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해주시도록 기도한다

 

1989. 2. 4. 토새벽

 

본문: 에베소서 4장 13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의 목표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과 그리스도인으로 장성해지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목표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사람되어지는 것 또 그리스도의 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으로 장성해지는 것, 그리스도인으로  장성해지는 것 또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 이게 두 가지가 우리의 소망이요  목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공심판은 다 우리가 승리하고  통과됐고, 우리가 받을 심판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선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은 그리스도의 요소, 그리스도적으로 어데까지  자랐느냐 하는 그 분량을 이제 심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심판이라 말은 우리 각자들이 제사장 실력이 얼마나 있으며  선지 실력이 얼마나 있으며 왕의 실력이 얼마나 있나 하는 이것을 심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그러면 심판해 가지고 뭐할라고? 그는 우리가 영원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우리  할일이 뭐인가? 이 세 가지뿐입니다.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이래서 왕같은  제사장이라 선지자라 이렇게 말씀하신 그 왕같은 그 말은 곧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같은 제사장 그리스도와 같은 선지자  그리스도와 같은 왕 이 직책을 우리가 영원히 감당하는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제사장직 선지직 왕직 이 직이 얼마나 존귀하며 얼마나 영광스러운 직책인가  하는 것은 곧, 예수님이 땅위에 오셔 가지고 무슨 일 하셨느냐? 오셔 가지고 이  세 가지 일 했습니다. 하늘에서 사람되어 오신 것도 이 세 가지 직책 때문에  사람되어 오셨고, 또 오셔서 사생활 공생활 십자가에 죽으심 다 이 세 가지 하기  위해서 오셨고, 또 삼 일 만에 부활하신 것도 이 세 가지 직책을 하기 위해서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직책을 완료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 말은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직책을 완료하신 이  요소, 그리스도적인 이 요소 그리스도의 모형인 이 요소 이것이 장성한 데까지  이르도록 우리가 세상에서 길러가고 자라가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목표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 다른 말로 하면은 온전한 사람이고 또 딴 말로 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자라 하는 이것이 내나 같은 뜻입니다. 온전한 사람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그게 온전한 사람이고, 온전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적인 이 분량이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 안 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잘 화합시키고 조화시키는 것이 제사장직이요  또 하나님의 충만을 피조물들에게 갖다가 줘서 피조물들이 충만해지는 그것이  선지직이요 또 하나님의 단일 통치에게 복종해서 하나님의 그 단일 통치에  복종이 될 때에 하나님은 책임지시고 보호도 하시고 은혜도 베푸시고 모든 것이  충만케 해 주십니다.

 이러니까 온전한 사람은 내나 이 세 가지 직을 요소를 가진 사람이 온전한  사람인데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라는 이  말씀이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이루어지는 것,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이루어지는 것 이것은 그다음에 보면 온갖 그 마귀가 우리를 이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방해를 하고 온갖 그 미혹을 줘서 이래 넘어지게 할라고  이렇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마귀를 세워 놓은 것이 그것이 우리를 조절하게 하시고  또, 하나님께서 조절하도록 그렇게 하시고 또 우리를 더 온전케하기 위해 마귀를  이용해 가지고 그와같이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귀가 우리에게 대한 작용 이 작용에 대해서도 온전해지는 것,  온전해지는 것, 또 마귀의 사람이 돼 가지고 마귀가 사람을 통해 가지고 하는 것,  사람을 통하고 만물을 통해 가지고 우리를 이렇게 저렇게 온갖 시험을 하는 그런  시험에서도 우리가 온전해지는 것, 이것이 온전한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의 성공이요 목표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라는 것, 이 제사장 선지 왕직 이것이  우리에게 갖추어져서 제사장 장성 선지 장성 왕 장성, 제사장 직책의 완료 선지  직책 완료 왕 직책 완료 이 완료를 이와 같이 할 수 있는 이런 자가 될라고  하니까 땅위에서 이런 자를 만드는 데에는 온갖 시련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온갖 파란과 굴곡이 있는 이런 것은 이런 데에 다  우리가 충족한 그 사명을 감당할라 하니까 그런 시련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가지 시험을 받고 해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한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시험받는 것은 그것은, 참 이 시험을 받는다 말은 우리의 환경  현실 우리 현실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면 그 현실이 우리에게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현실을 만들어 주시면 그 현실이 시험이요,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 하는 그 말은 하나님이 우리의 이 세 가지 직책을 위해서, 세 가지  직책을 어데서 만드느냐 하면은 현실 속에서 만드는데 현실 속에서 만들기  위해서 현실을 하나님이 만들어 주는 데에는 굉장한 수고를 들여 가지고 현실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이 현실은 다 뭐이냐? 현실은 다 시험 뭉텅이입니다. 시험 뭉텅이. 이  현실은 우리들이 다 어려운 뭉텅이요 어려운 뭉텅이라 모두 다 이 현실에서 울고  뭐 슬퍼하고 낙망하고 두려워하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이 현실은 우리를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되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이 현실을 만들어 주셨기 때문에 이 현실을 만드신 사랑의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해 가지고 이 현실을 만드신 것과, 또 이 현실이 우리에게  어떤 좋은 결과를 맺는다는 이 사실을 깨달으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믿음을 연단하여 인내를 만들어  내고 너희들에게 인내가 온전히 이루어져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려 함이라' 그렇게 말씀을 야고보서 1장에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온전한 사람이요 그리스도직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우리 목표요 소망인데,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믿음도 가져야 되겠고 또  회개도 해야 되겠고 또 실행도 해야 되겠고 또 기도도 해야 되겠고 여러가지  방편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믿을라고 애도 써보고 또 자기가 회개도 할라고  애도 써보고 또 자기가 실행도 할라고 애도 써보고 또 기도도 할라고 애도  써보고 이것을 힘을 씁니다. 자기가 믿는 것도 험써 믿어보고 힘써 또 회개해  보고 힘써 또 기도해 보고 힘써 행해보고 이런 것이 다 좋습니다. 좋지마는 이것  가지고 안 됩니다. 또, 이러니까 이게 모두 다 뭐이냐 하면은 결심이요, 결심이요  각오입니다. 자기가 결심도 하고 각오도 하고 뭐 자기가 결심을 얼마든지 하고 또  금식기도도 하고 산기도도 하고 이렇게 아주 믿는 일, 회개하는 일, 또 이렇게  실행하는 일 또 기도하는 일 이런 걸로 가지고 애를 씁니다. 애를 써도 이 일이  잘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 하던 사람들이 참으로 신앙 생활 하는 사람들이 대개  마지막에 자기가 고백하는 것을 보면은 '인간의 각오와 결심이 무슨 소용 있느냐'  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습니다.

