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저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1984. 7. 5. 목새 

 

본문 : 창세기 12장 1절∼20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를 때에 그  아내 사래더러 말하되 나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고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컨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대로 인하여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인하여 보존하겠노라 하니라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의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바로의 대신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취하여 들인지라 이에 바로가 그를  인하여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약대를  얻었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연고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대접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나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  아내와 그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선지자선교회  지난밤에 우리에게 축복이 닥치든지 저주가 닥치든지 이렇게 자기가 원치  안하는 모든 불행한 일이 올 때에도 이는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가 아니고  어디서 뭐 때문에 이래 됐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내게 이 모든 불행을  주셨다' 그걸 우리가 믿어야 성경을 믿는 사람이 되고, 또 자기에게 어떤 좋은  일이 닥쳤을 때에는 이 모든 행복은 다 주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다 요렇게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왜? 다른 이는 거기에 대해서 그렇게 조그만한 권리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것을 주권하고 계시면서 혼자 당신이 모든  것을 처리하십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자기의 행복을 마련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부리지만 그것은 다 헛수고입니다. 또 자기에게 오는 자주를 면하기 위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부리지만 그것도 다 헛수고입니다. 사람들은 일시만 보고  그것으로 다인 줄 알고 그렇게 혹 편벽된 판단으로 여겨져 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과정을 가졌다 할지라도 실은 사람들이 다 색경을 쓰고 편견해서 사람들의  노력으로 뭐이 됐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실상은 그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아니라는 것을 성경에 말씀합니다. 사람이 원치 안하는 일 닥치는 것이나 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행복스러운 일이 닥치는 것이나 그 참 행복과 참 불행은  순전히 주님 혼자 독단으로 그 일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 같은 불행도 있고 불행같은 행복도 있는 것도 또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렇게 왜 그러냐? 우리는 시간을 일시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영원한  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에 불행 같으나 그것이 영원한 행복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성경에 말씀하신 대로 모든 불행도 하나님이  주셨고 행복도 하나님이 주셨다 요것을 성경대로 확실히 믿어야 되겠고,  그러면 불행은 어떻게 주셨느냐? 하나님께서 왜 누구에게는 불행 주고 행복  주고 그렇게 하후하박을 하시느냐? 하후하박을 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제약을 선포해 놓으셨기 때문에 계약을 어기지 못하는 하나님으로서 계약대로  이행한 것입니다.

 그러면, 계약대로 이행했으면 어떻게 그 계약대로 이행해서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을 주시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그 사람의 실력이  어떠하다. 지혜와 총명이 어떠하다. 지식이 어떠하다, 열심이 어떠하다, 또 그  사람의 노력이 어떠하다, 그 사람 조건이 어떠하다. 그 사람이 실력이나 자기  소유가 많다 적다 그것을 상관하지를 아시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도 상관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을  보아서, 그 사람과 그 사람의 행위를 보아서 하나님께서 '아, 이 사람에게는  축복을 줄 수 있다' 그렇게 당신의 마음에 인정될 때에 축복을 주시고, '이  사람은 아무래도 축복은 못 주고 저주를 줘야 되겠다' 인정될 때에 저주를  주시고, 또 '이 사람에게는 축복만 줄 게 아니라 축복과 저주를 섞어 줘야  되겠다' 이렇게 인정되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해서 하나님이 인정되시는 대로  하나님이 주시고 주신 그대로 되는 것이지, 인간은 인간을 절대 행복스럽게도 못  하고 또 인간이 인간을 불행스럽게 만들지도 못합니다. 천하 사람이 다  달려들어서 그 사람을 불행스럽게 하려고 해도 못 한다는 것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또 자기가 아무리 자기를 행복되게 하려고 애를 써도 또 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직접 행복과 불행을 상관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 다만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서 우리를 지어 놓으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과 길을 걸으면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고, 하나님이 노여워하시는 사람과 길을 걸으면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 하는 이것이 변치 못하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지난밤에 '한 가지를 더 알아야 된다' 그러면, 사람이 행동한 대로  보응하시는 일이 있고, 그 사람의 사람이 된 대로 갚아 주시고 그 사람이  행동하는 대로 갚아 주시는, 선행 후응으로 먼저 사람이 행한 그대로 뒤에 갚아  주시는 그런 일이 있고, 또 하나 있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불행을 먼저 주시는 일이 있다. 그러면, 먼저 행하고  뒤에 보응하시는 일이 있고, 또 하나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준비를 하도록  그렇게 하셔 가지고 뒤에 갚으시는 일이 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표본인 이 아브람이 하나남의 인도를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려고 했습니다. 큰 민족도  이루고, 또 유력하게 되고, 또 복의 기관이 되고, 이래서 그 사람을 위하면  위하는 사람까지 복되게 하고 그 사람을 해치면 해하는 사람까지 하나님이 해가  되도록 이렇게 하신다고 이렇게 약속하시는 약속을 듣고 아브람이 출발을  했습니다. 아브람이 출발해 가지고 벧엘에 도달했는데, 벧엘에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네가 여기에 머물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벧엘에 머물렀으니까 그는 분명히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했으니까 복을  받아야 될 사람입니다. 복을 받아야 될 사람인데 복은 오지 안하고 그 지역에  흉년이 들어서 아주 그 아브람에게 견딜 수 없는 그런 기근 이라는 아주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니까 아브람이 견디지 못 해서 아브람이.

