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각오

 

1980. 3. 13. 목새

 

본문: 요일 3: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모든 사망과 고통과 불행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시고 마지막에 생명까지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셔서 우리를 사망에서 해방시켰고 또 모든 고통과 불행에서 해방시켰습니다.

또 우리를 생명과 평강과 영원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생명까지 버려 이 공로를  설정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과 우리와에 원수 된 이것을 해결 짓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대신  예수님을 원수로 삼으시되 저주의 사망까지 우리를 대신해서 원수풀이를  하셨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하시고 생명의 끊쳐지는 데까지 우리  대신 원수에게 하는 일을 하나님이 주님에게 하셔도 주님은 죽는 그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배반치 아니하시고 하나님에게 화평으로 끝을, 화목으로 끝을 마쳐  화목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에게 기본구원을 주셨습니다.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화친한 자로 얻을 것은 누릴 것은 또 거처할 거주는 다 법적으로 얻어  놓았고 실질적으로 얻어 놓았습니다.

 하늘에 것과 땅에 것을 예수님의 공로로 대속의 공로로 다 우리 것이  되었습니다. 있는 것 다하고 마지막 생명이 다하기까지 하셔서 이 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법적으로는 기본적으로는 이런 것들이 다 우리의 것이 이미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것 된 그것을 얼마나 누릴 수 있는 실력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는 태양은 하나뿐이지마는 우리 사람이란 사람은 이 태양에 혜택은  누구나 다 자기 것이 되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는 누구나 다 이 태양의  혜택이라는 것은 다 자기 것이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창조하신 모든 것에 대한 혜택도 필요성도 다 자기 것이 된 것입니다.

 태양의 혜택이 다 자기 것이 된 거와 같이 자기 것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실력에 따라서 자기가 태양의 혜택을 얼마든지 받아도 태양이 그  혜택을 주지 아니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실력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하루종일 햇빛을 하나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태양의 혜택이 자기를 자기에게 주지 않을려고  해서 그런 것 아니고 자기의 이유로서 하루종일 어떤 사람은 일년을 가도 태양의  혜택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햇빛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그마한 구멍으로 비쳐오는 그 태양의 혜택을 받는 정도의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수십 평의 태양혜택을 받는 사람도 있고 수만 평의 태양의  혜택을 받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온 전국에 태양의 혜택을 받는 그 혜택이  다 자기 것이 되어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큰 나라를 차지한 왕이라면 그 나라의 태양의 혜택이 있는 그 모든  혜택은 다 자기의 것이 되겠고 그 나라의 태양의 혜택이 만일 없었다면 그 없는  재앙은 전부 자기의 재앙이 될 것입니다.

 어떤 대지주가 수천만 평의 농장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수천만 평의  태양의 혜택을 저는 받는 사람입니다.

 셋방 하나를 얻었지마는 하루종일 햇빛이라는 것이 조그만 틈으로 잠깐 비치고  말고, 또 일하러 가서는 햇빛 없는 데서 하루 종일 대접받고 직접적으로 태양의  혜택을 적게 받고 많이 받고 크게 받고 또 이뿐만 아니라 태양의 혜택을 받아  가지고 성장되고 생산된 모든 물품 어떤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가 누려 사용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근근히 안 죽을 만치 태양으로 말미암아 생산된 것에 혜택을  빈약하게 맛보고 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태양이 달라 그런 것 아니고 자기 자신이 달라서 그런 것입니다. 자신의  실력이 어떤 사람은 심히 빈약하고 어떤 사람은 실력이 많고 자기 고장과 자기의  유력으로 햇빛의 혜택을 많이 입고 적게 입게 되는 것이지 햇빛이 자기에게 많이  주고 적게 줄라고 해서 하는 것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은 예수님이 나를 이것을 다  우리 것을 만들어 사망을 면하고 생명과 쾌락 안에서 영생하도록 하기 위해서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하셔서 다 드렸다는 것입니다. 생명 다 드렸으니까 당신의  것 다 드렸습니다.

 이래서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이미 이것은 우리 것이 다 되어있습니다.

되어있으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 생활하는 여하에 따라 자체의 성화 실력,  변화 실력, 자체됨에 따라서 이것을 일년 내 햇빛 못 보는 사람처럼 주님이  이렇게 우리 것을 만들어 주셨지마는 이것에 혜택을 입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지극히 적게 입는 사람도 있고 전부를 다 입어 모든 피조물들에게 얼마든지  풍성하게 줄 수 있는 이런 사람도 있어 이것은 자체의 실력여하에 기인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장래를 두고 우리들은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셔서  우리 것을 만들어 놓은 이것을 우리 것 안돼서 우리 것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고  우리 것 되어 있는데 이것이 되어있지마는 실력 없으면 하나도 누리지 못합니다.

