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의 가치

 

1981. 11. 21. 토새

 

본문 : 마태복음 10장 40절 - 42절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기 잘못 생각하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그 실상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헛 일하기 쉽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함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시는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라'  그만하면 될 터인데 하필 "아버지를 영접하는 자라" 하시기까지 그 근원을  들어서 말씀을 했고 또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  했으면 됐을 것인데 "선지자의 이름으로" 또 이름이라는 말 것다 붙여놨고 또  의인에 대해서도 '의인을 영접하는' 것이나 같을 것 같은데 '의인을 영접하는 자  의인 상 받는다' 그렇게 하지 안하고 "의인의 이름"이라는 이름을 거기에 떡  붙었습니다. 또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중 하나가" 또 제자 이름이라는 말씀이  거기에 붙었습니다. 또 '그에게 그 값을 준다' 이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상을  받는다" 상을 받는다 이렇게 상을 받는다는 또 그 말씀을 끼워 붙였습니다.

"상을 받는다"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지난 밤에 두 가지 뜻을 가르치고 있는데  두 가지 중에 하나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 말한 것은 가치관에 대해서 말을 했고  또 하나 말한 것은 상을 받는다 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상이라는 것은 그 선물로 주는 것도 아니고 또 유업으로 주는 것도 아니고  구제로 주는 것도 아닙니다. 상이라면 상이라고 언제든지 말씀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앞에 싸움이라는 것이 붙어 있습니다. 싸워서 이긴 자에게 상  주신다는 뜻이고 또 서로 경쟁하는데 서로 다투어서 어쨌든 경쟁하는 그  경쟁하는 거기에서 그 경쟁을 이겼을 때에 상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네 가지를 말씀하신 네 가지 가치관 아주 세상에서는 무시해서  예수님을 일생 동안 예수님을 믿어도 이 가치를 무시해서 이 가치관을 가지고 이  가치를 가치로 알아서 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목회를 해도 심지어 그  신앙생활에는 목회는 모든 것을 겸한 생활이기 때문에 제일 고귀한 생활이라 할  수 있는데 일생동안을 목회생활을 하면서도 이 가치관을 가지고 살지 못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가치관 하늘나라에서 제일 가치, 제이 가치, 제삼 가치, 제사 가치  그 외에는 가치가 없어. 인생이 살고 주님 앞에 갈 때에는 이 네 가지 가치  외에는 가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그 별별 저 사람은 무엇에다가 어떤 가치를  보고서 지금 무슨 가치를 자기가 바라보고 저렇게 하는가? 실은 모든 사람의  행동은 파고 들어가 보면 그 사람이 지금 어떤 것을 가치로 보고 그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서 그 가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하늘나라에서 제일, 제이, 제삼, 제사 이 가치를 그 사람이  가치로 인정하고 이 가치를 마련하기 위해서 자기가 세상에서 사는 그 생애를  산다는 그것은 그것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이  아무나 따나 그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싶다고 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에 전제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크게 말하면 땅에 속한 것의 가치가 있고 하늘에 속한 것의 가치가  있는데 땅에 속한 가치는 그것은 다 헛된 것이요. 실상의 가치는 하나도  없습니다. 땅에 있는 것의 가치는 실상에 가치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가치는 없는 것이지마는 가치있게 가공을 할 수 있다고 가치있게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그 나라의 소용이 있는 것이지 썩을 것이 있으면 그만이지마는 예수님의  구속의 공로로 인해서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이렇게 가공될 수 있다.

