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의 가치

 

1981. 11. 20. 금새

 

본문 : 마태복음 10장 16절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주님이 구속받은 우리 성도들을 세상에서 살게 하시는 것이 마치 무엇과 같은고  하니 "양을 이리떼 가운데에 보내는 거와 같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양을  해하는 그런 맹수들이 많이 있지마는 맹수 중에도 양을 제일 많이 해하는 것은  이리입니다. 또 양을 삼키기를 제일 좋아하는 맹수가 맹수 중에도 이리입니다.

그러기에 양이 맹수를 또 제일 무서워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이 자기를  삼킬 세상인 것을 알고 세상이 자기를 삼키려고 하는, 잡아먹으려고 하는  이면에서 두려워 할 줄 아는 그 성도가 깨어 있는 성도입니다.

양도 그것이 죽을병이 들었다든지 그만 생명이 희미해지면 또 그러면 죽어  있으면 뭐 이리가 와서 뜯어 먹어도 그 뭐 두려워할 것도 안하고 관계없지요.

그러나 생기가 붙어 있는 것만치 이리를 보면 두려워합니다.

기독자들이 이 세상살이에서 세상이 자기를 삼키려고 하는 이면에서 두려워할 줄  아는 것만치 그 생깁니다. 생기가 있는 것만치 두려워합니다. 그 두려움이  없어질 때에는 벌써 생명은 있으나 죽은 자와 같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가정도 세상이요 직업도 직장도 세상이요 또 목사가  목회하는 것도 그 세상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  세상살이에서 자기가 세상에서 삼키워져 참 구원을 빼앗기는 이 사실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만치 그 떠는 것만치 그에게 생명인 영감과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만일 거기에 대해서 염려함이나 두려워함이 하나도 없으면 '벌써  그에게 영감과 진리의 생명력이 약하다. 이 생명력이 파묻혔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아침에 요 간단하게 증거를 하려는 것은 이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님이 천지를 지으셨고 능치 못 하심이 없으신 분이신데, 왜 피로  구속한 이 사랑하는 성도들을 무엇 때문에 세상을 이리떼와 같이 그렇게 만들어  가지고 양을 삼키는 이리와 같은 세상으로 성도를 삼키는 이 세상으로 만들어  가지고 성도들에게 만나지게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데 성도들이 이 세상에 살 때에 아주 포근하고 참  평안하고 기쁘고 즐겁고 이렇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지를 아니하시고 이  세상에 하필 성도를 삼키는 그 제 일 성도를 삼키기를 원하는 이런 세상으로  양을 삼키기를 원하고, 양만 만나면 입맛을 죽죽 다시면서 그만 어찌 됐든 그만  구미가 당겨서 안 잡아먹고는 견딜 수 없는 이 이리떼와 같이 세상에 성도만  만나면 그만 입맛을 다시면서 삼키려고 달려들어서 인자 삼키려고 하는 '이런  세상으로 왜 만들어 놨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만들어 놨겠습니까? 주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데 어느 세상 할 것  없이 가정도 세상이요, 또 자기의 사업도 세상이요, 부부 생활도 세상이요,  자기의 뭐 직장도 세상이요, 또 이 권찰님들이 권찰직을 하는 그것도 세상이요,  또 목사가 목사의 직을 하는 이것도 내나 세상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다 세상이요.

그런데 이리가 양을 삼키려고 하는 것처럼 이 세상은 우리의 신앙을 삼키려고  하는 세상인 줄 알아야 됩니다. 목사가 목회를 하면서도 이 목회하는 것은  양떼를 기르는 것 아닙니까? 양떼를 기르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르는 것인데  하나님 백성들을 기를 때에 자기가 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의 신앙을  삼키려고 하는 것인 줄 알아야 되지 그저 양을 기르니까 '이 양이 자기의 신앙을  북돋아 주리라' 이렇게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성도들을 향해서 생명은 너에게서 역사하고 사망은  내게 역사한다' 이랬어. '너희는 내게 주는 건 사망뿐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주는 것은 생명뿐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쇠철봉을 불에 대고 굽습니다. 불에 대고 굽으면 굽는데  여는 뜨겁고 저 끄트머리는 차지 않습니까? 차면 자, 그 철봉에 이 불에 꾸으면  불에 꿉힌데 그 뜨거운 것은 어디로 갑니까? 뜨거운 그들은 그것은 어디로  갑니까? 차운 데로 가지 뜨거운 그거는 차운 데로 가지 그만 뜨거운 데에 이  차운 것은 무엇 주고 있습니까? 차운 것은 뜨거운 것에 대해서 뭘 주고  있습니까? 예? 차운 것 주지 그렇지 않소? 뜨거운 것은 뜨거운 불에 꿉히는  뜨거운 것은 뜨거운 것을 자꾸 차운 데로 주는데 차운 것 이것은 자꾸 차운 것을  뜨거운 데로 줍니다.

