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은 불에 타서 녹아진다


선지자선교회 1985년 8월 18일 주새 

 

본문 : 베드로후서 3장 12절∼13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오늘도 한 번 더 이 말씀을 가르칠 공과가 되겠습니다.

 학생들에게 반사 여러분들이 가르칠 때 이 말로 가르치는 그것만으로 가르침이  다라고 생각지를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말로 가르치는 것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고 여러분들이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지고 가르칠 때에는 지식과  믿음을 함께 가르치는 역사가 있게 되고. 또 가르치는 반사 선생님들이 이  사실을 지식으로 알고 자기가 확실히 인정하는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소원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소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가르치면 꼭 같은 말을 해도, 믿지  안하고 자기가 소망하지 아니하고 그저 지식으로만 가르치는 그 사람과  판이합니다. 또, 자기가 그렇게 이 사실을 소망하면서 지금 애를 쓰면서, 힘써  노력을 하면서 가르치면 내가 노력하면서 가르치는 그 노력이 그들에게  전달됩니다. 또 내가 이와같이 준비를, 급하게 하든지 좀 느리게 하든지 자기가  이 준비를 지금 현재 하고 있으면서 가르치면 그 준비하고 있는 현재에 실행하는  것이 그들에게 전달이 됩니다.

 기독교는 다른 어떤 학문을 가르치는 거와 같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 문서  계시 안에 영감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말로만 가르치는 그것도  영감 역사지만 말로 가르치는 그 이면에 믿는 확신하는 인정하는 믿음을  전한다든지 소원을 전한다든지 노력을 전한다든지 또 그 사실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의가 이루어지는 그 사실을 전한다든지 하는 것은 이것은 순전히  영감이 전하는 것입니다. 영감이 전하는 것이요, 말 전하는 그것만은 사람이 할  수 있지만 그 이면의 것은 다 영감이 전합니다. 그러기에 그 이면에, 오늘  아침에 네 가지를 말했는데. 그 전하는 것은 영감이 전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그것을 부정하고 있는데 그 사람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네 가지를 전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전하나 인간의 말이라 하는 것은 심히 둔한  것이요 아주 이거는 껍데기이기 때문에 인간의 말은 그런 것을 전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또 이것은 뭐 요새는 녹음기도 그렇게 전할 수 있겠고 또 간단한  것은 짐승으로도 그렇게 흉내를 내서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참  기독교인. 기독교는 하나님의 도인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그 역사는 그것은  성령이 다 전하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고 아버지의  성령으로만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다 기독자가 전하는 것은 썩지 안할 것이요  죽지 안할 것이요 쇠하지 안할 것이요 변하지 안할 것이요 다 완전한 것들이며  영원한 것들이며 영생의 것들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전하지 못합니다. 다만  성령님이 전하기 때문에 자기가 성령님의 전해 주심을 받아서 그것이 된 것만치  그대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뭐 자기가 전하는 말을 몰라서, 말을 준비할라고 하지  안했습니다. 말을 준비할라고 하지 안했고 다만 자기의 전하는 데에 성령이 전해  주실 수 있도록 성령이 자기에게 전해 주시는 것을 받아서 그것을 가지고  전할라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내가 전하는 것이 말에나 지혜에 있지 안하고  성령의 감동과 그 능력에 있기를 원한다고 그걸 힘쓴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전하는 데에 공과만 읽고 공과대로 전할라고 준비하는  사람도 있겠고, 아주 껍데기는. 공과야 대충 알고 공과도 잘 모르고 그저 그  시간에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전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아주  무식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열국과 열방을 깨트리기도 하고 또  건설하기도 하고 심기도 하고 뽑기도 하고 다 영생을 심으는 것인데 인간이 그  일을 합니까? 인간은 그 일을 못합니다. 그런데 제 말, 제 말 그거는 뱀의  말이요, 성경에 있는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문서 제시의  말씀이요, 그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셔 가지고 역사하실 수 있도록 자신이 그  도를 받아 그 도인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자기가 믿으면서 전하면  믿음이 말씀과 합께 전해지고, 또 자기가 소원하면서 전하면 소원이 함께  전해지고 자기가 노력을 하면서 전하면 노력이 함께 전해지고, 자기가 실지로  행해서 이루어져 가면서 전하면 이루어져 가는 것이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반사 직을 하는 것이나 권찰직을 하는 것이나 또 목사직을  하는 것이나 모두 다 그것이 같은 성질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설교  준비할라고 주석을 가지고 힘을 쓰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들은 대로의  하나님의 도대로 실행을 할라고 애를 쓰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설교 준비를  실행으로 노력하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모든 서적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  있고 하는데 서적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은 자기 속이고 다른 사람 속이고  말았습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10장에는 보면 목자된 사람들은 자기가 앞서  걸어가면 뒤에 양 떼들은 따라온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양을 앞세우고 목자가  뒤에서 회초리로 이렇게 깔린다고 해 가지고 양이 가지를 않는다 했습니다. 양은  갈 바를 알지 묫 하는데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목자 가는 데로  따라가는 것이 양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사 선생님들이 벌써 오늘 공과에 일곱 가지를 가르쳐야  된다는 것은 다 기억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면 일곱 가지를 여러분 들이  지금이라도 일곱 가지에 대해서 믿는 그 믿음 없는 것을 회개를 하고 확실히  믿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오늘 공과를 가르치는 데에 유효한 것입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여러분들이 소원하는 것이 그것이 소원하면서 가르쳐야 되지  소원 안 하고 가르치면 다 헛일입니다. 소원하면서 가르쳐야 될 것이오, 또  자기는 거게 대해서 지금 원하면서 지금 노력을 하면서 가르쳐야 될 것이오. 또  자기에게는 그런 것이 이루어져 있어야 합니다. 이루어져 있어야. 얼마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이루어져 가면서 가르쳐야 되지 공연히 입술만 가지고 하는  것은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신령의 도입니다. 영감의  도입니다 그러기에 예배드리는 사람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 되지 공연히  외식으로 형식만 되는 거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이 준비를 할  때에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고,