 제가 그때 OO신학교 가서 공부할 때에, 제가 OO신학교 와서 공부할 때인지 혹  그전에 거창서 집회할 때인지 모르겠습니다. 한상동 목사님이 와서 집회를 하는데  '인간의 각오와 결심과 작정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 없습니다.'하는 그  말을 제가 들을 때에 그때에 제가 깜짝 놀랬습니다. 아, 인간의. 각오와 결심과 그  모든 작정 이런 것 뭐 이런 노력 저런 노력 하는 것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말할 때에 얼핏 들으니까 '아, 어찌 저런 소리를 할까' 이랬는데 자세히  들어보니까 그 말이 굉장히 참 실력 있는 말이고 진실된 말로 그래 느껴져서 그  말씀에서 제가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 신앙 생활 해 본 사람이 자기가  채험하고 경험하는 것을 지금 말하요.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말을 합니다.

 뭐 우리가 어떤 죄악이라 하는 거, 사람마다 이런 죄악 저런 죄악 그 많은  죄악이 있지마는 또 자기에게 제일 회개하기 어려운 죄악이 있습니다. 어려운  죄악 그런 죄악을 인해서는 사람마다, 어떤 사람은 경제면에 어떤 사람은 무슨  언행심사에 실수하는 그런 실수하는 그런 점에, 뭐 혈기를 내고 이래 가지고  실수하는 그런 점에, 또 탐심으로 시험에 드는 그런 점에,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래 또 환경에 이래 우쭐거리고 추어 올리면 그만 기분이 좋고 그만  추켜 올라가 가지고 아이들 말로 참 비행기 타는 것으로 그만 이래 가지고  기분파로 이래 가지고 또 실수를 한다 말이오.

 사람마다 자기에게 강한 죄악이 외나 강한 죄악은 하나씩이오. 그 밑에 있는  것은 다 새끼 죄악이오. 사람마다 강한 죄악이 왕죄악이 하나씩 있습니다. 있는데  그런 것을 자기가 회개해 볼라고 다 모두 금식도 하고 산기도도 가고 애를  먹습니다.

 나는 우리 가정에서는 내가 요게 들어서 지금 가정에 내가 덕을 세우지 못한다,  나는 요게 들어서 모든 사업에 실패를 한다, 나는 요게 들어서 신앙 생활에  실패한다. 모두 각각 그런 것이 자기에게 있으니까 그런 것을 두고 고칠라고  정말로 애를 써 본 사람은 나중에 가서 고백이 뭐이냐? 인간이 결심한 것이 무슨  소용 있으며 작정한 것이 무슨 소용 있느냐? 기도한 것도 소용도 없어. 아무것도  소용이 없어. 그런 자기 신앙 경험에서 '아무 인적 요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인간들이 한 요소는 아무 소용없다' '인간들에게는 아무것도 승리할 만한 그런 참  절대성 있는 강한 것이 없다' 하는 것이 그것이 고백이 되고 만다 그말이오.

