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기뻐하시도록

 

1986. 11. 12. 새벽 (수)

 

본문:마태복음 7장 7절∼12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여게 ‘그러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늘. “구하라 그러면” 또 “찾으라 그러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은 조건부입니다. 구해야 되지, 찾아야 되지, 문을 두드려야 되지 저절로 문이 열리지 아니하고, 찾아지지 안하고, 얻어지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구하는 조건을 여게 두고서 말씀한 것인데 우리가 구하는 것은 그 구하는 방법이 첫째가 마음으로 구해야 됩니다. 마음으로는, 마음은 구하지 안하면서, 마음은 찾을라고 하지 아니하면서, 마음으로는 이 문을 열고 들어가야 되겠다, 또 지금 문이 열려야 볼일 보러 나가겠다. 또 문이 열려야 할 일 하겠다. 내가 지금 갇혀 앉았으니까 피할 문을 열어서 피난갈 문을 열어야 되겠다. 뭐 별별, 찍해야 문이라는 거는 간단하게 들어가는 거 나가는 거 그뿐입니다. 그거 아닙니까? 또, 찾는 것은 내가 잊어버린 거 찾는 거, 또 내게 필요한 거 몰라 찾는 거, 내게 가졌던 보배를, 가졌던 좋은 것을 잊어버렸으면 그거 찾아야 되겠고 또 내게 필요한 좋은 거 그거는 또 모르면 없으면 찾아야 될 거, 잊어버린 거 찾고 또 자기에게 필요한 거 찾고 또 자기에게 뭐 필요한 것도 여럿 있다 말이오. 내가 무슨 이거 뭐 어떤 이 치료를 받아야 되겠는데, 어떤 준비를 해야 되겠는데 무엇이 없다. 그뭐 이 말씀 가운데는 다 들었습니다.

또 구하는 것은 내게 필요한 것이 없을 때에 구하는 거, 과부는 자기의 그 원한을 풀어 주셔야 되는데 원한을 지금 풀지 못해서 구하는 것이라 말이오. 그러면 구하는 거는 우리가 나쁜 것은 그게 다 치료돼서 없어졌으면 좋기를 원하니까 그것도 구할 것, 자기에게 또 필요 있고 좋은 것은 또 그걸 있어야 되겠는데 없으면 구할 것, 뭐 이거는 그만 이 세상 걸로 생각하면 알기 쉽도록 그렇게 주님은 가르쳐 놨습니다.

우리가 문이 한번 잠겨 놔 보이소. 문이 잠기면 밖에 있는 사람은 못 들어가서 애터질 것. 안에 있고서 안에 두고서 그래 문 잠궈 놔 보십시오. 또 기차지 않는가? 안에 있으면서 문 잠겼으면 밖에 사람이 올 때까지 자기는 열쇠 없으면 기다려야 되든지 그럴 것 아닙니까? 어떤 부인이 아주 불량하고 어떻게 그 남편이 조그만하니까 업수이 보든지 그래 그 친구들이 ‘너 그거 너거 아내가 너를 너무 작고 업수이 봐서 그러니까 좀 남자답게 좀 굴어라. 시키는 대로 해라. 너는 조그만하고 힘도 없지 그러니까 그장 안에 뭐 있는 걸 저것 좀 나는 키가 작아 못 내니까 좀 내 주시오 그래라.

내 주시오 하면 내러 갈 것이다. 그라면 나는 그거 키가 못 올라가겠는데 올라가 좀 내 주십시오 하고서 올라가거들랑 대못을 가지고 있다 그만 통통 쳐서 그만 뚜드려 박아 놔라. 그래 가지고 꼭 이레만 딱 문을 닫아 놔 둬라.’ 그러면 안에서 이레 동안 갇혀 앉았으니까 그거 얼마나 애가 터지겠소? 뭐 나중에 싹싹 빌더랍니다. 이레 굶으니까 그만 힘이 없는 거라. 그때사 인제 나오라고 해 가지고 그때 한번 힘으로 한번 대결하니까 자기가 이겼거든. 그래 가지고 그 아내도 남편에게 만족을 가지고 살고 이라더라고.

사람이라는 건 지위가 있어야 되지 지위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주장하고 남편을 누르고 사는 그 여자는 참 인간살이에 재미를 맛을 못 봤소.

또 자식이 부모를 누르고 그까짓 부모야 하는 그놈도 인간 참 재미는 못 봅니다.