 그 일곱 가지 가운데에 제일 첫째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은, 노아 홍수 때와  같은데 그때에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뭐 먹는 거 또 사업하는 거 가정 자기의  거처하는 거 이런 것들 가지고 경쟁을 하면서 여게다가 전부 중심을 뒀습니다.

이것을 위주로 했습니다. 이것을 위주로 했는데 이것을 위주로 하지 안하고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킨다 하는 그 말씀을 듣고 멸망하지 안할라고  거게 다가 위주한 사람은 노아뿐이었고 노아에 딸린 식구들은 거게 끌려서 그래  갔던 것입니다. 노아의 식구들은 그는 하나의 교인이요 노아는 하나의 교역자요,  노아는 주일학교 반사요 노아의 알곱 식구는 그는 다 자기에게 속한 학생이라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때에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을 말씀하신 거기에 전심 전력이 다  기울어져 있고 거기에 다 피동돼 있고 그것이 중심이 돼 가지고 있었는데. 그만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온 세상은 하늘은 불에 타서 풀어지고  모든 체질은 뜨거운 불에 녹아질 터인데 내가 여게 중심을 두고 있나, 내 중심이  지금 사업이냐 무슨 영광이냐, 존귀냐 오늘 믿는 사람들 이 다 생각하기를. 뭐  믿는 사람 목사들도 그렇습니다. 이래야 내 명예가 올라 갈까 저래야 명예가  올라갈까. 어쩌든지 전부 감투 노릇이오. 감투 그 까짓 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예수님 오면 다 복수가 굉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암만 학생들이라도 공부도 좋지만 공부하는 것도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시면 불탈 터인데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공부가 돼야 되겠고 사업도  그래야 되겠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도 이 준비로 시집가고 장가가야 되겠고  자기가 이것을 몰랐으면 지금이라도 모든 언행심사의 전 생활이 이 일을  준비하는 일로 되어져야 되지 이거는 무시하고 한 거는 다 뭐 뭐 그거는 다  헛일입니다. 낙제입니다. 첫째 모든 것이 주님의 재림을 중심해서 하는 것이  아니면 다 헛일입니다. 그러면 첫째 모든 하는 일이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이  일이 중심돼서 이 일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움직임이 아니면 헛일이라 말이오.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뭘 조금 하다가 그만 권태가 납니다. 좀 열심을 내 다가  권태가 납니다. 열심을 내다가 권태나는 사람은 열심을 내다가 권태 나는 사람은  왜 권태가 나느냐? 그는 바로 믿지 못해서 권태가 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권태가 나는 게 아니고, 사도 바울이 무거운 짐 진 거와 같다고 하는  것은 짐은 자꾸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마음이 점점 더 무겁게 눌려지는 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거는 뭐 천인 만인이 다 바로 믿는 사람은 다  그러합니다.

