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나무 비유

 

1983. 5. 16. 월새.

 

본문 : 요한복음 15장 1절∼4절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여기에 말한 아버지는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킴이고 또 "나는 포도나무라" 한 이  나는 우리를 대속하신 신인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포도나무 가지는 우리 개인 신자, 또 개교회 또 개교파, 시대의  교회, 그러면 천 년 전 교회 또 지금 교회 모든 시대의 교회를 가리켜서 가지라  그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지 아니하면 열매 맺지 못하고 다 말라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들이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고 다  말라서 불에 타서 멸망받는다. 내 안에 있어야 한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붙어 있어야 된다는 그 붙어  있다는 말을 또 그다음에는 "내 안에 있어야 한다" 주님 안에 있다 말이나  주님에게 속해 있다 말이나 같은 말이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지 아니하면  절로 말라서 멸망받는다"  그러면 주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킴인가? 주 안에 있다는 것은 주님의  대속의 은총 안에 있는 걸 가리켜 말합니다. 사죄를 벗지 아니하고, 칭의를 벗지  아니하고, 화친을 벗지 아니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또 "나를 떠나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지 아니하면" 그러면 떠나는 것이나  붙지 안하는 것은 무엇을 가리킨 것인가? 주님의 사죄를 벗으면 주님과 끊어지는  것이요 또 떨어지는 것입니다.

 또 "내가 이미 일러 준 말로 너희들이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이미 일러 준 말로 깨끗하다 그말은 이미 선포한 계약으로  깨끗하다 하는 것은 기본구원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주님이 대속하신 대속으로 인해서 너희들이 깨끗하고 다 정죄에서 벗어났다.

이러니까 주님 안에 있을 수 있고 또 주님을 떠날 수도 있다. 이는 영을 가리켜  말함이 아니고 육을 가리켜 말함이니 마음과 몸 이것은 주님의 구속을  입었지마는 구속을 제맘대로 벗을라면 벗고 입을라면 입고, 주 안에 있을라면  있고 주를 떠날라면 떠나고, 자유하는 그 행동을 말합니다. 영은 주를 떠날 수  없게 됐고 벗을 수 없게 됐기 때문에 이는 영생입니다.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겠다.

아버지께서 과실을 맺지 않는 가지는 다 베어 던져버리고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맺도록 하기 위해서 이를 깨끗케 하신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가 소유의  전부와, 능력의 전부와, 노력의 전부를 가지고서 과실 더 맺도록 이렇게  포도나무를 가꾸시는데, 포도나무 가꾸시는 것은 주님에게 은혜를 이렇게 계속  우리의 뿌리의 둥치가 된 주님에게 계속 이 은혜를 베푸십니다. 내가 붙어  있으면 그 은혜를 받고 붙어 있지 안하면 찍어서 던져버림을 받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모든 소유와 능력과 노력 전부를 가지고서 우리를 위해서 열매  많이 맺도록, 안 맺는 것은 끊어버리고 맺는 가지는 더 많이 맺도록 가꾸어서  키우시는데 그 가꾸어 키우시는 것을 또 말씀 하시기를,  열매 많이 맺도록 농부되신 하나님 아버지가 있는 소유 전부, 능력 전부, 노력  전부를 기울여서 열매를 더 많이 맺도록 잘 가꾸어서 가지가 차차 커지도록  그렇게 만든다, 가꾸어서 기르신다 그렇게 표현을 하지 아니하시고 여기에다가  '과실을 더 맺게 하기 위하여' 뭐라 했습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남반에? 깨끗케  하신다 그랬습니다. "깨끗케 하신다" 그러시고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이랬습니다.