 그러면 어찌해야 되느냐? 이제 거게 대해서 제가 지난밤에 말한 것입니다. 그런  걸 암만 재가 이성판단으로 이거야 으례히 안 될 줄 알지요. 이거는 안 될 줄  알기 때문에 결심합니다. 작정합니다. 결심도 작정도 하고 원하기도 하고 막  기도도 하고 또 믿사옵나이다도 해 보고 또 자기가 뭐 금식도 해 보고 산기도도  해 보고 오만 것도 해 보요.

 해 보는데 그렇게 힘을 쓰는 사람들이 마지막에, 마지막에 이 봉착된, 마지막에  종착으로 마지막에 종착된 데가 어데냐 하면은 '인간으로서는 아무 소용 없다'  '인간은 다 무익하다' '인간으로서는 무엇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라고 난  다음에 그다음에 깨달아져서 고백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된다 하는 이것이 일반적으로 다 고백입니다. '인간은 다 무익하고 아무 소용  없다' '무익하다' '하나님이 해 주시지 안하시면 안 된다' 하는 그것이 이제  사람들의 고백인데,  지난밤에 말한 것은 거게서 이제 한 걸음 더 나가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안 해 주시면 안 된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된다. 이리되고 맙니다. 암만 기도해도 안 됩니다. 뭐 금식기도해도 안  돼요.

 이래서 이 신앙 생활에 힘을 써서 나아간 사람들은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안  해 주시면 안 된다' 또 그런 데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된다 또 기도해야 된다'  하는데 기도 안 해 본 사람은 하나님이 해 주시니까, 하나님에게 간구하면  하나님이 해 주시니까 기도하면 된다 다 기도하면 된다 거게서 이제 그쳐집니다.

기도하면 된다 이랬는데,  기도하면 된다 이랬는데 기도를, 기도를 하는데도 자기 마음에 나는 기도가  충분히 안 됐다 싶은 사람은 기도하면 된다 거게서 이제 뱅뱅 돕니다. 그러나  자기가 더 할 수 없을 만치 기도를 할 대로 다 해 봤습니다. 기도할 대로 다 해  본 사람은 '아, 기도 가지고 안 된다'하는 것이 이제 발견이 됩니다. '기도해  가지고 안 된다'  그러면 기도해 가지고 안 되면 뭣 가지고 되겠습니까? 기도해 가지고 안 되니,  자 사람들로서는 안 됩니다. 그거 맞았습니다. 사람들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됩니다. 맞았습니다.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된다는 것이 옳은 깨달음이오.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니까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된다.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구하라 주시마고 했으니까 하나님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해 주신다 기도해야 된다  하는 요 깨달음은, 요 깨달음은 알쏭알쏭한데 요 깨달음은 잘못 깨달음입니다. 다  모두 요게까지 오고 맙니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인간이 결심하면 된다' '결심하면 되지 안 될 게 뭐  있느냐?' 자기가 결심하면 된다는 거게서 평생 머물고 그치는 사람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결심해 봤소. 결심을 뭐 더 할래야 더 할 수 없이 결심을 해 봤소.

결심해도 안 된다. 결심하면 된다 했는데 결심하면 된다 하는 결심과 각오와  사람들이 작정하고 그렇게 노력하면 된다 하는 그것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 사람은 아직까지 결심을 할  대로 안 해 봐 그런 사람이오. 안 해 본 사람은 거게서 될 줄 알고 거게서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게서 해 본 사람은 '아, 이거 결심 가지고 안 된다' 이제 결심 가지고  안 된다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결심 가지고 안 되니까 그다음에는 뭘  발견하느냐?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된다'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된다' 하는 이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된다.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된다 이랬는데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된다 이라니까 하나님이 해 주시면 되니까 우리 할 일은  뭐이겠느냐? '구하라 주실 것이요' 했으니까 하나님에게 기도할 수 밖에 없다.

기도하면 되겠다. 이라면 이제 결론이 뭐이 되느냐? '기도하면 되겠다' 여게 와서  봉착했습니다.

 이래 가지고 기도를 하면 되는데 자기가 자기를 보는데도 '나는 기도를 할 대로  하지를 못했다. 기도에 나는 충만한 데 이르지를 못했다. 기도가 모자라서 안  됐지 나는 기도만 하면 되는데' 하니까 기도하면 된다는 그 사람은 기도에 대해서  할 대로 다 하고 기도에 자기가 충만해 봐도 기도에 대해서 충만하도록 해 본  사람은 기도 가지고 안 된다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도해 가지고 안 된다'  이걸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 된다 하는 여게까지 와 가지고 거게서 뱅뱅 돌면서 죽을  때까지 머물다가 떠나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분명히 자기가 소원하는  온전한 사람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지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거게서 기도해도 안 된다. 이라면 어찌 해야 되겠느냐? 이것이  지금 문제인데 여러분들 요 말을 잘 들어야 돼요. 신앙 생활 하면서 제일  처음에는 어짜면 된다고 사람들이 깨닫습니까? 일계단은 뭐입니까? 결심 각오.