욕된 것이 약한 것이 혈육의 것이 이것이 참 하늘에 가치있는 것으로 가공될  수가 있는 그 소용이 있는 것 뿐이지 그대로는 가치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대로는 가치가 하나도 없는 것이지마는 사람들이 아주 가치없는 이것을 가치로  삼아 가지고 이것을 가치로 삼느냐? 하늘나라의 제일, 제이, 제삼, 제사 되는 이  가치 그때에 주님의 나라에 갈 때는 다른 것은 가치로 하나도 봐주지 안해  이것만 가치로 봐 주지 이 가치만 가치로 나타나고 모든 하나님도 그러하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그러하고 모든 만물들도 영물들도 다 이것만이 가치로  알아서 전부 이 인정을 하고 대우를 하고 또 모든 사람들이 다 찬양을 하고  높이고 이렇게 그 외에 것은 하나도 가지 안하지마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이 가치로 산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다 소용없는 아무 전연히 가치가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 땅에 속한 이  가치로 사람들이 살지 이 가치로 살지 안하고 이 가치로 산다는 그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 그게 심한 투쟁을 해 가지고 이 세상 가치로 살지 안하고 하늘나라의  가치로 살려고 심한 노력 가운데에 승리를 해야 이 하늘나라에 가치로 살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 이, 삼, 사 이것이 제일, 이것만이 무궁세계의 가치인데  이 가치로 사는 것은 다 그것이 하늘나라에서 상을 받게 된다 그말은 이 가치의  대우를 받되 그 대우 받는 것은 전부 전투해 가지고 승리자들이 받는다  그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렇게 허무한 것을 가치로 삼고 참 가치있는 것을 가치로  여기지도 안하고 이런 것은 아주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평상 믿어도 이것은  가치로 삼지 아니하고 그저 땅에 속한 것을 가치 그렇지 안하면 믿는데 무슨  성직 성직을 가지는 것 또 다른 사람들에게 명예를 가지는 것 이 사람은 무슨  혁명가라 개혁가라 이 사람은 대부흥사라 목회자라 또 대주석가라 신학자라  이렇게 하는 그런 것 그런 것은 가치라고 삼고 사는 사람 또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치마는 제일 가치, 제이 가치, 제삼 가치, 제사 가치이 가치로 삼아 가지고 산  사람은 그것은 심히 어렵습니다.

이 모든 이런 가치관도 다 그것을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이것도 가치가 이만  못하다.' 그래 이 모든 세상 가치 이것을 다 능가해 버리야 이것을 버리야  이것을 다 똑똑히 깨닫고 자기가 이해하고 이것을 제거해 버리야 또 하늘나라에  있는 것도 많이 있지마는 많이 있는 그 모든 가치를 다 제거해 버리 버리고 해야  이 일 이 삼 사에 올라오는 이 가치를 자기가 가치로 인정하고 이 가치를 향해서  살게 되지 그 모든 것을 다 인정 안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가르쳐서 상을 받는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제가 멸칠 전엔가 그 뉴스 나온다고 해서 그걸 제가 종종 잘 듣습니다.

라디오를 트니까 이거 뭐 이름이 누더라 누군데 그 사람이 아마 세계 참피온을  했는지 그 지금 그 어떤 사람이 지금 도전해서 올라오는데 그걸 이 운동장에서  구덕운동장 체육관에서 거기에서 그걸 이제 방어하는 도전 하려는 그걸 방어해  버리는 이 일이 있다고 뭐 전국에서 떠들고 뭐 야단이 납디다. 나는 그 잘  모르는데 참피온이 되려면은 이 밑에 있는 것을 이기내고 이기내고 때내고  이기내고 이기내고 이기내고 해 가지고 최후에 있는 것을 자가지 이겨내서  자기를 이긴 사람이 없이 최고가 돼져야 아마 그 참피온을 따는 모양인데 그와  같다 그말이오.

우리가 세상에서 살 때에 이런 가치관에서 유물주의의 가치관에서, 사회주의자의  가치관에서, 정권자의 그 가치관에서, 명예주의의 가치관에서, 이 지식주의의  가치관에서 뭐 가치가 어떻게 많은지 그런데 이 가치보다 이 가치보다 이  가치보다 세상 속한 모든 가치보다, 하늘나라에도 하늘나라에도 그 사람이  의인도 있고, 또 성자도 있고, 성녀도 있고, 봉사 많이한 사람도 있고, 이런데 이 가치보다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가치보다 이것보다, 제자의 이름으로  대접한 이 가치, '제자의 이름이 가치 있다' 제자의 이름, 또 의인의 이름, 또  선지자의 이름, 또 주를 영접하는 이 주를 영접하는 이 영접 이것이 최고의 귀한  것이라 이렇게 해서 그 모든 것을 다 능가하고 올라와야만 되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상이라' 그렇게 표현을 한 것입니다.

'상이라' 이것은 너무 여기에 세상에 젖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모두 다 예수님을 믿고 열심히 믿는다고  하지마는 아주 목회를 자꾸 부흥을 부흥사로 이래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하는  일이 무슨 가치를 보고 하느냐? 땅에 있는 가치를 보고 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하늘에 가치를 봐도 (하늘의 가치를 봐도) 하늘에 이런 종류의 존재 저런 종류의  존재, 하늘나라에 있는 종류니까 그건 영원히 믿는 것이지마는 그 종류를 보고  했지, 이 네 가지를 가치로 삼아 가지고 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를 가치로 삼는 데에는 수 없는 것을 다 이기고, 이기고,  이기고 나아가 가지고 여기에까지 올라왔다 이기요. 무엇인데 첫째가 주님을  자기가 참 깨닫고 주님을 사모하고 또 주님이 영원자존자가 영원 자존자가 영원  자존자가 (영원 자존자가) 자존의 사랑이 자존의 기쁨이 자존의 뜻이 합해  가지고 그거는 합하다 하면 좀 모순되지만 알아 듣기 위해서 합한다 합니다.

