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선지자선교회 1985년 3월 31일 주새

 

본문 : 막 10:24-27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오늘 유년반 중간반 일부 이부의 공과입니다.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하늘나라 들어가기보다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쉽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소리를 듣고 제자들이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제자들이 놀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구원은 우리가 배운 대로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두 가지 구원인데 이 두 가지  구원이 다 이렇게 어렵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마는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다 하실 수 있다, 구원은  기본구원도 건설구원도 하나님이 하시면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기본구원도 절대 안 되고 건설구원도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먹지 말라는 선악과 하나를 먹어 하나님의 법을 어겼을 때에  그 값이 얼마나 컸는가? 전 인류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사망입니다.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사망입니다. 제일 면하려고 하는 것이 사망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면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법 하나를 어겼을 때에  이렇게 사람이 원치 안하고 그것을 이겨 볼라고, 뭐 벌써 역사. 역사 세계가  육천 년이 다 돼 가지마는서도 이 죽음을 이겨 볼라고 연구하는 것이 모든  과학들입니다. 조그매라도 건강하면 더 오래 살라고, 오래 살라고, 뭐 안 죽을  수 있으면 안 죽으려고 오만 연구 다 했지마는 그것이 하나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벗어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첫째로 죄를 없애야 되는 것이니까 이 죄를 없애다는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습니다. 선악과 먹은 그 죄 하나를 없앨라고 해도 인간은 없애지를  못합니다. 죄가 없어야 되지. 또, 마귀에게서 완전히 자유해서, 마귀를 이겨서  마귀에게서 자유를 해야 되지, 마귀를 이겨야 되지 또, 사망을 이겨야 되지,  죽음을 이겨야 되지. 또,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와 대적되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이 일을 해결할 자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은 이 일은 뭐, 몇 가지를  말했는데 그 중에 하나도 못 할 뿐 아니라 하나의 억억만의 일도 인간은 할 수  없는 이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나. 하나님으로서는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오셔서 창조주가 피조물 된다는 이것은 얼마나 낮아지는 그런 희생입니다.

하나님의 그 모든 영광과 소유와 능력의 그 부요는 무한하신데 무한하심의, 그  모든 부요를 다 내어 놓으시고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자가 되시기까지  하나님께서 큰 희생을 하셨습니다.

 또. 이렇게 자유하시는 하나님이, 주권자 전능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부터 이  대속을 책임지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책임을 지시고 출생하는 그 시점부터  땅위에서 나셔 가지고 사생활 공생활을 하실 때에 순간도 찰나도. 찰나라면 아주  가장 짧은 시간을 가리켜 말하는 건데 눈 깜짝하는 것은 찰나보다 더 깁니다.

그러면, 아주 짧은 시간, 참 털끝만치도. 털끝만한 시간도, 털끝만한 일도  당신이 자유하지를 못하시고,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함으로 범죄해 죽은 이 죄의  댓가를 내는데에는 털끝만치도 자유하지 못 하시고 하나님에게 종이 되어서  복종하는, 하나님이 종이 되어서 복종하는, 하나님이시지마는, 내나 하나님은  한분이신데 그 책임 맡은 일에 있어서는 성부의 위가 있고 성자의 위가 있고  성령의 위가 있는데, 성자의 위가 우리를 구속하시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우리  구원을 하시기 위해서 책임 맡은 그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세 분이란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한 분이신데 우리의 책임을 맡은 그 면의 하나님, 우리의  책임을 맡은 그 면의 하나님. 그 각도의 그 모의 하나님이 하나님은 털끝만치도  자유하지 못하고 하나님에게 종이 되어서 복종하는 이 복종으로 마지막에 십자가  못박혀 죽기까지 복종만 했지 찰나도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마는서도 자유하지를  못했습니다. 자유하면은 우리가 자유함으로 멸망받은 이 벌을, 이 행위를  하나님과 이렇게 원수되어 있는 이 관계를 이거를 해결지울 수가 없고 사망하는  이 죽음을 해결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죽는 것은 고난으로 죽는 건데 죄 값으로 죽으면서 죄 값으로  죽는 그 상태는 어떤 상태냐? 최고의 고난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어려움 무슨 어려움 해도 마지막에 죽는 고난이 제일 견디기 어려운 고난이오.

그 고난이 어려워서. 다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고난을  예수님께서는, 삼십 삼세이니까 가장 몸의 기운이 왕성할 때인데 그 죽는  죽음에서, 최종의 어려운 죽음을 당하는 그 어려움이 단번에 무슨 이런, 사형을  받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저 목을 잘라서 죽이는 것도 있고. 목을  끊어서 죽는 것도 있고. 총을 놔서 죽는 것도 있고 이런데 그 죽으심을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달려서 죽으신 것은 그 손이든지 발이든지 그렇게  못박힌 그것이 거게서 혈관은 거기도 있기는 있지마는서도 그 혈관이 가는  혈관이 있고 또, 모세혈관 있기 때문에 그 혈관의 피가 좔좔 나을 수가 없는  것이고 그저 실실 질질 흘러서 그렇게 나을 수 있는 그런 고난이니까, 전설에  의하면 여섯 시간 피를 여섯 시간 동안 흘리면서 그 생명이 끝났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오늘도 과학자들이 추리 할 때는 그거는 거의 정당성 있는  그런 추리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 그렇게들 말합니다.