 '깨끗케 하신다' 그말이 예수님의 이 대속한 공로를 점점 더 입도록 하신다  그말이오. 또 "이미 일러 준 말로 깨끗했다" 그말은 이미 선포해 놓은 약속한  대로 너희들은 대속의 은혜를 입어서 깨끗해졌다 그말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님에게 대해서는 계속 이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있는 소유, 전능력, 전노력은 예수님만을 위해서 하시는데,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교회 머리요 교회는 예수님의 몸인데 이 교회를 위해서  하시는데 교회 가운데에 열매 맺지 않는 가지, 열매 맺지 않는 개인, 열매 맺지  않는 가정, 열매 맺지 않는 그 교회, 단체, 열매 맺지 않는 교파, 열매 맺지  않는 지방 교회, 미국 교회면 미국 교회, 일본 교회면 일본 교회, 한국 교회면  한국 교회 그렇게 열매 맺지 않는 그 교회는 수가 많든지 적든지 그것은 다  끊어버린다. 열매 안 맺는 것은 끊어버리고 열매 맺는 것은 더 맺도록 이를  깨끗케 하신다 하는 아주 이 말씀이 복잡하고도 또 세밀합니다.

 그러니까 열매 맺는 것이 주님에게 속해 있는 것이요 주님 안에 있는 것이요,  열매를 안 맺는 것이 주님에게서 떨어지는 것이요 또 하나님 아버지가 제해  버리시는 것이요 이것이 열매 안 맺는 그것이 주 안에서 주 밖으로 나가는  것이라. 여러가지로, 열매 맺는 데 대해서 많은 말을 했습니다.

 열매 맺는 것이 자, 뭐라 했습니까? 열매 맺는 게 맺는 것이, 한번 헤아려  봅시다. 열매 맺는 것이 뭐 하는 것이요? 열매 맺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것입니다. 위에는 농부로 비유했고 그다음에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러면 아버지가 사랑하는 그 사랑이 뭐입니까? 사랑 그것이  전부를 다해서 주님에게 기울이는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열매 맺는 데 대해서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 아버지의 총애를 받는 것이  됩니다. 또 열매를 맺지 안하면 총애를 벗어나는 것이 됩니다. 또 열매 맺지  아니하면 예수님에게서 끊겨지는 것이 됩니다. 또 열매 맺지 안하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이 됩니다. 또 열매 맺지 안하면 '차차  차차 말라서 마지막에는 불에 던져 사른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열매 맺는 것이 가지가 가는 가지가 점점 큰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것이 작은 가지가 큰 가지 된다. 그러면 가지가 자라는 방법이  뭐이냐? 열매 맺는 것이다, 열매 맺으면 가지가 점점 작은 가지가 큰 가지 된다.

그러면 열매를 맺으면 어떻게 큰 가지 되느냐? 하나님 아버지의 총애 전부를 다  받아 가지고 그것 가지고 제가 점점 자라게 된다. 그러면 자라는 것은 뭘로  자라느냐? 열매 맺는 걸로 자라게 된다.

 열매 맺는 그것이 자라는 것이요 또 자랄 수 있는 모든 은총을 입는 것이라.

열매를 맺으면 점점 가지가 가는 가지가 큰 가지 되고 또 큰 가지가 더 큰 가지  되고 이러면 그 가지에게 붙은 가지들이 많아 가지고 이제 하나의 굵은 대목  가지가 된다. 그러면 그 가지로 인해서 많은 열매가 맺게 된다.

 많은 열매가 맺다니? 많은 계명 지키는 것이 된다. 계명 지키는 게 되다니?  많은 사랑을 받는 게 된다. 계명 지키는 게 뭐인고? 계명 지키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사랑하는 것이 뭐인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지요? 사랑하는 것이 뭐이요? 여기 한번 대답해 봐. 사랑하는 것?  사죄만? 대속을 입는다 하면 한 말로 다 되지. 사랑 받는 것이 대속을 입는  것이요, 사랑하는 것이 대속을 보존하는 것은 자기 구원도 되고 다른 사람에게  구원도 되는 거라. 대속을 안 벗어버리는 것이 자기 구원도 될 뿐만 아니라 제  삼자가 볼 때에도 구원을 주는 일이 된다 그겨요. 이것이 점점 자기가 커져  나가는 것이라. 그러기에 열매 맺으면 다 되고 열매 안 맺으면 헛일입니다.

