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성령,진리로 사는 생활


선지자선교회 1983년 10월 27일 목새

 

본문 : 딤후 4:15-18 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해석하기를 "내 피는 참된 음료요 내 살은 참된 양식이라"  말씀했습니다. "나를 먹는 자는" 그말은 주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주님과 연결된  양식으로. 영감의 양식으로, 진리의 양식으로 먹는 걸 말합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주님의 피공로를 생각하고 믿을 때에 우리는 영감과 진리의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피공로는 세 가지인데 하나는 성경에 위반된 그런 모든 자기의 행위를  예수님의 공로에 고해서 사함받고 주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것이 사죄의 공로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죄의 공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죄의 공로를 얼마나 나타낼건가? 우리는 사죄의 공로를  나타내다가 죽을 자들입니다. 죽기까지 죄를 대적해야 될 자요, 죽기까지 죄를  대적한다 말은 죽기까지 하나님 말씀을 어기지 안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쓴다는  말입니다. 죄는 하나님 말씀을 어기는 것이 죄요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  죄입니다.

 죄의 문제에서 죽기까지 노력하고. 의는 하나님으로 피동되어 사는 것이 그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사는 것이 의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려고 애를 쓰는 그 애를 죽기까지 우리는 써야 합니다. 있는 것 다해서  힘쓰고 마지막 죽을 때도 하나님으로 피동된 그 죽음으로 끝을 마치는 것이  완성이요 성공입니다.

 하나는 화친인데 하나님으로 더불어 동행하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안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동행하는.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을 따라 사는 그것이 화친의  대속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못 한 것은 주님의 공로에 고해 가지고 즉시 사함 받아야  됩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나는 주님을 배반한 일이 있다' 하고 깨달으면 즉시  '배반하였사오니 사유해 주옵소서' 하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동행해야 되지  자기가 '주님을 배반했다. 내가 주님에게 피동되지 안하고 내 마음대로 살았다  성경 말씀을 어겼다' 하는 그것을 어떻게 가슴 아프게 앓는다 할지라도 앓는  그것만은 사망입니다. 어떻게 후회하고 눈물을 흘려도 그것만은 사망입니다.

 그것은 아는 것으로 족합니다. 왜? 울기는 거기에서 울 시간이 없습니다.

거기에서 울 때에는 주님의 공로와 상관없기 때문에 죽음의 종이 되어서 죽음의  일을 계속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즉시 잘못된 것은 주의 공로에 즉시 사함받고 즉시 주님의  공로를 입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공로를 입고 그대로 행하려고  눈물 흘리고 그대로 행하려고 고통하고 그대로 행하려고 힘쓰는 그것은 삶에  속했습니다.

 이렇게 할 때에 이것이 곧 뭐인가? 이것이 영감이요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렇게  살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진리와 함께하는 진리대로 사는  것이요 진리의 사람이 된 것이요 또 영감 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요 영감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를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말씀하신 대로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생활. 주님 벗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생활 곧 영감과 진리로 우리는 움직여야 됩니다. 영감과 진리로 우리는  마음도 움직여야 되고, 생각도 움직여야 되고 또 소원도 움직여야 되고 모든  것은 진리와 영감대로 움직여야 됩니다.

 진리와 영감대로 움직여서. 내가 어떤 돈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일도 되지 않고.

어떤 사람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일도 되지 않고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일도 되지 않고 세상에 무엇으로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일이 되지  안하도록 우리는 힘쓰고 연습 해야 됩니다. 이것은 대번에 되는 것 아니고 힘써  연습을 함으로 됩니다. 이것이 경건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직까지 미완성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움직여지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여지는 것이 뭐이냐? 영감으로  움직여지는 것이요 진리로 움직여지는 것인데,   '성경이 이렇게 했으니 내가 이래야 되겠다' 하는 것은 진리로 움직여지는  것이요. 자기 속에 주님을 사모하고 바라보고 사랑하고 그 분에게 모든 것이  주권되어 있는 것을 자기가 인식할 때에 '주님이 나를 이끄시는 대로 내가  살아야 되겠다' 주님이 이끄심이 무엇이냐 하는 그것이 영감입니다. 영감은  '주님이 이렇게 이끄신다' 하는 것을 자기가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영감을 지은 사람이요 영감으로 사는 자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것을 연습해야 됩니다. 뭐 아무리 바쁠 때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일하면서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면 폐지해야  되겠습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임이 아닌지 그런지 무엇을 보고 알 건가? 주님이  허락하신 진리의 말씀에 맞으면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이는 것이고 또 자기 속에  옳은 마음 양심. 양심을 가지고 생각할 때에 주의 진리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그것이 양심입니다. 양심으로 자기가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할 때에 양심보다  확실히 밝은 그 감동이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양심으로 '아 이것은' 양심은 나타난 문서계시 나타난 성경 말씀대로  하려고 하는 그게 양심입니다. 영감은 그것이 아니고 성경 말씀대로 하려고 자기  주관으로 애를 쓰다가 보니까 안에서 성경 말씀대로 해야 된다는 그 능력이  나오고 생각이 나오고 그 마음이 나옵니다. 그 마음이 나오면 그 마음이 자기  마음이나 성신에 감동된 영감의 마음입니다.