 권태나는 것은, 사람들이 그 말 하지 않습니까 목욕하는 것은 한 시간 즐거움이  되고, 또 이발하는 것은 하루 즐거움이 되고, 결혼하는 것은 일주일 즐거움이  되고. 집 짓는 것은 십 년 즐거움이 되고. 말 타는 것은 30년 즐거움이 된다는  그런 격언이 있는데, 그거는 왜, 그렇게 빨리 권태가 되느냐? 그것은 그것에  대해서 그것이 끝났다 그말이오. 뭐 집 짓는데 무슨 십 년이 되겠소? 그것은  자꾸 거게. 집을 지으니까 요거 고쳐야 되겠고 조거 고쳐야 되겠고 자꾸 고쳐야  되니까 고쳐야 된다는 그걸 십 년 가도 고칠 것이 있다 그말이오. 새 것이 있다  그말이오. 새것이 있으니까 권태나지 않는다, 새 것이 있어야 권태나지 안하고  새 것이 없으면 권태가 나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것은 일주일 가면 다 끝났다  하는 것은 일주 일 지나고 나면 새것이 없다 그말이오. 말 타는 것은 삼십 년  간다는 것은 그건 또 말을 타 보니까 새 기술이 요래 타 보고 저래 타 보고 또  자꾸, 그러니까 뭐 새로 자꾸 연구할 것이 있고 새로 연습할 것이 있고 새로  자꾸 자기가 성장해 나갈 미래가 있으니까 그것은 삼십 년까지 간다 그 말은  나중에 가서는 늙어서 기운이 없으면 이거 말은 타고 따은데 기운이 없어  못타니까 권태가 아니라 갈급이 계속된다 그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이 왜 갈급이 계속되지 있느냐 그것은 자기가 믿는 거 소원하는  거 노력하는 거 이루어가는 거 건설해 가는 거 그게 없으니까 권태가 납니다.

그게 없으니까 권태나. 열심으로 하지만 제가 실지로 그 믿음을, 믿음의 실상을  만들라고. 자기는 또 소원하는 게 어느 정도 소원하는지 또 자기가 어느 정도  노력하는지, 어느 정도 자기는 지금 이루 져 가는지 그것을 표준해서 하니까 뭐  자꾸 저거 다조지기만 다조지고 부족만 부족이 돼지는 것이지 무슨 권태가  나겠습니까? 그거는 바울뿐 아니라 믿는 사람들은 다 무거운 짐진 것과 같이  갈수록 자꾸 마음이 눌려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아. 우리도 젊을 때는 다 그렇게 펄펄 뛰는 믿음을 가졌지만  이제는 노쇠해서' 노쇠? 네가 속았다. 믿음은 절대로 노쇠해지는 것이 아니다.

나이가 많아 갈수록 걱정은 더 되고 짐은 더 무거워 지고, 왜? 준비할  준비면으로도 준비한 거는 없지, 또 검사면으로 생각해도 주님 앞에 검사받을  날은 가까왔지 자기의 또 과거의 반성의 과거를 반성해서 조사하는 면으로 봐도  조사해 보니 허무하게 이러니까 자꾸 마음이 눌려지는 것이지, 무슨 세상에  고기덩어리 일같이 했 기 때문에 그는 노쇠해지는 것이지 신앙은 노쇠해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나이가 많아 갈수록 자꾸 마음에 이 신앙에  대해서 갈급이 되고 마음에 걱정이 되고 자꾸 힘이 없어 그렇지 자꾸 노력이  돼지면 예수를 바로 믿은 것이오. 그 사람이 도를 바로 받은 것이오.