꼭 부모의 위치, 자식의 위치, 남편의 위치, 아내의 위치, 또 형의 위치, 동생의 위치, 나이 많은 수상의 위치, 나이 어린 젊은이의 위치 그 지위를 꼭 바로 지키는 데 고게 참 재미있는 생활이 있고 참 인간 맛이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뭐 문이라면 그만 문 하면 이 세상 문이니까 그만 문만 생각하면 다 알아요. 자, 우리가 들어가고 나가는 데에 내 힘으로 들어가고 나갈 수 없는 데는 주님에게 구하면 다 문 열어 주시겠다고 했지, 또 내게 모자라고 없는 것 필요한 것도 구하면 다 주시겠다고 했지, 내가 모르는 거, 내가 뭐 ‘내가 이거 내가 이걸 뭘 문제를 이걸 해결해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될런지 모를세’ 그런 거 문제 해결, 또 성공 해결, 성공을 찾는 거, 형통을 찾는 거, 행복을 찾는 거, 의인을 찾는 거, 모든 발명할 때 발명을 찾는 거, 그 뭐 찾는 거, 구하는 거, 문 두드리는 거 이 셋 속에 우리 생활에 필요한 건 전부 여기 다 들었습니다.

다 들었는데, 그것은 “그러면” 하는 그말은 네가 구해야 되고, 찾아야 되고, 문을 두드려야 되지 가만히 되는 것 아니다 요걸 말하기 위해서 “그러면” “그러면” 말했습니다.

또 그 다음에 ‘마다’라 말을 붙여 놨는데 마다라 말은 이것은 여게 문장적으로 말하면은 같은 모든 조건들이기 때문에 한 군데 머리에 마다를 붙였으면 그 다음에는 마다가 쭉 붙는 것이 그게 문법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구하는 이마다, 찾는 이마다, 문을 두드리는 이마다,” 뭐 누구라고 그런 게 아니라 천 명이면 천 명 백 명이면 백 명 구하는 사람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안하고 전부 다 얻고, 찾고, 문 열린다 그거요.

그런데, 여게 대해서 하나 조건을 또 말하는 것은 뭐이냐 하면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식이 구하면 정반대 주겠느냐? 좋은 거 주지 않겠느냐? 악할지라도 좋은 거 주는데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 아버지 내가 너희들이 구하고 찾고 문 두드리는데 좋은 거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뭐 형제간을 비유로 끌어다가 형제간에, 친구간에, 그렇게 말하지 안하고 바로 애비와 자식 사이를 가리켜 말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나쁘다고 쌓아도 애비는 자식의 유익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니까 거게는 하나라.

이러니, 형제간도 형에게 ‘동생이 낫습니다’ 동생 좋다 그라면 시기합니다.

시기하요. 또 뭐 친구간도 그렇습니다. 부부간은 아내에게 ‘남편이 더 실력있다’ 그러면 듣기 좋아합니다. 그것도 조그매 하지요. 그러나 그 부모와 자식에는 아무라도 ‘자제분이 더 나은데요’ 하면은 좋아하지 시기하는 사람 없습니다.

이러니까, 인간으로서 제일 가깝고 좋은 예를 하나 들어 가지고서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하는 소리는 너거 인간들도 이런데 하물며 하나님과 너거 관계겠느냐 하니까 이거는 뭐 틀림이 없는 것을 더 강조하는 말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러면’ 하는 것은 다 그리 하면, 그리 안 하면 헛일이고 구하면, 찾으면, 문을 두드리면, 그러면 그리 해야지 그 전에는, 구하지 안하면 안 되고 찾지 안하면 안 된다. 문을 두드리지 안하면 안 된다. 그래 해야 된다.

또 “마다” 하는 것은 열 사람 가운데에 혹 한 사람이 얻고 아홉 사람이 실패 아니고 천 사람 가운데에 구백구십아홉 명만 얻고 한 명 못 얻는 게 아니라 여기 마다라 말은 한 사람도 빠짐이 없어, 뭐. 천 명이 구하면 천 명 다, 만 명이 구하면 만 명이 다. 이렇게 우리에게 단단하게 약속을 했습니다.