 이래서 영감의 마음이면 뭐 모든 것 다 생각 말고 죽도록 힘써야 할 것이고  영감의 진리의 마음이 아니면 우리는 그것을 또 버리고 회개해야 되고, 예수님의  피공로가 있는 데는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 하시기를 하루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잘못된 것을 깨닫고 회개하면 사해 주라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무나따나 이런 죄를 자꾸 짓고 무심히 하는 그것 은 양심이  화인 맞은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고 우리는 깨끗하게 살려고 해도 또 깨닫고  보니까 깨끗하다고 한 것이 또 더럽고 또 더러운 것을 또 주님 앞에 고해서  사함받고 또 더 깨끗하게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깨끗하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이다.' 이랬는데 또 보니까 그것이 어느 요소가 또 잘못됐습니다. 그걸 또  고해 사함받습니다.

 그러기에 잘못된 것을 깨닫는 것도 번개같이 빨라야 되고 잘못된 것을 깨달았을  때에 주님 앞에 사유함을 받는 것도 번개같이 빨라야 되고. 주님의 공로를  힘입어서 영감과 진리로 옳은 것을 잡고 일어 서는 것도 번개같이 빨라야  됩니다.

 그런데 일어선 것은 계속하는 것이 좋지마는 자기가 잘못된 것을 깨닫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가지고 울거나 하는 그런 것은 번개같이 빨리 지나갈 일이지 그  자리에 머물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든 생애에서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산 것은 다  영생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살도록 우리가 연습해야  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이 뭐인가? 껍데기는 진리로 인해서 진리기  때문에 '내가 진리기 때문에 행한다' 진리로 인하여 사는 것이요, 진리로 인하여  사는 그것의 속에 '이게 옳다 이는 죽어도 해야 될 거다 이가 바르고 참되다.'  확신 있고 담대함이 자기에게 올 때에 그것이 뭐이냐? 영감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은 진리로 인함이요 영감으로 인함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자체는. 우리 자체는 주님으로 인한 생활 곧 영감으로 인한  이것으로써 우리 자체는 이루어지는 것이 이것이 성화입니다. 이것이 새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일을 연습해서 우리 자신이 움직임은 이렇게 움직이고  이렇게 움직여 사는 우리에게 내 몸 밖에서 무엇을 닥칩니다. 내 몸 밖에 사건도  닥치고 사람도 닥치고, 물건도 닥치고, 여러가지 난처한 일도 닥치고 그런  일들이 우리 몸 밖에 닥칩니다.

 닥칠 그때에 제일 평안하게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주님으로 인한 곧  영감과 진리로 사는 자에게 영감과 진리로 사는 자에게 자기 몸 밖에 어떤  사람이나 만물이나 사건 이나 무슨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나 어려운 일이나  원수나 사랑하는 자나 이래 부딪혀 옵니다. 닥쳐 옵니다.

 그럴 때에 내가 주님과 영감과 진리 이 셋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성령과 물과  피" 하는 것은 곧 성령과 진리와 예수님의 공로를 말 하는 것입니다. '이 셋이  증거한다' 하는 것은 이 셋이 내 속에서 나에게 증거해 가지고 내가 이 증거를  받아서 이 증거로 충만해서 주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한 영감과 진리의 내가 되어  있으면, 내가 되어 있으면 내가 되어 있는 내가 내 몸 밖에 어떤 것이라도  대합니다. 요것이 제일 안전한 생활이요 평안한 생활입니다,  그럴 때에 내 몸 밖에 있는 그 모든 것을 대할 때에는 그것이 다 나에게 면류관  주는 것이요, 보좌를 주는 것이요. 승리를 주는 것이 요 나를 위하는 것이  되어지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유유함이 나오고 거기에 대해서 참 큰 성화가  왔고 큰 축복이 왔기 때문에 마치 물질주의자가 돈이 오니까 기뻐하는 거와 같이  그렇게 우리 마음이 기뻐집니다.

 물질주의자는 물질이 왔으니까 기뻐하겠고. 권세를 찾는 자는 권세가 자기에게  닥치니까 기뻐하겠고 행락을 원하는 자는 행락이 자기에게 부딪혔으니까  기뻐하겠고, 못된 더러운 욕심을 가진 자는 그 욕심이 성사가 되어지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하나,  진리로 성령으로 중생된 우리들은 영감으로 진리로 자체가 움직이고 지금 살고  있는데 자기 몸 밖에 어려운 일이나 쉬운 일이나 어떤 것이 보이고 상대됩니다.

