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 비유

 

1982. 6. 8. 화새

 

본문:누가복음 16장 1절~13절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이는 청지기 비유입니다. 청지기는 우리 구속받은 사람들을 가리키고, 또 주인은  주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주인이 청지기 불러 가지고 ‘왜 내 재물을 네  마음대로 썼느냐’ 하는 문책을 합니다.

우리 구속받은 사람들은 전부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이라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자신이라든지 또 우리의 모든 소유라든지 이런 것은  다 주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입니다. 주의 것을 주님의 뜻대로 쓰는 것이  이것이 법적이요 옳은 일인데 주님의 뜻대로 쓰지 아니하고 제 마음대로 썼기  때문에 이는 문책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언행심사는 이거 다 주의 것이 쓰여지는  것인데 이것을 주님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는 데 대해서 문책하는 것을 말합니다.

“청지기 보던 일을 셈하라” 내것을 네가 보관해 가지고 있으면서 그 보관한  내것을 네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그것을 계산해라. 그러면 구속받은 우리들이  우리의 마음이나 목숨이나 뜻이나 힘이나 우리 모든 소유나 이것을 가지고 오늘  자기 마음대로 살지마는 이것은 다 하나님과 계산이 있다는 것을 여기 말씀해  주십니다.

‘네가, 청지기 사무를 네가 다시 보지 못하리라’ 이것은 인간이 불의 때문에  세상을 끝나는, 이 세상 떠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 청지기가  생각하기를 ‘내가 이제 쫓겨나가기는 쫓겨나갈 터이니까 쫓겨나가면 내가  어떻게 하나? 거기서는 땅을 팔 가능성도 없고, 또 거기서 얻어 먹는 그런 참  비참한 자가 되어서 안 되겠고 이것을 청지기 이 일이 끝나기 전에, 청지기 일이  끝나기 전에 무슨 방비할 방비책이 없는가’ 하는 것을 생각했다고  비유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무래도 세상을 떠나기는 떠나야 되는데 떠나고 난 다음에  무궁세계에서는 자기의 행복을 도모할 수가 없습니다.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안 된다 그말입니다.

왜? 이 세상 같으면 아무리 귀골로 있던 사람이라도 노동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마는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준비하지 못한 것은 다음  세상에서는 준비를 못 하는 것입니다. 내세에서는 준비 못하는 것을, 불가능성을  말합니다.

또 “빌어 먹자니 부끄럽고” 그러면 다 같이 구속을 받은 사람이지마는  하늘나라 가 가지고 수치스러운 그런 구원이 있는 것을 또 말합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수치스러운 구원이 있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준비 못하면 다시 준비 못한다는 것, 또 하늘나라의 구원에도  수치스러운 구원이 있고 영광스러운 구원이 있다는 것, 그것은 그때 가 가지고,  부자집에서 쫓겨나면 자기 신세는 끝났는데 아무리 후회해 봤자 소용없고  쫓겨나가기 전에 무슨 대비책이 없겠나 하는 것을 연구했다고 했습니다.

뭐 부자가 계산하라 했으니까 계산하는 일이 복잡하면 이삼일 걸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나 걸릴 것이고, 또 사무가 되게 복잡해서 늘여 놓은 일이  많이 있으면 아마 며칠 걸릴 것이고, 뭐 몇달이나 그래 있지는 않을 것이고 며칠  있거나 그리 안하면 하루거나 그럴 것이오. 아주 계산하게 됐으니까 쫓겨나가지  않고 지금 머물고 있는 그 기간이라는 것이 극히 짧습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제가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 할지라도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시간은 정해 놓은 날인데 아주 급박하다 하는 것을 비유했습니다.

나가 가지고는 준비도 불가능, 또 수치도 기막히는 일, 이 문제를 두고 나가야  된다. 빨리 나가야 된다. 또 그 후에는 아무 준비가 안된다. 또 수치가 있다.

