마련해라. 찾으라 말은 그것만 마련해라. 그것만이 가치지 그것  아닌 것은 다 헛일이기 때문에 그것만 가치니까 그것을 네가 마련하라 그 말로써  '찾으라' 그 말 했습니다.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거게는, 땅위에서  그것만 찾고 그것만 위해서 전심전력 기울인 그분은 다 얻어 가지고 거게 계신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 하늘의 권세와 땅에 있는 권세를 다  아버지에게 상속받아 가지고 이제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했습니다.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말은 근본 하나님이신 데, 뭐 하나님의 본체신데  우편이고 좌편이고 할 것이 뭐 있겠는가?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시니까  신성으로서는 하나님의 본체시지마는 예수님이 인성을 입었습니다. 피조물을  입었습니다. 피조물 입은 것을 여게다 두고 말합니다.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

피조물로서, 피조물로서 피조물 중에 제일 존귀한 위치, 제일 승리한 위치,  하나님에게 제일 필요한 위치, 승리한 위치, 승리, 이미 승리해서 다 얻어서  아버지 것을 다 상속받은 위치요 앞으로 아버지의 역사를 다 베푸실 계대할  위치요 하나님의 충만을 다 받아 가지고 있는 위치인데,  '앉아 계시느니라' 이 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 세계 있으니까 이 세계가 네  세계니 곧 '내가 승리하고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같이 너희들도 나와 같이  이기고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리라' 그러면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으면, 예수님은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았으니까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으면은 그 보좌가 무슨  보좌요? 예수님이 앉으신 보좌는 아버지의 우편이라 그 말이오.

아버지 우편이라고 하면 그 위치를 말하는 것이 이것이 언제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뭐이냐? 이것이 독재의 나라라 그 말이오. 독재의 나라. 독재의 나라.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이 여게서도 독재의 나라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우편이라는 것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동하고 정하지 이렇게 하늘의 것과  땅에 있는 권세를 다 받았다고 해 가지고 이제는 뭐 아버지 없어도 된다 하고  하나도 당신 마음대로 터럭만도 영원 무궁토록 하지 못하고 하지 않는 것이  예수님의 위치입니다. 아버지의 위치라는 건 이것입니다.

이러니까, 땅위에서도 이런 위치를 마련한 것이 뭐이냐? 죽기까지  복종하였음이니라. 죽기까지 복종하였음이니라. 이러므로 그를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것으로 하여금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이제 주라 시인해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민주주의라요 독재주의라요? 독재주의요. 이것이 통하지 안하면 어찌 될  거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이러니까 이것이 우리 소망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찾으라' 그리스도 안에는 뭐 있소?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사망과 생명과 모든 것이 다 너의 것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어짜면 그래 됩니까? 어짜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까? 너 말해 봐  양성원 학생? 내가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그 모든 것은 내것이 됩니다. 요것이  기독교요. 내가 그분에게 절대 복종하면 피조물은 나에게 절대 복종하게 돼  가지고 있어. 내가 그분을 배반하면 모든 피조물은 다 나에게 배반하도록 돼  가지고 있어.

 그러기 때문에, 그분을 의뢰하는 것을 버리고 딴것을 의뢰하다 보니까 생긴 게  뭐이 생겼소? 교만 생겼고, 불목 생겼고, 월권 생겼고, 압박 생겼고, 학대 생겼고,  사치 생겼고 멸망받고 말았어. 그분과 나와의 관계대로 나와 피조물과는 관계가  된다는 요것을 꼭 잡고 있으십시오, 그분과 나와의 관계대로 모든 피조물과  나와의 관계는 그대로 됩니다.

 이것이 있는데 뭐 인간들이 자꾸 단합돼 가지고 '너 나 안 따르면 안 된다. 나 안  잡으면 안 된다. 나한테 머리 안 숙이면 안 된다.' 모르드개가 하만의 그 정권  밑에 있었지마는 정권 밑에 있어도 이 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하만이가 와  가지고 비쭉거리고 막 이래 호령을 치고 이래도 비웃었습니다. 비웃었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모든 피조물과 관계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로 되면 네가 나와의 관계가 바로 돼.' 하고 있었는데 그거 배짱이오.