 제가 고려신학교 가서 입학할 때에 논문을 쓰라 하는데 논문을 쓸라 하면 그뭐  기록할라 하면 말로 기록할라 하면 한정 없고 이래서 내가 단지 적을 때 그래  적어 냈어, '포도나무에 대목가지가 되려고 왔습니다.' 이래 적어 냈더니마는 그  교수라 하는 사람들이 그걸 보고 찌글찌글 읏으면서 '이걸 논문이라고 썼다,  이걸 논문이라고 썼다.' 이러면서 그만 낙제요. 그런데 주남선 목사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입학을 시키라' 해 가지고서 입학은 했어. 지금도 그분들이  그걸 모를 것이오.

 '포도나무 대목가지가 되기 위해서 왔습니다.' 하는 그말은 하나님의 이 은총  입어서 이 은총으로서 하나님의 교회에 많은 복음을 전해서 수많은 인류를  구원하는 그 구원하는 역사하기 위해서 왔다 하는 말인데 그것은 근방에도 가지  못하고 무슨 말인지 자기네들이 알 리가 없고 지금도 모를 거라. 성경을, 그때  그 사람들은 다 교수들은 죽었지만, 지금 몇은 살아 있지마는.

 우리가 이 말씀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둥치가 되는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전심전력과 모든 소유와 전노력이 마구 우리의  둥치인 예수님에게 다 기울어져 있습니다. 다 기울어져. 다 기울어져 있는데  내가 거기 붙어서 떨어지지만 안하고 자꾸 열매만 맺어 빨아당기기만 하면  예수님에게 온 은총이 다 내것이 된다 그거요.

 그러면 그 은총을 받는 데는 뭐인가? 받는 방법은 뭐인가? 열매 맺는 거라  그거요. 열매 맺는 것이 그 은총을 받는 방편입니다. 그러면 그 은총을 받지  못하고 멸망받는, 그 은총에서 떨어져서 제가 뭐 일 년을 지내든지 십 년을  지내든지, 몇 십 년을 지내든지, 평생을 지내든지 지내기는 지내지마는 바짝  마른다 그말이오. 말라서 마지막에는 다 불타버린다.

 아무리 택한 자라도 그 행위는 다 불타서, 그말 하지 안했소? '풀과 나무와  짚으로 짓는 것은 다 공로를 시험할 때에 다 불타버리니까 구원은 얻어서 천국은  가지마는 불 가운데 구원 얻은 것과 같다' 고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안했습니까?  그 마지막에는 다 불타버린다 그거요.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의 이 모든 은총을 다 입는 방편이 한 말로 말하면  무엇이며 그 은총에서 떨어져서 멸망하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은총을 입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이소. 크게 소리 해 봐. 자신 있거든 큰 소리로. 예,  은총을 입는 방편이, 대번 그러면 좀 거석해. 은총을 입는 방편이 뭐이요,  본문에 있는 대로? 열매 맺는 것. 은총을 입는 방편이 열매 맺는 거요. 그만  지나가서 초절적으로 대속이라 하면 안 돼.은총을 입는 방편이 열매 맺는 거라.

'열매 맺는 것이 뭐이고?' 이러면 인제 그다음에는 '대속을 입는 것이라' 답이  그래 나가야 된다 그말이오.

 은총을 입는 방편은 열매 맺는 것이요, 하나님 아버지가 끊어버리면 제 어떤  자가 서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그를 열매 맺지 않는 자는  멸망시킨다 말이오. 하나님 아버지의 총력이 그를 멸 한다 이러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불타고 만다.

 그러면 열매 맺는 그것이 아버지의 은총을 입는 유일한, 하나로만 되어 있는  유일한 방편이요 또 하나님 아버지에게 끊김을 받아 멸망을 받는 그 방편이  뭐이냐? 열매 맺지 않은 그것으로써 정해 있는 유일한 방편이라. 그러면 열매  맺는 것이 무엇입니까? 열매 맺는 것이? 예? 이제 '열매 맺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러면 그 답은 '대속을 입는 것이라' 이래야 된다 말이오. 대속을 입는 것이라.