고건 단일성의 존재요. 뜻이 당신 같은 온전자를 만드시려는 그 욕망에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영원까지 다 예정하시고 또  예정하신 그대로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창조하셨고 그 모든 것을 섭리로  보존하시고 계속 재창조를 하시고 또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시 가지고 대속하시고  이 일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제일 크신 하나님 성부도 하나님이요, 성자도  하나님이요, 성령도 하나님이신데 영원 자존자이신 완전자이신 영원 불변자이신  이 성령님이 이 일을 책임지고 또 그 다음으로 큰 하나님의 뜻이신 진리 참된 이치 이 진리가 책임을 지고,  예수님의 이 공로로 설정해 논 이 일을 이루려고 이미 지음받아 존재한 이 모든  존재 이것을 이용하시고, 영원까지 다 하나도 틀림없이 고 때를 따라서 예정을  해논 고 예정대로 착착 이루어 나가는 이 사실 이 지극히 큰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닫고, 이 실상이 우리에게 와 가지고 부딪혀진 것이 주님의 신구약성경  문서계시요, 영감이요, 영감이 주님의 이 도성인신해 가지고 신인양성일위로써  우리를 대속하신 이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도 높은 분이 자기를 한 번 이름만  기억해 줘도 그게 한없이 영광을 갖다가 크게 여기는데, 하물며 이분이 나 위해서 모든 것을 예정하셨다,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도성인신하셨다, 십자가에서 대속하셔서 이 사죄 칭의 화친의 새생명 하나지마는  이 얼마나 큰지 이 사죄의 크심, 주님의 대속의 크심 우리의 소망의 큰 이  가치를 깨달아 가치를 깨달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높이고 주님을 높이는  그게 뭐이냐? 영원 자존하심의 그 하나님이 하신 그 아버지 높인다 말은 내나  예수님도 한 하나님이시요 한분이십니다.

한분이시지마는 아버지가 아버지라고 말할 때에는 그 제일 근본 역사를 말하고  그 다음에 성자라고 말할 때에는 그 근본 역사에서 붙어 나온 다음 역사를  말하고 성령님이라고 하면은 그 다음 역사를 말합니다. 그냥 한 하나님이요. 한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일에 시작하신 근본 제일 처음에 시작해서 하시는 그 일을  할 때에는 성부라 말했고, 그 다음으로 할 때는 성자라 말했고, 그 다음으로  말할 때에는 성령으로 말했습니다. 그러기에 성자가 해 논 일을 성령이  완성한다. 또 성부가 계획한 것을 성자가 와 가지고 설정을 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이분이신 것을 깨닫고 이분인 것을 깨닫고 이분을 인해서  이분인 이분을 깨닫고 이분으로 인한 이분에게 속한 자라고 해서 그들을  영접하는 거 자기가 '나는 구제하는 자선심을 가지고 구제해야 되겠다 자선심을  자선해야 되겠다. 나는 성자가 돼야 되겠다. 나는 인간을 갖다 널리 사랑하는  박애자가 되겠다.' 별별 종류가 있지마는 그것은 하늘나라에 상관이 없어 이분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 이분을 깨닫고 이분에 감격하고 이분에 감격 이분이  자기에게 어떻게 한데 대해서 감사하고 견지 못해서 이분을 인하여 그분에게  속한 부스러기도 기쁘다 그말이오. 감사하다 말이오. 마음에 존대가 된다  말이오.

제가 언제 (최성봉) 목사님이 작지를 이래, 그분도 참 좋았지마는 그때 여 왔을  때는 걸음을 잘 못 걷고 덜덜덜 이래 떠시면서 작지를 집고 이래 왔어. 이래  왔는데 그 오니까 누가 와 가지고 그 밑에 소지를 하면서 작지를 '와 이 현관에  갖다 놨노 이런 못쓸 작지 밖에 집어 던지요.' 그래 내가 깜작 놀래면서 나가  가지고 이 작지를 '이 (최성봉) 목사님이 집고 오신 작지다.' 그 내가 (최성봉)  목사님을 존경한다 그말이오. 존경을 하니까 그분이 집고온 그 작지도 작지를  존경한다 하면 우상 숭배가 되지마는 그 작지를 귀중히 여겨서 그 내가 그것을  얼른 가서 딱 가 가지고 가만히 모셔 세우는 그것은 뭐이냐 하면은 (최성봉)  목사 그분을 존경하기 때문에 내가 그 높히고 사랑하고 경외하기 때문에 그  작지를 경외한 것이라 말이오.