 예수 믿는 사람들, 그거 밉지, 잘 믿는 사람들은. '저게 어데다가 배짱을 두고  저래 하는가?' 아무것으로도 통하지 안해. 어떤 대국의 학정 앞에서도 변동하지  안해. 공산주의 앞에서도 변하지 안해. 속에 이런 교리와 진리가 들어 있으니까  요동치 안하는 것이지 이 올바른 교리와 진리가 없는데, 교리와 신조가 없는데  어떻게 제까짓 게 견뎌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그 말은 위엣 것만이 가치로 생각하고 땅엣  것을 가치로 생각지 말아라. 위엣 것은, 위엣 것만 가치 있지 땅엣 것은 가치로  생각지 말아라. 위엣 것만 생각하고 땅엣 것은 생각지 말아라.

 이러니까, 땅에 그것이야 뭐 그까짓 거 가치로 칠 거 없는 거, 있으나 없으나,  '천하에 제일이라' 제일이거나 말았거나 그까짓 거. 하늘나라의 것은 조그만한  것이라도 그것만한 가치로서 그것만 가치로 삼아 가지고 네가 살아라 그 말이오.

가치를 하늘의 것만 가치로 삼고 해야 되지 땅의 것을 가치로 삼은 사람은 제가  암만 해도 땅에 종되지 안할 수가 없어.

겨자씨 믿음은, 겨자씨 믿음은 흙이 안 된 그게 일차 권능인데, 일차 위대고 일차  권능인데 흙이 되지 안하는 것은 왜 흙이 안 됐어요? 겨자씨가 왜 흙이 안 돼요?  생명 있기 때문에 안 됐어. 오늘 우리가 세상화되지 안하는 것은 생명이 있으면  세상화되지 안하요. 우리의 생명이 뭐입니까? 우리의 생명이 내나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설교를 해도 생명 없는 설교를 안 할라고, 목회를 해도  생명 없는 목회를 안 할라고 이렇게 하는 것이 외식자 안 될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저 혼자 동하고 정하는 그것이 혼자 앉아 먹고 마시는 거라. 그거  그렇게 진리를 깨닫기가 참 어려워. 아멘이 돼요? OOO목사님 깨달았을 거라.

아멘 돼? OOO조사는 아멘 돼? (아멘.)  '와서 앉아 먹으라 하겠느냐' 거게 혼자 먹는 그것이 그 속에 암시돼 있건마는  그거 모르면 소용없어. 혼자 먹는 거는 뭐인데? 그거 자꾸 그 인격이 먹는, 신앙  인격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행하는 것입니다. 행하는 것인데 '혼자 행하라  하겠느냐' 얼마 하고 난 다음에는 솜씨가 나니까 이제는,  뭐 보면은 아요. '저거는 기도도 저 혼자 한다. 저거는 설교도 저 혼자 한다.

목회를 저 혼자 한다.' '이거 목사님 참, 내가 목사님 설교를 이렇게 재필기하고  이래 가지고 '어, 아, 오.' 그거까지 하나도 빠지지 안하고 다 하는데 뭐 설교를  잘못 한다 합니까?' '네가 앵무새 모양으로 그랄진대야 그 뭐 비디오 테이프나  같지, 그 속에 성령이 내주해야 된다고 하지 안했느냐?' 그걸 깨닫지 못해. 그걸  깨닫지 못하니까 목회에 성공이 아직도 안 됩니다. 말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아도  안 돼. 성신이 찬성해 줘야 돼.

 3절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가 죽었고' 너희가 죽었다 말은 첫째 아담의  자손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첫째 아담의 자손이 죽은 것은 생명도 죽었고, 첫째  아담의 생명은 죽어가는 생명인데 그 생명도 죽었고 또 기능 활동의 자유도  죽었고, 왜 죽었어? 예수님의 죽으심에 연합된 것으로서 연합된 그 사실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이러니까 살아 있으나 저로서는 죽은 것이지.

