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선지자선교회 1985년 3월 31일 주전

 

본문 : 막10:23-27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을 가르치신 동기는 17절 이하에 보면 잘 기록돼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말하기를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물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뫘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어렵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것을 잘못  깨닫고 '돈 많은 사람만 그렇다.'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것은 이치를  가르치느라고 하나 들어서 말씀하신 것이지 그 하필 돈만을 말하는 것 아닙니다.

 만일 그때 권세 가진 사람이 와서 물었다면 '네가 이 권세를 하나도 쓰지  아니하고 이 권세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데에 쓰라 이 권세를 네가  하나도 써 먹지 말고 이 권세로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데다 쓰라.' 이랬으면 그  사람은 그것 때문에 근심하고 돌아갔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 만일 자기  지식이 많이 있다고 하면 '네가 이 지식을 너 위해서 하나도 쓰지 말고 지식  없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이 지식을 다 쓰라.' 만일 이렇게 말씀했다면 그  사람은 이제까지 공부한 것이 그 지식 가지고 자기 위해서 복되게 살라고 했는데  '이 지식 가지고 너는 하나도 위하지 말고 다른 사람 위해 살아라.' 이랬으면 그  사람은 지식이 많은고로 근심했을 것이요, 권세 많은 사람은 권세 많음으로  근심했을 것이요, 그 자유와 행락이 많은 사람은 행락을 그리하라 하면 그랬을  것이요, 자기에게 떨어질 수 없는 명예를 가진 사람은 '그 명예를 너 위해서  가지지 말고 순전히 그 명예를 남을 위해서 사용하고 그 명예로 인해서  내기에는, 너를 위해 쓰지 말고 다른 사람 위해 쓰라' 했으면 그 사람은 명예로  인해서 근심하고 갔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뭐 자기 무슨 애정이 아주 두터운  큰 애정이 있는데 '그 애정이 있는 그것을 네 욕심대로 하지 말고 그 애정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하라.' 했으면은 다른 사람에게 그치는 애정이라면  그 사람은 애정 때문에 근심했을 것이오. 가정도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가정을  '너거 가정은 너거를 위해서 살 게 아니라 너거 가정 전부가 너거를 위해서  도모하지 말고 너거 가정. 가족 전부는 단합해 가지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데에  다 희생하는 그런 가정으로 하여라. 그라고, 나를 믿으라.' 이렇게 말했으면 또,  그 사람은 그것 때문에 근심했을 것이오. 이런고로, 재물을 말한 것은 그 사람이  부자기 때문에 말한 것이고 그거 하나로 말하면 다 거게 이치는 포함됐기 때문에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자가 온 것도 오다 가다 보니까 와서 닥친 게 아니라 벌써 영원 전에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그렇게 부자를 나게 했고, 부자가 그때 그 시에 왔고, 또,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이 전부가 다 절대적인 예정적이요 계획적인 이 모든  구원 역사인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래서 근심하고 갔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예수 믿는 도리에 있어서  제 기분에 맞는 정도로 제 모든 사욕을 다 만족케 하고 나머지기 가지고 예수님  믿는데에는 잘 믿는 척하고서 또, 그 믿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권세나 지위나  명예나, 기쁨이나. 유익이 될 때에는 좋아 믿지마는서도 '자기에게 좋은 것을 다  버리고 그 좋은 것을 자기 좋기 위해서 하지 말고 그 좋은 것을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다른 사람 좋도록 하기 위해서 해라.' 하면은 뭐 낙심할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모를 것입니다.

 어떤 장로가 아주 잘 믿는 장로인데 뭐 남보다도 열심히 믿고 교회 오면은  교회에 열정을 내기는 그 사람이 혼자 열정을 내는 사람인데 자기 부인이 집회에  참석하고 예수 믿는 도리를 배워 가지고 '이제는 말씀대로 한번 믿어 보겠다.'  하니까 그만 그 부인이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하니까 그 장로가  저거끼리 하나님에게 거슬리는 그 잔재미가 없어졌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누구보다도 그 장로가 핍박을 많이 했습니다. 많이 해 가지고서 그 사경회한  강사까지 잡아다 놓고서 그 사람이 권리가 있고 돈이 있으니까 마구 박해를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면, 그게 뭐이냐?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자기네들의 생각대로의 자기들  욕심, 자기들 취미. 자기들 방편대로 하는 그 예수를 잘 믿었지마는 서도  자기들을 구원하고 자기가 참으로 주님과 주의 명령 따라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전부를 다 소금 같이 녹아져야 된다는 이 도리를 듣고 믿을 라고 하니까  제가 육적으로의 소망이 끊어졌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자율적인 소망이  끊어졌고, 사욕적인 것이 끊어졌고, 자기 위주 자기중심의 것이 끊어졌으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반발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 강사가 호출 만나 가지고 많이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때에  공비가 내려 와 가지고서 거창군이 삼 일 동안 공산주의의 나라가 됐었는데 그  때에 공비들이 내려 와 가지고 뭐 그 공무원들 다 죽였습니다. 경관들 다 죽였고  그저 공무원은 잡히는 대로 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 개새끼라.' 이라면서 전부  다 죽였습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들도 만나는 사람마다 거석한 사람  죽였습니다.

 이랬는데. 갑자기 이래 놓으니까 어쩔 수 없어서 막 벌벌 떨고 있는데 그  부인이 말하기를 '이제 당신이 믿음이 모자래서 지금 하나님이 지키시는데 왜  염려하느냐? 평소에 믿지 안해서 이런 것이니까 회개를 하라고서 그러고 이리  들어가라고.' 그래 이거 다다미. 다다미라고, 이 자리 다다미를 퍼뜩 들면서  '이리 들어가라.' 하니까 다다미 밑은 요만합니다. 아마 요만할 것입니다. 그  배를 납작 깔고 엎드려야 되지 그래 안 하면 거게 뭐 거석 하들 못해요. 그 찬  땅에 들어가서 딱 엎드리 놓고서 그래 위에 다다미 딱 덮어놓고서 이 부인이 O  집사라 하는 부인인데 기도를 합니다. 그 위에서 '이 무신론, 이 마귀 떼가 다  침범해 들어왔으니까 이 마귀 떼들을 물리쳐 달라고서. 무신론주의 유물주의  마귀 떼들이 들어왔으니까 물리쳐 달라고' 그 큰소리로 기도를 하니까 그  속에서는 가만히 그만 아무말도 안 하고 없어 비켜 버리면 사람이 이 밑에 숨은  줄 모르고 지나 갈 터인데 그 위에서 놓고 고함을 질러서 기도를 하니까 이거는  뭐 죽었다 말이오. 그러니까 무서워서 고함도 지르도 못 하고 속으로는 콩이  튀서 '내가 나가면 이 계집을 내가 죽이든지 어짜든지 해야 되지 이거 이게 좀  참 귀신 들렸고 원수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고.

 이랬는데, 공산주의들이 집집마다 뒤비는데 그 집에 들어와 가지고 그 집에 쑥  들어오니까 고함을 질러서 기도하니까 공산주의들이 그만 거기서 그만 겁이 나  가지고 또, 달아나고 그 몇이나 문을 열어 보고 달아나고 몇이나 문을 열어 보고  달아나고 이라는 것을 그 자리 밑에서 들었다 그 말이오.

 이라고 난 다음에 그 사람들이 사흘 만에 물러갔습니다. 사흘 동안 먹지도  못하고 그 밑에 굶어 가지고 있지요. 그래 물러가고 난 다음에 나와 가지고서  자복을 했습니다. '내가 참 예수 믿는 것을 봤습니다. 나는 참 외식자입니다.'  이라면서 그때부터 자기 하던 그 직책을 그때 그 거게 뭐 큰 직은  아니지마는서도 사법 대서를 하면은 아주 권리도 있고 돈도 많이 벌고 그런  사람입니다. 사법 대서 다 전부 치워 버리고 나서 가지고서 내가 여게 서부 교회  왔을 때인데 왔을 때인데 찾아 왔습니다. '내가 이제는 과거에 조사님한테  핍박한 그 죄를 자복합니다. 이제는 내가 예수를 믿어 보겠습니다.' 하면서  '내가 대서 치워 버리고 이제는 이 고려 신학교 입학해 가지고서 나도 교역자  될라고 지금 왔습니다.' 이라면서 저한테 찾아왔어요. '이 길을 가도 좋으냐?'  '그 좋다 가라.'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그때부터는 예수를 바로 믿었습니다.

아주 거창읍 교회서는 일등 장로, 세력 있는 장로입니다. 여게 OOO목사도 알  것이고 뭐 OOO 집사님도 다 아는 OOO 장로 알지요? 네.

 그랬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여게서 하나님의 구원 도리의 말씀을 바로  가르침을 받으면 자기가 회개하여야 할 그런 양이 드러날 때에 회개하기가  아깝고 그 회개한다는 것이 아깝고 또, 싫고 그리 회개하면 자기의 세상적인  모든 것이 다 깨어지고 하늘나라의 것으로 바꾸어지기 때문에 싫어서 낙심하고  뭐 돌아갈 사람들이 많을란지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습니다. 사람이 죄악적으로 가지면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을  가지기 때문에 다 생명도 불의의 생명입니다. 죽은 생명이오. 또, 소유도 다  저주 아래에 있는 소유기 때문에 다 불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일단'다 내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모든 권세나 지위도 이것도 다 마귀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크것을 일단 다 내어 놓고 세상을 떠날 때에는 그런 거 다  뺏기고 그러면 그거 가지고 그 재물 가지고 그 권세 가지고 그 모든 자기의 그  영광이나 그런 거 가지고 무엇하는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 지식도 있겠고,  소유도 있겠고, 권세도 있겠고, 지위도 있겠고, 명예도 있겠고, 영광도 있겠고,  취미도 있겠는데 그것 가지고 뭐 하는가? 그것 가지고 밤낮 하는 일은 하나님의  법에 위반되는 불법 행해서 멸망받을 심판만 장만하지 하나도 자기에게 유익된  것을 장만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와 같이 살고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합당하게, 그러면 주님에게 합당하게 진리에 합당하게 이렇게 살려고 하면  그것이 다 절단이 납니다. 절단이 나면은 어찌 되느냐? 절단 나면은 그것이  없어지느냐?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절단이 나면은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 죄에  속한 것, 마귀에 속한 것 사망에 속한 것 그것이 주님과 주님의 진리에 속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박해받아 없어졌기 때문에 그것이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외형적인 껍데기는 없어졌으나 속에 그 알맹이는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일으켜서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하늘의 것과  땅의 권세를 다 가지신 예수님에게 속하고, 영감과 진리에 속한 것이 됩니다.