지금은 주인의 것을 맡아 가지고 있는 내 몸도 있고, 내 소유도 있고, 내 기능도  있고 모든 것을 보관해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보관해 가지고 있으니 얼마든지  이거는 자유로 할 수 있는 권세가 아직까지는 남아 있습니다. 죽기 전에는 자기  몸을, 자기 마음을, 자기 생각을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연구할 때에 ‘나는 떠날, 이 부자의 집에서 쫓겨나가야 할 시간이  정해 있는데 아주 쫓겨나갈 시간이 급박하다. 급박하다.’ 이것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이것을 가지고 생각해야 됩니다.

‘나는 이 세상에 머물 시간이 급박하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급박하다.’ 이거  생각하고, 또 하나는 영원 무궁세계의 준비는 지금 해야 되지 지금 떠나면  다시는 못한다. 이거 가지고 계산해야 되고, 또 무궁세계는, 이 세상에서 비참한  것이야 언젠가 떠날 것이고 잠깐이지마는 무궁세계의 비참은 영원히 떠나지  못한다. 벗지 못한다. 무궁세계의 비참인 이 비참을 가지고, 또 자기는 이러한  형편을 가진 미래를 가진 자이지마는, 이러한 미래를 가진 자이지마는 현재는  종전과 같은 부자의 대리로 부자와 꼭 같은 이런 세도를 지금은 가지고 있다.

지금은 부자의 것을 보관해 가지고 있는 이것을 얼마든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 하는 이거,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우리는 어떤 일이든지 생각도 하고 계산도  하고 경영도 하고 비판도 하고 평가도 해야 되지, 이 네 가지를 다 한데 묶어  가지고 이 네 가지 위에서 생각지 아니하고 여기에 한 가지라도 빼면 그 사람의  계획은 다 헛일입니다.

이래 가지고 연구를 하면 이 네 가지를, 네 가지 형편과 사정을 가지고 자기가  연구를 한다고 하면 연구는 이 연구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연구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연구가 가장 지혜로운 연구다. 주인이 ‘지혜있게 했다’ 칭찬했다  했습니다. 아주 이 옳지 않는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했다. 옳지 않는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했다. 이제까지는 그랬지만 이제는 참 지혜롭게 했다.

어떻게 했기 때문에? 내가 쫓겨나기 전에는 이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빚진 자를 불러다가 그 빚을 탕감해서 그 빚진 자가 내가 쫓겨나고 난 다음에  나를 환영하고 대우하도록 해야 되겠다 이 한 길밖에 없다는 것을 연구했습니다.

자기가 주인의 것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 보관한 것 가지고 다른 사람 빚진  사람을 많이 탈빚을 해 줄 수가 있다 말이오. 자기가 주인의 것을 보관해 가지고  있는데, 제것도 아닌데, 제것 아닌 이것 가지고 인심을 얻어서 다른 사람의 그  수많은 빚을 탈빚시켜 줄 수가 있다. 탈빚시켜 줘 봤자 제것 손해가는 것 아니고  제것 드는 것 아니고 내나 주인의 것 가지고 다른 사람 유익되게 하니까 그  사람이 쫓겨나고 난 다음에 나를 대접할 것이 아닌가? 이거 하나 발견했습니다.

발견해 가지고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 가지고 탕감시켰습니다.

그러면 빚진 것은 인생은 다 하나님 앞에 죄빚이 다 져 가지고 있습니다.

신령한적으로 육적으로 하나님 앞에 죄빚을 지고 있는 자인데, 이 청지기가 앉아  가지고 ‘문서를 빨리 고쳐라’ 이러니까 많은 빚이 적은 빚으로 바꾸어져  버립니다. 많은 빚이 적은 빚으로 바꿔져 버려. (○○○씨, 이 말씀이 꼭  들어가야 천국이고 평강이고 마귀떼를 이기지, 안하면 못 이겨. 끙끙 앓고  있으면 될 줄 알아도 안하면 나중에 자살하는 행위라 뒈지지 뭐. 병들지 별 수  없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능력이 와야 마귀를 이기지.) 자기의 가진 것을 가지고 많은 빚진 자의 빚을 탕감한다. 자기의 가진 몸, 혀,  정신, 지혜, 총명, 노력 이런 걸 가지고 다른 사람을 죄에서 구출하는, 기도로  구출하든지 전도로 구출하든지 자기가 그 사람에게 좋은 빛을 보이는 것으로  구출하든지 어쨌든지 자기의 남은 여생의 하나님의 것을 보관해 가지고 있는  이것을 가지고 인생을 죄빚에서, 인생을 죄에서 탈빚시키는 이 일을 하는 것  외에는 좋은 길이 없다. 이 한 길밖에는 없다. 인생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안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은 멸망이나 희망이 없는 사람이오.