비유컨대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깨닫고 거기에 감격해서  주님에게 속한 자이니 해서 너희를 영접하는 것 너희를 영접하는 것은 나를  영접함이라 나를 영접함은 아버지를 영접함이라 이것이 제일 큰 가치요.

하늘나라에서는 (하늘나라에서는) 보면은 나중에 가서 성자로 산 사람들이 많고  성녀로 산 사람들이 많고 뭐 순교자들이 많고 이렇지마는 가서 보면 이 요소는  얼마 섞여 있지 안하고 명예심, 영광심, 자기의 하나의 자존심 또 자기의 의지,  자기의 그 사상 이런 것이 힘이 돼 가지고 했고, 주님의 이 구속을 자기가  깨닫고 이 구속을 감격하고 이 구속에 참 자기가 녹아져서 이로 인해서 인간  취급한 그것이 이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서 인간 취급한 고것이 하늘나라의 제일  가치입니다. 이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이성에서 비판오고  비판오고 이 싸움이 제일 큰 싸움이라 이 싸움이 제일 컸어 같이 한 자리에서  순교를 당했지마는 순교당한 것이 천층 만층이라 말이오.

여기에서 참 깨닫고 그분을 경외함을 인해서 며칠 전에 새벽기도에서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 경외로 인해서 권찰회든가 '자기 밑에 있는 종의 종이라도  그걸 경외하는 그분을 경외함으로 인해서 그 밑에 있는 이것을 경외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귀중히 여긴다. 이게 아니면 구원이 안된다.' 하는 것을 언제 말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주님이 주님의 그 크심이 어떠하며, 주님의 그 사랑의 희생이 어떠하며,  그분이 이로 인해서 우리에게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다는 이 대속 이 대속의  권위와 가치가 어떠하며,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내가 앞으로 구속받을 이 구속의  가치가 어떠한 이 사실을 깨닫고, 그분에게 감격해서 말하자면 그 포도주의  사랑의 (사랑의) 새포도주에 취했다.

그러면 이 주님의 이 사랑의 감격하고 고만 그 사랑을 다른 사람보면 미친자로,  그 사랑의 미친자로 그만 그 사랑의 감격해서 거기에 그 사랑의 자기가 감격하고  거기에 견디지 못해서 이렇게 크신 분이 나 위해서 자기 땅위에 어떤 일을 했다  할지라도 자기 한것은 먼지 같고, 그분의 큰것을 인해서 희생도 그러하고 수고도  그러하고, 모든 것이 그분을 봄으로 인해서 자기의 한 것이 너무 그분을 향할  때는 가치 없어서 견디지 못하는, 기절해 자빠진 것이 사도 요한이가 반모섬에  가 가지고 주님을 볼 때에 주님이 그 자기에게 대해서 하신 그 일이 어떻게  바시든지 볼 수가 없고 사모를 할 수 없어 너무 크고 높아서 사모할 수가 없고  자기는 이 주님에게 대해서 한것이 견디지를 못해서 거서 그만 놀래서  꺼꾸러져서 기절해 버렸다 말이오.