옛사람, 예수 없이 살던 그 옛사람은 첫째 아담은 완전히 죽어 버렸지. 영육은  그대로 있지마는 예수님이 대신 죽어 죽은 것이기 때문에 남아 있는 그것은  주격이 예수님이시지 제가 주격은 아닙니다.

 '너희가 죽었고' 이제 우리가 자기가 살아 있는 줄 아는 사람은 예수님의 죽음은  자기에게 상관이 없어. 자기가 살아 있으면은,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을 자기  것이 되면은,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그 공로가 자기 것이 되면은 자기는 예수님이  대신 죽었으니까 자기가 죽은 것 아닙니까? 자기가 죽은 자가 돼야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으로 공로가 내것이 되고 말아요. 예수님의 그 전부를, 영육을  대신해서 이렇게 하셨으니까 영은 그거는 뭐 하나님과 연결돼서 끊어지니까  그것도 예수님이 끊겨짐으로써 연결을 다시 시켰습니다.

 이렇게 영육이, 이렇게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써  우리가 살아나게 됐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심은 내 죽음이기 때문에 내가  살아있는 것이 죽은 것이고 죽은 계산이 된다 말이오. 죽은 계산이 돼. 죽은  우리라는 것을 알고 이제 내 살아 있는 거는 예수님으로 살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것이 됐다는 것을 이것을 자기가 알고 인정하고 요대로 사는 것이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으심에 연합되고, 죽으심에  연합돼서 죽은 자가 되고 다시 부활에 연합된 자가 되어서 산 자가 되어 이것이  우리들입니다.

 이래서, '죽었고' '너희가 죽었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대속이 내것 되기  때문에 나는 죽었다 말입니다.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느니라'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느니라' 우리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다. 감취어 있다. 그러니까 이 생명은, 이 생명은  첫째 아담이 가지고 있는 그 생명이 아니고 둘째 아담이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  놓은 그 생명입니다.

 '너희 생명이' 그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그  생명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 부활하신 그 생명을 내 생명  가지고 사는 것인데, 사는 것인데 왜 그리스도와 함께 뭣 때문에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습니까?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다 말은 하나님의 구속 은총 안에 감취어 있다 말이오.

하나님의 구속 은총 안에 그리스도와 왜 함께 감취어 있어? 그리스도와 함께  구속 은총 속에 감취어 있습니까? 혼자 있으면, 뭣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이 있어?  이 뜻이,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의 뜻을 가리켰는데, 제사장 선지 왕직을  장립시키는 그것을 한 마디로 해서 기름 부음이라 하는데, 그리스도는 그러기  때문에 도성인신하기 전 하나님의 이름인데 직명이라 그렇게도 말을 합니다. 이는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의 직명이라 그렇게도 말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너희 생명이 감취었다 그 말은 이제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 된 둘째 아담에게 타고 나온 생명입니다.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는 이 생명은 둘째 아담의 자손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생명이 몇 가지입니까? 첫째 아담에게서 타고 나온 생명이 있고 또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서 타고 나온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면 첫째 아담에게 타고 난 이  생명은 무슨 생명입니까? 무슨 생명이오? 죽어가는 생명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이오. 둘째 아담에게서 타고 난 생명은 영생하는 생명입니다. 영원히 점점  자라가고 충만해지는 이 생명입니다. 그러면, 생명이 둘이라.

이래서 우리가 요런 것도 확실히 가지고, 그러면 내가 첫째 아담의 자손으로서  첫째 아담에게서 타고 난 생명으로 사는 사람도 있고 둘째 아담의 자손으로서  둘째 아담에게 타고 난 생명으로도 살고 있고 우리는 생명이 그라고 우리에게는  몇입니까? 둘입니다. 생명이 둘인데 하나는 버릴 것이요 하나는 우리가 가지고 살  것입니다. 이랬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래도 버려야 될 생명을 가지고 살고  살아야 될 생명은 버립니다. 버린다고 버려집니까? 그 생명은 처박아 둡니다.