 그러기 때문에 늙어 갈수록 자꾸 신앙이 자꾸 갈증이 되고 근심 걱정이 돼서 그  노력이 있는 대로, 힘은 안 따라가는데 자꾸 노력이 심해지는 사람은 그 사람은  복음을 바로 받은 사람이오. 나이가 많아 가니까 세상 것 모양으로 '이제  은퇴하자. 이제는 평안하게' 내가 어떤 목사 하나 만나니까 '아. 우리가 이거 참  이거 오랜만에 이거 서로 만나서 참 반갑습니다.' 이라니까 '언제 한번 노는  기회를 한번 만나 가지고 그렇게 한 번 놉시다.' 그 말하기 때문에 내가 좀  이상해서 '요새는 어떻게 지냅니까?' '예, 요새는 뭐 이제 할 일 없고 이라니까  교회들이 모두 더러 초청을 합니다. 그러면, 한번씩 가면 뭐 음식도 좋은 걸  많이 준비해 놓고 그래 가면 먹으면서 하루 종일 그렇게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면서 하루는 잘 놉니다.' 그래 가끔 가다가 이 교회서 청해서 하루 잘  놀고 저 교회서 청해서 하루 잘 놀고 그게 뭐이냐? 그것이 환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바로 받지 못한 증거요. 왜 바울은 무거운 짐진 거와 같이  자꾸 마음이 눌리는데 그렇게 마음이 이제는 '할 일을 다 했다' 하는, 그렇다는  한가한 마음이 나오겠소? 복음을 잘못 받아서 그렇다 그말이오.

 이것이, 반사 선생님들도 말로 가르치면 되는 것으로 이렇게 아니까 또  가르치고 가르치고 하니까 가르칠 것이 없어. 그러니까 설교를 하면 한 번  설교하고 두 번 설교하면 '아, 모든 사람들이다 아는 것인데' 제가 가르치는  것이 말밖에 가르치지 안하는 거니까 한 번 가르치면 됐지 더 가르칠 게 뭐  있겠소? 말 속에 믿음을 가르치고. 소망을 가르치고, 자기 노력하는 능력을  가르치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결과를 가르치고 이럴라 하면 자꾸 한 소리를 또  해야 되겠고 또 해야 되겠고 또 해야 되겠고 설교를 듣는 사람도 그 면으로 듣는  사람은 한 번 더 말해주니 그 면에 또 새로 고칠 것이 있고 또 준비할 거 있고  한 번 더 말하면 좋겠고 시간이 없어 그렇지. 저도 녹음해 놓은 것 듣는데 뭐,  자꾸 녹음기를 틀어 놓고 그저 뭐 하루 종일 그 녹음기는 자꾸 말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왜? 너무 고치지 못했고 준비하지 못했고 너무 확신이 모자라고  너무 이루어져 놓은 것이 모자라기 때문에 자꾸 말을 하니까.

 집을 고칠 사람은, 집을 짓다 잘못된 것을 고칠 사람은 누가 말하면, 한 번  말했는데 잊어 버렸습니다. 잊어 버렸는데 그 사람이 있다가 '아. 요거  고치십시오' '아. 예 예 감사합니다.' 나는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또 고치라  하니까 또 감사하고 또 말하니까 감사하고 고칠 것을 고치라 하니까 고맙고. 안  고치면 큰 낭파될 터인데 고치라고 말해 주니까 고맙지 뭐 듣기 싫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듣기 싫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것보다도 내 중심이 지금 어디다가 평가를 두고 있느냐 내가  가치를 돈에다 두고 있느냐, 이 세상 어떤 일에다 두고 있느냐. 내가 예수님의  재림에 불타지 안할 여게다가 가치를 두고 있느냐 여기 중심을 두고 있느냐,  어디 두고 있느냐 그것을 학생들에게 자꾸 알려 줘야 할 것입니다.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불탑니다. 그 인간 구원이 다 성립되면 멸망할 자는  멸망하고 구원할 자는 구원하고 이 일이, 예수님의 이 일이 구속 사업이 끝나면  하늘과 땅은 불에 탄다고. 태운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안하면 일어설 수가 없습니다 '천 년이 하  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하루가 천  년 같다 하는 것은 의인을 향한 마음이요, 천 년이 하루 같다 그 말은 회개하지  안한 죄인을 볼 때에는 세월만 자꾸 빨리 가는데 기가 막힌다는 것 하나님의 이  사랑을 하루는 천 년 같고 천 년은 하루 같다는 것으로서 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그 심정을 우리에게 표시했습니다. 이라니까, 이걸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면서. 그분은 엎어져서' 하루 백 번 뭐 칠칠은 사십 구, 사백 구십  번인데. 사백 구십 번을 말했지만 칠십 번씩 일곱 번이라고 칠 수를 가지고  말했으니까 천 번을 넘어졌으나 천 번 넘어지고 거게서 다시 '주님이여' 하면서  바라보고 일어서면 주님은 기뻐하고 소원하시고 일으켜 주십니다.