닥쳐집니다. 닥쳐질 때에는 마치 세상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세상 이런 것 저런  것 오니까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처럼 우리도 기쁘고 즐거워집니다.

 어떤 사람은 공산주의의 독침이 오면 심히 기절하는데 진리와 영감으로 사는  사람은 독침이 오면 심히 기뻐하기를 장사꾼이 횡재수가 오니까 기뻐하는 것처럼  권세를 탐하는 자가 자기에게 큰 권세의 지위를 대통령이 임명하면  기쁘겠습니다. 그런 거와 같은 그런 기쁨을 우리가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주님으로 인한 영감과 진리로 자기가 사는 자에게는 세상에서 어떤  일이 부딪히든지 그 일에는 자기는 욕기가 생겨지고 기 쁘고 즐겁고 마치 자기가  소원하는 무엇이 부딪힌 거와 같은 그런 기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것이  제일 평안한 생활이요 제일 행복된 생활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하도록 연습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연습해서 자체가 진리화 영감화 그리스도의 구속화 되어 있을  때에는 어떤 세상이든지 세상을 대할 때에 그 세상은 나에게 밥입니다. 그  세상은 나에게 보배입니다. 그 세상은 나를 위하는 필요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를 대할 때에 기쁘고 즐겁습니다. 요것이 제일 좋습니다.

 왜정 말년에도 신사참배 때에 그 신사참배에 대해서 두렵지 안하고 기쁘고  즐겁게 평안하게 아무런 다른 별 마찰도 없이 마찰이 있지마는 제삼자가 볼 때에  마찰이지 본인에게는 마찰이 아닙니다. 본인에게는 마찰이 안 된 기쁘고 즐겁고  평안한 승리를 가지게 되고 6·25 때도 그렇게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고로 요렇게 사는 것이 제일 안정한 생활이요 평안한 생활이요 복된  생활입니다. 그러면 이 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연습해야 됩니다.

 우리는 평소에 지극히 작은 사소한 일에서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언제든지 일을  해도 자기는 이거 믿음으로 하지 안하면 죄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안하면 죄라  말은 순종으로 안 하면 죄입니다. 그 공장에 일을 하면서도 자기가 깨닫고 보면,  나는 이 일을 안하고 내가 지금 전도하러 가겠느냐, 기도하러 가겠느냐, 내가  어떻게 돌아다니며 설교하겠다고 하겠느냐? 요거는 지금 나로서는 요 일을  함으로 요 일을 함으로 내 의무와 책임을 감당하게 되고. 내 본분을 행하게 되고  가족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우리 교회적으로 내 의무와 책임을 감당하게 된다.

 내가 이것을 하지 안하고 달리 돌아다니면 내가 폐단을 일으키는 사람으로  "일하가 싫은 자는 먹지도 말아라" 죽어라 한 거와 마찬가지로 내가 그래  하나님이 그걸 시켜 가지고 그래 다녀 가지고 일을 할 것 같으면 하지마는 나는  그 일 아니고 이 일을 해서 이 일을 함으로 내가 널리 전파하지는 못하니까 내  빛이 작으니까 내가 같이 일하는 단둘이 일하는 이 사람에게 빛을 보이고 몇  사람이 일하는 여기에서 빛을 보이고 이걸 이래 가지고 가정을 알뜰히 꾸려서  다른 사람에게 '참 저 예수 믿는 가정은 부럽다' 할 수 있는 가정으로 꾸며  나가고 또 이래 가지고 나는 십일조를 드려서 교회의 이 복음 운동을 유지하도록  하고 내가 이럴 때에는 또 암만 감사하지마는 마음에 있다 할지라도 감사 연보할  돈이 없으면 안 되는데 감사 연보도 하고 이렇게 해서 내 정도의 신앙생활은 요  평신도의 신앙생활로 요렇게 하는 것이 내 지위요 내 위치요 내 분수니까 이  생활하는 것은 이것은 주님이 시키시는 나로 지킬 믿음 생활이다 주로 인하여  사는 생활이다. 이런데 여기에서 내가 게을하기 위해서 외식을 해서 영감대로  살지 안하고 영감대로 이 일을 하지 안하면 나는 여기에서 요게 죄가 되겠다.

여기에서도 요 일을 하면서 진리를 어기고 하면 죄가 되겠다. 여기에서 요 일을  하면서 내가 돈 보고 하면은 죄가 되겠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 보고 내가 이래야  우리 가족 생활이 되어지고 이래야 하나님에게 예수 믿는 가정이라 영광을  돌리게 될 터이니까 나는 실은 온 가족이 예수 잘 믿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가정으로 빛을 보이기 위해서 모든 직공에게 빛을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 요는 분명히 하나님이 나에게 세워 주신 요 일이기 때문에 요 일을  하면서 주님 잊어버리지 안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감동으로,  내나 그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을 하면서도 성신의 감동으로 하면 옆에 사람이  감동을 받을 것이요, 그 일을 하면서도 자기가 물질로 인하여 하면은 옆에  사람이 물질로 인하여 하는 것을 분명히 알 것이요 또 그 일을 하면서도 자기  이기주의로 하면 이기주의로 하는 것을 옆에 사람이 분명히 볼 것이요. 또 그  일을 하면서도 옆에 사람을 훼방하며 하면서 훼방하면서 하는 것도 볼 것이요.