 그러면 사랑 받는 그게 대속 입는 그게 사랑 받는 것이고 대속 받는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사랑을 받는 것이요, 사랑을 보존하는 것이요, 또 그것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라. 서로 사랑한다, 그러면 내 구원과 형제 구원을 이루어 간다  하는 말인데 대속을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속을 받는 것이, 여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대속 받는 게 뭐요? 대속 받는 것이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공로를 벗지 않는 것이 계속 대속을 받는 것이요 또 이것이 내 구원도 되고,  대속을 벗지 않는 이것이 내 구원도 되고, 내 구원만 됩니까? 다른 사람의  구원도 돼.

 스데반이 이 대속을 벗지 아니하니까 뭐 억센 사도 바울이 스데반이 대속 벗지  않는 그것 보고 사도 바울이 꺼꾸러졌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다가 하나님의 그  빛을 보게 된 그것이 둔해서 세상 생각과 바리새 교인 유대 교인의 사상만 가득  차 가지고 있으면 주님의 빛을 못 봅니다. 같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못  봤어. 바울만 봤고 바울만 그 소리를 알았지 다른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몰라.

'아마 날 궂을라고 뇌성하는갑다' 이랬지 몰랐다 그거요.

 그러면 사도 바울의 그 심령이 그렇게 예민해지고 깨끗해지고 아주 그 심령이  밝아져서 그렇게 다른 사람은 다 못 듣는데 주의 음성을 들었고, 다른 사람이 다  빛을 보지 못했는데 주님을 빛을 보게 된 그 사도 바울의 심령을 그렇게 깨끗케  만든 것이 뭐이냐 말이요? 그것이 사도 바울을 구원한 그 구원입니다.

 깨끗케 만든 것이 뭐이 들어서 깨끗케 만들었어? 한번 대답해 봐. 자꾸 그것만  하나 가지고 세우면 만점 되는 것 아니라. 사도 바울의 심령을 뭣이 들어서  깨끗케 만들었소? 그래, 대속을 벗지 안했다고 하면 다 맞기는 맞습니다.

 맞는데, 돌무더기 속에 있으면서도 거기에서도 칭의대로 했다 그거요.

하나님에게 피동된 그것만 했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으로 더불어 동행 하는 것을  벗지 안했기 때문에 '보라, 형제들아. 하늘문이 열렸고 주님이 서셔서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면서 자기는 그들이 그렇게 그래도 하나님 말씀에 위반되는  그런 일 하지 안하고 사죄를 보수했다 말이오.

 보수하고 그 죽음에서도 '이들이 알지 못해 이런 것이니까 그들에게 죄를  정하지 마시고 불쌍히 여겨서 그들을 구원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한 그것이  다 대속을 증거한 것이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이러니까 그 억센 바울이, 사울이 회개를 해서 주님을 믿는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부터 한 오십 년 전에 '이방 개척은 사도 바울, 이방의 사도,  이방 개척 사도 바울이라 이렇게 말할 때에 저는 말하기를 '이방 개척  스데반이라' 이러니까 서로 논리가 모든 교리와 신조에서 알기를 이방 개척은  사도 바울이라 하는데 이방 개척이 스데반이라 이러니까 벌로 듣는 사람은 '사도  바울이 이방의 사도라고 기록했는데 그렇다' 고 세워대고 좀 지혜 있는 사람들은  그말 듣고 깜짝 놀라 '과연 사울이 사도가 된 그 복음을 누가 전했느냐?  돌무더기 속에 있는 스데반이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같이 자기의 전부를 다  기울여서 대속을 벗지 안했고 그 대속을 그들에게 입혀 줬기 때문에 그런 억센  사울이 회개를 했다.' 그렇게 깨닫는 사람은 깨닫는데 또 반대하는 사람은  반대해요. 그래 가지고 그때부터 이단이라는 말이 자꾸 나왔었습니다.