영감과 진리에게 속한 것이 될 라고 영감과 진리에 속해 가지고 떨어지지 안할  라고 하니까 세상이 악의 세력들이 와 가지고서 박해를 줍니다. 박해를 주니까  박해 주니까 박해를 주니 이 박해에서 껍데기가 해를 받지 안할 라고 하면은  부득이 박해 주는 그것에게 머리 숙여야 될 것이고 껍데기가 해가 되든지 말든지  박해를 받든지 말든지 주님과 주님에게 진리에 속한 것을 떼지 안하고 주님과  진리에게 속한 그 연결을 끊지 안하고 양보치 안하고 나갈 때에 그들이  깨트립니다. 깨트리면 그들이 껍데기만 깨트리지 알맹이를 깨트리지 못합니다.

알겠습니까? 보이는 이 외형만 깨트리지 그 속에 이제 외나 하나님과 관계되는  그 알맹이는 깨트리지 못하고 알맹이가 진리와 연결되고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을 뺏기면, 생명을 뺏기면 그 뺏기는 사망에 속한 생명이  깨어지고 사망에 속한 생명이 하나님에게 속해서 영생하는 생명으로 바꿔집니다.

그래서 그리 되면은 껍데기에 사망에 속한 생명은 있는 것 같으나 완전히 거게서  하나님에게 속한 생명이 됐기 때문에 껍데기 생명도 하나님과 진리에 속했기  때문에 이 시망에 속한 것들이 자유하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의 남은  생명은 주님과 진리가 주장하지 주님과 진리 외에 마귀가 주장하지를 못합니다.

껍데기도 변화가 돼 버립니다. 또, 물질은 그거는 달라서 물질은 없어지면  없어집니다. 그들에게 깨어지면은 없어지는데 그 외형에 없어지는 그것이  하나님과 진리에게 속한 영원한 등록으로 돼 버리기 때문에 그 무궁 세계의  소유가 되어지는 고로 그것이 영원한 소유가 자기의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말씀하시기를 '나와 내 복음을 위해서 버린 자는, 버린 자는 금생에서  백 배를 얻는다.' 그 말은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희생당한 것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희생당한 것 희생은 어떤 것이 희생당했는가? 아담에게  첫째 아담에 속하고, 죄에 속하고, 마귀에 속하고, 사망에, 멸망에 속한 그것이  이제 주님과 진리 때문에 그것이 희생을 당한 것이니까 외형의 모든 그  세상적으로는 희생을 당했지마는 서도 그것에 있는 그 내용적인 권리는 그  권리는 진리와 하나님에게 속했기 때문에 그것이 영원한 자기 것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을 것을 진리와 영감으로 인해서 없어졌으면 그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일단 썩음과 사망과 마귀와 죄에게 속한 것이 진리와  하나님에게 속하게 되기 때문에 그것이 그 실재적으로는 권위적으로는 변화가 돼  가지고 하나님에게 속하게 됐기 때문에 그거는 영원한 것이 되고 말았다, 영원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 물질이니 그런 것은 영원한 것이 돼 버립니다. 물질이니 그런 것은  영원한 것이 돼 버리고 그 사람의 생명이나 몸이나 마음이나 그 기능이나 권세나  이런 것은 그것이 영원한 것이 세상에 있으면서 그 형태를 없애지 안하고 영원한  것으로 가지게 됩니다. 형태는 없어지지 안했는데 과거에는 마귀에게 속했고,  죄에게 속했고, 사망에 속했고, 저주 아래에 속했던 것이 하나님 주님과 주님의  진리에 속할 라고 애를 써 가지고 주님과 진리에 속한 것이 주님과 진리에  속할라 하니까 이 세상이 들어서 그것을 멸한다고 이래 해도 멸해져도 주님과  진리에 속한 것이 요동치 아니 할 때에 아니할 때에 그것은 완전히 진리와  주님에게 속한 것이 돼 버립니다. 속한 것이 돼 버리기 때문에 그것이 죽은 것이  아니고 산 것이 돼 버립니다.

 이러니까, 권세도 산 권세가 되고, 그 사람의 기능도 산 기능이 되고 그 사람의  인격도 산 인격이 되고, 그 사람의 영광도 산 영광이 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자유 하지 못한다. 세상이 그걸 자유 하지 못하고 세상은 언제든지 마찰돼서  싸우는 그 속에는 하나님이 들었고, 영이 그 밖에 그 다음에 마음, 그 다음에  몸, 그 다음에 그 사람의 행동 또, 그 행동과 이 모든 피조물로 더불어 항상  싸워서, 싸워서 대립적으로 싸워서 날마다 영생을 이루어 가는 것뿐이지 그걸  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 그런 것은 없어집니다. 물질 그런 것은 그와 같이 해서 이 세상  마귀와 죄와 사망이라는 것은 외형만 권리를 가지고 있지 내부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말씀 이와 같이 돼지면 외형은 마귀란 놈이 쳐 가지고서 그  재물 같은 건 없애 버립니다. 없애면 외형은 없어지고 그것이 하나님과 진리에게  소속으로 등록이 돼 버립니다. 소속으로 등록이 돼 버리기 때문에 그 물질  그것은 그 소속으로 등록돼 가지고서 지금 땅에 물질 속에 있으나 하나님께 속한  자로서 하나님에게 속하고 진리에게 속하고, 진리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하나님 이기신 대속 하신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 거게 소속이 되고, 거게 등록이  되고, 그와 관련된 걸로서 땅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머물러 있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것이 전부 이 만물을 살게 하시는 그 살게 하심으로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으로 이 모든 물질의 것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으로 그와 같이 변화해  가지고서 그때에 이제 부활할 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해 가지고 신령  한 것으로 변화돼 가지고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 마가복음 10장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금세에 있어서 이 모든 것을 백 배나 받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금세에 받는다 금세에 받는다.' 하는 '금세에 받는다.' 하는 요것은 특별히 요  금세라고 밝혀 놨습니다. 금세에 받는 것은 '그것이 없어진 것은 없어진 것은  하늘나라의 것이 됐고, 금세에 없어지지 아니하고 있는 것으로서 받는 것이 백  배나 받는다' 하는 그것은 성화된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질은 없어집니다. 물질은 없어지면 그것이 영원히 자기 것으로  영원히 진리에 속한 것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 그것이 영원히 진리와  성령에 속한 것으로 일단 없어져 가지고서 모든 물질계 속에 있다가 예수님  재림하시면 그것이 함께 신령한 나라로 자기 소유로 옮겨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아니하고 백 배나 받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사람은 이 세상에 있어서 그렇게 해도 그것 때문에 없어지고 진리와 주님 때문에  대립이 돼서 죽었으면 죽은 그 사람은 영과 마음은 영계 가 가지고서 낙원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오고 만일 그와 같이 그 진리와  주님을 배반치 안할라고 함으로 말미암아 꼭 죽을 터인데 죽지 안하고 살았다  말이오. 자기는 생명을 다 내어 놓고 이렇게 자기는 죽을 것으로 이렇게 아야  생각하고 모두 다 죽일라 하고 그건 죽일 수밖에 없는데 죽지 안하고 살아났다  말이오. 살아났으면 그것은 세상에 있는 것인데 세상에 있는 것이니 그 백 배나  받는 건 어떻게 되느냐? 그것은 그 가치적으로 가치적으로 기능적으로 또, 그의  사역의 영광적으로 그가 백 배라 하는 것은 뭐 인간의 만수를 가리켜서 십 배의  십 배입니다. 인간의 만수는 십이 인간의 만수인데 만수의 만수라 말은 인간의  측량으로 만만으로서는 만만의 만만의 그 성화가 되어서 가치성으로 만만 배가  되고, 또, 권위성으로 만만 배가 되고 그 사역성으로 만만 배가 되고, 또,  영광성으로 만만 배가 되고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입히는 것이 만만 배나 된다  하는 그런 것을 만만이라 하면 일만 만(萬)자 만만이 아니고 만 번. 그만수,  만수의 만수의 만 만만만, 가득찰 만(滿)자 만만. 차고 차고 차고 만만 배를  받을 수 있다 하는 그런 것을 포시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것을 좀 그 여러 날이든지 여러 달이든지 계속하면 하나님의 도를  좀 알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데 요거 뭐 똑 시간도 요 주일날 오전 오면은  오전만 오고 마는 사람이 있으니까 요 시간에도 뭐 사십 분 넘으면 기니 짧으니  이라니까 그게 전부 마귀가 들어서 그런 것이고 완전히 옛사람이 돼 가지고 있어  그런 것입니다. 죽이는 그 테레비는 보면 두 시간, 세 시간이고 잠도 안 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는데 하나님 말씀 안 듣는 거 속에 귀신이 들어 그런  것입니다. 귀신. 아직까지 예수를 믿지마는 속에는 귀신이 들어 주장하고 성령이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갈 하늘나라는 이렇게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거보다도 더  어렵다고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왜 어려운고? 어려운 이유가 첫째로 죄가 없어야 하늘나라에 갑니다. 또,  둘째로는 마귀를 이겨야 하늘나라로 갑니다. 마귀 이놈이 지금 우리를 사로잡기  때문에 마귀를 이겨야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또. 사망을 이겨야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 세 가지 죄를 이겨야 되고, 마귀를 이겨야 되고, 사망을  이겨야 되고 이래 이 셋을 이겨야 하늘나라를 가지 하늘 나라는 병드는 것도  아니고, 늙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니고, 아픈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고통스러운 것도 아니고, 그 쇠해지는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거게는 언제든지 청청하게 영생하는 그 생명의 나라기 때문에 그 나라 가는데는  죄를 가지고는 못 가기 때문에 죄에서 완전히 해방을 받아야 됩니다. 죄에서  죄를 해방을 받아야 되고 또, 마귀에게서 해방을 받아야 되고, 사망에서 해방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랬는데.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난 다음에 '다 할 수  있다.' 이랬습니다. 다 할 수 있다 말은 할 수 있다, 하나 단수 같으면 하나는  할 수 있다 말이 아닌데 다 할 수 있다 말은 복수를 가리켜서 거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복수에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건설구원도  기본구원도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가 있다 하는 그 말입니다.