'이렇게 노력하면 된다' '인간이 노력하면 된다' 하는 그 결심과 각오하면 된다  이것이라.

 거게서 그것을 해 본 사람은. 해 본 사람은 뮐 발견합니까? 해 본 사람은 뭘  발견합니까? 암만 해도 안 된다 '사람은 안 된다'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하나님이 주셔야 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된다'  그 옳은 발견이오. 하나님이 주셔야 된다. 또 그라고는 하나님이 주시는 데는  '이제 기도하면 된다' 하나님이 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면 안 되니까  하나님에게 받는 데에는 하나님께 구하라 주실 것이요 했으니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나님이 이제 주신다, 기도해야 하나님이 주신다 이러니까 기도에 힘을  기울입니다.

 요새 우리 교회서는 기도에 많이 힘을 씁니다. 기도에 힘을 기울입니다. 힘을  기을이는데 이제 하나님이 주시니까 하나님께 구하라 주실라고 했으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 이래가지고 거게 가서 이제 기도하면 된다고 깨닫고  거기서 기도를 열심히 합니다.

 그러면 이 깨달음은, 이 깨달음은 바로 된 것입니까 안 됐습니까? '인간이 힘을  쓰면 된다' 하는 그것도 잘못 깨달음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된다,  하나님이 주셔야 된다 하는 그것은 잘못 깨달음입니까 바른 깨달음입니까? 바른  깨달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되니까 우리가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자. 기도하면  된다. 이거는 바른 깨달음입니까 잘못 깨달음입니까? 내가 가르치기를 잘못  깨달음이라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못 깨달음이라. 잘못 깨달음입니다.

 이 잘못 깨달음이면 이걸 어떤 사람이 알게 되느냐? '이거 기도하면 된다는데  이것도 아니다. 이것도 잘못 깨달음이다' 기도해도 된다고 자기는 깨닫고 기도에  열중하는데 기도하면 된다는 이것도 기도하면 안 된다 하는 그것은 어떤 사람이  깨달은 사람입니까? 기도해도 안 된다 하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기도해 본 사람이라 말이요, 기도해 본 사람. 기도해 본 사람.

기도해도 안 돼요. 기도해도 안 돼. 기도해 본 사람은 다 거기까지 나갔어요.

 그러면 자, 뭣이, '인간이 하면 된다' 하는 것을 깨달음도 있고 그것도  삐뚤어겼고, '하나님이 주시면 된다' 하는 거는 바로 깨달았고 그다음에 '기도하면  된다' 하는 그것은 삐뚤어진 겁니까 바로 된 겁니까? 그거 뻐뚤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자, 이것은 하나님이 주셔야 되는데 기도해도 안 되고 이거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주셔야 되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주셔야 된다는 이  깨달음은 바른 깨달음인데 그다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데는 어떻게 주십니까?  요걸 아는 것이 문제라 그말이오. 지난밤에 말한 것이 그것을 말한 거라.

 요것은 자기가 이런 저런 어떤 사람은 '사람이, 사람이 결심하면 된다' 하는 것을  그것을 아주 강하게 역설을 합니다, '사람이 결심하면 된다' 하는 그것을 아주  강하게 역설합니다. 역설하니까 모든 사람이 듣고 '야 이제 참 은혜받았다 참  은혜받았다 이거 옳다' 모든 사람이 쭉 따릅니다. 쭉 따른 그 사람은 다 헛일 할  사람들이라. 이제 그 말을 듣고서 실행해 본 사람은 성공을 합니까 실패를  합니까? 실행해 본 사람은 실패해요. 해 보고는 '안 된다 이것도 공연히 그  부흥강사가 말한 것은 궤변이다. 다 궤변이요 다 소용없는 말이다, 다. 허무한  말이며 실상이 없는 말이다.' 해 보니까 실상이 없는 말인 줄 알았다 그말이오.