또 구하는데 주실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를 예를 들어 가지고 이와 같이 말했으니까 인간으로, 인간 관계로서 인인 관계에 그보다 더 밀접하고 그보다 더 본능적으로 원하고 있는 데가 어데 있습니까? 자식이 구하면 부모가 언제든지 자식 좋기를 원하고 자식 잘되기를 원하지 안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어데 있습니까? 천에 만에도 하나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이렇다는 것을 이렇게 또 보증하고 증거해서 이렇게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무엇이든지 주님에게 구하면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많이 말씀하시기를 또 그렇게 말씀했어요.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는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씀했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는 하나님이라” 그러면, 사람들은 자꾸 암만 좋아해도 자꾸 많이 달라 하면 싫어하는데, 자, 하나님은 많이 달라 하면 좋아합니까 적게 달라 하면 좋아합니까? 많이 달라 하면은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만일 뭐이든지 주님에게 달라고 하면은 다 좋아하겠습니까 안 좋아하는 것도 있습니까? 안 좋아하는 거 있습니다. 뭐이냐? 우리에게 해로운 것은 달라 하면은 안 좋아하십니다. 안 좋아하시면 뭐이냐? 해로운 건 달라 하면, 해로운 건 달라 소리 하지 말까요? 우리는 해로운지 유익한지 그거 모릅니다.

모르기 때문에 우리 좁은 소견으로 필요하다 하면은 달라 합니다.

아이가 자꾸, 그 보니까 뺄가이 쥐약을 지금 쥐약 놓을라고 지금 이라고 있으니까, 뺄가이 있으니까 내음새가 보니까 좀 내음새가 좀 향기가 나는 게 맛있는 내가 납니다, 쥐약은. 여러분들 맡아 봤으면 알지마는. 인제, 그러니까 그거 달라고 자꾸 막 울고 늑장을 칩니다. 그러면 그거는 해로운 거 달라 하지 안해요? 그라면 ‘야야, 너 그거 쥐약 그거 먹으면 죽는 거다.’ 이거 가르쳐 놓고 자꾸 그래도 달라 하면 이거 몰라 달라 하니까 어짜겠소? 여러분들은 어짜겠어? 자, 아이 키우는 어머니들 모두 그라면 어째 해요? 뭐 어짭니까? 뚜드립니까, 젖을 줍니까, 과자를 줍니까, 놀기 좋은 그런 재미 있는 그런 걸 줍니까, 뚜드립니까? 어째요? 한번 말해 봐요. 뚜드리요? 예? 쥐약 달라 하면 뚜드리요? 젖 줘요? 그라면 빵을 주든지 과자를 줍니까? 좋은 거 줍니다. 녜. 그거는 잘못 구하면은, 잘못 구하면은 그거 주지 안하고 잘못 구하니까 어만 거 딴거 자기에게 필요한 걸 주신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계약이 있기 때문에 주님에게 어짜든지 뭐이든지 달라고 자기에게 필요하면, 거짓부리 하면은 하나님이 섭섭히 여겨. 하나님을 놀리는 것이기 때문에. 속으로 마음으로는 안 그러면서 입술로만 하고 있으면은 하나님을 등신으로 알고 놀려 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걱정하시요. 그러나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뭐이든지 구하면 내게 필요 없는 걸 구할 때 하나님께서 필요 있는 걸 주시면서 내게 만족을 주도록 그렇게 하십니다.

산다 씽이라 하는 그분은 기도에 대해서 그렇게 말해 놨읍디다. 비오는 것은 전부 바다물이 올라가 가지고 비가 옵니다. 비오는 것은 전부 바다물이 올라가 가지고 비가 와요. 또 강물도 올라가지만 강물 그까짓 거는 얼마 안 되고 전부 바다물이 올라가 가지고서 비가 옵니다. 바다물은 짭니다. 그러나, 그 빗물은 다 싱겁습니다.

짠 게 없어요. 염분이 없어요. 빗물에 염분 있습니까? 빗물에는 염분 하나도 없습니다. 왜 바다물이 올라갔는데 염분 하나도 없이 물만 내려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기도할 때에 좋지 안한 것을 기도하면은 그것은 하나님이 다 바꾸시고 제하시고 좋은 것만 다 들어서 주신다. 잘못 구할 때는 필요하고 좋은 것으로 바꿔 주신다.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부모와 자식 그보다도 더 하다 했는데. “네 태에서 낳은 젖먹이 자식을 네가 잊겠느냐? 너희는 잊어버릴지라도 나는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안했습니다.