 그러면, 죄를 이길 자가 누구냐? 아무도 이길 수 없는데 이 죄는 이미 지었으면  그 죄의 값이 영원한 사망이기 때문에 영원히 사망을 당했으면 영원히 사망을 해  버리지 그 어째 영원히 사망했는데 뭐 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인간만으로는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신성과 인성 하나님이 사람  몸을 입고 오셔 가지고서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께서 죄를 없애는 데에는  죄의 형벌. 사망을 받아야 없어지는 것이지 죄의 형벌 받지 안하면 없어지지  않습니다. 죄의 형벌 받으면 그죄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런데 그 죄를 예수님이 대신 죄의 형벌을 받으셔 가지고서 죄의 권세를  없앴습니다. 죄의 권세를 없애고 우리에게 사죄의 공로를 입혀주었습니다.

사죄의 공로를 입혀 주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죄의 공로를  입었으니까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사망하는, 이 지옥가는 이것을 예수님이 대신  형벌을 받아 가지고서 공로 입혔기 때문에 우리는 그 죄의 형벌에서 벗어난  사람이 됐습니다. 벗어난 사람이 됐고, '또, 그 마귀를 벗어나는 마귀를  벗어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대신 행해서 하나님 명령대로 완전히 순종해서 완전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 순종했기 때문에 이 인간이. 인간 이 하나님에게 완전  순종해야 되는데 마귀란 놈이 순종하지 못하게 해 가지고서 순종하지 못한  이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순종해 가지고서 칭의를 우리에게 입힌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에게 의를 입혔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의로운 자이니까  정죄할 수가 없고. 또, 우리가 이 사망을 받게 됐는데 이 사망은 하나님과  끊어짐으로 사망이 된 것인데 예수님이 이와 같이 연결을 시켜서 이 사망에서  벗어나 가지고 생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는 죄를 벗는 그 공로요,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공로요, 마귀를 이기는 공로요, 하나님의 성령에게만  순종하는 공로요, 또, 이 사망을 이긴 공로요. 하나님과 이 화친의 결합으로서  다시 죽지 않는 영생을 가지는 이 공로를 베풀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로 우리가 기본구원은 얻었습니다. 기본구원 얻었다 말은 영은 구원 얻었다  말입니다.

 우리는 영과 육 이 둘로 되어 있는 사람인데 영은 예수님께서 세 가지 대속하신  이 공로를 입어서 영은 단번에 살았습니다. 영이 단번에 살 때에 어떻게  살았느냐? 영은 범죄하지 안했지마는서도 영의 소유가 되어 있는 이 심신이  범죄했는고로 이 심신 범죄한 이 범죄를 영이 주격 책임에서 사망을 했기 때문에  이 영이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하나님과 결합의 생명을 가지는데에는 자기에게  속한 이 심신이 앞으로 영원히 범죄할 그 죄까지 당겨서 주격 위치에서 영이  정죄함을 받지 안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영이 미래의 자기에게  속한 그 심신이 범죄할 미래의 범죄. 범죄하기 전에 미래에 범죄할 것 그것을 다  당겨서 자기의 심신이 영원히 범죄할 그 모든 범죄를 다 당겨서 책임을 지고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 정죄가 인간으로는 안 되지마는서도 하나님은 그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고서 언제든지 영합적이요, 시간과 공간에  제한을 받지 안하고, 시간에도 제한 받지 안하고, 공간에도 제한 받지 안하고.

모든 지혜와 지식에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된 것을 다 당신이 아시고  하기 때문에 당겨서 정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정죄를 입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도 우리는 나지도 안  했으나 우리가 범할 그 죄를 다 예수님께서 예수님께 다 부담을 시켜서 정죄를  해 가지고 예수님이 대형을 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각자의 그 영이 자기의 심신이 미래적으로 범죄할 것과 과거 현재  범죄한 것을 다 책임져서 정죄 받아 가지고 거게서 예수님의 사죄의 공로를  입어서 죄사함을 받아 사죄의 해방도 됐고, 또, 칭의의 공로를 입어서 행하지  안한 자가 다 행한 것 됐고, 또, 하나님과 원수된 자가 예수님의 공로로서  화친된 자가 되어 가지고 이 공로로서 이 공로를 백 프로 완전히 입어 가지고 이  영은 단번에 영생하는 생명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죄와 상관이 없습니다. 죄와 상관이 없고, 또, 이 모든 마귀와 상관이 없고  사망과 상관이 없이 이렇게 하나님과 결합돼 가지고 다시 살아난 것이 영의  구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은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영은 구원을 이루었는데, 여게 여러분들이 이래 들으면 이거 굉장히 거석한  느린 저니까 이것을 가르칠라고 하면은 그래도 몇 달 이렇게 가르쳐야만 되는  건데 이거 간단하게 하니까 뻐꿈뻐꿈 하나 여러분들이 양심을 쓰면은 영감이 와  가지고서 알려 줄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의 이 하늘나라는 죄가 없어야 되고, 죄를 이겨야 되고 이미  죄에게 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미 졌기 때문에 죄를 이겨야 되고. 마귀를  이겨야 되고, 사망을 이겨야 되고 이렀는데 예수님께서 사망으로 사망을 이기고.

죄로 죄를 이겼습니다. 당신이 죄 없이 죄인이 돼 가지고서 죄를 이겼고, 또, 그  당신이 이와 같이 그 모든 불법을 당신이 짊어지심으로서 짊어지시고 당신은  영감을 소멸하지 안함으로서 이 마귀를 이기게 됩니다. 마귀는 불법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혔으나 이사야 53장에 보면은 실은 그는  외형적인 형벌을 받지마는서도 속으로는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것과 우리 일을  책임지는 것과 이 두 가지를 변하지 안하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는 자라 그렇게 결론을 지워서 이사야 53장 끝 절에 말씀해  놨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다 모르나 이제 우리의 구원은 두 가지 구원인데 하나는  기본구원이라고 하나는 건설구원이라는데 기본구원에 속한 것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마는서도 첫째가 뭐이냐 하면 영 구원입니다.

 우리가 영과 몸이 합해 가지고 육이 합해 가지고 사람인데 영이라는 것은 어떤  게 영인가? 영이라는 것은 어떤 게 영인가? 영은 하나님의 모형으로 생긴 것이  영입니다. 창조주가 아니면서 피조물이면서 창조주와 꼭 같이 생겼습니다. 그  속에 있는 실력은 달라 피조물이지마는서도 외형은 이 창조주와 꼭 같이 되었기  때문에 요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형상대로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라  말은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속성대로라 말이요. 하나님의 신성대로라  말입니다. 이래서 된 그것이 영입니다.

 영이고. 우리의 육은 흙에서 만들었습니다. 흙으로 만들어서 내나 짐승  만들듯이 이 모든 식물 만들듯이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이라 하는 것이 짐승과 꼭 같습니다. 다만 고등 동물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보다 차원이 높은 것 뿐이지 꼭 같습니다. 흙에서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은 흙에서 된 것이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당신과 꼭 같은 당신  모양대로 삼위일체가 의논해 가지고서 특수 창조물로서 창조된 것이 사람의 영인  것입니다.

 사람의 영은 천사도 사람의 영 같지 안하고. 천군도 사람 영 같지 안하고  하늘나라도 사람의 영과 같은 거 없고, 땅에서도 사람의 영 같은 거 없고.

사람의 영은 하나님 다음으로 하나님의 모형, 원형에는 모형, 조화와 생화.

생화를 닮은 것은 조화라. 조화는 생화를 닮는데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이와  같은 말과 같이 하나님이 아니면서 하나님과 꼭 같애서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사람의 영인 것입니다.

 사람의 영이라는 이 영에 대해서도 이 공부도 많이 했는데도 이 일반 교계에서  이 사람의 영이 뭐이라는 것을 똑똑히 정의해서 아는 일이 이제까지 별로이  없었습니다. 칼빈도 사람의 영에 대해서 이성적 영이라. 사람이 이성과 같은 그  이성적 영이라. 이성이 이성과 같은 건데 성경에 영이라고 말했으니까 이성은  따로 말했고 영은 따로 말했으니까 이성하고 영하고는 이래 손바닥 같이 이와  같이 붙어 있는 것이다. 그래 해석했습니다. 붙어가 있으니까 요리 보면 영이요,  요리 보면 이거는 마음이라. 이성 이라. 이래서. 이쪽으로 보면 이성이요,  이쪽으로 보면 영이니까 이걸 어데까지 쪼개 가지고서 요게 까지는 영에 속하고  요게 까지는 그 이성에 속했다 그래 할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성적 영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거는 똑똑히 몰라 그렇습니다. 이성은 영이 아닙니다. 이성은 이성은 이거는  육에 속한 것이요, 마음에 속한 것입니다. 영이 아닌 완전히 이거는 별개의 따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이성은 뭘로 만들었느냐? 이성은 흙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성은 흙으로 만들었는데 이성이라 하는 짐승을 만들 때에 그 짐승을 사람의  이성과 같은 그것도 만들었는데 그걸 가리켜서 성경에서 그 사람의 이성 같은  이름을 붙이지 안하고 그것은 본능으로 이름을 붙여 놨습니다. 본능으로 이름을  붙였어. 그러나 본능으로 이름을 붙였지마는서도 짐승에게도 이성과 같은 그런  것이 있습니다.