 제가 여기 고려신학교 오기 전에 이단이라는 말이 많이 나와서 시비가 많았어.

시비가 많았지마는 많은 시비 그것이 다 제가 말한 그것이 다 옳았지 틀린 게  없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한편 강도, 그 강도, 구원받은 강도, 그 강도가 그것이 쉽게  그렇게 생각하지마는 그게 내나 순교다' 이러니까 그게 순교라 한다고 신학교서  문제가 나 가지고 많은 문제가 났는데, 뭐 교장이고 뭐이고 다 그거는 아니라고  모두 다, 그때 내가 말하면 그만 어떻게든지 딱 받아 가지고 그걸 문제를 삼아  가지고 여론을 일으킨다 말이오.

 이랬는데 한상동 목사-나는 못 들었는데-한상동 목사님이 거기에 참석해 가지고  있다가서 '그것은 그럴 수가 있다. 그러면 그것은 한편 강도는 모든 구원 얻은  사람의 하나의 상징이고 한편 강도는 멸망받은 사람의 상징인데 그러면 순교자가  구원 얻은 데 안 들고 뭐 어데 들 었겠느냐? 그거 내나 순교자도 그 안에  포함됐다고 그렇게 해석을 할 수가 있다.' 그렇게 말했다 하는데, 그러니까 그  문제는 그만 나중에 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제가 말한 거는 그게 아니오. 사람이 제일 어려운 시험이 무슨 시험이 제일  어려운 시험이냐 하면 죽음이라는 것이 제일 어려운 시험이라. 지금 못박혀서  마구 속에 있는 그 피가 다 나오고 이러니까 그때야 뭐, 뭐이 보입니까?  아무것도 생각하고 보이지 못할 최고로 어려운 때요.

 최고로 어려운 때에, 최고로 어려운 때에 모든 천하가 다 예수님을 정죄해서  천하가 다 배반하고 자기로서는 제일 어려운 때에 자기만은 주님은 구주라 하는  것을 높이 들었고 그분의 나라가 영영히 서 있다는 것을 말했으니까 그 이상  순교자가 어데 있소, 있기를? 여러분들 이해가 됩니까? 그게 뭐 이해가 돼?  예수님이 십자가에 같이 못박혔을 때인데 그때 예수님은 전인류에게 배척을 당한  때요. 멸시와 배척을 당한 때라. 그럴 때에 그분을 누가 구주라 할 사람이 누가  있소?  뭐 왜정 말년에도 보니까 예수님 믿는 것 다 이와 같이 배반하고 이러니까  아무리 시장에 가서 만나도, 모처럼 장로님을 만났고, 뭐 목사님을 만났고,  만나서 반가워서 악수하려고 손을 내면은 이래 가지고 아예 '저 사람은 백  집사는 만나면 악수하니까 이거 참 이거 알지도 못하고 지금 미련하게 저라니까  안 만나야 된다'고. 저 만나면 먼데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달아나 버리고  악수하려 하지 안해. 악수하면 예수 믿는 사람인 줄 알 것이거든. 이렇습디다.

 이런데 천하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데 예수님을 구주라, '나라로 임하실  때에 저를 기억하시옵소서.' 구주라고 그렇게 믿고 찬양하는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이며, 또 자기는 앉아 있으면서 이래 평안 하게 있으면서 했으면  하지마는 십자가에 못박혀 최고의 어려운 말이오.