이렇게 하시고, 이러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자꾸 달라 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아무라도 부모 욕심은 그렇소. 자식이 부모를 든든히 믿는 것을 원합니다. 든든히 믿는 것을 원하요. 태산같이 믿는 걸 원합니다. 그러나 또 자식에게 독립성을 기르기 위해 가지고서 그런 면도 있지만 어쩌든지 부모를 믿도록 하고 부모와 관계를 가질라고 애를 쓰고 또 자식이 잘되고 좋아지기를 자꾸 원해서, 좀 이래 뭐 떼놓는 것도 좋도록 하기 위해서 울리는 것도 좋도록 하기 위해서 전부 움직임은 좋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

그러기 때문에 아이가 그게 지혜있는 아이는 부모가 거석하면 ‘부모가 나에게 유익된 것을 해 주시지 나쁜 거 해 주시지 않는다’ 이라기 때문에 아무리 있기 싫어도 여기 있으라 하면은 ‘있는 게 좋기 때문에 하는가보다’ 있고, 또 뭐 먹지 말라 하면 안 먹고 먹으라 하면 먹고, 또 이거 하라 하면 암만 피곤해도 또 하고, 그렇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성경에 그래 말해 놨어.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자녀에게 불신임받지 말아라 그말입니다. 자녀에게 신용 잃지 말아라. 자녀에게 불신임을 받도록 인정받지 않는 그런 사람되지 말아라. 자녀가 어쨌든지 너를 참 하늘같이 믿도록 그렇게 그런 사람 되어져라 그걸 가리켜서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런고로, 우리에게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하는 것은 우리가 망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고 우리 행복되고 좋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 우리가 그라면 적게,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우리 사람은 없으니까 자꾸 달라 하면, 자식도 달라 하면 안 주고 숨기는 수 있어요. 자기는 밑천이 없으니까. 또 그래 하면 자녀에게 또 불행스럽기 때문에 그런 수 있어요.

하나님은 주실 게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거 요긴한 것은 달라 하면 얼마든지 주시요. 만일 병이 들어 가지고 지금 근근히 낫습니다. 문둥병이 근근히 나아서 이래 가지고 찌그러져 이래 가지고 나았습니다. 나았으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뿐 아니라 쭉 펴이게 해 주옵소서.’ 쭉 펴이게 해 달라 하면 쭉 펴여지면 나쁘겠습니까? 쭉 펴이게 해 주면 그 건강 가지고 저놈이 또 건강해 놓으면 이래 놓으니까 문둥이가 된 걸 다른 사람에게 표가 나기 때문에 저놈이 연애하러 하러 돌아다니고 술받이하고 돌아다니지 안하지 이게 쭉 펴여 놓으면 저놈이 또 옛날 젊을 때 모양으로 저렇게 할 터이니까 안 펴 줄 거라 말이오.

이제 펴 주면은 이제는 그 사람이 참 좋은 사람 돼 가지고서 옳은 일만 하게 되면 하나님이 이래 가지고 있는 것보다 자식이 이래 쭉 펴지면 좋지. 그렇지 안해요? 자꾸 건강하면 더 좋고, 더 행복스러우면 더 좋고, 또 지위는 올라가면 더 좋고, 뭐 소유는 더 부강해지면 더 좋고 자꾸 그럴 거 아니겠소? 이러니까 하나님께 구할수록이 좋아하십니다.

또, 우리가 찾을수록이, 잊어버린 거 찾든지 자기가 좋은 걸 잊어버렸으면 찾아야 되겠고 또 자기에게 ‘이거 내가 몸에 무슨 병이 있는가?’ 그 병을 찾을라고 진찰받으러 다니는 것 아닙니까? 또 ‘내가 뭣이 자꾸 일이 안 되고 자꾸 이렇게 막혀지는데 뭣이 잘못돼 그런가?’ 잘못된 거 찾을라고 또 하면 이제 하나님이 싫어하겠소? 자꾸 좋아하시지요.

이러니까, 찾는 거 구하는 거 문을 두드리는 거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좋아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이런데 또, “구하는 이마다, 찾는 이마다, 문을 두드리는 이마다” “그러면” 요 말씀을, 오늘 아침에 “그러면” 그러면 하는 거는 구해야 되지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오. “그러면” “찾으라 그리하면” “구하라 그리하면”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이거 조건이라 말이오. 구해야지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거요. 또 “마다” 하는 것은 한 명도 빠지지 안하고 전부 다라 그말이오.