그것이 뭐이냐 그것이 사도요한이가 세상에서 참 그보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람이 없었지마는 그가 반모섬에 가 가지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가지고  주님을 깨달은 그때에 그 밝은 눈, 그때에 그 영감, 그때 영감은 자기가 주를  위해서 일생 동안 살았지마는 너무도 주님 앞에 참 참란됐고 가증스럽고 너무도  주님을 모르는 그 행동한 그것이 마음에 견디지 못하고, 주님을 볼라 하니까  보들 못해서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난다'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바신다 그말이오. 바셔 쳐다보들 못해 그 쳐다보들 못하고 주님의 이  물체가 바신 것 아니요. 주님이 자기에게 행한 그것이 마음에 주님은 나에게  이렇게 했는데 자기는 주님에게 한 것이 그 털끝만치 해놓고 '나는 주님에게  인간히 했다.' 성령의 감화가 떠날 때에는 '나는 주님을 위해서 너무 많이  했다.' 내가 이 서부교회가 주일학교가 지금 침체되어 있는 그 죄가 원인이 내게 있다는  그것을 벌써 여러달 전부텀 회개를 하지마는 하나님이 만족하시지를 안하는  모양입니다. 내가 죄를 큰 죄를 범한 것은 그때 내가 어떤 그런 기회가 있어서  그런 망령된 말을 했어. '이거 교회를 갖다가서 양을 많이 잡아서 자꾸 이렇게  양만 키울 것이 아니라, 이거 그저 알뜰히 해야 되고 이래야 되지 자꾸 확장만  하고 자꾸 넓히니 자꾸 키워간다고만 이렇게 할게 뭐 있느냐? 이 있는 것이나  알뜰히 간수하고서 고만 이래야 되지' 고 말을 해석을 하면 '일을 해놨으면 지금 일을 했으면 이제는 농사를 잘 다 지어놨으면은 그만 그거  앉아 파먹고 앉아서 좀 쉴 일이지 또 농사 짓는다고 자꾸 죽는 시간까지 농사  짓는다고 할게 뭐 있느냐? 이 일해 논 것을 누리야 될 시기인데 누리지는 안하고  지금 자꾸 일한다고만 날뛴다.'는 그런 말의 유혹이 내게 많이 들어왔다 말이오.

누는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하고 이런데 자꾸 확대한다고 이래 가지고 만날 빚에  쫄리고 자꾸 뭐 돈에 쫒히고 이래 가지고 그럴게 뭐 있느냐? 이 말을 하고서  그때 좀 교회가 무엇이 이러니까 좀 쫄리지고 안되질 때에 내가 그때 그 교회를  자꾸 이래 키울려 하면, 아니 이것도 일종 허욕이라 그저 이 요만침 컷으면 이제  알뜰히 간수나 할 일이지 자꾸 허욕시리 키루려 한다는 이런 생각 가져서 고런  말을 내가 그때 그 속으로 마음을 그런 마음을 가졌다 말이오.

고런 마음 가진 고것을 주님 앞에 큰 가증이라 '이놈아 네가 여기에 키우는데  네가 무슨 힘을 쓰고 네가 내가 하는 일에 방해나 지우지 네가 한것이 뭐 있으며  네가 했느냐? 또 이렇게 고만 한 사람 두 사람 구원얻을 학생들 오면 이걸 이 네  생명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인데 나는 이렇게 했는데 내가 어떻게 이렇게  평가하느냐?' 그러나 그 생각 가지고 난 다음에 회개를 즉시 하기는 하고 지금도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 자복을 하지만은 하나님의 그 노가 풀어지지 안하는 것 같애요. 이  노가 풀어져야 이제 주일학교가 자꾸 올라갈 거요.

이렇게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주님이 대속하신 것이 얼마나 크며 이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지극히 큰 소망이 왔습니다. 지극히 큰 소망이 소망이 땅  위에 무엇으로 있는가? 이 만일 소유의 양으로 말함다면 이 지구 땅덩어리  차지하는 것입니까? 아니요. 우주를 차지하는 것입니까? 아니요. 영계와 우주가  다 너희 것입니다. 소유권으로 말하면 소유의 양으로 말하면 이렇게 큽니다.

지위로 말하면 자존하신 한분 밑에서 영계와 물질계의 천군 천사들도 있고,  만물도 있고, 거기에는 박사들도 있고, 괭장히 높은 사람들이 다 있지마는  자존하신 그분과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과 그 사이 위치에서 (그 사이  위치에서) 영광을 누리지 않습니까. 그 사이에 위치에서 영광 누리는 자라야 그  사이 위치에서 하나님이 수고하시는 그 수고와 같은 그 수고, 하나님 다음으로  수고하는, 하나님 다음으로 봉사할 수 있는, 하나님 다음으로 실행할 수 있는,  하나님 다음으로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이렇게 헤어날 수 없는 이  영광스러운 존귀한 위치 말이오. 이것이 우리의 이 대속 받은 자가 받은  이소망이 큰 소망 아닙니가.

이러니까 "너희들에게 지극히 큰 소망을 주셨으니 곧 세상에서 썩어질 그  정욕대로 사는 생애를 버리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이 일을 하도록 했으니  너희들이 힘쓰고 더욱 힘쓰라" 이랬습니다.