그때는 아브라함이 아니고 아브람입니다. 아브람이 견디지 못해서 그곳에서 그  기근을 면키 위해서 슬슬 그 애굽 있는 쪽으로 내려가 가지고, 애굽에는 모두가  다 풍성하니까 그곳에 가 가지고 어려움을 면하겠다 하고 애굽으로 슬슬  내려갔습니다.

 그러면, 내려간 것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내려간 게 아니라 제가 어려우니까  자기 마음대로 생각대로 벧엘에서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애굽에 내려가  가지고 다 가 갈 때에 아브람이 자기 아내 사래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아주  아리따운 여인이니, 모든 남자들이 보면 다 욕기를 낼 수 있는 그대이기 때문에  이제 아주 타국에 이 왔으니 그들이 아무 사정없이 자기를 빼앗기 위해서 나는  죽이고 자기를 살릴 터이니까 나에게 대해서 후대를 해 다오. 아내라고 하지  말고 누이 동생이라고 그렇게 말을 하면 그들이 자기는 취해서 아내를 삼을  것이고 나는 살려 둘 것 아니가? 그러자.' 그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사래가  그렇게 하겠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이렇게까지 된 걸 보면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아브람이 아마 견디지 못하는 그 어려움을 당해서  아내를 내줘도 안 갈 수 없는 그 걸음이며, 또 사래도 그런 지경을 닥쳐도  거기에 안 갈 수 없는 그런 걸음이었다 하는 그런 것을 우리가 짐작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차 대전 후에, 그때 말을 들으니까 사람들이 무인도에 가 가지고 걸려서  처음에는 그 부근에 있는 모든 짐승 같은 것 전부 물버러지 같은 것 개구리 이런  것 다 잡아 먹고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먹을 게 없고 물밖에 없으니까 모누  마지막에 굶어서 죽는데, 죽을 때는 모두 배가 뽈록뽈록해 가지고 죽었는데  해부를 해 보니까 전부 이 모래를 먹어서, 모래를 먹어서 죽었더라고. 배가  고프니까, 생명은 있지 먹고 싶기는 하지 배는 고프지 이러니까 모래라도 집어  먹어 가지고 모두 모래를 먹어서 배가 뽈록뽈록하이 먹고 죽었다 하는 그런 것을  그때 발표된 것을 봤습니다.

 그러면, 그 아브람이 그렇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려움을 겪었는데, 마침  거기까지 가니까 모든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디서 사람들이 왔는데 그 여인이  아름다운 여인이 있더라' 보는 사람마다 칭찬을 하고 다 입맛을 다시고 이러니까  대신들이 바로 왕에게 고했습니다. '그런 여인이 있습니다.' 바로가 있다가 그  여인을 부르고 아브람도 불렀습니다. '그러면, 이가 누구냐?' '이는 내 누이  동생입니다.' '그러면, 내가 취해서 아내로 삼겠는데 허락할 수 있겠느냐?' '예,  뭐 그라면 안 좋겠습니까?' 이래 가지고 허락을 했다 그거요. 그래도 그거야 뭐,  그거 전부 하나님 앞에서 죄 짓는 일이요 인간적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요  하나님에게도 할 수 없는 그런 일이지만 그만치 어려워졌더라 그 말이오.