구속받은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것을 자기가 보관해 가지고 있으면서 떠나고 난  다음에 내세에, 내세에 유익하도록, 쫓겨나고 난 다음에 유익하도록,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할 수 있는 이 길이 있는 것이  기독자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불택자에게는 없습니다. 자기가 벌써 저주와  사망과 정죄를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의롭게 살든지, 뭐 석가모니가 어떻게  살고 어떤 종교 창설자가 어떻게 산다 할지라도 그것이 내세 준비는 호리도 안  되는 것입니다. 벌써 원죄와 본죄가 딱 정죄했기 때문에, 죄인이 아무리 한다  해도 그 죄인이 악령의 감화 받아 하기 때문에 죄의 봉우리만 커지지 의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자에게는 금생에 주의 구속을 받아 주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  이것 가지고 세상 떠나기 전에 영원 무궁한 내세의 유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길은 한 길밖에는 없다. 다른 사람 빚진 것 탕감시키는 것 이 한 길밖에 없다.

이게 지혜로운 연구입니다. 지혜로운 생각이오. 이 외에는 인간이 지혜가 없다  그말입니다. 지혜있게 하는 것 보고는, 이 외의 일은 다 어리석은 일이요 이  일만 지혜로운 일이다. 어떤 일?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서 내게 보관시켜 놓은  내 생명, 내 몸, 내 지혜 총명, 내 기능, 내 모든 소유 이거 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을 내가 보관해 가지고 있는 건데 이것 가지고 내세를 준비하는  데에는 다른 사람 탈빚시켜 주는 것 이 외에는 아무 도리가 없다. 이것만이  내세의 유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요 한 길밖에 없다. 그것을 여기서 비유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자기 자체와 자기의 소유와 모든 활동을 가지고 인간을 죄에서 빛으로  돌아오게 하는, 그 사람을 다만 얼마라도 성화시키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빚진 죄의 빚을 벗게 만드는 이 일 외에는 가치있는 일이 없고  지혜있는 일이 없다. 이거 한 길뿐이라는 이것 비유해 주십니다.

이거 한 길뿐이요 이 외에는 제가 땅 위에서 뭐 어떤 위대한 사업을 해도 그  사람의 활동하는 것이 ‘아, 빛이 됐다. 큰 민족주의다. 애국주의다.’  애국주의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준 것은 뭐 보여 줬는가? 애국주의를  보여 줬지, 민족주의를 보여 줬지, 박애주의를 보여 줬지, 문화 건설을 보여  줬지. 그러면 그 문화가 어디 있는 것이며 민족이 어디 있는 것이며 애국이 어디  있는 것이며 박애가 어디 있는 것인가? 어디 것인가? 그것이 어디 것인가? 다  땅의 것입니다. 땅의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것은 암만 해도 죽고 난 다음의 수입은  아닙니다. 죽고 난 다음의 유익은 아니오. 죽고 난 다음의 수입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성도가 세상에서 가진 것은 보관물이라, 나는 이제 이 보관물을 지금은  이렇게 저렇게 자유할 수가 있지마는 완전히 보관물에 대해서 이용권은 곧  시급히 박탈당하고 만다. 그러면 자기로서 죽은 다음에,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유익을 도모하는 길이 어느 길이 있느냐? 이 길 한 길밖에  없다. 이것이 지혜있는 자의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이 청지기가 이런 어려운 입장을 당해 가지고 이 네  가지를 두고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그러니까 그 청지기가 쫓겨날 터이니  쫓겨나지 아니하고, 쫓겨나지 아니하고 부자의 집에 있으면서 유익을 취하려고  하는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내가 쫓겨나게 됐으니’ 이제 안  쫓겨나가도록 주인에게 잘 보일려 하는 그것도 헛일, 내가 쫓겨나게 됐으니 나와  같이 일하던 이 모든 사람들이 운동을 해 가지고 날 좀 도와 줄 수 없겠느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친교를 맺을려고 하는 그것도 어리석은 일, 또 자기가  어떻게 하면 부자집에 있으면서 거기서 좀 유익되게 할까, ‘뭐 쫓겨날 터이니까  비단 요를 깔고 한번 좀 하룻밤 좀 더 평안하게 더 누워 자 보자. 무엇을 좀  한번 더 먹어 보자.’ 하는 것 어리석은 일이오.

