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선지자선교회 1985년 4월 1일 월새

 

본문 : 막 10:46-52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어제 주일학교 또, 중간반 일부 이부, 장년반에도 그와 같은 성격의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그 세 가지 대속, 그 대속과 구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면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과 세 가지 구속과 연결이 될 수 있습니다. 연결이 돼서  우리 대신 예수님이 형벌을 받으셔서 우리 죄를 해결 지우신 그 공로와 예수님이  우리 대신 하나님의 요구의 율법을 행하신, 대신 행하신 그 공로와 또, 우리와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그 원수를 밀접한 화목을 일으킨 그 화목을 대신 하셔서  일으키신 그 공로를 우리가 그대로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고 이렇게 큰 대속을  받은 우리들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인정하고 또, 이 세 가지 대속을  우리들로 하여금 힘입어서 이 세 가지 대속을 벗지 아니하고 이 세 가지 대속을  입은 자로 영원히 살아야 될 이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살려고 하면 살 수 있도록  일을 도와주는 것이 둘이 있으니 도와주는 그 둘이 무엇인가? 도와주는 둘은  문서 계시로 나타난 진리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신격성을 가진. 인격성을  가진 하나님이요, 또, 진리는 신격성을 가진, 인격성을 가진 존재는 아니지마는  서도 하나님과 꼭 같은 그런 독자적 능력을 가진 진리이십니다.

 이래서. 성령님과 진리는 우리를 대신해서 세 가지 공로를 베푸신 이 세 가지  대속을 나 위해서 했기 때문에 이 세 가지 대속을 깨달아 진정 감사하면서 나는  주님이 나를 이 세 가지 면으로 대속하신 이 사실을 자기가 믿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님이 오셨고 진리가 왔습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 대속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성령님과 진리가 와 가지고 역사하는 이것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주님이, 나는 참 주흥 같고 진흥 같은 붉은 죄, 또, 순전히 마귀에게 복종해  가지고 털끝만한 일도 내 마음대로 하지를 안했고 내 마음과 몸은 순전히  마귀에게 복종 해 가지고 있던 이것을 주님이 나 대신 하나님 앞에서 복종해서,  하나님 앞에 완전 복종을 한 이 복종을 나대신 주님이 하셔 가지고 나는 완전  복종자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인정을 받게 한 이 대행한 일이 있기 때문에 이  공로를 믿으면 마귀는 우리를 침노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대신 형벌을 받아서 죄를 완전히 없앤 것을 내가 믿을 때에 죄는  나를 가까이 하지 못하고. 또, 내 대신 예수님이 대행하신, 대신 하나님의  율법의 그 무한한 율법, 참 끝이 없다고 할 만치 수많은 그 율법의 요구를  주님이 내 대신 다 실행했습니다. 실행한 그 실행을 나 대신 실행했기 때문에 그  실행은 내것이 된 이 사실을 내가 믿을 때에 악령은 나를 손대지 못합니다. 또,  주님이 나 대신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그 원수를 어쩌든지 밀접하게 화목하게  하려고 죽기까지 이 일을 노력을 했을 때에 죽기까지 노력한 그 화목의 노력을  하나님이 보시고 만족히 여겨서 화목을 시켜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천상 천하에  천군 천사 모든 것보다도 밀접한 화목이 된 이 사실을 우리가 믿을 때에 사망은  우리에게 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대형은 죄를 해결했고, 대행은 마귀를 해결했고, 또, 화친은  대신 화친은 사망을 해결해서 우리는 죄 없는 자이며 또, 성령의 감화대로 사는  자이며 또, 하나님과 화친해서 영생하는 우리인 이 사실을 우리가 믿을 때에,  믿을 때에 죄와 마귀와 사망은 우리를 해하지 못합니다. 믿을 때에 해하지  못하고, 믿을 때에 해하지 못하고, 또, 예수님의 구속이라는 것은 대속한 그  대속을 계속 우리에게 구속하시기를 힘쓰고 있는 이 계속 힘쓰는 그 면을  가리켜서, 대속이나 구속이나 다 같은 말이지마는 서도 대속은 대신 한 것을  중점으로 두고 말씀한 것이요 구속이라 하는 것은 대속보다도 우리를 구원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고서 말씀해서 구속이라 그렇게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이 우리를 구속하시려고, 주님이 우리를 구속하시면 어떻게  구속하시는가? 당신이 대속 하신 것을 우리에게 입히고 대속을 받은 자로 이렇게  영원히 살도록 하기 위해서 힘쓰시는 그 일을 주님이 계속하고, 주님 혼자  계속하시는 것이 아니고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신데, 성령님이 오셔 가지고 우리를 입은 대속을 입고 이  대속을 입어 구속하시는 이 구속을 계속 받아 가지고 실질적으로 죄와 상관 없이  죄를 어디서든지, 죄 속에 아무리 파묻혀도 죄를 범하지 안하고 죄를 이길 수  있는 자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자로, 또, 하나님과 화친을 가질 수 있는 자로.