 이러니까 이 두 생명을 깨닫고, 하루 사는데 하루 사는 시간이 죽어가는  생명으로 사는 자는 그자는 하루 살았으면 제딴에는 산 줄 알지만 하루 죽었다  그 말이오. 하루 죽었다.

 따라합시다.

하루 죽었다.

한 시간 죽었다!  한 달 죽었다!  일 년 내내 죽었다!  한 시간 살았다!  일 년 살았다!  요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요것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제가 몰라 그렇지. 모른다고 심판이 없습니까? 이러니까, 우리는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속 사람은 뭐인데? 속사람은 둘째 아담의  자손이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오. 이제 하나님 아버지 아들에 대해서 시간  있으면 증거를 할 것인데 이런 것도 다 모르는 소리이기 때문, 지금 조직신학에  나오지 안한 것이기 때문에 다 주목을 받습니다.

 이러나, 요대로 살아야 되지, 안 살면 핍박만 받지 아무 효력 못 보니까 말라  죽어 그러니까 간판 떼야지 뭐 안 떼고는 못 견뎌. 갈 사람은 가야 돼요, 이  교리와 신조가 제게 맞지 않는 사람은 가야 돼고 이 교리와 신조만이 자기를  살릴 교리와 신조라고, 이 제대를 이길 것이라고 생각이 되면 그 사람은 죽어도  안 갈 터인데, 이 교리와 신조는 자기 생명을 바칠 교리와 신조인데 욕  얻어먹는다고 변동이 돼요? 핍박받는다고 변동이 돼요? 교인들이 안 들어온다고  변동이 돼요? 어리석게.

 하나님이 보내는 자도 있고 마귀가 보낸 자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는 자도  있고 마귀가 보내는 자도 있어 정말로 구속된 성도도 있고 마귀의 일꾼들도 많이  있습니다. 총공회라 간판을 붙여 놓으면 아버지가 보내는 자야 암만 총공회 간판  있다고 그제 삐끄러지겠어? 아버지가 보낸 자는 안 오고 못 견뎌.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아버지가 보내는 자만 촐촐 추리도록 이것이 뭐라고 할까?  이 채라 할까? 잡탱이를 쳐 내 버리는 채라. 일차적으로 와 가지고 마귀 놀음  하고 예수 믿어도 옳게 믿지도 안하고 이거 항상 골치 마귀 놀음해서 교회에  그저 믿는 사람들 믿음 방해나 하고 이렇게 손해보이는 이런 것은 못 오구로  해도 못 오지 안해요. 못 오구로 해도 그게 더 와요. 이런데 총공회라는 간판을  떡 붙여 놓으니까 여게 걸려서 다 죽어 버립니다. 여게 걸려서 다 나가 버려.

여게 걸려서 다 나가 버려. 좋아요 하잖아요? 들어와서 해로울 것이, 안 들어올  것이 여게 걸려서 다 쳐서 내 버리니까 좋아요 나빠요? 좋아요.

 둘째로는, 둘째 방어선은 뭐이냐 하면은 찬송가입니다. 우리 찬송가 이 백일 곡을  말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말하기를 '저게 자꾸 명예주의라서 제 간판 올릴라고 또  찬송가를 만들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말하는데 아주 그거 오해입니다. 우리가  이백일 곡 찬송가를 한 것은 우리가 지은 것은 내가 알기에는 내가 지은 찬송 한  찬송밖에 안 들었습니다. 찬송가 하나밖에 안 들어 있고 또 나머지기 가사를,  가사를 고친 것도 혹 내가 몇 가지 고쳤는가 한 아마 열 가지 이내 고쳤을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에, 성경 교리와 신조와 틀리기 때문에 고치고 나머지기는 옛날  찬송가 지은 사람들이 내나 부르던 거 그것을 그대로 옮겼는데, 그 옛날 찬송가  영감받아 가지고 지은 사람들이 그 가사를 만든 건데 그 가사가 틀렸으면  고치지마는 그 가사가 틀리지 안하고 바로 돼 가지고 있는데 통일 찬송가에서는,  그만 통일이 좋다 하는 그기 아마 동기가 된 것 같애. 그 동기 시발은 거게서  나온 것 같애. 모두 다 통일되니까 야 참 한번 어뜩 뛰어서 먼저 선수를 치자.