 이래도, 그렇게 어려움이 계속돼도, 또, 그 어려움이 하나의 어려움만 아니라  우리의 전부를 다 대신해서 어렵기 때문에 한 사람의 죽음의 고통 두 사람이면  배가 될 것이고 세 사람이면 삼 배가 될 것이고, 이러기 때문에 주님이 내  죽으심의 고통을 각각 개별적으로 다 담당하신 그 양이기 때문에 주님의 그  죽으심의 고난의 양은 아무도 측량을 못하고 자기가 죽을 때에 그때에 비로소 그  양을, 자기를 담당한 양이 어떤 정도라 하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어렇게 모든 죽으심으로, 마지막 죽으심까지, 죽으심까지 죄로 더불어 싸워서  죄를 이겼고, 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 수종으로 더불어  싸워서. 마귀는 순종 못 하게 하고 주님은 순종할라고 하고 했는데 죽으시기까지  순종으로 계속했기 때문에. 순종치 못하게 해야 마귀는 승리하는데. 마귀는 이  순종면에 예수님으로 더불어 싸워 가지고서 마귀가 패전을 했습니다. 또,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은 생명 문제인데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을 죽기까지 계속  사망으로 더불어 싸웠습니다. 싸워서 사망했지. 사망했지 하나님과 불목된 그  불목을 하지 안하고, 일방적 화목이지마는, 하나님은 정죄하고 저주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불목으로 끝까지 불목으로 저주하고 정죄 했지마는 주님은 일방적  화목이나 그 화목을 요동치 안하고 죽음과 최고의 형에서도 화목을 간구하고  화목하는 그 입장에서서 화목을 계속 주장하고 화목을 계속하다가 끝이 나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그 모든 불목케 하려는 마귀, 범죄케 하려는 마귀.

불의하고 자기 자유대로 살게 하려는 마귀는 패전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기신 것은 죽음으로 죄를 이기셨고, 죽음으로 인간이  불법적으로 행한 인간이 자기주장대로 하는 이 주장으로 더불어 싸워서 이겼고  하나님과 원수되는 이 원수되는 이 일로 더불어 싸워서 이겨서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혀 있는 이죄는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진 것은 죄의 문제인 것입니다. 또,  바위들이 다 갈라지고 한 것은 인간이 자율대로 사는 것이 깨어 졌습니다.

깨어지는 계시입니다. 또, 죽음이 죽음을 이겨서, 죽음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죽음을 이겼습니다. 사망으로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이래서, 이제까지 바라보고  있던 구약 성도들이 사망을 벗어나서 부활을 했습니다. 부활을 하는 그것으로써  계시하고 부활 했다가 다시 무덤으로 들어가기는 들어갔습니다. 아직까지 부활  할 때가 안 됐기 때문에 부활을 표시만 하고 들어갔습니다.

 이 하늘나라는 죄가 없어야 되고, 죄만 없으면 되는 게 아니라 의로워야 되고,  의롭다 말은, 하나님에게 순종해야 되는데, 순종은 성경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도  순종이지마는 그 순종만 가지고는 완전 순종이 못 되기 때문에 성경 말씀대로  순종한 자가 이제는 성신의 감화에 순종이 돼서 성신 감화에 만족 순종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족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룬  이런 순종을 하시고 하나님과 생명 바쳐 화목하시는 이 일을 했기 때문에  하늘나라를 들어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죄만 없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죄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 또,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복종 문제만 해결된다고 되는 게 아니고 복종 문제가 해결돼도  복종해도 하나님이 그 원수된 것을 풀지 안하고 대립하고 있으면 복종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복종해야 무슨 소용 있습니까? 이랬는데, 죄의 문제를 해결한  그 위에 하나님에게 절대 복종하는 복종 문제를 해결해서 이것을, 이 공로를  설치했고, 또, 복종한다고 해도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으면 그거는 소용이 없는  것인데 그 위에다가 하나님과 화친해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피조물이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예수님이 인성이 신성과 한 격위를 이룬 거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공로를 인해서 사람과 하나님이 한 언행 심사의 행동, 언행 심사가  하나 되는, 하나님의 언행 심사가 우리의 언행 심사가 되도록 이렇게 이렇게  밀접한 결합이 되는 이 문제를 예수님이 대신해서 베풀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세 가지 대속한 공로입니다. 이공로를 설정하셨는고로  하나님이 책임을 진 사람들은 누군고 하니 택한 자들은 책임을 졌습니다. 인간이  많지마는서도 인간은 두 종류인데 택함을 받지 안한 종류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책임지지 안 하셨고 택함을 받은 자들만 책임을 지셨습니다. 이래서, 다른  교파에서는, 감리교 같은 데서는 어떤 사람이든지 다 책임을 지셨다 이렇게  말하는데, 껍데기 보면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하후 하박이 아니라 하는 이런  말로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책임 지셨는데 안 된다면  그거는 하나님의 책임이 다 무능하게 되기 때문에 그거는 그 교리가 잘못된  교리인 것입니다.

 택자들에게는 다 책임을 지셔서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택자는 무조건하고 다  공심판을 면제받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로마서 8장 1절 이하에 보면은 죄  정함을 받지 안한다 이랬습니다. 죄 정함을 받지 안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고  난 다음에 죄 정함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기 전 벌써 택자들은 예수님이  대속의 공로를 설정하신 그때부터. 그전 사람들은 의식을 행했다가, 짐승 잡아  의식 행했다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베풀 때에 그 때에 바라보던 그 모든  대속이 저희들의 것이 되어졌고 그 후 신약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나기도 전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설정했기 때문에 그 대속의 공로를 벌써 소망하는 것이  아니고 대속의 공로를 입고 나왔습니다. 대속의 공로를 벌써 창조될 때에 대속의  공로를 입고 나왔기 때문에 창조될 때부터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정죄함을  받지를 안하고 있습니다. 죄 정함을 받지 안한다 이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심판에서는 그렇지마는서도 실상은, 예수님이 대속해서 이  세 가지의 죄의 문제. 불의의 문제, 하나님과 원수된 문제 이 문제가 주님이  대신해서 이 문제가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에서는 다 해결이 돼서 무죄 석방자가  되어졌지마는서도 실상 우리의 영은 죄로 인해서 죽어 있고 우리의 마음과 몸은  죄로 인하여서 죽어서 죄가 주장하고 마귀가 주장하고 사망이 주장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랬는데, 하나님의 지공 지성법에서 구원을 받은 자이나 실상  영이나 육은 사망 아래에 죄 아래에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있는 이것이,

 그러면. 하나님의 지공법으로 법적으로만 구원을 받았는데 법적으로 구원 받은  것이 실질적으로 구원 받는 것은 언제 받았는가? 실질로 구원 받은 것은 영은  우리가 중생될 때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중생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영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공로를 단번에 입히셨습니다.