 우리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께서 이 죄에 대해서, 악령에 대해서, 또, 하나님과  원수된 데 대해서 어떤 지경까지 이르러도 주님이 거게 대해서 침노를 받지  안하고 해를 받지 안하고 지지 안하고 최후까지 승리했습니다. 승리했음으로서  마귀는 완전히 패전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사탄에게 도전했습니다. 사탄에게 도전하고 또, 하나님에게 다시 재시청해서  도전한 셈입니다. 이제 다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 달라는 간구를  가지고서 대형 대행 대화친을 이렇게 이루니까 하나님의 공의에서도 어쩔 수  없어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해결됐고 예수님의 계속적인 구속이  성령님과 진리가 또, 협동해 가지고서, 그러니까 성자 성령이 진리 셋이 들어서  이렇게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입혀서 이 공로를 입고 살게 할려고,  예수님의, 예수님 자체가 지금 힘쓰시지 예수님의 공로가 힘쓰시지 권리가 있지,  또, 성령이 힘쓰지, 진리가 힘쓰지 이렇게 힘쓰는데,  힘쓰니까 이것은 이 셋 중에 하나만 해도 힘쓰면 뭐 인간 전 인류를 자유  자재로 이리 저리 할 수 있지마는 서도 왜 못 하고 지체하고 있느냐 하면은  우리에게 자유성을 살려 가지고 유기적으로, 우리가 자유로 이렇게 할 수 있는  그 자유성, 이 자유성을 살려 가지고 할라 하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입니다.

 힘이 드는데, 이렇게 능력이 우리를 향해서 네 가지 능력이 역사하고 계시는데,  이 네 가지 능력은 전능의 능력이요 전지의 능력이요 창조주의 능력이요 완전의  능력이요 자존자의 주권자의 이 능력이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우리만 이  자유성을 가지고 '내가 원합니다. 내가 사죄를 입고 살기를 원합니다. 사죄 입은  자로 내가 살기를 원합니다. 사죄 입은 자로 내가 원하고 힘씁니다.' 하면 벌써  우리 자유성이 원하는 게 되기 때문에 우리 자유성만 원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이 네 가지 능력이 막 달려듭니다. 주님이 달려들지, 또, 주님의 공로가 제일  큽니다. 주님의 공로가 달려들지 또, 주님이 달려들지 성령님이 달려들지 진리가  달려들어 가지고서 이래 하기 때문에 죄 나 마귀나 사망이나 이런 것은 가까이  오지를 못합니다. 이래서 요한 1서 5장에는 보면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지키시기 때문에 죄가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사탄이 가까이 오지를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뭘로 되느냐? 우리의 믿음으로 됩니다. 대속하신 것을  내가 믿어서 '아, 주님의 나는 대속을 입은 사람이다. 나는 사죄를 입어서,  사죄를 입은 자다. 나는 칭의를 입은 자다. 하나님과 화친의 이 밀접한 하나가  된 자다' 하는 이 사실을 믿을 때에 그 모든 것이 침노 하지 못하고, '내가  이렇게 대속을 받은 자이니 나는 요대로 영원히 살 수 있는 자다' 하는 것을  믿어서 영원히 살려고 자기가 원하면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힘을 많이 써서 되는 게 아니고, 자기가 힘을 쓰기를 '내가 아무래도.

주님이 이랬으니까 내가 아무래도 내가 죄를 짓지 안해야지. 죽어도 죄를 짓지  안해야 되지. 뭐 죽어도 마귀의 유혹을 받지 안해야지.' 생명이 제일 종말이기  때문에 '죽어도 내가 하나님을 떨어지지 안해야지.' 죽어도 떨어지지 안한다고  해도 안 됩니다. 그래도 힘을 써 보면 여러분들이 실지로 힘을 써 보면 힘을  쓰면 쓰는 것만침 죄를 더 짓습니다. 그날 아침에 하나님 앞에 '주여 나를  범죄하지 않게 해 주옵소서'하고 마구 간구하고 눈물 흘리고 힘을 썼는데, 힘을  썼는데 벌써 힘쓰고 저는 오층에 올라갈라 하면 힘쓰고 오층에 올라가기 전에  중간에 죄 지어 버려. 중간에 죄를 지어 버려. 중간에 그만 죄를 지어 버려요.

중간에 보면 영감 잊어버렸고 또, 마귀의 유혹을 받았고 또, 성경 말씀에 위반된  일을 했고. 언제 했는지 그만. 자꾸 말을 하면서, 주님이여 이렇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가다가 그만 넘어질 때 있다 그 말이오. 그만 넘어져 버려요. 그래  넘어진 것을 가만히 살펴 보면 뭐이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제가  주님에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간구하고 이래 한 그것이 원인이었어.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공로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주신 이 사실을 내가 믿어야 돼요. 내가 믿고, '이 대속의 공로를 내가  입었으니' 하는 거. 나는 입은 자라. 입은 자라는 걸 나는 잊어버리지 말고  '나는 입은 자다 입은 자이기 때문에 나는 입은 자로 살아야 된다.' 이 대속의  공로를 잊어버리면 안 돼. 대속의 공로가 떨어지면 헛일입니다. 자기가 모르는  거 어떻게 믿겠소? 모르는 거 믿을 수 없지 않습니까? 모르는 걸 믿을 수 없고,  알고, 안다고 믿을 수 있습니까? 알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난 다음에 믿어야  된다 말이오. 믿는다 말이오.