“마다” 이런데, ‘혹 구하는 것이 혹 특별히 요행스럽게 그런 수가 있지 그게 그렇츰 매번 그리 되겠습니까?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해서 안 됩니다. 아무것이는 기도해서 응답되지마는 나는 기도의 응답이 뭐 있을 만치 행동이 없습니다.’ 이랬는데 자식 중에 만날 나쁜 일만 하는 그 자식이 뭐 필요한 걸 구합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걸 구합니다. 또 좋은 자식이 구합니다. 좋은 자식이 구하고 나쁜 자식이 구할 때에 그러면 그 부모가 어떤 걸 더 좋아하겠소? 나쁜 놈이 좋은 것을 지금 구하면은 더 좋아하겠소 좋은 자식이 좋은 걸 구할 때 더 좋아하겠소? 나쁜 것이 좋은 거 구할 때는 더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삼십팔 년 된 환자에게 왔어. 항상 집에 있는 아들보다 탕자가 오니까 잔치하고 그러지 안했습니까? 사랑의 세계에는 그런 거라.

이거, 착한 아들이 이래 착한 일 하는 것은 예사로 보이지마는 이거 순개망나니 같은 것이 어째 착한 일 하면 뭐 깜짝 놀래. ‘저게 저런 일 한다’ 그거 놀래서 저놈 사기를 줘야 되겠다 싶어서 ‘야, 네가 어짠 일로 이런 일을 했노? 야야.’ 이렇게 칭찬을 해 주고 아주 기뻐하고 반가워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사랑의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모와 자식 그 사이의 사랑을 둬 뒀다 그말이오. 또 부부간에 사랑을 둬 뒀다 말이오. 사랑의 세계는 이 정당 세계 전투 세계와 다릅니다. 사랑 세계는 전투 세계와 달라요.

사랑 세계는, 사랑의 관계는 전투의 관계와 달라.

그래서 성경에 “너거 믿는 사람끼리 동업하지 말아라” 또 형제끼리, 형제끼리 동업하는 사람들이 결국은 무너지고 맙니다. 형제끼리는 윤리의 세계요 또 거게는 그래도 서로 사랑의 세계입니다. 사랑의 세계인데 그라면 이 사업이라 하는 것은 서로 뺏들라 하는 전투 세계요 사랑 세계요? 전투 세계라.

나중에 형제끼리 하는 데는 그만 선한 사람이 망하고 맙니다. 자꾸 후한 형이, 형이 후하면 형을 홀딱 다 까먹어 버릴 것이고 또 동생이 후하면 거기 암만 일해 줘 봤자 다 헛일하고 맙니다. 이러니까 하지 말라 하는 거라. 거기는 서로 사랑 세계 윤리 세계기 때문에 이 사업하는 거는 전투 세계니까 ‘이놈 낼래 안 낼래? 줄래 안 줄래? 좀 싸게 해라. 안 한다. 그라면 안 된다.’ 이거 자꾸 싸우는 세계이기 때문에 싸우는 세계를 사랑 세계를 연결했으면 안 된다 그런 말 한 것입니다. 우리가 미숙하기 때문에.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이 모든 게 다 그거 없어. 경계가 다, 국경도 없고 이런 게 다 헐어져 버려요. 예수 안에 들어가는 이것은 참 어려워요.

이렇게,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와 같이 말한 것은 틀림없이 된다는 걸 했는데 우리가 왜 지금 구하기는 구하는데, 어제도 내가 저 양산동 산에 가니까 모두 산에다가 천막을 쳐 놓고 밤에 추위를 무릅쓰고 거기 가 가지고 지금 기도하고 있는데 그것 다 구하는 것이요, 찾는 것이요, 또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 그 모두 각각 지금 소원이 따로 있을 것이라.

이런데, 하나님은 틀림없이 들어 주십니다. 또 그들이 믿음이 모자라 그런 것 아니오. ‘내가 믿음이 모자라 그렇다, 믿음이. 믿음이 모자라 그렇다.’ 믿음이 모자라 그렇다 그렇게 “믿음이 있으면”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하는 그말이 ‘하나님의 뜻을 찾아 가지고 네가 행하면’ 하는 말입니다. 믿음은 세 가지 아니요? 알고 인정하고 행하는 거, 이런데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는 게 다 믿음 있는 기도라. 믿음이라, 다. 믿음이 있어요. 믿기 때문에 기도하지 그리 안 하면 기도합니까? 그런데, 처음에 믿을 때는 다 믿고 기도하고 열심히 하는데 차차 갈수록이 믿음이 없어져. 행동이 없어. 그거 왜 그러냐? 해 보니까 헛일이거든. 해 보니까 헛일, 해 보니까 헛일, 자꾸 해 보니까 헛일이라. ‘기도하면 된다 했는데 기도해 보니까 헛일이다. 기도해 보니까 헛일이다.’ 기도해 보니 헛일이니까 기도할 맛이 있겠소 없겠소? 없겠다 그말이오.