 인제 그라고 난 다음에 어떤 사람이 있다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하나님이  주셔야 됩니다' 이래 가지고 강하게 역설해서 부흥사가 강하게 역설합니다. 이  설교를 듣고 '그래 하나님이 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주시지 안하면 안 된다' '야  이제 참 옳게 잡았다' 그 하나님이 주시는 데에는 '우리가 기도해야 되지 기도하지  안하면 안 된다' 이렇게 강하게 역설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셔야 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데에는 내가 하나님께  내가 받는 데에는 '하나님께 구해야 된다. 기도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  기도하라니까 '옳다 이제 예수 믿는 길 참 바른 길을 내가 배웠다 옳은 길을  배웠다 이제는 한번 해 보자' 하고 하는데, 기도하면 된다 이랬는데 거게서  기도하는 그 사람들이 실패를 합니까 성공을 합니까? 인제 이거 잘못 또 들으면  또 헛일이라. 실패를 합니.다. 기도만 해 가지고, 기도해 가지고 된다는 그 말이,  기도하면 하나님께 얻는다는 그 말이 잘못 가르침이라, 잘못 가르침이라 하는  것을 어떤 사람이 깨닫습니까? 어떤 사람이 깨닫습니까? 기도한 사람이  깨닫습니다.

 그러면 이거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해요, 여러분들? 인간은 안 돼요. 하나님이  주셔야 돼요. 거게 기도해도 안 돼요. 그라면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할랍니까?  어떻게 해야 이 온전한 사람을 이루며 자기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목적하는 것은 땅위에 뭐 돈이 목적 아니요 또 호의 호식하는 그게  목적 아니요 땅위에서는 명예나 권세나 지위나 이 세상살이 성공하는 것이 우리  목적이 아니오. 우리가 하늘나라 가는 게 목적입니까? 하늘나라 가는 것이  목적입니까? 아니오. 하늘나라는 뭐 갈라고 힘쓰나 안 쓰나 하늘나라 가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는 가게 돼 가지고 있어요. 택한 자들은 하늘나라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어요. 불택자들은 하늘나라 갈래야 갈 수 없고. 그런 거  우리가 염려할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또 우리가 힘써 가지고 되는 건  아니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다 택해 놓온 사람은 가게 되고  택함받지 안한 사람은 제가 뭐 아무리 죽자 살자 힘써봤자 못 갑니다. 그런 것도  할 일 아니라.

 그러면 우리 할 일은 뭐이 우리 할 일인가? 우리 할 일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라니? 우리가 심판받기를 그리스도의 심판받아. 그리스도  심판받아. 그리스도 심판. 네가 그리스도의 그 은혜를 받아 가지고 그리스도의  분량을 얼마나 네가 가졌느냐 그것 따져 가지고 그리스도의 분량 가진 그대로  무궁세계에서 등용되고 역사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그리스도의 심판 앞에 갈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 땅위에서 사는  모든 목적은 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그리스도적인 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그리스도 장성 분량, 그리스도의 장성 분량이라 말은 다른 말로 말하면 무슨  말인고 하니 기름 부음의 장성 분량이라 그말이오. 기름 부음의 장성 분량이라.

 기름 부음의 장성 분량이라 말은 제사장 장성 분량, 선지 장성 분량, 왕의 장성  분량 그것이 영원 무궁토록 우리의 할 일이요 또 우리가 이것을 검사 맡는 것이  그리스도 심판이라. 이러니까 거게서 검사 맡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땅위에  하는 이 목표가 목적이 뭐이냐 하면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인데  온전한 사람되는 거, 온전한 사람이 돼야 그리스도 장성한 분량에 이를 수 있다  말이오.

 있는 것언데, 이것을 하는 데에는 자, 인간의 각오와 결심도 안 된다. 처음에  어떤 사람은 '인간의 각오와 결심 가지고 된다' 이래 가지고 믿는 사람들이 다  교만하고, '인간이 하면 할 수 있다' 하는 펠라기우스주의와 같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대개 그 자리에서 다 있습니다. '아, 하면 되지, 하면 되지' 하는 그  사람은, 그 평생 동안 '하면 된다' 하는 거게서 머무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거게서  머뭅니까? 하면 된다 하는 것을 한다는 거게서 평생 머물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거게서 평생 머물고 있는 사람입니까? 저 한번 대답해 봐요. 누구한테  물어 볼꼬? 예, 교만한 자인데 어떻게 교만한 자지? 해 보지 안한 자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미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이렇게 그  순서적으로 말씀을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안 해 본 자는 그것이 된다고 평생 '내가 하변 되지 뭐 하면 되지'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게 자기 믿는 거라. 자기 믿고 나는 그 사람도 헛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된다 하나님께 받아야 된다' 이제 이것은 바른  깨달음입니까 안 깨달음입니까? 바른 깨달음이라.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면 된다.

하나님께 받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면 된다 그건 바른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고 나는 하나님께 받고 하는 그 방편을 이 방편도 써보고  저 방편도 써보고 모든 방편을 써 본 사람,  이러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 하는 이 기도 가지고 안 돼요. 기도하면 된다.