이것을 우리 것으로 누릴 수 있는 실력을 마련키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마치 바다에 있는 고기가 바닷물 다 차지할려고 하면 다 차지합니다. 이미 제것  되어있습니다. 바다 속에 있습니다마는 제 실력에 따라서 어떤 고기는 한 평을  열 평을 백 평을 천 평을 만 평을, 어떤 고기는 태평양을 다 제집으로 삼아서  일년에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마음대로 하나 어떤 것은 거기 적이 있기  때문에 가지를 못하는 것처럼 바다가 제것 되어있지마는 제 실력에 따라서  누리고 또 자의 활무대를 삼는 것처럼 이러한 무궁세계를 향하여 가는 우리들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무궁세계에서 자기는 예수님이 대속하셔서 우리를 이  생명과 평강과 무한히 부요의 세계로 옮겨 주셨는데 내가 얼마나 이것을 누릴 수  있는, 관리할 수 있는, 접촉할 수 있는 자가 되느냐 하는 실력을 .

 유일한 방편은 주님이 이 모든 것을 날 위해 주시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우리도 주님이 이제 이것을 누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방편에  순종하기를 목숨을 다해서 순종했으면 이것을 누릴 수 있는 실력이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가 세상에서 주를 위해서 나도 희생하고 손해보고  어려움을 당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것을 누릴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하는 실력을 연단 하는 유일한  방편이 되는 이 방편을 내가 취함으로, 취함으로 그만한 실력이 있어지는 것인데  이것을 취하는 데에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날 위해서 죽으셨으니 내가 그 공로를 갚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  공로를 누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이 주신 이것을 누리는 실력을 갖추는 유일한  방법 이것을 갖추는 방법이 열 스물 서른이 있는 것 아니고 갖추는 방편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밖에 없는데 그 방편이 뭔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이 하나로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다 내어놓으심  같이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모든 걸 다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주님이  베풀어 놓으신 이것들을 누릴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경우에 자기에게 무엇이 손해가게 될 때에 그 길은 그 공로는 그  역사는 그 의는 자기가 자본이 많이 들기 때문에 못하겠다고 후퇴하면 거기에서  누릴 수 있는 실력의 자람은 중단됩니다.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에 가다가 길이  막혔으니까 전진하지 못했으니까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으니까 거기서부터 주를  위하지 아니한 것들이기 때문에 주를 위하는 것이 거기서 끝났기 때문에 그는  누릴만한 실력이 그게 다 죄라면 죄, 의라면 의, 하나님과에 원수냐 화평이냐  하는 관계라는 관계인데 거기까지 죄를 이기고 못 이겼으면 거기까지 의를  행하고 못 행했으면 거기까지 하나님과의 화평을 가지고 그 이상 못했다면  자기의 실력은 거기서부터 중단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그 방편대로 주신 그 방편을  우리도 다해서 그것을 이루어야 되겠는데 주님이 원하시는 주를 사랑하는 방편이  주님이 정해 논 것이 있고 또 주님이 주신 모든 것을 누리는 시력을 갖추는 것이  정해 논 것이 있는데 그 정한 것이 주님의 뜻대로 어떤 사적으로 정함이 아니고  주님의 뜻 곧 참된 이치대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그 정하신 방편을 주님도  변개는 못합니다. 그 외에 다른 방편이 없습니다. 왜 참된 이치대로 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그 이치는 무엇인가? 다른 각도로 주님을 사랑하고 위할 수 있는 각도가  있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는데 하나만 정했습니다. 뭐이냐?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같이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여 행하는 이것 하나만이 방편으로  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땅위에서 주님이 주시는 그것을 누리는 방편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수 있는 이런 실력을 가져  이 일을 함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인데 주님이 우리의 것으로 다 만들어 놓으신  이것을 강제 사용이 아니고 이것을 사랑으로 사용하는 것인데 이것을 위하여  나도 남은 것이 없이 다 있는 것을 다 드려서라도 이것들을 사랑하고 이것을  위하는 이 일이 변개 없이 이것들을 위하여 다 투자할 수 있는 여기까지의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이 주신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이 방편을 정하신 이것 때문에 세상에서 하나의 시험으로  사람을 위하여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을 사랑함으로 목숨을 버리는 이  방편을 주님이 주시고 시킬 때에 보는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의 전부를  버릴 수 있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버려 주님이 나를 위해서 버린 그 주님을  위하는 방편이 형제를 위한 것 밖에는 없기 때문에 형제를 위하는 그 방편으로  모든 것을 다 희생할 수 있는 사랑에 도달했으면 인간밖에 있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 그것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실력 가진 자,  주님화 된 자, 주와 같은 자, 주를 능히 계대할 수 있는 자, 주의 위치와 직책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자, 주님과 이렇게 연결되어 하나되어 주님의 지체가 된 자  되었기 때문에 그 다음 것은 다 되는 고로 우리가 지금 사람에게 대해서 어떻게  하니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어떻게 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숨을 버려야 되는 우리의 구원 우리의 구원의 절정은 완성은  목숨을 버려야 하는 이 사실을 깨닫고 이 깨달음에서 여기서 입각해서 이  깨달음에서 또 이 각오에서 또 이 목표에서 이 방편에서 우리는 살아야만 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표준이 어딘가? 우리의 표준은 목숨을 버리는 이 기점에서 이 출발에서  목숨을 다 버린 종착을 이 사이에서 목숨을 버리는 이 일로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는 것이 우리 기독자의 걸음이다.