 그래 가지고 바로가 그 아내를 데리고 왔습니다. 데려다가서, '아내를 삼게  하겠느냐' 하는 말에서 우리가 그 아내하고 동침까지 하지 안했느냐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지만 다른 모든 것을 봐서 하나님이 거기에까지 두시지 안했다 하는  것을 우리가 그렇게 판정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바로를 쳐서 바로가  견디지 못하는 일을 당해 가지고, 환상을 보니까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에  '바로야, 네가 어찌 남의 아내를 취해 왔느냐? 그 아내를 네가 가까이 하고  이렇게 하면 네 생명이 다 끊어질 것이 고 너거 '모든 나라와 민족이 완전히  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그 현몽을 받고 바로가 놀래서 아브람을  불렀습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렇게 했느냐? 아내라고 했으면 내가 취하지  안할 터인데 누이 동생이라 해 가지고 나로 하여금 아내 삼도록 이래 만들어  가지고 나를 전멸하도록 이렇게 하려고 했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까 데리고  가라' 그러면서 후대를 해서 아주 물품도 짐승도 많이 주면서 가지고 가라  했습니다. 아브람이 거기서 그걸 받아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이제는 아브람이 거기서 하나님을 떠나서 내 마음대로 내려갔던 길이 망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먼저 제단 쌓은 벧엘로 올라왔습니다. 벧엘로 올라오니까  올라오는 동안에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모든 물질이 풍부하게 됐습니다. 그래  가지고 벧엘에 와서 있을 때에 너무 모든 것이 풍성하니까 숙질이 다 같이 있을  수가 없어 거기서 시비가 일어나기까지 그렇게 됐습니다.