 최고의 죽음의 최고의 어려운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 어려움을 생각지 안하고  어려움 그 속에서 주님을 증거하고 주님께 자기 구원을 부탁하고 그 나라를  바라봤으니까 그 이상 강한 신앙이 어데 있겠소? 그게 순교 아니고 뭐이냐  그말이요? 껍데기를 가지고 자꾸 모두 이래 하고 있다 그거요.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모든 은총을 입는 것이 열매 맺는 것이요 끊겨지는  것이 열매 맺지 않는 것입니다. 열매가 뭐입니까? 사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죄를 벗으면, 사죄를 벗는 게 뭐이 사죄 벗는 것인가? 그것은 죄를 지으면  사죄를 벗는 것이라 말이오. 죄를 벗으끝 하나님께 버림당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지를 못합니다.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은총은 입지 못하고 예수님의 구속은  벗어났습니다. 영은 안 벗었지마는 육은 벗은 것이 돼.

 또 자기가 칭의를 입고 있는 것은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그분에게 피동되는 것을  벗지 안해야 그것이 칭의를 입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피동되는 것, 예수님께서  모처럼 해서 이와 같이 공로를 베풀어 가지고서 연결시켰는데 이제는 거기서 뚝  떼 가지고 딴데 접을 붙입니다.

 자기에게 피동되고, 물욕에게 피동되고, 어떤 인간에게 피동되고, 어떤  애정에게 피동되고, 정실에 피동되고, 그러면 이제 주님과 떨어진 것 아닙니까?  그것이 대속을 벗는 것이요 주님에게서 끊겨지는 것이라 그거요.

 또 하나님을 사모하지 안하고 딴 걸 사모하면 동행 아니라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회개는 하나님에게 새로 다시 재연결하는 것이요 회개했던  것을 그걸 도로 버리고 다시 개와 도야지 모양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그것은  대속을 다시 벗는 것이라. 벗는 것이 하나님께 끊겨지는 것이라. 그것이 그  결말은 불에 던져서 사뤄지는 것이라. 이러니까 그 대속을 벗지 않는 것이  무엇을 지금 입는 것입니까? 대속을 벗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총애를 입는  것입니다.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계명이 뭐인데? 계명은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니라 사랑이 어떻게 사랑해?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같이  내가 너희들의 구속을 위해서 하심같이 내가 준 구속을 벗지 안하고 이 구속을  네가 입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해서 증거하고 이 구속을 증거하는 그것이  하나님의 총애 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사는 것이라니? 그게 뭐인데?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능력의  보호를 입는 것이요,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소유로 나 위해서 이용되도록  하나님의 모든 소유가 내 구원을 위하여 이용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전 모든  크나 작으나 그 개별 섭리나 모든 섭리는 결국은 내 구원을 위하는 섭리가  되어진다 하는 말입니다.

 이보다 더 큰 게 없지마는 조그만한 지방에 뭐 장관에게도, 또 어떤 나라의  정권자에게도 뻘뻘 떨고 두려울 줄 알지마는, 대통령은 두려워할 줄 알고, 왕은  두려운 줄 알고, 세력 있는 사람은 두려운 줄 알고 지방 장관들에게는 두려워할  줄 알고, 알지마는 하나님은 업신여기는 것은 심령이 어두워 그런 것입니다.

심령이 어두워.

 그분을 참말로 업신여길 만한 그렇게 업신여길 그런 분이 아니시오. 지극히  크신 분이시오. 또 그분의 두려움은 소멸하는 불이라 했어. 불로 태워버리는  불이라 했어.

 너희들이 육체를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육체도 죽이고 그 영도 유황불  구렁텅이에 던지는 그분을 두려워하라. 정말로 두려워할 분을 네가 알아라. 그래  말했어. 왜? 육체의 생명은 빼앗아 봤자 그분이 뭐, 그분이, 주를 위해서 뺏기면  이다음에는 영광스러운 생명으로 당장 살려내니까 무슨 손해입니까?  이러니까 믿는 것은, 시편 1편에서도 그 실행하는 것, 실행하는 데서 세 가지  적이 있고, 실행하는 그것이 뭐이냐?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진액 빨아올리는  거라 그말이오. 진액 빨아올리는 것. 그것이 전능의 은총을 입는 거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제 해산할 때가 됐습니다. 이제는 해산할 때가 됐어. 해산할 때가 됐다  그말은 히스기야 왕과 같이 이제까지는 모든 세계가 안 믿어. 세계가 뭐 안  믿어, 우리도 안 믿고. 하나님을 참 믿을 대로 믿지 안해요.