통일이라는 선수를 치자 이래 가지고 통일 선수를 친 모양이라. 통일 선수를 치자  해 가지고 통일 찬송을 한 모양이라.

이랬는데 이백 곡인데 백 구십 몇 곡이지, 복음성가 그거 빼 버리고 나면 백팔십  명 곡이라? 백팔십 몇 곡에서 통일 찬송가에서 고친 것이 얼마라? 구백구십 개를  고쳤습니다. 백팔십여 곡 되는 찬송을 통일 찬송에서 가사를 고치기를 구백구십을  고쳤어. 우리가 보니까 고친 게 아니고 다 그전 게 좋은데 고쳤어.

 이래서 자꾸, 틀리면 고치지마는 틀리지 안한 걸 자꾸 고쳐 나가는 이것이 지금  속화돼 나가는 것이고 이게 변질돼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놈을 우리가 막는  데는 마구 못 하구로 해도 안 될 것이고 '어라, 우리는 거기 따라가지 말고, 다는  할 수 없고 그라면 백 한 팔십 곡 되는 그것만 옛날 다른 사람, 그 옛날 먼저  선진들이 지어 놓은 찬송 그 가사대로, 통일 찬송에서 고친 것 따라가지 말고  그대로 우리는 하자.' 그대로 하자 하는데 백팔십 장 정도에서 그 안에 고쳐진  것이 구 백구십이니까 얼마나 고쳤어? 그 자꾸 고치기를 원하고 자꾸 새것을  원하는, 새것을 원하는 잡놈 잡년! 새것을 원하는 사람들은 손 들어 봐. 좋지도  안해. 새것 원하는 사람들. 요새 여자들은 전부 그것 원하지. 어짜든지 새것이라고,  새것이면 좋아합니다. 왜 좋지 않는데 뭣 때문에 새것을 자꾸 고쳐요, 고치기를?  이렇게 새것이 좋으면 하지만 좋지도 안한데 옛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가지고  그 사람들이 지은 찬송가를 우리가 쓰면서, 가사가 틀렸으면 하지마는 가사가  틀리지 안했는데 하필 또 그렇게 백팔십 곡에서 구백구십 몇 곳이나 그렇게  고쳐서 할 필요가 뭐 있나? 우리일랑 고치지 말고 그거 사용하자. 우리가 옛날 거  사용하는 그것이 '너거는 개화 안 하고 자꾸 발전 안 하고 진화 안 된다' 해  가지고 욕은 할라면 하지 우리가 뭐 새 찬송 만들었다고 그런 소리는 천부당  만부당한 소리입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걸 그걸 우리가 쓰면서 가사가 이뭐 통일 찬송에서, 좋은  것도 아닌데 뭐할라고 이거 가사를 고쳐 가지고 할 것이냐? 이러니 그대로 하자.

자꾸 고치는 것만 자꾸 이래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어데까지 따라갈지 모르겠어.