이러니까 너희들은 나에게 하는 것이 전부 사망하게 하는 것뿐이고 나는  너희들에게 생명과 살게 하는 것뿐이라. 그러면 이렇게 자꾸 오랫동안 가면은 그  쇠가 뜨거워지지. 이와 마찬가지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아무리 부부간이라도 참 친근한 부부, 친밀한 아주 그  부부간이라도 이 부부가 부부라는 이 부부가 자기에게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뺏든다는 것을 이것을 생각하고 그 부부 생활에 구원을 빼앗기지  안할라고 해야 되지 부부 생활로서 구원이 잘 된다고 이래 생각했다가는 나중에  보면 고만 구원 다 빼앗겨 버리고 맙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 신앙 생활하든지 무엇이든지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다 내 구원을 삼키려고 하는 이리와 같다 하는 요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리와 같으면 어떻게 해야 될긴가? 이리가 되도록 요렇게 하나님이 왜  만들어 놨을까? 와 만들어 놨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를 이리 가운데 보낸 거와  같이 세상을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는 양의 이리와 같이 우리 신앙을 삼키려고  하는 그 세상으로 만들어 놓은 이유가 뭐입니까? 이런 데 보내는 이유가  뭐이지요? 우리 잡아먹히라고 보냅니까? 우리 잡아먹히라고 보냅니까? 와  보냅니까? 저 ○○○ 와 보냅니까? 응 연단시킬라고 연단시킬라고 보내.

이리한테 잡아먹힐라 하니까 안 잡아먹힐라고 화다닥 뛰고 막 달라 안  잡아먹힐라고 뛰고 뭐 달음박질하고 그거 할라고 하도록 하기 위해서 거기에  보냈어. 그렇습니까? ○○○ 조사님, 예. 연단할라고 보낸 것 아닙니다.

양이 이리 가운데 있으면 그 양이 무엇을 찾겠습니까? 목자를 찾을 것이고  목자가 발견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자 사자 하고 목자에게로 달음질치지.

목자에게로 달음질치지. 그 이리로 인해서 목자에게 달려가지요. 이리 때문에  목자에게 달려가지 요깁니다.

요것을 오늘 아침에 말할라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이 세상에 살 때에 어떤  것이든지 어떤 것이든지 그것을 주님 잊어버리고 그것만 보면 저는 삼켜지고  맙니다. 주님 잊어버리고 그것만 접하면 삼켜집니다. 또 주님보다 그걸 좋아해도  삼켜집니다.

이런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이 그와 같이 두신 것은 이리로 인해서  목자에게로 빨리 달려가는 것, 그러면 이리가 없으면 느리 느리 하다가 쉬다가  가다가 또 뭐 가는데 좀 장애물이 있으면 안 가고 있다가 이렇지마는 뭐 이리가  있으면 못 견뎌서 그만 앞에 가시덤불이 있어도 가시덤불이 끌리고 뭐이고  목자에게로 달아나게 된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어떤 것이든지 그로 인해서 주님에게 가까이 가는  그로 인하여 주님으로 주님에게 가까이 가는 가까이 가게 하는 것이 되어지게  하면 하나님의 목적대로 잘 되는 것이고 무엇이든지 그로 인해서 주님과  멀어지면 자기는 망하고 마는 것이요. 어떻게 좋은 것이라도 그로 인하여 주님과  더 가까와지면 살고 복이 되고 그로 인해서 주님과 멀어지면 자기는 망하게 되는  것이요.

그러면 그로 인해서 주님과 가까와지면 어떻게 될 긴가? 주님과 가까와지면  그러면 자기의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포기인가? 그만 기독교는 염세주의고 세상을  다 버리는 세상인가? 어찌 됩니까? 주님을 그것으로 인해서 주님을 가까이  하면은 어찌 됩니까? 그리되면 이제 복의 기관이 됩니다. 복의 기관이 돼요.