단번에 입히실 때에, 그러면, 그 영은 죄가 얼마나 있느냐? 영은 죄가 있는  것이. 영은 죄를 범하지 안합니다. 영은 죄를 범하지 안하지마는서도 영이 이  마음과 몸이 범죄하는 그 범죄를 영이 주격이기 때문에 그 주격적 위치에서.

주격 책임성에서 정죄함을 받은 그 정죄이기 때문에 그 정죄를 다 이 영이  책임을 지고, 책임을 지고 그 죄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중생활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중생 시킬 때에 이 영이 가지고 있는 마음과 몸이 세상  끝날까지 범죄와 실수할 죄 그 모든 죄를 다 끌어다가 주격 위치에 있는 그  영에게다가 단번에 정죄를 다 한 것입니다. 단번에 정죄를 다 해 가지고 자기가  가진 마음과 몸이 범죄하는 그 모든 범죄의 주격 책임을 단번에 다 짊어져서  정죄를 받고. 정죄를 받고 난 다음에 그 뒤에 예수님의 사죄의 공로를 입혀 줬고  칭의의 공로를 입혀 줬고 화친의 공로를 입혀 줘서 영만은, 영이 힘쓰지 안하고,  영은 죽어 있기 때문에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죽어 있는 영에게 예수님의 이  세 가지 공로를 입혔고. 이 세 가지 공로를 입히기 전에 먼저 그 영에게 정죄를  했고 정죄한 후에 이 세 가지 공로를 입혔고 이래 가지고 이는 이제 죄 없는 자  됐고 의로운 자 됐고 하나님과 화친한 자 되어졌기 때문에 이는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영생하는 그생명을 가질 수 있는 것인데. 죄보다는  의가 깨끗하고 의보다는 하나님과 화친이 깨끗하고 화친보다는 생명이 깨끗한  것입니다. 그 생명을 세 가지 공로의 순서를 밟아 가지고서 생명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 생명 가진 것은 어떤 게 생명인고 하니 하나님과 조금도 틈이 없는  밀접한 하나가 될 때에 고 생명이 영이 사는 것이고 거기서 조그만치 라도 틈이  있으면 거기서는 생명이 바로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은 하나님께서 단번에 정죄를 하고 또, 이 대속의 공로를 입고 또,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심을 인해서 중생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중생할 수  있는 그 모든 근거. 기초 작업, 모든 권세, 중생할 수 있는 그 구비 근거는,  구비 근거는, 구비 자원은 이것은 우리가 범한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우리가  중생할 수 있는 그 모든 근거 중생할 수 있는 모든 자본그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척 죽으심으로 다 마련됐습니다. 죽으심으로 다 마련됐으나 다시  살릴 수 있는 그 살리는 그런 것은, 살아날 수 있는 살 수 있는 살아날 수 있는  그 모든 근거만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대 줬지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닙니다.

살아날 수 있는 그 모든 법적 해결이 되고 다 그런 근거와 그런 권위는 다  가졌지마는서도 실상으로 살아나지는 못 하는 것입니다. 못 하는데, 실상으로  우리를 살아나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다시 신성이 인성을 입고  다시 살아나는 이 부활을 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부활은 우리에게는 좋지마는서도 예수님에게는 큰  희생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사람 되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까지의 고난의 희생의 그 분량과, 예수님이 죽었지마는서도 그 영은 죽지  안했기 때문에 죽지 안한 영이 그만, 하나님의 신성이 그대로 살아 있으니까  인성만 벗어 버리면은 내나 신성이 자유할 수 있는 신성이 되는 것인데, 다시  인성인 피조물을 입고 부활을 하시지 안하면 우리가 실상으로 살지를 못하기  때문에 실상으로 살리는 이 대속을 하기 위해서 죽음에서 신성이 인성을 입은 이  큰 희생의 부활을 하신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이 부활하신 것은 우리에게는  크게 유익이 됐고, 또, 우리는 유익이 되고 했으니까 우리는 감사를 해야 되고  또, 주님에게는 어떻게 됐느냐? 주님에게는 주님의 그 사랑에서는 한없는 만족이  됐지마는서도 실상의 그 자체에 대해서는 영원한 모욕이요 영원한 천대요 영원한  고난인 것입니다. 영원한 고난을 주님이 자칭해서 그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고난을 받으시고 다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법적으로 고난에서  면제된 그 고난을 실상으로 면제받아 가지고 중생된 것입니다.

 그러면 중생되고. 중생되고. 영은 단신에 중생됐지마는 우리의 이 심신이라는  육은 이것은 단번 중생을 하지 안했는데 단번 중생하지 못하는 것은 이것은  수많은 요소로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몸의 세포도 수가 많지마는 마음의 세포는  수가 더 많은 것입니다. 몸의 세포보다 마음의 세포는 수가 더 많기 때문에  단번에 이것이 영 모양으로 살아나지를 못 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수많은 차례를 거쳐서 이 심신이 살아나게 되는데, 이 심신이  살아나는 것은 우리의 현실을 통해서 살아나게 되기 때문에. 그 현실을 통해서  살아난다는 이것이 얼마나, 요 현실에서는 요 요소가 살아나고 조 현실에서는 조  요소가 살아나고 이러니까, 유아 세례. 어릴 때부터, 어릴 때부터 모태에서부터  예수 믿어 가지고서 이 심신의 구원을 이루 사람과 나이가 많아 가지고 믿어서  이 심신의 구원을 얻은 사람이 그것이 암만 해도 차이가 있다 이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 현실마다 살렸기 때문에. 이러니까, 차이가 있는데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먼저 된 자 나중 되고 나중 된 자 먼저 된다는 요 계약 선포를  했기 때문에 요 계약을 인해서 나중 믿은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계약하기를  모태부터 믿은 사람보다 더 좋은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 하는 그런 하나의  조건이 있기 때문에 요 조건으로 인해서 모태에서부터 믿지 못한 그 사람에게  이제 소망이 있고 위로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기본구원을 절대 이룰 수 없습니다. 기본구원을 이것을 인간으로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데, 하나님으로도 단독이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인성을 입고 오셔 가지고서 신인 양성 일위가 돼 가지고 비로소  우리의 기본구원을 이룰 수 있는 공로를 마련했습니다. 기본구원의 근거를  마련하셨습니다. 마련하시고, 이 기본구원을 우리 영에게 그저 공으로 이렇게  입혀 줘서 우리 택한 사람들은 다 기본구원을 꼭 같은 기본구원을 입게  됐습니다.