 아브람이. 그 뒤에 숙질간에 시비가 있을 때에 아브람이 조카에게 모든 것을  양보를 하고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 그 양보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소돔에 전쟁이 나 가지고 자기 조카 롯이 포로가 되어  갔다는 그 소식을 듣고 자기 집에 훈련 자기 집을 지키는 파수꾼이 벌써 큰  군대입니다. 이래 가지고 그 사람들 데리고 가 가지고 사대 강국을 격퇴를 하고  거기서 승리하고 자기 조카를 구출해 왔습니다. 그 후에 소돔 왕이 와 가지고  말하기를 '이 제물은 당신이 다 하고 사람만 보내 주면 좋겠다.' 할 때에  아브람이 '나는 그 신들메 하나도 하지 않겠다. 왜? 그러면, 이 사건으로 인해서  내가 부자됐다고 이래 하고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지 안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내가 단정코 내가 그와 같이 하지 않겠다.' 그렇게  해서 그 재물은 다 보냈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이 롯으로 더불어 그렇게 양보한 그것이, 또 소돔 왕으로 더불어  서로 대화가 있을 때에 모든 물질을 양보한 그것이, 그것이 어디서 생겼느냐?  그것이 아브람이 자기 마음대로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애굽에서 자기 아내를 뺏긴  큰 실수를 했고. 또 거기서 예물로 준다고 주는 그걸 안 받아 가지고 올  것이지만 원첨 어려워 놓으니까 그때는 그 면에 대해서 그걸 받아 가지고  왔었는데, 와 가지고 그것이 자꾸 커져 가지고 이와 같이 돼졌으니 거기에  대해서 마지막에 '이게 다 죽어도 나는 내 욕심대로 소돔 들을 취하지 안하고  롯이 하자 하는 대로 하겠다. 또 소돔 왕이 이래도 거기에 대해서도 털끝 하나도  내가, 실라끈 하나도 내가 차지하지 않겠다.' 하는 이런 것을 보면 아브람이  그것이 어디서 생겼더냐 하는 것을 우리가 추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많은 불법적으로 자기에게 온 물질이라는  그것이 아브람에게 마음 아팠으나 그것을 그때 다, 그 사람은 모든 게  거기서부터 시발돼 온 것이니까 어떻게 처리할 수도 없는 것이고 이러니까  아브람 마음에 그것을, 당장 이것을, 애굽에서 그것이 뿌리요 그것이 원인이  되고 어미가 돼 가지고 거기서 다 생산된 것이니까 이것을 다 없애 버리자  이렇게 단행하지는 못했지만 아브람의 심령으로 말하면 그것이 없어지기를  원했지 그게 유지되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룻으로 더불어 시비할 때도 아브람이 취한 그 길에서는 목축이라 하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왜? 발가이 풀 한 포기도 없는 자산에서 뭐이 되겠습니까?  이러니까. 아브람이 그와 같이 한 그것이 우리가 볼 때에는 참 아브람이 의롭다  이렇게 단순히만 보지만 아브람 속에는 그 물질을 벌써 자기를 원수시 하고  물질로 말미암아 자기는 참 더러워질 뿐만 아니라 그 더러 움의 원인으로부터  생겨 나왔다는 것을 자기가 알기 때문에 그런 걸 청산 정리하고자 하지만 우연히  될 때 되지 그걸 만일 그래 하는 날이면 거기서 또 무슨 싸움이 다 일어날  것이라 말이오. 그것을 다 그런다고 하면 자녀들도, 종들도, 모든 수하들도  자기에게 대한 속한 가족들인데 그런 것을 다 모두 다 죽이는, 사형시키는 거와  같은 일이기 때문에 그리도 못 하고 저리도 못 했지만 자기 속에는 포부가  있었던 것을 보여 준다, 또 소돔 왕으로 더불어 그와 같이 한 것도 보면 그 한  것이 '아, 그분은 참 단순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모든 땅의 것을 바라보지  안했다' 우리에게 그렇게 보여지지만 그것은 아브람에게 뼈아프게 느끼고 깨달은  그 깨달음이 있어서 깨달음이 들어서 그렇게 한 것이지 그저 그냥 외식으로  이렇게 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서 신앙 경험을 해 보면 참 차기가 깨달아서 하고 싶은  것이라도 하지 못하고 마음에 밤낮 소원이고 꿈에도 소원이 나와 그것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일이 닥쳤을 때에 다른 사람  같으면 눈물을 흘리고 뭐 야단이 날 건데 오히려 울고 접자치기니까 시뻐하고  즐거워하고 그런 일을 단행할 수 있는 그런 용감이 생겨진다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 그렇게 한 것이, 애굽으로 말미암아 그래 된 그것이 아브람에게  참 큰 회개. 큰 후회를 일으켰고 크게 회개를 일으켰고. 그것이 사람들이 단독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의의 걸음을 걷게 되었고, 그 걸음을 걸음으로 말미암아 이제  하나님께서 그 뒤에, 롯으로 더불어 시비한 후에 축복한 축복을 본다든지 또  소돔 왕으로 더불어 대화하고 난 다음의 축복을 보든지 하면 그 축복은 굉장한  큰 축복입니다. 그 축복을 그 후에 받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서 복 주시는 것도 있고  하나님이 큰 복을 주시기 위해서 미리 회개 할 수 있는 원인을 만들어 가지고  나중에 뼈아프게 회개할 수 있는 원인, 그런 죄 가운데 빠지든지 실수를 하든지  그렇게 해서 크게 회개해서 깨끗해질 수 있는 그런 원인을 만들어서 무슨  벌같이, 아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벌같이 받는 것 같은 이런 일을 만들어 가지고  그 사람을 깨끗케 해 가지고 하나님이 축복 주시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능동이 되고 하나님이 피동적으로 갚아 주시는 일 있고,  또 하나님께서, 축복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은밀히 사람들에게 능동으로  행해 가지고 그 능동에 피동되는 그 생활에서 고생만 진뜩 하고 이와 같이 그래  가지고 고생은 하나 그로 인해서 사람이 깨끗하게 만들어 가지고 깨끗한 그 만든  다음에, 하나님이 그게 아니면 줄 수 없는 그 지극히 큰 축복을 아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고난에서 만들어 가지고 그렇게 뒤에 축복해 주시는 일이 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난 밤에 그 모든 불행과 축복은 하나님 혼자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뭐이냐? 그 사람의 행위와 사람됨에 따라서 그것이 좌우 되어 진다. 그런데 그  방편만이 아니고 그 외에 딴 방편 하나 있는 것은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는  것 있지마는 큰 목을 주시기 위해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행할 수 있는 그런 큰  복을 주시기 위해서 행할 수 있는 그런 가운데서 사람들이 깨닫고 깊은 높은  회개를 해서 참 인간이 받을 수 없는 큰 축복을 하나님이 주시는 일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섭리하시는 것은 그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 있지마는 큰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여러 가지  시련을 받도록 해 가지고 그 사람이 회개 안할 수 없고 깨닫지 안할 수 없는  그런 그 어려운 역경을 먼저 줘서 경로를 통과시켜 가지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큰 축복을 주시는 일이 있다.