 그러나 구름 타고 오실 때에는 어린 양의 낯이 돌에 치여 죽는 것보다도 더  두렵다고 그렇게 요한계시록에 말씀을 했습니다. 6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이지만 일단 그 시기가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심히 두려운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이 돌에 돌로 나 치여  달라 하는데 돌에 치여 죽는 것보다도,

 주님의 그 긍휼을 바라보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고, 그러면. 언제든지 그래  있을 건가? 갑자기 온다고 했습니다. 밤에 도적같이 온다, 그물같이 온다  잉모에게 해산 기약같이 온다. 뜻밖에 온다 그말입니다. 뜻밖에. 오 늘 올지  압니까? 대개는 주님의 재림이 주일날 오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당신이 주일날 모든. 영면의 해결을 하는 열쇠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림이 중요한 날 중에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주일날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그라고 마귀 역사가 보면 주일 날 나타납니다.

 그러나 갑자기 주님이 오신다 하는 이것을 내가 알고 전하면 아는 것만 전해질  것이고 내가 이 사실을 믿으면서 전하면 믿음이 전해질 것이고. 내가 여게  대해서 지금 이 소망을 가지고 전하면 이 소망이 전해질 것이고. 내가 이 일에  대해서 노력을 하면서 전하면 노력이 전해질 것이고, 내가 이 일에 대해서  결과를 맺어 가면서 전하면 맺어지는 그 결과가 그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이제  바울이 말한 대로 '내가 전하는 것이 말에 있지 안 하고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권능에 있는게 이런 게 다 권능 아닙니까? 권능에 있기를 원한다 말은 성령의  역사에 있기를 원한다 말입니다 성신의 감동과 능력에 있기를 원한다 나중에는  또 그렇게 두 번 거듭 말했습니다.

 그렇기에 갑자기 하늘은 불에 타서 풀어지고 모든 체질이 녹아지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그것도 자꾸 명상해 봐요 자기가 어디 가든지 이것 도 불탈거,  이것도 불탈 거 이것도 불탈 거 모든 거 다 불탈 거 예배당도 불탈 거 다 불탈  것입니다. 다 불탈 것이오. 그런데, 만물들은 다 탄식하면서 고대합니다. 만일  여게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이 있다고 하면 그  의인이 사용한 예배당은 타지 않습니다. 이 물질은 타지만 이 예배당의 능력은  타지 않는다 그말이오. 그 사람이 우리 한국 돈도 지화 속에 금화가 있지  않습니까? 지화 속에 금으로 만든, 금화가 있고 이제 금화 속에는 실제로 그  가치가 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아무리, 금화 아니고 금화를 지화로  이렇고 표현했고 지화를 무슨 수표로 표현했고 이랬는데 수포면 내나 금화요  그게 수표 백만 원 짜리면 내나 백만 원짜리 물건입니다 그 능력이라 그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그 능력은 타지 않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불타지만 의가 이루어진 것은 불타지 않습니다. 의만 되면  그것은 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의에. 의는 심신의 기능이 부활한 것을  의라고 말하는데, 어떤 사람은 예수 믿는데, 예수 믿는데 심신의 기능. 영생을  가진 심신의 기능은 하나도 없이 고기덩어리의 심신의 기능만 가진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심신의 기능이 벌써 부활착고 중생한 영생을 가진 심신의 기능이  있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심신의 기능 그것이 사람이 육신이 있을 때에는 육신의 힘으로 말하고  있고 육신의 힘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는 이제. 육신은 차차 쇠해 지지만,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는 것은 그것은 뭐이냐? 심신의  기능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육신은 쇠해졌지만 심신의 기능  중생한 기능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의 모든 설교가 힘이 있고 모든 말이 힘이  있어서, 사도 요한이는 마지막에는 메어다 놨습니다. 걸어오지를 못해서, 메다  놓으면 찍해야 하는 말이 '여러분들 서로 사랑하십시오' 하는 그 한 말에 모든  교인들은 다 울고 통곡을 하고 어떤 웅변가의 설교는 듣기 싫고 그 사도 요한의  설교를 다 원했더라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은 입은 이 몸의 기능은 줄어졌지만  속에 심신의 영생하는 그 기능이 살아 있기 때문에 그 기능으로 말 하니까  그렇게 권위가 있다 그거요. 우리는 껍데기 외식 생활하지 맙시다. 자기가 믿지  않는 것 말로만 전하는 그거는 외식이오. 자기는 또 소원하지 안하는 것을  믿기만 하는 것도 외식이오. 자기는 노력하지 안하면서 소원만 가지는 것도  외식이오. 자기는 노력은 하지만 실제의 결과가 맺어지지 안한 그것도 외식이라  그말이오. 외식은 망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타지 안할 것은 의인데 의를 만드는 방법은 뭐이냐? 의를  만드는 방법은 거룩과 경건이라 했습니다. 거룩과 경건. 거룩과 경건이라는  것은, 거룩이라는 건, 구별하는 것이오. 이거는 틀렸다 이거는 옳다 이렇게  자기가 무슨 뭘 한 가지라도 '아, 내가 이 믿는 믿음이 이거 옳으냐?' 나는  믿었습니다. 안 믿는, 게 아니고. 나는 의심하는 것을 버리고 내가 믿었습니다.