 이렇게 어려우나 어려운 이것은. 우리가 이 기본구원을 얻는데는 어렵지 안하고  예수님이 신인 양성 일위로서 인간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이 구원을 예수님이  대신해서 이루셨기 때문에 이루시느라고 예수님이 어려웠지, 예수님이 어려웠지  우리는 어렵지를 안했습니다. 어렵지 안했고. 또, 이 구원을 입는데도. 입는데도  입히느라고 하나님이 어려웠지, 성령과 진리와 이 공로가 이 중생을  입히시느라고 힘이 들었지 우리는 거게 힘들지 안 했습니다. 우리는 입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입히는 줄도 몰랐고 우리는 그저 죽은 자가 살아나고 난 다음에  '아, 나는 살았다' 이랬지 어떻게 살렸다는 그것은 우리가 모르는, 하나님만이  아시고 힘쓰신 그 어려움으로써 입혔습니다.

 그러면, 기본구원을 얻는 그것은 공로는 예수님이 대속을,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공로로써. 신인 양성 일위가 전부를 다 기울여 가지고서 베푸신 이  큰 힘 들이고 어려운 공로를 베풀어 가지고 이 공로로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서는 우리가 살게 됐는데, 하나님의 지성 지공법에서 살게 된 이 삶을  우리에게 입혀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다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인성을  입으시고 영원히 입으시고 살아나 가지고 이 공로를 베푸시고 우리에게  입히느라고. 피와 성령과 진리가 협력을 해 가지고 이 공로를 우리에게  입히느라고 큰 힘을 들여서 우리의 영이 이 공로를 입어서 단번에 살아났습니다.

 단번에 살아났는데, 살아난 우리에게. 지금 이제 우리가 건설구원이라고 하는,  마음과 몸이 구원 얻는 이 건설구원인데. 건설구원, 마음과 몸이 구원 얻는데도.

마음과 몸의 구원 얻는데에 두 가지 구원이 있는데, 마음과 몸이 구원 얻는데 두  가지 구원이 있는데 하나는 무슨 구원인고 하니 형체의 구원입니다. 형체 구원  이 구원은, 형체 구원은 우리가 그걸 이룰 수가 없고 하기 때문에 이 형체  구원은 하나님이 또,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면 피와 성령과 진리가 우리의 형체  구원을 다 책임지고. 우리는 형체 구원에 대해서는 아예 우리는 힘쓸래야 쓰지도  못하고 힘써 봤자 안 되고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해 주셔야 되지 이 형체  구원은 우리 힘으로는 할 수가 없는 구원인데 이제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  능력이 합동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이 형체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형체 구원이라는 거는 뭐이냐 하면은 이 다음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다시 지금과 같은 형체를 가지고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 형체와 같이  부활되는데 우리가 다 안면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시고 난 다음에.

그들이 지식을 초월한 일이기 때문에 몰랐지마는 예수님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처음에는 몰랐지마는 '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하는 걸 알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을 길 가다가 만날 때에도 '아, 예수님이시로구나.' 또, 어데서 만날 때  '아, 주님이시로구나.' 안면을 알았어. 안면이 그 안면이 무슨 안면이냐 하면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의 안면과 꼭 같은 안면이기 때문에 그 안면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요한계시 1장에서 사도 요한이가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서 그만 바시서, 햇빛과 같은 빛나기 때문에 앞에 꺼꾸러졌다 하는  그것을, 그렇게 표시한 것은 뭐이냐 하면은, 사도 요한이가 밧모섬에 가 가지고  성령의, 더 평소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보니까 예수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행하신 일과 자기가 예수님을 대한 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기가 막혀서  기절하기까지 됐던 것입니다. 이래서, 해와 같이 빛나더라 그 말은 바시서,  주님의 얼굴이 바시서, 보시서 요새 표준어는 바신다합니까 보신다합니까?  그렇게, 주님이 어떠하신 분인 것을 제가 철없이 모르고 벌로 날뛰었고 또,  주님은 자기에게 어떻게 하셨는데 자기는 주님에게 대해서 참 억만분의 일도  느끼지도 못한 그거 보니까 부끄러워 못 본다, 눈이 보신다 하는 그 말은,  보시는 거는 햇빛에 보시는 거야 해가 보시는, 눈에 물질적으로 보시는  것이지마는서도 사람 안면 보시는 거 있지 않습니까? '아. 내가 부그러워 어찌  대해?' 그 안면을 대할 때에 참 너무 부끄러워서 대하지 못하고 그만 보시서,  너무 안면에 보시서, 눈에 보시서. 너무 보시서,  이래서, 죽은 자와 같이 그렇게 기절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보고서 그런 것인데,

 이 기본구원 영은 그렇게 얻었고. 또, 우리의 육, 심신의 형체가 이와 같이  구원 얻는 것은 하나님의 공로로만 순전히 형체가 구원 얻지마는서도, 우리의 이  형체는 그렇게 구원 얻지마는서도 우리의 심신의 형체를 제하고 나면 남는게 뭐  있어요? 형체 제하고 나면은 뭐 남는 거 뭐 있습니까? 형체 뿐이오? 형체 속에  기능이 있다 말이오.