또 그 일을 하면서도 양심으로 하면 양심으로 하는 것도 볼 것이요, 보입니다.

다 보입니다. 영감으로 진리로 그와 같이 자기가 하면서 이 일은 내가 곧 주를  섬기는 것이요, 내가 사는 영감 생활이요. 진리 생활이라는 것을 자기가 확신을  가지고 그런 줄을 알고 이것이 믿음인 줄을 알고 살 때에 그것이 의가 되어지지  이런 깨달음을 가지지 안하고 믿음으로 살지 안하면 모두 다 죄라 이랬습니다.

 "믿음으로 행하지 안한 것은 다 죄라" 무엇이든지 밥 먹는 것이든지 일하는  것이든지, 자는 것이든지 무엇이든지 노는 것이든지. 심지어 부부 생활이라도  믿음으로 하지 안하면 죄라 이랬습니다. 믿음으로 다 하나님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를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네가 그 부부로서는 악령이 틈탈 수 있는 그 정욕이 불과 같이 일어날 때에  그때에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고 너희들이 분방하지 말고 같이 거처해라. 부부  같이 거처해라 그러나 할 수 있는 대로 둘이 의논해 가지고 연습을 해서 '우리는  사흘 동안 부부 생활 말고 분방해 가지고 좀 기도 생활해 봅시다' 의논하고,  연습해서 일주일도 하고. 또 될 상바르면 또 연습해서 한 달도 하고. 또  연습해서 석 달도 하고, 또 일 년도 하고 삼 년도 하고. 사 년도 하고, 이떻게  연습해서 모든 더러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죽여야 할, 지체의 정욕  생활을 발달시킬 것이 아니라 이 정욕 생활을 점점 이것을 약화시켜 가지고 이제  거기에 유혹을 전연히 받지 안하고 악령이 아무리 와서 꾀워도 그것으로써 나를  틈타지 못하도록 하는 이 일을 달성하는 이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우리들이  그런 면으로서는 할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이 영감과 진리로 주님으로 인하여 사는 생활을 자꾸  연습해야 됩니다. 연습해 가지고 6·25가 오니까 빨리 와 가지고 '아이구 조사님  이거 어째야 되겠습니까?' 그때 내가 고려 신학교 있을 때에 찾아온 걸 알지?  잊어버렸지? 안 잊어버렸어? 안 잊어버렸어?  6·25가 왔다 하니까 ○○○집사님하고 ○○○집사님하고 둘이 찾아왔어. '자  일이 났으니 어떻게 해야 됩니까?' 찾아왔기 때문에 그때 내가 권유하는 말을  권유를 해 주고 '그래 그러면 자기네들은 여기 부산 벌써 와서 있으니까 여기  있으라. 나는 지금 인민군들이 점령한 그 본 교회로 돌아가겠다' 해 가지고 그때  가다가 인민군에게 막혀 가지고 가면서 좀 힘이 들었습니다. 아 막히지는  안했어. 막히지는 안하고 좀 힘이 들었으나 가기는 갔습니다. 갔는데 무엇  때문에 막혔느냐 하면 미군들이 후퇴하고 국군들이 후퇴해 내려 오는 그 바람에  가는 길이 막혀서 참 어려웠습니다.

 가 가지고 거기에 가서 일주일 동안 다시 교역자 회의를 모여 가지고 일주일  동안 기도하는 데에 벌써 인민군들은 다 지나가 버렸습니다. 지나가서 다  점령지가 됐습니다. 점령지가 되고 난 다음에 그때 교역자들이 다 헤어져 갔는데  점령지가 되고 나서 '이제는 그만 교역자회는 그만 끝냅시다' 이랬는데 끝날  때가 됐다 말이오. 끝낼 날이 됐는데 '끝냅시다' 이러니까 주남선 목사님이  '이제 인민군 점령지가 됐으니까 끝낼 게 아니라 더 우리가 회의해 가지고 힘을  얻자. 하루 더 하고 끝을 내자.' 하루 더 하고 끝을 내 가지고 다 점령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인민군 속을. 인민군이 점령하고 오는데 그 속을 향하여서. 그때  회의했던 거창 지방에 있는 교역자들은 다 향해서 자기 교회로 돌아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피해서 도망을 쳐서 부산까지 오는데 얼마나 다릅니까?  이래서 우리가 제일 좋은 것은 주로 인해서 사는 영감으로 진리로 인한 생활  영감과 진리의 자기 것이 되어 가지고, 자기 것이 되어 가지고 모든 것을 대하는  사람이 제일 기쁘고 즐겁습니다. 영감과 진리의 자기가 되어 가지고 공산주의를  대하는 사람은 참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것이요, 큰 선물과 보배를 만난  사람의 기쁨이 될 것이요. 물질주의가 큰 재물을 만난 거와 같이 횡재수를 만난  거와 같이 기쁘고 즐거울 것이요. 권세를 탐하는 자가 높은 한 지위를 다시 얻는  크게 높이 한번 승격받아서 등용받는 그런 기쁨을 가진 거와 같은 기쁨을 가질  것입니다.