 이성이라 하는 것른 무슨 이치를 따져 가지고서 계산을 댈 수 있는 그것이  이성인데 짐승도 그 이성이 있기 때문에 도야지가 새끼를 쭉 거느리고 이래 갈  때에 강건한 놈은 애미가 훅 뛰어 건너니까 새끼도 자기가 보고서 용기 있으면  훅 뛰어 건너고 약한 놈은 그 뛰어 건널라 보니 아마도 계산 대 보니까 뛰어  건널 수가 없으니까 뛰어 건널라 하다가 또, 뒤로 주저하고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계산해 보니까 안 되니까 못 뛰어 건넙니다. 그리고 자꾸 꽥꽥거리고  꿀꿀거리고 습니다. 울면 할 수 없어서 그 애미 도야지가 거기서 가지는  안하고서 도로 뛰어 건너 오면은 이제 따라서 뛰어 건너갔던 새끼가 도로 뛰어  건너 가지고서 그 새끼를 거느리고 딴 데로 이래 가는 것입니다. 그거는 이성적  계산 판단이 없으면 그 안된다 그 말이오.

 원숭이 중에도 원숭이 중에도 큰 원숭이 그 원숭이 이름을 내가 잊어버렸다 그  뭐이지? 원숭이, 큰 원숭이 사람만한 원숭이, 어? 뭐? 어? 고릴라 아닌데. 어?  아따 그 내가 지금 이름을 잊어버렸어. 그거는 또, 사람만치만하고 운전도  잘하고 돌아다니고 이래 다 잘합니다.

 이래서 영과 육이 되어 있는데 영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완전히 단번에 이  구원을 얻어 가지고서 하늘나라에 맘대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돼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지금은 그 영은 이 마음속에 들어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 영이  중생을 받았지마는서도 그 영이 하늘나라를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마치 우리  마음은 우리 몸을 벗어나 가지고 있을 수 없고, 또, 영은 우리 마음을 벗어나  가지고 있을 수 없고 그 안에 거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 세상을 떠날 때  어찌 되느냐? 세상을 떠나면은 이 육은 살아난 기능이 물질 안에 머물러 있고 와  그것은 변화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변화 못 받은 것은 이 공간 속에 못  들어간다. 구멍이 없는데는 못 가. 우리의 육이라 하는 거는 구멍이 뚫혀야 되지  요만한 구멍이 뚫히면 이 주먹만한 게 못 들어간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공간과 이 시간의 제한을 받는 것인고로 이것은 죽었을 때에  영은 하늘나라 가는데 이 육의 기능은 같이 가지 못하고 변화를 받기 위해서  예수님 오실 때 변화 받기 위해서 신령한 몸으로 변화 받기 위해서 머물러 있고,  이 마음이라 하는 이것은 신비한 것이라서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영이 우리의 마음만 입고 낙원에 가 가지고 기다리다가 예수님 오실 때에  재림해서 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은 단번에 구원을 얻었는데 단번에 구원 얻은 거 무슨  구원이냐? 죄에서 죄를 이겨서 죄에서 벗어나서 죄에서 자유한 자, 마귀에게서  자유한 자, 사망에서 자유한 자 이 자유를 세 가지 자유를 영은 얻었기 때문에  영은 단번에 이 자유 얻어 가지고서 하늘나라에 들어간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앞으로 무궁 세계 하늘나라가 아니라 이 세상에 있는 하늘나라에 들어갔으니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갔다 그 말이오. 진리 안에 사망이 없는 세계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영원히 죽지를 안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음이 없는, 죄가 없는, 악령이 없는 하나님 모시고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이 세계 속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영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영이  있지마는서도 마음속에 있지마는 이 영은 진리와 이 진리 속에 영감 속에 이  생명 속에 들어 살기 때문에 마음 안에 있지마는 영과 우리 마음과 그 거리가  멀리 돼 있습니다. 멀리 돼 가지고 있는데 언제든지 우리 마음과 이 몸을 구원할  때에는 이 예수님의 대속의 세 가지 공로와 성신의 감동과 진리와 이 셋이 합해  가지고 그 피와 성령과 진리와 이 셋이 합해 가지고서 우리 영을 살려서 우리  영을 살려서 셋이 우리 영을 통해 가지고 우리 마음에 들어와 가지고 역사하지  우리 영을 통하지 않고는 우리 마음에 들어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기본구원에 속한 우리의 영의 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단번에 입어 가지고 구원을 받았지마는서도 우리 지금 구원될 문제는 뭐이냐  하면은 우리의 구원될 문제는 영은 구원받았으나 육은 구원받지 못 했기 때문에  우리의 육이 지금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지금의 노력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의 구원을 가리켜서 행위구원이라 말하는 것은 육의 구원은  우리의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가 무슨 행동? 세 가지로 중생된 그 영의  지배를 받아 가지고서 영의 지배를 받으면. 영의 지배를 받으면 피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과 진리의 능력이 우리 중생된 영을 통하여서 나를 지배할 때에 그  지배를 내가 받으면 내 마음이 받으면 이제 내 마음이 그것이 구원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지금은 무슨 일 할 때인고 하니 영의 구원이 아니고 이 육의 구원을  이루는 구원인데 이 육의 구원은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구원되기 때문에 이  구원을 가리켜서 행위구원이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고 또, 이 심신의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육의 구원은 행위를 통해서 되어지는 구원인데 이 구원은 단번에  되는 구원이 아니고 이 구원은 집을 건축하듯이 조금씩 차근 차근 자꾸 건축이  되어져 가는 이 구원이기 때문에 건설구원이라 그렇게 말을 하고, 또, 이 구원을  내나 또, 성화 구원이라 그 말은 이 구원이 중생된 영화, 또, 진리화, 영감화.

예수님의 피화 이렇게 화해 가지고서 성화되어서 이것을 가리켜서 성화구원이라  그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지금 오전에 이런 것은 다 서론이고 오전에 지금 설교할라고  하는 그 목적은 무엇이냐 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그러면 그거는 절대 안 된다는 말인데 절대 안된다는 것을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고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가 있다 이랬습니다.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다.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다 그 말은 죄의 문제, 마귀의 문제,  사망의 문제 이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죄의  문제는 사죄로 죄의 문제가 해결된 것이고 마귀의 문제는 칭의로 해결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유혹 시켜서 자꾸 유도하는 것인데 영감에 복종함으로서 마귀를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영감에 복종함으로 마귀를 이기게 되고 사망을 이기는  것은 사망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과 결합이 됨으로서 사망을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이 세 가지를 우리가  입어야만 이 구원이 되는 것인데 영은 이 세 가지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이 세 가지 구원을 대속의 공로로서 예수님이 이루어 놨는데 그 이루어 놓은 그  공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 구원을 우리 영은 단번에 받았는데 그 구원을  우리들에게 주느라고 우리들에게 주느라고 힘을 쓴, 주느라고 힘써서 그 구원을  우리에게 연결시켜 가지고 그 구원을 우리 구원이 되도록 이렇게 역사하신 이  건설을 하신 이 시공을 하신 이 시공자가 둘이 있으니까 그 시공자는 누가  시공했느냐? 그 시공자는 진리와 성령이십니다.

 진리와 성령은 예수님의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접선시켜 가지고  이 대속의 공로를 저희 것 삼아 이 대속의 공로는 제 것 되고 저는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주님의 것이 돼 가지고서 이제 주께 속해서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대로 사는 자, 이 대속의 공로대로 사는 영이 됐기 때문에 영은 중생하고  다시는 죽지 않습니다. 이래 가지고 영이 중생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중생된 영은 다시는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이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입고 살도록 그렇게 보조 역활을 해  가지고서 이 일을 협조해서 이 세 가지 대속의 공로를 벗지 안하고 입고 사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노력한 그 노력자가 누구냐? 그 공로자가 누구냐? 그  노력자가 누구냐? 그 수고자가 누구냐? 이 일을 건설한 자가 누구냐? 이것을  가리켜서 진리와 성령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성령으로 우리 영이  중생됐다 말은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진리와 성령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연결시키기 때문에 중생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령은 예수님의 공로를 우리에게 완성시키기 위해서 온 것이  성령이요,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기를 '이제 보혜사  성신이 오면 너희들이 보혜사 성신이 내게로 인도하리라. 진리 속으로  인도하리라. 진리는 내 것이라, 내 나라는 진리의 나라라. 그 진리 안으로  인도하리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의 영이 하늘나라 들어가는데에는 이 세 가지를 문제를 해결  지워서 죄를 해결 짓고 완전히 죄 없는 죄에서 자유해서 죄 없는 자 죄를 완전히  이기는 자, 죄를 이겨서 다시 죄에게 지지 않는 자, 또, 이 모든 악령의 유혹을  다 이기고 악령의 미혹 받는 자가 악령에게 미혹 받아 복종하는 자가 완전히  진리와 성령에게 복종하는 자가 되어지는 것으로서 이 악령을 이기고 이제  사망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인해서 화친의 새 생명을 받아서 사망을 이긴  자가 다시는 사망하지 안하는 사망의 일을 하지 안하고 사는 생명의 일만 하는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하나님과 화친돼 가지고서 하나님에게 통치 받아서  하나님이 나를 주권해 가져 가지고 하나님이 동하면 내가 동하고 하나님이  정하면 내가 정해서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그 피동으로만 계속하기 때문에  다시는 사망이 가까이 오지 못하는 이런 생애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이 다 기본구원, 우리 영의 구원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의 구원은 영의 구원도 사람이 할 수 없는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를  자기가 힘입어서 그 공로를 믿어 힘입어서 영의 구원 얻었는데 이 공로를  힘입도록 그 공작을 꾸미고 그 화합을 꾸민 그 역사를 누가 했느냐 하면은  진리와 영감이 했습니다.