 그러니까. 이 대속을 잊어버리면 믿을 벌써 믿음의 줄이 끊어졌습니다. 대속을  잊어버리면 믿음의 줄이 끊어졌고, 대속을 또, 안다고 할지라도 인정하지 안하면  믿음의 줄은 끊어졌습니다. 알고 인정하고 내가 거게 순종해서 입고 있으면 돼.

내가 입고 있으면, '아, 나는 입은 자라.' 입고 있으면 이것이 대속을 자기가  입은 자이기 때문에. 대속 입은 것이 이것이 뭐 이냐 하면 진리가 나한테 힘을  쓰는 것인데 진리의 힘씀을 내가 받은 것이요 성령의 도와주심을 받은 것이요,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이 나를 구원하는 그 구원을 내가 지금 힘입고 있는 자요,  그래 가지고 '이렇기 때문에 나는 이 죄를 나는 대항해서 주님이 하던 싸움 내가  계속 싸워서'  예수님의 남은 십자가를 지고 간다 그 말은 예수님이 싸우신 그 남은 싸움을  우리가 싸운다 그 말이오. 그 싸움은 무슨 싸움이냐 하면은 내 십자가인데  예수님의 공로가 그러면 불완전하다 말이 아니고 예수님의 공로를 베푸셨는데 그  공로는 우리에게 완전을 이루는 것이 목적인데 완전을 이루기는 아직까지 미결이  되어 완전을 이루지 못하고 완전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도중에 있다 말이오.

완전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도중에 있기 때문에, 도중에 있는 것은 왜 그러냐?  그렇게 우리 힘으로 해야 돼지지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우리 힘으로 하도록  그렇게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사실을 우리가 믿고 힘을 쓸 때에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고  마귀를 이길 수 있고, 또, 사망을 이길 수 있고 이길 수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입에서와 또, 그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죄를 멸합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설교로  죄를 멸하고, 그 입에서 나오는 권면으로 죄를 멸하고 그 입에서 나오는 전도로  죄를 멸하고. 그 입에서 마음에서 나오는 기도로 죄와 마귀와 사망을 멸하고,  또, 가서 이렇게 교훈하고 하는 그 모든 것으로써 죄와 마귀와 사망을 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거는 믿음으로 됩니다.

 오늘 아침의 말씀을 본 것은 뭣 때문에 보느냐? 여게 바디매오 이 바디매오라는  이 소경인데, 바디매오라는 소경이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서 막 고함을  지르면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고함을 지르니까 다른  사람이 있다가서 '이놈의 소경이 거룩한 선생님이 가는데 이렇게 고함을 지르고  이래 못되게 그라노? 잠잠해라.' 모든 사람이 보면서 '그 소경 못됐다. 와 그리  고함을 지르노? 잠잠해라.' 오는 사람마다 이렇게 잠잠하라고 마구 공박을 해도  더 고함을 지릅니다. 막 더 떠들고 지금 죽자 살자 하고 더 떠듭니다. 왜 그래  떠들었을까? 예수님이 지나간다니까, 내가 예수님 찾아갈래야 찾아 가지도  못하고, 소경이니까. 이런데, 예수님이 지나간다 하니 이 기회에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 눈은 딱 확실히 뜰 수 있는데 이 기회 놓치면 안  된다 싶으니까 다른 사람이, 칼로 찔러도 고함질렀을 거요. 왜? 뭐 소경 가지고  사는 것보다 그까짓 거 죽는 게 낫지, 죽자 살자 하고서 지금 고함을 지른  것입니다.

 이랬는데, 예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서 '그라지 말아라. 나한테 오라 해라'  이라니까 제자들이 그때사 다 회개를 하고서 '주님이 너를 부르신다. 안심해라'  이라니까, 부르신다 하니까 그만 옷을 훌떡 벗어 버리고 그만, 겉옷이라는 것은  속에 내의만 입고. 말하자면 두루마기 이런 게 겉옷이겠고 또, 뭐 오바 이런 게  겉옷이겠고 뭐 양복 우와기 이런 게 다 겉옷이라. 그만 겉옷이고 뭐이고 확벗어  버리고 그만, 언제 입을 여가가 없다 말이오. 벗은 채로 그만 달음질 해 가지고  갔다 말이오.

 갔을 때에 주님이 하는 말이 '네가 나에게 무엇을 소원하느냐? 뭐 해 주기를  원하느냐?' '내가 보도록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니까 주님이 하는 말이 그  말 했습니다. '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고 말 했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 그 말은 내가 너를 눈뜨게 해 줄 것을 네가 믿기 때문에  고함을 지르면서 잠잠하라고 해도 네가 더 고함을 질렀고 또, 내가 널 눈 띄워  줄 것을 네가 믿고 간절히 갈망하기 때문에 오라 소리 듣고 난 다음에는 그만  옷도 벗었고 그만 네가 달려왔다. 그게 내나 믿음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는  표시의 행동이라 말이오. 속에 믿음이 있어 그렇다 말이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의 눈을 띄워 줄 것을 자기가 확실히 인정하고 띄워 주시기를 기회 놓치지  안하고 띄워 주기를 바라는 고 믿음 고것을 가지고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의 너를 구원하였다 할 때에 눈에 확 뜨여 버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만 그  시간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이것이, 이 믿는다는 것은, 주님과 우리 사이의 일은 다 이래 됩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의 사이는, 주님이 말씀하지 안한 것을 제대로 믿는 것은 소용이 없소.