믿는 사람이 이 세상 유익을 위해서 하는 그거는 미친 자요. 이 세상 유익을  위해서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 청지기가 쫓겨나갈 터인데 부자의 집  안에 있으면서 자기에게 유익될 것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 아닙니까? 나갈 때 검사해 가지고 옷도 벗기고 나갈런지 모르고, 나갈 건데 금품이니 뭐니  제 마음대로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금 뭉텅이를 여기 넣어 가지고 나갈런지  모르기 때문에 발가벗겨 가지고 보낼런지, 옷을 발가벗기고 문 딱 열고 나가  가지고 옷 입혀서 내어 보낼런지 모른다 그말이오. 가지고 갈 수가 없어. 이  세상에서도 그런데 죽음을 통과할 때에 누가 가져가는 사람 있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죽음 이 편의 유익을 위해서 도모하는 것이 어리석은 자요 미친  자라. 기독자는 죽음 이 편의 것을 가지고 죽음 저 편의 것을 도모하는 이것이,  그 편의 유익을 위해서 도모하는 것이 이것이 지혜있는 자이지, 죽음 이 편의  것을 이 편의 유익을 위해서 도모하는 이런 자는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자입니다. 쫓겨날 줄도 모르고 있는 자가 떡 쫓겨나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그런고로 지혜있는 이 청지기가 이렇게 한 것을 보고 칭찬했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세상  사람은 부자의, 청지기라 말은 부자의 대리자라 그말이오. 제일 총무라 말이오.

부자집의 총무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부자의 총무가 있다가 ‘모든 걸 계산대고  너는 쫓겨나라, 너는 나간다.’ 이래 놓으면 아마 그 총무가 나가기 전에 어떻게  이 부자의 재물을 빼 돌릴까 해서 일단 정신을 거기 가질 것입니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이래 나가면 비참하게 되어지니까 자, 누구를 시켜서 금품을 빼 돌릴까  어떻게 할까?’ 쉽게 빼돌리다 보면 도적질이니까 당장 그때부터 검사가 심할  터이니까, 폭로가 될 거니까 하나 가져가지도 못하고 자기는 지금 벌을 받아야  될거라 말이오.

그러나 부자의 인장 가지고 있으니까, 부자의 그 빚진 자야 마구 소리해 가지고  탕감해서 자꾸 찍어서 탕감시켜 놓았습니다. 시비가 났소. 시비가 났으면 ‘아,  부자는 그렇게 재산 많은데 그 가난한 사람 좀 탈빚시켜 줬으면 무엇이 그리  나쁘다 말이오?’ 하면 그 사람 뭐 이미 받고 감해 주고 할 권리가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이 권리 이행한 것뿐인데, 주인이 권리를 맡겨 놓은 권리 가지고  권리 이행했는데, 이 세상으로도 재판해도 주인이 집니다. 주인이 져요. ‘아,  너 많은 것 좀 그 사람에게 탕감해 줬으면, 자유권이 있는데 보고 이 사람  불쌍하다 해서 좀 탕감해 줬으면 선한 일 했는데 뭐 독하게 부자가 그래 쌓아?’  부자가 패소하지 그 청지기가 패소할 리가 없소. 이렇게 반석 같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원리적으로 말합니다, 원리적으로. 인간이, 기독자가 죽음 저 편의  유익을 이 세상에서 도모하는 것이 지혜이지 이미 죽기로 정해 가지고 있는 자가  이 세상 유익을 위해서 도모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이거는 모든 것 모르기  때문에, 완전히 몰라.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리고 난 다음에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이런 형편이 있으면 이 세상 아들들은 다 이렇게 할 것이다. 제가  탕감했으면 불러 가지고 ‘자, 내가 천만 원을 탕감해 줄 터이니까 나가면 얼마  줄래?’ ‘천만 원 탕감해 주면 나가면 내가 한 백만 원 주지요. 내가 돈 백만  원 주지요.’ ‘그래’ 그 백만원 그것도 제 수입이라 그말이오.