그래서 우리는 따라가지 않고 옛날 찬송을 그대로 한다고 해 가지고 그것만  그대로 다는 못 하고 백 한 팔십여 곡을 옮겨 가지고 찬송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찬송가를 새로 만들있다 하는 그런 욕은 부당하고 '이저는  고집쟁이라서 옛날 거, 켸켸묵은 옛날 거 보수하고 있다.' 보수쟁이라고 욕을 하면  해당되는 욕이 될란가 몰라도 우리가 새로 찬송가를 만들었다고 하는 말은  천부당 만부당한 욕입니다. 그 욕은 우리가 얻어먹을 욕이 아니기 때문에 욕을  받을 사람이 없으니까 욕한 사람에게로 돌아갈 것 아니겠소?  거게서 복음성가에 한 열 몇 곡을 보는 것은 이 복음 성가 지은 것은 전부  순교자들이 다 지었습니다. 동양에, 전부 우리나라에 순교자들이 다 지은 찬송인데  하필 서양에서 온 찬송가만 찬송하고 동양에서 우리나라에서 하는 찬송가가 찬송  아닌가? 이거 신앙이 높았고 다 순교자들이 지었고, 그 찬송가 지은 것은  순교자들도 아닌 그런 사람들이 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세상 문화는 좋은 줄  몰라도 그래 가지고 지은 것이고 지은 그 저작자로 말하면은 신앙들이 다  우리나라 사람이라 하는 게 아니라 그 신앙들의 행위들이 다 으뜸갔다 그 말이오.

다 순생, 순교자들입니다. 손양원 목사님, 유재현 목사님 그런 분들도 다 순교한  사람들입니다.

 이러니까 그 찬송 넣었는데 '저거는 저 찬송도 얄궂은 잡탱이 찬송 한다.' 그거  다 순교자들이 만들어 놓은 찬송이라. 잡탱이 찬송이라고 할라면 내가 만들어  놓은 찬송, 내가 하나 지어 놓은 찬송 그거는 그렇게 욕을 할란지 몰라도 다른  분들 찬송은 다 순교자요, 그분들이 다 순교자라. 우리가 다 존경하고 그 발자취를  따라가야 될 그런 인물들입니다.

 제가 만든 찬송은 몇 장인지 나 그거 몰라요. 예? 구십사 장. 구십사 장의 그  찬송가의 뜻을 모르면 재미가 없을 것이고, 혹 '섭리의 고개턱 너머'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는 고개가 있다 말이오. 하나님의 섭리는 밤중도 있고 낮도 있고  새벽도 있고 고개가 있어.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데에는 자기가 신앙을 지켜  나가다가, 나가다가 최고 절정이 되는 그걸 고개라 합니다.

 '섭리의 고개턱을' 그러니까 최고 절정을 만났는데, 절정을 만나서 그때는 죽을까  살까, 이래 볼까 저래 볼까 사람이 흔들리는데 고개턱 그 너머를 넘어다보니까  마중의 주님이 지금, 마중을 나온 주님이, 뭐라고 했어? (숨어 엿보시는) 숨어  엿봐서, 보니까 마중의 주님이 '보자 네가 승리하나 지나? 보자. 승리하나 지나?'  가슴이 도근거리면서 하는 그 마중 나온 주님 이 그렇게 그런 가슴을 가지고  이제 숨어 엿보는 내 눈에는 보이지 안하시지마는 가만히 숨어서 저 사랑하는  자가 지나 어짜나, 나를 배반하나 안 하나 요래 가지고 숨어 엿보시는 그분을  발견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내가 생명을 전하고 주님에게 가겠다. 내가 이 생명을, 이 생명의  복음은 다 전하고 내가 주님에게 가겠습니다.' 그것으로 결론지은 그거 제가 그저  하나 생각이 나 가지고 그래 한 걸 그걸 그 사람들이 뒤에 옮겨 실어 버렸어요.

하는 위원들이 옮겨 실은 거 그거지 새로 우리가 찬송가 만든 거 아닙니다. 그  축소해서, 있는 찬송가를 거기서 그저 다는 못 하고 뭐 육백 얼마에서 이백 곡  모자라는 그걸 우리가 빼 가지고 그래 부르는데 그거 자꾸 고쳐 나가고 변해  나가는 걸 우리는 그게 싫고 따라나가지를 못하겠어. 이라고 나면 또 고쳐 버리고  또 고쳐 버리고 언제 거게 따라나가다 보니까 한번 찬송할 때에 진정을 감상할  수 있는 그런 은혜가 없고 자꾸 새로 외우다 보니까 뭐 그거 할라 하면 안 돼.