기도 가지고 안 돼요. 기도 가지고 안 되는 것은 기도해 본 사람은 '기도 가지고  안 된다'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닫게 된다 말이오. 기도 가지고 안 돼요. 기도  가지고 안 됩니다. '기도하면 된다' 하는 그 사람은, 부흥사가 와 가지고 '기도하면  된다' 하는 그 사람은 기도 안 해 본 사람이라.

 그러니까 그 말 듣고 사람들이 모두 그리 쭉 따라 가지고 있는데 언제까지  거게서 머무느냐? 기도하면 된다는데 기도 안 한 사람은 거게서 죽는 날까지  머물다가 뱅뱅 돌다가 갑니다.

 그러나 기도를 자기는 더 할 수 없이 기도를 한다 말이오. 기도를 했는데 기도해  가지고도 안 돼요. 안 되는 사람, 기도해 본 사람은 '아, 기도 가지고 안 된다.

기도하면 된다 하는 그것도 다 헛말이다'  인제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온전한 사람을 이루며 그리스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겠는가? 지난밤에 말을 했는데 요걸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어떤 사람이  지난밤에 나한테 와 가지고 누가 묻기를 그렇게 묻습디다. 우리가 중생된 것은  진리 영감 이래 피로 이렇게 중생됐다 이랬는데, 그러면 그 순서가 진리가 첫째  순서고 영감이 둘째 순서고 예수님의 대속의 피가 셋째 순서고 그렇게 순서가  됩니까? 그렇게 누가 와서 묻습디다.

 그렇게 물어서 내가 잠깐 간단하게 그거 말해 줬는데 인제 우리가 가질 순서는  진리 영감 피 이래 됩니다. 이런데 하나님 편에서는 하는 순서가 어찌되느냐  하면은 피 그다음에는 이제 영감 진리 이래 나옵니다. 피 영감 진리 이래  나오는데 우리로서는, 지금 하나님께서 피 영감 진리로 우리에게 찾아오셔 가지고  주시는데 우리들이 받아 가지고 가지는 데에는 진리 영감 피 이렇게 됩니다.

 왜 그러냐?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음으로서 대속의 공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슨 은혜를 주시느냐 하면은 영감의  은혜를 주십니다. 영감의 은혜를 주시고 그라고 난 다음에 이제 진리의 은혜를  주십니다. 피가 아니면 영감이 우리에게 올 수 없고 영감이 우리에게 안 오면은  우리는 성경을 볼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편에서는, 역사를 그렇게 했는데 우리편에서는 우리 사람편 에서는 첫째  순서가 뭐이냐 하면 성경 보는 것입니다. 성경. 성경을 봄으로 성경으로 이제  영감을 맞이하게 되고 성경과 영감으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알기도 되고 또  깨닫게도 되고 믿게도 되고 힘입을 수 있게 됩니다. 이 말이 이해가 돼요? 그  어떤 사람이 그 OOO조사한테 물었다 하는데 그 사람 그래도 뭐 깊은 뜻을  알고 물었는지 몰라도 아주 좀 예수를 바로 믿을라 하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싶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오는데, 그러면 우리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야 우리에게  은혜가 오지 그렇지 안하면 안 됩니다. 안 되는데, 하나님이 당신이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하고 우리를 온전한 사람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할라고 애를 쓰시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줄라고 애를 쓰시는, 그 주는,  하나님이 주실라고 애를 쓰시는데 주는 것이 뭐이냐? 우리가 기도를 할 때에  하나님이 기도의 그릇을 가져가면은 주십니까? 기도의 그릇을 가지고도 안  주시요. 그러면 또 무슨 자기가 결심이나 각오나 이렇게 하면은 결심 각오 그  그룻을 가져가면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까? 안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뭘로 주시느냐 하면은 주실 때에 이제  처음에 피 성령 진리 이 세 가지로 우리에게 주시는데 우리가 받는 것은 진리로  받아야 되고 영감으로 받아야 되고 예수님의 피로 받아야 되고 이 세 가지  그릇을 가져갈 때에 받습니다. 이거 좀 아주 어려운 말인데.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셔야 되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데에는,  당신이 주시는 데에는 제일로 뭘로 주시기 시작했습니까? 뭘로 시작했소? 피로  시작했어. 그다음에는? (영감) 영감으로 시작했어. 그다음에는? (진리) 이래  가지고 피, 하나님께 바로 붙은 자리가 뭐이냐 하면은 피, 그다음에 영감,  그다음에 진리, 이 진리가 우리에게 와서 들어붙었습니다. 연결됐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주시는 그 은혜를 받는 데에는 우리가할 순서는  첫째가 뭐입니까? 진리. 둘째는? 영감. 셋째는? 피. 여게서만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받을 수 있다 그말이오.