 믿을 대로 믿지 안하는 이때에 이제 모두가 다 믿으면, 백 명이 다 믿으면 믿는  가치가 적지마는 백 명세 구십구 명이 다 안 믿는데, 구십구 명이 안 믿는데 한  명이 믿으면 가치가 그다 그말이오. 노아가 믿은 그게 그러기 때문에 가치가  커지지 안했습니까?  해산 기약이, 히스기야 왕이 해산할 때가 왔으나 해산할 힘이 없다 말한 것은  '전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불신하고 이렇게 있는데 불신하는 이때에 믿음만 지키면  하나님의 총애를 받을 수 있기는 있는데 이 믿는 힘이 없습니다. 힘을  주옵소서.' 그래 가지고서 전부가 전이스라엘이 다 하나님을 믿지 안하는 그때에  히스기야 왕이 거기에서 믿는 그것이 이제 큰 효력 날 줄 알고 자기가 믿는  믿음을 가질라 하니까 힘이 없는 것을 하나님께 기도해 받아 가지고서 믿었다  말이오. 기도에 성공돼 가지고 믿었어. 믿으니까 십팔만 오천 명이 손 안 대고  다 원수가 죽지 안했습니까?  지금이 그런 때라. 천하가 '내가 을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천하에 믿는 자가 없고 다 입으로 믿고, 말로 믿고, 지식으로 믿고, 믿는다 해도  제가 중심이 돼 가지고 저 위해서 주님을 이용하지 주님에게 이용될라 안 하고,  뭐 무슨 사업해도 그것 다 제 명예 거석 할라고.

 요새는 뭐 편지가 많아, 참 돈 많아. 어떻게 무슨 편지니 이런 뭐, 그림 그린  것 그것 뭐꼬? 광고지니 막 들이 오는데 그것 하나 하려면 돈이 상당히 많을  것이고 교회마다 보내려면 굉장할 것인데 그걸 들여다보면 전부 복음 운동이라  말해 놓고서, 복음 운동이면 하나 복음 운동에 거기 들어가 가지고서 그만 그걸  자꾸 하면 될 터인데 제가 복음 운동이라고 또 하나 내가지고서 또, 내가지고 뭐  회장이니 뭐이니 했는데 가서 살펴보면 사람 몇이나 있느냐 하면 서로 한 댓이  앉아 가지고 '너는 회장 해라. 나는 총무 하고 뭐 하고' 저거끼리 이러니까 전부  자기 높일라는 그것이라 말이오.

 말세가 되어 갈수록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존귀케 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하는 대로 전부 자기중심이라. 이 세대가 악하니 네가 모든  현실이라는 그 시간을 뺏기지 안하도록 노력을 해라 보니까 속에 알맹이 그거라.

집어뜯어 버립니다. 누가 네까짓 거 찬양해 줄까 자꾸 요렇게 해 가지고 나를  알아 달라고 해 가지고, 똑 이 세상에서 말하기를 뭘 국회의원 나고 뭐 나온다고  광고를 해 가지고 없는 걸 자기를 과장해 떠들어 이래 가지고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사람들은 자기의 단점을 보고 자꾸 이렇게 겸손히 이라는 그것이 사람이고,  단점 보고 살고, 단점 보고 행동하고, 단점 보고 고쳐 나가는 그것이 사람인데  이제 없는 장점까지 만들어 가지고 자꾸 광고해서 선포할라 하니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요, 수치스러운 일입니 까?  이렇게 모두 안 믿는 세대가 점점 돼서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 냐'  말씀했는데 이제 믿음에 대세월이 나서 믿음의 가치가 굉장히 폭등될 때가  왔습니다. 굉장히 폭등될 때가 왔어. 이제 믿어 놓으면 굉장한 폭등이 와.