 이제 그게 제일 좋고, 그것이 제일 좋고, 그러면 그만 됐습니다. 그러면 됐고,  그러다가 자기에게 어떤 일이 닥쳤올 때에 무슨 일이 닥쳤올 때에는 그때는  자기가 그 닥친 일과, 자기 밖에서 닥친 인민군과 모든 정권의 세력과 이종교의  세력과 이 악한 자들의 세력이 자기에게 닥친 것, 또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유혹시키는 어떤 재물이나 무슨 평안이나 그런 것이 자기에게 닥친 것 자기에게  무엇이 닥쳤습니다. 무엇이 닥쳤을 때에는 그때는 꼭 잊어버리지 말고 닥쳤을  때에는 내 옆에 닥쳤을 때에 그것을 내가 주와 함께 해 가지고 그것을 발견해서  닥치는 것이 있고 내가 주님과 진리로 산다는 것이 엉뚱하게 자는 자와 같이  있다가 그걸 갑자기 닥쳐서 닥쳤을 때 있고 닥치는 것이 둘입니다.

 주님하고 나하고 함께 그것을 발견하고. 발견할 때에는 반드시 그것이 먼저  오지 못합니다. 주님이 먼저 옵니다. 주님과 나와 해 가지고 '앞으로 저게  우리에게 가까이 오겠습니다. 저 적이 지금 가까이 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런 사람들은 다 왜정 말년에도 벌써 주님하고 하나돼 가지고 '지금  내일은 큰 환난이 오겠다. 큰 시험이 오겠다. 또 앞으로 무슨 일 오겠다.'  그것을 주님하고 먼저 미리 알고, 미래적인 영감을 가지고 그것을 알고 기다리다  그걸 닥칩니다. 오는 것을 기다리다 닥치는 사람 있소.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갑자기 뜻밖에 닥치는 사람 있습니다.

 그래 기다리다가 닥치는 사람이든지 뜻밖에 닥치는 사람이든지 닥칠 때에,  그것을 닥칠 때에 기다리다가 닥친 사람은 두말 할 것 없이 그때 누구하고  기다리다 닥쳤습니까? 누구하고 기다리다 닥쳤지요? ○○○이? 주님하고 둘이  기다리다 닥쳤소.

 닥쳤으니까. 주님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주권자시요 주재자요,  전능자시요. 전지자시요 나를 사랑하심으로 대속하신 자요 나를 영생으로 살려  주신 자요, 내게 모든 허물과 죄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신 분이시요,  이분이 나와 함께 계시니까 주와 함께 그것을 대합니다.

 대하고 만일 그렇지 안하고 갑자기 그런 것을 대했을 때에는 그 때는 그것만  대해 가지고 거기에 피동되어지면 안 됩니다. 두려운 걸 대했을 때에 내가  두려워하면 거기 피동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피동이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했습니다. 또 처음에는 그걸 보고 왈짝  욕심이 나 가지고 또 동할 수 있습니다. 피동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깐 그러고 난 다음에 우리는 눈을 감아야 됩니다. 눈을 감아서 명상할  때에 "주께서 내 곁에 서셨다" 자기 곁에 서서 계시는 주님을 발견해야 됩니다.

주님을 발견하고 주님과 그와 비교를 해야 됩니다. 주님과 그와 비교를 해서  주님은 지극히 크신 분이요 그것은 주님이 주권하셔 가지고 주님이 주권하심으로  주님이 나를 좋아하셔서 나하고 상대하는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그것을 당신이  일으켰습니다. 그 일으킨 자가 당신이시오. 당신이 그것을 일으킨 것은 나로  하여금 주님과 더 밀접해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그 신혼여행 하는 것을 그것을 필요하다고 그렇게  느꼈습니다. 왜 필요하다고 느꼈느냐? 처음에 생전 못 만나는 모르는 사람이  같이 만나고 또 혹은 아는 사람이 만났다 할지라도 만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  속에 둘이 만나기 때문에 단둘이, 단둘이만 들어붙을 수가 없다 말이오. 인격  교제가 안 된다 말이오.