또 신앙 생활 하면 복되다 하더니만 해 보니까 자꾸 헛일이니까, 신앙 생활 해 보니까 자꾸 헛일이니까 안 할 마음만 자꾸 생기게 된다 그말이오. 안 할 마음만 생겨져. 왜 그렇습니까? 해야 헛일이니까. 해야 헛일이니까.

자, 구하면 다 구하는 이마다, 찾는 이마다, 문을 두드리는 이마다 다 얻는다고 이렇게 말하고 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보다도 더 탁월한, 독생자도 애낌 없이 주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께서 으례히 주실 터인데 왜 안 되는가? 안 되는 이유가 어데 있습니까? 안 되는 이유가 셋째 문제에 있습니다. 안 되는 이유가.

“주시지 않겠느냐” 12절에, “그러므로” 그러므로 하는 이 말은 조건부라.

“그러므로” “그러므로” 네가 이거는 다 되는데 “그러므로” 구하는 이, 찾는 이, 문 두드리는 이 이런 이마다 다 얻는 거는 틀림이 없는데, 없는데 “그러므로” 없는데 “그러므로” 없는데 왜 안 되느냐 그말이오. 다 주시는데 왜 안 되느냐? 다 주시는데 그러므로 너희들이 이리 이리 하면 될 터인데, 다 이렇게 틀림없이 주시는 것인데 안 되는 이유는 너희에게 무엇이 있다고? 그러므로가 있다 그말이오. 그러므로.

“그러므로” “그러므로” 너희들이 이래야 된다. 이것 다 되는데 왜 안 되느냐? 이게 다 되는데, 다 되기 때문에 네가 요렇게 하면 되는데 요렇게 안 하기 때문에 안 된다. “그러므로” 하는 것은 그 위에 두 가지를 강조해서, 이렇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안 하느냐 그말이오. 안 되는 이유를 거기 말했는데 뭐라고 말했어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율법이요 선지자라 말은 하나님의 모든 법칙이 이것을 가르치고 있고 또 선지자들이 가르치고 있는 게 이거 가르치고 있다 그말이오.

가르치고 있는데 자, 그러면 이것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받고자 하는 거, 대접받고자 하는 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그거 모르는 사람이 있겠어?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혹?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거는 다 잘 알고 있어. 다른 사람이 다 그렇게 대접하면 좋아하고 입이 뻥긋하이 벌어지고 하는 그거는 다 안다 그말이오.

너희들이 아는 대로 행하면 된다 말이오. 아는 대로만 행하면 되는데 너희들이 양심을 쓰지 안해서 안 된다 그말이오.

그러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남에게” 남에게 하는, 하나님에게 우리가 다 구하는데, 하나님께 구하는데 이제, 네가 다른 이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네가 대접해라. “남에게” 남에게 하는 남은 그거누구를 말했을까요? 남은 누구를 말했습니까? 하나님에게 우리가 구하는데, 하나님께 전부 다 서이 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께 구하는, 사람에게 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오.

하나님께 구하는데 구하는 데에는 네가 상대방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네가 대접해라. 하나님게 구하니까, 네가 하나님께 구하니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했으니 그 남은 누구를 말했을까요? 남은 누구를 말했습니까? 남은 누구를 말했소? 사람을 말했습니까 하나님을 말했습니까? 자연스럽게 여러분들이 깨달아 봐요.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남에게 대접하라” 네가, 하나님에게 구하는 네가 하나님에게 얻고 싶으면 하나님이, 네가 소원하는 소원을 하나님이 주시도록 할라면 네가 하나님을 대접해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을 대접하라 그래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을 대접하지 않는 데에서 다 이게 막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접하지 않는 데에서. 그러면 하나님을 대접하면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접합니까? 하나님이 눈에 보입니까? 연보를 하면 하나님 대접합니까? 연보하면은 그거는 하나님 대접이 됩니까? 녜, 하나님 대접이 됩니다. 그러면 그 연보하면 연보 돈은 하나님이 필요 있게 쓰십니까? 연보하는 것은 하나님 분명히 대접하는 것인데 하나님 대접하는 그 연보는 하나님이 필요하게 당신에게 필요하게 쓰십니까 인간에게 필요하게 씁니까? 인간에게 쓰는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을 대접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니라. 지극히 작은 자 하니에게 네가 대접하지 안한 것이 나에게 대접하지 안한 것이니라.” 그렇게 말했어.