주님이 말씀하지 안한 것 그것은 암만 믿어 봤자 그거는 제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건 소용이 없지마는서도 주님이 '이렇게 해 주겠으니 네가 이 사실을  믿어라' 하는 고것을 믿는 것이 의요 그 믿는 것은 다 된다 그 말이오. 삼십 팔  년 된 병자가 네가 일어서서 걸어가라 하는 소리를 뭐 천 명 만 명 뭐 사십억  되는 사람들이 다 일어서서 걸어가라 한다고 일어서서 걸어갈 줄 압니까? 못  걸어갑니다. 예수님이 일어서서 걸어가라 하는 그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일어서서 걸어가라 할 때에 일어서 걸어갔다 말이오.

 그러면, 신구약 성경에 말씀해 놓은 것은 전부 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에 계약되어 있는 거, 계약되어 있는 것인데, 이 계약되어  있는 것은 전 인류에게 계약되어 있는 것인데 자기에게 계약되지 않은 것도 있다  말이오. 이 사람에게 계약된 게 자기에게 계약 안 된 것 있고 저 사람에게  계약된 거 자기에게 계약되어 있지 않는 게 있고 모든 전 기독자에게 다  계약되어 있는 거 있고, 다 계약되어 있는 것 있고 또, 계약되어 있지 않는  부분도, 요 부분은 요 절수는 요 사람에게만 해당하고 네게는 해당 안 된다, 요  진리는 조 사람에게만 요 계약은 해당되고 네게는 해당 안 된다 그런 거 있고,  이 계약은 기독자에게는 전부 해당된다 하는 그것이 있다 말이오. 전부 해당되는  건 뭐이냐? 이거 공통, 공통 계약이라 말이오.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대속입고, 또, 예수님이 이 대속을 입혀 주키  위해서 그 피의 공로가 역사하지 또, 성령이 역사하지 진리가 역사하지 예수님이  또, 이 공로를 가지시고 친히 우리 위해서 아버지 우편에서 매일 기도하고  계시는 역사 하시지, 이러니까, 이 사실은 우리가 뭐 목사만 입을 것이 아니고.

목사에게만 대해서 계약한 계약이 아니고 장로에게만 대해서 계약한 계약이  아니고 이제 주일학교 학생들에게도 있는 사람에게도 모든 택한 자들에게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 계약은 공통적으로 다 받을 수 있는 계약이라 그 말이오.

 이 계약이기 때문에, 이 계약은 누구든지 믿으면 됩니다. 믿으면 되는데 믿지  않기 때문에 안 된다 말이오. 믿으면 되는데, 대속을 잊어버렸든지 대속했다는  말로는 알지마는서도 자기가 인정을 안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이 대속을 지금  입기를 원하는 원함이 없든지, 이 대속을 입은 자로 자기가 사는 것인 것을  자기가, 자기가 인정하고 하는 이 인정을 하지 않든지 그래 안 하면 자기가  원하지 않든지 이래서 안 되는 것이지 이 대속을 믿으면 됩니다. 안 믿으면 안  돼요. 믿는 것은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대속을 나는 입은 자라  하는 것을 인정하고 입은 자로 사는다. 또, 예수님의 이 대속을 우리에게  구속시킬라고 성령과 진리와 주의 피의 능력이 역사하는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고, 나를 도우니, 나를 돕는다는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이 도움을 입어서,  나를 돕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도움을 입어 행할 때에 되는 것입니다. 도움을  입어 행한다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도움을 입은 행동을 하면 된다 그거요.

우리가 믿고 하면 됩니다.

 그런데, 요것이 빠지면 안 돼요. 예수님의 대속을 잊어버리고 죄를 이 길라고  마귀를 이길라고 아무리 힘써 봤자 안 됩니다. 힘써 봤자 나도 그런 일을 많이  해 봐서 실패를 많이 봤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이러니까 '아 나는  죄를 안 짓겠다. 나는 죄를 안 짓겠다. 예수님의 선포하신 이 계약의 말씀을  내가 하나도 범하지 않겠다. 요 말씀대로 살겠다. 요렇게 왜 살지 못 할 게 뭐  있겠느냐? 살겠다.' 요렇게 하고 뭐 확신도 생겨지고 요렇게 살기를 소원하고  또, 눈물 흘리며 기도도 하고 이라고 '이제 죄 짓지 않겠다 죄 짓지 않겠다'  이라며 가는데 나도 모르게 나중에 지나가고 보니까 죄를 떡 지어 가지고서 뭐  엉망이. 마귀에게 유혹받을 대로 다 받고 이랬다 말이오. 언제 이렇게 됐느냐?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인제 이래 됐느냐?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은 예수님의  대속을 잊어버린 때더라 말이오. 예수님의 대속.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피와 살은 우리의 양식이라 예수님의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이랬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 된 음료라 하는  고 말씀은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양식이라는 말인데 우리 양식이라 말은 몇  가지를 가리켜 말합니까? 우리 양식이라 말은 몇 가지 뜻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십시오. 우리의 양식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피와 살은 우리 양식이라고 하는 것은 몇 가지가 그 속에 들어 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들어서 가리켜 봐요. 예수님의 피와 살은 몇 가지라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고 있습니까? '모두 이래 들었구만. 이래 들었어. (주:손가락 셋을  펴 보이심) 그러면, 말해 봐요. 뭐 뭣 뭣 들었어요 그속에? 양식이라 했는데 그  속에 뭣 뭣 들었어요? 뭣 뭣 들었습니까? 예? 성경대로 돼야 돼, 성경대로.