부자의 것으로 탕감해 주고, ‘너는?’ ‘나는 일억이 있는데’ ‘그러면 나가면  얼마 줄래?’ ‘아, 내가 나갈 때에 일억이니까 뭐 오천만 원 드리지요.’ 자꾸  ‘그러자’ 그리고 계약받고 자꾸, 지금 뭐 밤이고 낮이고 막 불러 가지고 자꾸  탕감해 재낍니다. 탕감해 재끼고 이렇게 하는데, 이 세상 사람들은 이런 형편  같으면 이렇게 하는데,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빛의 아들,  구속받은 사람들은 꼭 이와 같은, 꼭 같은 이런 입장이요 이런 처지요 꼭 이런  사정인데, 꼭 이와 같은데 세상 사람은 다 이렇게 할 것인데 이 빛의 아들들은  영원한 문제에 꼭 이와 같은 입장 처지 이 사실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하지 않는다. “빛의 아들들보다 세상 아들들이 저거  시대에 있어서는 지혜롭다” 빛의 아들들은 빛의 아들들의 시대에 지혜로와야 될  터인데.

또 다시 그거 강조했습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불의의 재물이라 말은, 이거는 부자와 청지기인데 죄값으로 주님의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주권으로 말하면 주님이 주인이요, 자기 것으로 말하면 왜  주님의 것이 됐느냐? 이거는 불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의로운 것 같으면 주님의 것 안 돼요. 제것을 제대로 가지고 있지요.

이러니까 불의라는 말은 세상에서 이제는 다 내어 놓아야 될 것이라 그말이오.

불의는 심판받아 내어 놓을 것이라 그말이오. 내어 놓을 재물 가지고, 내어 놓을  물질 가지고, 몸둥이도 이거 물질이오. 내어 놓을 물질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라,  친구를 사귀라. 그러면 없어질 때에 저가 너를 영원한 집으로 너를 영접할  것이다.

그러면, ‘친구를 사귀라’ 그러면 지금 우리가 이미 내어 놓을 것이요 두고 갈  것이요 다 죽을 것 아닙니까? 이는 다 변화됩니다. 이 몸둥이도 소유도 힘도  기능도 다 내어 놓고 갑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은 다 내어 놓고 가요. 다 내어  놓고 갈 이것 가지고 친구를 사귀면 그 친구가 영원한 처소로 널 영접할 것이다.

그 친구가 누구입니까?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이미 세상을 떠날 때에는 세상에 속한 것은 다 두고 갈 터인데, 두고  갈 이것 가지고 친구 사귄다 그 말은 주님 사귄다 그 말이오. 이것 가지고  주님에게 빌려 줍니다. 이것 가지고 주님에게 탕감시켜 줘요. 주님에게 탕감시켜  줘. 이러면 영원한 처소로 영접합니다. 이게 없어질 때에, 세상을 떠날 때에  무궁세계에서 이 대우를 다 대우해 주겠다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한 것도 내가  결단코 상을 잊지 않겠다’ 이런 계약이 있기 때문에 이것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걸 믿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말만 하지 믿지를  않는다 그말이오. 이것은 강조한 말입니다.

그 다음에 “지극히 작은 데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충성하고 지극히 작은  데 불의한 자는 지극히 큰 데도 불의하다” 네가 이런 문제를 입고 있는  사람이고, 너는 이런 입장을, 이런 소속과 이런 처지에 이런 한 길의 희망성을  가지고 있는 네이니 네가 이 일을 하는 데에는, 이 일을 하는 데에는 네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곧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그분에게 하는 것인 것을 네가 알고 해라.