 영감이 해서 이거는 단번에 영은 구원 얻었는데 이제는 영이 중생할 때에는  일이 쉽습니다. 영이 중생할 때에는 성령과 진리가, 성령과 진리가 우리의 영과  예수님의 대속의 이 세 가지 공로와 연결을 시키면 되는데 연결을 시키면 되는데  우리의 이 심신이 구원 얻는 것은 성령과 진리가 이 심신의 구원을 이루도록  역사를 하는데 그전보다 좀 더 어려운 것은 뭐이냐 하면은 예수님의 공로,  예수님의 공로와 우리 마음을 연결시키는데는 예수님의 공로와 우리 마음과 그  이합, 이 둘이 합해지는 이 역사가 아니고 삼합이 됐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대속의 공로를 입은 우리의 주격인 영과 또, 우리의 마음과  이렇게 삼합이 돼야 되기 때문에 이것은 더 어렵고 또, 사람이 이 일을 해서  사람을 통해서, 이러기 때문에 이 공로는 벌써 영이 여게 가담됐기 때문에  이것은 사람의 행함을 통하지 안하면 안 되는 것일니다. 영이 구원 얻은 것은  하나님이 직접 했지마는서도 우리의 심신의 구원이라 하는 것은 인간의 주격체인  그 영에게 권리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 직접하면은 월권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월권하지 못하고 영을 통해서 하게 됩니다. 영을 통해서 하게 되니까  영은 사람이기 때문에 영을 통해서 하니 영을 통해서 하니 사람의 행동이  그에게는 관련되기 때문에 행동을 통하지 안하면 이 건설구원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심신의 구원은 우리가, 우리가 이 기본구원을 얻은 이  기본구원의 은혜를 입어 가지고서 또, 기본구원을 얻은 그 영의 은혜를 입어  가지고서 중생된 영의 도움을 입고, 또, 이 협조하는 진리의 도움을 입고, 또,  영감의 도움을 입고 이래 가지고 예수님의 피와 연결이 돼 가지고 우리가 살게  되기 때문에 이 일은 우리가 행함을 통하지 안하면 안 되기 때문에 행함을  통해서 되는 것인고로 행위구원이라 네가 행한대로 갚으리라 하는 그는 전부  행위구원에 속한 말입니다. 행한대로 갚으리라 하는 것은 행위구원에 속한  것이요. 네가 이 계약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이 계약대로 행해 주신다.' 오늘  네게 명하는 것을 지켜 행하면 너를 거들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들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겠다'하는 이것도 다 이 행위구원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우리의 이 행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행함을 통해서 이루어 지되  단번에 이루어지지 안하고 마치 집을 지으면은 기초 놓고 그 다음에 뭐 또,  기둥하나 세우고 뭐 세우고 하는 것처럼 이렇게 건설적으로 차차 차차차 지여서  건축적으로 되어 가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을 가리켜서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하나님의 전이 지어져 가느니라, 전이 지어져 가느니라. 전이 지어져 가느니라.'  너희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전을 지어라. 하나님의 전이 지어져 가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래서. 요건 단번 구원이 아니고 이렇게 점축적으로 점점  이래 점축하고 점축해서 점축적으로 나가기 때문에 건설구원이라 이렇게 말한  것이고. 또, 그 건설구원을 성화구원이라하는 것은 그러면 건설되면 건설된 것은  어떤 본질과 본성으로 건설되느냐? 그 본질과 본성은 성화적이다 성화라. 성은  무얼 가르치나? 성은 하나님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중보자이신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러기 때문에  성화적이라. 예수님 화 된 것이라. 예수님과 꼭 같이 되어서 예수님화 된  것이라. 예수님의 화 된 것인데 이거는 단번에 되지 안하고 점축적으로 자꾸  점점 건설돼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지어져 가느니라. 이런데, 이것은 인간들이  자신이 행해야 된다. 왜? '영과 육이 행해야 이 일이 되어지지 행하지 안하면 이  일이 안 된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오전에 지금  증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입니다.

 그러면, 이 영이 구원 얻은 이 영 구원은 우리가 생각할 필요도 없고, 우리가  힘쓸 필요도 없었고 우리가 언제 그 영 구원이 이루어진지도 몰랐습니다. 영은  내 속에 있었지만 영은 완전히 마귀란 놈이 영하고 우리의 그 마음하고 몸하고,  영하고 육하고 이 가운데를 차단시켰습니다.

 이러니까, 예를 들면 한방에 있지마는서도 한방에 있지마는서도 차단을  시켰으니까 한방에 들어 있지마는 서도 통하도 못하고 만나지도 못합니다.

만나지도 못하는데 영은 또, 그때 어찌 돼 있느냐? 영은 죽어 있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만 살지 다른 거와 연결돼 가지고는 살 수 없는 하나님의  모형이기 때문에 그러면 안 믿을 때에는 죽은 영과 이 심신과 합해 가지고  사람이었는데 중생 후로부터는 산 영과 심신이 합해 가지고서 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이 심신의 구원, 이 건설구원, 행위구원, 성화구원. 이 구원  이것은 무슨 구원인가? 기본구원 얻는 것은 영이 구원 얻는 것인데 그 구원은  무슨 구원이냐? 하늘나라의 시민권 얻는 것이라, 하늘나라의 시민권 얻는  것이요, 영생 얻는 것이라. 영생도 꼭 같은 영생입니다. 또, 시민권도 꼭 같은  시민권입니다. 부활도 꼭 같은 부활합니다. 그 하늘나라에 살기도 꼭 같이  삽니다.

 그런데 이 심신의 구원이라 하는 이 건설구원이라 하는 건 어떤 구원인가?  하늘나라에 가서 사는데 꼭 같이 사는데 그의 실력이 다르고. 다 같이  하늘나라에 가서 살기는 사는데 그의 실력이 다르고, 실력이 다르고, 또, 하나  다른 거는 뭐이냐? 다른 것은 그이의 그 사역이 다르고 일하는 사역이 다릅니다.

일하는 사역이. 그것을 그저 알아듣기 쉽게 표시해서 '한 고을을 다스린다. 두  고을을 다스린다, 열 고을을 다스린다.' 그렇게 말을 했는데 그 사역이 다르고,  또, 하나 다른 거는 뭐이냐? 사역이 다르니까 대우가 다릅니다. 대우가 다른  것은 뭐이냐면 영광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또, 모든 피조물들이 우리를 평가하는 것이 그 평가해서 다 호평을  가지고 우리에게 감사해서 하는 그것이 영광인데 그것은 어데 나오느냐? 그것은  우리의 사역이 다른 데서 나왔습니다. 사역이 적으면 적고 사역이 크면 크고 그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 혜택을 입은 존재가 아니면 거기  대해서 영광을 돌릴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사역이 한 사람에게만 가고 두 사람에게 못 가는 것도 있고,  내 사역이 천 사람에게 가는 것도 있고, 내 사역이 인류에게만 가고 그 다른 데  못 가는 것도 있고, 내 사역이 인류와 모든 영물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갈  수도 있고 이는 사역에 따라서 그 영광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역은 어데 따라서 달라지나? 사역은 자기의 실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실력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마련하는 것은  뭐이냐? 부활도 꼭 같은 부활입니다. 부활은 꼭 같은 부활인데 다만 부활한 자의  그영광과 다릅니다. 셋이가 다릅니다.

 그러면, 우리가 다른 것은 하늘나라 가는 것도 꼭 같고, 영생도 같고.

하늘나라의 시민권도 꼭 같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것도 꼭 같고 꼭 같은데  다만 몇 가지가 다르냐? 손가락으로 한번 가르쳐 보이소. 몇 가지 다릅니까? 몇  가지가 다릅니까? 예수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의 다른 것이 몇 가지입니까? 이거  전연히 모르는 모양이라. 이거 하기는 요 하나를 가지고서 며칠해야 됩니다.

이런데, 이래 막 시간은 없지 여러분들 와서 배우지는 안하지 주일도 잘 안  지키지 이래 놓으니까 무슨 구원 돼? 구원 안 됩니다.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몇 가지 다른고. 네. 이 세 가지 다릅니다. 세 가지. 세 가지가 뭐이 세 가지가  다른고 하니 첫째는 실력이 다릅니다. 기능이 다르다 그 말이오, 기능. 실력이  다르고, 둘째로는 그의 활동이 다르고 활력이 다릅니다. 활동이 다르고,  셋째로는 대우가 다르다 말이오. 영광이 다르다 그거요. 이러니까, 이거 뭐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오. 간단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우리가 오늘 이 자리 지금 참석하고 한 자리에 예배를 드리고  있지마는서도 세상적으로 가치가 얼마나 다릅니까? 가치가 다른 것은 그 실력  다르다 말이오. 저 사람은 그 물질적 실력이, 지식적 실력이 이 정권적 실력이.

모든 활동적 실력이, 모든 사람들을 지배하는 지배적 실력이, 사람들을  설복시키는 설복적 실력이 그 실력이 뭐 백 가지도 천 가지도 넘었는데 그  실력이라 말이오. 실력이 다른 데서 인간의 가치가 차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루 그 한 오천 원만 받을라 해도 안 줘요. 오천 원만 줄라 해도 오천  원만 달라 해도 일 안 시켜요.