죽이는 거 살리는 거 그거는 다 해석하기 위해서 해 줬는데, 또, 사죄 칭의 화친  그 셋도 아니야. '나의 양식은' 그래 그거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는 것과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 그게 양식이라.

 그러면 내 피와 살은 너희들의 참된 양식이요 너희들의 참된 음료라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나는 아버지의' 예수님은 아버지가 보내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아버지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그것이 예수님의 양식이요, 우리  양식은 뭐이냐 하면 예수님이 날 보내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게 대해서  요구하시고 명령하시는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것과 또, 그 일을 온전히 달성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우리의 성공이라 그 말이오. 우리가 행할 일이요 우리의  성공이라. 그러면. 우리의 행할 일이요 성공인데, 그 양식이라는 것은 이 두  가지를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와 살은 우리의 행할 일이요, 우리가 할  일이요 우리의 성공이라.

 그러면, 우리의 성공은 뭐이냐? 예수님의 맡기신 일이 우리 성공이요 우리 할  일은 예수님이 맡기신 당신의 뜻이 우리의 할 일이라. 그러면 우리 할 일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 한번 가리켜 보이소. 우리 할 일은 몇 가지입니까? 몇 가지?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봐요. 아, 예. 우리 할 일은 그 두 가지인데. 주님의  뜻을 내가 행하는 것과 그 일을 성공하는 것이 내 성공이라.

 그런데, 내 할 일과 내 성공이라는 그것은 뭣 하는 것이 내 할 일과 내  성공입니까? 뭣 하는 것이 내 할 일과 성공이지요? 몇 가지 하는 것이 내 할  일과 성공입니까? 손가락으로 가리켜 봐요. 여기서 지금 서이를 들어야 돼. 서  이. 양식이라 말은 두 가지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고, 할 일과 우리의 목적인  성공 이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할 일과 우리의 성공은 몇  가지를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요 우리의 성공이냐 하면은 이 세 가지로  가리켜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사죄를 완전히 입는 것, 칭의를 완전히 입고 또, 화친을 완전히  입어서, 화친 성공, 영감에 복종하는 영감 복종 성공,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성공. 말씀을 내가 지켜서 행하고, 그라고 나면은, 내가 말씀을 지켜서 행하고  그 다음에는 성령님에게 내가 순종하고, 내가 행할라 하는 그게 아니고  성령님에게 순종하고, 순종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에는 내가 '내가 순종해야지'  순종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와 가지고서 나를 붙들고, 이제 주권적으로 역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내가 말씀을 어기지 아니할라고 말씀대로 살라고 할 때의 나는 맨  저급의 자요, 맨 저급의 자. 그때에 옛사람이 제일 많은 때입니다. 옛사람이,  옛사람이 많은 때요. 또, 옛사람이 많은데 옛사람을 이기고 이와같이 할려고  애를 쓰고, 사죄를 입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이학년이 됩니다. 이학년은  뭐이냐? 그때는 내가 말씀대로 행할라고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이제 성령님에게  내게 순종할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벌써 내 권리는 많이 뺏겨졌습니다. 내  권리는 뺏겨졌고 '내가 말씀대로 살아야지' 내가 살아서 이랬는데 그 다음에는  그저 순종할라고 애를 쓰니까 벌써 자기는 꺾어졌다 말이오. 순종할라고 애를 쓴  그 일을 하다 보면은 나중에 순종할라고 애를 쓰는 그자가 완전히 죽어 꺽어져  버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죄를 입고 나면은 칭의를 익을 수 있는 자로, 칭의를 영감의  칭의, 곧 영감에게 복종할 수 있는 자로 그와 같이 자격이 있고 닭이 알 속에서,  알 속에서 알을 튀어 나올 수 있는 자람이 되면 알을 깨고 나와 가지고서 밖에  나오면 밖에서 살 수 있습니다. 밖에서 산다고 알에서 나온 병아리가. 알에서  나온 병아리가 밖에 나오면 삽니까? 알에서 나온 병아리가 이 공간 속에  나오기는 나왔지마는서도 나오고 난 다음에 어디서 살아야 됩니까? 이 도시  사람들은 그것도 몰라. 참 예? 저 O 선생은 시골에서 왔지? 시골에서 왔으니까  알지. 알 속에서 알 속에 들었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밖에 나오고 난 다음에는  그 다음에 이제 밖에 나왔습니다. 공기도 좋고 볕도 좋다고 이래 돌아다니면  삽니까? 죽습니까? 죽습니다. 나오고 난 다음에 어데 살아야 되느냐 하면은  어머니의 나래 속에 살아요. 이 어머니의 나래 품속에서. 나래 품속에 살면서,  품속에 살다가서 쪼그매 빼꿈 나와 가지고서 좀 돌아다니다가 추우니까 또,  들어가고 나왔다 들어가고 나왔다 들어가고 자꾸 이래 살다가 얼마가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만 살 수 있으니까 어머니를 내 버리고 돌아다녀. 돌아다니면  어머니는 저거 돌아다니다가 죽는다고서 막 고함을 지르고 이래 쌓아도 이게  듣도 안 하고 저리 돌아다닙니다. 돌아다니며 이래 가지고 살다가 그래 도,  그래도, 돌아다니며 살아도 어머니의 보호 범위를 넘어가면 안 돼. 어머니 닭의  보호의 범위를 넘어 가서는 안 되고 고 범위 내에서 이래 돌아다닙니다.