네가 감사할 줄도 모르는 사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네가 구속에 대해서  희생을 하고 이러는 것이 참 답답한 것 같지마는 그것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내게 행한 것이다. 그게 주님에게 행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서 구속의 일을 하면서 아무리 강퍅해도 그 사람에게 하는  것이 주님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이 갚아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네가  깨달으면 피곤하지 아니할 것이다. 이걸 깨닫고 하고, 이것은 이런 입장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자기가 깨달으면 용기가 나고, 깨달으면 낙망되지 아니하고  깨달으면 그 사람이 감사치 않는다고 그게 상관이 없는 거라.

이 세상에서 일하다가 다른 사람이 감사하고 칭찬하면 값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런 하나님 앞에 받을 값이 적어진다 그렇게 말해 놨소. 사람에게 보여서  사람이 칭찬하면 너는 이미 세상에서 받았다 이랬다 말이오.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 가 가지고는 받을 것이 없다 이렇게까지 말해 놨소.

이러니까 사람이 몰라 줘도 주님은 아시니 몰라 주는데 하는 그것이 주님을 더  대접하는 것이고 더 믿음이라. 이러니까 감사하는 자에게 하는 것은 그 상급을  빼앗기기 쉽고, 감사치 않는 자에게는 개혁 성경에는 ‘말에다가 흔들어’  흔들면 많이 들어갑니다. 흔들면 많이 들어가요.

그전에 타작 마당에서 벼를 베는 것 보면, 그때 우리 집에 벼는 이래 벨 때에  거의 이래 벴어요. 이래 떡 베고, 아버지가 머슴들 사금을 줄 때에는 이래 떡  담아 가지고 한번 휙 잡아 돌려요, 보니까. ‘저 와 저래 돌리는고?’ 돌리니까  푹 들어가 버려. 그래 가지고 또 이래 가지고 이럽니다. 흔드니까 푹 들어가.

그런데 구역에는 ‘눌러  준다’ 이랬어, ‘눌러 준다!’ ‘저거 왜 흔드는고?’  내 그때 성경을 보니까 ‘감사치 않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흔들어,  말에다가 흔들어서 갚아 주겠다’ 야, 흔드니까 쑥 들어가는데 이게 이 성경을  보니까 딱 깨달음아지는 게 ‘아, 흔든다? 아주 많이 준다는 그말이구나’  구역에는 보면 눌러 가지고 준다 이랬소.

이러니까 소자에게 하는 것이 주님에게 짐 벗기는 것이라 그거요. 주님이 다  우리 죄를 다 책임지고 인간의 죄빚은 전부 주님의 죄 빚이오. 주님이 다  책임졌소.

이러기 때문에 빚을 탕감하는 것이, 인생 빚을 탕감하는, 인생 죄를 해방시키는  것이 주님의 죄를 해방시키는 것이라. 왜? 주님이 죄 책임졌거든. 부담했거든.

이러니까 주님이 갚아 줍니다.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로, 영원한 처소로 너를  이렇게 영접해 대우할 것이다. 이러니까 “불의의 재물로, 없어질 것 가지고  네가 친구 사귀라 영원한 처소로 너를 영접할 것이다.”  그런데 네가 이 일을 가치있다고 느끼고, 참 할 만한 일이라고 네가 깨닫고 이  일을 하려고 해도 네가 지혜 없으면 안 된다. 이 일을 하려고 할 때에 이 일을  하는 실질적인 제일 좋은 방편을 너에게 가르치겠다. 이 방편을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방편이 뭐이냐? 그 방편은, 이 일을 네가 아무리 하고 싶어도  방편을 모르면 방편 잘못 쓰면 헛일이다. 이 일에 대해서 내가 옳은 방편을  가르쳐 주겠다. 제일 쉽고 옳은 방편, 이 방편은 제일 쉬운 방편이요, 옳은  방편이요, 하나밖에 없는 방편이다. 그 방편은 무엇이냐? 그 방편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지극히 큰 것도 되고 지극히 작은 것 실패하는 자는  지극히 큰 것도 실패한다.” 이렇게 딱 가르쳐 놨습니다.