 이 사람은 하루 십만 원 줄라 해도 안 할라 해. 우리 여게서는 아마 여게서는,  여게서도 뭐 하루 십만원 줘도 오라 해 가지고 안 갈 사람 많이 있을 걸요.

'만일 오늘 내가 십만 원 줄 터이니까 오늘 좀 우리 집에 와 주십시오.'  가겠습니까? 아마 못 갈사람 있을 거야. 못 갈 사람 있을 거라 말이오. 또, 어떤  사람은 하루 백만 원 준다 해도 못 갈 사람 있을 것이라. 그런 자 아니겠소?  어북 직장에 조그만 직장에 있는 사람이라도 '오늘 내가 백만 원 줄 터이니까  오늘 오라' 하면은 그 사면 안 하고는 못 가니까 못 갈 사람 많을 거라 말이오.

또, 어떤 사람은 아마 천만 원 줘도 또, 안 갈 사람 있다 그 말이오, 못 갈  사람.

 그러면, 실력이 그것이 인간의 가치입니다. 실력이 인간의 가치요, 또, 그  사람이 실력이 있다 할지라도 활동은 어느 범위에 했느냐? 제 활동한 그 활동이  활동의 그 혜택이 어데까지 갔느냐? 제 활동의 혜택이 간 데만 활동의 혜택이  간데만 영광이 있지 안간 데는 영광이 없어. 자기의 활동의 혜택이 가 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손해가 봤으면 욕이 올 거라 말이오. 그 활동의 그 실력의 활동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봤으면 칭찬이 오고 감사가 오고 영광이 올 거라 말이오.

이런고로, 인간의 가치 차이는 실력과 활동과 그 영광의 차이가 있는 그것으로서  인간 가치 차이라. 그러기 때문에, 사람도 천층만층 구만층이라. 그런데. 부활한  사람들의 영광은 그 가치가 얼마나 차이 있겠느냐? 그 차이 있기를 그렇게 말해  놨습니다. 귀에 안 들어가. 귀에 안 들어가니까 잠이 온다 그 말이오. 들어갈  리가 전혀 돈이나 생각하고 요거 얼마 받고 팔면 되겠노? 요거 비싸나? 어데가서  뭘 떼다가 좀 팔아보꼬? 고거 나 생각하니까 이런 거 잘 안 들어 가. 그런 거 다  치워 버리고 지금 예배드릴 때 예배만 드려요. 예배를 잘 드리면 그것도 돼져.

 그러니까, 이제 이 실력의 차이로서 인간 차이인데 부활한 사람의 영광 차이는  얼마나? 부활한 사람의 실력 차이는 얼마나 차이가 있으며 부활한 사람의 활동의  그 자기의 활동의 차이는 얼마나 차이가 있으며 부활한 사람이 모든 인간과  하나님과 모든 존재들에게 환영 받는 그 영광의 차이는 얼마나 차이가 있느냐  하는 그 차이를 고린도전서 15 장에 여러 가지로 말했지마는 한 가지 말하기를  그랬습니다. '형체는 형체는 다 같은 형체이지마는 서도 형체마다 그 영광을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 형체의 영광이 차이가 있는데 땅에 있는 형체도 있고,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하늘에 속한 것, 별의 형체도 있고 달의 형체도 있고,  해의 형체도 있다.' 그러면. 땅 위에 있는 모래알 그것도 한 형체라 말이오.

모래알 우리가 바다 해수욕 갈 때 모래 알 그 하나도 전부 형체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 형체와 하늘의 태양 한 개와 그 형체와 크고 작은 것이 얼마나 차이  있으며, 세력이 얼마나 차이 있으며, 그 영광이 얼마나 차이 있느냐? 해 하나에  대해서 천하 사람이 다 은혜를 입기 때문에 만일 누가 있다가 '해 이거 없애  버린다.' 하면 아마 천하 인간이 다 반대할 것이오. '아, 해 없으면 우리 못  산다. 없애면 안 된다.' 이렇지마는 바다 모래알 그것이 '이 모래알 이거 전부  불에 태워서 없애 버린다.' 뭐 할지라도 혹 해수욕 가는 사람이나 반대할까  그까짓 누가 반대하겠소?  이러니까, 이렇게 형체와 형체라는 이름을 가졌고 그 형체는 다 같은 게 아니고  형체는 각각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형체의 권세와 그 활동과 영광의 차이는  이렇게 차이 있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의 차이는 이렇게 차이가 있다.'  그것으로서 그 비해서 말씀을 해 놨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우리들이 기본구원은 꼭 같소. 사도 바울의 기본구원이나  아브라함의 기본구원이나 내 기본구원이나 여러분들의 기본구원이나 꼭  같습니다. 하늘나라의 시민권도 꼭 같소. 영생도 꼭 같소. 하나님의 아들된 것도  꼭 같소. 이 다음에 부활할 것도 꼭 같소.

 이런데 다만 이 세 가지가 차이 있다 말이오. 실력이 차이 있고. 활동력이 차이  있고 그 다음에는 이제 대우 받는 그 대우가 차이 있으니까 이것은 오늘날에  마련해야 되는데 마련하는데 이 마련하는 것이 다 이것이 죄를 첫째는 이겨야  되겠고, 마귀를 이겨야 되겠고. 사망을 이겨야 되겠고 멸망을 이겨야 된다  말이오. 우리의 활동하는 이 모든 실력이 마귀 이기는 실력 죄 이기는 실력,  사망 이기는 실력. 이러니까, 이 실력이 이것이 영생하는 실력이라 그 말이오.

이 실력이 어데서 나오는가? 예수님의 공로에서만 나오지 딴 데서는 나오는데가  없습니다. 이 공로에서 나습니다. 나오니까 이 공로를 우리가 입으려고 할 때에  어떻게 되어지느냐? 이 공로를 입기가 얼마나 어려우냐? 요거 내가 지금  말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공로를 입기가 얼마나 어려우냐?  마태복음 10장 37절로 39절에는 말씀 하시기를 '나보다 어떤 것이든지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내게 합당치 않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거 건설 구원을  이루는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구원, 시신의 이 활동의 구원. 이 심신의  영광구원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인데 이 구원을 얻으려고 하면은 구원 얻으려고  하면은 진리와 성령이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따라해야 된다, 진리와 성령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 진리와 성령이시 키는 대로 하면은 그 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렵느냐? 그 시키는 것은 예수님의 이 세 가지 공로를 입게 하는 것인데  이 세 가지 공로를 입게 할라고 하면 이 세 가지 공로를 네가 입으려고 하면 이  세 가지 공로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 못 한다. 그 말이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이 세 가지 공로를 입어서 마지막 절정을 달성할라고 할  때에는 이 세 가지 공로보다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은 사랑하는 그게 절단나니까  '아이구 내가 세 가지 공로를 못 입어도 이 사랑하는 이걸 내가 버릴 수는  없다.' 이 세 가지 공로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이것 때문에 세 가지 공로를 내  놔야 될 거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 공로만을 위해서 살라고 할  때에는 이 세 가지 공로 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것이 세상에는 없어야 될 것이고  사랑하는 것이 더 없어야 된다 그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나보다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이러니까 여게도 '아이구  예수 믿으면 남편보다도 그만 예수를 더 사랑하니까 그 참 안 됐다.' 시기하지만  시기하면 뒈집니다. 알겠소? 어데라고 하나님을 시기해? 거게는 '네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치 안하면 안 된다.' 제 목숨보다 제 목숨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  되는데 뭐 가족이, 부부가 무슨 상관있어? 그 까짓 것들 그거 다 그 껍데기 그  밖의 것인데. 이러니 단정을 짓고 살아야 된다 말이오.

 '더 사랑하지 안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못하다' 마가복음 10장 29절로 30절에는  '나와 내 복음을 위해서 있는 것 다 빼앗겨도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뺏겨도  내가 예수님의 세 가지 공로는 나는 놓지 않겠다.' 이래야 이제 세 가지 공로를  제가 마련하고 이 세 가지 공로 속에는 실력과 활동과 영광이 다 들어있기  때문에 이래 할 수 있는 것이지 하나라도 '요거는 가지고 가야 되겠다.' 하는 것  있으면 안 된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 잡힌다' '내 직장 이거만큼은 안 된다, 내  생명만큼은 안 된다 내 가족만큼은 안 된다.' 안 된다고 하면은 고게 딱 걸리면  고것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내 놓고 그것 때문에 가야 되기 때문에 있는 걸 다  버리지 안하면 안 된다.