이러다가 까치가 저 위에 오면 그 어미가 꼬르르록 거리면 그만 병아리들이 마구  좇아서 어머니 품속으로 들어갑니다. 그거 안 본 사람은 몰라요. 저게 벌써  까치든지 뭐이든지 병아리를 탈 만한 그런 독수리든지 뭐 그런 게 저게서 먼데서  날아오면 에미가 막 꼬르르르록 이라면 그만 그 소리 듣고 뭐 언제 훈련을 시켜  놨는지 뭐 좇아 들어가서 어머니 날개 밑에 들어갑니다. 어머니 날개 밑에  들어가 가지고서 이래 어느 정도 그동안에 자라고 나면은 그 다음에 오면은 이제  에미 닭이 고함지르지 않습니다. 저 뭣이 날면 에미 닭이 고함지르지 않고 저  수탉 장닭이 있다가서 보고서 코르르르록 고함을 지르면 고만 그 암닭이고 큰 닭  작은 닭 할 것 없이 어디든지 구멍으로 들어가 숨어 버립니다. 구멍으로 들어가  그만 숨어 버리요.

 이거 모양으로 이제 처음에 이 사죄에서 장성해 가지고서 칭의로 나아갈 수  있고 칭의에서 장성해 가지고서 화친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사죄에서는 자기가  힘을 쓰도록만 힘을 써 지킬라고 애를 쓰고 거게서 힘써 지키면은 장성해 가지고  이제는 하나님에게 그저 복종만 하면 된다, 성령에, 영감에게 복종할라고 애쓰는  사람이 돼 버렸고, 영감에 복종할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영감에 복종 할라고. 영감을 소멸하지 안하고 영감에 복종할라고 애를  쓰는 사람이 얼마 동안 되어져 보니까 차차 차차 내가 나를 주관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나를 주관해서 이제는 나는 하나님에게 피동됩니다. 이러니까. 내가 할  말도 내 속에서 주님이 말하는 대로 말을 하고 내 속에 주님이 기도하는 대로  기도하고 주님이 설교하라는 대로 설교하고 주님이 내 안에 계셔 가지고 나를  주관하시는 그 주관 대로 내가 하는 사람이 된다 말이오.

 이것이 뭐이냐 하면 믿음으로 다 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된다 말은 고 사실을  알고, 또, 그 다음에는? 인정하고, 고다음에는? 고다음에는 행하는 거. 이  바디매오가 바디매오가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하니까 눈이 확 뜨였다 말이오. 뭐  손을 댔습니까 뭐! 댔습니까? 예수님이 이렇게 해 주신 다는 것을 자기가  인정하고 '믿음이 구원했다' 이렇게 말씀하시니까 말씀 하시니까, 자기 낫게  눈을 띄워 주실 것을 인정하고 띄워 주시기를 바라고 이제 믿음이 널 구원했다  하니까 그때 '아, 주님이 내 눈을 띄워 주셨다' 하는 고 믿음으로 들어서 확  떨어져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모두 다 이렇게 믿음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떻게 우리가 죄를 완전히 이기는 자가 될까? 어떻게 해서 이  마귀를 완전히 이기는 자가 될까? 어떻게 해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자가  될까? 이것은, 요렇게 되는 것은 말하자면 죄를 이기는 것은 말씀대로 사는 자가  되는 것이요 또, 마귀를 이기는 것은 영감대로 사는 자가 되는 것이요, 또,  하나님과 화친의 자라는 것은 하나님에게 내가 피동되고 당신이 나를 주관해서,  당신이 나를 주관해서 당신이 말하게 하는 대로 말하게 되고 당신이 생각하라는  대로 생각하고, 내 생각에 그 생각이 났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이라. 내가  말하는 게 하나님의 말입니다. 내가 소원하는 게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를 완전히 주관하시는 것. 이러기 때문에, 말하기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주님이  '내가 말하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내 안에 아버지께서 내안에서 일하는 그 일이  내 입으로 통해 나왔다 그러기 때문에 내 생각이나 내 행동이나 내 모든 말이나  내,전부의 내 육의 움직이는 것은 신성이 속에서 역사해서 움직이는 것이요,  신성이 속에서 역사해서 움직이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일체가 역사해서  움직이는 그 움직임이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성이 하는 일은 인성이 하는 일이 아니고 신성이 인성 속에서 하는 일이  인성으로 통해서 나타난 거와 마찬가지로 바울도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나는 그분이 사는 대로 그분에게  피동돼서 움직인다 하는 것이 사도 바울 이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신인 양성 일위된 그 모형이요, 모형이요, 모형인데  우리는 어느 모형, 우리는 사도 바울의 모형이 될 건가? 우리는 사도 바울의  모형이 될 것입니까 예수님의 모형이 될 것입니까? 저 OOO 집사님. 허 고거 잘  아네. 네. 우리는 사도 바울과 같이, 사도 바울과 같은 모형이 될 게 아니고,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모형이었는데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될 수 있는 자라  그 말이오. 알겠습니까?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의 성공이라.