 이래서, 우리 좋기 위해서 우리 편리상 은혜되기 위해서 고치지 안한 옛날  찬송을 그대로 우리가 몇 곡만 빼 가지고 우리는 예배 찬송으로 사용하고  이러니까 그거 누가 욕할 사람이 없을턴데 그것도 욕하는 모양이라. 그래서 그리  된 것입니다.

 그래 이제 '감취었음이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감취었음이니라'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서 감취었음이니라' 우리가 다시 둘째  아담에게 받은 생명 이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 말은  하나님의 절대 보호, 절대 보호 절대 주권 안, 절대 보호 안, 절대 주권 안, 절대  전지 전능 안, 거게서 뭐 혼자 있으면 될 터인데 뭐할라고 그리스도하고 거기  한테 있어?  '그리스도하고 함께 감취었음이니라' 그리스도하고 뭐할라고 함께 있어? 뭐할라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OOO선생 한번 말해 봐. 뭐할라고 그리스도하고 함께  있는고? 혼자 있지.OOO목사? 제사장 선지자 왕직의 실력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것을 조언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가 옆에 계시면서 자꾸 그리스도의 원형.

근본이신 제사장 근본인 제사장이 우리를 제사장 만들고 선지자 만들고 왕  만들라고서 이래 하나님의 절대 보호 안에서, 능력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은총  안에서, 충만 안에서 우리의 새생명 가진 우리들을 거게서 감추어 있게 한다.

 이러니까, 뭐 성경을 보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 속인데 뭐 염려할 게 뭐  있어? 뭣 때문에 공산주의를 두려워하고 뭣 때문에 일본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이거 세상에 교계에서 지금 뭉텅이가 어찌 된다 또 정권자가 어찌 된다 뭐  두려워할 게 뭐이요?  '감취었음이니라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이제 우리의 생명인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건 영원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왕으로  나타날 때에 그분의 제자가 돼 가지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제사장 선지 왕으로  이제 모형이 되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 들어진 우리들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영광 중에 나타나는데 이 영광은 무슨 영광이겠소? 예?  이 영광은 무슨 영광이라요? 이런 건 알 수 있지? OOO목사님?. 제사장 영광,  선지 영광, 왕 영광 이 영광으로 나타날 때 너희들도 그와 함께 나타나리라. 우리  모가치가 있어야지요? 우리 모가치가,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나타나는데 우리  모가치가 있어야 거기 그 영광 중에 나타나지? 우리도 뭐 제사장 선지 왕 무슨  이거 직의 권리가 있습니까? OOO목사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리스도가 내게 붙어 있는 지는  뭐이라? 나하고 같이 있어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우리 안에 있어. 이제 그것을 다음 시간 내가 오면은 말하겠는데. 이러니까  그분이 내 힘 중에 힘이 돼 있어. 내 지혜 중에 지혜가 돼 가지고 있어. 내 생명  중에 생명이. 돼 가지고 있어 내 중에 내가 돼 있어. 그러기에 그게 뭐이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그것이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의 지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이런데, 우리 껍데기로 말하면 하나님이 내주해 계시는 성전이라. 우리를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와서 계십니다. 요것을  지금 발표를 잘 못 해요. 이단이라고 정죄할까 싶어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실지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된 둘째 아담의 아들  된 이것은 나 혼자는 아들이 안 돼요. 예수님하고 나하고 하나가 돼야 자꾸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아들이라' '우리' '우리' 복수를 왜 하느냐? 예수님과 나와의  떨어질 수 없고 연결된 데에서만 되기 때문에 우리라는 복수를 붙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요.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요. 우리 안에  계시는데 요 꿀밤만한 덩어리라도 계시면 고 모톨모톨 해 가지고 좀 배도 아프고  뭐 할 것인데 우리 안에 계시되 형체 가지고 계시요 무형으로 계시요? 무형으로  계시요. 이래 놓으니까 완전으로 능력으로 전지로 전능으로 완전으로 사랑으로  이래만 계셔 가지고 일하니까 천상 내가 됐어. 나 같소. 콩내끼만한 것이라도  형체를 가져오면 우리에게 고통일 건데 형체는 그만한 것도 가지지 안하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믿습니까! (아멘!) 믿습니까! (아멘!) 이렇게 좋은 구원이라. 자꾸  생각해 보면 자꾸 좋으니까 땅위에 부러워할 게 뭐이야?  '우리의 생면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그리스도의 영광인데 그리스도의 영광에 우리 모가치가 뭐  있어야지? 우리 모가치가 뭐 있어야지? 이제 OOO 목사님이 말씀한 데로 우리도  그리스도 새끼로서 그리스도와 꼭 같은 게 돼 가지고 있거든. 돼 가지고 있어요.