이러니까 네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양이 큰 것도 있고 질이 큰 것도 있고  이렇겠습니다. 어쨌든지 제일 쉬운 것, 제일 쉬운 것, 제일 가치 적은 것, ‘아,  이거야 하나님의 뜻대로 해 봤자 시시하게 가치도 없는 이까짓 일’ 가치가 적은  일, 네가 하나님의 뜻대로 인간 구속을 위해서 일을 하되 네 모든 생활 전체가  구속을 위해서 하는 일이 되어야 되겠는데, 네가 믿음 생활 이것이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생활인데 믿음 생활 할 때에, 믿음 생활하는 것은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인간의 죄를 벗겨 주는 것이요 무궁세계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이요  세상에서 죽을 자이니까 죽음 후의 것을 준비하는 것인데,  이 준비하는 모든 믿음 생활 할 때에는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해라. 지극히  작은 것 힘쓰면 지극히 큰 것은 절로 된다. 지극히 작은 것, 지극히 쉬운 것,  쉬운 것, 지극히 가치 적은 것, 쉬운 것, 아주 사람들이 볼 때에 지저분한 것  그런 것 이것부터 네가 해라.

지극히 작은 것 이거, 지극히 작은 데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작은 것,  그까짓 거 찾아 가지고 할려 하면 쉬운 거야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오늘  일어서야 되나 앉아야 되나? 가야 되나 안 가야 되나? 이거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아주 쉬운 것, 어려운 것 없다. ‘안 해야 되는데 암만 안 할려 해도 안  된다. 안 할려 해도 안 된다.’ 안 할려 해도 안 되니까 또 결심해도 안 되고 또  결심하고, 일생동안 결심해도 저는 헛일입니다.

이거는 번연히 안 해야 될 줄 알고, 안 해야 될 줄 알지마는, 안 해야 될 줄  아는 그것을 안 하려고 결심합니다. 결심해도 또 헛일했소. 또 결심합니다.

일생동안 안 해야 될 것을 느끼고 느끼고 눈물 흘리고 가슴을 치고 안 해야 될  것을 느끼면서 또 안 하려고 결심해도 또 하게 됐고, 안 할려 해도 암만 해도  소용없어. 일생동안 저는 헛일이라 그말이오, 헛일. 또 이것은 해야 되겠는데,  이 일은 해야 되겠는데, 아무래도, 내가 죽어도 해야 되겠는데, 죽어도 해야  되겠는데, 예를 들면 순교를 그 사람이 하려고 ‘내가 어떻게 하든지 순교를  해야 되겠다’ 아무리 제가 각오하고 결심해 봐도 죽음이 올 때에는 그만  항복당하고 헛일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런 일이 아무리 하려고 결심을 하고 이를 깨물고 뭐 가슴을 치고  눈물을 흘리고 단식기도를 하고 뭐 어떻게 산기도를 하고 암만 해도  소용없습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 아무리 해야 될 줄 알고 하려고 애써 봤자  헛일이라. 거기서는 시작하지 말아라. 거기서는 시작하지 말아라. 네가 거기서는  시작하지를 말아라.

네가 아무리 좋은 일, 귀한 일, 큰 일, 네가 해야 될 일 알고 그 일을 네가  하려고 아무리 결심해도 할 일 중에서 하기 어려운 일, 큰 일, 가치있는 이런  일은 네가 하려고 달려들면 안 된다. 그것부터 하려고 달려드는 그런 일은 아예  하지 말아라. 거기 방편은 이것뿐이라. 방편은 이것뿐이라. 거기서 하지 말아라.

네가 또 ‘이거는 안 해야 되겠는데, 안 해야 되겠는데’ 안 해야 될 일 중에 큰  일 가치있는 일, 안 해야 될 일 중에서도 안 해야 될 그 가치있는 일, 안 해야  될 큰 일 거기서 시작해 가지고는 네가 헛일이라. 아예 거기서 시작하지 마라.

방편은 이 한 가지뿐이라.