 그래서, 이래 받는 데에는 어제 지난밤에 말하기를 어짜든지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은 자꾸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저 어짜든지 산에 가서 기도하러 가거들랑은, 가거들랑 성경은 처음에 읽으면  심령이 어두뭐서 성경을 바로 깨닫지 못하게 되니까 재독을 자꾸 들으라 말이오.

재독을 한 서너 너덧 시간 듣고 이라고 나면은 그다음에, 재독은 왜? 깨달은  사람이 가르친 것이니까 자기도 좀 깨달아진다 말이오.

 조금 눈이 밝아져요. 눈이 조금 밝아지고 난 다음에는 이제 성경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재독 좀 듣고 또 성경 읽고 이래 가지고, 재독 듣고 성경 읽고  또 재독 듣고 성경 읽고 또 성경 외우고 또 성경을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고 또  그대로 실천해 보고, 그러면 성경을, 이 설교를 재독을 하는 그것은 성경을 보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들이 말해 주기 때문에 그거는 쉬운 것이라  말이요, 쉬운 것. 설교는 그것은 말하자면 음식을 먹고 젖을 내놓은 거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성경 보고 깨달아서 실행한 사람들이 자기들이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에 젖과 같애요. 성경은 땐땐한 여문, 아주 양분 많은 여문  음식과 같고, 이러니까 이거 여문 음식은 먹으면 잘 안 되니까 이제 젖을 먹어야  되니까 설교 재독을 자꾸 자기가 듣고 설교록을 읽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 또  성경 읽고 또 성경을 외우고, 이제 설교 듣고 성경 읽고 성경 외워 보고 성경을  생각해 보고 성경대로 행해 보고 이렇게 자꾸 이거 하고,  그라고 난 다음에 뭐 해야 되겠습니까?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영감을  말했습니다. 영감은, 영감으로 이제, 또 성경이요, 내나. 딴게 아니라. 영감으로  성경 읽고 영감으로 성경 외우고 영감으로 또 성경을 생각해 보고 영감으로 또  성경을 행해 보고 또 이래 합니다. 그라면 이제 뭐 남아? 몇가지 남았습니까? 자,  몇 가지 남았습니까, 이제? 한 가지 남았어,  한 가지. 이제는 한 가지 남았다 말이오. 한 가지 남았는데 이 한 가지를 이제는  읽어보고 또 외워 보고 또 생각해 보고 행해 보고 이랬는데 이것을 성경을 보고  이제 성경을 보고 자기가 읽고 또 외우고 또 생각해 보고 또 행해 보고 이라고  난 다음에는 영감으로, 영감으로 읽어보고 영감으로 또 외워보고 영감으로 또  깨달아보고 영감으로 또 행해봐야 되는데, 영감으로 이렇게 읽고 깨닫고 허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양심을 쓰는 거라. 양심을 써서,  양심을 써 가지고 설교를 들어보고 양심을 써 가지고 양심으로 이제 성경을  읽어보고 양심으로 성경을 외워 보고 양심으로 성경을 자기가 한번 그대로 한번  실행해 보고 이렇게 하고 나면, 요 두 가지를 하면은 그다음에 어떤 험이  나오는가 하면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살 수 있는 힘이 나와요. 입고 살  수 있는 힘이.

 그라면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제 죄로 더불어, 죄로 더불어 과거에는 화합이  돼서 한덩어리돼서 하니까 죄가 없는 곳에는 재미가 없고 죄가 있는 곳에는  재미가 있고 죄하고 이래 친밀한데 자꾸 이 두 가지를 하고 나면은 죄와 사이가  뻘쭘해진다 말이오. 죄와 사이가 뻘쭘해서 죄와 이색이 져요. 죄와 자기와 하나가  되지 안해. 이색이 져요. 이색이 돼지고 이러니까 그다음에는 죄로 더불어 싸우는  것이 자기에게 생겨집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죄를 입는 이 사죄를 입고 살게 되고 그라고 나면 칭의를  입고 살게 되고 그라고 난 다음에는 화친 입고 사는 것은 뭐이 화친 입고 사는  것입니까? 화친 입고 사는 것은 뭣이 화친 입고사는 것이라고 지난밤에  말했지요? 저 OOO목사님. 화친 입고 사는 거는 뭐이 화친 입고 사는 거라 했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요렇게 외우면 목회에 성공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

 이제 이 첫째 것 하고 나면 둘째 것 하고 둘째 것 하고 나서 셋째 것 하고  나면은 그다음에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면은 이제 이것이 전부 영생이요 이것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인간이 죄를 아무리 이길라  해도 다 소용 없습니다. 기도 가지고 안 돼요. 결심 가지고 안 돼요. 금식 가지고  안 돼요. 뭐 나도 금식도 해 봤고 오만 거 다 해 봤어요. 그래도 정말로  이겨지지를 안해요. 금식하고 이라면 금식해서 그만 그때는 뭐 아무것도 없으니까  먹을 것 입을 것 그거나 생각하고 딴거 없지마는 금식하고 했지마는 나중에  금식하고 난 다음에 먹을 것 있고 입을 것 있고 기운이 나고 이라면은 그만 땅에  있는 허영과 허욕이 버쩍 나옵니다, 나와 가지고 내나 안 믿는 사람이 땅의 것  소망하고 사는 것 같이 그렇게 돼지고 맙니다.