 우리의 성공은 뭐입니까? 우리의 성공은 뭐이라고 했오? 내 피와 살을, 내 피와  살은 양식이라 했으니까 우리의 성공은 이 세상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라 그 말 속에는 두 가지 뜻이 들어 있는데,  너의 할 일이 무엇이며 너의 성공이 뭐이냐? 너의 할 일과 너의 성공은 내 피로  대속한 이 대속을 완전히 입는 것이 너의 할 일이요 너의 성공이라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도 바울같이 될 수 있고,  예수님같이는 될 수 있는데, 예수님은 원형이기 때문에 예수님과 외모는 꼭 같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의 거룩하심 같이 우리는 거룩할 수  있고 아버지의 온전하심 같이 우리는 온전할 수 있고 아버지의 깨끗하심 같이  우리는 깨끗해질 수가 있는 것이 우리의 목표인 것입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서  세상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죽는 날까지 이 일을 어쩌든지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성공이라.

 그러면, 우리 성공이 뭐인가? 돈 성공이 우리 성공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완전히 입고 사는, 완전히. 어디서든지 완전히 입고 사는 것이 그것이  우리 성공이라. 우리 할 일은 뭐이냐? 이 대속을 입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라. 우리 할 일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 할  일이요 우리 성공은 예수님의 대속을 완전히 입은 그것이 우리의 성공이라.

이것이 우리의 성공이라.

 내 피와 살은 참된 양식이라.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마지막에 다시 내가  살리리라 그 말은 예수님의 대속을 입으려고 노력하고 입은 거 요 둘은 죽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에 죽었으면 다 부활하고 죽지 안한 것은 영원히 계속돼서  사는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믿음으로 되지 믿음이 아니면 안  돼요.

 그런데, 죄를 이기려면, 하나, 죄를 이기려면 봅시다. 죄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죄를 이기요? 누가 한번 대답해 봐요. OOO씨 말씀대로 사는 거? 또, OO 이,  말씀대로 사는 거? 내나 들어도 뒤퉁스럽게 들었어. 말씀대로 살라고 죽자 살자  하고 결심을 하고 밥을 굶어보지 안 됩니다. 안 돼요. 말씀대로 살라 해도 안  돼. 주님의 대속이 '주님이 나 위해서 대형해 가지고서 나는 완전히 죄에서,  완전히 죄를 멸해 버리고 죄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에 죄는 내게 상관하지  못한다.' 예수님의 대형의 '사죄를 자기가 믿고 여게 뿌리를 박고 '이러기  때문에 나는 말씀대로 살아서 죄를 지을 수 없는 자이며 죄를 짓지 않는 자다'  할 때에 그런 것이지 예수님의 대속에 뿌리박지 안한 것은 전부 말라 버리고  만다 말이오. 암만 결심해 봤자 소용없어.

 오늘 아침에 지금 말씀하는 것은 요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사죄, 대형의 사죄,  대행의 칭의, 대화친의 생명 여게다가 뿌리를 박고 '나는 이런 자이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살아야 된다.' '이런 자이기 때문에' 그걸 빼 버리고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암만 해 봐야 안 된다 그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요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제 O 선생이 대답한 것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 했는데 왜 그게  틀렸오? 왜 틀렸지? '이런 자이기 때문에' 하는 고걸 잊어버렸다 말이오. 그거  안 돼요.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네가 생각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자라는 것을 네가 믿는 그 믿음을 가지고, 이 바디매오가  눈 뜬 거 뭣 떴오? 주님이 띄워 주실 것을 믿으니까 떠졌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와 대형 대행 대화친의 이 공로를 나에게 입혔으니 나는 사죄 칭의 화친을  입은 자다. 나는 산 자다' 이렇게 믿을 때에 산 자가 되고 산 자가 되니까 죄도  마귀도 사망도 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산 자가 안 돼 가지고 제가 '내가 이겨야  되겠다' 하는 것은, 벌써 죽은 자가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믿고 행해야 되지 믿지 안하면 안  됩니다. 요것은 참 자기가 체험해 보지 안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요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요 사람 되어집시다.