 그러므로 내가 출발한 곳도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를 위하여 주를 위하는 방편이  우리가 주님을 공상으로 위할 수 없어 주를 위하는 것이 형제를 위하는 것으로  주를 위하는 것으로 주님이 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주의 구속하신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춘 것이요 당신이  죽기까지 하신 그 구속의 선물을 내가 버리지 아니하고 잘 보존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를 사랑함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그 소원대로의 형제를  사랑함으로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려야 될 자로 목숨을 버릴 이 출발점에서  목숨을 버려야 하는 이 출발점에서 목숨을 버릴 이 출발에서 목숨을 버린 다  바친 이 목표를 향하여 목숨을 버리는 이 한 자국 한 자국으로 다 버리는 데에  종착해야 될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하에 것은 의례히 최고에는 목숨을 버리니까 그 이하에 것은  의례히 버려야만 주를 위해서 바쳐야만 다시 말하면 주를 위해서 써야만 할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기준을 여기다 두고 우리가 표준을 여기다 두고 우리의 방편을 여기다  두고 살므로 있는 힘을 다해서 피곤하게 하고도 주님을 대할 때에 무릎을 꿇을  때에 나는 불충한 무익한 종인 것을 깨달아 모든 피곤이 물러가고 권태가  물러가고 오만이 물러가고 교만이 물러가고 다시 빚진 자요 죄인으로 다시  복구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지막 순교할 때까지 순교를 하면서도 빚진 자로 왜? 주님이 나 위해서  하신 그대로에 주님이 요구하셨는데 이것을 기준하고 표준하고 이 방편을 자기  전 생애의 방편으로 기점으로 종착으로 표준으로 기준으로 이렇게 사는 여기에서  다 무익한 자기인 것을 깨닫고 죄인인 것을 깨닫고 형제들에게 대해서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빚진 자인 것을 깨닫고 피곤치 아니하고 낙심되지 아니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공로의 설정의 선물을 감사히 받는  방편이요 이것을 받아서 내가 팽개치지 않고 내가 누릴 수 있는 자기의 단속과  준비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 주를 위해서 "냉수 한 그릇의 수고도 결단코  헛되지 않다"고 말씀하신 것은 무궁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그 실력을 갖춤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받는 고난과 장차 받을 영광은 못한다 작은  희생에서 큰 것을 누리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속지를 말고 우리는 내가 주를 위해서 수고를 해야 된다는  그것이 우리의 기준이 아닙니다. 주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바치고 산다는  그것이 기준이 아닙니다.

 주를 위해서 다해서 마지막 목숨까지 바쳐야 하는 것이 우리의 표준이요 우리의  기준이요 우리에게 대한 구속받은 법리입니다. 또 이것이 이미 받은 것 갖기  위함이 알고 받은 이것 누리는 실력 갖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는 것이 아니요  사는 것이요 빼앗기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얻는 것이요 이것이 지는 것이 아니고  이기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온갖 억울, 온갖 애매, 온갖 애매의 정죄, 죽는  날까지 사람들에게 그렇게 오해 곡해 받아도 그것을 주를 생각하고 참고 가는  것, 성도들이 다 그것 때문입니다.

 제가 부산 와 가지고 두 가지 마음에 가책된다는 그것도 이 점에 기준해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인데도 이 점에 기준해서 그것을 말하는 그 죄입니다. 일반  세상에서는 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어제 어디를 지나가다가 거기에  관련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반갑게 저에게 인사를 할 때 나는 그  수천만의 선물 돈 가지고는 안되고 그런 선물을 받는 것보다 더 기쁨이 됩니다.

 우리는 이 기준에서 살아야 됩니다. 이 빚진 데에서 살아야 되고 이 사명감에서  이 표준에서 이 종착까지 이 방편으로 달려야 하는 큰 구속을 받은  우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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