 이러니까 어쨌든지 복과 화는 하나님에게 주권 되어 있다는 것 이것을 믿는  것은 뭐 이런 방편이나 저런 방편이나 순서만 다르지 이거는 변함이 없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틀림이 없으니 우리가 이해  못할 이런 일들이, '나는 이거 행하지 안했는데'- 욥은 그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죄 받을 만한 그런 일이 없었었는데 내가 이런 화를  받으니'이랬지마는 그 받을 만한 그런 일이 없었는데 내부 공작에서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려고, 하나님이 욥을 자랑하시기 위해서, 높이기 위해서,  만인간에게 신앙의 표본의 하나 큰 힘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역사 하셨는데,  욥으로 말하면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 내 행함에 대한 정상적인 보응은  아니다.'이러니까 반항을 하다시피 했다 그 말이오. 그러다가 나중에 그  가운데서 깨달아서 욥도 그렇게 의인이지마는 그런 지경에 이르니까 하나님에게  대해서 감사하지를 못하고 자기 난 날을 저주하고 모든 걸 이와 같이 그저  낙망적으로 '하나님 죽이려면 죽이고 말라면 마십시오.'하는 정도로 말은 안  해도 전부 그런 발악이 나왔다 말이오. 나와 가지고, 그 발악이 나온 그것이  욥에게 속에 아주 밑잘미라. 마치 꾸중물을 놔두면 가라앉아 가지고 위에는 말간  말강물 같지만 실은 내저어 놓으면 밑에 꾸중물이 올라오는 것처럼, 이제 욥의  속에 감추어 있던 꾸정물 그것을 솎여 가지고 욥도 그 다음에사 아, 내가 이런  발언을 하고 이렇게 하나님에게 불경건하는 이런 죄인인 줄 몰랐다' 하는 그것을  깨닫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저 어느 시간에 말했지만 욥의 아들들이 다 전멸이 됐다,  또 그 재산이 전멸이 됐다, 욥의 몸뚱이도 그렇게 참 큰 중 병이 들었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큰 축복이지만 일반 사람들이 깨달을 수 없는 축복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욥기를 읽어 보고 욥이 그런 환난 가운데서도 참고 견딘 인내는 배우고  싶고 인내는 찬성을 하고 싶고 그거는 좋지만 욥의 신앙을 원치 안하는 것은  욥과 같은 그런 전멸되는 어려움이 올까 해서 욥의 생활을 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나는 그렇게 봅니다. 욥의 생활을 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말이지요. 거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욥의 생활을 또 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욥의 생활을 원하는  사람들도. 왜? 깊이 깨달은 사람은 욥의 생활을 원합니다. 사람이, 이거  해석하려 하면 많으니까 여러분들이 가서, 처음에 맞추면 맞지 안하고 모순 같은  설교지만 맞추면 딱 들어맞습니다. 맞는 것은, 하나님께서 욥을 사랑하셔서 욥의  아들들이 전부 순교자 됐습니다. 욥의 아들들이 전부 다 순교자 됐습니다. 또  욥의 재산은 하나도 썩지 안하고 욥의 재산은 전부 다 하늘 창고에다 저축이  됐습니다. 또 욥처럼 욥의 몸에 있는 그 모든 진액이 그렇게 하나님에게  바쳐지는, 그렇게 솔빡 바쳐지는 그런 바친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순교하는 사람들도 다 나머지기 없이 싹 바친 것이 됐지만 살아 있으면서 욥같이  자기 진액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하나님으로 인해서 희생된 자기의 신체는  없습니다. 욥같이 자기 의 몸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에게 쓰여져서,  하나님에게 쓰여져서, 하나님의, 하나님의 이 복음 역사를 위해서 이용되어진  사람은 없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욥에게는 자기 남아 있는, 빼빼 말라서 그저 피골이 상접돼  있는 남아 있는, 이제는 뭐 고름이 나올래야 고름이 나을 건더기가 없어. 아무  진액이 없으니까. 그렇게 말라빠진 그것만 남아 있지 그 나머지기는 전부 순교  제물이요 하나님에게 다 바쳐서 영광된 보배로 제물이 된, 그렇게 야나지게 바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아 있는 욥 그거는. 욥은 그 욥이 남아 있으면서 죄를 지을 란지는  모르지만 어쨌든지 그때 바쳐진 것은 다 주님을 위해서 바치고 주님이 사용했고,  주님이 당신이 이용했다. 당신이 뭐 때문에?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이용했고,  당신의 뜻을 위해서 이용했고, 당신의 영광 당신의 자랑을 위해서 이용했고,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서 이용 했고, 이렇게 모든 세상에게 빛을  보이기 위해 이용했고 뭐 하나도 폐물은 없습니다. 하나도 폐물 없소. 전부  이렇게 다 주님의 원하시는 대로 주의 뜻을 이루는 데에 솔빡 다 이용됐고, 주를  위해서 이용된 그것이 된 것인 것을 깨달으면 욥에게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또  그라고 그 다음에도 또 배를 주셨습니다. 배를 준 그것은 이제 처음의 것을  그것을 도로 준 것이 아니고 처음의 것은 완전이 됐고 완성 됐고 그 다음에는  배나 또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이 주셨지만 그 다음에 받은 것은 욥이  아무리 의인이라도 그렇게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도 보면 욥 속에 그 찌꺼리기가 있는 그것을 욥도 몰랐고 다른  사람도 몰랐고 모릅니다. 욥 속에 찌꺼리기가 있는 그것을 아무도 모릅니다. 욥  자신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알고 있었다 말이오. 사단은 알고 있어.