“내가 낮아지고 내가 헐벗고 내가 굶주리고 목마르고 갇히고 병들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너희들이 나를 대접하지 안했다” 이라니까 “언제 주님이 그랬을 때 대접하지 안했습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소자 하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 곧 나에게 행치 안한 것이니라.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럴 때 어려움 당할 때 네가 나를 대접했다. 언제 주님이 어려움 당할 때 우리가 대접을 했습니까?” 이라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소자 하나에게 이와같이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사람을 대접하면 그라면 우리 소원 성취가 다 이루어지겠다’ 이 세 가지는 소원 성취를 말한 것인데. 이 소원 성취는 우리가 사람을 대접하면 소원 성취가 이루어진다. 그러면 사람들이 요구하는 대로, 사람들 이 원한는 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다 그렇게 해 주면 우리 소원 성취가 다 이루어지겠습니까?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했으니까.

그러면, 사람들의 소원 성취를 소원대로 다 내가 들어 주면은 하나님은 내 소원 들어 주겠습니까? 내가 사람의 소원을 다 들어 주면 하나님께서 내 소원 들어 주시겠습니까? 내가 사람의 소원을 안 들어 주면 하나님께서 내 소원 안 들어 주시겠습니까? 어떻습니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아닙니다.

사람의 소원은 들어 줄 것도 있고 안 들어 줄 것도 있지마는, 우리가 사람을 대접하는 거, 사람을 대접하는 거 직접 대접하면 거기 죄악과 마귀가 막 섞여 가지고서 사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대접하는 그 대접을 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을 위하기 위해서, 하나님 얼마, 하나님이 눈에 보여야지요? 이러니까, 하나님을 위하는 그 소원과 그 마음과 그 간절과 그 성의에서 사람을 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때문에 사람 위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사람 위하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도록 하기 위해 사람 위하고, 하나님 섬기기 위해 사람 위하고,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사람 위하는 거게는 더러운 게 없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하나님을 위하는 그 일을 하나님께 못 하기 때문에 그 일을 사람에게 하라.

그라면 다 형통해져 버려요.

이런고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구하면 됩니다. 그래 내가 어제 저 산에 내려오면서 거기서 그래 말했어요. ‘여러분들이’ 그 내가 여러 마디는 못 하고, 내려오면서 나는 내려오면서 그거 천막이 옆에 양사방 있으니까 천막 사이로 내려오면서 그렇게 말했어. ‘돈도 달라 하십시오제일 처음에돈도 달라 하십시오. 좀 병도 낫고 좀 건강도 좀 달라 하십시오. 이 모두 부도났거들랑 빚도 갚아 달라 하십시오. 그거 내가 그런 말 몇 마디 하고 왔어요. 진리를 모르거든 진리 좀 알게 해 달라 하십시오. 또 회개가 안 되거든 회개 좀 시케 달라고서 회개 좀 하게 해 달라고도 하십시오. 뭐이든지 자꾸 막 달라고 조아 대십시오. 하나님은 조아 댈수록 좋아하십니다.’ 내가 그말 하면서 내려왔어요.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이 이런 관계를 우리에게 가진 줄 알고 하나님께 구해서 한 번 구해 가지고 되니까, 한 번 구해서 되니까 그 다음에 또 구하요 안 구하요? 구합니다. 구해요.

동물도 그래요, 동물도. 제게 그 사진이 있는데 제가 오층에서 고기를 기를 때에, 지금 다 인제 그 고기 다 길러 봐서 인제 그거는 오층에 고기 안 기르고 다 나무 심어 놨어요. 이랬는데, 내가 손을 이라면 막 손을 물어요, 고기들이. 그 사진을 박아 놨는데 이라니까 고기떼가 막 와글와글하이 와 가지고서 내 손을 물고 뜯을라 해요. 내가 뭐 주니까. 그게 뭐이냐 하면 길이 들어 그래. 뭐 가니까 좋은 거 주거든. 이 좋으니까 오면 이래 오는데 이래 손을 이라면 좋은 거 주지 싶어 똑 와 가지고서 뭐 좋은 게 손에 있는가 이래 놓으니까 뛰어올라도 와.

뛰어오르고 이래 자꾸 물고 이래요. 그거 사진을 내가 딱 박아서 놨는데. 그래 인제 고기는 그거는 그 뒤에 안 키웁니다.

그것도 뭐이냐? 보니까, 그러기에 사람 보면 피해 도망갑니다. 도망가는데, 보니까 자꾸 좋은 거 주고 좋은 거 자꾸 이라니까 이제 오면 그만 우 모아듭니다, 뭐 좋은 거 줄줄 알고. 그것도 자꾸 먹어 보니까 좋다 싶어 자꾸 와 가지고, 사람 두려워하지마는 손을 물라고 달라든다 그말이요, 뭐이 있는 줄 알고서.