 그런데 산도 설고 물도 선 저 모르는데 툭 가 가지고 보니까 아는 사람이라고는  여자도 아는 사람은 제 남편 하나뿐이오. 또 남자도 아는 사람이라고는 제 아내  하나뿐이오 이러니까 모든 많은 사회 가운데 단둘이만 알게 되기 때문에 며칠  동안 그렇게 같이 다니는 가운데에 서로 의지하고 바라보고 믿고 하는 것이  밀접하게 딱 들어붙는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고 아는 사람이 없는 아주 타지방 타향에 가 가지고  둘이 단둘이만 결합하는 그게 필요하기 때문에 신혼여행은 필요하다 하는 데는  모르는 데 어짜든지 그런 데 가서 둘이만 좋아하고 둘이만 의지할 수 있는  그것을 처음에 요렇게 결합해 만들어 가지고 거기에서 움싹 튼 그것을 일생  생활에서 이렇게 움싹 틔워서 길러가는 게 좋겠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곁에 서신 것을 보고 주님을 자꾸 봅니다. 그것을 보고  주님 보고. 그것 보고 주님 보고 그것 보고 주님 연구하고 그거 연구하고 자꾸  이러니까 주님이 알아지고 그것 보니까 그것도 정체가 나옵니다. 그거는 뭐라  하는 것이 정체가 나와. 이거는 무엇이라 하는 게 똑똑히 보여지고 주님은 어떤  분이시겠 하는 것이 보여집니다.

 주님은 지극히 크고 그거는 아무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아닌 그것 마저도 주님이  그것을 일으켜 가지고 나에게 보였는데 속에는 주심이 일으켰고 속에는 주님의  작용이요 주님의 역사입니다. 꼭 주님이 하라는 대로만 움직이지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요것을 자기가 발견할 때에 이것이 주님이 자기와 연애하자는 것이요 주님이  자기와 이렇게 좀 밀접한 결합으로 신혼여행과 같은 그런 그 결합을 가지게  하려는 것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이제 발견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할까? 할 때에 그 모든 것이 올 때에 주님이 보낸 것을 알고 거기에  마음이 동하거나 정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그런 것이 없이 그때에 자기는 힘쓰기를  두려웠는데 내가 그걸 두려워하면 주님을 안 믿는 것이니까 거기에서 내가  불신이 생기지 안하도록 믿음을 가지도록, 그때에 무슨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변동되거나, 좋은 걸 볼 때에는 그 좋은 걸로써 주님만을  좋아하는 좋아함이 나누어지고 또 두려운 걸 볼 때에는 주님만 두려워하는  두려움이 나누어진다 말이오. 나누어지지 안하도록 하려고 애를 쓰는 것 이  그것이 성도들이 자기 마음 안에서 싸우는 것이요 자기 몸 안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싸워서 그것보다 주님이 크다는 것을 이떻게 점점 깨달아 가는 가운데에  뭐이 생겨지느냐 하면은 여기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이제 주님을 자꾸 곁에 선 주님을 사모하면 내가 강건해집니다. 담대해지고  강건해지고 튼튼해지고, 이제 그런 모두 아무리 좋은 거라도 미혹의 마음도  없어지고 주님에게 대해서 더 주를 의지하고 바라보고 사랑함이 강건해지고. 또  아무리 두려운 것 있어도 주님을 믿고 의지함이 더 강건해지고, 내가  강건해집니다.

 내가 강건해지고 그것은 자꾸 작아지고 주님의 크심을 발견할수록 나는 커지고  그것은 작아지고 나는 능히 그것을 지배해서 내 선물로 잘 이용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고 잘 그것을 사용해서 상하지 않게 그걸, 보배로운 내것으로 잘  간직할 수 있는 이 위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충만한 그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그러면 나를 삼키려고 하는  사자같은 그 모든 강한 세력에게서 주님이 나를 건져서 거기에서 구출함을 내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제일 좋은 것이 뭐입니까? 제일 좋은 것이 주님으로 인한 곧  영감과 진리로 인하여서 움직이는. 영감과 진리의 자기가 어 있는 것. 이것이  제일 좋습니다.

 이래 가지고 앞에 닥치는 일 '아이구. 갑자기 닥쳤다.' 갑자기 닥쳤다 하면  놀랩니다. 갑자기 닥친 일이 없이 미리 보고 '저 일이 찾아오겠다. 저 일이  오겠다' 미리 알고 그것에 대해서 대비가 있고 선물로 기뻐하고. 주님하고 다  아니까 와 봐야 제 삼자들 보기에 이런 시험을 같이 받았지마는 '승리했다' 제  삼자들에게 보이지 주님하고 둘이 한 통살인데 워 그거야 연극하는 것 한가지지  다른 사람들에게 '봐라. 나의 사랑하는 자는 이렇게 승리했다. 이렇게 승리했다.