 누가복음 14 장에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있는 것 다 버리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 말했습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망대를  짓는 사람들이 앉아서 예산할 때에 그 예산해 가지고서 예산이 모자라면 시작 안  하는 게 낫지 예산이 모지라는데 시작했다가 나중에 도로 수치만 당하지  않느냐?' 이와 마찬가지로 이 건설 구원 얻는데 에는 이 구원 얻는데에는 자기의  있는 것이 다 절단나도 이 건설구원만은 놓지 않겠다 하는 그 사람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데, 공연히 건설 구원 이루는 것을 너무 쉽게 보기 때문에  예수교가 자꾸 썩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누가복음 14 장 25 절로 30절에는 '내게 오는 자는 부모와 생명을  미워하지 않는 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미워하지 않는 자. 그러면. 주님을  사랑하겠느냐 이것 사랑하겠느냐? 둘 중에 주를 사랑하려면 이걸 사랑하지  못하겠고 이걸 사랑하면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겠고 이 사랑으로도 걸릴 때 있다  말이오. 보다가 걸릴 때도 있고 사랑이 걸릴 때도 있고 더 그 사랑이 걸릴 때도  있을 터이니까 사랑이 걸릴 때는 '자, 이것도 사랑해야 되겠고 이것도 사랑해야  되겠는데 주님 사랑할라 하면 이걸 사랑하지 못하게 되고 이걸 사랑할라 하면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구나. 요런 현실이 딱 걸렸을 때에 그때 그만 다  주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다 떨어져 버리고 만다 말이오. 이러니까,  주님보다 사랑하는 것이 없고 무엇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는 요 사람이 돼야 구원  이룹니다. 아, 생명을 이 구원보다 낫게 여기면 마지막에 자기 생명이 끊어지게  될 때에는 '아이구 생명이 끊어지고 내가 이 구원 이루지 못하겠다.' 생명  뺏기지 않기 위해서 이 구원을 제가 내줘야 될 거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구원을 이루는데에는 이렇게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교는 부모고 형제고 자매도 전부 다 내 놔 버리면 저만 살라 하는  것이구만. 이제 이렇게 모든 것 땅 위에 부모, 형제, 자매, 재물, 자기 지위  권세 명예, 자기 몸, 자기 생명 이것보다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귀중히 여겨서  이것을 이 모든 것보다 귀중히 여겨 이 모든 것이 절단 나도 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귀중히 여겨 이 대속의 공로를 자기가 차지하고 이 대속의 공로에 속한  자가 되면 말입니다. 이 대속의 공로에 속한 자가 되면 이 대속의 공로에 속했을  때에 이 세상 걸 가지고 잡아 뜯으면서 '네 대속의 공로 안 놓으면 이거  절단난다, 절단난다.' 했는데 대속의 공로 때문에 절단이 난 것은 외형은 절단이  났으나 그것은 대속의 공로에게 속했고 대속의 공로의 것이 됐기 때문에 그는  영원한 산 것으로서 되어졌고 대속의 공로에 속했기 때문에 외형이 절단나도  그거는 대속의 것이 됐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 할 때 다 살아 날 것이요,  대속의 공로에 속했는데 아직까지 절단나지 안 한 것이 있으면 절단나지 안한  그것이의 형은 꼭 같지마는서도 실상은 대속에게 속해서 생명에 속한 것이라.

생명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세상에서 그 가치가 여러 배 천 배도 백 배도  더 가치 있게 되는 것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제 이 죽음에 속한 것 죽은 것을  거머쥐고 있던 것이 죽은 것을 이 생명에 소속을 시킬라 하니까 이 세상  마귀들이 와 가지고서 그 소속시키면 이거 뺏든다 뺏들어도 뺏들어도 내 소유가  이 대속의 세 가지에게 딱 들어붙어 가지고 연결돼서 놓지 안하고 연결돼어  있으면 그들이 없애 봤자 없애지 못합니다. 진리에 속한 것 어떻게 없애며.

하나님께 속한 거 어떻게 없애며, 사죄에 속한 거 어떻게 없애며, 칭의에 속한  거 어떻게 없애며 하나님과 화친에 속한 것을 어떻게 없애요? 못 없앱니다.

없애지 못합니다. 그들이 없애는 거 같지만 그걸 완전케 해 주는 것 뿐이오.

이러니까, 그것이 거게서 유형적으로 유형적으로 없어졌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는 것이요 유형적으로 그대로 남아 있으면 생명에 속해 가지고 남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전지전능 완전자에게 속해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가치적으로 권능적으로 지극히 높고. 이래서 그 다음에는 이제 이것이  근본 바로 됐으니까 하나님과 진리와 이 영감에게 속한 생명에 속한. 생명에  속한 재물, 생명에 속한 진리, 생명에 속한 권위, 생명에 속한 지위, 생명에  속한 희락, 생명에 속한 모든 가족 생명에 속한 것으로 다 이제 산 것으로 산  것으로 다 이제는 가질 수 있도록 근본이 뿌럭지에 속할 때에 어려워서 큰  어려움이 있으나 속하고 나면은 이제 산 것으로서 가득 차게 되는 것이 이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가정이 죽은 가정이 있고 산 가정이 있고 죽은 가정이  살라면 이 살기 위해서 일단 죽어도 이 생명에 속한 것을 요동치 안하고 생명에  속하면은, 생명에 속하면. 생명에 속했으면 없어질 거는 없어진 것으로서 완전히  생명에 속하게 됐고 남아 있는 것이 생명에 속했으면 남아 있는 것은 죄와  마귀와 사망이 해하지 못하니까 그것이 산생활 산활동해 가지고서 자꾸 산 거만  만들어 내고 산 거만 자꾸 생산해서 낼 수가 있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이 심각합니다.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은 이거 참 자기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 하고, 뜻을  다하고, 또, 자기의 모든 성품을 다하고 이 다해야 이 건설구원을 너희들이 얻을  수가 있다. 이 건설구원을 얻어서 너희들의 모든 가진 것의 생명에 속할라고  하면 생명에 속할라고 하면 일단 외형적으로 외형까지 변화가 돼 가지고서  생명에, 속하는 거 있고 외형은 변하지 아니하고 그 본질과 본성과 권능이  생명에 속한 거 있으니 권능과 생명에 속한 것은 다 같은 사람인데 그 육체를  가지고 살지마는서도 생명에 속해서 사는 육체가 됐다 말이오.

 됐으면 내나 그 이름 그 사람 그 얼굴 가져 있지마는서도 생명에 속했으니까 그  사람은 이제는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이기는 사람, 죄를 이기는 사람, 또,  마귀를 이겨서 성령에게만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 됐으니까 외형은  그렇지마는서도 그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그 속에 살아 가지고 그  사람을 움직여서 그 사람의 손이 하나님의 손이요, 그 사람의 입이 하나님의  입이요, 그 사람의 팔이 하나님의 팔이요 그 사람의 걸음이 하나님의 걸음이라.

예수님은 껍데기는 사람이면서 속에는 하나님이라. 하나님이 이래 가지고 그  예수님이 하는 모든 일이 그와 같이 된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제 이와 같이  해서 생명에게 속하게 되면은 우리는 외형은 같은 사람이나 같은 사람이 아니오.

같은 사람인데 한 사람은 날 마다 죽는 일하고, 한 사람은 날마다 사는 일하고,  한 사람은 날마다 살리는 일하고, 한 사람은 날마다 죽이는 일하고, 하나는  날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을 만들어 다 영생성의 완전성의 것을 만들고  하나는 자꾸 멸망 받을 것을 만드는 것이 그게 다르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이 건설구원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요걸 알아야 될  건데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이 표준을 이 마귀들이 들어서 잘못 생각했기 때문에  다 헛일이라 그 말이오. 이런데 그라면 '아이구 그렇지만 그거 어떻게 하겠느냐?  이거 그만 그라면 아예 안 될 터이니까 그만 치워 버리고 뭐 건설구원은 못 이룰  터이니까 기본구원이나 얻어 가지고 그만 하자.' 그랄라면 그래. 그래도,  하나님이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말이오. 하나님이 내버려 두지 안해요. 하나님이  내버려 두지 안하고 기어코라도 앞으로 꼬박꼬박 걸어가야 되지 안걸어가면 매를  때리는데 제까짓거 어쩔거냐? 죽을 지경인데 어째? 이러니까 강퍅한 자들이 매를  맞고 난 다음에 나중에 회개 했지 회개 안 한 자. 없어. 때려. 조지는데  제까짓거 어쩔 거야. 죽을 지경이니까 어짠다 말이냐?  이러니까, 아야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 받아 가지고 이래 갈 것이 아니고 우리의  건설구원 이루는데에는 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을 다 드려서 이루지 안하면 안  되고 이 첫째 아담에게 속한 것 이것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귀한 줄  알고 이것을 이것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희생할 때에 희생하는 것은 여게  속했기 때문에 일단 살아났고, 살아났고 살아났는데 살아남으로서 외형이  없어지고 살아나는 거 있고 외형이 없어지지 안 하고 살아난 것 있으니 외형이  없어지지 안하고 살아난 것은 내나 외형은 같은 것 같지마는서도 그 속에 능력이  진리의 능력이요, 영감의 능력이요, 예수의 사죄, 칭의, 화친의 능력이기 때문에  그 능력이 다르니까 그는 입에서 산말이 나오고, 산행동이 나오고, 산생활의  나오는 것이고 저거는 죽은 말 죽은 행동이 나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줄 알고  어려운 줄 알고 이거 다하지 안하면 안 됩니다. 다하지 안하면. 남겨 놓으면 안  돼요. 남겨 놓고 찌끄러기 제 마음대로 욕심대로 전부 다 살고 하루 종일 다  살고 제 욕심대로 뭐 시간이고 뭐이고 다 살고 땅의 것은 귀중하게 여기면서  그까짓거 제가 해 봤자 그 재물을 벌어 봤자 그 몇 해나 할 것인데? 재물 벌어  봤자 나중에 재물이 갑자기 없어질지도 모르고 오늘이라도 생명 거두어 가  버리면 그거 뭐 재물이 헛일인데. 영원한 부강 영원한 부강, 생명도 영원한  생명, 지위도 영원한 지위, 영원한 실력, 영원한 활무대, 영원한 영광. 존귀  영원한 것을 얻는데 영원한 그걸 제가 몰라서 그렇지 알았으면 하룻밤 가지고  있다가 없어질 것 머리를 싸자매고 제가 뭣을 실력을 갖춘다고 한다 할지라도 그  실력 갖춘 것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면허증 그 자격증, 그 자격증 딱 받고  난 다음에 그날 밤에 떠나 버리면 헛일인데 이렇게 불완전하고 위험천만한 이런  것도 이룰 라고 이제 전심전력을 기울여 가지고 하고 있는데 그것을 이 예수  안에 있는 이 구원을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을 가치를 알면 안 할 자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마태복음 15장 43절에 보화와 진주를 알고 난 다음에는  있는 소유를 다 팔아 가지고서 사지 안한 자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건설구원의 이 가치를 제가 믿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해. 믿지 않기 때문에  그 가치를 몰라 그렇지 이 건설구원을 자기가 믿음으로 참 그렇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람이 일 년만 사는 일 년 더 산다, 이거 이 약 한 개만 사 먹으면 일 년  더 산다, 일 년 더 산다 하면은 그 약 한 개에 일억이라 해도 일억 주고 사 먹을  사람 얼마든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일 년만 더 산다 해도 안 그렇겠소? 일 년  놔두고 '자. 이거 일억짜리 이거 한 개 사 먹으면 꼭 한 달은 그 생명이  연장된다.'하면 한 달 연장 된다면 사먹을 사람 많을 것입니다. 영생이라 하는  이 영생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영생하는 영생보다 더 큰 게  있습니까? 이 실력, 모든 우주와 영계를 통치 한 실력이 하늘과 땅의 것을  통치하고 그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도 다스릴 수 있는 이 실력, 모든 존재가 다  영광을 돌리는 이 영광 이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의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이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투자하지 안 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하는 것을 마태복음 13장  44절 이하에 말씀 해 놨습니다.