 형체 속에 기능이 있는데 이 기능을 하나 하나 이렇게 영생할 것으로  살려내는데에는 요 현실에서 요 기능을 살려내고 조 현실에서 조 기능을  살려내고, 그래서 현실마다 고 기능이 살아날 때는 어떻게 살아나느냐? 고  현실마다 예수님이 투쟁하신 것은 마귀로 더불어 직접 투쟁했지마는서도 우리가  이 투쟁하는 것은. 마귀는 이제 예수님이 이겼기 때문에 마귀가 예수님의 종이  됐습니다. 종이 된 이 마귀를 우리의 심신의 구원을 입히기 위해서 이 마귀를  제한적 마귀로 우리에게 둬 가지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명령을 따라서 제한적으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서 우리 기능이, 우리 기능이 마귀와 악령과 악성과  악습대로 우리의 기능이 움직이는 이 기능이 되어서 영원한 사망이 되었는데  이것이 이제는 예수님이 공로를 베풀어 주셔서 살 수 있는 그런 법적 권리는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실질적으로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더불어 싸워서. 성령의 감화와 또, 내 주장대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와 또,  이제 악습의 반대의 이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권고를 따라서 살아야 되겠다 그  말이오. 악령과 악성대로 산 것이 악습이오. 이런데. 성령과 하나님 중심인 그  진리대로 살 때에 그것이 믿음이 되고 그것이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렇게 실지로 이 현실에서 살아야 고 현실에 관련된 기능이 살아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 현실에는 요 종류의 기능이 활동하고 조 현실에는 조 종류의  기능이 활동하는데, 고 현실마다 고 현실에 해당된 종류의 기능이 활동 하게  되는데 고 활동에서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것을 배격하고 이 되 공로를  힘입어서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 내가 그 현실에 복종해 살 때에 우리가 그것이  개별적으로 예수님이 이미 승리해 놓은. 승리해 놓은 마귀. 하나님 이, 주님의  종이 되어서 주님의 시키는 대로 하고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내놓고  시험하는 그 악령으로 더불어 싸우는 이 도전을 우리가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다 전투입니다. 우리 현실은 전투인데, 내게 있는 내  기능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이것을 배반하고서 이제 피와 성령과  진리대로 속해서 사는 것으로서, 여게 속했던 것. 사망에 속하고 마귀에 속하고  죄에 속하고 자기중심에 속하고 자기 위주에 속했던 것이 이제 하나님 중심  하나님 위주에 속하는 성신의 감화에 복종함으로써 예수님의 피의 공로를  입는자가 된다 그 말이오. 그러므로 이게 전투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전투에서 하나 하나 싸워서 이겨 가지고서 우리의 기능, 기능  구원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 이기는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로 마귀를  우리가 힘만 쓰면, 힘만 쓰면 이길 수 있는 고 제한적, 제한적 마귀로 우리에게  하나의 우리의 전투하는데 이길 수 있도록 요렇게 충격 그만침 주는 고 제한적  투쟁을 하도록 하나님이 조절해 주시지 안했으면 마귀를 우리가 이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타락성이라 하는 이 자기중심의 원죄, 이 타락성, 자기  중섬 자기 위주성 이라 하는 이것을, 이 타락성을 예수님의 공로가 아니면  이것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공로를 힘입어서만 이걸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의 피공로를 힘입어 서만 이길 수 있고 성령을 힘입어서만 마귀를  이길 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건설구원은 예수님의 이 대속한 공로 이 공로를 우리가  힘입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힘입으면 이길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기능이라 하는  것이 현실 현실마다 현실에 해당된 기능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음으로  이길 수 있도록. 힘입으면 이길 수 있는데, 힘입으면 이 길 수 있는 이것은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이기는 것이지 공로를 힘입지 안하면 이기지 못하는  것인데.

 기본구원 영의 구원이나 우리의 이 형체의 구원은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다 대속의 공로로 하셨고 우리의 이 기능 구원이라는 것은 이  기능 구원은 영이 써야 되기 때문에, 주격인 영이 써야 되기 때문에 영을 통해서  이것을 살려야 되지 영을 통해서 살리지 안하면은 이 영과 이질돼 가지고 끊어져  가지고 안 되고 영을 통해서 살리는 것입니다. 영을 통해서 살리는데 그러면.

살릴 때 언제 살리는가? 현실에서 살리는데 현실에 어떻게 살리나? 전투로  우리가 이기면 살아납니다.

 전투를 이기면 살아나는데 이 전투를 이길라고 하면은 어떻게 하면 이길 수가  있느냐? 네가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라 말입니다.

생명의 면류관 얻는다,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이 승리하게 된다,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이 승리하게 된다, 생명의 면류관 얻는다.

 이러기 때문에 그 말씀을 주님이 또, 달리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면, 네 있는 것만 다 하면 이길  수가 있다, 영생할 수 있다 그 말은 생명이 승리해서 안 죽는 생활 할 수가  있다, 기능이 살아난다 요 다섯 가지를 다하면 기능이 살아난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기능이 살아났지만 그 다음에 또, 현실에서 이거 다하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 한다 이 마음과 생명과 힘과 뜻과 이 성품, 그라면 내 전부입니다.

나 전부를 다하면 이 악령의 도전, 예수님이 도전하셔 가지고서 완전히  승리했지마는 승리해 놓은 그것이, 승리해 놨는데. 우리들을 주님께서 은총  안에서 개별적으로 이렇게 지금 당신이 이루어 놓은 이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실력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거는 연습적 전투요.