이랬는데 이런 가치관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한없는 투쟁을 해서 이거는  뭐이냐? 비판 투쟁이요 평가 투쟁입니다. 비판을 이것도 아니다 이거보다 이게  낫다 평가해 이거보다 이게 가치있다. 수많은 이 투쟁을 통과해 가지고 왔기  때문에 이것은 하늘나라의 대우인데 다 이것은 전투해서 승리자가 얻는 승리의  상급으로 얻는다 하는 것으로 여 상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제일 가치, 이 가치가 우리에게 얼마나 있는지 이것은 이 가치가 그저 눈에  보이는 것 아니요. 자기 감각에 떠오르는 것 아니요. 이것은 우리가 성경 말씀  가지고 비판하고 거기에다가 양심을 가해서 양심으로 비판해서 양심 비판이 싸움  말이지, 양심 비판에 일반 이 세상 사람들을 접해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고 뭐  보고 움직이는 거기에 접해 가지고 평가하는 이 평가를 다 떠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의 이 평가를 해야 될 것이고, 이 말씀대로의 평가에서 이 평가를 능가해서 양심대로의 평가를 해야 될 것이고  양심대로의 평가를 능가해 가지고 영감대로의 이 평가 이렇게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비판하고 비판하고 평가하고 평가하고 이 모든 것을 다 능가하고  올라와야 이분이 얼마나 큰 분이며 이분이 나에게 어떻게 한 분이며 이분이  앞으로 나에게 어떠한 분이며 이러니까 이분외에 없어.

이러기 때문에 하늘에서도 주 외에 사모할 것이 없고 땅에서도 주 외에 사모할  것이 없고 가까이 할 것이 없는데 주를 버리고 세상으로 간자는 다 음행하는  자니 그의 장래가 비참하다 하는 것을 시편에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이렇게 고만 좀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우리 속에는 이 세상 것으로  평가한 그 옛사람 이 평가의 사람 옛사람 이 욕심 이것을 육체의 소욕이요.

이것이 육체의 소욕인데 욕심인데 이것이 가득차 가지고 이 세상 평가를 하는데  이놈을 이기야 되지 옛사람 이놈을 이기야 이 속에 이 평가가 나오는데 이것을  예사로 자기 생각나는 대로 욕심나는 대로 하고 평가나는 대로 하고 이렇게  살면은 이것이 다 썩어질 집을 불탈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래 위에 짔는  집들입니다.

이렇게 이 제일 가치인 이 평가 그래서 그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박애생활한  그것이 그것을 상을 준다 말 아니요. 모든 사람의 박애생활 그것이 아니고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과 또 그분의 역사가 어떤 그 가치를 가진 역사라는  것과 그분이 내게 대해서 어떤 관련을 가진 이 그분과 그분의 역사 또 그분과  모든 존재들의 역사, 그분과 나와 역사, 이 사실을 자기가 깨달아서 그 가치 그  사랑에 감격해 가지고 인간 취급을 한 그것을 하나님이 갚으십니다. 예 그것을  가치로 삼으십니다.

그 다음에 제이 가치는 뭐이냐? 이 사람은 선지자라 선지자를 대접하는 그게  아니냐? 선지자를 대접하는 게 아니라 '선지자 이름이라' 말은 선지자의  운동이라 말입니다. 선지자 운동, 땅 위에서 하나님의 것을 인간에게 주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인간이 받은 것 하나님의 것을 받은 것, 이 가치를 깨닫고 이  가치에 입각해 가지고 산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노릇한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선지자 노릇한 것을 선지자 노릇을 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가치를 알고도 선지자 노릇할 수 있소, 공장에서  제품을 하는데 그 사람이 제품을 하지만은 제품을 얼마든지 많이 해놨지마는 그  제품이 어디 쓰는 것이며 그 가치가 어떠한지 그것도 모르고 자기는 돈 보고 그  제품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자기가 그 직분 가졌기 때문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치를 모르고 만들어 낼 수가 있다 그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생 동안 선지자 노릇을 해도 자기가 '주님의 것만이 인간에게  필요하다.' 주님의 것을 주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할 때에 그 전달대로 하면  주님의 것이 그대로 실상으로 와 집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주님의 것만이  인간에게 필요하다. 주의 것을 주는 것은 주님의 뜻을 인간에게 주는 것을 주의  것을 인간에게 주는 것이다.' 요 사실과 이것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보다  가치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주는 것이 천하를 그 사람에게 주는 것보다 크다.'  이 가치을 (이 가치관을) 이 가치관에서 한것만이 하늘나라에서 제일 가치로  영접 받습니다.