제가 가까이 하니까 제가 가가이 한 그로 인해서 그것도 가까이 하게 됩니다.

이러니까 저 하나 구원이 되면 모든 것이 구원이 되고 제게 속한 구원이 되고 저  하나가 구원이 절단이 나면 제게 속한 모든 것이 구원이 다 절단 나버립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복의 기관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그것보다 주님을 더  좋아해서 주님과 가까이 가면 내가 복의 기관이 돼가지고 나뿐만 아니라 내게  속한 모든 것도 다 나로 인해서 복을 받지마는 그것으로 인하여 주님을 멀어지게  되면 저만 망할 것이 아니라 제가 속한 것도 다 망해버리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자기 아닌 자기의 가족이나 자기의 친구나 자기의 사업이나  그것보다도 자기의 몸뚱이나, 그러면 자기 몸뚱이를 주님보다 낫게 여기면 그  몸뚱이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어찌 됩니까? 자기 몸뚱이 몸을 망치는 것입니까?  자기 몸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면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이요 위하는 것 됩니다.

심지어 몸 뿐 아니라 생명도 그렇다 했어. 생명도 자기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그 생명을 인하여서 주님과 가까와지면 그 생명은 참 보배로운 생명이  돼지고 이 생명이 제일 귀한 것이지마는 이 생명도 주님보다도 귀하게 여기면 그  생명으로 인하여 자기는 망치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요것을 우리가 똑똑히 깨달아야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내가  접하고 있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심지어 목회나 가족이나 자기의 몸이나  자기의 목숨 이런 것 보다도 이것으로 이것으로 인해서 이것으로 인해서 주님과  가까와지면 이것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있는 것 주님과 가까와지면  살아나고 이것으로 인해서 주님과 멀어지면 저도 망하고 그것도 망치고 다  망치버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낸 것은 이리로 인해서 양이 목자에게로 더 가까이  오면 이리 때문에 양은 목자의 품에 안기게 됐습니다. 그 이리가 그 양을  유익되게 돕는 그런 결과를 맺고 맙니다. 그러나 이 양이 이리로 인해서  목자에게 가까이 하지 안하고서 목자에게 멀어지고 이리를 상대하고 이라면 저는  삼키지고 결국은 삼키지고 맙니다. 암만 좋아도 삼키지고 마요.

그러기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목숨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망한다" 고  했습니다. 목숨도 몸도 자기의 목숨도 그것보다 주님을 사랑해야 되고 목숨 뭐  할라 가지고 있느냐? 목숨을 뭐 하려고 가지고 있느냐? 이 생명을 사려고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생명을 가지고 주님에게 가까이 가는 이 생명을 인해  주님에게 가까와지는 이것이 되면 생명도 살고 그 생명으로 관련된 모든 것도  살아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복의 기관도 될 수 있고 복의 기관도 될 수 있고 우리는  세상으로 인해서 망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으로 인하여 망할 수도 있고 세상으로  인해서 복의 기관도 될 수 있습니다. 세상으로 인해서 복의 기관도 될 수 있고  세상으로 인하여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가 세상이 없으면 복의 기관이 못 돼요. 세상으로 인해서 자기가  복의 기관이 될 수도 있고 세상으로 인해서 자기는 주를 멀리하고 삼키워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니까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  말씀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요 말씀 한 말씀만 해도 우리가 깨어있을 수 있어. 깨어 있을 수 있어. 그러면  세상을 어떻게 사랑해야 됩니까?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그것으로 인해서 주님에게 가까이 하면 내가 그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복되게 유익되게 구출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그것으로 인해서  주님과 멀어졌으면 자녀가 좋지마는 자녀로 인해서 주님과 멀어졌으면 저 망하고  자녀 망하고 다 망쳤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그 자녀로 인해서 주님에게 더 기도하게 되고 자녀로  인해서 주님에게 더 회개하게 되고 자녀로 인해서 주님에게 더 달라붙게 되고  자녀로 인해서 더 주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그 자녀 때문에 주님과 가까와지면은  그것이 자녀 사랑하는 것이요, 위하는 것이요, 자기도 복되는 것이라 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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