마귀는 '아, 욥에게 있는 것을 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그래 해 보십시오. 그라면  욥이 하나님에게 대해서 반항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랬는데. 욥이  조그매는 했지만 그와 같이 해도 욥이 하나님에게 직접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원망하는 것이나 불평하는 거는 없고 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는 좀  불만스럽게 여기는 일이 있었지 하나님에게 직접 대결해서, 마귀가 말한 대로  '하나님을 직접 대결해서 하나님을 대항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했는데 직접  대항한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불만스러워서 한  것이지.

 이러니까 하나님이 욥을 통해서 마귀를 바싹 깼고 바짝 눌렀고, 마지막은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귀는 완전히 바싹 깨져서 가루를 만들어  버리고 그 단체는 완전히 파멸을 당해서 영원히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게 된 것이  둘째 아담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둘째 아담이 우리를  대속하시고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해서 주님에게 그런 어려움을 주님이  주셨고. 어려움을 주실 때에 그 어려움을 통해서 마귀의 일을 멸했고 우리의  멸망도 멸했고 우리를 구출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행한 대로 하나님이 축복과 저주를 주시는  일이 있고 또 그것보다 앞서 이다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는 저 주를 없애기  위해서, 또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준비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어려움을 주시고. 또 우리에게 닥쳐올 그 모든  저주를 제거하기 위해서, 이러니까. 축복과 행한 대로 축복과 저주가 오는  그것이 있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미리 저주를, 앞으로 오는 저주를  방어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시련하시는 일이 있고, 자기가 행한 대로 받을 수  있는 그런 축복이 아니고 상상 못할 큰 축복을 받기 위해서 그이에게 깨끗케  하는 그 자본인 사람을 어려움을 겪게 하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주로 오는 어려움도 있고, 축복을 마련하기 위해서  예비적으로 오는 어려움도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있으면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단정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무슨, 무엇이든지,  물건이든지, 일이든지, 자손이든지, 자기의 행복이든지, 우리는 자기의 행복도  만들 수 없고 남의 행복도 만들 수 없고 행복 만들 수 없어요. 행복은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을 만든다고 행복이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복 주시면 행복되고 저주 주시면 저주되는 것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하는 것은 하나님이 행복을 원하거든 하나님이 행복을  주실 수 있는 자기의 행위와 사람이 되는 그 방편밖에는 없고, 또 자기가 저주를  받기 싫거들랑 하나님이 저주를 줄 수 있는 그런 행위와 자신을 고치는 것  외에는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걸 단단히 알아야 됩니다. 직접으로는 우리가 저주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행복을 마련치도 못한다, 행복에 대해 손을 못 댄다, 행복과  저주에 대해서는 사람이 손을 못 대는 줄을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저주를  벗으려 해도 못 벗습니다. 행복을 암만 취하려 해도 못 합니다. 다만 하나님이  저주와 행복은 주권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이 나의 저주를 다 벗겨 주실 수  있도록 하는 그것이 저주 벗는 한 방편이고 또 하나님이 날 축복해 주실 수  있도록 내 행위와 나를 마련하는 그것이 행복을 받는 방편이지 직접 그것을  마련치는 못하는데 사람들은 전부, 이것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에게 어려움이 오면 그 어려움을 직접 제가 어려움을 면해 보려고 애쓰지만  다 헛애만 쓰고 헛수고만 하는 것입니다. 암만 해 봤자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럴수록 더 대항합니다. '내가 이 모든 저주를 벗어나야 되겠다.' 암만 해 봤자  하나님은 그걸 벗겨 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하나님께서 '이것은 행위와 사람을 보니까 요만한 저주는 조금 감해  줘도 되겠다.' 자기 행위와 사람에 따라서 저주를 하나님이 감해 주시지 제가  하는 게 아니라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직접으로 저주나 행복을 벗는 것이나 입는 것이나 그것을  직접으로 제가 만들면 된다고 생각지 마요. 만들지 못하고 손도 대지 못합니다.