내가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내가 이 믿는, 믿음은 순진하냐 믿는 믿음 여게  믿음 속에는 여게 다른 못쓸 찌끼가 섞여 있지 않느냐 내가 믿는다 하지만 내가  마음으로만 믿지 내 성질은 믿지 않는다. 내 마음과 이성과 성질은 믿지만 내  피부는 믿지 않는다. 왜 그러면, 독침 앞에서,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 안 하면 죽인다고 할 때에 그때에 왜?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데 입술로 믿는다고 잘 말했는데 왜 그 사람들이 신사 참배 안 한다고  죽인다 할 때에 뻘뻘 떨려집니까? 마음이 안 믿기 때문에, 신경이 안 믿기  때문에. 그런 가운데에서 자기는 '나는 신사 참배 안 하겠습니다' 해도 그  피부는 새파랗게 죽은 사람 같이 돼서, '그렇지만 내가 신사 참배 할 수  없습니다'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은 피부가 믿지 않는 것이라 말이오. 신경이 믿지  않는 것이라. 신경이 안 믿기 때문에 피부에 나타났다 그거요.

 그러니까, 믿는 것도 내가 믿지만 믿는 데 또 여게 잡것이 없느냐 또 잡것을  제하고 나면 또, 믿는데 여기 잡것이 없느냐 자꾸 그렇게 가리고 가리고 가리고  가리고 자꾸 가려서 선별 선별해서 마지막에, 실상이, 이루어져 가지고 있는  거게 도달하기까지 그렇게 자꾸 가리고 가리고 또 구별하고 구별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 거룩입니다. 거룩은 한 번만 착고 말라 했습니까? 거룩이 자기 생애가  되야 돼. 무엇이든지 자꾸 가리고 또 구별하고 구별해서 '내가 믿는다는 것이 요  부분이 믿지 않는다. 요 요소가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다 했지만 실지의 내  욕심은 믿지 안 하고, 내 욕심은. 하늘나라를 믿고 뭐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  하지만 내 욕심 이놈은 지금 돈을 믿고 돈에 가 있다. 어떤 정욕에 가 있다 어떤  명예에 가 있다, 어떤 세상 하위에 가 있다. 안 믿는다' 이것을 자기 가 보고  그걸 자꾸 구별해서 이거 자꾸 제거해 버려 이거 자꾸 제거해 버리고 자꾸  이렇게 제거하는 일을, 구별해서 아닌 것을 제거하는 일을 계속 힘쓰는 이것이  의를 만드는 방편이라 이랬습니다.

 또 하나님을 위한다 하지만, 하나님 위한다 했는데 실상은 저를 위했고, 주를  위해서 뭐 위한다 했는데 나중에'보니까 저를 위했고 주를 위한다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가족을 위했고, 주를 위한다 했는데 목회에 권위를 위했고, 주를 위한다  했는데 자기 가정을 위했고, 주를 위한다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자기 인기 끌  것을 위했고, 주를 위한다고 했는데 거게서 무슨 자기의 육체적인 유익이 오는  그런 것을 위했고 전부 껍데기라 말이오. 자꾸. '껍데기 아, 이거 껍데기라'  껍데기 벗기고 껍데기 벗겨내는 일이 그게 '중단되지 안하고 계속해야 되고.