아직까지도 세계에 신학에서는 세계에 신학에서는 논단되고 있는 것이 자 사람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 구원을 이루어서 영원할 하늘나라에 가서 이루어지는 구원을  이루는 것은 그것은 이 땅에 이런 것 저런 것 모든 것을 종합해 가지고 종합해  가지고 되어지는 땅에 것 이것 가지고 구원을 이루느냐 순전히 하나님에게서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거기에서 내려오지 안한 것은 먼지만한 것도 구원이  안되고 거기에서 내려온 것만으로써 구원이 도어지느냐? 이것이 지금 세계  신학에서 논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판정이 안났어. 이것이 아직까지 판정이 안났어. 이래 가지고 이게 지금  정죄를 받고 있다싶이 받고 있습니다. 완전주의라고 하는 완전주의라 하는  이거는 하나님의 것이 거기에서 위에서 내려온 고것만 이 인간의 구원이 된다  땅에 이런 것 저런 거는 구원이 안된다. 그것만이 구원이 된다 이 육체의 성화  받는 것도 그게 와 가지고 이것이 그것으로만 와 가치있게 되진 것이지 이게  가치있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인해 다 하는 이것을 인정하느냐? 정통으로  인정하느냐 안하느냐? 만침 이만침 시비하고 있습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의 것만이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것만이 인간에게 필요하지  하나님의 것 외에는 천하 것을 다 뭉치야 그 사람에게 털끝만치도 그 가치는  되지 못하고 필요는 없다하는 요 사실을 깨닫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그 하늘의 것, 완전한 것, 영원한것, 무궁한 것, 썩지 안하고  죽지 안하고 쇠하지 안하는 것, 하늘에 것을 이제 갖다 준다 하는 요 가치를  깨닫고 요 사실을 깨닫고 요 운동의 가치를 깨닫고 (요 운동의 가치를 깨닫고)  하는 자 고것이 하늘나라에서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선지자의 상을 주는 게 아니고 선지자의 이름이라는 것 이 운동 그  이름은 운동을 말합니다. 이 운동 그 다음에는 의인의 운동 의인 운동이라는  것은 의인의 운동은 무엇이 의인의 운동이냐? 의인의 운동이라는 것은 그 불의를  능가하고 의라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행한 걸 말하는 것  아니고, 피조물의 주관, 피조물의 본능, 피조물의 주관과 피조물의 본능 그것이  불의인데 피조물의 주관과 본능 그것을 능가하고 하나님 그분의 주의, 그분의  뜻, 그분의 주장대로 하는 요 가치 그분의 주장대로 하는 것이 이거 가치 그분의  주장대로 한 것이 가치가 아니요. 그분의 주장대로 한 것의 가치가 아닙니다.

이거 잘못되면 그분의 주장대로 한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분의 주장대로 한 것은  뭐이지요? 그분의 주장대로 해논 거는 뭐입니까? 그분의 주장은 뭐이라 할 수  있소. 의인이 그분의 주장입니까? 그분의 주장대로 해논 것입니까? 네, 뭐이요.

그분의 주장대로 만들어논 것입니까? 그분의 주장입니까? 네, 그분의 주장대로  만들어져 있는 것 아니요.

그러기에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대접해 의인을 대접하는 그 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해논 것 그것의 가치를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는 것이 어떤 가치냐 하는 그 가치를 알고 그 가치를  인정하고 그 가치를 상대한 그것을 하늘나라에 상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인을 상 준다 말이 아니요. 의인의 이름으로 이거는 의인의 이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에 운동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운동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이것의 가치가 어떻다하는 이 가치를 알고  한 그것을 제삼 가치로 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 구별하지 못하면 안 돼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행을 합니다. '저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라' 뜻대로 산 것 그 사람을 대우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피조물이 행하는 것,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 이것의  가치가 어떠한가 요 가치를 깨닫고 하나님의 이것이 제삼 가치라 그말이오.

창조주와 피조물과 있을 때에 그것이 제삼 가치라 시간이 많이 지나가니까  여러분들이 가 가지고 자꾸 이거 세김질해서 깨달으면 알아질기라 말이요.

그러면 의인은 뭐이냐? 자율과 피조물의 사상과 주장을 이것이 불의인데 죄는  하나님의 선포해 논 법을 어긴 것이 죄고 불의는 피조물의 주장대로 한 그것이  불의입니다. 의는 피조물의 주장을 버리고 조물주 그분의 주장대로 한 그것이  의입니다. 그분의 주장대로 한 그 주장대로 해논 그것을 가치로 여기는 그  가치가 아니고 그분의 주장대로 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가졌다. 이것이 어떤  가치를 가졌다 요것의 가치를 깨달은 고 가치를 깨닫고 고 가치를 상대해서  자기가 느끼고 고 가치를 상대해서 고 가치를 마련한 것 고 가치를 마련한  그것이 하늘나라의 제삼 가치다 이거 여러분들이 느끼집니까. 잘못 느껴지는 것  같은데 이것이 아니면 외식이 됩니다.