 이거 암만 해 봐야 죄를, 죄를 이기는 힘이 없고, 죄를 이기는 힘이 없고 의를  건설하는 힘이 없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힘이 없어요. 다른 데서는 나오지 안해요.

하나님이 주셔야 되지 안 주시면 안 돼요. 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도무지  아무데서 나오지 안해요.

 이러니까 '이제 결심하면 자기에게서 나온다' 또 '하나님이 안 주면 안 된다'  그거는 맞다. 하나님이 주시니까 기도하면 돼, 기도 암만 해야 안 나와요. 사람이  자기가 무슨 어떤, 그 사람은, 저 사람은 저 사업욕이 있어서 물질욕 물욕이  있어서 안 된다, 저 사람은 무슨 나쁜 성질이 있어 안 된다. 혈기나 뭐이나 자기  욕심쟁이. 교회 오면 교회서는 사람들이 닳아져서 그걸 다 수치스러운 놀음 병신  놀음이고 자기 수치 보이는 것인 줄 알기 때문에 그걸 안 하지마는 처음에는  교회 와서 막 설설 흔드니까 그게 제일인 줄 왕인 줄 알고 그래 날뛰는 거라.

 우리 여기 집짓고 나서 들보 이거, 이걸 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기계 가지고 와 갈았는데 그 갈고 난 다음에 돈을 더 달라고, 약속한 데로 돈을  더 달라고 이라면서 와서 막 불량을 지겨. 그 여자가, 그 불량 지긴 여자가 그만  술을 먹고 와 가지고 막 욕을 해 대고 이라니까 교회는 말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어떻게 불량을 지기는지 뭐 불량을 지기는지 며칠 와서 그래 불량을 지기요.

약속한 대로 돈을 줬는데,  그래 누가 하나 왔어. 우리 교회 그런 사람 어떤 사람 하나 왔어. 와 가지고 막  욕뜸을 해 이년 막 어짜고 하고 이래 가지고 막 이라면서 '이런 년은 당장 이거  징역을 보내야 된다고' 그래 가지고 파출소에다 연락을 하니까 파출소에서 잡으러  왔다 말이오. 이라니까 파출소에 연락했다 하니까 뭐 오기도 전에 그만 도망  빼더니마는 그 돈을 이만 원인가 삼만 원인가 공금을 덜 줬는데 이걸 줄라니 뭐  벌써 어느새 이사 가 버렸어. 이사를 가 버려 숨어 가지고 내가 그거 찾아 줄라고  똑 삼 년 만에 찾아줬습니다. 삼 년 만에.

 얼마나 혼이 났는지. 그렇게 간이 없는, 그래 참말로 외나 그런 거는 간덩이가  아무것도 없는 게 그런 걸로, 교회 나와서 불량 지기고 불량 지기면 알아 주거든.

불량 지기면 알아주는 그걸 '야, 저거는 병신이다. 저거는 지금 죽을라고  게갈게갈거리는데 그거 갋을 게 뭐 있느냐' 병신이고 불쌍하고 가결해서 갋지  못하는 줄 안 알고 그게 힘이 있어 그런 줄 안다 말이오.

 이 죄를 이기는 것도 딴데는 없습니다. 자기가 의를 건설하는 것도 딴데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도 딴데는 안 나옵니다. 딴 데는 안 나와.

하나님에게서 나오는데, 하나님에게서 나오는데 나오는 구멍이 뭐이냐? 나오는  구멍이 뭐이냐? 처음에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대목 구멍이 뭐입니까? 예? 대목  구멍이 피요. 하나님에게서 바로 나오는 대목 구멍은 피요 고다음에 또 중간  나오는 구멍은 뭐입니까? 영감이오. 우리에게 딱 붙어서 우리 입에 대 가지코  졸졸 둘러 마시면 되는 딱 들어온 관은 무슨 관입니까? 진리관이라. 요거  깨닫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요것을 깨닫고 요대로 하는 사람은 다  승리할 것이고 좋은 결과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끝나면 안 돼. 다른  것에서는 되는 길이 없어요. 이거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는 말인지 안 하는 말인지  하는데 가서 자꾸 궁구해서 자기가 실지로 실행하는 사람은 깨달을 것이요 해  보는 사람은 깨달을 것이고 그외 딴 사람은 깨닫지 못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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