연습적 전투요 요것 제한적 한정이 있어서, 우리가 이길라면 이길 수 있도록  조절해 가지고서 우리에게 전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연습적 전투라  말이오. 연습적인 이 전투에서 우리가 다만 하면 이기는데, 다만 하면 기능이  살아나고 다하지 아니하면 주님의 공로를 입었지마는 주의 공로를 입고 살  자격이 없기 때문에, 입고 살지를 못했으니까, 못했으니까 이것은 그 기능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병아리가 부화할 만한 그만한 전부 실력을 갖추고  나왔을 때에는 그 실력으로 살 수 있지마는서도 갖추지 못할 때는 죽는  것입니다. 갖추지 못할 때에는 죽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공로를 입혀 준 것을 내가 내 개별적으로, 사적으로, 사적으로 이렇게  전투하는데 고걸 사적의 현실에서 승리를 해야 내가 승리자로 살 수가 있지 승리  못 하면 승리자로 살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현실 현실에서 이루어 나가는데 현실 현실에서  건설구원을 이룰 때에는 우리가 얼마나 힘써야 되느냐? 우리가 아무리 힘써도 안  되는 것이냐?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기본구원은 아무리 힘써도 안 되는  것인데 당신이 공로를 베풀어 놨고, 우리가 지금 건설구원 이루는 것은 주님이  기본구원을 이루어서. 우리가 아무리 해도 우리가 아무리 해도 절대 할 수 없는  그 부분은 당신이 다 이루어 놨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만 우리에게  담당되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다만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전심전력을 다만 기울이면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이렇게 성품을 다해서. 있는 것을 하나라도 두면 안 된다.

'다 버리기 전에는' '다 버리기 전 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하는 말씀  있습니다. 그게 뭐이냐 하면은 다 버려야, 다 버려야. 아무것도 '요거는 내가  아까우니까 요거는 가지고 요 건설구원 얻겠습니다.' 하면 헛일이라 말이오.

이제 대적적인, 대적적인 마귀는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조절해서  마귀에게 시켜 놓기를 내게 있는 것 있는 것을 다하지 아니하면 요 사적 전투를  승리하지 못하도록 고렇게 조절하십니다. 고 조정을 해 놓기를 내가 다하면 이  사적 저투를 승리하고 다하지 아니하면. 사적 전투를 승리하지 못하도록 요렇게  조절 해 놨기 때문에, 조정을, 해 놨다 말이오. 조정을 해 놨기 때문에 뉘든지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하는 사람은, 전부 사적 전투에서 다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은 십자가에서 마귀에게 도전해 가지고 마귀에게 이겼습니다.

이겼는데, 우리도 지금 뭐이냐 하면 우리 개적으로서 사탄에게 도전합니다.

도전해 가지고 이기는데, 도전하는 이것은 주님이 이겨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것이지마는서도 우리가 우리 개적 도전이기 때문에 도전해서  우리가 이 도전해서 이길라고 하면은, 도전해서 이겨야, 마귀 이기고 사망  이기고 죄가 우리에게 지고, 이것이 다 져 버리고 우리가 이것을 이겨야 된다  말이오.

 그러면, 악령 악성 악습 이것을 이겨야 된다 말이오. 이겨야만 내가 피와  성령과 진리의 것이 됩니다. 이렇게 이길라고 하면은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해야  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야만  이길 수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다하면 이길 수 있는데. 만일 여게서 이  도전에서 패전한 것은 둘째 사망의 해를 다 받아 가지고 다 절단납니다. 그  기능이 죽습니다. 이러나, 승리한 것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안합니다.

법적으로는 살아났지마는서도 도전해서 실전에서 패전했기 때문에 다시  죽으니까. 첫째 아담의 범죄로 죽은 것이 아니고 이제 내가 전투해서 졌다  말이오. 전투해서 져서 패전해 죽었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입니다. 그런고로 이 건설구원은 심판이 무슨 심판을 받느냐? 우리의  기본구원인 영 구원은 하나님의 공심판을 받았고, 하나님의 공심판을 받았고,  우리의 건설구원의 심판은 무슨 심판을 받느냐 하면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받습니다. 이 사심판을 받습니다. 사심판 받는 것은 사적 전투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오늘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이거 뭐 다 알는지, 여러분들이  알아야 알고 말해야 힘이 있고 가르칠 수 있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 구원은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있는데 기본구원은 이거는  절대 할 수 없는 걸 예수님이 신인 양성 일위가 돼 가지고서 있는 걸 다 들여서,  생명까지 바쳐 가지고 이 승리를 해 가지고, 이 구원은 다, 첫째 아담이 사망한  것은 싸워 가지고서 졌습니다. 배암에게 져 가지고 죽었고, 이제는 둘째 아담은  전투해 가지고 이겨 가지고서 우리가 구원 얻게 된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기본구원은 예수님이 큰 힘 늘여서 전투해 가지고 이겨서  우리에게 공짜배기로 줬는고로, 이 기본구원은 절대 안 되는 어려운 구원인데 이  구원을 예수님의 공로로 됐고. 이 건설구원은 예수님이 이렇게 힘 들여 절대할  수 없는 이 구원을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시고 우리가 이 구원을 받아 가지는데에  우리의 것을 다하면 될 수 있도록 요 정도로서 주님은 우리에게 허락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것을 남기고는 예수님의 공로를 입지 못한다 그  말입니다. 실은, 다해야 되지 다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공로를 입을 수 없고  예수님이 베풀어 놓은 그 구원을 입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여러분들도 그래 알아야 되고, 우리의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은 신인 양성 일위 그분이 다해야 되지 다하지 안하고는 안  된 것이 기본구원의 이 공로이고, 우리의 건설구원은 당신의 것 다 들여 가지고  이루어 놓은 구원을 우리가. 내가 내것을 삼으려고 할 때에 내것 삼는 것은 영과  이 형체, 심신의 형체의 구원을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고, 그거는 못 이루기  때문에 하나님이 순전히 은혜로 이루어 주시고,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은 형체  속에 있는 그 기능은 우리의 이것을 다하면. 우리의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성품 다하고, 요 다섯 가지를 다하면. 요것을 다하면.