이거 모양으로, 우리 사람도 하나님께 구해서 하나님에게 좋은 거 받고 받고 자꾸 이래 받아 버릇하면 믿음이 좋아지겠소 믿음이 없어지겠소? 좋아진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좀 구해 가지고 의식주 축복받고, 이차적으로 건강 장수 축복받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인제 ‘참 다 되는구나’ 이래 가지고 자꾸 욕심을 부려 소망을 가지고 자꾸 애를 쓰니까 나중에 셋째번에 뭐 됐습니까? 의인돼요. 의인돼.

자꾸 그래 또 애를 쓰니까 넷째번에는 하나님하고 진리하고 영감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하고 나하고 한 덩어리 돼 버리고 만다 그거요. 이라면 영생이요 이라면 완전이오. 이라면 전지 전능자요 하늘과 땅의 것을 다 통치할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라 그말이오.

그런고로, 좀 구합시다. 구해서, 구하는 데는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내가 사물에 대해서도, 일에나 물건을 대할 때 하나님 보시면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겠나? 일을 이래 처리하면 축복해 주시겠나? 이 형제가 나한테 왔는데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나?’ 꼭 내게 모든 생사 화복 주관하는 주님이 내게 딱 보고 계시는 줄 알고 그분이 기뻐하시도록만 처리해요.

‘이 사람에게 내가 이 말을 할까? 이 말 하면 주님이 기뻐하실까? 아, 주님이 섭섭해 한다. 요 말 하면 주님이 기뻐하시겠다.’ 주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말 하고, 주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행동 하고, 주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대면하고, 주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그 일만 해요. 그라면 주님에게 잠깐 복을 받을 거라.

그러니까, 그걸 여게 두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니까 좀 우리가 예수를 믿되 복을 받아 가지고서, 서부교회 보니까 순교할 사람 손 들라 하니까 전부 다 들었는데, 이와 같이 지금 초절적으로 이라면서 뭣이 의식주는 지금 늘어나지 안하고 있어.

의식주.

물론 주를 위해서 역부러 가난해지는 사람도 있겠지요. 여기 중간반 반사들 벌써 그리 안 하면 회사 큰 회사의 사장이 됐을 터인데 여게서, 그때 내가 아는 대로는 오십만 원 육십만 원 뭐 요래 수입했는데 지금은 달라요. 그때는 옛날이요, 또.

그랬는데 그때에 여기 와서 육만 원 받았어. 그거 육만 원 받고 하나님의 종이 돼 가지고 이래 하는 그런 일 한 그거 모양으로 이제 자기에게 당장 죄짓지 안하고라도 부자될 수 있어도 그것을 버리고 더 좋은 게 있기 때문에 더 좋은 거 해.

자, 베드로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나니까 고기 부자 안 됐소? 고기 부자.

고기 부자 됐지? 베드로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니까 고기 부자 되지 안했습니까? 믿고 순종했습니까? 안 믿으며 순종해도 됐다 그말이오. 순종만 하면 돼요.

고기 부자 되고 난 다음에 고기 부자 그거 가지고 항상 살았습니까 고기 부자 그거 집어던져 버리고 또 사람 부자 될라고 달라들었습니까? 어째요? 사람 부자 될라고 달라들었소 고기 부자 그거 가지고 평생 살았소? 고기 부자 가지고 평생 살았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봐요. 하나도 안 들지. 사람 부자로 바꿨어.

이래 점점 더 좋은 걸 하지, 믿어봐야 자꾸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 가지고 예수를 바로 믿지 순종을 안 하기 때문에 안 돼. 먹어보면 맛이 있는 줄 알 건데 안 먹어보기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오. 자꾸 먹어봐야 돼요. 순종해 봐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하루 삼십 분 기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이거 뒤에 큰 인제 우리에게 구원이 됩니다. 이 삼십 분 기도 예사로 생각하고 안 하는 사람 나중에 큰 낭패당합니다.

오늘 아침 새벽기도는 또 이렇게 많이 못 나왔어. 뭐 얼마 안 돼. 오늘 아침 새벽기도는 저 뒤에까지 앉았지만 팔백 명이 조금 못 되지 않나 이래 싶어. 천 명 나왔다 팔백 명, 천 명 넘어가지는 못하는구만. 이렇게 쭉덩이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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