6·25에도 이렇게 승리하고, 또 왜정 말년도 이텅게 승리하고 개인 생활도  승리하고, 주일 시험할 때도 승리하고 이렇게 승리한다.' 하는 걸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 둘이 하나 돼 가지고 보니까 그것에 대해서  승리할 것도 없습니다. 주님이 자기와 함께 해서 지극히 큰 분이 자기에게 한 것  주님 한 분이 그 일을 한 것인데 주님이 하신 것이 놀라지만 안하고 이상히만  여기지 만 안하면 됩니다.

 제가 어떤 그 책을 봤는데 선교사가 두 내외 선교하러 갔다가 선교 기간이 다  끝내서 이제 안식년이 되어서 이제 자기 집으로 돌아 가는데 돌아갈 때에 가다가  아주 저 벽지에 가 전도했으니까 조각배를 타고 가는데 풍랑이 심히 일어서 아주  참 위험할 지경에 그 목사님은 뱃전을 베고 쿨쿨 일을 하다가 거기 와서 인제  편히 쉬니까 자고 있는데 그 사모님은 견디지 못해서 겁이나서 하다가 그만 하도  못 견디고 자기를 볼까 체면만 보고 하마 깨서 뭘 좀 자기를 도울까 도울까 해도  돕지 안하고 이래 있으니까 옆에 이래 흔들어 가지고 여보시요, 내가 지금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당신이 어찌 무책임하고 이렇게 합니까?  이러니까 암말도 안 하고 일어나더니만 칼을 쑥 빼더니마는, 그때는 전도할 때에  이제 오른손에 칼 들고 왼손에 성경 들고 이렇게 전도했습니다. 미개한 데는  그렇게 안 하면 안 되니까. 하나님이 보호하시지 하는 그거는 시험이라, 무기를  가지고 그렇게 위험을 방지해 가며 했어 이러니까 빼 가지고 막 성을 내 가지고  꽉 이래 찌르려고 이래 대니까 겁을 내지 안하고 피하려고 뭐 새파래지지 안하고  따르르르 웃으니까 '여보 왜 웃소?' 이러니까 당신이 장난하려고 그리 하시지 뭐  나를 찌르겠소? 그런데 내가 두려워할 게 뭐 있겠소? '여보, 나는 그렇게  믿으면서 왜 주님은 믿지 못하요? 이렇게 풍랑이는 이렇게 일으키는 것이 내가  곧 칼로 대 가지고 당신에게 찌르려고 하는 것 한가지요. 당신이 계시는데 무슨  염려를 하요?' 그래서 그 사모님이 회개했다는 그런 글이 쓰여 있는 것을 제가  언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제일 좋은 것 연습합시다. 제일 좋은 것 연습하고 그 다음에  제이를 연습해 제이는 현재를 당면할 때 연습하는데 제일 좋은 것 연습하는  사람은 갑자기 뜻밖에 닥치는 일이 없어요 전부 뜻밖에 닥치는 일이 없고 모두  다 미리 알고 다 준비하고 주님이 이렇게 자기에게 대해서 이러는 것, '주님. 뭐  이런 것 뭐 할 게 있겠습니까? 뭐 어떤 일이 와도 요동치 않는데.' 이래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는 것이요, 빛으로 보여 주는 것. '봐라, 이럴 때 도  이렇게 신앙생활한다.'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그러나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도 졸고 자면 뜻밖에 일이 옵니다. 뜻밖에  오요.

 그런고로 제일 좋은 일을 연습하고 그 다음에는 둘째로 좋은 일. 둘째는 모든  옆에 어떤 게 와도 주님이 내 곁에 서신 것을 빨리 발견합시다. 발견해서  '주님이 내 곁에 섰다 주님이 내 곁에 섰다.' 내 곁에 서신 이 주님을 자꾸  보고, 그것보고 주님보고. 그것보고 주님보고, 그것보고 이러면, 주님보고  그것보고. 주님보고 그것 보다 보면 주님은 지극히 크심이라 나를 능히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는 무한하신 분이요 그이의 품안에. 그이의 나래 안에  그이의 손바닥에 내가 들어 있다는 것을 성경이 기록한 그걸 자꾸 주님이 말해  준다 말이오. 말해 줌으로써 주님은 지극히 크시고 자기는 크신 분의 사랑 안에  안겨 가지고 있는 자기고 그 모든 것은 선물이라 하는 것을 자기가 발견하게 될  때에 기쁘고 즐거움으로 모든 것을 웃음으로 승리해 나오고 아무 두려움 없이  승리해 나갈 수 있는 그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고로 이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기도회 주신 것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 승리 주실 때에 받으면 됩니다. 어떤 시험이라도 피할 길  내사 감당케 하신다는 이 피할 길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도회 여기에서 어짜든지 자기가 깨닫지 못하는 것  깨달아서 주님과 나와 가로막힌 것 깨끗이 회개해서 털끝만치라도 자기에게  거리낌이 없도록, 모든 육체의 이런 욕심 저런 욕심을 다 죽여서 그런 걸 원수로  삼아서 죽여 그놈을 돈 욕심 있는 것이 돈 욕심으로서 돈을 이루어 가지고 돈  욕심을 만족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돈 욕심 그놈을 죽여요. 죽여서 그래  깨끗하게 회개해 가지고 회개로서 주님과 가까와지고 모든 간구로 주님에게  아뢰어서 우리의 앞길을 튼튼히 만듭시다. 튼튼히 만들어. 세상에 무엇이 와도  튼튼히 만듭시다.