믿음의 가치가 끝장히 폭등이 돼 가지고서 믿음의 효력이 핑장할 거라. 주님이  어데 둘둘 돌아다니며 어데 믿는 자를 찾아. 믿는 자 찾으면 거기다 막 다  기울이실 거라.

 이러니까 믿음이 이깁니다. 믿음 아니면 세상을 이길 자가 없어. 마지막에  승리의 점령을 뭘 합니까? 믿음이 하요. 세상 지식 그런 것 가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의 지식은 한없어. 그까짓 거 요래 꾸미고 조래 꾸며 가지고 뭐  조직해 놓으면 그것 구경하면 불교도 거기 들어가면 평생 못 돌아나옵니다.

호호막막하요. 그걸 가리켜서 무저갱이라. 밑구멍이 없는 구멍이라. 그걸 사탄의  깊은 것이라 했어.

 이러니까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고 기울이고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면 구원이  잘 될라 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요.

 공부 그것 하려거든 말하는 대로 다른 독서보다 성경 독서를 많이 하면 성경이  항상 주인공이 되고 다른 건 소속이 됐으면 하지만 제가 다른 공부는 두 시간  해도 성경 공부는 한 시간도 안 합니다. 성경 모두 다른 것을, 일생 동안 살면  다른 걸 연구하는 데에 다른 걸 배우는 데에 전부 기운 다 기울였지 성경 읽는  데에 기울이지를 안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저 뭐 가진 게 그것뿐이니까 내놓을 게 뭐 있어야지? 내놓을 게  없으니까 공부 많이 한 사람들, '이 원서에 이렇고, 뭐 혤라어에 이렇고,  히브리어에 이렇고, 뭘 어떻고' 그거 내놔야 되는 줄 알고. 그것 모르는 사람은  '아이구, 저 사람 유식하다.' 하지마는 그것을 다 아는 사람은 '마귀 소리  엔간히 하고 말아라.' 우리 한국 말도 다 있으니까 히브리어로 개라 하는 것이나  한국 말로 개라 하는 것이나 개를 개로 알았으면 되는 것이지 그뭐 '이 지방  말로 이래 한다 저 지방 말로 이래 한다' 그것 많이 알면 뭣 할 것이요?  이러니까 어리석지를 말고 하나님 앞에 겸손해요. 겸손이 뭐이냐? 하나님을  높이는 자가 겸손이고, 교만한 자가 뭐냐? 하나님을 멸시하고 다른 것을 높이는  것이 그것이 교만입니다. 그것이 모든 것을 바로 모르는 만물 무식이오. 모든  존재에 무식한 것입니다.

     권찰님 구역에 초상이 났는데 여덟시까지 교회로 오면 참석할 수가  있습니다. 또 십 분 기도 후에 사층에서 권찰회 있습니다. 또 비가 와도 못 빼기  같은 것 할 터이니까 이런 날 와서 봉사해서 빨리 이것 다 정리하고, 또 그  현장에서도 어서 어서 준공 검사가 나도록 해 가지고서 그래 하도록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돈 들이지 말고 준공 검사하는 데만 들여 가지고 그것만 빨리  해요. 빨리 해 준공 검사를 마치고 하면 모든 것이 정리가 됩니다.

 이러니까 사죄 칭의 화친, 여기에 다 매였어요. 여기에 다 매였어. 이것 벗으면  헛일이라. 이걸 평생 죽도록 연구해도 알 대로 안 자가 없어. 언제 딴것 할 여가  어데 있어, 있기를?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무슨 '야, 미국에 유학을 가거라. 돈도 대 주고 다 되게  되니까 유학을 가거라.' 시간이 없다고 안 갈라 해. 그런 사람들 많애. 일등  모두 천재적인 재주를 가지고도 그래 할 여가 없고 지금 성경 하나면 족하다  하고 안 갈라 하는 사람들 많애.

 다 알고 살아야 됩니다. 성도면 성도입니까? 믿는 사람이면 믿는 사람입니까?  믿는 사람이라야 믿는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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