건설구원인 기능을 우리가 살 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하지 안한 것은 살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를 수십 년 믿어도  다해 보지를 안한 사람은 하나도 살려 놓은 것은 없다 그 말이오. 하나도 살려  놓은 것은 없어. 다한 거기에서, 그 현실에서 다했을때에 살아나는, 다했을 때에  살아나도 다하기 전에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요 것으로 한계점을 지어야 되는데 요게 왜 물러졌느냐 하면은 너무  그렇다고 하면은 사람들이 다 낙망하고 말 터이니까, 낙망하고 말 터이니까 이제  이라면 살아난다 살아난다 이렇게 말하지마는서도. 현실현실 마다  살아나지마는서도 현실에 그때 성신의 감화를 받아 자기의 마음이나 힘이나  어떻게 한목 쏵 다 쥐일 때가 있다 말이오. 다 쥐여 가지고 뭐 죽어도 살아도  요대로 내가 살겠다는 고 현실에서는 고렇게 해 가지고서 그게 다되는 현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보면 앞으로 목숨이 죽을 단계에 가 면은 뭐 목숨 못 내놓을  사람도 지금은 '주여, 내가 몸과 생명을 다해서 주를 믿습니다. 다 해서'  이렇게, 현실에서 다할 때, 다할 때에만 그때만 고 현실에 있는 기능은  살아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다함으로써, 다하는 것이 한 번 있었으면 기능이 하나만  살아났고 열 번 있으면 열 기능이 살아났고 백 번 있으면 백 기능이 살아났고 만  번 있으면 만 기능이 살아나서 다한 때만 살아난 것이지 다하지 안하면 예수님을  다 믿는 게 아니라 그 말이오. 다하지 안 할 때에는 예수님을 다 믿는 게  아니라. 다안 할 때에는 예수님 믿는 거 나 이렇게 둘이 반반이지 내가 예수님을  안 믿으면 예수님의 공로가 내것 다 안 되었기 때문에, 다 안 믿으니까 예수님의  공로도 내것 다 안 됐고 내것도 예수님께 다 드리지 안 했고 했기 때문에 이거는  건설구원 이라 하는 것이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안 되는데 아 말을 왜 무르게 해 놨느냐 하면은 이라면 사람들이 아예 낙심하고  그만 안 달라들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쉽다고 이렇게 해 가지고 자꾸 하나만.

차차 차차 믿어서 들어가서. 성경에 보면은 어떤 데는 쉽게 말했는데 어떤 데는  이 다섯을 다하지 안했을 때는, 나를 주님께 다 바치지 안 했을 때는 구원이 안  된다는 그런 성구들이 뜨문뜨문 있다 말이오. 그거는 뭐이냐 하면은 이제는  장성한 사람이 좀 자기가 차차 차차 쉬운 것을 구원을 얻어 가지고서 변화가  되어졌을 때에 최종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는 것을 다 버리기 전에는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또, 죽도록 충성하지 안하면 안 된다, 네 행위의 온전함을 이루지  안하면 안된다 이런 말씀이 다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오늘 가르칠 때에 이 구원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 세상에서  병신이 말이오. 병든 것이. 암병 든 것, 그걸 수술해 봤자 별로 몇해살 지도  못할 거 육체의 병든 것도 이놈 고쳐 봤자 명해 안 될 것인데. 몸이 몸이 영원히  쇠하지도 늙어지지도 낡아지지도 안하는 이런 기능으로 우리 가 살아나는 것,  또, 우리가 뭐 조그매라도 젊은 사람들 날래면 그만 훌떡 뛰어서 얼마만 해도  뭐, 젊은 사람들이 힘 좀 세면, 이 목사들 가운데서도 그래. 이게 젊은, 젊은  목사들 말이지, 젊은 목사들, 젊은 놈이라 해도 좋아. 젊은 목사들 육체의 힘이  있으니까 그 힘 있다고 어떻게 내 뿜고 이라는지 도무지 나이 많은 사람은  멸시해. '뭐 내가 주먹이 있으니까' 지리에 어겨지는 소리도, 하나님의 뜻에  '그라면 안 된다' 해도 딱딱 반항을 하고 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내가 언제 전에 '우리 총공회 목사들은 고기 덩어리 힘이지 너거는  진리 힘이나 성령의 힘은 없다. 주의 피의 힘은 없다. 너거 고기 덩어리  힘이다.' 이러니까 그 힘센 누가 일등 누가 이등, 전부 강퍅하고 고기 덩어리  힘있는 그자들이 제일입니다. 이 힘 이까짓 것도 힘이 있으니까 뽐내고 어거 힘  있다고서 조그매만. 뭐 사람들이 여기서 천장에 훌떡 뛰어 오르면 그 사람이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챔피언의 무슨 상이 있을 거라 말이오, 해 봤자 그까짓 거  올라가면 얼마나 올라갑니까? 우리는 이 우주를 헤어 갈 수 있는 무한의 힘,  영생하는 생명, 다시 병들지 안하고 늙어지지 안하고 쇠하지 아니하고 약해지지  안하고 더러워지지 않는 건설구원. 그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는 이 구원, 이  건설구원의 그 종류를 말해서. 이 건설구원이라는 게 어떤 구원인데 이 구원을  얻는다는 이게 힘을 안 들이고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대가리 싸매고 뭐 제가 밤낮으로, 누가 말하면, '새벽기도  나오너라' 삐쭉 하고 또, 주일 잘 지키라 하면 삐쭉 하고, '히, 내야 지금  공부해서 지금 우리 학교에서 톱을 한다, 일등을 한다. 서울 대학에서 톱을, 일  등을 한다, 미국에 있는 제일 좋은 대학 하버드 대학에 가서 나는 일등을 한다'  제까짓 게 일등 해 봤자 그까짓 게 무슨 가치가 있소? 이런 것도 대가리 싸자  매고 교만 한데, 우리는 지식으로 말라면 전지의 지식이요 전능의 능력이요  생명으로 말하면 영생하는 생명인데 이 생명을 우리의 기능이 얻는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다는 걸 알고, 이렇게 가치 있으니까 힘이 얼마나 든다는 걸  알아야 될 터인데, 가치 있는 것도 모르고 힘 드는 것도 모릅니다. 이는 땅의  걸로 형용할 수 없는 지극히 가치 있는 고 귀한 건설구원 이요. 기능구원이요.