못했는데, 다만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수 있는 행위와 사람, 하나님이 저주를  벗겨 주실 수 있는 사람과 행위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달렸기 때문에 당신이 나에게 축복해 주시느냐 저주해  주시느냐, 그러면, 저주를 벗겨 주시느냐 축복을 더해주시느냐 하는 그것을,  우리가 그런 사람과 행위는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기억해야 되지, 직접적으로 안 된다는 것, 이것 모든 사람이 직접 하려합니다.

제가 봐도 믿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환난이 오면 직접 하려고 달려드는 것이 백의  99명이고, 목사들 수로 말하면 백의 99명이지 '아, 이거 닥친 저주를 손도 대지  마라. 닥친 저주를 손을 대면 하나님이 노여워한다. 손대지 마라. 어디 하나님이  주셨는데' 그 저주를 벗으려고 하면 '이놈, 내가 준 것인데 네가 벗어?'  벗으려고 하면 더 덮어 씌어 버립니다. 안 된다 그 말이오.

 다만 '아, 이거 하나님이 저주를 주셨다. 이거 하나님이 벗겨 주셔야 된다.'  하나님이 벗겨 주시는 데는 행위를 회개하고 사람을 회개해서 행위와 사람이  고쳐지면 하나님이 그 저주를 썩 벗기니까 그 저주 제까짓 게 안 물러갈 수  있습니까? 물러간다 말이오. 그때는 내가 행위와 사람을 회개했으면 '아이구!  주여, 나는 이 저주 이것을 지금 받은 게 아니라 좀 더 많이 받아야 될  자입니다. 어쩌든지 이걸 더 많이 받아야 될 자이니까 가지고 가지 말고  두십시오.' 암만 끌어 당겨도 소용없다 말이오. 당신이. 힘센 당신이 딱 치워  버리니까 못 온다 말이오.

 이러니까, 요 비결을 성경에 말씀했기 때문에 성경이 말씀한 요 지혜를 가지고  우리가 살아야 되지 이 지혜의 법칙을 떠나서 자기 생각대로 내가 '이 싫은 것은  벗어 버려야 되겠다. 좋은 것은 내가 취해야 되겠다.' 아무리 해도, 좋은 걸  취하기 위해서 죄를 짓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안하고, 모든 해로운 것을 벗기  위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안하는 것이 자꾸 깊은데 빠져 가지고 멸망하는 것이지  이제 당신에게 주권이 있기 때문에 안된다는 요걸 단단히 거머쥐고 놓지 안해야  됩니다.

 어쩌든지 기도 많이 합시다. 이 세상 험하고 아무리 유약해도 기도하면 우리는  좋은 날이 옵니다. 생명과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어쩌든지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해야 회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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