넷째 가치가 주님에게 속한 자라 이것은 주님을 배우는 자라 주님을 배우는 자  주님을 닮아가는 자라 주님을 닮아가는 자라 해서 그이에게 조그만한 봉사라도  협조라도 한 것은 상을 잃지 않는다. '제자의 이름' 주님을 배우는 것, 주님을  배워가는 것, 주님을 닮아가는 것, 주님을 본받아 주님을 본받아 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크며,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크며, 주님의 형상을  입어가는 요것이 얼마나 가치가 큰지 땅에 속한 자들은 주의 것으로 배부르고  남은 것은 자기의 어린 자녀에게 상속시켜주는 것으로써 만족을 하지마는 '나는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느니라' 주의 형상 주님 그분을 닮는 이것의 가치  이 가치를 깨닫고, 이 가치관에서 이 가치를 마련하는 그것이 하늘나라의 제사  가치입니다.

사람들이 자꾸만 땅에 있는 가치에 파묻혀서 그것만으로써 가치로 알고 또  하늘나라의 이것 저것 하늘나라의 것으로 하늘나라에 있을 수 있는 하늘나라의  것으로 만들어진 그것만 가치로 알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것과 하나님의 뜻에  움직이는 뜻에 따른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형상 요것의 가치를 가치로 삼아서  그 밖에 모든 작용을 한 그 사람 고 가치를 요것이 하늘나라의 가치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논 것도 물론 가치있지만은 썩을 것 썩지 안할 것이 강한  것, 욕된 것이 영광스러운 것, 혈육의 것이 신령한 것, 다 가치 있지만은 이것은  그 가치를 능가한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살리는 운동이요. 이걸 가치있게  하는 것이요. 이 모든 것이 근본이시요. 하나님이 자존하셨는데 하나님에게서  제일 귀한 것 제이 귀한 것 제삼 귀한 것 제사 귀한 것이 우리에게 왔으니  하나님 자체에게서 하나님 본체에게서 네 가지 귀한 것이 왔으니 네 가지 귀한  이것이 이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도 가까왔고 우리 준비가 자꾸 가까운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한 가치 저도 여기에 대한 가치를 말로는 많이 했고 또 생각은 했지만은 이  가치 요 가치 입각해서 요 가치 때문에 요 가치 마련하느라고 요 가치 마련한  것이 너무 허무해 여러분들도 다 저와 같을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76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21절-25절/ 1985. 3. 30.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275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46절-52절/ 1985. 4. 1. 월새벽 선지자 2016.01.11
274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24절-27절/ 1985. 3. 31. 주새벽 선지자 2016.01.11
273 하늘나라 들어가기 어려움/ 마가복음 10장 23절-31절/ 1985년 7 공과 선지자 2016.01.11
272 하늘나라 준비/ 마태복음 25장 1절-13절/ 1981. 5. 24.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21. 토새벽 선지자 2016.01.11
270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19.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269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20.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268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16절/ 1981. 11. 20.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67 하늘나라의 가치/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1. 11. 18. 수저녁 선지자 2016.01.11
266 하늘나라의 가치관/ 마태복음 18장 1절-5절/ 1985. 10 29.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265 하늘나라의 가치와 영광/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3. 목새벽 선지자 2016.01.11
264 하늘나라의 실력/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4. 금저녁 선지자 2016.01.11
263 하늘나라의 영광/ 베드로전서 1장 20절-25절/ 1986. 11. 14.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62 하늘의 소망으로 일하라/ 고린도전서 15장 29절-58절/ 1988. 4. 10.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11
261 하늘의 영원한 처소/ 고린도후서 5장 1절-10절/ 1983. 10. 23. 주일오전 선지자 2016.01.11
260 하라, 하지 말라/ 신명기 28장 1절-6절/ 1986. 10. 29. 수새벽 선지자 2016.01.11
259 하라는 것, 하지말라는 것/ 신명기 28장 1절-15절/ 1985. 2. 26. 화새벽 선지자 2016.01.11
258 하루를 하나님 경배로 시작/ 에베소서 5장 15절-21절/ 1984. 1. 6. 금새벽 선지자 2016.01.11
257 하와의 실패 원인 세 가지/ 창세기 3장 1절-4절/ 1980. 1. 2. 수저녁 선지자 201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