이러니까 우리도 그리스도가 됐거든.

 우리가 제사장 선지자 왕이 됐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똑 팥내끼만한 제사장  선지 왕이 됐고, 어떤 사람은 주먹덩이만한 제사장 선지왕이 됐고, 어떤 사람은  우주만한 제사장 선지자 왕이 돼 가지고 있고 이래 돼 가지고 있으니까 그 된  대로 영광이 커지겠지.

 그라면 그때는 이제 제사장이 참 많겠습니다. 제사장이 천 명도 만 명도 억만  명도 더 되겠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때 어때요? 우리 믿는 성도들이 다 거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날 터이니까 그때 제사장 선지자 왕이 몇이나  돼요? OOO목사님? 우리는 어짜고? 단일성이라? 그걸 배워 가지고 합격이  됐구만. 그래.

 그 한 분의 지능 한 분의 완전이 들어서 우리에게 와 가지고 그리스도직을 하게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 우리 모가치 있지만 하나라 하나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도, 우리가 이거 있으니까 우리 모 가치가 있어야 되지, 우리 모가치가 있어야  되지 그리스도와 하나 돼 가지고서 하나인 제사장이라 하니까 맛이 없고, 제  모가치가 돼야 맛이 있는데, 그게 내것이 되면 맛이 없어. 내거라야 되지. 진리도  내가 중 거해서 내 밑에 은혜받아야 되지, 내가 증거한 거라야 되지 다른 사람이  증거하고 다른 교파에서 진리를 말하면 재미가 없어. 우리 교파에서 말한  진리라야 재미있지. 그거 뭐이지요? 저 목사님?OOO선생 뒤에 있는  목사님.OOO교회 있는 목사님 대답해 봐요. 그게 뭐이요?  '내것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뭐이지? '내것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뭐이지? 그게  뭐이라요? 똑 들어. 모를 거라. 모른다 해. 목사님이고 아주 뭐뭐 조직신학 교수라  했습니까, 원어 고전어 교수라 했습니까? 이런데 몰라. 몰라. 이거는 딴 교리요  신조요 판판이 다르기 때문에 모르지. 요번에 들으니까 같아 보이요 아주 달라요?  어때? 한번 대 답해 봐요. 달라, 달라.

 그게 뭐이냐? 사욕, 그것을 가리켜서 자기 중심의 악이라는 것입니다. 선이 네것  내것이 어데 있으며 진리가 네것 내것이 어데 있으며 올바른 교리와 신조가 네것  내것이 어데 있으며 또 올바른 의의 행위는 네것 내것이 어데 있습니까? 하신  분은 그분이시오, 나타낸 것은 이런 것 저런 것을 나타내지만 하신 분은 그분 한  분이시라. 이것이 예수교입니다. 지금 시간 어찌 됐어? 열두시. 딱 맞았구만. 나는  시계를 안 가져다녀. 시계를 안 가져다녀.

녜, 그라면 자, 요번에 이 배운 것을 생각하며 잠깐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확정을 지워요. 확정을 지우고 단정지우고 단행해야 됩니다. 사는 것이 여게 있어.

이대로 하면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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