기능구원인데. 이 기능구원을 그러니까 얻기도, 공부 아무리 열심히 하는 놈도  목숨 바쳐 공부하는 놈 없습니다. 그렇지 안해요? 죽고 공부하는, 이런데.

우리는 목숨을 다해야 합니다. 죽어도, 목숨을 다하고, 언제든지 현실에 목숨  다하고. 마음 다하고 목숨 다 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고 자기 성품 다하고 자기  전체를 다 해야만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인데 이거 너무 쉽게 보고 있어요.

왜? 이렇게 가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힘이 들어도 누구든지 이 가치를 아는  사람은 여기에 전부를 다 기울여서 이루지 안 할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 그  말이오.

 그런고로. 오늘 요것을 가르쳐야 되겠고, 하나님은 할 수 있다는 것은 뭐이냐  하면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신인 양성 일위로서 할 수 있다는 말이요. 또,  하나님으로 할 수 있다는 말은 우리만 다하면 하나님이 공로 베푼 공로를  힘입어서 할 수 있는 것인데, 기본구원이나 건설구원이나 하나님의 공로를  힘입어서,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공로로만 되는 것이고. 건설구원은 하나님의  공로와 내게 있는 것을 다하면 된다 말이오. 내게 있는 것을 다하면 된다는 것은  어디다가 말했느냐 하면은 '나와 내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린 자' 여게는,  '버린 자' 여게는 고렇게만 말했으니까 사람들이 다 한목 다 버린다 하면 죽을  지경이고 지금 낙망할 것이기 때문에 요걸 말했지마는서도 딴데는 말하기를  목숨을 버리지 안하면 안 된다 이랬습니다. 목숨을 구원코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나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자는 살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다 말이오.

그러면. 그 전부를 종합해서 보면은 우리의 건설구원 이루는데에는 우리의 있는  것을 다만 하면 돼요. 이러니까 다해도 안 될 터인데 예수님의 공로 때문에  다하면 돼. 불택자들은 다해도 안 돼. 예수님의 공로가 없기 때문에 건설구원도  기본구원도 다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은 반사 선생님들이 가르치기를 구원이. 구원은 두 가지  구원인데, 기본구원은 생각할 것도 없고 다 되어 가지고 있고, 건설 구원을  이루는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이 건설구원이 보배로운 구원인데, 이  보배로운 구원을 이루는데에는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우리 가 말해 줘야 됩니다.

어렵다는 것. 어려운데, 어려운데. 그러면, 어려우면 어찌 되느냐? 어려우면,  어려우면, 다했는데. 다했는데 백 배나 더 주십니다. 다했는데 백배나 더 주셔.

그러면. 다했는데 백 배나 줬으니까 다 한 값입니까? 아니오. 다했는데 다한  그거는 영생 돼 버렸고. 영생돼 버렸고 또, 영생할 수 있는 자료를 많이 준다 그  말이오. 심는 자에게 씨와 양식을 새로 준다 말이오. 심는 자에게 씨를 주는  것은 씨고 씨고 값으로 주는 것이 아니고, 씨 값은 하늘나라에 있고 고거는 새로  새 자본으로 준다 그 말이오. 백 배 받는 것은 새 자본 받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건설구원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 건설구원이 이래  어려우니까 어째 얻을 수 있겠느냐? 누가 얻겠느냐? 건설구원의 가치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썩어지는 그것도 그런데 이 영영한 이 건설구원을 네가  가치를 알면 네 생명 다하지 안할 자 없다. 다하지 안할 자 없다.

 또, 마태복음 13장 44절에는 말씀하시 기를 그렇게 말씀했어. 보화를 만 난  자마다 진주를 만난 자마다 있는 겉을 다 팔아서 산다고 그렇게 13장44 절에  말씀해 놨어. 그렇지? 44절에 말씀해 놨어. 진주를 발견한 자 또, 보화를 발견한  자 이거 팔아서 다 팔아 가지고 산다 그 말은 이 건설구원이 얼마나 보배라는 이  가치를 아는 자는 자기의 소유나 몸이나 생명이나 애끼지 안하고 다 바쳐서 이를  얻기 위해서 바꾸지 안할 자 없다 말이오. 이 구워 얻기 위해서 다 투자하지  안할 자 없다 말이오. 이 구원 얻기 위해서 다 투자하지 안할 자가 없다는 그  말씀인 것입니다.

 네. 통성으로 기도 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시간이 짧은데 짧은 시간에 많이 할라 하니까 입은 더디지, 벙어리, 이거  말이라 하는게 둔해 마음으로는 가도 말은 안 따라가. 그러니까. 어려운 것을  말해 줘. 어렵게 예수 믿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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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16절/ 1981. 11. 20.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67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18.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266 하늘나라의 가치관/ 마태복음 18장 1절-5절/ 1985. 10 29.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265 하늘나라의 가치와 영광/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3.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264 하늘나라의 실력/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4.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263 하늘나라의 영광/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4.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62 하늘의 소망으로 일하라/ 고린도전서 15장 29절-58절/ 1988. 4. 10.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11
261 하늘의 영원한 처소/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1983. 10.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260 하라, 하지 말라/ 신명기 28장 1절-6절/ 1986. 10. 29.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259 하라는 것, 하지말라는 것/ 신명기 28장 1절-15절/ 1985. 2. 26.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258 하루를 하나님 경배로 시작/ 에베소서 5장 15절-21절/ 1984. 1. 6.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57 하와의 실패 원인 세 가지/ 창세기 3장 1절-4절/ 1980. 1. 2. 수저녁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