껍데기 벗겨내는 일이 계속해야 되고 껍데기 속에 알맹이만 가려내는 일이  계속하는 이것이 거룩이오. 주를 위한다 해도 또 나중에 보니까 아니라 이것이  뭣이냐 하면 경건인데 경건도 자꾸, 껍데기를 벗겨내고 속에 알맹이를 또  알맹이도 보니까 또 껍데기가 있습니다. 그것도 벗겨내고 또 속껍데기 벗겨내고  또 알맹이 자꾸 이렇게 하는 것이, 경건도 거룩으로 거룩도 거룩으로 이렇게  계속되는 이것이 주님 오실 때에 불타지 안 할 수 있는 의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권태가 나겠습니까? 태산 같은 일이 있고 자기 생명보다 무거운  일이 있는데 뭐이 권태가 나겠으며 뭐이 이제 다 했다 싶어서 오만 이  있겠습니까? 오만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만이 있는 것은 외식 때문에  오만이 있는 것입니까 그것을 우리가 그런 줄 알고 회개를 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오래 가니까 이제 나이가 많으니까 '아이구, 수월하게 좀 살자.

이제는 다 뙈다' 하는 것은 그것은 복음을 잘못 받아 그렇소. 교훈을 잘못 받아  그렇다 말이오. 교훈을 바로 받았냐 못 받았냐 하는 그것은 나이가 많아 가고  죽을 날이 가까워 올수록 자꾸 마음이 눌려지고 할 일이 많고 안 하면 안  되겠다고 이렇게 눌려지는 그것이 복음을 바로 받은 사람이오. 그거 보면, 늙은  사람 보면 환하게 다 안다 그말이오. 복음이 바른 복음이 어디 있는지 꺼꾸로인  복음이 어디 있는지 환하이 알 수 있다 그말이오. 여러분들은 눈을 뜰라고 자꾸  애를 써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기서 단단히 기도하고, 어쩌든지 오늘을 출발할 때에 자기가 똑똑히 생각하면  일곱시에 우리가 출발하자 했으니까 일곱 시에 출발하고 보니까 무슨 면이  모자라더라 내가 할 수 없이 일곱시보다도 일곱시 십 분 전에 가야 되겠다.'  나중에는 '일곱 시 삼십 분 전에 가야 되겠다. 아, 어디 누가 있는데 내가 일곱  시 사십분 전에 가면 되지 않느냐? 나중에 그래 그래 그래 자꾸 그래 그래  쫓으고 쫓으고 자꾸 그래 가지고 거룩하고 거룩하고 자꾸 구별하고 구별하다  보니까 나중에 다섯시에 가 가지고 남 자는데 밖에 앉아 가지고 또 가다 보면  인적기가 안 나니까 지금 깰까 말까 그래 가지고 자꾸 가서, 지금은 문 두드리면  실례가 아닐까, 하문 안 일어났겠나 애터지게 하는 그것을 주님이 보시고 들어  주십니다. 그걸 보시고. 주님은 행한 대로 갚는 것이 주님이시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에게 가 가지고 죽자껏 예수  믿도록 할라고 애를 썼습니다. 애를 쓰고, 기도하고 애를 썼는데 그거는 더  강퍅해서 안 믿습니다. '아이구, 헛일이다' 다 낙망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엉뚱한  데 여기서 믿는 사람이 만들어 나옵니다. 여기서 믿는 사람이 만들어 나와 그  기도한 대로 다 되고 애쓴 대로 다 되고, 그게 모든 사람의 통계요. 하나님은,  여게다가 전했는데 나중에 결과는 여기서 주는 수가 있다, 하나님에게 대에서 한  일은 털끝만치도 헛일은 없다, 인간의 수고를 당신이 무시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는 그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다 통계입니다. 예수 바로 믿는 사람의 통계요.

자, 그런거 느낀 사람들 여기 손 한번 들어 보소? 그런 거 느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뭐 거의 다 드네. 이걸 말하면 손드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 많다  말이오. 생전 듣지도 못하고 '뭐 어디 그런 소리, 무슨 소리 그런 소리 있을까?'  이번에 어떤, 집회에 어떤 목사가 하나 왔는데. 그 목사는 안 올라 하는 걸  억지로 오자 해서 왔었는데. 두 시간 듣디만 뭐 이래 이런 데가 어디 있냐고.

이래 예수 믿는 게 뭐이냐고. 아무것도 아니라 하면서 잘못 믿는다 하면서  그라며 가더래요. 그 사람이 귀가 막혀서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무슨 목사  노릇하겠소?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듣기는 다 많이 들었는데 들음의 껍데기만  가지고 있는 외식자가 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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