 내가 그렇게 안하는 건 '아, 내가 오늘 이래도 새벽 기도 못 나오겠는데 새벽  기도 나가다가는 이거 내가 직장이 떨어지겠는데, 새벽 기도 나갔다 가는 오늘  이 일군들 데리고서 모두 회사를 경영하는데 일을 못 하겠는데.' 네가 못 하는  그게 가치가 큰 게 아니라 네가 예수 안에 있는 이 그 성화의 구원 건설구원의  가치를 네가 모르기 때문에 소경이 돼 그렇고 마귀에게 꼬임 받을 때 마귀의  꼬임을 완전히 벗어나서 성신의 감화를 네가 바로 깨달으면 그렇지 안 할 자  하나도 없다 그 말이오. 직장이 못 돼도, 생명이 못 돼도, 생명이 뭐 다  어찌된다 해도 이 건설구원에 대해서 다 투자한다 했는데 그 뭐 직장이 무슨  문제가 있으며 지위가 무슨 문제며 좀 잘 먹고 잘 입는 그 까짓거 무슨 문제가  있나? 남한테 예의니, 체면이니 명예니 하는 그 까짓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있기를.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몰라 그렇다 말이오. 왜 모르느냐?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모른다 그 말이오.

 왜 마귀의 유혹을 받았느냐? 유혹 받는 것은 자꾸 자기가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마귀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벗어나지를 못해. 회개하기는 어렵기만 어려운 게  아니고 지극히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보면은 자기가 성신의 감화를 작은 감화를  소멸하지 안하면 큰 감화가 와 가지고 마지막에는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소원이  돼서, 하나님의 종들이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이 그렇게 억지로 바치는 것  아니오. 일편단심 소원이 그것입니다. '주여 어째 내가 늙어 죽지 안하고 병들어  죽지 안하고 주님과 주님의 도를 위해서 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이 축복을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밤낮 기도하는 게 하나님께 그 기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그럴 때에 다 기뻐하고 즐거워해서 자꾸 이래 했지 뭐 억지로  죽기 싫어 억지로 죽는 거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는 우리 건설구원의 가치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것이지  왜 모르느냐? 모르는 이유는 마귀에게 미혹을 받아서 마귀에게 가리워져 가지고  모른다. 왜 마귀에게 가리워지나? 마귀에게 가리워진 것은 네가 마귀를 차차  차차 그걸 쫓가 내 버리면 되는 것인데 지극히 작은 영감 순종하고 지극히 하기  쉬운 진리 순종하고 하나 순종하면 고 다음에 좀 어려운 거 순종할 수 있고 또,  순종하면 그 다음에 더 어려운 것이 오고 이래 나가면 너희들이 못 할 것 없이  다 될 터인데 너희들이 이 욕심이 들어 가지고 이거 전혀 순종하자 못하게 되기  때문에 멸망을 받고 있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건설구원은 이렇게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 더 귀하게 보는 것이 안 된다.'  누구를 누구를 그 주님을 미워할까요? 그겁니다. 그것을 주님보다 그것을  사랑해도 안 되고 그것을 주를 위해서는 아야 미워하지 안하면 안된다, 버리지  안하면 안 된다. 이거 있는 거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과 모든 성품을 다하지  안하면 안 된다, 애끼는 자는 다 잃어버린다,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자는 다  찾고 그 잃지 안하는 자는 다 버려지게 된다 그 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이 완전자에게 속하는 것입니다. 사망에 속해 가지고  어정거리고 있는 이것이 생명에 속할라 하면은 사망에 속한 것이 절단나나.

절단나나 생명에 속하기 위해서 사망에 속한 것을 가지고 생명에 속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박해를 당하면 박해를 당함으로 그것이 완전 생명에 속하기 때문에  영원한 것이 되어지는 것이고. 또, 생명에 속했는데 없어지지 안하면 없어지지  안했으면 그 사람이 생명에 속하기 전 사람과 후 사람이 다릅니다. 생명에  속해서 벌써 생명까지 내 놓고 죽을 고비를 지내도 '아, 나는 주님 놓지  안한다.' 이 사람으로 생명에 속한 사람과 속하지 안한 사람이 달라.

 생명에 속한 사람은 자기 모든 소유가 자기의 모든 어떤 지위나 권세나 명예가  또, 자기의 몸과 자기의 생명이 어떻게 된다 해도 주님 놓지 안할라고 위해서  주님의 속한 그 심신의 소유로 되어 있는 그 사람의 심신과 소유는 주님과  하나됐기 때문에 보기는 사람이지마는서도 하나님이 그 사람 붙들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 그 사람의 말하는 게 하나님이 하시는 말이라.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의 모든 언행 심사의 모든 것은 마귀를 다 죽이는 일이요,  죄를 죽여 멸하는 일이요. 사망을 죽여 멸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는  곳마다 사망의 시체가 나오고 사망의 시체가 나오고, 마귀의 시체가 나오고 죄의  시체가 나와서 가는 곳 마다 죄는 박살나고, 마귀는 박살나고, 사망은 박살나는  이게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이라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죽음에 속한 것을 생명에 속해서 살라는 것이오. 우리가 이  건설 구원을 이루는 것은 죽음에 속한 자가 생명에 속해서 무가치한 자가 가치  있는 자로 이렇게 멸망받을 자가 멸망받지 안할 자로 살아라. 모든 멸망시키는  일을 하고 사는 자야 사람을 살리는 일하고 사는 그 사람으로서 바꿔라 하는  그것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손해보는 거 아닌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건설구원을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만침 그 높이 평가하지 못 하는  것은 우리가 몰라 그런 것입니다. 모르는 거는 마귀에게 미혹을 받아 그런  것입니다. 마귀의 미혹을 벗어날라면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가? 마귀의  미혹을 벗어나는 것은 우리에게 믿음입니다. 믿음은 자기가 아는 대로 하나  꼬박꼬박 실행을 하면 돼요. 못 할 사람은 무능해도 좋아요, 어리석어도 좋아요.

 [기도]  썩어질 것을 그 가치를 아는 자마다 있는 일생을 다 바쳐서 그를 마련 하며  마련 한 자를 영광이라. 존귀라 자타가 다 평가하고 대우하는 이것은 다 썩을  것이요, 없어질 것이요, 오늘이라도 끝장날 수 있는 것이요 또, 그로 인해서  만들어 놓은 것은 전체는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사망에 속한 일들이요,  무가치한 일들이요. 다 영원성이나 완전성이나 불변성이 하나도 없는 것들이요,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기본구원을 얻은 영의 살려 주심을  받은 자로서 이룰 이 건설구원은 이는 그 실력과 그 활동의 모든 혜택과 그로  인해서 받은 혜택 받은 자의 그 영광은 측량 할 수 없는 하늘과 땅에 가득찬 이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이 건설구원의 가치를 아는 사람마다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시간을 아낌없이 다 투자하지 안할 자는 한 사람도 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가치를 알지 못하고 마귀에게 미혹 받아 가지고 다 믿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이 유혹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시사 성령으로  감동시켜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나 이밖에 천하에 있는 성도들이 이  건설구원의 영광과 존귀의 그 실력의 가치를 확실히 깨닫는 은혜를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역사하심으로 알려 주시옵소서. 알면 땅의 것을 투자하지 안할 자  없고 알면 자기를 주님에게 다 맡기지 안할 자 하나도 없는 줄을 압니다. 주님  다 알게 하사 이 건설구원을 위하여서 모든 것을 죽은 것을 썩은 것을 다 바쳐서  생명에 속하고 생명에 속한 것이 다시 땅 위에 있어 세상에서 얼마든지 생명  생활을 할 수 있는 이 능력 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구하고 원합니다.

 이제 다시 감사함을 드립니다. 광안리에 이 진리의 진영의 교회를 하니 허락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다음 주일 부터 그곳에서 예배드릴 때에 주님께서 그  지역에서 불러 모을 자를 다 불러 모아 주사 이 진리로 구원 할 자를 다  구원하여서 주님이 원하시고 원하시는 이 건설구원에 전심전력 모든 것 다  기울여서 힘써 구원 이루는 사람을 날마다 모아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또. 오늘 처음으로 나온 형제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주님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다 해 줄 수 없는 이 구원을 이루어  주신 사랑의 주님을 이제는 찾았아오니 주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래보고 주님을  호주로 모시고 온 식구들이 주님의 이 슬하에서 평강을 누리며 행복을 누리며  모든 것의 소망 가운데서 날마다 거룩한 생애를 의로운 생애를. 죄와 모든  마귀를 이기는 이 승리의 생애를 이루어 가도록 주님이 축복하시고 동행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모든 간구를 주님께서 다 들어서 이루어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도 더욱 더 인간을 구원하는  생명 역사에 충성 다 할 수 있는 능력과 깨달음을 더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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