 지난밤에 재독에 참석한 사람은 이백 팔 명인데, 이거 어제 설교는 여러분들이  그거 어려운 것입니다. 어려워서 그것은 뭐 예수를 몇십 년 믿어도 목사가 된  사람들 가운데서도 이거 그것은 근방에 가지도 못하고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너무 넓고 많은 것을 어제 간단한 시간에 이렇게 말을 했는데  그것을 한번 듣고 여러분들이 어찌 알겠소? 여러 수십 번 들어도, 수십 번  들으면 고대로는 외워서 다른 사람에게 말 할 수 있어도 그게 아는 게 아니라.

그 속에 그 사실을 자기가 느끼고 느끼고 실감으로 느끼기는 느끼는데 하는 것은  일생 동안 노력하는 것인데 그렇게 쉬운 줄 알고 껍데기로 씩 듣고 말면 그  사람이 무슨 구원을 이루겠습니까? 안 돼요.

 어제 나는 재독에 얼마나 많이 올까 했디마는서도, 재독 안 하니까, 이러니까  이러니까 재독을 못 하면 녹음을 해 가지고라도 해야 되겠는데. 여러분들이 돈을  내면 복사하는 테이프 복사하는 기계를 사겠는데 지금 사 가지고 있어요. 사  가지고 있어서, 한 번에 복사하면 몇 장 복사합니까? 예? 일곱 장 복사하는데 몇  분 걸리요? 이십 분 걸리는데. 이십 분에 일곱 장은 하지마는 그거 가지고는 할  시간이 없어 그거 가지고 할라 하면 돈도 많이 들고 안 되는 건데, 지금 어떤  기계 뭐 좋은 거는 얼마까지 할 수 있는 거 있지? 예? 아니, 얼마까지 할 수  있는가, 몇 장이나? 예? 누가 그라노? 손들어 봐. 누가 그랬어? 오' 예. 사오십  개 나을 수 있어 저 OOO 교회니 그런데는 설교하고 나면은 벌써 거기서 바깥에서  벌써 테이프를 팔고 있다 말이오. 사 가지고 가라고. 이라면. 그걸 사 가지고  가도,  어제 설교 같은 그런 설교는 여러분들이 수십 번 재독을 들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 무슨 말인지를 잘 모르고, 말귀를 들을 때는, 그때 말할 때는 들으면은  성령이 같이 하기 때문에 알아들었는데 나중에 재독을 들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수 있을 거라 말이오. 영감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재독에서 자기가 환하게 알고, 알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자기가 실감으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가지고 느껴 볼라고 자꾸 느끼고 느껴서 느껴지는, 느껴지는  그 강도가 뭐이냐 하면 성신의 감화요 성신의 감화가 능력입니다. 우리가 능력  받는다 그 말은, 지극히 큰 능력 받는다 그 말은, 지극히 큰 능력이 무슨  능력입니까? 진리의 능력이요 영감의 능력입니다. 진리의 능력은 내가 진리가  확실히 깨달아지고 믿어질 때에 능력이 오는 것이 고 영감의 능력은 성령의  감화가 내게온 거만치, 조그매 감화가 오면 조금 오고 많이 감화가 오면 많이  오고 감화가 강하게 오면 이 진리 위해서 자기 생명과 소유와 이 모든 것을 몸을  바치고저 원하는 원하는 마음이 이게 자꾸 생겨지는 그것이 성신의 감화가 강한  것이라 말이오.

 이래야 될 터인데 실컷 듣고 '아이구 지루하다. 무슨 소리를 저런 소리를  하는고?' 자꾸 이런 사람이 언제 구원을 이루겠습니까? 뭐 예수님의 재림  가까우니까 빨리 이룰 일이지 뭐 땅 위에 '내 직장은 뭣이다 나는 뭐 무슨  고관대작이다 나는 부자다. 나는 사장이다.' 사장이면 그까짓 거 뭐 할 것이며  고관대작이면 뭐 할 겁니까? 오늘 오라 하면 가야 되는데 가야 되는데 이것만  영원히 가질 수 있을 것이지 그 외의 것은 다 그만 떠나면 그만인데 뭐 그게  크다고 그와 같이 하겠소? 몰라 그래 건설 구원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고 있다 그거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76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21절-25절/ 1985. 3. 30.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1985. 4. 1.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274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24절-27절/ 1985. 3. 31. 주새벽 선지자 2016.01.11
273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23절-31절/ 1985년 7 공과 선지자 2016.01.11
272 하늘나라 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1981. 5. 24.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271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21.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270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19.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269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20.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268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16절/ 1981. 11. 20.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67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18.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266 하늘나라의 가치관/ 마태복음 18장 1절-5절/ 1985. 10 29.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265 하늘나라의 가치와 영광/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3.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264 하늘나라의 실력/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4.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263 하늘나라의 영광/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4.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62 하늘의 소망으로 일하라/ 고린도전서 15장 29절-58절/ 1988. 4. 10.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11
261 하늘의 영원한 처소/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1983. 10.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260 하라, 하지 말라/ 신명기 28장 1절-6절/ 1986. 10. 29.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259 하라는 것, 하지말라는 것/ 신명기 28장 1절-15절/ 1985. 2. 26.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258 하루를 하나님 경배로 시작/ 에베소서 5장 15절-21절/ 1984. 1. 6.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57 하와의 실패 원인 세 가지/ 창세기 3장 1절-4절/ 1980. 1. 2. 수저녁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