 우리는 요새는 사람들이 이상한 마귀의 역사가 있어 가지고 자꾸 변해집니다.

과거에는 자기 생명을 그렇게 아꼈지마는 지금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 가운데도 많습니다. 자기 생명 아끼지 안하고 무슨  부애만 나도 다른 사람은 잘되고 심술만 나도 자기 생명을 척 버려서 그  심술나는 그걸 한번 탁 깨트리는 데에서 쾌감을 누리는 그 쾌감을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에 되어진 그런 일들이 다. 그것이 어리석어서 살인 청부 맡은 것도  있지마는 살인 청부 맡은 것도 있지마는 속에 깊이 파고 들어 가면 그 사람이  분명히 자기는 세상을 염세하고 세상을 비관해서 '이 다른 사람들 잘 사는데 잘  사는 이놈들 속에 폭탄을 던져 가지고 콱 깨트려서 한번 잘 사는 희희낙락하는  걸 한번 깨트렸으면 좋겠다. 깨트리고 나는 죽어도 좋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늘어 나가도록 마귀가 자꾸 이렇게 만듭니다.

 앞으로는 변해서 예수를 못 믿게 하는 게 아니고 '예수를 얼마든지 잘 믿어라  잘 믿고, 예수 잘 믿으면 뭐 다른 것 뭐 의식주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하나님이  주실 것 아니냐?' 그럴 때에 사렙다 과부에게 하나님이 역사했습니다. 또  까마귀로 먹였습니다.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보급한다. 하나님이 직접 우리에게  보급해 주신다. 그 말 한 마디가 나는 어떻게 은혜가 되는지. 실은 지금도 그런  때입니다.

그러니까 이분만 믿고 살고 우리 구원 이룰 일이나 할 일이지 세상에 다른 그런  것 때문에 우리는 미혹받거나 헷갈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금 등록된 분은 이천육백육 명입니다. 이천육백육 명이 기도록에 등록을 하고  기도를 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가 가지고 등록을 한 학생들에게 가서 그저  '기도했나?' 이렇게 카드를 '기도했으면 찍어라 기도했나?' 한 것 이래 가지고  기도를 가서 쭉 가면 심방 가면 모두 기도했다고 기도록을 이렇게 줘서 이렇게  모두 거두어 가지고 와 가지고서 저녁이면 부지런히 와 가지고 기도록에 등록을  합니다. '아무것이는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등록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사람을 구원하는 여러분들 썩은 돈을 구원하는 것보다 사람을 구원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썩은 공장, 불타고 없어질 것 그것보다도 사람 만드는  사람 만드는 이 공업이 이 사업이. 이 직장이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는 염려없이  달립시다. 그러고 십분 기도 후 사 층 예배당에서 권찰회 있습니다.

 오늘 여덟시 이십분에 장례차가 오니까 같이 타고 가서 상가에 가서 장례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누구 구역입니까? 예 ○○○집사님 장모 되십니다. 저  대티고개. 그분이 참 앞을 못 보는 분인데 다른 건 못 보게 하고 명상과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분은 그저 눈을 감고 늘 기도로서 살았습니다.

여덟시 이십분에 장례차가 이리 옵니다. 아마 할 수 있으면 저도 갈 생각은  가집니다. 그분이 기도의 제물입니다.

 엊저녁에 내가 결혼식에는 가서 축복 기도를 해 줬습니다. 왜? 그 신부는 주를  위해서 고난을 많이 받은 신부입니다. 그래서 내가 기도도 하고 또 그 결혼식에  무엇을 저게 모르고 음식을 해 가지고 왔다 하기 때문에 그 처녀의 결혼식이라  하기 때문에 내가 어제 낮에는 맛있게 그것만 먹었습니다. 그것만 먹고 나니까  좀 배탈이 나 버렸어. 안 먹는데 떡만 딴딴한 떡만 먹으니까 배탈이 나도  기뻐서, 하나님이 좋은 부부를 주셔 가지고 잘 살아야 되겠다 하는 그것을  하면서 그저 주를 위한 수고, 주를 위한 고생, 주를 위한 견딘 것, 주를 위해서  눈물 흘린 것, 주를 위해서 속 썩힌 것, 여러분들, 주를 위해서 한 것은 이거는  참 털끝만한 것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안심하고 뿍뿍 열심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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