안 해야 될 것도, 주님이 하지 말라는 그 일 중에도 네가 너로서 제일 쉬운 것  거기서 시작해라. 제일 쉬운 것 거기서 시작해라. 또 제일 가치없는 거기서  시작해라. 안 해야 될 일 중에 이까짓 거 안 해 봤자 해 봤자 무슨 가치가  있으며, 또 안 해 봤자 무슨 죄가 되며 해 봤자 무슨 의가 되겠는가?’ 너  보기에는 보잘 것이 없지마는 거기서 출발해라. 거기서 하니까 그게 되지, 쉽지,  하니까 되니까 그런 것을 하나도 빠지지 말고 그것만 하다 보면 나중에는 지극히  큰 것도 힘 안 들이고 되어지고, 이상하게도 작은 것 그것을 하는 가운데에서  지극히 큰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기가 변화가 돼 버렸습니다. 변화가 돼  버렸어.

여러분들 변화되는 것을 여러분들이 체험했을 것입니다. 집회를 가기 전에,  집회를 가기 전에 그렇게 해야 될 일인 줄 알고 할려 해도 하기가 싫고, 하기가  싫고, 하기가 싫었는데 집회 가서 집회 중에 보니까 ‘왜 그 일을 하기가  싫었을꼬? 왜 하기가 싫었을꼬?’ 이제는 참 전적 하고 싶은 사람으로 변화돼  버렸어.

변화된 걸 여러분들이 체험 많이 했을 것이라. 이거는 안 해야 되는데 안 해야  될 일인 줄 알면서 그거 안 할 수가 없고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집회에 떡  가니까 안 해야 될 일인 줄 알고 하기가 싫고 하기 싫은 사람이 됐더랍니다. 안  해야 될 것은 하기 싫은 사람이 됐고, 해야 될 일은 하고 싶은 사람이  되어졌습니다.

되어졌지마는 이것이 일시 되어졌기 때문에 일시 없어집니다. 알겠습니까? 일시  되어졌기 때문에 일시 없어져 버려. 집회 끝나고 나면 없어져 버려. 헛일입니다.

여기 지극히 작은 것 실행하는 여기서 그게 되어진 것은 긴 세월을 거쳐서  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긴 세월이 지나가도 없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극히 작은 데서 시작해라. 그러기에 부흥회 때에 결심한 사람은 그  결심 어떤 사람은 일 년도 가고 십 년도 가지마는 마지막에는 실패합니다. 꼭 참  밟아 올라가는, 지극히 작은 데서 올라가는 이거라야 성공하지 그 외에 거는  반드시 떨어집니다.

○○○목사님 같은 그분, 그분의 전기가 나오는데 ○○○목사님이 돌변이오.

집회 때에 돌변했어. 집회 때에 돌변한 사람이기 때문에 마지막 공산주의 왔을  때에 돌변해 가지고 대실패를 마지막에 했습니다.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데서부터, 참 일본 말로 ‘다따께 아가리’ 이제 밑에서부터, 제일  낮은 자리에서 밟아 올라가자.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방편은 이렇다.

그 다음에 마지막에 결론으로 지워 놓은 말씀이 “네가 남의 것을 아껴 주면 그  사람도 네것을 아껴 준다. 네가 남의 것을 마구잡이로 하는데 그 사람이 네것을  아껴 주겠느냐” 이것으로써 이 상대성의 공평성을 말해 놨습니다.

네가 남의 것을 아껴 주면 그 사람도 네것을 아껴 줄 것이고, 네가 남의 것 아껴  주지 않았는데 남은 네것 아껴 주겠느냐? 이 결론입니다.

뭐이냐? 네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그거 아끼지 않는데 주님은 아껴  주겠느냐? 네가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지극히 작은 자라도 이게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이라 하여 네가 아끼면 그분은 널 아낄 것 아니겠느냐? 이  소자를 인간 대우하는 이 대우가 주님이 나 대우하는 대우 이것이 여기서  마련된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우리는 참 지혜있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포기해서 ‘아,  안된다.’ 포기했다가 또 엎드려 기도하니까 ‘아니다’ 주님을 바라보니까 또  회개하고 다시 착수하고 하는 것이 이것이 인간입니다. ‘아, 그만 포기하자’  아니 주님을 대하니까 또 아니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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